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소스먼 형제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나다의 이 지역에 다시 오게 된 것을 참으로 큰 특권으로 여깁니다. 지난번 이곳에 왔던 때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는데, 늘 다시 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평원에 사는 분들과 산에 사는 분들이 좋습니다. 그저 소박한 분들이지요. 아무런... 미국에서는 꾸밈없다고 하는, 그저 참된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조금도 딱딱하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마음이 겸손한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많은 회중이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회중과 함께 모이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 하고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그리고 그것은... 참 좋은 때입니다. 사실 저는 잠시 휴가를 보내려고 오던 길이었습니다. 이제 여섯 달 동안 줄곧 여행하며 다녔습니다. 집회를 하면 몸이 몹시 지치기 때문에 조금 쉬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플로리다에 있는 내 친구 웰치 에번스 형제님에게 내려가서 잠시 낚시를 할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슨크리크로 올라가서 잠시 낚시도 하고 사냥도 하면서, 내 친구 크리스 버그와 그곳의 형제님들을 만나면 참 좋겠구나.”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을 위해 몇 차례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온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못 되겠지.”
그래서 이 모든 일이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받은 초청장들을 살펴보니, 도슨에서는 누군가 헌터 형제님의 후임으로 와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님께 연락했습니다. 사실 그분 이름은 모르는데, 오늘 아침 이곳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락을...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그럼요. 여기서 한두 차례, 아니면 하루 이틀 저녁 집회를 마련하겠습니다.” 또 “낚시하러 가실 때 안내할 사람도 준비해 놓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와서 여러분을 찾아뵐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들이 내려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랜드프레리도 잊지 마세요. 제가 그곳에 들르니까요. 제가 가 있는 동안 그분들이 하루 이틀쯤은 저를 참아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저희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이 되고자 왔으며, 여러분도 우리에게 복이 되시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어떤 조직을 대표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를 대표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여러분은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로 알고 계십니다. 저는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분으로 말입니다. 제가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러 세계 곳곳을 다니다 보면, 어떤 분들은 “신유를 행하는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하곤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저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치유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미 행하셨습니다. 이제 그다음은 그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저는 의사를 대신하려고 온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의사들의 환자들이고 제 친구들인 분들을 위해 기도하러 왔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멀리 평원에 자리한, 새로 지은 아름다운 작은 교회에서 모이게 되어 기쁩니다. 참 좋은 분들입니다. 어제 오면서 보니... 제가 태어난 켄터키주에서 아버지가 해 주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숲에 들어가 나무를 톱으로 베고, 통나무들을 굴려 모아서... 함께 통나무 굴리는 일을 하고 그것들을 태우곤 했습니다. 남자들은 옥수수를 볶고, 여자들은 사탕을 만들고, 그렇게 함께 통나무를 굴려 모으고, 또...
이곳 여러분에게는 다 생소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수수 당밀도 먹었습니다. 조지아에서 오신 분을 쳐다보니 살짝 웃으시네요. 그분은 수수 당밀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여기 수수 당밀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켄터키 어느 곳에서 오셨습니까? 그렇군요. 저는 그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우리는 수수즙을 끓이며 거품을 걷어 내곤 했는데, 아주 즐거웠습니다. 아, 얼마나... 우리는 옛 남부 미셔너리 침례교 출신인데, 그곳에서는 함께 모여 교회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세족도 하곤 했습니다. 세족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아, 그것이 오순절 교회에도 그대로 이어졌군요. 그곳에서 참 즐거운 시간을, 크게 기뻐하는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종류의 기쁨을 누리려고 모였습니다. 영적인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일들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긍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여기 참 좋은 분들이 계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노르웨이 이름인지 스웨덴 이름인지, 어쨌든 제가 잘못 발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이 벤트루드였는지 벤즈루드였는지,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분들이 기러기를 쏘러 저를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정말,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제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날 밤 예배를 마치고 나니 아주 푸짐하게... 미국에서는 저녁 식사를 ‘서퍼’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디너’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늘 그게 헷갈립니다. 그것이 디너라면 서퍼는 언제 먹는다는 말입니까? 아시겠죠? 저는 몹시 헷갈려서 어디선가 한 끼를 놓치게 됩니다. 