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칼슨 형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좋습니다.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이곳 시카고에 오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친절을 베풀어 주신 칼슨 형제님과 보즈 형제님, 그리고 다른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보즈 형제님이 선교지로 떠나시는 것을 위해 마련한 이 오찬, 아니 만찬에서 말씀을 전하도록 오늘 밤 저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선교사이기에 그곳에서 형제님이 어떤 일을 겪으시는지 압니다. 여기에는 지난번 저희가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 그곳 집회에 참석하셨던 남아프리카 출신 형제님이 저와 함께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한 의사 친구분이 이 앞으로 나오셔서 방금 우리를 위해 기도를 인도하셨을 때, 그것이... 우리 모두 정글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인지 압니다. 저는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모퉁이마다 교회가 있고, 원하는 대로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집에 있으면서 한 번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저쪽 선교지로 돌아가기 전에는 결코 마음이 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앞에 문들이 닫히는 일이라면, 저는 그런 일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계속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도록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형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글쎄요... (이쪽으로 몸을 돌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편이 낫겠군요.) 누군가 그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물론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제 갈 길을 가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앉아서 성경에서 찾아보고, 그것이 성경에 있는 것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진리는 거기서, 성경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저희 집회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해당되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희는 여기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노스캐롤라이나로 갔다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갑니다. 그다음에는 캘리포니아, 캐나다, 알래스카로 갑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와, 그 뒤로는 한동안 해외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여기 몇 가지 준비해 왔습니다만 시간이 늦었습니다. 두 시를 넘겨서까지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농담한 것입니다.) 여기 적어 놓은 메모와 설명, 성경 구절 가운데서 성경을 조금 읽고 몇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이 예배를 다시 형제님들께 맡겨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장 35절에서 41절까지 읽겠습니다. 다시 다음 날 요한이 자기 제자들 중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걸으실 때에 그분을 보고 이르되,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매 그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므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들이 따르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랍비여,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어디에 거하시나이까? 하니라.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와서 보라, 하시므로 그들이 가서 그분께서 거하시는 곳을 보고 그 날 그분과 함께 머물렀으니 이는 때가 열 시쯤이었기 때문이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그분을 따른 두 사람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더라.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서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였는데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니라.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선물에 대해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열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또 지난번 밤에는 칼슨 형제님이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헌금을 거두어 제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그 헌금을 쓸 좋은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손에서 제 손으로 넘어온 이상, 저는 이 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이 재물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가장 좋은 곳,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곳에 그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참으로 훌륭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사람들에게 주실 말씀이 더 있는지, 그들을 격려하거나 믿음을 줄 무언가가 있는지 여쭙습니다. 우리는 선교지의 훌륭한 용사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 남녀분들과 오늘 밤 함께 있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찬송과 이들의 마음, 이 늦은 시간까지 이곳에 참석하여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들은 주리고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용감한 군사가 여기 서서 그것을 통역하는 것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아버지. 이 모든 일로 인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의 말씀을 축복하시고, 이제 아버지의 종을 도와주십시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지금 그것을 사용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 생각에는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부르심은 선교지로 부르시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교사는 누구나 사도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고, ‘선교사’라는 말도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말은 같은 말이거나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왜 굳이 스스로를 선교사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선교사도 좋은 말이고 사도도 그렇습니다.
오늘 밤 저는 ‘확신한 뒤에 마음을 쓰다’를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확신하다’와 ‘마음을 쓰다’, 이 두 표현을 놓고 몇 말씀을 드리고 성경을 몇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먼저 확신하고, 그런 다음 마음을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마이크에 너무 가까이 있습니까? 여러분 귀에 소리가 쿵쿵 울립니까?)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멀어져 가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근본적인 사실들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표류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사역자라면, 우리가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모든 사역자라면... 어떤 이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근거입니다. 마치...
불경스럽게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남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흑인 형제가 팔에 성경을 끼고 다녔는데, 글은 읽을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의 고용주가 물었습니다. “왜 그 책을 들고 다니나?”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전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다 믿습니다. 표지도 믿습니다. 거기에 ‘거룩한 성경’이라고 쓰여 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천국에 서 있는 것보다 이 성경 위에 서 있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나?” 그는 말했습니다. “‘하늘들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들과 땅이 모두 없어질 것이므로, 천국에 서 있다면 그곳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땅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그 위에 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날 밤 이곳 시카고에서 우리의 용감한 형제, 토미 오스본 형제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고는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라면, 제가 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 성경을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서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꽤... 아주 재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고, 관심도 멀어집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우리 사람들 가운데서도, 순복음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먹으면 졸리고 게을러집니다. 저기 계신 의사 친구분이 그것은 분명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과식을 하면... 저는 우리 오순절 사람들이 과식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큰 일들을 많이 보아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영국에서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시인이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갈매기들이 어떠한지, 바다가 하늘의 아름다움을 그 안에 어떻게 비추는지를 시로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려고...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에서 늙은... 우리가 흔히 바닷물에 잔뼈가 굵었다고 하는 늙은 선원을 만났습니다. 그 선원이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어디로 가시오?”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 저는 시인입니다. 바다에 관해 시를 써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책에서 읽은 것만 가지고 써 왔지요. 이제 처음으로 직접 경험하러 갑니다. 짭조름한 바닷물 냄새를 맡고 싶습니다. 하늘을 맴도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난치는 파도를 보고, 푸른 하늘이 물에 비치는 것도 보고 싶습니다.” 그 늙은 선원은 거기 서서 담뱃대를 몇 번 뻐끔거린 다음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난 거기에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모르겠소. 바다에서 산 지 오십 년이오. 바다에서 태어났지. 난 별다른 걸 모르겠소.” 보십시오. 그 사람은 너무나 많이 보아서 그것이 흔한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그것이 이 미국에 있는 우리 교회들과 순복음 진영의 큰 문제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너무나 많이 보아 우리에게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존중해야 할 만큼 그것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존중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들은 것들에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 언제라도 그것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저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여기서 단 한 가지 일을 행하신다면, 여러분은 아마 밖으로 나가면서 “그래, 괜찮았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한 가지 일이 저 멀리 정글에서, 남아프리카나 탕가니카, 어디든 케냐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면, 수천 명이 엎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도 모릅니다. 그 한 가지 일만 일어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말씀이 나타나는 곳으로 가도록 영께서 이끄시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해외 선교지로 선교사들을 보내 왔습니다. 저도 이 형제님과 함께 선교했던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대부분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와 제 아프리카너 형제님들을 크게 존중합니다. 그러나 오른손과 왼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말해 주거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도지를 건네주지 않고는... 