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자리에 앉기 전에 잠시 그대로 서 계십시다.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집회 둘째 날인 오늘 저녁, 기도 제목이 있으신 분이 얼마나 계신지 궁금합니다. 손을 들어 알려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제 간구를 들어 주십시오.”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다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부르짖음을 듣는 데 결코 지치지 않으시며 언제나 기꺼이 응답해 주십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는 줄로 믿기만을 요구하십니다. 주님, 오늘 밤 아버지의 위대하신 성령께서 말씀 가운데 역사하셔서 모든 의심의 그림자를 걷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간구에 응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약속하신 그분을 믿으므로 우리가 간구한 것을 받은 줄 압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병든 이들을 치유하시며 교회를 강하게 하시고 친히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밤 저를 도우셔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이 되게 해 주십시오. 여기 있는 모든 이들도 그와 같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지금 기도를 받으려고 여기 강단 위에, 아니, 설교대 위에 손수건들을 놓고 계시는군요.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손수건 같은 것들 위에 기도하는 일은 우리의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성경에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명령이라고 믿습니다. 한 가지 예로, 바울은 손수건과 앞치마 위에 기도하여 병든 사람들에게 보냈고, 그들은 치유받았습니다.
한번은 남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보았는데... 아마 그 사진이 책에 실려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삼베 자루라고 부르는 아주 큰 자루들에 그날 온 우편물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온통 손수건뿐이었습니다. 수천 장이나 되었지요. 제가 그 위에 기도하고 있었더니 한 기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은 미신을 아주 많이 믿는 분입니다. 손수건 위에 기도를 하니까요.”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육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 일을 모르니 그런 것입니다.
제가 로마에 갔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어느 그리스 화가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라니! 세상에! 이브는 무슨 선사시대 동물처럼 생겼습니다. 아담도 말입니다! 평생 그런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사람이 회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알지 못하면 육신적인 생각으로 무엇을 그려 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브가 이 땅에 살았던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죄도 닿지 않은 채 하나님의 손으로 갓 지어졌으니까요. 아담은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보다 완전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이시며 가장 완전한 사람이셨으니까요. 그런데 육신적인 생각은 아담의 머리가 이만큼 크고, 한쪽 어깨는 올라가고 다른 쪽은 처져 있는 모습을 그려 냅니다. 이브는 한쪽 다리가 작고 다른 쪽 다리는 아주 큽니다. 머리카락은 늘어져 있고 입은 옆으로 비뚤어져 있습니다. 세상에! 성령께서 그런 것을 만드셨으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적인 생각이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도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도록 내버려 두면, 그런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 똑같이 흘러가게 됩니다. 오늘 밤 여기 있는 제 딸이 오늘 저를 좀 놀려 보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여기 『다윈의 윤리학』이 있는데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고맙다. 오래전에 읽었단다. 그런 것은 한 번이면 족해.” 하지만 이 오래된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말씀을 그저 흠뻑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온 교회가 조찬 모임에 오실 수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복되신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나누며 얼마나 멋진 교제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어젯밤 제가 여러분을 조금 늦게까지 붙들어 둔 줄 압니다. 저도 조금 지쳐 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이 쉬지 않고 이어 온 아홉 번째 집회이고, 두 번의 집회를 더 마치면 조금 쉬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좀 일찍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일하시는 분들이고 다시 일하러 가셔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오래 붙들어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오신 분들이 오히려 더 늘어 기쁩니다. 관심이 있다는 뜻이지요. 친구 여러분, 요즘에는 그것이 눈에 띄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알듯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지만, 부흥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불길은 잦아들고 사람들의 관심은 말라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흥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지요. 역사를 보면 전도자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때는 대개 처음 삼 년이고, 그 뒤로는 그 삼 년 동안 전했던 설교의 명성으로 살아갑니다. 부흥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부흥은 십오 년가량 계속되어 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마지막 부흥이고 우리가 바로 마지막 때에 와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다음에는 교회, 곧 택함받은 이들을 여러 무리 가운데서 끌어내어 한데 모으시고, 그렇게 떠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흥의 불길과 사람들의 관심이 잦아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지쳐 잠들어 갑니다.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 이만큼 관심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벅찹니다. 이곳 오리건에는 아직도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말씀으로 힘껏 그 불을 부채질합시다. 말씀을 부채질하면 성령, 곧 그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할 급하고 강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시간을 아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나누기에 참 좋은 분들입니다.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시간을 살피며 아껴야 합니다. 잠시 후 말씀을 마치고 나면 이것들을 위해... 이 손수건들 위에 기도하겠습니다. 언제든 가지고 올라오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밤 제가 여기 적어 놓은 것들을 보며 성경을 펴 주셨으면 합니다. 간단히... 제가 하려는 일, 애쓰고 있는 일은 비밀이 아닙니다. 사람들 속에 믿음을 세워, 우리가 큰 절정에 이르고 온 지역을 뒤흔들 만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스밸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큰 강당에 모인 온 회중 가운데 허약한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는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믿음을 계속 세웠습니다. 말씀의 단순함 그대로, 제가 설명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계속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씀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큰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지난번 밤 스포캔에서도 그랬습니다. 앞쪽은 휠체어와 들것에 누운 환자들, 그런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줄을 따라 끝까지 가시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르실 때마다 모두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들은 휠체어에 누운 채 땀을 흘리며 견디고, 말씀을 들으며 그 믿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꼭 붙잡고, 살피고, 알아 가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얼마 후 성령께서 갑자기 곧바로 내려오셔서 그 줄을 따라 쭉 가시자, 그들이 모두 곧바로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우리의 문제는 너무 서두른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품는 순간 여러분은 지고 맙니다. 이미 패배할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딛고 설 것이 없습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그들은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그저 인내하십시오.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히브리 아이들이 불타는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예수님이 무덤 깊이 들어가시고 그분의 혼이 지옥으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을 무저갱을 뚫고 곧바로 일으키시고 무덤 밖으로 나오게 하셔서 마귀의 모든 통로를 끊으시고, 그대로 영광 가운데로 올라가게 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서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놓칩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십시오. 기다리고, 살펴보고, 들으십시오. 성경을 펴서 자세히 살피고, 그것이 옳은지 보십시오. 옳다면 붙드십시오. 옳지 않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바로잡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성령의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떤 생각이나 추론에서 끌어내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곳을 떠나기 전에 어느 날 밤 “동방과 서방이 만날 때”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해안을 오르내리며 줄곧 그 말씀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방과 서방이 만날 때.”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한 번은 “견고히 지켜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전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말입니다.
오늘 제 서류 가방 하나를 살펴보며 짤막한 설교 본문이나 녹음된 말씀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제게 주셔서 전하게 하신 설교, 메시지가 오백 편가량 됩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도... 강단에 서려면 기도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누구든 홀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움을 안고 서재에서 나와 회중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리잔 같은 그릇에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피 두 방울을 담아 가지고 있다면 제가 어떻게 할지 종종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피를 쏟지 않으려고 얼마나 조심조심 걸어가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밤 그분이 보시기에 제 손에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피로 사신 이들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겠습니까? 심판 날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아니, 참으로 큰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갑시다.