저녁때 먹는 것이 디너라면 말입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아침을 ‘브렉퍼스트’, 점심을 ‘디너’, 저녁을 ‘서퍼’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먹는 이것이 디너라면, 제 점심 디너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아시겠죠? 그렇다면 어디서... 이것이 디너라면 서퍼는 어디에 들어가는 겁니까? 다음 날 아침에는 브렉퍼스트라고 하니, 저는 도무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쨌든 제가 가장 익숙한 대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저녁밥을 두 번 먹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한 번 먹고, 그러고 나서 잠자리에 든 것이 아마 한 시쯤, 아니면 열두 시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네 시쯤 되자 저를 깨워 아침밥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들판의 어느 귀리밭에서, 기러기 눈에 띄지 않도록 기어들어가 숨을 구덩이를 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쯤 뒤에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놓쳤던 저녁밥을 그곳에서 다 보상받았습니다. 돌아와서 아침밥을 또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아침을 두 번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 그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슨크리크 쪽에도 그분들 가족이 계셨습니다. 그중 한 분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랬던 것 같은데... 제가 성을 제대로 발음하고 있습니까? 벤트루드. 한 분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너였던 것 같습니다. 이너, 아이버, 아이버. 몸집이 아주 크고 좋은 분이셨는데, 또... 아, 꼭...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저기 둘째 줄에 계십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버 벤트루드. 이런, 이런, 이런! 저는 여기 서서 그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분은 저기서 제 말을 듣고 계셨군요. 그 이야기는 당장 그만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좋습니다.
벤트루드 형제님, 아버님과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까? 두 분 다요. 저는 그 자그마한 노르웨이 어르신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그분 집에, 그곳 목사관에 있었는데,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작은 마을이... 그라운즈버치였지요. 맞습니까? 그 자그마한 벤트루드 어머님과 아버님, 나이 드신 자그마한 노르웨이 분들이 그 집에 계셨습니다. 맞습니까? 아니면 스웨덴 분들이셨습니까? 스칸디나비아 어느 나라 분이셨지요? 노르웨이군요. 아버님이 뭘 좀... 작은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려고 내려가셨습니다. 어머님은 창가에 앉아 계셨는데, 자꾸 커튼을 젖혀 아버님이 오시는지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얼마 후 아버님이 종종걸음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손에는 작은 양동이를 들고, 팔 밑에는 작은 꾸러미 몇 개를 끼고 계셨습니다. 어머님이 아버님이 오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자 마중을 나가셔서 꾸러미를 몇 개 받아 드시고 아버님의 등을 토닥이셨습니다. 그러고는 자그마한 두 분이 나란히 지나가셨습니다. 아, 저는 그저 두 손을 들고 울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은 온 자녀들이 모여들어서 음식을 풍성하게 즐기는 잔치를 했습니다. 점심상에는 온갖 음식이 다 있었고, 그때는 낮 열두 시였습니다. 그렇게 아주 푸짐한 식사를 차려 놓고 먹었습니다. 저는 그 자그마한 노부부와 정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셨던 것 같고, 저는 노르웨이어를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손짓을 해 보아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들어와서 제 말을 통역해 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강을 건너 영광의 거리를 걸어갈 때, 잘생긴 노르웨이 남자분과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노르웨이 여자분을 만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젊고 다시는 늙지 않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저와 아는 분들이 아니십니까?’ 하고 묻겠지요. 그분들은 ‘아, 그렇지요, 브래넘 형제님. 저를 아시잖아요. 우리가 땅에 있을 때, 어느 날 식탁에서 형제님께 야생 기러기 요리를 대접했지요.’ 하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 모두 그 천국의 집으로 가셨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의 귀한 혼들을 평안히 쉬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 오늘 아침 우리는 나눠 드렸... 목사님께서 참 친절하게도 이렇게 잠깐 집회를 소개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저는 보통 설교하러 가면 여섯 시간 정도를 넘기지는 않습니다. 대개 한...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쯤, 대략 그만큼 설교하고 마칩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서론으로 삼십 분 정도만 쓰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여러분이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두 시 삼십 분에 다시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회 기간에 기도를 받으려고 기대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예배당 여기저기 계시군요. 좋습니다. 데려오실 분이 있다면,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떠나야 합니다. 도슨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그러니 오늘 오후에 그분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십시오. 집회가 두 시 삼십 분에 시작하지요? 그보다 십오 분쯤 일찍 오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뒤에 있는 제 아들이 와서 원하는 분 누구에게나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경기장 같은 데서 하는 식으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기 번호를 부르면 누구든지 앞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기도받기 원하는 이웃이 있으면, 오늘 오후에 일찍 데려오셔서 기도 카드를 받게 하십시오. 이제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분께 나아가겠습니다.