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만 그대로 서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요청이 있으시면 손을 드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제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아침 저희를 하나로 녹여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저희 마음에 넓게 부어진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또 오늘 아침 다시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이 시간을 맞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이 시간이 저희에게 얼마나 뜻깊었는지 감사드립니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친구들, 곧 아버지의 자녀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에 있는 그 아름다운 사랑과 진실한 영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모일 때, 참으로 성경 말씀이 옳음을 압니다.
이어지는 예배도 복 주십시오. 저희 형제요 목사인, 아버지의 종 파커 토머스 형제님을 복 주십시오. 성령님께서 그에게 역사하시고 도와주십시오. 주님, 그는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또 오늘 아침 이곳에서 손을 든 모든 분의 마음속 소원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안식일에 온 땅에 있는 주님의 모든 종을 복 주십시오. 어디서든 강단에 선 주님의 사역자들에게 기름부어 주십시오. 병든 이들은 치유받고, 잃어버린 이들은 구원받으며, 준비된 이들은 성령을 받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을 있게 하셨으니 오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그 훌륭한 옛 찬송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신뢰함이 참으로 달콤합니다. 그저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저 그분의 약속에 기대며, 그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아는 것.” 이 집회는... 저는 여러분의 귀한 목사님, 우리 파커 토머스 형제님께, 언제 이후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참석한 집회 가운데 이번 집회가 영적으로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집회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내려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 오늘 밤에는 내려가서 몇 마디만 하고 사람들을 강단으로 불러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아.” 아시겠죠? 저는 “파커 형제님은 가르치는 분이신데, 제가 거기 가서 무슨 보탬이 되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끊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계속 역사하시니... 그러다 어느새 내려다보면... 한 시간쯤 됐겠거니 합니다. “틀림없이 아홉 시가 다 됐겠지.” 그런데 거의 열한 시입니다. 그러니 그저... 우리는...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것이 정말 좋고, 너무나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위쪽 태버내클에서 열린 학교, 아니 대집회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압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제가 이 근처에 산다면 저 위 교회에 속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정말 그러겠습니다. 바로... 저는 이미 그곳에 속해 있습니다. 제 말은 그곳에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침례를 받아 그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미 그곳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침례를 받아 그 위대한 교제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침례교회 출신입니다. 침례교인들은 사람이... 믿을 때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다고 믿습니다. 또 여러분이 크리스천 교회나 다른 어떤 교회에 다녔고, 그곳에서 침례교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침례, 같은 예식으로 침례를 받았더라도, 침례교인이 되려면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물로 침례를 받아 침례교의 교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주 예수님의 교제 안으로 들어온 것이 기쁩니다. 그것이 영속하는 침례입니다.
들어올 때 바깥에 한 형제님이 서 계셨습니다. 영화 촬영기를 가지고 계셨는데, 저희가 차를 후진해 들어갈 때 태엽을 감고 계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직 믿으라”를 부르시는 줄 알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그 귀한 형제님을 보았습니다. 무언가가 “그가 있는 곳으로 나가거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영화를 찍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십 년 전 펜실베이니아에서 아내가 암에 걸렸는데... 저희 집회, 아주 초기에 열었던 집회 중 하나에서 아내가 암을 치유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멀리 이곳까지 내려와 계셨습니다. 성함을 로어크 형제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아이 하나가 머리를 말끔히 빗고 서 있었습니다. 아주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제가 “이분이 네 아버지니, 할아버지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제가 “이 근처에 사니?” 하고 물었습니다. “샬럿에서 왔어요.” 말투에 슬그머니 드러납니다. 남부에서 왔다는 걸 알겠더군요. 말투가 그걸 드러냈습니다. 귀여운 녀석이었습니다. 키가 이만한 아주 조그마한 장난꾸러기였지요. 참 귀엽습니다. 저는 그런 꼬마들이 좋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에는 저의 자그마한 스웨덴 형제 한 분이 와 계십니다. 한 번은 제가... 그분을 알지도 못하면서 온 힘을 다해 그분 편에 선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막 스웨덴에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조셉 형제님이 시카고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문제 삼았습니다. 아니, 그분이 그저 형제로 지내기를 원하며 누구든 손을 내밀어 “악수합시다” 하면 교제하려 한다는 것을 문제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조셉 형제님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들은 “그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그런 사람들을 자기 교회에 들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늦은 비 운동 사람들이니 뭐니 하면서 말입니다. 저희는 시카고에서 집회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하지만 우리는 초교파여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들이면 저를 교회에서 쫓아낼 겁니다.” 제가 “그러면 우리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 형제님이 못 들어오신다면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시카고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줄곧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 왔습니다. 물론 우리가 앉아서 성경을 토론하려 든다면, 성경에 관한 한 서로 반 마일 이상 빗나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형제 사랑에 관한 한 우리는 하나입니다. 저는 그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제가 믿는 것과 같은 것을 믿으시고, 우리는 함께 교제를 나누어 왔습니다.
이제 저는 아프리카 선교지로 가서, 큰 학교들이 있는 곳에 집회를 마련...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 자그마한 형제님은... 아무런 후원도, 누구의 재정 지원도 없이, 다만 마음속에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 수천 명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퍼슨빌의 저희 교회에 오셨고,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 주셨습니다. 저도 건너가서 그분을 돕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저 아래 하워드 존슨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 친구들 몇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이 바로 조셉 형제님이었습니다. 앉아서 저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보니 저희는 바로 옆집에 묵고 있었습니다. 저는 환상 때문에 며칠 동안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대로 다 말하지는 않았는데, 그 일로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따로 가서 지나온 일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길을 가다가 어디를 놓친 것일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기도하고 이곳으로 오기 바로 전, 저희가 제 방에 서 있을 때 무언가가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신부 나무에 대해 말씀...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이 나빠져서 “그건 길게 해야 하니 건너뛰는 게 낫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걸어가는데... 무언가가 “조셉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가거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크고 위풍당당한 소나무 사이를 걸었습니다.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이 “강 저편에 한 땅이 있네...” 하고 노래하는 듯했습니다. 거기서 저의 자그마한 친구와 서서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일을 그분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분과 저만 알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주님께서 삼십 년 전에 이 성경 말씀을 주셨지요. 하지만 그 아래 부분도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제 안에서 무언가를 일으켰습니다. 성령님께서 내려와 저희를 온통 감싸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고맙습니다, 조셉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문으로 돌아가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집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왜 처음 몇 절만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은 성경을 집어 드시고 일부분만 읽으신 것을 아십니까? 그때 성취될 만큼만 읽으시고 나머지는 남겨 두셨습니다. 그 부분은 당시의 그분에 관한 것이었고, 다음 부분은 그분께서 두 번째 오실 때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밤 그것에 관해 말씀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성경을 가지고 혼자 숲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그 일로 제 마음이 크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생각해 본 적도, 읽어 보려 한 적도 없었습니다. 한, 삼십 년, 삼십일 년쯤 전의 일인데, 그분께서 제게 하신 말씀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난 육 개월 사이에, 그날 아침 환상의 마지막 부분이 성취되었는데 여기에 이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어려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 그저 어느 쪽으로 돌아서야 할지 몰랐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조셉 형제님이 “하지만 나머지 부분을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조셉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참된 무언가가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는 오늘 오후에 나가서 그분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실지 알고 싶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제 마음이 훨씬 편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저 두세 절을 읽었는데 “아, 내가... 왜 이걸 안 읽었을까?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셉 형제님은 우리를 떠나 아프리카로 가서 집회를 준비하실 것입니다. 파커 토머스 형제님께서는 참으로 친절하게도 내년 대집회 때 다시 와 달라고 저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를 믿고 바랍니다. 내년에 이곳에서 여러분 모두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제는 참으로 달콤합니다.
이제 정오 전에 이곳을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식사도 하시고, 쉬시기도 하고, 또 오늘 저녁에 다시 오실 수 있으니까요. 형제님, 저녁 예배가 있습니까, 아니면 오후 예배가 있습니까?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님, 아마 오늘 오후에 침례 예배를 드릴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받기 원하시는 분은 누구든지... 어디에서 합니까? 형제님 교회에서 합니까? [형제님이 “아닙니다. 저희 집 뒤에서 합니다. 뒤쪽에 호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 그렇군요. “여기에 물이 있으니 무엇이 우리를 방해하겠느냐?” 좋습니다. 내시 여러분 모두 내려오셔서 물에 들어가십시오. 아직 물에 잠기는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받지 않으셨다면, 오늘 오후에 파커 토머스 형제님의 집... 목사관으로 오십시오. 침례 예배를 위한 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단번에 확실히 해결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지 않습니까?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것이 참되지 않다면 무엇이 참된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위 지방들을 지나가다가 어떤 제자들을 만납니다. 거기에 훌륭한 침례교 설교자 한 사람이 설교하면서, 성경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바울이 지나갔는데, 바울의 친구이며 천막을 만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분명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 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아굴라는 로마의 첫 번째 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을 추방하자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문제를 놓고 가톨릭교회와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때 베드로는 거기 어디에 있었습니까? 좋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추방당했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고는 거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나중에 돌아갔을 때, 그들은 온갖 교리를 들여온 그곳의 주교들에게 경고하곤 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여러분의 첫 번째 가톨릭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두 번째 가톨릭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에 갔을 때 간 곳은 두 번째 교회였습니다. 누가 바울이 첫 번째 교회에 갔다는 것을 제게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그런 교리를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상에 반대하는 가르침을 받은 유대인인 베드로가 교회 안에 우상을 들여놓았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말씀에 그토록 엄격하고 말씀을 굳게 지켰던 베드로를 기억하십니까? 그런 그가 사람이 만든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저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 바울이 에베소의 위 지방들을 지나가다가 어떤 제자들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행복해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침례교인들에게는 참으로 결정적인 한 방이 아니었습니까! 침례교인은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첫 출발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아볼로가 바로... 그가 말하기를... 그는 그들이 이미...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환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은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이미 그들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바울이라는 자그마한 형제가 있습니다. 그 형제가 올라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더 분명하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위 지방을 지나가다가 이 침례교 신학자를 만납니다. 훌륭하고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회중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그들이 “우리는 성령님이 계시는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러면 너희는 어떻게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아, 우리는 침례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무슨 침례를?” “요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그는 회개의 침례만 주었고[아직 희생물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죄들의 사면을 위한 침례를 준 것은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가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계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필수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침례를 받았느냐?”, 혹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어떻게”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가 “요한의 침례를 받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참으로 요한이 회개의 침례로 침례를 주며 백성에게 말하여 그들이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며 예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제게는 그것이 훌륭한 오순절 교리입니다.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받지 않으셨다면 오늘 오후에 내려오십시오.
