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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그대로 서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아침 다시 주님의 집에 와서 이 사랑스러운 성도들과 이 사랑하는 목사님, 사모님, 그분의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가 앉아 공부할 때, 말씀을 공부할 때 저희와 만나 주시고 저희 혼에 양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희가 이것을 갈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아침 이 공부 모임에 다시 올 수 있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리틀필드 형제님과 잠깐 이야기하고 교제하려고 예고 없이 잠시 내려왔습니다. 어젯밤 이곳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떠나기 전에 다시 와서 일요일 성경 공부반에 말씀을 전하도록 해 보겠다고 형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조금 늦었습니다. 저를 보러 막 오신 친구들이 있어서 밖에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어서 아래로… 지하실로 내려가 이 교회 아래층을 어떻게 꾸몄는지 보았습니다. 저희도 고향에서 교회 하나를 지으려고 하거든요. 이 교회의 설계와 지은 방식이 참 마음에 듭니다. 여기 있는 음향 반사판인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이 마음에 듭니다. 음향을 아주 잘 조절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그분들 가운데 여기 오신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만, 계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어젯밤 묵었던 아래쪽 시티 뷰 모텔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 평생 모텔에 무료로 묵은 적은 거의 없는데, 어젯밤에는 그랬습니다. 숙박비를 아예 받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제 아들도 저쪽 르하이 모텔에 묵었는데, 거기서도 숙박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또 이곳과 관계된 분들, 어젯밤 집회에 오셨던 분들인지, 그런 분들에게는 숙박비를 깎아 주는 등의 배려를 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여기 계시다가 퇴실하러 가시면 그분들에게 꼭 감사드리십시오. 언젠가 이곳에 대집회를 열러, 집회를 하러 오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분들의 모텔이 날마다 밤이면 손님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너희가 이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그것을 하였으므로 내게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리고… 오늘 아침 지배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기 계신 우리 형제님, 리틀필드 형제님을 참 좋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분이 “저…” 하시기에, 제가 “숙박비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닙니다. 이미 다 처리됐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리틀필드 형제님이 내셨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아닙니다. 저희가 그냥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이고, 선생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리틀필드 씨가 이 주변의 사람들, 가난한 분들을 돌보고 누구든 도와주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참 존경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그러니 저희도 이렇게 작은 몫이나마 보태어 그분을 돕는 것이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모텔 숙박비를 어떻게든 받으시게 하려고 했지만 끝내 받지 않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빌리가 말하기를, 자기가 묵었던 르하이에 있던 부인은 자기가 만난 분들 가운데 손꼽을 만큼 친절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빌리가 퇴실 시간이 지나서도 조금 더 머물러야 했는데, “괜찮아요. 추가 요금 같은 건 없어요. 숙박비 자체가 전혀 없어요”라고 하셨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런 영을 지닌 사람들과는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아주 나쁜 영을 지닌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이미 자기 생각을 굳혀 놓아서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방식만 고집하고, 그걸로 끝입니다.
저희 고향에서는 일요일 성경 공부가 대개 네다섯 시간 이어집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럴 수 없지요. 오늘 아침 말씀을 잠깐 나누는 데 사십오 분에서 오십 분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저와 함께 민수기 14장을 펴 주십시오. 민수기 14장의 한 부분을 읽고 싶습니다. 37절쯤부터 읽겠습니다. 읽는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곧 그 땅에 관하여 나쁘게 보고한 그 사람들이 주 앞에서 재앙으로 말미암아 죽었고 …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전히 살아남았더라.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들을 고하매 백성이 크게 애곡하니라.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산의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주께서 약속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이는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이다, 하매 모세가 이르되, [이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주의 명령을 범하느냐? 그러나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이는 너희가 … 너희 원수 앞에서 패하게 하려 함이라.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거기에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칼에 쓰러지리라. 너희가 주를 떠나 돌아섰으므로 주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 뜻대로 산꼭대기로 올라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 밖으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 족속과 그 산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이 내려와 그들을 쳐서 무찌르되 호르마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였더라.
자, 이곳은 일요일 성경 공부반이고, 여러분에게는 훌륭한 선생님, 형제님… 우리의 귀한 리틀필드 형제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 공부반 앞에 나서기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이 말씀의 배경을 조금 살펴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런… 구약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본보기였습니다.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실체가 오기 전에 그 형상의 그림자를 드리우십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였습니다. 해가 뜨기까지 달이 햇빛을 반사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밤에는 달빛이 드리운 그림자 속을 걷습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면 실제 햇빛을 누립니다. 달은 다만 햇빛을 반사하여 우리에게 그만큼의 빛을 주는 것입니다. 구약은 장차 올 신약의 모형이자 그림자였습니다. 사람들은 달이 반사해 주듯 자기들에게 주어진 빛 가운데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히브리서 1장에,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옛 시대에] …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죄를 지었고, 투덜거리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참으로 심판석이었습니다. 거기서 심판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거기, 가데스바네아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듣기로는 요르단 건너편 사막에 있는 작은 곳으로, 종려나무 몇 그루가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큰 샘 하나와 작은 샘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심판하는 집이고, 작은 심판의 자리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아는 심판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다투고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한 일로 바로 그곳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교회는 서로 의견이 달라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마음, 한 혼, 한뜻으로 모여 오순절이 참으로 재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너무 달라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기를 원하고, 이렇게 되지 않으면 도무지 따라가지 않으려 합니다. 또 이 사람은… 여러분도 어떤지 아시지요. 우리는 그저… 우리는…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그 심판석으로 데려오십니다. 그런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안으로 들어가 계속 나아갑시다.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기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움직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움직이도록 정하신 사람들을 움직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몫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설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서십시오. 옆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가… 그 자리에 서는 것이 그 사람의 몫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니라.” 이것이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께서 틀린 말씀을 하신 것이 됩니다.
이제 “지레짐작”이라는 주제로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저 “지레짐작”입니다. 우리가 만일…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지레짐작한다는 것은 실제 권한도 없이 감행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지레짐작한다는 말은 권한도 없이 나아가거나,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괜찮아. 아, 그렇게 해도 괜찮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그것이 지레짐작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여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걸으라고 부르시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거나, 성경에 맞지 않는 일에 뛰어들면서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 치명적인 잘못이 됩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이브는 지레짐작했습니다. 사탄이 아주 좋아 보이는 것을 내놓았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브의 지레짐작이었습니다.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바로 거기에 머무르십시오. 여러분이 홀로 서더라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낸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홀로 섰습니다. 그 길에는 둘이 설 자리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과 하나님입니다. 말씀으로 확신을 얻어 무슨 일이든 해낸 사람들은 홀로 섰습니다.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그 밖에 피니, 생키, 칼뱅, 녹스, 스펄전, 그 누구든 말입니다. 모세, 엘리야, 그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홀로 섰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말씀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자, 이스라엘이 이곳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긍휼로, 기적에 기적을 거듭 보고도 불순종했던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 가운데 강력한 표적들을 보였으나…”라고 하셨습니다. 앞 구절들에, “내가 강력한 표적들을 보였으나 그들이 그 모든 표적을 무시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아랑곳없이 계속 나아가 자기들이 원하는 것,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식으로 하라고 하시면, 우리는 돌아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 지점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떠났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얼마 전 한 군목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관총탄에 가슴을 이렇게 가로질러 맞은 대위가 있어서 자기가 불려 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누워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목이 그 사람이 있는 천막으로 불려 갔는데, 그는 숨을 쉬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막 데려온 참이었습니다. 군목이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한때는 그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목이 “지금 당장 그리스도인이 되셔야겠습니다. 죽어 가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목의 말로는 기관총탄이 그의 폐를 어떻게 가로질러 찢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는 죽어 가고 있었고, 폐에 피가 차서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군목이 “그러면, 한때 그분을 아셨다는 말씀이군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이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을 떠나셨던 곳이 어디든, 바로 거기서 그분을 찾으실 겁니다. 그분을 떠나셨던 바로 그곳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얼마나 참된 말입니까. 말씀 안에서 그분을 떠난 바로 그곳으로 여러분은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이 교회에 갑니다. 좋습니다. 십일조를 냅니다. 좋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이런 일들을 합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로 돌아와 성령을 받는 일이나 그분의 말씀에 있는 어떤 일을 마주할 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돌아서 버리면, 바로 거기서 그분을 떠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입니다. 더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다시 그분을 찾으려면 바로 그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큰길을 벗어나 샛길로 갔다가 다시 큰길로 돌아오면, 그분이 바로 거기서 기다리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군목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그 사람에게 제가 ‘빨리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라고 하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군목은 “생각해 내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위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기억납니다”라고 했답니다. 군목이 “바로 거기서 시작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주님, 제 혼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디서 그분을 떠났습니까? 요람에서, 어머니의 무릎 곁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다시 그분을 찾았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분을 떠났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발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그들을 계속 붙들고, 또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골라 열두 사람을 건너편으로 보내 그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기에 가자, 아, 그들 사이에 얼마나 큰 소동이 일어났는지요! 세상에! 그들은 돌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거기에는…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과 온갖 족속들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들의 큰 성읍들이 있고,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큰지 우리가 그들 앞에서는 메뚜기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낙심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형과 꼭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어. 우리는… 내 말은, 그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이제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었으니 조금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이제 거리 집회는 어디로 갔습니까? 젊은 형제님, 그렇습니다. 