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런 찬송을 듣고도 설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설교자라고 할 수 없겠지요? 참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 형제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방금 이분에 관해 물어보았습니다. 다음 집회 장소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사시는지 말입니다. 다른 주에서 오셨다고 한 것 같은데, 정확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형제님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아름다운 재능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모든 것이 함께 복음을 이룹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하나님을 보는 네 가지 방법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여러분이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하나님을 보는 방법은 천 가지도 있습니다. 그분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어젯밤 이 안이 몹시 더웠는데 여러분을 너무 늦게까지 붙잡아 두어서 죄송합니다. 저와 함께 온 친구들 몇 명은 “휴!” 하면서 계속 부채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밤새 그 자리에 머물면서 남은 밤 내내 간증하지요.”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떠난 뒤에는 여러분이 일어나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해 주신 일을 이야기하며 간증을 시작하셔도 좋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토미 오스본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제게 아주 소중한 친구입니다. 선교사로서 바다 건너 외국에 자주 갑니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가려고… 남아프리카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가 집회에 왔습니다. 뉴욕시에서 제가 무대로 걸어 나갔습니다. 레슬링 경기를 하는 그곳, 큰 경기장 말입니다. 그곳은 사람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제가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토미가 달려와 제 허리를 끌어안고 껴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토미, 이렇게 먼 곳까지 어쩐 일이오?” “해외로 떠나시는 형제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가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그는 제 치유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제가 말했습니다. “토미, 몹시 지쳤겠구려.” 워낙 설교를 많이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분별 사역을 하지 않으니 그렇게 지칠 일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그저 거기 서서 15분 동안 말씀으로 마귀를 꽁꽁 묶어 놓습니다. 마귀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하고, 저는 의자 하나를 가져다 앉아서 날이 밝을 때까지 그들의 간증을 듣습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해 주신 일을 간증하면 다른 사람도 믿게 되어 일어나 간증합니다. 그 사람이 간증하는 동안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납니다. 저는 그저 앉아서 손뼉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요.”
아, 하나님께서 저마다 다른 사역을 맡기시고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기서 노래하는 이 사랑하는 형제님에게는 찬송 사역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역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미리 예정하신 은사들을 두셨습니다. 그중 하나는… 첫째는 사도, 선지자, 교사, 목사, 복음 전도자입니다. 사도란 사실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이름으로 선교사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선교사는 사도입니다. ‘선교사’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도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똑같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라고 불리기를… 아니, 사도 대신 선교사라고 불리기를 원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어야 합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이지요.
선지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하는 선견자입니다. 한편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역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있습니다. 누구에게든 그 은사가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언을 합니다. 하지만 두세 증인이 판단하기 전에는 그 예언을 교회가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 증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확증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 은사는 그 형제나 자매에게 다시는 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영어로 p-r-o-p-h-e-t라고 쓰는 선지자는 언제나 선지자로 태어납니다. 처음부터…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아시겠죠? 선지자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은 에덴동산 때부터 여자의 씨요, 선지자이셨습니다. 모세도 준수한 아이로,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침례자 요한은 어떻습니까? 이사야는 요한이 태어나기 712년 전에 그를 보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712년 전이었습니다. 예레미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가 어머니의 태 속에 지어지기도 전에 그를 아셨으며 거룩히 구별하시고 민족들을 향한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며 선지자로 태어납니다. 예언의 은사는 다릅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이제 아홉 가지… 교회에 정해 두신 은사는 다섯 가지입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목사, 복음 전도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교회에 두시는 다섯 가지 은사입니다. 또 각 지역 교회 안에는 아홉 가지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예언의 은사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교회를 통해 역사하는 아홉 가지 영적 은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두시는 직분의 은사는 다섯 가지입니다. 아, 그 모든 은사가 그 안에서 역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그중에는 목사와 교사 같은 직분이 있습니다. 다른 은사들은 뒤따르며 확증해 줍니다. 은사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분명하게 해 놓으셔서 어리석은 사람도 변명할 수 없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은 아주 단순합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더 단순해질수록 하나님 앞에서는 더 큰 사람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자신을 높이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
얼마 전에 제가… 형제님, 제가 여기서 뭘 잘못하고 있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뒤에서는 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얼마 전 제가… 미국의 큰 도시 시카고에서 열리는 큰 대회, 오순절 대회에 와 달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차피 갈 수 없었지만 아직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책임자가 “오지 마십시오”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래, 괜찮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훌륭한 목사를 초청했습니다. 참 대단한… 어느 유명한 성경학교의 교사였습니다. 그날 밤 그 사람이 올라올 때 아주 큰 책을 들고 있었습니다. 여러 장에 걸쳐 적힌 내용을 읽고 책장을 넘기며 지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고 지적인 연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청중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단에 오를 때는 가슴을 쭉 펴고 칼라를 뒤로 돌려 입은 채 온갖 위세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책을 덮고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내려왔습니다. 아주 겸손하게 걸어 나갔습니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나이 든 성도 한 분이 옆 사람을 툭 치며 말했습니다. “내려올 때 모습으로 올라갔더라면 올라갈 때 모습으로 내려왔을 텐데.” 맞는 말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방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와서 바깥에 앉아 보더스 형제님이 메시지를 마무리하는 것을 들으면서, 원주민 형제님들을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서커스 천막을 치고 집회를 열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 한 원주민이 왔습니다… 나바호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나바호족 차림으로 들어왔습니다. 머리에는 파란 띠를 두르고 주홍색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털썩 앉았습니다. 빌리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내려가서 카드를 섞은 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단에 올라오는 사람은 치통이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은… 배가 아프다든가, 그런 가벼운 증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리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저기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치통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주지 마라. 저분들이 단에 올라와야 한다. 사람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고 기도 카드를 주어라. 죽어 가는 사람들을 좀 올라오게 해야 한다. 이제 하룻밤만 더 하면 집회를 마쳐야 하는데, 기도를 받아야 할 사람이 5천 명쯤 있단다. 정말 심하게 아픈 사람들이야.” 그래서 빌리가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아버지께서 정말 심하게 아픈 분들에게만 이 카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카드를 나누어 드릴 때 어디가 아픈지 말씀해 주시면 카드를 드리겠습니다. 치통이나 가벼운 두통 같은 증상도 물론 본인에게는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죽어 가는 분이나 심장병이 있는 분, 그 밖에 아주 위중한 분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그분을 추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먼지가 쌓인 바닥 한구석에 앉아 있던 그분이 빌리에게 다가가 등을 툭 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빌리가 물었습니다. “추장님, 어디가 아프십니까? 아버지께서 어디가 아픈지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 아파.” “어떻게 아프십니까, 추장님?” 그가 말했습니다. “나 아파.” 빌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좋습니다. 앉아 계십시오. 잠시 뒤에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작은 눈으로 빌리를 지켜보았습니다. 카드 뭉치가 얼마 남지 않자 다시 다가와 빌리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나 아파.” 그래서 빌리가 말했습니다. “추장님, 어디가 아픈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정말 심하게 아픈 분들에게만 이 카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어떻게 아프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나 아파.” 빌리가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추장님. 이것을 받으시고 여기다가 ‘나 아파’라고 쓰십시오.”
마침 그분은 다음 날 밤, 바로 이튿날 밤에 기도 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올라오자, 물론 주님께서 어디가 아픈지 등을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추장님, 주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시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거 맞아.” 제가 물었습니다. “그 뒤에는 착하게 사시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거 맞아.” 제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거 맞아”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이 할 줄 아는 말은 두 마디뿐이었습니다. “나 아파”와 “그거 맞아”, 그렇게 배웠던 것입니다. 한 6개월이나 8개월 뒤에 그곳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저기 그 원주민 형제님이 계시군” 하고 그분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분은 “그거 맞아”라고 했습니다. 그곳 선교부의 어떤 분이 그가 나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나았습니다. 그분이 아는 것은 “그거 맞아”뿐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만 아시면 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단순한 믿음에 참 감사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관해 말할 때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맞습니다”라는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은 어떤 중국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도 중국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읽는 방식이 틀렸습니다. 여러분은 책장을 이렇게 가로로 읽습니다. 제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라고 읽으면서,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라고 하는 셈입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책장을 위아래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맞습니다. 맞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갖가지 사람들을 만나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참 다정합니다. 저는 그들 모두를 사랑합니다. 노르웨이 사람들, 스웨덴 사람들, 핀란드 사람들… 핀란드는 그 어린 소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곳입니다. 아마 그 이야기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섯 번 연속으로, 의사의 진찰로 죽었다고 확인된 다섯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환상을 통해 그들의 생명을 다시 불러 돌아오게 했습니다. 의사들이 서명한 확인서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얼마 전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그 멕시코 아기 이야기를 읽으셨습니까?
