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아시다시피 설교자들은 늘 말이 길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몇 분밖에 없겠지요? 한 10분이나 15분, 그 정도입니까? 여러분과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들어오다가 여기 계신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며칠 전 저녁 저쪽에서 환상으로 보았던 분입니다. 알고 보니 이분은... 전에 한 집회에 오셨을 때 호지킨병을 앓고 계셨는데 치유를 받으셨더군요. 성령께서 이 여자분을 지목하여 부르신 것이 서로 다른 때에 세 번이나 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이 형제님도 만났습니다. 저번 집회에서 얼굴에 암이 있었던 분인데, 이제 주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자인 잭슨 형제님도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집회를 했던 레이크포트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독일인 한 분인가, 언덕 너머에 사는 어떤 분이 아내를 그곳에 눕혀 놓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분별하시며 그분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암에 걸린 아내를 고쳐 주시면 교회에 얼마의 돈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약속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분들은... 그 여자분은 치유를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얼마 전... 제가 뵈었습니다. 그때 그곳에 서 계신 주님의 천사를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 무지갯빛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그 사진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자 형제님이... 저는 우리가 온전히 같은 형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분은 아칸소 사람이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와 오클라호마 사람들을 빼고 나면 캘리포니아가 없어질 거라고 합니다! 정말 아칸소 출신의 좋은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천국에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아칸소와 오클라호마, 그리고 온 세상에서 온 많은 분을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누가 제게 말해 주었는데, 여기 어디에 계신 한 여자분이... 바로 여기 계신 이분인 것 같습니다. 이 남편분과 아내분 말입니다. 어젯밤 집회에서 몸에 어떤 종양인가, 그런 것이 있다고 지목받으셨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여러 분도... 그래서 이 시간을 빌려 조금 설명해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시계를 보시다가 시간이 거의 다 되면 주저하지 마시고 제 옷자락을 잡아 주십시오. 제가 말에 빠져들곤 하니까요. 이분에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벌써 옷자락을 당기고 계시네요. 그러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마 저쪽에서도 이 방이 필요할 겁니다. 아침 식사가 참 훌륭했지요? 정말 감사하지 않으셨습니까? 햄과 달걀, 그 밖의 음식까지, 진짜 아칸소식 아침 식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 집회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이리로 인도하셔서 이런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하시리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환상이란 참 특이한 것입니다. 여기 앉아서 초기 집회 때 사람들이 얼마나 먼 길을 차로 달려왔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집회에 오려고 택시를 타고 3천 마일이나 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때와 똑같이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역은 100퍼센트나 향상되었습니다. 사역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부흥의 열기가 떠나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전에 가졌던 열정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환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이 자매님에게 있었던 신기한 일은... 며칠 전 저녁 제가 돌아서서 형제님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매님은 저 아래 앉아서 형제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제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 여자분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그것이 이쪽에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쪽을 보니 그 여자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분이 그 형제님의 아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때 환상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집 안이었고, 그래서 그 형제님의 아내가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분이 그렇게 한 것이 세 번입니다.
그것은 이분이 그 은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신은 깨닫지 못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바로 이분입니다. 이분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이 몇 분 동안 그것이 무엇인지 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 주님을 예로 들어 봅시다. 결국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 사역자 형제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다른 누군가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성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전합니다. 여러분 사역자들이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 위에 임하여 기름을 부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사역 중에도 말을 하다가 때로는... “내가 왜 설교 본문을 바꾸었지?” 합니다. 어떤 일인지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청중 전체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기 앉아 있는 단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메시지 전체를 보내고 계셨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한 방향으로 계속 설교하면서 “이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맞습니다.”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돌아서서 그 말과 모순되는 것 같은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내가 위선자인가?” 하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녁 제가 요나에 관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벗어나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한쪽으로 보내셨지만, 그는 앉아... 그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를 돌이키셨습니다. 그런 식입니다... 저도 때로는 어떤 말을 해 놓고 돌아서서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영감을 받아 설교할 때는... 자신을 온전히 영께 내맡겨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아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에게는 설교나 그런 것을 짜낼 만한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역자 형제 여러분,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단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집회를 좀 어린아이 수준에 맞추듯이 진행했습니다. 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 가운데 많은 분이... 저는 이 지역이 가톨릭 세력이 큰 곳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이제 막 들어오고 있으니... 강한 내용을 다루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 우리 주님을 본으로 삼아 봅시다. 그분께서 우리의 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제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그저 잠깐 생각해 보려는 것이지... 이것을 본문으로 설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결혼과 이혼에 관해 말씀하시다가 “처음부터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없는 것은 영원한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시작된 적도 없고 끝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끝이 있습니다. 모두 그렇습니다. 