이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하던 철야 기도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깊은 신실함과 하나님을 향해 힘써 나아가던 모습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는 그것과 끊어졌습니다. 조금씩 그것을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죄는 너무나 유혹적입니다. 아, 그 화려함이란! 죄에는 아주 구미를 당기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너무나 순진해 보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순진해 보이는지요.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나중에 여호수아가 그 땅을 차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것은 모조리 멸하라.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여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어린 아기를 안아 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 정말 귀엽지 않아요? 이것 좀 보세요… 아직 이도 나지 않았어요.” 여호수아가 “죽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 저도 어머니예요. 이 아기를 죽일 수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죽여야 하오. 이리 주시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귀여워 보일지 몰라도, 자라면 자기 아버지와 똑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어르고 달래서는 안 됩니다. 죄는… 장갑을 끼고 다룰 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지만 무엇이 좋은 것입니까? 우리는 겸손하기를 원합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긍휼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긍휼이 가득하신 분인 예수님께서 이삼천 명의 사람들, 수두증에 걸린 아기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눈먼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분께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곳으로 걸어가셔서, 아마 전립선 질환이나 그런 것이 있었을 한 사람을 고쳐 주시고 떠나가셨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남겨 두셨습니다. 긍휼이 가득하신 분이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어 단어들 때문에 혼동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인간적인 동정이지 긍휼이 아닙니다. 동정과 긍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다른 두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말씀은 어떤 긍휼도 베풀지 않습니다. 말씀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프게 베어도 그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아기들과, 이른바 죄 없는 여자들과 그런 이들을 멸하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합니다. 과거 이브에게서 시작된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너는 지혜로워질 거야.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그분은 너무나 선하시니까. 너를 죽이시지는 않을 거야. 분명히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말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지레짐작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따져 보지 마십시오. 지식에는 추론이 있지만 믿음에는 따져 보는 일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냥 그것을 붙듭니다. 아브라함이 이치를 따져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치를 따져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백 살이었고, 아내가 열일곱 살쯤 되었을 때부터 함께 살았습니다. 그 아내는 이복 누이였습니다. 둘은 결혼했습니다. 자연의 이치로는 이 모든 것이… 젊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며 부부가 되었는데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는 생식 능력이 없었고, 아내도 임신할 수 없었습니다. 폐경이 지난 지 사십 년이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치를 따져 보면 그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믿는 믿음은 그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추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붙듭니다. 누군가는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목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구걸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교회에서 쫓아낼 겁니다.” 저라면 쫓겨나고 말겠습니다. “다른 누구도 저를 받아 주지 않을 겁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시겠죠? 믿음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저 믿습니다. 모든 인연에서 여러분을 떼어 놓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직 믿음에 머무르십시오. 이치를 따지는 생각들은 떨어져 나갑니다.
이스라엘은 말했습니다. “자, 이치를 따져 보면, 우리가 저곳으로 간다면, 저들은… 저들 한 사람이 우리 열 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군사 국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군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막대기 몇 개와 창, 또 주워 온 것들, 전리품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중에는 훈련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이치를 따지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바로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올곧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내가 너희에게 그 땅을 주었다”라고 하셨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를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슬퍼하고 울며 “이제 우리 아이들은 광야에서 죽겠구나. 우리 여자들은 유린당할 것이고, 우리는 여기서… 이 광야에서 멸망하겠구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에게 그 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치 한 치를 얻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바닥이 닿는 모든 곳을 내가 네게 주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발을 디딘다는 것은 소유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자, 기도를 받으신 여러분, 어젯밤 여기 계셨던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손을 얹고… 누군가 여러분에게 손을 얹었고,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내려왔고, 그분께서는 바로 말씀에 따라 자신을 나타내셔서 여기 계시다는 것이 참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속임수도 없고 착오도 없습니다. 그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습니다. 추론을 내려놓습니다. 그것을 무너뜨리고 말씀을 붙듭니다. 말씀을 붙들고 계속 나아갑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그 약속은 제 것이군요”라고 말합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나을 때까지 한 치 한 치를 얻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야 합니다. 전투입니다.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었지만,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지만 한 치 한 치를 얻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저는 삼십일 년 전에 하나님께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싸워 왔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을 때마다 하나님의 검으로 싸웠습니다. 약속을 붙들고 가로막는 것들을 베어 내며 나아갔습니다. 누군가 와서 말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침례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합니까? 검을 들고 그것을 끊어 버린 뒤 계속 행진합니다. 오순절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더니, “당신이 저 무리와 함께하면 우리는 당신과 관계를 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무리는 “그들과 함께하면 우리는 당신과 관계를 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끊어 버리십시오. 그저 계속 행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저 계속… 한 치 한 치를 얻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에 머무릅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에게는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힘들이지 않고 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이기는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의 간증, 그리스도의 피로 이겼습니다. 여러분은 무언가를 이겨야 하며, 장애물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의견이 다르고 다투며, 여러분을 광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시험인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예 전투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교회에 들어갔…? 무엇 때문에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았습니까? 빈둥거리며 거리를 으스대고 다니고 자랑하려고 그랬습니까?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행동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은 우러름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업신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검을 들고 여러분을 얽어매는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을 진정시켰습니다. 백성은 “우리는 차지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그걸로 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아말렉 족속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일 뿐입니다. 커 보이는군요. 정말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큰 밥이 생기는 셈이지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고, 그들은 모두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맞서지만 우리를 무서워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들 모두에게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죽도록 무서워합니다. 가서 차지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 것입니다. 나아가 차지합시다.”
아, 제가 그 오순절 무리를 하나로 모을 수만 있다면… 저기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서서 “우리에게는 이것도 저것도 다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들과 교제하려면 세계교회협의회에 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교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람들의 협의회나 사람이 만든 교리와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교제를 기대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권리는 거기에,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 안에서 교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여러분이 될 때, 그 말씀은 육신이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말씀이 여기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나기가 내려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는다고 고백하더라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내어 “내가 이 민족 전체를 멸하려고 한다. 비켜서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중보하며 그 틈에 자기 몸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모세 안에 계신 그리스도였습니다. 아시겠죠? 한때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온 세상을 죽이셨을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그 틈에 자신을 던지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 틈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그는 “하나님, 주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을 그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약속에 어긋나는 일을 하시려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분의 길 앞에 말씀을 내놓았습니다. 아,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외치고 싶습니다! 그분의 길 앞에 말씀을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넘어가실 수 없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으로 그들을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주께서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고,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 저희는 주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완고한 무리를 광야에서 썩게 하겠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으리라고 했던 그들의 자녀들은, 내가 그들을 데리고 건너가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보십시오. 죄는 끔찍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담배 피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술 마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간음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죄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전혀 죄가 없습니다. 아시겠죠?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욕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 그것이 죄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불신이 죄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입니다. 원인으로 돌아가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이 거짓말하고 훔치고 간음하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습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정죄를 받았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합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증언, 여러분의 열매가 믿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아시겠죠? 그런 것을 없애야 비로소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 죄는 불신이고, 불신이 죄입니다. 아니, 그렇게 말해야겠군요. 그러니 보십시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했습니다. “자, 이렇게 합시다. 우리가 이런 일을 많이 했으니 그냥 회개합시다. 이 위로 올라가 며칠 슬퍼하고 조금 울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테니 계속 나아갑시다.” 모세는 “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가? 내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주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만큼이나 분명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와 끝내셨다. 왜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교단들을 공격한다고 저를 나무라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교단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제가 공격하는 것은 그 제도입니다. 여러분이 조그만 낡은 배를 타고 이 강을 따라 폭포 쪽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제가 보았다고 합시다. 그 배가 폭포를 무사히 넘지 못할 것을 안다면, 여러분에게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배가 여러분을 태운 채 부서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앞에서 부서질 것은 그 신조들과 교단입니다.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어긋납니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그것들이 괜찮다고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괜찮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그러니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아시겠죠? 자.