그런데 그 사람은 그것을 읽을 줄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는 하나님에 관해 읽고, 또 다른 신에 대해서도 알고, 온갖 신에 관해 압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실제로 행해지는 무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권능이 부여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교도들의 시대, 여러 신을 숭배하던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알리실 수 있는,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께서 저를 저쪽 선교지로 보내시려는 까닭에, 아마 이곳에서 제 사역이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한 번은 강단 앞으로 나오도록 사람들을 초청했을 때, 단 위에 있던 한 소년이 치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사, 의학을 공부한 의사가 단 위로 달려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저 아이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저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심리술이나 텔레파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에게 그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지요.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오 분쯤 전에 저 아이를 저기 무대에 올려 보냈는데, 끔찍할 만큼 심한 사시였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이쪽으로 왔고, 제가 그를 만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사시라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릅니다. 제가 의사이고 수술을 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이 어린아이를 위해 수술을 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이 아이가 믿음을 갖게 되고, 치유받을 만큼 믿음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켜보니 몇 가지 일이 일어난 뒤, 똑같은 종류의 신적 계시, 곧 환상 보는 일이... 누구도 그것을 정죄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사역이 그런 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분은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예리하고 마음의 생각들을 분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육체가 되는 것이고, 그 밖에도 그렇습니다.
이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온 것이 보입니다. 네가 들어가는 집, 네 작은... (그 사람들이 사는 작은 오두막을 무엇이라고 부르지요? 지금 생각이 안 나는군요.) [누군가 ‘방가’라고 말한다.] 방가에...” 그 집 오른쪽 벽에 그리스도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기 서 있던 어린아이는 막 음식을 먹은 뒤라 배가 온통 지저분했습니다. 음식을 작은 배 위에 흘린 자국들이 있었습니다. 눈동자가 안쪽으로 몰린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아기는 줄루족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체구가 작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어섰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사시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기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발견하고 아기를 어머니에게 다시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맞는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그 어린아이가 아주 정상적인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겠군요. 이미 치유받았으니까요. 이제 지나가도 좋습니다.”
뒤쪽에 있던 체구가 작은 영국인 의사가 그 일을 몹시 궁금해했습니다. 그는 재빨리 올라와서 말했습니다... 보스워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기 부족들이 지금 따로 나뉘어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수백, 또 수백, 수천 명이 더반 경마장 둘레에 앉아 있었고, 많은 사람이 기도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이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니, 이봐요. 저는...” 그러고는 “브래넘 선생님, 저 아이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기 서 있을 때는 사시였는데, 여기 서 있는 지금은 사시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 아이에게 최면을 거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최면으로 사시를 고칠 수 있다면, 선생님들도 최면을 좀 써 보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선생님도 아시잖습니까.” 그는 “글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물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백합을 보면...” (여러분은 저 아프리카의 큰 백합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실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만일... 하나님이 그 백합 안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합이 살 수 없겠지요. 하지만 사시인 아이를 고칠 만큼 실제로 계시다는 것은...?” 저는 말했습니다. “제 말을 믿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것뿐입니다. 저기 아이가 서 있고, 저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셨습니다. 완전히 온전해지게 하셨고, 저기 아이가 서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음 분을 부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잠시만요. 브래넘 선생님, 저는 그저 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저 아이의 눈이 단 위에서 똑바르게 되도록 하실 만큼 실제로 계시는 하나님이 있다면, 저는 그분을 저의 구주로 모시고 싶습니다.” 삼 주쯤 뒤 더반을 떠날 때, 수천 명이 나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 의사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려와 제게 팔을 두르고,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주님께서 저를 의료 선교사로 선교지에 부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는 그것을 향해... 그것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져 왔습니다. 이제 교회가 그것에서 떨어져 나가,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와 함께 따라다니는 거짓된 일도 많이 보았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삶을 다룬 책을 읽어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저는 그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교회에 맞서 항거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의 부흥을 뒤따라온 온갖 광신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여전히 깨끗하고 말씀에 비추어 거리낌 없이 서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말씀에 머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이심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쩐지... 사람들을 말씀과 하나님과 성경으로 이끌기보다는, 와서 교회에 가입하라, 어떤 라디오 방송을 후원하라, 또는 큰 건물들을 지으라는 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사정을 아시지요. 제가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아직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런 일을 하며, 교회를 조직하고 큰 교단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더 좋은 건물을 짓는 계획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그분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사명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학교들을 세우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학교를 좋아합니다. 좋은 것입니다. “가서 병원들을 세우라.”라고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 모든 병원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그러나 사역자에게 맡기신 일은 “복음을 선포하라.”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권능과 성령이 나타나심을 통해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선교사에게 주신 사명이며, 선교사는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것들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부 출신이신 저희 어머니께서 늘 제게 하시던 말씀처럼, “네 말보다 네 행동이 더 크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믿는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을 거부하면서 어떻게 복음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양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먹이고 싶지 않습니다. 교단의 잡초를 먹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양은 양의 먹이를 먹습니다. 양을 살찌우는 데 필요한 것은 양의 먹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양의 먹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전하는 복음,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을 모셔 오는 복음입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오늘 밤 여기 계십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요한은 왜 그토록 확신했습니까?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까? 먼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확신하기 전에는 많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확신하고 나서야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확신하기 전에는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 밤 저는 신유를 비난하거나, 기뻐 외치는 것을 비난하거나, 성경에 있는 다른 어떤 것이나 영의 은사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비난하는 이유, 또는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는 이유는 아직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에게 한 번만 그런 일이 일어나 보십시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알게 됩니다. 그것은 언제나... 어떤 사람이 신유를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직 충분히 아파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뿐입니다. 그것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병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의사에게 정말 그런지 물어보십시오. 그렇다면 충수염에 걸렸을 때 왜 가서 그 축복을 잘라 냅니까?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이론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축복을 잘라 낸다고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간직하고 있다가 죽겠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병은 축복이 아닙니다. 병은 마귀의 저주입니다. 예수님도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이 그렇게 마음을 썼던 것은 메시아가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그에게 이 메시아를 소개해야 한다는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옳으며, 때도 정확히 맞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완전히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가 말하는 일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자신이 틀림없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참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안다는 것을 확신하면...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을 쓰게 됩니다.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때가 가까운 것을 알았고, 자기 메시지가 회개를 선포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확신했고, 그 때문에 메시아가 나타나시기 전에 자기 메시지를 전하는 데 마음을 썼습니다. 요한은 큰 건물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들도 좋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과 랍비들, 건축하는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일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메시아가 그때 어딘가에, 바로 이 땅 위에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분이 오실 길을 곧게 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전하는 데 마음을 썼습니다.
