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아침 주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니 귀를 기울이고 그분 앞에서 경건한 자세를 가지라는 메시지로 이른 예배를 시작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분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우리가 아직 영원으로 넘어가지 않고 살아서 함께 모여, 다시 주님을 경배하고 함께 모여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제가 어떤 꿈 때문에 예고도 없이 네빌 형제님께 불쑥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사람들을 다루신다고 믿습니다. 그저께 밤에 아주 특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어느 산비탈을 따라 식사를 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곳에 가까이 가 보니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관현악단이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연주하며 식사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곳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다가 언덕을 올라오는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보니 많은 사람이 그 식당으로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좀 벗어나서 오른쪽으로, 아니 왼쪽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저 아래 골짜기에 태버내클이 보였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어느 갈림길에서 브래넘 형제님을 만나십시오. 저쪽 언덕에서 내려오고 있으니, 그분께 이러이러한 말을 전하십시오.” 저는 서둘러 그 갈림길로 갔습니다. 그 사람이 다가왔는데, 갈색 양복을 입은 네빌 형제님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저기에 앉아 있는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시내에 계실 거라면 이쪽에 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행크 형제님이...” 제가 아는 ‘행크 형제님’은 헨리 칼슨 형제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그를 ‘행크’라고 부릅니다. “형제님이 동네에... 시내에 며칠 계시면서 태버내클에 좀 더 자주 들르지 않으시면 그분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고는 잠에서 깼습니다. 그 일로 마음이 좀 묘했습니다. 주중의 그 시점에 불쑥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네빌 형제님께 오늘 아침 교회에서 특별히 하시려던 일이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분은 늘 그렇듯이 친절하게 “그냥 오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제 늦은 오후에 전화를 드리고 오늘 아침에 왔는데, 우리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먼저 여러분께 몇 가지를 좀 설명해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에게 저는 아주 별난 사람일 것입니다. 저 자신에게도 좀 별난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가까이 따르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별나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 놓고 나중에 앉아서 “내가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고 의아해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결국 모든 일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습니다. 네빌 형제님도 여러 번 겪으셨을 것이며, 지도자들과 영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압니다. 제 삶에는 얼마 전부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소년 시절부터 제퍼슨빌에 살아야겠다는 인도를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살려고 하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이곳 기후는 저에게 몹시 맞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영이 눌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어딘가를 찾아보시면, 홍수 때 없어지지만 않았다면, 그에 관해 제가 쓴 편지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 사역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저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조지 디아크 형제님과 제가... 그런데 그레이엄 스넬링 형제님의 어머니와 뉴올버니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호킨스 형제님, 그리고 많은 사람이 저쪽 작은 기도 모임 장소 밖에서 저를 만났습니다. 제가 남아 있기만 한다면, 더 이상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까지 줄여 가며 태버내클을 짓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 작은 어머니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아이는 팔에 안은 채, 머물러 경배할 수 있는 장소를 짓기 위해서라면 아이들 식사까지 줄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제가 견디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조지 형제님과 저는 상의한 끝에 남아서 태버내클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태버내클을 짓고 나서도 늘 뭔가... 제가 태버내클을 봉헌하던 아침에 환상이 임했습니다. 그 내용은 글로 적혀 저 모퉁잇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저에게 “이것은 네 태버내클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제 태버내클이 어디 있느냐고 여쭈자, 그분은 밝고 푸른 하늘 아래에 저를 앉히셨습니다. 그러고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라”는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책들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한데 겹쳐졌습니다. 하루는 지금 우드 형제님이 사시는 저 위의 집 마당에서 풀을 깎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제 장모님이 그곳에 사셨습니다. 저는 뒤쪽의 작은 콘크리트 계단에 앉았습니다. 제가 장모님을 위해 그 작은 집을 지어 드렸습니다. 당시 장모님은 교회를 돌보며 관리인 역할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는 것 못지않게 또렷한 음성이 제게 말했습니다. “네가 여기 머무는 한 나는 결코 너를 축복할 수 없다. 네 사람들과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 말 때문에 저는 일주일도 넘도록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끊임없이, 언제나 무언가가 제게 경고해 왔습니다. “떠나라, 떠나라. 서쪽으로 이사해라. 계속 서쪽으로 가라.” 저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주에 투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마음을 확실히 정해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살 집을 빌려 겨울을 나고, 9월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던 것입니다. 집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제게 그냥 내어 준 집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리고 제가 떠나 있으면...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저 위에 있는 이 집, 사택을 짓기 직전에... 저는 그곳에 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모님은 연세가 많으셨고, 아내는 그 일로 울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엄마가 연세도 많으시고 돌봄을 받지 못하실 수도 있는데, 엄마를 여기 두고 갈 수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아내의 어머니, 아내에게 지금껏 하나뿐이었고 앞으로도 하나뿐일 어머니이시니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이곳을 좋아하지 않으니, 여기서 만족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에 있든 어디로든 가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낯선 지방으로 아내를 데리고 떠나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저는 늘 집을 비우기도 합니다. 아내와 함께 여기서 사는 것에 만족하게만 해 주십시오.” 이제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 영광으로 들어가셨는데, 다시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밀려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는 옮겨 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는 형제들이 퍼뜨리기 시작한 그 교리 때문에...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저는 강단에서 여러분께, 그 일이 계속되는 한 집회 사역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고맙게도 그 모든 것을 바로잡았습니다.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스물네 시간 안에 다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제 앞에 사역의 길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님께 환상을 구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구했지만, 그분은 제가 그냥 기다리도록 두십니다.
어젯밤에는 아이들과 아내,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운 뒤에 제가 주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서 저를 축복해 주시면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저 자신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사역과 모든 것을 함께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이 어디를 열어 주시든, 무엇을 하시든, 저는 그 길로 걷겠습니다.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는 지금처럼 계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지 않도록 아주 분명하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무언가가 일어날 갈림길에 서 있다고 참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서 네빌 형제님이 예언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니,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예언을 가리키는 것임을 제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해 왔으며, 여러분 모두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제가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도하셔서, 제가 잘못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언의 은사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서 너를 들어서 여기 내려놓겠다. 이제 너는 바로 저기로 가서...”라고 말씀해 주시는 줄 압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이기는 믿음이 있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다른 누구보다도 여러분이 홀로 서도록 두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제게 와서 어떤 일을 물으면, 지금까지 그분은 한 번도 빠짐없이 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여쭈면, 그분은 여러 번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제가 그대로 나아가 그 일을 겪게 하십니다. 지금도 저 스스로 풀어야 할 일들이 있고 내려야 할 결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매우 중요해서, 제게 말씀하시는 분이 그분이라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환상을 주시지 않습니다.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저는 고아처럼 그저 앉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나니, 도중에 다른 무슨 일이 생길 때까지는 이 태버내클로 돌아와 네빌 형제님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조금 전 네빌 형제님께 교회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분은 “잘되고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 여전히 영적 은사들이 역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예언의 은사와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들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우리가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교회를 세워 줍니다. 크게 세워 줍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혹시 제가, 네빌 형제님이... 성령께서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으시면,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 모두 오늘 아침 돌아가시기 전에 마음에 있는 질문을 적어서 여기에 놓아 주십시오. 교회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질문이 있는 분은 누구나 적어서 이 앞에 놓아 주십시오. 오늘 아침 적을 종이가 없으시면 오늘 저녁 일찍 적어 주십시오. 살펴보고 성경으로 답해 드릴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제가 얼마 전에 여기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일곱 봉인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봉인들을 모두 살펴보려면 요한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 다루어야 하므로 올해 안에 그 봉인들을 끝까지 다 마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서너 개는 한 봉인에 하룻밤씩, 각각 하룻밤에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듯이,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다가 멈춘 지점이 교회가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는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유대인들을 다루며, 교회는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유대 민족을 다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휴거에서 다시 거슬러 내려가, 그 봉인들이 펼쳐지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방인 교회, 곧 교회가 떠나 있는 그 시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다시 거슬러 가서, 그들을 다루다가 중단했던 때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메시아가 오셔서 그들이 메시아를 받아들일 때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어 옵니다. 이제 이해하셨습니까? 교회는 들려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교회를, 교회 시대들을 다루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다음 교회가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갑니다. 그때 성령께서는 다시 돌아가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서 다루시고, 혼인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다음, 그 시간이 끝날 때 그들을 다시 데려오십니다. 때가 되면 칠판을 세워 놓고 그림을 그려 가며 가르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 주님께서 신부와 함께 돌아오시고, 이스라엘은 그 신부를 봅니다. 아, 그때는 얼마나 놀라운 때가 되겠습니까!