오늘날 교회가 해 온 일을 볼 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저에게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틀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십시오. 존 웨슬리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존 웨슬리만큼 위대하다는 말입니까?” 저는 “저는 그분의 신발을 들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묻겠습니다. 교회가 존 웨슬리가 남겨 놓은 그 자리에 머물렀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리키와 엘비스 같은 사람들을 잔뜩 끌어들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가 전하고 지켜 섰던 바로 그것을 왜곡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들과 끝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는 이 교회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논문을 얼마나 많이 쓰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거부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조직, 모든 교단을 거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순절 사람들도 거부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감리교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침례교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장로교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톨릭교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루터교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십니다. 저는 어느 역사가에게든 묻겠습니다. 저도 여러 해 동안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어느 교회든 조직을 만들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로 그 자리에서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으신 때가 언제 있었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런 곳을 제게 짚어 주십시오. 그 교회는 바로 거기서 죽었습니다.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그분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다른 민족들처럼 보이고 싶었을 때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왕을 원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했던 노 선지자 사무엘이 일어나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성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사무엘은 “한 가지 묻겠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한 것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것이 있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먹고살려고 여러분에게 돈을 구걸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없습니다, 사무엘. 당신은 자신을 위해 헌금을 걷으신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그렇다면 주께서는 여러분이 그대로 머물러 그분을 왕으로 모시기를 원하십니다.” “아, 이 모든 것이 참인 줄 압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무엘, 우리는 침례교인들처럼 되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사무엘은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그들은 교제를 잃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교회가 교제를 잃었습니다. 신조와 계획, 교리, 성경 교리를 작성한 다음 쉼표로 끝낸다면,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보여 주시는 만큼 더 믿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마침표로 끝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으면 하나님을 완전히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교회들은 계속 자라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들은 더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올라가서 회개하고 다시 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여리신 것을 아니까 우리를 용서하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려는데 모세가 “너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 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너희와 끝내셨다고 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이다. 차라리 이 형편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라. 바로 여기 머물러라. 너희는 지금 이 처지 그대로 여기서 썩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스스로 이 지경에 이르렀고, 스스로 여기 와 있으니, 바로 여기에 머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방금 읽었습니다. 스스로 여기 와서 여기서 죽었습니다. 영적으로 끝났으니 여기에 남게 됩니다. 그곳이 여러분이 머무를 자리입니다. “그래도 한번 해 봅시다.” 그래서 올라가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가 이런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라고 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은 “좋습니다. 여러분, 자,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 곧 궤를 함께 가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도 그들과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신 곳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백만을 더 얻으려고 계속 진격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아말렉 족속과 그 무리가 그들을 그 땅에서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나아갔습니다.
이제 저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앞두고 있는 명절은 부활절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이 미국 사람들은…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렇다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도대체 제가 어떻게…? 저 성막에 못을 박으면서 반쯤 헐겁게 남겨 놓는다면 차라리 박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우선… 이 못들을 전부 그렇게 박았다면 저는 그 아래 서기가 무서울 것입니다. 못을 끝까지 박고 끝을 구부려 고정해야 합니다. 망치를 힘껏 내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못을 끝까지 박으십시오. 그것이 옳다는 증거로 반대쪽 끝을 구부려 단단히 고정하십시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영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아, 그 교회는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박는 것은 복음의 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확증하시고, 말씀이 하겠다고 한 일을 실제로 행하여 입증하심으로 반대쪽을 단단히 고정하십니다. 아멘! 그러면 확실해집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 앞에 서서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입증하십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더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부활절 아침에 일어날 일을 보십시오. 제단 위에 놓을 부활절 꽃을 사는 데 수천, 수백만 달러가 쓰일 것입니다. 가인이 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아시겠죠? 제단은 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인이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제단은 사람의 혼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제단 위에 여러분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다른 것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거기 있어야 하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제단 위에 있어야 할 사람은 우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다고 말합니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렇게 하는 것뿐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은 그런 일조차 하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가 술에 취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날이 부활절인 줄 압니다. 부활절을 나타내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들 뒤에는 많은 문제와 죄가 있으니, 술에 취해서 그것을 전부 잊어버리는 것이 마땅히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미국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바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요일에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오랜만에 아주 희한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무리 가운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기적을 보았소.” 나오는 여자들마다 “안녕, 리디” 하면서 담뱃불을 붙였습니다. “있잖아, 내가…” 하면서 말입니다. 아, 세상에!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길 끝에 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자, 이렇게 하지요. 우리가… 우리가…”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선해서 자선사업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내 몫을 했어.” 그것은… 그것이 부활절은 아닙니다. 그것이 부활절은 아닙니다.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의무가 아닙니다. 이웃 사람에 대한 의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여러분의 생명을 그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돈은 이웃에게 주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혼동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아, 물론이지요. 괜찮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을 부활절 달걀과 토끼로 생각합니다. 도대체 토끼가 부활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부활절 달걀과 새 모자가 부활절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한 목사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분은 캠벨파 목사, 그리스도인 교회 목사였습니다. “그 여자들이 쓴 우스꽝스러운 모자들을 보고는 얼굴을 가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어디서 설교 본문을 택하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필요한 곳에서 택하십시오! 어르고 달래며 감싸 주지 마십시오. 죄를 감싸 주어서는 안 됩니다. 정죄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을 정죄하십시오. 잘못된 것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물론 그가 그렇게 하면, 곧 집사회가 본부에 편지를 쓸 것이고, 그는 조직에서 바로 쫓겨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라면 차라리… 그러면 일요일에 닭튀김도 먹지 못하겠지요. 아, 참!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강단에서 턱시도도 입지 못하겠지요. 다른 누구도 그를 받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조직은… 한 곳에서 쫓겨나면 나머지 조직에서도 그에게 검은 표시를 합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저기 큰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아래에 있는 큰 명단보다 저 위의 큰 책에 제 이름이 있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괜찮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해하실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분은 이해하십니다. 여러분이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십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과거를… 잊으려 합니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자기들의 교리와 서로 다른 주장과 온갖 것을 설교하면서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본부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괜찮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지레짐작했습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옳은지 확실히 하십시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계속하십시오. 그건… 저는 이런 단체에 속해 있고,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 지방 장로들이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의, 뭐라고 부릅니까, 그들이 써 놓은 작은 책들 말입니다… 우리의 신조와 교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말씀에 어긋난다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씀을 붙드십시오. 법은 하나, 사랑을 가지십시오. 책은 하나, 성경을 가지십시오. 신조는 하나, 그리스도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합니까? 와서 그런 것들에 가입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모질게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단히 박아야 합니다. 어딘가에 단단히 고정될 때까지 깊이 박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처음 권투 훈련을 시작했을 때, 프로 시합에 나서기 전입니다. “6초 스미스”라고 부르던 트레이너가 있었습니다. 첫 프로 시합에서 상대를 6초 만에 이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훈련을 시작하자 그 사람이 저를 거의 죽여 놓았습니다. 저를 링 밖으로 완전히 날려 버리는 등 별짓을 다 했습니다. 저는 줄넘기를 하고, 날마다 7, 8마일을 달리고, 모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식스, 왜 저를 그렇게 다뤄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때리시잖아요. 세상에, 로프 네 줄을 몽땅 넘어 저 의자들 사이로 날아가 떨어져서 허리가 부러질 뻔했습니다.” 그는 웃으며 “그게 너한테 도움이 돼”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움이 된다고요?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저를 거의 죽이시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리, 들어 봐. 네 체력이 아무리 좋아도 상관없어. 네 몸이 그걸 견디고 금세 회복할 수 있어야 해. 강한 주먹을 맞았을 때 몸이 회복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면, 그대로 누워 카운트를 듣게 될 거야. 하지만 네 몸이 타격을 받고 다시 회복하는 데 익숙해지면…” 타격을 받을 때마다 피가 충격을 받아 심장으로 몰려갑니다. 그는 “그렇게 하면 네 몸이 빨리 회복하는 데 익숙해져. 쓰러져도 다시 벌떡 일어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쓰러져도 아무것도 아니야. 곧바로 다시 일어나면 돼.” 