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부흥 집회, 몹시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그동안 길을 다니며 참 많은 교제를 나누고 훌륭한 집회를 가졌습니다. 위쪽에서… 동부 해안을 따라 내려가고, 또 서부 해안을 따라 캐나다까지 올라가면서 곳곳의 그리스도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와 연합오순절교회, 하나님의 교회, 포스퀘어 교회, 그리고 함께 협력한 여러 다른 교단의 교회들이 잘 협력해 주어 큰 집회들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에서는 대단한 성공이었고, 아마 많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흥을 일으키는 전도자입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볼 때 부흥은 거의 끝나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는 마음이 불타오르는 부흥을 보고 싶습니다.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부흥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을 고치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물론 구원받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면 몇 주 뒤에 다시 사역에 나설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은 전 세계에 있는 많은 분과 제 친구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밤 이 태버내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누가 여기 오셔서 보실 수 있다면 아시겠지만, 오늘 밤 태버내클 안은 정말 덥습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문마다 둘러서 있으며, 바깥 차 안에도 앉아 있습니다. 몹시 더워서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힘든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에 비추어 우리가 지금 어느 시기에 와 있는지를 설명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태버내클에서 녹음하고 싶었습니다. 지난봄에 이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지만, 이곳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녹음하여 전 세계에 계신 여러분에게 보내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약 삼십이 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에서 백오십 야드도 안 되는 곳, 여기 제퍼슨빌의 8번가와 펜 스트리트에서 주 예수님께서… 당시 이 태버내클은 그저 늪지에 불과했는데, 제가 그 모퉁잇돌을 놓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여기 왼편 길 건너에 살고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모퉁잇돌을 놓을 그날 아침, 이른 여섯 시쯤 주 예수님께서 저를 깨우셨습니다. 저는 잠시 침대에 누워 기쁨에 가득 찬 마음으로 그 뜻깊은 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제가 설교할 성막을 주시려는 때였으니까요. 당시 저는 그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그날에는 제가 사귀던 아가씨, 이듬해 제 아내가 될 아가씨도 모퉁잇돌을 놓는 자리에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 바로 여기 7번가의 위층 방에 누워 있던 일이 기억납니다. 무언가가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넓은 곳 같은 것이 보였는데, 골짜기에 강이 흐르는 곳 같았습니다. 저는 그 강으로 내려갔고, 침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던 곳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곳을 돼지우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그것을 몹시 비판했습니다. 제가 거기 있을 때 어떤 음성이 제게 말하며 저를 위로 데려갔습니다. 그러자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의 태버내클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태버내클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강단 뒤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성막을 주시니 얼마나 좋으신 분이십니까!” 그때 주님의 천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네 성막이 아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주님, 제 성막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분께서 다시 저를 영 안에서 데려가 나무들이 있는 곳에 내려놓으셨습니다. 저 멀리까지 나무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는데, 높이는 이십 피트나 삼십 피트쯤 되었습니다. 과일나무처럼 보였고, 커다란 초록색 통에 심겨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제 오른쪽과 왼쪽에 빈 통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들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거기에 네가 심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른쪽 나무에서 가지를 하나 꺾어 오른쪽 통에 꽂고, 왼쪽 나무에서도 가지를 하나 꺾어 왼쪽 통에 꽂았습니다. 그러자 그것들이 순식간에 하늘까지 자라났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내밀어 그 열매를 거두어라.” 그러자 한 손에는 부드럽게 잘 익은 커다란 노란 사과가 떨어졌습니다. 다른 손에는 부드럽게 잘 익은 커다란 노란 자두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열매를 먹어라. 먹기에 좋으니라.” 저는 이쪽 열매도 먹고 저쪽 열매도 먹었습니다. 참으로 맛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환상을 아십니다. 책 중 한 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삶 이야기」나 「선지자의 아프리카 방문」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 저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불기둥이 나무들 위로 내려왔습니다. 굉음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으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뭇잎들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멀리 내려다보니 지금과 같은 모습의 이 태버내클이 서 있었습니다. 강단이 있을 쪽 끝에는 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 세 그루가 십자가 세 개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십자가 주위에 자두와 사과가 모두 송이송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아주 빨리 달려가 그 십자가 위에, 아니, 십자가 곁에 엎드려 두 팔로 그것을 끌어안았습니다. 바람이 불어 십자가의 열매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열매가 온통 제 위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행복해서 그저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 열매를 먹어라. 먹기에 좋으니라.”
그러자 둥글게 감도는 이 불에서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추수할 곡식은 익었으나 일꾼들이 적으니라.”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다시 정신을 차리거든, 이 상태에서 깨어나거든, 디모데후서 4장을 읽어라. 디모데후서 4장이다.” 그러고 나서 저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거기 서서 얼굴과 손을 문질렀습니다. 바로 그때 방구석에는 햇빛이 높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한 시간이나 그 이상 환상 가운데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디모데후서 4장.”이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저는 얼른 성경을 집어 디모데후서 4장을 읽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읽고 싶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이 디모데후서 4장을 읽으며 멈추었던 곳, 여기 태버내클에서 그것을 가지고 여러 번 설교하면서도 늘 그곳에서 멈추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처음 다섯 절입니다. 오라는 수는 은혜의 수입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과 또 친히 나타나실 때에 자신의 왕국에서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말씀을 선포하라. 때가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때가 오리니 그들이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에서 귀를 돌려 꾸며 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깨어 있고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고 네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
여러분은 이것을 주목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오월이 되어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그 성경 구절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늘 거기까지만 읽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게 말씀을 선포하고 고난을 견디며 오래 참으라고 말씀하고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선생들을 쌓아 두며, 진리에서 돌아서 꾸며 낸 이야기들로 향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제가 복음 전도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셨습니까? “이제 너는 복음 전도자로 부름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거기서 보는 것은… 이제 제가 온 마음으로, 제가 아는 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정확히 그대로입니다. 그것이 삼십 년 전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분께서 지금까지 제게 주신 모든 환상은 성취되었습니다. 단 한 가지, 제가… 제 사역에 변화가 생겨서, 천막이나 큰 강당 같은 곳 안에 있는 작은 방처럼 생긴 조그만 곳에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는 것만 남았습니다. 제게는 천막처럼 보였습니다. 이삼 년 전에 말씀드린 그것을 기억하십니까?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멕시코로 내려갈 것과 그날 밤 어떻게 비가 올 것인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제 사역의 첫 번째 끌어당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조그만 물고기를 잡는 것, 혹은 놓치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두 번째 것은 작은 물고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에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끌어당김에서는 실패하지 마라. 알겠느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라.” 저는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늘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저 그분께서 제게 하라고 하시는 일만 하고 그대로 두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비밀이 없는 성격이라, 아는 것은 전부 말해 버립니다. 아마 타고난 성품이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애씁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물론 그분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일이 아니라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해 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놓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그들이 그것을 아주 자세히 보아서 아무런 잘못도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것은 정확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잠시 그것을 살펴보면, 맡기신 명령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과 또 자신의 왕국에 나타나실 때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말씀을 선포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증인이십니다. 오늘 밤까지, 제가 아는 한 저는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굳게 지켜 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려움도 많았고, 많은 핍박과 시련도 겪었습니다. 바로 그 말씀,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 때문에 많은 소중한 친구들과 갈라서야 했습니다.
