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네빌 형제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다시 주님의 집에 와서, 우리가 그동안 여러 해에 걸쳐 많은 사람에게 전해 온 그 오래되고도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이 은혜 안에서 교제하고 있으며, 어디에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 기쁩니다. 때로는 우리가 마땅히 서로에게서 보아야 할 만큼 그것을 분명히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 제가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가족이 어려움과 필요 가운데 있을 때 여러분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영원 속에 가서야... 어머니가 떠나신, 본향으로 가신 이 어려운 때에 여러분의 훌륭하고 신실한 우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플 때 누군가 찾아와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지금처럼 절실히 깨달은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부탁받은 곳이 너무 많아 다 찾아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사님들께 그 방문을 맡겨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조금 실망하실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어쩌면 그분들이 그 다른 목사님께도 이미 연락했을지 모르지만, 제게도 와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무슨 초인적인 힘이라도 있어서 한 곳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여러 분께 와 달라고 연락드렸을 때 한 분 한 분 모두 제때에 와 주셨고, 그분들이 오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밤에 어머니 곁을 지켜 주신 여러분, 여기 계신 윌슨 자매님과 프레드 소스먼 형제님 부부, 아, 그리고 참 많은 분들... 또 도와드리겠다고 나서 주신 분들도 참 많았습니다. 저희가 그 도움을 모두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여러분은 기꺼이 돕겠다고 해 주셨습니다. 몇 분마다 교대해도 어머니 곁을 지킬 사람이 있을 만큼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잘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를 장례식장에 모셨을 때도 여러분은 찾아와 손을 잡아 주시고, 팔로 우리를 감싸 안으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직접 그 일을 겪기 전에는 그것이 그렇게 큰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곳곳에서 꽃과 꽃다발과 꽃바구니가 왔습니다. 장례식장 홀에 다 놓을 수가 없어서 뒤쪽 방들에 놓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까지는 그저 꽃 한 다발을 보내 주는 일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여러 곳에서 카드를 보내 주셨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조의 카드를 보내 주시며 비용에 보태라고 돈을 넣어 주셨습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그런 작은 일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제가 직접 겪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언제나 풍성히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기쁩니다. 제가 여러분의 형제라는 것이 참 기쁩니다. 제가 같은 방식으로 그 은혜를 갚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다른 방식으로 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곁에 서 있는데, 참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어떤 분이 제 손을 잡고 “빌리, 참 오랜만이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바라보아도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모습이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기 장례식에서 설교해 주셨지요.” “우리 어머니 장례식에서 설교해 주셨지요.” “춥고 캄캄한 밤에 저를 찾아와 주셨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제 기억으로는 시편 기자가 했던 그 말과 같습니다. “물 위에 던진 빵처럼, 언젠가 그것이 네게 돌아오리라.” 제가 말을 잘하거나 표현할 능력이 있다면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제 마음을 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면 한 분 한 분 제 뜻을 아실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하신 성경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어머니가 떠나신 일은 제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번 이 강단에 섰던 날 아침에도 말씀드렸듯이, 성령께서 왜 미리 제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는지 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어머니가 떠나신다고 제게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을 압니다. 그분은 많은 일을 하실 수 있고 또 하시며,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그분은 그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도 제가 아는 한 가지는,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침대에 누워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족 가운데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제 동생 에드워드였습니다. 동생이 떠났을 때 저는 서부의 목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동생이 떠나기 전에 환상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그다음으로 떠난 사람은 찰스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떠났습니다. 동생은... 그날 밤 저는 여기 아래쪽에 있는 작은 흑인 오순절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찰스가 저 위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떠난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제 품에서 숨을 거두셨고, 저는 아버지의 혼을 하나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떠나셨습니다. 그다음으로 떠난 사람은 하워드였습니다. 저는 서부로 휴가를 가서 노리턴강 하류 쪽에 있었는데, 비행기들이 날아와 작은 낙하산으로 동생이 떠났다는 소식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물론 저는 그가 떠나기 여러 해... 이삼 년 전에 그가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떠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만은 한동안 병석에 계시다가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말씀해 주지 않으신 이유가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너무 갑작스럽게 떠났으므로, 그분께서... 어머니 외에는 모두 갑자기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약 여섯 주, 꼭 여섯 주 동안 병석에 계셨습니다. 제 마음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바랐던 것은 어머니가 떠나실 때 곁에 서서 어머니의 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무언가 이상한 이끌림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상태가 많이 나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행동은,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말씀을 못 하셨습니다. “어머니, 아직도 그리스도를 사랑하시고, 그분이 어머니의 모든 것이시라면 고개를 끄덕여 주세요.” 그러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고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습니다. 인생길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분은 여전히 어머니의 모든 것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뺨을 쓰다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려 드리며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참된 군인이십니다. 저는 어머니가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사탄이 욥의 시대에 했던 것처럼 말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으실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사탄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사탄에게 넘겨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머니의 때가 왔고 어머니가 떠나실 것을 알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는 설교자인 아들이 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 여자를 잠시 괴롭히게 해 주십시오. 그들 모두가 당신을 부인하게 만들겠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시면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신 것도,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자신의 모든 것이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그렇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방에 들어가 서 있었습니다. 성경 한 권, 새 성경을 집어 들고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제게 말씀하실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혹시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그렇게 어머니를 데려가신 이유가 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시려는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 주시겠습니까?” 성경을 집어 들고 그냥 이렇게 펼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손가락을 쭉 넣어서 펼쳤습니다. 마태복음 9장이었습니다. 커다란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소녀는 죽지 않았고 잔다.”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성경에서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제가 성경을 점치는 위자 보드처럼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마음이 너무나 무너져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보게 해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뒤이어 일어난 일이 그것이 옳았음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방에 있었는데, 여덟 시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덟 시, 아니 조금 더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데려오고 있었습니다. 고통받는 아이들만으로 폭이 한 블록, 길이가 두 블록 정도 되는 곳을 채운 것 같았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줄지어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좌석이 높이 올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경기장처럼 아래로 내려갔다가 뒤쪽에서는 다시 올라가 있어서, 맨 뒤에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앞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파란 양복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다. 나는 분명 집 안의 방에 서 있는데, 여기서는 파란 양복을 입고 있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데려오라, 데려오라” 하는 찬송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라, 죄악 세상에서 데려오라” 하고 노래하게 했습니다. 그때 어떤 유명한 부인이 경기장 뒤편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저는 그 부인이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부인은 회중 사이로 앞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계속 “데려오라” 하는 찬송을 인도했습니다. “이쪽에서 ‘데려오라’ 하고 부르십시오. 저쪽에서 ‘데려오라’ 하고 부르십시오.” 이런 식으로 “길 잃은 자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라” 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 몸이 불편하고 병든 어린아이들을 모두 위해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그 부인이 다가와 특별석으로 갔습니다. 극장에서 유명 인사가 앉는 자리나 대통령석 같은 곳, 어떤 곳인지 아시겠지요. 그런 자리가 제 왼쪽에 있었습니다.
막 들어온 그 부인은 거기 있던 다른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보니 옷차림이 조금 옛날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인사하려고 돌아섰습니다. 바로 그전에... 저는 설교하려고 강단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부인이 고개를 숙일 때 저도 이렇게 그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제가 고개를 들고 부인도 저를 마주 보며 고개를 들었는데,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보며 미소 지으셨습니다. 젊은 모습, 아주 젊은 모습이셨습니다. 그때 천둥 같은 큰 음성이 그곳을 뒤흔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를 걱정하지 말라. 그녀는 1906년 때의 모습으로 있다.” 환상이 끝난 뒤 저는 1906년이 어떤 해였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신부가 되신 해였습니다. 이제 저는 어머니가 또 다른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에 속하신 분이라는 것도 압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어머니가 그리울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다정하고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의 늙고 떨리던, 마비로 떨리던 손이 기억납니다. 장례식 때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태버내클에 오셨을 때, 성만찬을 받으실 수 있도록 덜로리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팔을 붙들어 흔들리지 않게 해 드려야 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막 떠나시려던 때에... 참으로 이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바로 그때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네빌 형제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제 아내가 말했습니다. “네빌 형제님을 뵙고 가장 반가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바로 그때였어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그저...”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루시는지요! 히긴보텀 형제님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메시지를 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걸어... 복도 문간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리고 네빌 형제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자녀들을 침상 곁으로 모으고 말했습니다. “자, 모두 둘러서서 네빌 형제님께서...” 어머니는 언제나 네빌 형제님의 기도를 듣기 좋아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듣는 것이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하나님께 이야기하듯이, 신실하게 기도하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귀로 들으신 것은 서서 기도하시는 네빌 형제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형제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저는 한 손을 어머니의 머리에, 다른 한 손을 어머니의 손 위에 얹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몸이 약간 이상하게 움찔하는 것을 느끼고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떠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제 어머니의 혼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치 바람이 방을 스쳐 지나가듯, 하나님을 만나러 떠나셨습니다. 그러니 저편에서 맞을 어느 영광스러운 날, 저는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계신 어머니를 뵐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어머니를 몸이 쇠약해져 떨리던 늙은 어머니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열 명의 자녀를 낳으실 때는 지금과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현대적인 방법도 없었고, 그런 것을 이용할 돈도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는 아침에 아기를 낳고 그날 오후에 빨래를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몸이 다 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편에 있는 그 왕국에서는, 마비로 온몸을 떠는 늙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순간까지 저를 이끄시고 위로하신 일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난 직후에야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환상을 통해 그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는 제가 지지해 온 복음이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역사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제 어머니에게서 보았습니다. 제 아내에게서 보았습니다. 제 형제들에게서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체험을 간직한 채 인생길의 끝에 이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이 보내시는 세계의 어느 곳이든 가서 제가 전할 수 있는 모든 창조물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압니다. 이 생이 끝나면 저편에 또 다른 삶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다시 젊은 사람으로 돌아가, 그분의 임재와 복되심 가운데 영원무궁토록 살 것입니다. 이곳의 소중한 어머니 한 분 한 분과 모든 딸, 모든 아들과 모든 아버지가 주 안에서 죽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라.” 어느 밝은 날, 우리가 가서 그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왜 오늘 아침 여기에 서서 헛되이 설교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엄격한 시험까지 통과한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고난을 통해서든, 어떤 방식으로 닥쳐오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러 갑니다.