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귀하고 영광스러운 아들이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성경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교회의 이름이나 목사님의 이름이나 나라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믿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주 예수님의 그 이름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든 잘못 구하려는 것은 아닌지 기도를 살펴봅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거나 구하는 데 어떤 잘못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것들을 구하는 동기가 어떠한지 살펴봅니다. 하나님, 그러니 우리 마음을 살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영원을 향해 가는 사람들임을 알며 이 예배당에서 주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취하셨던 그 흙을 향해 머리를 숙입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를 이 흙의 몸에서 들어 올려 그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이 되게 하시리라 엄숙한 마음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할 일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밤새 기도 모임을 가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구속받은 이들이 그 도시에 있으며, 영원히 그 빛 가운데 걸을 것입니다.
아, 우리 마음은 그것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아직 낮이고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동안, 주님, 주님의 신성한 인도하심과 긍휼을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께서 이 작은 도시에 큰 각성을 주셔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실제로 계심을 깨닫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주님,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그 도시 안에 있는 병든 자들을 고치라.” 하고 제자들에게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죄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먼저 고침을 받고, 그다음에는 몸의 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작은 계곡에 부흥이 휩쓸어, 큰 굶주림과 목마름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기록된바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땅이 제맛을 잃으면... 아니,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그 뒤에는 아무 데도 쓸모없어 사람들의 발밑에 던져져 밟힐 뿐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에 너무나 실제로 계셔서 사람들이 그분을 갈망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분께서 모든 이의 마음을 끄는 중심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면 우리는 낮은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겸손히 머리를 숙여 모든 찬양을 주님께 돌리겠습니다. 이곳 목사님과 함께 협력하시는 목사님들, 이 도시와 온 지역의 모든 교회, 각 교회의 모든 성도에게 복을 주옵소서.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
이 집회를 소개하는 뜻에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와서 이 작은 전도 집회를 이어 갈 것입니다. 궁금한 점은 소스먼 형제님께 물으시면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과 목사님들이 말입니다. 종교적 견해에 관한 질문에는 제가 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각 교회가 잘 알고 계셨으면... 여러분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안전하게 인도하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으며 오십시오. 어쩌면 다음 집회쯤에는 오순절 계통이나 순복음 밖에 계신 분들이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며 확신하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 누구도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걸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말씀을 지키시고 그것을 실제로 이루신다고 믿기에,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압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각... 매 집회 전에 젊은이들이 내려와 나눠 드릴 것입니다... 아니, 빌리가요. 큰 대전도 집회에는 보통 동역자인 리오와 진 두 사람이 함께 다니며 카드 나눠 주는 일을 돕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 아들이 함께 왔으니, 매 집회 한 시간쯤 전에 기도 카드를 나눠 드릴 것입니다. 그래야 예배를... 집회 소개 말씀 등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읽는 성경 구절을 기록하시는 분들을 위해, 서론으로 신약성경 요한복음 12장 32절을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이 본문에서 주제를 얻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아,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저... 우리 모두 그것을 갈망한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미국에는 우리가 부르는 짧은 찬송이 있습니다. “내가 들리면”이라는 찬송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은 무언가를 해내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 해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인류가 원래 그렇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 보려고 합니다. 어제 큰길을 따라 올라오면서 이곳 아래쪽에 있는 두 큰 도시, 캘거리와 에드먼턴을 지나왔습니다. 휘발유를 사러 들어갔을 때 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유기에 “갤런당 39센트”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휘발유에 갤런당 35센트 정도를 냅니다. 그런데 그것을 여기까지 가져와서 4쿼트짜리 갤런 대신 5쿼트짜리 갤런으로 39센트에 줍니다. 그러니 이렇게 멀리 있는 평원에서 미국에서 파는 것보다 더 싸게 팔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정부가 그것을 사들이고, 그다음에는 소비자가 팝니다. 물론 그러고 나서 정부는 그것에 대한 세금을 소비자에게서 거두어 다시 정부로 가져갑니다. 빌리가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 그게 공정한 것 같으세요?” 