이제 이것을 올바르게 연결하려면, 먼저 큰 주제 하나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 시대에 걸쳐 신학자들과 많은 교사들, 또 이것을 들으러 오는 그리스도의 교회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온 것입니다. 바로 다니엘의 칠십 이레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칠십 이레로 신부와 이스라엘을 연결하기 전에는 요한계시록에서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혹시 앞으로 그분께서 이 칠십 이레 중 어떤 부분을 말씀하라고 하실 경우를 위해서... 아니, 칠십 이레가 아니라 마지막 일곱 봉인 말입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다니엘의 칠십 이레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다음 일요일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인도하실 경우, 다른 것들을 시작할 토대가 마련될 것입니다. 그 이후의 일은 그때 알게 되겠지요.
네빌 형제님과 저는 이 일을 함께하며,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번 다시 돌아오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합니다. 아마 집회 때마다 병든 분들이 있으면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분별 사역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노력했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과 충분히 가까이 살려고 노력해 왔고, 하나님과 그렇게 가까이 있으니 이런 환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환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물건을 잃어버리면 저에게 전화해서, 그것이 어디 있는지 주님께 기도하며 여쭈어 봐 달라고 했습니다. 이새가 노새들을 잃어버렸을 때 그 젊은이들이 선지자를 찾아 내려갔고, 선지자가 노새들은 이미 집에 돌아갔다고 알려 주었던 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일은 전혀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너무 많고 사람도 너무 많아집니다. 여기 같은 한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늘 마음이 몹시 시달립니다. 게다가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다 보니 결국...
그것 때문에 형제들이 제가 육신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교리를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사역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와 모든 것에 치욕을 돌리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을 크게 흔들어 일깨워, 즉시 그 일을 멈추게 하고,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성경으로 진리를 보자마자 곧바로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즉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그 사람들을 통해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 일로 많은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제는 전보다 형제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 나라를, 아니 사람들을 제 발 앞에 엎드리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바깥의 ‘코스모스’, 전쟁의 소모품이 되는 사람들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 참된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우리가 나라에 관해 말하고 설교할 때에는 다시 태어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나라’라고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아무나, 그저...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그저 흙으로 돌아갈 땅의 티끌일 뿐입니다. 저는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또 무슨 일로 제게 덤벼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침을 뱉어 흙을 이긴 다음, 그걸 남의 눈에 발랐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입에서 침을 뱉다니 얼마나 더럽고 불결합니까. 흙에 침을 뱉어 진흙 덩이를 만들어 사람의 눈에 바르다니 얼마나 비위생적입니까.” 저는 “하지만 그 사람이 보게 되어 돌아왔지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저희 집 근처에 나체촌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시겠지요, 수영장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아이들 모두에게 그 수영장에 가서 수영할 수 있는 입장권을 사 주었습니다. 그와 아내도 그 수영장에 갑니다. 자매님들, 실례합니다만, 그곳에서 여자들이 수영을 하는데, 매일 백 명인가 이백 명인가 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온갖 불결한 것들이 있는 요즘 여자들이 그 물속에서 몸을 씻고 돌아다니고, 그 오물과 더러운 것이 입에 들어가는데 삼켰다 뱉어 냈다 합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제게 덤벼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그리스도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런 비위생적인 행동 때문에 체포당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제 말뜻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 수영장에 들어갑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에게 매독, 임질 등 온갖 질병이 있습니다. 바로 그 안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그 물을 입으로 뱉고, 그런 물속에서 몸을 씻으며 돌아다닙니다. 물론 그것은 위생적이겠지요.
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라니요!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교회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막으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성경은 이미 이런 일들이 있으리라고 예고했습니다. 저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심판의 때가 올 때, 제가 그것을 반대했다는 목소리가 하늘에 기록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이것과 반대되는 그 무엇도 여러분을 넘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이 성경, 이것은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제 돛을 걷고, 안식의 항구, 그 평온한 기슭에 잠시 닻을 내립시다. 내일은 어디로든 항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닻을 내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오늘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이 가진 작은 질문들을 준비해 주십시오... 다만 누구에게 해를 끼칠 만한 질문은 안 됩니다. 그런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애초에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보다는 이를테면, “제가 어떤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작은 질문들입니다. 또는 “브래넘 형제님, 우리 가운데 은사들이 역사하고 있는데, 이것을 이런 식으로 사용해야 합니까, 저런 식으로 사용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들입니다. 제가 성경으로 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면 됩니다. 짧게라도 적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질문이 없다면, 주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어떤 주제를 택해서 오늘 저녁 여러분께 설교하겠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저는 그동안...
지난 일요일에는 코블 형제님 댁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서, 저는 그저 마당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곳으로 와야 했습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짧게 기도하면서 우리를 지으신 분께 말씀드립시다.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손을 들어 “저는...” 하고 알리기만 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이제 그 기도 제목을 마음에 두십시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리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오늘 아침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흘러온 시간의 역사와 다가올 미래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갈보리의 피에 씻겼고, 오늘 그분이 오시더라도 그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에 믿음을 품고 준비되어 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죄가 쌓이고 쌓여 세상이 그 죄의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듯합니다. 술 마시고, 도박하고, 흥청망청 놀고, 몸을 드러내는 일들, 오 하나님, 사람들의 불결함과 더러움과 추악함, 그리고 그들이... 주님, 그들이 깨닫기만 한다면요! 그런 경건하지 못한 짧은 옷들을 입고 거리에 나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벌레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어쩌면 일주일 뒤에는 그토록 자랑하는 그 몸을 벌레들이 먹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자벌레들이 그 몸을 다 먹어 버릴 것임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혼은 저 너머 영원 가운데서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소망도 없이 깊은 절망으로 가라앉다가, 그분이 오실 때 그저 소멸되고 말 것임을 알고 있습니까? 오 하나님, 경고하는 목소리를 주셔서, 모든 혼에게 그들이 다가가는 이 위험을 경고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와 함께하옵소서. 솔로몬이 한때 전도서에서 말했듯이,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셔서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게 하시고 이 회중의 목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전할 말을 찾을 때 그 말들이 빼어난 말씀이 되어,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절실한 마음들을 사로잡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뜨거운 지붕 아래 모인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여기 왔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이시며, 우리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이미 들은 말씀도 감사합니다. 그 말씀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이제 계속해서 주님을 기다리오니, 오늘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몫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위하여 구합니다. 아멘.
이제 만일... [한 자매가 방언으로 말한다. 한 형제가 통역한다.] 영께서 이렇게 마음을 북돋아 주시는 말씀에 감사합니다. 이 말씀들은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실지도 모르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알려 주며 경고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무언가를 드러내실 것임은 압니다. 어쩌면 여러분 마음속에 질문이 있는데, 그분이 그 말씀 가운데서 그것을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메시지를 통해 말씀하실 수도 있고, 오늘 저녁 예배에서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중 어느 순간에, 누군가에게 말씀을 붙들라고 경고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제 기록된 말씀으로 돌아가, 주일학교 공과를 위해 출애굽기를 펴겠습니다. 침례 예식이 있습니까? [네빌 형제님이 “아니요, 오늘 저녁 6시에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군요. 침례 예식은 오늘 오후 6시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펴고, 5절부터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7장 5절과 6절인 것 같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가되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보라, 내가... 호렙에 있는 반석 위에서 네 앞에 서리니... 그 반석을 치라. 그 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시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 눈앞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것을 짧은 주일학교 본문이라고 한다면, 오늘 아침 공과의 주제를 이렇게 잡고 싶습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반석의 물.”
