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형제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후 이곳에서 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에 함께하게 된 것을 큰 특권으로 여깁니다. 이 사흘 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옛 친구들을 만나고 새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이 제게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새 친구들을 만나고 옛 친구들과의 우정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아래쪽 그랜드프레리에서도, 이곳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참된 경외심과 부흥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영적 부흥, 곧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또 오랜 친구들 몇 분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 버그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늘 오곤 하니까요. 그리고 마일로도 만나기를 기대했는데... 예, 더니 형제님, 여기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반갑습니다. 참 좋습니다. 더니 씨는 지난번 우리가 사냥하러 갔을 때 제 안내인이셨습니다. 여기 계신 친구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여러 번 했으니까요. 그 후로 한동안 좀 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서 말씀드렸던 주님은 지금도 같은 하나님, 위대한 치유자이십니다. 델라는 어떻습니까? 잘 지내십니까? 잘됐습니다. 더니 씨는 정말 작은 쇳덩이처럼 단단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제가 여기 왔을 때 그분은 일흔 살쯤 되셨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 연세에 실제로 힘이 그렇게 좋으신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크리스와 제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분은 바로 우리보다 앞서 가 계셨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모르고 살 수가 없습니다. 저도 서서 산들을 바라볼 때면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친구 크리스와 더니 씨, 그분들을 위해 자주 기도했습니다. 언젠가 이 삶이 다 끝나면, 저 위 끝없이 펼쳐진 숲의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가다가 형제님들을 만나 다시 우정을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 위 짐승들이 다니는 길 어딘가에서 저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두루 살펴보고 있을 테니까요. 사냥하는 친구들, 덫을 놓는 친구들 모두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겠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 주님을 위해 일하고자 합니다.
저는 길을 떠나던 중이었습니다... 짧게 휴가를 보낼 때가 되었는데, 여섯 달 동안 사역 현장에 있었더니 정말 지쳤습니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이 북쪽으로 올라와, 형제님들이 말씀하시던 그 사루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보고, 어쩌면 길가에서 곰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올라왔고, 사람들이 여러분의 목사님과 일정을 마련했습니다. 주님께서 뜻하시면 오늘 오후나 내일 이른 아침, 둘 중 한때에 떠나 광야에서 며칠 쉬다가 주님의 사역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섯 달 내내 쉬지 않고 사역하느라 피곤하고 지쳤다고 해도, 그냥 지나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사역은 국제적입니다. 온 세계를 다닙니다. 그래서 이곳 도슨크리크와 그랜드프레리의 친구들을 들러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들과 똑같이 귀한 믿음을 지닌 형제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과 함께 한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얼마나 귀한 교제를 나누었는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들어올 때 빌리가 말해 주었는데, 오늘 오후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의 헌금을 전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은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정말 여러분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러분을 만나러 왔으니까요.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한번은... 며칠 전 그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헌금을 주었는데—그랜드프레리에서 오신 분들도 여기 몇 분 계시군요—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스먼 씨가 말해 주기 전까지 저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릴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최선의 방법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쓰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이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하였으므로 내게 하였느니라.” 제가 바로 그 가장 작은 자입니다.
저는 쉰두 살이고, 삼십 년 동안 설교했지만, 평생 헌금을 걷은 적은 없습니다. 평생 단 한 푼도 헌금을 걷은 적이 없습니다. 늘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역의 길로 들어선 뒤에는, 저는 한 번도... 그저 도시들로 가면 그곳에서 집회 경비를 부담합니다. 큰 강당들 말입니다. 하룻밤에 천 달러, 이천 달러를 내야 하는 곳 말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그것을 맡아 처리하므로 제게 그 돈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무엇인가를 주실 때마다 언제나 그것을 쓸 곳이 생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저는 믿음으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그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으려고 여기 단 위, 아니 강단 위에 놓아둔 손수건 두 장이 보입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일입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기도 천을 원하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가장 큰 사역들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한 부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 천을 전 세계로 수천 장씩 보냅니다. 독일의 어느 부인이 이십 년인지 이십오 년인지 관절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독일에 갔을 때 그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천 명에 수천 명이 사방에서, 저 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곳곳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곳과 사정이 다릅니다. 도시나 나라는 작고 사람은 많아서, 그런 집회가 열리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 독일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작은 기도 천과 함께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가능하면 친구들이나 목사님을 부르고, 그럴 수 없다면 이웃 한 분이라도 부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구한 뒤, 그 천을 몸에 대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독일 부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지시대로 천을 속옷에 댔습니다. 이웃들을 불러 와 기도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모두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천을 몸에 댄 다음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자, 이 늙은 마귀야, 내게서 나가라.” 그분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일어나 바닥을 가로질러 걸어갔습니다. 이십여 년 동안 휠체어에 앉아 있던 분이 말입니다. 그처럼 단순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 어떤 특별한 믿음을 얻으려고 애쓸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으려면 무슨 초월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믿음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성경에서는 우슬초로 문에 피를 발랐습니다. 여기 계신 목회자 형제님들은 그것을 아십니다. 우슬초는 흔한 풀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피를 바를 난초를 찾으려고 애씁니다. 피는 난초로 바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슬초로 바르는 것입니다. 흔하고 평범한 믿음입니다. 그저 마치...
여러분에게 무슨 초월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 오셨습니까?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어떻게 자동차를 운전합니까?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치유를 믿는 것도 바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높은 학력이나 무슨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향한 평범한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어머니가 무엇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것처럼, 그저 믿으십시오. 꼭 그렇게 믿으십시오. 그들은 피를 가져다가... 우슬초는 대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담의 틈새에 자랍니다. 그곳에는 흙벽돌로 된 담이 있었는데, 우슬초가 그 담을 타고 자랐습니다. 작고 세모난 잎이 달린 풀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뜯어 피에 적신 다음 문에 발랐습니다. 물론 그 피를 바르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바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흔합니다. 우슬초처럼, 그저 흔한 풀과 같습니다. 믿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다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작은 기도 천을 원하지만 여기에 가져다 놓지 못한 분이 계시면, 언제든 제게 편지해 주십시오. 기꺼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저 ‘윌리엄 브래넘,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이라고 쓰시면 제게 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성경의 사도행전 19장에 끼워 둘 천을 하나 원하시면, 그저 편지를 보내십시오. 무엇에도 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돈을 받지 않습니다. 모두 무료입니다. 그러니 편지해서 받아 가십시오. 기꺼이, 정말 기쁜 마음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여러분을 고치시고 도와주시기를 기도해 드린 작은 천입니다. 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행하신 놀랍고 큰 일들만 이야기해도 이 오후 내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다른 분들이 이 건물을 쓰셔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싶지 않습니다. 건물도 조금 비좁고, 여러분이 꽤 빽빽하게 앉아 계십니다.
또한 우리 목회자 형제님들과 모든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훌륭히 협조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시 당국과 경찰관들, 그 밖의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기 계신 제 남부 출신 친구 에번스 씨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이분을 앞으로 나오시게 해서 잠깐 말씀하게 해야, 여러분이 남부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말하는지 들으실 텐데요. 여러분은 제 말투가 심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이분이 주유소에 들어가서 “모텔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영국 사람이 아주 이상한 눈으로 그분을 쳐다보더니 말했습니다. “예, 여기 낡은 타이어가 좀 있습니다.” 낡은 타이어 말입니다. 이분이 나가서 “아이스크림 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러지요” 하더니 손을 뻗어 아스피린 한 상자를 집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며칠 전 저는 이곳 사냥용품점에 서 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신사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냥 전리품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에번스 형제님에게 저 큰사슴들이 조지아에 있는 그분의 토끼들보다 얼마나 더 큰지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거기 걸린 커다란 전리품들을 보고 있는데, 그분이 “누가 주차 위반 딱지를 받고 있네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에번스 씨의 차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밖으로 뛰어나가 “형제님, 잠깐만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경찰관은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그저 ‘도슨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환영장을 드리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다시 들어오더니 남부 말투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런 분 하나를 조지아로 데려다가 씨 좀 퍼뜨렸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선을 넘으면 저렇게 친절하지는 않거든요.”
