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먼저 떠나신 우리 자매님에 대한 이 간증과 추모의 말씀에 저도 몇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벨 가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자매님의 남편 지미를 통해서였습니다. 지미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제 아버지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제가 목사가 되었고, 벨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자매님은 참으로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어디에서나 우리 모두 자매님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이런 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가 참 쉽습니다. 어떤 말도 주저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모습을 갖춘 분이셨습니다. 조금 전 자매님들이 찬송하는 것을 들으니, 이곳에서 우리가 익히 듣던 벨 자매님의 찬송이 너무나 생각났습니다. 자매님은 찬송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찬송해 주셔서 참 기쁩니다. 참으로 그것이 … 벨 자매님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자매님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제 기도는, 진실한 기도는, 우리 모두가 자매님과 같은 간증을 지니고 인생길의 끝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 성경에서 조금, 한 대목만 읽고 싶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사랑하셨고, 그분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욥기 14장의 한 대목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날수가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꽃과 같이 나와서 꺾이고 또한 그림자처럼 달아나서 계속 머물지 아니하는데 … 이러한 자를 향해 주께서 주의 눈을 여시며 나를 주의 심판 자리로 데려가시나이까? 누가 정결한 것을 부정한 것 가운데서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 그의 날들이 정하여졌고 그의 달수도 주께 있으므로 주께서 그의 한계를 정하사 그가 넘어갈 수 없게 하셨으니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그가 품꾼처럼 자기 날을 마칠 때까지 안식하게 하옵소서. 나무에게 소망이 있나니 그것은 베일지라도 다시 움이 돋아 그것의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할 것이며 그것의 뿌리가 땅속에서 늙고 그것의 줄기가 흙 속에서 죽을지라도 그것이 물 냄새에 싹을 내며 … 초목처럼 돋아나리이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참으로 …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에 있나이까? 물이 바다에서 없어지고 홍수가 줄어들어 마름같이 사람은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나니 하늘들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할 때까지 그들이 잠에서 깨지 못하며 일어나지도 못하리이다. 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감추시고 내게 은밀한 곳을 정해 주사 주의 진노의 날들이 지나갈 때까지 …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리이까? 내게 정해진 시간의 모든 날을 내가 기다리되 내게 변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부르시겠고 … 나는 주께 응답하리니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리이다. 이제 주께서 내 걸음을 세시니 … 주께서는 내 죄를 감시하시나이까?
영원한 말씀을 읽었으니 잠시 한 단어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바로 ‘표현’이라는 단어입니다. 삶에는 표현인 것이 참 많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이곳에 있는 목적은 무엇이고 이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나 그 장막 너머를 … 들여다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읽고 있는 성경의 가장 오래된 책, 욥기의 이 족장도 바로 그것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생각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죽음 이후의 생명이심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일을 맞닥뜨리면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변화입니다. 이것은 …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선지자 욥은 이런 일을 생각하다가 식물 세계에서, 식물과 나무의 생명에서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것들 안에 계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만드셨다면 그 안에 거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집을 짓듯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안에 거하시려는 목적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이 작디작은 생명들은 자신을 지으신 분께 복종합니다. 그는 폭풍이 불어와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리더라도 그것이 그 나무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는 다시 살 것입니다. 나무가 죽어도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가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지만, 그저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분을 … 나무에 계신 그분을 생각해 봅시다. 나무가 여기에 놓였다면 …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목적을 이루려고 여기에 있는 것처럼, 우리 자매님이 목적을 이루려고 여기에 계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어떤 목적을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찾아서 잘 이룰 수 있다면, 분명히 … 하나님께서 식물의 생명이 부활하는 데까지 마음을 쓰신다면, 사람의 생명이 부활하는 데도 마음을 쓰십니다. 그래서 욥, 그 족장은 나무가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여름과 겨울이 바뀌면서 나무의 모습도 달라지고, 날마다 그곳에는 증거가 남았습니다. 그는 여름에는 살아 있던 나무가 겨울에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나무에 달려 있던 잎사귀들이 …