창세기는 씨앗이 되는 장이므로 우리는 창세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 역사에 관한 여러 책, 곧 히슬롭의 『두 바빌론』—아마 여러분도 공부하셨을 겁니다—과 폭스의 『순교사』, 니케아 이전 공의회들, 니케아 교부들에 관한 책 등을 공부하며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땅에 있는 모든 영과 모든 이단과 모든 것이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자라서 꽃이 피는 때, 만개하는 때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로 나타나는 것을 보십시오. 그 두 소년의 흐름이 계속 내려와 유다와 예수님에 이르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계속 이어져 이 마지막 날들에 이릅니다. 적그리스도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너무나 비슷해서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을 속일 정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이제 우리 주님을 보겠습니다. 그분은 이곳에 계실 때 자신이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이 친히 거하실 몸을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곧 그 몸인 하나님의 아들이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안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거하셨고, 그분은 하나님을 비추셨습니다. 우리 사역자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비춥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종인 우리를 통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은 읽지 않아도 여러분은 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비춥니다. 여러분의 걸음과 말과 행동 모두가 그리스도를 비춥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은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사람에게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과 거래, 우리의 삶 전체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영께 내맡기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자신을 비추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열매를 맺는 것은 포도나무가 아니라 가지입니다. 그러나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몇 달 전 저는 애리조나에 있는 소중한 친구 존 샤릿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감귤 과수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가난했던 형제님, 오순절 신앙을 가진 형제님인데 주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분은... 얼마 전 제게 이야기해 준 것 같은데, 목화 같은 것을 재배하는 땅이 4만 9천 에이커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그분에게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햇빛 가리개가 축 늘어진 낡은 쉐보레를 타고 다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었는데 그 나무 한 그루에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쯤 되는 서로 다른 과일이 열려 있었습니다. 원래는 오렌지나무였지만 거기에 레몬, 탄젤로, 귤, 자몽, 또... 이런 것들을 접붙여 놓은 것입니다. 감귤류 과일이라면 무엇이든 그 줄기, 그 나무에 붙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정말 놀랍군요, 샤릿 형제님. 그러면 내년에 다음 열매가 열릴 때는 전부 오렌지가 되겠네요?” 그분은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줄기... 자몽 가지는 자몽을 맺고, 레몬 가지는 레몬을 맺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오렌지나무에서요?” 그분은 “그렇습니다. 전부 감귤류이지만, 그 안에 있는 가지는 자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나무 자체에서 새 가지가 하나 나오면, 그것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분은 “원래 것과 같겠지요. 오렌지나무가 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그리스도는 가지... 그분은 포도나무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접붙인다면...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우리 가운데 여러 교단에 속한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 일신교, 하나님의 교회, 그 밖에 여러 교회와 교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단의 가지를 가져다가 거기에 붙이면 교단의 열매만 맺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이름, 그리스도인의 생명이라는 기독교 계통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감귤류 과일처럼 우리는 그 안에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 가톨릭을 접붙였습니다. 온갖 종류가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보셨습니까? 처음에 그 원래 나무가 가지를 내었을 때, 그 포도나무가 첫 가지를 내었을 때, 그 뒤를 따라 사도행전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 교회들, 이 교단들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이 감귤나무 줄기에서 생명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참 포도나무가 다시 가지를 내면, 그 뒤를 따라 또 하나의 사도행전이 기록될 것입니다. 그 가지는 그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자들은 우리의 생명이 어떤 조직 안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은 형제간의 유대 등을 지키는 데는 괜찮습니다. 제 말은... 그것들도 제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내맡겨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흐르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오순절의 본래 열매가 맺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 여러분이 아시는 그 참된 것입니다.
자, 잠깐만... 이제 그만해야겠지만...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그 포도나무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머릿돌을 내셨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처음이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다니시는 모습을 봅시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행동도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온화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잊힌 복의 말씀」을 설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1장 6절에 있습니다. 거기서... 침례자 요한이 먼저 나와서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했습니다. 요한은 율법과 은혜, 그 두 시대 사이에 있던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하게 하시고 알곡을 모으실 것이며,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위대한 메시아가 되실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한은 그 표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될 때까지 광야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요한은 아홉 살에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었습니다. 교계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식이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참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말씀을 들을 때까지 광야에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위에 표적이 있을 것이므로 네가 그를 알게 되리라. 네가 이 표적을 볼 터인데, 그 사람이 메시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나는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노라.”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분이 메시아이십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실망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치유를 받는 일 같은 데서도 무언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원수의 짓이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시험하여 어떻게 하는지 보시려고 그것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이 말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표적을 보았고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표적을 제가 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어려움에 빠지고, 펨버먼의 말처럼 그의 독수리 같은 눈에 막이 끼어 잘 보지 못하게 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보라, 나는 메시아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라고 설교했는데, 여기 있는 이 온화한 분은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구나. 참 이상한 메시아로구나...”