그리고 얼마 전의 일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의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저 앞길로 떠나셨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제게 말씀하셨는지... 제가 예정했던 사냥 여행을 건너뛰게 하시고 다른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무엇을 잡고 돌아오게 될지도 말씀하셨는데, 모든 것이 정확히,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저는 떠나기도 전에 그것을 교회에 말했습니다. “저는 길이가 아홉 피트인 은빛 털끝을 가진 회색곰을 잡을 것입니다. 뿔이 밑동에서 위까지 정확히 마흔두 인치인 순록도 잡을 것입니다. 그 순록은 전망이 트인 작은 지대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지역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그 교회 분들이 몇 분 앉아 계십니다. 교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브래넘 태버내클에서 오신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바로 이런 곳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몇 분이 확인하려고 저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역으로 들어갔는데, 모든 것이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그 은빛 털끝의 회색곰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정확히 아홉 피트였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장소에서 잡혔습니다. 순록은 누워서 산 아래에 있는 저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안내인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순록의 뿔이 마흔두 인치라면 저는 기절할 겁니다.” 저는 “그냥 쓰러지셔도 되겠습니다. 분명 그 길이일 테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줄자를 꺼내 재어 보니, 거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십육분의 일 인치도 넘지 않고 정확히 마흔두 인치였습니다. 저는 “믿지 않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일 년 전에 우리가 어떤 외딴곳에 갔을 때, 그는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이었고 집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오순절 신자입니다. 그는 안내인인 사우스윅 형제님입니다. 그가 “누가 이 일을 의심하거든 저에게 편지해서 물어보라고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주 깊숙한 곳에 있었습니다. 유콘에 있는 백야의 땅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그 안쪽 원주민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 물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물이 길을 막아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고, 대자연을 바라보고, 여러 가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계속... 에디가 목회자 한 분에게 환상 이야기를 계속하자, 그분이 “아, 그저... 제 동생을 그곳에 데려갈 수만 있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동생은 간질을 앓고 있습니다. 제 남동생 말입니다. 세 살 무렵부터 간질을 앓았습니다.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발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환상을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환상은 그냥 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그렇게 우리는 그 안쪽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모르는 사이에 그를 위해 두세 번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말은 스물한 마리쯤 있었습니다.
여행할 때에는... 보통 저는 꼬리에 연결 고리를 묶어 그런 식으로 말들을 잇곤 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줄지어 있는 말들을 통째로 잃게 됩니다. 때로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말들을 풀어놓고 갔는데, 어린 말들은 짐을 실은 채로 뒹굴기도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말을 많이 탔고, 아버지도 말을 타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뒤에서 말들을 몰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버드가 앞에 있었습니다. 에디 형제님, 버드 형제님과 저, 그리고 크리스 버그라는 또 한 분의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버드는 방울 단 말을 타고 앞에서 이끌고 있었고, 에디와 저는 뒤에서 메스키트에 빠진 말들을 끌어내며 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메스키트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말들이 거기에 빠지는데... 마치 유사와 같습니다.
말 두 마리가 빠졌는데,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투성이가 되어 말들을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마리가 뛰어들자 저도 그 위로 뛰어들어 이렇게 말의 머리를 받쳐 들었습니다. 우리는 밧줄을 걸어 이렇게 제 안장 앞의 돌기에 감았습니다. 그리고 말 한 마리를 써서, 다른 짐들을 잘라 떼어 내고 그 말을 거기서 끌어냈습니다. 그러고는 몸에 묻은 진흙을 이렇게 긁어 냈습니다. 아, 정말! 그 어린 말들은 도무지... 제멋대로 갑니다. 두세 살 된, 이제 막 길들인 말들입니다. 산길을 다니는 데 익숙한 말들이 전혀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는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안장에 올라 말을 타고 가고 있었고, 에디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들과, 그 위로 눈 덮인 경치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곳에 살게 해 주십시오! 장차 천년왕국이 온다면 저곳에 살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멋지게 머리 깎듯 다듬은 마당이며 큰 건물들, 불을 밝혀 놓은 마이애미의 모든 야자수며 원하는 것을 다 가지십시오.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인 곳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런 모습이 정말 좋습니다. 아, 저는 사냥하러 가서 산꼭대기까지 한참 올라가, 그 언덕 꼭대기에 앉아 두 손을 들고 울 수 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도 이렇게 있는 것을 좋아하시겠지요. 분명히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만드셨으니까요. 왜 사람은 이것을 더럽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왜 왜곡해야 합니까?” 저는 “주님, 언젠가 주님의 크고 끝없는 사냥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냥하시는 형제님들 모두를 그 길에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제가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곳에서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것은 원주민의 기도입니다.
그때... 우리가 그곳을 내려가고 있을 때, 제가 그렇게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환상 속에서 그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말은 스스로 멈춰 섰습니다. 제가 멈추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몇 분 동안 그 환상을 보았고, 환상이 사라졌을 때 그것이 버드의 동생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박차를 하나만 달고 있었습니다. 제 작은 말에 박차를 가하고 방향을 돌렸습니다. 서둘러 에디에게 달려갔습니다. 말 한 마리가 덤불 속으로 달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에디, 에디 형제님” 하고 불렀습니다. 그가 “무슨 일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버드의 동생에 관한 것입니까?” “예. 말들을 계속 몰고 가십시오.” 저는 말에 박차를 가해 메스키트와 그런 곳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한 십오 분 만에 말 행렬의 맨 앞으로 나갔습니다. 버드 옆으로 말을 몰고 가서 그의 안장 뒤쪽에 손을 얹고 “버드” 하고 불렀습니다. “예, 브래넘 형제님.” “제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았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뒤로 지난 이삼 일 동안, 형제님은 동생을 집회에 데려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예, 브래넘 형제님. 제 동생은 아직... 성령도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받았지만 그때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형제님의 동생은...” 하면서 그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가 “정확합니다. 바로 그렇게 생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형제님의 동생에게는 통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동생을 데려오도록 하십시오. 이곳으로 데려오십시오.” 알래스카 고속도로에 있는 곳입니다. 그가 살던 낡은 곳은 그곳에서 미국인들이 도로를 놓다가 몇 사람이나 죽은 곳이었습니다. 정부 시설은 모두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안내인 일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육백 제곱마일의 구역이 있었습니다. 그는 면허를 가진 안내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아주 원시적인, 매우 좋은 사냥터였습니다.
