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네빌 형제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다시 타버내클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몸도 가뿐하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저께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그 작은 병균에 감염되었지요. 목에 들어가 목을 쉬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그 상태에서 건져 주셔서 오늘 아침 여러분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좋은 타버내클이 가득 차고 서 계신 분들까지 있어서 기쁩니다. 서 계신 분들께 드릴 자리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내어 드리겠지만 모두 찬 것 같습니다. 여기 제단에 있는 아이들 곁에 오셔서 저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저는 며칠 동안 역사를 공부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설교 대신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시간이 좀 늦어질 것 같으니, 제가... 여러분 중 몇 분이 서 계신 분들과 자리를 바꿔 주시든지 하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분들도 잠시 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많은 친구들이... 제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중에는 저 멀리 조지아주에서, 위쪽 오하이오주에서, 테네시주에서, 또 일리노이주, 미주리주, 미시간주 등 여러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타버내클 집회 한 번에 참석하려고 시카고에서도 내려옵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그분들은 거의 모두 그냥 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보탬이 되도록 십일조도 가져와 드립니다. 참으로 신실한 친구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제가 그분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게 됩니다. 마음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안에서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니 해야만 합니다. 사방에서 찾아오는 그분들은 주님을 섬기려고 애쓰며,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을 믿습니다. 제가 주님의 종이므로 그릇된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리라고 저를 신뢰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더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다하여 그분들의 혼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분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얼어붙은 산과 언덕을 넘고, 차들로 꽉 막힌 길을 지나옵니다. 아이들은 끼니도 잠도 거르고, 여행 가방은 차 뒤에 실려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그런 사람들에 대해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또 여기에는 뉴올버니와 루이빌, 가까운 주변 지역, 아래쪽 켄터키주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오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 먼 곳은 아니어도 그분들은 신실하게 찾아옵니다. 빙판이든 눈길이든 그 무엇이든 헤치고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옵니다. 다음 일요일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저는 교회에 전할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제가 그날 이곳에 있게 되면, 멀리 사는 많은 어린아이들이 크리스마스와 그런 즐거움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린것들에게는 좀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떠나기 전에... 이제 우리가...
여기 우리 성도들은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 같은 꾸며 낸 이야기를 가르치지 않는 줄 압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 거짓말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그런 것은 꾸며 낸 신화의 극치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잃어버렸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경배가 아닙니다. 흥청대는 잔치가 되었습니다. 술 마시고, 도박하고, 방탕하게 노는, 극에 달한 이교도 풍습입니다. 그것은... 저는... 아마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에 크리스마스에 관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린... 그 즐거움을 빼앗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밤에 다른 아이들이 선물을 받는 모습을 보거든요.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무 어립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기억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바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눈높이를 낮추어 그 어린것들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 아이들 자신도... (형제님, 소리가 너무 큽니까? 음량이 너무 큽니까? 저 뒤에, 맨 뒤에서도 잘 들리십니까? 잠깐만요. 제가 너무 가까이 서 있군요. 어느 마이크가 켜져 있습니까? 둘 다입니까, 이것과 이것이요? 저쪽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습니까? 더 낫습니까? 네, 좋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 아이들은 어립니다. 우리도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를 기억합니다. 어디선가 작은 삼나무 한 그루를 잘라 오면 어머니가 옥수수를 튀겨 실에 꿰어 나무에 둘러 주셨습니다. 나무에 걸린 것은 거의 그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고 낡은 양말들을 거기에 걸어 놓고는 꼭... 어머니가 어쩌면... 작은 사탕 봉지 하나쯤 사 오셨습니다. 그 조그마한 딱딱한 사탕을 제게 두세 개, 험피에게 두세 개, 또 이 아이에게 두세 개씩 주셨지요. 그 작은 사탕을 하루 종일 간직하며 빨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종잇조각에 싸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오래된 화약 딱총 하나나 불 수 있는 작은 나팔 하나라도 생기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우리는 무척 신이 났습니다.
물론 오늘날은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돈을 조금 갖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사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잘 입고, 더 잘 먹고, 더 잘 삽니다. 오늘날의 임금 사정 덕분에 여러모로 형편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에게도 무언가를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것만은 꼭 지키십시오. 산타클로스라는 것은 없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다가와 “그러면 예수님은요?”라고 물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진실을 말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정직하십시오. 참된 말을 하십시오. 특히 자녀들에게 그릇된 것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이렇게 말할 테니까요... 아이들은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믿고,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하는 말을 사실로 믿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진실을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잘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여러 해의 사역을... 아니, 내년의 사역을 떠나기 전에, 가능하다면 적어도 저녁이나 낮 집회 한 번은 더 이 타버내클에서 갖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올해에는 해외 집회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비롯한 여러 스칸디나비아 나라들, 그리고 아시아 쪽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두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길과 우리를 인도하시려는 길,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배워야 합니다.
초기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브로드벤트와 헤이즐틴의 저서, 또 많은 이들이 그것에 관해 쓴 글들과 니케아 교부들의 기록을 읽었습니다. 어제는 성 마르탱의 생애 전체를 다 읽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성인으로 추대하기를 거절했던 분이지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위대한 생애를 보면, 동일한 표적과 이적이 일생 내내 그를 따랐습니다. 죽은 사람 둘을 살리고, 악한 영들을 내쫓고,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고, 환상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능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데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여전히 권능을 가르치고, 믿는 자에게 표적이 따른다고 가르치면서도 “나는 크고 너는 작다.” 하며 교만해져 있습니다. 초대 교회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겸손하고, 서로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서로를 이해했습니다. 오늘날은 너무나 다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메시지의 참된 핵심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자신을... 더 겸손하게 낮출수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잘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신화와 이런 온갖 꾸며 낸 이야기들을 공부해 보면, 크리스마스 자체가 하나의 꾸며 낸 이야기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실제적인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크리스마스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경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의 교리이지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없고, 성경 이후 처음 백 년 동안에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꾸며 낸 이야기입니다. 산타클로스와 상업적인 것들을 비롯한 모든 것이 뒤엉켜 거대한 잡동사니가 되었습니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공부하고 거기서부터 내려다보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오심 외에는 아무것도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지금 이 혼란에서 우리를 건져 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오심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그 테이프 내용을 걸러 내는 작은 스위치입니까? 어쩌면 이 전체를 빼고 내보내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상당히 거친 말씀이니까요. 그러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테이프를 녹음하고 있습니까? 이 테이프는 팔지 마십시오. 판매용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돌려 듣거나 할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틀림없이 혼란을 일으킬 테니까요. 그러니 다르게 정리할 때까지 보관해 두십시오.) 이제 메시지를 살펴보기 전에, 여러분 모두 생각을 가다듬고 최대한 편안하게 계십시오. 너무 오래 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마음 깊이 새겨 넣어 여러분이 정말로 깨닫게 하고 싶습니다. 먼저... 지금, 제가 보기에는 대체로 다른 일은 다 정리된 것 같은데, 혹시...?
[네빌 형제님이 빈자리가 조금 있다고 말한다.] 네, 옆에 서 계신 자매님들은 이쪽으로 올라오십시오. 여기 앞에 자매님들 자리가 있습니다. 네. 바로 여기 앞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뒤에도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 앞 제단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일어나 서 계신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다면, 아이들은 바로 이 제단에 앉을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이 그 자리에 앉으실 수 있습니다. 저 뒤 기둥 뒤에 서 계신 자매님들, 원하신다면... 이쪽 구석 안쪽이기는 하지만 거기 서 계시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서 있고 싶으시다면...
단 위에도 자리가 좀 있습니다. 이곳으로 올라오고 싶은 형제님들은... 이 아이들이... 여기 웨이 형제님 옆에 자리 하나가 있습니다. 올라오셔서 이 근처에 앉으십시오. 그러면 모두... 집에 계신 것처럼 편안하게 계실 수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셸비 형제님, 바로 여기 단 위에 자리가 있습니다. 원하시면 올라오셔서 저희 곁에 앉으십시오. 바로 여기입니다. 에번스 형제님과 찰리 형제님, 그리고 형제님, 여기 한 자리, 바로 여기 한 자리, 이쪽에는 두 자리가 있습니다. 어서 올라오십시오. 저기... 에서 오신 형제님도 어서 올라와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우리가... 모두 가능한 한 차분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서 계시느라 지치고 피곤하지 않으시도록요.
