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기도하기 전에 잠시 그대로 서 계십시오. 오늘 저녁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는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마음속으로 생각하십시오. 좋습니다. 여기에도 기도 요청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는 주님의 은혜의 왕좌로 나아갑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이기에, 주님, 어떤 다른 길로도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심판의 왕좌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 대신 그곳에 서셨습니다. 이제 저희는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이 복된 약속을 가지고 그분의 은혜의 왕좌 앞에 섭니다. 오늘 저녁 이 약속을 가진 저희는 참으로 큰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주님께서는 들린 손들을 보셨습니다. 그 손들 아래에 있는 마음의 소원도 분명히 아십니다. 주님, 영광 가운데 있는 주님의 부요하심을 따라 응답해 주옵소서. 이 집회를 위해, 죄인과 믿지 않는 사람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곳과 모든 곳에 있는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국 곳곳에서 주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지닌 귀한 권리를 지키며 사역하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저녁 저희 위에 그분의 영을 크게 부어 주셔서, 저희가 이곳을 떠날 때 그날 밤 엠마오에서 돌아오던 사람들이 했던 말처럼,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 다시 이곳에 오니 좋습니다. 조금 전 몇 분 동안은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들, 목회자들과 악수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앤드루 라스무센 형제님도 계셨고, 여기 톰스 형제님도 계셨고, 여러 집회에서 만났던 형제들도 계셨습니다. 오늘 저녁 이 집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려고 이곳에 함께해 주셔서 참 기쁩니다. 어제 저녁 우리끼리 모인 작은 집회에서도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곳 대집회에 참석 중인 사역자 형제님들께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대집회를 여시는 때에 제가 끼어들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이 길을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디 형제님이 “돌아가는 길에 하루 이틀만 들릅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이 섬 전역의 모든 목회자들이 크게 협력하여 어딘가에서 큰 집회를 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저는 에디 형제님의 인디언 친구들을 만나려고 그분과 함께 건너왔습니다. 아마 포트앨버니라고 하는 곳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인디언 친구들, 그리고 백인 친구들과도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머지않아 다시 와서 모두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이 연달아 갖는 열한 번째 집회라서 저는 정말 피곤합니다. 그리고 내일은 예배를 마친 뒤 떠나야 합니다. 내려가려면... 가야 합니다... 애리조나주 투산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또... 어쩌면 피닉스로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쉬려고 알래스카 하이웨이 쪽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친구와 함께 올라갑니다. 여기 에디 형제님과 그분들 말입니다. 8월 1일 무렵에는 그쪽에 다시 가 있어야 해서... 정말 계속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왔다가 해외로, 탕가니카와 우간다, 그리고 남아프리카로 내려갑니다. 아, 그렇게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내년 봄까지는 다시 돌아오려고 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제가 계속 복음 전도에 힘쓰기를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말입니다.
시작할 수 있도록 제게 제공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크고 훌륭한 새 천막과 트럭, 트레일러, 그 밖의 모든 것이 이미 값을 다 치른 상태입니다. 그것을 위해 헌금을 걷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말입니다. 저희는 언제나 주님의 뜻을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늘 약속했던 일을 하려 합니다. 부흥 집회가 열리지 않는 지역에 천막을 세우고, 모두가 협력하는 가운데 아침에는 사역자 형제들만을 위한 모임을 열어 그분들과 이야기하고, 오후에는 병자의 치유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는 모임을 열고, 저녁에는 전도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이 집회를 여는 매주 일요일 오후 같은 때에는 쉬려고 합니다. 그 지역 교회들의 정규 집회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저희는 늘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머무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처음 참석했을 때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희가 그것을 가르치고, 자세히 살펴보고, 공부하고 하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주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제게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 저녁 톰 형제님이 여기 계십니다. 이미 소개받으셨을 것이고, 서스캐처원 지역에서는 모두 이분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서스캐처원에 처음 갔을 때 집회를 후원해 주셨던 분들 중 한 분입니다. 아마 십사오 년쯤 전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곳의 형제들과... (제가 엉뚱한 마이크에 대고 말하고 있군요. 그걸 뭐라고 하지요? 교회는 제대로 찾아왔는데 앉을 자리가 틀렸다고 하던가요? 맞지요? 좋습니다. 보니 이 마이크를 책상 반대쪽에 놓으셨군요. 아시다시피 제가 대개 목소리가 좀 커져서... 이 건물 안에 있는 분들의 귀가 먹먹해지지 않도록 저쪽에 놓으셨나 봅니다. 좋습니다. 이쪽 것은 두고, 이쪽 것을 계속 사용하겠습니다.)
자,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참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내일 오후에는 어느 곳의 예배에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야영 집회가 어디서 열리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오기 직전에야 야영 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일 오후 두 시나 세 시쯤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이미 광고했을 것입니다. 야영 집회에 가지 못하는 여러분은... 저희는 병들고 고통스러워서 야영 집회에 갈 수 없는 분들을 모시는 것입니다. 병자들을 위한 기도에 집중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오후 예배는 이곳에서 드립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창세기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읽고 싶습니다. 22절, 그리고... 아니, 22장 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렇게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서 그리고 요한복음 12장 3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
오늘 저녁 예배가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중 저녁에는 여러분을 오래 붙들어 두어도 괜찮습니다. 주중에는 하루 일을 못 나가실 뿐이니까요.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 학교에는 빠지지 마십시오. 일요일 학교에 가십시오. 방문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여기 계신 목사님들이 이 부근의 자기 교회로 여러분을 기쁘게 맞아 주실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곳을 찾아가 보십시오. 가서 말씀을 들으시면 유익할 것입니다. 또 서로 알아 가십시오. 우리는 영원토록 함께 살 사람들이니, 지금부터 서로 알아 갑시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저는 늘 “아이들을 일요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두 아시지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일요일 학교에 보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입니다. 데리고 가십시오. 그렇습니다. 늘 데리고 가십시오. 보내기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본을 보이기 위해 가십시오. 아이들을 일요일 학교에 데리고 가십시오. 함께 가십시오. 보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데리고 가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분이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할 수 있는 한 많은 병들고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아니, 사람이 너무 많아지지 않는다면 모인 분들 모두를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작은 모임이라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는 병자가 있어서 내일 오후 기도를 받으러 데려오고 싶으시다면, 기쁜 마음으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또 여러분의 목사님이신 형제들도 가능하시다면 내일 일요일 학교가 끝난 뒤 저희를 찾아와 주시도록 초대해 주십시오.