그는 “지금은 나를 미워하겠지만, 나중에 링에 나가면 고마워할 거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형제님, 때로는 제가 아주 호되게 두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어르고 달래지 말고, 힘껏 퍼부으십시오! 갈보리에 이르면 저를 고마워할 것입니다. 길 끝에 이르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오래된 험한 길을 걸어온 것이 기쁩니다. 여기 제가 어린양의 피에 씻겨 서 있습니다.” 아시겠죠? 밖에 있는 그 낡은 신조 같은 것들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지 마십시오. 자, 그 길로 들어오십시오. 하나님께는 길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에 머무릅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와서 무엇에 가입합니까? 자기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구약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 모든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분은 그런 곳에서는 일하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일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이 역사하실 바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부 출신인 제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순무에서 어떻게 피를 짜내겠니? 그 안에는 피가 없는데.” 맞습니다. 죽은 시체 안치소에서 어떻게 영적인 표적과 이적을 얻겠습니까? 교권주의로 얼어붙은 곳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영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들은 영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가입합니다.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설교자들은 그런 교리를 계속 설교합니다. 성경이 다르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이 옳다고 지레짐작하며 그대로 설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전통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명령들을 무효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의 일부는 있습니다. 그 일부를 설교합니다. 물론입니다. 일부를 취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말씀하신 복음의 거의 99퍼센트를 취해 그것이 진리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한 가지에 이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건 지나간 시대의 일이었다는 걸 알잖아. 너는 이렇게 될 거야.” 아시겠죠?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고, 아무것도 빼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 지키십시오.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그저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 오순절 교회가 거기에 머물렀더라면, 휴거는 이미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 여러분은 “잠깐만요, 형제님. 방금 틀린 말씀을 하셨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압니다. 노아의 날들에… 성경은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습니다. 시간을 훨씬 넘기셨습니다. 아시겠죠?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계속, 계속, 계속 오래 참으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마지막에 그분의 교회가 그분의 말씀을 알아보게 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그대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어 힘차게 외치게 하실 때마다, 그 사람이 무대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리키와 엘비스 같은 사람들 한 무리가 거창한 신학박사 학위를 들고 모여듭니다. 이것을 덧붙이고 저것을 덧붙이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유와 그 밖의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신유 문제로 저를 가장 지독하게 대한 사람들은 오순절 목사들이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 군 훈련장을 빌렸는데, 사람들을 앉힐 의자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칸소의 산간에서, 사방에서 집회에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순절 운동에서 가장 큰 조직들 가운데 한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 영적 온도계는 영하 90도였습니다. 직접 보셨어야 합니다. 그 목사에게는 긴 의자가 삼백 개쯤 있었습니다. 멋지고 큰 교회를 지어 놓았더군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번영이 영적인 복의 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저는 그에게 “이 의자들을 빌릴 수 있겠습니까? 이만큼 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신유를 믿는 사람은 누구도 내 의자에 앉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오순절입니다.
지난해 자메이카 킹스턴의 경마장에서 주님께서 복을 주고 계셨을 때, 그곳에 오순절 목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젯밤 여기에는 쿠바와 아이티, 주변 섬들에서 온 사업가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저는 “여러분 때문에 부끄럽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줄지어 늘어선 캐딜락 자동차들 이야기였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 모퉁이에서 작은 사업을 하던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주님께서 이것을 주셨고, 여기에 복 주셨고, 저기에 복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은 앉아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충분히 오래 지냈으니, 제가 그들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 겁니다. 주님께서 제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들은 형식만 남은 저 큰 시체 안치소 같은 교회들에 속해 있고 번영하고 있습니다. 억만장자들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늘 자기가 가진 것, 이만한 기간에 얼마나 모았는지를 자랑합니다. 처음 오순절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은 그것을 거꾸로 해 놓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부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압니다. 그들은 만족을 주고 그 안에 생명이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집회장에서, 제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던 곳으로 그들을 데려가 그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자그마한 사람이 저에게 다가와 “당신은 크게 틀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틀렸다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아까 오순절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자기 소유를 전부 팔았다고 말씀하셨지요. 그건 그들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잘못한 일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얼마나 세속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또 “그건 가장 잘못한…”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성령께서 실수하셨다는 말입니까? 실수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섬기고 계신 겁니까? 그분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물론입니다. 어떻게 그분이 실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가 성령이 아니었다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스스로 여기까지 나왔으니, 이제 자기가 앉은 가지를 직접 톱으로 잘라 보시오’라고 생각했습니다.
토끼를 우리 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구석구석을 알고 있고, 모든 구멍이 막혀 있어 토끼가 나가려면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바로 여기 머물러 있으면 됩니다. 토끼는 반드시 여기로 돌아와야 합니다. 구멍마다 머리를 들이밀겠지만 결코 통과하지 못합니다. 우리에 가두고 바로 여기 머물러 있으십시오. 그런 사람을 상대할 때도 같습니다. 그저 말씀과 함께 계속 나아가십시오. 말씀을 앞에 두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어차피 저쪽 구멍들은 전부 막아 놓았습니다. 계속 나아가고, 계속 앞으로 가십시오. 저는 “그러면 성령께서 실수하셨다는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사람들이 실수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목사님, 들어 보십시오. 핍박이 닥치고 그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났을 때, 그건 성령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은 성령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핍박이 일어났을 때 그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집조차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든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집이 있었다면 집으로 돌아갔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고 계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천국에 집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차이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것이 마땅히 할 일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자, 목사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서 그런 것을 설교합니다. 괜찮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교인들이… 여자들이 반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게 합니다. 남자들은 친목 카드놀이 모임을 하고, 당구장에 가고, 교회에서 번코 주사위 놀이를 하고, 저녁 수프 식사를 팔아 목사 사례비를 마련하는 등 온갖 세상적인 일을 하게 둡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며 가입합니다. 저는 장로교 교회 곁에 삽니다. 그런데 지난번 밤중에 그곳 지하실에서 부기우기 춤을 얼마나 요란하게 추던지, 정말…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니면 새로 몸을 비트는 그 춤, 뭐라고 부릅니까? 여자들이 그걸 추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그런다지요? 아시지요, 뭐라고 합니까? 트위스트입니다. 그들은 한번 단단히 비틀려 봐야 합니다. 복음의 널빤지로 맞아 그런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 예부터 전해 온 좋은 복음, 성령께서 보내시는 부흥입니다. 그래요. 복음의 끈으로 목을 한번 단단히 비틀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얼마 전 한 십 대 소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잖아요,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셔서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않으세요.”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말만 너무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내려오셔서 죽음의 아가리에서 이스라엘을 끌어내실 만큼 선하셨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는 돌이켜 그들이 썩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오순절 사람들을 그 조직들에서 끌어내실 만큼 선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곧장 되돌아서 자기 어머니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썩고 있습니다. (여기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녹음은 전 세계로 갑니다. 아시지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바로 그 안에서 썩습니다. 그러고는 누군가 와서 진리를 말해 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선하신 하나님이시니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거기서 이스라엘이 잘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선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분명히 그러셨습니다.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경계선을 그으시고 그들과 원수 사이에 불기둥을 두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을 사해를 건너게…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게 하시는 등의 일을 하셨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집트 사람이 그들을 뒤쫓기 시작하자 죽음의 순간에 그들을 보호하시고 이집트 사람들을 죽이셨습니다. 물론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인내가 다했습니다. 그분께서 그 마지막 말씀을 하셨을 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모세는 “왜 하나님의 법들을 어기는가? 하나님께서 너희와 끝내셨다고 이미 말씀하셨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지레짐작하며 너무 멀리 가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그 선을 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선이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경계선에 머문 신자들을 기억하시지요? 그저 경계선에만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6장은 “한 번 빛을 받고 성령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늘의 선물들을 맛본 자들이 만일 돌아서면 다시 자신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그분을 모욕하기 때문이라”라고 합니다. 또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역사에 무례히 행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자녀에게 “저쪽으로 가면 매를 맞을 줄 알아라”라고 합니다. 그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가 여러분의 규칙을 어겼을 때 말한 대로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도 “그래, 괜찮아” 하며 계속 내버려 두면, 아이는 또 합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요즘 멀린다나 리키 같은 아이들이 여기저기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소년 비행을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테네시와 켄터키 산간에 사는 사람들이 무지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립니다. 그곳의 나이 든 어머니들 중에는 요즘 이 이세벨들에게 자식을 기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집 아이 하나가… 그 여자나 딸이, 리키와 어딘가에서 밤새도록 지내며 차 안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옷이 온통 비틀어진 채 들어왔다고 합시다. “얘야, 재미있었니?”라고 하겠습니까? 그 어머니라면 나무에서 히코리 가지 하나를 꺾어 들 것입니다. 그러면 그 딸은 앞으로 일 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러고는 그걸 무지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것에 관해서 훨씬 더 잘 압니다… 아, 이쯤에서 입을 다무는 편이 좋겠군요. 좋습니다. 계속하겠습니다.