저는 “버드, 잘 들으십시오. 동생이 와서 다시 발작하거든 셔츠를 움켜잡고 ‘브래넘 형제님이 주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말한 뒤 그것을 난로에 던져 넣으십시오. 그러면 발작이 그를 떠날 것입니다. 저를 믿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마음을 다해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동생을 불러 그곳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는 산길을 내러 나갔습니다. 그의 아내는 몸집이 자그마한, 착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람이 난폭해졌습니다. 거칠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집을 나서서 아래쪽 어딘가로 간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동생에게 그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평소라면 그 자그마한 아내는 창문으로 뛰쳐나가든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을 피해 달아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구르며 몸부림치고, 마귀가 그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보자 문득 기억이 났습니다. 그녀는 저를 믿었습니다. 그 자그마한 여인이 그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에게 다가가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 사람 위에 걸터앉아 셔츠를 잡아 벗긴 다음, 뺨에 눈물을 흘리며 난로로 걸어갔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브래넘 형제님이 저희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것을 이 안에 던집니다.” 그 이후로 그에게는 한 번도 발작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그 환상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했을 때... 산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산꼭대기에서 그 순록을 쏘아 잡았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그 환상에 따르면...”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순록이 먹는 이끼가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몇 마일이고 훤히 내다보였고, 노란 이끼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형제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따르면, 셔츠를 입고 있을 그 사람 말입니다. 아래쪽의 에디가 그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지요. 이제 형제님께서는 아홉 피트짜리 은빛 털끝의 회색곰을 잡으실 거라는 말씀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형제님의 말씀을 의심하겠습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땅의 구석구석이 다 보이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만한 덤불 하나도 없습니다. 순록 이끼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곰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은 여호와이레이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예비하실 것입니다. 그때 다람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에디가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이 순록도 정확히 그렇게 누워 있었으니... 저는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형제님이 그 순록의 오십 야드 앞까지 다가가실 수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또 제게 말씀하신... 제 동생도 정확히 그대로 치유받았습니다. 일 년이 넘었습니다. 하루에 서너 번씩 발작하던 동생이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발작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평생 이 산에서 살았어도 은빛 털끝의 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 회색곰은 봤지만, 은빛 털끝의 곰은 못 봤습니다. 희귀한 종류입니다.” 저는 “하지만 여기 한 마리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머리... 뿔을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는 번갈아... 제가 소총을 들고, 내려오면서 번갈아 짐을 졌습니다. 그 순록 이끼 위로 산을 이렇게 내려와야 했습니다. 세상에! 나무가 있는 곳에 닿기까지 아래로 3.5마일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은 곰이 사는 지역도 아닙니다. 순록이 사는 곳입니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습니다. 서로 바꾸어 들었는데... 제가 지고 있던 그 전리품의 무게가... 순록 자체는 구백 파운드쯤 나갑니다. 하지만 고기는 거기에 두고, 저는 머리 쪽 가죽만 가져왔습니다. 뿔만 해도 150파운드쯤 나갔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렇게 어깨에 메고 산 아래로 끌어 내리려 애썼습니다. 우리가 한... 작은 빙하를 넘어왔을 때 그가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이제 거기까지 일 마일밖에... 말들이 서 있는 곳이 맨눈으로 보입니다. 산등성이도 전부 보입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 아홉 피트짜리 은빛 털끝의 회색곰을 잡으신다고요?” 저는 “석 달쯤 전에 제게 일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습니다. 버드, 형제님은 그것을 의심하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용서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제 마음이 너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곰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근처 어딘가에 있게 해 두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곰인데, 하나님께서 형제님께 말씀하신 곰이라니... 제 동생에 관해 형제님께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총에 탄환을 넣으십시오.” “그럴 시간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 아래로 계속 내려갔습니다. 한 반 마일쯤 갔을 때, 그는 짐을 지고 있었고 저는 소총을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쉬었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반 마일밖에 안 남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버드...” 하고, “거기에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바라보았습니다. “버드, 저 위쪽으로 이 마일쯤 떨어진 산꼭대기에 서 있는 저것이 뭡니까?” 그가 재빨리 쌍안경을 대더니 “브래넘 형제님, 젖소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맹세코 회색곰입니다. 저 흰 털이 오늘 오후 지는 햇빛 속에서 날리는 것을 보십시오. 은빛 털끝의 곰입니다. 저는 처음 봅니다.” 저는 “뭘 기다리고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여기서 그냥 쏘셔도 잡으실 것 같습니다. 이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버드, 환상에서는 제가 곰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치고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날 이미 그 산들을 최소한 이십 마일은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시 곧장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 오백 야드 거리까지 갔을 때 버드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전에 은빛 털끝의 곰을 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곰을 많이 잡아 보았지만 은빛 털끝의 곰은 처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곰 중에서 가장 사납습니다. 죽는 것도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곰은 다 그렇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하지만 주님께서 저 곰을 형제님께 주신 거지요?”라고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저는 작은 270구경 소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은 소총입니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여기서 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환상에서는 바로 곰 앞에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골짜기를 하나 더 건너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세상에! 한 250야드 앞에 앉아 있었는데, 크고 누런 이를 이렇게 꽉꽉 무는 것이 보였습니다. 커다란 건초더미 같았고, 두 귀 사이는 열여덟 인치나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컸습니다... 발은 이만큼 넓고, 발톱도 있고, 거기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아, 멋지기도 하고 사나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버드가 “흠!” 하더니 “브래넘 형제님, 어디를 쏘실지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등을 쏘십시오. 그러면 일어나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환상에서는 심장을 쏘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러면 그렇게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첫발에 잡았습니다. 내려오면서 그가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뿔을 지고 있었고, 줄자는 없었습니다. 그가 “그 뿔은 구십 인치쯤 되어 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마흔두 인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또 저는 에디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꼬마가 바로 여기에 손을 댈 것이고, 길이를 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짐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을 때... 곰은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다시 가야 했습니다. 곰을... 휴! 회색곰 가까이에는 말을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아시지요. 냄새만 맡아도 달아납니다. 곰을 실어 내려고 하다가 두세 줄의 말 행렬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짐 바구니와 짐 안장이 온 사방에 널려 흩어졌습니다. 말들은 회색곰의 냄새에 겁에 질렸습니다.
우리가 계속 내려가서 멈추었을 때, 에디와 그의 아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뿔을 재어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에디 쪽으로 물러서서 말했습니다. “에디, 우리가 여기에 오기 전에 제가 말했던 대로, 저 아이가 뿔 밑동에 손을 대는 걸 보십시오.” 그가 내려가서 줄자를 꺼냈습니다... 작은 줄자를 말입니다. 꼬마가 돌아와 그 위에 손을 댔습니다. 에디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그대로였습니다. 이렇게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것 좀 보십시오. 십육분의 일 인치도 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마흔두 인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오늘부터 일 년 뒤에는 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버드, 형제님은 그리스도를 믿은 지 얼마 안 된 새 신자입니다. 저는 형제님이 어디에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분께서 말씀해 주시는 대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 말할 것이고, 제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모릅니다...”
이제 저는 그 지역으로 다시 갈 것입니다. 내년에 제가 돌아오면 여러분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의 거의 두 배나 되는 불곰을 잡을 것입니다. 맞는지 아닌지 지켜보십시오.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서 있을 때, 땅에 누워 있는 곰의 뒷다리 위에 이렇게 손을 얹었습니다. 곰이 누워 있는데도 그 엉덩이에 이렇게 손을 얹을 수 있었습니다.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났습니다. 제가 일요일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시간이군요! 아, 여러분. 여기서 이런 작은 환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시지요? 목회자 형제님들이 가끔 의심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정신 감응일지도 몰라. 심리 작용일지도 몰라.” 다른 어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 대단하다는 심리학자들과 정신 감응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추측합니다. 어쩌다 이루어지기도 하고,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이었다가 저것이었다가 또 다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점쟁이란 무엇입니까? 왜곡된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잘못된 것이란 무엇입니까? 옳은 것이 왜곡된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결코... 그저 이따금일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요행을 바라는 것입니다. 요행을 바라지 마십시오. 자신이 올바른지 확신하십시오.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는... 온갖 “만일”과 “하지만”이 사라집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영광! 그분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니... 저와 함께 갔던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여기 오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프레드 소스먼 형제님입니다. 저기 앉아 계신데, 저와 함께 도슨에 가셨습니다. 그렇지요, 프레드 형제님? 저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차 앞 유리 위에 정확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맞지요? 아, 그런 일은... 함께 다니시는 분들 중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 묻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주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여러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내 정확히 그대로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함께 부릅시다. 그분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는 추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방주 안에 있습니다. 세상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아, 이 교제여! 하나님, 이제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주님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제 말은 실패합니다. 저는 그저 한 사람입니다. 저희 모두는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마음에 두시나이까?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 주님, 참으로 저희가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저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니셨다면 저희는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의 은혜가 저희 가운데 내려왔음을 생각해 봅니다...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저희 죄들을 용서하시고, 저녁때에 그러하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그토록 놀라운 방식으로 저희 앞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저희에게 알리셨습니다. 저녁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을 이렇게 오래 붙잡아 두어 죄송합니다. 이제 성경을 읽겠습니다. 짧은 본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삼십오 분이나 사십 분쯤 뒤에 마치겠습니다. 민수기 14장...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것은, 잘못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어떤... 몇 분 안에 여기서 무언가를 주실지도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이 가운데 임하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모르면 “그분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여기 올라오셔서 강단에 앉아 계신 이 형제님들 중 한 분에게 강하게 임하실 수도 있고, 여기서 무언가를 행하셔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실 수도 있습니다. 몇 분 안에 성령이 쏟아져 내리면, 집회가 앞으로 이삼 주 동안이나 끝나지 않고 밤낮으로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줄곧... 그분께서 무엇을 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나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민수기 14장 41절부터 45절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주의 명령을 범하느냐? 그러나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가 너희 원수들 앞에서... 패하게 하려 함이라.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거기에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칼에 쓰러지리라. 너희가 주를 떠나 돌아섰으므로 주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 뜻대로 산꼭대기로 올라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 밖으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때에 아말렉 족속과 그 산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이 내려와 그들을 쳐서 무찌르되 호르마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였더라. 이제 잠깐... 오늘 아침 이 본문에서 작은 교훈을 얻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일요일학교에 온 것은 가르침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구약과 신약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귀히 여기셨고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찾아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복을 어떻게 지켜 나갈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만큼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억하십시오. 저는... 다가오는 구월까지 계속 다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구월까지 집회와 집회 사이에 이틀 정도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보려는 것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몇 분 동안 서두르지 말고 살펴봅시다. 우리는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셨고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무엇을 저주하셨고 무엇을 복 주셨는지 알 수 있다면, 그것들을 본보기로 삼읍시다. 히브리서 11장, 아니 12장에 이렇게 말씀한 것으로 압니다. “...이렇게 큰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죄, 아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 길을 달려가자.”