저는 “글쎄, 이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잘 보시면... 캐나다에 관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령 오십 년 동안 더 지체하신다면, 이 나라가 세계의 나라들을 이끌게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체하신다면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확고한 정부가 있고, 나라를 세워 나갈 수 있는 것들... 천연자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땅에는 석유와 광물이 널려 있고, 산에는 금과 은과 우라늄과 칼륨 염류를 비롯한 온갖 것이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캐나다 자치령은 미국의 약 1과 3분의 2배나 됩니다. 그런데도 뉴욕시... 아니, 뉴욕주 하나에 사는 사람이 캐나다 자치령 전체 인구보다 29만 6천 명이나 더 많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곳을 일구어 갈 자원이 있습니다. 다만 인구가 조밀하지 않을 뿐인데, 그것은 복입니다. 인구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기 시작하면 죄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아들과 버스 정류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아빠, 여기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 누군들 그러지 않겠니?” 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이곳은 낙원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실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 이를테면 여자분들은 큰 도시를 동경하실 때가 많은데... 결코 그런 것을 동경하지 마십시오. 아! 언제라도 이곳을 택하십시오. 이곳이 자녀를 키울 곳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곳보다도 이곳에서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자녀에게, 또 여러분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화폐 가치는 가장 높습니다... 아니,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높지는 않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높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밀을 재배하면 정부가 가져다 대신 팔아 주고, 대금은 반드시 현금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농부가 밀을 재배하면 정부가 정부 자금으로 값을 지불합니다. 그러고는 그 밀을 가져다 다른 나라들에 내주는데, 그 나라들은 결코 돈을 갚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수백 년 동안 빚을 지고도 갚지 않습니다. 그 돈이 정부 자금에서 나가니, 나라 속이 갉아먹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머지않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천연자원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천연자원이 풍부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가령 제가 여러분에게 쌀을 팔고 밀을 받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제 쌀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아시겠죠? 여러분에게는 천연자원이 있으니, 여러분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풍부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성장하며 발전해 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는 다섯 살짜리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의 캐나다 사람은 자기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 ‘얘야, 나는 큰 미래가 있는 이 나라에서 너를 키우고 있단다.’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또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적인 관점에서 그 사람은 자기 자녀에게 미국 사람이 그곳의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겠구나. 이곳에는 의지할 기반이 더 많고, 앞날이 유망한 것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서방 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으로 쳐들어온다면, 미국을 폭파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저쪽을 폭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 나라의 부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잠재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저는 그 전쟁이 미사일 전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전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어와서 그대로 나라를 장악하는 전쟁, 안으로 들어가 발판을 확보할 때까지 그 나라를 잠재워 두는 전쟁일 것입니다. 그들이 그곳에 발판을 확보하고 미국을 장악한다면, 캐나다는 그들에게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소망을 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놓을 수 있는 그 어떤 성취에도 말입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그분의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한다고 합시다. 아주 높이 올라가는 폭탄이나, 어떤... 사람을 스푸트니크에 태워 하늘로 보내는 것 같은 일입니다. 최근 러시아가 온 세계를 향해 크게 떠벌렸습니다. 하늘에 사람을 띄웠다고, 우주로 사람을 보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떠벌릴 일이 못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천 년 동안 우주에 계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저 여기서 조금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광에 이르기까지 올라가셨다가, 우리를 섬기러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돌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우주에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와서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곳 어디든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형제자매 여러분, 만일 오늘날 과학이 어떤 것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해 봅시다. 사람의 농장 끝에 작은 장치를 놓고 켜기만 하면 비가...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고, 끄면 햇빛을 비추게 하는, 필요한 대로 할 수 있는 장치 말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성취이겠습니까! 아, 참으로!