자, 이스라엘은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부화시키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지레짐작입니다. 둥지에 송장매 알이 가득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독수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높은 곳이나 그곳에 올라가는 법을 전혀 모릅니다. 깃털이 너무 헐거워서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만 해도 깃털이 죄다 빠져 알몸이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고도가 높아지면 깃털이 뽑혀 나갈 것입니다. 그 높이 올라가도 견디는 깃털을 가진 새는 독수리뿐입니다. 독수리의 깃털은 깊이 자리를 잡아 단단히 붙어 있고, 못으로 박은 것처럼 고정되어 있습니다. 아멘! 독수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송장매나 까마귀, 닭을 잡는 매가 따라가려 하면 죽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독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독수리요, 내 자녀들은 모두 어린 독수리라.” 그들은 저 높은 곳을 나는 법을 압니다. 그곳에서는 그저… 저 위에서 유유히 날아갑니다. 아멘. 아, 저는 그것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요, 지레짐작입니다.
그는 “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여러 번 용서하셨으니 이번에도 용서하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는 너희와 끝내셨다. 너희가 이 일을 했을 때 그 선을 넘었다”라고 했습니다. 돌아보며 우리가 그 선을 넘었는지 살펴봅시다. 그분께서는 루터교인들에게 어디서 선을 그으셨습니까? 감리교인들에게는 어디서 선을 그으셨습니까? 침례교인들에게는 어디서 선을 그으셨습니까? 캠벨파 사람들에게는요? 나사렛 교인들에게는요? 필그림 성결교인들에게는요? 버디 로빈슨의 무리와 그 밖의 모든 무리에게는요? 어디서 선을 그으셨습니까? 오순절에게 선을 그으신 것과 똑같은 자리입니다. 거기서 썩는 것입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이런 말을 하려니 거의 죽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에 따라 진리를 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거기서 썩을 것입니다. 그 교회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 여러분은 지레짐작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삼손도 한때 지레짐작했습니다. 삼손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니, 여자들과 어울려 돌아다녀도 되고,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여자, 교회입니다.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나타냅니다. 들릴라는 그 시대의 저 이세벨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그는 그 여자에게 얽매였고, 여자는 그를 손가락 하나로 마음대로 움직였습니다. 여자는 정확히 그렇게…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힘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이런 신조들과 사람이 만든 것들, 조직과 교단에 스스로 얽매여 형식주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다 어느새 성령께서 떠나셨음을 알게 됩니다. 복음의 힘이 여러분에게서 사라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뜨끔하도록 그슬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저는 언제든 불에 타 버리는 것보다 그슬리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러니 들으십시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삼손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거기 계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밖으로 나갔을 때 생각한 것도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거기 계신다. 선하신 하나님이시니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어르신 여러분, 오십 년이나 육십 년 전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려고 그런 조직들에서 나왔을 때,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말입니다… 그분들에게, 다시 돌아가 이집트 사람들, 곧 세상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다면, 여러분 면전에서 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아,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여러분은 타협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타협해야 했습니까? 세계교회협의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여러분의 위대한 복음주의 교리를 타협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학교들을 보십시오. 똑같습니다. 심지어 우리 성결 계통 학교들까지도 너무 나빠지고 있습니다. 왜곡된 것들과 그 밖의 온갖 것이 그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안에서 그 죄를 드러내어 지적할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바로 여기서 그것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여러분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교회에 은사들이 보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학과 과학과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가르쳐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여 떠나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는 소녀들과 같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죄가 그토록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을 해 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들과 세상 염려와 그런 것들에 너무나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만 하면 돼. 장로들에게 좋게 보이기만 하면 돼. 여기서 좋은 평판만 유지하면 돼.”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내버려 두십시오. 따라오고 싶다면 따라오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 머물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여호수아는 새로 나오는 이들의 정확한 모형입니다. 그분은 “너희가 사십 년 동안 이 산에서 맴돌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사십 년 동안 거기서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내를 얻었고, 농사를 잘 지었고, 아이들을 길렀고… 아,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들으십시오. 이제 한 가지 말하겠습니다. 뜨끔하게 그슬릴지도 모르지만 들으십시오. 오순절이 한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세상처럼 조직을 만들었지만, 온전한 약속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오기는 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돌보셨고 이적들과 표적들과 기적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충만함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인 줄 여러분도 압니다. 그리고 예전에 싸우던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다시 그 자리에 왔습니다. 얼마나 오래 맴돌았습니까? 사십 년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일신교 소속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회 소속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나는 하나님의 교회 소속입니다.” “우리는 이쪽입니다.” “우리는 저쪽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마땅히 되어야 할 것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십시오. 낮아지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가르… 자신을 비우십시오. 여러분은 자기를 채우려고 합니다. 비우십시오. 교회와 개인에게 가장 큰 일은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일입니다.
그 말을 하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아주 가난하게 자라서 먹을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아래쪽 제과점에서 고기 껍데기를 얻어 오곤 하셨습니다. 거기서는 햄 같은 것을 구웠습니다. 나이 든 독일인 부인, 굿먼 부인이… 그곳에서는 햄을 구웠습니다. 햄에서 껍데기를 잘라 내면 아버지가 내려가 그것을 얻어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빵 굽는 팬에 넣으셨습니다. (아, 제가 사는 지방에서는 빵 굽는 팬을 오래전에 잊어버렸습니다. 물론 여러분 남부 사람들은 아니지요.) 그 고기 껍데기를 넣고 오븐에 다시 넣어 구워 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옥수수빵에 넣을 기름을 빼내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로 옥수수 전병을 만들었습니다. 수수 당밀과 옥수수 전병을 먹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주식이었습니다. 점심에는 자리공 잎이 돋아났으면 그 나물을 먹고, 동부콩이나 그런 것을 먹었습니다. 먹는 형편이 그토록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학교에 다닐 때는 토요일 밤마다 우리 모두를 목욕시키셨습니다. 모두 같은 통, 같은 물에 씻었습니다. 물을 조금씩 더 보태셨지요. 그저… 맨 어린아이부터 씻겼으니 마지막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때를 전부 뒤집어썼지만, 우리는 살아 냈습니다. 살아 냈습니다. 청결이란 겉을 씻는 것만이 아닙니다. 속은 어떻습니까? 회칠한 벽입니까? 무덤 겉은 닦아 놓았지만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있습니다. 요즘은 텔레비전 방송 같은 데서 손에 때가 묻지 않게 하라며, 좋은 세제라며, 너무나 세세하게 따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며칠 전 집에 돌아왔습니다. 주유소에 서 있다가 텔레비전인지 방송인지 무엇에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 이제 설거지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넣기만 하세요. 모든 것이 싹 빠집니다. 그냥 세워 놓으시면 됩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미다, 내가 설거지해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해 보고 싶어서… 그 물건 한 병을 사 와서 “내가 설거지하겠소”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쏟아 넣었더니 거품이 이만큼 올라왔습니다. 그릇들을 넣고 반 시간 동안 두었다가 꺼냈습니다… 달걀이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이런 것으로 온갖… 요란한 광고를 들을 때, 그렇게 크게 광고하는 것에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제품이 좋으면 저절로 팔립니다. 옛 신앙도 그렇습니다. 거창한 것들을 내걸거나 큰 조직들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있으면 저절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집니다. “여기에 가입하십시오”, “우리는 거룩한 이쪽이고 거룩한 저쪽입니다” 하면서 죄를 제거한다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죄를 제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세숫대야 안으로 들어갈 때 그분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맞습니다.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뿐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모든 것이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에도 해 주셨잖아. 우리가… 이 일을 하면 뭐 어때. 상관없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까.” 그들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습니다. 전투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러 올라가 보면, 우리도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지만, 아간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그 저주받은 성읍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제 십이 분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 모텔로 가야 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단단히 박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여기를 보십시오. 우리가 한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아간이 취한 아름다운 바빌론 옷 한 벌과 쐐기 모양의 금덩이 하나였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 성읍은 저주받았고, 그 안의 모든 것이 저주받았습니다. 교단들이 저주받았다는 것도 입증되어 있습니다. 끔찍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진리입니다.