이제 모두 앉으실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광고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이 성만찬인 것으로 압니다. 그렇지요, 네빌 형제님? 오늘 저녁은 성만찬 예배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성만찬에 관해 한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교회에 가는데, 택시를 불러 자신을 데리러 와서 교회까지 태워 달라고 해야 했습니다. 아주 가난한 분입니다. 그분은 성만찬에 참여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람이 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웃인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아침 택시 타고 어디 갔소?” “내 생각에는...”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식탁에 빵을 올려놓을 형편도 거의 안 되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성만찬을 해서 참여하러 갔소.” 이웃이 “성만찬이 뭔데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주님의 빵과 포도주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도 그런 걸 먹었는데요. 비스킷을 한 팬 가득 먹고 위스키를 한 쿼트 마셨소.” 자기 식탁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즉시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어느 순간에든 숨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경하게 굴지 마십시오. 경외심 없이 행동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지요. 주님의 말씀을 존중하십시오. 우리가 어느 순간 하나님 앞에 답하도록 부름받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군가 “오늘 저녁에 오실 겁니까?” 하고 묻는다.] 오려고 합니다. 예. 오늘 저녁에 올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할 수 있다면 오늘 저녁 좋은 설교자의 말씀을 들으러 오려고 합니다. 네빌 형제님 말입니다. 저는 성만찬이 있는 저녁에는 매번 오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괜찮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교회와 네빌 형제님도 좋다고 하시면,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일요일에도 다시 이곳에 오고 싶습니다. 괜찮다면 말입니다. 아시겠지요.
저는 제가 드릴 수 있는 힘을 조금도 남김없이, 제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구원으로 이끌 수 있는 모든 혼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셨다면, 우리에게 저편에 대한 그 복된 소망이 없었다면, 오늘 아침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저는 삼십일 년 전, 제 집 바로 아래에서 어머니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드렸던 일을 기억합니다. 바로 제 집 아래쪽 강에서였습니다. 어머니가 물에서 올라와 저를 껴안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언젠가 저희가 어머니를 진흙 무덤에 모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나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머니 외에는 단 한 혼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했다고 해도, 제가 기울인 모든 수고는 백만 배로 보답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읽을 성경 본문이 두 군데 있습니다. 먼저 한 곳을 읽고 기도한 다음, 다른 한 곳을 읽겠습니다. 함께 읽기를 원하시는 분은 성경에서 사도행전 1장을 펴십시오. 주님의 뜻이라면, 오늘 아침의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기에는 말씀드릴 성경 구절과 메모가 많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붙들어 두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방에 앉아 공부하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 생각에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주시지 않으면...
이 회중 모두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저 모습을 보이려고 이곳에 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목사님이 필요해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우리 목사님이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님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제가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메시지를 제 마음에 주셨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어떤 말씀 말입니다. 저는 우리의 귀한 목사님과 함께,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시간을 모아 아껴 쓰고, 구원할 수 있는 모든 혼을 구원하는 데 바칩니다. 오늘 아침 제가 온 것도 성령께서 교회에 도움이 될 메시지를 제게 주셨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오 데오빌로여,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기 시작하신 모든 일에 관하여 내가 작성한 이전 보고서는 그분께서 친히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해 명령들을 주신 뒤에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 그분께서 수난을 받으신 뒤에 또한 그들에게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자신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시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시고 또 그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느니라.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는 너희가 내게서 들었나니 이는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않아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왔을 때에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 다시 회복시키려 하시나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그것들은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더니 그들이 또한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것처럼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오시리라, 하니라.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와, 먼저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그 복된 확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죽음에서 구원받고, 지옥에서 구원받고, 죄의 삶에서 구원받고, 세상의 것들에서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큰 혼인 만찬에 부름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주님, 이 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요!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아침 우리가 모인 것은 찬송과 감사와 말씀을 전하는 일을 통해 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떼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소원과 바람과 뜻은, 오늘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주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와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죄를 고백함으로 죄들의 사면을 받고, 침례를 받아 자기 죄를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성령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병들고 고통받고 궁핍한 모든 사람을 기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참으로 온 세상이 궁핍한 처지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보호와 피난처로 삼아 주님께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성경에서 백성이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때 선지자들을 불렀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 당시 많은 유력자들은 선지자들을 신경증 환자나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요. 그들은 우리에게 마지막 때와 장차 있을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증언을 살펴보게 하시고, 아버지, 그다음에는 세상에 증언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 있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옵소서. 주님, 피곤하고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다니면, 건강할 때처럼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음을 우리가 압니다. 또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압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피곤하고 지치고 쇠약해지고 약해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속 주님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동안, 주님, 그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다시 말씀을 펴서 요한복음 3장을 찾아 주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문맥을 조금 살펴보기 위해 요한복음 3장 31절부터 몇 절, 세 절 정도 읽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 31절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그분께서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그것을 증언하시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시다는 것에 자기 도장을 찍었느니라. 33절을 강조하기 위해 그 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시다는 것에 자기 도장을 찍었느니라. 오늘 아침 주제로, 여러분이... 저는 “참된 증인의 간증”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간증과 증인입니다. 그래서 두 곳의 다른 성경 구절을 읽었습니다. 한 곳은 증언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한 곳은 증인에 관한 것입니다.
이제 간증이라는 것은... 사람은 체험이 있어야 간증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 불려 가면... 증언하려면, 먼저 알고 있는 것이 있어야 증언할 수 있습니다. 증인은 어떤 일을 직접 보아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증언하러 불려 갑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누가 저에게 이러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인이 직접 증인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현장의 증인이 될 수 있는 다른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회중 가운데서도 보듯이 생명은 참으로 연약하고, 반면 죽음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이것이 옳다는 것을 확고하게 아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이것은 그저 되는대로, 우리가 흔히 말하듯 대충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마지막을 맞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자의 안전에 관해 칼빈주의적인 생각을 갖는 한 가지 이유는 이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정신이 온전할 때가 주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때 한 번으로 영원히 모든 것을 확정해 놓아야 할 때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길의 끝에 이르면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병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신에 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열이 나서 뇌가 익어 버릴 지경이 되면,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할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닻을 내렸다면, 어떤 병으로 죽든지, 어떤 상태로 떠나든지, 그것은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죽는 날이 아니라 구속의 날까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죽음을 지나고 나서도 여러분은 여전히 봉인되어 있습니다.
이제 증언하는 일에 관해... 사람들의 생각에는 많은 일과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제게도 있었습니다. 몇 주 전,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고 들으실 수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침상 한쪽에 서 있었고 여동생이 제 곁에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올려다보시더니 “내 첫째와 막내구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맏아들이고 덜로리스는 막내입니다. 그 사이에 아홉 아들이... 아니, 아들이 아홉이고 딸이 하나입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빌, 네가 내 먹을 것을 대 주고 나를 돌보아 주었지.” 제가 사역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럴 형편이 좀 더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덜로리스, 너는 나를 사랑해 주고 집안일과 빨래를 도와주었지.” 또 말씀하셨습니다. “빌, 너는 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영적으로 돌보아 주었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말하며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지.” 저는 “그리고 어머니, 저희가...” 하고 말했습니다. 아들들 가운데 술을 마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리, 그 모든 것이 모여 큰 바퀴를 이루는 거란다.” 저는 “어머니...” 하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실 줄 아셨습니다. 적어도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이플가 409번지 집으로 말입니다.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하나님이 계신 줄 알았습니다. 여러 모습으로 그분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 우리 집안에서...” 우리는 저 위 유티카 파이크에 있는 웨이든 씨 집 옆에 살았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분들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큰 권능을 교회에 주셨고,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너희가 무엇을 하든 다 괜찮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믿는 이들의 조직된 단체가 거의 구백 개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교회에 자신의 권위를 주시며 ‘이 말씀은 그냥 버려도 된다. 너희에게는 필요 없다. 그건 그저 역사일 뿐이다. 이제 너희가 나서서 행하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하든 다 괜찮다. 성경이 아니라 교회, 교회가 하는 말이 기준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면, 어머니, 저는 믿음을 둘 근거가 없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렇게 말하고, 루터교회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감리교회는 ‘아니다, 둘 다 틀렸다.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침례교회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구백 가지나 되는 서로 다른 믿음에 저는 믿음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가르쳤던 바로 그 방식대로 가르쳤습니다. 조금도 다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라고 말한 곳에서는 저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성령 침례’라고 말한 곳에서는 저도 ‘성령 침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쳤던 그대로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그랬더니 그들에게 나타났던 것과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과 함께 오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때 그들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오늘 우리에게도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들에 내가 그를 다시 일으키리라.’” 말씀은 하나님의 증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불러 세울 수 있는 다른 증인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나무를 생각해 봅시다. 한 해의 가을이고, 이제... 지금은 가을입니다.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듭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명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다시 태어났다면 생명나무에 달린 잎입니다. 이 바깥 숲에서 보는 나무는, 마침내 생명이 잎에서 떠나 물러납니다. 그 잎의 계절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잎을 떠나면, 생명이 떠난 그 잎은 떨어집니다. 지금 창밖을 내다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잎을 떠나자마자 잎은 떨어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묻는 몸입니다.