우리는 이스라엘이 언제나 역사 속에서 교회의 본보기가 되어 왔다는 것을 압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까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때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상에 얽매여 있는 동안에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깊이 들어가 제자리를 잡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전까지 우리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신을 분리하여 그 사람들, 부정한 자들 가운데서 나오십시오. 그들과 관계를 맺지 말고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고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불려 나왔을 때, 곧 탈출하여 나왔을 때에는 교회라고 불렸습니다. 그때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불려 나온 자들’을 뜻합니다. ‘출애굽’은 ‘나옴’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각자에게도 삶에서 출애굽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때 어울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교제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 나와 다른 사람이 된 때가 있습니다.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출애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셨을 때의 일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하여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민족, 특별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긍휼의 자리의 그늘 아래서 걸었습니다. 큰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하신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이 출애굽 때 그들에게 영적인 지도자가 주어졌습니다. 그 지도자는 모세, 크게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였으며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경건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그를 부르셨습니다. 아니, 그보다 앞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 세대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에게 이 출애굽을 가져오도록 정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이 태버내클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짧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들려준 이야기가... 아니, 작은 예화를 들어 주었습니다. 요게벳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그녀와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이 백성을 구원할 길을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 말입니다. 아므람은 하나님께서, 아니 한 천사가 서서 북쪽을 가리키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이 뭐라고 하든, 정치권이 뭐라고 하든, 다른 무엇이 뭐라고 하든, 하나님의 손이 모세 위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악어들 한가운데로 띄워 보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히브리 아이들을 악어들에게 던져 주어서 악어들이 모두 포동포동 살이 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를 작은 방주에 넣어 악어들 사이로, 바로 그 한가운데로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사실을 알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성령을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지도자이십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여러분을 얼마나 비웃고 조롱하든,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를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도자가 되시도록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지도자를 따르고 그분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이 지도자께서는 결코 우리를 길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성경의 길 위에 바르게 머물게 하십니다. 무언가를 좇아 이쪽으로 갔다가 또 다른 것을 좇아 저쪽으로 가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길을 곧게 지키십니다.
모세에게는 이스라엘을 데리고 가야 할 경로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따라 홍해를 건너고, 요르단을 건너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며, 광야를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모세가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에서 벗어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길에서 벗어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이 점들을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마침내 그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표적과 이적으로 백성에게 보여 주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이스라엘 앞에서 이 표적과 이적들을 행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이 모세가 그들을 이 나라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받은 아름다운 땅으로 데려갈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이 큰일들을 보고 그들은 기꺼이 그를 따랐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이끌어 내어 홍해를 통과하게 했고, 마른 땅을 밟고 건너 광야 여정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것은 시험의 때를 뜻합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날아갈 듯 좋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성령 침례에 이르기 전에는, 먼저 성결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의 삶에 시험의 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때를 겪었습니다. 그에게 이 시험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먼저 채찍질을 받고 징계를 받고 매를 맞는다. 우리가 징계를 견디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생아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것을 알고 그 징계를 견딜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의 구속의 날까지 성령으로 우리를 봉인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겪는 징계이며 압박이고, 우리가 거쳐 가는 일입니다. 역사 속의 모형인 이스라엘도 이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막대기를 내밀자 땅에 벼룩과 이가 생겼고, 해를 향해 내밀자 해가 사라졌으며, 물 위로 내밀자 물이 피로 변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아니, 고센에 있으면서 그저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해가 사라지지도 않았고 재앙이 닥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구원받았을 때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새들의 노래도 다르게 들리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 처음 구원받았을 때는 모든 것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러다가 시험받는 때, 징계받는 때, 성결하게 되는 때가 왔습니다.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성결하게 하며, “너무 쉽게 여러분을 얽어매는 무거운 것을 떨쳐 버리는” 때입니다. 남자분들은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당구장 출입을 끊고, 밤새 카드놀이를 하는 모임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자분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옷을 길게 늘이고, 예전과 다르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성결하게 되는 때입니다. 그들은 여러 번 반항하고 뒤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갈보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바로 그때 이스라엘 가운데 큰 이탈이 일어났습니다. 심하게 압박받는 그때가 되자,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수군거렸습니다. “우리가 다시 이집트에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혼이 이 푸석푸석한 빵을 싫어하노라.” 다시 말해, 지금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렇겠지요. “아, 수요일 밤마다 기도 모임이라니. 일요일 아침마다 또 교회에 가야 한다니. 가서 뭘 듣는가? 늘 똑같지. 설교자가 일어나 설교하고, 찬송하고, 그러고는 돌아오지.”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저 의무감으로 가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경배하는 사람은 경배하러 갑니다. 자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려고 갑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붙듭니다.
사랑하는 관계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젊었을 때, 의무라고 생각해서 어떤 여자를 만났거나 어떤 남자를 만났다고 해 봅시다. “엄마는 내가 이 남자를 만나기를 바라지만, 나는 이 사람이 정말 싫어.” 그렇다면 그가 찾아와도 아무 기쁨이 없습니다. 여자 쪽에서 남자를 대할 때든 남자 쪽에서 여자를 대할 때든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그 여자를 만나지만 따분합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유형의 여자라서 어머니가 만나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따분합니다. 사랑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관심도 없고, 몸단장도 하기 싫고, 만나러 가기도 싫습니다. 그것은...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그 남자가 찾아와도 그저 얼른 집에 갔으면 싶습니다. 여러분이 “왜 저렇게 오래 설교하지? 이 모든 이야기와 이런 것들은 도대체 뭐지?”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으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붙든다면, 오늘 아침 영께서 여러분에게 경고하신 대로 말입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붙드는 것”, 그분은 바로 그것을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영생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 교회에 가는 것은 기쁨입니다. 덥든 춥든 무관심한 분위기이든, 사람들이 다투고 투덜거리든, 무슨 짓을 하든,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교회에 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여보, 또 일요일 아침이네. 아이들 씻겨서 교회에 가야겠지. 아, 지겨워.” 보십시오. 여러분은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한다면 일요일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꼭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은 여러분에게 지겨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말하듯이, 추운 아침의 수수 당밀처럼 서로 끈끈해집니다. 그것은 흐르지 않고 그저 한 덩어리로 붙어 있습니다. 아시겠지요? 단단히 달라붙습니다. 좀 투박한 표현이지만, 제 뜻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서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추워질수록 더 단단히 붙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더 추워질수록... 세상의 친구들이 버릴 때, 그분께 더욱 가까이 붙으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서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모이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묶는 이 끈은 복되도다. 뜻을 같이하는 마음들의 교제는 저 하늘의 교제와 같도다. 아시겠습니까? 뜻을 같이하는 마음들의 교제는 저 하늘의 교제와 같습니다. 아버지의 왕좌 앞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쏟아 놓습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소망과 목표는 하나이며, 위로와 근심도 하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복을 받으면 우리 모두가 기뻐합니다. 한 사람이 슬프면 함께 슬퍼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있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짐스럽게 되었습니다. “아, 이 푸석푸석한 빵, 천사들의 빵이라니! 