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여러분의 부활은 여러분 안에, 여러분의 영 안에 있습니다. 자,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혼이 지옥으로 내려가, 감옥에 있는 혼들, 곧 노아의 날들에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동안에도 회개하지 않았던 혼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의 몸은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죽으시기 전에 그분은 자신의 영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 손에…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겼나이다.” 그러니까 영은 하나님께로 갔고, 그분의 혼은 지옥으로 갔으며, 그분의 몸은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분 안에 계셨던 그 영은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그 영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는 복음을 통해서 전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사흘이 차기 전에는 돌아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영이 어떤 가림막 뒤에, 이를테면 이런 장벽 뒤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장벽을 넘어오실 수 없었습니다.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무덤에 누워 계셔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흘 낮과 밤이 지나기 전에는 돌아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흘 낮과 밤이 지나자 그분의 영이 풀려났습니다. 그 영은 곧바로 그분의 혼에게 갔고, 그분의 혼은 돌아와 몸을 다시 취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내게는 내 생명을 내놓을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있노라. 내게 권능이 있노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권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 안에 계신 바로 그 영, 오늘 아침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 바로 그 성령께서 여러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자신을 다시 일으킬 권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여러분의 혼은 곧바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단 아래로 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하나님께로 가겠지만, 여러분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그들의 혼이 제단 아래에서 “주여, 얼마나 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부르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돌아오실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도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고, 모든 고난이 끝나고, 형제들이 같은 고난을 겪거나, 우리가 그들이 겪은 것과 같은 고난을 겪고 나면, 그날에… 여러분은 자신이 어디에 묻혔는지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풀려나 혼에게 올 것입니다.
혼은 나의 한 부분으로서 알고 이해하는 부분, 여러분의 지성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보았던 환상, 아니 잠시 옮겨져 갔던 일, 그곳에 가서 그 사람들을 보았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자, 여러분의 영은 그 몸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몸, 그 혼은… 먹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몸입니다. 땅에 있는 이 장막이 해체되면 우리에게는 이미 기다리고 있는 몸, 곧 하늘에 속한 몸이 있습니다. 그 영과 혼과 하늘에 속한 몸으로, 여러분은 그 위대한 천년왕국을 위해 이 육신의 몸을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는 그렇게 할 권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그 권능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작고 연약한 부분이 따로 있고, 크고 강력한 부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주 작은 손길도 전능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주 작은 손길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아십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이 믿음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전에는 이 아래의 더러운 진창 속에서 온갖 더러움과 죄와 술과 도박과 세상 것들에 묻혀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믿자마자, 여러분은 그런 것들 위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기 위에서, 그 모든 것 위에서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오셨을 때, 그런 죄의 생활 위로 올라서게 할 권능을 주시는 성령을 믿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치유에까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믿음을 더 갖는 것뿐입니다. 계속 밖으로 밀어내십시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아프고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바로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그 치유의 권능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게 하십시오. 그러면 죄 위로 올라설 믿음을 얻게 됩니다. 믿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여정에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지금 바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좋은 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분명히 이해되십니까?
어젯밤 빌리가 제게 말했습니다… 전화를 해서 오늘 아침에 특별히 한 분 때문에 와 달라고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가 일곱 봉인에 관한 예배를 드리는 줄 알고 오신 분인데, 아픈 아이를 데려왔다고 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지금 여기 계신다면 기억하십시오. 선생님은 할 수가… 그 아이가 어린 아기라면 선생님의 믿음이 그 아이를 위해 역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성경 말씀을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복음서에서 우리가 읽는 말씀인데, 사도행전 16장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점치는 소녀에게서 마귀의 영을 쫓아냈기 때문에 매를 맞았습니다. 소녀의 주인들은 그 일로 화가 나서 그들을 때리고 가장 안쪽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셔서 감옥을 흔들어 무너뜨리셨습니다.