최근에 제가 환상 가운데, 아니, 제가 잠시 옮겨졌다고 부르는 그 경험 가운데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곳에 이끌려 가서 그 사람들을 보았고, 뒤돌아 제 자신을 보았으며, 거기 있는 그 수백만 명을 보았습니다. 저는 “저는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그분은 더 높은 곳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곧바로 위로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잘 설명해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서두르셔야 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시간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기서 세 차원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그것들의 이름을 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는 빛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입니다. 토미, 세 번째가 무엇인지 기억합니까? 네? 원자요? 시간. 맞습니다. 빛, 물질, 시간입니다. 우리의 오감은 그 차원들과 접촉합니다. 시각은 빛과 접촉하고, 촉각은 물질과 접촉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과학을 통해 우리는 이른바 제사 차원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 건물을 통과해 영상과 라디오의 음성, 텔레비전 영상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각은 그것과 접촉하지 못하지만, 그런 전파를 잡아내서 나타내는 진공관이나 수정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이 건물 안, 공중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과 실제 음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잡아내는… 저는 과학이 발명한 그런 것들의 기계적 원리를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사 차원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입증한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제오 차원은 죄인, 곧 믿지 않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제오 차원은 말하자면 끔찍한 차원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제육 차원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제칠 차원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하나님의 제단 아래로,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제단 아래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쉽니다.
쉽게 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악몽을 꿀 때는 완전히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잠과 깨어 있음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섭게 떨며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예로 들면, 회심하지 못한 사람이 죽었을 때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살았고, 땅에서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피 없이는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없기에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갇혀 있습니다. 땅에서의 시간이 끝났으니 다시 땅으로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그 사이에 갇혀 악몽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 쉴 수도 없습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땅으로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악몽 속에 있으며, 심판 날까지 거기 머뭅니다. 참으로 끔찍한 상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이 환상에서 그 제육 차원으로 이끌려 갔다고 믿습니다. 여기 아래를 돌아보았고,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보는 것은 이 땅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시각은 그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곳의 시각, 그들이 접촉하는 능력은 우리의 타고난 감각이 접촉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훨씬 뛰어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이것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사람을 바닷속으로 내려보내는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마일이나 일 마일 깊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바깥으로 빛을 비추는 조명이 있었습니다. 해양 생물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물고기들이 지나갔습니다. 끔찍하게 생긴 생물들이었습니다. 그 아래는 한밤중 같고, 먹물처럼 캄캄합니다. 그 물고기들의 코에는 인이 있었고, 눈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먹이는 먹어야 하니, 먹이를 찾을 때 다른 감각의 안내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시각은 아니었습니다. 눈이 없었고, 거기서는 눈을 쓸 수도 없었으니까요. 다른 감각의 안내를 받아 먹이와 접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 시각으로 저 조그만 물고기를 이끌 수 있다면, 먹이를 얼마나 더 잘 마련해 주고 여러 곳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저 물고기가 접촉하는 데 쓰는 레이더 같은 감각보다 내 시각이 얼마나 더 뛰어난가?” 아시겠습니까? 저는 “내가 저 물고기를 이끌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시각과 감각은 얼마나 더 뛰어난가? 우리가 보는 것들보다 훨씬 더 잘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지 않은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은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조그만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처럼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그 압력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 끌어올리면 터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터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의 압력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그만 물고기가 이곳으로 올라와 저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다시 저 아래 한밤중 같은 어둠 속의 조그만 물고기가 되고 싶겠습니까? 다시는 물고기가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물고기보다 더 큰 존재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감각도 더 뛰어나고, 이해력도 더 뛰어나며, 지능은 월등합니다. 거기에 천만 배를 곱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기서 저기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옮겨 갔을 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인간은 여기 있는 우리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다시는 질병과 부패가 있는 이 병동 같은 곳에서 이런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저는 이 삼십 년 동안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얻어야 할 천국이 있고 피해야 할 지옥이 있으며,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여러분이 받아들일 준비만 되면 언제든 건져 올릴 준비가 된 구속의 권능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곁에 밧줄이 드리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생각합니다. “저 밧줄을 잡으면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저 밧줄을 잡을 자격이 없어.” 그 밧줄은 바로 그 목적, 여러분이 거기서 빠져나오게 하려는 목적으로 놓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바로 그 목적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생의 밧줄을 늘어뜨리셨습니다. 바로 오늘 밤 여기 있는 모든 죄인의 머리 위를 지나갈 밧줄입니다. 거기에는 환영하는 표지가 달려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너라.”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곳과 그 사람들이 있는 상태를 보았을 때, 그것은 이 세상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그곳에는 죄가 있을 수 없었고, 죽음이나 그 어떤 것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차이가 없었고, 다만 그들의 생식샘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간음도, 그런 어떤 일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여자의 모습을 지녔고, 남자는 여전히 남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진화에 관한 이런 것을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진화를 믿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떤 하등 종에서 진화했다는 식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무엇이든 잡종을 만들려고 하면 그것이 다시 번식하지 못하니, 그들 자신의 이론이 도리어 그들을 반박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그들에게 역효과를 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땅을 적시기 시작하셨을 때, 아마 처음 내신 것이 해파리였고, 거기서 개구리로, 계속 위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것은 계속해서 사람의 형상에 점점 더 가까워졌고, 사람은 하나님을 비추는 모습이었습니다. 풀이 진화해 갔던 이유도 그것입니다. 아마 풀에서, 그다음에는 풀에서 꽃이 나오고, 꽃에서 관목이 나오고, 관목에서 나무가 나왔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편에 서 있는 생명나무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편에 있는 모든 자연적인 것은 저편의 초자연적인 것, 곧 영원한 것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땅에 있고 우리가 여기서 이런 몸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죽음도 슬픔도 없는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몸을 그대로 비추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그런 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이 거기 있다고 알려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이 여러 해 동안… 어리석고 많은 실수를 저지른 것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 여러 해 동안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해 왔습니다. 저는 그날 그들이 거기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제 그 환상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도 모르게 늘 그 5절에서 멈추게 되었을까요? 저는 거기까지만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에는 더 있습니다. 몇 절이 더 있습니다. 