이 푸석푸석한 빵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우리 혼은 이런 것이 싫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밤마다 내리는 이 만나라니, 차라리 이집트의 마늘과 리크를 먹는 것이 낫겠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그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교회에 가는 일을 불평하기 시작하고 교회 가는 것이 그토록 지겨워진다면, 그 사람은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천국으로 가고 있고 여러분 모두가 함께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얼마나 복된 교제인가, 얼마나 거룩한 기쁨인가, 영원한 팔에 기대어 있네. 아, 나의 주님 이토록 가까이 계시니 얼마나 복된 평안인가, 그분의 영원한 팔에 기대어 있네. 얼마나... 우리는 이런 찬송들을 부릅니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서로의 짐을 집니다. 또 자주 서로를 위해 함께 아파하는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하나로 이어져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다음 기도 모임 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정을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시험의 때, 그곳이 위험한 곳입니다. 광야, 시험의 때입니다. 이스라엘은 시험의 때에 서로 싸우고 다투기 시작했고, 그 빵을 싫어하며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들의 지도자를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가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지도자임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께서도 그가 지도자임을 입증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조금 광신적으로 행동한 건지도 몰라.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건지도 모르겠어.” 그런 식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거슬러 수군거렸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지도자를 거슬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면 말입니다. “말씀이 정말 이런 뜻인지 모르겠어. 성령도 잘 모르겠어. 그 점은 조금 의심스러워.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있거든.” 그렇다면 이집트로 가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정말로 그 길에 머물기로 결심했다면, 지도자이신 성령 곁에 머무르십시오. 말씀을 꼭 지키십시오. 영과 함께 머물면 그분이 여러분을 말씀 안에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말씀의 노선을 따라, 말씀의 길을 따라 여러분을 곧게 데려가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상처받았다면 오히려 도와주실 뿐입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뒤에 이 길을 가다가 호렙이라는 곳에 이르렀음을 보게 됩니다. 호렙, H-o-r-e-b, 호렙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이름을 풀어 봅시다. 그곳이 바로... 호렙이라는 이름은 ‘마른 곳’ 또는 ‘사막’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교제가 끊어지고 성령과의 교제에서도 벗어나면, 우리는 메마른 곳, 사막에 이르게 됩니다. 살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 가시가 돋아 있습니다. 사막입니다. 가시가 돋친 작은 선인장 조각,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을 받지 못한 귀엽고 부드러운 작은 잎입니다. 스스로 아주 단단히 말려 들어가서 가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보면, 어쩌면 제대로 물을 받았더라면 무언가에 쓰일 부드러운 작은 잎이 되었을 소중한 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대신 자신을 돌돌 말아 가시가 되었고, 모든 것을 찌르며 흠을 잡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물뿐입니다. 그저 물이면 됩니다. 부흥이 필요하고, 굳은 것이 깨어지거나 주님께로부터 새 힘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그 작은 잎이 스스로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의 환경 때문에 고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그저 찌르고, 다투고, 싸우고, 안달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분위기 아래서 살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호렙은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실망하신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벗어나 이곳으로 들어와 이런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바로 그곳으로 데려오셨습니다. 그들이 바른길로 걷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옆길로 빠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민족을 심판할 때 쓰던 심판의 막대기를 가지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어긋나고 세상에 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세상이 받을 심판을 가져다가 갈보리에서 자기 아들을 치셔야 했습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이제 그들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이 백성에게 물을 주기 위해, 이 메마른 곳이 하나의 갈보리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막대기와 장로들을 데리고 나아가라. 내가 네 앞에 있는 반석 위에 서리라.” 이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심판을 내릴 때 썼던 그 막대기, 바로 그 막대기를 가지고 반석에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쳤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백성의 죄들을 이 막대기에 얹은 것입니다. 원래는 그가 백성을 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을 치는 대신 반석을 쳤습니다. 그 반석은 하나님의 역사로 멸망해 가는 백성에게 구원을, 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죽어 가는 백성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심판의 막대기를 취하시고 제 죄와 여러분의 죄를 그 막대기에 감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쳐야 했지만 그리스도를 쳤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에게서 물이 나왔습니다. 물은 ‘영’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그분에게서 성령이 나오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저는 사람들이 머리로 생각해서 그려 놓은 이 반석의 그림을 많이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가장 못마땅한 그림 하나를 보았는데, 언덕 꼭대기에 작은 돌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 돌을 쳤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아래에서 찻잔을 들고 그 돌에서 조금씩 흩뿌려지는 물을 받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누군가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반석에서 물이 나왔을 때는 이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소와 낙타와 그 밖의 모든 짐승들까지 그 물을 통으로 마셨습니다. 그곳에서 솟구쳐 나온 것은 거센 물줄기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성령을 그런 식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저 물을 조금 뿌리는 정도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게 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풍성한 물입니다!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솟구쳐 흐르는 성령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되거나 혹시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릴까 봐 좀 두렵습니다. 너무 멀리 간 사람이 누군지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나아가지 않은 사람은 결코 지적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충분히 나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가운데 육신에 빠져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좋은 인도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광신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온 세상이, 마귀가 그들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것 봐라! 저것 봐라!” 그렇다면 오늘 아침 제가 여기 서서, 아예 출발조차 하지 않은 수천만, 또 수천만 명을 가리켜 보겠습니다. 그들은 어떻습니까? 보십시오. 그들의 상태를 보십시오. 오늘날 아이히만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최고의... 사람들은 “오순절 사람들은 비윤리적이고 거칠며 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등의 말을 합니다. 아이히만을 보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 중 하나인데, 어린이와 여자와 남자 육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육백만 혼을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글도 제대로 못 읽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성경의 이름을 잘못 부르거나, 말을 잘못하거나 행동을 잘못하거나, 어떤 실수를 하면, 신문들은 그것을 여기저기에 써서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믿을 수 없다면서, 왜 교육은, 오늘날의 그런 것들과 지식인들은 믿습니까? 아돌프 히틀러를 보십시오. 오늘날 세상의 두뇌들을 보십시오. 그들을 보십시오! 옛말에 “암거위에게 쓰는 소스는 수거위에게도 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취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갈보리가 있었고, 백성을 위해 생명수가 솟구쳐 나왔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물을 마신 다음 낙타에 짐을 싣고, 말에 마구를 매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반석은 그 자리에 물을 조금씩 뿌리도록 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 반석이 그들을 따라갔으며, 그 물이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제 생각에는 11절에서, 그 반석이 이스라엘을 따라갔다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날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든 반석이 함께 갔고 물이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믿는 사람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형이며, 든든한 버팀목과 닻입니까! 한 번 맞은 그 반석, 갈보리에서 한 번 쏟아져 나온 그 물이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함께 간다는 것을 아는 신자에게 말입니다. 아, 놀랍습니다! 어떤 장소로 돌아가서 “그저께는 저기에 물이 있었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바로 여기 우리에게 물이 있습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고,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그 반석이 이스라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반석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반석이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아멘. 이스라엘은 여정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할 일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른 경로를 지켜 약속의 땅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반석과 물이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을 따라가는 반석...” 고린도전서 10장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받을 심판을 취하여 그리스도 위에 놓으시고 그분을 치셨습니다. 그때부터 반석에 갈라진 틈이 생긴 것을 아셨습니까? 모세가 친 자리에 틈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에게도 갈라진 틈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맞으셨을 때,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 생명으로부터 오늘 우리가 이토록 누리는 생명수가 흘러나왔습니다!
이제 이 생명을 얻으려면...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생명은 교회와 함께 머뭅니다. 할렐루야! 아, 앞으로 십 분 동안 우리의 생각을 여기에 고정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신으로 떠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지,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물줄기를 떠났습니다. 물줄기가 이스라엘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성경은 반석과 물이 이스라엘을 따라갔다고 분명히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 그것도 함께 갔습니다.