빌립보 간수는 백부장이었는데, 자기 죄수들을 놓치면… 어쨌든 죄수들 때문에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가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달려 나와 말했습니다. “네 몸을 해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이 백부장은 바울과 그 일행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찬송을 불렀을 수도 있고, 간증을 하거나 다른 어떤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었든, 사람들은 그들이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간수가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그러자 바울이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말은 그 사람의 구원이 그 집안을 구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게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자기 집안을 위해서도 그와 똑같은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 집안도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같은 것입니다. 욥이 그랬던 것과 같습니다. 제가 며칠 전 밤 조지아의 집회에서 말씀드렸지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녀들이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하지?’” 욥이 의롭게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였습니다.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번제 헌물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죄를 지었다면, 그들은 그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한 일은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생각이 깊은 아버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런 아버지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욥은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비극이 닥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모두 죽고, 양들도 모두 죽고, 가진 것을 전부 빼앗기자, 그는 집 뒤 잿더미 위에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눈여겨보셨습니까? 그 비극의 날들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시작하셨을 때, 그에게 소가 만 마리든 그 밖에 무엇이 있었든, 하나님께서는 두 배로 돌려주셨습니다. 양도 두 배로, 모든 것을 두 배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일곱 자녀도 주셨습니다. 앞서 있던 자녀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번제 헌물이 그들을 대신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아 영광 가운데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아시겠습니까? 욥이 의롭게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의롭게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도 하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치유를 받으며, 믿음으로 여러분이 구하는 모든 것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여러분의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자, 선생님, 기도받게 하려고 아기를 데려오셨다면 선생님 자신이 믿으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믿음에 제 믿음을 합치려고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아기를 고쳐 주실 것을 함께 믿겠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안에는 그렇게 할 권능이 있습니다. 선생님 안에 그렇게 할 권능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렇게 할 권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저…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그 권능은 어떤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중력이 물을 지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중력이 물을 지배합니다. 해는 지구의 지배를, 지구의 회전의 지배를 받습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해를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자야겠어. 한 시간만 기다려.” 하고 말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법칙에 맞추어 행동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입니다. 제때 잠자리에 들면 제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 위쪽에는 호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온타리오호와 휴런호, 그리고 이 위쪽에 있는 오대호가 있습니다. 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에는 수만 에이커의 수천 배나 되는 땅이 그 물을 애타게 기다리며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랄 땅입니다. 이 위쪽에 있는 물만 저쪽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거기서 온 세상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쪽 호수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샘에서 물이 솟아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이 빠져나가자마자 수위가 다시 원래대로 올라옵니다. 중력이 그곳에 물을 붙들어 두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이 중력의 법칙에 맞추어 일할 수 있다면, 이 오대호의 물을 모두 이용하여 저 지역 전체에 물을 대고 온 세상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아무도 굶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앉아서 “그래, 알겠어. 물론이지.” 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가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믿음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병이든 고치고 어떤 일이든 할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법칙의 지배를 받는데, 그 법칙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을 수 있다면 그것들을 받을 수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주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어떤 이에게는 이런 믿음을, 다른 이에게는 다른 믿음을 나누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갖게 되는 것이 무슨 굉장한 초자연적 권능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이미 권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권능을 행사할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기도받으러 나오실 때 성경이 이렇게 말씀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참된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입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으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를 것이요, 그들은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여러분이 믿으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치유는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 자신의 믿음에 거슬러 그들을 고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다고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다. 네가 믿을 수 있다면 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치유의 권능이 다른 어떤 전도자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의 권능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앞뒤를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치유할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할 권능을 가지신 분은 성령이시고, 여러분에게는 성령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작은 나무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마시기 시작하십시오. “그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여기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자, 무엇입니까…?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제가 저 밖에 그 작은 나무를 심었을 때, 사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작은 나무는 사과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저 마시기 시작하고, 계속 밀어내고 또 밀어냅니다. 이렇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어. 얼마 후면 밖으로 내놓을 거야. 시간을 조금만 줘. 