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분 위에 표적이 있는데도 그분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분은 요한이 생각했던 것처럼 나가서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는 그런 위대한 인물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작고 온화하고 온유한 분으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셨습니다. “이 사람은 참 이상한 사람이로구나.” 그래서 요한은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면서 “가서 그분이 바로 그분인지 여쭈어 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못한 평가였습니다. 그분이 메시아라고 선포해 놓고 돌아서서 “그분이 맞습니까?”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오히려 사람에게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요한에게 하셨습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요한이 와서 말했을 때... 요한이 제자들을 보냈고 그들이 와서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리이까?”라고 했을 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아시다시피 요한은 감옥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렇다고 감옥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책 같은 것을 주시거나 대전도 집회의 규칙과 규정을 말씀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집회가 끝날 때까지 머물러 기다려라. 그런 다음 가서 너희가 본 것을 전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리 저는 사람들이 걷고 눈먼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언덕을 넘어갈 때 우리 주님께서 거기 서서 그들을 바라보시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돌아서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나갔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요한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를 이곳저곳으로 떠밀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옷깃을 뒤로 돌려 입은 사람을 보려고 나갔느냐? [그러니까 좋은 옷 같은 것을 입은 사람 말입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아기들에게 입을 맞추고, 결혼식을 주례하고, 죽은 자를 장사한다. 그런 자들은 왕들의 궁전에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릅니다... 작은 주머니칼이나 만지작거립니다. 양날 달린 검을 들고 전선에 서서 마귀들과 그런 것들과 싸우는 것은 모릅니다. 요한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나간 것은 그런...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대언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대언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그는 그러했습니다. 그는 언약의 사자였고 선지자보다 더 큰 자였습니다. 그는 그 둘을 이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그분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는 것 외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셨습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일, 초자연적인 일이었습니다. 형제님, 우리가 가진 무장, 우리의 모든 무장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온유, 부드러움, 인내입니다. 자, 약국에 가서 제게 인내를 25센트어치 사다 주십시오. 저에게 필요합니다. 사랑도 5달러어치 사다 주십시오. 저는 사랑이 많이 있어도 좋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무장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서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보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것들을 감지하고, 거기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그분의 친구 가족에게 병이 찾아왔는데, 그분은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떠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떠나셨습니다. 나사로의 사랑스러운 누이들이 사람을 보내어 “오셔서 친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가 병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사랑하는 친구에게 가셔서 어려울 때 도와주시기는커녕—그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자기 교회며 모든 것에서 나왔는데도—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가셨습니다. 그들이 다시 사람을 보냈을 때에도 그분은 그 요청에 응하시기는커녕 더 멀리 가셨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이 무너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무언가를 붙잡으면 아무것도 그것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 자리를 지킵니다.
이제 그분께서 돌아오셨을 때... 마침내 그분은 “나사로가 잠들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 잠들어 있다면 쉬고 있는 것이니 잘되고 있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그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그런데 마르다가 그 일을 알았을 때... 그분께서 마을에 들어오시자 마르다는 그분께 가서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시리이다.” 그분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나사로가 있는 무덤에 가셨을 때를 잘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은 알고 계셨고, 바로 그 때문에 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라고 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분께 나사로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고 있었지만, 그분은 나사로를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환상으로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하실 일은 나사로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무덤 앞에 서셨을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이미... 그러나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것을 말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다음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다시 생명으로 불러내셨고, 그는 두 발로 일어서서 살아났습니다. 그분이 쇠약해지셨다거나 그 일로 몸에 어떤 영향이 생겼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아버지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분께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시는데 한 여자분이 그분의 옷자락 끝에 손을 대었습니다... 폐경기에 심한 출혈을 겪고 있던 여자분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그분은 멈추어 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내가 쇠약해진 것을 느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그 여자가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선물이셨습니다. 세상에 주어진 가장 위대한 선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주셨을 때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인정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우리 모두... 마을에 순회 흥행단이 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 남부 사람들은 돈이 없지만 그 공연은 보고 싶습니다. 공연장은 높은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여기 윌리엄스 형제님은 키가 작고 힘이 세고 다부지다고 합시다. 저는 키가 아주 크고 마른 사람입니다. 그러니 형제님은 코끼리에게 물을 날라다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힘이 세니까요. 저는 못 합니다. 땅에서 너무 높이 떨어져 있거든요. 형제님처럼 물을 나를 수 없을 겁니다. 그분은 키가 작고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생긴 것도 어쩔 수 없고, 제가 이렇게 생긴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의 사역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인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저 너머 장막 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왔습니다... 잉글랜드를 엔젤랜드라고 부르던 때의 그 나라 왕처럼 말입니다... 성 [불명확]이 그곳에 와서 잉글랜드 왕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왕이 벽난로 곁에 앉아 있는데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날아와 안으로 들어와서는 빙빙 날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성 [불명확]이 왕에게 “저 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침례를 주었고, 잉글랜드에서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자기가 아는 곳... 그러나 자기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다가 눈을 감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는 지각이 있고 알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왔다는 것도 알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도 알지만,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찾으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땅에서 온 사자입니다.