이제 성경을 펴 주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조금 읽겠습니다. 제 말은 사람의 말이기에 무너지겠지만, 그분의 말씀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읽읍시다. 괜찮으시면 마태복음 15장을 펴서 21절부터 읽겠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거기서 나가사 시돈의 두로 지방으로 떠나시니 보라, 어떤 가나안 여자가 바로 그 지방에서 나와 그분께 소리 질러 이르기를,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내 딸이 마귀에게 몹시 시달리고 있나이다, 하였으나 그분께서는 그녀에게 한 말씀도 응답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분의 제자들이 와서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그녀를 보내소서. 그녀가 우리를 따라오며 소리를 지르고 있나이다, 하였으나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라. 그때에 그녀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기를,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였으나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므로 ... 그녀가 이르되, 주여, 참으로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원하는 대로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하시니 바로 그 시각부터 그녀의 딸이 온전하게 되니라. 여기서 주제를 하나 끌어내어, 주제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삼십 분 정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단어를 택해서 그 말을 중심으로 내용을 풀어 가려 합니다. 그 단어는 “끈기 있는”입니다. 끈기 있다는 말은... 끈질기게 계속한다는 뜻입니다. 웹스터 사전에서도 끈질기게 계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목표를 이루려고 끈질기게 계속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끈질기게 계속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이 이루려는 일을 믿는 사람들은 끈질겼습니다. 여러분도 끈질겨야 합니다. 그저 뒤로 물러앉아 “조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끈질기게 나아가려면 먼저 자신이 이루려는 일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끈질기게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그것을 시도했고, 끈질기게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끈질기게 나아가기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어디서 얻고 있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잘못된 일에 끈질기게 매달렸고, 그 결과는 언제나 잘못되었습니다. 니므롯은 탑을 쌓고 싶어 했습니다. 끈질기게 매달렸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영원히 존속할 도시를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끈질기게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방향을 똑바로, 바르게 잡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제 소중한 친구인 의사 한 분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이 일에 관해 편지를 보내고 싶으시다면, 이름은 샘 어데어 박사이고 주소는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월가와 메이플가 모퉁이, 아니, 월가와 마켓가 모퉁이입니다. 그곳에 병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학교에 다닌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동부 지역의 가장 훌륭한 의사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집에는 기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고, 사방에서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아내가 뒤쪽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빌리, 어데어 박사님이 오셨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작은 서재로 모셔요. 다른 방들에는 사람들이 있으니 작은 서재로 모셔요. 가능한 한 빨리 가겠소.” 그때 루이빌의 월넛 스트리트 침례교회에서 온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비장에 암이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구원을 받았고 암도 치유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주님께서 그분에 대해 어떤 말씀을 주실지 살피며 그분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체구가 작은 샘 박사를 만나러 들어가니,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습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제 아들 빌리 폴을 받아 준 의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친했습니다. 제 집에 와서 식사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야말로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 뭐 좀 물어볼게.” 우리는 아주 잘 아는 사이여서 제가 그를 “박사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저 “샘”이라고 부르고, 그는 저를 “빌”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 뭐 좀 물어볼게. 이 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어느 도시에나 병원과 좋은 의사들이 필요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난 이 도시에 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도 그래, 샘.”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런 병원을 맡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제가 물었습니다. “그걸 계획하고 있나?”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 제가 말했습니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네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만한 다른 의사는 생각나지 않는군.” 그는 작고 거칠며 겉이 아주 딱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그를 거북이라고 불렀습니다. 속은 부드러운데 겉은 딱딱하니까요. 그건 그저 그가 몸을 움츠려 들어가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누구나 타르수스의 사울도 냉혹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교회는 맛디아를 택했지만,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매부리코에 성미가 급한 그 작고 보잘것없던 유대인을 택하셔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난 이 병원을 갖고 싶어. 빌, 내가 주님을 섬기고 싶어 하는 건 알지. 하지만 난 너무 못됐어.” 제가 말했습니다.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해. 흑인들이 찾아올 때가 있어. 수술이 필요한데 돈이 없지. 그래도 내가 수술해 주는 건 자네도 알잖아.” 그것은 사실입니다. 누구든 돈이 없으면 그는 그냥 수술을 해 줍니다. 유명한 외과 의사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건 믿어.” 그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나를 위해 주님께 여쭤봐 줄 수 있겠나?”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물론이지.”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조금... 병원을 어디에 지으면 좋겠나?” 제가 말했습니다. “그건 모르겠네. 다른 쪽으로 더 들어가면 거긴 홍수가 나는 지역이어서 홍수 방벽을 세워 놓았지. 나라면 방벽 이쪽에 자리를 잡겠어.”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어느 모퉁이에 부지가... 넓은 땅이 있던데.” 그가 말했습니다. “그곳은 장의사가 벌써 사 버렸어. 장례식장을 짓고 있지.”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 아래 옛 파우 석유 회사 자리 쪽은 어떤가?” 그가 말했습니다. “거기도 이미 임자가 있어.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설 거래. 빌, 딱 좋은 곳이 있는데 누가 나보다 먼저 사 버렸어. 켄터키에 사는 나이 든 부인이라더군. 저 아래 예전 디파트멘털 학교가 있던 자리야.” 그가 또 말했습니다. “그 부인에게 좀 마음이 있는 노인을 하나 알아. 그 노인에게 삼백 달러쯤 주고, 자네가... 그 부인은 그 땅을 육천 달러에 샀대. 그 노인에게 삼백 달러쯤 주고 그 부인이 내게 팔도록 해 달라는 거지. 부인에게는 만 달러를 주겠어.” 제가 말했습니다. “샘, 이것 봐. 하나님께는 어떤 일로도 뇌물을 쓸 수 없어. 하나님께 말씀드리려면 여기서부터 일을 정직하게 털어놓아야 해. 뇌물 같은 건 전혀 없어야 한다고. 하나님을 상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그가 말했습니다. “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땅은 정말 좋아.”
제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보세.” 그가 말했습니다. “좋아.”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보게.”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거기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했습니다. 십오 분에서 이십 분쯤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조금 후에 환상이 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박사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셨습니다. 건물을, 병원을 짓게 될 것입니다. 길쭉한 건물이고 붉은 벽돌로 지어질 것이며, 지붕은 낮을 것입니다. 도시의 한 구획을 거의 다 차지할 것입니다.” 그는 저를 아주 이상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디파트멘털 학교 자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곳은 잊으십시오. 월가와 마켓가 모퉁이, 언덕 위 안쪽에 크고 오래된 집이 있는 그 자리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잠깐만, 빌. 자네가 빌 홀에 대해 말해 준 건 기억해.” 지금 그 일을 자세히 말할 시간은 없습니다만... 암이 그의 간을 다 먹어 버려 의사는 그가 죽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전문의들이 모두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다람쥐 사냥을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홀 씨에 대한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홀 씨는 살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늙은 의사는 직접 봐야겠군.” 홀 씨는 오늘 밤에도 살아서 밀타운 침례교회에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윌 홀 일도 알고 그런 일들은 다 알아. 하지만 빌, 그 땅 문제로 방금 법원에 다녀왔어. 소유주가 필라델피아에 사는데, 무슨 사정이 있어 이십오 년 동안은 손댈 수 없는 땅이야.” 제가 말했습니다. “박사님,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린 것 가운데 사실이 아니었던 말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빌, 그건... 난 자네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제가 말했습니다. “저를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땅을 주셨습니다. 이미 해 놓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그렇게 하시는군요. 하지만 그분은 이미 부지를 주셨습니다. 병원은 거기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아무 말 없이 나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곁에 앉아 있어 증인이 되어 줄 수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나?” 그가 말했습니다. “얼어 죽을 것 같아.” 그때가 요즘 같은 계절이었습니다. 인디애나는 정말 더웠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박사님, 무슨 일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있잖아, 어젯밤 필라델피아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벌써 그 땅을 샀어. 내 것이 되었고 병원을 짓게 됐어.” 오늘도 그 병원이 거기 서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누구든 언제라도 무슨 의심이 들면 내게 전화하라고 해.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말이야.” 보십시오,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작은 친구는 끈질겼습니다. 병원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 소원이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그저 미지근한 교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바로 그것이 응답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어느 날 의사 한 분이 저와 함께 앉아 있다가 말했습니다. “나도 신유라는 것이 있다고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둥에 손을 대면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가서 기둥을 만지고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누가 기둥을 만지는 데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근본이 되는 무엇인가에 근거해야 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맞이할 때는 그 여자에게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하고, 여자도 그 남자에게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를 이루어 갈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며, 잘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부의 한 나이 든 흑인 형제가 했던 말과 같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서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는 편이 낫겠네.” 누가 물었습니다. “모즈, 왜 그렇지?” 그가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는 확실하게 그 위에 서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정확히 맞습니다. 성경은 요한계시록 21장에서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은 모두 없어지겠지만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밑바탕에 믿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 환상들이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주님의 천사, 그 불기둥이... 아마 여기 그 사진이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갖다 놓았지요? 만일 그것이 이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면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실감 나더라도 이 말씀을 따라 와야 합니다. 그 주님의 천사가 바로... 이스라엘을 따라간 불기둥, 아니,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며 따라갔던 그 불기둥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으시지요?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분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타르수스의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커다란 불기둥, 빛기둥이 앞에 나타나 그의 눈을 치자 그는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라.” 그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빛으로 감옥에 들어오셔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풀어 주시고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분이 그 주님의 천사라면, 참된 하나님의 아들 안에 나타나셨을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된 아들들 안에서도 같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같은 일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만일 성경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같은 천사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육신으로 나타나셨을 때와 같은 생명을 드러내고, 다시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겠다고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같은 영이십니다. 같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이 진리라는 데 믿음의 근거를 둘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있었던 수만 건의 환상 가운데 한 번이라도 틀린 적이 있다면 누구든 언제라도 보여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틀릴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보시는 것은 초보적인 환상입니다. 그저 작은 일들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입니다.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의 충만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한량없이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고, 우리는 분량에 따라 받습니다. 만일 제가 여기 있는 호수에서 물을 한 숟가락 떴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것은 바다입니다. 제가 물을 한 숟가락 떴다면 바다에서 물 한 숟가락을 떠 낸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바다 전체에 있는 성분과 똑같은 성분이 그 한 숟가락 안에 들어 있습니다. 양은 그만큼 많지 않아도 성분은 같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같은 일들, 같은 영, 같은 나타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믿음의 근거를 두십시오.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끈기 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굶어 죽어 가는데 누군가 빵 한 덩이를 주었다면... 이십오 센트면 빵 한 덩이를 살 수 있는데, 누군가 제게 빵값인 이십오 센트를 주었다면, 저는 빵 한 덩이를 손에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십오 센트짜리 동전을 손에 들고도 큰 소리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게 된다는 증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빵값인 이십오 센트가 제 손에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 믿음이 자기 안에 굳게 자리 잡은 것을 보면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이 어떤 상태를 드러내든, 얼마나 아프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믿습니다. 끈질기게 나아갑니다. 끈기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받은 것입니다!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의사 만 명이 서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그 말을 웃어넘기고 뛰어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러면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바라거나 원할 뿐입니다. 믿음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약해집니다. 아주, 아주 약해집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는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라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세우려는 것은 여러분이 “브래넘 형제님이 내게 안수해 주셨어”라고 말할 필요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있었어. 내가 그분께 손을 댔어. 브래넘 형제님이 한 일이 아니었어.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니었어. 하나님께서 하셨어.” 형제님, 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 일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것을 믿고 그 일에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끈질기게 나아가십시오. 그것을 붙드십시오.