여러분에게는 참 훌륭한 나라와 훌륭한 국민이 있습니다. 가장 건실한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주 예수님의 오심이 늦어진다면, 지금부터 오십 년 뒤에는 이 나라가 세계를 이끌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천연자원이 있습니다. 산에는 금과 은이 가득합니다. 철, 광물, 칼륨염, 칼슘, 온갖 천연자원과 목재가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뉴욕시에는, 뉴욕주에는 캐나다 자치령 전체보다 사람이 이십구만 육천 명 더 많습니다. 아시겠지요. 캐나다 자치령 전체보다 이십구만 육천 명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는 땅이 넉넉합니다. 그리고 캐나다는 미국보다 한 배하고도 삼분의 일인가 삼분의 이만큼 더 큽니다. 천연자원은 있지만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 점을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아시겠지요, 여러분은 아직... 제가 밀을 팔고 그것을 여러분의 쌀과 맞바꾸는데, 제 밀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미국은 천연자원이 다 떨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자원으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훌륭하고 안정된 정부가 있고, 은행이 모두 정부 소유이므로 이곳에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파동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에게는 큰 기회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줄 것이 많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세계 어느 다른 곳에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그것을 말해 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디서든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한 분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작은 나라가 아무리 위대해도 언젠가는 틀림없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주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소망, 우리에게 있는 유일하고 확고한 소망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으로 나아가기 전에 잠깐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말씀을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구하기 전에 그 말씀을 쓰신 분께 나아갑시다.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셋째 날에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이시여, 그분은 자신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값없이 용서하시고 우리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 이 귀한 캐나다 사람들 가운데 손님으로 오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경륜 안에서 이들과 같은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하나로 연합해 함께 서서,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같은 시민으로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믿음과 소망과 기도를 합합니다. 주님, 오늘 모인 사람들 가운데 주님을 구주로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오늘이 “이제부터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라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결단을 내리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여기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주님의 임재가 그토록 강하고 불신을 압도하여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예배가 마칠 때 우리 가운데 허약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오후 예배를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질 때,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영원에 들어가기 전 우리가 함께 모이는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는 함께 모이지 못하게 된다면... 설령 제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제가 살아서 오늘로부터 일 년 뒤에 돌아온다 해도, 분명 많은 분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겠습니까? 가장 깊은 진실함과 온 마음으로, 주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양심으로, 믿음과 경외심으로 그분의 말씀에 다가가게 하옵소서.
오늘 오후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할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아버지, 오늘 이 건물에 앉아 계신 분들 중에는... 우리가 개척자라고 부를 만한 분들이 많이 계신 줄 압니다. 이들은 개척민이거나 개척민의 자녀들입니다. 이 땅을 일구어 왔습니다. 며칠 전 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저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맨발의 어린아이들이 늪에서 묵은 나무 그루터기를 뽑아 한데 쌓으며, 땅에 씨를 심어 다음 해 먹을 양식을 마련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들에게 영원한 집을 주옵소서. 치워야 할 그루터기도 없고, 자신이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도 않는 곳,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영원한 집에서 영원히 살 곳을 주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여기 앉아 계신 많은 분은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가고, 숲속을 올라가며, 해 뜨는 것과 해 지는 것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꼼짝 못 할 위기에 놓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신비로운 손길로 붙들어 도와주셨다는 것도 아십니다. 아버지, 저는 이들을 사랑합니다. 이들은 제 형제들입니다. 오늘 여기 앉아 계신 좋은 친구들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언젠가 영광의 세계에 있는 멋진 사냥길에서 이들 모두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사랑하고 함께 교제했던 모든 사람을 그곳에서 만나게 하옵소서. 그 일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준비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말씀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 마음에 씨를 심어 주시고,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이제는 성경 말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게 말한다면 저는 위선자일 것입니다. 저는 위선자로 하나님을 만나느니 차라리 믿지 않는 자로 만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성경 한 구절을 읽어 드리려 합니다. 저는 사람이므로 제 말은 실패할 수 있지만, 그분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실패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여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존중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과 9절입니다.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여기에서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는 주제를 택하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외침이며,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인간은 시간의 장막 너머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여기서 할 일이 무엇이며, 이곳을 떠난 뒤에는 어디에 있을지를 알아보려 애써 왔습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왔고, 어떤 이유로 여기에 있으며,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문헌 가운데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책은 오직 한 권, 바로 이 성경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우리는 그분께 나아갑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인 욥기에도, 욥이 종기로 온몸이 뒤덮였을 때 모든 일이 그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그리스도인 친구들, 아니 종교적인 친구들은 “욥, 자네가 악을 행했군” 하고 말했습니다. 누가 병들면 그 사람이 악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욥은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자신의 백성에게 고난이 닥치도록 허락하셔서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죄인을 꾸짖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시험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오는 아들마다 반드시 시험을 받아야 하느니라.” 시험받고, 자녀로서 훈련받은 뒤에 하나님의 참된 자녀임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욥의 경우에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자녀들도 모두 잃었으며, 친구들까지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칠 일 동안 앉아서 욥이 은밀하게 죄를 짓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물을 요구하셨고, 욥은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그것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올바른 제물을 드렸으므로 자신이 의롭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간다는 것을 알 때에는 무엇도 그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욥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가운데, 온몸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 앉아 종기를 긁고 있을 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욥,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지 그래요?” 그는 아내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런 여자처럼 말하는구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나는 벌거벗고 세상에 왔으니 벌거벗고 돌아가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영이 그 선지자에게 임하고, 그가 오시는 의로우신 분을 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분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잠깐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상의드리고 싶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왜 병들었습니까? 왜 이렇게 고통을 겪습니까?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그분의 문만 찾을 수 있다면, 그분께 제 사정을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답게 네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께서는 회오리바람 가운데 내려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욥아, 내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 축들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내게 말해 보아라.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외칠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아? 네게 그토록 지혜가 많다면 말해 보아라.” 그때 영이 그 선지자에게 임하셨고, 그는 보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오, 내가 찾아갈 수 있는 누군가를, 나를 이해해 줄 어떤 사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한 손은 죄인에게, 한 손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얹어 그 사이를 이어 줄 사람만 있다면!” 우리가 찾는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죄인과 거룩하신 하나님 양쪽에 손을 얹고 그 갈라진 틈에 서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의로우신 분이 오시기 이천 년 전이었는데, 욥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 외쳤습니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기 때문입니다. 그 선지자가 영 안에 들어가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살갗을 먹는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니 다른 이가 아니라 내 눈이 그분을 바라보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이 확실하도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그는 그 위로를 찾았습니다. 그 무엇을 찾았습니다. 죄 많은 사람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틈에 서서 중보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찾은 것입니다. 오늘 오후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교회 여러분. 여러분의 고된 노동과 수고, 사랑과 두려움에 관해 제 마음을 전했던 친구 여러분, 오늘 제가 기쁜 것은 자격 없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 그 틈에 서서 중보하실 수 있는 그분을 우리 또한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을 보는 것에 관해 말씀드리며,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학생들, 우리 자녀들이 높은 교육을 받도록 학교에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은 좋습니다. 교육에도 몫이 있고 역할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하다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은 복음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나쁜 원수입니다.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사람은 거의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성은 그저 인간의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보는 것은... 저는 하나님을 보는 것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관해 아주 많이 말씀하셨고, 빌립은 그토록 간절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방금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떠나려 한다고 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었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 그분은 아버지의 집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불쑥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아버지를 본 자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러니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오늘 오후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분을 정말 보고 싶으십니까? 그분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첫날 저녁에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지금 네 가지 주제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어디에 계신지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떠나 버리셨습니까? 한때 살다가 이제는 사라져 버린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느니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바로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먼저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며 그분을 볼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만일 제가 성경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오후 바로 이 방 안에 계심을 증명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그분을 믿을지 말지 하는 문제는 분명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과 증거를 통해 그분께서 바로 지금 여기에 계심을 증명한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늘 그분 바로 위로 눈길을 보내면서 그분을 찾으려 합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데도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뛰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팔이나 몸의 지체들보다 더 가까이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일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에 관해 말하자면, 얼마 전까지 제 교회에 다니시던 제임스 와이즈하트라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낚시꾼이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짐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나이는... 여든 살 가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강 위쪽으로 낚시를 다니곤 했습니다. 교회에도 건너오셨습니다. 켄터키 사람이셨고, 강의 너비는 약 일 마일입니다. 오, 짐 아저씨와 제가 강에서 함께 메기를 잡으며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는지요. 밤새 강둑에 함께 누워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했습니다. 오늘 오후 그분은 저편에 계십니다. 언젠가 저도 건너갈 때 그분을 뵙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몇 년 전 제가 캐나다로 오려 할 때 그분이 마지막으로 제게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빌리, 언젠가 자네가 돌아오면 짐 아저씨는 없을 거야.” 그로부터 이틀쯤 뒤, 그분은 갑자기 쓰러져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본향으로 가신 것입니다.
