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늘 그렇듯 한두 시간 늦게 왔습니다. 목사님이 일어나서 “자, 여러분께 늦으신 브래넘 씨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할 일이 많아서 가끔 늦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날씨 때문에 그랬습니다. 날씨 탓으로 돌리면 넘어갈 수 있겠지요. 로즈 형제님, 조금 미뤄야 했습니다. 로즈 자매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이곳에서 로즈 형제님과 로즈 자매님, 샤릿 형제님, 여러 형제님들, 그리고 저기 계신 좋은 분들을 뵈니 반갑습니다. 듣자 하니… 누가 그러는데, 피닉스에서는 비가 오면 모두 그냥 침대에 누워 지낸다고 하더군요. 날씨가 워낙 달라지니까요. 조만간 제가 공짜로 밥을 한 끼 먹게 생겼습니다. 해가 비치지 않는 날은 언제든 공짜로 식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잘 지켜보다가 그 약속을 지키게 해야겠습니다.
어젯밤에는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젯밤 그 예배에서도 참 좋은 시간을 보냈고, 아웃로 형제님 교회에서도, 템피에 올라가서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교제하면서 참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집회에서 이 목회자 형제님들을 모두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로즈 형제님, 좀 편히 쉬면서 서로 이야기할 시간이 있겠지요. 제가 온 목적은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정을 살펴보니 갈 곳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것이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분들을 만나 뵙고, 뵌 뒤에 또 다음 곳으로 갈 수 있으니까요.
설교하다 보면… 모든 목회자는 이런저런 오해를 받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이 한 말을 받아다가 조금… 자기 쪽으로 조금 기울여서 그렇게 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조금 더 기울입니다. 어느새 완전히 빗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교할 때 저는 교파와 조직 같은 것들을 좀 세게 나무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브래넘 형제님은 조직을 반대한다”라고 합니다.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저는 어떤 조직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리스도 대신 그 조직에만 의지하고, 거기에 모든 소망을 거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 조직에 교인을 얼마나 많이 모을 수 있는지 보려고 합니다. 그건 아주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모든 조직이 모을 수 있는 교인은 다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조금 전에 로즈 형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을 강조하는 것보다 그것을 더 중시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우리는 여기에 속했어”, “우리는 저기에 속했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아시겠죠?
제가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저는 인디애나의 강가에 사는데, 오하이오강입니다. 바로 폭포 옆에 삽니다. 그 폭포는 아주 험한 곳입니다. 순식간에 사람을 산산조각 내 버리니까요. 한번 그 폭포로 넘어가면… 그곳을 타고 내려갈 수 있는 배는 없습니다. 무려… 약 40피트나 50피트를 수직으로 떨어진 다음, 밑바닥에서 물이 엄청나게 소용돌이칩니다. 바로 그곳의 바위, 기반암 위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물마루, 하얀 물마루가 폭포 아래에서 40피트 높이까지 솟구칩니다. 물이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그렇게 계속 뒤집히며 내려가다가 깊이가 약 60피트나 70피트 되는 큰 급류 물길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는 소용돌이가 있어서 물을 이렇게 빙빙 돌리다가 밖으로 내보내고, 물은 수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살아남을 길이 도무지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구명조끼를 입고 그곳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떨어지는 순간에만 조끼가 보였다고 합니다. 그 구명조끼조차… 그 엄청난 물살이 그를 그대로 물밑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 아래쪽 한두 마일 정도 되는 곳의 바위나 바위턱에 걸렸겠지요.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조그만 낡은 배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것을 제가 보고 “그 배에서 나오시오!” 하고 소리를 지른다고 합시다… 그 배로는 그 급류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를 호되게 꾸짖고 아주 심하게 말해야 한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가 산산조각 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잘됐군. 그대로 가시오”라고 하겠지요. 그를 아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교회를 향한 열심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열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저 조직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런 경향을 압니다. 모든 교회가 바로 그렇게 조직을 좇아가다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졌습니다. 루터 시대의 부흥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로 갔는지 보십시오. 일단 거기에 이르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루터교는 결코 되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웨슬리의 감리교를 보십시오. 결코 되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필그림 성결교, 나사렛교, 그 밖의 모든 교회들, 침례교와 장로교를 보십시오. 그들에게 부흥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사람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이 성령 안에서 그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떠나자마자 그 운동을 바탕으로 조직을 세웁니다. 무디 성경학교처럼 말입니다.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무디가 이끌던 때와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무디가 지지했던 것들에서 지금은 백만 마일이나 벗어나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지적인 차원에 머물지만, 무디는 성령 위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런 일들을 보면 알게 됩니다… 제가 처음 시작하여 여러 해 전 오순절 운동 가운데 이곳 피닉스에 왔을 때, 저 자신도 조직을 만들 기회가 있었습니다. 늦은 비 운동의 형제들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시작합시다. 그러면 다른 모든 조직보다 더 커질 겁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런! 그게 아닙니다. 형제님들, 그게 할 일이 아닙니다. 길에서 백만 마일이나 벗어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그것을 복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를 읽어 보십시오.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또 다른 조직이 나오는… 이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운동도 조직을 이루어 그… 지금은 라오디게아의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하나님께 복을 받는 조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에는 더 이상…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에 와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진행되어 온 이 거대한 교회 일치 운동에서 남은 자들을 이끌어 내어 신부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영적으로 조직할 만한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끝났습니다.