성경은 생명나무가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에덴동산에 그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명나무에 잎사귀처럼 달려 있습니다. 자, 겨울에 잎사귀가 아름다울 때, 그것들은 … 아니, 여름에 잎사귀가 아름답고 푸를 때 말입니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면 잎사귀들은 여러 색으로 물들어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나무뿌리로 돌아갑니다. 유심히 보면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얼마 전 자신이 불신자, 곧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 소유의 사과나무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나무가 몇 년이나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몇 년이 되었으며 해마다 사과가 몇 부셸이나 열리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는 8월 초였는데, 벌써 사과가 떨어지고 잎사귀가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직 서리를 맞지도 않았는데 왜 저 잎사귀들은 갈색으로 변해서 나무에서 떨어집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니까요. 잎사귀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생명이 그 잎사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생명이 어디로 갔습니까?”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나무뿌리로 돌아갔지요. 원래 거기서 나왔으니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잎사귀는 그것으로 끝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 생명은 내년 봄에 새 잎사귀와 함께 다시 돌아옵니다.” 그는 전에는 그것을 유심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발 말씀해 보십시오. 날씨가 추워지기도 전에 그 잎사귀를 나무에서 떼어 내고, 다음 계절이 올 때까지 안전하게 보존하려고 그 생명을 땅속으로 돌려보내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물을 양동이에 담아 기둥 위에 올려놓아 보십시오. 계절이 바뀐다고 물이 저절로 자리를 옮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생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인 …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나무에서 생명나무로 옮겨졌습니다. 그 잎사귀 하나가 떨어질 때 … 가령, 이 훌륭한 교회에서 길티지 침례교회에 전하는 그 간증을 들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많은 친구들이 그 교회의 교인인데, 그곳에서 잎사귀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 생명이 어떤 목적을 위해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장차 모두가 부활할 때 다시 돌아와 천년왕국에서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일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태양의 생명에서도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
아침을 유심히 보십시오. 해가 떠오릅니다. 그때 해는 아기입니다. 햇살도 약합니다. 그러다가 아홉 시나 열 시쯤 되면 십 대가 됩니다. 그리고 정오, 하루의 한가운데에는 힘이 절정에 달합니다. 그 후에는 기울기 시작하여, 마침내 하루를 다하고 사그라들며 다시 서쪽으로 집니다. 그것을 태양의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우리에게 새로운 하루를 가져다주려고 다시 떠오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표현’이라는 말은 마음을 드러내 알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씨앗이 땅속에서 죽습니다. 이 꽃들처럼 말입니다 … 서리가 내리면 작은 씨앗들이 꽃에서 떨어져 땅으로 내려갑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무한하셔서 아무것도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꽃을 위해 장례 행렬도 마련하십니다.
서리가 꽃들을 치고 나면 가을비가 옵니다. 커다란 눈물방울 … 빗방울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 꽃씨를 묻어 줍니다. 꽃씨 위를 토닥여 주어, 어쩌면 땅속으로 1, 2인치쯤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다가 차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작은 꽃잎들이 없어지고 줄기도 없어집니다. 이어서 알뿌리도 얼어 말라 버립니다. 작은 씨앗도 얼고 그 속의 내용물도 흘러나옵니다. 봄이 될 무렵에는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꽃의 끝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여기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적을 잘 이루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그 꽃을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을 표현하여 알려 주시는데 … 해가 땅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더 따뜻한 햇살을 비추기만 하면, 그 생명을 어디에도 숨겨 둘 수 없습니다. 돌로 덮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겨울에 콘크리트를 깔아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셨습니까? 봄이 되면 풀이 어디에서 가장 무성하게 자랍니까? 바로 콘크리트 가장자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돌 밑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가 땅을 비추기 시작하면 생명을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그 생명은 콘크리트 밑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아, 작은 머리를 내밀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해가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 해, 곧 영어로 s-u-n은 모든 식물 생명의 부활입니다. 해가 비치는 한 그 생명을 숨겨 둘 수 없습니다.