그것이 마땅히... 우리가 메시아가 오실 때가 가까웠다고 믿는다면,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능한 한 빨리 저 멀리 여러 나라에 이 메시지를 전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확신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메시아가 오신다고 설교하면서 건물 하나에 일억 달러를 쏟아붓고 싶어 합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보십시오. 바로... 우리의 간증,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말보다 더 크게 말합니다. 제게 일억 달러가 있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저는 온 나라를 신속히 휩쓸며 교회를 준비시킬 선교 계획을 후원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메시아가 곧 오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제가 전할 수 있고 전할 수 있다고 아는 모든 곳에 복음이 전해지는 데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 사업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밤 제가 여기 있는 이유입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으로 조셉 형제님과 이 다른 선교사들에게 힘을 보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퍼져 나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모든 족속과 부족과 민족에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그분의 계획이 건물을 짓거나 교회에서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복음을 그곳에 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이 그것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때가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이 그 일을 할 때라고 믿습니다.
요한은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개하고, 회개를 구하며,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할 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가 회개할 때였다면,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그분이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때 그분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얼마나 가까운지 보십시오... 잠깐 이것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봅시다. 요한은 메시아가 나타나실 때가 너무나 가까웠다는 것, 곧 그분이 오실 때가 너무나 가까웠다는 것을 확신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지금 한 분이 서 계시는데... 지금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계시니, 그분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분이시다.” 요한은 아직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오실 때가 너무나 가까워, 이미 사람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들이여, 제가 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형제 여러분, 왜 저를 정죄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제가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이 말씀드렸습니까?)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약속하셨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무당이라느니 무엇이라느니 부르는 바로 이 일을 그분이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그분이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는 소돔에서 세 천사가 메시지를 전하러 내려갔을 때...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믿는 자, 믿지 않는 자, 믿는 척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 있고 서로 어울립니다. 어쩌다 보니 함께 있게 됩니다. 그때 그 사람들 가운데 둘은 내려가 소돔에서, 롯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명목상 신자인 잠자는 처녀를 나타내는 모형이었습니다. 그들은 회개를 선포했고, 그렇게 큰 기적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면 믿지 않는 자의 눈이 멀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빌리 그레이엄 같은 분이 이 도시에 온다고 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교단 세계에 보내는 사자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는 조금도 봐주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그의 설교를 들어 보면, 그만큼 회개의 말씀을 굳게 붙잡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그의 사역입니다. 그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분명 저 아래로 내려간 그 사람들의 사역이 확증되었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한 분은 뒤에 남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안에 있지 않고 소돔 밖에 있는 교회를 나타냅니다. ‘교회’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삶에서, 그런 것들에서, 그런 조직들에서 불러냄을 받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성공회 신자들, 장로교 신자들, 가톨릭 신자들, 저 같은 침례교 신자(전에는 그랬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불러냄을 받고 택함을 받아, 그것에서 떨어져 따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온 사자가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아브라함아...”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며칠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장막은 그분 뒤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네가 이십오 년 동안 기다려 온 이 아기를 얻게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장막 안에 있던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 같은 늙은 여자가 내 주와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그도 늙었는데?” 사라는 아흔 살이고 아브라함은 백 살이었습니다. 누구에게든 물어보십시오. 어떤 이치로도 설명할 수 있는 때가 훨씬 지난 것입니다. 사라는 폐경이 된 지 이삼십 년이 지났고, 아브라함의 몸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된 그 아들을 통해 왕가의 씨, 곧 그리스도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에게... 그를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이방인 교회,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앞에서 그분의 말씀이 확증되는 것을 보고도 돕기를 거부하고, 후원하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부인한단 말입니까? 그런 짓을 하면서 어떻게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일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웃으며 “나 같은 늙은 여자가 다시 내 주와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라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그 천사가 “사라가 왜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분이 누구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는 그분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아브라함은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용된 말은 ‘엘로힘’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엘로힘’은, 제 생각에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 위대하신 분, 엘로힘, 위대하신 전능자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을 만난 아브라함이 그분을 그렇게 불렀다면, 그것은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저 형식적인 종교 세계가 소돔과 고모라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불이 내리기 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불이 내릴 것이라는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한 사자가 내려가, 소돔에서 여전히 형식적인 상태에 있던 교회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경은 그 도시의 죄들이 날마다 롯의 혼, 그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교회에 오신 분은 그런 종류의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여러분은 교회가 한 위대한 일에서 또 다른 위대한 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때로 작은 울타리를 칩니다. 루터가 울타리를 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오순절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오순절 교회는 앞으로 나아간 루터교회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울타리를 칩니다. 우리 조직을 만들 때... 교리의 끝에 쉼표를 찍고,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믿습니다.”라고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침표로 끝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너희도 이것을 믿든지, 아니면 우리 곁에 오지 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두셨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있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할 때, 저 멀리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교도들이 있습니다. 