아, 오늘 아침 시간이 있다면 여호수아 1장을 펴 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을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말라. 용기를 내라! 네가 어디에 발을 내딛든 내가 바로 거기 너와 함께 있으리라. 어디든 상관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가시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자신의 교회와 함께 가십니다. 저 샘에서 마십시다. 여러분이 어디에 발을 내딛든 하나님께서 바로 거기에 함께 계시면서 물을 주시고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시대의 끝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브래넘 형제님, 왜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합니까? 왜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은사들과 그런 것들이 마땅히 나타내야 할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합니까? 왜 우리 교회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올라가지 못합니까?” 사람들이 시험의 때에 이스라엘처럼 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반석이 이스라엘을 떠난 적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반석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반석이 언제나 자기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반석은 바로 거기에 있었고, 여정이 끝날 때까지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말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오늘날 교회와 함께 계신 그분은 말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뒤로 물러가 잘못을 저질렀고, 그 기쁨을 잃어 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여전히 여러분의 말이 닿는 곳에 계십니다. 여러분을 따라오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움직임과 모든 행동을 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그 자리에 불러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날 이 큰 오순절 운동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그 자리에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분과 말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고, 그분께 등을 돌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어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물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목이 마를 때 물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법칙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하나님의 모든 체계는 법칙에 따라 세워져 있습니다. 이제 살펴봅시다... 잠깐 멈추어 생각해 봅시다. 지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지구는 돕니다. 스물네 시간마다 한 바퀴를 완전히 도는데, 아주 정확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온갖 과학을 동원해도 시간을 완벽하게 맞추는 시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시계라도 일 년이 지나면 이따금 몇 분씩 빨라지거나 늦어집니다. 그러나 지구는 한 번도 어김없이 정확히 그 초에 맞춰 제자리에 옵니다. 그토록 정확해서 오늘날 과학자들, 천문학자들은 지금부터 이십 년 뒤나 오십 년 뒤에 해와 달이 언제 서로 지나갈지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지구가 스물네 시간에 한 바퀴를 돌고, 한 계절을 이루도록 정해진 시간에 궤도를 돌아갈 때, 한 박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수가 언제 빠져나갈지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압니다. 달이 언제 내려가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법칙에 따라 질서 있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달이 내려가면 조수도 함께 빠져나가고, 달이 올라오면 조수도 함께 들어옵니다. 그들은 시간을 계산해서 달이 언제 내려갈지 정확하게 압니다. 여러 해 뒤의 일까지 미리 역서에 기록해 두고, 조수가 언제부터 빠지기 시작할지 분 단위까지 알려 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달이 그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질서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저는 미시간호 곁에 서 있었습니다. 캐나다로 가는 길에 그 큰 호수, 슈피리어호에도 갔습니다. 거기 서서 생각했습니다. “여기 이 커다란 물길을 가로지르면 몇 마일이나 될까?” 그러고 나서 미시간을... 아니, 슈피리어호를 건너면 거의 같은 크기의 미시간호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슈피리어호와 미시간호 사이로, 미시간호에서 온타리오호와 휴런호로, 그 모든 호수를 다 합치면 말입니다. 그 호수 안에 담긴 담수는 수십억에 수십억에 수십억 배, 셀 수도 없는 통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 네바다와 애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동부에는 바싹 말라 타들어 가는 수백만 에이커의 땅이 있습니다. 그 땅은 아주 비옥해서 그 물만 그 땅에 닿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굶주리는 사람 하나 없이 온 세상을 먹이고도 바다에 던져 버릴 만큼 남는 식량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수백만 에이커에서 수백만 톤에 또 수백만 톤의 감자와 양배추와 콩, 상추, 무, 셀러리, 오이, 또 온갖 것을 길러 낼 수 있습니다. 그 땅은 그것들을 길러 낼 것입니다. 그저 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위쪽에는 물이 있고, 여기 아래쪽에는 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리라는 것도 압니다. 물을 검사하면 담수임을 알 수 있고, 흙을 검사하면 비옥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바라도 그 둘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중력입니다. 중력에 따라 일을 한다면 호수의 물을 끌어다가 그 땅 구석구석에 물을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에 맞게 해야 합니다. 소원만 빈다고 물이 그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비명을 지른다고 가지 않습니다. 고함을 친다고 가지 않습니다. 물을 그곳으로 보내려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법칙 아래 두십니다.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전에 여러분께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일 년쯤 전에 우드 형제님과 켄터키에 다람쥐 사냥을 하러 갔습니다. 다람쥐가 좀 드물어서, 사냥에 관해 알아보려고 어떤 분의 집에 갔습니다. 그분은 여러 에이커의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땅에는 숲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드 형제님이 그 사람은 무신론자,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를 알고, 아니 자기 아버지가 그를 안다며, 가서 사냥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차를 몰고 그분 댁으로 갔습니다. 그분과 또 다른 한 분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두 분 다 칠십 대였습니다. 우드 씨가 그분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어르신 땅에서 사냥을 조금 해도 될까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래, 좋지. 그런데 어느 우드 집안 사람인가? 짐 우드의 아들인가?” 그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짐 영감은 정직한 사람이었지” 하며 이런저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내 땅 어디서든 사냥하게. 여기 내 땅이 몇백 에이커나 있으니 마음껏 하게. 저 골짜기든 어디든 마음대로 가게. 자기 집처럼 편하게 하게”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신론자에게 부탁하려는 마당에 설교자와 무신론자가 함께 있으면 잘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잠시 뒤 우드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 목사님도 함께 오셨습니다. 그분이 같이 가셔도 괜찮겠지요?” 그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우드, 자네가 그렇게까지 떨어졌단 말인가? 어디를 가든 설교자를 데리고 다녀야 할 지경이 되었나?” 그 말을 듣고 저는 차에서 나오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에서 나와 그 노신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곧바로 자신이 설교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설교자들은 자기가 전혀 모르는 것을 떠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떠들어 대지. 누가 나한테 말을 하려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해야 해.” 그것은 사리에 맞는 말입니다. 사리에 맞는 말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누가 나한테 말을 할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는 건 싫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했으면 좋겠어.” 저는 그 점을 높이 샀습니다. 그 노신사의 그런 태도를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론이지요. 사람마다 자기 생각이 있는 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이 지방에 어떤 설교자가 와서 액턴에서 집회를 열었어. 그 설교자는 이 지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밤 청중 속에 앉은 한 여자에게 이러더군. ‘주머니에 손수건이 있군요. 당신은 아무개 부인입니다. 여기 언덕 위에 아픈 자매가 한 분 있는데, 이름은 아무개입니다. 위암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이 손수건을 가져다가 당신 자매에게 얹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죽지 않고 살 것이라고 전하십시오’라고 했지.”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 아픈 여자는 우리 친구였어. 우리는 이 여자를... 아니, 이 손수건을 들고 올라... 아니, 이 남자를... 그 사람을 먼저.”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이 여자는, 내 아내와 내가 그날 아침 그 집에 올라가서 데려다... 그 여자를 돌봐 주었지. 병이 너무 심해서 의사들은 오래전에 포기했어. 상태가 너무 나빠서 이불 홑청에 싸서 옮겨야 했지. 들어 올려 침대용 변기를 받쳐 주었다가 다시 눕히고, 홑청에 싼 채로 몸을 돌려 줘야 했어. 그만큼 위중했지.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집에서 마치... 누가 죽은 것처럼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군.”
그때 그 손수건을 들고 그 집으로 간 사람이 저기 있는 벤이었습니다. 형제님이셨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기 벤 형제님이 그 손수건을 받으셨습니다. 그 여자를 그곳에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여자가 튀긴 사과 파이를 먹고 있었어!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자기 집안일뿐 아니라 이웃집 일까지 해 주더군. 그래서 늘 궁금했지. 그 설교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한번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 우드 형제님이 저를 쳐다보았고, 저도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는 숲에서 야영하고 나와 더럽고 땀투성이인 데다 온몸에 다람쥐 피까지 묻은 채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설명해 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분이 “그렇지. 바로 그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거 좋겠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집 사과 하나를 먹고 있었습니다. 가을철, 8월이 되면 작은 말벌들이 사과에 달려들지 않습니까? 저는 그 작은 사과를 먹으면서 말했습니다. “참 맛있는 사과네요. 이 나무는 여기서 얼마나 오래 자랐습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 내가 그 나무를 심은 것이 삼십 년인가 사십 년인가, 그쯤 되었지.” “그렇군요.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잎도 떨어지고 있는데, 이제 겨우 8월 중순입니다. 서늘한 날씨가 온 적도 없고, 서리가 내린 적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벌써 저 나무에서 잎이 떨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수액이 나무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지.” “아, 어디로 갔습니까?” 그분은 “뿌리 속으로 내려갔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거기서 얼마나 오래 머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봄까지”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올라와서, 그늘을 만들어 줄 새 잎과 먹을 새 사과를 내겠군요?” 그분은 “그렇지. 정확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르신,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셨지요. 어떤 지성이 그 수액을 나무에서 빠져나가게 하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겨울 내내 거기에 남아 있으면 나무가 죽을 것입니다. 나무를 죽이겠지요. 생명의 씨는 그 수액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나무가 죽을 것입니다. 어떤 지성이 수액을 나무에서 뿌리로 내려가게 하고 봄까지 머물게 했다가, 다시 올라와 사과를 또 맺게 합니까? 양동이에 물을 담아 기둥 위에 올려놓고, 8월이 되면 기둥 밑으로 내려갔다가 봄에 다시 올라오는지 보십시오. 