뒤쪽의 형제님들... 저 멀리 복도에 서 계신 자매님들도, 저 뒤 복도 끝에 계신 분들도요. 아직... 자리가 있습니다. 여기 또 하나 있습니다. 피아노 의자도 있으니 원하시면 와서 앉으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저 뒤에 어떤 자매님이 자기 옆에 빈자리가 있다고 손짓하시네요. 네, 좋습니다. 이제 최대한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자리를 잡는 동안, 우리가... 오늘은 12월 17일, 시각은 10시 20분쯤... 23분입니다. 오늘 아침 이곳 제퍼슨빌에는 밖에 비가 옵니다. 바깥 날씨는 좋지 않지만 안에 있는 우리 마음은 좋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가 다가가고 있음을... 주님의 오심이 가까우며 영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서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으니 하나님께 참 감사합니다. 오늘이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일들을 깨닫는 귀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잠깐 머리를 숙여 기도합시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기도 중에 기억해 주기를 바라시는 분은 하나님께 손을 들어 보이시고 마음속으로 구하는 바를 생각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 우리가 타버내클에 모여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마이크가 켜져 있고 녹음기가 돌아가며,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그 간구를 아뢰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전할 이 메시지를 두세 주 동안 계속 공부했습니다. 성령께서 이 몇 마디 말을 사용하셔서 이 주제를 사람들의 마음 깊이 새겨 주시고, 우리가 사는 때를 깨달아 주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 가운데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오 예수님, 오늘 아침 전 세계에 있는 주님의 교회, 온 교회를 기억해 주옵소서. 어떤 이들은 숲속에, 어떤 이들은 결단의 골짜기에, 어떤 이들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주님의 자녀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옛날 밧모섬에서 요한이 말한 것처럼,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우리는 원수가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원수는 늘 가까이에서 방해하고 가로막으며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합니다. 그러나 오 주님, 오늘 아침 주님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주옵소서. 원수를 뛰어넘을 권능을 주시고, 마음을 열어 자신의 혼을 기름진 밭으로 만들게 하옵소서. 그곳에 생명의 말씀이 뿌려져 큰 기쁨과 풍성한 수확을 맺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종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끝까지 힘 있게 전할 수 있도록 저의 이 약한 목소리를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기도받는 줄에서도 권능과 믿음을 주시어, 이 건물을 떠날 때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압니다. 이제 계속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성경에서 두세 곳을 읽겠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기독교와 우상 숭배”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의 주제입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니며, 결코 성경 학자도 아닙니다. 그저 온 마음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배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신학자라고 주장하거나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께서 제게 계시해 주셨다고 느끼는 것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제 교회에 전해야 합니다. 이 교회가 성장하는 것, 이 교회가 영적으로 올바르게 서는 것이 제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관심사이며 그분의 관심사가 제 관심사이기 때문에 제가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반드시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 이레네우스와 그들, 초기 역사가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세상의 것들에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켰는지 보았습니다. 그 옛 교사들이 일어나 참으로 그 복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이 지금 우리가 가진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 때 루터가 인쇄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복음과 사도’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복음과 사도’, 그들은 그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오늘 아침 읽으려는 두 곳 가운데 하나는 예레미야서 7장, 10절부터 18절까지입니다. 다른 한 곳은 사도행전 7장 49절입니다. 이 말씀의 본문 구절을, 이 가운데 중심 구절을 표시하고 싶으시다면 예레미야 7장 18절입니다. 10절부터 읽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이 모든 가증한 것들을 행하기 위해 우리가 구출받았나이다, 하려느냐?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너희가 보기에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느냐? 보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보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오직 너희는 실로에 있던 내 처소 곧 내가 처음에 내 이름을 둔 곳으로 이제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악함으로 인해 내가 그곳에 무슨 일을 행하였는지 보라. 이제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일찍 일어나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고...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한 것같이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곧 너희가 신뢰하는 이 집과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 내가 너희의 모든 형제들 곧 에브라임의 온 씨를 쫓아낸 것같이... 너희를 내 눈앞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소리 높여 부르짖거나 기도를 올리지도 말며 내게 중보하지도 말라. 내가 네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이 마지막 절을 읽기 전에 잠깐 멈추겠습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꾸짖으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조차 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이제 16절부터 18절까지 다시 읽겠습니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소리 높여 부르짖거나 기도를 올리지도 말며 내게 중보하지도 말라. 내가 네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들이 유대의 도시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은 가루를 반죽해서 납작한 빵들을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내 분노를 일으키느니라.
이제 사도행전 7장을 펴서 44절부터 50절까지 읽겠습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언의 성막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정하여 주사 그가 몸소 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그 뒤에 일어난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의 얼굴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소유지 안으로 예수와 함께 또한 그것을 가지고 들어가 다윗의 시대까지 이르렀느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호의를 입었고 야곱의 하나님을 위해 한 성막을 발견하기를 구하였으나 솔로몬이 그분을 위해 한 집을 건축하였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 이것은 대언자가 말하는 바와 같도다. 주가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겠느냐? 혹은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떤 것이냐?
방금 읽은 성경 말씀을 통해 제가 오늘 아침 처음에 우상 숭배의 어느 부분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상 숭배에 관해 쓰인 글은 별로 없습니다. 우상 숭배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책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우상 숭배가 가득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실제로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생 여행하면서 우상 숭배의 몇몇 모습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특권을, 참으로 큰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우상 숭배, 곧 신화와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를 공부하면서, 그들이 여전히 똑같은 것을 이어 가고 있는지, 우상 숭배가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여행하면서 보는 우상 숭배와 그 기원, 옛날에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록한 글을 함께 살펴보니, 변한 것이 없음을 알겠습니다.
저는 인도에 가 보았습니다. 인도에는 우상 숭배가 가득합니다. 그곳에는 불 위를 걷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 제가 봄베이에 도착한 어느 날 오후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그분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제게 알려 주었는데, 어느 사람이 어느 종교 사람인지는 제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이나교 사원에 모여 있었습니다. 열일곱 개였는지 일곱 개였는지, 서로 다른 종교들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열일곱 종교가 그곳에서 저를 만나 말씀으로 도전해 왔던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모두 단호하게 그리스도를 반대했습니다. 열일곱 개의 서로 다른 종교였습니다! 그들은... 사원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한 다음, 우리를 방석 위에 앉혔습니다. 우리가 거쳐야 했던 그 복잡한 절차들을, 제가 그렇게 부르는 것들을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간 사람은 그 도시의 시장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힌두교도, 곧 마호메트교도였습니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선지자였으며,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의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전도자가... 그들 중 한 사람이 말씀으로 맞서 결판을 내자고 도전했을 때 물러난 일도 바로 이 계통의 사람과 있었던 일입니다. 제 생각에 그 전도자는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내게는 신유의 은사가 없지만, 우리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는 그런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몇 시간만 주십시오. 그런 사람을 이곳에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하면 자신을 후원하던 조직들 앞에서 자기 입장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저라면 그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기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패배했다 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하나님은 동일하시다는 믿음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히브리 청년들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불타는 용광로에서 건져 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당신의 우상들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용감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위대한 전도자처럼 신학 박사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그분은 능력 있는 분이지요, 저 같으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 아니면 마호메트가 선지자인지 말씀으로 그에게 도전하고, 그가 가진 경전으로 입증했을 것입니다. 그 전도자처럼 성경을 설명하는 것이 제 부르심이었다면, 그냥 달아나 물러서는 대신 그렇게 맞섰을 것입니다. 그것은... 거기 서서 살든 죽든 맞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용기를 보여 준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건져 내실 수 있습니다. 저라면 그 문제로 그의 도전에 정면으로 맞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봄베이에서 있었던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곳의 마호메트교도인 눈먼 사람이 그날 밤 집회에서 시력을 얻었던 일 말입니다. 그들은 그것은 언급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 관해 말씀드리면, 그들은 위선자가 아닙니다.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과 저만큼 신실하며, 때로는 여기 미국에 있는 우리보다 더 신실합니다. 위선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정말로 그것을 믿으며 온 힘을 다해 실천합니다.
우상 숭배에 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불 위를 걷는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거대한 신상입니다. 아주 큰... 사람 얼굴과 비슷한, 일종의 양각으로 새긴 얼굴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귀가 엄청나게 큽니다. 그들의 온갖 죄와 그런 것들을 다 듣기 위해서지요. 또 여기 귀에는 엄청나게 큰 루비 귀걸이가 달려 있는데, 하나에 아마 50만 달러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높게 잡았을 수도 있고, 너무 낮게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우상에 달린 보석들은 참으로 대단히 값진 것들입니다!
그 신전의 제사장이 가난한 농부를 데려옵니다. 꼭...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 풍작을 주신 자기 신에게 감사하려는 농부입니다. 그는 신전에 와서 제사장의 축복을 받으며, 그렇게 자기 신에 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 피트 깊이에 여러 피트 너비로 숯불을 채워 놓은 구덩이를 걸어서 건널 준비를 합니다. 부채로 불을 부쳐 숯이 하얗게 달아오르게 해 놓습니다. 이것은 꾸며 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그는 우상 앞에 나아가 제사장에게 죄를 고백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물을 붓습니다. 제사장이 축복한 성수 같은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들은 커다란 낚싯바늘을 가져옵니다. 바늘 끝에서 뒤쪽 몸통까지 가로 폭이 아마 반 인치에서 4분의 3인치쯤 되는 아주 큰 바늘입니다. 거기에 크리스마스트리에 다는 작은 장식 같은 조그만 물 주머니를 답니다. 작은 공 같은 것인데, 물을 가득 채워 무겁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말 그대로 수천 개 가져다가 살에 걸어, 살이 당겨지게 합니다.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가 당기게 해서 그 신, 그 우상을 기쁘게 하려고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선자가 아닙니다.
또 많은 경우 혀를 내밀고 갈래가 달린 창 같은 것을 혀에 꿰어 코까지 뚫고 올려 둘을 붙잡아 맵니다. 잘못된 말을 했다면 실로 입을 꿰매기도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 다음 이 커다란 불구덩이 옆에 앉습니다. 우상을 달래기 위해 염소를 죽여, 자기들의 죄를 대신할 생명으로 드립니다. 염소를 죽일 때 나는 그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셔야 합니다. 염소 위에 죄를 고백하고 죽인 뒤... 던지고... 그 피를 받아 속죄에 씁니다.