복음은 이 지식 있는 나라에서 오른손과 왼손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교도들에게로 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복음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메시아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지금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이 나타나신다는 표적과, 예수님이 오시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두 단어가 서로 다릅니다. 뜻하는 바도 다릅니다. 주님의 나타나심과 주님의 오심입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은 지금입니다. 그분이 자기 백성 안에 나타나시고, 그분의 영이 그들 가운데서 일하시며, 그들과 함께 계신 분이 바로 그분임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그들을 휴거에 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신부를 데려가시려고 오시는 그때를 위해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나타나심과 오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믿고 그것에 마음을 쓰려면 먼저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확신한 뒤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은 그분이 어떠하실지를 알았습니다. 그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분을 뒤따르는 표적이 있을 것이다.”라고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표적을 보았을 때, 요한은 메시아가 거기 어딘가에 서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표적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계신다. 광야에서 내게 말씀하신 분이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그 사람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분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마지막 날들에 오늘 여러분이 보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메시아를 보고 있습니다. 만일 배나무의 생명이 플라타너스 나무 안에 있다면, 그 나무는 똑같은... 배를 맺을 것입니다. 그 나무 안에 있는 생명이... 배나무의 생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얼마나 크든 작든,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이 똑같을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이 그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영의 열매는 영을 따릅니다. 곧 영이 복음의 열매와 표적들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온 세상으로, 모든 민족에게.”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안드레, 그리고 주님의 오심에 관해서... 안드레는 그저 평범한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요한이 설교하는 것을 보러... 들으러 갔고, 이 선지자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안드레는 요한이 그분을 알리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바로 저분입니다.” 안드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요한을 비난하거나, 그저 그 말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저분과 함께 가서 알아보겠다.” 시카고의 모든 사람이 그만큼 신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안드레는 밤새 그분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 성경 구절에서 보셨습니까? 그는 밤새 그분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확신할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확신한 뒤에는 다른 사람도 자기가 얻은 것과 같은 것을 얻도록 마음을 썼습니다.
그러나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확신하게 하는 유일한 것은 복음이 여러분 안에서 나타나는 것, 곧 복음의 실체가 여러분 안에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된 것을 볼 때, 그것이 성령을 알아보는 증거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성경을 기록하시고는 돌아서서 자신이 기록하신 것을 부인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러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신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불신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드러내는 증거에 대해 예수님은 “이런 표적들이 나를 믿는 자들을 알아보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임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안드레는 밤새 예수님과 함께 머문 뒤 자기 형제를 위해 마음을 썼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얼른 들어와 목사와 악수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린 다음 집으로 갑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으면서 자신을 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해외에 있는 선교사에게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다른 어디에서 굶주리는 사람이 있든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가 부르고, 좋고 따뜻하고 훌륭한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결코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을 훌륭하고 학식 있는 목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여러분의 죄로 인해 여러분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분이 오실 때가 가까웠고, 지금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 성령이시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며 그들을 안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안드레가 마음을 썼던 것만큼 말입니다.
야곱도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밤 밤새도록 씨름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형에게 어떻게 했는지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종종 말했듯이 그는 약삭빠른 사기꾼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그는 늘 엄마 곁에서 맴돌았고, 에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야곱은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훔치고 달아났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번창하고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놓아드리지 않았습니다. “아, 느껴진다. 아, 여기서 떠나는 게 좋겠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차이는... 성령께서 죄인이나 믿지 않는 자, 비판하는 자에게 내려오셔서 그를 확신시키려 하시면... 히포의 성 어거스틴 같은 경우입니다. 그는 그곳(이레네우스의 교회)에 있을 때 계속 나아가 성령을 받는 대신, 아프리카로, 다시 아프리카의 히포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를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여도 좋다고 선언한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오늘날 순교자 기록에는 교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육천팔백만 명의 사람이 올라 있습니다.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그는 성령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이 성령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어디에 마음을 쏟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유다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분이 옳은지 아닌지 철저히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일에, 그분에게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자,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야곱은 밤새 씨름한 뒤에도 그 사람을 지치게 하려 하지 않고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아, 이 이야기를 삼십 분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씨름하던 그 통치자가 어떻게... 그는 구하던 것을 얻을 때까지 붙들 수 있었습니다. 붙들고 있으니 밤이 다 지나갔지만,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확신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걸음을 바꾸실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을 때, 그는 확신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걸음에도 확신이 드러날 만큼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걷지 않습니다. 그분과 충분히 오래 머문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걸음도, 말도, 삶도, 행동도, 잠자는 모습도 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우리는 붙들고 있지 않습니다. 야곱은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놓아라. 나는 가야 한다.” 야곱은 말했습니다. “제가 철저히 확신하기 전에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분을 놓아드리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나서시는 것을 볼 때까지 그대로 머물면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확신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 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을 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야곱은 형을 맞으러 가축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앞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한 뒤, 자신이 그분과 직접 씨름한 뒤에 형의 안녕을 위해 마음을 썼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합니다.