이제 오늘 밤 집회가 끝나는 대로 호텔 방이나 집에서 그 나머지를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여기 인용하고 싶은 성경 구절들을 몇 개 적어 놓았고, 참고하고 싶은 메모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시면 그것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인용할 것이니 테이프에도 녹음될 것입니다. 그중 몇 가지를 적어 두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남녀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믿으시는 줄 압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본이셨습니다. 주목해 보십시오. 잠시 누가복음 4장을 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펴십시오. 놀라운 것 하나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참조 구절을 너무 많이 찾아가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구절만은 잠시 저와 함께 읽으실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평행을 이루는지 보고 싶으시면 아주 자세히 보십시오. 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시니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시니 …그분의 명성이 두루 그 주변 온 지역에 퍼졌고 그분께서는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더라. 그분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에 가사 자기 관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읽으려고 서시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이 그분께 주어졌고, 그분께서 그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라.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우리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책을 덮으시고…
이것의 참조 구절을 원하신다면, 여기 적어 두었습니다. 잠시만요. 여기 난외주에서 찾을 수 있을지 보겠습니다. 보시면, 마가복음과 다른 곳에서도 이것을 찾을 수 있지만, 이사야서 61장 1절과 2절입니다. 그분께서 바로 거기서 멈추셨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다음 절은… 거기까지는 그분의 초림에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곧 다음 절은 심판하러 오시는 그분의 재림에 적용됩니다. 그분께서는 멈추고 책을 덮으셨습니다. 여러분 중 스코필드 성경을 읽고 계신 분은 거기에 있는 각주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마가복음 2장의 각주를 보십시오. 각주 말입니다. 그러면 이사야서 61장 1절과 2절에 인용된 메시지와 비교해 놓은 것을 보실 것입니다. 여기 이 성경 구절의 경우, 예수님께서는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은 그분께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어떻게 바로 거기서 멈추셨는지 보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늘 이 5절에서 멈추곤 했습니다.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귀가 가려워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며, 진리에서 꾸며 낸 이야기들로 돌아설 때가 오리라. 그러나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고 네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 아시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그렇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이곳에 있는 친구들과 이 테이프가 전해질 여러 나라의 친구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을 위해 이런 입장을 취한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제가 어떤 신조나 어떤 교단과도 타협할 수 없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굳게 지키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달리 하고 싶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달린 일입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제 사역에 관해 받은 환상에서, 저는 그 나무들을 서로 섞어 심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다른 편으로 개종시킨 적이 없습니다.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일신교를 믿으십시오.”라거나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삼위일체를 믿으십시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각자의 통에 심었습니다. 정확히 그대로였습니다. 삼위일체를 믿는 이들에게도 갔고, 일신교를 믿는 이들에게도 갔으며, 모든 이에게 갔습니다. 그 사이에 머물면서 어느 쪽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운데서 형제로 지냈습니다. 그 환상에서 하라고 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양쪽 열매를 먹었습니다. 양쪽에 구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여기에는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도 많이 앉아 있고, 일신교를 믿는 사람도 많으며, 그 밖의 여러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툰다면 얼마나 마음이 좁은 일이겠습니까? 환상의 그 부분이 참되었다면, 다른 부분도 참되기 때문입니다. 두 종류의 열매가 모두 십자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둘 다 십자가에 함께 모여 있었고, 자두와 배, 아니, 자두와 사과가 거기서 제 위로 비처럼 떨어졌습니다. 둘 다 말입니다. 모두 십자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그리스도인의 행위와 표적이 그들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교단은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과 관계되는 것은 다시 태어난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과 관계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난 체험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참 많이 봅니다. 여기 인용하고 싶은 성경 구절이 몇 개 있습니다. 조금 뒤에 인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과 함께 5절에서 18절까지 내려가 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다 읽지는 않겠습니다. 다시 여기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시작하는 말을 보십시오. 어떻게 말하기 시작하는지 보면 애처롭습니다. 5절 뒤를 보십시오. 이제 내가 헌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왔도다. 이 무대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이제 보십시오. “나는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이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그다음 계속해서 말합니다. 모든 것을… 이 일들을 하라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자기 겉옷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데마가 나를 버렸다.”… 그의 사역에도 그런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젊은 복음 전도자, 젊은 선지자였을 때는 모두가 그를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아래를 보시면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말씀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젊은 선지자 예수님께도 때가 왔고, 그분께서는 버림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모든 사람은 세상과 종교계로부터 버림받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오천 명을 먹이셨고, 사람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서 남은 조각들을 여러 바구니 가득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바로 다음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본격적으로 전하기 시작하시자 그들이 모두 그분에게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세우신 사역자 일흔 명까지 그분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님께만 영생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지만 버림받는 때가 왔고, 그때는 반드시 와야 합니다. 반드시 옵니다. 지금 여기 선지자들과 그 밖의 여러 예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입증하기 위해 인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그때가 왔습니다. 그것을 피해 보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왔으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굳게 서서 받아들였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쳤고, 믿음을 지켰노라.” 오, 참으로! 여기 아래에서는 “내가 짐승들과 싸웠고,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노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겪은 그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선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가 떠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생각해 봅시다. 데마처럼 바울과 함께하던 사람이, 사역자가 왜 바울을 떠났을까요? 여러분은 백스터 형제님을 아시지요.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데마에 관해 읽곤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천국에 가면 무엇을 할 건지 아십니까? 제일 먼저 무엇을 할 건지요?” 제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곧장 가서 데마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다음, 있는 힘껏 한 대 칠 겁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가 돌아서서 ‘백스터, 왜 나를 치는 거요?’라고 할 겁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모두가 바울을 버렸을 때, 당신은 왜 그 가엾고 자그마한 바울을 떠났소?”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다만 백스터 형제님이 바울을 너무나 안타깝게 여겨 그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할 수 있는 한 충실하게 말씀을 전했고,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습니다. 그가 그 여자 사역자들 등에 대해 편지를 써 보냈을 때 큰 소동이 일어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교회들에서 잠잠히 있을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어떤 감독들은 뭐라고 했겠습니까? “흥! 저 위 감옥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여기 우리에게 편지를 써 보낸단 말인가? 보라고. 술꾼인 디모데도 데리고 있잖아. 지금 저 위에서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자신은 감옥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성령께서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셔야 하는지를 편지로 알려 주고 있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나왔느냐? 너희에게서만 나왔느냐? 누구든지 자기를 영적인 자나 선지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쓰는 것들이 주의 명령들인 줄 인정하라.” 아시겠습니까?