이 불 위를 걷는 사람이 겁을 먹고 불 속을 뛰어서 건너면 자기에게 수치를 가져옵니다. 그는 이 숯불 속을 천천히, 꾸준히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숯불의 깊이가 15피트나 됩니다. 깊이가 15피트쯤 되고, 길이는 30야드나 40야드, 너비는 아마 8피트나 10피트쯤 됩니다. 숯은 하얗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그 사람은 허리에 둘러맨 조그만 가리개 같은 천 말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습니다. 온몸에 이런 것들을 매달고, 피를 흘리며, 낚싯바늘 같은 것이 가득 꽂힌 채 나옵니다. 그리고 입에서 흰 침이 줄줄 흐를 때까지 스스로를 광란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그러고는 그 불 속을 걸어갑니다. 불 속을 걸어서 아무 상처 없이 반대편으로 나옵니다. 발이, 다리가 불 속으로 이만큼 깊이 들어갑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2피트 이상씩 빠지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덩이가 맨살을 따라 끌려 올라옵니다. 그렇게 불 속을 걸어가 반대편으로 나와도 아무 상처가 없습니다. 발을 살펴봐도 긁힌 곳이나 그을린 곳 하나 없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염소의 피로 이교도 우상에게 드리는 희생물과 그것을 믿는 믿음이 이교도를 불에서 보호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통해 믿는 자에게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우상 숭배는 기묘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아마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상 숭배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그 사람이 우상을 만들어 세운 다음, 안으로 들어가 이 큰 경배를 준비합니다. 그는 이 우상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그 신에게는 형태가 없으므로, 자기가 그 신을 위해 만든 이 우상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 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형상은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신화 속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우상 앞으로 가서 엎드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그 신이 이 우상 안으로 내려온다고 믿습니다. 또 그 신이 우상 속으로 들어와 자기에게 대답하므로, 자기가 이 우상을 통해 신과 말한다고 믿습니다. 여기 신화를 공부하신 선생님들도 많이 계실 텐데... 심지어... 그 당시에는 그 신들이 서로 전쟁을 벌였다는 등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신이 초자연적인 상태에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이 우상 속으로 들어가, 우상을 통해 경배하는 사람에게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사람은 감정을 어떤 식으로 한껏 고조시킨 상태에서, 우상이 자기에게, 자기 마음에 말하며, 그 우상을 통해 죄도 용서받고 다른 일도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마귀의 짓임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대충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중에는 그것들을 참으로 진지하게 경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우상들 속에 있는 마귀들이 온갖 일을 행하고, 어떤 것에서 피가 나오게 하는 등 여러 일을 벌인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마귀들입니다! 정말로 마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되는 쪽, 양쪽 모두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마귀가 있고, 그는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의 생각이 아닙니다.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오늘날 “마귀는 그저 마음에 떠오르는 악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는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령도 그저 마음에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믿지 마십시오. 성령은 인격을 지닌 분이십니다. 영의 형태로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자, 이 우상 숭배자들은... (여러분은 성경 구절을, 찾아볼 곳들을 준비해 두십시오. 잠시 후에 몇 군데를 언급하고 성경을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 앞에 엎드려, 자기가 경배하는 신이 이 우상으로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경배하는 그 사람이 위선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우상 속에 있는 무언가와 접촉합니다. 그것이 그에게 되돌아오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우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화 속의 신이지, 참된 신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마귀가 그런 것들 속에 들어갑니다. 때로는 집회 안에도 들어와서 하나님인 척합니다. 저는 제 사역에서 이런 일을 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그저... 오늘 아침에는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 현장 사역에 나갈 때, 이 교회 여러분은 목사님 곁에 머물고 이곳에서 가르친 가르침을 붙들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지키십시오. 떠나지 마십시오! 무엇이 오고 무엇이 가든 이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말씀을 지키십시오! 제가 떠난다고 해서... 저도 이곳 목회자들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네빌 형제님도 저와 똑같은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니 계속 교회에 나오셔서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저를 어디로 인도하실지는 모릅니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줄곧 부르짖어 왔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소.” 그것이 어느 길로,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우상 숭배는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저는 눈먼 교사들의 눈먼 말을 듣고 제단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교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생각을 텅 비우십시오. 그러면 엘리야가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거짓된 말입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그것은 온갖 마귀의 영들이 들어오도록 자기 혼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마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거의 하나하나 그대로 그리스도를 흉내 냅니다.
얼마 전 성 마르탱의 생애를 읽다가 한 청년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실제로 수도사였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옛 선지자들 중 한 사람으로 부르셨다고 말했습니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옛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이오.” 그리고 그 학교는... 물론 마르탱은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삶이 그 말에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내가 옛 선지자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소.”라고 했습니다. 그저 젊은 청년이었는데도 “하지만 나는 부름을 받았소.”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그들은 말씀에서 벗어납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어떤 것에든 빠져들게 됩니다.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오늘 밤 자정 무렵에 하나님께서 내가 여러분 가운데 입고 앉을 흰옷을 주실 것이오. 그것으로 내가 옛 선지자라는 것을 보여 주실 것이오.” 그날 밤 모두가 귀를 기울였는데, 속삭이는 소리, 들어오는 소리,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청년은 흰옷을 받았습니다. 방문자가 떠난 뒤 사람들이 가서 그 옷을 살펴보니, 실제 옷이었습니다. 진짜 흰옷이었고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연로한 감독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 흰옷이 성경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옳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 옷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성 마르탱 앞에 가 서시오.” 그런데 그는 그러려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그 선지자 앞에 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서지 않으려 했고, 사람들은 억지로 그를 데려가려 했습니다. 그를 데려가기 시작하자 옷이 사라져 어디론가 없어졌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진위를 가리는 자리에 가져가려 하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진짜 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서 시험하든 견뎌 낼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영도 시험을 견뎌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저는 좋은 사람들이 극도로 흥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제가 왜 이 테이프를 판매하지 않으려는지 아시겠지요.) 저는 좋은 사람들, 오순절 사람들, 이해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극도로 흥분하고 무아지경에 빠지고 온갖 행동을 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놓자 마귀들이 들어와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마귀가 있습니다!
제가 읽은 이야기인데, 이레네우스였는지 마르탱이었는지, 둘 중 한 사람에게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여기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 중 저보다 이 일에 더 정통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흰옷에 금으로 장식한 신발을 신고 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다. 나를 시인하라!” 그러나 그 성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는 두세 번이나 “나는 그리스도다. 나를 시인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도는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모습으로 오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 위에 서십시오! 큰 싸움이 눈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회 놀이를 해 왔지만, 이제 성경이 말씀한 대로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할 때가 왔습니다. 영적인 싸움,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하던 대로 계속할 것입니다. 교단 교회는 계속 세력을 장악하며 제 갈 길을 갈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참된 신자가 그 전장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배워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쉽게 악한 영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어긋난다면 믿지 마십시오!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우상 숭배, 우상 숭배는 오래되었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오래되었습니다. 오래전 애리조나에 있는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비의 신이 있었습니다. 그 비의 신은... 진흙거북을 가져다가, 그 거북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진흙에서 막 올라온 것처럼 온몸에 반점을 칠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거북 앞에 엎드렸습니다. 비의 신이 이 진흙거북의 껍데기 속으로 내려와 거북을 통해 자기들에게 말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신이 진흙과 습기 속에 살며 그것들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은 신화입니다. 사실이라고 그저 상상하여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마귀들을 경배했습니다. 진흙거북이 비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경배했으므로 그들에게 영이 임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것을 향해 마음을 열었으니까요. 그러나 잘못된 영이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것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지 모릅니다! 분명히 영을 받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영은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이런 것은 없다, 저런 것은 없다.” 하며 말씀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기독교로 위장한 마귀입니다. 잠시 후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룰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로 위장한 악한 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언제나 말씀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로마라는 그 도시에는 둘레 7마일의 성벽 안에 이교도 신전이 400개나 있었습니다. 이교도 신전 400개가 남신들과 여신들을 위해 세워져 있었습니다. 남신들과 여신들, 여자들과 남자들입니다. 서로 다른 신이 400이나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400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왔을 때 본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순절로부터 보냄을 받아 로마에 교회를 세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마주한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들어온 곳에는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가 있었습니다. 로마에는, 수도권 로마 전체에는 200만 명쯤 살았습니다. 노예들과 외곽 지역 사람들 등을 합쳐 약 2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를 두른 성벽의 둘레는 7마일이었습니다. 그 7마일 안쪽, 산기슭 바로 밑에 이교도의 남신들과 여신들을 위한 신전이 400개나 있었습니다.
이제 역사서에서 발췌한 내용에 관해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 한 권을 여기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경배하러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어떻게 경배하러 나아갔습니까? 이교도는 어떻게 경배하러 나아갔습니까? 먼저 신전으로 가서 제사장, 이교도 제사장을 찾았습니다. 그다음 얼마간의 돈을 예물로 주고, 말을 걸려는 그 신을 달래기 위해 동물을 희생물로 바쳤습니다. 때로는 한 신전에 여러 종류의 신이 있었습니다. 남신, 여신, 온갖 것이 한 신전 안에 있었습니다. 그 이교도 제사장은... 경배하러 온 사람이 가서 돈을 주면 제사장은 그 대가로 초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저 보통의 짐승 기름으로 만든 초였습니다. 그러면 경배자는 돈을 낸 뒤 그 초를 가지고, 말을 걸고 싶은 신의 제단으로 갔습니다. 그 제단에는 희생물을 태우는 불이 있었습니다. 신상 발치에서, 그 큰 청동 신전... 아니, 우상의 발치에서 그는 초를 가져다가 불의 제단에서, 그 우상 제단의 불에서 불을 붙였습니다. 그런 다음 우상 앞 제단 밑으로 내려가 그 초를 놓았습니다. 그렇게 초를 놓은 다음에는...