제 형제들, 귀한 형제들이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면,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쏟아붓습니다. 그러면 형제들이 때때로 “브래넘 형제님은 우리를 반대하는군”이라고 합니다.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세상에! 누구를 반대한다는 것은 제 생각과 가장 거리가 먼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 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특정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 틈에 서서 “형제님,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성회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성회는 제게 엄청난 복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포스퀘어입니다.” 그들이 제게 얼마나 큰 복이 되었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 이름 교회입니다.” 그들이 제게 얼마나 큰 복이 되었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그 밖에 누구든, 그들은 모두 복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모든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뭉쳐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보다 조금 더 낫지”, 혹은 “우리는 포스퀘어나 예수 이름 교회보다 조금 더 낫지”라고 하기 시작하면, 실상 우리는 그저… 생각에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함께 식사하러 간다면 파이는 각자 다른 것을 고르겠지요. 하지만 다 같이 파이를 먹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요점은 우리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조직 쪽으로 기울지 말고 갈보리를 의지하십시오. 이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 되십시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생각난 김에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직도 좋은 역할을 해 왔다고 저는 믿습니다. 형제님들, 생각하기도 싫지만, 우리 가운데 이단적인 일들이 생겨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단적인 것을 붙들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흩어 놓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함께 모여… 제 말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밖으로 나가 온갖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조직에 관한 한, 제 생각에 오순절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은 그 교회… 스웨덴의 페트루스 형제님, 필라델피아 교회입니다. 그들은 성경적이기만 하면 여러분이 어떤 교리를 가졌든 개의치 않습니다. 이것을 이런 식으로 보든 저런 식으로 보든, 어떤 식으로 보든, 서로 교제하고 참으로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흰말을 타고 오신다고 말하고 싶고, 다른 사람은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그분을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하십시오. 선하고 깨끗한 삶을 살며 교제하기만 하면 됩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 실업인회와 함께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낫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말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형제님들이 말씀해 주시겠지만, 저는 그들에게 할 말을 감추지 않습니다. 저는 진리를 말하려고 이곳에 온 하나님의 종이며,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로즈 형제님은 “그래서 우리가 형제님을 좋아하는 겁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얼마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형제님도 거기에… 저는 작년에 해외에, 그러니까 그 섬에 갔는데, 거기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의 실업인들이 모인 그 큰 집회에서 몇몇 형제들이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저는 길모퉁이에 작은 가게 하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사가 안돼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는데, 아, 지금은 모든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건 좋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번영한다고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건 좋은 일입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 일행이 묵던 모텔로 내려갔을 때, 저는 형제들에게 좀 따끔하게 말했습니다. 샤카리안 형제님과 우리 모두가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들,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형제님들이 제 평생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 안에 있는 그 연합회에는 속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회원증을 가지고 다닙니다. 제가 지니고 다니는 유일한 회원증입니다. 모든 조직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듭니다. 제가 애쓰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형제님들보다 천 배나 더 부유한 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가 곧 번영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런 생각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결코 세상과 견주려 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 쪽으로 오게 하십시오. 그들 쪽으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들 쪽으로 넘어가면, 그들과 겨루어 번쩍일 수 없습니다. 사실 복음은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은은히 빛납니다. 할리우드는 번쩍이고, 복음은 은은히 빛납니다. 은은히 빛나는 것과 번쩍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초기 오순절 형제들 가운데 재산이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려 했고, 그렇게 한 다음 아무것도 없이 나가 복음을 전하고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자랑하려 합니다.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잠시 뒤에 귀한 한 형제님이 일어나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팔라는 뜻으로 암시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실업인들에게 한 가지 요점을 전하려는 것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제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든, 그분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는 “그건 교회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있던 그 사람들 앞에서 저는 물었습니다. “형제님, 왜 그렇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 교회에 작은 다툼이 일어나자마자 [그리스 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 사이에 의견 차이 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집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것이 정확히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성령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그러지 않으십니다. 그뿐입니다.” 어젯밤에도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은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이끄시든 계속 따라가십시오. 그렇게 계속 나아가십시오.
하지만 저는 분명 이 실업인 연합회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초청받는 대집회에는 언제나 가서 말씀을 전하며, 할 수 있는 말은 다 합니다.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무슨 말을 지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집회에 갈 때마다 저는 연구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며 “주 예수님, 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제가 무슨 말씀을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여쭙습니다. 모두 아시듯 저는 설교자가 아니고, 연설가도 아닙니다. 저는… 누구나 압니다.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제 메시지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제 설교를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는 힘을 그 말에 담고 싶습니다. “정말 힘 있게 말하지 않습니까? 문법을 정말 정확히 쓰지 않습니까? 강단에서 참 훌륭하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런 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나 그 교회에 도움이 되어 더 나은 교회, 더 나은 사람들이 되게 할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비가 오는 가운데 아직도 몇 분이 들어오시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15분이 지났군요. 그리고 이 형제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풀러 형제님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해 왔습니다. 풀러 형제님, 우리에게는 공통점도 많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풀러 형제님을 보아 왔고, 그분이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교제하러 왔습니다. 그분이 여기 이 장소에서 한다고 광고하셨던 그날 저녁에… 제가 참석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 와서 그분의 교회를 보니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번성하게 하시고 복 주셨으니 참 좋습니다. 그분께서 이들을 위해 하신 모든 일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그분과 이 예배당, 이사회와 집사들, 모든 교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고 번성하시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겸손한 기도입니다.
이제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의 저자께 나아갑시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지금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머리와 마음을 숙이고 엄숙히 앉아 있는 동안, 여러분 마음속에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어서 주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오늘 아침 이 교회에서 제가 기도할 때 여러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손을 들어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침 저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나아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저희가 빗속을 뚫고 차를 타고 왔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저희 마음에 하늘의 비, 영적인 비, 늦은 비와 이른 비를 함께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교회를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교회와 목사님과 회중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붕 아래 모여 편안하고 좋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장소로 인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마음으로 초기 교회, 사도들의 그 초기 보편적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돌판이나 앉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에나 앉았던 모습을 봅니다. 그런 다음 차갑고 돌과 흙으로 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며 성령의 임재를 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에 그토록 굳은 결심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자 굴에 들어가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분 후면 자신들이 사랑하는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 감옥과 불길과 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 선조들의 믿음, 오 주님, 그런 믿음을 저희 안에 새롭게 해 주옵소서. 성령께서 주시는 사도들의 그 큰 복을 저희에게 내려 주옵소서. 주님, 오늘 손을 들었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그 손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 마음속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주님, 오직 주님만이 모든 필요를 채우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필요를 알지 못하지만 그들을 위해 간구하며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각 사람을 위해 신실하게 기도하오니, 그들이 구한 것이 무엇이든 받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 그들을 복 주옵소서.