이제 창세기 22장 8절에서 읽은 이 말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에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장 32절도 있습니다. 여기 제가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메모와 성경 구절들을 적어 두었습니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다”라는 주제를 택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 있다는 것을 아니 참으로 기쁩니다. 아시겠죠? 어떤 일이든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바른 길과 잘못된 길입니다. 곧 여러분의 길과 하나님의 길입니다. 자기 길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길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에 있으면서 자기 길을 고집할 수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길이든지 하나님의 길이든지, 여러분의 생각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든지 말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실패자이며 언제나 실패자였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 명철에 의지하려 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까? 그분은 언제나 여러분을 바른 결과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하셨는데 사람들이 그 길로 걷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기 도시에는 교통 신호기, 정지 신호등이 있습니다. 시에서는 위험한 교차로에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빨간불이 켜져 “지금은 가지 마시오”라고 하는데도 여러분이 그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마련된 길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더라도 시를 탓하지 마십시오. 시에서는 그곳에 경고를 해 두었습니다. 여러분과 부딪친 사람을 탓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자기 길을 택하느냐, 마련된 길을 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 저희가 집으로 출발할 때,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보자, 우리 집이 어느 방향이지? 우리 집은 동쪽으로, 또 남쪽으로 얼마쯤 떨어져 있지. 집에 빨리 가야 하니 지름길로 저쪽을 향해 곧장 가야겠다. 좋아. 저쪽으로 똑바로 가겠어.” 그러면 저는 여기 퓨젓사운드 어딘가에서 바다에 가라앉아 있거나, 어느 진흙밭에 빠져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로 지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다니도록 마련된... 도로가 있습니다. 도로 지도를 가지고 그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도착합니다. 아시겠죠? 표지판을 따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도착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 길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이 마련된 도로의 방향과 다르다면, 제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면 그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우리의 길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따르면 완전히 잘못된 곳으로 가서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표시해 주신 길을 따라가면, 그곳에 도착하는 것은 더없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길 가운데 몇 가지를 돌아보되,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작은 병아리가 이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엇을 합니까? 껍데기 안에서 자기가 벗어날 때까지 그 껍데기를 계속 두드립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입니다. 병아리에게는 부리가 있습니다. 껍데기를 쪼을 수 있게 되기도 전에 부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따라 움직이도록 하나님께서 부리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아,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버지이십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모든 것을 꼭 맞게 만드십니다. 먼저 알 속에서 태어나는 그 새, 그 날짐승에게 부리가 자라게 하셔야 했습니다. 예비된 길을 따라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길을 예비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매번 정확히 바른 결과에 이릅니다. 그렇습니다. 병아리는 쪼아서 밖으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사냥하러 이곳에 오면 저는 종종 신기하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높은 산에 올라가, 무리 지어 모일 무렵의 오리와 기러기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들은 남쪽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질척질척한 늪지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킵니다. 그 어린 오리는 그 연못이나 호수에서 자랐으므로 그 호수밖에는 모릅니다. 지난봄 그곳에서 태어나 여름 내내 그곳에서 살며 먹이를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 긴... 8월 말이나 9월이 되어 산에 눈이 내리고, 찬 바람이 그 어린 오리가 있는 대초원을 가로질러 불어오면, 무슨 일이 곧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모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해 봄 그 연못에서 태어난 작은 수오리 한 마리가 연못 한가운데로 나옵니다. 바로 연못 한가운데로 나가 작은 부리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꽥, 꽥. 꽥, 꽥” 하고 울면, 연못에 있는 모든 오리가 그에게로 모여듭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오리에게 본능을, 본능을 주셔서 그곳이 온통 얼어붙으면 자기가 거기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오리는 이곳 말고는 어디에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갈 다른 곳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 오리를 위해 저 아래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의 논에 다른 곳이 마련되어 있다면, 여러분의 귀리를 먹을 수 있는 대로 다 먹고 나서는 이제 저 아래 논으로 내려가 텍사스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며 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기 이 호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곳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 있어서 위험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 공기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함께 무리 지어 떠나야 하는데, 그냥 두면 하나는 이쪽으로, 하나는 저쪽으로 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도자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성령이 있는데도, 본능을 가진 오리만큼의 분별력조차 없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오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마련해 주신 것을 믿지만,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환난을 피하도록 성령을 주셨는데, 우리는 사람이 이룬 어떤 것을 의지해서 환난을 피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환난의 기운이 느껴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입니다. 인도자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 인도자는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인도하시려고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작은 오리는 그 연못을 떠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연못에 있는 모든 오리는 그것이 인도자임을 압니다. 어느 날 아침, 그 작은 오리 안에서 본능이 강하게 솟아오르면,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울고는 연못에 작별을 고하며 떠납니다. 그러면 모든 오리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것이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 위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어떤 방식으로 그 작은 얼굴을 루이지애나 쪽으로 향하고 날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하신 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믿었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출애굽기 13:21
기러기들이 그곳에서 날아올라 무리를 짓는 모습을 보십시오. 저는 가을에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참 좋습니다. 기러기들이 인디애나 상공을 지나며 힘껏 울어 댑니다. 늙은 인도자 한 마리가 맨 앞에서 부리를 루이지애나 쪽으로 곧게 향하고 날아갑니다. 한 번도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기둥을 따라갔던 이스라엘 자손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그 길을 이전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땅을 향해 곧장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인도자인 불기둥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아, 우리 인간이 그 길을 그렇게 자주 놓치니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인도자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따르려 합니다. 그래서 늘 어딘가에서 진창에 빠지고 사고를 당합니다. 오리와 기러기는 남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 마련된 인도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길로 어딘가에 보내시려 한다면, 앞장서 인도할 인도자를 마련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십니다. 자연을 잘 살펴보기만 하면 됩니다. 자연을 살펴보는 것, 그것이 저의 첫 성경이었습니다. 자연을 살필 줄 안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을 놓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온 세계를 다니며 불교와 이슬람교, 자이나교와 시크교, 그 밖의 여러 종교의 사원들을 방문하는 기회를 누렸습니다. 그 종교들은 모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떤 예감 같은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아, 그것을 무엇이라 다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환생을 비롯해서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장사됨과 부활에 근거합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부활은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란 내려갔던 바로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종이가 떨어져 바닥으로 내려간다고 합시다... 이제 제가 이 다른 종이를 가져다가 떨어진 종이 자리에 놓는다면, 그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대체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려갔던 바로 그 종이를 다시 들어 올리는 것,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 꽃들을 봅시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이곳에 놓였습니다. 이렇게 꽃을 꺾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꽃들을 돌보십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살펴보십시오... 여기 캐나다에 사시는 여러분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곳곳을 훌륭하고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 놓으신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얼마 지나면 어린 꽃도 있고, 늙은 꽃도 있고, 중년의 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서리가 온 땅에 내립니다. 죽음입니다. 꽃의 나이와 관계없이 덮칩니다. 죽음은 나이나 사람이나 능력을 가리지 않습니다. 죽음은 모두를 덮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작은 꽃은 생명을 내어 줍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다음 날 아침부터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작은 씨앗 하나가 떨어져 땅에 내려앉습니다. 그런 다음 장례 행렬이 옵니다. 믿기 어려우실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꽃들을 위한 장례 행렬도 마련하십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보십시오. 서리가 내린 뒤에 가을비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을 보내시고, 커다란 물방울을 눈물처럼 흘려 그 작은 씨앗을 묻으십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그것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려 합니다. 오늘날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교회가 늘 바른 길을 벗어났던 이유도, 마치 교육을 받아야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너무 복잡하게 만들려 했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태어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울며 애도하는 이들을 보내시는데, 그것은 곧 물입니다. 물이 큰 눈물방울처럼 떨어져 그 작은 씨앗을 묻습니다. 물이 흙을 다져 주면 씨앗은 땅 밑으로 내려갑니다. 그 뒤 겨울 눈보라가 온 땅을 휩쓸고 갑니다. 작은 꽃잎은 사라지고, 잎들도 떨어지고, 줄기도 사라지고, 구근도 말라 버립니다. 작은 씨앗은 얼어 터지고, 그 속살도 흘러나옵니다. 가엾은 작은 꽃입니다. 그것으로 끝인 것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끝이 아닙니다. 따뜻한 해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고, 지구가 해를 향한 위치로 움직이면, 그 흙 어딘가에는 과학이 결코 찾아내지 못한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그 꽃은 다시 살아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이 다시 살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룬 꽃이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다면,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그분이 예비하신 길을 걷는 남자나 여자가 다시 살 길은 얼마나 더 확실히 마련해 두셨겠습니까? 바라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너무나 단순한 일입니다.