아마도 다른 많은 신 가운데 그 특정한 신이, 자기에게 와서 말하려면 어느 신상 속에 들어가야 하는지 알도록 한 것 같습니다. 왜 초를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단 불에서 불을 붙인 초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신전 바닥으로 물러나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거기서 자기의 혼과 힘을 모두 기도에 쏟아 넣고, 어떤 위대한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상상으로 꾸며 낸 신, 신화 속 신에게 이 형상 안으로 내려와 자기에게 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황제는 아폴로스의 신상 앞에 어찌나 몰두하여 엎드렸던지, 실제로 그 우상에게서 자기에게 대답하는 음성이 들렸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엎드린 것입니다! 이쯤에서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가 정말 음성을 들었습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가 들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음성이었습니다. 주피터라는 신도, 그들이 가진 다른 온갖 신들도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엎드려 누운 채 경배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신을 경배한 것입니다. 그 신의 영은, 자기들이 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우상 속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를 위해 형상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그의 호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감정을 한껏 고조시킨 뒤 다시 우상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때 이교도 제사장은 음식과 마실 것을 가져와 우상의 발치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페이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제가 그대로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우상 발치로 가서 그 음료 헌물을 조금 마시고, 음식을 조금씩 베어 먹은 다음, 우상의 발 위에 그것을 부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마귀들과 교제한 것입니다. 마귀들, 남신들과 여신들과 교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만찬을 먹으며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모형에 불과했습니다. 로마에 들어온 최초의 교회, 복음을 가지고 온 최초의 순례자들이 만난 것은 바로 이런 경배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모든 우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신은 바알이었습니다. B-a-a-l, 바알입니다. 그는 태양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달의 신, 여신인 아스도렛이었습니다. I-s-h-t-o-r-... 아스도렛입니다. 또 A-s-t-a-r-t-e, 아스타르테라고도 합니다. 로마 동전에 나옵니다. 그녀는 여신, 달의 여신, 또는 하늘의 여왕, 신들의 어머니, 달의 신이라고 불렸습니다. 태양신은 바알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이교도가 태양을 숭배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미국에 와서 이 땅을 발견했을 때, 미국이 세워졌을 때 인디언들조차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조들이 이곳에 와 보니 그들은 여전히 태양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그들은 경배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남신들과 여신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행하면서 보니 우상 숭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기독교 역시 변하지 않았습니다. 둘 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이라면 분명히 알아차리실 것입니다. 바알은 태양신이었기 때문에, 조금 전에 여기 예레미야에서 읽었듯이, 여인들이 만든 그 납작한 빵들은 태양신 바알에게 바치려고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장을 조금 더 내려가 읽어 보면,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바알을 숭배하지 않으면 농사가 안된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태양이 곡식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 곡식이 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을 숭배하며 그에게 예물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바알이 둥근 신이라면... (이것을 한 마디 한 마디 잘 들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를... 이 메시지의 결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신은 둥근 신, 태양신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태양을 반사하여 불처럼 보이는 아주 큰 놋쇠 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예레미야가 말했듯이, 여인들이 바알에게 바치려고 구운 그 빵들은 태양처럼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교제를 위해 제단 위에, 이교도 제단 위에 놓았습니다. 태양이나 달처럼 둥글게 만들었는데, 그 신이 태양신이나 달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바알림은 온갖 풍요의 신, 모든 것을 자라게 하는 신입니다. 초대 교회는 로마에 들어왔을 때 이런 것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 또는 오늘날의 교회, 곧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믿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톨릭입니다. 우리가 가톨릭교회입니다. 우리는 사도적 가톨릭입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도적 믿음을 가진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교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톨릭,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로마 가톨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그들은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세웠다고 믿습니다. 저는 성경 구절을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원합니다. 로마 교회는 “그는 41년부터 46년까지 거기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때 로마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는 모든 유대인을 떠나게 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이 에베소로 올라갔을 때 실제로 유대인이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을 때 쫓겨났으며, 클라우디우스가 그리스도인이든 정통 유대교 신자든 모든 유대인에게 떠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다시 이곳 팔레스타인에 와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 교회를 세웠지만, 클라우디우스가 일어나 온 교회를...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쫓아내었으므로 그들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교회의 감독이었다.”라고 합니다. 저는 적어도 거의 70년에 이르도록 베드로가 팔레스타인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성경으로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성경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가 로마에서 살해되었고 바울도 로마에서 목이 잘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만들어 낸 교리입니다. 저는 구할 수 있는 순교 기록들을 모두 읽었지만, 베드로나 바울이 로마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적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믿을 만한 순교 기록 중에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거기서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만들어 낸 교리입니다. 저는 이교도 풍습을 드러내려고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과 그분의 말씀의 도움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회들이 어떻게... 여러분은 가톨릭을 향해 큰소리치지만, 몇 분만 기다려 보십시오.
성경에 따르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서 쫓겨난 뒤 그 작은 교회는 고아처럼 남겨졌습니다. 그 안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회심하여 로마의 그리스도인 교회로 들어온 이교도들이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또 다른 한 부부가 세우고 돌보던 초대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남은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의 감독들을 세우고 자기들 나름의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채택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 뒤에 온 사람들의 호의를 얻으려고 말입니다. 호의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라의 정치적 권력 기반 속에서 버티려면 교인들을 끌어들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사람들을 데려와 완전히... 그저 신앙을 고백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여기 미국에 있는 어떤 사람들만큼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입으로 고백했을 뿐입니다. 자기 신 외에 또 다른 신인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입에 올리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교회의 규정 안에 이교도 의식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로마의 사제들은 성만찬을 만드는 데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것은 성만찬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처럼 떼어진 조각으로 만드는 대신, 태양이나 달처럼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둥급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둥근 전병이지, 그분의 몸에서 떼어진 조각이 아닙니다. 둥글고 매끈합니다. 오늘날 로마의 사제들은 이 둥근 전병을 제단에 놓고 그것을 실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제에 관해 일부 고교회파 성공회 교도들과 가톨릭교회 사이에는 큰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몸인지, 아니면 몸을 나타내는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실제 몸이라고 합니다. 그 놋쇠 조각에 자신을 비추던 바알, 태양신의 실제 몸이었기에 둥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에는 둥근 빵이 없습니다! 또 그들은 이교도들이 경배할 때 했던 것처럼 동쪽을 향하려고 했습니다. 여자를 들여오는 등의 일도 했습니다. 늘 하던 그대로, 이교도들이 여신에게 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저 아스타르테를 내리고 마리아를 세워 하늘의 여왕으로 만든 것입니다. 주피터를 내리고 베드로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만들어 낸 교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클라우디우스의 13년 통치가 끝난 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돌아왔을 때, 자기들의 교회가 완전히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커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들여오려면 그들은 반드시 성경을 치워야 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계 사람입니다. 사제만 가질 수 있다는 『우리 신앙의 사실들』이라는 책과 그런 자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들과 면담해 보아서 압니다만, 사제는 성경을 가지고 논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성경은 그저 여러 책 중 하나입니다. 약 2년 전에 여기서 쉰 주교가 말했습니다. 성경을 믿으려는 사람은 누구나 흙탕물 속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시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시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면담하러 왔던 저 길 위쪽의 사제, 성심교회의 그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니, 저 길 위쪽 교회인데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성심교회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믿음에서 떠나 가톨릭 신자가 된 메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의 침례 문제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그 여자에게 침례를 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침례를 주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침례로 주었습니다.” “어떤 방식을 말씀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물에 잠그는 것을 뜻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에 잠그셨군요?” 저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침례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에 잠그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맹세, 아니 이 진술을 주교 앞에서 맹세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제 진술 없이 하라고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두고 맹세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가...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거만하게 굴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그것은 그분의 발 받침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 밖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상하군요. 가톨릭교회도 예전에는 그렇게 침례를 주었는데요.” 저는 “언제요? 언제입니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들도 우리도 모두 하나였고, 그 기원은 오순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어디서든 최초의 교회를 말하려면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교회는 오순절에, 오순절의 체험과 오순절의 사람들과 오순절의 침례로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오순절의 처음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들은 황제들을 기쁘게 하고 이교도들을 끌어들이려고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상 주변을 둘러보는 것조차 금지된 유대인 성 베드로가 교회 안에 우상을 세우자는 생각을 받아들였겠습니까? 그가 그런 일을 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처음에 내가 써 놓은 글들은 다 잘못되었다. 이제 그냥 버리겠다. 나는 이 로마 교회 안에서 영으로 살면서 이것을 받아들이겠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겠지요. 그러니 그렇게 하려면 베드로가 그 교회 안에 묻혔고 모든 명령을 그들에게 남겼으며, 자기들이 본래의 가톨릭교회라는 교리를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아닙니다! 그것을 입증할 성경도, 역사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 최초의 로마 교회에 있던 이교도 제사장은 오늘날의 사제와 정확히 같습니다. 그들은 그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식으로든 내려와 제단 위의 빵 조각 속으로 뛰어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밤사이에 쥐들이 물어 갈 그 빵 조각 말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경배하려면 교회에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의 교회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주변에서 몸을 굽히고 성호를 긋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 빵 조각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태양신 바알림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단 위에 놓인 그 둥근 전병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레네우스와 폴리카르포스, 그 초기의 형제들,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오래 산, 가장 나이 많은 제자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밧모섬에 3년 동안 유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아니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모으고 서신들을 한데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와 제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람들이 발견하고는 그를 3년 동안 파문했습니다. 황제가 죽은 뒤에 돌아왔으며, 그다음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신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가?”라는 이야기를 해 봅시다. 성경은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뿐 아니라, 어느 교회의 가르침이든, 침례교든 장로교든 감리교든 오순절이든 무엇이든 간에, 이 성경을 한 글자 한 글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곧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여기서 무엇을 빼거나 여기에 무엇을 더하면...” 그러니 어떻게 이교도의 우상 숭배 상징을 더하고, 한 분을 세 신으로 만들고, 그 밖의 온갖 이교도 풍습을 더할 수 있습니까? 초대 교회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반대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분이 세 본체이신가 한 본체이신가를 놓고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 순교자들이 그곳으로 왔는데, 그중에는... 한 감독, 오순절 설교자는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했다는 이유로 팔 위에 달군 쇠막대를 대고 이렇게 팔을 뒤로 꺾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칼로 눈을 도려내어 눈이 없는 채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위해 굳게 선 순교자들의 무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은 옛 선지자들의 피에 자기 피를 함께 섞었습니다. 형제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교도들이 회심하면서 이런 상징들을 기독교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성경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도 좋지만, 교회가 최고의 권위를 가진 말씀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순절에서도 똑같은 것을 봅니다. 우리도 똑같이 죄가 있는데 가톨릭을 향해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감리교도, 침례교도, 모두 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거룩하다는 감리교 여러분, 그렇다면 왜 조지프 스미스를 죽였습니까? 여기는 미국이고, 경배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조지프 스미스가 한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 모르몬교도를 죽일 권리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침례교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일을 덮어 두었습니까? 다른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순절도 나머지와 똑같이 죄가 있습니다. 거드름이나 피우는 위선자 무리가 되었습니다. 겸손과 영의 권능 대신, 영 없는 말씀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나머지 사람들과 같았더라면 끼쳤을 해보다 오히려 더 큰 해를 끼칩니다. 온갖 삼위일체 사상과 이런저런 것들로 가득한 이교도 의식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 것은 말씀으로 입증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그것에 반대됩니다.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그리하여 그들이 로마에 첫 교회, 기독교회를 만들었을 때 성경을 버리고 이런 의식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떤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로마의 첫 교황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라고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랬다고 합시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한 말을 뒤집겠습니까? 유대인이 우상을 세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저는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정확한 날과 연대를 짚어 가며, 베드로가 팔레스타인을 단 한 번밖에 떠나지 않았고, 그때도 유프라테스강 곁 바빌론으로 갔으며, 로마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로 말입니다. 그것은 온통 이교도적인 생각입니다. 이제 그것을 개신교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드러내겠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순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굳게 붙들면 언제나 옳습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어디로든 흘러갑니다.