아들, 곧 영어로 S-o-n은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빛을 비추기 시작하시면 의의 아들이 자기 날개들 안에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떠오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생명이, 어디에 묻혀 있든, 얼마나 깊이 … 물속이든 모래 속이든 바위 속이든 얼마나 멀리 묻혀 있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는 일을 바로 그렇게 우리에게 표현하여 보여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목적은 꽃과 해와 나무, 모든 생명을 통해 그분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생명이 그분의 목적을 이루면 그것을 부활시키십니다. 꽃이 자기 목적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꽃을 부활시키신다면, 삶의 목적을 이루고 가신 우리 자매님에게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목적을 이룬 이들을 위해 부활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찾아 그분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꽃들이 왜 여기 있는지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 꽃들은 오늘 오후에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이 꽃들이 … 하나님께서 꽃들을 두신 이유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습니다. 보시면 이 꽃들은 모두 같은 색이 아닙니다. 저마다 색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함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다양한 색을 좋아하십니다. 그것들을 한데 섞으면 그분이 사랑하시는 꽃다발이 됩니다. 하나님, 다양함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는 흰 꽃도 있고 붉은 꽃도 있고 … 온갖 색의 꽃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한데 모으면 그분의 목적을 이룹니다. 그분께는 큰 산도 있고 작은 언덕도 있고 평야도 있습니다. 사막도 있고 바다도 있으며, 참나무도 있고 야자나무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서로 어우러집니다. 모든 자연의 하나님이신 그분께서는 그곳에 거하시며 자신이 지으신 것들을 즐거워하십니다.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피조물과 시간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것들을 그토록 생각하시어 부활시키시고, 앞으로 다시 쓰임 받도록 벗어날 길을 마련해 주셨다면,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누구든,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신조, 그 밖에 무엇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분의 복을 누리며 하나 되어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꽃에게 부활이 있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언젠가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이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이것들은 증언하고, 우리에게 말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꽃들을 보내신 분들, 이 꽃들을 보내신 우리 자매님의 친구들 역시 유가족에게 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친구나 자매나 사랑하는 이로서 함께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표현입니다. 무언가를 알리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이런 표현들에 대해서는 몇 시간이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잘해 냅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 모든 것이 자기 역할을 잘해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모든 표현은 우리에게 알리고 본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언젠가 위대한 표현, 영원한 표현을 하시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 그때 그분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상을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상이신 아들을 보내셔서, 그분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인류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모습을 바꾸셨습니다.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위대한 창조주께서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 세상이 있기 전부터 그분은 모든 공간과 시간을 채우고 계셨습니다. 미터도, 빛의 미터도 없었습니다. 원자나 분자조차 없었습니다. 그때에도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언제나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신 분, 여러분이 밤에 눈을 들어 태양계의 별들을 볼 수 있다면 …
몇 년 전 저는 이 큰 망원경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 사람들 말로는 그것으로 빛이 1억 2천만 년 동안 가는 거리, 빛의 미터까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너머에도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달과 별과 세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표현해 주실 만큼 우리를 생각하셨습니다. 그토록 위대하신 분이신데도,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표현하시려고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삶을 사셨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표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 우리 가운데 병든 이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상이심을 보여 주시려고 죽은 이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계획을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 작은 표현들을 보며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의 위대한 표현을 보고, 이런 시간을 맞이할 때에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조금 전 찬송하던 우리 자매님이 하신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이분은 제 자매입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그분이 알지 못한다면 제가 이렇게 찬송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상이신 분께서 이 계획을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누구든 이 계획을 받아들이면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가장 위대한 표현은 우리를 위해 길을 마련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은 이 꽃들과 식물의 생명 등이, 그리고 해와 태양계가 나타내 온 모든 표현을 성취하시고 입증하셨습니다. 그것들은 그분께서 오시기 전부터 한 의로우신 분이 오실 것을 증언했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상이실 것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굳게 믿게 하실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오셔서 그 모든 일을 하셨을 때, 이 표현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그것들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꽃이 다시 일어나고 나무가 다시 일어나고 해가 다시 떠오르듯이, 그리스도인도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사람의 형상으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신 하나님, 혹은 하나님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상의 사람이 자신의 부활로 그것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서서 … 그 선지자, 욥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모든 식물의 생명과 그 밖의 것들을 보았을 때 … 성경을 잘 아는 우리는 그가 잿더미 위에 앉아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에게 고난이 닥쳤던 것입니다. 그의 교회 교인들은 그가 … 몰래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때 이르게 죽거나 무슨 일을 당하면,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어서 그럴 것이라고들 말할 때가 많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이 위대하고 궁극적인 표현,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계획을 알리시는 것을 보았을 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릴 때 그가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살갗의 벌레들이 내 몸을 멸한 뒤에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라.”