이제 오늘 아침 주님의 말씀을 읽고, 말하자면 이 일요일 성경 공부 반을 가르칠 때, 이 말씀들을 받아 그 위에 덮인 모든 불신의 껍질을 벗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사탄의 어떤 힘이든 그 말씀을 감싸 가두어 자라지 못하게 하려 한다면 그것을 벗겨 주옵소서. 말씀이 모든 마음에 들어가 그 안에서 의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믿음이 주님께서 말씀으로 이루도록 정하신 것을 맺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그것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그것을 위해 정해진 일을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 주님의 종을 거룩히 구별해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은 이미 거룩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과 제가 함께 성령께서 저희에게 돌보도록 맡기신 양 떼를 먹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말씀을 전할 때 함께 성경을 읽기 좋아하시는 분들은 성경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께 드릴 짧은 일요일 성경 공부 메시지 같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여기 어디에 앉아 계시든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마이크를 위로 올렸습니다. 목이 조금 쉬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독감에 걸렸습니다. 마귀는 제가 여기 오지 못하게 하려고 있는 힘을 다 썼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번 대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무언가 큰 것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탄이 제가 여기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창세기 22장을 읽겠습니다. 성경을 펴시는 분들은 함께 그 일부를 읽읍시다. 창세기 22장, 9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다다르니라. 아브라함이 거기에 제단을 쌓고 가지런히 나무를 놓고는 자기 아들 이삭을 결박해서 제단 위의 나무 위에 올려놓은 뒤 아브라함이 자기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므로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내게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하니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뿔들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그 숫양의 뿔들이라고 해야겠군요—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위에…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들이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이것을 맹세하였노라.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내가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저는 마지막의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라는 구절을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놀라운 약속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아마 여러 번 거듭 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고향 땅에서 불러내셨는지, 그가 그저 평범한 사람, 특별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이 아브라함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을 그의 씨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아,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말씀하시고 확신을 주시는 자리에 제가 있었다면, 저도 아브라함처럼 되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저도… 브래넘 형제님, 저도 정말 믿음을 가졌을 겁니다. 제가 그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제게 말씀하셨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도 아브라함이 받았던 바로 그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말입니다. 그러면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방인입니다. 제가 아브라함의 씨를 지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육적인 씨가 아니라 영적인 씨였습니다. 그 할례는 아무… 그 약속은,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할례 전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할례 전에 그에게 주어졌으며, 그가 할례를 받고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아브라함의 씨가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겉으로 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이 아니라 속으로 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면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영적으로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혈통으로 태어나 그 교회에서 정통 유대인이 되면서도 이 귀한 성령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보다, 여러분이 더 유대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늘로부터의 약속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므로 더 유대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그를 그런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결국 유대인이란 그저 분리되어 건너온 히브리인이라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그 경계선을 넘어, 처음에는 살아 본 적 없는 땅, 처음에는 어울려 본 적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그네로 지내게 된다면, 영적인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자기 고향과 자기 백성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낯선 땅으로 들어갔듯이, 여러분도 자기 백성을 떠나고 세상을 뒤에 남겨 두고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을 뒤에 남겨 둔 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신 도시를 찾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순례하며 천막들, 교회들 안에 거하고, 하늘의 왕국의 시민이 함께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상속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건너왔고, 분리되었습니다.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뒤를 이을 그의 씨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 검증하신 뒤에, 그의 씨가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는 이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시험이 있은 뒤에… 아브라함은 이미,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교에서 하나님께로 회심한 상태였고, 그 후 하나님께서 성령의 표적으로 할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은 뒤에 시험의 때가 왔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아주 아름다운 모형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뒤에, 약속된 할례의 인을 받는데, 그것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에 속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할례입니다. 하나님의 날카로운 칼입니다. 우리에게서 세상에 속한 육체의 불필요한 부분을 분리하여 잘라 냅니다. 양날 달린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다시 바로 그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조도 교파도 아닙니다. 우리를 세상의 것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각 같은 것들을 잘라 내고,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의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입니다. 아시겠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할 수 있느니라.” 무슨 뜻인가 하면, 여러분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분리하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할례, 곧 잘라 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시험의 때를 거칩니다. 아브라함은 칼데아 사람들의 땅 우르라는 도시에서 부름을 받고 나온 뒤, 순례자,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가 계속 나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리라는 것이 입증된 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셨다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례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자기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러분도 부름을 받아 나오면, 처음에는 정말 계속 나아갈 것인지를 알아보는 시련을 거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그 믿음을 그분께서 받아들이셨다는 표적입니다. 제 말을 따라오고 계십니까? 그분께서 그 믿음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제가 어떤 분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귀한 침례교 형제님들이 앉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침례교에서 나온 것은 모두 아십니다. 한 침례교 형제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가 제게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신학박사였고, 훌륭한 사람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성령 침례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별개라는 근거를 어디서 찾으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귀한 형제님, 그것은 다릅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인정하실 때까지는, 형제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고백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례의 인을 주셨을 때, 그의 믿음을 받아들이셨다는 표적을 주신 것입니다. 그 믿음을 인정하셨다는 것이지요.” 아멘!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그것이 신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할례의 인, 곧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아들이셨다는 표적을 주십니다. 그것이 할례의 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다음 집회 때까지가 아니라, 여러분의 구속의 날까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아직 성령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분께서는 아직 여러분을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의심이… 제가 지금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으시면… 아니, 여러분이 그분께 은혜를 입고, 그분께서 여러분을 자기 자녀로 인정하시면, 또 여러분의 마음을 아시고 신실함을 보시며 여러분에게서 모든 것이 잘려 나간 것을 아시면, 성령으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왕국 안에 봉인하십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분을 믿는다고 고백한 그 믿음을 받아들이셨음을 세상에 입증하십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런 다음 곧바로 유혹이 닥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먼저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시험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강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자마자, 마귀는 곧바로 그분을 광야로 데려가 유혹의 때를 거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하시며 마귀를 이기신 뒤, 사역을 하실 준비를 갖추고 돌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도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고향 땅에서 불러내신 뒤에, 그가 자기 땅과 자기 백성에게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할례의 인을 주시고, 그 후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시험에 이르렀습니다. 자기 아들 이삭을 희생물로 바쳐야 하는 바로 그때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않았으므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아노라.” 그분은 그에게 그 시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그때는 싸움에서 이긴 뒤였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씨가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 아멘!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 주님께서 원하시면 잠시 후에 그 마지막 요점에 이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신실함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신실함을 보신 뒤에,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 오순절 신자들 중 많은 사람이 여기서 자주 실수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령께서 제게 부어졌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이제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때는 막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걸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시험과 시련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꼭 같습니다. 시험하고 검증한 뒤에 아들을 세우는 것, 곧 양자 삼는 일입니다. 이미 아들이 된 사람을, 그 집안에 태어난 아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는 아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교사들에게 양육받으면서 시험과 검증을 거쳐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지위상 아버지와 거의 동등한 자리에 세워집니다.
오늘날도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순절의 시험을 약 40년, 또는 그 이상 겪어 왔습니다. 교회가 굳게 설 것인지, 여러분이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교회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또 바로 그 점입니다. 십자가와 말씀을 붙들고 전진하는 대신, 우리는 세상을 본받아 이쪽으로 기울거나 저쪽으로 기울고, 이런 것을 본뜨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의 이런 현대적인 풍조를 따르는 사람들을 늘 강하게 책망해 왔습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고, 남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온갖… 단정치 못한 옷을 입는 것 같은 일들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비판을 아주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교회를 구하려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그들을 이 하나님의 말씀에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문제는 제가 어젯밤에 말했던 것처럼, 오순절 신자들은 세차게 부는 강한 바람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들은 바람이 세차게 불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지자의 주의를 끌지 못했습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도 동굴에 있던 선지자 엘리야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요란한 천둥과 번개, 쏟아지는 비도 그의 주의를 전혀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고요하고 작은 음성,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 어떤 것이었습니다. “내 말씀은 진리니라.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되 내 말은 참되다 할지어다.” 그것이 선지자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주의를 끕니다.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아는 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시험의 때를 거칩니다. 교회도 시험의 때를 거칩니다. 