또 어떤 것을 가지고 있어서...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을 회복시켜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합시다. 대단한 성취가 아니겠습니까? 어린이들을 위한 소크 백신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가령 과학이 어떤 것을 발견했다고 합시다. 숟가락에 담아 아흔 살 된 노인이나 할머니의 입에 부어 줄 수 있는 약입니다. 그러고는 한... 환자를 일 분쯤 지켜보면 젊은 남자와 여자로 되돌아가고, 그 피는 다시는 늙지 않으며 그 몸은 결코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적 소리가 울리고 온 나라들이 외칠 것입니다. “죽음이 끝났다! 더는 늙지 않는다! 더는 죽지 않는다! 우리가 정복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학문이나 문화, 교육, 과학을 통해 찾아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찾는 까닭은 그것이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것처럼,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 말입니다. 깊음이 부르기 전에 그 부름에 응답할 깊음이 있어야 합니다. 물고기의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 먼저 그 물고기가 헤엄칠 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느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 나무가 자라기 전에 먼저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예를 들어 자주 말씀드렸듯이... 얼마 전 미국에서 한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연필에 달린 지우개를 먹다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 엄마가 뒤쪽 현관에서 자전거 페달을, 고무 페달을 먹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 작은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검사를 해 보니 그 작은 몸에 유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무에는 유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고무를 먹음으로써 유황을 원하는 욕구를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몸속에 유황을 원하는 욕구가 있기 전에, 그 욕구에 응답할 유황이 어딘가에 있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평안한 곳을 찾고, 완전한 곳을 찾고, 생명을 찾고, 그곳을, 곧 늙은 사람이 그 안에 몸을 담그면 다시 젊어지는 젊음의 샘을 찾으려는 갈망이 있다면, 그런 곳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결코 그것을 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유를 이야기하려고 이 작은 집회에 모였습니다. 어딘가에 열린 샘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결코 그것을 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 마음속에는 치유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해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갈망이 여러분 마음에 있는 것이 확실한 만큼, 그 갈망을 채워 줄 샘도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에게 그 갈망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조물이 있기 전에 그 창조물을 여러분 마음속에 창조할 창조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이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창조물을 창조할 창조자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물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그것을 갈망할 창조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과학을 통해 이것을 찾으려고 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그것을 그저 내버려 두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무언가를 반박하고 무언가를 입증하려고 땅을 파서 화석을 찾습니다. 공기 중의 원자를 붙잡아 쪼개고 분자를 얻는 등, 무언가를 입증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바로 이런 미사일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과학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할 때마다 자신을 파괴하고, 자꾸만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밀어냅니다. 이루려던 것에 더 가까이 가는 대신, 스스로 그것에서 멀어집니다.
화약을 발명했을 때 자기 형제를 죽입니다. 과학으로 자동차를 발명했을 때는 무엇을 했습니까? 화약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이제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져 갑니다. 에덴동산에는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나무... 지식의 나무였습니다. 사람이 생명나무를 떠나 지식의 나무에서 먹었을 때, 첫 입을 베어 무는 순간 자신을 지으신 분에게서 스스로를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학과 지식의 나무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자신을 죽입니다. 스스로 더 멀어져 갑니다. 왜 그저 그 나무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지으셨던 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줄곧 무언가를 이루려고 해 왔습니다. 이제 니므롯을 생각해 봅시다. 바빌론의 이 위대한 통치자는 하나님께서 한때 물로 세상을 멸하셨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아담이 지식의 나무에서 한 입 베어 물어 하나님에게서 스스로를 분리했을 때, 그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림으로써, 종교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스스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스스로... 속죄 없이 구원을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어떤 정해진 방식으로 몇 마디 기도를 하거나 몇 가지 신조를 되풀이하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속죄 없이 구원을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위한 속죄가 있어야 합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불신 외에는 다른 죄가 없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술을 마시고 간음하고 욕설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속성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까닭은 여러분이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스스로를 분리해 놓고, 언제나 바로 그 지식의 나무를 이용해 돌아가려고 하면서 계속 더 멀어져 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 직후 니므롯이 자기에게 탑을, 종교적인 탑을 세우려 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세상을 멸하신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까? 자기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 탑 위에서 홍수보다 더 높이 있으려 했습니다. 물 위로 올라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모든 업적을 이루며 스스로 큰 이름을 떨쳤지만, 그는 자기 탑과 함께 멸망했습니다.
