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루이빌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어디 보자, 도그패치 식당입니다. 오늘 이것을 하나 받았습니다. 누구든 거기서 식사하면, 손님에게 받은 돈에서 십일조를 떼어 교회로 보낸답니다. 주소는 웨스트 제퍼슨가 319번지 어디쯤입니다. 빌리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고 이것을 여기 놓아두었나 봅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남자 모임이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무엇을 하시고 어떻게 모임을 이끄시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여기서 정해진 순서를 벗어나거나 평소 진행 방식에서 벗어나면 알려 주십시오.
오늘 저녁 모임은 이런 생각에서 마련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참으로 사랑하는 목사님, 네빌 형제님과 식사를 하면서 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 여기 있는 사역자들이나 복음의 동역자들과 남자들이 함께 모이면, 일반 회중 앞에서는 하지 않을 이야기도 서로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남자이니까 남자끼리 이해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면... 보통 회중이나 어떤 무리 앞에서 말을 하면, 한 사람은 이쪽으로 조금 기울여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은 저쪽으로 받아들여서, 결국 이야기가 전혀 엉뚱하게 퍼져 나갑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교회와 그 자리, 그 위치에 관해 제 마음에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모였습니다. 그리고 제때 끝난다면, 괜찮으시다면 말씀에 관해서도 조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정하고, 먼저 우리가 처리할 일, 곧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부터 다루겠습니다. 아마 매번 저녁 모임처럼 평소 시간인 아홉 시 반쯤에 마치시는 것 같군요. 오래 붙잡아 두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장사를 많이 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우리도 식료품 같은 것을 사야 합니다.
네빌 형제님께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마치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하나님께서 남자들을 그분의 교회, 그분의 백성을 이끄는 자들로 세우셨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믿으며 가르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어젯밤 주니 잭슨 형제님 교회에서 설교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굳게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어선을 뚫고 인간의 이성이 들어올 틈을 내준 것은 여자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남자들이 말씀으로 그분의 교회를 굳게 지키도록 정하셨습니다. 이제 네빌 형제님께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듯 조금 격려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젯밤 강단에 있을 때 분별의 역사가 두세 번 제게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몸을 돌렸습니다. 얼마 전, 몇 주 전에 꾸었던 꿈이 제게 무슨 뜻인지 알기 전까지는 그것을 되도록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여기 교회에서도 말씀드렸지요. 메시지와 분별 등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시기가 지나갔습니다.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네빌 형제님이 좀 지치고 마음이 불안하신 것 같았습니다.
네빌 형제님, 이 점에서는 형제님도 이 교제 안에서 다른 형제들과 같은 일을 겪고 계실 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최근 며칠 동안 사탄이 이 교제에 함께하는 사역자들에게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보셨습니까? 잠깐 멈춰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저녁 여기 앉아 계신 크레이스 형제님은 저쪽 도로에서 거의 죽을 뻔하셨습니다. 저는 산탄총에... 아니, 소총에 머리가 날아갈 뻔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없애려는 것입니다. 형제님도 충돌 사고가 나서 형제님 자신과 어떤 여자분까지 죽을 뻔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사역자들입니다. 이 사역자들만 보십시오. 사탄이 우리를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사업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관해, 어디를 붙잡아야 하고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하려고 모였습니다. 네빌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어떤 일이 닥치고, 무엇이 지나가고,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것에도 짓눌리지 마십시오. 영원한 반석처럼 굳게 서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잘 풀어 주실 것입니다. 형제님께 그것을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그 사고로 마음이 흔들릴 수 있었지요. 그 여자분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남은 평생 마음에 걸렸을 것이고, 여러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보좌에 계십니다. 그분은 그런 일들이 잘 풀리게 하십니다. 우리도 데려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날 아침 저기 모퉁잇돌을 놓았을 때, 목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은 제 부르심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 최초의 부르심은 복음 전도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바로 길 건너편 천막에서 시작했지요. 저쪽에 있던 로이 데이비스 형제님의 교회가 불타 버렸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 사람들은 목자 없이 흩어진 양들과 같았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 경찰서장이던 힙스텐버그 씨가 저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 자신은 가톨릭 신자지만, 그 사람들은 아마 변변한 옷도 없을 겁니다.” 대공황 때였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면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좋은 사람들입니다. 나도 그중 많은 사람을 압니다. 빌리, 교회를 시작하고 싶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도와드릴 생각이라는 걸 알아주십시오.” 저는 고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표를 달아 주며 모금하는 날을 가졌습니다. 먼저 기도하며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기들도 갈 곳이 있도록 교회를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맘때 어느 날 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간 쪽에 망초가 무성하고 도랑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거의 쓰레기장 같던 이곳에서, 주님께서 분명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지어라.”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을 모아 봐야 80센트나 1달러쯤이었습니다. 그것이... 물론 지금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형제님, 그때는 그것도 큰돈이었습니다! 이웃 한 집에서 콩을 한 냄비 끓이면, 이삼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이웃을 불러 조금이라도 먹게 하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젊은 분들은 많이들 겪어 보지 못했지만, 참 살기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가득 찬 이 교회에서 헌금 그릇을 두세 번 돌리고, 헌금해 달라고 간청해도 30센트밖에 걷히지 않던 때를 저는 보았습니다. 30센트쯤 걷혔다면 헌금이 잘 나온 편이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지을 돈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갈 곳이 있도록 교회를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메시지가... 지금도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여기시겠지만, 아무도 없던 그때가 어땠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이 물침례와 우리가 믿고 지키는 복과 이런 것들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남아 태버내클을 짓겠다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모퉁잇돌을 놓던 날 아침, 여덟 시쯤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바로 이맘때였는데, 저는 저기 앉아 저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저 강가에서 저를 만나신 뒤에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그 빛 가운데 나타났을 때, 멀리서 보니 별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있는 곳 바로 위로 내려왔고, 그 유명한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경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든 나의 일부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를 위한 것이다.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그것이 내 임무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유산이 어디 있든 그것을 돌보는 것은 내 임무다.” 아시겠죠? 마치 여러분이 “글쎄, 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남자아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 봅시다. “내 일은 장작을 패는 것뿐이지, 안으로 들여놓는 게 아니에요. 존더러 들여놓으라고 해요. 눈이나 비를 맞아도 나는 상관없어요. 걔가 나가서 가져오면 되잖아요.” 아닙니다. 그 집의 자녀라면 어머니가 쓰실 장작이 젖지 않도록 챙기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입니다. 안으로 가져다 놓으십시오.
“프랭크가 물을 길어 왔어야지, 내 일이 아니야”라고 하더라도, 프랭크가 물을 길어 오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물을 챙기는 것이 여러분의 일입니다. 그뿐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이... 얼마 전에 어떤 이들이 말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설교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친구도 다 잃고 모든 것을 망치겠습니다. 그 일은 그냥 놔두십시오. 잘못됐다는 건 저도 알지만, 세상에, 우리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누구의 일입니까? 잘못됐다면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합시다. 저는 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건축 계획 같은 것이 나왔다가 들어가고,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거듭했습니다. 건축 등에 관해 찬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원하고 다른 사람은 원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개 그렇습니다. 사역자들이나 사업가들, 친목 단체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디서나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모인 곳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뽑고, 모두 그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군대와 같습니다. 군대에는... 한 사람이 장군입니다. 그가 지휘부입니다. 대위가 어떤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그 부대를 맡은 대위입니다. 그러나 장군은 그의 명령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최고사령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의 사역자들은 이 땅에서 그분을 대표하는 부대의 지휘관들입니다.
여기 작은 태버내클에서도 여러 가지를 시도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이 건물을 지은 뒤,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려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 약 15, 16년 전에 주님께서 저를 전도 현장으로 부르셔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늘 이 교회에 제 이름을 남겨 두었습니다. 이 안에서 잘못된 일이 시작될 경우 제가 한 표를 행사하고, 와서 그것을 중단시킬 권리를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이 강단 뒤에서 땀 흘려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17년 동안 바른 길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온갖 주의 주장과 이런저런 일들, 온갖 이단이 들어왔습니다. 이 교회는 초교파라서 날아다니는 것은 무엇이든 이쪽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순수한 복음을 지키며 여기 서 있었고, 오늘 저녁에도 교회는 그대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지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 교회를 팔아 버리려 한 적도 있고, 그 밖의 여러 일도 있었습니다. 저 아래 서류에 제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 이 교회는 정말 끔찍한 처지에 빠졌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지금 교회가 이런 위치에 이르렀고 우리가 위대한 때를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저는 여전히 이 교회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제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있든 없든 여전히 제 일부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깨끗하고 분명하게 운영되도록 돌보는 것은 제 의무입니다. 그리고 요즘 저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교회 주위에 작은 위성들 같은 교회들이 생긴 것을 보며 감사합니다. 여기 크레이스 형제님과 셀러스버그의 성도들, 유티카에서 스넬링 형제님을 이어 맡으신 저 뒤의 형제님, 저 위의 러들 형제님, 주니어 잭슨 형제님, 그리고 이 귀한 분들 말입니다. 좋은 분들이며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어떤 문제에서는 서로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 사이에서도 그것은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역자들 사이에 약간 차이가 있다 해도... 조금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가령 한 사람은 “천년왕국이 올 때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분께서 오실 때 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오신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어떻게 오시든... 그분께서 오신다는 것을 믿고 그 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저는 지금 그것을 알아보려고 연구해 왔습니다. 회중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초대교회를 연구하면서 기름부음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의 집을 준비하고, 그 집에서 주님을 경배하는 질서를 세웠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요엘서 2장을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털벌레와 쐐기벌레와 자벌레 등이 먹어 치운 모든 햇수를 내가 돌려주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엇을 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감독하도록 맡기신 교회를 어떻게 돌보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초대교회에서 시작해서, 한 5분 동안 그들이 한 일을 따라 내려와 보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제가 바라보는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 교회는 오순절에 출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람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갔고, 그들은 그 자리를 대신할 맛디아를 뽑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모든 것이 질서 있게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임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범죄함으로 떨어져 나간 유다의 감독 직분을 대신할 사람을 뽑아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모든 일에는 지체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바로 되고 질서 있게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는 흔히 조급해집니다. 아이처럼 큰 기대에 부풀어 너무 앞서 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일이 따라잡을 때까지 오히려 그 일을 방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경건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에 뜻을 두되, 그분께서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날 밤 싸우러 가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그 전투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뽕나무들 아래 누워, 주님께서 자신보다 앞서 가시는 나뭇잎들의 웅성거림을 들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용기를 내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싸움이 닥친다는 것은 알지만, 하나님의 손이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여시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저는 교회들이, 복음 전도가 어떻게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지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위대한 선교사가 된 바울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곳마다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신앙이었습니다. 소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있던 당시의 교회들은 그 메시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메시지를 전하여 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나면, 아무도... 사람들을 그 상태로 두고 떠나면 그들은 다시 이교도의 신들이나 유대교, 그 밖에 이전에 따르던 것들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곧 회심한 이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갈 곳이 없었으므로 바울은 각 지방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교회마다 질서 있게 행하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 목사나 목자로 알려진 사람, 또는... 그런 사람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 교회가 그렇게 되고 나면... 거기서 다른 작은 교회들이 나왔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이 일어나 거기서 나와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최초의 교회를 맡은 사람을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간 사람들, 그의 자녀들은 목자 혹은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 작은 교회들은 모두 그 감독에게 돌아와 함께 모였습니다.