친구 여러분, 그때는 옵니다. 저는 이 테이프가 전해지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갈라지는 때가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반드시 와야 합니다. 제가 마지막 때, 이 길의 끝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내일이 무엇인지, 내일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일을 누가 붙들고 계신지는 압니다. 그래서 제 믿음은 거기에 세워져 있습니다. 제 생각에 데마가 그를 버리고 나이트클럽으로 갔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데마가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마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훌륭한 조력자였습니다. 여러분이 데마의 역사를 살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그는 이름난 설교자였고, 교양 있고 세련되며 교육을 받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을 버렸을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무엇 때문에 바울을 버렸을까요? 나이트클럽 같은 데 가고 싶어서였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따로 떼어 놓고 계셨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제 생각에 데마는…
데마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살펴봅시다. 얼마 전 동틀 무렵 산비탈에 앉아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데마는 그 사람을 떠나고 싶었을까? 자신을 주님께로 인도한 그 가엾고 자그마한 설교자, 이방인들 가운데 부흥의 선두에 섰던 사람, 참으로 선지자였던 그를 왜 떠났을까?” 그가 선지자였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상이었습니다. 사도였고, 이방인들을 위한 위대하고 능력 있는 사도였습니다. 데마는 바울과 함께하고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영께서 그 사람 위에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종임이 입증된 그런 사람에게 왜 등을 돌렸을까요? 여기 바울의 말을 주목하셨습니까? “현재의 이 세상을 사랑하여.” 저는 데마가 믿음에서 뒤로 물러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데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때로 사람들에게는 돈이 신앙을 뜻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캐딜락이 세 대도 없으면 영적인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성공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곳도 거의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보여 줍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뭐라고요? 저런 작은 무리에 들어갔다는 말입니까?”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분께서 겉옷을 한 벌밖에 갖고 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이리저리 밀려 다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데마가 바울의 사역이 겉으로는 쇠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았다고 믿습니다. 그가 보기에 그 나이 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끝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는, 바울에게 주기 위해 자기 눈이라도 빼냈을 사람들이… 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적어도 너희 눈이라도 빼내어 내게 주었으리라.” 우리는 바울이 눈이 나빴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내가 이렇게 큰 글자로 썼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큰 편지”라고 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원어 사전에는 “큰 글자들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 있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환상을 본 이후로 눈 때문에 계속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울이 고통받는 모습을, 눈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눈이라도 빼내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께 세 번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넘치는 계시로 인해 내가 너무 높아지지 않게 하시려고, 나를 치도록 마귀의 사자가 내게 보내졌느니라.” 그러니 꽤 좋아졌다가 다시 그를 쳤습니다. 다시 좋아졌다가 또 그를 쳤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바울의 사역은 다른 모든 사도를 합한 것보다 더 컸습니다. 어떤 사도들은 “나는 예수님과 함께 걸었소.”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실 때는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도 그분과 함께 걸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분께서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하늘에 오르시고, 다시 돌아와 자신을 부르신 뒤에 불기둥 안에 계신 그분을 보았습니다.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서 말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마태나 마가나 누가나 그 밖의 누구보다도 더 컸습니다. 그는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높아져서 ‘자,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나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그분과 함께 걸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갈릴리와 나사렛과 그 주변 지역에 있던 모든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들도 모두 그분과 함께 걸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바울은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분께서 육신이 되시기 전의 모습으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그 상태, 곧 그 빛 가운데 계실 때 바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높아져서 여러분 형제들보다 조금 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시려고, 마귀의 사자가 내게 주어졌느니라.” 그것이 그를 계속 쳐서 낮추어 놓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고 주님께 세 번 간구했더니, 그분께서 ‘사울아, 아니,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라.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라. 아시겠습니까? 나는 그것을 자랑하리라!”
이제 보셨습니까? 사역 현장에 나섰던 다른 누구보다 더 큰 사역을 가진 사람, 바울은 그들 중 가장 큰 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불기둥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행한 일을 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하나님께서 같은 권능으로 표적과 이적을 통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를 입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가난해서 겉옷이 한 벌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 주기 위해 자기 눈이라도 빼냈을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백만장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에게는 겉옷이 한 벌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겉옷을 가져오너라. 이곳은 추워지고 있다.” 그는 산악 지방에 있었습니다. 겉옷은 한 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데마는 높은 지위와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교양과 학식이 있었으며, 갈아입을 옷도 많은 부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저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자기 눈이라도 빼서 줄 친구가 그렇게 많은데도, 너무 가난해서 겉옷이 한 벌밖에 없잖아. 바울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영은 세상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돈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큰 사역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온갖 거대한 것과 큰 학교, 큰 무엇 무엇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으십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다루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가서 그런 일을 하라고 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겉옷이 한 벌밖에 없었고, 그곳이 추워지고 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고 여기서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바울처럼 수만 명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온갖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역을 하며, 불기둥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보고 그분께 사명을 받은 사람이었는데도 겉옷이 한 벌뿐이었습니다. 데마는 “그런 사람이라니.” 하며 그에게서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가 이곳 드로아 쪽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거기에 구리 세공업자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미워했습니다. 바울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했고, 그를 감옥에 집어넣게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그 일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 사람을 조심하여라.” 그런데 여기 데마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게 하소서! 여기 데마는 자기에게 대든 사람의 눈을 멀게 했던 사람 곁에 서 있었습니다. 자, 그리스도의 교회 설교자 여러분, 이제 겉옷을 걸치십시오. 한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눈을 멀게 해 보시오! 내 눈을 멀게 해 보시오! 당신에게 성령이 있다면 내 눈을 멀게 해 보시오.” 저는 “당신은 이미 눈이 멀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왜 그 구리 세공업자의 눈을 멀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영과 똑같은 영이 데마에게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대든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구리 세공업자가 그 도시에서 자기 사역을 망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틀림없이 데마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끝났어. 모든 은사를 잃었어. 눈멀게 하는 은사를 잃어버렸어.” 그 영이 지금도 살아 있어서 “형제님, 당신은 이제 끝났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오!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보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제 데마는… 자기가 원해서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몇 년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어머니가 죽어 가며 누워 계시면서 “빌, 내가 어떻게 되겠니?”라고 물으셨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전에는 제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애초부터 실패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통해 일하시는 도구일 뿐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또 다른 것도 한다는 그 대단한 사람들을 보거든 멀리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수님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대로만 일한다. 아버지께서 무엇을 할지 내게 보여 주시면, 나는 가서 그것을 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 데마는 바울을 보았습니다. 그런 사역을 가진 사람이면서도 너무나 가난하여 겉옷을 한 벌밖에 소유하지 못했고, 디모데에게 그것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겉옷 한 벌!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와 같은 본을 보였습니다. 그분께서도 겉옷이 한 벌이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에게 부와 많은 돈과 그런 것들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이제 보십시오. 바울에게는 권능이 있어서, 자신이 전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서서 “네가 한동안 눈이 멀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구리 세공업자는 그 사람보다 열 배나 더 심하게 그를 대했는데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습니다. 데마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라고. 저 나이 든 사람은 이제 끝났어. 사역을 잃어버렸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는 사역을 잃지 않았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셨다가 도로 빼앗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습니다.