그것을… 아시다시피, 무엇이든 인쇄물에 싣기 전에는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는 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부인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쇄물에 실을 때에는 반드시 정확해야 합니다. 멕시코의 그 어린 아기에 대해서도 의사가 그날 아침 아기가 죽었다고 서명했습니다. 그곳에는 수천 명이 있었습니다. 한 번 구원의 초청을 했을 때 2만 명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그 멕시코 아기는… 그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 참으로… 아침 9시에 와서 제가 밤 9시에 도착할 때까지, 저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단에 올라갔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그 비를 맞으며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전날 밤, 나이 든 멕시코 형제님 한 분이 단을 가로질러 오셨습니다. 신발도 없고 바지는 다 해어졌으며, 낡은 모자는 노끈으로 기워 놓았습니다. 이렇게 몸을 떨며 단을 가로질러 오셨습니다.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성모송’을 바치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통역은 에스피노사 형제님이 맡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분들 중에는 에스피노사를 아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는 그곳에… 그가 제 통역자였습니다. 저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다가오자 제가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좋은 신발에 누군가 선물해 준 멋진 양복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엾은 그 연로한 형제님은 신발도 양복도 없었습니다. 겉옷은 해어졌고 셔츠도 입지 않았으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계셨습니다. 아마 평생 제대로 된 식사 한번 못 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방금 좋은 식사를 하고 온 참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도 저나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 주신 사람입니다. 저와 똑같은 권리가 있습니다. 집에는 어린 자녀들이 여럿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때는 다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아버지와 비슷한 연세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분은 전혀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발 옆에 제 발을 대 보았습니다. 회중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은 이 건물 너비만큼이나 길었습니다. 제 신발이 그분에게 맞을지 보려고 그분의 발 옆에 신발을 대 보았습니다. 제 신발을 드리려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발이 훨씬 컸습니다. 그다음에는 제 어깨를 그분의 어깨에 맞춰 보았습니다. 제 웃옷도 맞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여기 이분이 계십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늘어진 백발과 하얗게 된 눈이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이분을 도울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사람들의 처지를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도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느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떠셨을까? 아마 이 정도 연세셨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도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사탄이 그분에게 얼마나 못되게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자연적인 원인으로 그분이 지금 같은 형편에 처했을 것입니다. 이토록 가난에 시달리는… 그런데 이제는 앞을 보고 다닐 시력마저 없습니다.
저는 그 어르신을 팔로 감싸 안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사랑하는 어르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때 제 앞에 환상으로 그분이 서서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 환상이 임하면 그것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을 제게서 이렇게 조금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글로리아 아 디오스!” 하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저만큼이나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밤에는 낡은 숄과 모자들이 높이 3피트쯤, 길이 15에서 20야드쯤 되게 쌓여 있었습니다. 누구 것인지 나중에 어떻게 알아보려는지 모르겠지만, 기도를 받으려고 한데 쌓아 놓은 것입니다.
제가 단에 올라갔을 때 제 아들 빌리가 말을 걸었습니다… 막 설교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에스피노사 형제님이… 제가 올라갔습니다. 저희가 그곳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사흘 밤뿐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오늘 밤에도 어젯밤처럼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께서 이곳 회중 가운데를 다니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눈먼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저기 놓인 것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사용하던 낡은 목발과 의자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 이 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런데 빌리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쪽에 안내원이 거의 300명이나 있는데도 작은 여자 한 사람을 막지 못합니다. 키가 이만한 젊은 여자입니다. 죽은 아기를 안고 저 비를 맞으며 서 있었습니다. 마냐나가 그 여자에게 주지 않았답니다…”
마냐나. ‘마냐나’라는 말은 ‘내일’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하도 느려서 제가 ‘내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를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5시에 온다고 해 놓고 8시 반이나 9시가 되어야 왔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제가 그를 마냐나라고 불렀습니다. 빌리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빌리는 그가 카드를 팔지 않는지만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런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도록…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는 사람의 책임은 큽니다. 그래서 제가 친아들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빌리는 그가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빌리가 말했습니다. “그가 기도 카드를 다 나누어 주었는데, 이 작은 여자는 받지 못했답니다.” 또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큰 투우장 둘레로 눈에 보이는 끝까지… 아침 8시나 9시에 문을 열 때부터 하루 종일 서 있었는데, 그때는 밤 9시 반쯤, 어쩌면 10시 15분 전쯤이었습니다. 빌리가 말했습니다. “그 작은 여자가 안내원들을 타고 넘어옵니다. 담요로 감싼 죽은 아기를 안고 기도를 받고 싶어 합니다. 안내원들 어깨 위로 기어오르고 다리 사이로 뛰어듭니다. 저희가 뒤로 가서 그 여자를 단에서 억지로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는데 여기로 올라오게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소동이 벌어집니다. 저 사람들은 기도 카드 한 장을 기다리느라 그렇게 오래 서 있었으니까요.”
그때 잭 무어 형제님이 단에 계셨습니다.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 사시는 분인데, 여러분 가운데 아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설교를 들어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무어 형제님, 저 여자는 제 얼굴을 모를 겁니다. 아기가 저쪽 어디에 있든 가서 기도해 주십시오. 형제님이 저인지 아닌지 모를 겁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분이 걸음을 옮겼습니다. 제가 “에스피노사 형제님, 통역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말씀드리던 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그런데 보니 바로 제 앞에 조그만 멕시코 아기가 앉아 있었습니다. 짙은 갈색의 조그만 얼굴로 저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고 조그만 잇몸만 보였습니다. 바로 제 앞에 있었습니다. ‘저 아기가 그 아기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멈추었습니다. “통역하지 마십시오. 무어 형제님, 잠깐 기다리십시오. 빌리, 길을 열어서 그 여자를 여기 단으로 데리고 오너라.” 그래서 그 작은 여자를 데리고 왔고, 그녀가 올라왔습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파드레, 파드레”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아시겠죠? “파드레, 파드레.” 제가 그 여자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그녀는 담요 속의 이만한 크기의 조그맣고 뻣뻣해진 아기를 내밀었습니다.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져서 정말 많이 젖어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영어를 아십니까?” 그녀는 계속 “파드레, 파드레”라고만 했습니다. 에스피노사 형제님이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작은 담요와 그 안의 뻣뻣하고 차가운 몸에 이렇게 손을 얹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자신을 증명하시려고 꼭 치유하셔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압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치유하십니다. 저희는 모두 아버지가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도 아시듯 방금 제 앞에 어린 아기의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이 아기였습니까? 만일 이 아기가 아니었다면…” 바로 그때 아기가 “응애! 응애!” 하며 작은 발을 이렇게 차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피노사 형제님에게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아름답고 자그마한 아가씨였습니다. 아마 20대쯤 된 것 같았고 첫아기였을 것입니다. 저는 에스피노사 형제님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그 일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먼저 심부름꾼을 아기와 함께 보내서 알아보십시오… 그 여자의 담당 의사에게 확인서에 서명하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사실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무엇이든… 누군가 글을 읽을 때 그것이 사실이기를 원합니다. 잘못된 내용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서 알아보았고, 의사는 그 아기가 그날 아침 9시에 자신의 진료실에서 폐렴으로 죽었다는 확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때는 밤 10시쯤이었습니다. 그동안 내내 죽어 있었던 아기가 지금도 멕시코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단순한 믿음입니다.
오늘 밤, 아니 오늘 오후 여러분의 목사님인 에디 비스칼 형제님과 이야기하면서 제가 말했습니다. “해안을 따라 올라오며 보낸 6주 전부를 바로 여기 이분들 가운데서 보내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 온 사람들은 원주민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생업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분들이라 모두 저 섬들과 이 일대로 나가 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 작은 배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다니며 그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젯밤 집회에서 뒤쪽에 앉아 계시던 스웨덴 분들, 노르웨이 분들, 독일 분들, 캐나다 분들 몇 분도 보았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참 훌륭한 분들입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위대한 구주가 우리에게 계십니다. 저는 여기…
저는 여러분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리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제가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을 치유하는 데…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땅에 놓고 하루 종일 코로 밀며 이 거리를 오르내려서 여러분이 나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아십니다. 여기 성경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누군가 와서 “제가 당신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믿지 마십시오. 약도 치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치유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 네 하나님이니라.”
이 어린 캐나다 소년 도니 마틴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그 이야기를 읽으셨지요. 그 아이를 아주 먼 곳에서 데려왔습니다. 경련으로 몸이 너무 심하게 오그라들어 존스홉킨스와 메이오 형제 병원 등 모든 곳에서 받아 주지 않은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코스타메사로 내려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 전도자는 소년에게 묻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정인지 소년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나았습니다. 아시겠죠? 그 뒤에 저는 그 일로 메이오 형제 병원에 불려 가 면담을 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제가 “그런데…” 하고 말했습니다. 기사에 메이오 형제 병원이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그들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가지고 있었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 이름을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기자는 어느 병원에 관해, 그 병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렇게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여러… 기사를 읽어 보시면 미국과 캐나다의 유명한 여러 병원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경련으로 몸이 오그라든 아이였고 이름은 도니 마틴이었습니다. 한 4년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 10월호였습니다. 거기서 말하기를, 이 어린 소년은 여덟 살쯤 되었습니다…
아, 그 캐나다 형제님이 썰매를 타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그는 전에 제 집회에 데려온,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소녀들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중 한 소녀를 고쳐 주셨습니다. 한 명은 교회에서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전화 교환원이 되었습니다. 둘 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도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가서 말씀드리자…” 어머니와 가족들은 50달러쯤 있으면 모두 미국에 가서 도니를 집회에 데려가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한 사람의 비행기 요금도 내지 못했습니다. 기차조차 탈 수 없어 버스로 와야 했습니다. 도착해서는 집회가 열리는 곳까지 가기 위해 여행자 구호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등을 알려 주셨습니다. 몸이 자그맣고 구부정한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성령께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일로 면담을 할 때 메이오 형제 병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저희는 치유자라고 자처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작용을 도울 뿐이라고 말합니다. 치유자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훌륭한 말입니다. 아시겠죠?