조금만 기다려 줘.” (나무는 계속 마십니다.) “사과가 내 안에 있다는 걸 알아. 조금 있으면 사과를 맺을 거야.” 그러다가 어느새 사과가 나옵니다. 사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고치실 성령의 권능이 여러분 안에 있음을 믿는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계속 밀어내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결과를 당장 볼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 보십시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고 했고,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를 놓고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말한 것은… 아니, 바울이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 보신 것이었고, 야고보가 말한 것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서 본 것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기가 오기 전부터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아기가 올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그것을 하나님께 입증했습니다.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태는 죽었고 그도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안 어딘가에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계속 그 약속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엘 샤다이, 그 젖가슴에 기대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알면서 거기 기대어 마셨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약속에 기대어 그대로 붙들고 있읍시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도받기를 원하시는 병든 분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으로 줄을 서십시오. 장로님을 이리 모셔 와서 그분들에게 기름을 바르시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낫게 해 주실 것을 믿겠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테디, 어디 있습니까?) 이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십시오. 좋습니다. (“믿기만 하라”를 연주해 주십시오.) 그분들이 나오시는 동안 나머지 회중은 고개를 숙이고, 나오시는 이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아침 이토록 무섭고 참담한 형편에 처해 병들고 고통받는 이 불쌍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데려옵니다.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참으로 참됩니다. 그 말씀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고 영원무궁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전능합니다.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주님, 우리는 온 마음으로, 온 혼으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권능이 자신들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구원받았습니다. 그들은 나아와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고, 이 성경, 사도행전 2장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정확히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아버지, 병든 이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똑같이 참되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시리라.” 하나님, 오늘 아침 이곳 제단 주위에서 각 사람이 떠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셨다는 것을 알고 참으로 행복하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가서 온전해지게 하옵소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주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치유받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부르게 하옵소서. 결과가 어떻든 그것은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결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이미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하나님, 그것이 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하옵소서. 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의 겸손한 종으로서 다른 종들과 함께 여기 서려고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병든 사람들을 우리 마음에 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누군가 에스틀 빌러 형제님께서 건물 안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기도를 인도해 주신 다른 목사님도 여기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목사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원하시면 이 앞으로 오셔서 저와 함께 이 제단 주위에 서 주시겠습니까? 이 형제님들 말입니다. 빌러 형제님, 감사합니다. 바로 올라오셔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분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할 수 있도록 제단 주위에 서 주십시오. 이 찬송이 연주되고, 목사님들이 각자 사람들에게 안수할 수 있도록 여기 자리를 잡으시는 동안,
저기 산을 가로질러 내려오시는 모습을 봅시다. 한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셨습니다. 체구는 좀 작고 다소 연약해 보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내려다보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분의 눈길이 골짜기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으로 향합니다.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뇌전증을 앓는 소년이 있었고, 그들은 틀림없이 “주님, 고쳐 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주님, 고쳐 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하고 말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 “주님, 고쳐 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라는 말 뒤에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할 수 있다면, 온 마음으로 믿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치유받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이 그것을 참으로 깨닫게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자, 거기 서 있는 제자들을 보십시오. 어쩌면 아이를 흔들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형제여, 믿으십시오. 믿으십시오! 할렐루야, 믿으십시오! 주님, 고쳐 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를 믿게 할 만큼 충분한 믿음을 거기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분이 언덕을 가로질러 내려오십니다. 곧 그 마귀는 그분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불명확한 말] 그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처럼 사랑으로 와서, 우리가 가라는 사명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불명확한 말]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그 아버지에게 걸어가셨습니다. 저는 이 찬송이 여기서 나온 것, 이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주님, 제 아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귀에게 심하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것이 아이를 불 속에 던지고, 아이는 쇠약해지고…” 하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주의 제자들에게 아이를 데려왔지만 그들은 고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다. 자, 내 안에는 이것을 할 권능이 있다. 네가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여기에 앉아 있는, 암에 시달리는 이 사람들, 암과 백혈병과 질병과 고통으로 몸져누운 사람들은 고쳐 주시면서 여러분은 그냥 지나치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모든 것이 가능하니, 믿기만 하라. 이제 그저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믿기만 하라. (모두 기도하십시오.) 주님, 기도하오니 긍휼을 베푸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사람들을 고쳐 주옵소서. [녹음 중단] 줄에 선 많은 분들, 그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행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어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한 그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으면 치유받을 것이라고 믿는 데까지 이른 뒤에, 그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십시오.
