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조금 전 병원을 나설 때까지도, 저는 그 일을 주님 손에 맡겨 두었습니다. 만약에... 감기에 걸려 목이 조금 쉰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제가 올 수 있을 만큼 괜찮으시면, 다시 내려와 여러분과 교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처럼 누워 계신 분을 보면, 여기 계신 다른 어머니들과 아버지들도... 우리 모두 그 자리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어머니께서 떠날 준비가 되어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저 뒤에 윌슨 자매님이 보였던 것 같고, 소스먼 형제님과 자매님도 아마 이 건물 안 어디엔가 계실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 여러 분이 밤에 어머니 곁을 지켜 주시겠다며 이런저런 도움을 자청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의리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해 주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가족들이 지쳤습니다. 매일 밤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대부분 일을 하고 있어서, 미다와 저, 아니면 덜로리스가 맡고 있는데, 덜로리스에게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어 사람이 나누어 맡으니 조금 힘들고, 아주 지치게 됩니다. 거의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낮과 밤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미다와 저 정도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조금 나이가 들고 나면 며칠 밤만 새워도 지치고 맙니다.
예전에는 밤낮없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낡은 포드 모델 T를 몰고 캘리포니아에서 오곤 했는데, 길에서 조금 졸리기도 했습니다. 오는 데 나흘이나 닷새, 어쩌면 이레가 걸렸습니다. 밤낮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조금 피곤해지면 초원으로 차를 몰고 나가 차 밑에 담요를 깔고 두어 시간 잔 다음 다시 출발했습니다. 네빌 형제님, 그때와 비교하면 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이제 겨우 스물다섯을 넘겼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오늘 저녁 주님의 집에 와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기 조금... 적어 둔 것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제가... 주님께서 제게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기회가 되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그것에 관해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질문들을 다루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서, 어머니께서 좀 나아지시면 그것이 제가 오늘 저녁 다시 내려오라는 표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빌 형제님의 일정에 지장을 드리지 않는다면, 오늘 저녁 잠깐 말씀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방에 서 있다가, 오늘 저녁 우리와 함께 계신 한 그리스도인 자매님에 관한 놀라운 간증을 막 들었습니다. 그분은 오늘 아침 기도 줄에 서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분 방에는, 어두운 방인데, 주의 만찬, 주님의 마지막 만찬 그림이 있습니다. 어느 쪽에서도 햇빛이 들어올 수 없는 방입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 세 시에, 우리가 교회 시대들에 관한 설교를 마쳤을 때 여기 나타났던 그 빛의 광채가, 다만 좀 더 무지개 같은 빛깔로 주 예수님의 머리 바로 위에 나타났습니다. 자매님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자기 자매에게 알렸습니다. 제가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둘이 와서 한 시간쯤, 오랫동안 놀라워하며 바라보았답니다. 그러고는 이웃에 있는 목사님을 불러 그 현상을 보게 했는데, 여기 계신 스트리커 형제님이셨습니다. 그분들은 앉아서 다섯 시쯤까지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했지만, 그분은 도무지 기도를 할 수 없는 느낌이 드셨든지 했답니다.
조금 후에 누군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분들은 그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신들의 해석을 말하고 있었는데, 메시지를 통해 말씀이 다시 임하여, 그들이 잘못 해석했으며 바르게 풀이하지 못했다고 했답니다. 제 말이 맞지요, 브루스 자매님? 바르게 풀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표적은, 그분들이 이 태버내클에서 나가는 메시지를 믿은 데 대하여 일종의 감사의 뜻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이보다 더 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천사들이 올라가는...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까지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으며 마지막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런 말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섭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저는 우리가 이때에 살고 있는 것이 기쁩니다. 우리가 끝에 와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한번은 집회에서 그렇게 말했더니, 어떤 분이 저와 이야기하며 물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 끝이 와도 기쁘시겠다는 말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세상 끝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니,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세상 끝에,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제가 뵙고 싶은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어느 날엔가 이 낡은 삶의 일들이 끝나고 우리가 그분을 뵙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저 아래... 아, 아주 오래전 노예 제도가 있던 시절에, 나이 든 흑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전 교회 찬송 모임, 시골 찬송 모임을 갖곤 했습니다. 함께 모이면... 노예들 가운데 있던 목사가 설교를 하고, 그렇게 집회를 가졌습니다. 어느 날 밤 그곳의 한 노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자, 이제 자신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농장에서 다른 노예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자유롭네.” 그러자 주인이 와서 그를 불렀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이보게, 샘. 자네가 자유롭다고 노예들에게 말하고 다닌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가 말했습니다. “예, 주인님. 사실입니다. 어젯밤 집회에서 저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 제가 거기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거기에 매여 있었지만, 이제는 거기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아시겠죠? 오늘 아침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망은 오직 죄 안에 거합니다. 죄와 사망은 같습니다. 하지만 죄에서 벗어나면 사망에서도 벗어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동안에는 사망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그러면 자유로운 것입니다. 주인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샘, 정말 진심인가?”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어젯밤 저를 부르셨습니다. 제 동족에게 이야기하고, 그들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노예지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는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 “샘, 정말 진심인가?” 그가 말했습니다. “주인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나면 저를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샘, 나도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지 않나. 하나님께서 자네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롭게 하셨고, 자네가 그리스도인이며, 형제들에게 그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내가 오늘 아침 내려가 자네를 해방시키고 해방 증서에 서명하겠네. 그러면 자네는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네.”
그 노인은 여러 해 동안, 참으로 오랫동안 설교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후에... 우리 모두 그렇듯이, 우리 인생길의 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그가 자기 길의 끝에 이르렀을 때, 의식 없이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아, 여러 시간 동안이었을 겁니다. 그의 백인 형제들 여럿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깨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마침 그들 몇 사람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아직 저쪽에 간 게 아니란 말인가요?” 그들이 말했습니다. “샘, 잠들어 계셨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았어요. 저편에 다녀왔습니다.” 목사 형제들이 말했습니다. “샘, 저편에서 무엇을 보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커다랗고 진주처럼 하얀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왕좌가 보이고 그분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다가와서 묻더군요. ‘그대가 샘인가?’”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샘, 여기 옷과 왕관이 있네. 샘, 자네가 땅에서 행한 큰일들로 이것을 얻었네.” 그가 말했습니다. “제게 상으로 옷과 왕관을 주겠다는 말씀은 마십시오.” 천사가 물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상으로 받고 싶은가?” 그가 말했습니다. “그저 천 년 동안 그분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옷이나 왕관이나 궁궐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저 그분을 바라보며, 그저... 여러분도 아시지요. 여러분도 그러고 싶지 않으십니까...? 네빌 형제님, 그렇게 그분을 바라보면서 형제님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함께 바라보며 말할 수 있겠지요. “네빌 형제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태버내클에서 지냈지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분을 보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저 그분을 바라보며 그 얼굴 모습을 뵙는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제 삶에서 두 번, 이제는 세 번, 저는 환상 가운데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화가도 그분을 그릴 수는 없습니다. 그분과 비슷한 무언가를 그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분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세상이 끝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우셔서, 도무지... 화가의 붓으로 담아내기에는 그분께 너무나 많은 면모가 있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꼭 그분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 귀한 두 손을 내미시고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주 생각했습니다. 여행으로 지치고 피곤하셔서 그 얼굴에 피로와 고단함이 어린 채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라.” 그 말씀을 직접 들었으면 좋았겠습니다. 저는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곁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잘하였도다. 나의 선하고 신실한 종아, 이제 주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시는 날에는 제가 그들 곁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 바울과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모든 사도들, 그 귀한 형제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든,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든,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셔서 앞일을 보고 기록하게 하시고, 또 성경의 은사들, 예언과 방언과 표적들과 이적들 같은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어디에 있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같은 일들을 행하십니다. 이제는 “그럴 것 같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실제로 임재해 계시고, 그것이 사실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오늘 오후에 연세가 많은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든여덟이나 여든아홉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그리스도인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평소 일요일에 입는 양복만 입고 계실 때,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드렸습니다. 여기 물속으로 모셨습니다. 우드 형제님이 바지인가를 빌려드렸던 것 같은데, 여기 물에서 침례를 드렸습니다. 그분은 지금 상당히 부유하십니다만, 소년 시절에는... 소년 시절에는 한 달에 삼십 달러를 받고 일했다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결혼하셨습니다. 그분은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늙어서 구걸하거나 길에 누워 지내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고, 조금씩 아낀 오 센트짜리 동전 같은 것을 어떻게 굴렸는지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돈이 실제로 일을 해서 불어나고, 그렇게 재산을... 이제 그분은 여든 몇 살, 여든여덟이나 여든아홉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흔이 다 되었는데도 여전히 걸어 다니시고, 오늘 아침에는 바로 여기 교회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마련해 두셨습니다. 백 년을 더 사신다고 해도 재정 같은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씨 좋은 훌륭한 형제님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할 줄 아는 일은 무엇이든 해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귀한 형제님, 그 모든 것에 더하여, 형제님이 여든여덟이나 여든일곱이셨을 때 하나님께서 긍휼로 손을 내미셔서, 천국의 집으로 갈 영생까지 주셨습니다.”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데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을 수 있었던 모든 재산, 땅에서 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이 무엇이든, 사람이 무슨 일을 했든, 죽을 때는 그 모든 것을 남겨 두고 가야 합니다. 그토록 빨리 썩어 없어지는 이 세상의 헛된 재물을 탐하지 말고,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드십시오.” 저는 그 찬송을 좋아합니다. 예전에 이 태버내클에서 참 많이 불렀습니다. 세월은 빠른 변화로 가득하고, 땅의 어떤 것도 변함없이 서 있을 수 없으니,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드십시오.