우리 도시에 어느 교회가 있었고, 한 작은 가족이 그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교회는 그저 하나의 교단에 더 가까웠는데, 하나님을... 일종의 역사 속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교회 일요일 성경학교에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열의가 생긴 그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그렇게 위대하시다면 왜 나는 그분을 볼 수 없어요?”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얘야, 나도 모르겠구나.” “그분을 볼 수는 없어요?” “글쎄, 모르겠구나. 성경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렴.” 그래서 다음번 일요일 성경학교에 갔을 때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가 대답하지 못한 걸 하나 여쭤보고 싶어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선생님은 “글쎄, 나도 모르겠구나. 목사님께 여쭤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그 소년은 알고 싶은 마음에 목사님께 갔습니다. “목사님, 엄마도 성경학교 선생님도 대답해 주지 못한 질문을 하나 하고 싶어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위대한 하나님은 인류의 하나님이 아니세요?” “그렇지, 얘야. 그런데 왜 그러니?”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저는 그분을 보고 싶어요.” “오, 얘야, 아니란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야.” 아이는 실망했습니다. 그 아이는 나이 드신 와이즈하트 형제님과 강 상류로 낚시를 다니곤 했습니다. 어느 날 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와이즈하트 형제님은 끝이 은빛으로 센 수염을 기르고 계셨고, 일흔다섯 살쯤 되셨습니다. 그날 강 위쪽에서 물고기를 아주 많이 잡고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폭풍이 몰려와 강둑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강둑으로 가서 폭풍이 그칠 때까지 쉬었습니다. 커다란 단풍나무 같은 나무들 아래 깊숙이 들어가 폭풍이 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폭풍이 그친 다음 배를 밀어내어 강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물결이... 노 끝이 물결에 부딪치는 소리, 찰랑거리는 작은 물결 소리가 얼마나 음악처럼 느껴지는지는 노를 저어 본 사람만 압니다. 해는 서쪽에서 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나온 뒤편 동쪽에는—어린 소년은 배 뒤쪽에 앉아 있었습니다—하늘을 가로질러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 나이 든 낚시꾼은 노를 저으며 계속 그 무지개를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뒤, 희고 반짝이는 커다란 눈물방울들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 끝이 희끗한 수염 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소년은 잠깐 그 노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벅차오른 아이는 배 한가운데로 달려가 그 낚시꾼의 무릎 곁에 엎드리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엄마도 성경학교 선생님도 목사님도 대답하지 못한 걸 하나 여쭤볼게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어린 소년의 질문에 감정이 북받친 그 낚시꾼은 노를 배 안으로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두 팔로 아이를 감싸 가슴에 꼭 안고 울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작은 마음을 복 주시기를 바란다, 얘야. 나는 지난 오십 년 동안 하나님밖에 보지 못했단다.” 그의 안에 하나님이 그토록 충만히 계셨기에, 그는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길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게 하십시오. 의심과 의문, 혼란과 불신이 들어 있다면 결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며칠 전 올라오면서 보니, 저 아래 인디애나에 있던 우리 오리들이 모두 이곳 캐나다의 여러분을 찾아왔더군요. 그 녀석들은 사교성이 좋은 동물입니다. 이곳에 오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둥지를 틀기 위해서입니다. 그 녀석들은 다시 인디애나로, 저 아래 텍사스와 조지아로 내려갈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겨울을 나려고 내려오고, 봄에는 여러분을 만나러 올라옵니다. 그리고 녀석들이—‘여러분들’이라는 제 남부식 말투가 참 엉망인 줄은 알지만, 제가 남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이곳에 올라오면 작은 연못이나 호수의 진흙탕으로 가서 작은 둥지를 만듭니다. 새끼 오리들을 부화시킨 뒤 이 호수에서 헤엄치며 지내다가, 얼마 지나면 산꼭대기로 눈이 내립니다.
구월쯤 되어 첫 찬 바람이 이 초원들을 훑고 내려올 때... 기억하십시오. 그 어린 오리들은 한 번도 그 연못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잘 자라 다 큰 오리들이 되었습니다. 그중에 태어날 때부터 지도자인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만드셨습니다. 처음으로 그 바람이 불면, 그 녀석은 전에는 한 번도 그런 바람을 느껴 보지 못했어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작은 물갈퀴로 저어 곧장 연못 한가운데로 나가서 작은 부리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꽥꽥, 꽥꽥” 합니다. 그러면 연못의 모든 오리가 그에게 모여듭니다. 그 녀석이 어떻게 합니까? 거기 있는 모든 오리와 함께 곧장 연못을 박차고 날아올라, 루이지애나를 향해 똑바로 갑니다. 어떻게 갈 줄 압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는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본능이 그 녀석을 이끈다고 합니다. 본능이 오리를 얼어붙는 땅에서 안전한 곳으로 이끌 수 있다면, 성령께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얼마나 더 잘 이끄시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 곧... 하나님께서 주신 지도자이신 성령 대신 사람이 세운 지도자들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성령께 귀 기울여야 할 때 감독과 대주교와 추기경과 사제들의 말을 듣습니다. 교회를 인도하도록 주어진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리 주니어가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몇 년 전 그 아이와 제가 인도에 막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제가 영자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인도는 두 언어를 쓰는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새들이 돌아오고 있으니 지진은 끝난 것 같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기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이틀쯤 전... 인도 사람들은 여기 캐나다의 여러분만큼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들판에서 돌을 주워다가 집을 짓고 담도 쌓아야 합니다. 작은 새들은 그 틈새로 들어가 둥지를 틉니다. 그리고 담 곁으로는 오후가 되면 양들과 소들이 와서 그늘에 섭니다. 햇빛이... 열대의 태양빛이 곧장 내리쬐어 몹시 덥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후면 언제나 와서 크고 높은 담의 그늘에 섰습니다. 작은 새들은 돌 사이의 움푹한 곳에 둥지를 만들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작은 새들이 모두 담에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소들과 양들도 담 둘레에 서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둘째 날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들이 어떻게 그늘을 마련했는지 아십니까? 서로 몸을 기대어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교회가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오순절교인, 장로교인 여러분, 형제 여러분, 우리가 서로 몸을 기대고 서로 의지해서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서로 도우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정죄하려 하지 말고, 서 있을 작은 그늘, 작은 복음의 그늘을 만들어 주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때는 고달픈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날 동틀 무렵, 갑자기 지진이 연거푸 일어나 그 담들을 흔들어 무너뜨렸습니다. 양들이 담 둘레에 서 있었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새들이 담 속 자기 집에 있었다면 그들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양과 소와 새들을 방주 안으로 몰아넣으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1960년에도 여전히 같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자신의 동물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또한 부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신문 기사를 오려 가지고 있습니다. 지진의 마지막 굉음이 그친 뒤 작은 새들이 돌아왔고, 소들도 돌아왔다는 기사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자연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노아 시대에 계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같은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새와 동물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본능의 인도를 지금도 받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가오는 진노를 얼마나 더 피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있는 러시아의 수소폭탄에 우리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진노를 피하지 않습니까? 죄 가운데 죽으면 지옥이 우리의 운명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이와 똑같은 표적과 이적들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교회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보는 바로 그것들입니다. 마지막 날의 경고 표적이 되게 하셨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여전히 세상의 낡은 흙집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전히 불신 속에 머뭅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제 사냥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아시듯 저는 콜로라도에서 안내인으로 일합니다. 그곳에서 여러 해 목장 일을 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트러블섬강 계곡은... 헤리퍼드 협회가 그 계곡에서 소를 방목합니다. 건초 일 톤을 생산할 수 있으면 숲에 소 한 마리를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에스티스파크 바로 이쪽 아라파호 숲에 말입니다. 다만 자기 목장에서 건초 일 톤이 나와야 합니다. 물론 거기서는 소들에게 낙인을 찍습니다. 슐츠 형제님, 아래쪽 버넌에서도 그렇지요? 여기서도 아직 소에게 낙인을 찍으시지요. 소가 서로 뒤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또 소가 내려오는 곳에는 울타리가 있어서 다시 사유지 쪽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산림 관리인이 그곳에 서 있곤 했습니다. 이른 봄에 소를 모은 뒤 목초지에 풀어놓으러 위로 데려갈 때, 우리가 그쪽으로 소떼를 몰아갔습니다. 저는 안장 뿔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서 소들이 지나가는 것을 그 관리인이 살펴보는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보았습니다.
낙인도 온갖 종류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제 기억에 우리 낙인 중 하나는 ‘삼각대’라는 것이었고, 이웃의 것은 ‘칠면조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편에는 그라임스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계곡에서 가장 큰 목장주였습니다. 그분은 ‘다이아몬드 바’ 낙인을 썼습니다. 그렇게 여러 낙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그 관리인은 그런 낙인들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바로 혈통 표지였습니다. 순종 헤리퍼드가 아니면 그 목초지에서 풀을 뜯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들은 모두 등록되어 있었고, 그는 혈통 표지를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판 날에도 그럴 것이라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낙인을 달고 있는지 살피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피를 받아들였는지, 그 피를 찾으실 것입니다.