기도했던 위대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밸리포지에 있던 조지 워싱턴은 매우 끈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영국군이 건너편에 있을 때 그는 밤새 기도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아무리... 거기 우리 미군 병사들이 서 있었습니다. 절반은 발에 신발도 없었습니다. 미군 병사들에게 신발이 없었던 것입니다. 워싱턴은 허리까지 흠뻑 젖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불어난 강도... 밸리포지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대로 건너갔습니다. 병사들에게 신발이 있든 없든, 적의 저항이 크든 작든, 그는 끈기 있게 나아갔습니다. 머스킷 총알 세 발이 그의 외투를 뚫고 지나갔지만 몸에는 닿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을 붙들 때까지 끝까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총도, 군대도, 강도, 어려움도, 무엇이든 간에 그는 계속 나아갑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나머지 지파들은 모두 말했습니다. “아, 우리는 차지할 수 없어! 차지할 수 없다고! 우리는 메뚜기 같아. 그들은 거인들이야.” 하지만 여호수아는 끈기 있게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었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온 갑옷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들은 물질이며, 땅은 그 모든 것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하나님의 온 갑옷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사랑, 기쁨, 평안, 믿음, 오래 참음, 선함, 온유함, 부드러움, 그 밖의 것들, 하나님, 성령, 영.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오래가는 것, 영원한 것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온 갑옷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눈으로 본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똑바로 보면서도 “안 보여요”라고 말한다면, 이해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무언가 와닿아 그것을 믿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누구도 말로 여러분을 돌려세울 수 없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길을 나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워싱턴은 끝까지 기도하여 응답을 받자 준비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성경적임을 알면 끈기 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노아는 그저 농부였습니다. 한 사람... 가인의 자손 계보를 보면 영리한 사람들, 위대한 과학자들, 과학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셋의 자손들은 겸손한 농민, 농부, 양을 치는 사람들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가운데 거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미국 사람들의 문제는 늘 크고 번쩍이는 것, 요란한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으로 오 분 만에 우리가 시끄러운 펌프로 사십 일 동안 퍼 올리는 것보다 더 많은 물을 끌어 올리실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크고 요란한 것을 찾고, 하나님은 작고 조용한 것을 찾으십니다. 거센 바람, 천둥, 연기, 지진, 그런 것 가운데 어느 것도 동굴에 있던 선지자 엘리야의 마음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걸어 나왔습니다. 다른 어느 것도 그의 마음을 끌 수 없었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굳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뒤 매우 끈질기게 나아갔습니다. 그때가 어떤 시대였을지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우리보다 더 뛰어난 문명을 가지고 있던 그때에 그가 어떤 반대에 부딪혔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세우지 못합니다. 그들은 스핑크스를 만들었습니다. 그 다리 하나를 눕혀 놓으려 해도 무개 화차 열여섯 량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만들지 못합니다. 아직 그 일을 할 만한 동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체에 방부 처리를 해서 오늘날까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이는 미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착색 기술이 있었습니다.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점을 보십시오. 그들은 영리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의 메시지가 그들의 과학적 생각과 아무리 맞지 않아도 그는 계속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변함없이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 주제가 나왔으니 잠깐 살펴봅시다. 그때가 온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둘러서서 노아와 그 가족이 목재를 맞추는 것을 보며 그를 비웃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봐, 노아, 하나 묻겠네.” 위대한 과학자들입니다. “우리는 레이더로 달까지 탐지할 수 있다네. 하나 묻겠어. 저 하늘 위 어디에 비가 있는지 보여 주게. 저 위 어디에 물이 있는지 보여 줘.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노아, 자네는 그것이 내려올 거라고 했지. 그런데 내려올 것이 어디 있나? 여기 있는 우리 장비로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 그만두게. 자네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야. 미쳐 가고 있다고. 그 말도 안 되는 방주 짓는 일을 그만두게. 내려와 우리,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세.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자고.”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장비에 저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나온들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거기에 두실 수 있습니다.” 그는 끈질겼습니다. 배에 뱃전을 대고 옆면을 갖추고 준비했습니다. 모두 완성한 뒤에는 방주 문에 서서 오직 그 문으로 들어가야만 구원받는다고 전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어느 날 노아가 보니 수사자와 암사자, 수말과 암말이 오고 있었습니다. 모두 방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준비하라, 노아야. 나는 그들의 행태와 불신을 더는 참을 수 없다. 내가 약속한 심판을 보내겠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저를 광신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바로 그 일이 되풀이될 때가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과학 시대, 달을 향해 쏘아 올리고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이 시대를 충분히 참으셨습니다. 또 하나의 바벨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멸하실 것을 모르십니까? 그분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밤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써 나아가며 구할 수 있는 혼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날들에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 것은 지금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은 사람들 앞에 보내실 수 있는 온갖 은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왕국 밖에 머뭅니다.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강단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기적의 날들을 부인하고 성령을 부인하는 것, 그런 것들이 그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겠습니다. 어느 날 노아와 그의 가족이 들어가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저기 네 냄새나는 짐승들이 있구나. 이제 들어가서 그것들과 함께 살아라.” 자기들이 아주 고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여겼겠지요! 그러고 나서 문이 그들 뒤에서 닫혔습니다. 노아의 집회에 오곤 하던 경계선상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늘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도 앞으로 나아오려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이런저런 것을 즐기지만 앞으로 나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 일에 직접 손을 대어 자신도 함께하는 사람임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형제님... 아, 형제님! 저는 그들과 한편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도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싶습니다. 제가 누린 가장 큰 영예는 복음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한편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 노아의 홍수 때가 오자 경계선상의 신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는 참 좋은 노인이었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이렇게 하세. 방주 근처에 가서 서 있자고. 그가 말한 대로 정말 저 위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물이 내리면 말이야, 어떻게 하면 되겠나? 문을 두드리세. 그는 마음씨 좋은 노인이니 우리를 들여보내 줄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을 닫은 것은 노아가 아니었습니다. 문을 닫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다 된 거야. 나는 그저 ‘하나님께 영광을! 모든 것이 내 것이야’라고 말하기만 하면 돼.” 아닙니다!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차지하는 땅은 한 치 한 치 싸워서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에게 그 약속의 땅을 주었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들어갈 때는 “너희 발바닥으로 밟을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그들에게 주셨지만, 그들은 한 치 한 치 싸워서 얻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발자국이 곧 소유권을 뜻했습니다.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들은 싸워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성경에 따르면 오월, 오월 십칠 일에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자,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노아가 아래층인 칭의의 층으로 내려가 보니 온갖 기어 다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층인 성화의 층으로 올라가 보니 온통 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빛이 내려 비치는 맨 위, 방주 안에서 성령 침례의 자리로 올라갔습니다. 거기 올라가 온 가족에게 말했습니다. “자, 둘러앉으렴. 내일 아침에는 해가 뜨지 않을 거야. 연기 같은 검은 구름이 하늘을 휩쓸고 물이 쏟아질 거야.”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도 해는 여느 때처럼 뜨겁게 떠올랐습니다. 노아도 다소 실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문이 닫힌 안에 있었습니다. 둘째 날도 지나갔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기에 칠 일 동안 있었습니다. 칠 일 동안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아들, 모든 자녀는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집회에 내려오셔서 큰 표적과 이적을 보이시면 여러분은 놀라워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것을 두고 여러분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인지 아닌지 보시려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정말 믿는지 아닌지 보시려고 시험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노아를 거기 앉혀 두시고 칠 일 동안 애태우며 견디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 아침이 되자 하늘이 검게 뒤덮여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커다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수구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 물이 불어나 높이 올라왔고, 방주까지 차올라 방주가 떴습니다.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방주는 계속 나아갔고 악한 자들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것을 붙들었기에 끈질겼습니다. 백이십 년 동안 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끈질겼습니다.
도망자였던 선지자 모세는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모두 받았습니다. 신학도 모두 배웠습니다. 얼마나 영리했던지 이집트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고, 자신이 영적인 삶을 살도록, 또는 선지자가 되도록 태어났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납니다. 선지자는... 교회에는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줄곧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어린양이십니다. 이사야는 침례자 요한이 태어나기 칠백십이 년 전에 그를 보았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었습니다. 모세는 준수한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어머니의 태에 잉태되기도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너를 불러 거룩히 구별하였으며, 민족들을 향한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여기 모세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의 선지자인 것은 알았지만 아직 그런 체험, 자신을 끈질기게 나아가도록 만드는 체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군사적 행동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도망쳤습니다. 광야로 나가 늙은이가 될 때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여든 살이 되었고, 수염은 길게 늘어졌으며, 이드로의 양을 치는 동안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대머리가 벌써 갈색으로 탔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아침 거기 있다가 무엇을 듣고... 언덕을 올려다보니 덤불에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덤불을 보려고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곳에서 “네 신을 벗으라” 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그냥 모자를 벗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저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네 신을 벗으라.” 그래서 그는 신을 벗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내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었노라. 아브라함에게 한 내 약속을 기억하노라.” 아멘. 그분께서 오늘날 다시 그 약속, 그분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계시니 얼마나 기쁩니까! “내 약속을 기억하노라. 내가 너를 내려보내어 그들을 구출하게 하겠노라.” 모세는 온갖 핑계를 댔지만, 그분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아주 끈질겨집니다.
모세는 아주 끈질겼습니다. 군대를 조직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끈질기게 나아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때로는 육신적인 생각으로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게 됩니다. 이상하고 우스운 행동을 합니다. 별난 사람이 됩니다. 모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행동했는지 보십시오. 다음 날 보니 아내는 노새에 걸터앉아 게르솜을 옆구리에 안고 있습니다. 수염이 이렇게 길게 늘어져 바람에 날리는 늙은이, 몸집이 작은 여든 살 노인은 구부러진 막대기를 손에 들고 길을 갑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모세, 어디로 가나?” “이집트로 내려가 점령하려고!” 단 한 사람의 침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말합니다. “모세, 잠깐 기다리게. 햇볕이 너무 뜨거웠나 보군. 자네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 모세. 돌아가게.” 한번 그를 막아 보십시오!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점령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해냈습니다. 행동은 이상했을지 몰라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그대로 나아갔습니다. 누구든 그런 상태가 되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 무엇을 하게 하셨는지 정확히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든, 얼마나 아프든, 사정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끈기 있게 나아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다윗이 그날 들판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저쪽에 거구의 골리앗이 서 있었습니다. 손가락 길이가 십사 인치나 되고, 손에는 베틀의 바늘 같은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한편 사울은 온 군대 사람들보다 머리와 어깨가 더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원수는 여러분을 어떤 처지에 몰아넣으면 그렇게 합니다. 거기다 조금 더 괴롭히려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피를 흘리는 싸움은 하지 말자. 너희 중 한 사람이 나와 나와 싸우게 하라. 그가 나를 죽이면 내 나라가 너희를 섬길 것이요, 내가 그를 죽이면 너희 나라가 나를 섬길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자신이 이미 이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 앞에서 그 말을 했습니다. 단순히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성경은 어린 다윗의 혈색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몸집이 아주 작고 어깨가 약간 굽은 소년이 옆구리에 작은 자루를 차고, 양의 먹이가 든 작은 주머니를 가지고 형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거기 서서 하나님의 군대에 도전하게 내버려 둔다는 말입니까?” 기적의 날들이 지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무리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 그저 어린아이였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는 알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느 날 사자가 와서 제 아버지의 양을 물고 갔습니다. 저는 물매를 가지고 뒤쫓아 가서 양을 도로 데려왔습니다. 곰이 왔을 때도 그 곰을 죽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사자와 곰에게서 저를 구출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할렐루야!]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을 제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막을 수 있다면 한번 막아 보십시오!