이레네우스 시대에도 그가 같은 일을 이어 갔습니다. 마르틴도 같은 일을 이어 갔습니다. 폴리캅도 같은 일을 이어 갔습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며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도, 그 사도는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떠난 뒤에는 요한이 교회를 맡았습니다. 요한이 떠난 뒤에는 폴리캅이 맡았습니다. 폴리캅이 떠난 뒤에는 이레네우스가 맡았고, 이어서 마르틴 등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수고 그들을 불태우고 흩어 버렸습니다. 털벌레가 이것을 먹고 자벌레가 저것을 먹고, 다른 것들이 이것저것 먹어 치워 마침내 줄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음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막을 만한 것이 별로... 무엇이든... 물론 제 성경 해석이 틀릴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오늘 밤 오시지 못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 믿습니다. 이루어져야 할 얼마 남지 않은 일은 내일 아침 동트기 전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관해서는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바울도 그렇게 믿었고, 요한도 그렇게 믿었고, 폴리캅도 그렇게 믿었고, 이레네우스도 그렇게 믿었고, 마르틴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에게 “내가 오려면 앞으로 2천 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땠겠습니까? 요한은 돌아와 교회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낫겠군요. 앞으로 여러 세대가 지나야 하니까요. 아시겠죠? 예수님은 앞으로 2천 년 동안은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느슨해졌을 것입니다. 준비 태세도 없고 기다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기대입니다. 깨어 기다리다가 잠들더라도, 그 똑같은 기대를 품고 깨어날 것입니다.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으며, 어쨌든 제때 그 자리에 있게 될 테니까요.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마르틴 성인과 바울 성인, 그 밖의 모든 사람이 부활 때 깨어나면, 바로 그 전투 한가운데서 계속 싸우고 있었던 것처럼 생생할 것입니다.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똑같은 기대를 품고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큰 외침이 들리면 온 교회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그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100년 뒤일 수도 있고, 500년, 1천 년, 1만 년 뒤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날마다 그날 그분께서 오실 것처럼 산다고 해 봅시다. 오늘 그분께서 오실 것처럼 살면, 우리가 깨어날 때, 곧 잠들었다가 부활 때 깨어나면, 방금 잠들었다가 막 깨어난 것처럼 생생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며,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똑같이 생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다음 순간에라도 그분께서 오실 수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이 여러분 생애의 마지막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떠날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쉬고 있는 이 숨이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일을 이어 가려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겨야 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걸어가지 않았다면 요한은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요한이 계속 걸어가지 않았다면 폴리캅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폴리캅이 계속 걸어가지 않았다면 이레네우스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레네우스가 계속 걸어가지 않았다면 마르틴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겨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교단이나 다른 신자들의 모임에 우리가 여기서 가진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저는 이 작은 공동체를 당장 그곳과 합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는 기다렸고, 갈망했고, 기대 속에 지내 왔습니다. 언젠가 어떤 위대한 분, 어쩌면 제가 말하는 엘리야, 그 위대한 선지자가 오리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믿었고, 어쩌면 제가 살아서 그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제가 바뀔 수 있는 날 말입니다. 그러면 이 작은 교회를 데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형제 여러분, 우리가 기다려 온 사람이 바로 이분입니다. 이분, 이 사람이 바로 그분입니다.” 저는 그것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이미 지나갔다면, 이제 저는 저 위를 가리키며 “형제 여러분, 바로 이분입니다”라고 말할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위에서 오시는 분 말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교회가 그런 상태로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뭘 밟았든지 어떻게 했나 봅니다. 저것의 소리가 훨씬 커졌군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이것은 자리 잡은 교회이니...
잠깐만 다시 멈추겠습니다. 제가 봄베이에 갔을 때...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 때문에 저는 그 집회를 제 가장 큰 집회로 여깁니다. 아프리카에서 한꺼번에 3만 명이 그리스도께 나왔다고 한다면, 거기서는 50만 명 가운데 15만 명이나 20만 명이 한꺼번에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령... 10만 명이었다고만 해 봅시다. 교회도 없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을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믿는 메시지 때문에 오순절 교단조차 저와 협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혼들이 아마 시크교나 자이나교, 불교, 그 밖에 자신들이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들을 보낼 곳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취한 입장 때문에 협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아프리카에서는 A.F. 오브 M., 곧 아프리칸스 신앙 선교회의 후원 아래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갔을 때... 물론 저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삼중 침례를 주는데, 얼굴을 앞으로 하여 세 번 잠급니다. 또 어떤 쪽은 뒤로 세 번 잠급니다. 한 번은 한 하나님인 아버지를 위해, 또 한 번은 다른 하나님인 아들을 위해, 또 한 번은 또 다른 하나님인 성령을 위해서입니다. 서로 다른 세 신을 위해 세 번에 나누어 침례를 주는 등 온갖 그런 일을 합니다. 어쩌면 더반 집회가 제대로... 사람들은 오순절 신앙들 사이에서 그렇게 제각각 갈라진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만일 우리가 여기서 막 부흥회를 마쳤다면 어땠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큰 부흥회를 막 마쳤고 여러분 형제들이 이제 막 회심했는데, 온 나라 어디에도 이런 교회가 없다고 해 봅시다. 저는 전도자로 왔다가 이제 떠나고, 여러분은 다시는 저를 못 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그 진창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내들이 반바지를 입고, 카드놀이 모임과 무도회 같은 곳에 다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빛으로 나왔습니다. 그런 것들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왔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조입니다”라고 하는 대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대로 살게 되었지, 다른 어떤 것이 말하는 대로... 그런데 그곳에 가서 들어 보니 사람들이 번코 놀이를 하고 춤을 추며 이런저런 일을 합니다. 그리고 내용도 없는 짤막한 설교, 재선에 나서는 시장이나 무슨 정치적인 일에 관한 말을 하다가 10분이나 15분 만에 끝냅니다. 여러분은 여기 앉아서 날마다 말씀을 풍성히 먹으며 큰 잔치를 누려 왔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그 일이 너무나 마음에 짐이 되어, 여러분 중 평신도들도 교회를 시작해서 직접 설교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마음이 불타고, 여러분과 똑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내일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국의 동료 시민들인 그 사람들을 위해 오늘 무엇인가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함께 모여 그들과 교제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이렇다면... 저는 주님께서 저를 도우셨고, 초창기 이후 세상에 일어난 가장 큰 부흥들 가운데 하나인 세계적인 큰 부흥의 선두에 서도록 저를 사용하셨다고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저 강가에서 저를 만나셔서, 제가 전할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는 그날 강가에 있었던 분이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습니다. 약 32년 전, 그 빛이 나타났을 때였습니다. 저는 서서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수백 명도 서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려왔고 그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신기하게도 사진기에 똑같은 모습이 찍혔습니다. 제가 강가에서 보았다고 말씀드린 것과 정확히 똑같은 모습입니다. 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 가지로 틀릴 수는 있지만 위선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정직하고 솔직하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떠나 버렸다면 여기 이런 교회를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냥 떠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지을 마음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 후 그분께서 저를 복음 전도로 부르셨습니다... 그동안 여러 목사님들이 차례로 계셨지만, 지금은 이 신앙 안에 계시고 이 메시지를 믿는 귀한 형제님이 여기 계십니다. 이 밖에도 메시지를 믿는 형제님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제가 너무 크게 말하고 있습니까, 빌러 형제님? 괜찮습니까? 좋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는 일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사람들이 하늘의 위대한 하나님의 이런 표적들과 이적들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 성인도 똑같이 생각했더라면 어땠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감독들은 메시지에 변함없이 충실했습니다. 바울도 순회하고 나서 이따금... 여러분은 성경에서 그가 어떻게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고, 목사들과 감독들 등을 만나 이야기했는지 읽으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서 구제금도 받고, 부흥회나 큰 기쁨의 잔치처럼 참으로 놀라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고 메시지들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빌립의 집에 갔을 때를 보십시오. 빌립의 딸들까지도 예언하여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님이 그곳에 올라가시면 사슬과 감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마당으로 나서자마자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걸어왔습니다. 그는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시아 전역에 있는 이 모든 교회의 총감독인 바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다가와 옷을 동여맨 허리끈을 풀어 자기 손을 묶고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이것을 매고 있던 사람을 저 위에서 사슬과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 아시겠죠? 예언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압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제 제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제가 달려갈 길을 마치게 해 주십시오.” 그는 지쳤습니다. 그의 일은 끝났습니다. 그는 떠나가면서 디모데에게 감독의 직분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젊은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은 결혼한 남자들이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뒤따라 자라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시겠죠? 전에 제가 그곳에서 사람들이 강에 투망을 던져 그 퍼치들을 끌어 올리는 일이며, 술 취한 사람들 같은 문제 때문에 야단을 쳤던 것과 같습니다... 크고 좋은 퍼치들이 여기 천장 높이만큼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가 전체에 악취가 났습니다. 저는 야생동물 보호관으로서 그것을 못 하게 하려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그냥 놔두시오”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곳은 켄터키주에 속합니다. 켄터키주 보호관은 관할 밖이라 이쪽으로 올 수 없고, 인디애나주 보호관은 강물이 켄터키주에 속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도 낚시를 좋아할 아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저런 그물과 덫, 그 밖의 것들을 그대로 두면, 지금부터 20년 뒤에는 그 아이가 피라미 한 마리만 잡아도 신문에 사진이 날 겁니다.” 그리고 지금 거의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뒤따라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 젊은이들 등을 생각하고, 우리 자녀들이 있을 곳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딸들이 세상에 나가 그런 일들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기 어머니들처럼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합니다. 내일이 오지 않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내일이 없다 해도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며, 그분께서 오실 때 맡은 자리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네빌 형제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계속합시다. 그대로 이어 갑시다. 저는 이 젊은 사역자들이 참 감사합니다. 사실 심판 날에 이 주변 골짜기 전체는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곳곳에 작은 교회들이 전초기지와 경계초소처럼 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한 형제님의 교회에서, 그 안에 있는 모두가 말씀 뒤에서 굳게 지켜지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손이 올라갔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형제 여러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여기 교회의 경우처럼, 제 사역에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한 네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전망은 그것뿐입니다. 저 강가에서 제게 말씀하신 그분께서... 만일 이방인 교회에 남은 것이 이것뿐이라면... 우리는 계시록 1, 2, 3장이 교회에 관한 말씀임을 압니다. 교회는 4장에서 올라가며 19장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불러내시는 환난기가 지난 뒤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처럼 말입니다. 그는 비가 한 방울이라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올라갔습니다. 그가 떠난 뒤에 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아는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롯은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소돔에서 나왔습니다. 교회도 환난기가 시작되기 전에 떠날 것입니다. 그때 있을 환난 동안에는 잠자는 처녀를 용이 쫓을 것입니다. 용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것은 무리와 백성들, 곧 군대들을 뜻합니다. 그들이 이 여인, 그녀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을 찾아 붙잡아 죽일 것입니다. 그것은 환난기에 일어날 일이지만 교회는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그것이 내일 일어난다 해도 우리가 오늘 계속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맙시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저 아래에서 제게 말씀했던 그 천사가 “침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앞서 가도록 보냄을 받은 것같이, 너의 메시지도...”라고 하셨다면 말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전해야 했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갈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그 메시지였다면, 형제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정말로 가까이 와 있습니다. 메시지의 때와 빛이 거의 저물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의 역사가 일어나 그 형제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의 빛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을 보셨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그분을 위한 진지를 지키려고 교회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털벌레와 자벌레가 먹어 치운 모든 것을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신 성경 말씀이 참이라면, 이것이 그 일이고 이것이 그 메시지라면...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것이라면, 정말로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메시지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밤에 제가 분별의 사역을 하러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수많은 친구들, 수천 명이 집회에 모여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보통은 빌리가 저를 데리러 옵니다. 빌리는 제게 말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쉴 새 없이 말을 해서, 제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그 일을 위한 기름부음이 모두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가서 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겠다. ‘그 교단들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하는 등의 말씀을 전하고, ‘이렇게 나오십시오’라고 해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이르자 그것마저 떠나 버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가고 있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 길의 끝일 수도 있고, 주님의 오심일 수도 있고, 시대가 바뀌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온 이 외에 또 다른 이가 있어야 한다면, 그 능력 있는 분이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오늘 저녁 하나님과 여러분 형제들 앞에 서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모릅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안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언급하지... 어떤 방향인지 알지 못하면서 이런 일을 꺼내지 않을... 이것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안다면 말씀드리겠지만, 저는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아무런 인도도 받지 못한 채 집회에 가고 있습니다. 저 위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아서 가는 것입니다. 저도 누구 못지않게 숲에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이 점에서 잘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제 길이 끝나고 다른 이가 뒤따라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가 이어받도록 제가 길을 연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와서 전할 사람은 “자녀들의 믿음을 아버지들에게로 회복시키는” 말씀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길의 끝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제 사역을 해외 복음 전도로 다시 바꾸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더 이상 저를 전도자로 부르지 않으시고, 어딘가 광야로 데려가 기름부으신 다음, 오기로 약속된 그 사람처럼 저를 보내시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가던 방식으로 계속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들이 저를 믿어 왔으므로 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남자들 앞에서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이 저를 선지자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제게는... 