오늘 밤 저기 제 늙으신 어머니가 누워 계십니다. 제게 일억 달러가 있다면, 어머니와 한 시간 이야기하기 위해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물론이지요. 어머니께 일억 달러가 있다 한들, 지금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어머니께 있는 것은... 땅의 보물을 남기지는 않으십니다. 하지만 이것을 남기십니다.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알고 계십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사실 앞에서 오늘 저녁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봅시다. 기도하기 전에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오늘 저녁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상태로 서 있는가?” 우리 마음을 살펴 확인해 봅시다. “주님, 제가 오늘 어떤 혼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한 사람의 발걸음이라도 잘못된 길로 가게 했다면, 제가 행하거나 말한 것 가운데 무엇이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오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아시겠죠? 제 믿음은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이시여, 거룩한 구주이시여. 이제 제가 기도할 때 들으시고, 제 모든 죄책을 없애 주시며, 오늘부터 제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삶의 어두운 미로를 걷고, 슬픔이 제 주위에 퍼질 때, 주님, 저를 인도하소서. 어둠이 낮으로 변하게 하시고, 슬픔에서 오는 두려움을 씻어 주시며, 제가 결코 주님 곁을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를 그 길에 머물게 하소서. 주님의 뜻 한가운데 머물게 하소서. 젊든 늙든 말입니다. 여러분의 나이가 얼마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든 살이라 해도, 아침까지 사신다면 열여섯 살 소년 소녀들 여럿보다 더 오래 사시는 것입니다. 내일 아침 날이 밝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러 갈 열여섯 살 소년 소녀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고개를 숙여 기도하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합시다.
오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시며 경외받으실 생명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저희가 주님 앞에 나와 오늘 저녁 여기 앉아 있을 특권을 주신 데 대해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병원을 오가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피를 흘리며 울고 있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제정신이 아닌 채 침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그들 모두가 준비되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혹 이 삶을 떠나게 되더라도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여기 있는 저희 각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희를 살려 두셔서 오늘 저녁 다시 함께 모여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지금 그런 생각들이 저희 마음과 생각을 스쳐 갑니다. 주님께서 저희 마음 깊은 곳을 살피실 때, 저희에게 부정한 것이 있다면, 주님, 없애 주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저희 혼을 주님께 바쳐 거룩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앞으로 행하시리라고 저희가 믿는 일들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기 브루스 자매님의 집에 그 빛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그분들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주님, 이제 오늘 저녁 이 태버내클에 임재하신 주님 앞에서 저희 혼이 계속 새 힘을 얻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태버내클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곳의 목사님, 네빌 형제님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겸손한 분이며 정직한 분이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분입니다. 그분과 사랑스러운 아내와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들이 이 땅에서 오래도록 저희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허락하소서. 질병이 그 집 문에 다가오지 못하게 하시고 건강을 지켜 주소서. 주님, 저희 모든 집의 문에서 질병을 멀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건강을 지켜 주소서.
이제 저희 혼을 제단 위에 올려놓사오니 살펴 주십시오.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잠시 후 눈을 떠 주님의 말씀을 읽고, 오늘 저녁 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빵을 떼어 주려는 일이 제 몫으로 주어졌습니다. 주님, 오늘 저녁 여기 있는 가엾고 지친 혼에게 도움이 될 말을 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바로잡아 주는 말씀이 되게 하셔서, 저희가 천국을 집으로 삼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그리고 질병을 고쳐 주소서. 주님, 저희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다면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친 이들에게 힘을 주소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교회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와 간구를 드리는 온 세상의 다른 교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주 예수님, 오소서, 오소서!” 하고 부르짖는 수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 주님, 언젠가 반드시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오실 것입니다. 그 오심이...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잠드는 것이 저희 몫이라면,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을 저희는 압니다. 저희가 나와서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를 감사드리며 그때를 기다립니다. 이제 저희 마음을 준비시켜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저녁에는 길게 말씀드릴 생각이 아닙니다. 이 작은 주제에 관해 아마 삼십 분이나 사십 분쯤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시편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시편 105편, 15절까지 읽겠습니다. 제가 이 시편을 읽는 동안 말씀 낭독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 주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백성들 가운데 알릴지어다. 그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백성들 가운데 알릴지어다. 그분께 노래하며 그분께 시로 노래하고 너희는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말할지어다. 너희는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라. 그들의... 주를 구하는 자들의 마음은 기뻐할지어다. 주와 그분의 능력을 구하라. 항상 그분의 얼굴을 구할지어다. 그분께서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과 그분의 이적들과 그분 입의 판단의 규범들을 기억할지어다. 오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씨야, 그분의 택하신 자들인 야곱의 자손아. 그분은 주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판단의 규범들이 온 땅에 있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언약 곧 친히 천대에 이르기까지 명령하신 그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 언약은 그분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것이며 이삭에게 하신 그분의 맹세라. 그분께서 바로 그것을 야곱에게 법으로 확정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영존하는 언약으로 확정하셨나니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 곧 너희의 상속재산 몫을 네게 주리라, 하셨도다. 그때에 그들은 수적으로 단지 몇 사람에 불과하고 참으로 아주 소수였으며 그 땅에서 나그네였고 그때에 그들이 한 민족에게서 다른 민족에게로, 한 왕국에서 다른 왕국으로 갔도다... 그분께서는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부당하게 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참으로 그들로 인해 왕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게 손을 대지 말고 나의 대언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하셨도다.
저는 이 말씀에서 “존중”이라는 주제를 택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주님께 부르짖는 것을 읽어 보면, 존중은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기 계신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이것을 깊이 새겨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적었을 때, 아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두고 말한 것 같습니다만, 사람이 아주 적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민족들과 왕들을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들과 왕들을 꾸짖으시며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게 손을 대지 말고 나의 대언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전체 일의 결론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존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분께 존중과 경외를 표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어떤 일로든 그분을 언짢게 해 드릴까 두려워하고, 잘못된 일을 하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그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두려워합니다. 아내를 두려워합니다. 교회를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종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어디선가 그들의 길에 걸림돌을 놓게 될까 해서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할까 해서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에게는...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 전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두려움이 그것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농부이거나 공장 노동자라고 합시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경찰관이 되어 거리를 걸어오게 해 보십시오. 배지를 달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되면, 전날에는 말도 걸지 않았을 사람이 “여보게, 존! 잘 지내나?” 하고 인사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그 직책 때문에 일종의 경외심, 두려움,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가 시장으로 당선되든지, 아니면...