자, 보십시오. 바울은 엘리야와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산에 올라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라고 명했고, 불이 떨어졌습니다. 물을 달라고 부르짖자 물이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메시지에 따라 명령하고 사백 명의 제사장을 죽였습니다. 그들의 목을 베어 언덕 아래로 굴러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협박을 받고는 달아났습니다. 자그마한 위선자 여자 하나, 아니, 믿지 않는 여자 말입니다. 이세벨, 모든 일의 중심에 있었던 그 조그만 여자가 그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여자부터 먼저 처치했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일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분의 종들은 오직 그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할 때만 일할 수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방식에 따라 여러분도 움직여야 합니다. 제가 얼마나 여러 번 형제들과 앉아 의논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그들에게 다가가 악수하며 “형제 여러분, 상관없습니다. 그저 계속 형제로 지냅시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제 사명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역자들 가운데 서 있으면 이런 말을 듣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 아주머니가 저기 계십니다. 저는 형제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압니다. 가셔서 아주머니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도 할 수 없었고,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는 것은, 바울이… 바울과 함께 말씀을 전하던 데마는, 바울이 거기 누워 있는 다리 저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에게 병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대의 발로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낫게 하십니다.” 그가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친구 데오빌로[드로비모]를 병든 채로 남겨 두었습니다. “바울이 사역을 잃어버렸어.” 데마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신유의 은사가 있었다면, 왜 가서 그렇게 충실하게 자기 곁을 지켜 준 그 친구를 고쳐 주지 않았을까? 그는 ‘그를 저 위에 병든 채로 두고 왔노라. 또 내게 겉옷이 없으니, 네가 올 때 그 겉옷을 가져다오. 그리고 그 구리 세공업자를 조심하여라. 그가 그 도시의 집회를 완전히 망쳐 놓았다. 나는 그 도시를 떠나야 했다. 그가 나를 감옥에 집어넣었노라.’라고 했어.” 제 생각에 데마는 “이 사람이 대체 어떤 설교자가 되어 버린 거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형제여, 오늘날 세상에는 그런 데마의 영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 아시겠습니까? 설명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깨닫지 못할 테니까요.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종은 그 발자취를 따릅니다.
여기 우리 집사님 중 한 분인데, 오늘 밤 여기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토니 자벨입니다. 보통 여기 계십니다. 얼마 전 그가 이곳에 오기 전에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꿈을 꾸었습니다. 이상한 꿈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꿈에서 저는 위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은 예복을 입고 책을 읽으며 오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천국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내 앞에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조금 더 가자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도 검은 예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또 다른 목사였습니다. 그 두 목사는 모두 저와 개인적으로 친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 산꼭대기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이쪽을 보시오. 저 멀리 꼭대기에 서 있는 자그마한 사람이 보이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거기 멜빵바지를 입고 카우보이모자를 쓴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켄터키에서 어떤 사람이 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사람은 아무리 봐도 설교자처럼은 안 보이는군.” 농부처럼 보이든 무엇처럼 보이든, 여러분,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저였다고 합니다. 그가 제게 올 때까지 올라오자, 제가 그의 팔을 잡고 산꼭대기에 이를 때까지 더 위로 인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나가야 할 광야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토니, 나는 여기서 자네를 떠나야 하네. 이 길의 일부는 자네 혼자 걸어야 하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리 오게, 토니. 저 아래를 보게. 피가 고인 저 맨발 자국들이 보이나?”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껏 따라온 것이 저 발자국들이네. 계속 저것만 따라가게.” 제가 사람들에게 가리켜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신조나 어떤 느낌이 아니라, 성경으로 인도하는 그 피 묻은 발자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백만장자 친구가 그렇게 많은데 겉옷은 한 벌뿐인 사람. 사람의 눈을 멀게 할 권능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도시에서 쫓아내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일어나 떠났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친구는 병든 채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데마가 그를 떠났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전부 그를 떠났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한 번의 집회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집회에서 말씀을 충실히 지킨다면, 사람이 말씀을 충실히 지킨다면 사람들이 그를 떠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가 진리를 지키면 사람들은 그를 떠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 이제 데마와 그 사람들 중 몇몇이 어떻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성경을 아는 우리는 모두 누가가 의사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바울은 가는 곳마다 이 의사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신유를 전하면서도 자기 친구는 병든 채로 남겨 두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겉옷은 한 벌뿐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도시에서 쫓아내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바울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확히 그 피 묻은 발자국을 밟고 있었습니다. 계속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
데마는 현재의 이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을 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데마 박사님. 박사님께서 박사 학…을 받으신 것을 압니다.” 오, 물론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회당에 서서 ‘랍비’라 불리는 것 등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더 큰 정죄를 받을 뿐이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이 의사가 그를 따라다니거나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을 압니다. 바울은 누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기를 “누가만이 그를 버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그에게 잘해 줍니다. 누가는 그에게 유익합니다. 바울의 사역에는 누가가 필요합니다. 이 의사는 신유를 전하는 사람을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습니다. 신유를 전하는 그 사람은 다리 저는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그 밖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환상을 보고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말할 수 있었는데도 자기 동역자는 병든 채로 남겨 두었습니다. 백만 달러를 가질 수도 있었고, 수만 달러짜리 건물들과 큰 학교 같은 것을 지을 수도 있었는데, 몸에 걸칠 겉옷조차 한 벌밖에 없었습니다.