의사는 부러진 팔뼈를 맞출 수 있지만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뽑을 수 있지만 이가 빠진 자리를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충수를 잘라 낼 수는 있지만 누가 치유합니까? 아시겠죠? 세포를 만들어 내는 약은 없습니다. 세포는 자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자란다는 것은 세포가 증식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창조입니다. 창조자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아물게 하시고 뼈를 붙이셔야 합니다. 의사는 뼈를 맞출 수 있지만, 아시다시피 뼈가 붙으려면 칼슘과 칼륨 같은 것들이 그 뼈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자동차 시동을 걸려고 크랭크를 돌리거나 차를 만지다가 팔이 부러졌다고 합시다. 의사에게 달려가 “선생님, 치유자시니 제 팔을 빨리 고쳐 주십시오. 차 손보던 일을 마쳐야 합니다”라고 하면, 의사는 “자네는 정신부터 고쳐야겠군”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치유자라면 제 팔을 고쳐 보십시오.” 그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는 “팔뼈는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언제나 옳습니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병원과 약 같은 것들에 감사합니다. 그것들은 자연의 작용을 돕지만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아닙니다. 그것들은 치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십니다. 성경은 거짓말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제가 이렇게 시간을 많이 쓰는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겁니다. 여러분이 참 좋으셔서, 저는 그저 서서 이야기를 하고 여러분은 거기 계십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이번에는 제가 잠깐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머무를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약속 하나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말입니다. 우리가 강을 건너 저편으로 가서 다시 젊은 남자와 여자가 되면,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천 년씩 만날 약속을 하고 싶습니다. 늘 푸른 나무들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브라함이 지나가면 일어나 아브라함과 악수하겠습니다. 다니엘이 지나가면 그분과도 악수하겠습니다. 기뻐 뛰며 조금 외치다가 다시 앉아서, 여기 포트앨버니에서 집회를 열었던 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꾸며 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아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든 무엇을 하든, 그 전에 여러분이 아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유에 관해서…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주된 역점으로 삼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의 좋은 친구인 F. F. 보스워스 박사님이 얼마 전 천국에 가셨습니다. 아주 연로한 분이셨습니다. 프레드 보스워스의 이름을 들어 보신 분이 많을 겁니다. 경건하고 성스러운 어르신이셨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신유는 낚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에게 바늘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미끼를 보여 줍니다. 물고기는 미끼를 물다가 바늘에 걸리는 것이지요.” 예수님 사역의 약 86퍼센트는 신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러면 사람들이 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신유는 부차적인 것이고, 부차적인 것을 주된 것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스칼 자매님,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부차적인 것을 주된 것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그저 어떤… 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실제로 보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토미 오스본, 또 누가 있습니까? 오럴 로버츠 같은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 캐나다에도 다니면서 기도로 치유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는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굳게 붙드는 큰 믿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해 전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 누군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분이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비판이었고, 저는 그것에 감사합니다. 그런 비판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해 줍니다. 사람들이 아주 심술궂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저는 그것에 감사합니다. 올바른 비판은 언제나 존중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는 동안 오럴 로버츠 형제님은 500명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제가 본 사람 중에 형제님이 제일 느리십니다.” 저는 “그 말씀은 맞습니다”라고 답장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했습니다. “로버츠 형제님은 거기 서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 이렇게 손을 얹고 기도하시고, 또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형제님은 여전히 서서 한 사람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아시겠죠? 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에게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한 가지 방법을 주셨고, 제게는 다른 방법을 주셨습니다. 오럴 로버츠 형제님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자기 방식으로 하시고,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 주신 방식으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을 때… 가령 여러분에게 큰 믿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이런 설명을 놓친 사람들이 나중에 들어옵니다. 가령 우리에게 큰 믿음이 있고, 여기 한 사람이 단에 서서 기쁨으로 외치며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돈을 훔쳤거나, 악하게 살았거나, 어떤 여자와 부도덕한 관계를 맺었거나, 살인을 저질렀거나 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병을 내리셨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채찍으로 질병을 사용하십니다. 믿으십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주님의 징계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합니다. 예언의 은사 때문에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악한 일을 했는데, 제가 거기서 아주 큰 믿음, 미국에서 소위 ‘불도그 같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붙잡고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탄아, 그를 놓아줘라! 하나님께 영광을!” 하고 외친다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 그에게 주신 병을 제가 없애 버리면, 저는 하나님 앞에서 곤란해집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아직 이해가 안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잠깐만요. 성경에서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은 의심하지 않으실 줄 압니다. 모세를 봅시다. 모세가 선지자였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려가서 반석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내려가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했습니다. 반석을 쳤습니다. 처음에는 반석을 쳤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은 한 번 맞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리스도의 피의 약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처음 반석을 쳤을 때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다시 부르짖고, 물을 더 달라거나 다른 것을 달라며 계속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내려가 반석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반석을 쳤고 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쳤습니다. 그에게는 그렇게 할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물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세야, 여기로 올라오너라. 저기 그 땅이 보이느냐? 너는 들어가지 못한다. 저 반석에서 내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모세에게는 그렇게 할 권능이 있었지만 그 권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심해야 했습니다.
엘리사를 보십시오. 그는 대머리였는데, 길을 내려가던 그에게 어린아이들이 “대머리야, 대머리야, 왜 엘리야처럼 올라가지 않느냐?” 하며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 어린아이들은… 어쩌면 부모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린것들이 이 선지자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엘리사를 화나게 하자, 그는 돌아서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 아이들을 저주했습니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무고한 어린아이 42명을 죽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성품처럼 들리지 않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화가 난 선지자가 그 아이들을 저주했습니다.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 저주는 효력을 얻어야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조심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그 기도 줄에서 저는 그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고 알려 줍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봅니다. 잘못된 것이 있고 여전히 검고 어둡고 차갑게 남아 있으면, 저는 “가십시오.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들의 미래 모습이 보이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괜찮습니다.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기도하고 믿으십시오. 언젠가 다시 여러분께 돌아와 오랫동안 함께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말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익숙한 짧은 본문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1절부터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를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사들과 표적들을 알아보는 것”을 말씀의 요지로 삼겠습니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가 방금 아버지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씀이시며 언제나 말씀이셨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정해진 때에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믿는 믿음이 저희에게 있으니 감사합니다. 오늘 밤 이 집회도 정확한 때에 열리고 있으며, 세상과 세상의 모든 성취도 정확한 때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 아버지, 며칠 전 세계박람회를 둘러보며 사람이 이룬 일들과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세상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사람들이 이룬 최고의 성과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독일, 영국, 스위스, 온 세계가 자신들이 무엇을 개선할 수 있었는지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저희는 여기 외딴 포트앨버니의 작은 도시로 왔습니다. 섬에서 오신, 외따로 사는 원주민들 가운데에는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정직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산 위에 서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아침에 새들이 깨어나 노래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찬양할 줄 아는 분들입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갈매기 울음에서 그분의 외침을 들으며, 그분께서 공중에서 큰 날개를 퍼덕이시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영적인 세계박람회를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를 거치며 자신의 교회와 더불어 무엇을 이루실 수 있었는지 보려고 모였습니다. 신앙 고백에서 은사와 표적, 방언과 이적을 거쳐 이제 마지막 표적에까지 어떻게 이르게 하셨는지 보려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 큰 행사에서, 자신의 백성과 더불어 무엇을 이루실 수 있었는지 세상에 보여 주십니다. 주님, 오늘 밤 그것을 믿고 신실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찾으려고 어디든 다니는 이 무리 가운데 저희도 함께할 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아버지의 말씀을 축복해 주십시오. 어디에 있든 아버지의 백성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그들도 언젠가는 떠나야 함을 저희는 압니다. 주님, 오늘 밤 저희가 예수님께서 감탄하셨던 그런 이방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성경에서 야이로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의 어린 딸이 병들어 죽어 가며 누워 있었고, 그는 “오셔서 제 아이에게 안수하시면 아이가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사람인 그 이방인이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제 종이 살겠습니다”라고 하자, 주님께서는 돌아서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며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내가 발견한 적이 없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저희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려는 것은, 제가 떠난 뒤에 그들이 “어떤 형제님이 와서 내게 안수해 주었다”고 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그들이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마음의 동기와 아버지의 말씀이 지향하는 바, 곧 그들의 구주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제가 전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2천 년 동안의 비판과 냉담함도 그분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분은 바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임재를 보고 그분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누군가 안수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믿음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 치유와 구원을 받게 해 주십시오. 어젯밤 저희가 이야기했던 수가의 여인, 사마리아 땅의 그 작은 여인처럼 곳곳의 섬들을 다니며 간증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저희는 아버지의 종들입니다. 오늘 밤 이 본문과 함께 겸손히 자신을 맡겨 드립니다. 주님,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는 아버지의 손안에 있습니다. 합당하게 여기시는 대로 저희에게 행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목회자 여러분께 말씀드리면, 저는 이 집회들을 아주 단순하게 진행하려고 해 왔습니다. 메시지와 치유에 관한 것만 전하여 우리가 주님을 지켜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이따금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것은 그저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아, 아무개 형제님, 할렐루야! 그분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까? 그분이 내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 일을 이룬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아시겠죠? 그 형제님의 손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손에 치유가 있다면 갈보리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분께서 우리 치유의 값을 치르신 곳은 갈보리입니다. 그분께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 우리 각자의 믿음입니다.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저는 “모두 앞으로 오십시오. 안수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세워 드리려고 이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원주민 형제자매 여러분 중 누군가 저 멀리 섬에서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가난하고 돈이 없어. 미국에 내려가 저 먼 곳에 계신 브래넘 형제님을 만나거나 오럴 로버츠 형제님께 갈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로버츠 형제님을 만나려면 아마… 몇 달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게도 전 세계에서 온 300명이 대기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 면담입니다. 아시겠죠? 그곳에 들어가 그런 문제를 맡으면 결코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등을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 것이 개인 면담입니다. 삶에 관련된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여기 성경에 제시된 계획이 있지만, 개인의 삶에 관한 일들은… 아, 이야기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제가 본 것만으로도 책을 여러 권 쓸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어디서 누구에게든 물어보십시오.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표적을 보여 주셨는데도 믿지 않은 그 세대를 책망하고 계셨습니다. 어젯밤에 우리는 그분께서 말씀이시기 때문에 메시아이셨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지요? 메시아는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합니다. 그분은 왕이시며 하나님이신 선지자가 되실 분이었고, 그분 안에 영이 계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참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지킨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따라 다른 교회 쪽으로 가 버린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 그 교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무효가 되게 하는도다.” 오늘날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전통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전통입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성경이 아니라 전통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온 세상 모든 창조물에게 가도록 명하셨으며,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하신 곳을 누구에게나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그것을 교회에서 거두어 가셨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누가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교회 안에 있습니다. 전통이 그것을 왜곡하여 몰아낸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들의 전통이 비틀려 다른 데로 벗어나 어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틀림없이 성전을 지어 놓고 “그분께서 하늘의 복도를 따라 내려오실 것이다. 천사들의 악대가 연주하고 그분께서 그렇게 들어오실 것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소와 짐승들이 있는 외양간의 구유, 짚이 든 조그만 상자 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사생아라고 여겨지셨습니다. 아, 마귀가 그분의 모습을 얼마나 흉하게 그려 놓았습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아니야! 어느 학교 출신인가?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가? 아버지가 목수였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고?”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너무나 비범하셔서 그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아,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이 분류할 것입니다. 지혜는 자기 자녀들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셨습니까…? 어젯밤 제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회중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고, 그 반응이 돌아왔을 때 좀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모든 시대에 걸쳐 교육은 적그리스도의 표식이었다”라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교육은 복음이 겪은 가장 큰 원수입니다.