오늘 저녁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지금과 똑같은 사람이지만, 여기 아래 콜게이트에서 일주일에 사십 달러를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라면 어떻겠습니까? 아시겠죠? 그가 이 도시를 지나가도 아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에 존중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존중받아 마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존중해야 하고 그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이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모든 종에 대해 그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들이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분이 자신의 말씀으로 그 종들을 입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이 종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시고, 그 종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이루심으로 그들이 종임을 입증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종을 존중하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존중하고 여러분이 저를 존중하며 우리가 서로 존중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너희가 이들 곧 나의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하였으므로 내게 하였느니라. 그들 중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연자방아 맷돌이 너희 목에 달린 채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나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보라,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우리는 그들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일부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누가 그분의 자녀인지 보여 주십니다. 이적들과 표적들로, 실제로 행하시는 일로 보여 주십니다.
이제 시작하여 이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 사람을 든다면 저는... 잠시 노아를 생각해 봅시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에게서 온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어긋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주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웃는 자들과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도 그때와 같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비웃는 자들은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그가 방주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비웃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의 설교를 따라 그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땅에 그분의 심판들을 보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려는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피할 방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습니다. 긍휼 아니면 심판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하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든지 그분의 심판들을 당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것을 피해 갈 길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피할 길을 마련하십니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은 심판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러기를 바라셔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자기들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저녁 우리도 똑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피할 길을 택할 수도 있고, 그분의 심판들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피할 길을 택하신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 피할 길을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심판 아래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크고 능력 있는 선지자입니다. 백성, 곧 이스라엘은 성경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여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시리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을 준비시켜 이집트로 보내셨을 때, 그들은 그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내쫓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같이 우리를 죽이려 하느냐?” 그 때문에 그들은 사십 년을 더 속박 가운데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구출하러 온 구출자를 존중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속박 가운데 머문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다시 속박 가운데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머물기를 원하셔서가 아니었습니다. 때는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피할 길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사십 년을 더 머물렀습니다. 오늘 저녁의 문제도 바로 그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똑같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빠져나올 길을 거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셨고 자신의 언약으로 아브라함과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읽은 것처럼 다윗이 그것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을 데리고 나오실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거의 한 세대가 더 죽어 갔을 것입니다. 모세를 비웃고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옛 세대, 그 세대가 사십 년 동안 죽어 갔고, 모세는 다른 세대를 맞았습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가 죽어 없어지게 두시고, 다른 세대를 일으켜 그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일어난 세대를 보면, 모세가 자신을 입증하러 그곳에 내려갔을 때...
아시다시피 모세는 다시 내려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모세는 이제 여든 살이었고, 떠난 지 사십 년이 되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할 때 그가 물었습니다. “누가 저를 보냈다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께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물었습니다. “누가 저를 보냈다고 말하리이까? 제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셨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누구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이라고 말하리이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하라.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그들에게 말하라.”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막대기이니이다.” 그것을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손을 품에 넣자 나병이 생겼고, 다시 넣으니 나았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려가 이 표적들을 백성 앞에서 행하라. 그러면 입증이 되리라. 이 표적들을 보고 내가 구출을 위해 너를 보냈다는 것을 그들이 알리라.” 오, 형제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초자연적인 표적들을 주십니다. 아시겠죠?
그가 내려가 백성을 불러 그들 앞에서 표적들을 행하자, 온 이스라엘이 믿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구출을 받으려고 곧장 왕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기로 했고,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에게 심판을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그 모든 표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도 홍해에 이르러서는, 바로 그 모든 표적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여기 홍해 앞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분께서 피할 길을 마련하실 수 있는지를 의심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는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작은 병이 들거나, 작은 재난이나 작은 문제가 도중 어디에선가 닥치면, 우리는 곧 물러서기 시작합니다. 새로 회심한 사람을 누군가 조롱하며 말합니다. “너는 그저 종교에 미쳐 날뛰는 사람일 뿐이야.” “나는 종교에 미쳐 날뛰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은데.” 아시겠죠? 바로 그러는 것입니다. 그 의심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때가 굳게 서 있어야 할 때입니다! 그때가 사자를 존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너희 앞에서 이것들을, 열 가지 기적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 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는데, 이제 바다 앞에서 두려워하느냐? 참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믿겠느냐?” 그는 뒤로 가서 지팡이를 들고 바다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폭풍이 내려와 바닷물을 건너편으로 밀어냈고, 그들이 건넜습니다. 건너가자마자 그들은 곧 빵이 없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죠, 똑같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늘에서 빵을 비처럼 내려 주셨습니다. 그다음에는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불평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니...
여러분은 “글쎄요, 그들은 회심하지 않은 부류였을지도 모르지요”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부류가 섞인 무리가 함께 갔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한 가지 더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셨고,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임을 표적들로 입증하셨다면, 그 사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자에게 순종하고 그 사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세 곁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그들도 함께했습니다. 모세가 옳든 그르든, 어쨌든 그들은 그와 함께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선지자인 미리암과 대제사장 아론까지도 모세의 아내가 에티오피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결혼할 여자가 충분하지 않았나? 굳이 거기까지 내려가 저 여자와 결혼해야 했나?” 그것은 모세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위해 하신 선택이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조롱하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셔서, 여선지자 미리암, 모세의 친누나의 온몸에 나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여선지자인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사자, 그 시대의 언약의 사자를 조롱하고 공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불경했습니다. 대제사장이며 바로 모세의 대변자였던 아론도, 그렇습니다, 그녀 편에 서 있었습니다. 아론은 누나가 나병에 걸린 것을 보고 들어가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네 친누나가 죽게 내버려 두겠느냐?” 모세는 성막으로 들어가 주님 앞에 엎드려 울며, 누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영께서 내려와 말씀하셨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을 불러 내 앞 여기 서게 하라.” 오,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시면,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공경하십시오. 사람들이 종교에 미쳐 날뛰는 무리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여러분은 존중하십시오!
미리암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리암을 부르고 모세를... 아니, 아론을 여기 불러라. 네 형과 누나를 내 앞에 서게 하라.”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대제사장과 여선지자 미리암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그에게 나를 알리리라. 그가 영적인 사람이거나 선지자이면, 내가 환상 가운데 그에게 말하고 꿈으로 나를 나타내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에게는 내가 입술로 그의 귀에 직접 말하노라.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바꾸어 말하면 “너희가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모세를 존중하지 못한다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서 그가 내 종임을 입증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를 조금도 공경하지 않는구나.”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존중도 없고 공경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병이 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이유가 그것이다. 이 사람이 내 종임을 너희가 알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를 거슬러 무슨 말을 하면, 나를 거슬러 말하는 것이다.”
모세는 그녀의 생명을 살려 주시기를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 후로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나병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정결하게 되는 동안, 나병에서 다시 깨끗하게 되는 동안 이레 동안 진 밖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깨닫게 하려 하신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행하는 일을 존중해야 한다.” 그 당시 하나님의 태도가 그러하셨고 하나님께서 변하실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존중하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을 존중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가... 여기 시장에서 청소하며 생계를 잇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몸이 무너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루터교 신자인데, 교회에서 성만찬이 있었습니다. 교회까지 걸어갈 수 없어서 택시를 탔다고 합니다. 가는 데 팔십 센트, 오는 데 팔십 센트가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웃은 아주 불경건한 사람으로, 어느 날 아침 그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조롱했습니다. 그 이웃이 이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택시를 타고 어디 갔소?” 그가 말했습니다. “성만찬이 있어서 교회에 갔소.” 이웃이 물었습니다. “성만찬이 뭐요?” 그가 말했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오.” 이웃이 말했습니다. “나도 오늘 아침 식탁에서 했소. 흰빵 한 조각과 위스키 한 파인트로 말이오.” 아시겠죠?
한번은 교회의 성만찬을 조롱한 청년 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호텔 방에 올라가 햄 샌드위치 몇 개와 위스키 한 병을 가져다 놓고, 오순절 교회에서 행한 성만찬을 조롱하며 자기들끼리 거기서 성만찬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채 안 되어 세 사람 모두가... 한 사람은 죽었고, 두 사람은 정신병원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그저 조용히 계시고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경외하는 마음으로 와서 존중하십시오. 영 안에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 안에서 경배하는 사람들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그대로 두십시오.