어떤 법칙, 자연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지성이 이 법칙을 정해 놓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동일한 지성이 수액을 나무뿌리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게 하는 그 법칙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 제가 말했습니다. “수액을 나뭇가지에서 뿌리로 내려갔다가 돌아오게 하는 그 지성이 무엇인지 알아내신다면, 그것이 바로 그날 밤 저에게 ‘가서 그 여자에게 손수건을 얹어라’고 말씀하신 동일한 지성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그 설교자란 말이오?” 저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작년에 그곳에 갔는데, 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의 미망인이 현관에 앉아서 바로 그 나무에서 딴 사과를 깎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처음에는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가서 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남편분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사연을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고백하셨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무엇이 그 나무를 그렇게 하며, 어떤 지성이 수액을 아래로 내려가게 합니까? 그것은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그 법칙은 그 아래 있는 대상을 돌보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아무리 “이제는... 이번 여름에는 해가 다시는 비치지 않을 거야” 하고 외쳐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해는 비칠 것입니다. 아무리 “밤이 오지 못하게 할 거야” 해도 밤은 올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 다스려지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하나님께는 작고 약한 부분과 크고 강한 부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온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 그저 희미한 그림자만큼이라 해도, 그것은 새 땅 하나를 만들기에 충분한 권능입니다. 새 달과 새 천체계를 만들기에 충분한 권능입니다. 하나님이시며, 강하십니다! 지금 이곳의 모든 신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곧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병자를 치유하고 궤도들을 제자리에 놓기에 충분한 권능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칙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그 영,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바로 그 영께서 부활의 날에 여러분 자신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다가 죽으셨을 때, 그분의 혼은 지옥으로 내려가 감옥에 있던 영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오래 참으시는 동안에도 회개하지 않았던, 감옥에 있는 혼들에게 말입니다. 그분의 몸은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영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분의 영은 하나님께로 갔고, 혼은 지옥으로 갔으며, 몸은 무덤으로 갔습니다. 성경이 성취될 때까지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없도록 가로막혀 계셨습니다. 밤낮으로 사흘 동안 무덤에 머무셔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두 성취되자 이 빗장이 치워졌습니다. 그분의 영이 혼으로 내려오고, 혼이 몸으로 들어가, 그분은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우리도 죽으면 혼이 하나님의 제단 아래로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듯이 얼마 전 어느 아침 환상 가운데서 제가 은혜로 보았던 곳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가고, 몸은 땅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성경이 성취되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풀려나와 혼을 데려오고, 혼은 몸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를 일으킬 그 권능이 지금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의 처소들에 있습니다. 지금 부활의 권능 안에 있습니다. 거기에 법칙이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저 바깥에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거기서 따로 살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그 일을 할 권능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그림자만큼이라도 있다면, 그 일을 할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권능은... 여러분은 말씀으로 세상 하나를 존재하게 해서 거기 가서 살 수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권능이 지금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칙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그 법칙은 수많은 명령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믿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혼을 인도하여 믿게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의 것입니다. 믿음으로 발바닥을 디딜 수 있는 모든 곳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아멘!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것을 열어 주는 이 믿음의 법칙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소유합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 권능을 다스리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이라면, 그것은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믿음이 거기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땅의 더러움에서 일어날 믿음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세상의 것들을 이깁니다. 여러분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행하셔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신 그 일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거짓말을 그치고, 도둑질을 그치고, 술 마시기를 그칩니다. 믿음이 여러분을 그 위로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은혜를 통해서니라.” 여러분의 믿음이 풀려 나오는 만큼 권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 권능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그 일이 너희에게 이루어질지어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 하고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을 믿으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안에 사시는 이 위대한 구속자 그리스도, 결코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 맞은 반석을 믿는 우리 말입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갈보리에서 교회 안으로 쏟아져 나온 구원과 권능의 큰 물줄기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맞아서 물을 풍성히 흘려보내는 그 반석이 우리의 여정에 함께 가십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고기 솥을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으로 데려가시리라고 믿었더라면, 아무것도 그들을 가로막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바다를 갈랐고, 적들에게 재앙을 내렸으며, 뒤에 있던 적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건너편 땅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약속을 향해 계속 나아갈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그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앞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 충분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아무것도 우리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은 그것을 믿을 사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이미 행하신 일을 믿을 사람을 찾으십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렇습니다! 언제나 살아 계신 영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아침 “언제나 함께하는 반석의 물”이라는 주제를 말씀드릴 때 제가 뜻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반석의 물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갈보리에서 맞은 그 반석에서 나온, 언제나 함께하는 물입니다. 갈보리에서 그분에게서 성령이 나오셨고, 오순절 날 교회 위에 다시 임하셨습니다. 바로 그 동일한 성령께서 오늘 아침 여기 계시며,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병자들 앞을 걸을 때, 그분이 저기서 제게 사명을 주셨으므로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환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믿으십시오! 믿어야 합니다. 그 문을 열어, 그것을 열어 여러분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능을 더 달라고 기도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새 땅 하나를 만들기에 충분한 권능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 권능을 사용할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 생명을 다스리고 그토록 경건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관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과 동행하면, 그분이 어떤 좋은 것도 우리에게 아끼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 아, 놀랍습니다!
그들에게는 할 일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단 한 가지, 그 경로를 곧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쪽으로 빗나가고 저쪽으로 빗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경로를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에게도 할 일이 하나뿐입니다. 경로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불기둥이 있었고, 그것을 따라 경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불기둥을 따르는 것, 그것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은 그 불기둥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이 모세를 통해 역사하는 것을 보았고, 그가 지도자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릅니다. 말씀이 믿는 사람들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지킵니다. 말씀이 결과를 낳습니다. 그들은 모세 곁에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불기둥을 모세가 따랐고, 그들은 모세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세를 거역하고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하자, 이쪽저쪽으로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표적을 낳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곁에 머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표적을 낳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길을 벗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길을 벗어나 물 공급을 잃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런저런 주의에 빠졌습니다. 해서는 안 될 사소한 일들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도신경 같은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경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습니까? 읽어 내려가는 교리문답을 받아들였습니다. 체험 대신 교단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체험 대신 악수하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물침례 대신 물을 뿌리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는데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악한 형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물을 원한다면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다시 그 길로 돌아오십시오. 다시 돌아오십시오... 그분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대신 신조를 받아들입니다. 제멋대로 흥분하며 길을 벗어납니다. 한 사람은 “나는 감리교인입니다”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나는 침례교인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저는 침례교인인데요?”라고 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전부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 침례교인입니다. “저는 오순절 교인입니다”라고 합니까? 교단상 오순절 교인일 뿐이라면, 그것이 여러분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오순절 체험이 있다면... 오순절의 말씀은 오순절 체험을 낳습니다. 그 제자들이 한 것과 똑같이 따르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그 위에 머무르십시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이 말씀에 반대하고, 여러분 안의 영이 말씀이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을 흉내 내는 마귀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빗나갔는지 아시겠습니까?