나무를 보십시오. 잎이 어떻게 돋아나 가지에 달려 있는지 보십시오. 얼마 전, 몇 달 사이에 저는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저의 경건하신 노모를 말입니다. 어머니는 침상에 누워 세상을 떠나고 계셨습니다. 저는 저 위 캐나다, 여기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갔다가 돌아온 뒤였습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찾아뵈었습니다. 병원으로 모신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빌리, 아들아, 이제 끝이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 어머니, 끝이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니다. 끝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기도했지만 어머니는 갈수록 나빠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강단에서 얼마나 여러 번 말했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여러 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여기 누워 돌아가신다 해도, 하나님께서 먼저 제게 말씀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어머니께 무슨 말을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제가 어머니 곁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여동생은 얼마 전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희 집안의 외동딸입니다. 아, 동생은 몹시 걱정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여동생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올려다보시며 “우리 맏이와 막내로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맏이였고 들로레스가 막내였습니다. 아들 아홉에 딸 하나였는데, 딸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빌리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내가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 준 사람은 너였지. 옷도 사 주고 먹을 것도 마련해 주었지”라고 하셨습니다. 또 “들로레스야, 너는 나한테 참 다정했어. 내가 몸이 좋지 않을 때면 와서 빨래도 해 주고 집도 치워 주고 도와주었지”라고 하셨습니다. 들로레스와 저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한 자식들도 있었지요. 아들들 중에는 술을 마셔서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한 이들도 있었고요.” 어머니는 “빌리야,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사람의 삶이 되는 거란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무슨 일을 했든, 어머니는 여전히 그들을 잊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리야, 또 한 가지가 있구나. 지금 내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나를 인도해 준 사람은 바로 너였어.”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교회에 갔더니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 안에 계신다고 했어요. 사제가 그렇게 말했지요. 그런데 그 뒤에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고, 저는 말씀을 떠나지 않았어요. 어머니께도 말씀을 가르쳐 드리려고 했고요.” 어머니는 “이제야 그 결실을 보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들로레스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동생이 제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오빠, 엄마가 떠나시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제가 말했습니다. “들로레스, 왜 그런 말을 하니?” 동생은 말했습니다. “엄마가 떠나시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우리에게는 엄마 한 분뿐이고, 앞으로도 엄마는 한 분뿐이잖아. 오빠는 쉰셋이고 나는 스물일곱이야. 오빠,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어? 평생 엄마와 함께했는데.” 제가 말했습니다. “들로레스, 전화기 옆에 앉아 있는 자리에서 왼쪽 창밖을 내다보렴. 무엇이 보이니? 거기에 나무가 있지? 커다란 참나무 말이야.” 동생이 “응”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두 달 전에는 잎이 모두 싱싱하고 푸르렀지.” “응.” 제가 말했습니다. “들로레스, 지금은 무슨 색이니?” 동생이 말했습니다. “갈색도 있고,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도 있어.”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지?” 동생이 말했습니다. “생명이 잎에서 떠나고 있으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맞아.” 또 물었습니다. “언제가 가장 아름답니?” 동생이 “바로 지금”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죽어 갈 때란다. 아멘.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의 눈앞에서 귀중하도다.’ 그 나이 든 성도들이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에 이르는 모습을 보시는 것이 말이다.”
어머니가 더는 말씀을 하지 못하시게 되었을 때, 제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전도자인 아들로서 여쭙고 싶어요. 어머니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세요?” 그러면 어머니는 “그분이 내 전부시지. 내 전부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귀한 분이시란다”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말씀을 하지 못하시게 되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제 말씀을 하실 수 없으시지요. 이제 몇 분만 지나면 떠나시겠지요. 제가 여기 서서 어머니의 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지금 제게 말씀하실 수 없다면, 이제 곧 돌아가실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어머니의 모든 것이 되신다면, 말씀 대신 눈을 깜빡여 주세요.” 그러면 어머니는 눈을 떴다 감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러 떠나셨습니다. 아, 참으로! 주님의 눈앞에서 귀중한 일입니다. 그 아름다운 간증이 말입니다. 사탄이 그곳에 서서 “빌과 들로레스와 그들이 당신께 등을 돌리게 하겠습니다. 저 여자를 내 손에 넘겨주셔서 좀 고통을 주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아, 그 나이 든 성도가 마지막 순간까지 굳게 버티다가, 나뭇잎이 떠나가듯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여기 앉아 계신 귀한 친구 한 분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전에는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분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뱅크스 우드이고, 제 이웃입니다. 그분이 오셨는데, 아니... 처음 오셨을 무렵, 그분과 부인에게는 소아마비를 앓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텍사스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루이빌에서 한 소녀가 치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몸이 석회처럼, 아니 돌처럼 굳어 가던 소녀였는데, 치유되어 계단을 오르내리며 달리자 의사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그분들은 소아마비를 앓는 아들을 텍사스로 데려왔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주님의 천사, 불기둥의 사진이 찍혔습니다. 그 뒤에 저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제가 오하이오에 있을 때 그분들이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왔는데,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뒤에 노란 셔츠를 입은 어린 소년이 치유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바로 그 순간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 굽은 다리를 완전히 곧게 펴 주셨습니다. 오늘 저녁 데이비드가 이 건물 안에 있습니까? 아니, 집에 갔지요? 이분이 아버지입니다. 뱅크스 형제님, 손을 들어 주십시오. 어머니도 여기 어딘가에 앉아 계십니다. 우드 자매님, 어디 계십니까? 저기 계시는군요. 증인으로 계십니다.
그분들은 저를 너무나 사랑해서 아예 제 옆집으로 이사 오셨습니다. 참으로 사도행전 2장 4절 그대로의 이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두 분 다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가족도 거의 모두 여호와의 증인에서 성경을 읽어 주던 사람들이었는데, 환상들과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 모두 성령 침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친정 식구들은 모두 감리교인이었습니다. 여자들도 남자들도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정 식구들도, 그 무리 전체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들어와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뱅크스 형제님과 저는 다람쥐 사냥을 좋아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혹시... 다람쥐 사냥을 해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오, 이런! 대체 켄터키의 어느 지역에서 오셨습니까? 어디에도 그만한 사냥은 없습니다. 저희는 22구경 소총으로 다람쥐를 사냥합니다. 50야드 거리에서 눈을 맞히는 것입니다. 다람쥐를 많이 잡지는 못하지만, 제가 휴가를 가면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곳에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년 전 가을은 몹시 건조했고, 저희는 야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주쯤 목욕도 못 했고,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데다 다람쥐 피까지 묻어 있었습니다. 꼴이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회에서 벗어나 쉬고 있었습니다. 좀... 떠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살피면서 언제나 그분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보십시오. 날이 너무 메말라서 그 평평한 숲속을 걸을 때, 나뭇잎 하나만 바스락해도... 후디니가 탈출의 명수라고 하지만, 그런 다람쥐 옆에 세워 놓으면 아마추어입니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런 다람쥐를 소총으로 쏘되 눈을 맞힌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뱅크스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분에게 숲이 500에이커 있는데, 전부 골짜기 안에 있어요.” 골짜기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물이 흘러가는 낮은 계곡 같은 곳입니다. 형제님은 “그곳으로 내려가면 걸어 다닐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분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정도가 아주 심한 분이지요.”
저희는 들판이며 여러 곳을 지나서 그분의 집까지 들어갔습니다. 그 불신자, 믿지 않는 사람이 사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분은 다른 노인 한 분과 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담배를 씹으며, 이렇게 침을 뱉고 있었습니다. 우드 형제님이 차에서 내려 그분께 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땅에서 잠깐 다람쥐 사냥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분이 물었습니다. “이름이 뭐요?” 형제님은 “우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우드 누구요?” 형제님은 “뱅크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짐 우드의 아들인가?” 형제님은 “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형제님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짐 우드의 아들이든 식구든, 내 땅 어디라도 오고 싶은 곳에 오게. 환영이야.” 그래서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제 목사님도 모시고 왔는데, 그분도 사냥해도 될까요?” 그 노인은 침을 뱉더니 말했습니다. “우드, 자네가 가는 곳마다 설교자를 데리고 다녀야 할 만큼 그렇게 나빠졌다는 말은 아니겠지?”
저는 이제 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걸어가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설교자요?” 제가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드 형제님이 저를 소개할 틈도 없이 그분이 말했습니다. “당신네들 문제는 말이오, 엉뚱한 나무를 향해 짖는다는 거요.”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라쿤 사냥개가 엉뚱한 나무를 향해 짖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라쿤은 이미 달아났는데, 아무것도 없는 데다 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당신네들은 엉뚱한 나무를 향해 짖는 일이 너무 많소”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그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일부러 저러려는 것은 아니야.” 그분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니저러니 떠들지만, 아무것도 없소. 나는 여기서 쭉 살아왔는데, 그런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본 적이 없소. 저쪽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이쪽을 봐도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러고는 “글쎄, 그...”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문제는 이것입니다. 집회에 오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나무가 너무 많아 숲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지금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 노인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말벌들이... 말벌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이... 말벌들이 사과를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몸을 숙여 하나를 집어 들며... “이 사과 하나 먹어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마음대로 드시오. 말벌들이 죄다 먹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과를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삼사 년쯤 전에 여기에 한 설교자가 온 적이 있었소. 액턴이라는 작은 마을에 왔었지.” 또 말했습니다. “액턴은 감리교 야영장이 있는 아주 조그만 곳이오. 그 설교자가 인디애나에서 내려왔는데, 사흘 밤 동안 그곳이 사람들로 꽉 찼소.”