어느 해 그곳에서 사냥을 할 때, 아직 눈이 오지 않아서 엘크들이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엘크를 찾아 높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목장 주인인 제프리스 씨는 다른 구역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저는 이삼 일 뒤 그분을 데리러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도시내기들’이라고 부르는 사냥 손님들은 이미 다 돌려보낸 뒤였으므로, 이제 좋은 전리품을 얻으려고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처럼 높은 곳에 있던 것은 눈이 와야 엘크들이 밀려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야생 동물들입니다. 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맘때는 눈이 오다가 비가 내리고, 또 해가 나곤 합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려와서 저는 나무들 뒤로 피했습니다. 거의 수목 한계선 근처였습니다.
나무 뒤에 서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 주 나의 하나님,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바라봅니다. 하늘의 별들 속에서도, 드넓은 우주 속에서도,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저 멀리 서쪽 산 틈새로 해가 나왔는데, 마치 하나님의 커다란 눈이 내려다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상록수들에 얼음이 매달려 있었기에 협곡을 가로질러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곳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여기 올라와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주님께서 저 무지개 가운데 계십니다.” 바로 그때 산 위에서 코요테 한 마리가 울었고, 아래쪽에서 짝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자연, 하나님의 우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늑대의 울음에서도 하나님을 들을 수 있었고, 폭풍 속에서 무리를 잃어버린 커다란 수컷 엘크의 울음소리도 들었습니다. 저는 두 손을 공중으로 들고 서서 울었습니다. 석양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무지개에서 그분을 볼 수 있었으며, 짝을 찾는 늑대의 울음에서 그분을 들을 수 있었고, 무리를 찾는 엘크의 울음에서도 그분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어떻게 사람들이 이것을 보지 못할 수 있지?” 또 생각했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구나. 베드로가 ‘장막 셋을 짓게 하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산 아래를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왜... 해야 합니까? 저는 이런 삶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저는 산에서 살도록 태어났습니다. 이곳이 좋은데 왜 내려가야만 합니까?” 그러나 물론 산 아래에는 병든 아이들이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떠나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서 있다가... 장로교인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제가 감정에 사로잡힌 것이겠지요. 오순절교인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기쁨으로 외친 것입니다. 너무 행복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무 주위를 빙빙 달리면서, 목청껏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분의 우주 안에서 그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계속 외쳤습니다... 누가 숲에 들어왔다면 숲속에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삼십오 마일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달리고 있었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누가 제 소리를 듣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우주에서 그분을 보고, 그분의 동물들에서 그분을 듣고, 그분의 석양에서 그분을 보고, 그분의 무지개에서 그분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 가운데 여기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오른팔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 없이 어떻게 꽃이 자랄 수 있습니까? 세상의 모든 과학을 동원해도 저 고사리의 잎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만들 수 있겠지만, 저것 자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백합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도 자신이 제정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제정신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과학을 동원해도 백합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누구든 제게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 보십시오. 할 수 없습니다. 풀 한 포기를 만들어 보십시오.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꽃들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태양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동물들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창조물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와 제가 밭을 갈던 일이 생각납니다. 옥수수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제 말들이 콧김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애나의 농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지?” 하고 말했습니다. 말들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짐승이 오나 봐요”라고 했습니다. 오, 옛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서른 살쯤, 아니 서른다섯 살쯤이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일을 멈추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 빌리야, 한 가지 말해 주마. 저 말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단다. 그런데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지 아니?” “아니요, 아버지.” “폭풍이 오고 있단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구름도 전혀 보이지 않고, 천둥 소리도 들리지 않고, 번개도 보이지 않는데요.” “그럴 필요 없단다. 너는 아직 볼 수 없지만 저 말들은 볼 수 있단다.” “이해가 안 돼요. 말의 눈이 제 눈보다 더 좋다는 말씀이세요?” “꼭 그런 건 아니란다. 빌리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연 속에 스스로를 보존하고 지킬 수 있는 길을 넣어 주셨어. 저 말은 폭풍의 냄새를 맡거나 감지할 수 있단다. 하나님께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하시려고 그런 능력을 주신 거야.” 저는 잠시 서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셨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위험이 올 때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는 감각을 하나님께서 말에게 주실 수 있다면, 자기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더 주실 수 있을까?” 그분은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밭을 두 바퀴쯤 더 갈았을 때 천둥 소리가 들렸고, 삼십 분쯤 더 지나자 구름이 우리 위로 몰려왔습니다. 말들은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산 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나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신앙의 감동을 느낄 때는—지금도 느낍니다—감정이 벅차오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광신주의라고 부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빌리, 자네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행동하는군”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전보다 지금 이 상태가 더 좋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지금 이 정신 그대로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기에 저는 지금이 훨씬 더 좋습니다. 저는 나무 주위를 빙빙 돌다가 두 손을 들고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산들을 만드시고, 제가 그것을 즐기도록 저를 만드셨으며, 들짐승들도 만드셨습니다. 저는 여기 서서 주님의 임재에 흠뻑 잠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주님의 광대한 우주 안에서 주님을 보지 못합니까?”
어떻게 그들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이 제자리에 고정되어 이처럼 공중에 매달려서 완벽하게 회전하고, 시간이 그토록 정확히 맞아떨어지므로, 천문학자들은 달에서, 달과 해 사이에서 일어날 식의 정확한 시각을 이십 년, 삼십 년 전에 미리 알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명된 어떤 기계도 그렇게 움직일 수... 그렇게 완벽하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시계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시계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완벽하게 맞출 수 없습니다. 한두 번 똑딱거릴 만큼 느려지거나 빨라집니다.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정확한 때를 지키십니다. 이 집회는 섭리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꼭 알맞은 시기, 알맞은 때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오후 이곳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여기로 데려오셨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 들으려 할지, 믿으려 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기억하느냐...?”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 주의를 끈 것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작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나무 주위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작은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가... 이 북쪽에도 그런 다람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숲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작은 녀석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의 부엉이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온통 소란과 깃털뿐이고 부엉이는 없다는 말이지요. 그 녀석은 계속 짖어 대며 법석을 떱니다. 예전에 제프리스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왜 저렇게 소리를 지릅니까?” 하고 물었더니, “자네에게 욕하는 거라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쯧, 쯧, 쯧, 말이 참 거칠기도 하군요”라고 했습니다. 그 녀석이 위아래로 껑충거리며 소란을 떠는 것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작은 녀석아, 왜 그렇게 흥분했니?”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나무 주위를 달려서 네가 흥분했니? 이것 좀 봐라.” 그러고는 다시 빙빙 돌았습니다. 그 녀석은 바람에 나무가 쓰러진 자리의 그루터기 위에 앉아 쉴 새 없이 재잘거렸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바로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다는 걸 아니?”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두어 바퀴 더 달리다가 그 작은 녀석을 보았습니다. 제가 흥분시킨 줄 알았는데, 작은 눈이 뺨 위로 툭 튀어나올 듯 커진 채 쓰러진 나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 아래 뭐가 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폭풍 때문에 큰 독수리 한 마리가 그곳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다람쥐는 그것을 보고 짖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아니라 그 독수리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보니 그 큰 독수리가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콜로라도에는 갈색 독수리가 있습니다. 아주 크고 아름다운 새입니다. 저는 독수리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 자기 유업을 독수리에 비유하시며, 자신도 독수리라고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호와 독수리, 아버지 독수리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은 새끼 독수리들입니다.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 높이 날 수 있습니다. 매가 독수리를 따라가려 한다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삶을 흉내만 내려 하면 여러분 자신이 터져 버릴 뿐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독수리가 되십시오. 다시 태어나 본성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이 가능한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흉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인들이 독수리처럼 홍해를 건넜을 때, 뒤따르던 할례받지 않은 이집트 사람들도 그렇게 하려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큰 녀석을 보고 외치던 것을 멈췄습니다. 감정이 벅차서 나무 주위를 돌던 것을 멈추고 그 큰 독수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외치던 것을 왜 멈추게 하셨을까? 나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믿어.”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왜 지금 저 독수리를 보게 하시려고 저를 멈추십니까? 저 썩은 고기를 먹는 녀석 말입니다. 저 녀석에게서 그렇게 당당하거나 신적인 모습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하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위에 있는 모든 것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모든 것에.” 이 땅에서 가장 악한 사람을 보더라도 그에게서 좋은 점을 얼마쯤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분을 찾으려면 주위를 살펴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있다면...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아시겠지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함부로 대하고 악한 말을 하는데도 여전히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왕국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저는 그 독수리를 보며 크고 잿빛인 두 눈이 깜박이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 녀석의 어디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 창조물의 일부이긴 하지만, 어디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 그러다 그 녀석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를 쓰시지 않습니다. 그분을 신뢰하기가 두렵다면, 그분께서 말씀을 지키시고 약속을 지키신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시도조차 하지 마십시오. 그런 확신이 서면 아무것도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히 아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더 나쁘게 만들 뿐입니다. 저는 그 녀석을 지켜보았습니다. “내가 두렵지 않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 소총은 나무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저는 “소총을 잡아 너를 쏠 수도 있어”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왜 두려워하지 않을까?” 하고 살폈습니다. 보니 그 녀석에게는 날개가 있었고, 깃털이 모두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지 계속 살피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것이구나. 하나님께서 저 녀석에게 두 날개를 주셨어. 저 녀석은 그 날개를 믿고 있어. 내가 총에 손을 대기도 전에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야. 하나님께서 주신 피할 길을 완전히 신뢰하는 거야.” 하나님의 우주 안에 있는 독수리도 하나님께 받은 날개의 선물을 그토록 신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성령을 얼마나 더 신뢰해야 하겠습니까. 의사가 암으로 죽을 것이라고 말해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느낄 수 있는 한, 모든 것은 거짓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다고 하십시오.