삼갈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읽어 보지 못한 분도 많을 것입니다. 성경에 단 한 문단쯤 나옵니다. 그에 관해 기록된 것은 짧은 한 문장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스라엘의 열세 번째 사사쯤 되는 것 같습니다. 삼갈입니다.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그 시절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오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작물을 다 길러 곳간에 넣고 모든 것을 잘 마련해 놓을 무렵이면,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와 그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족은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빼앗아 갔습니다. 남자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죽였습니다. 그대로 쳐들어가 여자를 죽이고 처녀들을 욕보이는 등의 짓을 했습니다. 양식을 빼앗아 자기 나라로 돌아가, 남은 겨울 내내 호화롭게 살았습니다(그렇습니다). 이쪽 사람들을 살려 두더라도 사실상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마 해마다 블레셋 사람들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가엾은 삼갈은 어느 날 밖에 서 있었습니다. 밀을 거의 다 거두어들이고 타작도 마쳐, 곳간에 쌓아 둔 참이었습니다. 그때 길을 따라 무언가 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그는 조금 전까지 소매가 해진 아내와, 굶주림 때문에 얼굴이 야위고 창백해진 어린 딸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위해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길을 따라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무장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여름 내내 모아 둔 것을 모조리 빼앗고, 겨울 양식을 빼앗으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겨울 내내 아내가 굶주리게 되고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양실조로 죽을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가족을 위해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대처하려면 무언가 해야 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잠깐만. 나는 군인이 아니다. 칼 쓰는 법이나 그런 것은 전혀 모른다. 나 혼자 상대해야 할 사람은 육백 명이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기 농사꾼 옷을 입고 서 있다(멜빵바지 같은 것). 그런데 저들은 모두 잘 훈련된 전사들이다. 아주 큰 투구를 쓰고 흉갑 같은 것을 두르고, 하나의 큰 군대처럼 훈련되어 있다.” 그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아멘!).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들에게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영께서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는 소를 모는 가시채를 집어 들었습니다. 소를 찔러 앞으로 몰 때 쓰는 조그만 도구입니다. 그는 그 가시채를 들고 문밖으로 뛰어나가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확신했던 것입니다. 아멘!
오늘 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그만큼 확신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한 여자가 방언을 하게 하시고, 한 남자가 앞일을 예고하듯 말하거나 말씀을 전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권능이 휩쓸고 들어와 죄인을 붙잡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병이. 시카고에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만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복음과 부활의 권능에 대한 간증으로 이곳을 불타오르게 하여 날이 밝기 전에 그들이 우리 모두를 감옥에 넣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마음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것에 관해 어떤 조직이 한 말을 받아들이지 말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들은 틀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것과 어긋난다면 그것이 틀리고 이것이 옳습니다. 제가 가리키고 있는 이 성경, 이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그 약속을 주실 때, 그가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갈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불리한 처지였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분이 한 사람만 손에 붙잡으시게 해 드리십시오. 세상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확실히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철저히 확신시킬 것입니다.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그는 진실하게 서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철저히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한 번이라도 하나님이셨다면,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전과 같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한 번도 하나님이셨던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무한하신 하나님, 모든 권능을 지니시고 전능하시며, 어디에나 계시고 전지하시며 무한하신 분입니다. 아, 참으로!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홍해를 여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이끌어 내신 바로 그 하나님, 히브리 청년들을 불타는 용광로에서 이끌어 내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절 아침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오순절 날 내려오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성령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올 때까지 저는 이것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부활의 권능과 그 증거이며, 이 마지막 날들에 주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교회가 신부로서 들려 올라갈 준비를 갖추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 참으로!
만일 삼갈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잠깐만. 나는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저들이 오는 것이 보이지만, 잠시 학교에 가서 교단의 신조로 결투하는 법을, 저들과 결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면 그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결투로는 결코 그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원수의 문을 소유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손에 있던 것, 그 소 모는 가시채를 들고 서서 적들을 헤치며 승리에 이르렀습니다(아멘!). 하나님께서 한 번이라도 하나님이셨다면 지금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이며, 오늘날에도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좌를 버리고 가난하고 무지하며 글도 모르는 노예들과 함께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때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풍성함, 곧 영생을 더 큰 보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영광을 다 누리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거창한 사치품이나 이런저런 것, 어떤 조직을 위해 백만 달러를 더 들여 건물을 짓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남녀입니다. 오직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온 힘을 다해 전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 그분이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이셨음을 보여 주시도록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아멘! 삼갈이 모든 신조와 그런 것들을 배울 때까지 기다렸다면,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맞설 때 쓸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 오늘날 우리는 선교사들을 보냅니다. 우리 오순절 진영에서조차 선교사들을 보내려 할 때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십시오. 우리 오순절 교회들 가운데 어떤 곳, 어떤 오순절 교단들은... 우리 선교사들은 해외로 떠나기 전에 정신과 의사 앞에 서서 정신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 저는 바로 그 학교에 있었습니다. 정신 검사를 받아야 하고, 의사가 판정을 내려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의사는 믿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사, 정신과 의사 앞에 서서 정신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 검사가 아닙니다. 정신을 검사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온갖 학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PhD, DDD, LLD, 어떤 학위가 있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선교사가 되는 법을 배우려고 학교에서 십 년이라니요. 선교사가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십 년 동안 학교에 다녀야 한다니요. 아, 참으로! 끔찍합니다. ...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데 십 년이라니요. 언어를 배웁니다. 그 언어로 말하려 할 때 어떻게 됩니까? 이곳에 온 지 육 주 된 독일 사람이 영어를 하려는 것처럼 말을 엉망으로 해 버립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언어는 배울 자료조차 없습니다. 어떻게 그 언어를 알겠습니까? 그곳에 간 뒤 그들에게 입증해 보일 무언가가 없다면, 언어를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언어, 복음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습은 오순절 날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때 그들은 심리 검사를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런 곳에 간 흔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십 년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열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것이 약속된 것임을 확신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이레 동안 있었다고 해 봅시다. 안드레가 빌립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봐, 자네 아나? 그분은 우리에게 여기 올라와 기다리라고 하셨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이미 받은 것 같아. 믿음으로 받아들이세.” 베드로가 요한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자네 아나? 