오늘 아침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해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잠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기 제단 곁에 서 있던 가톨릭 신자인 젊은 여성에 관한 일입니다. 며칠 전 그분이 남편과 함께 제 집에 왔습니다. 저는 남편만 얼마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인 면담을 하며 앉아 있는 동안 뭔가… (우리는 그때 환상을 봅니다. 그때 우리는… 전에는 여기 교회에서 그렇게 했지만, 그러다 보니 오전 시간을 다 써 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젊은 여성이기도 하고, 또 늘 가톨릭 교회에서 자라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 어머니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저는 그 어머니에 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주고, 그것을 설명했으며, 어머니의 생김새도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분이 판단할 일이었습니다. 저는 평생 그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도 그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그 젊은 여성이 오늘 아침 이 제단으로 나와 서서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아침 이 제단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네빌 형제님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분에게 기름을 발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십시오.) 병든 사람에게 하듯 기름을 발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은 실제로 아픈 것이 아니었지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제대로 이루어지게 되는지 보이십니까? 그분은 우리가 믿기에 그리스도인이 된 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어요? 어머니가 편찮으세요.” 바로 그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기름부음의 기름이 발라졌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것이 얼마나 적절한지 깨달았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막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를 대신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십니다. 이 젊은 여성도 그리스도인이 되자마자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서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저는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자, 기억합시다…
이제 이 젊은 여성에게, (여기 어딘가 계십니다.) 그리고 찾아오신 또 다른 가톨릭 신자 여성에게, 예배를 우리 목사님께 넘겨 드리기 전에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런 말씀입니다. 가톨릭 교회도 한때는 이 교회와 같았습니다. 돌아가 성경을 읽어 보시면… 우리는 가톨릭 교회가 최초의 교회였다고 믿으며, 또 그것을 압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자신이 가르치던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이것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교황 등이 쓴 다른 책이 육백몇 권이나 있는데, 그들은 그 책들을 이 성경만큼 거룩하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한 일은 그저 회심한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여러분이…
물론, 제 생각에는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오늘 아침 그 두 분은 여성이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가톨릭 신자인 남성도 있을지 모릅니다. 교회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신다면, 신부님께 이렇게 물어보실 수도 있겠지요. “여기 성경에 나오는 이 사도들의 행동, 이것이 그 방식이었습니까… 이것이 초기 가톨릭이었습니까?” 그러면 “그렇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초기 가톨릭이었습니다. 자, 그들은… 그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작고 소박한 곳에서 모였습니다. “성모송”이나 “주님의 기도”를 외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하나님…”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었습니다.
여기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거룩한 사도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 모두가 함께 모여 있었을 때, 성경은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고 소리를 질렀으며, 영으로 충만하여 심지어 술 취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말합니다. 바깥 세상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다 술 취한 것 아니냐?” 하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사도 베드로, 거룩한 성인 베드로도 일어나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이 사람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영으로 충만한 것이다. 성경이 그들에 대해 말한 대로다.” 자, 가르침에 따르면 그것이 초기 가톨릭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약 이백 년이 지나자 지체 높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서기 606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최초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니케아 공의회가 로마의 니케아에서 열렸을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교회를 조직하고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 네다섯 번 갈라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기서 주교로, 주교에서 교황으로 넘어갔고, 거기서 그리스 정교회와 여러 다른 교회들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갈라져 오늘날 우리가 보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온갖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인 제 친구 여러분, 우리가 하려는 일은… 보십시오. 우리도 가톨릭입니다. 우리는 맨 처음 시작된 초기의 가톨릭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부르는 이름은, 대개 오순절교입니다. 우리가 오순절의 복을 믿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조직된 곳도 바로 거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오순절 교단들도, 이 세상이 오백 년 더 존속한다면, 이 오순절 교단은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 교회보다 더 형식적이 될 것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직을 만들 때 그것을 친목 단체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저 친목 단체와 회원들과 회심하지 않은 혼들이 되고 맙니다. 저의 귀하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제가 전에는 이 교회에서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말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 주님의 선지자로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빛입니다. 그 빛 가운데서 걸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