여러 해 전, 젊은 설교자였을 때 저는 바로 저 모퉁이에 서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지나왔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는데, 제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가톨릭 신자였고, 그녀 자신은 아무 종교도 없었습니다. 아주 예쁘고 잘생긴 여자였는데, 스무 살, 스물두 살쯤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소녀였을 때부터 이 도시에서 알고 지냈습니다. 그녀가 지나가다가 거기 서서 말했습니다. “내가 아끼는 소에게도 윌리엄 브래넘 같은 종교는 갖게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튿날 밤, 제가 그녀에게 가기도 전에 그녀는 병원에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저기 병원에서 죽어 가고 있었고, 남편이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가 와서 말했습니다. “어서 와서 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녁 내내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죽어 갑니다.”
저는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차를 타고 집회를 떠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 간호사를 만났는데,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벌써 죽었어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와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말했습니다. “죽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와서 보기라도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려갔습니다. 그녀는 붉은빛이 도는 검은... 적갈색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주 예쁜 여자였고, 얼굴 여기에는 주근깨가 조금 있었으며, 갈색 눈이 무척 컸습니다.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빌리, 이 여자는 너무나 고통스럽게 죽었어요. 있는 힘껏 선생님 이름을 부르며 ‘나를 용서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얼굴의 주근깨가 사마귀처럼 도드라져 보일 정도였어요.” 그 큰 눈은 한껏 튀어나와 있었고 눈꺼풀은 그 위로 반쯤 감겨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지요. 그들의... 소변과 대변이 모두 나오고, 그녀는 거기서 온몸에 김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은 것은... 저를 업신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전하던 복음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얼마 전 뉴올버니에서, 저는 한 죄인에게 이야기하며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정비소에 있던, 몸집이 크고 손이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의 사위가 옆집 정비소를 운영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 사람에게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점심시간에 찾아가 한 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애쓸 만한 곳을 찾곤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저 자신도 아직 젊은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우리 어머니께 그런 믿음, 마음에서 우러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 해 되었습니다. 늘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그분을 위해 그 기도에 응답하려 하십니다.” 그때 저와 아는 그 사람이 들어와 말했습니다. “안녕.”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봐, 빌리, 들어 봐. 내 정비소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 하지만 종교에 미쳐 날뛰는 자네 그 낡은 종교는 그리로 가져오지 말게.” 저는 돌아서 그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는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에이, 이 친구야, 정신 좀 차리게.” 그때 제 마음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뿌리는 것을 거두리라. 연자방아 맷돌이 네 목에 달린 채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네게 더 나으리라.”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에 그의 친사위가 짐을 가득 실은 이 톤짜리 쉐보레 트럭으로 그를 치고 지나가, 그를 땅바닥에 으스러뜨려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론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며칠 전 여기 위쪽에 사는 침례교 목사 한 분이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 얼마나 저를 호되게 꾸짖었던지요!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처럼 게으른 사람이 있다니!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과 맞먹을 사역을 가지고도 집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다니!” 그때 빌리가 비서 일을 맡고 있어서 답장을 썼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그냥 답장을 드려야겠어요”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답장을 보내기 전에 제게 읽어 보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 요령 있게 쓴 편지였습니다. 빌리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편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제가 쓰는 것입니다. 방금 아버지에게 엘리야와 같은 사역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아버지가 낚싯대를 손에 들고 어디 개울가에 앉아 계시거나, 소총을 손에 들고 산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삼 년 동안 앉아 있던 엘리야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그 일을 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아시겠죠,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일을 이끌어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얼마 전 이 도시의 한 귀한 분이 다른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빌은 어디 있습니까?” 그 형제가 말했습니다. “캐나다에 갔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사냥하러 갔겠지요?” 그 형제가 말했습니다. “예, 사냥하러 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이라니.” 그런데 그 사람은... 제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환상에 따라, 성령의 권능 아래서 가라는 지시를 받고 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심판 날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그 사람의 병상에 가서 기도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먼저, 그는 저를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곁에 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등을 두드리며 “형제님”이라고 불러도,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와서 기도해 달라고 부르겠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참으로 믿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존중해야 합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세벨이 얼마나 엘리야를 업신여겼습니까! 그녀는 얼마나... 사실 엘리야는 그녀의 목사였습니다. 물론입니다. 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절대로요! 그녀는 무신론자이거나 불신자, 아니면 우상 숭배자였고, 자기에게 속한 이교도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엘리야는 그녀의 목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목사로 그곳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목사였습니다. 설령... 그가 그녀를 호되게 꾸짖고 그녀의 모든 죄를 지적했더라도, 여전히 그녀의 목사였습니다. 그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를 미워했습니다! 물론 그랬습니다. 결국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개들이 거리에서 그녀를 먹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엘리야가 전하던 메시지를 그녀가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이든 받으려면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업신여김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녀는 엘리야가 선지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야를 따라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환상과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세상에, 그랬습니다! 모든 교단과 그 밖의 모든 것을 꾸짖었습니다. 죄라 불리는 것은 무엇이든, 가장 낮은 사람부터 가장 높은 사람까지, 왕을 포함하여 모두 책망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조금도 봐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선지자임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합은 가뭄의 책임까지 그에게 돌리려 했습니다. 사실 그가 하나님께 가뭄을 보내 달라고 기도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게 권능이 있으니 하늘을 닫으리라. 내가 부르기 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으리라.”
얼굴에 분칠한 그 작은 이세벨이 마룻바닥을 쿵쿵거리며 오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저 늙은 위선자! 저 늙은 위선자가 여기 어린아이들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다니!” 그런 말을 했겠지요. 엘리야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 했습니다. 한 나라를 다시 하나님께로 이끌려 했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법합니다. “당신들은 이처럼 온 땅을 닫아 놓고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게 하는 저런 사람을 믿겠다는 거요? 저기서 온갖 위선이나 마술을 부리는 저자를 말이오.”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든 그렇게 불렀겠지요. “저자는 마술사나 점쟁이나 그런 자일 뿐이오.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않게 하고 이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잖소.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거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아시겠죠, 여러분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 그분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다. 보기에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사람들이 고통받고, 소가 죽고, 양이 죽고, 어디에도 물이 없었습니다. 밤은 무덥고 후텁지근했으며, 낮에는 태양이 하늘에서 놋쇠처럼 눈부셨습니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산 위에 앉아 말했습니다. “내가 부르기 전에는 이슬도 내리지 않으리라.” 그렇습니다. 아, 그들이 얼마나 그를 미워했겠습니까!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 말했습니다.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냐?” 그 노선지자 엘리야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 당신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합까지도 그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시지요. “당신이 나봇의 무죄한 피를 흘렸으므로, 개들이 거리에서 당신의 피도 핥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미리암도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아론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하나님께 존중을 표하고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결과를 겪어야 합니다. 받아들이든지 심판으로 들어가든지, 원하는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제 평생에 본 일들, 다른 나라들과 여러 지역에서 본 일들,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제가 여기 서서 몇 시간이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략하고, 제가 여러분께 무엇을 말씀드리려 하는지 요점만 이해하시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집회에 앉아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이십사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거리에서 짓눌려 으스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해 어떤 곳의 집회에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다음에, 아마 육 개월 안에 다시 그곳에 가 보니 거의 모두가 죽었거나, 어딘가에서 병 같은 것에 걸려 누워 있는 일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중해야 합니다.