아, 우리 중에는 방언으로 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치며 기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도 이 다른 것들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성경에 없는 온갖 것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이르렀습니까? 또 다른 사막, 말라 버린 조직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조직을 만들었고, 물을 잃었습니다. 오순절이 한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교제를 끊기 시작했고, “이 사람이 저런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울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계속 함께하십시오. 그가 진리의 말씀,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까지 곁에 머무르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일은 그냥 넘기십시오. 그저 계속해서 형제가 되어 주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기어이 조직을 만들고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일신교가 아니니까, 이신교가 아니니까, 삼신교가 아니니까, 이런 식이 아니니까, 우리는 당신과 교제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 자신을 다시 사막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경로, 그 길을 벗어났을 때에도 반석은 그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거기 머물렀습니다. 물도 그랬습니다. 성령도 그러하십니다. 바로 거기 머물러 계십니다. 우리는 그 점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맞으셔서, 단번에 우리에게 오순절 체험을 주셨습니다. 그 반석이 맞았을 때, 다시 맞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직 한 번 맞았습니다. 모세는 두 번째로 반석을 쳐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속죄를 믿는 그의 믿음이 약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맞으셨으므로 다시 맞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새로운 무언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성직자들이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회를 만들자.” “우리는 하나님의 오순절 교회를 만들자.” “우리는 총회를 만들자.” “우리는 이것을, 저것을, 또 다른 것을 만들자.”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분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맞으셨습니다. 그것이 본래의 체험입니다. 그것이 본래의 길입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을 뿌리고, 그에 관해 온갖 신조와 다른 것들을 내놓습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니 아무 데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가르치십니다. 모세가 “이제 여기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자. 조직을 만들고 가톨릭교회를 만들자”라고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한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거기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자. 루터교를 만들자”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성공회가 나오고, 침례교와 또 다른 것들이 나왔습니다. 캠벨파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적그리스도, 그 밖의 온갖 것들이 나왔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차례로, 하나 뒤에 또 하나씩 나아가며 교단과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반석을 다시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교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길로, 하나님께서 처음에 행하신 그 길 그대로 왔습니다. 그들은 같은 일을 했고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같은 표적이 그들을 따랐고, 같은 역사들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석 곁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물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신조와 교단이 있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모세는 반석을 다시 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본래의 반석에 관해 말해야 했습니다. 아,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모세는 처음 맞은 그 반석에 관해 말해야 했지, 다시 치려고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하지 말고, 예전의 그것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제가 강단에서 빈털터리로 죽는다 해도 본래의 반석에 관해 말하겠습니다! 본래의 체험에 관해 말하겠습니다. 그들에게 성령 침례를 가져다준 본래의 성경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반석에서 흐르는 물은 여전히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같은 것을 낳을 것입니다. 환상을 낳을 것입니다. 치유를 낳을 것입니다. 예언을 낳을 것입니다. 그들이 행했던 모든 것을 낳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성경 말씀에 맞추어 바로 서고 그 길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사십 년이 걸렸습니다. 오순절은 사십 년인가 오십 년쯤 광야에서 헤매 왔습니다. 반석으로 돌아오십시오! 눈앞에 있습니다. 바로 여기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하셨던 바로 그 일을 여기서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함께하는 그 물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저 그곳으로 돌아오십시오. 예전의 것, 본래의 것으로 돌아오십시오.
본래에는 어땠습니까? “그들은 설교자와 악수를 했지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지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또 성경 시대 이후 삼백 년 동안에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가톨릭의 신조이지, 성경의 교리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성령이 계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랐습니다. 오늘날에도 다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반석, 맞은 그 반석은 언제나 살아 있었듯이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자, 우리 오순절 교회로 와서 가입하십시오. 우리 오순절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십시오”라고 하지 맙시다. “아니요, 이쪽으로 와서 침례교나 감리교, 장로교나 가톨릭에 가입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반석을 다시 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십시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그 길로, 같은 물로 돌아온 것입니다. 같은 물은 같은 새 힘을 줄 것입니다. 몸을 똑같이 채찍질할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똑같은 권능을 줄 것입니다. 같은 치유의 권능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같은 영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때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포도나무 안에 있는 생명은 포도를 맺습니다. 작년에 포도를 맺었다면 올해에도 같은 것을 맺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라면 그대로 두십시오. 포도를 맺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다른 것과 교배시킬 수는 있지만, 그 뒤에 그대로 두면 다시 같은 포도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를 오순절주의와, 침례교주의와, 감리교주의와, 장로교주의와, 성공회주의와, 그 밖의 온갖 주의와 교배시켰습니다. 왜 그대로 두지 않습니까? 포도나무로 돌아오십시오. 같은 권능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아멘! 아멘!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해 온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권위를 과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개 박사님은 아무개 아무개의 위대한 아무개 교회를 창립하신 분입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한 말이 그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겠다. 어떻게든 물을 내고 말겠다!” 그가 쳤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소리쳤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겠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대해 그를 다루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교단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일로 여러분을 다루실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본래의 것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십시오.
사람들에게 말할 때 “우리 교회에 가입하러 오십시오. 우리의 신조를 고백하러 오십시오”라고 하지 마십시오. 돌아와 회개하고, 여러분의 죄들의 사면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올바르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무리와 이 표적들이 함께 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석, 곧 맞은 반석과 그분의 생명수가 솟아나와 그분이 그때 행하셨던 것과 같은 것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는 감리교인이고 침례교인입니다” 하며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그저 반석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분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거기에 가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가입해야 했습니다.” 가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에는 가입할 수 없습니다. 그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감리교에는 가입할 수 있고, 침례교에도 가입할 수 있고, 오순절 교단에도 가입할 수 있고, 성공회에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는 가입할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가입하지 말고 그저 이것으로 충만해지십시오. 그것뿐입니다. 무엇으로 충만해집니까? 권능으로 충만해지고, 영으로 충만해지고, 생명으로 충만해지고,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으로 충만해지며, 여러분 삶 속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임재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시간이 늦어지니 마쳐야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반석은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그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반석은 호렙에서 느보까지 가는 내내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요르단에 이를 때에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요르단에서 그 반석을 보고 싶습니다. 모세가 요르단에 이르렀을 때, 반석은 그 모든 길을 함께해 왔습니다. 모세는 저 위에 서서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떠난 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그의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그는 요르단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요르단에 와 있었습니다. 영적인 요르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기에 서 있는데 죽음이 소매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니 바로 곁에 반석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반석 위로 발을 내디뎠고, 천사들이 와서 그를 안아 데려갔습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시절이 아무리 어려워지고, 우리가 아무리 늙고, 어떤 죽음을 맞이하든 기억하십시오. 요르단에 반석이 있을 것입니다.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함께하는 반석의 물은 우리 평생에 걸쳐 함께할 것이며, 요르단에서도 함께할 것입니다.
고개를 숙입시다. [회중 가운데 한 형제가 예언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그 영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동안, 오늘 아침 이곳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아침 그 반석 가까이에 있지 않고, 그분과 말을 나누는 사이도 아닌 분이 계십니까? 하지만 그분이 여기 계시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곳곳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이 움직이시는 것을 보십시오. 사람들 위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이 언제나 함께하는 물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들의 잔이 넘치도록 채우셔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고, 무언가가 반드시 터져 나오게 하시는 영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그분과 이야기하고 싶고, 그분의 영의 충만함 가운데서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그분이 언제나 바로 제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하심을 믿지만, 그분과 말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향해 목마르고 배고픕니다. 그분을 더 잘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형제님도요. 저 뒤쪽에 계신 분도요. 여기 아래 계신 부인, 네. 그렇습니다, 부인. 여러분의 손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십니다. 청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도요.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께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조용한 순간에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저 뒤에 있는 청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나 함께하는 반석의 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던, 그분에게 심판이 닥친 그날 그곳에서 큰 소리로 외치시며 내어 주셨던 바로 그 영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그분을 내리쳤습니다. 여러분의 죄들이 그 막대기에 감겨 있었고, 그것이 그분을 내리치자 피와 물이 그분에게서 솟구쳐 나왔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그 영이 오셔서 우리와 여정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토록 가까이 계십니다.
그 아래를 벗어나 집에서 멀리 나갔거든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제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 제단 앞으로 걸어 나와 여러분의 혼을 그리스도께 다시 드리기 원하신다면... 아멘. 하나님을 떠나 멀리 헤매었으나, (그 길을 벗어나) 이제 집으로 돌아옵니다. (불신의) 길을 너무 오래 걸었으나, 주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시는 떠돌지 않겠습니다. 사랑의 팔을 활짝 벌려 주옵소서. 주님, 이제 집으로 돌아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주님, 집으로 돌아옵니다”를 허밍한다.]