겸손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을 주님의 선지자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제게는 그런 영예가 없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어쩌면 앞으로 올 선지자를 위해 기초를 놓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작은 특별한 일들에 저를 사용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제가 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선지자는 전도자가 아니고, 전도자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목사는 전도자가 아니고, 전도자는 목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첫째 사도들을, 그다음 선지자들을, 그다음 교사들을, 그다음 목사들 등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교회 안에 세우시고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모퉁잇돌을 놓던 아침에는, 그 까닭이... 여러분이 영적이라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부르짖음 때문에... 그것을 꺼내거나 그 책을 가져다 읽어 보실 수 있다면, 거기에는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를 전도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라.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때가 오리니, 귀가 가려워 선생들을 모아들이고 진리에서 돌아서서 꾸며 낸 이야기들로 향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 성경 구절을 인용하시며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펴서 그분께서 알려 주신 곳을 찾았고, 거기에 그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오순절 일신교와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의 두 양동이 이야기도 아십니다. 저는 그것들을 서로 섞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나무들을 각각 있던 자리에 그대로 심었습니다. 저는 양쪽 다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저는 수확 때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신실한 사람을 존중하십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민족이 부르는... 고넬료의 집에서 그들도 처음에 제자들이 받은 것처럼 성령을 받았을 때 말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마음 깊이 신실한 사람을 봅니다. 그는 신실하면서도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실하다면 하나님께서 어딘가에서 그를 빛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는 빛으로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이 그렇게 큰일인데 메시지가 이 정도밖에 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이곳에 있도록 미리 예정된 무리가 있습니다. 그 수가 열두 명을 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1억 명일 수도 있고, 1만 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지라면, 우리가 그렇게 믿듯이, 미리 예정된 자들은 그 메시지를 듣고 믿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여기, 그 마지막 때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면 말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말은 다른 데 옮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저를 그분의 선지자로 부르셨다면, 저는 분명히 선지자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은 전도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광야에 숨어 하나님과 단둘이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정확하게 직접 받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고 나서 당당히 나와 자기 메시지를 전한 뒤 다시 광야로 돌아갑니다. 전도자들처럼 집회를 열고 협력을 얻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 전도자가 아닙니다. 전도자처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그것을 전하고 선포한 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대로 두고 다시 떠납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께서 저를 그런 사람으로 부르셨다면, 저는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전도자로 부르셨다면, 저는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십니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라고 하셨을 때도, 그다음 그들 마음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일과 이런 여러 가지 일에서도, 저는 경건하게 행해 왔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민족이 그것을 들었습니다. 신문과 녹음테이프를 통해 어디에나 퍼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온 세계에서 편지가 옵니다. 멀리 태국에서, 저 안쪽 호텐토트인들에게서도... 선교사들이 테이프를 가지고 그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말씀을 통역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온 세계 곳곳에서 소식을 듣습니다. 아시겠죠? 세계 전역입니다. 교회는 세계 곳곳에서 미리 예정되어 있습니다. 침상에 둘, 들에 둘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남겨 둡니다.
이제 저는 전도자의 일을 해 왔습니다. 제가 간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제가 그 일을 바르게 했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했기를 바라며 제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가운데, 이제 그분께서 저를 전도의 현장에서 불러 그분의 선지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전도 활동을 떠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선지자로 부르신다면 저는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면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두 직분을 섞고 있습니다. 제가 늘 괴로워했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강단에 서서... 그것은 잘된 적이, 성공적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셨지만, 저는 그것이 그분의 직접적인 뜻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허용하신 뜻이었습니다. 강단에 서면 환상 한두 번에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이 사람에게 자신을 어떻게 바로잡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주면, 다음 사람도 거기 서서 같은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말해 주라고 알려 주지 않는 한 저는 그에게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싶은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배신자나 타락한 사람, 마귀 같은 존재로 여깁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선지자의 직분이... 선지자가 일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물러나 있다가 병원이든 가야 할 곳이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가지고 당당히 들어가서, 그것을 말하고는 다시 나옵니다. 그는 전도자가 전혀 아닙니다. 집회를 열고 이런저런 것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보냄을 받은 사람에게 전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백악관으로 보냄을 받았다면 백악관 앞에 곧장 가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고 말합니다. 주지사에게 보냄을 받았다면, 그가 누구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전도자들처럼 여러 교회를 상대하며 그들을 모아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애쓰고 이런 일들을 설교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는 전도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제가 제 자신을 선지자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선지자의 직분을 맡아 일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아시겠죠? 이제 제 말뜻을 이해하십니까? 이런 이야기는 오랫동안 많이 할 수 있지만, 오늘 저녁 읽고 싶은 말씀을 조금 읽기까지 여러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저는 인디애나에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든 적이 없습니다. 저는 떠도는 사람입니다. 저는... 한 곳에 가서 “여기로 가서 자리를 잡아야겠다. 여기가 좋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곳에 가면 “이쪽으로 가야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내는 저를, 사람들이 부르는 그 노래 제목이 뭐지요? “쉴 줄 모르는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어 보셨을... 아내는 저를 그렇게 부릅니다. “쉴 줄 모르는 바람.” 제가 여기 돌아올 때쯤이면 “아, 집에 꼭 가야겠다. 아내와 아이들을 봐야겠다. 교회에 가서 한 번 더 설교해야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교회에 내려가 한 번 설교하고, 아내에게 입맞추고 아이들을 모두 안아 준 뒤 잔디를 깎으러 마당에 나가면, 비행기가 지나갑니다. 저는 멈춰 서서 얼굴의 땀을 닦으며 그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어집니다. 또 다른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저쪽에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그곳에 가서 얼마 동안 설교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또 비행기가 한 대 지나갑니다. 저는 그걸 타고 가야 합니다. 아시겠죠? 제게는 정착할 곳이 없습니다.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안에 무엇인가 있고,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교회가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제가 이곳을 떠나 버린다면 마음이 몹시 괴로울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저 영광의 땅에서 저와 영원을 함께 보내리라고 믿는 이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일꾼감이고, 든든하고 건전한 분들입니다. 얼마 전 이 교회 성도들 사이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은사들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광신주의로 빠져드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마다 성령께서 제지하시고 다시 이쪽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만 잘 지키시면 됩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할 때... 어디로 갈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고 여기 머물지도 않을 것입니다. 도무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디론가 움직여야 합니다. 아마 그곳에서도 며칠밖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것입니다.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모릅니다. 아브라함도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강을 건너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에 관해서는... 저는 우리에게 교회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텐데 거기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무엇 합니까?”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실 때 그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사람들이 교회를 위해 그 돈을 지정해서 드렸다면, 그날 밤 제가 여기서 투표를 했을 때 100퍼센트가 찬성했으니, 교회를 짓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러니 지으십시오! 저는 지으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전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러분 남자들 앞에서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자분들은 여기 모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쪽저쪽으로 기울여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하려는지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주님께서 다음 주에 오신다면 이번 주에 교회 건축을 시작합시다. 물론입니다. 그분께 보여 드립시다. 우리가 맡은 자리에서 충실히 일합시다.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교회를 다 지었는데, 그렇다면... “그분께서 지금부터 10년 뒤에 오시면 어떻습니까? 20년 뒤라면요? 100년 뒤라면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가 되든, 그분께서 언제 오시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때가 되기 전에 그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을 압니다. 우리가 그만큼, 앞으로 100년을 더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떠나면서 뒤에 남길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 교회 위원회가, 지금 그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그 교회를 짓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세우십시오. 아름답게,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좋은 장소로 만드십시오. 저는 교회가 네빌 형제님을 목사로 원하시는 동안에는 그분이 이 교회의 목사로 계시기를 제안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투표로 정할 일입니다. 그분이 맡은 자리를 지키며 이 믿음 안에 머물고, 오기를 원하시며 주님의 인도를 느끼는 동안에는 말입니다. 그분이 계속 머물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회중도 같은 뜻으로 투표한다면 말입니다.
또 여기 계신 크레이스 형제님이나 주니어 형제님 같은 분들, 이 다른 형제님들도 모두 자신이 그 자리에서 일할 의무를 느끼고, 여기서 함께 교제하는 동안에는... 여러분은 감리교에 가서 모일 수 없습니다. 그들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침례교도... 방언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당장 여러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기 앉아 있으면 까마귀 떼 가운데 있는 비둘기와 같을 것입니다. 전혀 교제할 수 없고 죽어 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지금 감리교인들과 침례교인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비교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감리교인들과 침례교인들 가운데는 좋은 사람들,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교제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저기 계신 형제님, 이름이 뭐였지요? 오늘 저녁 저 뒤에 앉아 계신 전도자, J. T. 파넬 형제님, 빌러 형제님도 계십니다. 여기 앉아 계신 이 형제님도... 몇 분은... 여기 계신 여러분 중 많은 분은 삶에 부르심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무언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앉아만 계시지 마십시오. 무언가 합시다. 단 한 혼밖에 구원받게 하지 못하더라도 그 한 혼이 구원받게 하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생각에는 이 교회가... 여러분이 이 교회를 지으실 때, 이곳을 여러분의 본부처럼 삼고 여기 네빌 형제님을 여러분 가운데 수석 장로와 같은 분으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교회에서 논의해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이곳 네빌 형제님께 가져와 모두 함께 의논하십시오. 그래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제가 머지않아 들를 테니, 그때 다 함께 그 문제를 다루면 됩니다. 또 여러분 각자의 모임에서 다른 사역자들을 훈련하십시오. 삶에 사역의 부르심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 젊은이들을 훈련하여 여기 장로님께 데려오십시오. 모두 함께 사역자 모임에 앉아서 하나님의 더 깊은 것들을 가르치십시오. 잘못된 쪽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와 같은 위치에 두십시오. 때로 그와 생각이 정확히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같은 믿음 안에 있으니 계속 나아가십시오. 나중에 우리가 모두 함께 모였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의 분별이 임하여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 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교회들이 와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무리의 사람들을 훈련시키면... 제가 어딘가에서 전도 사역을 하고 있을 경우, 그들을 배치할 곳들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제가 인도에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도로 다시 간다고 해 봅시다. 거기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천 명이 모일지 모릅니다. 제가 한두 주 머물면 그들이 사역을 보고 좋아하며 참되다고 믿어 이교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제게는... 어쩌면 이삼 주 만에... 제가 거기서 이틀 밤 집회를 했을 때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사람이 아마 10만 명이었는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튿날 저는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갔다가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을 늑대들 가운데 내놓은 양처럼 남겨 둔 것입니다. 만일 제게 메시지로 훈련받은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여기를 떠나기 전에 이 교회들의 질서를 세우겠습니다. 한 사람을 보낼 겁니다. 벌써 전보를 쳤습니다. 경비도 마련됐고, 지금 이 일을 맡으러 이곳으로 오는 중입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그와 함께 도우미와 보조자로 일할 젊은이 두세 명도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믿음 안에 있는 교회를 그곳에 세울 수 있습니다. 인도의 전초기지, 독일의 전초기지, 스위스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쯤은 제가 다녀온 나라들 곳곳에 그런 교회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거기서 또 하나가 나오고, 또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내일 저녁이나 모레 저녁에는 제 친구인 마트손 보제 형제님이 여기 오실 것입니다. 몸이 불편한 작은 스웨덴 사람 한 명이 탕가니카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 가서... 마트손 보제는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을 믿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 성경 말씀으로 꼼짝 못 할 지점에 세워 놓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마트손, 당신은 제 친구입니다. 이제 펄쩍 뛰거나 달아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 형제로서 서로 손을 잡고 그냥 여기 서서 이야기합시다.” 아시겠죠? 그러고는 메시지를 바로 그에게 제시하면, 그는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마트손, 당신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믿는다면 받아들일 테니까요.” “브래넘 형제님, 저는 당신 말씀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그렇게 그에게 철저히 따져 물으면 그는... 그러다가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저쪽 선교지에서 한 일을 보십시오. 단 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카고에 연락해서 버턴과 다른 사람들을 불러 그렇게 그곳으로 보낼 수 있었고, 일을 시작해서 계속해 나갔습니다. 이제는 작은 부흥회 하나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것입니다. 은사들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가서 시작할 용기가 충분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역 아래서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수백만 명에 이를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놓쳤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 형제님과 의견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기서도 저기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나와 정확히 똑같이 믿지 않으니까 나는 함께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데 이르면,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뭉치려고 애쓰고 있는데...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 브래넘 집안 형제자매는 아홉 명이었고, 집에서 기르는 개들처럼 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을 끝내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브래넘이었습니다. 서로 상대도 브래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그가 브래넘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도 제가 브래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래도 싸웠습니다. 여러분도 가족끼리 그러지만, 그래도 여전히 형제들입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믿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굳게 지킵시다.