얼마 전 어느 큰 오순절 학교와 함께한 대규모 집회에서 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 방언을 하며 제단으로 나오라는 초청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돌아왔을 때 밖에서 빌리가 저를 맞으며 말했습니다. “아세요? 그 여자가 오늘 밤에도 전할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고 했어요.” 제가 그 여자를 보았습니다. 짧게 자른 머리에, 몸을 부어 넣은 듯 꼭 끼는 옷을 입고, 저기 앉아서 머리를 만지고 스타킹을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벌떡 일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과연 일어나기에 “앉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했습니다. 저는 “제 말 들리십니까? 앉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 참! 그날 밤 밖으로 나가니 남자 네댓 명이 그 여자와 함께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성령을 근심하게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근심하게 하는 영이라면 근심해야 마땅합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의 영은 선지자에게 통제를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여자가 증언하는 것이라면, 곧 예언은... 방언도 통역하면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게 하십시오.” 그가 “하지만 당신은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잖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굳게 붙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하늘에서 온, 그것과는 다른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의 말도 모든 영도 거짓이라 할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첫째입니다!
오늘날 문제가 그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계시와 거짓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대신, 거기 엎드려 마귀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습니다. 문제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점입니다. 정직하고 신실하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순절 사람들이니 이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침례교 사람들이니 이것을 믿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습니다! 누구든 이 점에서 제가 틀렸다면 바로잡아 보라고 도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이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첫 교회, 첫 로마 가톨릭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늘 감독이라고 부르던 사람을 이제는 감독 대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전병이 그리스도의 몸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사제는 신이다. 사제가 이 전병을 실제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꾸는 말을 하면 하나님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것을 억지로 주입받고도 받아들입니다! 아, 참! 어떻게...?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 참된 감독들은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바로 그 자리를 지키며 말씀을 고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교자 같은 모습으로, 온갖 일을 겪고 들어왔지만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우상 숭배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 패트릭이 로마 가톨릭이었다는 근거를 누구든 제게 보여 주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에 항거했습니다. 성 마르탱의 조카였습니다. 제가 읽던 글에서, 한 여성이 쓴... 헤이즐틴 부인이 쓴 『니케아 공의회 발췌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여성이 성 마르탱의 생애에 관한 자료 카드를 얻으러 옥스퍼드의 카드 목록을 찾아갔더니, 담당자가 “하지만 그는 로마 교회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는 그것에 항거했으니까요! 성 패트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킨 사람들은 자기들의 학교를 세우고 그런 것들에서 떠났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로마 교회는 그 똑같은 둥근 빵을 계속 쓰면서 그리스도께서 내려와 그 속으로 뛰어드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들어 보십시오. 사제가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서로 함께 나누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분께서 잔을 서로 돌리게 하셨다.” 그러나 이교도 방식에서는 사제들이 포도주를 마십니다. 보십시오. 여전히... 온통 이교도 풍습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과 성경 이야기는 하지 않겠소.”라고 합니다. 저기 그 목사, 아니 사제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당신은 성경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나는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소.” 저는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좋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로마 가톨릭교회가 경배하려면 교회로 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성체 보관함 안의 이 둥근 전병, 성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배웁니다. 이것이 이교도 풍습임을 모르시겠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이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똑같은 부류라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성경은 요한계시록 17장에서 가톨릭교회를 창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개신교를 그 어미... 아니, 그 여자가 창녀들의 어미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똑같습니다! 그녀는 자기 음행의 가증한 것들과 더러움이 담긴 잔에서 교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되고 섞인 것이 없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대신, 때와 더러움, 순전히 사람이 지어낸 것을 주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것이 제 기도입니다.
이레네우스가 말했습니다. 그가 한 말을 여기 적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하고 강력한 왕의 형상을 만들려고 늘어놓은, 훌륭하고 커다란 아름다운 보석들과 같다. 그러나 신조와 교리와 교단들은 그 아름다운 보석들을 가져다가 개의 형상을 만들고,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을 속인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길을 부패시키고 그 길에 치욕을 가져온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자기 조직에 맞추려고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것을 말하게 한다면, 그 위대한 왕의 몸에서 보석들을 빼내어 개나 여우나 돼지 같은 어떤 짐승의 형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육신이 되신 말씀을 위해 굳게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수를 더해 주옵소서.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뿐입니다!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라고 말씀한 것을, 그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세 신으로 만듭니다. 온갖 교리를 가져다 온갖 것을 지어내고, 물에 잠그는 대신 물을 뿌립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합니다! 보석들을 위대한 왕, 그리스도의 형상에 맞추는 대신 사람이 만든 어떤 진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부패시킵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고, 차마 보기 민망한 옷을 입고 교회에 들어오도록 내버려 둡니다. 남자들은 어찌나 나약한지 여자에게 귀를 잡힌 채 끌려다닙니다. 교회에 와서는 번코와 빙고를 비롯한 온갖 타락한 일을 합니다. 설교자들까지도 수영복을 입고 몸을 드러낸 여자들과 함께 물가에 나가 수영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전은 세상의 더러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헌된 거룩한 성전인데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보석을 가져다가 돼지나 여우나 개나 스컹크 같은 것으로 만들어,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먹입니다.
(고맙습니다, 닥. 손수건이 여기 하나 있었지만 쓸 생각을 못 했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레네우스의 말이 참으로 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말하려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으신다.”가 맞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개의하십니다! 지금도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때 예레미야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개의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정하신 길이 있습니다. 모세가 “신발 대신 모자를 벗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는 그 환상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정하신 길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 참 많습니다. 여기 성경 한 곳을 펴 봅시다. 여러 곳을 적어 두었습니다. 잠깐 민수기 25장을 펴 봅시다. 민수기 25장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의하시는지 아닌지 보겠습니다. 이런 신조와 교리 등이 하나님께 문제가 되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 모든 것을 그냥 눈감아 주신다.” 아닙니다! 그분은 줄을 놓고 다림줄을 드리우십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맞추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때에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행음하기 시작하니라. (들으십시오!)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곳으로 백성을 부르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 이스라엘이 스스로 바알브올에게 연합하였으므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올라 “그런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을 붙잡아 해를 향해 주 앞에 목매어 달라. 그러면 주의 맹렬한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하시니 모세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연합한 자기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둘째 자리에 계시려 하지 않으십니다. 바알이나 사람이 만든 교리, 어떤 사람의 이론, 신조의 생각이나 교단의 생각이 그분의 길을 가로막게 두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교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큰 단체와 학교 같은 것들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손에 들어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취하시고, 거기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면, 그것은 그분을 섬기는 존재가 됩니다. 그것이 그분을 하나님이시게 합니다. 하나님께는 분명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상관없다.”라고 합니다. 상관있습니다! 분명히 상관있습니다.
대교황 레오는 440년부터 461년까지 재위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들어와 자기가 하는 일이 정확히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전에는 빅토르가 있었는데, 그 역시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들어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온갖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을 시작하여 살인을 합법화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였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한때 위대한 사람이 되어 성령으로 충만해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리옹의 큰 학교 뒤뜰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레네우스와 성 마르탱이 가르쳤던 그 학교였습니다. 학교 뜰에 앉아 있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오셨지만, 그는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다음 그는 무엇이 되었습니까? 처음보다 배나 더 지옥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아프리카 히포로 내려가 그곳에 자기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근거를 보여 주십시오.”
역사서를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로마 교회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단자는 누구든 죽여도 좋다고 승인한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여기 성경 학자나 역사를 읽은 분 중 이것이 사실임을 아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네,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 교회에 동의하지 않는 이단자를 죽여도 좋다는 판결을 내린 사람입니다. 성경을 떠나 태양신 숭배를 세우는 이교도 교리들을 승인했습니다. 기독교가... 그 이유를 아십니까?
크리스마스가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그리스도는 4월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태양계는 지금 멀어지면서 느려집니다. 날마다 조금씩 길어지고... 아니, 조금씩 짧아집니다. 20일부터 25일까지가 태양신의 생일이 있는 때였습니다. 약 닷새 동안 로마의 서커스가 열렸고, 그때 태양신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무엇을 갖게 되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태양신을 기념하던 것을 하나님의 아들을 기념하는 것으로 바꾸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애초부터 이교도 풍습입니다! 사람들은 높은 굽 구두를 신고 거리를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걸어 다니고, 가게마다 뛰어 들어갑니다. 얼마 전 아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빠한테 뭘 사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 남자 형제 하나는 위스키 1쿼트를 사 드린대. 다른 형제는 샴페인을 사 드리겠대.’라고 했어요. 그러자 또 한 사람은 ‘나는 포커 세트를 사 드려야겠어.’라고 했어요.” 크리스마스 축하가 이렇습니다. 이교도 풍습, 마귀 숭배입니다! 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을 승인했습니다. 이것을 찾아보시려면 슈머커의 저서, S-c-h-m-u-c-k-e-r-s, 슈머커의 『영광스러운 종교개혁』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가톨릭교회에 이 판결을 내린 때부터, 그 이교도 교회를 부인하는 사람은 원하는 대로 누구든 죽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후 약 300년경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때부터 1850년 아일랜드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가톨릭교회에 의해 죽은 개신교인이 8,600만 명이었습니다. 로마의 순교 기록에 나오는 수입니다. 8,600만 명입니다. 논쟁하려거든 그 역사가와 하십시오. 그가 한 말이니까요. 저는 그의 말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가톨릭 교리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그랬습니다! 가톨릭, 그 ‘보편적’이라는 뜻의 가톨릭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이름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이교도들입니다. 그 귀한 사람들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수만 명은 다른 어떤 우상 숭배자와 마찬가지로 신실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돌아가 보면, 그들은 우상 속에 있으며 사방이 우상으로 가득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만든 교리, 로마의 교리였습니다. 그리고 들어 보십시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지나쳤군요. 1640년, 1640년에 로마의 주리스타이츠(juristites)와 사제들 아래서 아일랜드 학살이 일어났을 때, 성 패트릭을 통해 회심한 사람 10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 패트릭이 로마 가톨릭이었다면 왜 자기 교인들을 죽였겠습니까?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비롯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교 기록에 따르면 10만 명입니다.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였습니다. 저는 북아일랜드에 있는 성 패트릭의 교회 몇 곳에 가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저 크고 낡은 빈 건물뿐이었습니다. 우상을 세워 두고 발에 무엇을 붓거나, 그 사람들이 돌아와 우상 속에 들어가도록 돈을 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여.” 아스타르테에게 하던 것과 같습니다. 마리아의 영을 불러들이는 주술입니다.