아, 사울은... 사람들이 그를 사령관 사울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사울이 말했습니다. “얘야, 네 용기는 참으로 훌륭하구나. 하지만 너는 전투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지 않느냐. 싸우는 법을 모르잖니. 그러니 네게... 내 갑옷을 한번 입어 보아라.” 그 거대한 것을 입혀 놓으니 가엾은 어린 다윗의 다리가 무게에 휘어졌습니다. 그는 그 교권의 갑옷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이것을 벗겨 주십시오. 저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멘’을 정확히 하는 법이니, 말과 문법을 정확히 맞추는 법이니 하는 것은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 왔던 그 방식대로 가게 해 주십시오. 제가 믿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가게 해 주십시오.” 아멘! 아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끈질겼습니다. 조금도 떨지 않았습니다. 나가서 돌 다섯 개를 집었습니다. J-e-s-u-s, 예수님입니다. 다섯 손가락으로 물매를 감아 쥐었습니다. f-a-i-t-h, 믿음입니다. J-e-s-u-s,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해 주시리라고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죽으심, 장사되심, 부활, 어디에나 계심, 지금도 살아 계심, 그분의 약속, 은사, 나타나심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어떤 장애물이든 맞서십시오. 그것이 암이라 불리든, 마비라 불리든,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맞서십시오. 죄의 삶 가운데 있던 여러분의 죄 많은 혼을 일으키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가진 어떤 병이나 질병에서도 해방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끈질기게 나아가십시오. 그것을 붙드십시오. 놓지 마십시오. 하지만 허세로는 안 됩니다. 그것에는 허세가 통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허세를 부리며 돌아다녀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쪽으로 가서 주술사 같은 자들을 만나 보십시오! 그 마귀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선교지에서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실제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그래야 합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지성을 중시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은 지적인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이 사역이 이곳에서 그다지 잘되지 않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저 지성, 지성입니다. 하지만 저는 애초에 그 무리에게 보내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불러냄을 받은 무리에게 보내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은 삼손에게... 제가 본 삼손 그림은 어깨가 헛간 문만큼 커 보였습니다. 아닙니다. 그만한 몸집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자를 집어 두 동강 내는 것이 무슨 신비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곱슬머리의 작고 왜소한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갈래의 머리채가 등을 따라 늘어진, 엄마 품만 찾는 아이 같은 자그마한 사내, 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사자를 죽이는 것을 보면, 아, 거기에는 뭔가가... 블레셋 사람들이 그 숨겨진 권능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한 것도 당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나실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서원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가 나실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하나님께 받은 서원이 있습니다.
작은 삼손, 곱슬머리에 일곱 갈래의 머리채가 등을 따라 늘어진 그 작은 사람 앞에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나왔습니다. 거기 서 있는 삼손은 몸집이 아주 작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주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그것이 달라지게 했습니다. 어느 날 블레셋 사람 천 명이 그를 에워쌌을 때, 그가 들판에 서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둘러보았지만 싸울 만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래를 보고 노새 턱뼈를 집어 들었습니다. 누구나 알듯이, 오래되어 하얗게 바랜 노새 턱뼈는... 블레셋 사람들의 투구는 일 인치가 넘는 두께의 놋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갑옷은 금속 조각들을 이렇게 아래로 겹쳐 붙인, 소위 비늘 갑옷이었습니다. 창과 큰 방패를 든 사람이 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이 그 작은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는 손을 뒤로 뻗어 일곱 갈래의 머리채를 만졌습니다. 여전히 나실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손에 있는 것을 가지고 그 낡은 턱뼈로 그들의 머리뼈가 움푹 들어가도록 내리쳤습니다. 그 낡은 턱뼈로 그 머리 하나를 치면 턱뼈가 산산조각 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기 계셔서 그것이 부서지지 않게 붙드셨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 죽였습니다. 끈질기게 나아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나실인의 서원이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남자든 여자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고 자신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안다면, 어떤 것도 앞길을 막게 하지 마십시오. 끈질기게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로 너다. 오늘 밤 네게 믿음을 주노라. 네 치유는 확실하다. 내 말씀이니라” 하시면, 여러분은 끈질기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보게 되리라는 데 아주 끈질긴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태어날 때...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제사장 가문 출신의 제사장이었던 것은 압니다. 하지만 요한은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 컸습니다. 당시 종교 제도의 길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요한은 알았습니다. 그 늙은 부모는 요한이 태어났을 때 이미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 아이가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로서는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자기 아들에 대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때가 오기 전에 늙어 세상을 떠날 테니 그때의 아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선지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알았습니다. 그 늙은 부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역사에 따르면 그 아이가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혼자 남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처럼 하려고 신학교에 내려가는 대신... 그의 임무는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혼란에 빠지게 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곳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한, 자네는 메시아를 소개하게 되어 있지 않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도 아는 여기 아무개 박사님, 거룩하신 아무개 주교님이 바로 그분이 될 만하지 않은가?” “아, 제 생각에는...” “아닙니다, 랍비님. 틀리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무개 주교님이야말로...” 그런 터무니없는 혼란에 어떻게 빠질 수 있겠습니까... 요한은 그런 것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광야로 가서 하나님과 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를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아,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그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분이니라.” 요한은 자신이 그분을 소개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강가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신다.” 아멘! 그때 그분이 오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사천 년 동안 그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지금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신다. 그분이 바로 그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다, 저 사람이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는 올바른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메시아의 표적을 알아야 했습니다.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보여 주실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광야에서 내게 ‘가서 물로 침례를 주라’고 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하셨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다.” 아멘!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기다리고 있었고, 요한은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치유받지 못하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은 받는다고 믿으십시오. 그것을 붙드십시오. 존스가 어떻게 했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이 여러분을 죄와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을 계시해 주시면, 그것을 붙들고 끈질기게 나아가십시오. 그것을 붙드십시오. 끈질기게 나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요한은 알았습니다.
이런, 그만해야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제 본문에 이르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말하던 이 여인은 그리스인이었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들었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옵니까? 들음에 의해, 말씀을 들음에 의해 옵니다. “어떻게...?”라고 하시겠지요. 그 여인은 그분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말씀이셨고, 여인은 들었던 것입니다. 여인에게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근원을 찾아냅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근원을 찾아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 믿음을 가진 사람 외에는 누구에게나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과 그 믿음을 가진 사람 외에는 누구에게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확실합니다. 하나님께도 확실하고, 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확실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확실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검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믿음의 검... 말씀의 검은 믿음의 손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 외에는 어떤 것도 그 검을 휘두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가지고 교회에 가입할 수 있을 만큼만 길을 베어 냅니다. 그 정도가 그들이 나아가는 한계입니다. 다른 이들은 베고 들어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얻습니다. 성령의 약속을 가로막는 것을 베어 내고, 신유 안으로 길을 베며 나아갑니다. 그 검을 쥔 믿음의 손이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 검은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내고, 여러분을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기에 충분히 예리합니다. 어떤 손이 그 검을 쥐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의 손이어야 합니다.
이 가엾은 여인에게는 방해물이 많았을지 몰라도 여인의 믿음에는 방해물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방해물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의사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는 방해물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것을 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 아브라함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그는 이미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 이십 년쯤 지난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아기를 낳을 것이며, 그분께서... “그를 통해 내가 세상을 복 주겠다.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너를 민족들의 조상이라 부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흔다섯 살 된 노인과 예순다섯 살 된 노파가 의사를 찾아가 “선생님, 병실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의사는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하겠지요. “아, 겨우 일흔다섯이지요.” “부인께서는요?” “예순다섯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렇게 하시지요. 잠깐 나가 계십시오.” 그리고 정신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 노인의 정신 상태를 검사해 보십시오. 뭔가 잘못됐습니다. 거리를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위험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취급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어 보이는 설교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분의 말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처음 이십팔 일이 지났을 때를 그려 봅니다. 아브라함은 이 여인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복 여동생이었습니다. 사라가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 그와 결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다가가 말합니다. “사라, 여보, 몸이 어떻소? 좀 달라진 게 있소?” “조금도 없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낳을 거요. 아기 신과 버즈아이 기저귀, 핀과 모든 것을 준비하시오. 준비하시오. 아기를 낳을 거요.” “아기를 낳을 줄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둘째 달이 지났습니다. “사라,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한 달만큼 더 큰 기적이 되었군. 할렐루야!” 일 년이 지났습니다. “여보,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영광을! 일 년만큼 더 커졌군.” 이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사라, 몸이 어떻소?” [늙고 쇠약한 모습으로]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여보.” “하나님께 영광을! 이십오 년만큼 더 큰 기적이 되었군!” 그러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글쎄요, 어젯밤 기도를 받았는데 분명히 낫지 않았어요.”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초라합니다. 아브라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불렀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기에 충분히 크신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라니, 그 이야기는 시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여인은 그리스인이었습니다. 다른 교단에 속해 있었지요.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잠깐만요. 당신은 그리스인이잖아요. 거기 가지 마세요. 우리 목사님이 후원하는 집회가 아니에요.” 실례했습니다. 좋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여기 속한 줄 알잖아요. 거기 가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러나 그것이 여인을 막지 못했습니다. 여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붙잡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치유가 필요한 딸이 있었고, 치유하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여기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그래도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여인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여인은 또 다른 무리를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이봐요, 멀린다.” 멀리사든, 그 여인을 무엇이라고 불렀든 말입니다. 여기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칭찬이 될 테니까요. “들어 봐요, 멀린다. 기적의 날들은 지났어요. 그런 일은 없어요. 거기 가지 마세요. 망신만 당할 거예요.” 여인은 끈기 있게 나아갔습니다. 믿음이 이미 그 안에 굳게 자리 잡았습니다. 목사가 협력하든 안 하든, 자기 교단이 믿든 안 믿든, 자기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자신 외에 누가 더 믿든 안 믿든 상관없었습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여인 자신의 일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기적의 날들이 지났든 안 지났든, 여인에게는 지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몇 사람을 고치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치유를 믿지 않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만 보내어진 것입니다. 오직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불신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저 여러분 자신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하나님을 막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계속 그 일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령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열두 사도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멈추십니까? 그분은 계속 그 일을 하시고 사람들은 계속 받습니다. 그들은 설명하지 못할지 몰라도 여전히 받은 것입니다. 검은 소가 어떻게 푸른 풀을 먹고 흰 우유를 내는지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어납니다.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는 모든 것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아멘.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멘.