테네시에서 어느 날 밤 만난 한 젊은 여자가 기억납니다. 큰 침례교회에서 설교한 뒤 제가 문으로 나가던 때였습니다. 문을 나가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날 밤 그 여자를 그리스도께로 나오라고 부르라는 인도를 느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께 나오라고 부르자 그 여자는 제 면전에서 비웃었습니다. 마침 집사 가운데 한 분의 딸이었습니다. 그날 밤 문 앞에 서서 저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나오자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분명히 알아 두세요. 다시는 그렇게 저를 창피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말도 안 돼요! 전 젊어요. 그런 일은 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어요. 우리 아버지에게는 집안 식구 모두의 몫으로도 충분한 믿음이 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몫까지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누군가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 상식이 있는 사람을 찾겠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가십시오. 하고 싶은 대로 말씀하세요. 저는 괜찮지만,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도시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속치마를 늘어뜨리고 손에 담배를 든 채 흐느적거리며 거리를 걸어오더니, 제게 위스키 한잔을 권했습니다. 똑같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밤 저를 부르셨던 것을 기억하세요? 그건 사실이었어요. 그날 밤 하나님의 영께서 제게 증언하시며 나오라고 이끌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 뒤로는 우리 어머니의 혼이 지옥에서 팬케이크처럼 지글지글 타는 것을 보더라도 저는 웃을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형제님,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세벨은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불경한 아이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데... 엘리야는, 물론 그가 살던 때가 지난 뒤에도, 그 땅에 기근을 불러왔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이 옮겨져서 천국에 올라갔다고? 어디선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들이 그냥 묻어 놓고 숨긴 거야.”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엘리야가 들려 올라간 뒤, 이제 그가 그 시대의 사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도시를 지나가는데, 그 도시의 아이들, 어린아이들이 뛰어나와 그를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이봐, 늙은 대머리야, 너는 왜 엘리야처럼 올라가지 않았어?” 아시겠죠, 그들은 엘리야가 올라갔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사람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 그의 메시지를 업신여긴 것입니다. 그는 엘리사의... 엘리야의 후계자였습니다. 그에게 기름부음이 있었고, 엘리야의 영이 그 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으로 올라가 엘리야가 행한 바로 그 일들을 행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그들은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믿었고 그 위에 그 영이 계셨기 때문에 그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자기 겉옷으로 요르단을 치고 요르단을 갈라 놓았습니다. 그리고 올라가 엘리야가 했던 것과 같은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그곳 선지자 학교의 모든 설교자까지도 “엘리야의 영이 엘리사 위에 머문다”고 했고, 그 말이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서로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봐, 이봐, 저기 좀 봐. 저들은 종교에 미쳐 날뛰는 무리야. 광신자들이야. 그 사람이 죽지도 않고 천국에 갔다니, 말들이 내려왔다니 하는군.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봤어.” 물론 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보지 못했지요. “우리는 말도 못 봤고, 어디서 병거 소리를 듣지도 못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노인이 죽어서 자기들이 묻어 놓고는, 그 일로 야단법석을 떨려는 거야.”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두고도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들이 밤에 와서 그분의 시신을 훔쳐 갔다.” 그렇게 증언하도록 군인들에게 돈까지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불말들이 끄는 불병거를 타고 들려 올라갔습니다.
이 젊은 선지자가 그곳을 걸어 도시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이었지만 머리카락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내려가는데, 이 어린아이들이 뒤를 따라 달리며 말했습니다. “이봐, 너는 왜 엘리야와 함께 올라가지 않았어? 이 늙은 대머리야!” 아시겠죠? 존중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영의 권능으로 돌아서서 그 아이들을 저주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 아이들 마흔둘을 죽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중하지 않고 불경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 아이들 가운데 누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아니,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떻겠습니까? “얘들아, 들어 봐. 사람들이 엘리야가 들려 올라갔다고 하는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 두마. 가장 좋은 것은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그냥 지내렴. 그가 지나갈 때... 오늘 이 도시를 지나 저기서 거리 집회를 한다고 들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너희가 오늘 학교에 가다가 그를 만나거든, ‘목사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렴. 그에게 인사해.”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틀림없이 집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서로 웃으며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요. “세상에, 어쩌면 좋아! 종교에 미쳐 날뛰던 그 늙은이가 들려 올라갔다네. 그런 걸 믿을 수 있겠어? 또 그 조그마한 대머리, 저기 호박처럼 머리가 반질반질한 녀석 말이야. 나이도 서른다섯쯤밖에 안 됐는데, 오늘 이곳으로 내려와 거리 집회를 한다는군. 우리가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믿기를 바라나 봐. 그자는 그저 하찮은... 웃음거리일 뿐이야. 그게 전부야. 우리 교회에는 오지도 않잖아. 아시겠죠? 엘리야처럼 우리 교회들에는 오지 않아. 아마 엘리야처럼 무슨 마술이나 주술이나 속임수를 가지고 있겠지.” 그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집에서 그렇게 배웠던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도록 배웠다면, 밖으로 나가 그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웃고 조롱하도록 배웠습니다. 오늘날 아이들과도 비슷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거리 집회를 조롱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조롱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습니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게 만든 불경한 부모들 때문이었습니다. 암곰 두 마리가 나와 그들 중 마흔둘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불경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그들이 그분의 선지자를 업신여긴 것은 그분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믿지 않더라도 입을 다물고 멀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꼭 자기 말 한마디를 보태야 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꼭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번에는 존중했던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바로 그 선지자 엘리야를 대했던 수넴 여인을 보겠습니다. 사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넴 출신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람이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행한 표적들을 보았습니다. 역사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날 들개 떼가 어린 소녀를 붙잡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아니라 제가 읽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수넴 여인이 모퉁이에 서 있다가 이 개들이 그 어린 소녀를 죽이려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이 거룩한 사람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지팡이를 하나님께 들어 올리고 그 어린아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그렇게 부르짖자, 개들이 돌아서 그들에게서 떠나갔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그럴 법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여인은 말했습니다... 그때... 성경은... 그녀가 이 사람이 거룩한 사람임을 알아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사람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처럼 그를 업신여기는 대신 존중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할 형편이 충분히 됩니다. 부탁이니, 여기 어딘가에 그분을 위해 작은 집을 지읍시다. 지치신 분이니 작은 거처를 마련해 드립시다. 제가 그분을 지켜보았습니다. 나이가 들어 가시고, 희끗한 수염이 길게 드리워진 것도 보았습니다. 작은 낡은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실 때 그 가느다란 팔, 조금 축 처진 팔도 보았습니다. 옆구리에 작은 기름병을 차고 양가죽 한 장으로 몸을 두른 채, 뜨거운 햇볕 아래 걸어오시는데 몸이 그슬려 붉어 보였습니다. 그러니 부탁이니, 여기 머무실 작은 쉼터를 지어 드립시다. 건축업자를 불러 이곳에 작은 거처를 짓고 모십시다. 그분의 영을, 그 영으로 보아 거룩한 분임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십니다.” 오, 오, 얼마나 다릅니까!
남편이 동의했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 나도 그분을 눈여겨보았소. 말씀을 듣고 지켜보았으며, 그분이 행하시는 일들도 보았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알고 있소. 그러니 그렇게 합시다.” 그들은 건축업자를 불러 아담하고 좋은 거처를 짓고, 그가 누워 쉴 수 있도록 작은 침상을 놓았습니다. 발을 씻을 자리도 마련하고, 물 같은 것도 가져다 그 안에 갖추어 놓았습니다. 선지자가 지나가다가 자기를 위해 그런 일을 해 놓은 것을 보았으니, 물론 그의 혼은 복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가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그녀를 부르고,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 왕이나 군대 대장에게 말해 줄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 백성 가운데 거하고 있으며,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게하시가 말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자녀가 없습니다. 남편은 나이가 아주 많습니다. 늙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엘리야가 그녀가 마련해 주어 복이 된 그 작은 침상에 누워, 발도 모두 씻고 수염도 깨끗이 씻고 그렇게 누워 있다가, 틀림없이 주님의 환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가서 그녀를 부르고, 여기 내 앞에 서라고 하라.” 오, 세상에! “가서 그녀를 부르라. 그녀가 하나님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가서 여기로 오라고 하라.” 그녀가 문에 서자 그가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내년 이맘때쯤 그대가 아이를 낳으리라.” 이듬해 그맘때쯤 그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아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아버지가 아이를 들에 데리고 나갔습니다. 사탄이 말했습니다. “저 아이를 없애 버리겠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일사병이 들게 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죽었습니다. 그 일로 그녀가 낙심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노새에 안장을 얹고 앞으로 가세요. 멈추지 마세요. 갈멜 산으로, 그 산으로 가세요. 그분이 며칠 전 이곳을 지나가셨어요.” 오, 오, 오, 세상에!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존중입니다. 존중입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려는 거요? 월삭도 안식일도 아닌데, 그분은 거기 자기...에 계시지 않을 텐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다 잘될 거예요. 그저 노새에 안장을 얹고 저를 보내 주세요.” 그래서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들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노선지자 엘리야가 동굴 밖을 내다보다가 밖으로 나와 그쪽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기 오는 사람이 그 수넴 여인 같구나. 마음이 괴로운 모양이다.” 그가 말했습니다. “가서 그녀를 맞이하라. 그녀의 마음이 괴로운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구나.”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말씀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선지자들에게조차 모든 것을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분은 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엘리야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녀가 왜 오는지 어째서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왜 모든 것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무엇이든 괜찮았습니다. 만일 여인이 올라와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셨지요? 이 위선자! 당신은 종교에 미쳐 날뛰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할지 보시려고 때때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는 대신 곧장 그의 발 앞에 달려가, 마치 하나님께 하듯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내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아이 위에 놓으라.” 그렇게 했을 때, 여인이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의 혼이 결코 죽지 않음을 두고 맹세하노니(오, 세상에!), 하나님의 종이여,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내실 때까지 여기에 있겠습니다.” 노선지자 엘리야는 조금 더 그곳에 머물다가 허리를 동이고 지팡이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는 그 아이, 죽은 아이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바닥을 몇 번 그렇게 오갔습니다. 한 공경하는 여인, 그를 존중하는 여인과 그를 존중하는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아멘. 그다음에 그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엎드리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안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다시 동굴로 올라갔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존중을 요구하십니다.