저는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일을 계속 이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하신다면... 여러분에게는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열의가 없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됐습니다. 여러분은... “지난달에는 꽤 열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군요”라고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열의를 가지고 계속 두드려야 합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늘 지난 대통령인 아이젠하워 씨를 좋아했습니다. 아이젠하워 장군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전투 중에 탄을 집어 총에 넣고 격철을 당겼다가 놓았지만, 찰칵 소리만 나고 발사되지 않은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탄을 넣었는데 그것도 찰칵 소리만 났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발이 발사될 때까지 계속 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전쟁에서 이깁니다. 계속 시도하십시오! 탄을 넣고 당기십시오. 여러분에게는 목적이 있고, 맞혀야 할 표적이 있습니다. 발사되지 않으면 그것을 빼내고 다른 탄을 넣어 다시 시도하십시오. 하나가 발사될 때까지 넣고 또 시도하십시오. 그중에는 살아 있는 탄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발사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 쏘고 또 쏘는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계속 쏘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을 나서고 있습니다... 아무런 인도도, 맡겨진 일도 없이 말입니다. 수백만 명이 여러분을 바라봅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다음에는 어떻게 움직이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 총이 터진 일까지도 제가 자살을 시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온갖 이야기를 하지요. 전국 곳곳에서 그런 말들이 돕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거기에 사람들을 위한 짐까지 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대화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하신다면 어떻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 여러분, 어쩌면... 여러분도 짐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이런 책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에게는 쉬울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 다 알려 주시니까요”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해 주시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땀 흘리며 씨름합니다. 훨씬 더 힘들게 합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보다 훨씬 더 힘겹게 애써야 하고, 제게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대해, 가족에 대해, 혹은 자신 한 사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저는 수백만 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얻을 한 혼이나 몇 혼 때문에 사탄이 여러분을 공격한다면, 수백만 명이 차례를 기다리는 이곳에는 얼마나 더 공격을 퍼붓겠습니까? 아시겠죠? 형제 여러분, 그러니 여러분이 헤아려 주셔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제가 때때로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탄을 하나 넣습니다. 발사되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발사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불발탄은 빼내고 다른 것을 넣어 보겠습니다. 그중 하나는 발사될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중 하나는 어딘가에서 발사될 것입니다. 그때 저는 표적을 겨누고 있고 싶습니다. 발사되는 순간 제가 쏘려는 목표를 맞히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제 말뜻을 아실 것입니다. 어딘가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저는 이 집회들을 향해 떠나, 그저 저 밖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이 깊고 큰 것들을 그곳에서 가르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해석을 받은 그 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돌아가 양식을 비축하라.” 창고가 어디였습니까? 이 태버내클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메시지와 견줄 만한 것이 이 주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여기 주변의 작은 교회들에 있는 우리 형제님들도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어디에 가서 그것을 찾겠습니까? 어디든 견줄 만한 것을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은 곧 교단의 신조들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 다른 것들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양식을 비축해 둔 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전한 메시지 하나를 보십시오... 저는 메시지 하나를 여러분에게 한 시간에서 여섯 시간까지 설교해 왔습니다. 그 메시지들 중 하나를 다른 곳에서 전한다면, 그것을 다루는 데 일주일이 걸릴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전해야 합니다. 이곳에 양식이 비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테이프에 담겨 있습니다. 그 테이프를 통해 온 세계로 전해져 사람들이 집에서... 그 테이프들은 하나님께 미리 예정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확히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 일을 하도록 저를 돌려보내신 것입니다. “이곳에 양식을 비축하라.” 그분께서는 제가 해외로 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아르간브라이트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자, 가시지요. 집회는 하룻밤뿐이지만, 나라 곳곳을 관광시켜 드리겠습니다.” 제가 프레드 형제님과 뱅크스 형제님이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던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저는 그런 식으로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인가가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경계선까지 밀고 나왔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제 주위에는 탄약이 가득 놓여 있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다시 전도 사역으로 부르셨습니까? 해외 선교사로 부르셨습니까? 그분의 선지자가 되라고 부르셨습니까? 어디선가 목회를 해야 합니까? 제가 무엇을 해야 하든, 계속 탄을 넣고 격철을 당기겠습니다. 그중 하나는 발사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서서 바라보며 “주님, 총에 탄을 넣어 주십시오”라고만 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총에 탄을 넣고 직접 당기겠습니다. 발사하는 일은 그분께 맡기겠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맡으실 일입니다. 저는 그저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이 집회들에 갈 때 저는 그저 나가는 것입니다. 저도 모릅니다. 여기서 전한 것 같은 메시지들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 하룻밤도 분별의 사역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릅니다.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 채 그냥 갑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저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기 성도들은 교회를 원합니다. 지으십시오! 가능한 한 빨리 세우십시오. 교사들과 필요한 것들을 갖추십시오. 저 밖에서 작은 교회들을 맡고 계신 형제님들, 여러분도 원하시면... 여러분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에 상을 주실 것입니다. 나가십시오! 설교하십시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 남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모임을 갖고, 성경의 깊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기도하십시오. 기도 모임만을 위해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기 와서 모여 있기만 하지 마십시오.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따로 장소를 찾아가고, 여러분 방에 들어가고,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그대로 머무십시오. 그렇게 머무르십시오. 그러다가 무엇인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 같고, 여러분이 계속 나아가다가 그것이 말씀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을 발견하면 조심하십시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바로 거기서 멈추십시오! 잘못된 영이 여러분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메시지는 말씀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지 마십시오...
“아, 브래넘 형제님,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밤에 누가 일어서더니 이런 일, 저런 일, 또 다른 일이 이렇게 일어났습니다”라고 한다면, 잘 살피십시오! 면밀히 살피십시오! 무엇이든 단정하여 배척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다려 보십시오. 그런 다음 말씀 앞에 가져와 말씀과 어떻게 맞는지 살펴보십시오. 말씀과 일치하고 모든 것이 좋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아시겠죠? 말씀 안에 머무르는 한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제 의견은 그것입니다.
네빌 형제님, 러들 형제님, 크레이스 형제님, 빌러 형제님,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형제님들, 어디 계시든 주니 형제님과 나머지 모든 형제님들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히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테리, 린, 찰리 콕스, 데이비드도 보이고 여기 젊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름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을 골라 전도자로 세우고 어딘가에 보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자라 왔고, 굳게 서서 메시지를 알고, 자신을 입증하도록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삶에 부르심을 느끼신다면... 여기 뒤쪽 다른 줄에도 젊은이들이 두세 명, 네다섯 명 앉아 계신 것이 보입니다. 여러분은 젊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네빌 형제님도 나이가 들어갑니다. 우리는 중년입니다.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얼마 후에는 우리가 무대에서 물러날 것이고, 여러분이 우리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내일이 있다면, 어쩌면 그날에는 이 일이 더 커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 있는 동안, 낮 동안에 일합시다. 내일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온다면 준비하고 있읍시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제 생각은 그것입니다. 저기 유티카에서 오신 형제님, 크레이스 형제님, 그리고 여기 계신 다른 모든 형제님들이 함께 모여 한곳에서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역자 여러분이 함께 앉아 여러 일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딘가에서 교제할 자리가 필요합니다. 함께 모여 나눌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남자들이 한 무리로 모여 서로 신뢰하고, 이런 문제들을 의논하고, 가령 한 달에 한 번씩 사역자들만 모일 시간을 정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들 중 한 곳에서 만나십시오. 목사든 전도자든 어떤 직분을 맡았든, 한 사람 한 사람이 거기 앉아서 논의하고 이야기하십시오.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기면, 그때 제가 전도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상태라면...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제가 계속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아시지요. 그러니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제가 여기 돌아오면 함께 만나 앉읍시다. 여러분 중 누군가의 삶에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동안 해 왔던 개인 면담 같은 식으로 하지 않고, 함께 모여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사역자들을 바로 세우고 바른 길로 가게 할 수 있다면, 그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보십시오. 그는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애쓰며 씨름하는 이런 수백 가지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체계 말입니다. 이드로가 모세에게 “그 모든 일을 당신 혼자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로 70명을 세우시고, 모세 위에 있던 영을 취하여 그 70명의 장로 위에 두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언했습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힘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예언하도록 모세에게서 영을 취하기 전이나 후나, 모세 안에는 똑같이 예언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는 그저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작은 일은 그들이 판단하게 하여라. 그러나 큰일이 생기면 네가 그들과 함께하여 도와주어라.” 이것이 그 방법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하나님의 방식이었고, 초대교회 시대에도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합시다. 말만 하는 것을 그만두고 행합시다. 그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십니까?