데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과 어울리지 않겠어. 그는 그저… 수준이 낮은 사람이야. 나는 교단의 형제들에게로 가겠어.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저도 가서 백스터 형제님이 일을 마친 직후에… 아시겠습니까? 그 가엾고 자그마한 사람을 그런 형편에 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그 곁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영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 그 뜻을 행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바울을 그런 상태에 버려두었습니다. 버려두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버렸습니다.
제가 그것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종은 조만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그를 버릴 것입니다. 이제 그 점을 잠깐 살펴보고 싶습니다.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도 여기 오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말씀을 충실히 지킬 때는 언제나 모두가 그를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에서든 역사에서든 어느 곳, 어느 때를 골라도 좋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인기가 많든 충실함을 지키고, 말씀을 충실히 지켰을 때는 종교계가 그를 버리고 잘라 내는 때가 왔습니다. 직접 읽어 보십시오.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고,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서 시작해 니케아 교부들을 거쳐 내려와 보면, 말씀을 굳게 지킨 모든 사람, 모든 성도, 모든 선지자, 하나님의 모든 참된 종은 종교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내쳐졌습니다. 바울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똑같을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그런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반드시 와야 하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역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을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겠지만, 사람들은 그의 손아래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은 사역을, 세상을 자기 손아래 두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주인의 손아래 둘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인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고, 서로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가운데 위대한 사람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크신 분은 오직 한 분, 우리 주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조직을 하나님보다 훨씬 더 크게 만듭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이런 교회, 저런 교회, 위대하고 거룩한 감독들” 등 말입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돌리는 영광입니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거룩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십니다. 그것은…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그것을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들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그것을 하는 이는 그가 아닙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대를 따라 내려오며 그 참된 종들을 발견합니다.
이제 제가 잠시 살펴보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충실히 지켰는데 모든 사람이 그를 버렸을 때,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나서셔서 그 사람을 변호하시고 그의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 안에 위로가 있습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세상이 무슨 일을 하든,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이 하는 일 위에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 찬송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노래를 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고,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라. 주여, 기다리기를 가르쳐 주소서. 주여, 무릎 꿇고 기다리기를 가르쳐 주소서. (저는 이 부분이 좋습니다.) 주님께서 정하신 좋은 때에 제 간구에 응답하시리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에 기대지 않도록 가르치시고, 오직 기도하며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게 하소서.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주인께서 나서실 때를 기다리는 참된 종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성경기록은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기록은 반드시 참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통 그런 때에 나서셔서 그들을 도우십니다.
버림받았을 때의 엘리야를 살펴봅시다. 왜 버림받았습니까? 말씀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쫓겨났고, 조직에서, 심지어 국가적인 조직에서, 곧 이스라엘의 국가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제사장들과 모두가 그를 내쫓았습니다. 그에게는 바울이 가진 것만 한 겉옷조차 없었고, 그저 조그만 양가죽, 아니, 가죽 조각 하나를 몸에 걸치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 앉아 새들이 주는 것을 먹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현대적인 길로 갔습니다. 그 나라의 영부인 이세벨이 온갖 유행과 그런 것들을 내놓았습니다. 제사장들은 그것에 굴복했고, 모든 설교자 등도 거기에 발맞추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그것 때문에 버림받아 마침내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저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까지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저 아래에 내게 아직 칠천 명이 있느니라.”
저는 엘리야가 자기만 남았다는 생각에 우쭐했던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저 너무나 버림받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회를 열려고 제사장에게 갈 때마다 사람들이 그를 내쫓았습니다. 이곳으로 가면 “여기서 나가시오, 광신자! 여기서 나가시오! 가서 그런 일이나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가 왔을 때 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심지어… 그 젊은 사람은 대머리였는데, 사람들은 자기 어린 자녀들을 내보내어 그 늙은 ‘엉터리들’을 조롱하게 했습니다. 두 사람 다 엉터리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대머리 영감! 대머리야, 너는 왜 엘리야처럼 올라가지 않았느냐?” 그들은 엘리야가 올라갔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엉터리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에 충실했고, 그들의 사역은 입증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굳게 섰습니다. 좋습니다.
다니엘은 충실한 입장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어디서 가져오는지 아실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아니, 다니엘서 9장인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말씀을 위해 충실한 입장을 지켰을 때 말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왕의 오른팔이었지만, 말씀을 위해 충실한 입장을 지키자 쫓겨나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 청년들도 말씀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왕이 이런 칙령을 내렸습니다. “비파 소리가 나고 나팔이 울리는 등, 그때 누구든지 그 형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 우리의 형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는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지리라.” 하지만 그들은 형상에 등을 돌렸습니다. 얼마나 인기를 잃든, 사회에서 얼마나 철저히 쫓겨나든 상관없이 말씀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또 한 사람, 야곱이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고, 자기 사람들을 만나러 집으로 돌아가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부름에 충실하고 그 인도하심에 충실하게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잘 지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그에게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쪽으로 곤경에 처했습니다. 이쪽에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고, 이쪽으로는 자신을 미워하는 형 에서가 군대를 거느리고 그를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 브니엘이라는 작은 시내에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난처한 처지였습니까! 그를 미워하는 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그를 만나러 오고 있었고, 여기에는 아내가… 두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시내 이쪽에 있었습니다. 그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살던 땅에 그대로 있었다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고향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사람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도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에 충실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한다.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그 말씀에 언제나 충실하셨던 예수님께도, 모든 친구를 잃는 때가 왔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분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모두가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에 대한 신뢰를 잃었습니다. “무덤 속의 죽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그를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고하여 한 번도 틀리지 않은 분이 어떻게 법정에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수염이 뽑혀 얼굴에 피가 흐르고, 술 취한 군인들이 뱉은 끈적한 침이 얼굴을 타고 흐르고, 머리에는 천이 씌워진 채로 말이다. 사람들이 막대기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며 ‘예언해서 누가 당신을 때렸는지 말해 보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소.’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제자들은 그저 “아…” 하고 떠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렇게 빨리 잊습니다! 모세가 홍해에 서서 했던 말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열 번이나 행하셨는데, 여러분은 아직도 그토록 무심하여 그분께서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합니까?” 그는 그곳에 내려가 그 땅들을 쳤고, 그 땅들에 저주를 내렸습니다. 개구리와 벼룩과 파리와 온갖 것을 불러왔고, 처음 난 모든 것을 죽이는 일격을 내렸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그 땅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홍해에서 그를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빨리, 인기가… 그들이 그렇게 다가오는 십만 명의 번쩍이는 큰 창들을 보았을 때, 아니, 어쩌면, 그렇습니다, 어쩌면 백만 명의 군대가 다가왔을 때, 병거가 요란하게 달리고 먼지가 날리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저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모세여, 우리가 차라리 거기서 죽었어야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불신으로 인해 광야에서 죽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 당신의 사역은 끝났소. 그뿐이오. 당신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오.” 보십시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갈릴리의 젊은 랍비, 곧 선생이자 선지자이신 예수님께도 똑같았습니다. 그분께서 그 모든 기적과 그런 일들을 행하고 계셨는데 말입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서서 그런 일을 참아 내실 수 있는가? 무덤의 봉인을 깨고 영원 속에서 죽은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 어떻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슬로 묶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가? 과부의 죽은 아들에게 말씀하여 다시 살리실 수 있고, 무덤에서 죽어 썩은 나사로를 불러내실 수 있는 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떻게 서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족쇄에 묶이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고도 입을 열지 않으실 수 있는가?” 제자들은 “그분께서 사역을 잃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 이 가련한 세상을!