마르다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늘 예수님께 맛있는 식사를 차려 드릴 생각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그저 곁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갯잇을 갈았든지, 커튼의 먼지를 털었든지, 먹을 것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하실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늘 그분께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드리고, 의자가 푹신하고 제대로 놓여 있는지, 모든 것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지 살피고 싶어 했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방식으로 예수님께 무언가 해 드리고 싶었고, 마리아도 자기 방식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사로가... 많은 사람은 마르다를 비판하며 더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아, 아닙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마르다에게도 자기 마음을 보여 줄 때가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녀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는 그분께 사람을 보내 와서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분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 부름에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곳으로 계속 가셨습니다. 그녀가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그 부름에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그분께서 오셨을 때, 그녀는 나가서 그분께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불렀을 때 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제 오라버니가 거기 병들어 누워 있었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메시지를 따르려고 교회도 떠나고 교단도 떠나고 모든 일을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저희 두 고아... 세 고아, 부모 없이 남은 세 사람이 여기서 성전을 위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 생계를 이었습니다. 저희도 그곳 교인이었고, 부모님도 그곳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저희를 속여 이 일에 빠지게 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고 하는 당신의 가르침을 믿게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말입니다... 제가 불렀을 때 귀도 기울이지 않는 당신을 저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려움에 처하여 당신이 필요했을 때, 당신은 제 전갈을 무시하고 그냥 가셨습니다. 제가 다시 보냈는데도 여전히 무시하셨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그녀가 그렇게 했다면, 오늘 저녁 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했습니까? 곧장 그분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오,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존중을 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었고, 그분을 존중했습니다. 그분을 자기의 주라고 불렀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가 사람을 보냈잖습니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모두 잊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아시겠죠?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예, 주님, 마지막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제가 압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 주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제가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주님...” 오! “이제라도!” “주님, 이렇게 하셨어야 하고 저렇게 하셨어야지요!”가 아닙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오, 형제님, 형제님이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같은 결과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아무리 위대한 분이셨다 해도, 그분이...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녀가 존중하지 않았다면,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주님,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는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분이 사냥을 가셨든 낚시를 가셨든, 그녀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사냥을 갔거나 어디를 갔더라도 수넴 여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가 무엇을 했든, 그녀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도 무슨 일이 일어났든,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행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주님,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아,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그들은 무덤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분은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왜입니까? 나사로의 누이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존중할 수 없거든, 그가 하나님 안에서 맡고 있는 직분을 존중하십시오. 정확히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그를 존중하십시오. 목사님이, 여러분의 목사님이 오시면 언제나 존중하십시오. 저는 회중이 자기 목사에 관해 함부로 말하고, 헐뜯고, 조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목사가 여러분을 위해 어떻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존... 이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제가 보아 온 교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은 목사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도 한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목사로 삼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감독자로 세우셨으므로 그런 분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목사가 무슨 일을 했든, 여러분이 마음으로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한 여러분을 존중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느니라.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느니라.” 아시겠죠?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했지만, 그분은 “너희 아비는 마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존중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참으로 그러한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는 믿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잠깐 말씀드린 것도 그것입니다. 수로페니키아 여인이 그때 그분께 나왔던 일입니다. 얼마나 매정하게 거절당했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유대인이셨고,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분께 달려왔습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필요한 것이 있었고, 그분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위한 그분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자기를 위한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시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시험하셨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주여, 긍휼을 베푸소서!” 잘 보십시오. 아니, 그녀는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녀에게 다윗의 자손이 아니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녀는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그분께 다가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들었기에 그녀도 그들처럼 다가가려 했습니다. 존중을 표할 길을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 드리려 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아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제 딸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마귀에게 여러모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돌아서 그녀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휴! 참 대단한 말씀이 아닙니까? 정말 대단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셨을 뿐 아니라 개라고까지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는 성경에서 가장 천하게 부르는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주여, 참으로 옳습니다.”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로 부른 것입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다윗의 자손은 아니셨지만, 주님이셨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주여, 참으로 옳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자녀들도 밑에서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아니, 제 말은 “개들도 주인의 상 밑에서 부스러기를 먹습니다”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존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이제 집으로 가라. 네가 믿은 그대로 네 딸이 되어 있는 것을 보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왜입니까? 그녀가 다가간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녀가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분께서 돌아서서 “내가...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톨릭 신자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오, 브래넘 형제님,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한 형제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 압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여기 이 자녀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오순절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러 왔지, 당신들 같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녀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아, 세상에, 펄펄 뛰며 이곳을 나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맞습니다, 주님. 그러나 저희는 기꺼이, 개들은 주인의 상 밑에서 부스러기를 기꺼이 먹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곧바로 그분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그분께서 돌아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녀가 다가간 태도, 존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분을 존중함으로써 하나님을 존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로마 사람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병든 종이 있었습니다. 그 자신은 예수님께 가서 부탁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늘 실제 자신보다 훨씬 작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자기 눈에 스스로를 크게 여기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이 큰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게 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이, 이 여인이... 아니, 이 남자는 로마 백부장이었고 병든 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병든 종을 고쳐 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치리라.”