자, 오늘 아침 우리가 여기 서서 사방을 둘러봅니다. 밑으로 기어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제가 위를 올려다보니 아주 높은 곳에 옹이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윌슨 형제님...”이라고 합니다. “저는 절대 못 올라갑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땅에 너무 가깝게 지어졌습니다. 도저히 못 올라갑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겼습니다. 아주 높이 뛰어올라 손가락으로 걸어 잡고 몸을 끌어 올리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좀 투박한 설명이지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함께 서 있는 위치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할 일이 있고 저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환상을 보도록 태어났습니다. 강단에 있으면 여기로... 누군가 제 앞으로 나옵니다. 그때는 그 사람의 믿음이 있어야 그것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 자신의 믿음입니다. 마치 기어가 맞물리고 기어가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차를 몰고 언덕을 올라가다가 기어가 바뀌는 것입니다. 제가 그 기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분께서 하십니다. 저는 집회에 오기 몇 시간 전부터 혼자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빛이 제게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고 저는 그대로 들어갑니다. 제가 건물에 들어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겁니다. 바로 기도받을 사람들의 줄로 가는 편이 더 좋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잠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집회는 아주 오래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 생명력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여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힘껏 뛰어올라 이렇게 달려가 붙잡고, 몸을 끌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옵니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또 무엇을 보셨습니까?” “볼 시간이 있었던 것은 그것뿐입니다.” “휴!” 힘이 많이 듭니다. 완전히 지쳐 버린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제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당신에게 종양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서 떠났습니다. 힘이 듭니다. 저는 피곤해졌습니다. “또 무엇을 보셨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그러면 저는 다시 해야 합니다. 좋습니다. 다시 올라가 몸을 끌어 올리며 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시 내려와서는 “당신은 제3...에서 오신 아무개 양입니다.”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보내신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몸은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 흥행 전체를 책임진 단장, 그 모든 것의 주인이 지나가면 어떻겠습니까?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예, 당신을 압니다.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들어 올려 손에 받쳐 주거나 이렇게 하면서 말합니다. “이 천막이 보입니까? 이 사람들은 이것을 하고, 여기로 내려갔다가 저 아래로 나옵니다. 또 이쪽으로, 저쪽으로 갑니다.” 저는 그저 거기 앉아서 바라봅니다. 괜찮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이 저를 내려놓으셔도 저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제 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저와 함께 계신 분들 가운데는... 여러분 중에는 제가 잘 모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밖에서 그분이 주권적으로 환상을 보내 주실 때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때로는 기름부음 아래서 몸에 숨이 없고, 50분이나 60분 동안 호흡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분께서는 일어날 일을 아주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든 것을, 그 일의 전경 전체를 보여 주십니다. 제가 여기 그분의 성경을 앞에 놓고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재판관이십니다. 그것은 수천 번 가운데 단 한 번도, 조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집회에서 어떤 한 사람이 나올 때에는... 그것은 그 사람이 그 똑같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용하는 쪽이 그 사람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을 때에는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께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여자가 그 은사를 사용하자 그분에게서 효능이 나갔습니다. 제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자, 이제 다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우리더러 이곳에서 나가 달라고 할 테니까요. 하지만... 무슨 말이 나오는지 잘 들으십시오. 너무 빨리 떠나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아마 보더스 형제님이 집회 시작 때 그 점을 설명해 주실 겁니다. 너무 빨리 떠나지 마십시오. “여기 한 사람이... 이 앞에 있는 분에게... 종양이 있습니다, 혹은 암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 말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윌리엄스 형제님을 예로 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시간은 있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제가 형제님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합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겁니다. 저는 뉴욕시에 있습니다. 오늘 형제님은 이곳에서 이 멋진 밝은색 양복과 넥타이를 하고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참 유감입니다만, 결핵에 걸리셨습니다. 이제는 무엇으로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쉬기에도 너무 늦은 단계입니다. 그러니 이 병으로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형제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믿음이 붙잡습니다. “브래넘 형제님께 기도를 부탁드려야겠어.” 그에 관한 소식을 듣고 뉴욕으로 옵니다. 저는 뉴욕에 있습니다. 이제 형제님은 검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하고 안경은 벗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단으로 올라옵니다. 저는 거기 서 있습니다. 평생 그분을 본 적이 없고 그분도 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합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그분의 영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려고... 때로는 사칭하는 사람도 만나고 비판하는 사람도 만납니다. 어젯밤 집회에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받을 사람들을 앞으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심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거기 서서 “안녕하세요?”라고 합니다. 그분도 “안녕하세요?”라고 합니다. 저는 대화를 이어 갑니다. 잠시 후 제 앞에 무언가 보입니다. 제가 “당신은... 병을 앓고 계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충분히 길게 분별해 본다고 합시다. 그날 밤 강단에 있을 사람이 이분 한 사람뿐이라고 합시다. 제가 말합니다. “당신은 결핵을 앓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의사를 찾아가셨군요. 의사는 콧수염이 있고 안경을 썼고 머리가 희끗희끗했습니다. 그가 진찰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모래가 많은 곳에서 오셨습니다. 캘리포니아입니다.” “예, 맞습니다.” “당신은 복음의 사역자입니다.”