저는 그 녀석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거기 계시는군요. 저 녀석이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제 주님이 보입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를 미워하십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에는 조금의 가치도 없습니다. 단 하나도 없습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을 방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면 내일 아침 총살을 당하게 된다면요? 두렵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두려움은 제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두려움은 저를 더 나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습니까? 내일 아침 당신을 죽이겠다는 문서에 이미 서명했는데요.” 믿음은 저의 사면장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러니 저는 믿음을 택하겠습니다. 의사가 여러분이 암으로 죽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이 다시는 걷지 못하리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가... 그는 자기 감각, 곧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는 것에만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여러분이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거나 듣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감을 넘어서는 여섯 번째 감각입니다.
저는 그 녀석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오, 네가 참 멋지구나.”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 독수리 안에서 주님이 보입니다.” 그 녀석은 잠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자기 친구이며 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그 녀석이 소나무다람쥐 쪽을 자꾸 쳐다보았습니다. 보니 그렇게 심하게 욕을 하는 녀석은 그 소나무다람쥐였습니다. 독수리는 지겨워졌는지 몸을 낮추고 날개를 크게 한번 퍼덕였습니다. 두어 번 퍼덕이니 벌써 숲 너머로 날아올랐습니다. 저는 그 녀석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덫을 놓는 분들, 사냥하는 분들, 들어 보십시오. 그 녀석은 날개를 어떻게 펼쳐 두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산을 타고 바람이 올라오면, 바람이 불 때마다 그저 그 바람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또 바람이 불면 조금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다음 바람이 불면 또 조금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깃털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개를 어떻게 펼쳐 두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녀석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 서 있는데 눈물이 제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것은 아니... [녹음 끊김]” ...그리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오 하나님, 바로 그것입니다. 그저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신뢰해야 하는지 알고 “그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은 자신의 꽃들 안에 계십니다.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분을 보실 수 있습니까? 일몰과 일출, 지구를 붙드시는 일, 태양계가 회전하는 일, 그 모든 가운데 그분이 계십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 한 주제만으로도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곳 도슨에서는 신문이 일주일에 두 번쯤 나오지요? 이제 기상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내일은...” 하고 말한다고 합시다. 가을로 접어드는 때에 “내일은 맑겠습니다. 내일은 날씨가 좋고 따뜻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들을 데리고 언덕 북쪽에서 나와 남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이면—그 녀석은 세상의 모든 기상 해설자보다 날씨를 더 잘 압니다—추운 날씨를 예상하십시오. 토끼들이 덤불 더미 아래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보이는데 뉴스에서 “날씨가 맑겠습니다”라고 하면,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곧 비가 오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그 녀석은 모든 기상 해설자보다 더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의 일부입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이제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서둘러 마칠 수 있도록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문제입니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둡니다. 그래도 끓여 놓은 콩은 타지 않을 겁니다. 타더라도 다시 얹으면 됩니다. 지금 이것은 여러분의 영생에 필요한 양식입니다.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여기 농사짓는 여러분, 씨를 뿌릴 때 밀을 뿌리고 제대로 돌보면 밀이 나온다는 것을 아시지요? 귀리를 뿌리고 제대로 돌보면 귀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약속이든 가져다가 알맞은 환경에 두면, 그 안의 생명에 있는 바로 그것을 맺을 것입니다. 암탉과 같습니다. 보통은 달걀을 가져다가 암탉 밑에 넣어 주고, 암탉이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달걀을 가져다가... 중요한 것은 환경입니다. 그 똑같은 달걀을 강아지 밑에 넣고 강아지의 몸으로 달걀을 따뜻하게 해 주어도 병아리가 나옵니다. 아시겠지요, 환경입니다. 오늘 오후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맞은 하늘의 분위기를 이룰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분위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입니다. 작은 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작은... 여러분 가운데 과수원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작은 사과나무를 하나 가져다가—잘 보십시오—묘목으로 심습니다. 크기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씨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그 나무에 앞으로 달릴 모든 사과가 그때 이미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여러분은 “저 나무에서 사과가 얼마나 나올까요?” 하고 말합니다. 그 나무가 사는 동안 백오십 부셸, 이백 부셸, 오백 부셸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부셸의 사과가 전부, 나무가 이만할 때 이미 그 안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제게 말해 보십시오. 아시겠지요, 그 안에 있습니다.
그 나무를 어떻게 합니까? 밖에 내어 심습니다. 땅속에 넣어 심고 물을 줍니다. 그러면 작은 나무는 무엇을 합니까? 땅에서 물을 빨아올려야 합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셔야 합니다. 자기 몫보다 넘치도록 마셔야 합니다. 마시면서 무언가를 밀어 내기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면 가지를 뻗어 내고, 그다음에는 잎을 내며, 그다음에는 꽃을 피우고, 그다음에는 사과를 내놓습니다. 그저 마시고 밀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심겼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그분은 다함없는 생명의 샘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여러분이 병들었거나 무언가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성령으로 채우시면 여러분은...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심겼고,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마시는 것뿐입니다. 마시십시오. 신유가 솟아 나올 때까지 마시십시오.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묵은 걱정과 의심을 없애고 밀어 내며, 새 생명을 들여오고, 영의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저 마시고 또 마시십시오. 씨 말입니다.
제가 더니 씨와 함께 있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을 여기 계신 우리 교인들 몇 분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산염소를 잡으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예전에 불이 났던 곳 같은 곳을 지나왔습니다. 제가 거기서 보았던 곰 이야기를 더니 씨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그 곰을 두고 제가 말했습니다. “저 가죽을 메고 산 아래까지 내려가려면 꽤 무겁겠습니다.” 저는 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조금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어두워질 무렵, 불이 지나간 뒤 서 있는 죽은 나무 몇 그루만 남은 곳에 들어섰는데, 나무들은 더없이 앙상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쉬고 있었고, 저는 거기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말에게 가는 중이었는데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몹시 섬뜩한 소리가 났습니다. “우우우우.” 저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꼭 묘비 같구나. 참 쓸쓸한 곳이다.” 그리고 “아버지,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습은 누군가가 애쓰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하고 물으면,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조직에 속한 것을 붙들고 천국에 가려는 것입니다. 그 조직 자체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조직이 생겨날 때마다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십니다. 조직을 통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하나님의 새 씨가 태어남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구슬픈 소리를 듣고 말했습니다. “이곳은 머물기에 참 쓸쓸한 곳이군요. 여기서 불을 피우고 묵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달이 떠오르고, 그 오래된 나무들이 그렇게 빛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참 섬뜩하지 않은가?” 오래된 묘비들 같은, 쓸쓸한 곳이었습니다. 나무들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까? “한때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소나무였지만, 불길이 우리를 태워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하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저는 오순절교인입니다.”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그 작은 씨가 이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 씨가 들어오면 여러분이 원하는 곳 어디에 속해도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하나님은 씨이시며, 그분의 말씀은 씨입니다.