각 사람도 원수의 문을 소유할 수 있기 전에 시험의 때를 거칩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거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거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지신 뒤 시험의 때를 거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부름을 받고 나와 나그네로 지낼 땅에 들어간 다음 할례를 받았고, 하나님께서 거듭 만나 주셨지만, 그래도 시험의 때를 거쳐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씨가 똑같이 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 조직, 교회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 조직들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이유는, 시험이 왔을 때… 무슨 시험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험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할 것인가? 그것이 차이입니다. 그러고 나서 드와이트 무디의 시대, 피니, 생키, 녹스, 칼뱅, 스펄전과 그 밖의 모든 영적인 사람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들을 뒤따라 조직들이 생겼습니다. 뒤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기들 방식대로 파고들어 각자 이것저것을 믿으며, 여기에 조금 더하고 저기서 조금 빼고, 여기에 조금 더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면, 참되고 진실한 신자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돌아서서 보잘것없고 겸손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것을 산산조각 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 말씀에 머무는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산산조각 내시는 것입니다.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집에 편지 한 통이 있습니다. 오순절 운동의 큰 조직에 속한 아주 훌륭한 교회 중 한 곳에서 온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진 그 가엾은 여인이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남편도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저희는 아주 영적인 교회가 있던 도시에서, 이 큰 교회가 있는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 도시의 제일교회였습니다.” 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 보니 오순절 자매님들이 모두 머리를 잘랐습니다. 그들은 제 머리를 두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그냥 말하자… 그들은 그 여인을 비웃으며 “이봐요, 뒤쪽 타이어 바람이 빠지고 있네요. 예비 타이어 말이에요”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얼마나 성화를 부렸는지, 남편이 저더러 머리를 자르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줄곧 정죄감을 느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할 오순절 교회가 말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여러분을 데려가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진리로 부르시는 말씀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모두 세차게 부는 강한 바람, 많은 외침과 춤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들에게 권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저도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춤추고 외친 뒤에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세상처럼 산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으로 내려오셔서 여러분을 곧장 갈보리로 인도하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죽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며, 성령으로 봉인됩니다. 그러면 그 말씀만이 그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그것이 차이입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광신자로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광신자라면 저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바로 이 안에 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 거한다면 밖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모든 성향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을 때, 그는 백 퍼센트 통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직을 시험하실 수 없습니다. 온갖 것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직을 그런 방식으로 다루지 않으십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는 민족 단위로 다루지 않으십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 백성을 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한 민족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 가운데서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한 백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그분께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취하시는 것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시험이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의롭게 되기 위해 분명히 나왔습니다. 오순절 운동 안에서 성령 침례를 분명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험의 때가 오면… 세련된 학자들을 데려오고, 웨슬리 운동과 그 밖의 모든 운동 시대에 그랬듯이 세상과 같아지려 합니다. 그들은 학교에 갑니다. 과학을 배웁니다. 교육에 따르는 온갖 다른 것들을 배웁니다. 그리고 심리학을 배우려 합니다. 그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이것저것 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면…” 보십시오, 여러분은 끌어모으고 세우고 있는 것입니까…?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동기가 잘못되었습니다. 갈보리를 향해 세우는 대신 조직을 향해 세우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으면서 어떻게 갈보리를 향해 세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의 물로 씻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바로 거기서 오순절 운동의 패배를 보게 됩니다. 그들이 말씀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한 가지를 말하는데, 그들은 그 조직이 어떻게든 거기에 들어맞게 하려 합니다. 그러고는 그 말씀에서 곧장 떠나, 그것을 조직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그것이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십니까? 거의 다른 교회들과 같아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춤추고, 외치고, 방언을 말하고, 펄쩍펄쩍 뜁니다. 그런 것들은 좋습니다. 조직도 좋습니다. 제 뜻을 분명히 전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시험을 거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듯 여러분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 뒤에 오는 그의 씨를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수의 문을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 우리 가운데 이토록 많은 일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시험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으로 시험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가 갖지 못하는 이유, 조직들 안에서는 결코 갖지 못할 이유는… 저는 오순절에 훌륭한 조직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그 조직들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에도 제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 바로 인디애나에 한 형제님이 계신데, 제가 곧 그곳에 가서 집회를 할 것 같습니다. 로이 위드 형제님입니다. 인디애나주의 지역 책임자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성회의 지역 책임자이십니다. 포스퀘어에도, 아, 얼마나 많은…? 롤프 맥퍼슨과 그 밖의 많은 형제님들은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흠잡을 것이 없습니다. 좋은 분들입니다. 또 일신교, 자기들이 그렇게 부르는 곳에도 있습니다. 일신교, 아니 지금은 예수 이름 교회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잭 무어, 그중에서 한 분만 꼽은 것입니다… 수백 명이나 있습니다. 훌륭한 분들, 좋은 분들, 경건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형제님, 문제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조직에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그 조직들을 보시니, 하나같이 무너졌습니다. 보십시오. 세속적인 것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여자들을 보고, 남자들을 보고, 상태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 집사회의 집사들이 두세 번씩 결혼한 경우도 여러분에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들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고 반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면서도 여전히 성령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방언을 말하거나 펄쩍펄쩍 뛰거나 외치는 것을 증거로 의지합니다. 그들은 말씀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이 십자가를 기준으로 균형을 잡게 해 줍니다. 바로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는 아가보 같은 참된 선지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누군가 방언을 말해도 거의 존중하지 않습니다. 가짜와 소란스러운 행동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통역은 그저 착각에 불과합니다. 누군가가 인도받는다고 느껴서 무언가를 말할 뿐입니다. 그것은 통역이 아닙니다. 통역이란… 누군가 서서 방언을 말하고, 몇 분 뒤에 다른 사람이 일어나 그가 한 말을 통역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말할 때 다른 사람은 바로 거기서 한마디 한마디 통역하며, 표현도 같고 모든 것이 같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예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통역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는데, 여기 뒤에서는 다른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열 마디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통역이라면서 뒤이어 쉰 마디를 합니다. 통역이란 한마디 한마디 그대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한마디 한마디, 줄 위에 줄, 줄 위에 줄로 나와야 합니다. 말씀은 그렇게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너무나 많은 가짜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말씀에 머무는 대신 그것을 내세웠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기만 하면 오순절 신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시험이 올 때, 시험의 때에 그 씨가 비로소… 무엇이 씨이고 무엇이 아닌지 드러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브라함은 말씀, 곧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조직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조직들에 속한 귀한 형제님들, 한 번만 그들과 다른 의견을 내 보십시오. 어디로 가게 될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 몇 분이나… 지금 이 건물에 계신 분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서재에 오셨던 분들, 저와 함께 계셨던 분들 중 얼마나 많은 분이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진리인 줄 압니다. 하지만 여기서 쫓겨나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셨습니까? 형제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갈보리를 붙들고, 약속을 붙들고,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려는 말은 그것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실패해 왔고, 언제나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실패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약속을 첫자리에 두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으로 시험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는 서류에 서명할 것입니다. 말씀에 어긋나더라도 여전히 서명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으로는 그것이 잘못임을 압니다. 그것은 그 말씀을 들려주는 고요하고 작은 음성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무엇인가…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에서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너무 성급히 뛰쳐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셨는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산들이 흔들리자 너무 성급히 뛰쳐나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선지자 엘리야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먼저 그 음성을 원했습니다. “나는 바로 여기 누워 있겠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치유 집회를 시작했습니까. 육적인 흉내, 하나님의 말씀에는 나타나지도 않는 온갖 일과 감각적인 체험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를 기다리는 자들”이라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제 교만을 낮추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 주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게 하소서. 그 음성은 성경적인 음성일 것입니다. 정확히 말씀과 일치하게 말할 것입니다. 아멘.
좋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한 뒤에 인정받았습니까? 부름을 받고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집, 친족에게서 분리되어 낯선 땅으로 들어간 뒤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시려고 할례를 주셨습니다. 그는 그 약속을 믿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육안으로 그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증거가 아무리 많이 나타나도 여전히 거짓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겠습니다. 보십시오.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머리를 기를 만큼의 단정함조차 없는 여자들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한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라고 성경이 말하는데도, 남자에게 속한 의복을 걸치고 다니는 여자가 있다면… 그러면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런 일을 합니까?