그분은 계속 말했습니다. “여기 언덕 위에 사는 어느 할머니가 위암에 걸렸소.” 이름을 뭐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나빴던지 더는 침상용 변기도 대 드릴 수 없었소. 깔개 시트를 사용해야 했지. 아내와 내가 하루 두 번씩 올라가서 이부자리를 갈아 드렸소. 의사들은 몇 주 전부터 가망이 없다고, 달리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손을 놓았소. 말도 거의 못 했고, 따뜻한 물조차 마시면 토했소.”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날 밤 그 여자의 자매가 그 집회에 갔소. 그런데 생전 이 지방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그 설교자가 거기 서서 청중 뒤쪽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오. ‘여기 뒤에 앉아 계신 여자분의 이름은 아무개입니다. 오늘 저녁 집을 떠나실 때 놓으셨... 화장대 오른쪽 서랍에서 파란 무늬가 있는 작은 손수건을 꺼내 핸드백에 넣으셨습니다. 만일... 그분에게는 병든 자매가 있습니다. 이 근처에 사는 아무개라는 병든 자매가 있는데, 암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이 손수건을 가져다가 자매분 위에 놓으십시오. 그러면 치유될 것입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가서 그 여자 위에 손수건을 놓았소.” 또 말했습니다. “글쎄, 그들이... 나는 저 언덕 꼭대기에 구세군이 와 있는 줄 알았소. 그날 밤 열두 시쯤 그렇게 요란하게 외치는 소리는 처음 들어 봤소!” 여러 사람이 그 위에서 할머니에게 손수건을 얹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주님의 말씀 그대로 치유된 것입니다. 일어나서 이리저리 뛰며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와 내가 그곳에 올라갔소. 그 소리가 들렸을 때는 밤늦은 자정 무렵이었지. 우리는 그 할머니가... 어차피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래서 이미 돌아가셨고, 자녀들이 울부짖는 소리인 줄 알았소.”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가 보니, 그 할머니가 남편과 함께 식탁에 앉아 튀긴 애플파이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더란 말이오. 이제는 자기 집안일도 하고 이웃집 일까지 해 주고 있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아. 그래서... 그 말씀을 해 주시니 고맙군요.” 뱅크스 형제님이 “그런데 그...” 하고 말을 꺼내려 했습니다. “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분은 “그렇소. 사실이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걸 믿지 않으십니까?” 그분은 “당장 올라가서 알아보시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는 그분이 거꾸로 저에게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당장 올라가서 알아보시오. 이름은 아무개요. 바로 모퉁이를 돌면 살고 있소.”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노인도 “그렇소”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분은 “직접 가서 알아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참으로!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말했습니다. “모르겠소. 잊어버렸소. 저 위 인디애나에서 온 어떤 설교자였소.”
제가 “그렇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과를 먹으며 말했습니다. “사과가 맛있네요.” 그분은 “그럼요. 아주 좋은 나무요. 해마다 여기서 딴 사과로 병조림을 하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 나무가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그분은 말했습니다. “아, 우리가... 내가 한 오십 년쯤 전에 직접 심었소.” 아마 그분이 일흔여섯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네, 그렇군요.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조금 전에 그분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 설교자가 다시 여기 온다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사람 같으니 말이오. 그 여자의 상태를 어떻게 알았는지, 또 나을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볼 작정이오.” 제가 물었습니다. “이 나무를 그렇게 오래전에 심으셨다고 하셨지요?” “그렇소.”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지금은 겨우 8월 중순쯤입니다. 서늘한 밤조차 없었는데, 왜 저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을까요?” 그분은 “그야 생명이 떠났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그 생명은 어떻게 되었지요?” 그분은 “나무뿌리 속으로 내려갔소”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곳으로 내려갔을까요?” 그분은 말했습니다. “내려가지 않으면 죽으니까 그렇지요. 겨울이 그것을 죽일 테니까. 생명의 씨가 여기 나무 위에 머물 수는 없소.” 제가 말했습니다. “아, 그러면 추위가 닥치기도 전에 무엇이 그것을 내려가게 하는 걸까요?” 그분은 “그냥 내려가는 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데 말입니다...”라고 하자,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저 자연 현상이오. 원래 그렇게 내려가는 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물 한 양동이를 가져다가 여기 아까시나무 그루터기 위에 놓아두면, 가을이 왔을 때... 물이 양동이에서 빠져나와 그루터기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내년 봄에 물 한 양동이를 다시 채워 가지고 올라오겠습니까?” 그분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어떤 지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 자체에는 지성이 없습니다. 나무요, 식물입니다. 그것이 내려가 생명을 감추었다가 다시 올라와서 선생님께 사과를 한 무더기 더 가져다주게 하는 어떤 지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있잖소,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잎을 떨구어라. 어서 뿌리 속으로 내려가 그곳에 머물러라. 내년 봄에 다시 올라오너라’ 하고 그 나무에게 말하는 지성이 무엇인지 알아내시면... 그 나무에게 그렇게 하도록 지시한 지성이 무엇인지 알아내시면, 제가 그 여자가 암으로 죽어 가고 있으며 손수건을 얹으면 치유될 것이라고 알게 해 준 지성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 설교자는 아니겠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네, 제가 그 사람입니다. 저는 브래넘 형제입니다.” 그분은 “맞아요. 그 이름이었소”라고 했습니다.
그 노인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기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렸습니다. 작년에 우드 형제님과 제가 그곳에 내려갔을 때, 저는 그 노인을 만나러 차를 몰고 갔습니다. 부인이 뒤쪽 현관에 앉아 바로 그 나무에서 딴 사과를 깎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간단하고 짧은 이야기가 우리 늙은 형제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어요. 일 년 전에 그리스도인으로 믿음 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실 길을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바라보면서, 자기가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길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다가오는 심판들을 피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셨는데 사람이 그 길로 걷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이 그 길을 놓쳐도 하나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갔을 때 시의 잘못이 아닌 것과 똑같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하시기 전에 방주를 지으셨... 짓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성들이 피할 길을 마련하시려고 자신의 말씀을 가진 선지자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자가 가리켜 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믿고 그 길로 걸었던 사람들은 모두 진노와 죽음의 심판을 피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오늘 저녁 성령이라 불리는 사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말씀은... 그분은 말씀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길로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 곧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길로 걸어야 합니다. 그것은 피할 수 있도록 예비된 길입니다.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창세기가 기록되기 전에 쓰였다고 합니다... 욥은 의인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딘가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고, 고통의 날들에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어디 사시는지 알기만 한다면, 내가 가서 그분의 문을 두드리고 말씀을 나눌 수 있을 텐데. 하나님을 뵐 수 있는 길을, 어떤 길이든 찾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욥은 죄 있는 사람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설 중재자를 찾고 싶었습니다. 한 손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른 한 손은 죄 있는 사람에게 얹고, 둘 사이에 길을 이어 화평을 이루게 해 줄 분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욥은 허리를 동였습니다.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었고, 하나님의 영이 그 선지자 위에 임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이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내 살갗이 없어진 뒤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자신이 예비하신 길을 욥에게 보여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욥기 14장에서 욥은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무가 죽어도 다시 살 소망이 있도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숨을 거두고 소멸되나니 그가 어디에 있나이까? 그의 아들들이 와서 애도하고 그를 존귀하게 해도 그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나이다. 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감추시고 주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나를 은밀한 곳에 두신다면 좋겠나이다.” 그는 꽃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워 숨을 거두나이다. 그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보지 못하나이다.” 그는 씨앗을 땅에 심었고, 그것이 죽고 썩어서 또 다른 생명을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흙 속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곳에 누워 있는 이유를 그에게 설명해 주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본래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도록 마련된 본래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으로 교회를 견고하게 둘러싸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말씀에서 벗어났을 때, 아주 조금 벗어난 것이 이 모든 일을 초래했습니다. 모든 마음의 아픔과 모든 슬픔과 모든 실망, 모든 묘지, 모든 늙음과 모든 병, 모든 질환과 모든 고통이 생긴 것은 인류가 말씀 대신 추론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을 일으켰습니다. 여러분은 “아, 사실 별 차이가 없잖아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자를 통해 롯과 그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뒤를 돌아보지도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자기 자녀들과 손주들이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불타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로서 그저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가 저주를 받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 하나하나를 모두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욥은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오게 될, 자신이 예비하신 길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죄 있는 사람과 거룩하신 하나님께 손을 얹고 그 사이에 길을 이어 줄 한 분이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욥은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내 살갗이 없어진 뒤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라.” 할렐루야! 그 구속자께서는 정확한 때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해방될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원래 말씀을 가진 선지자를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속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처음에 모세는 그 길을 놓쳤습니다. 