그분의 교회조차도 그랬습니다. 그분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시며 사랑하셨던 그 열두 사람도 그분께 등을 돌렸습니다. 단 한 사람만 곁에 남았습니다. 요한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소망이 사라진 바로 그때, 그분께서는 묶인 채 그리로 끌려가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셨고, 등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기록을 성취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성경기록을 정확히 글자 그대로 성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사람들은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이 교단들은 왜 격분합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눈먼 상태로 그 안에 걸어 들어가 스스로 그 일을 행합니다. 유다가 자신이 유다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파라오가 자신이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서가 그것을 알았다면 그런 일들을 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기록이 그대로 펼쳐지는 것을 보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제 그분의 교회가 그분을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과 자연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버림받은 사람 이야기를 하자면, 바울이 버림받은 것은 그분께서 당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 지으신 바로 그 피조물조차 그분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달과 별과 해와 모든 것이 빛을 거두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자연과 모든 것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그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분께서는 홀로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사역을 잃으셨습니까? 사역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사역을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사역에 따르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드시 함께 따라야 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나서셨습니다. 말씀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말씀을 굳게 지키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말씀은 반드시 스스로 펼쳐져 이루어져야 합니다. 실패할 수 없는 말씀은 반드시 스스로 펼쳐져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역사했다면, 지금도 똑같이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의 충만이심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그분을 버렸습니다. 온 창조세계가 그분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 별들과 달까지 말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셨을 때 빛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며.”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셨습니다. 만물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회심시키려고 애쓰는데, 우리가 회심시키려 애쓰는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를 버리고 떠납니다. 아시겠습니까? 말씀이 참으로 나타나야 할 때가 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나서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생애에서 처음 일 년 반 동안 그분께서 행하신 능력 있는 일들을 보십시오. 오, 얼마나 능력 있는 분이셨습니까! 이 땅에 그분과 같은 분은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이 받은 것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자연에게 조롱받고, 피조물에게 조롱받고, 모든 것에게 조롱받으셨습니다. 그것들이 왜곡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참된 종을 조롱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왜곡된 자연이 지금도 이렇게 아름답다면, 다시 하나님의 뜻에 맞게 바뀌었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두 사람이 등에 메고 가야 할 만큼 큰 포도를 땅이 낼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왜곡된 땅인데,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졌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막이 장미같이 필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메마른 곳들이 물로 인해 다시 살아나고, 땅은 활짝 꽃을 피울 것입니다. 오, 참으로 놀라운 때일 것입니다. 지금 자기 선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면, 그들이 그곳에 살 것입니다. 아멘.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어두운 시간, 갈라지는 바위와 어두워지는 하늘 가운데, 내 구주께서 머리를 숙이시고 죽으셨네. 열린 휘장은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낮으로 가는 길을 드러냈네.” 우리를 위해 길을 내시려면 그분께서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말씀을 충실히 지키셨고 십자가를 끌어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분 사역의 끝이었습니까? 그분의 사역이 끝장난 것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씌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왕관을 그 사역에 씌워 주셨습니다. 부활절 아침, 부활 때에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사역에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버렸다고 해서 그분께서 끝나신 것이 아닙니다. 왕관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버림받으셨기 때문에 왕관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을 때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금 전에 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광야에 누워 새들이 가져다주는 것을 먹어야 했던 그 가엾고 지친 늙은 선지자 엘리야 말입니다. 자그마한 몸은 야위고 쭈글쭈글하며 갈색이었고, 옆구리에는 작은 기름병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수염은 덥수룩했고, 머리는 아마 벗겨지고 햇볕에 그을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작고 늙은 가슴속에는 하나님의 영께서 고동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작고 늙고 지친 종이 끝에 다다르고, 모두가 그를 버리고 모든 것이 그렇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그분께서 그를 저버리셨습니까? 병거를 내려보내어 지친 종을 태우셨습니다. “에녹처럼 걸어 올라올 필요도 없다. 내가 병거로 너를 집에 데려가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심으로 그의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집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지쳤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저 병거를 보내어 태워 가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가엾고 작고 늙고 지친 종을 그분께서 태워 집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그토록 충성되게 섰던 바로 그때, 그가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 말이오. 한때 이 왕국에서 대단한 사람이었소. 온갖 일을 다 말했지. 점쟁이들을 불러다가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기도 했소.”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 그리고 그가 어떻게 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다리오가 다스릴 때 하나님께 충실했던 사람은 다니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며 다른 어떤 것과도 섞으려 하지 않은 사람은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제 그의 사역은 끝났소. 지역 신문에서 보았는데, 며칠 뒤 사자 굴에 던져질 거라오.” 연방 교도소 같은 곳에 간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를 사자 굴에 던질 것이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변화시키심으로 다니엘의 사역을 인쳐 주셨습니다. 다리오는 세상의 모든 언어와 백성에게 조서를 보내, 모든 사람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구출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러니 보십시오. 사람들이 사람들을,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하나님의 종들을 버리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왕관을 씌우시는 때로 그들의 사역을 인쳐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다스릴 때 그 형상에 절하려 하지 않았던 히브리 청년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실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형상 앞에도 절하여 그것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지역 신문과 뉴스에 온통 그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 시대에는 무엇이었든 소식을 퍼뜨리는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지역 신문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도록 그렇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들을 일곱 배 더 뜨겁게 한 불타는 용광로에 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며칠 전부터 온갖 재료를 넣어 용광로를 몹시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일곱 배로 과열했습니다. 백 야드 안으로만 들어가도 타 버릴 정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청년들은 곧장 불타는 용광로 안으로 들어갔다가, 몸에 불 냄새조차 없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그와 그 자녀들을 죽이고, 그 집을 불태워 거름 더미로 만들라.”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말씀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세계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언제나 놀라운 보답이 따릅니다.