어느 날 오리건에서 그 문제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 여인이 제게 아주 긴 편지를 썼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놀라운 사역을 가지고 계시지만, 분명 그것을 망치고 계십니다.” 그 여인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저는 늘 작업용 바지를 입습니다. 텃밭에 나가 채소를 따는데 치마를 입으면 어떻겠습니까? 치마를 입는 것보다 작업용 바지, 그러니까 청바지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그것을 입는 것이 훨씬 보기 좋지 않겠습니까?” 또 말했습니다. “저는 남자들이 소를 몰러 산으로 올라갈 때 그들과 함께 말을 타고 갑니다. 모기가 들끓는 지역으로 들어가지요. 치마를 입으면 모기에게 온몸을 물리겠지만, 작업용 바지를 입으면 괜찮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건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도 더 묽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의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은 거짓되되 그분의 말씀은 참되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 아내는 치마를 입고도 텃밭에서 채소를 땁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여자가 남자들 무리와 함께 밖에서 소를 모는 일에 나설 이유도 없습니다. 여자는 자기가 있어야 할 부엌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저 핑계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핑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여자는…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남자는 자기 아내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기 머리를 자르는 여자는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느니라.” 그리고 남편이 그 여자의 머리입니다. 그 여자는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이제 그만 말해야겠군요. 좋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만큼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악의를 품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악의를 품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제 죄악 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기 제단으로 내려가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합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말씀드리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맞추려면 하나님의 그 작은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의 때를 거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시험의 때가 지나면, 교파의 가정에 태어난 그 아들이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가 시험을 통과하고 아버지의 뜻에 계속 머물렀다면, 그 소년을 데리고 나가 옷을 입혔습니다. 그런 다음 의식을 행하고, 그 소년을 그가 태어난 집안의 아들로서 정식 지위에 세웠습니다. 오늘날 우리 오순절 신자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며, 우리 조직들은 이쪽저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말씀에 머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머문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분은 그것을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여러분이 따로 불려 나가 구별되고, 참된 무언가를 받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함께…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을 기다리고 계시지만, 그들은 도무지 말씀에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그 시험의 때에 이르면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랬다가는 교회에서 저를 쫓아낼 겁니다.” 좋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씨… 무엇이 아브라함을 거슬러 왔든, 그는 바로 그 약속의 말씀에 머물렀습니다. 그대로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사라가 어떻게 나오든, 다른 사람들이나 이런저런 사람들이나 무엇이 어떻게 나오든, 그는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바라보았습니다. 약속을 볼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마지막 시험을 주셨습니다. “내가 그를 두 배로 시험하리라. 이제 그는 이미 아들을 얻었다. 아들을 얻은 것을 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아들을 데리고 올라가 죽이라고 하리라. 그 아들을… 그가 볼 때… 그 아들을 죽일 것인가? 이제 그를 시험하리라. 아브라함아, …” 말씀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약속을 받고서 어떻게 그 일을 멈추겠습니까? “지금 당신 나이가 115세인데 어떻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까? 어린 이삭은 열네다섯 살쯤 되었는데, 당신은 115세이면서 어떻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겠습니까? 여기 있는 아이가 당신의 외아들인데, 당신에게 있는 유일한 증거를 스스로 없애 버린다는 말입니까?” 아멘. “조직에서 나오면 제가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제가 어떻게 해 나가겠습니까…” 오, 말씀과 함께 오는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말씀과 어긋난다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말씀에 일치합니다.
아브라함은 곧바로 그 음성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고요하고 작은 음성,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나아가 자기 아들의 목숨을 취하려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손을 멈추라. 이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아노라. 그리고 네 뒤에 오는 모든 자들, [할렐루야!] 네 뒤에 와서 기꺼이 내 말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는 네 씨가 될 것이니라. 거기서 그 씨가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
며칠 전에 일어난 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 네 뒤를 이을 네 씨가.” “아브라함아,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자방아 맷돌이 네 목에 달린 채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나으리라…” 경건한 사람들이 진리와 말씀과 성령과 하나님의 권능을 위해 굳게 서고 말씀에 머물렀다고 해서, 그들을 내쫓는 이 조직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망각의 바다에 빠져 버립니다. “이 기름부음 받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는, 연자방아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나으리라.” 이들이 누구입니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우리 교회들 중 일부는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유를 부인합니다. 더 이상 자기 교회에 그것이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오순절 조직들은 더 이상 신유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입니까? 마귀가 어떻게 일해 왔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그 주변에 들어와 그런 가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지적인 데 그치는 사람들이 자기가 영적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보십시오. 그러고는 “저 사람을 보세요. 저 사람을 보세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지를 바라볼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바라봅니다. 이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러지든, 저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러지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약속은 여전히 참됩니다. 여러분은 그 시험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시험받고, 그 다음 인침을 받았으며, 그 다음 그의 씨가 원수들의 문들을 소유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시험을 받은 뒤 자기 원수들의 문들을 소유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시험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직들은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복 주시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온갖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생각들을 한데 모아 자기들 나름대로 가장 나은 것을 내놓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이분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분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도 바로 그런 식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똑같습니다. 지적인 신자들, 지식인들의 무리 위에 말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살펴 시대에 맞춥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있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더 많이 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조직은 원수의 문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제멋대로의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원수의 문을 소유하는 것은 개인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몇 사람을 살펴보면서 성경과 일치하는지 봅시다.
바빌론에 형상이 세워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를 잘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그 형상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태워질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며, 어떤 것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을 지킬 것인지 판가름할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나팔과 비파와 피리 소리가 나자, 그들은 모두 그 형상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절대로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들었고, 말씀에 맞추어 그대로 섰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 뒤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혹은 “너희를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겠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든 우리는 말씀을 붙들겠습니다.”
형제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붙드십시오. 약속을 붙드십시오. “우리 교인들이 모두 저를 떠날 겁니다.” 약속을 붙드십시오. 어차피 그들은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십니다. 약속을 붙드십시오. “말씀드리지만, 그들이 저를 쫓아낼 겁니다.” 그래도 똑같이 약속을 붙드십시오. 바로 그 약속을 붙들고 계십시오. 약속을 붙들면서 그곳에 머물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그대로 머무십시오. 모든 사람과 교제하십시오. 하지만 여기서… 모든 사람과 교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사람들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그렇게 타락하게 되면, 그곳을 멀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원수의 영역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하지만 형제를 얻으려 애쓰는 것이라면 다릅니다. 아시겠죠?
이제 보십시오. 하지만 여러분 한 사람의 힘으로 조직의 생각을 설득하여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코 못합니다. 그들이 규칙을 정하여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라고 마침표를 찍으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교리를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하고 쉼표를 찍어 적는다면 다를 것입니다. 마침표는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당신도 여기에 맞추고 이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이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쉼표) 그에 더하여 하나님께 배울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믿는다. 우리는 성령께 마음을 열어 놓고 있다”라고 한다면, 형제님, 여러분은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마침표를 찍어 놓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른 어떤 것이 나타나서 그것이 그분의 말씀이며 진리라는 것이 입증되어도, 여러분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침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루터교가 바로 거기서 죽었습니다. 감리교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침례교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장로교가 거기서 죽었으며, 오순절 교회도 거기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다 적혀 있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죽는 것입니다.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교리입니다.
루터는 성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 자신이 아니라 그를 따랐던 무리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존 웨슬리 자신이 아니라 그를 따랐던 무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칼뱅 자신이 아니라 그를 따랐던 무리입니다. 교회를 위해 밤마다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여 눈이 부어 감길 정도였고, 아내가 그를 이끌고 나와 식탁에서 숟가락으로 먹여 주어야 했던 침례교의 존 스미스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 그를 따르는 이 침례교 무리, 그 뒤에 생겨난 조직입니다. 알렉산더 캠벨 자신이 아니라 그를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모든 사람과 교제했던 오순절 운동 자체가 아니라, 나중에 와서 “아니, 우리는 이쪽이다”, “우리는 저쪽이다”, “이것들이 쟁점이며, 이것으로 끝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갈라진 무리들입니다. 마치 믿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악한 것이 있습니다. 아멘! 오늘 아침 믿음의 열정이 솟는군요.