들으십시오. 주제에서 벗어났지만 잠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계보를 살펴봅시다. 가인과 셋이 있었습니다. 아벨이 죽임을 당하자 그 자리에 가인이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가인의 자손들은 노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리하고 지적인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셋의 자손들은 내내 겸손한 농부, 양을 기르는 사람, 소박한 농민들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교육자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십시오. 종교적이었습니까? 아, 거룩했습니까? 대단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문장부호 하나라도 의심하면 믿지 않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종교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사탄도 종교적입니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이 계시다면 성령께서는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장을 “아멘”으로 확증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말씀에서 결코 덜어 내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믿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어디에서 제자들을 얻으셨습니까? 가야바에게 가서 “자네 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셨습니까? 그들을 지나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그 시대의 원주민들, 강가의 어부들을 찾아가 데려오셨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와 요한이 둘 다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문 앞에 있던 사람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왕국의 열쇠를 주시며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내가 하늘에서 묶으리라”라고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오늘날 교육은 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려오는 대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데 그렇게 큰 역할을 합니까? 바울은… 여러분은 “바울은 어떻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는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잊어야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와 현란한 말 위에 세워지게 하려고 내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너희에게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성령의 권능으로 너희에게 온 것은 너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게 하려는 것이다.” [테이프의 공백]…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책망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여기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언제나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초자연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넘어가기 전에 잠깐 작은 그림 하나를 그려 드리겠습니다… 아, 못 하겠군요.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한번 해 보겠습니다. 태초에 아무것도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유성도, 빛도, 원자도, 분자도 있기 전부터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분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위대한 권능이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 안에는 속성들이 있었습니다. 속성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속성이 무엇인지 아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알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어서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속성은 이런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경치를 좋아하는데 그 경치를 보면 속에서 무언가가, 아! 하는 감격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그분은 아직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인데 그분을 경배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다음에는 천사들을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그분을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분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또 아들이 되시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또 치유자가 되시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또 구주가 되시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이 모든 것이 드러나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벌하시려고 죄를 짓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도덕적 자유 의지를 주셨고, 사람 스스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주가 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타나는 것일 뿐이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해진 때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은사와 모든 일이 시계가 째깍거리는 것처럼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시대에 하나님의 속성들을 나타내려고 오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이 메시아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사람들에게 표적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표적을 믿으면 그들에게 황금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그들에게 혼란이 닥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몇 분만 더 말씀드릴 것이니 그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은사를 보내시고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면,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때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사를 보내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하면, 그 세대는 멸망에 들어갑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세상이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깐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노아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와서 온 세상을 물로 뒤덮을 폭풍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맞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시 사람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들이었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세웠는데, 우리는 지금도 그것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미라를 우리는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염색 기술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달까지 레이더를 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라는 이 사람은 하나님께 듣고 나서 그곳에 서서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설교하고 예언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듣는다면… 과학자가 와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보시오. 우리에게는 달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 장비가 있소.” 아시다시피 그때까지 비는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샘에서 물이 올라오게 하여 땅을 적셔 주셨고, 하늘에서 비가 내린 적은 없었습니다. 대홍수의 멸망 이후 땅이 뒤로 기울어지면서 비가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위에서 비가 내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과학은 “저 위에는 비 한 방울도 없다. 물이 없다. 어떻게 비가 내리겠는가?”라고 합니다. 노아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가 내릴 것이며 저 위에서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저 위에 비를 두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비가 내렸습니다. 아시겠죠? 그 인류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온 세상이 말입니다.
오랜 세월 뒤에 모세라는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머리 위에 불기둥이 있는 채로 광야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다고 전했습니다. 머리 위에는 이 불기둥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일하시며 그가 선지자임을 그 유대인들에게 입증해 주셨습니다. 그가 “내일 모든 것을 준비하십시오.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말입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얼마 전 이스라엘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믿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에게 곰팡이 핀 빵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것을 먹든지 굶든지 해야 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의 어린 딸들을 데려다가 겁탈하려 하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아들들을 데려다가 죽이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멘.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형편에 있었는데, 이 선지자가 성경에 따라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 그의 씨가 낯선 땅에서 400년 동안 머물다가,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큰 약속과 권능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여 아브라함이 머물던 좋은 땅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 사람에게는 머리 위에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말한 그대로 정확하게 일어났습니다. 아! 이스라엘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불기둥 아래서 이집트를 떠나,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갔습니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크게 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야외 같은 곳에서 설교하는 데 익숙해져서 그렇습니다. 잠깐만요. 보십시오. 제가 조금 뒤로 물러서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그 선지자를 따라 광야를 지났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밤에는 하늘에서 빵을 비처럼 내리셔서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가데스바네아는 한때 세상의 심판석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호수아라는 위대한 전사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구주’라는 뜻입니다. 그는 진영을 나와 요르단을 건넜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그 너머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외에는 그 땅이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요르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 땅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라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아시겠죠? 그 땅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백성의 90퍼센트가 여호수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얼마 동안 방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파라오 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를 맞아 결혼하고 그 땅에 작은 집을 짓고, 자기 먹을 것을 직접 길러 먹으며 자녀들을 평안히 기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그 아름다운 땅의 언덕마다 무덤이 점점 들어섰습니다.
그때 모든 전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전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죽음이 없는 곳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우리가 영원히 살며 집을 지어 거기에 거하고 포도원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남겨 주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다. 아멘.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며,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분께서는 죽음 뒤에 생명이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한 분의 위대한 여호수아입니다. 아무도 저편에 갔다가 돌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또 한 분의 위대한 여호수아입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곳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가데스바네아, 우리 모두를 위한 심판석인 갈보리를 만나셨습니다. 그곳에서 세상의 죄들 때문에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아는 죽음이라는 요르단을 건너 다른 땅으로 가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자 해가 빛을 잃고 달도 빛을 내지 않았으며, 바위들이 터져 나올 때 땅은 오한이 난 것처럼 떨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셨을 때 말입니다. 그분은 죽으셨지만 사흘째 되는 날 요르단 건너편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사람이 여기서 죽은 뒤에도 산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전사이십니까!
그분께서는 “너희 구원의 보증을 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리 치르는 계약금입니다. 가령 원주민 형제님 한 분에게서 배를 사고 싶어서 찾아가 “배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이 “2천 달러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50달러를 드릴 테니 다음 주까지 저를 위해 배를 잡아 두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저를 위해 잡아 두시겠습니까?” “그러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러면 그분은 제게 영수증을 주고 저는 50달러를 드립니다. 이제 그분은 그 배를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사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 배를 가져가겠다는 보증입니다. 그 배는 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돌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기다려라. 내가 너희 구원의 보증을 보내겠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보증이 왔습니다. 급하고 강력한 바람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한때 믿지 않는 자였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이런 집회 주변을 돌아다니며 비웃었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나온 삶에서 신유를 비판했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기서 일으킴을 받고 들어 올려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분과 함께 묻혔으며, 그분의 부활 안에서 함께 일으킴을 받아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습니다. 한때는… 아시겠죠? 보증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구원의 보증 안에 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이미 죽고 그리스도 안에 묻혔다가 그분과 함께 일으킴을 받은 채 여기 서 있습니다.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서 저편에서 건너오는 영적인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늘의 처소들입니다. 아! 생각만 해도 기뻐 외치게 됩니다.