자, 봅시다. 아, 벌써 제 시간을 다 썼군요. 그런데 빌리가 여기 메모를 적어 놓았습니다. 잠깐만요.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저는 뉴올버니에서 왔습니다... 딸, 그레이스... 메모리얼 병원... 팔이 부러졌습니다... 딸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T-r-o-u-b, W. C. 트루브, 트루브.” 그런 이름인 것 같습니다. 이 젊은 여성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저는 이레네우스가 자기 앞에 모인 작은 무리를 바라보았을 때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늘 저녁 여기 모인 사람들보다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앉을 의자도 없었습니다. 차가운 돌판 위에 앉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앉아 있고 이레네우스는 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가면 사자들의 먹이가 되거나 목이 잘릴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믿음은 감옥과 불길과 칼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주님, 이 사람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주님의 이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 주셔서,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 안에서 지켜 주시고, 결코 거기서 벗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무리 가운데서 목사들과 교사들과 전도자들을 보내 주십시오. 오, 하나님,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이 어디 있든지 곳곳에서 진지를 지키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끊임없이 일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이제 오늘 저녁 여기에 들어온 모든 기도 부탁을 위해 기도하며, 방금 팔이 부러진 저 어린 여성을 기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를 고치셔서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그를 도우시고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연락해 온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복 주십시오.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그 권능이 이 소녀를 일으켜 주십시오. 팔이 낫게 해 주십시오. 오늘 저녁 언급된 모든 기도 부탁을 생각합니다. 저기 누워 있는 그 가엾은 소년은... 형제님이 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호지킨병이 몸을 파고들었고, 치료를 위해 쓰는 라듐과 여러 가지 때문에 얼굴이 온통 타 버렸습니다. 하나님, 그 소년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이미 떠나간 그 남자도 생각합니다. 머리를 크게 다친 그의 아내와 입양한 아이도 생각합니다. 그 밖의 모든 이들도 생각합니다. 아버지, 브루스 자매님은 나이가 들어가는데 물을 나르다가 양팔과 몸 여기저기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 자매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마 입원해 있을 텐데, 그를 구해 주시고 병원에서 나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복들을 구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말씀을 조금 나눌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이 있으십니까? 잠깐만... 조금 늦은 것은 압니다. 하지만 오늘 생각해 둔 짧은 내용이 있는데, 잠깐 말씀드리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테이프에 녹음되었으니, 누구든 나중에 참고하고 싶으시면 짐에게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여러분 형제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나갔을 때, 함께한 사람이 여섯이나 여덟 명뿐인 때도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데 그들이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저기서 아볼로가 인도하던 큰 부흥회를 아시지요? 그 무리에는 남녀를 합쳐 여섯이나 여덟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 교회 전체가 여섯이나 여덟 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는 그때보다 다섯, 여섯, 일곱 배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께도 사도는 열두 명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큰 것을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큰 숫자를 가지고 일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이런 작은 무리들 안에서 그분께서... 아시겠습니까? 여러 시대를 살펴보십시오. 그분께서 사람들을 만나실 때에는 언제나 작은 무리 가운데서 만나 말씀하시고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나가서 이런 일들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일요일 아침에는 “저녁때의 복음 전도”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후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저는 떠났다가 늦가을에야 돌아올 것 같습니다. 아마 9월쯤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여러분 형제님들에게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모임의 인원이 늘며,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또 제가 잘 감당하도록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제 동역자요 친구요 돕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함께 주님 안에서 돕는 자들입니다. 제가 저 밖에서 원수 앞에 서 있을 때,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에 응답을 받는 충성스럽고 진실한 군사들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저 밖에서는 제가 바로 기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니 모이실 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어느 모임에서든 저를 잊지 말고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요한복음 9장에서 26절부터 35절까지 읽고 싶습니다. 잠깐만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앞으로 20분이나 30분 안에, 어쩌면 그보다 일찍 마치겠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26... 요한복음 9장 26절부터 35절까지 읽겠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다가 여기에 적어 둔 말씀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다시 그 사람에게 이르되, 그가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그가 어떻게 네 눈을 열어 주었느냐? 하니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이미 당신들에게 고하였어도 당신들이 듣지 아니하더니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하매 그때에 그들이 그 사람에게 욕하며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음을 우리가 알지만 이자에 관하여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나 그가 내 눈을 열어 주었으니 참으로 여기에 이상한 일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아니하시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면 그분께서 그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이제 우리가 아나이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어떤 사람이 열어 주었다는 것은 아무도 듣지 못하였나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아니하였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으리이다, 하매 그들이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네가 전적으로 죄들 가운데서 태어나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그를 내쫓으니라. 그들이 그를 내쫓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하시니
형제 여러분, 이제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나눈 짧은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사용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그분의 말씀을 놓고... 보통은 싱크 형제님이나 네빌 형제님, 또는 여러분 사역자들 가운데 한 분이 설교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여기 있게 되었으니, 양해해 주신다면 이런 식으로 조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예수님 편에 서기”라는 주제를 택하고 싶습니다. 그분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지도자들은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깎아내리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모든 바리새인들과 교사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비난을 그분께 퍼부었습니다. 그들은 흠잡을 곳을 찾으려고 그분을 끊임없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분의 좋은 일들은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분을 깎아내릴 무언가를 찾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를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 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일이며, 그 오래된 수법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습니다.
사역자가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려고 애쓰는 귀한 형제가 어떤 동네에 들어오면, 마귀는 그 동네의 불신자들이나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에게 그를 비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추어 보여 줄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은 형제의 허물을 가능한 한 덮어 주는 것입니다. 그의 나쁜 점을 말하지 말고 좋은 점만 말하십시오. 여러분이 그에 관해 아는 좋은 것만 이야기하십시오. 나쁜 것이 있으면 내버려 두십시오. 그 불쌍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그를 대적하는 일이 충분히 많습니다. 장대를 가져다가 그를 도랑 더 깊숙이 밀어 넣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그를 붙잡아 도랑에서 끌어내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를 더 아래로 밀어 넣으려 하지 마십시오. 이미 아래에 있습니다. 일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가운데 너무 많은 이들이, 아니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무언가 하나만 잡아서 아주 나쁜 말로 퍼뜨릴 수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형제들 가운데 한 분이 실수하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 봅시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고,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형제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싸울 일이 있거든 우리끼리 싸웁시다. 문제를 가져오십시오. 우리 형제들 앞에 가져와 해결하십시오. 예전에 브래넘 집안에서는 어린 동생 중 하나가 무슨 일을 저지르면 빌에게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맏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는 서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제 판단은, 그들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 등 뒤로 돌아가 싸워서 결판을 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형제들이었습니다. 아시겠죠? 뒤뜰에서는 서로 싸웠고, 앞뜰에서는 서로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랬습니다. 아시겠죠? 그래도 우리는 형제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형제,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고 그가 잘못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가서 말하십시오. 그가 여러분과 다투려 한다면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고 나서는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그 일을 다루십시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깎아내리려고 아주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내려 했습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의 영향력을 해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신의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답게 걷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말하십시오. 아시겠죠? 하나님의 사람답게 행동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십시오. 여러분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수 있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분을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분을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그분의 사역을 시기했기 때문에 깎아내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었고, 그들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신조와 반대되었으므로 그분을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모든 일, 찾아낼 수 있는 아주 작은 허물까지 문제 삼아서 그분을 치워 버리려 했습니다. 그분이 그만두기를 바랐고, 사람들이 그분을 배척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저기서 저런 짓을 했습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건 여러분도 아십니다. 우리는 평생 장로들을 믿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바로 거기 서서 그 장로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조상들의 전통에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전통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 해 동안 모든 랍비에게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반대합니다.” 아시겠죠? “그런 사람은 설교자가 될 자격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성경에 부합하는 그분의 기적의 표적들을 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방해받지 않았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계속 믿었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 곁에 섰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들에게 지적하는 것들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을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누군가 여기 와서 “있잖습니까? 당신이 오순절교인이라던데요”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교단으로는 아닙니다.” “그럼 당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그런 부류군요.”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말씀드리지요. 제가 전에 알던 사람이 그런 식으로 침례를 받았는데, 이런저런 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것은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해변에 난파한 낡은 배 하나를 가리키려고 하지, 안전하게 항해를 마친 배는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까마귀 밥이 될 만한 것을 하나 내놓으며 말하려 합니다. “이게 그 예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성결 설교자는 이런 일, 저런 일, 또 다른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결 설교자가 아니면서도 똑같은 일을 한 사람들은 지적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 이 사람은 너무 멀리 나갔습니다. 지나쳤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망가졌습니다. 지나치게 나갔고, 광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 한 사람을 가리키는 동안, 충분히 멀리 가지도 못한 이 수백만 명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 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위선자들과 헤롯 당원들 모두가 예수님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듣도록 미리 예정된 참 신자들은 그것을 들었고 그 안에서 아무 흠도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흠을 보지 않습니다. 이단적인 것도 보지 않고, 잘못된 것도 보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에서도 잘못을 보지 않고, 그분의 백성에게서도 잘못을 보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만 볼 뿐입니다. 그들은 영생을 얻도록 미리 예정되었으므로, 예수님 편에 서서 그대로 머무릅니다. 로이 로버슨 형제님, 우리가 여기서 부르곤 하던 짧은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마 형제님이 이곳에 오셨을 무렵에도 불렀지요. 나는 주님의 멸시받는 소수의 무리와 함께 그 길을 가리라. 예수님과 함께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리라. 차라리 예수님과 단둘이 걷고 싶네. 야곱처럼 돌을 베개로 삼더라도.
여러분도 그 짧은 노래를 들어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차라리 시비를 받는 길, 멸시받는 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길을 택해서 예수님과 함께 걷겠습니다. 그 길에서 아무 흠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지 말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했던 태도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목사님들, 여러분도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누군가 와서 “있잖습니까, 당신 교회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라고 말한다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곳에 열두 명쯤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 앉아 있는 올바른 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시겠죠? 나무들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다시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애썼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불화를 뿌려 사람들이 믿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 곁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분 편에 섰습니다. 제가 여기 생각해 둔... 여기 두어 사람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 눈먼 사람은 그들 때문에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방금 눈을 뜨게 해 주신 그 사람 말입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압니다. 게다가 그는 그들에게 아주 따끔한 질문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지나가셨습니다. 그분은 멸시와 미움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거부되실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분이셨습니다. 성경 전체가 그분이 어떤 분이실지 말했습니다. 멸시받고 거부당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봅니다.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바로 그 일들과 그분의 삶에 나타난 것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아무리 그분을 헐뜯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흠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랑은 어차피 그런 것들에는 눈이 멉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아시지요?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과 죄와 모든 불화를 내쫓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합니다. 그 눈먼 사람이 거기 앉아 있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그들에게 작은 교훈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이 불쌍한 눈먼 사람을 보자, “아무래도 여기에는 틀림없이 무슨 죄가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늘 말합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었어. 어딘가에서 주님의 뜻을 벗어난 거야.” 크레이스 형제님이 기둥을 들이받았을 때도, 어떤 사람의 생각에는 그가 어딘가에서 주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제 총이 터졌을 때도 “그가 주님의 뜻을 벗어났어”라고 했습니다. 네빌 형제님이 차와 부딪쳤을 때도 “그가 주님의 뜻을 벗어났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꼭 맞는 말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죄를 지은 것이겠지요? 아니면 어머니가 죄를 지었습니까? 아니면 이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 아멘!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며 눈을 뜨게 해 주신 뒤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자 그 소문이 퍼지고 바리새인들이 올라왔습니다. 눈이 멀어 저기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이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고, 아,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올라와 눈먼 사람이 보게 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모든 사람을 두렵게 할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미 이렇게 말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이 새로운 교리와 나사렛 예수라는 새 선지자를 따르면, 즉시 출교 통보를 받고 교회와의 교제에서 끊어질 것이다. 더 이상 회당에 나올 수 없다. 그와 어울리거나, 그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계하면 더는 나올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로 큰 소란을 벌이려 했습니다. 그분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 불쌍한 눈먼 사람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멀리하도록 크게 떠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부모에게 물어보겠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려왔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들의 아들이오?”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게 되었소?” 성경은 그 부모가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렇다고 인정하면 회당에서 쫓겨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거기서 눌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이라는 것은 압니다.”
아, 아마 수천 명이 거기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할 수 있었다면... 그 고약한 바리새인들이 거기서 그분의 이름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거나 사람들을 겁줄 수만 있었다면, 그 집회에서 그분을 쫓아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의 영향력은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들 중 한 무리가 제사장 옷을 입고 올라와 “이 사람에 관해 말해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이고 눈먼 자로 태어난 것은 압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나이가 들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그들은 가서 그를 데려왔습니다. “누가 네 눈을 뜨게 했느냐? 그가 어떻게 너를 고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임을 안다.” 그러고는... “그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모릅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저를 고쳐 주셨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제가 아는...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모릅니다. 오늘 처음 만난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으니, 전에는 눈이 멀었는데 지금은 본다는 이 한 가지는 압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반 시간 전만 해도 저는 눈이 멀었는데, 지금은 여기 계신 누구 못지않게 잘 보입니다. 그러니 제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압니다.” 아, 그 말이 그들을 얼마나 따끔하게 찔렀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아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참으로 확고한 증언입니다. 든든한 근거가 있습니다. 제 말로 하자면, 정말 훌륭한 증거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여기 한 평신도, 눈멀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뒤 거리에 서서, 제자들에게... 아니, 바리새인들에게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 것입니다. 감독들과 지도자들에게 말입니다.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니다. 너는 그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아시다시피 역사를 거슬러 멀리 뒤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들 가운데 그가 다녔다는 기록도 없다. 그는 이런 일에 관해 우리에게 와서 물은 적도 없다. 아시겠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저기 있는 여러분, 저 사람이 안수받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 사람은 점쟁이 같은 자입니다. 바알세붑입니다. 여러분은 미혹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권한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주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소?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릅니다.”