저는 그분이 하는 일을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모임으로 와서 지금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그분은 흰 양복, 밝은색 양복에 밝은색 넥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식탁에 앉아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체격이 좀 통통하고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제게서 떠납니다. 저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바로 여기 서서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아마 아주 감격할 겁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브래넘 형제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합니다. 제가 그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고는 강단에서 내려가 버립니다.
하지만 그분은 충분히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것은 그분이 한 일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해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기다려 보십시오.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제가 잠시 서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계속 지켜봅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다시 그분을 봅니다. 아직 그분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다면 “선생님,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한 뒤 보내 드립니다. 그러나 응답하는 음성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하는 것을 들으신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끌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응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저는... 그것은 그분 자신의 믿음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치유되었다고 말해 준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믿음이 하나님을 움직여 그렇게 하시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미리 말해 준 것입니다. 이제 선포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면 여러 해가 지나 노인이 된 그분을 봅니다. 그러면 제가 말합니다. “선생님,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당신은 치유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당신의 믿음을 더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당신은 낯선 도시에 있을 것입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당신의 팔을 툭 칠 것입니다. 돌아보면 어린 신문팔이 소년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정확히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릴 것입니다. 이것으로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는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끌어낸 것이고,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 것은 그분이 한 것입니다. 이제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것이 그다음입니다.
그러면 이튿날 그분은 가면서 함께 있던 친구들, 여기 사역자 형제 여러분 가운데 몇 분에게 “참 이상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만일 그저 자신의 믿음이 무언가를 일으킨 것이라면, 자기 믿음이 하나님께 닿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을 알 만큼 충분히 기다리지 않은 것입니다. 곧장 서둘러 강단에서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길을 다니며 “있잖아요, 저는... 뭐지?” 하고 말하는데 무언가 자기를 툭 치면 “뭐지?” 할 것입니다. 댕, 댕, 12시 종이 울립니다. “뭐지?” 하겠지요. 아시겠습니까? 아, 그때는 무엇으로도 그를 의심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바로 거기에 단단히 닻을 내린 것입니다.
여기... 바로 여기 앉아 계신 에번스 형제님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위저 보드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장난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그런 일을 할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분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일들에 관해서는 참으로 할 말이 많지만,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짧은 간증입니다. 그분에게 새 차가 있었고, 그 안에는 가족의 옷이며 여러 물건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루이빌에 있는 밀러스 카페테리아에 들렀습니다. 켄터키에서는 그저... 무엇만 있으면 차를 팔 수 있습니다... 차 소유권 증서를 만들어 줍니다. 그곳에는 차를 훔치는 도둑 일당이 있었는데, 차를 끌고 들어가 덧칠하고 소유권 증서를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아, 정말... 끔찍했습니다.
에번스 씨는 조지아에서 그곳까지 수백 마일, 약 750마일을 올라오다가 그곳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다음 식사하러 들어갔습니다. 나와 보니 차며 옷이며 녹음기며 가진 것이 전부 털려 없어졌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집에서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돈도 없고 옷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새 차까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소스먼 형제님과, 아마 심프슨 형제님, 그리고 그곳의 다른 형제들과 만났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주님께 여쭈어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브래넘 형제님께 가서 여쭈어 달라고 부탁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분들이 집으로 왔습니다... 개인 면담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일어날 때까지 주님 앞에 머뭅니다. 강단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거기 머물며 그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거기 앉아 기다립니다... 지금도 이런 일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온갖 곳에서 신청한 예약이 300건가량 밀려 있습니다.