이제 우리는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히브리서를 썼다고 믿는데, 여기서 그는 믿음의 사람들과 위대한 용사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쪽도 볼 수 있습니다. 제 집에는 마지막 말들이 실린 책이 있습니다... 뉴전트 형제님에게 오래전에 받은 책입니다. 이 땅에 살았던 위대한 남녀들의 마지막 말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영국의 피의 메리였던 것 같습니다. 죽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삶을 오 분만 더 얻을 수 있다면 내 왕국을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마지막 말도 있고, 스톤월 잭슨의 마지막 말도 있습니다. 그 위대한 남부 장군, 잭슨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반군인 여러분과 함께 잭슨 같은 장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디의 어떤 장군도 그와 견줄 수 없습니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잭슨은 죽어 가면서 말했습니다... 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곧 강을 건널 것이다. 그러면 나무 아래 앉아 쉬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드와이트 무디의 마지막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이것이 죽음인가?”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내 대관식 날이로구나.”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러 줍니다. 우리의 삶도 고귀하게 만들 수 있음을, 떠날 때 우리 뒤에 시간의 모래 위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저는 이 말이 좋습니다.] 그 발자국을,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인생의 장엄한 바다를 항해하다 외로이 난파당한 한 형제가, 보고 다시 용기를 얻으리라는 것을.
폴 레이더입니다. 폴 레이더에 대해 들어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저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 그분의 설교를 듣곤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그분의 노래 “오직 믿으라”를 온 세상에 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폴이 저쪽에서 죽어 가고 있을 때, 무디 성경학교에서 사중창단이 내려왔습니다. 폴이 제 친구 한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자신이 죽어 가는 것을 알았을 때, 암이었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은혜의 메시지를 가지고 이곳에 오는 대신[바로 그것 때문에 그가 죽게 되었습니다] 불같이 뜨거운 오순절 사람들에게 뿌렸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서 무디... 폴은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보스워스 형제님, 그분들은 모두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빌리 선데이도... 보스워스 형제님이 한 번은 시카고의 레이더 태버내클에서... 집회를 하셨습니다. 빌리 선데이는 거기에 삼 주 동안 있었는데, 자기가 가진 설교를 다 해 버렸습니다. 폴은 이 년쯤 거기에 있으면서도 계속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리가 폴에게 “폴, 자네는 언제 설교가 바닥나나?”라고 했습니다. 그가 “호스가 꺾여 막힐 때지”라고 했습니다.
폴이 설교하는 것을 들어 본 분이라면... 그는 창세기에서 시작해 요한계시록에서 끝냈습니다. 설교할 때마다 성경 전체를 다 설교했습니다. 저는 그를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는 무언가...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면 뒤로 한참 물러났습니다. 몸집이 아주 큰 사람이었습니다. 바지를 추켜올리고는, 여기서 힘껏 달려왔습니다. 큰 곰처럼 두 손을 뻗고 거의 강대상을 넘어갈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서 죽어 가고 있을 때 무디 성경학교가 사중창단을 보냈습니다. 병실의 차양을 모두 내려놓고 그들이 서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폴이 몸을 일으켜 말했습니다. “이봐요, 죽는 사람이 나요, 당신들이오?” 그리고 “차양을 올리고, 흥겨운 복음 찬송을 좀 불러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래서 그들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구주께서 죽으신 십자가 아래, 죄 씻음 받으려 내가 부르짖던 그곳에서, 내 마음에 그 피가 발라졌네. 오, 그 이름에 영광을! 그가 “루크는 어디 있나?”라고 했습니다. 그의 형제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루크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도 최근에 떠났습니다. 루크와 폴은 늘 함께 지내던 두 형제였습니다. 제 아들 빌리와 저와도 같았습니다.
그가 “루크는 어디 있나?”라고 했습니다. 루크는 옆방에 있었습니다. 형제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폴은 “루크에게 이리 오라고 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루크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루크는 울음을 억누르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폴이 몸을 일으켜 그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루크, 우리가 함께 참 많은 싸움을 겪었지, 그렇지 않나, 형제여?” “그래, 폴.” “생각해 봐. 지금부터 오 분 뒤면 나는 그분의 의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을 거야.”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러 줍니다. 우리의 삶도 고귀하게 만들 수 있음을, 떠날 때 우리 뒤에 시간의 모래 위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저도 그렇게 떠나게 해 주십시오. 무디가 가졌던 그런 간증을 가지고 떠나게 해 주십시오. 바울이 가졌던 것과 같은 간증을 가지고 떠나게 해 주십시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쳤노라.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구약을 근거로 돌아가, 짧은 메시지를 위해 이런 결론들을 끌어냈습니다. 제목은 “지레짐작”입니다. 여기 적어 두었는데, 웹스터 사전은... 웹스터는 ‘지레짐작하다’를 실제 권한이나 근거 없이 무언가를 감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것이 지레짐작입니다. 혹은 웹스터는 괄호 안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라고 해 놓았습니다. 그냥 당연하게 여기는 것, 또는 권한이나 근거 없이 나서는 것, 혹은 무언가를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저 지레짐작하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니까요. 이제 우리는... 해마다 휴일을 맞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그것을 보면 드러납니다. 이른바 평범한 미국 그리스도인은...
빌리 그레이엄도 한 번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른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술에 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관한 그의 글을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는 이른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나 죄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 같은 처지입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과거의 죄, 속이고 거짓말한 것을 그저 술에 묻어 버리려 합니다. 주말이면 술에 취하려 합니다. 그저 “그렇게 넘겨 버리지 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자기 죄를 잊는 방법이 그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냥 술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더 쌓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미국식 방법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얼마 전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주제로 말씀드리면서, 저기 계신 선한 소스먼 형제님과 함께 캐나다에 갔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너그럽게 저를 아주 큰 호텔에 묵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캐나다의 그 호텔에 와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클럽이 거기서 대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날 밤 들어가 보니, 거기에 미스 아메리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 끔찍했습니다! 온 사방에 위스키 병이 있었습니다. 저는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내려서 그 작은 직원을 보았는데... 두 사람이 내렸습니다. 남자들인데 서로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클럽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작은 엘리베이터... 저는 “세상에! 휴!”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 정말 신나게들 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래 보이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문 앞까지 올라가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복도 끝에는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둘 다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예쁘장한 여자들이었는데 속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위스키 병을 들고 있었습니다. 서로를 붙들려 하면서 복도를 걸어오는데, 눈은 풀려 멍하니 있었고, 입술에 바른 매니큐어며 그 검은 것이 흘러내려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여기 둘레에 둥글게 칠하니, 그렇게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처럼 보였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지요? 그런 것을 온통 바르고, 그 물이 찬 듯 커다랗게 부푼 머리 모양에, 아시지요... 여러분은 예쁩니다. 자신을 선사시대 동물처럼 보이게 만들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녹음 중단]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드신 모습대로.
그 아가씨들, 여자들이 거기 서 있다가 비틀거리며 복도를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술에 취한 남자들이 나와 한 여자의 몸에서 손대서는 안 될 곳을 붙잡고 그 여자를 안으려 했습니다. 여자는 비틀거렸고, 남자가 다가오면 주먹을 두어 번 휘둘렀습니다. 저는 그저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이 가까이 왔는데, 조그마한 속옷만 입고 서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여자들이 입는 것보다는 더 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한 모금 주자, 그 여자가 위스키 병을 들고 크게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러더니 이 짧은 치마를 최대한 높이 추켜올리고, 다리를 공중으로 높이 차올리며 “야호!”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게 신나게 사는 거야! 이게 인생이지!”
저는 그 두 사람의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집에서는 남편이 아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조금 재미를 보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건전한 미국식 오락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설거지를 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어젯밤 제가 말한 것처럼 그저 긴장을 좀 풀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실례합니다.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죽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돌아보며 “내 술 한 모금 마실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복음 설교자입니다. 저도 미국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부끄럽습니다.” 다른 여자도 달아나려 해서, 저는 다른 손으로 그 여자를 붙잡았습니다. “당신들은 교회에 다닙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술이 조금 깨는 듯했습니다. 술병을 내리면서 “예”라고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요일학교 교사였습니다. 저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잡아당기고 몸을 비틀고 펄쩍거리다가 복도로 내려갔습니다. 한 여자가 넘어져 바닥에 벌렁 누웠는데, 다른 여자가 발부터 들어 올려 일으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어떻게 이런 것을 보고 계실 수 있습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저 조직의 회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칼뱅이었나... 아닙니다. 존 스미스였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선교소에서, 지난 이삼백 년 사이 초기의 위대한 성도 한 분이었습니다. 누구였는지 잊었습니다... 아마 감리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존 스미스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들이 문 앞에 서 있는데, 술 취한 사람이 거리를 내려오다가 도랑에 빠졌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존, 저기 당신이 회심시킨 사람 하나가 있군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예, 맞습니다. 주님께서 회심시키신 사람이었다면 저기 있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조로 돌아섰다면, 조직으로 돌아섰다면, 교회로 돌아섰다면 그런 일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면 다시 태어납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죽고 살아나서...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계속 지레짐작합니다. 권한이나 근거 없이 나서는 것입니다.