히브리 청년들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 것인지 아닌지 시험을 견딘 뒤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원수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아멘! 왜 그렇습니까? 말씀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말씀, 곧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붙드십시오. 온갖 이성적인 생각은 말합니다. “자, 바빌론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형상 앞에 절해도 어차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니까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더라도 우리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식대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야, 신을 벗으라. 모세야, 너는 거룩한 땅에 있느니라”라고 하셨을 때, 모세가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분명히 주님을 믿습니다. 대신 모자만 벗겠습니다. 신 끈을 풀기가 너무 번거롭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결코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신”이라고 하셨지 “모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한 줄 한 줄 그대로 따르며, 그분의 말씀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들이 시험을 받은 뒤에는 원수, 곧 불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끝까지 갔을 때, 그 문을 소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도 그 뒤에… 다른 어떤 신에게든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는 포고문이 나왔습니다. 메대와 페르시아의 서명을 받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직 그분께만 기도하라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창문을 열고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구석으로 물러가 숨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향해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일요일에는 신앙생활을 하고 월요일에는 딴짓을 하거나, 마음속으로는 한 가지를 믿으면서 다른 사람 앞에 가서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강단에서 내려오고 교회에서 나오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양쪽 모두에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무엇을 믿는지 말하십시오. 그러면 뒤로 물러설 일이 없습니다. 정확히 진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존중할 것입니다. 어떤 남자든…
어떤 여자는 더없이 못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덩치가 크거나 뚱뚱하거나, 작거나 말랐을 수도 있습니다. 머리가 검거나, 눈이 갈색이거나 파랗거나 회색이거나, 양쪽 눈이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순결하다면… 자매님, 남자다운 데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어떤 남자라도 그런 여인 앞에서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자기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남자들은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 모습 그대로 사는 남자를 존중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남자들이라면,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그만두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선이 되어, 말과 다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밖에 나가 춤추고 담배 피우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길에 걸림돌을 놓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자들이… 때로는 머리를 자르고 옷을 입고 행동하는 모습이 어떻습니까. 조그만 옷을 입고, 껍질을 벗긴 비엔나소시지 같은 모습으로, 이만큼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거리로 나가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닙니다… “저게 오순절 신자입니까?” 그러면 다른 교회들은 “자기들에게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하는군”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봉인되고 표를 받았습니다. 오늘 밤에는 무도장에 가고, 다음 날 밤에는 남편도 아닌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가, 교회로 돌아와 온 곳을 누비며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순절 신앙이 아닙니다. 위선입니다. 더러운 짓입니다! 제가 꼭 여러분을 두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여기서 만드는 이 테이프들이 온 세계로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온 세상을 향해 말하듯 설교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하라고 하신다는 느낌이 들면 그대로 말합니다. 이 말씀이 어디로 갈지 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돌보시는 일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그저 말씀에 머무십시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아닙니다. 다니엘은 조직에서 쫓겨나든 말든 그들의 포고문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자 굴의 문들을 소유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광! 바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씨가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 원수가 무엇이든 그 문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오, 얼마나 많은 경우를 우리가…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모든 것이 거슬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와 함께 나선 모방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보냄을 받았음을 보여 줄 두어 가지 표적을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뱀을 던져 놓는 것 같은 일들입니다. 그런데 모방자들이 와서 자기들의 것도 던져 놓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그렇게 하리라고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를 시험하기 원하셨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그들의 뱀, 아니 지팡이를 던지도록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며 거기 서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파라오여, 저것을 보십시오. 이것이 나의 주님께서 당신 앞에 와서 하라고 하신 일입니다.” 파라오가 말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야, 이리 오너라.” 그들이 지팡이를 던지자 그것들도 뱀이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얼굴이 붉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셨다고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교단 회의 앞에 서게 될 때도 그렇습니다. 얼굴이 조금 붉어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드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갑자기 모세의 그 커다란 코브라가 다가와 다른 뱀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증하셨습니다. 시험을 거친 뒤에 그가 말했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저 자녀들을 내보내기 바랍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기로 내려오셔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 그들을 구출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들이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그것을 거기에 던졌고, 모두… 시험이 왔습니다. “모세야, 어떻게 하겠느냐? 돌아서서 떠나면서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라고 하겠느냐?” 아닙니다! 모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영광!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것을 붙드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붙드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을 내쫓고 “우리는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해도 그것을 붙드십시오. 모세는 그대로 붙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할렐루야! 마귀가 “네 앞에 사해를 펼쳐 놓겠다”라고 했지만, 그 바다는 열렸습니다. 더 이상 그를 이집트에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원수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하나님의 명령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으며,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시험을 거친 뒤에… 그는 내려갔다가… 아마 갈렙과 함께 정탐꾼들과 요르단강을 헤엄쳐 건넜을 것입니다. 요르단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모두 말했습니다. “오, 우리가 시작하면 우리 조직들이 산산조각 날 겁니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영은 죽지 않습니다. 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 교인들에게 가르치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교회 집사들 중 거의 절반을, 두세 번씩 결혼한 사람들을 내보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여자들에게 머리를 길러야 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지 아십니까?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구식이라고 여겨질 겁니다.
[예수님도 구식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벅찹니다.” 경계선에 선 신자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히브리서 6장이 설명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된 뒤 떨어져 나가면 다시 자신을 새롭게…” 그 경계선까지 왔다가 건너가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온전히 믿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렙은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곳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거인입니다. 사방에 성벽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들에게 손댈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입을 다물고 앉으십시오.” 아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은 참으로 크고 강합니다. 그때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가슴에 털이 나 있고 커다란 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입을 다물어라!”라고 말하면 다른 모든 것은 구석으로 달아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렇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말하라…” 바로 그것입니다. 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마귀들은 떨고 죄인들은 깨어날 것이며, 여호와를 믿는 믿음은 무엇이든 흔들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 안에서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해야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고, 가르쳐야 할 것이 있는데 가르치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정죄받을 것이 없도록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성령은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말씀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오, 세상에! 세상이여, 물러가라. 사탄아, 우리를 떠나라. 이 산에게 “옮겨지라”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말하십시오. 거기 그대로 서서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조금이라도 정죄받을 것이 있다면 가만히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때는 그저 지껄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그 시험을 거친 뒤 좋은 땅의 증거를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가데스바네아에 서서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항의하며 “우리는 충분히 그곳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건너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표적을 보여 주고 자녀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사해의 문도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대로 통과했습니다. 원수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우리는 충분히 그곳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요르단강에 이르렀을 때 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러나 길을 내주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원수의 문을 소유했습니다. 요르단강은 그가 건너가 그 약속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거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아브라함의 씨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를 정복할 준비가 된 자리에 이르렀을 때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셨고, 그는 그 문을 소유하고 차지하여 건너갔습니다.
첫 전투에서, 그들과 처음 맞붙었을 때 성벽이 어찌나 컸던지 그 위에서 병거 경주를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정복하겠습니까? 그들은 그를 피해 달아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수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원수의 문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는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묵상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칼을 빼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호수아도 칼을 뽑고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 원수의 편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군대의 대장이니라.”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주위를 열세 번 돌라. 나팔을 불라. 네가 원수의 문을 차지하리라.”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아브라함의 씨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에 나타나는 모든 문을 차지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해야겠습니다.