더니 씨, 크리스, 저는 또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작은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큰 교단들이 하는 말이 저것이구나. ‘오, 우리에게는 한때 존 웨슬리가 있었고, 한때 마르틴 루터가 있었으며, 한때 생키와 피니와 녹스와 칼뱅이 있었다’고 하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에게 무엇이 있는지 보이십니까? 그분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며, 신유와 온갖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쓸쓸한 바람만 부는 교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에 하신 것처럼 급하고 강력한 바람을 보내실 때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십니까? “우우우, 그런 데 가지 마라. 마귀에게서 난 것이다. 우우우,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우우우, 신유라는 것은 없다고 우리 신조에 적어 두었다.” 죽어서 휘어질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그 나무들 아래로는 소나무 씨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소나무를 연구해 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소나무가 번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열기가 가해져 솔방울이 벌어지고 씨가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대, 또 다른 나무가 올라옵니다. 바람이 불 때 그 작은 나무들은 신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람 속에서 즐겁게 춤췄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바람을 불게 하실까?”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나무가 움직이고, 뿌리를 당기며 그 주위를 느슨하게 해서, 뿌리가 더 깊이 내려가 더 단단히 자리를 잡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바로 그것입니다.” 또 생각했습니다. “더니 씨는 내가 미쳤다고 하겠지만, 정말 여기 나뭇가지 하나에 뛰어올라 저 다람쥐들처럼 위아래로 뛰면서 목청껏 외치고 싶구나.”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때 신유를 믿는 교회가 있었고, 한때 마르틴 루터가 있었으며, 한때 존 웨슬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죽은 조각상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아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다른 교회를 낳은 하나님의 씨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믿는 교회를 낳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급한 오순절의 바람을 보내시면, 그들은 그 바람 안에서 흔들리고 기뻐 뛰놉니다. 여러분은 “그들은 아직 풋내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즐거워하고 있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아직 푸르다면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도 푸르지 않다면, 여러분에게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노르웨이 사람이 집회에 들어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돌아가서 자기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성령을 받았어요.”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교회에 들어갔더니 하나님께서 제게 성령을 주셨어요. 아주, 아주 기분이 좋아요.” 사장은 말했습니다. “자네도 저 아래 그 얼간이들, 그 ‘너트’ 무리에 속했나 보군.” 그는 말했습니다. “그 너트들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십니까? 자동차를 보세요. 그 안에 너트가 하나도 없다면, 커다란 고철 더미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힘이 충분하고 권능이 충분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충분해서 함께 붙들어 줄 사람이 없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이 거대한 교단의 고철 더미 말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함께 단단히 붙들어 주는 그 너트들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젯밤 여러분께 설교한 것처럼,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어쨌든 미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은 영광스러운 아버지이십니다. 다윗이 궤 주위를 돌며 춤췄을 때를 보십시오. 그의 아내는 위에 앉아 “당신이 왕비인 나를 부끄럽게 하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왕의 딸인데, 당신은 저 밖으로 뛰어나가 궤 둘레를 소리 지르며 돌고 저렇게 춤을 추는군요”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소? 이것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빙빙 돌며 춤추면서 “이것 보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너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니라.” 그것은 여러분이 누구의 마음에 속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의 마음에 속하면 세상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속하면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그만큼 차이가 납니다. 그 씨는 계속, 계속, 계속 나아갑니다.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어떻게 말씀을 지키시고 확증하시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사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선지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이 시대에 어떻게 약속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이제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안에 계셨음을 믿으십니까? (이제 서둘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에 관해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서둘러 마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예수님께 신성이 있음을 믿지 않는 교회에 속한 한 여자와 이야기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선지자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며 신적인 분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거나, 아니면 세상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큰 기만자였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자기 아들 예수라는 몸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단순한 사람이나 교사나 철학자가 아니라, 육체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말씀합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들려서 하늘들로 들어가셨느니라.” 물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저는 당신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 한 가지 잘못된 점이 보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잘못만 찾으셨다면 아주 좋은데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는 벌써 백억 가지나 찾았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이 찾았을 겁니다. 한 가지밖에 찾지 못하셨다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가지만 바로잡으신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부인? 알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그만큼만 고치면 괜찮은 사람이 된다면, 어쩌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겠지요.”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너무 자랑합니다.” 저는 “아, 뭐라고요?” 하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너무 자랑한다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저는 아무리 자랑해도 그분을 충분히 자랑할 수 없습니다. 제게 혀가 만 개 있어도 그분을 충분히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분을 신적인 분으로 만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오, 그분은 신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그저 사람이었어요, 브래넘 씨. 훌륭한 교사이고 철학자였지만 신적인 분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신적인 분으로 만드는 겁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신적인 분이셨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근본주의자라고, 말씀에 충실하다고 했지요?” “예, 부인.” “제가 말씀 속에서 그분이 신적인 분이 아니었다고 성경이 보여 주는 곳을 제시하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예, 부인. 하지만 그렇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신사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증명해 드릴 수 있어요. 요한복음 11장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일으키러 가셨을 때, 성경은 그분께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요?”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신적인 분이 아니셨음을 보여 줍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그것이 제시하실 성경 구절입니까?” “예, 그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그것은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 더 묽군요. 그게 전부입니까? 세상에! 이해가 안 되십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습니다. “신적인 분이었다면 어떻게 우실 수 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해 봅시다. 그분께서 사람이셨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고, 사람처럼 우셨습니다. 그러나 거기 서서 그 작은 어깨를 곧추세우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에는, 사람이 죽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났습니다... 코는 이미 주저앉고, 벌레들이 몸을 파먹고 있었으며, 혼은 어딘가로 나흘 길이나 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이 어딘지 모릅니다. 당신도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그의 혼이 떠난 지 나흘이었고, 몸은 썩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두 발로 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형제여, 그런 일을 하신 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 그분께서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오셔서 배가 고파 드실 무화과를 찾으려고 나무를 살피실 때에는 사람이셨습니다. 배가 고프셨습니다. 사람처럼 배가 고프셨습니다. 그러나 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는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 빵을 떼어 빵과 익힌 물고기가 많아지게 하시고 그것을 만들어 내실 수 있었던 분은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폭풍이 일던 그날 밤 배에 누워 계셨을 때 그분께서 사람이셨던 것은 사실입니다. 바다에 있는 만 명의 마귀가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분은 환상을 보시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느라 몹시 피곤하셨습니다. 작은 배는 저 바다에서 병마개처럼 위아래로 출렁였고, 마귀는 “이제 그를 잡았다. 잠들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쳐서 주무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배의 돛줄에 발을 대시고 위를 바라보며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셨을 때, 바람과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갈보리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으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셋째 날 사망과 지옥과 무덤의 봉인을 깨뜨리고 일어나셨을 때에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시인은... 그것은 노래를 쓴 모든 시인과 모든 작가의 삶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진리임을 믿었습니다.
에디 페로넷은 한창 활동하던 시절, 사람들이 그를 박해했을 때 이 노래를 썼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능을 모두 찬양하라, 천사들은 엎드려 절하라, 왕의 면류관을 가져와 그분께 씌워 만유의 주로 모셔라. 또 다른 이는 “예수 이름의 권능을 모두 찬양하라, 천사들은 엎드려 절하라”라고 썼습니다. 오, 세상에! 어떻게 여러분이... 할 수 있겠습니까? “굳건한 반석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 있네.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네.”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던 나이 든 패니 크로스비,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유하신 구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나의 겸손한 외침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에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주님은 내 모든 위로의 샘이시며, 내게 생명보다 더 귀하십니다. 이 땅에 주님 외에 내게 누가 있으며, 천국에도 주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그룹이든 신이든, 천국에 주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 계실 때 나를 사랑하셨고,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심으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일어나심으로 영원히 값없이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그분이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이여. 이것이 교회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이제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그분의 우주 안에서 그분을 볼 수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 안에서 볼 수 있습니까? 그분의 아들 안에서 볼 수 있습니까? 이제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그분을 봅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과 함께 머무십니다. 그들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함께 계십니다. 약 여든 살 된 노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위에 두 몫의 영이 임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사였습니다. 그에게는 엘리야의 영이 있었습니다. 모형으로 보면 엘리야는 교회이고 엘리사는... 아니, 엘리야는 그리스도이고 엘리사는 두 몫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는 죽었고,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나 그의 뼈가 무덤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한 사람을 장사 지내려고 데려가는데 원수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체를 그 경건한 사람의 뼈 위에 던졌더니, 그가 다시 살아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뼈 하나하나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다. 어머니가 어디에 묻혀 계신지, 아버지가 어디에 묻혀 계신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디에 묻혀 계신지 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갔습니다. 그는 주님의 선지자였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믿었기에 그의 몸에서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보냈고, 악한 영들이 사람들에게서 떠나갔습니다. 한 사람의 몸에서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할 만큼 무식한 보잘것없는 어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3장에서 그가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시몬 베드로라는 사람입니다. 교육을 받지 못했고, 학교에 단 하루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그토록 충만히 계셨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그의 그림자 아래 누워—오 하나님—고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뒤, 백이십 명이 기다리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겁이 나서 창문을 닫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웠고, 증언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열흘 동안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은 창문의 빗장을 풀고 문을 열어젖힌 뒤 거리로 나가 다른 언어들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 수 있느니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므로 이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라.” 또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먼저 행하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
여러분은 며칠 전 저녁 제가 그것에 대해 설교할 때 이곳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셨습니까?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등을 말씀해 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부도덕한 여자가 물을 길으러 우물에 왔는데, 거기에 한 유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달라.” 그녀의 영과 접촉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마실 물을 내게 달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요청하는 것은 관례가 아닙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내게 마실 물을 구했으리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분께서 그녀의 문제를 알아내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우리가 모두 압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참으로 진실을 말하였도다. 네게는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그녀는 무슨 말을 했습니까? “제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줄을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도시로 달려가 그곳 남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무엇입니까? 그 똑같은 일이 마지막 날들, 마지막 때 바로 전에 교회에 다시 돌아오리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 우리 가운데 그것을 육적으로 흉내 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처럼 행동하며 그런 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위조 달러가 있어야 진짜가 제대로 드러나 빛납니다. 그리고 위조가 있으려면 먼저 진짜가 있어야 합니다. 아멘. 지금 제 마음에 신앙의 감동이 솟아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우주 안에 계신다면 “아멘”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이제 정말 그러신지 봅시다. 우리는 그분의 우주와 말씀 등에서 그분을 봅니다. 이제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신지 봅시다.