자, “기적의 날들은 지났어요.” 그래도 여인은 끈질기게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또 한 고상한 자매가 길모퉁이에서 만나 물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어디 가세요?” “나사렛 예수님을 만나러 가요.” “아, 그분은 우리 교단 소속이 아니잖아요.” “상관없어요. 제 딸에게 도움이 필요해요. 딸은 나을 거예요. 제가 딸을 위해 얻어 오려는 거예요.” “이것 보세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남편이 이 도시의 사업가인 줄 알아요. 남편이 당신을 떠날 거예요. 당신이 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이혼하게 될 거라고요.” 여인은 여전히 끈질겼습니다. 그래도 가려 했습니다. 아주 끈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했습니다. “멀린다, 다음번에 교회에 오면 교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거기 가 봐야 바보짓만 하고, 성령에 취해 뒹군다는 그 무리와 뒤섞일 테니까요. 그러면 그들과 한 부류로 여겨질 거라고요. 다음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 모두 당신을 비웃을 거예요.” 여인은 여전히 끈질겼습니다. 아무것도 여인을 막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가려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믿음이 굳게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끈기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막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가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더니 교회 장로 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그 집회에 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말씀드리지요. 교회에서 징계를 받게 될 겁니다. 그뿐이에요. 교회에서 쫓아낼 겁니다. 저기 광신주의에 빠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즉시 틀림없이 교회에서 쫓겨날 거예요.” 여인은 여전히 끈기 있게 나아갔습니다. 가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막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그곳에 이르려 했습니다.
여인은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왔을 때 여인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시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여인에게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은... 여인이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제 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 이른 뒤에 실망을 겪었습니다. 아,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랬습니다. 실망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는 네 민족에게 보내어지지 않았다. 오직 유대인들에게 보내어졌다”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아, 우리 오순절 사람들 같았으면 얼마나 기가 꺾였겠습니까! 하지만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무언가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 너에게 보내어지지 않았다. 네 민족, 너 같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내어지지 않았다.”
그 모든 장벽을 뚫고 그분께 이르렀는데, 막상 도착해서 “나는 너에게, 네 민족에게 보내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이 믿음을 막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너희는 그저 개 떼에 지나지 않는다.” 아, 우리 오순절 사람들은 그것으로 꺾였겠지요! 세상에! 납 탄환을 먹은 개구리처럼 부풀어 올라 터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온상에서 자란 화초가 아니었습니다. 온상 화초처럼 물을 뿌려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일부 작물 같은 교잡종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의 문제는 교잡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얼마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여자들이 교잡종 쇠고기, 교잡종 옥수수와 온갖 그런 것들, 콘플레이크를 먹어서 골반이 좁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무슨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이십 년 후에는 여자가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해치고 있습니다. 교잡된 것은 무엇이든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내려오다가... 큰 간판을 보았습니다. “펑크스”였던가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최고의 교잡종 옥수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삭은 아주 크고 탐스러워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다시 심어 보고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십시오. 이것은 바로 과학을 가지고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자들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교배하여 교잡종으로 만들면, 그것은 다시 스스로 번식할 수 없습니다. 암말을 수나귀와 교배시키면 노새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노새는 다시 번식하여 또 다른 노새를 낳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끝나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무지한 것이 있다면 바로 노새, 교잡종입니다. 커다랗고 긴 귀를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 줘도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노새 같은 종교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문제입니다. 거룩한 체하는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신유와 하나님의 권능을 설교하면 그들은 말합니다. “히힝, 히힝. 기적의 날들은 지났어. 난 그런 낡아빠진 이야기는 안 믿어. 그러지 마... 히힝, 히힝.” 그저 무지한 노새 종교일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죽기 전에 여러분을 걷어차려고 평생 기회를 기다릴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저는 말을 다루어 보았고 목장에서 일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노새는 그저 무지한 짐승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제 아비가 누구인지, 어미가 누구인지, 그 밖에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늘날 교잡된 종교들 가운데 일부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감리교인입니다.” “나는 침례교인입니다.” “나는 장로교인입니다.” “나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릅니다.
하지만 훌륭한 순종 말은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형제님, 그 말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혈통서를 보면 아비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구인지, 그 윗대까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참된 순종 그리스도인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어머니가 누구인지 압니다. 무슨 사교적인 교단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죽었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출생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온순합니다. 말을 해 주면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아멘!” “기적의 날들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멘!” 저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노새, 그 교잡종은 여기서 빠져나와 교적을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또 다른 교회로 옮겼습니다. 한번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을 올려, 거기서 지워지지 않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멘! 지금 저 자신도 경건한 감동이 크게 밀려옵니다. 말씀하다 보니... 소리라도 지르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여인에게는 물을 뿌려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잡종 말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교회들이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바로 거기서 우리 오순절 사람들도 잘못되어 갑니다. 똑같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훌륭한 건물, 앞에 설 수 있는 지적인 목사를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그 목사가 나가서 남녀가 함께 수영하는 것이며 온갖 그런 일들, 그 밖의 모든 터무니없는 일을 지지합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반바지를 입고 온갖 것을 해도 내버려 두며 여성 해방이라고 부릅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죄이며 수치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도 바울 때와 같은 옛 방식의 참된 부흥입니다. 성경의 성령과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교회에 돌아와 교회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회중 가운데서 방언과 통역이 나옴.]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씀에 아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내신다고 믿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을 원하십니다.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남녀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은... 할리우드는 번쩍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많이 본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리우드에 너무 가까이 가 있습니다. 복음은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은은히 빛납니다. 할리우드는 화려함으로 번쩍이고 교회도 화려함으로 번쩍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겸손으로 은은히 빛나십니다.
얼마 전 시카고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있었는데, 어떤 목사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저는 그의 조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초청이 들어왔고 사람들이 제가 와서 말씀을 전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어차피 저는 갈 수 없었지만, 그가 말했습니다. “아,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완전히 괴짜예요. 사람들을 호통치는 것밖에는 하는 일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대단한 신학박사를 불러왔습니다. 그 사람은 온갖 일을 해낼 만큼 많은 원고와 지적인 설교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슴을 쭉 펴고, 커다란 뒤집은 칼라를 두른 채 올라와 아주 유창한 말솜씨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후 그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원고를 모두 덮었습니다. 어깨가 이렇게 축 처지고 겸손해진 모습으로 강단에서 내려갔습니다.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나이 든 성도가 옆 사람을 툭 치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내려올 때 모습으로 올라갔더라면, 올라갈 때 모습으로 내려왔을 텐데.” 형제님, 오늘날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다시 성령께로 낮아져야 하고, 성경으로 내려와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가엾은 여인에게는 온갖 방해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이르렀을 때 그분은 여인을 개라고 부르시며 “자녀들의 양식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오순절 사람 중 하나였다면 “됐어요. 다시는 저 광신자의 말을 들으러 가지 않겠어요. 그래요. 사람들이 옳았어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어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믿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이루려는 일이 있었습니다. 딸의 치유였습니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상관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진실은... 겸손한 마음은 언제나 진리가 옳다고 인정합니다. 여인은 말했습니다. “주님, 참으로 옳습니다. 저는 주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아니고 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 정확히 맞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우리 같은 개들에게 주시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 개들도 자녀들의 상 밑에서 빵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여인은 그저 부스러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스러기에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상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부스러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기적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굳게 자리 잡아 기적을 믿었습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여인에게 증명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창녀 라합과 같았습니다. 정탐꾼들이 와서 창녀 라합을 만났을 때 그들은... 라합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를 데려와 주세요. 옷은 어떻게 입는지, 자세는 얼마나 반듯한지 봐야겠어요. 잘생겼나요? 머리는 빗나요? 어떻게...?” 라합은 “그가 그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라합은 “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끈질기게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멸망하게 될 것을 압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제 아버지의 집을 구하게 해 주세요.” 아, 그 이름은 확실히 남아 있습니다. 라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대 위 할머니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물론입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압니다. 우리 민족이 이교도 무리인 줄 압니다. 우리가 개 떼에 지나지 않는 줄 압니다. 하지만 주님, 저는 그저 부스러기 조금을 구하고 있습니다. 저기 제 딸이 병들어 있는데, 주님께서 하실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러고는 엎드려 그분께 경배했습니다. 아! 그 모습에 제 가슴이 무너집니다. 여인은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님, 정말 저는 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가엾은 여인이 거기까지 오려고 무엇을 뚫고 싸워 왔는지 보십시오. 그렇게 도착했는데 그분이 개라고 부르시고 다른 어떤 말씀을 하셔도 여인의 믿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기도를 받고도 말합니다. “흥, 아무것도 없나 봐. 전혀 달라진 느낌이 없는데.” 아브라함의 씨라는 우리, 끈질기다는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무슨 일이 있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었고 그분께 거절당했을 때조차 여전히 붙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그 마귀가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여인은 하나님의 선물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오지 않았습니다. “가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보겠어. 만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해도 정신적인 텔레파시일지 몰라. 심리 작용일지 몰라. 무슨 속임수일지 몰라. 꾸며 낸 것일지 몰라.” 그랬다면 구하던 치유를 결코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올바른 방법으로 왔고 구하던 것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합니다. 여인은 끈질겼습니다.