그분께서 오는 도중에 로마 사람이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가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오, 저 거룩하신 분이 오시는구나. 저 거룩하신 분이 오시는구나. 나는 보잘것없는 이방인인데. 나는 로마 백부장이다. 장군... 아니, 장교이다. 나는 유대인도 아니니 저 거룩한 분을 오시게 할 자격이 없다.” 그 존중하는 마음이 보입니까? 아시겠죠? “하나님의 저 거룩한 종을 내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 그분께서 문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그가 불러 말했습니다. “주님, 주께서 제 지붕 아래로 들어오심을 제가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백부장이었으니 아마 궁궐 같은 집이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제 지붕 아래로 들어오심을 제가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주께 나아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여 주님의 복된 백성인 유대인 몇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제 종이 몹시 아픕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저는 권위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이 군사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군사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그가 거기서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주께 모든 권능이 있음을 저는 압니다. 이 질병에게 ‘가라’ 하시면 가고, 저것에게 ‘오라’ 하시면 올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에게 이 군사들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는 모든 질병과 병을 다스릴 권한이 있으셨습니다. “주님, 그저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그 유대인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 같은 믿음을 발견하지 못하였노라.”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종은 괜찮으니라.” 아멘. 왜입니까? 그가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처럼 크게 존중했던 모든 일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어쩐지 다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셔도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약 사십 년 전 성령께서 처음 임하시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는 달라져 있었을 수도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설교자들을 가두고 종교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도시에서 먹을 것조차 주지 않았고,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길에서 옥수수를 부수어 먹으며 연명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한 것입니까? 또 사십 년을 겪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고난을 겪으며 온갖 일을 지나온 것입니다. 그동안 두 차례 전쟁이 있었고, 아시겠죠, 그들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교회는 아마 이미 본향에 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들에 교회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이십오 년 전 하나님께서 그분의 표적들과 이적들과 기적들을 보내기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이 모두 그 일에 함께 모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술이다, 최면술이다, 그는 독심술사다,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온 나라가 함께 나서서 “주님의 이름을 찬송할지어다”라고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감리교와 침례교와 장로교와 모두가 손을 맞잡고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기다려 온 것이 여기 있습니다. 성령께서 부어지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여기 환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가운데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큰 은사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들, 신유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순절 신자들이라 불리는 작고 겸손한 무리를 통해 그것이 왔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형제들이여, 돌아갑시다. 우리 교단 조직들을 해체하고, 모두 한 형제가 됩시다.” 큰 교회들이 모두 함께 모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형제님, 오늘날 이 나라에는 병원조차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존중하는 가운데, 그렇게 권능 있는 큰 은사들과 이적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교회는 이미 본향에 갔고 천년왕국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을 종교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신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비방과 추잡한 말을 늘어놓을 기회만 엿보았고, 붙일 수 있는 온갖 더러운 욕설을 붙였습니다. 그런 일들을 했고, 교회들은 낄낄거리며 비웃고 그들을 조롱하고 내쫓으며, 도시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하는 등 온갖 방식으로 업신여겼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브래넘 태버내클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들을 부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성한 은사들에 말입니다. 그분께서 그런 은사들을 보내셔도, 그것들이 아무리 실제라 해도, 우리가 그것을 존중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우리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예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예언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으로 입증되기 전까지는 믿으십시오. 잘못되었다고 입증되면, 그때는 믿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그것과 관계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참된 것으로 입증되고 있는 동안은 믿으십시오.
그들이 왕을 원하던 날 노사무엘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내가 너희 돈을 조금이라도 취한 적이 있느냐? 내 생계를 대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말한 것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에게는 왕이 필요하지 않다. 너희 왕은 너희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너희에게 말한 것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느냐?” 그런데 그때 백성은 사무엘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아, 압니다, 사무엘이여. 맞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옳은 말씀만 하셨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목사와 악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여러분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은 오늘날 하나님의 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자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임하실 때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히히히! 저 여자가 소리치며 우는 것 좀 봐. 눈물이 뺨으로 흐르네. 저 남자 좀 봐. 손을 흔들며 떨고 울잖아. 저게 뭔지 알아? 한껏 흥분해서 감정에 들뜬 것뿐이야.” 그렇게 하면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얼마 전 제가 오리건에 있었습니다. 약... 십이 년쯤 전 일입니다. 젊은 가톨릭 신자 여기자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들만큼 많은 개신교 신자들도,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저를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들은 취재하러 왔습니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저는 그 영을 알아차렸고 말했습니다. “자, 이번에는 무슨 비판거리를 속에 감추고 오셨습니까?” 이 여자가 담배를 꺼내 피우려 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제 오두막 안에서는 불을 붙이지 마십시오. 그냥 두십시오.”
잠시 앉아 있던 그녀는 저를 꿰뚫고 지나갈 듯이 그렇게 바라보더니 말을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녀가 말했습니다. “어째서 저기 종교에 미쳐 날뛰는 무리와 관계를 맺고 있나요? 당신도 그들 가운데 하나인가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런 것에 하나님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가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 가톨릭 신자인 당신은 믿지 않겠지요.” 그녀가 물었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인 줄 어떻게 아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압니다. 당신의 이름도, 당신이 누구인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겠죠? 그녀는 그 말에 몹시 놀랐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런 사람들이 여기 땅에서 살다가 천국에 간다는 말인가요? 저는 저런 사람들과 천국에 있고 싶지 않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어차피 거기에 가지 못하실 테니까요. 아시겠죠?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대로 서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형제 두어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성질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려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글을 쓰려고...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이곳에 왔지만, 제가 말한 그대로는 절대로 쓰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겠지요.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방하는 글은 무엇이든 쓰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죽기 전에 제 목소리가 다시 당신 귓전에 울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거짓 선지자인 줄 아십시오.”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쓰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가서 원하는 대로 쓰실 자유를 드립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제 목소리가 당신 귓전에 외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당신에게 아무 소용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가서 쓰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그녀는 잠시 거기 서 있다가 말했습니다. “그럼 어젯밤 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떨던 저 바보 같은 무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건 성령이 아니에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성령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저런 무리와 어울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어울리게 될 위험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나 어떤 성도들과 어울리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어울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성경의 성도들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라고 부르는 분, 당신들의 여신인 그분도,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시기 전에 오순절 날 그 위로 올라가 성령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 아래서 술 취한 여자처럼 비틀거렸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잠깐 조용히 하십시오.” 저는 여기 성경을 펼치며 말했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성경을 펼쳤습니다. “바로 여기 이 책에 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용기조차 없군요.” 아시겠죠?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아시겠죠,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탁자 위의 담뱃갑을 가지고, 가고 싶으시면 가십시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 두셨으면 합니다. 무엇이든 쓰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그러나 제가 마지막으로 하는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당신이 죽기 전에 이 일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그 일을 덮어 두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존중하지 않고, 조롱하려 하며,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태버내클에서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것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기 시작하실 때, 때때로, 저는 분명히 사람들이 영의 기름부음 아래 있으면서도 육신으로 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서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존중하고 머리를 숙이십시오.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저도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존중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실 때 저는 그저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처럼 언젠가 아버지의 집에 가기를 원하는 저 가엾고 귀한 혼을 위해 주님께서 무언가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사람들을 보니... 여기 한번은 사역하는 한 형제가 제가 자기를 비방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서 모든 테이프를 가져다가 그에게 보냈습니다. 그 형제는 A. A. 앨런 형제님이었습니다. 그는 손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성령의 최초의 증거라고 말한 자기를 제가 조롱했다고 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손과 이마 등에서 피와 기름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제가 그것을 조롱하며 마귀에게서 난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앨런 형제님...” 그는 글을 하나 썼고, 여러분도 그것을 읽으셨습니다. “친애하는 브래넘 형제님.” 아시겠죠? 그러고는 전단을 전국에 뿌렸습니다. 