어린 남자아이 셋이 눈에 눈물을 머금고 아주 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와 제단 곁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물론 이 아이들은 용서받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결심을 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이제부터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그저 앞으로 나와 여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어쩌면 나이 든 분들 가운데도 이렇게 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저 무릎을 꿇고 “주님, 제가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의심이 너무 많았고, 때로는 길을 벗어나 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돌아오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아가고 싶습니다. 정말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 말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몸집이 비슷한 어린 여자아이 셋이 올라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집에서 갓 태어난 남동생이 생긴 어린아이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말했습니다... 우드 부인이 와서 그 자매가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간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성령께서 “가서 아들일 것이라고 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태어나 보니 사내아이였습니다. 오늘 아침은 어린이들의 아침인 것 같습니다. 아널드 자매님의 어린이반에서 나온 아이들이 자기 삶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오른쪽 제단이 온통 어린아이들로 가득합니다. 이 제단에서 나머지 사람들, 어른들에게 찬송을 불러 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주님, 이제 집으로 돌아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제단 앞의 아이들에게 말한다.]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시는 떠돌지 않겠습니다. 사랑의 팔을 활짝 벌려 주옵소서. 주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님, 죄짓고 방황하는 데 지쳤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의 사랑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시는 떠돌지 않겠습니다. 사랑의 팔을 활짝 벌려 주옵소서. 주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이 어린아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내일이 온다면, 예수님께서 앞으로 십 년이나 십오 년 더 기다리신다면, 이 아이들이 다가올 다음 세대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할 소년 소녀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 이 아이들이 여기 제단 앞으로 나왔던 일을 평생 기억하리라는 것을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주님, 아이들은 작은 보석들입니다. 어리고 여린 이 마음들에 오늘 아침 확신이 생겼습니다. 메시지를 다 듣지도 않고, 아널드 자매님의 가르침을 듣던 방에서 나와, 이 제단 주위로 다가와 어린 삶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방금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성령, 이 영과 함께하는 믿음이 모든 일을 합니다. 바로 이 시간에 주님께서 이 아이들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심을 믿습니다. 제 마음에 있는 모든 믿음을 다해 구하오니, 이 아이들이 길을 걸어가는 내내 그 어린 삶을 지켜 주옵소서. 결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아침 영께서는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다른 사람들을 다루는 일을 그치셨다면, 어린아이들을 받아 주옵소서. 오늘 아침 제단으로 부를 때 어른은 한 사람도 없고, 어린아이들 무리 전체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큰 메시지였는데도 아이들은 그 메시지의 영을 붙잡았습니다. 아버지, 이 아이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이 집회의 열매인 아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생명수가 아이들이 사는 동안 내내 함께 흐를 것임을 기억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이 일, 아이들을 자리에서 이끌어 이곳으로 보내신 그 하나님을 믿게 하옵소서. 평생 그 하나님을 믿게 하옵소서. 죽는 날에 이 아이들의 영이 주님께로 이끌려 가고, 부활의 날에는 몸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아버지, 이 아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드립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제단 앞에 있는 이 모든 아이들에게 묻겠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주이시며, 저기 회중석에서 이곳으로 와서 제단 주위에 무릎을 꿇으라고 말씀하신 분임을 믿는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믿습니까?” 모두 일어서서 회중을 돌아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이제 일어서세요. 그렇습니다. 회중 쪽을 똑바로 돌아보세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은 모두 일어나 저기 회중을 돌아보세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요.
여기 앞에 있는 여자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믿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여기 있는 여자아이들,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렇습니까? 사랑합니까? 얘야, 너도 그분을 사랑하니? 여기 일어서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쪽으로 돌아서서, 돌아가기 전에 이분들을 위해 노래합시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나는 알아요. 성경이 그렇게 말해 주니까요.” 알겠지요? 이제 노래하면서 손을 듭시다. 좋습니다. 함께 불러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나는 알아요. 성경이 그렇게 말해 주니까요. 어린아이들은 그분께 속해 있어요. 아이들은 약해도 그분은 강하시지요. 이제 노래하면서 손을 들어요. 자, 모두 함께요. 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세요. 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세요. 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세요. 성경이 그렇게 말해 주지요.
이제 모두 저를 따라 말하세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저는 그분을 제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오늘부터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 아멘.
[회중 가운데 한 형제가 “브래넘 형제님, 지금 제 마음에 네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한다.] 물론입니다, 벤 형제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분은 다른 어린아이들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을 보며, 아버지로서 자기 어린 자녀들을 위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제단으로 이끄신 그 영께서 이분의 자녀들도 구원해 주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제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갈 때, 그 줄에 계신 모든 분들이 아이들과 악수하거나 토닥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이쪽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세요. 거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아이들을 한번 토닥여 주십시오. 우리는 온 마음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우리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 몸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시온으로 행진합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온으로. 우리는 시온을 향해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다 함께 와서 우리의 기쁨을 알립시다. 감미롭게 화음을 이루어 함께 노래합시다. 감미롭게 화음을 이루어 함께 노래합시다. 그렇게 왕좌를 둘러쌉시다. 그렇게 둘러... ... 참 잘 부르십니다! 이제 손을 듭시다. 우리는 시온으로 행진합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온으로. 우리는 시온을 향해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으로. 이제 노래하면서 서로 악수합시다. 우리는 시온으로 행진합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온으로. 우리는 시온을 향해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으로.
이제 기도하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계십시오. 테디 형제님, 잠깐만... 여기에 기도 요청들이 있습니다. 손수건과 그런 것들입니다. 해외에서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빌리가 말해 주었는데, 영국에 있는 아기의 조그만 덧신 한 켤레가 왔다고 합니다. 이만한 크기인데, 그 아기는 온몸이 불구라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벤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어젯밤 우리 차 오른쪽 앞 펜더를 누가 들이받았는지 드러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드러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아멘, 벤 형제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계속해서 “우리는 시온으로 행진합니다”를 허밍한다.]
주님, 우리가 행진할 때 맞은 반석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반석의 물이 교회와 함께 갑니다. 오 영원하신 하나님, 오늘 아침 우리와 함께 계신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서 풀려 나오게 하옵소서. 주님께 은총을 얻어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믿고 맡기실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해 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풍성하게 주시면 우리가 그것을 잘못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주님.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은혜를 얻는 대로 그 일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형제님이 누군가 자기 차를 들이받았다고 했습니다. 오 하나님, 그분에게는 이런 일을 감당할 돈이 없음을 우리가 압니다. 그 일을 한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거나, 어디서든 그 일을 뉘우치게 하셔서, 찾아와 “형제님, 제가 차를 고쳐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벤 형제님과 그분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도와주옵소서.
여기 제 손에 손수건들과 기도 요청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모세는 그 하나님을 믿었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다니엘은 그 하나님을 믿었고, 사자 굴에서 나왔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분을 믿었고, 불을 껐습니다. 바울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가 매우 힘들어 바울이 모든 사람을 찾아갈 수 없었을 때, 그는 그저 손수건을 들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손수건들과 앞치마들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자 악한 영들이 사람들에게서 떠났고, 아픔과 질병이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하나님, 저도 같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악한 것이 떠나게 하옵소서. 아픔과 질병과 고통이 떠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은 저 강가에서 불기둥 안에서 제게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벽에 저와 함께 찍힌 사진이 걸려 있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여기 계신 바로 그 불기둥이십니다. 우리가 영 안에서 함께할 때마다 매일 반석의 물을 누려 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기 계십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도와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 그렇다면 잘못을 저질렀던 모세와 같아질 것입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돕는 무언가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의 뜻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가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든 보여 주옵소서.
이제 믿음의 행동으로, 이 손수건들과 기도 요청들이 가리키는 질병을 정죄합니다. 그 질병들은 사람들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주님. 그렇게 하시리라고 마음으로 믿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질병을 치유해 주옵소서. 물을 얻으려고 반석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손을 든 사람들을 구원해 주옵소서. 하나님, 그들이 오늘 몹시 목마르게 하옵소서. 그들 주위에 소금기 있는 삶이 있게 하셔서, 그 삶이 그들을 그리스도께 목마르게 하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아버지, 오늘 저녁에도 우리와 함께하옵소서. 오 하나님, 이 질문들을 통해 사람들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하옵소서. 그들의 마음에 아무것도 없다면, 주님, 오늘 저녁 그들의 마음에 전할 말씀을 제게 주옵소서.
우리 네빌 형제님과 그분의 아내와 가족, 우리의 작은 교회, 이사들과 집사들과 교인들,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주님의 몸을 축복하옵소서. 아버지, 우리와 함께하옵소서. 이것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시온으로, 우리는 시온을 향해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으로. 이제 정말로, 참으로 그분께 이 찬송을 부릅시다. 아시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다 함께 와서 우리의 기쁨을 알립시다. 감미로운 화음의 노래에 함께합시다. 감미로운 화음의 노래에 함께합시다. 그렇게 왕좌를 둘러쌉시다. 그렇게 왕좌를 둘러쌉시다. 이제 마음을 숙이고 부릅시다. 우리는 시온으로 행진합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온으로. 우리는 시온을 향해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