그러나 그 잎 속에 있던 생명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나무를 타고 내려가 뿌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계절이 올 때까지 나무뿌리 안에 머뭅니다. 이번 계절에는 태양이 기울어 멀어진... 아니,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기울었고, 궤도를 따라 돌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추운 날씨가 지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뿌리는 지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잎의 생명을 간직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 잎이 다시 나오는 것을 막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태양이 돌아오는 것만큼 확실하게 잎도 돌아옵니다. 다시 나옵니다. 다만 다시 나오려면 다른 계절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증인으로서 위대한 증언을 해 줍니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계절에 있을 때... 자녀를 기르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이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삶, 곧 그 삶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났다면, 몸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왔던 곳으로 내려... 아니, 올라갑니다. 영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계절이 올 것입니다. 다가올 그 계절은 죽지 않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날개들 안에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떠오르실 때, 그 몸들을 더 이상 땅속에 붙잡아 두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광채 가운데 나올 것입니다. 자연 그 자체가 그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고 영으로 태어났다면, 죽음은 우리에게 승리밖에는 줄 것이 없습니다. 사탄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 낡고 썩을 몸이 땅의 흙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계절이... 지금은 그 계절이 아닙니다. 지금은 죽을 수밖에 없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죽지 않으시는 분이 오실 때 죽지 않는 계절이 올 것입니다. 그분은 땅에서 자신에게로 돌아온, 죽지 않는 영들을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그들은 위대한 천년왕국을 위한 부활 때에 다시 나와 그분의 영광 가운데 빛날 것입니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증언합니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올라 생명의 시작을 보여 줍니다. 하늘을 건너가 저녁에 집니다. 아침이면 새들이 깨어나 노래하며 기뻐합니다. 우리도 상쾌합니다. 저녁에 해가 지면 우리는 피곤합니다. 그것은 삶이 있고 죽음이 있음을 증언합니다. 하루가 태어났고,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나무가 살았고, 잎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생명을 나무뿌리에 보존하셨습니다. 생명이 처음 시작된 그 뿌리에서 나와, 그늘을 만들어 줄 잎들을 맺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쉬었다가 다른 계절에 나오기 위해서입니다. 작은 꽃 속의 생명은 씨앗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씨앗 속의 살이 다 없어지고 씨앗이 땅속에서 썩어 버릴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다시 부활하기 위해 감추어진 생명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말합니다... 증언합니다.
저는 세계 곳곳을 많이 여행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여러 종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 견해를 들었습니다. 이슬람교와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아, 수백 가지나 되는 종교적 견해와 신들과 여신들, 그런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그 어느 것도, 단 하나도 진리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그리스도교가 올바른 종교입니다. 죽음과 장사와 부활입니다. 온 자연, 하늘 자체와 땅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자기 백성에게 보여 주시는 증거입니다. 계절이 하나하나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진리입니다. 그것이 자기 증언을 합니다.
또 그것은 위대한 지고의 지성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목적이 있어서 여기에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무를 꼭 그렇게 만드셔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나무들은 서로 다르고 그렇지만, 그분은 자기 목적을 위해 그 모든 것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증인이 되고 증언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그분은 나무를 전혀 다른 어떤 것처럼, 바위처럼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원하시는 어떤 모습으로든 나무를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꽃도 원하시는 어떤 모습으로든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증언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시다는 참된 증인입니다. 죽음과 장사와 부활은 우리가 영원히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산다는 증언을 합니다. 지고의 지성을 보여 줍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물론 너무 오래 하지는 않으려 합니다만, 다시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어떤 틀에 맞추려는 것은... 여기는 우리 나름의 가르침과 교리가 있는 태버내클입니다. 이곳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그 지성이 드러나는 또 다른 점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보셨습니까? 처음에는 뿌리, 두 번째는 줄기, 세 번째는 열매입니다. 그것으로 완성됩니다. 칭의는 뿌리이고, 성화는 줄기이며, 열매는 본래의 씨앗입니다. 그것이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성령 침례입니다. 칭의와 성화와 성령 침례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증언합니다. 바로 여기에도 그것을 증언하는 여러 가지에 관해 말씀드릴 수 있도록 열두 가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자연적인 것들을 보면, 그것들이 영적인 것들을 증언합니다. 칭의는 뿌리이고, 성화는 줄기이며, 성령 침례는 뿌리와 줄기의 결과로 맺히는 열매입니다. 그 뿌리는 씨앗에서 나왔습니다. 그 씨앗은 땅속에 들어갔던 것과 같은 씨앗입니다. 그것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루터의 시대를 거쳐 살았고, 웨슬리의 시대를 거쳐 살았으며, 이제는 구속된 오순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순절 날 심겼던 바로 그 교회, 바로 그것을 다시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자연 자체가 이것을 증언합니다.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증언하는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아,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증언들에 대하여 말입니다.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기만 한다면,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이 날마다 증언하시는 것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그렇게 단순한 것들에 고의로, 무지하게 걸려 넘어집니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우리에게 설교합니다.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우리에게 설교합니다. 정원마다 우리에게 설교합니다. 온 세상이 우리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의로 거기에 걸려 넘어지고, 이런 것들을 다른 것과 바꾸며, 우리의 눈과 생각을 이런 것들에서 돌려 세상의 헛된 것들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둔 영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 영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온 자연, 모든 곳이 증언합니다. 하늘들, 창공, 수많은 것들이 말입니다. 어제 서재에 앉아서 적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다 말씀드릴 시간은 없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그분의 영광을 증언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증언하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며, 위대한 지고의 지성을 보여 줍니다.
저는 산꼭대기에 서서 이만큼밖에 자라지 않는 작은 가문비나무를 보았습니다. 양들, 야생 양들이 먹는 나무입니다. 산 위쪽에 그 작은 가문비나무가 있는 것을 봅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솔송나무 지대가 나옵니다. 성질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른 종류입니다. 좀 더 내려가면 소나무가 나옵니다. 좀 더 내려가면 사시나무가 나옵니다. 그곳을 지나면 벅부시 같은 관목과 덤불이 나옵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풀이 나오고, 그 아래로 가면 잡초가 나옵니다. 더 내려가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 나옵니다... 하나하나 자기만의 세포와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환경과 사는 곳에 관해 말해 줍니다. 오직 지성을 가지신 하나님만이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개별적인 생명입니다. 플로리다의 야자나무를 보십시오. 아메리카 중부의 참나무를 보십시오. 로키산맥의 사시나무를 보십시오. 하나하나 별개의 생명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증언합니다.
큰 바닷가에 서서 바다를 보십시오. 성난 물결이 해안에 부딪치며 얼마나 사납게 솟구치고 뛰어오르는지, 사슬 끝에 묶인 성난 개와 같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할 것입니다. 세상의 죄에 진저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 달이라는 파수꾼을 세우시고, 바다가 더 이상 넘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그 파수꾼은 밤낮으로 바다를 지킵니다. 그가 등을 돌려 하나님 쪽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어떤 모습이신지 보려고 하면, 밀물이 슬그머니 밀려옵니다. 그러나 다시 얼굴을 돌리면 물이 물러갑니다. 그가 경계를 지키고 있어서 바다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가 등을 돌리면 물이 슬쩍 밀려들지만, 다시 얼굴을 돌리면 물이 도로 빠져나갑니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두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합니까? 창세기의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께서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증언합니다! 그분이 계시다는 증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몇 사람 더 불러, 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어떻게 증언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9장, 이사야 9장 6절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수백 년, 수백 년 전에 선지자들이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도다.” 하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알 수 있었습니까? 일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사람이 어떻게 일어날 일을 정확히 말할 수 있었습니까?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도다.”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어디서 태어나실지도 말했습니다. 선지자는 영감을 받아 말했습니다. “유대의 베들레헴아, 네가 모든 통치자들 가운데서 가장 작지 아니하냐? 그러나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오리라.”
무엇이 그 선지자들에게 임했습니까? 무엇이 그처럼 완벽하게 정확한 영감을 주었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은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도 말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분이 태어나시는 모습,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실지까지 보았습니다. 보통 아기, 그저 어떤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신비로운 방식으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 무슨 일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일어나야, 일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그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완벽하게 정확하고,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지고하신 존재,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야말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그분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실지도 말했습니다. 세상이 그분에 관해 무슨 말을 할지도 말했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입증하기 위해 그분을 따를 바로 그 표적들과 일들을 말했습니다. 그분이 배척당하실 것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분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영 안에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하실 말씀을 신음하며 말했습니다.
영 안에 있던 다윗... 저는 이것을 이렇게 말하기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서 “어찌 다윗이 영 안에서 그를 주라 불렀느냐?” 하고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다윗이... 그냥 “다윗”이 아니라 “영 안에 있는 다윗”입니다. “다윗”과 “영 안에 있는 다윗”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와 영 안에 있는 교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다윗의 아들이라면, 어찌 다윗이 영 안에서 그를 주라 부르며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고 말하였느냐?” 그들은 더 이상 물을... 그분께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더는 질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영에, 그 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신음하며 하실 말씀까지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 모든 뼈가 나를 노려보나이다!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 또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여기서는 다른 선지자가 나옵니다—“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 선지자들의 정확성과 완전함은... 그들이 그분에 관해 한 말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분에 관해 주어진 마지막 일곱 예언은 십자가 위에서 보내신 마지막 일곱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말씀이 성취되었고, 이루어지지 않고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지고의 지성을 말해 줍니다. 그 사람들 자신이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이나 저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고하신 존재에게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증언하신 것은, 이 세대의 우리와 앞으로 올 세대들과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세대가 그분의 말씀을 보고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증언입니다.