조금 전 제 어머니 이야기를 했지요. 어머니는 토요일 밤마다 우리에게…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피마자유를 듬뿍 먹이셨습니다. 매번… 저는 그것의 냄새를 견딜 수 없습니다. 이 방에 갖다 놓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입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코를 틀어막곤 했습니다. 다가가서 “엄마, 이건 도저히 못 먹겠어요. 자꾸 구역질이 나요”라고 하면, 어머니는 “구역질도 안 나고 속이 아주 메스껍지도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설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구역질이 나고 속이 뒤집혀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낡은 신조들에서 나와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런 신조들이 옳은지 살펴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씀은 여러분의 영적인 소화기관을 뒤흔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바르게 시작하게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저 자신이 거칠고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모든… 요한과 같습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뱀과 도끼와 광야의 것들뿐이었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것만 알 뿐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제 눈에 보이는 대로, 제게 떠오르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훨씬 더 깔끔하고 좋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십니다. 그것 하나는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제 뜻을 아십니다. 그러니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쨌든 이런 낡은 것들을 모두 떠나십시오. 좋습니다.
자, 아간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멋진 작은 금덩이를 가지면 멋진 차림을 갖추게 될 거야. 여기 이 멋진 것도 가지고, 장로도 되고” 하는 식입니다.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저주받았습니다. 그 무너진 곳에 있는 모든 것이 저주받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간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그들은 그것을 없애기 전에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집트 사람들도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해를 통과했는데, 자기들이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언약의 복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만든 교리들을 가지고는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물에 빠져, 그것들과 함께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길로 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말씀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죽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는 “그들은 통과했잖아. 나도 똑같이… 우리는 그들보다 나은 사람들이야. 더 건강하고 더 강하고 더 똑똑해. 저 사람들은 자기 이름도 못 쓰잖아. 우리는 뛰어난 사람들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뛰어난 사람들은 그리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처럼 뛰어남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맞습니다.
노아 때에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만일… 만일 큰비가 온다면 말이야…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만일 온다 해도 우리에게는 배들이 있잖아.” 여러분은 “그때는 배가 없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라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시대입니다. 지금 물에 잠긴 도시 같은 것들을 발굴하지 않습니까? 몇 년 전 바로 여기 멕시코에서, 현대적인 상수도 시설과 모든 것을 갖춘 곳을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해 아래에는 새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 배를 타면 돼.” 그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물에 뜰 배가 하나 있었고, 나머지 배들은 모두 가라앉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배도 견뎌 낼 것이라고, 이 배가 뜨듯이 어떻게든 뜰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만들었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할 수 있습니다. 들으십시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물에 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맞든 맞지 않든 괜찮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싯딤나무로 그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무는 발삼나무보다 가볍습니다. 속에 아무것도 없이, 커다랗고 속이 빈 해면과 같습니다. 제가 여기서 저쪽, 저 뒤 벽 끝까지 닿고 두께가 6피트나 되는 그 나무 들보를 짊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깨에 얹고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해면일 뿐이니까요. 속에 아무것도 없는 싯딤나무입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나타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 모든 신조와 교리를 비워 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것의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역청을 칠했습니까? 나무를 베어 두들겼습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역청을 두들겨 짜냈습니다. 그런 다음 뜨거운 역청을 가져다 거기에 부으니, 비어 있던 모든 곳이 그것을 빨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강철보다도 훨씬 단단해졌습니다. 조금도 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견뎌 낸 것입니다. 두들겨 맞으셔야 했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의로우신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성령께서 들어오시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시게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굳게 세웁니다. 심판은…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죠? 괜찮다는 것입니다.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교단은…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라고 합니다. “아,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나는… 기적의 시대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우리도 교회 아닙니까?” 계속 가십시오. 곧장 심판 속으로 떨어지십시오.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교단이 너무 많아 혼란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그저 괜찮다고 지레짐작하며 그대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어느 것이 옳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습니까? 말씀으로 시험해 보십시오.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말해 줍니다. 아시겠죠? 신명기 22장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그에게 말하리라. 그가 성경과 함께한다면 그가 말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그것은 옳은 것이니라.” 아시겠죠? 마가복음 16장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올바른 데 이르고 있습니다.
요한이 나와서 소개하려고 할 때 어느 길이 옳았습니까? 바리새인들에게는 자기들 길이 있었고, 사두개인들에게도 자기들 길이 있었고, 세리들에게도 자기들 길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각각 자기들의 길, 자기들의 교단, 자기들의 조직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의 학교 어느 곳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광야로 나가 기다렸습니다.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 하나님께서 광야에 있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메시아에게는 언제나 그러셨듯 그분을 따르는 표적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젯밤 우리가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기다렸습니다. 어느 곳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알 때까지 그저 기다렸습니다.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저기 바리새인들이 있네. 좋은 사람들이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물론이지, 저들은 옳아.” 그는 “저들이 옳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옳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요한은 표적을 기다렸습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의 참된 표적을 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나단은 몹시 까다로웠습니다. 그는 “나는 믿지 않습니다. 직접 보아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와서 그분이 메시아이신 것을 보자, 그때 만족했습니다.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볼 때까지 기다렸던 것입니다.
스바의 여왕은 그것을 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왕은 “길이 멀기는 하지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왕은 이교도였습니다. 아시지요? “내가 거기에 가서,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듣기로는 그들의 하나님이 솔로몬이라고 하는 사람, 그들의 왕 안에 살아 계신다고 하는구나. 그들이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왕으로 삼았다는구나. 그가 하나님이라면… 내가 이 말씀을 읽어 보았으니, 그 표적이 그 사람 안에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서 보겠다.” 그래서 낙타에 안장을 얹고 사막을 가로질러 떠났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밖에 천막을 치고 기다렸습니다. 아시겠죠? 기다렸습니다. 아마 첫날에는 교회 맨 뒤쪽에 앉았을 것입니다. 솔로몬 목사님이 성전으로 나오고 그의 신하들이 주위에 둘러선 것을 보았습니다. 아, 그곳의 모습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여왕은 자기가 옳은지 확실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곧 그 분별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기도 카드 번호가 불렸고, 여왕은 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그 여왕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여왕은 더는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들은 것이 전부 사실이고, 그 이상입니다. 제가 전해 들은 것보다 더 큽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왕과 함께 있으면서 날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곳의 흙을 조금만 가져가게 해 주십시오. 돌아가서 그 위에 무릎을 꿇게 해 주십시오. 왕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여왕은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표적을 볼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렸습니다.