그는 수백 년이나 앞서 그 궁극적인 표현을 보았습니다. 선지자였기에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표현이 오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씨앗들의 부활을 볼 수 있었고, 나무들의 부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한 뒤 다시 떠오르는 해의 부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일하고 다시 하루를 위해 떠오르는 것입니다. 한 장례 예배에 쓰인 꽃들은 죽었다가 다른 사람의 장례 예배를 위해 부활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저 멀리 그 의로우신 분이 오시는 것을 보고 외쳤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는 그날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완전한 표현,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보았습니다. 죽음이 인생길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슬픔의 끝입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의 끝입니다. 그러나 기쁨과 보상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죽을 것들이 끝나고 죽지 않을 것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매님은 안식하러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혼에 안식을 주시기를 빕니다. 자, 욥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았기에 이렇게 위대한 표현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결론을 내립시다. 우리는 오늘 한 이웃에 대해, 한 자매에 대해, 한 아내에 대해, 한 어머니에 대해 품은 마음을 표현하고 알리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오후에 모인 이유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상실감을 알리고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고, 자녀들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웃이나 자매도 그 상실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제가 이 건물 곳곳에서 들었던 그 훌륭하고 영광스럽고 위로가 되는 말씀들, 분명한 말씀들처럼, 이 자매님이 자신들에게 또 각 회중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 우리 목회자들이 오늘 오후에 왔습니다. 물론 우리도 마음이 슬픕니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의 표현을 알리러 왔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그분의 진리를 알리러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표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러 왔습니다. 충격이 아무리 크더라도, 이렇게 하시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며 그분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런 일들을 배운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러 온 것입니다. 오늘 오후 이 자매님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같은 것을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자매님은 그 말씀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곳 태버내클에서 알고 지낸 벨 자매님은 사랑스럽고 성도다운 그리스도인 여성이었습니다. 자매님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알리셨습니다. 조금 전 약력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니, 아마 저 테네시에서 짐 형제님과 결혼하시기 전부터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자매님은 결단하셨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간증들이 말해 주는 대로,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날 이후로 자매님은 그 표현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천국의 회랑 너머, 저 영원한 영광의 세계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거리를 걸으며 여전히 그것을 표현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그림자 너머에서도 자매님은 여전히 그것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벨 자매님은 자신의 간증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간증 때문에 얼굴을 붉힌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말하기를 주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매님은 그것을 표현하셨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저 뒤에 서서 두 손을 들고 두 뺨에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기 강단에 서서 이 땅 너머의 나라에 대해 찬송하시면 온 교회가 함성을 지르곤 했습니다. 자매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에서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모든 이웃에게, 모든 교회에서,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던 모든 곳에서 자신을 알리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셨습니다. 그것이 자매님의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온 존재를 다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새로 태어난 피조물임을 표현하셨습니다. 자매님은 몇 주 전에 같은 계단을 올라가신 저의 사랑하는 연로한 어머니와 다정한 친구였습니다. 오늘 두 분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 그 표현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벨 자매님이 보내시던 편지들 … 제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제 아들 빌리는 벨 자매님에게서 끊임없이 온 편지들을 한 뭉치씩, 전화로 전해 온 말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분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분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것은 …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이었습니까? 제게 그것은 자매님의 표현이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자녀들을 향한 마음의 짐, 주위의 모든 사람과 병든 사람 하나하나를 향한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벨 자매님은 거의 … 지난 몇 해를 하나님의 은혜로 사셨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치유의 권능을 신실하게 믿으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밤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 저는 평생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사랑하는 연로한 성도와 함께 기도하면서 …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며칠 전 밤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애리조나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아들에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벨 자매님의 친구인 셰퍼드 자매님이 그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십니다. 병원에 계십니다.” 저는 그분이 셰퍼드 자매님인 줄 알았습니다. 아마 지금 이 건물 안에 계실지도 모르는, 벨 자매님이 아시는 셰퍼드라는 부인 말입니다. 저는 그분이 병원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열한 시가 조금 넘어 다시 전화가 와서 말했습니다. “셰퍼드 자매님이 아닙니다. 병원에 계신 분은 벨 자매님 본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와 계획을 보십시오 … 우리가 그곳에 가기도 전에 벨 자매님은 이미 황금 계단을 올라가셨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을 위한 그분의 꽃다발을 만드시려고 고운 빛깔의 장미를 꺾으셨습니다.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자매님은 하나님을 만나러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가정을 꾸려 온 아내로서의 신의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어린것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고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고된 시절에도 그것이 드러났습니다. 