그분의 모든 일은 완전합니다. 완전하며 정확한 때에 이루어집니다. 한 시간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는 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더 빨리 이루어질 수도 없었고, 더 잘 이루어질 수도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완전하며 정확한 때에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런 환상들이 이루어지고, 미리 알려 주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언제 성취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이 완전하고 정확한 때에, 꼭 맞게 이루어짐을 알게 됩니다. 제가 늙고 떨리는 모습으로 보았던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께서 환상을 주셔서 어머니가 지금 어떤 상태에 계신지 보게 되었을 때,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어머니가 다시 사실 줄 압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으셨습니다. 잠들어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난번 제가 여러분의 강단, 이곳 강단에 섰을 때, 북쪽으로 가는 일과 거기서 일어날 일에 관해 주님께서 주신 환상을 말씀드렸습니다. 산을 내려오던 그 형제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서 저 아래까지 반 마일 사이 어딘가에 털끝이 은빛인 회색곰이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런 곰은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기 도착하기 전에 그 곰을 얻게 되신다는 겁니까?” 저는 “그분이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꼭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왜입니까? 그분께서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모든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며, 그분의 증언들은 참됩니다. 그분은 증인이 되시고, 그 증언이 그분이 증인이심을 입증합니다. 그것은 지성을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이 행하신 모든 권능의 일은 그분의 주장을 증언했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의심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그 일들을 믿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네가 스스로를... 사람이면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구나.”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을 수 없거든 그 일들을 믿으라. 그것들이 하나님의 증언들이며, 내가 말한 바로 그 존재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나를 믿을 수 없거든 내게 따르기로 되어 있는 표적들을 믿으라. 메시아가 이런 일들을 하게 되어 있지 않으냐?” 그분은 무엇이셨습니까? 증언이셨습니다! 그 일들은 그분이 하신 모든 주장을 입증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곁에 서 있었고, 마르다의 형제는 죽어서 무덤에 있었습니다. 부패가 시작되어 몸이 상했고, 무덤 안에서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벌레들이 이미 몸속으로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살을 파먹는 벌레들이었고, 얼굴은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예,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이제 내가 말한 바로 그 존재임을 네게 보여 주겠다. 그것을 증언하겠다. 내가 주장한 그대로의 존재임을 입증하겠다. 너희가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
그러자 그분은 인간적인 면을 보이시며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그분은 웃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십니다. 승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승리하십니다. 그분께서 계속 승리하시게 합시다. 그분이 무덤에 가셔서 서 계실 때 사람들이 돌을 굴려 치웠습니다. 그 안에는 그 작은 몸이 누워 있었습니다. 벌레들이 생기고 부패한 채 땅 위에 누워 있었고, 부패가 진행되어 얼굴은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그 사람이 제 발로 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던 모든 주장을 입증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이상이셨습니다. 아들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성막이셨습니다. 두 번째 위격으로는 그런 권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어 묻힌 지 나흘이 된 사람의 생명을 다시 불러오려면 하나님 자신이셔야 했습니다. 그분 자신이 행하신 일들이 그분의 모든 주장을 증언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의 증언, 자연의 증언, 자연이라는 증인, 선지자들이라는 증인, 예수님이라는 증인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증언할 증인이 없도록 내버려 두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언제나 증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내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이 증인, 이 죽지 않는 영원한 증인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여자에게서 태어나셨으므로 썩으셔야... 아니, 죽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몸이 썩음을 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처럼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떠나시기 전에 우리에게 증인, 성령을 남겨 주셨습니다. 오랜 옛적부터 여러 시대에 걸쳐 거의 모든 선지자가 마지막 날들에 교회에 임할 이 위대한 증인에 관해 말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증인, 성령에 관해서 말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증인이십니다. 그분은 증거이십니다. 그분은 인이십니다. 그분은 진정한 권리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에 대한, 양도 이력이 첨부된 등기권리증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삽니다. 그분은 참됨을 보증하는 선언이십니다. 이런 분이 마지막 날들에 오셔서 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이곳에 오실 것을 자기 백성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거의 모든 선지자가 그분의 오심, 곧 성령의 오심을 증언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팔 세기 전에 브두엘의 아들 요엘이 그분의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팔백 년 전이었습니다! 신경증이 있고 제정신이 아니며 신경이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선지자, 이 위대한 브두엘의 아들이 예언했습니다. 요엘 2장 2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하며... ... 내가 내 영을 내 여종들과 하녀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하리라. 또 내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서 이적들을 보이리니, 표적들과 불기둥과 연기와 수증기니라. 그리고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위대한 증인이 오시기 팔백 년 전에, 브두엘의 아들은 그것을 증언하고 예언했습니다. 무엇이 그 작은 사람에게 임했습니까?
“여자에게서 태어나 날수가 적고 괴로움이 가득한” 사람에게 무엇이 그런 것을 알려 줄 수 있는지 말해 보십시오. 사람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무엇이 그 사람의 가장 깊은 속을 움직여, 공간과 시간을 꿰뚫어 보고 마지막 날들에 이 위대한 증인이 교회로 오시는 것을 보게 할 수 있는지 말해 보십시오. 무엇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말해 보십시오. 지성을 가지신 지고하고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임하셔서 말입니다. 욥기 14장이 말하듯, “여자에게서 태어나 괴로움이 가득하고 날수가 적은 사람”은 “꽃과 같이 나와서 꺾이며, 참으로 소멸되고, 영을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위대하고 강력하신 하나님의 영, 그분의 지성이 임하여 모든 장벽과 시간을 뚫고, 그분의 영으로 내려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면 무엇이 증언입니까?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씀하실 수 있고, 아멘, 일이 일어나기 전에 보실 수 있고, 지성과 완벽한 정확성으로 미리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언이 아니라면 무엇이 증언입니까? 무엇이 이보다 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잘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분은 증인이십니다.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요엘이 예언한 지 칠십오 년 뒤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교회에 오실 이 위대한 증인에 관해 예언했습니다. 제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까? 증인, 참된 증인, 진짜 증인에 관해서입니다. 자연과 선지자들과 성경을 통해 그분을 따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주어지실 날에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요엘이 예언한 지 칠십오 년, 대략 칠십오 년 뒤에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예순여섯 장 안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전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한 책인 성경 안에 예순여섯 권의 책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는 창세기의 창조로 시작하여 천년왕국으로 끝맺었습니다. 이 위대한 사람은 성령의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돌아가서 읽어 봅시다. 저는 이사야 28장 11절을 적어 두었습니다. 잠시 읽고, 성령의 오심에 관해 여기서 무슨 말을 했는지 살펴봅시다. 이사야 28장, 5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날에 군대들의 주께서... 영광의 왕관이 되시며... 그는 증인이 오실 이 위대한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왕관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왕관이 되어 주십니다! ... 자신의 백성 중에서 남은 자들에게는 영광의 왕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왕관이 되실 것이요, 남은 자들, 남아 있는 백성입니다. 그분은 관이 되시고, 영광의 왕관이 되시고, 아름다운 왕관이 되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일이 일어나기 칠백 년 전입니다. ... 재판하려고 앉는 자에게는 판단하는 영이 되시며 그분께서 제단에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 싸움을 돌려... 성문을 향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힘이 되시리라. (어디 봅시다.) ... 싸움을 돌려 성문을 향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그분을 위해, 그분과 함께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언된 이 위대한 영, 성령은 전투 중 성문에 서 있는 사람의 힘이 되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의지합니다. 교양을 의지하지 않고, 교육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강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교회는 엄숙히 그 말씀에 의지합니다. 그분은 성문에 서 있는 사람의 힘이 되실 것입니다. 그의 신학적 배경이나 교단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의 힘이 되실 것입니다. 그가 성문에 서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는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이방의 적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도주로 인해 잘못을 범하였고—이제 들으십시오—독주로 인해 길에서 벗어났도다. 그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대언자들이 독주로 인해 잘못을 범하고 포도주에 잠겼으며 독주로 인해 길에서 벗어났도다. 그들이 환상 계시 면에서 잘못을 범하고 재판할 때에 걸려 넘어지나니. 다시 말하면, “환상”에 관해서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판단”에 관해서는 “아, 교회에 가입만 하면 괜찮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술 취한 무리입니다. 선지자가 한 말을 보십시오. 여기 하나님의 증인이 있습니다. 모든 상이 토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여 깨끗한 곳이 없도다. 깨끗한 곳이 없습니다. 그 상들이... 술꾼과 창녀들이 들어와서는, 흰 빵 한 덩이를 가져다 잘라서 성만찬을 합니다. 깨끗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함께 먹습니다. 토한 것입니다! 상들이 토한 것으로 가득합니다.
그분께서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시려는가?—그런 날에 말입니다—그분께서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하시려는가? 그들이 자기 나름의 신학적 경험과 의지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누구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 그것은 다른 곳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들의 상은 토한 것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지고한 지성이 그를 통해 말씀하시는 이 선지자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 하시리니.—교회의 아기들이 아닙니다! 이는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이제 그는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말씀이 “다시 태어나라” 하는데 “악수하라” 하지 마십시오!