미국에 사는 한 나이 든 유색인 여성, 흑인 자매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브래넘 박사님, 간증을 하고 싶습니다.” “하십시오, 자매님. 간증하십시오.” 그분이 말했습니다.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여기서 ‘아니다’라는 뜻으로 쓴 ‘hain't’는 남부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되어야 할 모습은 아니에요. 되고 싶은 모습도 아니에요. 하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어요. 예전의 저도 아니에요.” 좋은 말입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저는 제가 되고 싶은 모습도 아니고 되어야 할 모습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전의 저도 아닙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분과 함께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만큼 올라와서 제 변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를 봅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 때에 일어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라.”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엾은 요나를 헐뜯으며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의로운 사람의 걸음을 주님께서 정하신다고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로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떤 일을 하지만, 그럴 때는 그저 잠잠히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면 어쨌든 가서 행하십시오. 우리 생각과 어긋날 수도 있지만 성령께서 “가라”고 하시면 갑니다. 가령 지금 제게 집회가 하나 있습니다… 뉴욕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에 할 예정이었습니다. 스페인어를 쓰는 300명이 1만 9천 명을 수용하는 매디슨스퀘어가든을 빌렸습니다. 제가 여기에 와 있는 바로 이번 주에 뉴욕에 와 달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성령께서는 저를 여기로 이끄셨습니다. 생각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저는 여기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형제님들은 그 사람들에게 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버츠 형제님 같은 분은 그곳에 갈 수 없… 여기에는 올 수 없으십니다. 제가 알기로 그분에게는 텔레비전 방송과 온갖 사업, 또 300만 달러짜리 건물을 운영하는 데 매일 약 1만 5천 달러에서 2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그 형제님은 여기 오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지원할 수 없습니다. 그럴 여유가 없으십니다. 아시겠죠? 여러 나라에 수천 명의 선교사를 둔 큰 사역을 하는 토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커지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작은 구석에라도 갈 수 있는 상태로 머물게 하셨습니다. 제게는 그분의 임재 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들보다 먼저 사역 현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을 아무것도 갖지 마라. 돈에 얽히지 마라. 그대로 두어라.” 저는 평생 헌금을 걷은 적이 없습니다. 31년 동안 설교했지만 제 평생 한 번도 헌금을 걷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한 회중이 무려 50만 명에 이르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겨우 20명이 앉을 수 있는 교회에 가서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아시겠죠? 어디든 그분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여러분도 그 훌륭한 분, 로버츠 형제님에 관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찾아갔습니다… 아, 참 다정한 형제이며 제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저는 그분의 거대한 건물을 찾아갔습니다. 토미에게도 갔습니다. 토미는 전에 포틀랜드에서 그 정신 나간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단으로 달려 나왔던 밤에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아주 덩치 큰 사람이 “너를 때려서 저 청중 한복판으로 날려 버리겠다. 네 목을 부러뜨리겠다”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했으니 내 발 위에 쓰러질 것이다.” 그는 “내가 누구 발 위에 쓰러지는지 보여 주겠다” 하며 큰 주먹을 뒤로 당겼습니다. 제가 “사탄아, 그에게서 나와라”라고 하자, 그는 정확히 제 발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대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토미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경찰들이 뛰어나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을 감옥에 넣으려고 쫓고 있었습니다. 죽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제 발 위에서 굴려 치워 주십시오.” 아시겠죠? 몸무게가 250파운드가 넘는 사람이어서 경찰들이 제 발 위에서 그를 굴려 치웠습니다. 그는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치유된 겁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 사람은 그 영을 숭배합니다.” 저는 포틀랜드 강당 뒤쪽 대기실에서 그 두 경찰관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었습니다.
그 일을 보고 토미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이제 사역 현장에 나가 큰일을 했습니다. 또 오럴 형제님에게는 그 거대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약 250만 달러나 300만 달러짜리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합니다. 휴! 대단합니다! 보십시오… 오럴의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IBM 기계 500대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편지는 사람 손에 한 번도 닿지 않습니다. 기계가 집어 들고, 내용을 써 내고, 아래로 내려보내고, 접어서 발송합니다.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는데, 아주 큰 트럭으로 실어 와서 쏟아붓습니다… 컨베이어가 돌아가고 여러 언어로 된 것들이 지나갑니다. 이렇게 꺼내서 돈을 처리합니다. 여러분 평생 그런 광경은 보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참 대단한 일입니다. 오럴이 저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었습니다. 피셔 형제님과 그곳에서 그분과 함께 있던 선교사 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저쪽에 있는 토미 형제님의 큰 시설을 보았습니다. 저는 ‘참 놀랍다, 참 좋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형제님…
경찰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문으로는 나가실 수 없습니다. 밖에 50명이 서서 형제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뵈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뒷문은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있습니다. 이쪽으로 나가십시오. 차로 모시러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저는 뒤쪽 주차장으로 나갔습니다. 그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아! 마치…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런 것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작은 오순절 소년이 그 일을 이룬 것입니다. 저는 ‘참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토미 형제님 사역 본부도 생각해 보라. 거의 도시 한 블록을 차지하는 큰 시설에서 책을 만들고, 비서들이 일하고, IBM 기계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저분들이 우리 사무실을 보러 오면 난처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트레일러 한쪽 끝에 놓인 작은 타자기 하나뿐이었습니다. 편지에 답장하는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아무리 뭘 준다 해도 저 모든 책임을 맡고 싶지는 않아. 내게는 저것을 관리할 머리가 없거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셨던 거야.’
거기 서 있다가 몹시 서글퍼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형제님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을 보고 사역 현장에 나서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점은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저 위에 있는 천국이라는 하나의 큰 처소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마 저를 믿고 맡기실 수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돈을 모을 수 없을 것도 아셨겠지요. 모은다 해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만한 지혜가 제게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 서 있는데 목이 조금 메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하는 것은… 저는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 목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또렷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내가 네 몫이다.” 저는 말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어디든, 어느 곳이든, 언제든 가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오스본 형제님과 로버츠 형제님과… 전 세계의 그 모든 소중한 형제님들과 우리는 다 한곳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한곳입니다. 아시겠죠?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이 작은 은사는 이런 작은 구석들로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돈이나 사업 같은 것들에 잔뜩 얽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그저 작은 구석들로 들어가 일을 시작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이 몫에 감사합니다. 그분이 제 몫이시라서 참 기쁩니다. 제가 기다리는 분도 그분이십니다.
요나는 내려가는 배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부르신 일, 니느웨로 가기를 원했지만 다시스로 갔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했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선지자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 언제나 옳게 끝납니다. 그가 바다로 나가자 폭풍이 일고 바다가 거칠어지며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요나의 두 손과 두 발을 묶어 배 밖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고래가 그를 삼켰습니다.
얼마 전, 한 15년이나 20년 전에 켄터키주 루이빌에 큰 무개 화차 위에 실어 놓은 고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는데, 강연하던 그 과학자가 성경을 비웃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 전설을 아시지요…” 전설이라고요? 이 성경은 전설이 아닙니다. 진리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는 전설 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잘 보십시오. 보통 크기의 야구공 하나도 이 고래 목구멍에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전설은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대로 자란 보통 크기의 고래인데, 사람이 목구멍을 통과할 수 없으므로 고래가 사람을 삼킬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늘여도 고작 4인치 정도인데 사람이 그 안을 지나가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 아일랜드 혈통으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예,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성경을 모르시는군요. 하나님께서 이 물고기를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만들어진 녀석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다른 종류였습니다.” 이 물고기는 원하기만 했다면… 집도 삼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예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아, 목구멍이 큰 물고기였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요나가 물고기의 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매님들,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작은 어항 바닥까지 곧장 내려가 지느러미를 바닥에 대고 쉽니다. 배가 부른 것입니다. 아시겠죠? 거기 누워 그저 쉬고 있습니다. 물속을 돌아다니다 먹이를 찾았으니 내려가 쉬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먹이를 먹으면 그렇게 합니다. 배가 부르면 돌아갑니다. 이곳의 송어도 어디 바위 밑에 들어가 쉴 것입니다. 그렇게 합니다. 이 큰 물고기도 선지자를 먹고 배가 불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속으로, 바닥까지 내려가 누웠습니다.
이제 요나의 형편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 나쁜 형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증상을 말합니다. “어젯밤 기도를 받았지만, 음, 아직도 아픕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를 받았지만 손이 여전히 불구입니다.” 그것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믿는다면 그것을 보지 않고 약속을 보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손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증상이라고 합니다. 증상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누구도 요나와 같은 증상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형제님, 그는 제가 본 것 중 가장 지독한 증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바다에 있었고 손발이 등 뒤로 묶여 있었으며, 아마 여러 길 깊이 내려간 고래의 배 속에 있었습니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고래 배 속의 토사물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도 증상을 말하시겠습니까! 이쪽을 보아도 고래 배 속이고, 저쪽을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그렇게 나쁜 형편에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겪던 증상을 보십시오. 하지만 그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거짓되고 헛된 것들이다. 나는 그런 것을 조금도 믿지 않겠다.” 그가 “주님…” 하며 몸을 돌려 반듯이 누웠습니다. 온몸 둘레에 토사물이 있고 목에는 해초가 감겨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아, 고래 배 속이나 형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솔로몬은… 그 성전을 봉헌할 때 기도했습니다. “주님, 언제든 주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여 이 거룩한 곳을 바라보거든 하늘에서 들으소서.” 요나는 솔로몬의 기도에 근거하여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저 아래에 산소 텐트 같은 것을 내려 주셔서 사흘 밤낮 그를 살려 두셨습니다.