저는 오늘 오후 이곳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제 믿음을 여러분의 믿음과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여, 하나님께서 이곳 자신의 백성 안에 계심을 믿기까지는, 우리가 이야기한 바로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여기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볼 수 있기까지는... 그분께서 여기 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오후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이곳에 서 계시고, 여러분이 그분께 다가가 “주 예수님, 저는 병들었습니다. 저를 고쳐 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아십니까? “내 자녀야, 나는 이미 그 일을 하였느니라.” 그분은 갈보리에서 그것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진리임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진리입니다. 그분께서는 갈보리에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너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음을 믿을 수 없느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주 예수님임을 증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이 메시아요 주님이심을 보여 주심으로써 하실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분께서 선지자의 표적을 보이셨고, 모든 사람이 그분이 그러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천 년 동안 없다가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날에 이르러 나타났으며,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오후 오셔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신다면,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심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머리를 숙입시다. 은혜로우신 주님, 오늘 오후 이제 기도드립니다. 제가 다시 언제 기회를 얻을지 모르므로 사람들에게 아주 오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 자신의 우주와 말씀 안에 계시고, 주님의 꽃들과 창조물 안에 계시며, 주님의 아들 안에 계심을 말씀드렸고, 이제 주님의 백성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보다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도와주시고 뒤따르는 표적들로 주님의 말씀을 확증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주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종임을 알게 하옵소서.
혹시 이곳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교회에 가입만 했을 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밤낮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오후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주님,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고쳐 주옵소서. 제가 말씀드린 이 동일한 하나님께서 여기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실 수 있고, 우리가 성경의 인물들을 보게 된다면, 분명... 시인이 말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숭고하게 할 수 있고, 떠나갈 때 뒤에 남길 수 있음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그 발자국을 어쩌면 다른 이가, 삶의 장엄한 바다를 항해하다가... 외롭게 난파당한 형제가 보고 다시 용기를 얻으리라.” 오 하나님, 오늘 오후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오시옵소서, 아버지. 우리는 주님의 우주 안에서, 말씀 안에서, 아들 안에서 주님을 봅니다. 이제 오셔서 백성 가운데 살아 계심을 증명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가 이 건물을 떠나 각자의 집으로 갈 때,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말하게 하옵소서...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하루 종일 걸었지만, 주님이신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 여기 있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섬겨 왔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어려움과 여러 일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인 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지금처럼 해가 지고 있을 때, 주님께서 작은 여관에 멈추셨고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머무시기를 청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 가시며 그들을 지나치려는 것처럼 하셨지만, 그들이 강권했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남녀들도 똑같이 강권하게 하옵소서. “주님,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주님께서 안에 들어가 문을 닫으신 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주 예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분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님의 말씀과 주님에 관해 제가 말한 이 일들이 진리임을 증명하여 주옵소서. 오늘 오후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일들을 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하옵소서.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며, 자신의 백성 가운데 사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백성을 신뢰하게 할 것입니다. 남녀들이 그들의 기도와 주님을 어떻게 만나는지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을 신뢰하게 할 것입니다. 아버지,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말씀과 함께 주님께 맡깁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오후 이곳에 아직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적이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라도 보기 전에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할 분이 계십니까? [녹음 끊김.] 이 부인께서, 부인, 바로 여기로 오십시오. 이제 제가 설교한 모든 것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신 셈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전과 똑같이 위대하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여러분, 이제 이 일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여기 성경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났던 요한복음 4장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처음 만납니다. 그렇지요...? 회중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 둘 다... 그리고 여기 성경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납니다.
이분은 무엇 때문에 여기 왔습니까? 이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왜 여기 서 계십니까? 저는 모릅니다.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더니 씨,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덫을 놓은 길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잠깐 지금 계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십시오. 거기 서 계십시오. 여기 제가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있습니다. 저는 이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본 적이 없습니다. 완전히 낯선 분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이 여자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게 계시하신다면, 그것은 어떤 영적인 근원에서 와야 합니다.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야영지에서 제가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소식을 받았던 밤 말입니다... 기마경찰이 제게 연락했는데, 저는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제 아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했거나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주님께서는 집에 아무 일도 없다고 제게 계시하셨습니다. 그곳 형제님의 야영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여기 계십니다. 그 일이 형제님 앞에 있습니다.
저는 평생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그것을 아신다면... 이 여자와 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약속합니다. 우리는, 여기 하나님 앞에서...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분은 병들었을 수도 있고, 가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재정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여기 서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한 여자를 만나셨던 요한복음 4장에 일어난 일과 정확히 똑같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인정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하셨고, 그 여자는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제 그분이 메시아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저는 사람이므로 이 여자를 알 수 없습니다—성령, 메시아께서 이분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계시하셔야 합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아셨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믿으시겠습니까? 이분이 직접 판단하게 하십시오.
제가 다가가 “부인, 병이 있으시군요. (이분에게 손을 얹고.) 할렐루야, 나으실 겁니다”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좋은 오순절 방식이며, 그것도 옳습니다. 아주 옳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도록 사명을 받았는지 이분은 모르니까요. 그런데 성령께서 과거로 돌아가 이분의 어떤 문제를 말씀해 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분이 했던 어떤 일,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분 자신이 알 수 있는 일을 말씀하신다면요? 그분께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아신다면, 앞으로 있을 일도 아신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 여러분? 믿으십니까? 얼마나 큰 도전입니까. 저는 한 번에 오십만 명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힘껏 설교해 왔는데, 이것은 다른 기름부음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습니다. 무엇이... 기름부음이 임하는지 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 임하셨습니다. 주님의 천사를 찍은 그 사진을 본 적이 있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그 사진은 전 세계에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진에서 보시는 바로 그 빛, 그 불기둥을 과학이 조사했습니다... FBI의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가 그것을 조사하고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은 심리 현상을 찍지 않습니다.” 그 빛이 저와 이 여자 사이에 떠 있습니다. 심판 날에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여자가 제게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부인은 심한 신경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괴롭게 하는 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맞지요?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지금, 그것은... 누군가는 “브래넘 형제님, 추측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분과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분은 훌륭한 사람이고 기름부음이 이분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께 이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여자를 모르고, 방금 전까지 말 한마디 나눈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지금 자기 위에 무엇인가가 임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참으로 달콤하고 거룩한 느낌입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부인. 이분은 여기 여러분과 같은 캐나다 사람입니다. 아시겠지요? 저는 그것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눈부신 반사광이 아닙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호박빛이 바로 그 주위에... 여러분은 “어떻게 당신에게는 보이는데 제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거기서 그 불기둥을 보았는데, 함께 있던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까? 지혜자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예수님께 인도한 별을 보았는데, 어떤 천문대에서도 그것을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이 년 동안 하늘에 있던 신비한 별입니다. 지혜자들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만 그것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인께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저 아래 있는 녹음테이프입니다. 하지만 무슨 말이었든 그것은 옳았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봅시다. 예, 신경 문제입니다. 부인의 문제는 주로 하루 중 이맘때, 저녁 늦게 몹시 피곤하고 지쳤을 때 생깁니다. 아주 이상하고 힘 빠지는 느낌이 찾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이따금 신경이 예민해져 물건을 떨어뜨립니다. 얼마 전 해가 지고 있을 때 창문 가까이에 서 계셨는데, 몹시 초조해하며 두 손을 비비고 있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부인이 어디 서 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집회에 오기 전에 기도 카드를 받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을 받았을 때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사실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부인께서 마음속으로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고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십니다. 암에 걸려 죽어 가는 친구입니다. 그 사람은 이곳에 살지 않습니다. 포트세인트존에 삽니다. 그 사람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암으로 죽어 가는 죄인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이 일들이 사실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마음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습니까?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십니까? 자매님, 믿으십니까? 바로 그 손수건을 가져다가 그 사람에게 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어떻게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그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여기 오기 전에 무엇을 했으며, 이삼 주 전에는 무엇을 했고,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를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를 바랍니다. 더니 씨,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받아들이십시오. 가서 앉으시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 문제는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는 그 그림자가 그분 위로 드리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니 씨, 주님을 믿고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저편의 그 멋진 사냥길에서 제가 형제님을 만나겠습니다. 부인, 저는 낯선 사람입니다. 저는 부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실이지요? 하나님께서 부인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게 계시해 주실 수 있다면, 그것이 부인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믿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것을 알도록, 이렇게 손을 들어 봅시다. 저는 전혀 모릅니다... 제 눈에는 아주 건강한 부인처럼 보이지만, 혹 때문에 고통받고 계십니다. 그 혹이 다른 기관들의 기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신장과 방광입니다.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온전히 낫게 하실 것입니다. 가셔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부인은 자신을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위해 오셨습니다. 남편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고, 부인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가서 믿으십시오. 제가 말한 것처럼, 로마 백부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것은 그가 믿었으므로 그의 집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충분한 믿음을 가졌다면, 자기 집을 위해서도 충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부인과 사랑하는 남편은 저 강 건너 하나님의 낙원에서 함께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서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제 눈에 모든 것이 흐려지기 시작하는군요. 아시겠지요, 점점... 지금은 회중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경건히 계십시오. 아주 경건히 계십시오.