거기 서서 이제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보십시오. 그가 사람들을 억누르려... 그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예수님 편에 섰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가 했을 법한 말로 조금 풀어 보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수백 년 동안 이곳의 종교 문제를 모두 맡아 왔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관해 말하고, 우리를 찾아오실 구원자가 오실 때, 그때가 가까워져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이 오시면 무엇을 하실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들이요 이 지역의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인 여러분이 여기 이 사람들 앞에 함께 서서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고 헐뜯으려 합니다. 그분은 오셔서 제 멀었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습니다. 제 부모가 여기서 제가 눈먼 채 태어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채, 이 모든 세월 동안 바로 여기 여러분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와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 행해진 적이 없는 기적을 행하는데, 영적 지도자들인 여러분은 그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신다니요!” 휴! 흠!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예수님 편에 섰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도록 그가 눈먼 상태에 있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주 예수님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분 편에 섰습니다. 그가 그들을 따끔하게 찔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네가 죄 가운데 태어난 것을 아는데, 네가 우리를 가르치려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를 교회 밖으로 밀쳐 냈습니다. 내쳤고, 밀어냈고, 내던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쫓겨나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아멘, 아멘!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여러분을 쫓아내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다시 찾아 주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그분이 누구시니이까?” 그는 누구신지조차 몰랐습니다. 그저 전에는 눈이 멀었는데 이제 볼 수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이 한 가지를 압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광신주의라고 부르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저는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이제 은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저는 이제 이 한 가지를 압니다... 저는 하늘 아래 모든 교단 조직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제 저를 받아 주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들 중 몇몇 사람, 저 밖에 있는 좋은 분들은 저를 받아 줍니다. 그러나 모든 교단 조직은 저를 거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저를 찾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어디선가 저를 찾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오셔서... 그러니 괜찮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편에 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편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 편에 서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 편에 섭시다. 그 눈먼 사람은 그들에게 참된 증언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다시 그들이 그분의 이름에 먹칠하려 했던 일을 보겠습니다. 잠깐만 말씀드리고, 여기 몇 가지는 건너뛰어야 하니... 한 번은 어떤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여기서 그 일을 설교하며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기”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여러분도 제가 여기서 그 설교를 하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일입니다. 풀 먹인 옷처럼 뻣뻣하고 거만한 그 바리새인이 그분을 오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짧은 극처럼 이야기했지요. 심부름꾼이 와서 그분을 찾았고, 그분께서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자기가 미움받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을 집 안으로 모셔 놓고도 발을 씻어 드리지 않았습니다. 길을 걸어오느라 냄새도 나고 지치신 그분을 그대로 앉혀 두었습니다. 그분은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 작은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아,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군. 보게, 이 일로 우리 큰 잔치가...” 그들은 그분을 조롱하려고 그 자리에 데려왔던 것입니다. 그분을 놀리며 즐기려고 데려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판 나쁜 그 매춘부 여인이 와서 울면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석에 서 있던 그 바리새인과 다른 모든 제사장들이 말했습니다. “형제여, 모든 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딱 맞게 마련해 주셨군. 지금 당장 그의 이름에 먹칠할 수 있겠어. 그는 자기를 선지자라고 하고, 사람들도 그를 선지자로 여기지. 갈릴리 선지자라고 부르잖아. 심지어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기도 해. 우리는 메시아가 선지자일 것을 알고 있지. 그런데 저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우리가 그를 어디에 데려다 놓았는지 보게. 저걸 보라니까. 아, 이제는 꼼짝 못 하게 만들었어! 저기 매 맞아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잖아. 같은 부류인 매춘부 하나가 와서 저렇게 발을 씻어 주고 있어. 그런데도 그는 모르고 있군.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 텐데 말이야. 자, 여러분, 이 일을 위해 한잔합시다. 저기를 보라니까...”
보십시오. 그분의 이름에 먹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려 했습니다. 자기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귀와 손발을 맞추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더럽히려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성경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오, 그분의 사역은 얼마나 놀라웠습니까!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아시겠죠? 그런데 여기 바리새인들은 말했습니다. “이제 잡았어. 아, 여길 보게. 이 잔치에 아마 1천5백 명은 모였을 거야. 그런데 저기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게. 매춘부와 함께 앉아 있잖아!”
아,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겠습니까! 휴! 흠! 그분께서는 그 평판 나쁜 여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몰래 들어온 것처럼... 그분께서 몰래 들어오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발을 씻겨 주는 하인을 비롯해 모두를 지나쳐 들어와 거기 앉으신 것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저 여자가 저기서 그의 발을 씻고 있군. 그가 선지자라면... 형제 여러분, 보십시오. 저 사람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선지자라면 자기 발을 씻는 여자가 어떤 부류인지 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앉아서 여인을 바라보셨습니다. 여인이 다 마칠 때까지 발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 하려고 하면, 예수님께서 때로는 앉아서 여러분이 하는 일을 지켜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칠 때까지 계속하게 두십니다. 그런 다음 상이 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그분을 위해 일하며 생애의 경주를 끝까지 달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 편에 서서 길을 가기만 한다면 마지막에 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는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치유되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500명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 500명이 모두 내일 아침에 죽더라도, 내일 저녁 저는 신유를 설교하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패배와 그 밖의 모든 것을 겪으며, 길의 끝에 이르러 일을 마칠 때까지 가게 두실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여인은 그분께 봉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저 발을 내어놓고 씻게 하셨습니다. 오, 만일 그분께서 “그러지 말아라” 하셨다면 여인은 깜짝 놀라 달아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인이 봉사하도록 두셨습니다.
여인이 다 마치고 자기가 하려던 봉사를 끝내자, 그제야 예수님께서는 저 뒤에 서서 그분의 이름에 먹칠하려던 위선자를 올려다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이 여자에게가 아니라 네게 말이다. 저 뒤에 서 있는 너, 네 마음속에 품은 그것 때문에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지. 너는 나와 교제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몰랐겠느냐? 하지만 너는 나를 이곳에 데려다가 조롱하려고 여기 앉혀 놓았다. 내 발을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나를 편하게 해 줄 것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나는 여기 앉아 따갑고 아픈데, 너는 내 얼굴에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다. 환영의 입맞춤을 하거나 내 손을 잡는 것도 부끄러워했다. 아시겠느냐? 네 손님들 앞에서 부끄러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들어온 뒤로 내 발을 어루만지고, 자기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씻고, 자기 머리카락을 수건 삼아 닦는 일만 했다. 그러니 이제 내가 선지자인지 아닌지 보여 주겠다.” 아멘!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잠깐 네게 말하고 싶구나. 네 많은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느니라.” 흠, 그들이 그분의 이름에 먹칠했습니까? 그들은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아 버렸다고 생각했고, 그 지역에서는 다시는 그분의 부흥회가 열릴 수 없도록 해 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영향력을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이 그 모든 상황을 뒤집는 데 충분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동네를 위해, 혹은 앞으로 만날 누군가를 위해 바로 그 사람이 아닐지 어떻게 압니까? 그분 편에 서십시오. 그분을 섬기십시오. 그분을 위해 무언가 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예수님 편에 서십시오. 그분을 선택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여러분이 보답을 받든 못 받든, 그분을 섬기십시오. 상관없습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병자를 위해 기도했어도 낫지 않았고, 방언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도 하지 못했으며, 예언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도 하지 못했다고 해 봅시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교회나 동네나 직장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입니다. 단 한 가지 일조차 하지 못했고, 한 사람도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도 누구 하나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않았지만, 그분을 섬겼습니다. 길의 끝에서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 모든 죄들이... 너를 위한 기도가 단 하나도 응답되지 않았을지라도, 너는 내 말씀을 근거로 왔다. 나를 믿었기 때문에 왔고 나를 섬겼다. 그러므로 네가 지은 많은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다고 말한다.” 제게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같은 말을 하고 싶어 합니다. 계속 그렇게 말하게 두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섬깁시다. 그들이 그분을 미워한 것은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시기했던 것입니다. 지금 하는 것과 똑같이, 사람들 앞에서 그분의 영향력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메시지의 영향력만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들은 그 일을 꺾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왜 그러려고 했습니까? 그분께서 그들의 모든 신조와 교회의 교리, 그들이 믿는 모든 것, 그들이 자기 신앙 등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반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에 반대하셨습니다. 그들과 한패가 되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이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어떻겠습니까? “오, 가야바여, 내 아버지의 훌륭한 사람이여, 나는 메시아다. 가야바여, 이리 오라. 저 물이 보이느냐? 이집트에서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물을 피로 바꾼 일을 기억하느냐? 가야바여, 기억하느냐?” “오, 젊은이, 나는 그 이야기를 아주 잘 알고 있소.” “좋다, 가야바여. 내가 모세가 말한 바로 그 선지자임을 보여 주려고, 이제 이 물을 피로 바꾸겠다. 자, 가야바여, 어떠냐?” “가야바가 바리새인이라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오,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너희 모두 조상들의 전통을 정확히 잘 지키고 있다.” “당신이 메시아일 수도 있겠군요.” 아닙니다. 그러셨다면 메시아가 아니셨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분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표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와서 “이리 오십시오. 제가 무엇을 할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제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거든, 처음부터 무엇인가 수상하다는 것을 바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반대하셨고 그들에 반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책망하셨고, 옷 입는 방식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활 방식과 모든 전통, 항아리 씻기와 솥 씻기, 손 씻기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책망하셨습니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너희는 수놓은 옷을 입고 높은 자리를 바라며, 길게 기도하고 과부들의 집을 삼킨다.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잠깐, 내가 누구누구 박사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 오, 정말로 그들을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이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그 율법주의자 무리를 깨뜨리려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계신다면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잠깐만요. 우리는 안식일을 지킵니다. 이런 일도 합니다. 이 모든 것도 지키고 저것도 지키고, 모든... 해마다 성금요일에는... 금식 기간, 곧 부활절 40일 전이 되면 우리는 늘 사순절을 지킵니다. 저는 40일 동안 담배를 끊습니다. 또 40일 전부터... 사순절 동안에는 술을 끊습니다.” 오! 조상들의 전통, 율법주의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애초에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제가 처음 가졌던 작은 성경 뒤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내게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마음에 분명히 새겨 두십시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담배도, 술도... 아니, 담배를 피우거나 씹지도 않고, 밀주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맞습니다. 제가 그것을 하면 그분께서 정죄하실 것 같아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집들을 방문할 때 여자들이 거기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면 한 자매님이 문으로 와서 “들어오세요,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없으면, 환자를 찾아가는 경우이고 저와 동행한 사람이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 병원이나 방으로 불러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로 와 주세요. 저는 어디에서 온 누구 자매입니다. 호텔에 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는데 아프십니다.” 그러면 저는 아내를 데리고 갑니다. 아내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다른 형제님을 데리고 갑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제가 거기 들어가는 것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어떻겠습니까? 아시겠죠? 누군가 제가 그러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그가 그 여자가 있는 데 들어갔어. 여자들을 쫓아다니는군.” 아시겠죠? 그것은 제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여러분도 결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가는 길에 걸림돌을 놓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기서 무슨 잘못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들어갈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든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 안에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의무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니다.
바울은 제게 “모든 것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주님께서 자신을 이해하시고 신뢰하신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주의자들은 “우리는 언제나 부활절 40일 전부터 금식을 시작합니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평소와 똑같이 먹습니다. “나는 콩을 싫어하니까 사순절에는 콩을 끊겠습니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돼지고기를 싫어하니까 돼지고기를 끊겠어요.” “사순절에는 술을 끊겠습니다.” 한 여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올해 사순절에 무엇을 끊었는지 아세요?” 저는 “아니요, 무엇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사탕이에요. 원래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거든요.” 아시겠죠?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금식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글쎄, 저는 해야 하니까요... 오랫동안 억지로 교회에 다녔어요. 왜냐하면... 그러니까, 저는 꼬박 일 년 동안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선생님이 하루도 빠지지 않는 사람에게 성경을 주겠다고 했거든요.”