우리 형편은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요나만큼 어려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고래 배 속에 있지도 않고 그런 형편에 놓여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형편에 있던 요나가, 한 인간이 봉헌하면서 기도했던 성전을 바라보았고—그 기도한 사람은 나중에 믿음에서 떠났는데도—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면, 이런 형편에 있는 우리는 얼마나 더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시기 위해 항상 살아 계십니다. 아, 아! 저는 배가 아픈 것을 보지 않겠습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것을 보지 않겠습니다. 불구가 된 손을 보지 않겠습니다. 약속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분께서 거기 앉아 항상 살아 계시며 중보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제 한 가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그곳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와 거의 비슷한, 약 50만 명이 사는 큰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이교도였고 온갖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짐승과 우상 등 온갖 것을 숭배했으며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래서 고래가 바다의 신이었습니다. 열한 시쯤 그들 모두가 고기를 잡으러 나가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을 당기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의 신인 고래가 올라왔습니다. 물가로 달려와 혀를 내밀자 선지자가 곧장 물가로 걸어 나왔습니다. 당연히 회개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십니다.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하실지 아십니다. 아시겠죠?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십시오. 고래 신이 선지자를 물가에 바로 뱉어 놓았습니다. 그들이 그의 메시지를 믿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그가 나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요나보다 더 큰 이가 거기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이것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선생님이여, 우리가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읽기 시작한 곳에서 세 절 앞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그분께서 “연약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 세대에게는 아무 표적도 주지 않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성경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압니다. 그분께서는 “그 연약하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아무 표적도 주지 않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세대입니다.
온 세상에 지금처럼 악과 간음이 많았던 때는 없었습니다. 성적 타락입니다. 동성애자들, 성적 타락, 옷을 벗다시피 하고 거리를 다니는 여자들, 온갖… 온 세상에서, 특히 미국에서 사람들이 하는 짓은 참으로 끔찍합니다. 캐나다도 거의 그만큼 나빠지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저 큰 나라를 이 작은 나라가 본보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을 본보기로 삼지 마시고 여기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보십시오. 그곳에 있던 자들은 악한… 그분께서 “아무것도 주지…”라고 하셨습니다. 놓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들은 한 표적을 받을 것입니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그들은 그 표적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의 표적입니까? 부활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바로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죽어 계시지 않는다는 표적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 우리 가운데 계시며, 땅에 계실 때 하셨던 바로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그 표적을 받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지막으로 잘 들으십시오. 솔로몬의 세대에 하나님께서 땅에 은사를 주셨는데, 분별의 은사였습니다. 그 은사가 솔로몬에게 임했고 모든 백성이 한마음으로 믿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믿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캐나다와 미국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은사, 곧 성령을 믿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이 그저 믿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러시아의 원자폭탄 같은 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땅을 파고 들어간다고 원자폭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동굴 속으로 내려가 정부 사무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원자폭탄은 땅을 300피트나 400피트 깊이까지 터뜨리고, 가로세로 150마일에 걸친 지역을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땅속 1만 피트, 용암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 있다 해도 온몸의 뼈가 부러질 것입니다. 파고 들어가서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방공호가 있습니다. 강철로 만든 것이 아니라 깃털로 만든 것입니다. 그분의 날개 아래입니다. 아멘. 위로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영광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러고는 우리를 미쳤다고 합니다. 제가 미쳤다면 이대로 내버려두십시오. 이쪽이 더 좋습니다. 저는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보십시오. 솔로몬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그 은사를 믿었습니다. 아! 누구도 돌아다니며 “아, 그는 하나님의 성회 사람이야. 그는 이쪽이야. 그는 저쪽이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어떻게 했습니까… 그때는 제트기 같은 것이 없어서 낙타 대상과 함께 다녀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곳을 지나간 뒤 세상의 다른 곳으로 내려가서 말했습니다. “저 팔레스타인 소식을 들어 보셔야 합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이교도 숭배란 우상, 곧 상상 속의 신 앞에 엎드려 그 상상 속의 신이 자기에게 말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앞에 엎드리는 살아 있는 사람을 택하여,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살아 있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교도 숭배, 우상 숭배에서 그리스도인의 경배로 완전히 뒤바뀌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곳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경배하는 하나님께서 분별을 통해 그 사람으로 말씀하십니다.” 아, 그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모든 나라가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선물과 온갖 것을 보내왔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은 그가 너무나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그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를 지혜롭게 하셨습니다.
그 소문이 땅을 가로질러 저 멀리 스바 땅에 이르렀습니다. 지도에서 재어 보시면, 사하라 사막을 지나 아주 먼 곳입니다. 그 작은 이교도 여왕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와 “아, 저 팔레스타인에 가 보셔야 합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사람들이 그것을 얼마나 놀랍게 여겼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믿음은 무엇을 통해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옵니다. 그 작은 여인은 “뭐라고요?” 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녀 안에 계신 하나님… 그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 믿음이 그녀의 마음에 닿기 시작하자 그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의 왕국으로 들어오면 말입니다. 낙타 대상, 상인 등이 비단과 아마포 같은 직물과 농산물, 그 밖의 상품을 가지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그들을 궁전으로 불러들여 물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거쳐 왔습니까?” “예.”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렇게… 아시다시피 그 백성은 한마음 한뜻입니다. 평생 그런 모습은 보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한 사람을 통해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들은 그 사람을 자기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아! 모두가 믿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요.” “직접 보았습니까?” “예.” “정말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아! 소식을 들으니 이제 직접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녀는 결심했습니다… 두루마리들을 모두 구해 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녀는 이교도였지만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 읽으며 그분의 성품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 안에 나타나는 것이 여호와의 성품임이 틀림없어. 여호와는 지극히 지혜로우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하니까.”
여왕이었기 때문에 거쳐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자기 이교도 제사장을 찾아가 그곳을 떠나도 되는지 자기 교회의 허락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 이교도 제사장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보시오, 아가씨. 그대는 여왕이오. 저 무식한 무리와 어울리러 갈 수는 없소. 그래서는 안 되오. 그대는 여왕이오. 그리고 아시오? 저곳으로 가면 자기 신분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오…” 그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제게 가고 싶다는 마음을 줍니다.” “아, 하지만 안 되오. 그럴 수는 없소. 잘 들어 보시오. 그곳에서 온갖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소. 홍해가 말라서 건너갔다느니, 하늘에서 빵이 비처럼 내렸다느니 하지. 하지만 그저 전설일 뿐이오. 아무 근거도 없소.” 오늘날에도 똑같은 옛 마귀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귀는 자기 사람을 데려가지만 자기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영을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데려가실 수 있지만, 그리스도 위에 계셨던 성령께서는 세상 끝까지 교회를 위해 돌아오셔서 같은 일을 행하십니다. 보십시오. 그 시대의 대단한 학자들과 그 큰 바리새인 무리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들의 영이 다른 사람들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영도 여전히 똑같이 살아 계시며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시고 계속 나아가십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제 주의해서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없소.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진실이 있다면, 우리 우상들과 우리 교회가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오.” 아시겠습니까?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신유에 조금이라도 진실이 있다면 저 위대한 아무개 교회가 믿을 것입니다. 저 위대한 아무개 교회가 행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일하십니다. 누구에게 물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충족하시는 분입니다. 아시겠죠? 아무에게도 물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작은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어쨌든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교적 이명서를 주겠소.”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러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떠날 테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아시겠죠? 그리스도께 나아오며 진실로 그분을 믿는 사람은 아무것도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면, 여러분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어쨌든 나아갑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작은 여인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낙타에 짐을 싣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그녀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잠깐, 그것이 정말… 그 은사가 참되다면 내가 지원해야겠어.” 그래서 많은 금과 유향 등을 가져다가 낙타에 실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가져가기는 하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내 돈을 그대로 가져오겠어.” 오순절 사람들은 여기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지지하는 바로 그것을 싫어하는 집회들을 지원하면서 자기 교회는 부족에 시달리게 내버려두는 사람들 말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캐나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단지 인기를 얻으려고 그렇게 합니다. “나는 아무 곳에 얼마를 냈다.” 아, 참! 알맹이 없는 탈지유 같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여기 그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모아 낙타에 실었습니다. 그 많은 돈, 수천에 수천 달러 값어치의 금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스마엘의 자손인 아랍인들은 당시에 사막의 강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얼마나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날랜 말을 탄 그들이 들이닥쳐 여왕 주변의 그 얼마 안 되는 호위병들을 죽이고, 돈을 빼앗아 5분 만에 달아나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을 알기로 결심하면 두려움을 모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모릅니다. 그렇지요? 의사가 무엇이라 하든 다른 누가 무엇이라 하든 개의치 않고 믿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녀는 강도나 이것저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가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생각만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녀는… 그 여인에게 얼마나 걸렸을 것 같습니까? 냉방이 되는 캐딜락을 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낙타 등에 타야 했습니다. 낙타 행렬이 스바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아십니까? 석 달, 90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 뜨거운 사하라 사막을 낙타 등에 타고 건너왔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보려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가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라고 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아시겠죠? 밤에 이동했을지도 모릅니다. 낮에는 오아시스에서 쉬면서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려고 두루마리들, 성경을 읽었습니다. 마침내 성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오늘날 사람들처럼 “들어가 앉아 있다가 내 믿음에 어긋나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당장 일어나 나가겠어”라는 태도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무지함을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그녀는 확신할 때까지 머물려고 왔습니다. 성경을 읽고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과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그 여호와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신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제사장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자, 여기를 보시오. 여기 우리의 위대한 다곤이 있소. 여기 우리의 위대한 우상이 있소.” 그녀는 말했을 것입니다. “예. 제 7대조 할머니 때부터 섬겼지만, 저것들은 내내 조각상으로 서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서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것입니다. 아멘. 지금 제 속에서 신앙의 감격이 좀 일어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지 죽은 신이 아닙니다. 