그래서 에번스 형제님과 프레드 형제님, 또 여러 분이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네댓 명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윌리 형제님, 그날 아침 형제님도 함께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레드 형제님이 계셨다는 것은 알지만 모두 몇 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사역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믿는 분들입니다.) 상황을 알아내야 합니다. 언제나 치료법을 찾기 전에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의사에게... 진료실에 들어가서 “선생님, 배가 아픕니다. 머리도 아픕니다.”라고 하는데 아스피린 몇 알만 주고 내보낸다면, 그 의사는 여러분을 떼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의사는 원인을 찾을 때까지 그 환자를 진찰할 것입니다. 기도받으려고 줄 선 사람들을 따라가며 손을 얹고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흔드십시오...”라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먼저 원인을 찾읍시다.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도록 저주를 내리셨는데, 여러분이 와서 그것을 없애 버릴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친 일이나,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불렸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들을 저주한 일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다룰 때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를 저주하고 짓밟는 등의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러다가는 하나님 앞에서 곤경에 처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밑에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렸다가 그 사람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먼저 바로잡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은 원인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원인만 찾을 수 있다면 치료법은 이미 완전합니다. 원인을 없애십시오. 그러면... 이를테면 어떤 것 위에 흙덩이가 놓여 있다면... 옥수수 싹 위에 막대기가 놓여 있어서 구부러져 자란다면, 그 막대기만 치워 주면 곧게 자랄 것입니다. 그것도 똑같습니다. 먼저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되는지 알아내십시오.
자, 에번스 씨가 들어와서 “브래넘 형제님...” 하며 그 사정을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나아갑시다.”라고 했고,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저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일도 그런 식입니다... 여러분은 집회 이야기를 들으셨고, 보셨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십니다.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는 사실에 의사들이 서명한 진술서가 있습니다. 제 보잘것없는 사역에서도 그런 일을 다섯 번 보았습니다. 저 밖 어디엔가 있는 그 혼을 찾아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다시 데려와야 합니다. 영께서 나가실 때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보내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나아가던 중에 저는 노란 셔츠를 입은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한때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에번스 형제님의 차를 몰고 루이빌에서 남쪽으로 118마일 떨어진 켄터키주 볼링그린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영께서 그에게 잘못을 하고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는 그 도둑 일당을 위해 일하고 있었고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영, 곧 말씀이 이 기도 가운데 그를 붙들고 계셔서, 그는 차를 돌려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가 차를 도로 가져와 어느 곳에 세워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일어나 에번스 형제님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며 괜찮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거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는 강 건너에서 도난당했습니다. 강을 건너 1마일쯤 가면 켄터키주 루이빌인데, 그곳의 밀러스 카페테리아에서였습니다. 거기서 도난당한 차가 볼링그린에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기름을 가득 채워 두었는데 절반이 없어졌습니다. 바로 그 젊은이가 차를 몰고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데 쓴 만큼이었습니다. 그는 차를 몰고 돌아와 바로 그 길에 세워 두었습니다... 형제님은 트레일러 야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 차를 발견했습니다. 말씀드린 그대로, 바로 길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나가셔서 그 일을 붙드신 것입니다.
바로 이어서 있었던 다른 일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대되는 경우를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정말 그만하겠습니다... 그분들은... 같은 분의 일인데,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차를 사고는 돈을...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했을 때 주님의 영께서 그 사람을 따라가셨지만, 그는 거칠고 경건하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말씀은 그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셔야 했고 에번스 형제님을 그쪽으로 보내셨습니다. 어느 날 형제님이 제 집에 와 있을 때 제가 “우리는 볼링그린을 지나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 집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는데, 낚시하러 가려고 형제님과 아내분과 제가 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분이 “제가... 여기 아래쪽으로 빠지는 게 좋을까요?”라고 하기에, 저는 “돈을 받으시려면 지금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리로 갔고 돈을 전부 받았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일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아십니다. 하지만 때로는 일이 지체된다면... 그 일은 두어 달이나 그보다 더 오래, 두 달... 뭐라고요? 2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요청했고,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구했다면... 마르다는 “내 오라버니가 죽었습니다. 저기 무덤에서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있은 뒤에도 그분은 2년 동안 굳게 붙들었습니다.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셨고 그분은 받았습니다. 그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자신을 비추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온종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좋은 분들입니다. 여러분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 여기 와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과 함께 그물로 고기를 잡는 일을 도우려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다시피... 이런 일들을 육적으로 흉내 낸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나왔을 때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고, 여러 무리가 섞여 그와 함께 나왔습니다. 얼마 뒤 그들이 진영을 어지럽혔습니다. 고라의 일 같은 것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저는... 때로는 목자들이 조금 의심하는데, 저는 그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먹여야 할 양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는 그것을 아예 정죄하는 형제들에게조차 악감정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끝이 가까워 오는 이때, 저의 형제로서 이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편에서 여러분을 만날 때에도 제 간증은 여전히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 여러분,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때로는 말하다가... 참... 그런 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쪽으로 생각하고 있는데도 여러분은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처가 생기고, 어쩌면 여러분의 형제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면 마음이 몹시 괴롭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을 맡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일에 충성스럽고 신실해야 합니다. 저는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그것을 존중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존중할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대할 때는 어떻습니까? 