그는 군인이었습니다. “내가 나가서 저들 두어 명을 죽이면 나를 두려워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죠? 사람은 늘 그렇게 하려 합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업적을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길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셨습니다. 아시겠죠? 아무리 대단하고 똑똑한 유대인이 일어나서 “이렇게 하면 됩니다. 칼을 두드려 만들어 이 나라를 무찌릅시다”라고 했더라도, 그것으로는 결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그것을 이루실 길이 있었고, 친히 이루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말씀이 임하는 선지자를 내려보내셨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의 원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신음을 들었고 내 약속을 기억하노라.” 할렐루야! 그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그대로 지키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선지자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가 내려갔을 때 그 위에는 그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그것은 그 사람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증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정확히 말씀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참으로. 그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일하시며 뒤따르는 표적들로 그 말씀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라고 하신 바로 그대로 모세는 행했습니다. 모세를 흉내 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모방자들 위로 언제나 우뚝 솟으셔서 바른 결과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관하여,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마지막 날들에도 사람들이 일어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를 던졌을 때... 거기 서 있던 초감각 지각을 가진 이들도 자기 지팡이를 던져 모세가 행한 것과 같은 일을 했습니다. 다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사람으로서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기 임무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맡은 일을 수행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나면, 그 사람을 위해 길을 마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고 아론도 자기 지팡이를 던지자, 그것들이 뱀으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초감각 지각을 가진 자들도 와서 지팡이를 던졌고, 그것들도 변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들의 지팡이가 다른 지팡이들을 먹어 버렸습니다. 그 지팡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뱀이 더 커졌습니까?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 하나님께는 여전히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다른 길이 전혀 없을 때에도 그분은 길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곧 길이십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모세가 행한 그 표적들을 믿지 않았을 때...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죽음이 닥쳤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분리됩니다.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을 때, 그것은 이브와 아담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켰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입니다. 누구도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거기서 무엇을 빼서는 안 됩니다. 기록된 그대로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거기서 빼거나 거기에 더하면, 그는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때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 선지자가 내려와 자기들 모두 앞에서 행한 표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제 그에게는... 그것이 죽음을 가져옵니다. 죽음은 분리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닥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구별해 놓을 방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피였습니다.
피가 구별을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믿는 사람은 피 아래로 들어왔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피 아래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 머물렀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피 아래에 머뭅니다. 그렇습니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그곳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피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한 것은 피가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는... 생명이 피에 있습니다. 그러니 생명은... 피가 생명 안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영생을 주는 피 안에 머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신조를 가지고 그대로 갑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나온 뒤 홍해에 이르렀습니다. 맡은 일을 수행하는 바로 그 길에서 홍해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모세에게는 다리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예비하셨습니다. 아멘. 그래서 모세는... 다리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택하여 바다를 향해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열렸고, 모세와 이스라엘은 마른 땅 위로 건너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야를 통과하며 여정을 이어 갔습니다. 그 길에는 마음의 아픔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늙어 백스무 살이 되었고, 어느 날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스가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죽음이 그를 덮쳤습니다. 하나님께 신실했던 그 선지자, 그와 같이 산 사람은 이전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그를 덮쳤습니다. 죽음이 그를 덮쳤을 때, 그에게는 죽음을 맞을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마련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를 따라갔던 바로 그 반석이었습니다. 그는 그 반석 위로 올라가 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자기를 묻어 줄 운구자들이 필요했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마련하셨습니다. 천사들이 와서 그를 땅 어딘가로 옮겨 갔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걸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십니다. 상황이 어떻든 그분께서 마련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백 년을 걸으며 그분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언을 얻은 에녹은 어느 날... 아멘. 얼마나 훌륭한 증언입니까! 오백 년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언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오후 산책을 시작했는데, 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길을 주셨습니다. 그는 이곳을 그대로 떠나 야곱의 사다리를, 아니 그 큰길을 따라 곧장 위로, 본향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본향으로 갈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그토록 호되게 꾸짖고 난 뒤... 오늘날도 그런 사람이 또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을 꾸짖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까! 사람들이 어찌나... 아,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일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 그러면서 모두 자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여자들이 하고 다니는 차림을 보십시오. 여자들 중에는 머리가 물찬 듯 크게 부푼 머리 모양을 한 이들이 있습니다. 아시지요. [녹음 공백]... 저는 나병을 본 적이 있지만,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눈 주위가 빨갛고 파랬고, 얼굴에는 갈색 물질이 온통 발려 있었으며, 머리는 그런 물찬 머리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다가가서 “자매님, 실례합니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저는 선교사입니다. 기도해 드릴까요? 저는 병자를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에게 다가가는 동안, 똑같은 모습의 여자 두세 명이 더 나타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설마 저렇게까지 심할 수가.” 끔찍합니다! 아, 이런, 이런!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그 나라의 최고 지위에 있는 여자들을 그렇게 꾸짖었습니다. 그러고는 지치고 기진하여 본향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요르단을 건넜습니다. 그에게는 사다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말들과 불병거를 보내셨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는 늙고 지친 자신의 선지자를 이곳에서 데려가실 예비된 길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여전히 하나님으로 계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모세가 죽은 뒤에 여호수아는 요르단강으로 내려왔습니다. 그에게도 건너갈 다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권능을, 강물을 멈추게 하시는 영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갈 때까지 물을 저 위 산들 가운데 붙잡아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니엘은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선지자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다른 어떤 것에도 무릎 꿇기를 거부하다가, 바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굶주리고 사나운 사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사이를 막아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사자들과 자신을 갈라놓을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어쩌면 울타리를 원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 천사를 보내 그를 위해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이 예비하신 길로 걷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입니까.
어느 날 불타는 용광로에 들어간 히브리 청년들에게는 호스가, 소방 호스가 필요했습니다. 그들 역시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충성스럽게 서 있었습니다. 불을 끌 호스가 필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사람을 보내 주셨습니다.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었습니다. 동방의 지혜자들은 야곱의 별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데려다줄 안내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내자를 원했고, 하나님께서는 별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어린 왕에게로 정확히 인도하셨습니다. 벨자르의 아내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벨자르, 어디 가세요?” “예루살렘까지 가려고 하오.” 아, 참으로! 그곳은 동방, 멀리 인도 쪽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그곳에 갔었습니다. 지혜자들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세 명씩 거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길을 떠나려고 하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길을 안내해 줄 나침반이 필요했습니다. “여보, 여기요. 나침반을 잊으셨네요.” “이번에는 가져가지 않겠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갈 거요.” 아멘. “예비된 길로 갈 거요.” 그 길이 그를 태어나신 어린 왕에게로 곧장 이끌었습니다.