이제 마치기 전에 몇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왔을 때 끈질겼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그 집을 떠나셨고 나사로를 두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그 사람들은 자기 교회를 떠났습니다. 모든 일을 감수하고 나와 그분을 대접했습니다. 그분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가족에게 도움이 필요한 때가 되자 그분은 떠나고 안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전갈을 보냈지만, 그분은 그 전갈을 전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더 멀리 가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보냈지만 그도 외면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분은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자 그분은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무덤에서 그분은 “그들을 위해 내가 이 말을 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분은 마르다를 시험하셨습니다. 마르다가 달려 나와서...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르다가 그분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할 법도 했습니다. “왜 오시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주님을 위해 한 일을 보십시오. 음식을 드렸고 모셔 대접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고 교회를 떠났고 모든 친구도 떠났습니다. 주님을 따르려고 우리가 속했던 모든 것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라버니가 병들었을 때 주님은...”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여러분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 권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린양에게는 털밖에 없습니다. 낼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 몇몇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입는 옷차림을 부끄럽게 해 주려고 말입니다. 그렇게 작은... 그런 옷을 입으니 껍질 벗긴 소시지 같았습니다. 심판 날에 간음한 것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백합처럼 순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죄인이 간음한 것에 대해 답할 때, 누가 그 일을 일으켰습니까? 여러분입니다. 오순절 자매 여러분, 돌아오십시오. 옛 방식으로 돌아오십시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옷 말고는 만들지도 않는걸요.” 하지만 아직도 재봉틀을 만들고 옷감을 팝니다.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니 변명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두고 참된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바르게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에게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인으로서 제 특권이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셨지요.”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이시군요. 어린양은 자기 권리를 내놓습니다.” 미국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미국 시민으로서 제게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원하는 대로 하고 술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여기에 속한... 이 나라에 살지만 나그네입니다. 제 집은 위에 있습니다. 위에서 태어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도 위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저기 앉아 있는 제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그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저게 뭔가요?”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 미국의 영이오.”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미국인이 아닌가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오. 우리는 여기 사는 거요. 여기가 우리의 육신의 고향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왔소. 우리 사람들은 저 위의 모습대로 행동하오. 저 위에서 온 영이 그들에게 내려온 것이오.” 제가 다른 나라에 가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양키야. 미국에서 왔어”라고 합니다. 독일에 가면 독일의 영이 있고, 스위스에는 스위스의 영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그 나라의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영이 있습니다. 아, 주여! 올바른 것을 찾으십시오. 그것은 거짓입니다! 가짜를 가질 수 있다면 왜 진짜를 얻지 않습니까? 온 하늘에 진짜 오순절의 복이 가득한데 왜 진짜를 버리고 가짜를 택하겠습니까? 왜 무엇이든 대용품을 받겠습니까?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마르다가 그분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아! 그것이 모든 장벽을 뚫고 나아가는 끈기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예, 주님. 오라버니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부활할 때 나오겠지요.”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다른 일들로 그분께 얼마나 실망했든, 이제 믿음을 붙잡는 때가 온 것입니다. 저는 마르다가 어디서 그 믿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성경을 읽다가 그 수넴 여인의 일을 보았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하나님의 대표자는... 하나님께서는 땅에 대표자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당시 그분의 대표자는 선지자 엘리사였습니다. 이 수넴 여인은 나이가 많았고 자녀가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며 예언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열 살이나 열두 살쯤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아마 일사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한낮쯤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고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종을 시켜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가 어머니 무릎에 앉히게 했습니다. 아이는 죽었습니다. 아이를 데려다가 선지자가 누웠던 침상에 눕히다니, 얼마나 합당한 자리입니까! 그러고는 여인이 말했습니다. “노새에 안장을 얹어라. 곧장 가되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말고 계속 가거라.”
선지자가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지자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알기를 원하시는 것만 알려 주십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기 그 수넴 여인이 오는구나.”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에 슬픔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셨구나.”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잘 있느냐? 네 남편이 잘 있느냐? 네 아이가 잘 있느냐?” 그것을 보십시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여인은 “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하나님의 종 앞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었다면, 왜 그 아이를 데려가셨는지도 말씀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섰습니다. 그러고는 그 앞에 엎드려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바울이 손수건을 얹는 일을 거기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내 지팡이를 가지고 허리를 동여라. 누구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고 계속 가서 이 지팡이를 아이 위에 놓아라.” 자신이 만진 것은 무엇이든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그것을 믿게만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믿음은 지팡이에 있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에게 있었습니다. 여인은 그를 붙들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의 혼이 결코 죽지 않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게하시가... 아니, 엘리사가 여인과 함께 갔습니다. 그가 가서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눕히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걷고, 아이에게 얼굴을 대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수넴 여인이 “멈추지 말아라.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지체하지 말고 말씀께로 가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알았습니다... 마르다는 알았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께서 엘리사 안에 계셔서 그 일을 이루시고 믿음이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는 얼마나 더 계시겠습니까?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서도 아주 끈질기게 나아갔습니다. 수넴 여인도 엘리사 앞에서 그와 같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던 여인이 바로 이 해안 아래쪽에 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제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는데, 제가... 막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여인은 이쪽 어딘가에서 왔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그 여인을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인을 들어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운영위원 한 사람이 지금 여기 앉아 있습니다. 여인에게는 오십 파운드나 되는 종양이 이렇게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들어왔을 때였습니다. 그날 밤에는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막 돌아온 참이었고 다시 나가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아주 끈질겼습니다. 그토록 먼 길을 왔기에 집사들과 운영위원들에게 부탁하여 제가 나가는 작은 문으로 자기를 들어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리로 나가자 여인이 손을 뻗어 제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께서 하나님께 구해 주시면 하나님께서 저를 고쳐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곧 멈춰 서서 여인에게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자매님,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믿음을 귀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의 몸은 이만큼 불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뒤쪽 작은 뒷문에 여인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석 달쯤 뒤, 여인은 제 몸처럼 배가 납작해져서는 소리 높여 환호하며 그곳을 지나왔습니다. 일이 주쯤 전, 이 아래 로스앤젤레스의 카우 팰리스, 사우스게이트에서 어느 날 밤 제가 그 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벌떡 일어나 “저 아직 여기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정상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인은 끈질겼습니다. 먼 길을 다녔고 생활비를 다 써 버렸으며, 작은 낡은 트레일러를 타고 그곳에 이르려고 온갖 어려움을 넘었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어야 했습니다. 남편도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인은 끈질겼습니다. 끝까지 붙들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말씀을 붙잡았고, 여인은 끝까지 붙들려 했습니다.
잘 차려입은 선지자 사백 명이 서서 아합과 그들에게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라고 말할 때, 미가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하시면 올라가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고, 저는 이스라엘이 언덕 위에 양들처럼 흩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선지자 사백 명이 자신과 반대로 예언하는데, 어떻게 그토록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그의 환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아, 지금 이 대목에서 한 시간쯤 설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의 환상이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환상은 잊어버리십시오. 환상이 말씀에 맞는다는 것을 알 때... 위대한 선지자가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그를 저주하며, 의로운 나봇에게 저지른 일들 때문에 개들이 그의 피를 핥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선지자들이 아무리 예언하고 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라못길르앗은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준 땅입니다. 우리 것입니다. 거기서 재배하는 곡식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을 먹이는 데 쓰여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성으로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지성으로 무언가를 맞추려 할 때의 모습입니다. 때로 믿음은 그것과 매우 반대입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이것 보십시오. 당신은 살 수 없습니다. 이 암이 몸을 온통 감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믿음이 한번 굳게 자리 잡게 해 보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미가야는 그들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목회자 협회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가야, 다른 위원들과 똑같이 예언하면 그들이 자네를 다시 받아 줄지도 몰라.”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요? 저는 하나님께서 제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만 하겠습니다.” 아, 형제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미가야들, 이믈라의 아들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가 거기 서서 그 위대하고 강력한... “올라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과 반대로 예언했습니다. 그가... 사백 명이 서 있었고, 그중 한 명은 그의 입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이자를 데려가 감옥 안뜰에 가두고 차꼬를 채워라. 내가 돌아오면 처리하겠다.” 그가 말했습니다. “왕께서 돌아오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끈질겼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멀었던 사람의 눈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는 그들과 신학을 논쟁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마귀인 줄 안다. 그는 우리 조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게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분이 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온 세상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인 여러분이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의 논리도 신학적으로 꽤 훌륭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그가 아는 것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에는 눈멀었으나 지금은 봅니다.” 아멘. 그것만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것을 끈질기게 붙들었습니다.
나다나엘도 그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끈질기게 인정했습니다. 그분이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하셨을 때 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우물가의 그 여인도 그분이 자기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끈질기게 붙들었습니다. 그분이 유대의 학식 있는 무리 앞에서 그런 일을 하셨을 때 그들은 “그는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실 줄 우리가 압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이제 여인을 막아 보십시오. 도시로 들어가... 여인이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그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시몬 베드로가 자기 이름도 쓸 줄 몰랐다 해도, 어떻게 그가 복음 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았습니다. 그를 막을 길은 없습니다.