부인,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두 시간쯤 그렇게 설교했어도 조금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고작 서너 번 환상을 보고 나서 지금 제가 어떻게 되었는지요. 기운이 쭉 빠져 주저앉을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요. 한 여자가 예수님의 옷을 만졌을 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서 효능이 나간 것을 아셨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렇지요? 힘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바로 이 뒤에 앉아 고통받고 계신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심장에 문제, 눈에 문제, 신경 문제가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랜드프레리에서 오신 부인, 톰프슨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으십시오.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제게 낯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인의 문제를 제게 계시하신다면,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아니 죄송합니다, 그분의 종임을 믿으시겠습니까? 선지자라는 말은 사람들을 좀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저 이 여자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마이크를 손으로 가렸습니다. 우리는 서로 만난 두 사람입니다. 아마 우리 주님과 우물가의 여자 같겠지요. 그 여자는 아마 젊은 부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인은 목에 생긴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소아마비로 생긴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인이 누구신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시겠습니까? 덩컨 부인, 집으로 가서 건강해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바로 저쪽에 앉아 구원받지 못한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선생님, 하나님께서 아내를 구원하시리라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방금 통로로 지나간 그 부인은 누구였습니까? 기도를 받으셨습니까? 방금 기도를 받으셨나요? 아. 구석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아, 보니 거기 앉아 있는, 등에 문제가 있는 남자분입니다. 페티그루 씨,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에게는 관절염이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분도 낫게 될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제가 몹시 약해져서 계속 이리저리 비틀거립니다. 얼마나 많은 분이 가지고... 저쪽이 비었군요. 저쪽에서 기도 카드를 가진 다른 분들은 저쪽 줄로 들어오십시오. 여기 계신 목회자들 가운데 이 사역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목회자들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저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저는 이 회중을 이런 상태로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에게도 저만큼이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권한이 있습니다. 물론 그분은 선견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선견자는 한 세대에 한 사람만 나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때에도... 제가 이미 알아차릴 수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문제를 분명히 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단 한 번밖에... 한 시기에 선견자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엘리야, 그다음 엘리사, 그다음 이사야, 그다음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C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은 모두 이쪽에 일어서 주십시오. 이쪽입니다. C 기도 카드입니다. 여기 계신 목회자들 가운데 이곳으로 와서 저와 함께 아래에 서서, 잠깐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도와주실 분이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형제님들 가운데 몇 분이 와 주시겠습니까? 여기 계신 회중이 형제님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형제님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니 참으로 기쁩니다. (선생님, 바로 이 중요한 때에 믿으셔야 합니다. 아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질 것입니다.) 형제님들, 바로 이 아래로 내려가면 어떨까요? 단에서 내려가 저기 서서 두 줄을 만듭시다. 이렇게 곧게 두 줄로 서십시오. 예, 형제님들, 그렇습니다. (자매님, 바로 여기로 오십시오. 바로 뒤쪽으로 걸어 들어오십시오. 아, 그런데 이미 [불분명한 말.]에서 고침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이쪽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래서 이 줄을 따라 다시 내려가시면 됩니다.) 이제 형제님들 가운데 몇 분은 바로 여기로 와서, 바로 이 아래 서 주십시오. 여기 서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형제님들 사이에 서고 싶습니다. 형제님들, 잠깐만 거기 서 계십시오. 기다리십시오. 병자들에게 손을 얹을 수 있도록 내려가십시오. 바로 여기 있는 이 형제님 곁에 서시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이곳으로 와서 줄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형제님들 각자가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회중 여러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아침 제가 면담했던 부인이 여기 계십니다. 그랜드프레리에도 계셨던 분입니다. 레오 머시어 형제님과 진 고드 형제님에게서 녹음테이프를 구입하는 분인데, 그 형제님들이 제게 그분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브라운 자매님이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그랜드프레리 집회에 계셨고, 성령께서는 그분에게 어떤 여자가... 제 기억에, 이름이 뭐였지요? 브라운이었나요, 아니면... 브라운 자매님은 모자에 장미를 달고 계셨고, 성령께서 그분의 상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평생 그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각자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부인이 오늘 오후 여기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모두 서로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형제님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은 회중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오럴 로버츠나 다른 누군가, 그런 사역을 하는 어떤 목회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형제들, 여러분의 목사님들이 바로... 제가 하나님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이분들에게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신유를 믿는 목회자라면 누구든, 감리교든 침례교든 루터교든 회중교회든 그 밖의 어디에 속했든, 하나님을 믿는다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권한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부인은 누군가에게 손을 얹었는데, 갑자기 자기 손 위에 더 큰 손이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아보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뒤에 있던 여자들은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그분에게 손을 얹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부인은 그 손을 느꼈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온몸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윈저 호텔 식탁에서 그분과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그녀는 네가 자기에게 손을 얹어 주기를 원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그분은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었습니다—온갖 접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그 접시들을 뒤로 밀어 놓아, 네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 위에 얹을 수 있도록 곧은 길을 만들 것이니라.” 바로 그때 그 부인이 손을 뻗어 접시들을 밀어 놓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자매님,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무엇인가가 그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으로 그분에게는 확신이 섰습니다. 자매님, 지금 건물 안에 계십니까? 오늘 오후 여기 오셨습니까? 브라운 자매님? 바로 여기 서 계십니다. 여기 계십니다. 아시겠지요, 그분은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이제 이곳의 모든 분이 이 줄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 줄이 끝나는 대로 다른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도 계속 돌아서 오십시오. 그러면...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은 모두 이쪽에 계속 줄을 서 주십시오. 그분들이 끝나면 기도 카드가 없어도 기도를 받고 싶은 분은 모두 바로 뒤에 줄을 서십시오. 그 일을 하기 전에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입시다. 줄에 서 계신 분이 여러분의 어머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의 아내라면요? 누이이거나 어머니이거나 딸이거나 아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저분들도 누군가의 가족임을 기억하십시오. 암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이 여러분의 어머니이거나 아내, 여러분 어린 아기의 어머니라면, 모든 사람이 진심을 다해 주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진심으로 기도해 주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오후 저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소개하여,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시며 살아 계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다음으로, 두 번째로, 주님의 종들인 목회자들, 곧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중에는 저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 설교해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목회자로서는 저보다 자격을 훨씬 더 잘 갖춘 분들입니다. 저는 회중이 자기 목사님을 주님의 종으로 알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주님을 그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종들을 그들에게 소개합니다. 아버지, 저도 그들과 하나인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이제 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모든 진리를 아시며, 결코 거짓을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만 번, 환상이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음으로 그것이 증명되었고, 참됨이 입증되었습니다. 과학적 조사가 있기 전에도,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도, 카메라와 그 밖의 것들이 있는 데서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떠나시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주님, 이들은 믿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거나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아버지,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려고 살아 계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켜보시며 그것을 확증하십니다. 이제 저는 이 지역과 주변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종인 우리는 믿지 않는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주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손을 얹을 것이며, 그들이 낫게 될 줄 믿습니다. 바로 지금 주님을 우리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 기도 줄에 서 계신 모든 분, 그리고 기도 줄로 들어오실 분들께,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가 여러분에게 손을 얹을 때, 여러분이 낫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여러분의 불신뿐입니다. 믿지 않는 데 머물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지금 여기 서서, 여러분이 이 회중 앞을 지나갈 때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 오후 모인 삼사백 명가량의 사람들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모든 기도가... 이제 여러분은 믿으십시오. 이제 꾸짖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머리를 숙이십시오.
사탄아,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네게 직접 말한다. 너는 마귀이며 괴롭히는 자다. 너는 허세를 부리는 영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묶어 놓았다. 인간인 우리에게는 너를 대적할 힘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나 조직의 이름으로 너를 맞서러 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패배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정복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를 맞서러 온다. 우리는 온갖 질병과 병을 정복하여 발아래 두신 분으로서 그분의 이름과 임재를 사람들 앞에서 높이 외친다. 그분의 종인 우리는 그분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이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놓아주어라. 우리는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그분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를 것이며, 그들은 나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좋습니다. 이제 병자들이 지나가는 동안 모두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