어느 날 세상은 구원자를 원했습니다.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마련하셨습니다. 구원자 예수님께서 희생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중재자이셨습니다. 죄인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형벌 사이에, 죽음과 생명 사이에, 지옥과 천국 사이에 서실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중재자, 구원자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 교회에는 그분의 복음을 전할 권능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그들에게 교육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학교를 지어 주지 않으셨고, 조직을 만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길을 만들려 하지만,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그분의 길을 따르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습니다. “너희가 문학사 학위를 받은 뒤에 권능을 받으리라. 집사가 된 뒤에 권능을 받으리라.” 그렇습니까?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빅토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이천 년 동안 불신과 배교가 이어지고, 신조와 교리와 교의가 교회에 더해진 뒤, 그들에게는 그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는지 알아볼 표적이 필요했습니다. 아, 참으로!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증명하는 것,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약속하신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아브라함이 보았던 바로 그 표적을 그들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어젯밤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선지자가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라고 한 그 저녁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문명은 해를 따라 이동해 왔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문명은 인도... 아니, 중국 말입니다. 그러고는 문명이 해를 따라 이동해 왔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렇게 이동하여 우리가 서해안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 더는 갈 수 없습니다. 더 가면 다시 동방으로 돌아갑니다. 보십시오. 선지자는 “밤이라고도 낮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한 날이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음침하고 안개 낀 날이었습니다. 여기 해안에서도 그런 날을 보지요.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의 빛은 있지만, 맑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의 본래 빛과는 다릅니다. 해, 영어로 s-u-n인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아들, S-o-n의 복음도 동방에서 떠올라 서방에서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그 해, s-u-n이 서쪽에서 지는 바로 그 해입니다. 또 바로 그 아들, S-o-n께서, 할렐루야! 동방 사람들에게 그분의 복음의 빛과 권능과 메시아의 표적을... 이제 마지막 날들에 구름이 교회에서 걷혀 물러갔습니다. 그 아들, S-o-n께서 자기 날개들 안에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떠오르시며,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로 계심을 보여 주는 부활의 권능과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히브리서 13장 8절에 기록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시려고 그분의 길, 메시아의 표적을 예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위해 예비하셨던 바로 그 길, 아브라함의 육신의 씨를 위해 예비하셨던 바로 그 길,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를 위해 예비하신 바로 그 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형식에 매여 신조와 교의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도 형식적이 되어, 부흥은 끝났고, 온갖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더는 교회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집에 머물며 텔레비전을 봅니다. 밖에 나서는 여자들은 할리우드를 본뜨려고 옷을 입습니다. 자기 집을 다스려야 할 남자들은 아내가 반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성가대에서 노래도 합니다. 온통 더러움과 토사물로 가득해졌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털벌레와 자벌레와 그 밖의 모든 벌레가 먹어 치운 햇수를 내가 모두 돌려주리라... 내가 회복시키리라.” 주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 오순절 날에 있었던 바로 그 교회, 그... 임했고 교회를 세웠는데, 결국 로마 교회가 (자벌레들이 조직과 교단들로...) 그 교회를 그루터기만 남도록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들에 그것을 회복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녁 빛이 비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저녁때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녁때의 복음 전도가 필요합니다. 신조 더미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었습니다. “이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종의 비를 뜻하고, 그다음은 수확의 비입니다. 파종입니다. 우리는 이번 부흥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더 많은 교인입니다. 무엇을 뿌렸습니까? 교단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니 교단의 작물을 거둡니다. 침례교는 큰 표어를 내걸었습니다. “44년에 백만 명 더.” 빌리 그래함은 위대한 부흥사입니다.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능의 말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살아 계시는 살아 있는 분, 현재의 그분 말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아멘.
말라기 4장은 마지막 날들에 자녀들의 믿음을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할 사자가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그 믿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오순절 자녀들을 말입니다. 그들을 처음 오순절의 원래 메시지로 다시 데려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신앙의 감격이 솟아오릅니다. 아멘, 아멘.) “내가 회복시키리라.” 하나님께는 오늘날에도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복된 오순절입니다. 똑같은 일들, 똑같은 표적들, 똑같은 메시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걸으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사자, 곧 성령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어떤 영이 말씀에 반대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일 수 없습니다. 말씀을 기록하신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여 [여러분에게서 세상에 속한 모든 육체를 잘라 냅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내가 회복시키리라.” 주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한 길이... 큰길이 있으리니 곧 한 길이며 그 길은 거룩함의 길이라 불리리라. 부정한 자는 그 길을 지나가지 못하겠고.” 할렐루야! 여러분은 할리우드와 교회를 동시에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조직이나 더 많은 교인이 아닙니다. 강단에서 청소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깨끗이 하는 일, 옛 사도 바울 때와 같은 좋은 부흥, 성경의 성령,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다시 걷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아멘.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걸읍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앞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롯의 날들, 소돔의 때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입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바다 위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날 그들은 큰 집회를 지켜보며 한 분이 빵을 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빵을 떼어 내려놓으면 또 다른 빵 덩어리가 생겨나서, 그것을 내려놓는 일을 오천 명이 먹을 때까지 계속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셔. 하나님 말고는 누구도 저렇게 할 수 없어.” 그분께서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있었습니다. 그것 없이... 그분 없이 떠났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노는 부러지고, 배에는 물이 가득 찼고, 돛은 찢겨 내려앉았습니다. 자신들을 덮쳐 오는 사탄의 힘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부흥 가운데서 제멋대로 들떠, 새로운 장소를 마련하고 여기저기 퍼져 나가 새롭고 큰 건물을 짓는 데 몰두해 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다고 설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우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선교사들은 발에 신을 신발도 없습니다! 형제님,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교회가 어떤 상태에 이르렀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회복시키고, 되돌려 놓고, 길을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바다에 있던 제자들에게는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더는 나아갈 수 없어. 오늘 밤 이 바다에서 죽고 말겠구나.”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슬픈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들이 그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무시무시해 보여. 아, 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 나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볼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표시가 나 있습니다. 좁은 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그것을 찾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그 길을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생명의 길로 걷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며, 영으로 충만해지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진심으로 여쭙겠습니다. 여기 계시면서 그분을 구원자로 알지 못하신다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여러분이 손을 드시면, 그 손이 여러분 대신 증언할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걷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어느 교회의 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저는 선하고 깨끗하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보다 누가 더 깨끗할 수 있었으며, 누가 더 거룩하게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메시아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성경 학교와 대학에 보내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저자를 모른다면 성경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성경은 말씀을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세상의 어떤 학생보다도 말씀을 잘 압니다. 그렇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아는 데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지 못하신다면 손을 들고 말씀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여기 죄인 가운데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십니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그분의 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걷고 싶습니다. 제가 교회에는 가입했지만, 만일 지금 죽는다면 너무나 두려울 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브렌트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면 참다운 남자여야 합니다. 잘못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저도 큰 희망을 갖습니다. 여자가 잘못했을 때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 여자에게도 큰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잘못하고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자기 죄를 숨기는 자, 자기 죄를 덮는 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나 자기 죄를 자백하는 자는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아신다면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 전에 또 한 분 계십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이쪽에 계신 분도, 그리고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일입니다. “네, 주님, 저는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저는 손을 드시는 분을 살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보고 계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계속 기도하십시오. 저는 살피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지금 죽어 가고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확실히 정하셨습니까? 여러분의 결정은 옳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가 본 바로는 열다섯 명 정도나 그보다 더 많은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주님, 이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기꺼이 손을 들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주님께 다시 아뢰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주님, 그것이 주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들이 손을 든 것은 자기 주위에 영이, 곧 자기의 영이 있어서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말해 주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께 손을 들어, 자신이 잘못했음을 그분께 인정했습니다. 아버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 말씀드린 순간, 이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는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비된 희생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병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하나님께는 예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이레이십니다.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주님의 평안과 긍휼이 이들 위에 머물게 하옵소서.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께 주신 이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아무도 그들을 그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들은 진심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들이 진심이었다고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며, 죽어 계신 분이 아니라 한때 죽으셨으나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이들이 알게 하옵소서. 이천 년 동안 비난을 받으셨고, 세상은 주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성경을 없애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도 여전히 서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곳에 서서 성경이 참됨을 증언하고 계십니다.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고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우리 구원자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주님,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 회중과 하늘의 군대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앞에서,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아버지, 이들을 지켜 주옵소서. 그 큰 날에, 다시 그분과 함께 왕국에서 주의 만찬을 나누는 그 저녁에, 그 성만찬 상 둘레에서 서로 다시 만나는 특권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들이 좋은 교회, 좋은 순복음 교회를 찾아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받게 하옵소서. 그러고 나서 아버지, 성령을 받아 그 뒤로 경건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 주옵소서. 아멘.