홍해를 가르실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똑같이 하실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옛날 나병 환자를 고치실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똑같이 하실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역사 속의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오늘날도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같은 분이십니다. 다만 그들이 행사했던 것과 같은 믿음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이제 그녀가 성전에 있습니다. 성전 뜰에서 짐을 풀고 천막을 세우고, 한구석에 돈을 두고 내시들을 둘러 세워 지키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마 함께 온 시녀들과 일찍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들은 들어가 앉았습니다. 아마 교회 맨 뒤쪽이었을 것입니다. 찬송을 모두 부르고 나팔을 불고 모든 순서가 진행된 뒤, 얼마 지나 솔로몬 목사님이 걸어 나왔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말했습니다. “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목사님이십니다.” 그들이 걸어 나왔습니다. 솔로몬 목사님이 단에 섰습니다. 그날 그녀는 말로 들었던 바로 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날마다 두루마리를 공부하며 그곳에 갔습니다. 기도 카드가 호명되기를, 아니면 그 앞에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솔로몬과 만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녀가 단에… 솔로몬 앞에 나아갔을 때, 성경은 솔로몬에게 숨겨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그녀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마음의 비밀을 아셨던 그 하나님과 같은 분이 아니십니까? 그녀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교도였던 그녀가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며, 그보다도 더합니다.”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죠?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어젯밤 이야기한 나다나엘과 다른 사람들이 본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시며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2천5백 년 전… 아니, 약 8백 년 전에 솔로몬이 여기 서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죠? 그녀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당신과 함께하며 이 은사가 항상 역사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날마다 여기 앉아 그 일이 늘 일어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마지막 날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맨 끝 지역에서 하나님의 은사가 역사하는 것을 보러 와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길 하나도 건너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자동차를 몰고 집회에 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웃을 것입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부활의 표적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당연합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끝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녀는 참된 것을 보았습니다. 참된 믿는 사람들이 보기 원하는 것이 바로 참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참된 믿는 자를 구원하는 바로 그것이 믿지 않는 자를 정죄하고 지옥으로 보냅니다. 노아를 구원한 바로 그 물이 믿지 않는 자를 익사시켰습니다. 믿는 자를 구원한 같은 심판이 믿지 않는 자를 죽였습니다. 오늘날 믿는 자가 받아들이는 같은 영께서 심판 날에 믿지 않는 자를 정죄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원주민 형제님들과 모든 분께 짧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아, 사냥이 정말 좋습니다. 아, 아, 제게는 제2의 천성입니다. 회심한 뒤에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했던 사냥 이야기를 잠깐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정확히 말씀해 주셨던 일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인 비스칼 형제님과 저 뒤에 계신 소스먼 형제님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어떤 순록을 잡을지, 그 순록이 어디에 누워 있을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남자가 초록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을 것이며, 제가 돌아오기 전에 회색곰을 잡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소스먼 형제님, 맞습니까? 제가 수백 명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갔습니다. 에디는 저희가 그곳에서 출발하기 전날 제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틀 뒤에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제가 말한 그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뿔의 높이가 정확히 42인치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내인이 물었습니다. “정확히 42인치라고요? 브래넘 형제님, 그 뒤에는…” 그가 말했습니다. “이 산꼭대기 어디에 회색곰이 있다는 겁니까? 브래넘 형제님, 말씀하신 대로라면… 초록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에디 비스칼이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회색곰을 잡으셔야 합니다.” 에디의 아내가 야영 가방에 그 셔츠를 넣어 두었는데도, 그는 제게 그런 셔츠는 없다고 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걸 입고 있을 겁니다. 반드시 거기에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가 그 초록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안내인이 말했습니다. “저기로 돌아가기 전에 말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 형제가 간질을 앓았는데, 다시 발작하면 셔츠를 확 벗겨 불에 던져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발작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지요.” 그는 그렇게 했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니 믿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이레이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곰 한 마리도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과 약 반 마일쯤 떨어진 곳에 왔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3마일쯤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 반 마일쯤 남은 곳에서 제가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제 반 마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곰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안…? 버드, 저게 뭡니까?” 털끝이 은빛인 9피트짜리 회색곰이 언덕 위에 서서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희가 500야드 거리까지 갔을 때였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회색곰을 쏘아 보셨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곰은 많이 쏘아 봤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환상에서는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이제 등을 쏘십시오. 등을 쏘지 않으면, 저놈들은 아주 사납게 덤빕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환상에서 이 곰은 심장을 쏘았습니다.” 그가 “아!”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계속 갑시다, 버드.”
저희는 다른 작은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곰과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200야드쯤 되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가 딱 맞습니다. 저놈이 이쪽을 볼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큰 건초더미처럼 보였습니다. 곰이 돌아서서 저를 보았습니다. 제게는 아주 작은 소총이 있었습니다. 곰이 돌아서서 저를 보는 바로 그 순간, 저는 심장 한가운데를 쏘았습니다. 곰은 언덕을 넘어 이쪽으로 힘껏 굴러왔습니다. 버드는 입 주변이 새하얗게 질린 채 서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놈을 제 무릎에 앉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려갔을 때 그 뿔이 정확히 42인치라면 저는 소리를 마구 지를 겁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그러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테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제 안장 가방에 줄자가 있습니다.” 저희는 내려갔습니다. 환상에서는 작은 손이 그 뿔을 잡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에디 형제님 옆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이제 저 소년이 뿔을 잡는 것을 보십시오.” 버드가 돌아가 줄자를 가져와 머리의 밑부분에 댔습니다. 그 작은 손, 그의 아들 블레인이 그것을 잡았습니다. 줄자가 위로 올라갔습니다. 버드가 말했습니다. “세상에, 브래넘 형제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42인치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버드, 그분은 절대로 틀리지 않으십니다.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아,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참되고 진짜인 것을 볼 때… 그 여왕이 보고 싶었던 것도 참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주민 혼혈인 한 형제와 자주 사냥을 다녔습니다. 이름은 버트 콜입니다. 영국계 사람인데 여기 위쪽에 삽니다. 영국 사람이지요. 뉴햄프셔에 삽니다. 훌륭한 사냥꾼입니다. 저는 그와 사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가 길을 잃을까 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평생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도마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나… 그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면 저는 아무튼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린 새끼 사슴들을 쏘곤 했습니다. 아시겠지요, 조그만 새끼 사슴 말입니다. 자, 그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저도 새끼 사슴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법에서 새끼 사슴을 잡아도 된다고 하면 잡으십시오. 괜찮습니다. 아브라함도 송아지를 잡아 하나님께 대접했습니다. 크기나 암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저 못된 마음으로 죽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저 못되게 굴려고 죽여서는 안 됩니다. 원주민에게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훌륭한 자연 보호자였던 까닭은 필요한 만큼만 취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잡으면 놓아주었습니다. 백인은 나가서 들소를 과녁 삼아 쏘아 없애 버린 살육자였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하지만 버트는 재미 삼아, 제 마음을 괴롭게 하려고 새끼 사슴들을 쏘곤 했습니다. 그는 “당신네 설교자들은 새가슴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지요… 이곳에서도 ‘새가슴’이라는 말을 씁니까? 새가슴 말입니다. 그는 “그게 당신네 설교자들의 문제야”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그곳에 갔는데, 그는 작은 호루라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조그만 새끼 사슴이 어미를 찾으며 우는 듯한 ‘브르르’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버트, 설마 그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가 말했습니다. “아, 이 새가슴 설교자. 빌리, 설교자만 아니었어도 좋은 사냥꾼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거의 해마다 가을이면 그가 잡을 사냥감도 제가 잡아 주어야 했으므로, 그저 떠들게 두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버트, 설마 그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가 말했습니다. “새끼 사슴을 잡는 게 뭐가 나쁜데?” 제가 말했습니다. “그 자체는 나쁠 게 없지. 하지만 그저 못되게 굴려고 쏘아 죽여 놓고 거기 버려둔 채 또 다른 놈을 쏘러 가는 건 나쁜 일이야, 버트. 그래서는 안 돼. 언젠가 큰 수사슴으로 자랄 거야. 암사슴이라면 다른 사슴들을 많이 낳겠지. 자네에게도 언젠가 사냥하고 싶어 하는 자녀들이 생길 수 있잖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며 더없이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날은 사냥철도 막바지에 이른 때였습니다. 그곳에는 흰꼬리사슴이 있습니다. 후디니를 탈출의 명수라고 하지만, 그 사슴에 비하면 초보입니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재빠르고 민첩해야 하며, 백발백중의 사수여야 맞힐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몇 번 총에 맞을 뻔하고 나면… 사냥철이 좀 늦은 때였고, 저희는 아침 내내 사냥을 했습니다. 눈이 6인치나 8인치쯤 쌓였는데 발자국 하나 없었습니다. 저희는 늘 보온병에 뜨거운 초콜릿을 가득 담아 가지고 다녔습니다. 밤에 밖에서 폭풍을 만나더라도 버틸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외투 안에 샌드위치도 넣어 두었습니다. 열한 시쯤 되어 저는 ‘발자국 하나 아무것도 못 봤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달 밝은 밤이면 사슴들은 밤에 먹이를 먹고, 낮에는 울창한 숲 깊숙이 들어가 덤불더미 밑에 눕습니다. 저희는 수목 한계선 가까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마… 하고 생각했습니다. 버트가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그와 저는 갈라져 서로 다른 길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서 오면 그날 밤이나 다음 날 아침쯤 도착할 것이었습니다. 사슴을 잡으면 어디로 가서 가져와야 하는지 알 테니, 말을 끌고 가서 가져오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 건물의 서너 배쯤 되는 작은 빈터에 이르더니 눈더미 위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영어로 ‘hunkered’라고 하지요. 이곳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까? 저는 남부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 달리 말하면… 웅크려 앉는다고 하나요? 이렇게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앉더니 뒤로 손을 돌려 외투 안을 뒤졌습니다. 저는 그가 샌드위치를 꺼내는 줄 알고 저도 제 것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헤어지려나 보다. 나는 이쪽으로, 그는 저쪽으로 가서 오늘 오후에 사냥하며 돌아오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뒤로 손을 뻗어 그 작은 호루라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이보게, 버트”라고 했습니다. 그가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얼굴에는 비웃는 듯한 웃음이 어려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작은 호루라기를 꺼내 이렇게 불었습니다. 그러자 길 건너, 그 작은 빈터 너머에서 아주 큰 암사슴 한 마리가 일어섰습니다. 저는 ‘아, 아. 저 사슴이 잘못 움직였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원주민 형제님들은 아실 겁니다. 사냥당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보고 웃더니 또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미 사슴이 곧장 빈터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곳의 사슴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암사슴은 어미 사슴이지요. 저는 그 커다란… 가까워져서 커다란 눈과 우아하게 쫑긋 선 큰 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슴은 바로 그곳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었습니까? 보이려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미였습니다. 어미로 태어났습니다. 어미의 본능이 그 안에 있었고, 새끼가 울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할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기 새끼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저희는 평소 총열에 탄을 넣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탄 한 발을 밀어 올렸습니다. 180그레인짜리 버섯형 팽창 탄두를 쓰는 .30-06탄이었습니다. 그것을 장전했습니다. 그는 백발백중의 사수였습니다. 그때… 그의 윈체스터 모델 70 소총… 그가 레버를 이렇게 내리자 찰칵하는 총소리에 사슴이 놀라 쳐다보더니 사냥꾼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하지만 어미였습니다. 새끼가 곤경에 처해 있었고, 어미로 태어난 그 사슴은 새끼를 찾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코를 치켜들고 사냥꾼을 바라보며 이렇게 새끼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새끼가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진짜였습니다. 어미였습니다.