예쁘든 못생겼든 어떻든 간에, 그 여자가 숙녀, 참된 숙녀라면 조금이라도 남자다운 면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존중할 것입니다. 누구든 그 여자의 태도를 존중합니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을 보는 형제들 말입니다. 저 역시 저와 의견이 다른 형제들을 그렇게 존중합니다. 저는 물론 존중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지금 저쪽에 있던 루터교 대학 학장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제게 편지를 보내 제가 겉만 번지르르한 점쟁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말들과, 저에 관한 끔찍한...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답장을 썼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30년 동안 설교했다고 하더군요. 나는 당신이 젖을 먹기도 전부터 설교하고 있었소.” 그러고는 또 그런 말을... 그럼에도 저는 그분을 존중했습니다. 그분은 저를 그냥 “브래넘”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답장에 “사랑하는 귀한 형제님께”라고 썼습니다. 루터교 대학 학장이었습니다. 복음을 50년 동안 전하고도 그리스도를 존중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입니다. 톱밥으로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정중한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거기 서 있다니, 기가 막히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눈앞을 가리는 눈보라를 뚫고 15마일을 차로 갔는데, 가서 보니 겉만 번지르르한 점쟁이가 아니었겠소.”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 일은 용서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시대에도 제 시대에 하시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똑같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옳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말하면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형제님의 50년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형제님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에 관해 50년 동안 말하고 그분을 위해 설교하며 대학의 학장까지 된 사람이 예수님에 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흥분하셨고 이해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그분이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일은 사과드립니다. 다시 미니애폴리스에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에거리 박사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대학에 와 주셨으면 합니다.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리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저는 말했습니다... 잭 무어 형제님과 저희 몇 사람은 그곳의 실업인회 대집회에 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배운 것이 매우 적고, 자신을 설교자라고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잭 형제님 옆에 앉았습니다. 그분은 상당히 똑똑하시니까요. 그 학장이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 잭 형제님의 다리를 툭 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거기서부터 대신 맡아 주실 테니까요.
그분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푸짐한 스뫼르고스보르드 뷔페 식사를 준비했고, 식탁을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하여 저를 이쪽 상석에 앉혔습니다. 사랑스러운 여자분들이 식탁에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식사 후에 에거리 박사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늘 저녁 집회에 가시려면 돌아가셔야 하는 줄 압니다만,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에거리 박사님,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답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배운 것이 워낙 적어서 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먼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했던 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이미 용서했습니다, 형제님. 그 일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우리 베서니 사람들은 갈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오순절교인들에 관한 글을 읽고 있습니다. 형제님이 예전에 침례교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만나러 갔는데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자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리고 창문 유리도 깨뜨리고, 그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받은 겁니까?” 저는 “성령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다고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제가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서 발견한 것은 이것입니다. 증기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선로에서 [불명확한 말] 하게 하는 데 쓰는 대신 기적 소리를 내는 데 써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만 안다면... 그들은 외치는 데 다 써 버립니다. 소리치는 데 다 써 버립니다.” 제 뜻을 아실 겁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분들을 모욕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과 존중을 담아 하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권능을 일하는 데 쓰고 다스릴 수만 있다면... 마지막 때의 하늘을 가로질러 번쩍이는 지그재그 번개처럼, 그것을 다스려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에디슨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했고, 해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권능을 다스려 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소리치는 데 다 쓰고 내뿜어 버립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루터교인들이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성령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몹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에 갔습니다. 제가 썼... 한번은 모든 영적 은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 베서니 사람들은 갈급합니다. 여기 있는 제 동료들 모두가” [그곳에는 약 300명이나 400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갈급해합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그 책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몇몇 형제는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그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에게는 아무 은사도 없습니다. 그저 그것들에 관해 썼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형제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허상에 너무나 여러 번 실망했던 터라 성급하게 그것을 악한 영의 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도 언젠가 똑같은 일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이 많으십니다. 분명 저에게 긍휼이 많으십니다.” 그분은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그곳에는 학비를 낼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천 에이커쯤 되는, 아니 그보다 더 큰, 어쩌면 2천 에이커쯤 되는 농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옥수수를 심고 학생들이 일하며 학비를 벌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밭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옥수수가 돋아나는 것을 보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우리 모두 보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나가 보니 작은 잎 두 개가... 아니, 어느 날 아침 나가 보니 작은 잎 두 개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는 ‘옥수수 수확을 주셨으니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수확물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분은 “글쎄요, 가지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합시다. 잠재적으로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루터교인들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작은 잎 두 개가 자라서 수꽃이 되었습니다. 