...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며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고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되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하리니,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할렐루야! 더듬는 입술로, 중얼거리는 소리입니다. 어쩌면 회중이 경건하고 조용하게 앉아 있을 때,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 중얼거리는 소리를 알아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성령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듬는 입술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은 안식이니... 이제 일곱째 날을 지키는 재림교 형제님들, 이것은 어떻습니까? ... 이것은 안식일입니다. 이것은 안식이니 너희는 이것으로 피곤한 자를 안식하게 하라... 하나님, 이 말씀을 붙들고 성문에 서서 그것을 증언할 용감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 이것은 안식이니 너희는 이것으로 피곤한 자를 안식하게 하라... 이것은 상쾌하게 하는 것이니라, 하셨으나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으며. 슬픈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흔들고,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대로 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보내실 것이며, 그 영이 교회에는 영광의 왕관이 되고 성문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힘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것이 성령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이것은 안식이며 상쾌하게 하는 것이니라.”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조직과 자기 교단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토한 것으로 가득한 상과 세상을 계속 좇았고, 세상의 쾌락에 뒤섞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진리에서 돌아서서 세상의 것들로 향하며, 주님의 집을 가증하고 더러운 곳으로 만듭니다. 그곳에서 춤추고 파티를 열며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여자들은 단정하지 않은 옷과 반바지를 입고,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하며, 그런 온갖 일을 합니다. 성경이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이사야는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5장과 6장입니다. 읽어 보십시오. 마지막 날들에 여자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증인들은 참됩니다. 그들은 자기를 구원할 하나님의 권능 대신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했습니다. 그것은 요엘 이후 칠십오 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 삼십 년 뒤에... 여기 다른 선지자들도 몇 사람 적어 두었습니다만,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 삼십 년 뒤에 선지자들 가운데 으뜸인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 침례자 요한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앞서 가는 자였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다시 있을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아무 바람에나 흔들리는 갈대, 어떤 교단이든 이리저리 돌려놓을 수 있는 자냐? 요한은 그렇지 않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러 갔느냐? 어떤 정신과 의사를 곁에 두고 옷차림을 이렇게 저렇게 맞추며 어떻게 입어야 할지 조언받는 높은 사람이냐?”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은 아기들에게 입을 맞추고 왕궁에 머물며 공립학교에 가서 연설하는 자들이다. 그는 전사가 아니고, 최전선에 나가 있지도 않으며, 양날 선 검을 다룰 줄도 모른다. 보라,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그런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선지자냐?”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다.”
양가죽 한 조각을 몸에 두르고 숲의 풀을 먹으며 살아가는, 이 위대한 으뜸 선지자의 말을 들으십시오. 할렐루야! 신학교에서 쌓은 경력이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한 체험이 있었고, 그 일을 하려는 목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이 그가 올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요르단강 둑으로 나와 진흙에 발을 디디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아버지로 있다.’ 하는 바리새인들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다.” 선지자들 가운데 으뜸인 그 사람은 메시아를 소개하는 특권을 누렸고, 메시아의 표적을 보았으며, 그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분 위에 임할 때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의 증인이었습니다. 그가 그것에 관해 무슨 말을 했습니까? 여기 그 선지자가 증인으로서 한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강력하시므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곧 손에 키를 들고 친히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넣으시되 껍질은 끌 수 없는 불로 태우시리라.
그는 교회를 위한 증인,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참으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준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물로 침례를 줄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다! 나는 물로 이 증언을 하지만, 더 큰 것을 보내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또 다른 증인을 보내실 것이다. 물이 아니라 영이다!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서 모든 교회 회원 자격을 벗겨 내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참된 증인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계신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고,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준비하라. 그때가 가까웠다.”
그 위대한 으뜸 선지자,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였습니까... 그가 예언한 지 삼 년 뒤, 우리 주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 지상 사역을 마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성령이 오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분을 보내겠다. 잠시 후면”—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싶으시지요—“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역의 마지막에, 지상 사역이 끝났을 때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입니다. “보라, 내가 이 증언들이 말해 온 약속을 보낸다. 이사야가 말했던 약속을 보낸다. 요엘이 말했던 약속을 보낸다. 모든 선지자들이 말했던, 아버지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보여 주셨던 그 약속을 보낸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을 너희 위에 보낸다.” ...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예루살렘 시에서 기다리라... 설교도 멈추고, 노래도 멈추고,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시에서,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라.
어떤 증인이 될 것이었습니까? “이십 년 동안 고등학교나 신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까? “문학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까? “혹시 그분이 너희를 선교지로 부르시면 그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외국어를 배울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높은 곳으로부터 권능이 오게 하라. 권능이 오면 스스로 모든 것을 처리할 것이다. 권능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라.” 오 하나님, 왜 사람들이 이것을 보지 못합니까? 교회에 가입하는 일이 아닙니다. 권능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라. 내가 그분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내가 그분을 보내겠다. 내가 증언하겠다! 그분이 오시면 증언하실 것이다. 자기 자신에 관해 말씀하시지 않고 나에 관해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 보십시오.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이것들을”—어떤 신학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무엇입니까?—“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이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게 하실 것이다. 너희의 신학교 경험은 다 잊어버릴 것이다. 너희는 내가 가르친 이 말씀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분이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실 것이다. 또 한 가지를 더 하실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그분이 참된 증인이십니다.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십니다. “이 성령은 복음을 너희에게 되돌려 주실 것이다. 비록 거의 이천 년 동안 버려져 있고, 사람들이 사람이 만든 신학으로 그것을 짓밟는다 해도,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다시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실 것이다.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너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행하실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내겠다.”
오순절에 그것이 임했을 때 그들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증인입니다. 말씀하신 이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증인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 제 안에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납니다. 그들은 거기 서서 “우리는 그분의 증인입니다. 우리에게는 학위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개종자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름난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굳고 뻣뻣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그들에게서 벗겨졌습니다. 자기 힘으로 서 있던 시몬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뻣뻣했던지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했습니다. 곳곳에서 교회들을 박해하던, 자기 힘으로 서 있던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날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서 그분, 성령을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베스도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저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분의 증인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오순절에는 세 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선지자들의 말씀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이 한 가지 증거였습니다. 선지자의 메시지가 성취된 것입니다.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그들에게 더듬는 입술이 있을 것이며, 다른 언어들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것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세 가지 증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증인은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저 위의 방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너무 소심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분이 떠나가신 줄 알았고, 주변에 있는 이 대단하고 위엄 있는 무리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들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무슨 감정적인 소동이라도 일으킬까 두려워 그 일에 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자기 힘으로 세워진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너무 큰 소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합니다. 뭔가 잘못된 일을 할까 두려워합니다. 아, 자기 힘으로 서서 스스로 만족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순절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 성령의 오심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므로 그분의 증인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자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노라. 지금은 낮 세 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히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니,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하신 것이라. 우리가 지금 성령으로 충만하므로, 선지자의 말씀이 참됨을 증언하노라!” 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이 일억 칠천만 명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오순절입니다! 돌아가서 이십오 년 동안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시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언 때문에 밧모섬에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어 있었습니다.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자신이 계셨습니다! 이렇게 셋입니다. 성경은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이 확정되게 하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신학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만든 제 모든 전통을 잊어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체면을 벗어 버렸습니다. 그저 성령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똑바로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정신이 온전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저를 교인이 아니라 증인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영을 제게 부으시고 저를 채워 주옵소서.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것이 없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빈혈에 걸린 것처럼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증언하시며 “그렇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으려고 학교에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어부와 농민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보통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즐겁게 듣더라.” 하고 말했습니다. 불량한 무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 인사들도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받았다는 증인입니다. 우리는 우리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저들의 말을 알아듣는가? 저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가?” 갈릴리 사람들은 가난한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어떻게 저 갈릴리 사람들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가?” 성령에 관해 증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입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이것이 안식이라.” 입증하는 증언, 증인입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물론입니다. 세 증인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선지자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선지자들은 자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넣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여기 앉아서 바라보니 저쪽에 노르웨이 의사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기도를 받으려고 노르웨이에서 여기까지 멀리 오신 의사 선생님입니다. 며칠 전 저녁, 우리가 함께 앉아 개인 면담을 하는 동안 성령께서 방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어떤 말씀이 나올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는 그분의 삶을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셨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 때까지 거슬러 가서, 그 일에 관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그 모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에게 그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께서 증언하신 것입니다!
여기 또 다른 한 형제가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파머 형제님의 교회에서 보낸 분입니다. 몹시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었습니다. 참 좋은 형제였습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 형제를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파머 형제님은 제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힘든 시기인 줄 압니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시면 그를 만나 주십시오. 좋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그를 보낸 것입니다. 그는 면담을 받았습니다. 거기 앉아 있을 때, 그의 생각 깊은 곳에 있던 그 큰 문제를, 그가 아무 말도 꺼내기 전에 성령께서 깊이 들어가 붙잡아 끌어내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기뻐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증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윌리엄 브래넘을 통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아멘. 그것이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쪽에 앉아 있는 히긴보텀이라는 이 형제가 왜...? 이 교회의 집사였고, 임기를 마친 지금은 신실한 교인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한 것으로 압니다. 그 성령께서 왜...? 오늘 아침 통역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전하게 하려고 내 종에게 기름을 부었노라.” 아! 저는 여기 고개를 숙이고 서서 그 말을 들으며 가슴에서 치미는 눈물을 억눌렀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전할지 그에게나 다른 누구에게나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강단으로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서 주제를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리라.” 하셨습니다. “내가 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그를 많은 나라와 많은 민족에게 보냈노라. 오늘 아침 내가 너희에게 말하리니 주의 깊게 들으라. 내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오 하나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십니다. 무엇입니까? 사람 안에 장막을 치고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무엇입니까? 교회 여러분, 그래서 저는 울거나 떨거나 방언을 하거나 어떤 감각을 느끼는 것을 성령 침례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좋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런 일들은 좋지만, 마귀도 너무나 진짜처럼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자신, 사람 안에 장막을 치고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감각을 느끼는 것 이상이며, 방언하는 것 이상이고, 성령 안에서 외치는 것 이상이며, 우는 것 이상이고, 교회에 가입하는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람 안에 장막을 치고 거하셔서, 그 사람이 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최초의 사도 교회는 그렇게 전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리스도 이후 약 2세기 무렵 초기 가톨릭교회에서 조직을 만들고 사람의 철학을 가르치면서 우리의 교단 조직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가 거기서 멀어져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가입합니다. 제 말을 들으십시오. 오늘 아침 히긴보텀 형제님이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히긴보텀 형제님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사랑이 많고 아주 상냥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아주 상냥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아, 제가 뜻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적절한 말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양에게 털을 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올해 털을 좀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양이라면 양이기 때문에 털이 납니다. 양이 “자, 나는 양인 것 같으니 서둘러야겠어. 주인에게 드릴 털을 좀 마련해야 해.” 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인 한 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만들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꾸며 낸 경건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 이러면 안 되지. 나는 그리스도인인 줄 아니까.” 아, 형제님,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은 신실합니다. 문제는 약한 강단, 약한 학교, 약한 신학교입니다. 사람의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이제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최초의 교회와 얼마나 다릅니까. 할렐루야! 얼마나 다릅니까! 그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와 죽음에서 자신들을 해방한 힘,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이름뿐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불타고 있었고, 그 사랑은 그들을 죽음의 자리로까지 가게 했습니다.