그 후에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도시를 건설하고 그 안에 과학자들과 자기의 뛰어난 일꾼들을 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바빌론이라 불리는 그 도시 둘레에 성벽을 세웠는데, 그 위에서 병거 경주를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성문은 너비가 아마 70피트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커서 문을 열려면 거의 군인 한 중대가 필요했습니다. 아무도 그곳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만큼 더 죄에 빠져들었습니다.
교회도 “우리는 이런저런 교회이고, 우리는 위대한 교회이고, 우리는 큰 교회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제멋대로 죄를 짓고 믿지 않도록 내버려 둡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런 것이 필요 없다.”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와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 마련하신 길을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그 어떤 한 가지 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도 자신이 큰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어느 날 자기 궁전의 툇마루로 나가 “내가 이룬 것을 보라.”라고 말한 것을 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바꾸어 들의 짐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손자가 뒤를 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손자인 벨사살 말입니다. 그는 자기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만든 거대한 조직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호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들 가운데 많은 교회가 처음의 위대한 개혁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사역 대신 그저 사교 활동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교회에 속해 있다. 우리는 이런저런 교회의 회원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오는 새로운 출생입니다. 그 피가 우리를 모든 불신에서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께 속한 특별한 백성으로 구별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루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저... 그저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될 뿐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벨사살은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쥐었다고 생각하자, 전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그릇들을 가져다가 거기에 포도주를 담아 마시기 시작했고, 또... 그것들을 두고 농담을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중 어떤 이들이, 우리 시대의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들은 성령파 광신자들이다.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저들은 이러저러한 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그와 같은 벨사살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들을 조롱하고, 그들이 광신자들이며 종교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성벽 뒤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위에서 내려다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고함을 질러 귀가 먹먹해지게 하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강당에서 말씀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그렇습니다. 조금 뒤로 물러서겠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무언가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가 차려 놓은 놀이터를 부숴 버리십니다. 벨사살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미합중국도 바다의 여왕인 영국에서 나온 나라로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배를 만들고는 그 배는 가라앉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타이타닉이라고 부르는 배였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냈다고, 조선 분야에서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무언가를 이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가 바다를 건너 항해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강한 손으로 인간이 해 보려는 것이 가라앉고 실패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그 배를 침몰시키셨습니다. 마지노선에 있던 프랑스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더 이상 전쟁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등이 건너가 독일군을 몰아낸 뒤, 그들은 지크프리트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마지노선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라인강 너머 독일을 향해 대포를 배치하고 말했습니다. “독일이 우리에게 다시 쳐들어와도 우리는 방어 진지를 갖추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는 바로 그들 뒤로 돌아 들어가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여자와 포도주와 흥청거리는 생활, 죄 가운데 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조롱받지 아니하십니다.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받지 아니하십니다. 사람이, 또는 나라가 무엇을 뿌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둘 것입니다. 개인에게든 나라들에게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특별한 때를 맞아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곳 그랜드프레리에 함께 모이게 하셨음을 온 마음으로 믿는 동안, 우리는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저 꾸며 낸 이야깃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루려 하시는 무언가를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시간을 조금 내어 기도하며 우리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려 하시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이제 지크프리트선... 아니, 마지노선이 생긴 직후, 독일 사람들도 또 다른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그것을 지크프리트선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둘 중 하나인데,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 안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모든 군수 물자를 아래쪽에 두자.”라고 말했습니다.