우물가의 여자는 메시아께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여자는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자마자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당신은 분명 선지자이십니다.” (그분은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여자는 “한 분이 오실 줄 우리가 압니다. 메시아께서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고 성읍으로 달려갔습니다. “여러분, 나와 보세요. 여러분의 모든 교리를 가져오고, 모든 신조 책과 그런 것들을 가져와 보세요. 이분이 메시아이신지 봅시다. 우리가… 혹시 그분이신지 봅시다.” 여자는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와서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멘! 맞습니다. “와서 보세요. 우리가 찾았어요!” 거기에는 조금도 착오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순절의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잠깐만. 어디 보자. 지금… 어디 보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셨어. 여기 올라오라고 하셨지. 우리 주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건 알아. [죄가 얼마나 순진해 보이고 얼마나 은밀하게 스며드는지 보십시오!] 여기 올라오면 성령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어. [제가 이제… 박사님, 이것을 들으십시오.] 아, 있잖아… 안드레, 잠깐 이리 와 보게.” “예, 예, 말씀하세요.” “마태,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 요한, 이리 와 보게. 우리 주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잖아.” “그렇지.” “아버지의 약속을 받을 때까지 여기 위에서 기다리라고 하셨고, 우리가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지. 우리를 향해 손을 드시고, 우리 위로 숨을 내쉬며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셨던 것 기억하나?” “그래.” “형제들, 내 생각에는 우리가 받은 것 같아. 우리가 받았다고 지레짐작해. [아, 이 가련한 위선자여!] 우리는 받은 것 같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 여러분 침례교인들!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믿음으로라니, 아닙니다! 그것은 체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며 훈련받은 사람 베드로가 거기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잠깐만. 그건 성경에 맞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받았다고 지레짐작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사역을 시작해야지. 벌써 여기서 아홉 날이나 지냈잖아. 뭘 기다리는 거야?” “그분께서 ‘때까지’라고 하시지 않았나? 때까지야. 아홉 날도, 열흘도, 오십 일도, 백 일도 아니야. 그분은 ‘…할 때까지 기다리라’라고 하셨어.”
우리가 잘못한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괜찮다고 지레짐작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방언을 했으니 해야 할 일은 그것으로 전부라고 지레짐작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거기 머물며 방언을 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격려해 주어서 방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괜찮다고 지레짐작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자들이 여전히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고 반바지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자들이 여전히 자기들의 것을 가지고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지레짐작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만두십시오! 그만두십시오!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시몬이 일어나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깐만. 이사야는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며,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한다’라고 했네. [아, 그들이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야.” 맞습니다. “형제들, 내 말을 들어 봐. 저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고. 우리는 우리끼리 작은 단체를 조직해서 이름을 아무개라고 하세. 저들이 광신적으로 남아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두세.” 바로 이것입니다. 맞습니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바울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간 것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얼마나 많은 것을… 여기 적어 둔 성경 구절이 너무 많아서 전부 하려면 하루 종일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더는 머물 수 없습니다. 그저 지레짐작하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다니엘, 그들은 거기 아래에서 지레짐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그릇들을 가져다가 술을 마셔도 괜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비웃어도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들을 조롱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의 이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자방아 맷돌이 목에 달린 채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네게 더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님, 저는 이런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봅니다. 목을 길게 빼고 교태를 부리며, 굽이 이만큼이나 높은 구두를 신고, 여자들이 앞쪽을 내밀고 뒤쪽도 내밀고, 이렇게 돌아다닙니다. 어떤 여자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오순절 여자였습니다! 아주 짧은 치마를, 아시지요,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절반쯤밖에 안 되는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브래넘 형제님, 요즘은 이런 것밖에 만들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재봉틀도 만들고, 천도 팝니다. 보십시오. 그 오래된 더러운 영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 여자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저는… 그 여자는 오순절 사람이 아닙니다. 오순절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얼른 벗어나 다음 장으로 넘기는 게 좋겠습니다. 아, 세상에!
모세가 지레짐작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지레짐작하지 말고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신 바로 그것에 머무르십시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아멘. 하나님께는 지키셔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다면, 그분은 그 말씀에 따라 여러분에게 책임을 지십니다. 하지만 이브처럼 말씀의 아주 작은 부분 하나라도 의심하며 다른 무언가를 대신 끌어들이면, 바로 그 자리에서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맙시다. 그저 말씀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읍시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자, 친구 여러분. 거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오 분이나 십 분쯤 뒤에는 그곳에 도착해야 하므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제 설교는 훨씬 더 깁니다. 하지만 이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모질게 굴려는 것이 아닙니다. 베고 찢어 놓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여러분보다 제가 더 아프게 베입니다. 하지만 형제자매 여러분, 언젠가 저곳에서 여러분을 만나야 합니다. 제가 거기 서 있는데 그분께서 돌아보시며 “이 속이는 자야! 그들의 피를 네 손에서 요구하겠다!”라고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아시겠죠? 저는 그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전하지 않으면 저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저는 다만 여러분이 저와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말씀을 가지고 앉아서 이것이 참인지 살펴보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조직들과 교단들을 조사해 보십시오.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몸에 해를 끼칠 일이 있다면, 자신을 지키려고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입니다. 변호사와 법률가와 온갖 것을 구하고, 생명이 위협받으면 경호원도 구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여러분의 혼, 영생이 영향을 받는다면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거슬러 올라가 조직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언제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조직,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톨릭교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교인들이나 장로교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여기 이 교회에서 제가 물어본다면…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의 친구들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가톨릭교인이고 침례교인이고 장로교인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제가 지금 함께 다니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그분들과 전 세계를 다니는데, 왜 그렇습니까? 저는 다른 누구에게나 말하듯 그분들에게도 똑같이 말합니다. 며칠 전 어느 집회에서도 그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책임자 한 분이 일어나 “그래서 우리가 형제님을 모시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말씀을 지키시고, 그것이 우리를 바른길에 있게 합니다.” 맞습니다. 진리를 말하면 사람들은 여러분을 존중합니다. 여기 여성 여러분 가운데 매를 아끼지 않고 바르게 길러 주신 훌륭한 어머니를 감사하게 여기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어머니께 감사하십니까? 이제 저기 묘지에 계신 백발의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다운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내버려 둔 사람은… 얼마 전 저는 도둑질이며 온갖 못된 짓을 일삼던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아들을 감싸 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는 감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훔친 물건들을 돌려주게 하셨더라면, 오늘 제가 여기로 가지는 않을 겁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아시겠죠? 우유부단하게 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진리 위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는 모릅니다. 우리가 다시는 이렇게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이 함께하는 마지막 아침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저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백성에게 주의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 때로는 말씀이 베어 내고… 하지만 그것은 검이고, 예리한… 주의 성경은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예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검은 분명한 부르심을 받고, 그 뒤에서 하나님의 영께서 뒷받침하시며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는 믿음의 손만이 다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옳음을 입증하실 수 있는 영께서 함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이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여기 제 형제의 겸손한 모습, 리틀필드 형제님과 자매님, 두 사람은 하나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자선은… 한때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게 와 주십사고 주께 청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은 로마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우리 민족을 위해 큰일을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기름부음 아래 이분 곁에 앉아 있으면서, 그분이 마음 깊이 저를 사랑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분도 그것을 알고 있고, 저도 그분을 사랑합니다. 주님, 주께서 아십니다. 저는 그분에게,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비가 아무리 거세게 내려도, 이 작은 회중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주의 인도하심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분도 저에 대해 같은 마음입니다.