며칠 전 저녁, 제 딸 베키가 제게 『검투사들』을 읽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빠, 이것 좀 들어 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죄송하지만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로마 경기장에서 싸우는 검투사로 내던져졌습니다. 저는 그 경기장에 서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벽들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앉아... 그것을 보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검투사들은 서로를 죽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옛날에는 그저 서로 맞닥뜨려 서로를 죽였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반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보여 준 아주 초기의 표적 가운데 하나는, 사람을 죽이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칼로 찌르는 것 말고도 많습니다. 그의 인격을 헐뜯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검투사에게 사자 한 마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힘과 권능으로 검, 곧 칼을 가지고 사자를 죽였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용맹했습니다. 사람들이 일어섰습니다. 또 한 마리를 풀어 놓았고, 그는 검으로 그것도 죽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 하나를 내보냈습니다. 몸집이 크고 키가 아주 크며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 이교도였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은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그와 싸워야 했습니다. 싸우다가 그는 아프리카인을 쓰러뜨렸고, 당연히 그 위로 검을 치켜들었습니다. 아프리카인이 말했습니다. “고통받지 않도록 빨리 죽여 주시오. 괴롭히지 마시오. 빨리 죽여 주시오!” 그리스도인은 검을 내던지고 갑옷을 벗은 뒤 황제 앞으로 걸어 나가 말했습니다. “황제여,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의 주님이시며 구주께서는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금하십니다. 저는 야수의 생명은 빼앗겠습니다. 그러나 제 형제의 생명은 빼앗지 않겠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이기를 거부합니다.”
로마의 모든 황제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검투사 노예가 로마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냐?” 그리고 그 사람에게 외쳤습니다. “일어나 저 검을 집어 들고 그를 죽여라!” 그는 벌떡 일어나 그리스도인의 검을 집어 들었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두 팔을 벌렸습니다. 그 사람은 검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검이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습니다. 피가 쏟아져 나오고 폐에 차면서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큰 칼이 폐를 꿰뚫은 가운데, 그 작은 체구의 그리스도인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이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다고 말합니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증언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오, 우리 선조들의 믿음! 아직도 살아 있네, 감옥과 불길과 칼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이 죽음을 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그 증인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로마 제국은 그들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나아가 교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증인을 받지 않아도 그저 고백만 하면 사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서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루터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그리고 이른바 오순절교인들 가운데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증인을 받지 않은 채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증인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의 교회들은 얼마나 달랐습니까.
오늘날 교회는 “그저 교회에 가입하십시오.” 합니다. 옛말에 “사람이 교회에 가입하면 새 외투를 입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증인으로 충만해지면 외투 안에 새사람이 들어갑니다. 사람에게 새 외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외투 안에 새사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외투 안의 새사람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성직자의 외투입니다. 그렇습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날 이 교회는 자신의 선행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합니다. “아, 나는 그리스도인이니 아주 상냥해야 해. 이렇게 해야 해.” 그러나 최초의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바리새인인 자신들을 증인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다시 성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오셔서 차갑고 뻣뻣한 바리새인 무리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로 바꾸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빈 껍데기, 사람들이 가서... 아니, 교회는 빈 껍데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 커다란 홀이나 건물 같은 것, 일억 달러쯤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에 돈을 모두 쓰며 수백만, 수백만, 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재정적으로 어느 때보다도 형편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건물을 삽니다. 여기 미주리주에 있는 어느 큰 조직이 한 장소에 육백만 달러를 쏟아붓는 것을 봅니다. 그곳에 그들이... 그러면서 우리는 줄곧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오순절 운동이 그러고 있습니다. 다른 오순절교회들도 뒷골목 같은 곳에서 나와, 가장 큰 건물을 짓고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설교자를 데려오려고 애씁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에서 멀어지고, 신유에서 멀어지고, 성령과 그 권능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감리교와 경쟁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큰 교회 연합체들에 가입하여, 우리의 복음주의적 입장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조직을 만들고 연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교회 협의회에 속해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런 일은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공산주의가 집어삼키는 죽어 가는 세상을 앞에 두고, 이런 기회가 있는데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공산주의는 그리스도교가 약해졌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그리스도교가 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오늘 일어서서 성령 침례의 증거를 가지고 이 세상을 뒤흔들 기회가 얼마나 큽니까!
성경의 예레미야 42장에는 지금과 같은 때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바빌론 왕이 와서 자기들을 사로잡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유명 인사들과 높은 관리들 같은 사람들은 그 선지자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종교적인 사람이 되려고 믿는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늙은 예레미야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야에서 그를 데려왔습니다. 아마 담요를 두르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은 채, 광야에서 풀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먹으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가가 말했습니다. “선지자여, 우리를 위한... 주님의 뜻을 알아보시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시오. 좋든 나쁘든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겠소.”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위해 주님께 구하겠습니다.” 그는 나가서 열흘 동안 있었습니다. 그 뒤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와 모두를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아, 들으라! [할렐루야!] 너희는 바빌론 왕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가 러시아를 두려워하듯이 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가 오고 있는 줄 알기 때문에 너희는 모두 이집트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원자폭탄을 피하려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달아나며, 대피소를 짓고 온갖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돌아서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며, 마음을 돌이켜 그분의 명령과 모든 법규를 지키고 이 옳은 일들을 행한다면, 바빌론 왕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증언을 듣고도 말했습니다. “당신은 거짓 예언을 하고 있소. 우리는 이집트로 가겠소.” 그들이 그곳으로 내려갔을 때, 예레미야가 와서 돌 두 개를 가져다가 진흙 구덩이에 놓고 말했습니다. “내 종 느부갓네살 왕이 바로 이곳까지 내려올 것이다. 그가 어차피 이곳을 차지할 것이다! 너희는 어차피 칼에 죽을 것이다.”
형제님, 오늘날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 정죄에서 벗어날 길은, 옛날식으로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회개 외에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제 형제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도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자들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오럴 로버츠는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그분들은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도자들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조직을 위한 정치 활동, 감리교와 침례교와 모든 오순절 그룹을 함께 모아 협력하게 하고, 우리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권능과 해방을 가지고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전도자가 아니라 구원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구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산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쌓아 올리는, 우리 앞의 저 산은 누구입니까? 그것이 평야같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에 머물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부흥회가 아니라—구원의 역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웨일스 부흥 때처럼, 일터에 있던 사람들이 죄의 가책을 받아 울고, 밀주를 파는 곳과 유흥업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울며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얼마 전처럼 십오만 명을 모아, 어떤 사람들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하고, 다른 사람은 또 다른 말을 하며 짧게 기도한 뒤, 나가서 사람들과 한잔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도의 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울고 애통하며, 하나님께서 성령, 자신의 증인을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는 날입니다! 빈 껍데기도 아니고, 텅 빈 교단도 아니라, 사람 안에 장막을 치고 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6장에서 성령이 오시면 끝까지, 이어지는 모든 세대에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표적들이...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 이 증인은 언제까지 계실 것입니까? 세상 끝까지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모든 세대에 걸쳐서입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리라.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보내실 성령이 시대의 끝까지, 그 뒤의 모든 세대에 증인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증인입니다. 아멘. 주의해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이제 깨닫는 마음으로, 제가 마치는 말을 들으십시오. 그분의 영을 받은 우리가 그분의 증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마지막 날들에 떨어져 나가는 일이 생기고, 차갑고 형식적이며 권능 없는 교회 시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그때입니다. 권능이 없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그분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임을 스스로 보이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그가 와서 민족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완전했습니까. 저 옛날 느부갓네살 왕이 그 꿈을 꾸고 다니엘이 해석해 주었을 때, 그 왕국들은 하나하나, 바빌론부터 메디아·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무너진 그대로, 날짜와 때와 방식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증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오고,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기진하며, 혼란스러운 때와 민족들 사이의 고통이 있고,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나 스스로 큰 인물인 양 내세우고, 또... 교회에서 권능을 빼앗아 가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의 참된 권능은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일입니다! 그분은 교회가 그런 상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증인입니다. 교회가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모든 조직이 지금 그와 같은 상태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위해 불타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표적들이 따르는 조직이 있다면 제게 보여 주십시오. 일어나 단 하나라도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 조직이든 좋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기록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권능이 없고 죽어 있습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그러나 그분은 그날에 참된 교회, 작은 양 떼, 남은 자들이 있을 것도 예언하셨습니다.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있을 것입니다. 있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마지막 날들에 공적을 세우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날에 저녁 빛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녁 빛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녁 빛이란 무엇입니까? 아침 빛과 같은 것입니다.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날이 있을 것이다. 오늘 바깥 날씨처럼 어둑한 때로, 다니는 길을 알아볼 정도의 빛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녁때에는 빛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되돌아오는 것, 처음 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저녁 빛이 비칠 것입니다. 그분은 마지막 날들에 한 선지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4장입니다. 롯의 날들의 표적 등을 보여 주고, 또한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예언할 것입니다. 최초의 오순절 선조들의 믿음으로 돌아오고, 본래의 것으로 돌아오고, 성경으로 돌아오라고 할 것입니다. 조직과 교단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돌아오고, 본래의 오순절로 돌아오고, 본래의 성령 충만으로 돌아오고, 본래의 하나님의 권능으로 돌아오라고 할 것입니다! 말씀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저녁때에 빛이 있으리니, 영광에 이르는 길을 분명히 찾으리라. 오늘의 빛은 물의 길에 있네, 보배로운 예수 이름으로 장사되는 길. 젊은이와 늙은이, 모든 죄를 회개하라, 성령께서 분명히 들어오시리라. 저녁 빛이 이르렀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하나이시니, 이는 사실이라.