귀한 독일 국민들은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그 사람에게 바쳤던 충성이라니요! 저는 얼마 전에 독일을 떠나왔습니다. 독일에 필요한 것은 지도력뿐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독재자에게 믿음을 두어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십시오. 아버지는 저 멀리 어느 구역 한쪽에 계시고, 어머니는 이쪽에 계시며, 누이는 또 다른 곳에서 일하고, 형제는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이르렀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은 좋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람에게 믿음을 두셨습니다. 그 충성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좋은 분들이지만 잘못된 곳에 충성을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잘못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충성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칩시다. 에디 프루잇 [페로넷]이 그의 때에 외쳤듯이 말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능을 모두 찬양하라! 천사들은 엎드려 절하라. 왕관을 가져와 만유의 주이신 그분께 씌워 드려라.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견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서 있습니다.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입니다. 나라들은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깨어나며, 선지자들이 예고한 표적들이 나타나네. 이방인의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고, 두려운 일들이 겹겹이 에워싸네. 흩어진 이들이여, 너희 땅으로 돌아오라.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뜻을 찾아 아버지의 일을 합시다. 우리 자신의 이름을 떨치려고 하지 맙시다. 전도자들, 큰 전도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모습을 봅니다. 때로는 자신이 너무 큰 인물이어서 작은 교회 같은 곳에는 갈 수 없다고 여깁니다. 큰 이름이라니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큰 이름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언젠가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혀가 시인하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 가운데 큰 이름은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모습을 봅니다. 우리의 타이타닉은 침몰했습니다. 히틀러의 마지노선이든 지크프리트선이든, 어느 것이었든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렇다면 길 끝에서 우리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됩니까? 우리의 성취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에 매달립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가지고 계신지, 이루어 놓으신 일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한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와 사악함 때문에 세상을 멸하려 하셨을 때,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 방주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가 성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것을 그저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불러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세상이 그것을 믿었다면 세상을 구할 수 있었을 방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구원받지 않을 것을 아셨으므로, 그 길이를 정해진 큐빗만큼만 되게 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하셨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는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은 죄와 불신을 잔뜩 짊어진 남녀들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오도록 길을 넓혀 주지 않습니다. 그 길은 좁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길입니다.
그분은 누가 들어올지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분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노아가 문에 서서 심판을 전하는 것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격하게 들립니다. 믿지 않는 마음에는 언제나 그렇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불신이 하나님을 막지는 못합니다. 불신은 믿지 않는 사람만을 막습니다. 그것은 막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불신으로 해가 빛나는 것을 막을 수 없듯, 여러분의 불신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침례자 요한은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시겠죠? 누군가는 그것을 들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의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도덕적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날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광신자라고 불렸습니다. 사람들은 언덕 위에서 방주를 짓는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그때까지 하늘에서 물이 내려온 적이 없었습니다. 과학이 그에게 와서 “그 물이 어디 있소? 어디 있는지 보여 주시오.”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물질적인 것들에 근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근거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그것을 믿으십시오. 노아는 말했습니다. “그 물이 어디 있는지는 말해 줄 수 없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소. 내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오.” 그래서 그는 방주를 짓고 그것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모세라는 사람이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광야 저편에 있는 도망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그리로 올라갑니다. 그가 받을 수 있었던 모든 지식을 갖추었으므로, 그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셔서 그가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그곳으로 다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집트 사람 한 명을 죽였고, “분명히 내가 그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시겠죠?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어떤 일이든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말씀을 그대로 붙들어야 합니다. 옳아 보이든 그렇지 않든 그분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므로,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상하게 보이고 아무리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반드시 실제입니다. 그분께서는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무한하시고, 모든 말씀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계획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저는 제 계획을 바꿀 수 있고 여러분도 여러분의 계획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말을 했다가 취소해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고 여러분도 남자요 여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므로 그것에 대해 다른 결정을 내리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처음 결정을 지키셔야 합니다. 모든 결정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우리는 “내가 잘못했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틀리시면서 하나님이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그때 취하신 행동이... 어느 때 한 사람을 구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어떤 근거에 따라 그 사람을 구원하셨다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그와 같은 조건으로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한 사람의 믿음 때문에 그를 고치셨다면, 매번 같은 조건에 똑같이 응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첫 사람을 구원하시거나 첫 사람을 고치셨을 때 잘못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믿음,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마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세는 그 나무에서 잎을 뜯어 실험실로 가져가 왜 타 버리지 않는지 검사받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나무에 무엇을 뿌려 놓았는지 궁금해했을 것입니다. 그 자신도 과학자였습니다. 이집트 과학자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늘 앞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등을 만들었습니다. 또... 그들에게는 미라의 옷을 물들일 수 있는 염료가 있었는데, 수천 년 동안도 그 색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과학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과학적으로 조사해서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랜드프레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이 교회가 여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먹은 사람의 귀를 열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데 근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어진 일을 말하며,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다 알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내셨습니다. 검은 소가 어떻게 푸른 풀을 먹고 흰 우유를 내는지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는 그렇게 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릅니다. 하지만 우유는 맛있게 먹습니다.