그분은 우리에게 여기 올라오라고 하셨네. 우리가 벌써 여기 있은 지 아흐레야. 이제 그냥 받아들이고 우리의 사역을 하러 가야 할 것 같네.” 그렇게 했다면 그들에게는 아무 사역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약속한 것을 보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다시 돌아가... 이사야서 28장 19절을 찾아 이렇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되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하느니라.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내가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들을 수 있으리라고 말한 안식일이니라.” 그렇습니다. 요엘은 2장 28절에서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이 예언하리라. 내가 내 영을 내 시녀들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라.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불기둥들과 연기와 수증기가 어떻게 있게 될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그리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이 거기 계시다는 증거로 확신을 주는 권능을 내려 보내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불이 그들 각 사람 위에 앉아, 불길이 그들 위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거리로 나왔을 때 그들은 자기네 말조차 할 수 없었고, 밖에 서서 듣고 있던 사람들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아멘.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온 땅을 불타오르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들이 온전히 확신했기 때문에 복음이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그들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나타났으므로 확신했습니다. 오늘날 오순절 사람들의 모습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얼마나 다릅니까? 그들이 정신 검사를 정말 통과할 수 있는지 보려고 정신과 의사나 그런 사람에게 데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검사하는 기준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이 이것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자기 이름을 쓸 만큼의 교육조차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신했고, 마음을 썼습니다.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셨다는 것을 확신했다면,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들에 그토록 마음을 쓰셔서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이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여러분도 마음을 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러 가는 데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사역자가 있다고 합시다. 주님께서 그를 설교하거나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곳으로 부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보수를 넉넉히 주지 않고 누군가 저쪽에 더 좋은 목회 자리가 있다고 제안하면, 그는 돈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곳을 떠나 더 많은 돈이 있는 저곳으로 갑니다. 자기를 그곳에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직 확신하지 못한 것입니다. 철저히 확신한다면, 옥수수빵을 먹고 시냇물을 마셔야 한다 해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다른 설교자들이 하루 세 끼 닭고기를 먹고 냉방 장치가 있는 캐딜락을 타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그 영께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본다면, 여러분은 형제의 구원에 마음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악수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삶 속에 그리스도의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 권능이 그를 죽은 사람에서 살아 있는 창조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돌, 일으킴을 받아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하늘의 처소들에 앉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집회에 오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이 내리시는 집회를 조롱할 것입니다. 확신하기 전에는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하면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확신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마음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육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학교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증서를 주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분이 계셨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찾아갈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라는 것을 철저히 확신했습니다. 저도 여전히 같은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라고 불리는 이런 온갖 것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걸으며 세계교회협의회처럼 하나로 연합하려고 애쓰는 것들 말입니다. 세상이... 불신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온갖 것이 뒤섞여 있는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식의, 시골다운, 하늘빛의, 죄를 죽이는 신앙입니다. [녹음 공백] 복음의 권능, 부활의 권능으로 선포되는 성령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성령 안에서 바울의 부흥을 한 차례 받아,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행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하신 그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아까 “내가 땅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인용하신, 저 뒤에 계신 의사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저는 주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여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머지도 사실이 아닙니다. 모두 옳든지, 아니면 모두 틀렸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저는 모든 말씀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분이 지금 여기 계신다고 믿습니다. 오순절 날 내려오신 바로 그 성령이 오늘 밤 시카고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제 마음속에도 그 영의 일부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동일한 성령, 동일한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딘가에 있는 형제나 자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는 데 마음을 쓰게 됩니다. 저의 침례교 형제, 감리교 형제, 가톨릭 형제,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그분의 첫 나타나심임을 확신합니다. 선지자가 “저녁때에 빛이 있으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확신합니다. 확신합니다. 세상이, 이 세상 질서 곧 코스모스가 파멸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는 참으로...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성령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시카고가 뒤흔들렸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여기 바깥의 포탄밥이 아니라, 이 건물들과, 거리에 늘어선 부도덕한 옷차림의 여자들과, 방탕하게 행동하는 이 남자들과, 술 취한 사람들, 그리고... 저는... 교회에 다니면서, 보통의 흰빵, 덩어리 빵을 가져다가 코셔로 만드는 것,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숨결에서 위스키 냄새 따위를 풍기며 트림하고, 나가서 성만찬을 받으며, 어떤 교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되어 섬기는 일을 위해 따로 구별된, 불러냄을 받은 무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일어나는 것을 보는 이 일이,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는 주 예수님의 나타나심이라고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소돔의 날들에 거기 서 계셨던 분은 먹고 마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들에 자신의 교회, 곧 자신의 신부 안에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나타나시리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분이 하셨던 것과 같은 일들을 하리라는 것입니다. 아멘. 저는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설교자 양반, 당신은 미쳤소.” 저는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무엇을 합니까? 여기 아프리카너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가르칩니다. 무엇을 합니까? 그들을 그쪽으로 보내면 어떤 사람이 됩니까? 두 배나 더한 자식... 처음보다 더욱 지옥의 자식이 됩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부족의 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오면 백인의 죄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부족 거주지 같은 곳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악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살인자가 되고, 강간범이 되고, 그 밖의 온갖 것이 됩니다. 백인의 위스키를 마시고, 자기 죄들도 짊어집니다. 부족 안에 있을 때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일 때문에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구원입니다. 그 마음을 바꿀 부활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그는 그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전부이며, 그들에게는 그분만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자기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분증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뒤에서 받쳐 주는 조직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셨고, 그분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부흥 집회가 열리러 올 때면 교회가 이런 많은 것들을 잊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격증은 무엇인가? 누가 당신을 뒷받침해 주는가? 우리를 뒷받침해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증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증인입니다. 