어머니란 … 배고픈 어린 입들이 식탁 주위에 모여 있을 때, 있는 것을 이리저리 모아 떨어지지 않도록 꾸려 나갈 줄 아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남편 곁을 신실하게 지키고, 자녀들 곁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참된 신의의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모습을 보셨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십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언제나 끊임없이 하시던 부탁 … 자매님을 만나거나 자매님 곁을 떠날 때, 그 자녀들을 위해 부탁하지 않으신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참된 어머니의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삶이 한낱 꿈이거나, 자녀들을 위한 준비의 자리임을 아셨습니다. 더 이상 고생이 없는 저 너머의 나라에서 자녀들을 만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자매님은 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빌리 형제님’이라고 부르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빌리 형제님, 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아무도 잃어버린 자가 되지 않도록요.” 이것이 참된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 자기 자녀들에게 마음을 쓰고, 이웃과 남편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쓰는 어머니 … 그것은 그 여인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들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저의 좋은 친구인 자매님의 남편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그 아들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독일을 비롯해 여러 곳에 가 있는 아들들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들들이여, 어머니는 이곳 여러분 곁을 떠나셨을지 몰라도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그 나라에서 살아 계십니다.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가 실망하지 않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오후 그 바퀴에서 바퀴살 하나가 빠져나갔습니다. 제 가족에게서 첫 바퀴살이 빠져나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들으십시오. 저 다른 나라에서는 그 바퀴가 다시 하나로 합쳐질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부서진 바퀴가 없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이 이루어지고 바퀴는 영원한 세월을 굴러갈 수 있습니다. 유가족 여러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늘 어머니와 함께하셨으니 이제는 영원히 어머니와 함께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 제가 알기로 자매님은 나이가 들어 오랫동안 … 노쇠하고 몸을 못 쓰고 병든 채로, 남들이 이리저리 옮겨 주어야 하고 조금씩 죽어 가는 상태로 오래 살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탁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과 두어 주 전 일요일만 해도 자매님은 이곳 교회 장의자 위에 서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찬송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 어머니가 약 예순다섯 살에, 너무 일찍인 것처럼 보이게 떠나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매님의 죽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시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그의 마음의 소원, 아니, 그들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자신을 표현하시는 증거들을 봅시다.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교회와 그분의 백성, 그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 자체까지도 이긴 이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에게 가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녀는 죽지 않았고 잔다.” 자매님은 죽으러 가신 것이 아니라 잠들러 가셨습니다. 여러 해 전 어린 소녀였을 때 이미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매님은 그리스도 안에 살아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잠들어 계실 뿐,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계십니다.
그러면 머리를 숙이고 이 용기 있는 삶에 감사를 드립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물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물론 우리의 생각도 아십니다.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벨 자매님을 우리 곁에서 데려가셔서 우리가 슬퍼한다는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 우리는 자매님의 소원이 이루어진 데 감사하며 머리와 마음을 숙입니다. 자매님을 향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인생길의 끝에서도, 자매님과 만났던 모든 사람의 삶에 자매님이 주님의 종이었다는 생애의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매님을 알았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그분의 영향이 오래도록 살아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자매님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하고 이야기하고 찬송해 온 그 나라에서, 그 용기 있는 혼이 안식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오후 저기 앉아 있는 지미를 보며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맑은 눈물이 두 뺨을 흘러내리며 그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실한 아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뺨에 눈물이 흐르는 이 자녀들도 사랑스러운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 무엇도 닿을 수 없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닿는 그 손을 내미시어 이들에게 이 큰 만족을 주옵소서.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고, 그곳에서는 다시는 장례 예배를 드리지 않으리라는 만족을 주옵소서.
주님, 자매님이 사랑하던 이들, 그 형제자매들과 손주들과 이웃들과 이 교회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그들이 자매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우리는 압니다. 자매님이 우리 가운데서 사셨듯이 그들 가운데서도 사셨습니다. 주님, 우리도 그들과 함께 이 깊은 마음을 나눕니다. 우리 모두 자매님을 사랑했으며, 자매님의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표현하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주님, 우리를 빚으시고 만들어 주셔서, 우리도 인생길의 끝에 이를 때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게 하옵소서. 오,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의 많은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는 약하고 지쳐 있으니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고 오늘 오후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 목회자들과 이런 말씀을 전하도록 세우신 이들을 통해, 이웃과 친구들에게 주님의 말씀으로 전해진 이 말들 안에서 우리가 위로를 찾게 하옵소서. 꽃과 나무와 햇빛과 잎사귀가 증언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시는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우리가 그 위로를 찾게 하옵소서.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며 그분께서 영원토록 거하시리라.” 오, 주님,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고난의 때에 이 복된 확신을 주시려고 그분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을 얼마나 감사하는지요.
이제 앞으로 이어질 예배를 위해 우리에게 힘을 주옵소서. 지금 특별히 여기 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이 아들들을 위해 간구하고 싶습니다.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하는 이 아들들에게 복이 있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 그날에는 … 우리는 지금 이들이 입고 있는 제복을 고맙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옵소서. 그날에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의로 옷 입게 하옵소서. 딸들도, 우리 모두 함께, 주님, 우리가 되기 원하는 모습은 바로 그것입니다. 참으로 강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 군사들입니다. 주님,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옵소서. 이제 자매님의 삶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 주님의 발 앞에서 만날 때까지 우리 모두와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