형제여, 그것도 참 교회에 다니는 방식이군요. 저는 차라리 성경 한 권을 사겠습니다. 아시겠죠? 주님을 사랑해서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이 찬송이 생각납니다. 복되도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묶어 주는 그 유대. 같은 마음으로 나누는 교제는 저 하늘의 교제와 같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에는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다시 만날 날을 바라네.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에는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형제 여러분, 저는 그런 때를 보았습니다.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가지를 깨우쳐 드리려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시 만나려면 수요일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울던 때를 저는 보았습니다. 사실입니다. 사역자들이 이곳에 와서 “어떻게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였던 것입니다. 문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들이 저 뒤에서 서로 만나 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 꼭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수요일 저녁에 다시 만나요. 기도해 주실 거지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도 자매님을 위해 기도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형제들은 서로 악수하며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교제입니다. 아시겠죠? 서로를 기다리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일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바리새인들과 그런 사람들은 밀주 장사꾼이나 술주정꾼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들의 신조와 지도자들의 전통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자기 지도자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여기 대제사장인 높은 가야바가 있고, 다른 높은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갑니다... 가톨릭을 예로 들어 봅시다. 그들은... 그들을 헐뜯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도 똑같습니다. 가톨릭 신자 한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 사제를 사랑합니다. 제가 그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가 하나님의 일들을 보더라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더 이야기하며 답을 피할 수 없게 물으면 말입니다... 얼마 전 한 여자가 제게 “당신의 말을 듣는 것은 제게 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 여자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 교회와 사제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겨서, 다른 말을 듣는다면... 그는 그 사제에게 충실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가 믿는 것에 충실하고, 침례교인들은 자기가 믿는 것에 충실하며, 장로교인들은 자기가 믿는 것에 충실합니다. 자기 목사들에게도 그만큼 충실합니다. 우리도 그처럼 말씀에 충실할 수는 없습니까? 아시겠죠? 이제 그들이...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들이 말씀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지도자들이 자기 신조와 교리에서 벗어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귀를 기울였다면 말입니다. 메시아가 하실 일 그대로였습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그분을 붙잡았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자기 지도자들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둑질하거나 거짓말하거나 욕설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간음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이지요. 오히려 그런 일을 한 사람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훌륭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렇게 충실한 사람들에게조차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이제 가능한 한 빨리 서두르겠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충실했고 자기 지도자들이 당시 내세우던 신조를 굳게 붙들었습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그분의 사역이 그들의 교리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잠깐만... 형제 여러분, 이렇게 오래 말씀드리는 것을 지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다음에는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 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반드시 이것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는 신조가 있었고, 큰 교회들과 훌륭한 사람들,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거룩하고, 선하고, 온유하고, 훌륭하고, 존경받고, 명예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았고 영리하고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그것을 압니다.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을 때, 그분의 사역이 그들의 교리를 폭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자신이 그분과 함께 계심을 증명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똑같은 말을 인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라”라고 했습니다. 또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확증하신 사람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만일 그들이...
그 눈먼 사람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 나라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제 눈을 열어 주었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에게는 무언가가 있었지요? 분명히 있었습니다. 좋습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날을 보십시오. 아시겠죠? 우리에게는...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압니다. 그 역사가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까지 일으키며, 마귀들을 내쫓는 것을 압니다. 방언을 하고 방언을 통역하며, 예언을 내보내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꿈과 해석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완전하고 정확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나라의 지도자들이요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위대한 사람들이 우리를 미친 사람들 무리라고 말한다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시기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의 영과 권능과 말씀이, 그들이 사람들의 눈을 가려 놓은 교리와 신조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젊은 형제 여러분, 여기 이 교회들로 나가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이루어 내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길을 막지 마십시오. 그곳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계속 그것을 가리키십시오.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머무십시오. 광신주의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실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실하고 거룩하게 말씀과 함께 머무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사역이 그들의 교리와 교조를 폭로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분을 없앨 수 있는 기회라면 무엇이든 잡으려 했습니다. 그분을 없앨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서 행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려 했습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여길 보십시오... 누가... 이 사람은...”
어느 날 그분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를 고치셨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는 나병 환자였습니다. 그분께서 고치셨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셨을 때, 그곳에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저는 사람들, 몸이 말라 오그라든 사람들 약 2천 명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한 사람에게 가서 그를 고치고는 떠나셨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가 메시아라면 그들을 다 고쳤을 겁니다. 여러분 말처럼 긍휼이 가득하다면 그들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었겠지요.” 그분께 검은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찾아서 했습니다.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분께 뒤집어씌웠습니다.
좋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없앨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이용했습니다. 그분의 출생을 의심했습니다. 그분의 출생에 의문이 있다며 사람들 앞에 내세웠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던 요셉은 목수였고,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그분께서 태어나셨는데, 어떻게 처녀 탄생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사람들 앞에 내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그분께 검은 낙인을 찍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보시오! 어디서 왔소? 그 어머니를 보시오. 그저 거리의 매춘부가 이 아기를 낳은 것 아니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뒤에, 여자는 이미 임신해 있었고... 아기가 태어날 참이었는데, 요셉이 그것을 감추려고 결혼한 뒤 무슨 이야기를 지어내고 다니는 거요... 아니, 이건 마귀의 짓이라는 것을 모르겠소? 그런 출생이라니까!” 그들은 그것을 사람들 앞에 내세웠습니다. 성경의 이사야 9장 6절, “처녀가 수태하리라”는 말씀은 읽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들은 말씀에서 떠났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권위에 먹칠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세의 제자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들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는데도 그분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메시아가 자기 성전에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온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가 어디 있습니까? 어느 학교를 나왔습니까? 형제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모두에게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같은 이들입니다. “그는 무슨 교단의 회원증을 가지고 있습니까? 설교할 권한은 어디서 받았습니까? 안수도 받지 않았고, 설교할 권리조차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임명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내가 행하는 일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입증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너희의 서류가 필요 없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그런 것을 들이댔습니다. 그분의 교리에 대해서는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의 교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모든 전통에 반대하오! 바리새인들에게도 반대하고, 사두개인들에게도 반대하고, 그들 모두에게 반대하오. 그러면 그 교리는 어디서 나온 것이오?” 물론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뒷받침하셨습니다! 그 눈먼 사람이 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옳고 그분이 그렇게 틀렸다면 이상한 일이군요. 그런데 그분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제 눈을 열어 주실 수 있고, 여러분은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아직 보신 적조차 없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오, 저는 그분 편에 서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제자라고 하시고, 여러분은 그렇게 옳으며 그분은 그렇게 틀렸다고 하시니, 그분이 하시는 일을 여러분도 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아멘! 그분의 교리는 바로 거기에... 그들은 그분과 그분의 모든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메시아라는 그의 주장은 틀렸소. 교회에 오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메시아일 수 있소? 어떻게 메시아일 수 있단 말이오? 여기 우리가 이스라엘의 크림, 곧 정수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크림은 시어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파리들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걷어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 우리가 교회요, 택함받은 자들이오. 우리는 전통을 지켰고, 모세의 율법을 지켰고, 이 모든 것을 행했으며 이렇게 해 왔소. 그런데 이 사람이 와서 우리의 주장을 비난하오. 게다가 우리의 거룩한 제사장,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온갖 일을 한 우리의 거룩한 아버지와 우리의 모든 위대한 인물을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거요!”
오! 아시겠죠?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께 그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그러나 무엇이 있었습니까? 말씀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이 그분을 입증했습니다. 아멘! 오, 그분을 보고 그 사역을 알도록 미리 예정된 참 신자들, 미리 예정된 이들에게는 그분이 거기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무엇에 관해 입을 열어 말씀하시든 말든, 그들은 그분이 바로 그분이심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날 그 작은 매춘부가 물 한 통을 길으러 우물가에 나왔습니다. 그때 저쪽에 앉아 계시던 중년의 남자가 말씀하셨습니다. “마실 물을 좀 가져다주오.” 여자가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관습은 없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여자는 ‘아, 잘난 체하는 유대인이로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유대인이시군요. 유대인이라면 물론 종교적인 분이시겠지요.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경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 야곱은 이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가축에게도 여기서 물을 먹였습니다. 물은 깊은데 당신에게는 물 길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산에서 경배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잠깐만.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참말을 하였다. 네게 다섯이...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미리 예정된 그 작은 매춘부가 물동이를 내려놓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아시겠죠? 그 씨가 거기 놓여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물뿐이었고, 그 물이 그 위에 내린 것입니다. 그 물이 바리새인들에게 내렸을 때, 그들은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맺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나올 것은 잡초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리 예정된 씨에 생명수가 닿자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틀림없이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도시로 갔습니다... 전할 것이 있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예수님 편에 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모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 매춘부는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시겠죠? 왜 그랬습니까?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그 표적들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임을 알았습니다. 달리 볼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나다나엘이 그곳으로 걸어왔을 때, 아마 빌립 앞에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빌립, 나는 이 일에 대해 잘 모르겠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보았어.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아.” 그러나 그는 그분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습니다. “가서 그분의 말을 들어 보겠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겠어.” 그가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무슨 일이... 물이 그 미리 예정된 씨에 닿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씨가 거기 놓여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 빛을 내도록,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 씨를 심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형제여, 제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거기입니다. 제가 믿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전하면 말씀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사람들은 이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갑니다. 상관없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씨에 닿을 것입니다. 닿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생명으로 힘차게 솟아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눈먼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도록 이 일이 이루어졌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알고 계셨습니다. 좋습니다. 미리 예정된 사람들은 성경에 부합하는 그분의 표적들을 보고, 말씀이 그 일들을 입증했다는 것을... 아니, 그 일들이 말씀을 입증하여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도록 미리 예정되었고, 그것을 볼 바로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음을 보았을 때 말입니다. 영생을 얻도록 미리 예정된 사람들은 그것을 찾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그들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리라.” 아멘! 저는 바로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행위로 되지 아니하고, 행동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강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제가 무엇을 했고,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어떤 분이시든, 저는 그분의 일부입니다! 아멘! 제가 구원받은 것은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이며,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아들이므로 그분의 일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신뢰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여기 성경 구절 몇 개는 건너뛰겠습니다. 그분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음에는 그분을 사역 현장에서 끌어내려고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분의 형제들과 어머니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그가 몹시 지친 것 같습니다. 잠시 따로 데려가 쉬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위선자들 말입니다. 그들은 그저... 문제는, 그들이 단지 원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하려던 것은 그분을 치워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지쳤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일하다 지쳐 죽으면 좋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나가실 때마다 기적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아갔습니다. 그날 그분께서 해변에 서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며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을 때, 제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크레이스 형제님, 저도 그물과 낚싯대를 버려두고 나무토막 하나를 가져다 앉아서, 거기에 등을 기대고, 그분께서 배에 올라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 세상에! 그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하실 때 그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아멘!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시켜 그분을 사역 현장에서 물러나게 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가 과로하고 있습니다. 저쪽으로 데려가 쉬게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떻게든 그분을 치워 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란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그분과 함께 다닌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덫에 빠뜨릴 틈을 찾으려 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사람들은 그 틈을 찾으려고 그분을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분께 동전 하나를 주면서 “랍비여”라고 했습니다. 동전을 드리기 전에 말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유대인입니다. 당신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오, 그 위선자들! 