불과 두세 해 전에 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새로운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모두 기억하시지요. 물론입니다. 신문마다 가득 실렸습니다. 만들어 낸 교리입니다! 그것은 그런 교리 위에 세워져 있고, 어디에도 진실이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개신교 여러분도 똑같이 잘못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만든 교리와 마찬가지로 개신교회가 만든 교리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가 틀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회 여러분, 사중복음교회 여러분, 오순절의 일신교든 삼신교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이런 교단의 우상들, 교단의 스핑크스들을 버리십시오. 그들은, 마귀의 영들은, 주술을 부리듯 이 교단 우상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교단은 우상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장로교인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입니까?”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까?” “저는 오순절교인입니다.” 그것은 돼지나 개나 스컹크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인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북아일랜드의 이 노동자들과 귀한 사람들, 그리고 성 패트릭과 그의 모든 학교가 있던 그곳 말입니다. 그의 이름이 패트릭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름은 서스캣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납치되었고, 누이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온 것은, 돼지 등을 쫓도록 개를 훈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그는 집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돌아갈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북아일랜드의 그 학교는 교황을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복된 성도, 위대한 사람 성 패트릭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서 뱀을 모조리 쫓아냈다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역사를 읽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십시오. 성 패트릭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믿었고, 뱀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시는 것도 믿었습니다. 그가 뱀을 집어 자기 길에서 치워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가 아일랜드에서 뱀을 쫓아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뱀을 집어 올려도 아무 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거대한 성당들이 없었습니다. 성도가... 오늘날 이레네우스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 패트릭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큰 교회와 백만 달러짜리 성상 같은 것을 짓느라 로마 가톨릭에 수천억 달러가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본다면 말입니다. 개신교가 하는 일도 똑같습니다. 얼마 전 제가 한 말에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테이프를 보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니, 도랑에 빠지게 두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제가 제단으로 나오라는 초청에 관해 말했을 때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제단으로 나오라는 초청 같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테이프에 녹음이 안 된 부분.] 우리는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자신을 낮추어 그분의 죽으심에 참여하고,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때,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형상입니다. 어떻게... 여러분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면, 여러분은 무엇이 됩니까?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형상이 됩니다. 구석에 세워 놓은 죽은 조각상이 아닙니다. 워싱턴의 교회 연합회 본부에 있는 교단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조각상, 죽은 조각상과 죽은 신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는 형상,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누군가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작은 쪽지가 있었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구원받지 않았고... 아니, 남자는 구원받고 아내는 구원받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휴거에 들어가겠느냐고 말입니다. 그 여자는 휴거에 들어갈 수 없고, 여자가 휴거에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둘이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자리에 두 사람이 있을 터인데 내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남겨 두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일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그 밖의 누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여러분의 몸을 내어 드리십시오. 아멘! 오 하나님! 이 썩고 더럽고 불결한 세상, 이 더럽고 불결한 교회들, 소위 교회라는 것들, 이 더럽고 불결한 조직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이 더럽고 불결한 신조들... 오 하나님, 어딘가에 있는 작고 겸손한 사람을 데려다가 깨끗이 씻어 주시고, 하늘의 처소들로 들어 올리시어 주님 자신을 나타내 주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멘. 얼마나 썩어 버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해서는 죽고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이것을 들으십시오.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다시 육신이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무엇입니까? 저기 앉아 있는 신화 속의 상상의 신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말씀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 오, 여러분이 저를 광신자라고 생각하는 줄 압니다. 제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형제님, 이것이 보이십니까? 모든 교단을 이기고, 온갖 이교도 숭배를 이기고, 살아 있는 성전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육신이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기고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 저는 이것이 정말 좋습니다. 몇 가지는 건너뛰고 계속해야겠습니다.
자, 들으십시오. 그렇다면 그분을 믿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믿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든, 얼마 되지 않았든, 어떤 사람이든, 그분 안에 있는 가장 작은 신자라도 모든 악은 그 아래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머리가 있는 곳에는 몸도 함께 있습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제 머리가 가는 곳에는 몸도 따라갑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교회도 그분과 함께 있습니다. 아멘!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말씀 안에 머무시며, 그것이 나타나도록 지켜보십니다. 그분의 교회는 그분과 함께 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발바닥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과 함께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것을 이기셨습니다. 발바닥까지도 말입니다. 모든 질병, 모든 마귀, 모든 세력, 심지어 죽음 자체도 여러분의 발아래, 여러분 아래 있습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아침 저는 쉰두 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형제님, 이 교회가 이것을 깨닫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 모든 악은 그분 아래 있습니다. 오, 영광을 돌립니다! 여기서 조금 멈추고, 다음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들으십시오. 이것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힘이 없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에게도 힘이 없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약한 사람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제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게 있는 권위, 제게 주어진 권위를 의지합니다. 제가 강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강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강하시고, 저는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 봅시다. 루이빌의 4번가와 브로드웨이 교차로에 차들이 달려옵니다. “쌩, 쌩, 쌩, 쌩.” 있는 힘껏 빠르게, 시속 60마일로 길을 가로질러 갑니다. 모두가 서두르고 분주하게 오갑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사람 하나가 걸어 나와 손을 듭니다. 그러면 형제님, 브레이크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춥니다. 그 작은 사람에게는 자동차 한 대를 멈춰 세울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권위가 있습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자기 힘이 아닙니다. 차 한 대가 그를 들이받기라도 하면 그 사람의 몸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손을 들어 보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운전자들이 그 제복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형제님, 사람들이 그 제복을 알아보면 브레이크를 밟아 멈춥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권위를 보십시오. 무엇이 그의 뒤를 받치고 있는지 보십시오. 도시의 모든 체계가 그를 뒷받침합니다. 그 도시의 법 집행 기관이 그를 뒷받침합니다. 제복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그는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경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시오!”라고 외칩니다. 차 한 대가 “쌩” 하고 달려들면 그를 단번에 쳐 버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그의 뒤에 있는지 보십시오. 사람들은 브레이크를 밟아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춥니다. 그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손만 들면 됩니다. 그것이면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의 권위는 법 집행 기관에서 나옵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뒤에 있습니다. 그 자신은 약하지만, 무엇이 그의 뒤에 있습니까? 바로 그것이 시작... 그의 옷, 그는 제복을 갖추어 입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읍시다. 구원의 투구와 문짝만큼 커다란 이 믿음의 방패 말입니다. 오, 형제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대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경찰관도 그렇습니다... 그곳에 서 있는 작은 사람 자체가 아닙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가 무엇을 대표하느냐입니다! 우리의 전신갑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마귀는 그것을 보면 급히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전신갑주, 참된 성령 침례를 볼 때 말입니다. 아멘. 그것은 앉아... 하나님의 왕좌에서 곧바로 내려와, 그분의 부활의 전신갑주를 갖추어 입은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뒤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군대에 들어갔고, 경찰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법으로 이 마귀들을 통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경찰 조직의 일원이며, 그 전체가 여러분을 뒷받침합니다. 여러분은 죽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으켜져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으므로 권위를 받았습니다. 마귀는 그 권위를 알아봅니다. 그 손들이 올라가면 모든 것이 브레이크를 밟아 멈춥니다.
언젠가 성 마르탱이 한 뜰에 있었을 때... 거기에 사람들을 물어뜯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마귀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살점을 큼직하게 물어뜯어서 사람들이 달아났습니다. 그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커다란 손... 커다란 엄니 같은 이빨이 있어서, 돌아다니며 이렇게 한입 가득 살점을 뜯어냈습니다.
[테이프에 녹음이 안 된 부분] ... 경배자들 안에. 그분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보시고, 이렇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자신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쫓겨나실 때 말입니다. 그분은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조직이 그분을 내쫓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오 하나님, 오늘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 우리가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은 곳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 여자들이 왜 머리를 자르려 하겠습니까? 하나님,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왜 성적으로 보이는 옷차림으로 몸을 드러내려 합니까? 왜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는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자나 이런 리키들이 저기 서서 낡은 기타를 들고 삐걱거리는 음악을 하며, 우리 어린 소녀들이 몸을 흔들고 속옷을 벗어 던지게 만드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습니까? 하나님, 그러면서 그 청년은 자기가 오순절 신자라고 주장합니다! 오 하나님, 이것이 무슨...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이 팻 분을 보십시오. 이 모든 천박하고 더러운 일들... 오 하나님, 그러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왔다.”라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권위의 표지가 교단의 이름이 아니라 권능, 곧 각 사람의 삶에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임을 압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게 하옵소서. 혹시 이 테이프가 밖으로 나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주님, 악의를 품고 한 말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악의였다면 저 자신이 잘못되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승리하며 자기 위치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우상이 어디에...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우상으로 만들었고, 개신교는 조직으로 만들었으니, 말씀을 부인하는 점에서 똑같이 나쁩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오 하나님,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참됩니까!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참됩니다!