얼마 전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그곳에서 집회를 열었고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가톨릭이 아주 강한 나라입니다. 여기 목사님들은 거의 모두 발디나 장군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저를 그곳에 데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정부가... 가톨릭교회의 주교가 대통령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을 이곳에 데려오시는군요.”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발디나 장군은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주교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그의 집회에 수천 명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주교가 말했습니다. “거기 나가는 사람들은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뿐입니다.”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오백 년 동안 맡아 왔는데, 왜 무지하고 배우지 못했습니까?” 그 정도면 콧대가 꺾였겠지요.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사흘 밤뿐이었습니다. 둘째 날 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이 든 멕시코인 한 사람이 단상을 지나왔습니다. 가엾은 노인이었습니다. 여러분 거의 모두 에스피노자 형제님을 아시지요. 아마 하나님의 성회 소속일 것입니다. 제 곁에 서서 통역을 맡아 주었습니다. 『실업인의 소리』에 이 기사가 실려야 했습니다. 입증할 수 없는 것은 인쇄물에 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를 자초하려고 무리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 가엾은 멕시코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눈이 멀어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제 가까이 왔습니다. 맨발이었고 발은 거칠었으며 바짓단은 이렇게 찢겨 있었습니다. 셔츠도 없이 낡고 해진 겉옷을 걸쳤고, 끈으로 꿰맨 낡은 모자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온몸이 먼지투성이였습니다. 제가 보니 백내장으로 눈이 하얘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나오던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묵주를 꺼내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넣어 두세요”라고 했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그를 멈추게 했습니다. 노인은 묵주를 주머니에 넣고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무언가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모릅니다.
그가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저는 “가엾은 노인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좋은 신발을 신고 좋은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아마 평생 아메바에 오염된 상추로 토르티야를 만들어 먹는 것 말고는 가진 게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대략... 그곳의 경제 형편은 너무 불균형해서 끔찍할 지경입니다. 판초가 대략... 벽돌공이라고 하면 하루에 십오 페소쯤 법니다. 하지만 신발 한 켤레를 사려면 열흘쯤 일해야 합니다. 자녀가 열 명인데 하루에 삼 페소쯤 버는 페드로는 어떻겠습니까? 그들을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밤에는 마르티나가 하나 먹고 판초도 하나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못 먹어야 합니다. 백만 달러짜리 금 제단 위에서 태울 기름 초를 살 돈을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백만 달러짜리 금 제단 위에는 초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가며, 사제가 그 초를 축복해 줍니다. 초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죄와 범죄에서 구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얻을 자격을 갖추려고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를 두 팔로 안으며 생각했습니다. “내 신발이 맞는지 봐야겠다. 그냥 벗어 주면 되지.” 거기에 커다란 난간이 있었습니다. 겉옷도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훨씬 넓고 발도 훨씬 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가엾은 노인이구나. 아마 평생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못 했을 거야.” 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자연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봐. 눈까지 멀었구나. 가엾은 노인이야.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저 나이쯤 되셨을 텐데.” 사람들의 처지를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을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 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그를 두 팔로 안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가엾은 노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말하다가... 저쪽을 바라보니 그가 제 앞 저쪽에 서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가 눈을 뜨기만 하면 다 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글로리아 아 디오스!” 하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저만큼 잘 볼 수 있게 되어 단상 위를 걸어 다녔습니다.
다음 날 밤에는... 단상이 이것만큼 길었는데 낡은 숄 같은 것들이 이만큼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삼십 분이나 한두 시간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은 그날 아침 여덟 시에 왔습니다. 앉지도 않았습니다. 그 뜨거운 햇볕 아래 양들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아홉 시나 아홉 시 반까지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아무것도 없이 그저 서서 제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날 밤에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 그 커다란 원형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반대편으로 데려가 몸에 밧줄을 묶고 경기장 꼭대기에서 단상으로 내려 주었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잭 무어 형제님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많은 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분과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멕시코시티에서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나가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었고,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통역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동안 아들 빌리가 와서 제 겉옷을 붙잡았습니다. “아빠, 아무래도 어떻게 좀 하셔야겠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아들이 말했습니다. “저기 서 있는 작은 여자분이요... 저기 안내위원을 백오십 명 이상 세워 놓았는데요.”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마냐나가...” 제가 그 사람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마냐나는 내일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평생 본 사람 중에 가장 느린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시에 저를 데리러 와야 하는데 아홉 시쯤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를 마냐나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는데, 카드를 이미 모두 나누어 준 뒤였습니다.
작은 멕시코 여인 한 사람이 전날 밤 아기를 데리고 기도를 받으러 왔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저는 성경에 대해,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드렸습니다. 여인은 그 분별이 회중 가운데로 나아가 그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간이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순하게, 그저 믿고서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은 폐렴에 걸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있었고, 아기가 울지 않게 달래고 있었습니다. 기도 카드도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쯤 아기는 병원 진료실에서 죽었습니다. 여인은 그 아기를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대신 그곳으로 와서, 죽은 아기를 안고 온종일 빗속에 서 있었습니다. 마냐나는 여인에게 카드를 주지 않았습니다. 카드가 없었으니 기도 줄에 설 수 없었지만, 여인은 어떻게든 그곳에 이르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안내위원 백오십 명, 이백 명이 그 작은 여인을 막지 못했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뛰어들고 어깨를 뛰어넘고, 어깨 위로 올라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뛰어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말입니다. 몸집이 아주 작은 여인이었습니다.
빌리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아빠, 아무래도 저쪽으로 가서 어떻게 좀 하셔야겠어요. 저희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요. 저쪽 구역 전체가 그분 때문에 소란스러워요.” 제가 말했습니다. “잭 무어 형제님...” 제가 말했습니다. “잭 형제님, 내려가서 그 여인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 여인은 저를 모르니까 형제님이 저인 줄 알 겁니다. 영어도 못 합니다. 가서 말을 건네고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가 떠나기 시작하자 제가 말했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 여기 계십니까? 에스피노자 형제님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 멕시코인 형제님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아실 줄 알았습니다. 그분이 거기 서 있었고 제가 말했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 계속 말씀... 제가 하던 말이요.”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던 대로, 주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그분의 은...” 그런데 보니 여기 제 앞에 이가 나지 않은 작은 멕시코 아기가 있었습니다. 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 아기가 그 아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말씀하지 마세요, 에스피노자 형제님. 잠깐 기다리세요.” 마침 잭 형제님이 단상에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잭 형제님.” 제가 그쪽으로 걸어가 말했습니다. “빌리, 길을 열고 그 여인을 데려오너라.”
사람들이 그 여인을 막고 있었던 것은 그냥 들여보내는 게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도 카드가 있었고 그곳에 와서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카드 없는 사람 한 명을 들여보내면 정말로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인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길을 열고 데려오너라”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저분은 기도 카드가 없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데려오너라.” “무슨 일인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방금 무언가를 보았다.” 그래서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여인은 올라오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파드레”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일어나세요.”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었고 이십 대쯤 되어 보였습니다. 머리에는 멕시코식 작은 장식이 있었고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이렇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아주 큰 눈에서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여인은 “파드레...” 하며 무언가 말했고, 제가 말했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통역했습니다. “신부님, 제 아기를 데려왔습니다. 죽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언제 죽었습니까?” “오늘 아침 아홉 시에 병원 진료실에서요.” “무슨 병이었습니까?” “폐렴이요.” 그래서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저는 젖은 담요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흠뻑 젖어 있었고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젖은 담요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여인의 끈기를 제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조금 전 회중을 바라보았을 때, 저쪽에서 저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작은 아기를 보았습니다.” 여인은 담요를 덮어 이렇게 안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이 아기였다면, 이 여인이 아주 끈질기게 나아왔기 때문에 주님께서 아기를 고쳐 주시려는 것이라면...” 바로 그때 아기가 “응애!” 하고 울며 다리를 이렇게 차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 그것을 두지는... 그 여인을 따라갈 사람을 보내서 병원으로 가 의사에게 진술서에 서명해 달라고 하세요.” 그가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진술서에 서명했습니다. “내가 그 아기를... 오늘 아침 아홉 시에 호흡이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하고 사망을 선고했다.” 아기는 차갑고 뻣뻣했으며 그날 아침 아홉 시부터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여인 한 사람이 끈질겼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여인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안 된다”라는 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그리스 여인에게 감동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스페인계 여인에게도 감동을 주실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이 믿으면 오늘 밤에도 그와 같은 감동을 주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아, 끈기 있게 나아가십시오!