보십시오, 이 귀한 영웅들이 모두… 여기 한 페이지 가득 그들의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귀한 영웅들은 모두 그런 일들을 했어도 결국 죽었습니다. 그 후에 참된 믿음의 씨,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이신 예수님, 곧 약속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을 따라 이삭을 얻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참된 씨는 그 조직 체계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의 약속 안에 있었습니다. 이삭을 통해서가 아니라 왕가의 씨이신 예수님을 통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왕가의 씨였으며… 사실 아브라함의 씨는… 예수님은 유대인도 아니셨고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 계신 가톨릭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시다니,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마리아는 한 여자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택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부화기였습니다. 그뿐입니다. 부화기였습니다. 여자는 그런 존재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씨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녀가 함께 모인 자리이지만, 제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이해하시도록 이것을 말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의사의 말도 들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그러니 제 말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마리아의 꽃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마리아를 덮으셨을 때 성적인 느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혈구와 꽃가루를 창조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이 마리아의 꽃가루였다면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영광! 방금 새롭게 떠오른 말씀입니다. 지금 막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잘못된 것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의 몸을 일으키셨습니까? 그러므로 보십시오, 거기에는 여자가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여자가 관여했다면, 그분의 몸은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비롯된 것이 됩니다. 성령이 덮으시는 일을 통해 마리아에게 성적인 일이 일어나 정자를 내보내게 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성령께서 순결한 잉태를 통해… 할렐루야! 그분은 남자와 여자의 정자를 둘 다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셨습니까? 성경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분은 그 여자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할렐루야! 여자여. 새롭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이렇게 감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그는 예수님보다 그 여자에게 백만 마일이나 더 가까웠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셨으며, 육체와 몸 모두 그러했고,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거하셨습니다. 여자의 정자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것으로는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의 정자는 우리 육체와 어떤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덮으신 것은 피와 정자였습니다. 원하셨다면 나무 그루터기에도 그것을 두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하시는 어디에나 두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타락에 관여했기 때문에 그 여자를 통해 가져오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흠 없는 아들이 나오셨습니다. 창조되신 분, 몸과 혼 모두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분이었습니다.
다윗은 왜 “내 거룩한… 내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게 하지 아니하고,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도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까? 다윗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혼과 몸과 영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한 여자였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선하고 거룩한 여자였다고 믿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화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땅에 보내기 위해 더러운 부화기를 결코 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밤 그것에 대해 설교하겠습니다만… 더러운 부화기를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를 택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 여자를 덮으셨을 때 정자를 내보내거나 그 밖의 어떤 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순결하고 무한하신 방식으로 그 여자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몸과 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원수의 문이 부서졌습니다. 할렐루야! 휴! 이 말씀이 제게 참 좋아지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바로 거기서 원수의 문을 깨뜨리셨습니다. 성적인 욕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처음 에덴동산에서 그 일이 시작된 것이 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몸을 가린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 바로 거기서 그것을 둘로 부수고 원수의 문을 소유하셨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맨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를 취하여, 그것을 밑바닥까지 깨뜨리셨습니다. 믿음과 약속의 왕가의 씨, 마리아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잉태된 그 씨가 문들을 깨뜨렸습니다. 그로써 인간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후 원수의 모든 문을 차지하셨습니다. 질병의 문을 차지하셨습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는 질병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그분의 임재 안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장례 행렬도 그분 앞에서는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여호수아는 죽었습니다. 모세도 죽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도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 왕가의 씨는 달랐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죽음이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나오던 나인의 그 여자가 멈춰 섰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일어나라.” 죽었던 그 소녀, 야이로의 딸에게 그분은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딸아, 일어나라.”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몸이 썩었으며, 혼도 그에게서 떠난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영광! 그분이 거기 계십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모든 것을 봉한 인들을 깨뜨리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분께서 죽으셔야 했을 때에는 그 생명을 붙잡아 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결코 죽지 않으셨겠지만, 그 생명을 내어 주셔야 했습니다. 그 생명을 내어 주셨을 때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듯 그분의 귀한 혼은 지옥으로 내려가 저와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께서 말입니다. 누구라고요? 그분은 왕가의 씨이셨습니다. 오, 영광! 이제 우리는 왕가의 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처럼 말씀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왕가의 씨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왕가의 씨는 말씀에 머무는 씨입니다.
세상의 유행을 가지고 마귀와 기꺼이 타협하려는 나약한 사람들이여! 지금 여러분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밖에 있는 설교자 여러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설교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 “성령 침례 같은 것은 없다”라고 설교하는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러면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씨라고 부릅니까? 왕가의 씨는 말씀에 머뭅니다. 왕가의 씨는 사람에 의해 태어나지 않으며, 남자나 여자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여자는 교회입니다. 교회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 씨와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위 조직이라는 교회도 그 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태어납니까? 조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가톨릭, 루터교 같은 데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왕가의 씨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씨가 원수의 문을 차지합니다. 그를 위해 이미 차지해 놓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약속입니다.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의 귀한 혼은 제가 가야 했던 지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하지만 셋째 날에… 삼손이 도시의 문을 등에 지고 간 것은 여기에 견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옥의 문, 무덤의 문, 그 밖의 모든 것을 차지하셨습니다. 산 위로 짊어지고 가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멸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원수의 문을 소유하셨습니다. 위쪽의 공중은 마귀의 힘으로 가득 차 있어서 천사든 무엇이든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염소의 피가 죄를 제거하지 못했으므로 중보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 자신의 피가 죄를 제거했고,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는 아브라함의 씨는 누구든 내려와 자기 죄들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며,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시험을 견디면…
그리고 여러분에게서 세상을 내보내고, 지나간 것들을… 잘못된 모든 것, 잘못되어 보이는 모든 것을 내보내면, 이를테면 여자들의 머리 문제, 남자들의 제멋대로 하는 행동, 교회들의 조직 문제, 집사들의 비위를 맞추는 목사, 그와 같은 온갖 것들 말입니다… 세속적인 어떤 무리가 들어와서 가엾은 목사에게… 그를 교회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목사님, 계속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대로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구멍을, 문을 뚫으셨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씨의 기도가…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우리가 죽었다면… 우리 자신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장사되었으며, 부활하여 그분과 함께 일어났다면, 그분은 몸의 머리이십니다. 머리가 있는 곳에 몸도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어디에… 그렇게 한 사람은 누구나 왕가의 씨와 함께 하늘의 처소들에서 그분과 함께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기까지 기도하다가 “아, 아. 말씀이 하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바로 거기서 여러분이 막힙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 안에서 걷고 있음을 알며, 우리의 삶이 깨끗해진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지킨다면, 모든 원수의 문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원하는 바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가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할 것입니다. 오, 형제님! 얼마나 놀라운 교회가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제가 다시 피닉스에 온다면, 이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이 의자들이 가득 차 있기를 바랍니다. 이 도시의 순복음 운동에 속한 모든 교회의 의자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도들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고, 그리스도인처럼 말하고,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며, 하나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 움직이셔서 누가 죄를 범하면 성령께서 즉시 그것을 지적하시는 그런 성도들로 말입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제단에서 기도받으려고 줄 선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남편과 그 일을 바로잡으십시오”, “그저께 밤 그 여자와 함께 어느 특정한 곳에 앉아 있었다고 아내에게 말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말씀 안에서 걷고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에 귀를 기울임으로 여기서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 안에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러면 죄는 없… 목사님, 교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교회에 들어와 이곳을 쭉 둘러보면 경건하고 거룩한 남녀가 앉아 있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한 모습을 말입니다. 