하나님의 증인이신 성령,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 자신은 결코 조직에 가입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직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처음에 있던 그대로의 길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처음으로, 본래의 것으로,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침례를 줄 것입니다. 성령에 관해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것입니다. 사람들을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것입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직을 멀리할 것입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처럼 깨끗하고 거룩할 것입니다. 그들처럼 성령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들처럼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들이, 옛날과 같이 마지막 날들 저녁 빛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 그 음성을 보내시어 불러내 주옵소서!
우리에게는 온갖 증인들이 있습니다. 온갖 종류가 있습니다. 감리교 증인, 침례교 증인, 장로교 증인, 가톨릭 증인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일요일에 교회의 서로 다른 네 단계에 관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온갖 증인들이 있지만, 참된 증인은 한 분입니다. 자연은 여전히 하나님이 계시다고 증언합니다. 그분은 처음 나무 한 그루를 창조하셨을 때와 똑같이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까?
선지자들... 옛날 선지자들은 증언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은 그들의 눈앞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고 꿈으로 그에게 말할 것이다. 그가 한 말이 이루어지거든 그의 말을 들으라.” 동일한 하나님께서 오늘도 같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분은 저녁 빛이 올 것,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땅을 화덕처럼 불태울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자녀들의 믿음을 선조들에게로 돌이킬 사람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저기에 매달려 있는 원자폭탄들을 봅니다. 얼마 전 러시아가 자기들의 폭탄을 터뜨린 소식을 보았습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보다 쉰 배나 더 뜨겁고 위력이 강한 폭탄이었습니다. 일본이 평화를 외치고, 울며 기도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히로시마에서는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까지 사람들의 눈과 혀를 태워 버렸는데... 이번에 터뜨린 것은 그것보다 쉰 배나 더 강했습니다. 방사성 낙진이 돌아가는 동안 미국을 비켜 갔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미국 위로 지나온다는 소식을 봅니다. 낙진 대피소라고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떨어져 나와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것들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은 어디로 떨어져 들어가실 겁니까?” 다시 하나님의 품 안으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증언하시게 하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의 증인이십니다. 기도합시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어디로 떨어져 들어가야 합니까?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믿습니다. 참됨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이 마지막 날들에 관해 이것을 예언하셨음을 봅니다.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분의 나무가 증언하는 것을 봅니다. 그분의 꽃들이 증언하는 것을 봅니다. 그분의 말씀이 증언하는 것을 봅니다. 그분의 영이 증언하는 것을 봅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떨어져 나오십시오.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것들에서 떨어져 나오십시오. 그저 의지하십시오. 그저...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어디로 떨어져 들어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품으로 물러나십시오.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저를 채워 주옵소서. 오 주님, 주님의 증인으로 저를 채워 주옵소서. 성령께서 저의 인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다니며 ‘나는 그리스도인이니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돼.’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힘이 넘쳐서 제 혼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옵소서.” 여러분은 “저는 광신주의가 두렵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면 광신주의는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웨일스 부흥 때, 그 웨일스 부흥을 이끌던 위대한 지도자에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온갖 광신주의가 생길 겁니다.” 그가 하는 말은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힘을 빼고 성령께서 뜻대로 하시게 하십시오. 힘을 빼고 성령께 맡기십시오.” 광신주의는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참으로 성령으로 태어났습니다. 성령의 부흥을, 오 하나님, 저의 작은 교회에 보내 주옵소서, 아버지! 기다리는 이 백성에게 보내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그 옛 찬송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있었네, 모두 한마음으로 모였네.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께서 내려오셨네. 오 주님, 지금 권능을 보내 주소서, 주님, 지금 권능을 보내 주소서. 예, 오 주님, 지금 권능을 보내시어 모든 이에게 침례를 베푸소서.
아버지 하나님, 어린아이들부터... 주님, 오늘 이 방에는 제 두 딸과 두 아들, 어린 자녀들이 있습니다. 주님, 그들에게 권능을 보내 주옵소서.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도 어린 자녀들과 함께 이곳에 있습니다. 지금 권능을 보내 주옵소서.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죽게 된다면 혼자 요르단강을 건너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 하나님, 그때가 다가와 그 강기슭에 가까워지고, 숨이 막 떠나려 할 때... 번개가 번쩍이고, 죄 가운데 태어난 죄 많은 몸 위에 여호와의 진노가 임할 때, 파도는 얼마나 거세게 부딪치고 번개는 얼마나 우렁차게 울리겠습니까. 큰 파도와 위험한 여울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그들이 바로 지금 예수님 안에 닻을 내리게 하옵소서. 그때가 왔을 때, 굳게 붙드는 닻이 있어 모든 위험한 여울을 건너도록 인도해 줄 것을 알게 하옵소서. 번개나 그 어떤 것도 그들을 가라앉힐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안전합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 주옵소서. 주님,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애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자기 노력으로 어떻게든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며 “이제 교회에 가입했으니 사람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기대할 거야. 이제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더 이상 하면 안 되겠지. 나는 그리스도인이니까.” 하고 말하는 데 만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그런 바리새인의 상태, 하나님, 그런 위선자 무리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어떻게든 성령께서 제가 뜻하는 것을 말씀해 주옵소서. 주님,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만들어진 바리새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 자신으로 채워 주옵소서. 우리의 혼에 불이 붙을 때까지 권능과 힘으로 채우셔서, 그분이 우리의 힘이 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증언이 되시고, 우리의 말이 그분의 말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마귀들이 떨고 세상이 그 충격으로 흔들리고 요동할 것입니다. 주님을 기꺼이 기다릴 사람들만 찾으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리라. 달려가도 피곤하지 않고, 걸어가도 기진하지 않으리라. 오 주님, 가르치소서, 주님, 기다림을 가르치소서. 마음들이 불타오를 때에도 기다림을 가르치소서. 온 나라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며 수천 명, 또 수천 명이 모인다고들 합니다. 주님, 화려한 말들입니다. 제 교만을 낮추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 제 믿음을 새롭게 하시고, 제 눈이 주님을 향하게 하소서. 주님, 이 땅에서 제가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우리의 연약한 작은 배들을 주님께 바치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이 부끄러운 육체의 작은 성막을 바치게 하옵소서. 이것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수많은 날을 일하며,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오 하나님, 그러다가 우리는 그것에 눈을 두고 이 위대한 대속에서 눈을 돌립니다. 오 하나님, 이 연약하고 작은 것들은 이 땅에 남겨 두고 간다는 것을 알고 내려놓게 하옵소서. 하늘의 보화, 성령, 하나님의 참된 증인을 구하게 하옵소서. 성공은 결코 하나님을 증언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을 증언하십니다. 우리 교단이 성장하든, 우리 교회가 성장하든, 교인이 아주 많든, 좋은 옷을 입든, 좋은 차를 타든, 좋은 음식을 먹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두고 가야 합니다. 얼마 전 제 어머니가 그곳에서 힘겹게 버티고 계실 때 그런 것들이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주님,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눈이 예수님과 성령께 고정되게 하시고, 그분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증언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그런 상태로 서서 증언하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 이 강단 위에는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보내온 손수건들이 한 아름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 어제 제게 이 메시지를 주신 하나님, 오늘 아침 히긴보텀 형제님을 통해 이 메시지가 올 것을 미리 말씀하신 하나님, 환상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옵소서! 저는 모든 마귀에게 맞서며 믿음으로 이 산을 차지합니다! 주님 앞을 가로막고 서려는 큰 질병의 산아, 네가 누구냐? 너는 평야같이 될 것이다. 가로막고 서려는 강이나 죽은 바다야, 네가 누구냐? 하나님 앞에 죽은 것이 있느냐? 길을 열어라. 우리가 건너간다!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주님, 이 손수건들을 보낸 모든 사람을 고쳐 주옵소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병든 사람도 모두 고쳐 주옵소서. 질병아, 네가 누구냐?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사탄아, 너는 누구라고 주장하느냐? 네가 내세우는 모든 권리는 갈보리에서 취소되었다. 너는 허세뿐이다. 너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맞선다. 성령으로 충만한 몸으로서... 평생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 환상을 주시고 이루어지는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오늘 아침 이 백성에게서 모든 질병을 쫓아내 주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하고 의심하지 말며, 네가 한 말이 이루어질 줄 믿으라. 그러면 네가 말한 것을 받을 수 있다.” 누가 그 말씀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증인이 하셨습니다. 사탄아, 나는 오늘 아침 그 말씀이 참되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너는 떠나야 한다.