이제 아버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 메시지가 마음속 깊이 스며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이 교회가, 이 작은 타버내클이 지금 교회 건물을 짓고 있는데, 아름다운 무엇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할 만큼만 짓게 하옵소서. 하나님, 그들이 건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큰 돔이 있는 그 큰 타버내클에 다닙니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그저 빈 껍데기 같은 건물이 되게 하옵소서. 그들이 바라보아야 할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그들의 성전을 채우시는 분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면 성령의 권능과 불이 그들의 마음의 제단에 내릴 것입니다. 주님, 참된 제단은 바로 거기, 각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말씀이 모든 마음의 제단에 무겁게 놓여서 그들이 거기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분별 있게 복음에 나아와 말씀을 믿게 하옵소서. 마귀의 힘이나 어떤 느낌,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것이나 뛰는 것, 어떤 현상이나 육체적인 모습 같은 것에 마음을 열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참되고 진실하며 사랑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영께 마음을 열어, 그분께서 사랑과 권능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의 나무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의 나무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마음을 제단 위에 놓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밭으로 삼을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분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제단에 말씀을 심으셔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시도록 말입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제 온 마음으로 이것을 원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갈급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십 명, 또 수십 명입니다. 거기 내려놓으십시오, 그저 거기 내려놓으십시오. 짐을 주님께 가져가 거기 내려놓으십시오.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우리의 짐을 주님께 가져가 거기 내려놓으십시오.
바로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구주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죽기만 하면, 여러분의 몸과 혼과 마음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과 그 모든 즐거움이 비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여기 물이 가득한 침례탕이 있습니다. 그 물에서 올라올 때, 여러분은 새로운 생명 가운데 그리스도와 동행하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죽은 사람입니다. 더 이상... 성질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을 일으키시고, 이 세상의 모든 세력보다 훨씬 높은 하늘의 처소들에 자신과 함께 앉히십니다.
아무리 작은 사람이어도, 보잘것없는 세탁부라 해도, 글자도 모르는 형제라 해도, 누구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을 이겼습니다. 여러분의 권위는 모든 마귀와 마귀가 가진 모든 힘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했습니다.
여러분이 머리를 숙이고 계신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 온 형제가 한 분 있습니다. 싱크 형제님입니다. 싱크, 짐 싱크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는... 우리 형제들이 이 말씀의 교사로 인정한 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싱크 형제님? 오늘 아침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바로 전에 그에게 안수하여 목회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교회들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우리 형제들 중 한 사람으로 말입니다. 짐 싱크 형제님, 여기 제단으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네빌 형제님도 오십시오. 주니 잭슨 형제님, 여기 계십니까? 이 믿음을 가진 다른 목회자들도 계십니까?
여기 짐 싱크 형제님은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참으로 처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싱크 형제님? [싱크 형제님이 “아멘!”이라고 답한다.] 그분께서 죽으셨다가 셋째 날 다시 일어나 모든 것을 이기셨으며, 하나님 오른편, 높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의 중심에 앉아 계시고,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심을 믿습니까? [“아멘!”] 죄들의 사면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물침례를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대로의 성령 침례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과 이적을 믿습니까? [“아멘!”] 그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사람들 앞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산다고 믿습니다. 그는 이곳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 자주 설교하며, 제가 보니... 참으로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제 교회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기 싱크 형제님에 대해 반대되는 말을 할 분이 있습니까? 지금 말씀하시든지, 아니면 영원히 잠잠히 계십시오. 이 메시지와 이 말씀을 전하는 싱크 형제님이... 성령의 증거를 통해, 싱크 형제님이 안수를 받고 이 교회에서 복음의 사역자로 보냄받아야 한다고 믿으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오늘 아침 전한 것과 같은 이 메시지들을, 주님께서 보내시는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가서 선포하도록 말입니다. 손을 들고 “싱크 형제님, 형제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네빌 형제님, 싱크 형제님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싱크 형제님은 성경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아침 한 사람을 주님께 데려옵니다. 그는 이 세상의 부패에서 건짐받아, 자신에 대해 죽은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리라는 약속과 함께 일으켜져 이제 하늘의 처소들에 있으며, 자기 삶에 사역의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이 교회의 장로들로서, 회중으로서, 또 총감독들 등으로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돌보도록 맡기신 양 떼를 지키고자 합니다. 양 떼가 싱크 형제님이 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장로들인 네빌 형제님과 저는 그에게 안수합니다. 이로써 믿음의 기도를 드리며 짐 싱크 형제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안수하여 세웁니다.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결코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혼들을 주님께 인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그에게 충성과 형제애를 약속합니다. 어디에 있든 기도와 도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를 뒷받침하겠습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주님께 드리오니 받아 주옵소서. 아멘, 아멘.
말씀 위에 손을 얹고 계신 싱크 형제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님을 우리 교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안수하여 세웁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은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 할 일이 많고, 일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형제님을 100% 뒷받침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 된다는 것이 참 좋지 않습니까? 아, 참! 저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는 인디애나주 유티카에 있는 홀리니스 타버내클의 목회를 맡게 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어디 봅시다. 아, 우리에게... 아, 아직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좋습니다. 그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까? 좋습니다. 기도 카드 번호를 빨리 좀 부르겠습니다. 모두 잠시만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정말 많이 늦었습니다. 10분만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기도 카드, 기도받을 분들... 몇 번부터 나누어 주었습니까? 1번부터요? 좋습니다. 기도 카드 1번, 나오시겠습니까? 2번, 3번, 4번, 5번. 기도 카드 1번, 2번, 3번, 4번, 5번은 일어나실 수 있으면 가능한 한 빨리 바로 이쪽에 서 주십시오. 일어나실 수 없으면 알려 주십시오. 저희가 가서 모셔 오겠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그런데 두 분만 일어나셨군요. 10번, 11번, 12번, 13번, 14번, 15번. 모두,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은 모두 이쪽으로 옮겨 오십시오. 이쪽으로, 이쪽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분은 참으로 놀라우시지 않습니까? 이제 모두 최대한 경건하게 계십시오. 10분쯤, 이제 10분쯤입니다.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기도받기 원하는 분들은 기도 카드를 가지고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람들이 자꾸 돌아와서는 하나님의 은사를 점치는 위자판처럼 사용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하시도록 맡겨 드리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오늘 아침 이 메시지가 진리라고 믿으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온 마음과 혼과 생각을 다해 이것을 믿습니다.
이곳에 기도받을 분이 50명쯤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되어 보입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모든 질병을 이겼습니다. 기도받는 줄에 계신 분들 중 그리스도인이며 다시 태어난 신자인 분들은 모두 손을 드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의 위치는 그리스도 안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승리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뿐입니다.
이 줄 전체를 분별하며 기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요. 저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남은 하루를 여기서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이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아멘! 아, 참! 제가 가르친 이것들이 진리입니까? 그렇다면 그분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받는 줄에 계신 분들 중 저와 처음 만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아는 분도 많지만 처음 뵙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줄 곳곳에 계시군요. 좋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까? 여러분은 믿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웨스트 형제님? 그렇습니다. 자기 위치를 아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저 뒤에 서 계신 남자분, 엉덩이 쪽에 문제가 있으시군요.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기도받는 줄에 들어오실 수는 없지만, 자리로 돌아가 앉으셔도 됩니다. 그 병은 떠날 것입니다. 암이 아닙니다. 돌아가 앉으십시오. 다 끝났습니다. 저는 평생 저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형제님,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무슨 일입니까? 그분이 나았습니다! 여기 제단을 따라 계신 분들, 믿으십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십니다.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습니까? 제가 전하는 이 메시지를 믿습니까? 제가 당신의 등 쪽 질환이 떠날 것이라고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버크하트 씨, 오하이오로 돌아가십시오. 나으셨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여자분입니다. 그 여자분도 오하이오 분입니다. 맞습니다. 이름은 앨리스 맥밴입니다. 맞습니다. 수술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위장병과 여성 질환, 신경성 증상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저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나을 것입니다. 가셔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분이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그렇지요?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했음을 믿습니까? 당신의 신경성 증상과 여러 문제들이 있어도 믿는다면, 앨런 부인, 집으로 돌아가 나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지요? 저는 당신을 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당신은 신장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맞지요? 이곳 분이 아니군요. 남부에서 오셨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뒤에 계신 분이 남편이군요. 남편분은 오늘 아침 어떤 남자를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기도하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잠깐, 누군가가 보입니다. 두 분은 제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이곳에 오는 L.C.인지 S.T.인지, 그런 이름의 사람이 있습니다. S.T.인가 하는 사람인데, 두 분의 아들입니다. [네빌 형제님이 “J.T.”라고 말한다.] J.T... 그렇군요, S.T. 아닙니다. J.T.가 아닌 것을 압니다. 작고 머리카락이 검은 남자인데, 지금 바로 이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구하신 것을 받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분이 오늘 아침 여기 있습니까? 조지아에서 온 남자분이요? 네. 그렇군요. 저는 평생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그러나 방금 여기, 두 분 앞에 당신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인 줄 알았습니다. 구하신 것을 받으셨으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자, 몇 분이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라고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사도들이 한 일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이레네우스와 나머지 사람들이 한 일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머리를 숙이십시오. 장로님, 이리 오십시오. 저 줄 전체를 그런 식으로 기도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두세 분을 골라 보았습니다. 바로 이 아래로 오십시오. 제 네빌 형제님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이 줄을 따라가며 이분들에게 안수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나을 것을 믿습니까? 한 분 한 분 모두요? 여기 계신 모든 분도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머리를 숙이십시오. 우리는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이 형제를 압니다. 그래서 그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압니다. 주님, 그를 고쳐 주시고 구하는 것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아침 이 작은 형제에게 안수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건져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기 우리 다우크 자매님에게 주옵소서. 이 사랑스러운 자매님은 여기 저희와 제 가족, 사랑하는 이들에게 참된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매님과 남편분이 주님의 자녀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자매님이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기 우리 자매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 이 자매가 주님의 종임을 압니다. 자매가 구하는 것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만이 블랑코 자매님을 고치실 수 있음을 압니다. 자매를 축복하시고 이 간구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안수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매를 건져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우리는 이 자매에게 안수하며, 자매는 나을 것입니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허락해 주옵소서. 신경이 예민해져 떨리는 이 몸이 여기 서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역사 아래서 피곤해 있지만,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로 여기 이 젊은 여자를 고쳐 주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형제가 구하는 것을 주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형제에게 안수하며 원수를 정죄합니다. 그의 혼에 독을 퍼뜨리거나 그의 앞에 검은 얼룩을 놓으려는 그 원수를 정죄합니다. 주님, 오늘 아침 형제가 그것을 이기고 일어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기 위치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러면 그가 가진 것을 [불명확한 단어]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안수하오니 그의 간구를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아버지, 이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안수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이를 건져 주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 어머니의 마음의 부르짖음과 딸의 부르짖음을 압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믿음을 주시고, 이런 것들을 이길 권능이 있음을 알아 바로 지금 그 믿음이 솟아오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이 어린 소년을 고쳐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자매에게 안수하며 오늘 아침 그 간구를 허락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작은 여인이 치유를 위한 자기 자리를 취하려고 나아올 때, 저희가 안수하며 치유를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수하며 치유를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안수하오니 [불명확한 말들], 지금 자매를 고쳐 주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시고, 이 소년에게 저희가 안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음을 얻게 하옵소서.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기 용감한 우리 형제, 주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사람인 이 형제에게 안수하오니 그 간구를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제 자기 위치를 취하게 하옵소서. 여기 하나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불명확한 말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큰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걸으려는 우리 작은 자매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이 용감한 작은 혼이 오늘 아침 높이 들려 하늘의 분위기 가운데 있게 하옵소서. 자매가 구하는 것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안수하며 주님의 복이 형제에게 주어지기를 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그레이디 자매님에게 안수하며 그 간구를 허락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매에게 안수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안수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매의 간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자매가 이 줄을 지나가며 안수를 부탁하였으니, 지금 하나님의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오셔서 이 질환을 정죄하시고 자매를 낫게 해 주옵소서.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형제에게 안수하며 형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고쳐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소녀에게 안수하며 우리의 귀하신 주님께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구합니다. 아멘. 우리의 귀하신 주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안수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구하는 것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멘.