설교자들, 선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교단의 교리를 설교하면서 그것이 요구되는 전부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누구든지 여기서 한 말씀을 빼거나 한 말씀을 더하면, 그 사람에게서도 생명책의 몫이 빠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오늘날에는 성령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르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쫓겨납니다. 치유 같은 것은 없으며, 성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아는 것은 자기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옳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다 하고 내 말은 참되다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이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 사람들이 아는 것이 그것뿐인데요.” 여러분이 식사하러 식당에 간다면... 이곳에서는 아직 점심을 ‘디너’라고 부르겠지요. 제가 사는 인디애나에서는 현대 미국식으로 하려 합니다. 아침은 ‘브렉퍼스트’, 점심은 ‘런치’, 저녁은 ‘디너’라고 부르려 합니다. 저는 늘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 제 ‘서퍼’, 저녁 식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디너’를 받습니까, 주님의 ‘서퍼’, 곧 주의 만찬을 받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그저 잘난 체하는 것뿐입니다. “아, 그분은 고상하고 교육을 받으셨어요.” 그러면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단 교리를 설교하면서 괜찮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가입하며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들이 할 일은 그저 지레짐작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교회에 속한 사람이니까요.”
하루는 제가 기도받는 줄을 위해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는데, 한 여자가 강단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 여자에게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 여자가 걸친 보석이면 선교사 한 명이 세계를 열 번 돌도록 후원하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가 “저는 미국인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신지 물었습니다. 남에게 얹혀 가는 사람이냐는 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냐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미국인이면 그것으로 다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스워스 형제님이 한 번은 디트로이트에서 기도받는 줄을 위해 사역하셨습니다. 젊은 여자 한 사람이 기도를 받으러 강단에 올라왔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매일 밤 촛불을 켭니다.” 그것만 하면 되는 줄로 지레짐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남자요 여자이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 들어가고, 목회자들은 신학교에 갑니다. 심리학 학위를 받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를 배웁니다. 그것만 하면 되는 줄로 지레짐작합니다. 우리의 큰 교단들 가운데도 그런 곳이 있습니다. 오순절 사람들 말입니다... 저는 지금 감리교나 침례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들 사이에 쟁점들이 생겼습니다. 각자가 자그마한 쟁점을 가지고 따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지레짐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함께 있으십시오. 그런 식으로 쟁점을 가지고 나가지 마십시오. 이 안으로 가져와 기도로 해결하십시오. 여러분의 견해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를 존중하는 마음과 형제와의 교제를 잃어버린다면, 그 쟁점이 여러분을 죽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그것만 하면 된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냥 교회에 가입합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그렇게 거기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이제 “믿는 사람이십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오순절입니다.” 제가 그것을 바로잡아 드리겠습니다. 오순절 조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오순절은 체험이지 조직이 아닙니다. 가톨릭교인도 그 체험을 합니다. 침례교인도 하고, 장로교인도 합니다.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체험이지... 조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조직을 만들었다면 그때 여러분은 오순절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는 조직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또 어떤 역사가에게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셨고 사람들이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었을 때 어떻게 되었는지 제게 보여 달라고 도전합니다. 바로 그때 죽었고, 다시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주받은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고 이 말이 옳은지 확인하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신조를 만들어 거기에 가입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여러분. 자매님,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을 아시지요. 아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려고 여기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여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지 제가 알고, 그것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날 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수꾼이 성벽 위에 앉아서 원수가 백성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도 경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피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요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목회자가 여러분에게 머리를 잘라도 된다고, 그것이 옳다고 말한다면 그 목회자는 잘못된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단정하지 못한 옷을 입게 두면서 괜찮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은 예쁩니다.
암컷과 수컷이 있는 모든 종류를 보면, 언제나 수컷이 더 아름답습니다. 수탉과 암탉을 보십시오. 새들을 보십시오. 엘크의 수컷과 암컷을 보십시오. 사슴의 수컷과 암컷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언제나 수컷 쪽이 더 아름답습니다. 인류만 빼고 말입니다... 남자는 못생기고 우락부락하며, 얼굴에는 수염이 있고, 대머리인 경우도 많고, 거칠게 생겼으며, 온몸에 털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바로 거기에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에덴에서 그가 택한 곳이 거기였고, 에덴에서 그가 파고든 곳이 거기였으며, 그때부터 줄곧 이용해 온 것도 그것입니다. 역사 속의 어떤 나라든 말해 보십시오. 학생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입니다... 나라가 무너질 때, 어머니의 본분과 여성의 덕성이 무너지자마자 그 나라의 등뼈도 부러졌습니다. 우리나라의 도덕을 말해 봅시다! 저는 신문에서 AP 통신 기사를 하나 오려 두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로 갔을 때, 여섯 명 중 네 명이 그곳에 간 지 육 개월도 안 되어 집에 남아 있던 아내에게 이혼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 중... 전쟁 전 일 년 동안 뉴욕주에서 태어난 혼외자가 사 년간의 전쟁 전체에서 죽은 군인 수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여자들이 짧고 선정적인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갑니다. “예,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자매님, 제발 들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올바른 분이라면 똑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버지나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남자든... 자기 아내가 그런 반바지 같은 것을 입고 거리에 나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에게 남자다운 것이 얼마나 있는지 드러납니다. 아내가 자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게 두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산주의가 우리를 이길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썩은 도덕 때문입니다.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강단에서 복음의 기준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나약한 설교자들,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만큼 혼에 참된 성령 침례가 충분히 없는 설교자들 때문입니다. 청소년 비행 때문에 아이를 때리지 마십시오. 부모를 때리십시오. 부모의 비행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이 그러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래서 제가 저 성직자들을 그토록 호되게 꾸짖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러분도 저와 같은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그 사백 명의 선지자도 미가야와 같은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는 영적으로 자기 입장을 지킬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모스도 자기 시대에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그 두려움 없는 선지자는 사마리아로 올라갔습니다. 그 도시에 들어서며 둘러보니 온갖 타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너희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멸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의 타락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괜찮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있고 회당도 있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고 할례도 받았으니, 그것이면 다 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다른 민족들의 유행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호의만 얻으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맹을 맺고,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거리를 다니며, 외설적인 공연을 하고, 온갖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선지자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수염 위로 그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그 위대한 사마리아를 보러 왔지만, 그 선지자는 다른 눈으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과 사역자들은 교회를 그저 숫자, 숫자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다른 눈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타락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섬긴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데 십삼 년이 걸렸습니다. 제롬 이세 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시지요. 아니, 여로보암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가입해 있습니다.
자매님, 이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묻겠습니다. 그렇게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품행이 단정한 아가씨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단정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수녀가 나쁜 사람이 되려고 수녀원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가련한 여인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그곳에 들어갑니다. 그들이 나빠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나쁜 여자가 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정숙하지 못하게 행동할 분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깨닫고 계십니까... 가톨릭 수녀는 그 체제가 자신을 그 안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이 시대의 영이 그런 일들을 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괜찮다고 지레짐작하지만, 괜찮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반바지를 입고 온갖 선정적인 차림으로 나갑니다. 물론 여러분은 예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으로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미끼로 삼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모릅니다.
이제 남자가 여러분을 본다고 합시다. 그리스도인 아가씨가 거리를 내려옵니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순진한 아가씨인데, 온통 선정적인 차림입니다. 죄인이 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습니다. 심판 날 그 남자가 간음한 일에 대해 답해야 할 때, 누구에게 죄가 있습니까? 그 여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언젠가는 제가 잘난 체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순절 여성 여러분,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조직이 그것을 들여왔고, 스스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회중을 옷을 잘 입고 잘 꾸민, 가장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견주려 합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그것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하지만 괜찮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설교하고 가입해 보십시오. 그들은 지레짐작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누군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그 말씀에, 거기에 쓰인 그대로 딱 맞추어 살려고 하시는군요. 그렇게 해도...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물 뿌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침례를 주자 다른 사람이 그 일로 저를 나무랐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침례를 받았잖습니까?” 저는 “아닙니다. 받은 게 아닙니다. 물 뿌림을 받은 것입니다. 침례, ‘밥티스모’는 완전히 덮는 것, 묻히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너무 과격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옳은 일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열심이 있습니다. 그분의 교회에 열심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사랑하거나 돌보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하고 이 복음을 믿는 오순절 여러분을 만났을 때, 저는 여러분의 원수가 되려고 여러분 가운데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형제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드리려고 왔습니다. 목회자 중 누군가 한 번이라도 여러분 앞에 저와 함께 서서 이것이 틀렸다고 말해 보십시오. 그것이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 브래넘 형제님, 정말 그것이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울에게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성령님이 계시는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자, 그가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요한의 침례를 받았노라’라고 하자, ‘그것은 회개의 침례일 뿐, 죄들의 사면을 위한 침례가 아니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설교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이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전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지레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여야 합니다. 그것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런데 지레짐작만 하면서 그들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날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얼마 전 십 대 소년이 말했습니다. “주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제가 무엇이든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세상에! 여러분,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공의로우시면서 어떻게 자기 법을 어기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자신의 거룩한 법을 더럽히실 수 있습니까? 공의로우시다면 자신이 하신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을 요구하시는데 여러분이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분께서 공의롭지 않으시다면, 왜 이브가 말씀을 단 한 번 조금 잘못 해석한 것을 그냥 넘어가게 두지 않으셨습니까?