아시겠죠? “당신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랍비여!” 그들은 그분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형제님. 우리 지방에 오시니 정말 기쁩니다.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는 형제님을 온 힘을 다해 지지합니다. 부흥회를 여신다면 우리도 협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분을 잡을 덫을 놓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심을 압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담대하신 것을 압니다. 오, 두려움 없이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당신이 위대한 선지자라는 것을 압니다. 이런 시대에 그런 식으로 두려움 없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는 하나님의 선지자뿐이니까요. 그러니 당신께서 누구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것을 압니다. 랍비여, 당신은 위대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유대인이고 형제님 편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랍비여, 카이사르에게 공세를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오, 그 위선자 무리! 아시겠죠? 성령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전이 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아, 예, 있습니다. 여기 동전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라. 여기에 새겨진 글이 누구의 것이냐?”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그분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덫을 놓았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함께 다니다가 그분께 싫증을 느끼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아, 우리는 생각하기를, 틀림없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조차 “우리는 틀림없이 이분이... 하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요한도 사람을 보내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리이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아시겠죠? 오, 그것을 다 아시면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사셨겠습니까. 하지만 그분께는 한 가지 목적, 하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을 덫에 빠뜨릴 틈을 찾으려고 함께 다녔습니다. 오늘날도 똑같다고 말하는 것이 불경한 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집회에 와서 따라다니며 그저 틈을 찾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얼마 전에 이 교회에 다니는 한 자매님이 다른 교회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을 일으키고 계시던 곳이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다른 자매들에게 말했습니다. “있잖아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분은 참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실 것 같아요. 자기 가족이나 누구든지 이렇게 말 한마디만 하면 낫게 할 수 있겠지요.” [브래넘 형제님이 손가락을 딱 튕긴다.] 그런데 상대방 여자는 공교롭게도 제퍼슨빌 출신이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동족 가운데서는...”이라고 하셨지요. 아시다시피 자기 고향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지금 그것이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대가 바뀌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 사람은 아이들 중 하나라도 코를 훌쩍이면 꼭 의사에게 데려가요.” 참 가엾고 타락하고 미혹된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그저 헐뜯고 싶어 하는 여자입니다. “그 사람은 자녀들이 아프면 의사에게 데려간다니까요”라고 했습니다.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렇지 않다면 마귀에게서 온 것이겠지요. 물론입니다. 의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의술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그런 의사들을 많이 아는데...”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저도 똑같은 부류의 설교자들을 많이 압니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면서도 신유를 믿지 않고, 하나님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말씀을 다룹니다. 저 밖에서 의약품과 수술 등을 다루면서 하나님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오늘 밤 제가 저 차를 타고 집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면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차를 마련해 주셨으니, 저는 그 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다만 분별 있게 사용하십시오. 그것들에 정신없이 빠지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똑같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회심한 지 얼마 안 된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들이대어 그들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일들의 이름에 먹칠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먹칠하려 했습니다. “아이 하나가 아플 때마다, 자기 아이들 중 하나가 아플 때마다 의사에게 데려가요.”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의사가 할 수 없다면... 저는 병원에 가기 전에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구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의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어딘가에서 덫을 놓을 틈을 찾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로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지금도 똑같이 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가시며 자비를 보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전적으로 그분을 거스르더라도 그렇게 하십니다. 왜입니까?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지만, 그들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분을 부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그분을 원합니다. 그들은 하려 하지 않습니다... 누가 소리 높여 찬양하면 조롱합니다. 누가 신유를 설교하면 조롱하며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직 충분히 심하게 아파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계단을 뛰어 올라갈 때 한 여자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바로 여기서 설교하고 있었고, 남자 한 사람이 저 문에 서서 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곳을 지나갔었습니다. 이 길 위쪽에 살면서 거기서 소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내 소가 빌리 같은 종교를 갖게 되면 그 소를 죽여 버리겠어.” 그로부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습니다. 저는 급히 그곳으로 갔습니다. 남편은 가톨릭 신자였고, 사람들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 여자는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눈이 부풀어 오르면서 말했습니다. “그분을 불러요. 불러요, 불러요, 불러요. 빨리, 빨리요.” 그 여자의 남자 형제가 달려와 저 문에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계속 제게 손짓했습니다. 이곳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얼마 뒤 누군가 돌아와 여기 책상 위에 쪽지를 놓았습니다. “누군가 병원에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그림 스넬링 형제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다녀오는 동안 제 자리를 맡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저 일어나 찬송을 인도하려던 참이었고, 그때는 아직 설교하도록 부르심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올라와 찬송을 인도했고, 저는 밖으로 나가 차를 타고 급히 그곳으로 갔습니다. 제가 계단을 올라가는 바로 그때, 그 여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장과 신장을 비롯한 모든 것이 반응합니다. 제가 달려 들어갔을 때는 이미 얼굴을 덮어 놓았고, 그렇게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거기 서 있던 나이 든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분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형제님을 부르짖었습니다.” 바로잡으려 했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아시겠죠? 죄를 짓다가 한 번의 죄로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는... 얼굴 깊숙이...
그 여자는 적갈색 머리의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고, 커다란 갈색 눈은 튀어나온 채 반쯤 감겨 있었습니다. 너무 힘을 쓴 탓에 얼굴의 주근깨들이 작은 돌기처럼 온 얼굴에 도드라져 있었으며, 입은 벌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바라보니 남편이 거기 서서 말했습니다. “빌리, 사정이 이렇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연옥에 갔으니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연옥에 갔습니다. 두 시간쯤 전에 당신 교회 앞을 지나가면서, 우리 소가 당신 같은 종교를 갖게 되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가 아니라 여기서 자기 혼을 정결하게 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고난이 닥치면 그분을 원합니다.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번 크게 다쳐 보게 하십시오. 누구를 맨 먼저 부르는지 보십시오.
그분의 제자들조차 한 번은 폭풍을 만났을 때, 그분을 보고도 조금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살아날 모든 희망이 사라지자 그분을 모셔 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조금 의심스럽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면 그분을 모셔 들이고 싶어집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필요했으므로 모셔 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종종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폭풍이 닥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그분께서는 저 위에 앉아 그들에게 자신이 필요해질 때까지 지켜보셨고, 그 후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우리에게 그분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폭풍이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오늘 저녁 그분 편에 섭시다. 그분의 말씀 편에 섭시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분 편에 섭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오늘 저녁 그분과 함께합시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작은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 그분을 우리의 작은 배 안으로 모셔 들입시다. 여러분은 바라보며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말씀에 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말하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분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때로는 조금 으스스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 저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여러분의 이 생명이 떠나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분을 모셔 들이고 싶어질 것입니다. 폭풍이 지금보다 더 심해지기 전에 지금 그분을 모셔 들입시다.
저는 그분을 제 마음속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제 삶을 가득 채우셔서 제 온 존재가 그분으로 흠뻑 젖고, 제 생각과 사고, 저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다스림과 지배를 받기를 원합니다. 제 자신을 완전히 잊어서, 제가 알고 보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기를 원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오고 싶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제가 말씀드린 이 일들을 여러분에게 허락하신다면, 제가 여러분 가운데 왔을 때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귀한 찬양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앉아, 한 사역자가 일어나 자기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다른 사람도 자기 교회에서 본 일을 말하며, 또 다른 사람도 자기 교회에서 본 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그들이 함께 모여 교제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쪽에서 하신 일과 저쪽에서 하신 일을 보고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채찍질을 당하고 약속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들이 만일... 다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한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사람들과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며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격노하며 백성이 헛된 일들을 꾀하는가?”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자 성령께서 그들이 함께 모인 장소를 흔드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임이 그런 모임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에게는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굳게 지켜지고, 이제 우리 빛을 비추어 스데반과 같이 됩시다. 그는 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산헤드린 공회 앞에 어쩌면 50만 명이 서서 모두 손가락을 그의 얼굴에 겨누며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사람이 걸어 나갔을 때, 천사처럼 빛났다고 했습니다. 얼굴에 어떤 빛이 비쳤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사에게 반드시 빛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사람... 천사는 사자이며,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자입니다. 그는 걸어 나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아버지들아,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우리 조상들은...” 그들이 어떻게 인도받아 나왔는지, 아브라함과 그 밖의 일들을 말하고, 이어서 이런저런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가 호되게 지적하는 대목에 이르러 말했습니다. “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않은 자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느냐?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한다.” 그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빛났던 것입니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믿어 온 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바울 성인의 심장 문을 두드렸을 때에도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믿어 온 분을 내가 알며,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는 줄 확신하노라.” 아멘!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열한 시 25분 전까지 여러분을 붙잡아 두어 죄송합니다. 여러분에게 평소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여러분은 참 잘 들어 주셨습니다. 한 분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제가 두서없고 긴장한 채 나눈 짧은 이야기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 어딘가에 작은 씨를 부어 주셨기를 믿고 바랍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 씨에 닿아, 우물가의 여인과 영생을 얻도록 미리 예정된 다른 사람들처럼 생명으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빌 형제님, 마무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잠깐...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을 섬기시겠습니까?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아멘. 그분을 섬기시겠습니까? 아멘.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멘, 아멘, 아멘. 우리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성경은 참됩니다. 아멘. 저는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일어섭시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님께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멘.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우리가 언제나 최선을 다해 그분을 섬기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고, 보존하시고, 지키시고, 우리 사이를 살피시며, 여러분에게 불을 붙여 그분의 왕국에서 큰일들을 행하게 하시고,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전도 현장에 있는 저를 도와주시기를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우리 아버지, 오늘 저녁 우리는 존귀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경모하는, 사랑스럽고 귀한 그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30년이 넘도록 이 낡고 작은 건물에 모였던 남자들의 무리를 생각합니다. 발이 거의 얼어붙을 듯한 추위 속에 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발을 난로에 대고 주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한때 이 땅을 걸었고 그곳에 발을 대고 앉아 있던 귀한 발들을 생각합니다. 연로한 수어드 형제님, 스파크스 형제님, 조지 디아크 형제님, 그리고 한때 그 난로에 발을 대고 앉아 있던 다른 많은 귀한 혼들을 생각합니다. 이제 그들은 주님을 만나러 떠나갔으며, 오늘 저녁 저 무덤에서 쉬면서 높은 곳에서 들려올 그 위대한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으며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이제 의로우신 심판자이신 주님께서 그날 그들에게 주실 의의 왕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이 모퉁이에 작은 교회를 봉헌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오셔서 교회가 은밀하고 신속하게 떠나게 될 때, 이 교회가 서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제단에 나왔던 혼들, 주님을 섬겼던 혼들, 그리고 30년 동안 이곳을 오가며, 이쪽저쪽으로 거듭 뿌려졌던 복음의 씨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저희가 미리 예정된 생명에게 말씀을 전하려고 기울인 이 미약한 노력으로 인해, 그 귀한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그날 그곳에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여기 있는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피로 덮이고 예수님께 닻을 내린 채 그날 그곳에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저희는 그분을 신뢰합니다.
이제 우리 중 많은 이가 일요일 아침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저희를 만나 주시고 생명의 빵을 떼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러들 형제님과 그가 있는 저 위의 교회, 그와 함께 나그네 길을 가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주님, 그 귀한 젊은이와 함께해 주십시오. 그가 자라는 모습과 이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저는 이들이 저의 디모데들처럼 느껴집니다. 아버지, 러들 형제님의 사역에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니 잭슨 형제님께 복 주십시오. 오, 하나님, 그와 우리 크레이스 형제님, 스넬링 형제님과 그 자리를 이어 맡으신 다른 형제님, 빌러 형제님, 그리고 또... 주님, 이곳의 모든 형제님들, 네빌 형제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의 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복으로 저희를 향해 미소 지어 주시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채워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오늘 저녁의 짧은 말씀을 결코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 작은 여인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서 있었지만, 예수님께는 보살핌이 필요했고 여인은 그것을 해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그분의 종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조차 하지 않아 내버려진 일이었고, 그들은 그분을 조롱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상을 기대하지 않고 그분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상은 주어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희도 그렇게 하게 해 주십시오. 계속 힘써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날 이 말씀을 듣는 것뿐입니다. “잘하였도다, 나의 선하고 신실한 종아. 세상의 창건 때부터 너를 위해 예비된 주의 기쁨에 참여하라.” 하나님, 저희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주시고 서로 교제하게 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저희와 함께하시며, 저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이끌고 인도해 주십시오.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 주 예수님의 오심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복되도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묶어 주는 그 유대. 같은 마음으로 나누는 교제는 저 하늘의 교제와 같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에는 이제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다시 만날 날을 바라네. 성경은 그들이 찬송 하나를 부른 뒤 나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일요일 아침에 다시 뵐 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