시카고에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무언가와 크게 협력하는 체계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권능,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시는 성령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확신하면 마음을 쓰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뿐이었습니다. 오늘날 필요한 것도 그것뿐입니다. 기다리다가 학교에 가서 삼십오 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고 나면 여러분이... 그때는 너무 늙어서 다니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이 아닙니다. 나가서 그들을 교육하지 마십시오. 나가서 그들을 구원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아시는, 중국에 갔던 위대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같은 경우입니다. 어느 날 한 인도인 소년이... 아니... 중국인 소년이 일어나 구원을 받았고,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그가 테일러 선생님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테일러 선생님,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느 학교에 들어가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고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이런 여러 해의 학교 교육 등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테일러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네 촛불이 타고 있는지 알아보기도 전에, 촛불을 꺼내 반이나 타 버리게 하지 마라. 처음 불이 붙었을 때 가거라.” 아, 저도 같은 말을 하겠습니다. 시험하고 또 시험하고 또 시험해 볼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시험과 환난, 이런 온갖 학교 교육을 거치고, 문학사 학위와 Ph., DD, 그 밖의 온갖 학위를 딸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이 다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것이 없더라도, 불이 붙었을 때 가십시오. 불이 붙었다고 말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어도, 어떻게 불이 붙었는지 이야기하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작은 촛불에 불을 붙이셨으니, 가서 어떻게 불이 붙었는지 이야기하십시오. 아멘! 그들을 내버려 두십시오. 그저 어떻게 촛불에 불이 붙었는지 이야기하십시오. 그들을...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맡아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촛불에... [불명확한 말]의 불로, 성령의 권능과 그리스도의 부활로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십시오. 교육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런 온갖 것을 억지로 가르쳐 넣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십시오. 설익은 불신자 무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갖추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차라리 아예 듣지 못한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붙은 촛불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붙은 삶,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타올라 그분이 비추셨던 것과 같은 빛을 비추는 삶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무슨 언어를 배우거나 어떤 조직의 환심을 사려고 하다가 반쯤 타 버릴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불이 붙으면 나아가십시오. 아멘. 불이 붙었을 때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불이 붙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불빛에서 불을 얻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멀었던 그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그를...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온갖 철학박사들과 모든 박사들, 성전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그와 신학 논쟁을 하려 했습니다. 그는 신학 논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신학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그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경험이 있었습니다. 말로 그 경험을 빼앗아 보십시오. 그에게 앞을 볼 수 없다고 말해 보십시오. 그는 즉시 자기가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늘어놓는 모든 논변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했습니다. “이분이 눈먼 사람의 눈을 열어 주실 수 있는데도, 당신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비록 신학 같은 것을 잔뜩 주입받지는 못했어도, 그에게는 건전한 상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죄인이오.” 그는 말했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이것입니다. 전에는 눈멀었으나 지금은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저를 미쳤다고 해도 좋습니다. 원한다면 제가 주님의 뜻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한때 죄인이었던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때 우울하고 침울했던 제가 주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제게 무언가 일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어느 집회에서 한 흑인 자매가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 자매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한 가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며,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전의 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을 때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아 삶이 바뀔 때까지 흔드시고,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붙잡으셔서 여러분을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십니다. 아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불붙은 촛불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말로 그 사실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저것 말해 주었을 수는 있습니다. 그는 성전의 모든 교리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훌륭한 간증, 훌륭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신학을 가지고도,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앞을 보게 된 단 한 사례도 어느 때에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말로 그 사실을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대로 나아가도록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를 들어 건물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당시 그들의 태도가 그랬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말은 남습니다. “전에는 눈멀었으나 지금은 봅니다.” 아멘.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달콤한가, 나 같은 비참한 자를 구원하셨네! 한때 잃어버린 자였으나 이제는 찾으셨고, 눈멀었으나 이제는 보네. 내 마음에 두려움을 가르친 것도 은혜요, 그 두려움을 덜어 준 것도 은혜였네. 그 은혜 얼마나 기쁘게 나타났던가, 내가 처음 믿었던 그 시간에! 아, 참으로! 그것이 제 이야기가 되게 해 주십시오.
바로 이곳 시카고에는 드와이트 무디가 있었습니다. 한때 이곳 시카고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던 위대한 복음 전도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그 역시 미워했습니다. 물론 그랬습니다. 그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코크니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 참으로! 모든 것이 꼭 이래야 하고 저래야 했습니다. 어느 날 밤 무디 선생님이 수천 명의 그들 앞에 서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단어를 바르게 발음하려고 연습했지만 잘못 발음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머리를 문지르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해 보았으나 또 잘못 발음했습니다. 그쪽을 보니, 아시겠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막 큰 웃음을 터뜨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해 보았지만 또 틀렸습니다. 그러자 성경을 덮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제게 계시해 주십시오.” 형제여, 그는 무언가를 받았고, 온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단어를 발음하지 못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단어가 뜻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저는 어쨌든 그것을 갖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을 뒤흔든 무언가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는 그때 그가 가졌던 그것이 조금이라도 필요합니다. 단어들을 바르게 발음하지는 못했으나, 그에게는 분명히...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 그 말씀을 기록하신 하나님께서 나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버디 로빈슨 어르신도 그렇습니다. 그분을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사람들을 위해 그토록 마음을 썼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버디 아저씨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우리는 그분을 버디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교회의 오랜 기둥 같은 분이셨습니다. 얼마 전에 그분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엘리라고 부르는 늙은 노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는 실천하려고... 성화를 실천하고 싶어 했습니다. 죄를 멀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옥수수밭을 갈고 있는데 엘리를 똑바로 걷게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엘리가 똑바로 걷지 않아서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가 버디 자신도 똑바로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새가 옥수수를 짓밟아 놓았습니다. 그는 늙은 노새에게 너무나 화가 나서 몇 차례 이리저리 거칠게 잡아당겼습니다. 성질이 치밀어 올라 달려가서는 있는 힘껏 노새의 귀를 물었습니다. 노새는 조금 떨어진 곳까지 달아나 멈췄습니다. 그는 옆으로 가서 작은 돌무더기 위에 앉았습니다.