이제 주님, 제가 드리는 축복이 그분 위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여기 그분의 작은 교회에… 조금 전 형제들과 복도에 서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분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맞습니다. 그것은 그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모세가 그 틈에 자기 몸을 던지며 “주님, 저를 데려가시고 그들은 남겨 두십시오”라고 했던 것처럼, 그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리틀필드 형제님과 리틀필드 자매님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영의 권능을 주십시오.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그분들의… 주님, 그분들이 이 백성에게 육신의 양식과 영적인 양식을 먹이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 작은 교회에 복 주시고, 집사들과 재정을 관리하는 이사들에게 복 주십시오. 작은 교회가 굳게 서게 해 주십시오. 여기 이 작은 곳에서, 휴거가 일어날 때… 실제로 수십 명이 이곳을 떠나 휴거되게 해 주십시오. 이 연약한 노인들, 백발에 얼굴이 주름진 이 할머니들을 보십시오. 할머니와 할아버지 주위에 아이들과 손주들이 모두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할아버지가 다시 청년으로 변하고, 할머니도… 그때 떠나는 모습을 보십시오. 아, 우리는 이 육신의 옷을 벗고 올라가 영원한 상을 붙잡으리라. 공중을 지나며 외치리라. “잘 있거라, 잘 있거라.” 하나님, 이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거나 누군가를 베어 아프게 했다면, 주님, 그런 식으로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베어 내야 할 것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저 거기에 말씀을 놓습니다. 그것은 씨입니다. 이제 풍성한 결실로 자라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이 교회에 그런 영이 일어나 주변 모든 지역에 하나님의 권능이 알려지게 해 주십시오. 이곳에서 선교사들이 나가게 해 주시고, 이곳에서 훌륭하게 이름난 목사들이 나오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이들에게 양식, 양들이 먹을 양식을 주십시오. 이들은 양의 양식인 주의 말씀을 원합니다.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가운데서 주를 높여 나타내 주십시오. 주님, 오늘 여기 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를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머리를 숙인 채로, 한 가지 질문에 참으로 정직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걷고 있다고 느낍니까? 그렇지 않은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지금 그저 지레짐작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성경에 여러분이 하라고 기록된 것들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하는 한… 친구 여러분,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바르게 됩시다. 여러분은 자기 신조로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느낌으로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해 왔다는 것을 안다면, 모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가운데,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분도, 저분도, 저분도, 저분도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정직하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보입니다. 방금 한 여자가 치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여기 앉아 있던 아픈 분인데, 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셨기에 치유받았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정직하십시오. 저는 제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분도, 저분도, 저분도요. 수십 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보십니다… 그분은… 저는 여러분의 손을 놓칠 수도 있지만 그분은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무한하십니다. 땅이 창조되기 전부터 이 땅에 있을 모든 각다귀를 아셨습니다. 눈을 몇 번 깜박일지, 지방을 얼마나 만들어 낼지도 아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발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은 아십니다… 무한하십니다. 무엇을… 무한하십니다. 말씀은 무한하신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아시겠죠? 그저 무한합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그분은 영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생각 하나까지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게 될 모든 생각을,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셨습니다. 그래서 미리 아심으로 예정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할지 아십니다. 그 모든 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함께 작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계시는 동안… 저는 힘써 보았습니다. 아주 강하게 설교했지만 진리입니다. 어젯밤에는 치유 예배를 드렸습니다만, 지금 무엇인가 하도록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아직 여기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보입니다. 제가 진리를 말씀드렸는지 아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게 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주께서 말씀하셔서 이것이 진리임을 입증해 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여기 계신 아픈 분들 모두… 이곳을 떠나 리틀필드 형제님께 예배를 맡기기 전에, 적어도 두세 사람의 증인은 얻고 싶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성경에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면… 그렇게 믿는 분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여호와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그분께서 살아 계시고,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그분이 살아 계신 대제사장이시라면,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이 땅에서 대제사장으로 계실 때, 어느 날 한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분은 돌아서서 여자에게 피의 유출이 멎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대제사장의 행동이었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렇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제 그분은 포도나무이십니다. 저 자신을 예로 들겠습니다. 여러분이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제게 긍휼을 베푸신다면, 제가 가지가 되겠습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게 해 봅시다. 우리가 마지막 때에 있는지 아닌지 보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한 젊은이 위로 드리우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압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청년 바로 위에 그 빛이 머물러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를 압니다. 전에 치유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제 가까이, 두 번째나 세 번째 줄쯤에 그것이 있습니다. 여러 질환이 있는 한 여자 위에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모릅니다. 그분이 이것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누구인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콕스 부인, 믿으십시오. 믿습니까?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가까이, 바로 곁에 앉은 여자는 숨이 막히는 증세가 반복됩니다. 저는 당신에게 낯선 사람입니다. 당신을 모릅니다. 앨러웨이 부인입니다. 저는 평생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믿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분이 대제사장께 손을 댔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저기 앉아 기도하는 자매님, 가정에 문제가 있는 분은 어떻습니까? 밀러 부인, 그 사람이 잘못했습니다. 그 여자와 달아났습니다. 저는 평생 이 부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이분이 무엇을 했습니까? 제게 손을 댄 적은 없습니다. 저와 삼십 피트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께 손을 댔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빛 가운데 걸으십시오. 복음의 빛 가운데 걸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모든 신조와 그 밖의 모든 것을 떠나 메시아,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손을 드십시오. 지금 여기 이것은 무엇입니까? 몇 명이었습니까? 두 명입니까, 세 명입니까? 세 명입니까? 충분합니다. 바로 여기 모퉁이의 한 남자 위에 그것이 머무는 것이 보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분별이라고 불리는 가짜가 너무나 많이 돌아다닙니다. “주님께서 여기 누군가 신장 질환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입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흉내 내는 것들, 지레짐작하는 것들입니다. 성경이 이 마지막 날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십니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받게 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십니까…? 저녁 그림자가 드리우기 직전, 말라기 4장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은 “아, 그것은 요한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이 왔을 때 성취된 것은 말라기 3장이었습니다. 말라기 4장에서 그분은 “주께서 땅을 심판하시고 불로 태우실 날이 이르기 직전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땅을 불로 태우시지 않았다면, 그때가 아닌 것입니다. 요한은 말라기 3장이었습니다. 말라기 4장은 이제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것이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성령, 위대하신… 엘리야의 하나님, 성령, 마지막 날의 증인이 그분의 사역을 바로 교회 안으로 이끌어 오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대제사장께서 보좌에서 교회로 내려오고 계십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자신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오직 말씀에게로만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말씀이 연감에 올 수는 없습니다. 서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말씀에게로 와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그렇다면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사랑스러운 교회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그 심판 날에 제 손에는 피의 책임이 없습니다. 주님, 저는 베고 찢으며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사람 하나를 죽이기에 충분할 만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계속 그대로 간다면, 또 여기 이 녹음들, 전 세계로 나가는 이 모든 녹음을 듣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이것이 자기테이프에 담긴 것임을 알고도 계속 그대로 간다면… …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짐작이거나 무언가 지레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영적으로 계시되고 사실로 입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는 그 사랑스러운 분, 그날 거기 서서 이것을 우리 기억에 되살려 주실 성령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큰 자기테이프가 그날 재생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교회에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여기 모인 회중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가엾은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리저리 이끌리고 있습니다. 속이는 거짓 이적들, 성경에 맞지 않는 것들, 피와 불과 연기, 오 하나님, 성경에 맞지 않게 사람들을 속이는 것들에 이끌립니다. 성경은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그들은 제가 무엇을 억지로 관철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주님,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것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주의 역사임을 알게 해 주십시오. 자신의 말씀이 옳음을 입증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주님, 조금 전에 많은 손이 올라왔습니다. 교인들과 온갖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손이 올라갈 때마다 주께서는 각 손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거기에 그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그들의 상태를 보게 하셨고, 그중에는 고백하지 않은 죄도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손을 든 사람 모두가 저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심판을 피하고, 노아가 심판 위를 떠서 지나갔듯 휴거되어 가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처럼 심판 밖에 있게 해 주십시오.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이 백성에게 복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성령의 달콤함과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님, 저는 주를 사랑합니다. 아, 주를 경배합니다. 샤론의 장미시요 골짜기의 백합이신 주님. 아, 주님, 팔을 뻗어 주를 안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아버지, 주의 발이라도 만지게 해 주십시오. 저는 주께서 바로 여기, 바로 여기 단 곁에 서 계심을 압니다. 못 자국이 있는 그 영광스러운 분이 너무나 가까이,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다른 차원에서 여기 서 계십니다. 주님, 우리 육체 가운데서 움직이시는 주의 영의 힘찬 작용과 권능을 봅니다. 아, 저희가 이토록 간음하는 백성인데도! 그런데도 주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움직이시고, 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주의 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을 알게 하시려고 주의 성령을 우리 안에 밀어 넣어 주고 계십니다.
오 하나님,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주를 사랑하는지요. 얼마나 주를 경배하는지요! 아, 우리가 주께 합당한 이름을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놀라우신 분,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아, 골짜기의 백합, 샤론의 장미,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분, 다윗의 뿌리요 후손, 말씀, 생명, 기쁨, 모든 것이신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얼마나 주를 사랑하는지요. 주를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비길 데 없는 분, 위대하고 영원하신 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이제 여기 불기둥 가운데 계시며 이곳을 돌아다니십니다. 주 예수님이라 불린 몸, 첫 아들, 독생자 안에 계셨을 때와 똑같은 불기둥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이제는 양자로 삼으신 아들들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이 아닙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타락 안에 있지 않고, 교단들 안에 있지 않고, 신조들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구주님의 권능과 부활 안에 있습니다. 주님, 주의 선하심을 얼마나 찬양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