죄는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들어와 앉으면 성령께서 일어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존 존스, 당신은 어느 도시의 어느 장소에서 왔습니다.” 그는 몸의 치유를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했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이것을 돌려주고 이 일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암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제게 교회를 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한 열 사람, 참으로 하나님의 보석이며 왕가의 씨인 사람들을 주십시오. 그런 사람들을 함께 모아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로 이 작은 집을 가득 채워 주십시오. 그러면 온 세상이 달려올 빛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산 위에 있는 도시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입니다. 그 씨가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할 것입니다. 질병, 질병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드러내시고, 여러분이 왜 받지 못하는지 알려 주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까 의아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는 세차게 부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그것도 좋습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제가 그것을 정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그 점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은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라고 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 여기 있는 저를 보십시오. 저는 외치는 것, 방언으로 말하는 것, 성령 안에서 춤추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말씀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듣지 못할 때, 바로 그것이 여러분을 넘어뜨립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엘리야는 밖에서 이런 모든 부흥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은 그를 밖으로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들었을 때, 그제야 이끌렸습니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나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엘리야는 말씀을 따르는 아브라함의 씨였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오, 교회여! 얼마나… 제가 이렇게 설교하고 나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성령께서 제게서 물러가시고 제가 돌아보면, 자기 자녀들이 먹을 것을 덜어서라도 실제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제게 주려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자그마한 여인들이 보입니다. 어쩌면 머리가 짧을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세상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아내와 함께 사는 남자를 제가 그 말씀으로 산산이 베어 버려서 아프게 했습니다. 그의 양심은 풀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밖에 나가 뼈 빠지게 일하고 제게 십일조를 보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때 다시 육신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상처를 주려던 것은 아닌데”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 형제님, 사랑하는 나의 귀한 자매님과 형제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영이 그 말씀을 여러분에게 살아 있게 하시는 그분의 영이라면, 심판 날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그날을 준비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부디, 부디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제가 말씀이나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것을 설교한다면, 여러분은 제게 찾아올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 배에 타는 것을 제가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그 배가 여러분을 끝까지 실어 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산산조각 날 것이고, 심판대에 서야 합니다. 가장 작은 것 하나에 유죄인 사람은 전체에 유죄입니다. 옳은 줄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행하라는 약속인데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이유를 대라고 요구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심판 날 저 화면에서 오늘 아침의 이 메시지가 여러분 앞에 나타날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럴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러분이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저는 어머니를 팔로 안고 지켜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아버지를 안고 있다가 떠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러 “오, 브래넘 형제님. 아,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죽음은 혼을 바꾸지 않습니다. 거처만 바꿀 뿐입니다. 여러분 안의 어떤 것이, 이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고 마땅히 느껴서는 안 될 방식으로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 아침 회개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와서… 그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참된 왕가의 씨의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머리와 마음을 숙인 채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 제 손을 듭니다. 솔직히 제 마음으로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제가 정말 원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온갖 일에 얽혀 엉망이 되었지만, 정말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형제님이 말씀하신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손을 들고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께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는 것입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아십니다,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여러분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주님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주님, 가엾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통해 종종 뒤얽혀 버린다는 것을 압니다… 한 사람은 와서 이렇게 말하고, 또 한 사람은 와서 저렇게 말하니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여기 피닉스, 이 거대한 도시에는…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온 나라에서 온갖 것이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흘러들어 옵니다… 얼마 전 산 위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이 아래에서 하루 동안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헛되이 사용되는지, 얼마나 많은 간음이 저질러지는지, 이 거리의 술집들과 술집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 온갖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죄가 더럽게 뒤엉켜 있는지 말입니다. 그중 많은 사람은 자기가 믿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여자들은 손에 담배를 들고, 주님께서 주님 앞에서 악취가 난다고 하신 단정치 못한 옷을 입고 거리를 걷습니다… 그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어디엔가 있는 오래되고 더럽고 불결하고 악취 나는 소변기와 같습니다. 오 하나님,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여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구주님의 코에 그것이 그토록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그런 것을 자신의 왕국에 두실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그들이 자신이 그곳에서 백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누구도 멸망한 자들의 그 영역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누구도 그 아래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곳에 가는 일이 결코 없게 하옵소서. 그래도 그 사람, 그 남자, 그 여자 안 깊은 곳에는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인자하고 좋은, 친절한 남자나 여자가 그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했습니다. 사탄아, 너는 내 주님의 원수이므로 나는 너를 대적한다. 너는 그분의 말씀의 원수다. 나는 내 안에 아무 권능도 없음을 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내게는 너를 저지할 힘이 없다. 여기 있는 여자들 중 누구도, 이 테이프를 듣는 남자들이 어디에 있든 그들 중 누구도 깨끗해지도록 만들 힘이 없다. 그들을 깨끗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 나는 무력하다. 하지만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권위가 내게 있으며, 나는 그 권위를 행사할 의무가 있다. 밖에 있는 경찰관도 자동차를 멈춰 세울 힘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권위는 있습니다.
사탄아, 너도 이제 끽 소리를 내며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좋겠다. 이 메시지가 전해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이 사람들을 풀어 주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풀어 주어라. 나는 그들이 값을 치르고 산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이신 주 예수님께서 값을 치르고 그들을 사셨다. 너 불결하고 더럽고 악취 나는 위선자, 사람들을 속여 눈먼 채 지옥의 구덩이로 이끄는 자야, 그들을 풀어 주어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희생으로 네게 명하니, 그들을 풀어 주어라. 그들의 혼이 그분의 복과 임재로 충만해지고 모든 원수의 문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너는 그들이 이것저것, 어떤 거룩한 손길이나 그 밖의 무언가를 기다리게 해 놓았다. 하지만 내가 말한다. 너는 붙들고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기름부음 가운데 질병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조상 아브라함은 수백 년 뒤에 오실 그분을 모형 가운데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랬듯 저 약속을 바라보기를 사람들이 거부할 때만 그런 것입니다. 그들을 풀어 주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람들을 놓아주어라. 하나님의 권능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오늘 아침 그들이 말씀으로 씻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참되게 지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사탄도 끊을 수 없는 붙듦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약속을 붙들고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것을 붙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나는 아브라함의 씨다. 내가 어떻게 그분의 약속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대로 전진하게 해 주옵소서. 아멘. 주님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마음을 베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다정한 마음으로 경배합시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가능하겠습니까, 불경한 일이 아니라,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경건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께 손을 들고 이렇게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여기 계신 모든 여자분과 소녀들에게 제 손을 내밉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모든 남자분과 소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한 분 한 분에게 손을 뻗어 손을 잡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노래하는 동안 몸을 돌려 곁에 있는 분과 악수하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주님을…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성령의 그 달콤한 느낌… 말씀은 정결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을 깨끗이 닦아 내어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고, 모든 것을 제거합니다…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예리하여 할례를 행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잘라 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우리는 깨끗해지고 말끔히 씻긴 것을 느끼며 그분을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는 진심으로 그것이 참 좋습니다. 다시 불러 봅시다. 이제 모두 함께, 정말 목청껏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