그는 거기 앉아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내 꼴 좀 보게! 여기서 성화를 설교한다는 사람이, 노새 귀를 물어뜯어서 이 사이에 노새 털이 끼어 있다니!” 아시다시피 버디 아저씨는 유머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 하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노새가 크고 갈색인 눈을 굴려 그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런 짓을 해서 미안하다. 용서해 다오.” “그러자 늙은 엘리가 나를 바라보는데, 마치 ‘아니요,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보다 신앙이 더 깊어지지 않으면 나한테 또 그렇게 할 테니까요.’라고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와 어울려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을 그리 잘하지 못했습니다. 말솜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셨음을 확신했습니다. 확신했기 때문에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쓰려면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믿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한번은 우리가 시골에서 부흥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멜빵바지를 입은 시골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밤 강단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자, 그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이 성령이 저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습니까?” 저는 “성경에서 받으라고 한 바로 그 방법으로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좋습니다. 제가 나아갑니다. 저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아무 진전도 없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은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새벽 두 시쯤, 그가 왔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달라졌습니다.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낡은 포드 트럭과 하나의 경험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을에 마음을 썼습니다. 그 사람이 그 경험과 포드 트럭을 가지고, 부흥 집회 동안 다른 스무 사람이 구원받도록 했습니다. 가진 것은 경험과 포드 트럭뿐이었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도 그 농부처럼 그 일에 마음을 쓸 수 있을까요? 확신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삼손이요? 아, 물론입니다. 어느 날 삼손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뒤로 늘어진 일곱 가닥의 머리털을 손에 잡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약속을 알았기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 마음을 썼습니다. 싸울 무기라고는 노새의 턱뼈밖에 없었지만,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확신했고, 그런 다음 마음을 썼기 때문입니다. 물매를 가진 다윗은요... 무엇이 달랐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아버지의 양들을 위해 마음을 썼습니다. 싸울 만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확신했고 마음을 썼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양을 찾아 나섰고, 다시 데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한 시간 이상 더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보즈 형제님은 어떻습니까? 그분에게는 재정을 보증해 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재정을 보증해 주는 곳이 없습니다. 누구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 일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분이 마음을 쓴다면 우리도 마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우리 모두가 확신하며, 여기 앞으로 나오셨던 의사 형제님이 확신하고, 이 다른 선교사들도 확신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확신한다면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을 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작은 만화가 생각납니다. (마치면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만화는 신문 안에 있었는데(저희 집은 강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쿠리어 저널’이었습니다. 밤새 밖에서 술을 마시다 온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아홉 시쯤, 그가 일어나 있었습니다. 집 안 곳곳에는 그리스도의 그림이 있었고, 서랍에는 성경책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밤새 누워 자던 자리 주변에는 담배꽁초와 온갖 것이 바닥에 널려 있었고, 술병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친 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저를 일요학교에 데려다줄 거예요?” 그렇습니다. 아무도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마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모든 것을 다해 보즈 형제님과 다른 모든 선교사를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계획입니다. 우리 형제가 흑인이든 황인이든 갈색 피부이든 백인이든, 그를 위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저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갈 수 없다면, 주머니를 깊이 털어서라도 하나님께서 가도록 부르신 사람들을 후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불붙은 숯이 선지자에게 닿아, 그를 더없이 정결하게 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누가 우리를 위해 가겠느냐?” 하시자, 그가 대답했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속히 응답하겠습니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답하겠습니다. “주님, 저를 보내소서.” 도시를 내다보십시오. 여러 나라를 내다보십시오. 수백만 명이 지금 죄와 수치 가운데 죽어 가네. 그들의 슬프고 쓰라린 외침에 귀 기울이세. 서두르세, 형제여, 그들을 구하러 서둘러 가세. 속히 응답하세.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갈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속히 응답하겠습니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답하겠습니다. “주님, 저를 보내소서.”
[브래넘 형제님이 곡조를 흥얼거린다.] “오늘 누가 가서 나를 위해 일하겠느냐?” 음악이 흐르고 여러분이 곡조를 흥얼거리는 동안,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확신합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계심을 확신합니까? 여러분은... 이것이 성령이심을 확신합니까? 마음을 쓰고 있습니까? 죄와 수치 가운데 죽어 가는 수백만 명을 보십시오. 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속히 응답하겠습니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답하겠습니다. “주님, 저를 보내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는 이사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그를 두고 이 아름다운 노래를 썼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선한 왕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받쳐 주던 버팀목을 치우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제단으로 갔습니다. 하나님, 때로는 우리 아래에 있는 버팀목을 치우셔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거절하도록, 때로는 친구들도 우리를 거절하도록 내버려 두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엎드립니다. 그때 그는 건물 안을 날아다니는 그룹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정한 입술을 지닌 채 부정한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 하나님,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소서, 나의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답하겠습니다. “주님, 저를 보내소서.”
아버지, 오늘 밤 이 예배에서 우리 자신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구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를 시험해 주십시오. 정결하게 해 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연옥을 통과하게 해 주십시오. 그곳에서 우리의 혼을 불신에서 깨끗하게 하고, 신조들과 이 세상의 풍조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바로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한 나라가 된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날들에 있었던 일이 이 나라와 아주 비슷한 것을 봅니다. 그들이 들어와 다른 민족에게서 땅을 빼앗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몰아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그들에게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던 것을 봅니다. 여호수아가 있었고 다윗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솔로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아합이 생겼고, 그를 지배하는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는 워싱턴과 링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날 우리에게는 엘리야가 필요합니다. 아버지, 속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함께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풀어 알려 주십시오.
주님, 이곳의 사역자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삶의 자리, 서로 다른 조직과 교단에서 왔습니다. 하나님, 그들이 그곳으로 돌아갈 때 꺼뜨릴 수 없는 빛이 되게 해 주십시오. 어떤 신조 아래에도 숨겨질 수 없는 빛이 되게 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켜 주신 하나님의 빛을 비추게 해 주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귀하고 사랑스러운 이 작은 형제를 축복해 주십시오. 삼 년쯤 전에 이곳 반도에 앉아, 그가 작은 두 팔로 저를 안고 울던 일이 떠오릅니다. 주님, 그곳에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 그와 함께해 주십시오. 조셉 형제님과 함께해 주십시오. 그를 보호하시고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그에게 혼들을 주십시오. 하나님, 저 젊은이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 가운데는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그곳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희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자기 사람들을 향해 불타고 있습니다. 확신했고, 마음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왕국이 오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마음을 쓰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우리가 모두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계속 믿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애쓰는 우리의 노력을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을 이렇게 오래 붙들어 두어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보즈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