다른 것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성화를 통한 감리교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의롭게 됨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수꽃이 아래에 있는 잎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흥! 나는 수꽃이다. 너는 내게 전혀 필요 없어. 이제는 내가 전부다.’ 하지만 그 수꽃은 마침내 이런 작은 수꽃들을 다시 잎으로 떨어뜨렸고, 그러자 처음 심었던 알곡과 같은 옥수수 이삭을 맺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오순절이었습니다. 은사들이 교회에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이삭에 곰팡이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알곡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본래의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알곡은 ‘나는 수꽃도 잎도 필요 없다. 너희 감리교인들도 루터교인들도 필요 없다. 나는 알곡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수꽃을 만드는 데는 잎 안에 있던 생명이 필요했고, 알곡을 만드는 데도 잎 안에 있던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오순절교회는 루터교회가 더 자란 것입니다.” 그분은 접시를 뒤로 밀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간단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신학을 논박하거나 그들과 논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무엇이 진리인지 보게 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다른 루터교인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 베서니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식탁에서 물러나 식탁을 등지고 벽을 향해 무릎을 꿇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손을 얹었고, 400명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수백, 수백 명이 모이는 모임을 이끌며 기적과 표적과 이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베서니 대학의 에거리 박사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잘못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보더스 형제님이 목수라고 합시다. 형제님이 여기 서서 망치로 못을 이리저리 두드리고 있는데, 저에게는 아주 굉장한 망치가 있다고 합시다. 못 한 통을 넣고 “드르르륵” 하며 이렇게 올라가기만 하면 판자를 한꺼번에 모두 박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형제님께 다가가서 “그래요. 당신은 상대도 안 됩니다.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경쟁에 끼지도 못합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제가 가진 상품을 망쳐 버린 것입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다가갔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가가서 그분이 얼마나 훌륭하고 솜씨 좋은 목수인지 말씀드리고, 제가 가진 상품을 그냥 두기만 해도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저절로 팔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가 여기 온 까닭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러분 루터교인들과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그리고 많은 형제님들에게 어쩌면 한 단계 더 나아간 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억지로 떠맡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한 단계 더 나아간 은사에 관해 말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시간을 많이 빼앗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기 문을 닫는 동안 아주 부드럽게 찬송합시다. 문을 닫겠습니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제 이렇게 치유에 관한 작은 기초를 놓았습니다... 오늘 밤에는 목사님들과 모두가 괜찮으시다면 구원을 위한 저녁 집회를 갖고 싶습니다. 살펴보기 위해... 결국 치유받은 이 사람들도... 오래 살다 보면 어쩌면 다시 병들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구원받으면 영생을 갖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때에 나올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우리는 문을 닫았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우리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잠시 머리를 숙여 기도드리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초조해하고 서두르면 우리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아버지께서 여기 함께하심으로, 어떻게든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에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이 모임을 위해 장소를 내어 준 친절한 분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분들이 큰일을 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참 좋은 분들 같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멸시받고 버림받은 무리인데도 그분들은 문을 열어 우리가 들어오게 해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분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이곳의 주인과 일하는 모든 사람이... 여자 종업원들이 이 방에 들어올 때 죄를 깊이 깨달아서, 죄로 인한 슬픔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게 해 주십시오. 주님, 그들 모두가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져 하나님을 위해 큰 힘을 발휘하게 해 주십시오.
이 형제자매들과의 교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오는 모든 시대에, 끝없는 세월 동안 영원히 함께 살기를 기대하는 이 훌륭한 남녀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여기 있는 사회자 형제님과 아내분, 모든 사역자와 그 아내들, 오늘 아침 우리와 함께한 모든 방문객을 축복해 주십시오. 아버지, 우리가 사는 이 중대한 때에, 저녁 빛이 지고 있는 바로 이때에—여기 서부 해안에서 해가 지고 있습니다—곧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는 고난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러운 자는 여전히 더럽고, 거룩한 자는 여전히 거룩할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 늦기 전에 모든 혼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모든 일을 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허락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형제들의 사역과 작은 교회들을 축복하시고,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자매들과 형제들의 일을 축복해 주십시오. 하나님, 그들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전 세계에서 이 작은 오순절 무리를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감히 들어가는 저 깊은 정글 속에서도 만났습니다. 그곳에는 후원해 주는 이도 없는 작은 오순절 신자가 앉아서 빛의 촛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지원받지 못한 채 어떤 작은 남자나 여자가 그 깊은 곳에 서 있었습니다. 몸은 몹시 상했고 아메바에 몸이 갉아먹혔으며 옷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빛의 촛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한 것처럼, 그들은 양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은 채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 오직 그 큰 심판 때에야 그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 남녀를 주신 것과, 저도 그런 무리와 함께하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게 하신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버지, 그들 모두를 축복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이 그들 위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많은 연약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는 잘못하려는 뜻이 없지만 육신 때문에 날마다 실수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으려면 우리 자신의 생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는 죽어 있고 그분 안에서는 살아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몸도 그렇게 되게 하시고, 우리의 혼도 그분께 온전히 복종하게 하셔서, 우리가 가든 오든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비친 그리스도를 보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우리를 함께 축복해 주십시오. 오늘 밤 집회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내일도 도와주시며, 일요학교들과 교회들을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모든 교회와 모든 마음에 하나님의 불꽃이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다시 사회자와 형제님께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