왜 육천 년 동안 고통과 위험과 죽음과 슬픔이 인류를 덮치도록 두셨습니까?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시는 것 외에는 달리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십니다. 진노의 하나님이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이... 그분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게 합니다. 단 한 점도 어긋나지 않고, 그 선 그대로여야 합니다... 거기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쪽 아니면 저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온유하고 조용하고 다정하다 해도... 크리스천 사이언스보다 더 온유하고,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많이 보이는 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온통 사랑입니다. 그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신성한 분이심을 부인하고, 죽으심과 탄생, 처녀 탄생을 부인하며, 그분의 피를 부인하면서 그저 사랑만 말합니다. 제게 어린 아들이 있는데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아, 얘야, 그냥 하렴. 네가 그 술을 마시고 싶다면,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그냥 마시렴. 아빠는 막지 않을 거야. 너를 너무 사랑하거든.” “아, 얘야, 탄환 두 발이 들어 있고 공이까지 젖혀 놓은 내 산탄총을 갖고 싶다면 그냥 가져가렴. 너를 너무 사랑해서 막을 수가 없단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거리에 나가서 “아빠, 차들이 시속 육십 마일로 다니는 이 길에서 진흙 파이를 만들며 놀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빠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막을 수 없단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아빠가 너를 너무 사랑하니 못 하게 할 수 없구나. 나가서 죽으렴.” 진짜 아버지라면 아이의 껍질이 벗겨지도록 호되게 매질할 것입니다! 오늘날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드러운 장갑을 끼고 복음을 전하려 하면서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처럼 껍질이 벗겨질 만큼 호되게 다루어지는 일입니다! 복음으로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나는 오순절이야. 나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야. 괜찮아.” 괜찮지 않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괜찮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와야 합니다. “얼마나 선하신 하나님인가.” 그들은 그분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이제 제시간에 마치려면 십 분 남았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은 지레짐작했습니다. 올라갔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데려오셨습니다. 그분의 선지자 위에 불기둥을 두시고 그를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이끌어 내시고, 바로 우리 앞에서 파라오를 죽이셨습니다. 그 땅을 벼룩과 이 같은 재앙으로 치시고, 불과 우박을 그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우리가 홍해까지 왔을 때 파라오가 쫓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홍해를 여셨고, 우리는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돌아보라. 내가 너희 뒤에서 그들을 물에 빠뜨리겠다.’ 하나님께 영광! 그뿐입니까? 천사들의 음식을 보내셨습니다. 매일 밤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 함께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거기로 올라가지 말라.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다.’” 흥! 하지만 그들은 지레짐작했습니다. 어쨌든 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셔.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실 거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무엇을 걱정하겠어?”
오순절 여러분, 절대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넣지 마십시오. 여자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도 돼. 이것도 해도 되고 저것도 해도 돼”라고 합니다. 남자들은 “이걸 해도 돼. 이렇게 다녀도 돼... 내가 속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전에 나를 치유하셨어. 전에 내게 성령을 주셨어. 하나님께서 이것도 하셨고 저것도 하셨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구분선을 넘어 범하지 마십시오. 모세는 “너희가 거기 올라가면 나는 함께 가지 않겠다. 거기에는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의 경계 밖에 있습니다. 그 말씀을 단 한 점이라도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거기 그대로 앉아 있게 두실 것입니다. 아, 정말!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저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왜 제가 이 일을 해야 합니까? 가입하십시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계속 가십시오. “교회에 속해 있기만 하면 되지, 무슨 차이가 있나?” 차이가 있습니다. 그 늙은 선지자도 이스라엘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말한 것 중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느냐?” 그들은 “없습니다. 사무엘이여, 말씀하신 것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다니면서 큰 건물을 짓겠다고 헌금을 거두거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느냐?” “아닙니다. 사무엘이여,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말을 들으라. 너희는 다른 민족들처럼 행동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너희의 왕이시다.”
저도 오늘 말합니다. 오순절 여러분, 다른 교회들처럼 행동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버팀목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 중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까? 큰 사업이나 온갖 일을 하겠다고 여러분의 돈을 가져가고 구걸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언제 한 번 헌금을 거두었는지 말해 보십시오. 아시겠죠?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것 중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이제 들으십시오.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마지막 날의 메시지는 반드시... 메시지를 전하는 자와 메시지는 마지막 때에 맞아야 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을 아버지들의 믿음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유다도 거기서 그들이 이미... 그렇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겨우 구십육 년, 팔십... 아마 구십육 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벌써 그 믿음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들어와 처음에는... 하나의 생각이 되었다가, 교리가 되었다가, 니골라당의 쟁점이 되지 않았습니까?
‘니코’라는 말은 정복한다는 뜻입니다. 평신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를 말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해 오신 것처럼 성령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게 하는 대신, 거룩한 사람 한 명을 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이라니! 그런 것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계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니코’, 평신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맨 처음 무엇을 했습니까?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 그들은... 수백 년 또 수백 년 동안 박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몸이 찢기고 불에 타고 박해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루터가 왔습니다. 그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잘라 내셨고, 그 가지는 시들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지치기를 하신 것입니다. 웨슬리가 일어나면서 그 나무에 다른 가지가 돋아났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지치기를 하셔서 그것을 잘라 내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메시지가 왔습니다. 처음에 교회가 시작된 방식 그대로, 처음의 그 신부 나무와 똑같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왔습니까? 요한이 의롭게 됨과 회개를 전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누가 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버지여, 진리 곧 아버지의 말씀으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그 말씀은 바로 그분 자신이셨습니다... 진리입니다. 거룩하게 됨입니다. 그다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성령 침례였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리하여 신부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벌레가 와서 이것을 먹어 버렸습니다. 털벌레가 와서 열매를 먹어 버렸습니다. 다음 것은 잎사귀를, 그다음 것은 껍질을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쐐기벌레가 왔습니다. 빨아먹는 벌레가 와서 그 생명까지 빨아 내고, 평신도를 정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것을 회복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루터의 시대에 돋아났는데, 사람들이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대로 가지치기를 하셨습니다. 웨슬리가 일어났습니다. 좋았습니다. 훌륭한 가지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웨슬리가 죽은 뒤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그 가지를 잘라 냈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이 일어나 열매의 표적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가지도 잘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 큰 부흥들에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이제 이치에 맞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부흥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무엇을 길러 냈습니까? 회원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제 여러분, 왜입니까? 성경은 히브리서 6장에서 말했습니다. “비가 자주 땅에 내려 땅을 가꾸고 물을 주어, 맺어야 할 열매를 맺도록 준비시킨다. 그러나 버림에 가까운 가시와 찔레는 불에 태워질 것이다.”
이제 그들은 불사르기 위해 단으로 묶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조직이 묶이고 있습니다. 큰 다발들이 하나의 거대한 다발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다발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아십니다. 세계교회협의회입니다. 짐승의 형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공산주의를 두려워하시는 분들께 묻겠습니다. 성경 어디에 공산주의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되어 있는지 한 곳만 보여 주십시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로마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발들은 어디로 이어집니까... 모든 이방 왕국이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것을 본 그 선지자의 환상은 공산주의로 가지 않았습니다. 로마주의로 갔습니다. 정확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날들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레짐작하며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가 가입합니다. “괜찮아. 그건... 물론 나는 교회에 속해 있지. 아, 그렇고말고. 나는 아무개야”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저녁때에 빛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저녁에 열매를 익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열매는 빛에 의해서만 익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것은 나무 꼭대기에 있는 저녁 빛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하지만 저 오래전부터 미리 예정된 하나님의 말씀은 줄곧 거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회복하리라.” 얼마나 많은 조직과 그런 것들을 가지치기하셔야 하든 그분께서는 그것을 하실 것입니다. 점이나 주름이 없는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자벌레가 먹어 치운 모든 햇수, 쐐기벌레가 먹어 치운 모든 햇수, 교단과 나무에 붙어 빨아먹는 것들이 열매를 빼앗고, 덩굴을 빼앗고, 껍질을 빼앗고, 생명을 빨아 낸 그 모든 햇수를 되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을 위해 그것을 회복하리라.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여기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처음에 하셨던 방식 그대로입니다... 그분은 요한을 쓰셨습니다. 의롭게 됨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셨고, 그 뒤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나타나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흰개미가 들어왔습니다. 하나, 같은 곤충이 서로 다른 단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털벌레가 왔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먼저 열매, 곧 형제 사랑을 없애 버렸습니다. 다음에는 자벌레가 왔습니다. 또 다른 벌레가 와서 기쁨, 잎사귀, 교제를 먹어 버렸습니다. 다음 것이 왔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껍질을 먹어 버렸습니다. 자벌레입니다. 다음에는 무엇이 왔습니까? 쐐기벌레가 와서 생명을 송두리째 빨아 냈습니다. 하지만 그루터기는 남아 있었습니다. 요엘이 “내가 그 미리 예정된 뿌리를 회복하리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예정된 그 모든 이름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모든 자를 부르셨고, 부르신 모든 자를 의롭다 하시며, 의롭다 하신 모든 자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장 5절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로 입양하도록 예정하셨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지옥의 모든 마귀들아, 그 일로 소란을 피우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것은 점도 주름도 없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될 것입니까? 신부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내가 회복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회복하십니까? 조직이 손대지 않은 교회입니다. 순수하고 섞이지 않은 말씀을 가진 교회입니다. 반드시 와야 합니다. 이번 부흥에서 왜 교단들이 잔뜩 나왔습니까? 교단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제님, 뭐라고 하시든, 우리에게는 복음이, 순수하고 거룩하고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져야 합니다. 이 빛이 나오면 그 교회,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사람들이 나올 것입니다. 아멘.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 계십니다! 아멘.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너무 많습니다. “그분은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벌하실 수 없어.” 그분께서는 벌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담을 사랑하셨고 이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하지만 공의로우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든... 누구든지 여기서 빼거나 더하면, 그 사람의 생명책 몫에서도 그만큼 빠질 것입니다. 설교자든 교단이든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 낸 이 모든 신조와 그런 것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집단을 상대하지 않으십니다. 개인을 상대하십니다. 집단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하신 적이 있으면 보여 주십시오. 그분은 개인을 상대하십니다. 여러분을 상대하시고, 저를 상대하시고, 그 옆 사람을 상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저 너무나 선하시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았으니 그 십 대 소년처럼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을 주셨으니,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으면 해도 돼. 할렐루야! 내 안에는 정죄가 없어.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 그 말 자체가 여러분이 그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분의 말씀을 붙들 것입니다. 그 말씀을 지키려고 혼자 서야 한다 해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그분의 말씀을 입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단 한 말씀도 결코 없어져서... [불명확한 말] 이것은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과 똑같습니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조직을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교회를 심판하시며, 아니 자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이브와 아담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시작하신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끝내실 수 없습니다. 처음 시작하신 바로 그 방식으로 끝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처음에 잘못하셨다는 것이 됩니다. 아시겠죠?