이제 기도를 받으러 이 앞으로 나와 둘러서시라고 말씀드리기 전에 묻겠습니다. 여기 계신 병자나 하나님께 구할 것이 있는 분 가운데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말씀이 전해지고, 주님께서 기적과 표적들을 행하시며 전해진 말씀을 확증하신다면... 어젯밤 저는... 예수님께서... 그분의 메시아 표적이 무엇인지 보여 드리려고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를 거쳐 그것을 살펴보며, 그 표적이 유대인의 경륜을 마무리했음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곳 아브라함과 그의 시대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 곧 교회에게 그들의 때에도 그 표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 번 결정을 내리시고... 어떤 일을 하시도록 부르심을 받으시면, 영원히 같은 방식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시도록 부르심을 받으셨을 때, 만일 그 사람에게 물구나무를 서라고 하셨다면 영원히 그 방식이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흘린 피로 사람을 구원하셨고, 그것은 언제나 동일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교육과 교단과 온갖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여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또 서로에게서 더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흘려진 피 아래로 들어오면 감리교인, 침례교인, 가톨릭교인, 장로교인,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교제, 그것이 교제 가운데 함께 경배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 기반입니다. 영이 임하실 때 왕자나 재판관이나 그 누가 가까이 앉아 있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그곳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 죄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모두 전에 집회에 참석해 보셨으므로 제가 어디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이렇게 내다봅니다. 교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그 이집트의 노예들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 선지자가 내려와 자기들에게 가져다준 큰 부흥을 보고, 하나님의 강력한 손을 보고, 보호를 받아 그곳으로 나왔습니다. 홍해를 건넌 뒤 강가에 서서, 자기들을 뒤쫓던 원수들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고 영 안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들을 괴롭히던 모든 습관과 그런 것들이 뒤에서 물에 빠져 사라진 것입니다. 미리암은 영 안에서 춤추고, 모세는 영 안에서 노래했습니다.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겨우 열흘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사십 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을 따르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은혜 대신 율법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자기 길을 만들고, 자기들 나름의 이것저것을 가지려 한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 새 세대를 일으켜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사오십 년 전, 긴 머리에 긴 옷을 입은 그 어머니들이 영 안에서 춤추고 있을 때, 오순절 교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딸들이 오늘날처럼 할리우드의 여왕이 되려고 애쓰게 될 줄은 말입니다. 인격이 곧고 경건한 사람들이 그 말씀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며, 총격을 비롯한 온갖 것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광신도”라는 말을 듣고 감옥에 던져졌으며, 길모퉁이에 서 있다가 쫓겨나면 다른 모퉁이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들들이 그런 일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여 여러분의 교회들을 나머지 교단들과 같은 지경으로 만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제 그들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회복시키리라”라고 하십니다. 영 안에서 걸으며 진리를 전하고 진실을 말할 누군가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 곧 여호와 구원자가 그들을 이끌어 요르단을 건너갔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죽어 계시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입니다.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은 오직 죄를 없애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임마누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산을 올라가실 때, 죽음이라는 벌이 그분 주위를 윙윙거리며 돌면서 자신이 그분을 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라는 것을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거의 믿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조롱하며 그분의 얼굴을 헝겊으로 가리고,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때리며 말했습니다. “네가 선지자라면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아시겠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라.” 아시겠죠? 그곳에 있던 바리새인은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자기 발을 씻기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 텐데”라고 했습니다. 마치 그분이 모르시기라도 하는 듯이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시몬을 보시고 이름을 부르며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라”라고 하셨을 때, 미리 예정된 그 하나님의 씨가 그처럼 순식간에 살아났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데려왔을 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알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임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었습니다.
저 소돔에 계셨던 그 천사께서는 장막을 등지고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라는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자, 그분께서는 “사라가 왜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그분 뒤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롯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온갖 표적과 여러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내리기 직전에 그 표적이 왔습니다. 이스라엘도 온갖 표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나기 전에 그 메시아의 표적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루터교, 침례교, 장로교를 거쳐 필그림 성결교와 나사렛교, 오순절교, 방언을 말하는 데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분은 동일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를 뒷받침하셔야 합니다. 만일 진리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과 아무 상관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모두,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했다는 것을 압니다. 선지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나타난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이셨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분께서 그런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지만, 그분이 바로 그 선지자이심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그 초라한 여자, 창녀를 보십시오. 그날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유대인이신 예수님께서 나오셔서 그 여자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대화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 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을 때,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맞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작은 여자를 보십시오.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그 선지자이십니다.” 잘 보시면 킹제임스에는 “한 선지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난외주를 따라가 보십시오. 오기로 되어 있던 “그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선지자이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오기로 되어 있던 그 선지자이십니까?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께서 오시면 그것이 그분의 표적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께서 이런 것들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형제님, 학식이 높고 교단에 속하여 완강히 버티던 바리새인들은 그곳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야. 바알세붑이야. 점쟁이야.”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용서하노라. 그러나 언젠가 성령께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시리라. 그 일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분께서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 나타난 분입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성경기록들이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다시 말해 “바로 그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 주는 것들이니라”라는 뜻입니다.
지금 바로 그 성경이 우리가 사는 날에 관해 말하며, 지금이 저녁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만드셨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 길로 달려가십시오. 그 피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한 영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의지하지 마십시오... 저는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과 방언을 말하는 것, 그런 모든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의지하지는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말씀을 믿습니다. 방언을 했든 무슨 일을 했든, 여전히 말씀을 의심한다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은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기록하셨고, 성령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성령께서는 그 문장 하나하나마다 “아멘, 아멘”이라고 화답하실 것입니다. 정확히 줄 위에 줄, 줄 위에 줄을 더하며 말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약속을 하신 분도 성령이십니다. 성경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성경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분께서 동일한 대제사장이시라면, 같은 방식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동일한 대제사장이시라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마지막 날에 있으며 마지막 표적을 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저는 아직 꽤 젊습니다. 쉰세 살입니다. 이것을 잘 보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리는데, 여러분은 이보다 더 큰 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언가 큰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바로 그 지점에서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처음 세 장을 읽으십시오. 이방인 교회에 약속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그런 일들은 교회가 떠난 뒤 저 이스라엘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러니 형제님,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지나쳐 가도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자기들의 날을 알지 못해 돌로 치지 않은 선지자가 누구냐?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날도 알았으리라.” 사람들은 요한이 죽어 묻힐 때까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죽어 묻히실 때까지 알지 못했습니다. 성 패트릭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잔 다르크를 보십시오. 가톨릭교회는 그 여자를 마녀라 하여 말뚝에 매달아 불태웠습니다. 그 여자가 기도에 권능이 있었고 환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점쟁이요 마녀라고 하며, 자비를 구하고 절규하는 그 여자를 불태웠습니다. 아, 물론 이백 년 뒤에는 보속을 했습니다.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어 내던졌...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지나갈 때 여러분은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조차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엘리야가 왔지만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머리 위로 지나가도 여러분은 모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성령, 곧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제가 여러분 곁을 떠나기 전에 이 두 말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그리스도의 오심은 서로 다른 두 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그분의 충만한 권능 가운데 나타나고 계십니다. 그분의 오심은 그 뒤에 있을 것입니다. 오심에 앞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이제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저는 그분의 임재가 이곳에 있음을 알 때까지 말씀을 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께 구하겠습니다. 우리를 그분의 손에 맡아 주시고 우리에게서 불신을 거두어 주시기를 말입니다. 하나님, 제 두려움과 의심과 당황하는 마음을 거두어 주옵소서. 이 회중의 당황하는 마음도 거두어 주셔서, 마지막 날들에 약속하신 일들을 행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저녁 저희가 마음속에 뜨거움을 품고 이곳을 떠나게 하옵소서. 저희가 섬겨 온 하나님, 저희가 소리 높여 찬양하고 경배해 온 그 하나님께서, 여기 우리 가운데서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이제 누구든 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이리 와서 제 자리에 서 보십시오. 그러나 제가 진리를 말씀드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를 뒷받침하실 책임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손을 드신 분들께는 잠시 뒤에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이 진리임을 알고 믿는 분들은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오늘 저녁 제 믿음으로 주님의 옷에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저를 만진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제 형제들을 만지거나 저쪽에 있는 다른 누구를 만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께 한 번 손을 대어 보십시오. 영을 살피십시오. 그것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분의 옷차림이나, 말씀드렸듯이 머리와 수염을 다듬으신 모습이나, 말씀하시는 방식이나 언어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분의 생명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줄을 우리가 압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긴장하지 마십시오. 긴장하면 그것을 결코 붙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하십시오. “주님...”이라고만 하십시오. 사람들이 놓치는 것은 바로 그 단순함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다가... 처음에 예수님을 놓친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사야가 잘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그저 깨달으십시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하신다고 한 일을 행하신다면, 성경이 옳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지 않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이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보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 말씀을 확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주 주의 깊게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조용히 기도하고 계시는 동안 여쭙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그 종이에 실린 주님의 천사 사진을 본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군요. 이 건물에서도 보여 드렸을 것입니다. 여기 이 성경을 제 가슴에 대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놓친다면 심판 날에 저도 심판을 받고 여러분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그 빛이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에서 1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빛이 내려와 육신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뒤에는 다시 영광 가운데로 돌아가셨고,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던 바울은 그 빛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이제 그 빛을, 과학계는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입증했습니다. 만일 그 빛이 이곳에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을 때와 같은 생명을 나타내지 않고, 그분의 교회 안에서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같은 생명이 아닙니다. 같은 일을 한다면, 그것은 같은 생명입니다.