죄에 깊이 빠져 너무나 수치스러운 처지가 되어 거리의 매춘부를 개들조차 쳐다보려 하지 않을 정도인 그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품위 있는 여인으로 만들 수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어떻게 저 같은 눈먼 사람이...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오랜 세월 몸을 쓰지 못했던 업쇼 하원의원이 어떻게... 영국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고인이 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아니, 고인이 된 플로렌스가 아니라 그분의 증손녀 말입니다. 암이 그 여인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아마... 사진이 실린 제 책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 여인은 몸무게가 60파운드도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건강하고 튼튼한 여인입니다. 영국과 아프리카의 최고 의료진이 그 여인을 포기하여 죽게 되었는데,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을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형제님들,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믿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성취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또 이곳에 와서 여러분에게 신유를 말로 설명해 드릴 수도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의 믿음에 제 믿음을 합하여,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바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노아에게는 방주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손에는 그것으로 일을 이룰 막대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뜨지 못하는데 그 방주는 어떻게 물에 뜨겠습니까?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 막대기가 다른 막대기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무엇을 했습니까? 믿지 않는 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홍해를 열었습니다. 목마를 때에는 물을, 굶주릴 때에는 음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막대기로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지혜자들에게는 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따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따랐습니다. 그 시대에는 방주가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막대기가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지혜자들의 시대에는 별이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캐나다의 친구 여러분, 오늘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우리 앞에 제시하셔서, 그분께서 죽어 계시지 않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며, 지금 여기에, 오늘 오후 우리 가운데,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자신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이룰 수 있고 무엇을 입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이루신 일입니다. 저는 문학사 학위도, 철학박사나 법학박사 학위도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저를 위해 이루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주셨고,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입증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부활의 날에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죄로 병든 모든 사람과 육신이 병든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신성하신 하나님,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주님, 긍휼을 구합니다. 우리는 공의를 바라지도,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를 정죄하고 죄인으로 만들며 물리치실 것입니다. 아버지, 주님의 율법이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기에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원합니다. 주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베푸시는 용서의 은혜를 원합니다. 그 은혜로 믿으려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집니다. 아버지, 우리는 어떤 성취를 이루거나 조직이나 교단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궁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큰 인물로 만들려 하지 않고, 그저 겸손히 머물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에 감사드립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나, 자기의 성취를 통해 자신을 높이는 자는 물론 낮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작은 교회와 귀한 목사님, 오늘 우리와 함께한 이 귀한 형제님들, 집사님들, 관리위원들, 이 사랑스러운 여성들, 이제 막 인생의 전환점에 서서 이곳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주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참으로, 그뿐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시려고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높이 올라가셨고, 그곳에서 중보자가 되시며 우리를 이끌고 인도하시도록 성령을 다시 보내 주셨음을 믿습니다. 영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며 예수님께서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 그분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우리의 성전이 깨끗하고, 우리의 마음이 모든 불신에서 깨끗해지며, 우리의 혼이 주님께서 이루신 그리스도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분의 긍휼과 말씀을 받아 오늘 오후 이 사람들에게 그분이 너무나 실제로 계심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랜드프레리가 있는 한, 이곳에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분의 임재로 인해 이 이야기가 전해지게 하옵소서. 이로 말미암아 이곳에 옛날과 같은 부흥이 일어나고 많은 혼들이 구원받게 하옵소서. 주님을 믿는 자녀인 우리가 모두 함께 모인 지금이,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위대한 날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