우리 아버지, 주님의 여종의 형제인 이 작은 십자가의 군사 위에 주님의 영이 임하시고 그 간구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용감한 십자가의 군사는 비난받는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위해 굳게 섰습니다. 지금도 말씀을 지키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정복자보다 더 나은 자로 걸어 나갔습니다. 아버지, 그가 구하는 것을 주옵소서. 제가 기도드리며 주님의 복을 그에게 전합니다. 주님, 그의 몸을 고치시고 구하는 것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아기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아기를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안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를 정죄합니다. 불이 [불명확한 말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진심으로 우리 자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수하는 이 자매에게, 승리하여, 육신이 된 하나님의 성막 [불명확한 말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 자매의 간구를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키드 자매님,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기 이 연로한 부부를 저희 손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제가 어린 소년일 때부터 복음을 전하신 분들입니다. 며칠 전에는 암으로 죽어 가며 누워 있었는데, 저희가 그에게 서둘러 갔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여든 살 된 그 남자에게 내려와 고쳐 주셨습니다. 의사들도 [불명확한 말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그의 간구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그의 복된 자그마한 아내에게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자매는 남편을 사역에 보내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빨래판에 빨래하며 일해 왔습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두 분의 아들 주니어를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그를 낫게 하시고 강건하게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는 두 분이 손수건을 놓아 주러 이곳저곳 다니시도록 차로 모시며 돕고 있습니다. 너무 연로하여 더 이상 현장 사역에 나가실 수는 없지만, 병원과 가정을 다니며 병든 사람들 위에 손수건을 놓아 줍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그 일을 귀히 여기실 것을 압니다. 분명히 그러실 것입니다. 아버지, 두 분을 축복하시고 앞으로 오랫동안 힘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키드 형제님. 이루어질 것입니다. [키드 형제님 부부가 브래넘 형제님에게 말한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네, 전화로 기도했던 그분이군요. 여든 살이 넘은 이 부부는 현장에 나가 강단에 설 수 없습니다. 이제는 연세가 너무 많아 그렇게 설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에 요청을 보내 기도 손수건을 꾸러미로 받아다가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보내고, 병원 같은 곳에 가져갑니다. 그 위에 놓아 주려고 말입니다... 더 이상 밖으로 나가 예전 방식으로 사역을 도울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여기 이 노인, 키드 형제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밖에 나가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용감한 노병입니다. 이제 이렇게 연로하신데, 키드 형제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든한 살인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나아갑니다! 너무 연로하여 강단에 서서 이런 메시지를 끝까지 전하실 수는 없지만, 병원과 병상 곁에는 찾아갑니다. 아들이 차로 모시고 다닙니다. 걸어서 다니실 수 없으니 차에 모셔 목적지로 데려다드리면, 이 노부부가 들어가 손수건을 얹어 줍니다. 얼마 전에는 가까운 가족 중 거의 죽어 가는 아이,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방금 그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손녀였습니다. 가서 얹어 주었는데... 지금 아이는 일어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키드 형제님은 얼마 전, 아마 2년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흔여덟 살쯤, 아니 여든 살, 거의 여든 살에 전립선암이 생긴 것입니다. 의사는 손을 놓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서둘렀습니다. 빌리와 번갈아 운전하며 그가 계신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아침 성령께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은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가라.”라고 하셨기에 출발하여, 그 노인에게 안수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어디서도 암의 흔적을 찾지 못합니다.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위치는 모든 질병과 원수의 모든 힘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분으로 인해 기쁘지 않으십니까? 거의 어디에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내렸던 그 불, 그들을 씻어 깨끗하게 한 불로 마음이 온통 타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 지금 내 마음속에서도 타오릅니다. 오,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이 사람들이 비록 배우지 못하고, 세상의 명성을 자랑하지 못할지라도, 모두 저마다 오순절을 받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전합니다. 그분의 권능은 여전히 같다고.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제 손을 드십시오. ...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오,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이제 오십시오, 형제여, 이 복을 구하십시오. 마음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기쁨의 종이 울리기 시작하게 하며, 그대의 혼이 계속 타오르게 할 복을. 오, 지금 내 마음속에서도 타오릅니다.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그들은 위층 방에 모여 모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고, 그때 섬길 권능이 임했습니다. 그날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행하실 것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이제 곡조를 흥얼거리면서 서로 악수합시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 하십시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이 한 절을 다시 불러도 되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비록 배우지 못하고, 그들에게는 거창한 신학박사나 철학박사 학위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비록 배우지 못하고, 세상의 명성을 자랑하지 못할지라도, 어떤 거대한 조직 같은 것을 말입니다. 모두 저마다 오순절을 받았고, 하나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전합니다. 그분의 권능은 여전히 같다고.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오, 온 세상의 수많은 황금을 준다 해도 이 귀한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 유혹하는 자가... 나를 설득하려고 자주 애썼지만, 나는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안전하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행복합니다. 나는 할렐루야를 부르는 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 참! 저는 그것이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 중 한 사람인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들 중 한 사람, 자신을 비우고 낮아져,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온 겸손한 사람들 중 한 사람 말입니다. 조직 앞에 나와 명부에 이름을 올린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신조를 암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육신이 되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낮추었고, 그 일을 통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은 곳으로 올려 주셨습니다. 경솔하고 교만해져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고 온유하게 “어떻게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원하셨을까? 어떻게 그렇게 해 주셨을까?” 하게 하신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느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아, 그분은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내게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오,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내게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의심해도, 나는 그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내게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내게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부르십시오!)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내게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의심해도, 나는 그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내게 참으로 살아 계십니다! 아, 저는 그것이 참 기쁩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대한 옛 복음의 길이 참 좋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옛 복음의 길 안에서 사는 것이 참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 그리스도의 왕좌 앞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여기 오래 붙잡아 둔 것이 죄송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군요. 여기에 손수건을 놓아두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제가 그 위에 안수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자마자 제가 그렇게 한 것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약하고 피곤해서 환상을 많이 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두세 시간가량 설교했으니까요. 그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이 보시도록, 줄에 있는 몇 분에게서 시작했을 뿐입니다. 불가능한 일, 역설적인 일, 헤아릴 수 없는 일들... 마귀는... 이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가, 여러분에게 주어진 권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 높은 곳으로 올려졌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들어 올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더 높이 들어 올리실수록 여러분은 더 낮아지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만큼 겸손해질 것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원하셨을까? 어떻게 그렇게 하셨을까? 그러나 그분께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합니다. 아멘! 참 좋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우리 여정이 끝날 때 천국에서 만왕의 왕으로 그분께 면류관을 씌우리.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귀한 이름, (오, 귀한 이름! 그분은 참으로 놀라우시지 않습니까?)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자, 들으십시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후렴을 부르십시오. 제가 절을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르고 싶은 절이 생각날지 모르겠군요. 예수님의 이름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우리 여정이 끝날 때 천국에서 만왕의 왕으로 그분께 면류관을 씌우리.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십시오.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삼으십시오. 유혹이 주위에 몰려들 때, 기도로 그 거룩한 이름을 조용히 부르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손을 들고 브레이크가 끼익 멈추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습니까? ... 기도로 그 거룩한 이름을 조용히 부르십시오.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귀한 이름, (오,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우리 모두 함께 다시 불러 봅시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십시오.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삼으십시오.”라는 그 절을 다시 부릅시다. 이제 눈을 감고 부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십시오.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삼으십시오. 이제 들으십시오. 어떻게 하라고요? 유혹이 주위에 몰려들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로 그 거룩한 이름을 조용히 부르십시오.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브래넘 형제님이 옆으로 말을 건넨다.] 땅의 소망... 이제 여러분의 목사님, 네빌 형제님께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