지레짐작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권한이나 근거 없이, 성경적 근거 없이 나서지 마십시오. 삼손은 지레짐작했습니다. “아, 뭐! 아, 내가... 나는... 이제 내 머리털은 없지만 괜찮겠지. 나는 여전히 예전의 그 사람이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그 구분선을 넘은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그만큼 힘이 있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그저 몸을 한번 펴면 돼. 아! 휴! 이제 나는 예전처럼 거뜬해.” 하지만 힘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 십사 년 전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가 한 일도 그것입니다. 오순절은 더 이상 몸을 뻗어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집단들로 조직을 만들어 서로 미워하고, 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부흥이 그곳에 임했고, 저녁 빛이 비쳤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조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힘을 잃고, 형제 사랑을 잃고, 영의 열매들을 잃었습니다.
삼손은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여기 계셔. 나는...” 여러분은 그것을 느끼고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여기 계십니다. 아간은 금덩이를 가져가면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설교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이 방식이든 저 방식이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사탄이 이브에게 한 거짓말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누가 하든 누가 하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어쨌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괜찮다고 지레짐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요구하시니, 제게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저는 그것을 말하고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습니다.
[테이프의 무음 구간.] ...오늘날 우리에게는 미가야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하며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디에서든 말을 약하게 하지 마십시오. 아멘. 그렇습니다, 연약함입니다. 아간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거야. 아무 차이 없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금덩이 하나가 하나님의 계획 전체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침례만 받으면 돼. 차이 없어. 교회에 속해 있기만 하면 해가 되지 않아.” 그것이 부흥을 망가뜨린 것입니다.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도들 대신 교단들이 잔뜩 있습니다. 가입하는 사람들,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돌을 잘라 모양을 내고 모난 데를 쳐 줄 석공이 없다면 그 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조각가가 서서 돌을 다듬는 것을 보면 별것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만들려는 모습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목적을 가지고 그 돌을 굴려 온 것입니다. 그는 그 돌을 깎고, 자르고, 갈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밖에 나가 제멋대로 행동하고,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고 지레짐작하는 돌들... 그 돌들이 가만히 있으면 조각가이신 성령님께서 다듬어 하나님의 아들딸들의 형상으로 만드십니다. 오, 영광! 그분은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요, 새벽별이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이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할례받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들도 그들과 똑같이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들을 뒤따라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익사했습니다. 괜찮다고 지레짐작한 것입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노아가 말한 대로 홍수가 오면, 그저 자기 배에 뛰어들면 된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배는 단 한 척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나는 교회에 속해 있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무리는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교단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지은 것이며, 그분의 권능의 계시이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배입니다.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노아는 특정한 종류의 나무로 그 배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그가 싯딤나무를 가져다가 어떻게 했는지 말입니다. 그 나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발삼나무보다 가볍습니다. 누가 그런 나무로 배를 지으려는 사람을 보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가벼운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싯딤나무를 물에 던지면 “쉬익, 푹” 하고 그 자리에서 가라앉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하십니다. 그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산토끼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 있습니다. 앉아서...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 지혜를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따져 알아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싯딤나무를 가져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스펀지처럼 가볍습니다. 하지만 주목하십시오. 그가 그 싯딤나무를 모두 부수어, 아니 지어 놓은 다음, 그분께서 “가서 역청을 가져다 흠뻑 스며들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역청을 어떻게 얻었습니까? 다른 종류의 나무, 곧 소나무를 가져다가 역청이 흘러나올 때까지 치고 또 쳤습니다. 그것이 무엇의 모형입니까? 오늘날 하나님께서 가지신 나무의 모형입니다. 여러분의 낡은 광신적인 것들을 모두 비우십시오. 조직들을 모두 비우십시오. 아주 가벼워져서 그저 하나님 앞에 놓이십시오. 그러자 그분께서는 우리 중 한 분을 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시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없을 때 그분의 영이 여러분 안으로 부어지도록, 그분은 갈보리에서 맞고 상처 입고 상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배, 그 방주는... 그 안에 수액이 스며들면 못조차 박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통나무들이 부딪쳐도 구멍이 나지 않았습니다. 참나무나 소나무나 어떤 나무도 그렇게 견디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미 흠뻑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팎으로 역청을 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비웁니다. “누가 무엇을... 그런 것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주님, 저는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주님을 원합니다. 주님의 뜻과 주님의 생명을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흠뻑 채워집니다. 그러면 무엇이 됩니까? 실제로 그것은 더 이상 싯딤나무가 아니라 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영입니다. 아시겠죠? 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선지자가 서로 다른 온갖 말을 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입증하신 약속을 지켜보십시오. 한번 봅시다.
신명기 18장 2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자나 선지자가 있어,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의 말을 들으라.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하리라.” 마가복음 16장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리라.” 아닙니다.
요한은 자기가 거기 나가야 한다고 지레짐작한 것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요한은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한은... 엄격한 제사장 집안 출신이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계통을 따를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너무나 컸습니다. 요한은 그들의 신학에 뒤섞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로 데리고 나가 홀로 있게 하시고, 거기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아, 그들에게는 온갖 것이 있을 것이고, 너에게 성경에 맞지 않는 온갖 것을 믿게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요한아, 표는 이것이다. 영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보면, 바로 그 사람이 침례를 주는 분이다.”
요한은 “이 사람은 선한 사람 같아. 저 사람은 선한 사람 같아. 그분께서 너희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일신교 사람들에게, 너희 삼위일체 사람들에게, 너희 이런... 바로 그들에게 오시겠지”라고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영이 누구에게 내려오는 것을 내가 보면...”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입니다. 형제님, 여러분의 조직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걱정하거나 궁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저녁의 열매, 저녁 빛입니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날들에... 마귀가 자기 사역자들을 빛의 천사들로 보내, 여러분에게 더 새롭고 더 인기 있고 더 학식 있는 무언가를 가져오려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지 마십시오! 이브가 그렇게 했다가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아멘. 지레짐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이브는 괜찮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야. 그분께서 그러시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잖아...” “설마 주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겠어”, 혹은 저런 일을 하시겠어.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무였습니다. 이제 지레짐작하지 말고 그저 믿으십시오.
요한은 “나는 그분 위에 메시아의 표적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분을 알았고, 바로 이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나다나엘도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말해 주셨을 때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신명기 18장 22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너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언제 저를 보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랍비여, 랍비여, 선생님! 학교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비웃고, 그 가르침 때문에 선생님을 쫓아내고 있지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적 증거가 있었습니다. 메시아께서 하실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련하고 보잘것없고 더럽고 냄새나는 창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그 지방의 모든 조직이 그녀를 쫓아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애초부터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참된 것을 보면 받아들일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쪽에 앉아 계신 평범한 유대인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평범한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깃을 거꾸로 세우거나 커다란 터번을 두르지 않았고, 박사님, 목사님, 거룩하신 신부님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몸을 기대어 앉아 계셨는데, 어쩌면 머리가 조금 희끗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서른 몇 살밖에 안 되셨지만, 성경은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분은 쉰 살처럼 보이셨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그들은 “네가 말하기를... 아직 오십 세도 안 된 사람이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이제 우리가 알겠노라. 너는... 마귀가 들렸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마귀 들린 줄 알겠다.” 보십시오,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분께서 “눈먼 바리새인들아, 눈먼 자들이 눈먼 자들을 인도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께서 거기 앉아 계신 모습을 봅니다. 그 여자가 그분께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들은 종교를 놓고 논쟁하려 하는군요.” 오늘날처럼 그것이 당시의 풍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여기서, 또 저기서, 이러이러하다고 하고, 우리는...” 그분께서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이리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네게는 다섯이 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보십시오! 거기 누가 있습니까? 거기에 미리 예정된 씨가 놓여 있습니다. 말씀입니다. 아! 무엇입니까? 다른 것일 수 없었습니다. 그 미리 예정된 씨가 거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씨 위에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말해 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알았습니다. 그녀는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줄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제게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지레짐작이 아닙니다. 그녀는 들어가서 “신학 박사 여러분, 여러분 모두와 성경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습니다. 와서 제가 한 일들을 제게 말해 준 분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는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근거 없이 나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근거가 있었습니다. 믿을 만한 성경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여자야, 네가 뭘 아느냐. 넌 우리 학교 출신도 아니고 이런 조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잖아.” 그녀는 “당신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분은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저기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녀에게는 성경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느 학교에서 나온 것이냐?”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오순절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이제 오순절 여러분, 모자를 쓰십시오. 이 대목에서는 환호하셔도 됩니다. 주목하십시오.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자, 들어 보십시오. 제가 말하겠습니다...” 마태가 베드로에게 가서 말합니다. “베드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올라와 여기서 기다리라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우리에게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마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가는 “물론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여기 올라온 지 구 일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좀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왠지... 이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미 받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여기 올라온 지 구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사역을 계속하러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순종했으니 이미 받았겠지요.”