그가 총을 겨누는 것이 보였습니다. 백발백중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심장을 쏘아서 반대편으로 날려 버리겠구나. 어떻게 저렇게 속일 수가 있지? 어떻게 저렇게 못된 짓을 할 수 있지? 호루라기를 불어 어미 사슴을 여기로 불러낸 뒤 쏘아 죽이다니. 잡은 것을 가져가려는지조차 의심스러워.’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사슴의 충실한 심장이 몸 밖으로 날아가겠구나.’ 보니 그가 똑바로 겨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망원 조준경의 십자선이 저 충실한 심장 위에 놓이는 순간, 심장을 완전히 꿰뚫어 날려 버리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등을 돌렸습니다.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님,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아버지에 관해 말해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는 덤불 뒤에서 혼자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곧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리라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지만, 총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총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더는 총을 잡고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돌아보는데 큰 눈물이 두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원주민의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눈 언덕에 총을 내던지며 말했습니다. “빌리, 이젠 더 못 하겠어. 자네가 말하는 그 예수님께 나를 인도해 줘.”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참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꾸미거나 만들어 낸 것이 아닌 것을 보았습니다. 새끼를 찾아 나선 참된 모성이 드러나는 모습을, 진짜인 것을 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 모두를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사슴이 참된 어미였던 것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분이 여기 얼마나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위험이나 그 무엇에도… 위대한 것을 보고, 참된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 그분의 축복이…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각자 마음속으로 “하나님, 저를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저 조용히 혼자 기도하십시오.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종들에게 죄의 용서를 베풀어 주십시오. 오 아버지,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저희를 축복해 주십시오. 저희 죄를 저희 마음에 드러내 주시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희 마음에 은혜와 긍휼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은 참된 것을 보았고, 그러자 준비가 되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드시 참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느 교회의 집사입니다. 바로 그 눈 언덕에서 얼어붙은 제 바짓가랑이를 두 팔로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빌리, 어딘가에 하나님이 꼭 계셔야 해. 저 사슴이 어미인 것만큼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가?”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네, 버트. 그분의 이름은 예수님이시네. 그분을 받아들이겠나?”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온 마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겠네.” 저는 눈 위에 무릎을 꿇고 그의 총에서 탄을 뺀 뒤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기도했고 그는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약 20년 전 일입니다. 지금 그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신실한 지체입니다. 훌륭한 형제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머리를 숙인 채 “저도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실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어쩌면 여러분은 한 번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늘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었지만, 정말 저를 그렇게 만들어 줄 만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런 참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참으로 믿으며 그분을 제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의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교회의 교인일 수 있습니다. 저는 교인 자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도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분이 그저… 어머니가 자기 아기를 사랑하듯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말해 볼까요? 그분께서는 “어머니가 자기의 젖 먹는 아기를 잊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을 수 없느니라. 너희 이름들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느니라.”
남쪽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보려고 왔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뒤 여기 예수님께서 같은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녀가 솔로몬의 말을 들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같은 은사, 더 큰 은사를 가지고 그분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사람들이 부활의 표적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참되게 해 주십시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조용히 혼자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제 제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그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머리를 드십시오. 이쪽을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여러분께 진리를 전하러 왔습니다. 솔로몬에게 은사를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 밤에도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곳에 서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께서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 직전에는 소돔 때와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으십니까? 이제 여러분이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인 그 하나님께서 오늘 밤 말씀하시게 합시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얼마나…? 지금은 기도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기도 카드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는 분들입니다. 손을 들고 “믿겠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잠깐 이쪽을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낯선 사람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래전에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오늘 밤 여기 서 계신다면… 여러분이 그분께 가서 “주님, 저를 치유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으시지요?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하지만 그분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에게 입증해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옷차림도 몸의 흉터도 아니라 그분께서 행하실 사역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실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며 마음의 생각들을 분별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진리인 줄 아는 분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성경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그분께서 같은 대제사장이시라면, 여러분의 믿음으로 그분께 손을 대고 지켜보면 어떻겠습니까… 이제 제가 만일…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위선자와 관계를 맺으시리라고 믿습니까? 예수님께서요? 아닙니다. 그분께서 거짓말에 함께하시리라고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러시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십니다. 그렇지요? 그분께서는 겸손히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십니다. 꼭 그래야 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저 뒤에 계신 앵글로색슨계 여러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손을 들고 “믿습니다. 참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전에도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원주민 여러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입니다. 저 뒤에 계신 백인 여러분,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 뒤에 계신 분들, 기도하며 “주 예수님, 저 설교자는 저를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아십니다”라고 하십시오. 이제 손을 내리고 기도하셔도 됩니다. “주 예수님, 주님이 대제사장이시라면 제가 주님께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돌아서서—그분의 옷에 손을 댔던 여인 때처럼, 그분께서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아니 베드로가 “주님” 하며 그분을 책망했습니다.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하지만 내가 약해진 것을 느끼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효능, 힘이 그분에게서 나갔습니다. 한 작은 여인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하여 그분께 손을 댔을 때 그분께서 약해지셨다면,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저는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그분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하리라.” 킹제임스 성경에는 ‘더 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번역에서는… 그보다 더 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셨으며 자연을 멈추게 하셨고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하리라.” 온 세계에서 말입니다. 아시겠죠?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이제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니 기도하십시오. 참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셨더라도, 오늘 밤 그분께서 여기 나타나셔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 제가 아닙니다. 제게 아무리 큰 은사가 있어도 여러분에게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그분께서는 약해지셨습니다. 그것은 한 여인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나사로의 집을 떠나 멀리 가셨다가 돌아오셔서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을 일으키셨을 때에는 약해졌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시다시피 그분께서는 무덤 앞에서 “아버지, 이미 제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다만 이 사람들 때문에 제가 이 말을 하였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시러 보냈을 때 돌아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이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여기 올라와서 해 보십시오. 거짓이라면 직접 하는 것을 봅시다. 아주 조용하군요. 그렇다면 거짓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경입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모두…
저는 신경이 지쳐 있습니다. 열한 번 연속으로 집회를 해서 완전히 지쳤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밤마다, 매일 밤, 힘과 효능이 나갑니다. 낮에는 그분께서 저를 길모퉁이로 보내시며 “여기 서 있어라. 휠체어를 탄 사람이 지나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이 큰 환상입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작은 환상들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저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지나갈 것인데, 그는 어느 때에 어떤 일을 했다.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그저 그에게 말을 건네고 휠체어에서 일으킨 다음 가거라.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여라.” 여러분도 여기 신문 같은 데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실 것입니다. 아무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분께서 저를 그곳으로 보내시며 “이것을 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하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시여, 제가 주님께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을 사용하여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 문제가 무엇인지, 또… 이것이나, 제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는 어떤 일을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온 마음으로 믿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미 사슴처럼, 그… 버트 콜이 보았던 것처럼 참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쪽을 보십시오. 오늘 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보셨습니까? 여기서 보여 주셨습니까? 좋습니다. 신문에서 보신 그 불기둥을 아시지요? 저기 있습니다. 바로 저곳에 서 있습니다. 저 뒤쪽에 앉아 계신 작은 여인 위에 있습니다. 한 자매님입니다. 안경을 쓰셨습니다. 좀 마른 분입니다.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믿으십니까? 몇 분 전에 기도 카드가 없다고 손을 드셨지요. 기도 카드가 없으시지요? 일어서 보십시오. 앓고 계신 병이 그것입니까?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제가 낯선 사람이라면 손을 이렇게 흔들어 보십시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지금 아주 달콤한 느낌이 드시지요? 참으로… 저는 지금 그 여인 주위를 감돌고 있는 불기둥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온전하게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믿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