여기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바로 여기 앉아 계신 작은 여자분이 조금 전 고개를 숙였습니다. 믿음으로, 믿으려고 하며 자기 눈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눈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 일로 걱정하고 계십니다. 저를 똑바로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아닙니다. 노르웨이에서 오셨군요. 맞습니다.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없으시다고요? 필요 없습니다. 이제 눈이 좋아질 것입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그분께 닿았습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저는 그저... 잠시 서두르지 맙시다. 그 여자분에게 가 보십시오. 방금 그 여자분이 누구셨든, 잠시 일어나 주십시오. 어디 계셨지요? 아시겠죠? 이것은 환상입니다. 무언가 꿈을 꾼 것과 같습니다. 그 여자분이 어디 계셨지요? 제 생각에는 바로 이 뒤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매님, 말씀드린 것들이 사실이었습니까? 무슨 말씀을 드렸지요?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계셨습니까? 그런 일들이 맞습니까? 그분이 무엇에 관하여,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지, 그 모든 것과 그분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것들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제게는 전혀 모르는 분인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평생 그분을 본 적이 없고, 저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예배가 끝난 뒤 그분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분이 무엇을 했습니까? 이것이 성경을 확증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여기입니다. 한 남자가 제 앞으로 다가옵니다. 생명선이 이쪽으로 옵니다. 여기 줄 끝에 앉아 계신 분이 허리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허리에 문제가 있는 분,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리라고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리라고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치유를 받아들이십니까? 샌더스 씨, 하나님께서 위대한 치유자이심을 믿습니까?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이쪽, 저를 보십시오. 어제 저녁 이 집회에 계셨을 때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으셨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밤 그것이 다시 찾아올 때...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 문제가 떠났습니다. 믿으십니까?
여기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 보십시오, 형제님들. 저기를 보십시오. 바로 여기 이 남자분 위에 노란 에메랄드빛이 있습니다. 그분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신경성 문제로, 신경쇠약에 이르기 직전입니다. 그저 신경쇠약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고 가족이 있습니다. 자녀가 여럿, 다섯 명쯤 있습니다. 맞습니다.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필요 없습니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집에 가서 자녀들을 부양하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선생님을 온전하게 합니다. 옆에 앉아 있는 이 소년이 보입니까? 제가 저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때 그가 움찔했습니다. 믿으면 그 피부병도 떠나고 나을 것입니다. 믿습니까?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이제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온전하게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믿지 않으십니까? 저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저분들을 모릅니다. 그저 이 집회에 와서 앉아 계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 바로 이쪽에 앉아 저를 똑바로 보고 계신 여자분이 있습니다. 이분도 허리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분이 믿으시면... 코블스 씨입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필요 없습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구원합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 길로 걸으십시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이 붙들려고 하는 이 모든 신조와 그런 것들은 잊으십시오. 놓아 버리십시오. 말씀이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봅니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앞으로 나와 여러분의 삶을 섬기는 삶으로 그분께 드리고 싶습니까? 헌신의 예배로, 여러분의 삶을 다시 그분께 헌신하고 싶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의 임재 안에 있는 지금, 여기 계신 모든 분 중 자기 삶을 새롭게 헌신하기 원하는 분과 조금 전 손을 드신 모든 분은 이리로 나와 잠시 이 앞을 따라 서 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하도록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제가 인도하심을 느낄 때면 언제나 옳은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이제 무언가 일어나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 강가에 모이리, 아름다운, 아름다운 강가에. 아, 성도들과 함께 강가에 모이리, 하나님의 왕좌 곁을 흐르는 그 강가에. 그래요, 우리 (우리 모두) 그 강가에, 아름다운, 아름다운 강가에. 우리 성도들과 함께 강가에 모이리, 하나님의 왕좌 곁을 흐르는 그 강가에. 우리 강가에 모일까요, 빛나는 천사들의 발이 밟았던 곳, 수정 같은 물결이 영원히 하나님의 왕좌에서 흘러나오는 그곳에? 이제 손을 듭시다. 그래요, 우리 강가에 모이리, 아름다운, 아름다운 강가에. 성도들과 함께 강가에 모이리, 하나님의 왕좌에서 흘러나오는 그 강가에.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오르간 연주자는 계속 연주해 주십시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 곡을 흥얼거립시다. 계속 흥얼거리면서, 여기 여러분과 함께 계신 하나님의 영 앞에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회개하는 이 무리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열 명이나 열다섯 명 정도를 제외한 온 교회가 일어서 있습니다. 주님을 더 가까이 알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 이들이 일어서서 “우리 강가에 모일까요?”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희는 그곳에 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때가 차면, 바로 지금 이곳에 계신 하나님의 영, 이 건물 안 곳곳을 움직이시는 위대하신 성령, 저희를 그분께 가까이 이끄는 그 달콤한 교제가 저희 죄들이 용서되었고 저희 불법이 사라졌음을 알려 주시는... 저희가 잘못을 자백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저희를 용서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날이 많이 기운 것을 저희가 봅니다. 오늘 저녁 저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으로, 다시 그렇게 행하리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의 약속으로, 저희는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심을 압니다. 이천 년 동안 비난을 받고 신학으로 뒤틀려 왔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틀어 없애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것과 정확히 같은 일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것으로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압니다. 또한 이것으로 저희가 받아들여졌음을 압니다. 아브라함과 선택받은 무리에게 온 천사가, 저 아래 소돔이 아니라 위에 있는 선택받은 무리에게 와서, 이런 종류의 표적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희가 바로 밖으로 나와 분리된 그 교회임을 알려 주시니 참 기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빌론에 있지 않고,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나그네요 외국인이기에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저희의 상속 재산은 하나님께서 왕좌에 앉아 계시는 위에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기 서 있는 회개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고, 저희가 타협 없이 말씀에서 가르치는 바로 그대로 복음을 전했다면, 그리고 주님께서 오늘 저녁 저희를 찾아오심으로 그것이 진리임을 증명해 주셨으니, 하나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사람들에게서 모든 냉랭함을 거두어 주시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으로 모든 마음에 들어가 그 마음들을 따뜻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그 마음을 채워 주옵소서. 바로 지금 또 한 번의 오순절이 이 회중 위에 내려오게 하옵소서.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마음들 안으로 들어가, 여기 있는 모든 마음을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의 신성한 권능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 이루어 주옵소서. 하나님, 이 기도를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이루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저희의 모임과 하늘의 처소들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는 저희의 복 위에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 주옵소서.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다고 온 마음으로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천사, 곧 지금 여기 계신 성령 앞에서 약속하시는 분은 모두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오늘 밤부터 그분을 위해 살고, 더 많이 기도하고, 희생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을 위해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이제 “주님, 이것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