그 문제로 저를 찾아와 만나지 않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말은 이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피닉스에서 보낸 여섯 밤의 테이프를 모두 가져다가 보내 드려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레오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여 그들에게 테이프를 보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의 이름은 단 한 번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제 책상 위에 글을 올려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앨런 형제님이 방금 이 도시에 오셔서 성령의 최초의 증거는 손과 얼굴에서 피가 나고, 손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최초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최초의 증거라는 점에서는 앨런 형제님과 의견이 다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손에서 피가 나고 얼굴과 손에서 기름이 나왔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성령은 그들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했습니다. “앨런 형제님에 대해 한 가지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제가 앨런 형제님만큼 설교를 잘할 수 있다면, 치유 예배는 전혀 하지 않고 복음만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글을 내고 그런 모든 일을 한 뒤였습니다. 제가 그랬다고 말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말만 듣고 말입니다. 저는 그 형제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결코 그 형제를 모독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저 위 미네소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그날 밤 서 있었는데, 고든 피터슨과 함께 큰 성당 같은 예배당에 있었습니다. A. A. 앨런을 반대하는 책을 쓴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앨런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는 뻔뻔스럽게도, 어떤 여자에 관한 『무는 마귀들』이라는 책까지 썼습니다. 마귀에게 물린 자국이라며 그 여자의 손에 난 흔적 같은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귀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이 여자는 몸에 털이 많은 커다란 마귀가 와서 자기 손과 얼굴 여기저기를 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사람은 “A. A. 앨런이 그 책을 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쓴 사람은 저에 대해서는 좋은 글을 썼고, 그날 밤 바로 거기 집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피터슨 형제님과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알려 주었을 때, 그는 거기 앉아서 저를 칭찬하고 A. A. 앨런을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앨런 형제님 편에 서서 말할 기회가 왔구나.” 그래서 앞으로 나가 말했습니다. “오늘 신문에서, 이 도시에 와 있는 어떤 분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바로 저기 앉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에 A. A. 앨런이...” 하면서 그 모든 비판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분이 저에 대해 칭찬해 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다른 누구보다 깨끗한 집회를 열고 있다는 등의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여기 신문에 이 기사를 쓰신 분이 A. A. 앨런이 『마귀들에게 물림』을 썼다고 말할 정도밖에 자기 자료를 확인하지 않으셨다면 말입니다. A. A. 앨런은 그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책을 쓴 사람을 압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앨런은 그 책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이분이 자기 기사 내용을 그 정도밖에 확인하지 않으셨다면, 앨런 형제님에 대해 지금까지 하신 나머지 말씀도 사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앨런 형제님을 옹호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말했습니다. “게다가 앨런 형제님이 잘못하셨더라도, 그분이 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 애쓰고 계시다면, 저는 심판대 앞에서 그분이 하려는 일을 비판한 사람으로 드러나기보다, 잘못한 앨런 형제님과 함께 서 있었던 사람으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저는 그와 함께합니다. 개신교인이든 가톨릭 신자이든 누구든 말입니다. 신학적으로는 그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종이며 제 형제로서 그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그가 무엇을 하든 우리는 성령께 존중을 드려야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복을 부어 주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바로 여기 있는 우리 작은 무리, 오늘 저녁 여기에 앉아 있는 약 쉰 명이나 예순 명, 어쩌면 일흔다섯 명 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굳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성령, 그리고 오늘날 그분이 행하시는 일에 경건한 존중을 드린다면, 우리 가운데 보내시는 모든 은사와 모든 직분을 존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이고 우리는 수가 늘어나 번성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잠시 고개를 숙여 기도합시다. 기도하기 전에, 여기 이런 말씀을 하고 싶은 분이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을 크게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든 그것을 거슬러 함부로 입을 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시는 모든 신성한 은사를 존중하는 마음을 제게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손을 들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의 거의 모든 손이 들렸습니다. 저도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종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형제들을 존중하고 제 자매들을 존중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집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모든 영, 그것이 방언이든 방언 통역이든 예언이든 분별의 은사들이든, 무엇이든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오 주 예수님, 그것들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희는 주님께서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주님의 진노가 두려운 것임을 압니다. 한번 노여움을 발하시면,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순식간에 세상을 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피를 내려다보실 때, 주님의 진노가 돌이켜집니다. 오, 영원한 반석 안에 저를 숨겨 주소서! 주 하나님, 제 혼이 주 예수님의 피로 덮여 있게 하소서. 주님, 제 혼만 아니라 오늘 저녁 여기 있는 이들의 혼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모든 은사, 사람들이 저희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든 그렇게 부른다 해도, 주님, 그것이 여전히... 그런 말이 거기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저희는 여전히 주님을 존중합니다. 위대하신 분, 위대하신 성령님을 존중합니다. 아버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희 가운데 신유의 은사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운데 예언의 은사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방언의 은사와 통역의 은사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 하나님, 계속해서 저희 가운데 은사들, 위대하신 성령의 은사들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 저희는... 저희 마음에서 가장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에 충분하신 그 위대한 선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은혜와 긍휼에 감사드립니다. 갈보리에서 저희를 대신하여 고난받고 피 흘리심으로, 이 다른 작은 것들을 모두 저희가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즐겁게 듣는 보통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주님, 보통 사람들에게 오신 것을 참으로 기뻐합니다. 성경, 누가복음에서 저희는 보통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다고 읽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일 뿐이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 주님께서 육신으로 여기 계셨을 때 말씀을 들은 무리가 바로 그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과 부자들, 그런 사람들 중 많은 이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왕들과 권력자들과 그 시대의 제사장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주님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저희는 보통 사람들이며 주님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저희도 기뻐합니다. 그들이 돌아오면서 기뻐하고, 그것을 놀라운 일로 생각하며 행복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모욕하고 온갖 이름으로 불렀지만, 그분의 이름으로 인해 치욕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는 것이 그들에게 특권이었으므로 그들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도 그날의 제자들과 하나가 되어 “저희는 행복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오늘 저녁 저는 옛날 성바울처럼 서 있습니다. 그가 아그립바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단이라고, 미쳤다고 불리는 그 길을 따라 저는 저희 조상들의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아그립바가 말했습니다. “바울아,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그가 말했습니다. “아그립바여,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가 이런 말을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사슬과 결박은 없이, 왕께서도 저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 하나님, 바울에게 얼마나 큰 사랑이 있었습니까! 그는 자기 민족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자신이 저주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저희에게도 서로를 향한 그런 사랑을 주십시오. 그 꺼지지 않는 사랑, 그 바른 품성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그리스도인답게 서로의 잘못을 덮어 줄 수 있게 하소서. 덮어 주도록...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 아버지, 저희가 그 잘못을 바라보지 않게 하소서. 그가 귀한 형제이며, 어쩌면 사탄이 무언가로 그를 함정에 빠뜨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저희는 압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님, 그 형제나 자매가 그 자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마음에 사랑을 주셔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 다시 우리 안으로 데려오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저희에게 죄지은 자들을 저희가 용서하는 것같이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저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저희를 구출하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니이다. 아멘.
[네빌 형제님이 예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참으로 내가 오늘 밤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 백성아, 내가 이 특별한 때에 너희의 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오늘 밤 내 사역에 관해 너희에게 하는 말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 참으로 내가 오늘 밤 말하노니, 너희가 내 음성을 듣고 너희에게 말한 내 종에게 귀를 기울였으니 잘하였도다. 내가 오늘 밤 다시 그의 사역의 직분을 입증하였느니라. 참으로 내가 너희 앞에 데려온 내 종, 내 선지자를, 보라, 오늘 두 번이나 데려왔으니, 내가 말하노니 오늘 밤 너희 마음이 너희 속에서 녹아내리게 하라. 내가 이 저녁 예배에서 나타내고 있으며, 오늘 하루를 통해 이 시대 내 선지자의 직분을 너희에게 다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라. 참으로 내가 말하노니, 오늘 밤 그가 너희에게 전한 이 일들에 관해 그의 말을 들으라. 보라, 너희 집에 이르게 될 많은 것으로 내가 너희에게 보상하리라. 참으로 다정한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듯 내가 너희를 돌보리라. 보라, 오늘 밤 나의 종아, 참으로 내가 그대를 바라보는 이 백성의 눈앞에서 그대를 다시 높였느니라. 내가 말하노니, 나의 종아, 참으로 내가 그대와 함께하였으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리라. 나는 그대에게 그대의 선지자의 직분에 따르는 것들을 베풀고 있느니라. 참으로 내가 말하노니, 내가 많은 일과 많은 장소에서 그대를 축복하리라. 내가 오늘 밤 말하노니, 이때 다시 백성의 마음속에 확증하노라. 참으로 지금이 우리가 이 문제들을 확정하여 내 백성 너희가 깨달아야 할 때라. 눈을 열어 오늘 밤 이것을 받아들이라. 내가 말하노니, 나는 너희 가운데 있어 너희를 넘치게 축복하려 하느니라. 믿지 않은 자들이 있어 내가 날마다 무리의 수를 줄이고 있지만 그러하니라. 오늘 밤 내 말을 듣고 너희 마음을 내게로, 그리고 내 선지자의 직분을 향해 돌이키라.”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 거룩하신 분이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얼마나 영광스러우신지요! 주님, 얼마나 감사한지요!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께서 사람의 입술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그분께서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저희 가운데 계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아버지, 이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계속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저희를 참아 주셔서 저희가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임재를 아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그분께서 이렇게 두 번째까지 행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그분은 여기 이 자매님께 말씀하시고, 그렇게 그 빛 가운데 오셔서, 그들이 메시지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영광스러우시지 않습니까?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그 좋은 옛 찬송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섭시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내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 그분은 놀라우시지 않습니까? 놀라우십니다! 수요일 저녁 예배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일요일에도 제가 여기 오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말입니다. 한 주간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고개를 숙여 기도하면서, 우리 목사님인 네빌 형제님께 앞으로 나오셔서 여러분에게 마지막 말씀을 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