주 예수님,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셋째 날 다시 일어나셨으며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코스모스, 세계 질서]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인칭대명사입니다—“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주님, 주님을 믿습니다. 오늘 밤 저는 끈질기게 붙듭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믿음이 제 안에 굳게 자리 잡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치유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주님을 붙듭니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잠시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 이 교회, 이 모인 사람들이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길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 그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죽어 계시지 않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고 전했습니다. 모든 약속을 전했습니다. 어젯밤에도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때가 끝나고,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때가 끝날 때 어떻게 하셨는지... 이제 이방인 시대의 끝에 주님께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십니다. 오순절 시대는 사오십 년 전 바로 이 서부 해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며,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 가운데 얼마나 역사했는지요! 병든 이들이 치유되고 온갖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얼마나 보았는지요! 그러나 이제 마지막 표적이 그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 그래서 제가 오늘 밤 여기 서 있습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오 하나님! 이 사람들이 끈질기게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뿌려진 씨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깨닫게 해 주십시오. 믿게 해 주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예전 방식은 병든 이들에게 안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줄 압니다. 예전 방식은 제단에 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은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더해졌다”라고 했습니다. 침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믿습니다. 여전히 그것이 좋은 역할을 했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야이로가 “오셔서 제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겠습니다”라고 했을 때에 비해, 로마인, 그 이방인이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살겠나이다”라고 했을 때는 얼마나 더 컸습니까! 주님은 “이스라엘에서 이 같은 믿음을 본 적이 없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결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제가 하려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주님께서 자신들의 구주이심을 보게 해 주십시오. 치유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믿음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하나님, 그들이 의심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그들이 의심하지 않는다면, 믿음이 저절로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부활하신 뒤 어느 날 글레오바와 그의 친구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그분과 이야기하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녁 늦게 그분이 그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셨고, 그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다른 누구도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그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신 뒤, 그들은 서둘러 돌아가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참으로 일어나셨다고 알렸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하루의 일을 내려놓고 오늘 밤 이곳에 와 있습니다. 방은 닫혀 있습니다. 주님, 오십시오. 오늘 밤 우리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처럼 어떤 일을 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도 그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돌아가며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제가 전한 모든 것이 확증될 것입니다. 제가 진리를 전했다면... 주님, 주님께서는 오직 진리만 확증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거짓이나 오류에는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진리만 확증하십니다. 아버지, 이제 전해진 말이 진리임을 확증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께 속한 회중, 그리고 그들이 쌓아 온 믿음도 함께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이제 이 자리에 역사하셔서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입증해 주십시오. 그분께는 죽음이 없습니다.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회중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제 곧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괜찮으시다면 삼 분 정도 최대한 경건하게 계셔 주십시오. 기도 줄을 부르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마치기 전에 이 질문 하나만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은 아닌 분이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께 물을 수 있을 뿐입니다. 아주 긴 제단 초청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정심을 일으키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참으로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알고 와야 합니다. 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 계십니까...? 앞으로 나오시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계신 자리에서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며, 자신이 그분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기도를 믿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금별 표창 같은 것을 주며 몇 명을 달성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죄인임을 깨닫게 하실 수 없다면, 제가 애써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며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믿으신다면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그리스도인이십니까? 그렇다면 여기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한 분들, 그리스도인인 분들 모두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병든 분들이 계십니까? 병든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섬기려고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 있습니다.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몸에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이제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입니다. 카드가 없는 분들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카드가 있는 분들은... 아마 내일 밤이나 그때가 되면, 카드가 있는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젯밤에도 말씀드렸고 오늘 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압니다. 오늘 밤 육신의 몸으로 다시 이 땅에 계신다면 그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이 회중 가운데 이렇게 움직이시며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시고, 여러분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여기 여러분 가운데 계심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의 혼이 얼마나 감격해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이렇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아, 주여! 이보다 더한 것은... 남아프리카에서 그런 일이 한 번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상에서 한 번 일어나자, 담요를 두른 원주민 삼만 명이 우상을 땅에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왔습니다. 이슬람교도도 만 명이었습니다. 그들 한 사람을 돌이키게 하려고도 몇 년씩 애쓰지 않습니까? 그것은 옛 메대와 페르시아 같습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 봄베이에서는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셀 수가 없었습니다. 검은 손들이 그저 바다처럼 올라왔습니다. 단 한 번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황금빛 축복의 잔 가장자리에 입 맞춘다고 하는 우리 오순절 사람들이 어떻게 가만히 서서 성령께서 우리 주위를 움직이시는 것을 바라만 볼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말씀으로 여기 계심을 입증하고 계신데 말입니다. 그러고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뭔가 일어났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합니까? 그분이 더 하실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를 그분의 종이라고 믿으신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성경에 적어 두십시오. 만일 보게 된다면 제게 전화하십시오. 여러분은 마지막 것을 보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믿으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그저 기도하십시오. 아주 조용히 계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입니다. 성령께서 기름부어 주시러 오시면, 움직이는 모든 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치유하시려고 도시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거기에는 너무 많았습니다. 너무 많은... 야이로의 집에서도 딸을 일으키시기 전에, 살리시기 전에 모두 내보내셨습니다. 불신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비웃고 그랬습니다. 불신이 있는 곳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밤 하나님께 제가 진리를 전했다는 것을 입증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사람도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끈질기게 나아가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오늘 밤이 제 때입니다. 저 작은 체구의 설교자는 저를 모르고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저는 믿음으로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줄 믿습니다. 주님, 주님께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브래넘 형제님을 통해 제게 응답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시고, 혈루증 앓던 여자와 눈먼 바디매오에 대해 그분께 알려 주셨으며, 그분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해 주십시오. 환상으로 제게 알려 주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그저 기도하고 계십시오.
바로 여기 제 왼쪽 뒤, 이쪽 줄 끝에 앉아 있는 여인 한 분이 있습니다. 귀에 문제가 있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저를 바라보시는 분 말입니다. 그분이 귀를 치유하시고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기도 카드가 없군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매님이 지닌, 자신도 알지 못하던 믿음입니다. 자매님은... 거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믿음은 감추어진 것입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십시오. 그러나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귀는 더 나빠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으시면 무언가에 닿으신 것입니다. 이 아래쪽, 이 통로 쪽은 어떻습니까? 믿음이 있고 믿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십시오. 저에게는 대지 마십시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죄인입니다. 여기 남자 한 분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고개를 숙이셨을 때 “주님, 제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위장병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병입니다. 저와는 모르는 사이이지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그것이 선생님의 병이지요? 소화에 문제가 있고 속이 시며 늘 위가 좋지 않습니다. 오래 앓으셨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 분이 아닙니다. 여기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포틀랜드에서 오셨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돌아가셔서 나으실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나을 줄로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시면서 믿으십시오.
바로 여기 뒤에 앉아 저를 바라보는 여인 한 분이 있습니다. 저기... 그 여인 위에 있는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를 보십시오. 바로 여기를 아주 자세히 보십시오. 그분은 관절염을 앓고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관절염에서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트랩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놓치려 하고 계십니다. 저는 평생 그 여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매님, 그것이 자매님을 떠나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야 했습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나사렛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그가 누구인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같은 예수님이십니다. 자매님, 저와 모르는 사이시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방금 부름받은 여인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평생 뵌 적이 없습니다. 그저 거기 앉아 있는 여인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습니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입증합니다. 아멘.
여기 앉아서 저를 바라보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무언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 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저기서 그 암의 표적이 움직여... 한 남자에게로 옮겨 간 것이 보입니다.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손에 있는 그 암을 치유하시고 낫게 해 주실 것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선생님은 믿으셔야 합니다. 선교사이시며, 다시 포르모사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누구인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저와 모르는 사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누구인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레이브스 씨,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돌아가실 수 있고 치유받아 나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는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그분의 임재 안에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제게도 관계되는 일입니다. 제가 계속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건물 여기저기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여기 여섯 명이었든 일곱 명이었든,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시지요. 직접 물어보십시오. 회중 가운데 계신 분들, 저 뒤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믿으라고 담대히 말씀드립니다. 끈질기게 나아가십시오. 그것을 붙드십시오. 믿는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나을 것을 믿으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
죄인이면서 믿지 않았던 분들에게 지금 일어서서 긍휼을 구하라고 담대히 말씀드립니다. 마음으로 진심이라면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아까 망설이셨다면 말입니다. 여기에는 죄인으로서 손을 들었어야 할 분이 열두 명이나 앉아 있습니다. 제가 모른다고 해 보십시오. 저는 압니다. 이제 여러분이 믿지 않는 채 거기 앉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름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압니다. 집회에 오셔서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물론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이 속해 온 회중이 상처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와 밀을 함께 자라게 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묶으실 분은 그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일어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씀드립니다.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뵐 때까지는 지금보다 더 가까이 그분의 임재 안에 있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제 앞에 제 성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습니다. 오늘 밤 성령의 모습으로 여기 계십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분은 그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이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저는 먼저 이 손수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은 손을 얹고 있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사람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손수건들을 주님께 가져옵니다. 이것들은 병든 사람들을 대신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이스라엘이 마땅히 해야 할 길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을 때 홍해가 바로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마땅히 갈 길을 가고 있었는데, 홍해가 앞길을 막고 그들을 약속에서 끊어 놓으려 했습니다. 한 필자는 하나님께서 그 불기둥을 통해 내려다보시자 바다가 겁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바다는 뒤로 물러나 마른 길을 만들었고, 이스라엘은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도 주님은 여전히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병과 질병이 사람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걷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내가 바라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통해서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바라보아 주십시오. 그 질병들이 겁을 먹고 사람들에게서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탄아, 사람들을 묶고 이 오랜 세월 방해하며 질병에 매여 있게 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표로 왔다. 우리에게 그렇게 할 권위를 주신 그분을 의지하여 네게 엄히 명한다. 사람들을 떠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서 나와라.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권능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덮은 모든 의심을 깨뜨리셔서, 그들이 바로 지금 치유받게 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그것을 믿는 모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어디가 잘못되었든 상관없이 자신의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아멘! 그분을 찬양하겠습니다. 모두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나 그분을 찬양하리, 나 그분을 찬양하리, 오,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 돌려라. 그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주셨네.
이제 냉랭함을 걷어 내고 우리를 둘러싼 족쇄를 깨뜨리며 유령들을 몰아내려면... 여러분, 왜 그러십니까? 우리가 메시지를 들은 뒤 경배하는 영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하나님께 손을 들고 그분을 경배하며 이렇게 말합시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시며,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 새벽별이십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의 임재를 인해, 오늘 밤 우리를 찾아오심을 인해 얼마나 찬양을 드리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부활의 권능과 구원의 확신을 인해, 이 마지막 날들에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위대하게 나타내심을 인해 찬양합니다. 비판과 형식주의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맞서서도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그 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멘, 아멘.”
아, 참 좋지 않습니까?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해 보십시오. 아, 제게는 오순절답게 들리지 않는군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게 더 좋습니다.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나 그분을 찬양하리, 이제 손을 듭시다. 찬송하십시오. 나 그분을 (울려 퍼지게)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 돌려라. 그 피가 모든 얼룩을 씻을 수 있네. 그분을 사랑합니까? “아멘” 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합니까? “아멘” 하십시오. 이제 서로... 주위에 있는 분, 앞에 있는 분과 악수합시다. 자리는 그대로 계십시오. 주위에 있는 분과 악수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하십시오. 참 좋지 않습니까? 아멘. 이제 다시 찬송합시다. 나 그분을 찬양하리 (손을 드십시오), 나 그분을 찬양하리 (이제 아주 크게),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 돌려라. 그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주셨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옛 방식의 부흥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믿습니까? 옛 신앙을 믿습니까? 아, 그것은 겉에 흰 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서 희게 하고 눈처럼 깨끗하게 합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그런 부흥 가운데 하나를 시작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친구 여러분, 우리 어깨를 함께 대고... 계속 밀고,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끈질기게 나아갑시다. 우리는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계시는 동안 이제 목사님, 이 집회의 의장님을 여기 강단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분께 예배를 맡겨서 어떤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