오순절 여러분이 백만 마일이나 빗나간 지점이 바로 거기입니다.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감각을 좇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언제나 지도자들입니다. 고라가 그랬습니다. 아니... 고라, 영감을 받지 못한 그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모세는 자기만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여기 거룩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여기 무리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백성에게 예언의 영을 주시지 않았느냐? 모세에게서 취해 이쪽에 주셨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무리의 말을 듣겠다. 모세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서 따로 떨어져라. 내가 그와 그의 무리, 그의 온 조직을 땅속으로 가라앉히겠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도자였습니다. 모세가 그 지도자라는 것이 입증되었고,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도자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지도자이십니다. 이 성경을 쓰신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아멘.
“기다립시다. 그냥 기다리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냥 나갑시다.”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28장 11절에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며,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하리라”라고 한 것을 알았습니다.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내가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며, 피곤한 자를 부르는 안식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든 무엇을 하든 그 성경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엘이 한 말을 알았습니다. 들으십시오... 베드로가 바로 뛰어나섰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 날 요엘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요엘은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요엘 2:28],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하리라.” “내 여종들과 하녀들에게 내가 내 영을 부어 주리라.” “위로 하늘에서는 표적들을, 아래로 땅에서는 이적들을 보이리니, 불과 연기 기둥들과 연기니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받았다고 지레짐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광! 아, 형제님. 시간이 이렇게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대목에 잠시 더 머무르고 싶군요. 그들은 성경적 근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저 신조나 어떤 감각, 약간의 연기나 불, 혹은 작은 느낌 같은 것을 받아들입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우리가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내 손에 기름이 보입니까? 여기 보십시오.” 아, 세상에! 여러분의 머리를 보십시오. 어떤 상태인지 말입니다. 잘난 체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제 뜻은...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무언가가 제게 “그 말은 하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그들은 도랑에 빠질 것입니다.
성경적 근거도 없이, 그들은 신조로 받아들입니다. “이 신조를 말하세요.” 그러면 괜찮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계속 나아가 감각으로 받아들입니다. “아, 하나님께 영광! 저는 밤새도록 방언했습니다.” 저는 마귀들도 똑같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방언하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물론 믿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선교사입니다. 사람들이 인간의 두개골에 담긴 피를 마시며 방언하고 마귀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제 어머니는... 얼마 전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어머니는 절반이 원주민 혈통이셨습니다. 저는 그들의 거처에 가서 주술사들이 방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필을 내려놓으면 그것이 일어나 알 수 없는 언어로 글을 쓰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 아닙니다. 세상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방언을 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분의 말씀의 절반을 부인하고, 때로는 그분의 모든 권능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말씀을 증언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하셨다가 돌아서서 “괜찮아. 그냥 이 다른 것을 해도 돼”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브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하지 않으셨는데 지금 하신다면, 그분은 불공정하십니다. 우리가 어쨌든 여기에 있게 되었을 텐데 이 모든 고통을 겪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건축자이십니다. 우리 몸을 이곳에 마련해 두셨습니다. 세상이 지어졌을 때, 우리는 칼슘과 칼리와 석유와 우주 빛이었습니다. 세상을 이루는 열여섯 가지 서로 다른 원소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건축자이십니다. 그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땅의 흙에서 그들을 불러내실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 점 믿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기에 놓여 있는 그 미리 예정된 하나님의 말씀이 미리 예정된 그 사람을 나오게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그 사람이 땅에서 나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욥이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내가 응답하리라. 그분께서 부르시면 내가 그분께 응답하리라.” 물론입니다. 아멘! 어디서 멈출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받았고 방언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묻습니다. “믿은 이래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침례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합니다. 이런 옷을 입든 저런 옷을 입든 차이가 없습니다.” 성경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차이가 없습니다.” 성경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들이 그것을 말하게 합시다. 좋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지레짐작하며 받았다고 말합니다. “물론이지요. 저는 이것을 했습니다. 밤새 떨었습니다. 아십니까? 제 손에 피가 생겼습니다. 제가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손에 피가 생겼습니까?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면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까? 성령님은 모든 말씀에 “아멘” 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곧 말씀이십니다. 물론입니다. 지레짐작을 그만두십시오. 그 모든 성질과 죄와 그런 것들이 여러분에게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득 채우실 수 있습니다.
모세도 한때는 증거도 없이, 체험도 없이 지레짐작했습니다... 자기가 구출자가 될 것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나가서 맡아 할 수 있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우리는 부흥을 일으킬 거야! 우리 시대에 부흥을 보고 싶어. 모두... 여러분 모두 신앙고백을 하십시오. 우리는 돌이 더 필요합니다. 이런 것도 필요하고 저런 것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결심하기를 바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침례교와 감리교와 오순절과 장로교의 씨를 뿌리고, 하나님의 씨인 말씀은 부인하면서 어떻게 그것으로 부흥을 일으키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씨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씨입니다. 교단의 씨를 가지고 어떻게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어 내겠습니까?
여러분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성령님께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환호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밀이 자라도록 보내진 바로 그 물이... 악취 나는 잡초도 밀만큼이나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잡초는 어떻게 그 안에 들어왔습니까? 그 물은 덩굴도 자라게 합니다. 찔레도 자라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들도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 위에 비가 내릴 때, 그것들도 밭에 있습니다. “저는 환호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영 안에서 춤을 췄습니다. 방언했습니다.” 저도 그런 것들을 믿습니다. 하지만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영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선함, 인내, 믿음입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모세는 지레짐작했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지식이 가득해. 내가 하겠어.” 하지만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지레짐작하며 나섰습니다. 지레짐작해서는 안 되는 일을 지레짐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저 위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만난 뒤에는, 아, 형제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경적 근거를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해 준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나는 이삭의 하나님이며 야곱의 하나님이다.[그를 통치자의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름을 새로 주신 것입니다.] 나는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들이 작업 감독들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내가 약속한 말을 기억한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영광! 그분은 여전히 자신이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교단의 벌레들과 귀뚜라미들과] 털벌레와 자벌레와 쐐기벌레가 먹어 치운 모든 것을[교단의 온갖 주의와 신조와 그런 것들이 먹어 치운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 나는 내 말을 기억하며, 백성 가운데로 내려왔노라.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옳다고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성경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려 줍니다. 휴! 이제 그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한 시간 넘게 붙잡아 두었군요. “내가 회복하리라.”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성경이 여기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십니다. 모든 약속과 한 점 한 점에 “아멘” 하십니다. 어떤 감각을 느꼈다고 해서 괜찮다고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오늘 아침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둘러보고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살펴봅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셨다면 우리가 그것에 맞는지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내가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하면 교회에서 쫓겨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느 쪽이 여러분에게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입니까, 교회입니까? 체험 없이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얼마 전에 누군가 제게 “브래넘 형제님, 연옥을 믿지 않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가톨릭이시군요.” 저는 “예”라고 했습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최초의 교회에 속한 위대한 오순절 가톨릭 신자입니다.
누군가 지금 그들이 포고문을 냈다고 했습니다. 교황 요한 이십이세인지 오십이세인지, 뭐 그런 분이 “모든 사람은 원래의 교회로 돌아오라. 원래의 교회는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했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영광! 교회는 결코 로마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에 동의하겠습니다. 교회는 자기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순절로 말입니다. 영광! 여러분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불명확한 말] 그분께서 그것을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단들은 자기들이 나온 곳인 로마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을 아버지들의 믿음으로 다시 회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을 찬양하리라. 죄인들을 위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리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버리셨네. ...불신의 모든 얼룩을 말입니다...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사람을 통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실 리는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자신을 내어 맡기고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보십시오. 말씀은 할례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마음을 베어 들어가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정확히 아시고, 바로 그 동일한 그릇들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십니다. 아멘.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을 찬양하리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리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버리셨네.
이 찬송이 좋지 않으십니까? 제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유업입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내게 예수님의 실제 피 두 방울이 유리잔에 담겨 있어 내가 그것을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그분의 혈관에서, 십자가에서 떨어진 피를 내가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얼마나 가슴에 꼭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걸을까.” 우리가 그 피, 실제 피 단 두 방울을 그렇게 소중히 여긴다면... 제가 얼마나 귀하게 품겠습니까! 그런데 아십니까? 하나님께 따르면, 제게... 제가 오늘 아침 품고 있는 것은 그분께서 보시기에 그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피로 사신 사람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피를 흘리신 것은 여러분을 사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손으로 얼마나... 죄가 슬그머니 들어와 더럽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아,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밀어내야 합니다. 잘라 내야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저와 함께하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열두 시 반이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아닙니다, 죄송하지 않습니다. 아멘.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저는 그 일에 관여한 것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교회를 가지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그 교회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질 때, 성령님께서 그 말씀이 의도한 바로 그 영 안에서 해석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목사님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가능하시면 오늘 밤에 다시 오셔서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오늘 오후에는 형제님 댁에서 침례를 받으십시오. 파커 형제님, 이리 오십시오. 성 대신 이름으로 불러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도 그렇게 불렀으니까요. 파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