이곳의 모든 사람이 바로 지금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 위에 임하여 모두 고쳐 주옵소서. 믿음, 믿음, 그... 참된 믿음, 그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착하게 살려는 마음이 아니라, 말씀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 백성 위에 임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믿음으로 채워 주시고, 성령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 그들을 채우셔서 증인으로 삼아 주옵소서. 이 모퉁이에 있는 우리가 주님을 위한 증인,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인, 참된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저녁 우리는 성만찬의 상에 나아와 우리 주 예수님의 몸을 나타내는 작은 조각들을 받고 그분의 피를 마시려 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죄 많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저 자신과 이 교회를 위해 부르짖습니다. 주님, 우리는 약합니다. 우리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백하는 교회이지만, 우리가 주장해 온 것들을 실제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주관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죄가 많습니다. 주님, 그 말씀은 우리가 의심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오, 우리의 죄 된 두려움을 부끄러워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증인으로 우리를 채워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께서 이곳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므로, 수백 명이 하나님의 권능 아래 떨며 앉아 있고, 그들의 모든 생각과 애정이 세상의 것들과 우리가 소유한 것과 가진 것에서 떠나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제자들은 그런 것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놓... 가진 것을 다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하나님, 그런 방식으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소유한 것들과 주님이 주신 편안함을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는 조금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조금 불편해질까 두려워하며, 잠을 조금 못 자거나, 혹은... 어디선가 한 끼를 거르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성령의 권능으로 몸이 흔들리며 서서 제 죄와 제 교회의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성령께서 우리 위에 역사하시게 하옵소서. 저는 그분이 우리 위에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옷을 찢지 말게 하시고, 생각을 찢지 말게 하시며, 마음을 찢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을 찢어 열어 놓고 이렇게 말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주님, 저를 빚으시고 만들어 주옵소서. 제가 여기 토기장이의 집에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산산이 부수어 주옵소서. 저를 흔드시고 빚으시고 참된 오순절 증인처럼 만들어 주옵소서... [녹음 공백—편집자]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
오 주님, 허락하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가는 해외 선교지와 어느 곳에서나 환상이 임할 것입니다. 병든 사람들이 고침받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낙진 대피소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메시지의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잎의 생명이 왔던 뿌리로 돌아가 다른 계절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계절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압니다. 공기가, 영적인 공기가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날이 막 밝아오려 합니다. 우리는 더 위대한 그 천년왕국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든 자들을 가로막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말하노니,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며,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변화되리라.”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의 아들이 떠오르시기 시작하면 말입니다. 생명의 씨눈을 햇빛에서 숨겨 둘 수는 없습니다. 식물의 생명도 그렇습니다. 콘크리트 아래서도 길을 찾아 나올 것입니다. 판자 아래서도 길을 찾아 나올 것입니다.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어디서든 나올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오실 때, 영원한 생명을 가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이 오실 때도, 생명을 숨겨 둘 수는 없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이 오시면 이 낡고 연약한 몸들이 순식간에 변화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천년왕국에, 다가오는 다음의 위대한 계절, 영원한 그 계절에 있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빚으셔서 그 왕국의 시민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제게 남아 있는 생명과 함께 저 자신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더 이곳에 두실지 저는 모릅니다. 우리 중 아무도 모릅니다. 젊은 사람은 “나는 젊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알겠습니까? 밤이 되기 전에 떠날 수도 있습니다. 늙은 사람은 “나는 곧 떠날 것이다.”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전부를 주님께 드립니다. 제 혼과 힘과 마음과 모든 것을 드립니다. 주님, 우리 자신을 제단 위에 바칩니다. 주님, 여기 이 작은 땅의 제단이 아니라, 오늘 아침 우리 모두가 기대어 눈물을 흘리며 우는 그 참된 제단 위에 바칩니다. 그 영원한 제단 위에 엎드려, 우리를 받아 주시고 주님의 방식대로 빚으시고 만들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우리를 증인으로 삼아 주시고, 오늘 아침 “참된 증인”의 메시지를 그들이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원자폭탄을 가졌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기계 시대와 기계 문명의 시대를 이루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가오는 왕국에는 제트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으며, 이런 원자폭탄도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평화와 사랑과 기쁨과 생명의 왕국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삽니다.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떠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성령의 증인이신 분은 몇 분입니까? 성령을 체험하고 증언하기 원하시는 분은 몇 분입니까? 이 말씀들을 기록하신 하나님께서, 제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이것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채우실 때까지 이 땅에서 더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인이고, 유쾌하고, 착하고, 친절하고, 진실하고, 정직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갖추고도 하나님에게서 백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내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들과 그들을 통해 올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나이다.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사역을 통해 왔다면, 어떤 교회를 통해 왔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분이... 여러분이 조직을 통해 왔다면, 그분의... 그 기도는 여러분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증언과 성령의 증언을 통해 왔다면, 그분의 기도는... 여러분도 그분의 기도가 응답될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이 가지셨던 영광 가운데 계신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안식을 얻지 못하기를, 조금도 안식을 얻지 못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과, 성령을 받았다고 손을 드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도 성령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여러분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여러분, 우리는 그 성령을 활동하지 못한 채 가만히 계시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즐거움을 너무 많이 좇았습니다. 조금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이 세상을 내려놓읍시다. 이 세상의 헛된 재물을 탐내지 말라, 그것들은 너무도 빨리 사라지네. 영원한 것들에 우리의 소망을 세우라,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 변함없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라! 이 땅의 벗들이 너를 버릴 때, 더욱더 가까이 그분께 매달리라. 그분을 붙드십시오. 성령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자신을 깊이 부끄러워하고 영 안에서 괴로워하여, 살아서 타오르는 빛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게 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온갖 광신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런 뜻이 아닌 줄 아실 것입니다. 성령의 침례와 권능과 나타나심을 통해, 하나님의 참되고 경건한 방식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끝이 가까운 줄 아는 이 마지막 날들에 일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랫동안 신실하게 앉아 계셨습니다. 제 시계로는 열두 시 십이 분쯤 되었고, 그보다 더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어떻든 온전히 집중해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기도와 축복이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제 친구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제 친구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친구인지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제 친구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서 듣기 힘들고 날카로운 말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의 조직이나 교단을 깎아내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제 뜻은 오직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되려면 진실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바로 아래에 폭포가 있다는 것을 제가 안다고 합시다. 그 배는 그 급류를 탈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그때 제가 “그 배에서 나오십시오!” 하고 소리친다면, 여러분을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여러분의 생명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런 뜻입니다. 사랑과 교제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순절교인이어도 흔들어 깨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침례교인이든, 감리교인이든, 어떤 교회 이름표를 달고 있든 마찬가지입니다. 장의사인 쿠츠 씨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빌리...” 하고 말했습니다. 설교 같은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는 늘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의 아내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고, 그도 그런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는 언제나 와서 제 설교를 듣습니다. 제가 기도하러 갈 때도 와서 곁에 서곤 했습니다. 우리가 밖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나는 언제나 당신의 말을 듣는 게 좋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쿠츠 씨, 낙인은 결코 소의 품종을 바꾸지 못합니다. 헤리퍼드 소에 낙인이 찍혀 있다면, 그 소는 처음부터 헤리퍼드였던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낙인이 품종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일신교든 이일성설이든, 어떤 오순절 그룹에 속해 있든, 아, 제 형제님, 여러분의 낙인은 결코 여러분의 본질을 바꾸지 못합니다. 오순절교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그런 낙인이 찍혔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영에서 오순절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오순절 사람이 아닙니다. 그 낙인은 그저 헤매... 떠... 떠돌이 소 위에 찍힌 것입니다. 평범한 늙은 방목 소도 좋은 낙인을 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 품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헤리퍼드 낙인이 찍혀 있어도 헤리퍼드 소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신조로도 안 되고, 어떤 교단에 가입해서도 안 되며, 어떤 기도를 드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헛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려면 성령, 하나님의 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열고 자신을 내던져,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 안에 장막을 치고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테디 형제님, “예수 이름 가지고”를 연주해 주십시오. 뭐라고 했니? 빌리가, 다음 주 집회에 오고 싶다고 하신 여러분에게 이번 주에는 안내 카드를 보내지 않겠다고 광고해 달라고 합니다. 이미 광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손을 들고 이렇게 서약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제 삶으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평안 가운데 그분을 뵙게 하옵소서. 제 마음에 그분을 모셔 들이게 하옵소서. 제 존재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부터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이 메시지를 들은 백성으로서 우리가 주님께 이렇게 서약합니다. 어떤 교단이든, 어떤 감각이든, 우리가 무엇을 했든, 외쳤든, 소리 질렀든, 방언을 했든, 성령 안에서 춤을 추었든, 이와 같은 어떤 감각적인 체험을 했든... 오 하나님, 이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깨우쳐 주셔서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장막을 치고 거하시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빚으시고 만들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예수 이름 앞에 머리 숙여, 그분 발 앞에 엎드리리. 우리의 여정이 끝날 때, 천국에서 왕들의 왕으로 그분께 관을 씌우리. 보배로운 이름, 이제 서로 악수하십시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 천국의 기쁨, 보배로운 이름...?... 땅의 소망, 천국의 기쁨.
한 가지 더 광고하겠습니다. 잊었습니다. 아니, 제가 몰랐습니다. 이 예배 뒤에 침례식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은 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종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침례는 구원에 필수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고, 그분을 믿고 자기 죄를 고백했다면, 이제 이 예배가 끝난 뒤 앞으로 나오십시오. 죄들의 사면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마태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속한 칭호들입니다. 초기 교회는 모두 침례를 주었는데, 가톨릭교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교부들』 같은 역사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그들은 이름 대신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이 아닌 교회, 한 무리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성경에 머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 가지고 가라, 모든 올무 막는 방패로 삼으라. 유혹이 네 주위를 에워쌀 때, 들으십시오. 유혹이 올 때 어떻게 합니까? 기도로 그 거룩한 이름을 속삭이라. 보배로운 이름 (보배로운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 천국의 기쁨, 보배로운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 천국의 기쁨. 이제 고개를 숙입시다. [브래넘 형제님이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천국에서 왕들의 왕으로 그분께 관을 씌우리. (언제입니까?) 우리의 여정이 끝날 때. 보배로운 이름... 네빌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