조금 전에 야곱을 언급했습니다. 여기 그의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여기 그는 겁쟁이였지만, 그래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쪽에 있는 에서를 두려워했습니다. 세상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었지만, 늘 그 말씀에 충실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그는 바로 자기 의무를 수행하는 길에 있었고, 저기에는 군대를 거느린 에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이름이 ‘남의 자리를 빼앗는 자, 사기꾼’이라는 야곱에서 ‘하나님 앞의 통치자’인 야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는 사역에 왕관을 받은 채 걸어 나왔습니다. 곧장 나가 에서를 만났고, 그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멘.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의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좋습니다.
많은 제 형제들이 오늘날 자기 교단의 형제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중 한 이름만 말해도, 어디서든 불이 붙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특정한 이름을 말하기만 하면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날 강가에서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전 세계 부흥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 위대한 복음 전도자들 모두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곧장 자기 형제들에게로, 자신이 나왔던 그 교단들로 돌아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곳으로 나와 이 집회를 열고 교단들과 어울렸다가, 다시 그 교단 안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많은 호의를 얻고, 라디오와 신문과 모든 곳에서 이름을 날립니다. 모두가 그들을 좋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참된 말씀을 붙들고 말씀 편에 섰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를 버렸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교단의 철학을 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그것이 제 사명이었습니다. “말씀을 굳게 지켜라.” 테이프로 이 말씀을 듣고 계신 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분 가운데 가서 그저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환상을 말하며 여러 일을 보여 줄 때는 제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에 관한 진리를 전하자, 무엇 때문에 제게 등을 돌리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성취하는 것임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들어갈 곳을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편지가 끊임없이 옵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대단히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속한 어떤 교단이 믿음에서 뒤로 물러나고 있다고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형제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우리 교단 형제들 스물다섯 명쯤이 형제님의 집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형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 우리는 곧장 일어나 나가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를 버렸지만,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 곁을 지켜 주셨습니다! (한 가지입니다.) 저는 저 아래 강가에서 일어났던 그 하늘의 환상에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충실했습니다. 그분께서도 제게 신실하셨습니다. 저는 언젠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분께서 제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충실하게 지키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일지, 언제일지 모릅니다. 그분께서 준비되시면 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명확한 말] 저는 그분께서 이것으로 제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씀의 옷을 가져다가 그분의 신부에게 말씀의 옷을 입히고, 그분의 의를 위하여 그렇게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제게 왕관을 씌워 주시고, 그날 거기 서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올라야 할 언덕이 참 많습니다. 힘이 들고, 때로는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길을 가리켜 주시는 분은 무엇이 가장 좋은지 정확히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십니다. “우리가 길 끝에 이르면, 길에서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리.” 그 피 묻은 발자국을 찾아갑시다. 친구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갈릴리 바닷가 그 나그네의 발자국 속으로 모래가 씻겨 들어갔고, 거친 물결을 잠잠케 하시던 그 음성은 유대에서 더는 들리지 않네. 하지만 그 외로운 갈릴리 사람의 길을 오늘도 기꺼이 따르리. 내가 길 끝에 이르면 길에서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리.”
제가 읽은 이 성경 말씀의 첫 부분을 그분께서 제게 주셨을 때, 저는 젊은이였습니다. 그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고, 숱 많은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한 채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깨가 굽고 머리가 벗겨지고 희어져, 쉰세 살의 늙은 사람이 되어 서 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분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은 그분께서 위해 죽으신 교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 자신의 피의 의로 옷 입고, 그분의 말씀과 그 말씀의 의로 단장한 교회를 말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결코 실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씀 편에 서서 말씀에 충실하고, 말씀이 제 안에 거하며 제가 그분 안에 거한다면, 그날 저는 충실히 지킨 것을 기뻐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시지요?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제 동료 중 일부까지도 “아, 브래넘 형제님은 완전히 끝났어.”라고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완전히 끝났어.” 아시겠습니까? “아, 이제 무슨 일을 한다는 소식이 별로 들리지 않잖아.” 아시겠습니까? 그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바울이 “이제 내 때가 다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바울의 마음속 가장 큰 소원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는 그들 모두가 마음으로 그것을 소원했습니다. 여러분은 「폭스의 순교사」와 「니케아 공의회」를 읽어 보셨습니까? 폴리갑과 그 밖의 여러 사람이 사자 굴로 걸어 들어갈 때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그것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였습니다. 순교자가 될 것을 알면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기둥에 묶여 불태워질 때, 순교자가 되는 영예 때문에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바울이 목이 잘릴 도마를 향해 걸어 내려갈 때, 그는 갇혀 있던 감옥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그들이 그를 가두어 두었던 저 아래 자그맣고 더러운 곳, 벽에 뚫린 그 구멍에서 말입니다. 저는 그곳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뒤에는 그들이 그의 시신을 던져 넣었던 조그만 개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를 성인인가 무엇인가로 만들려고 합니다. 바로 같은 무리의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는 그곳으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쳤으며, 믿음을 지켰노라. 나를 위해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나뿐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니라.”
이제 우리는 6절에서 18절까지 내려왔습니다. 제게는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저는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끝마치실 때까지 계속 말씀에 충실하겠습니다. 오늘날 사역이 와 있는 곳은 여기입니다. 저는 끝장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씻김을 받아 왕국 안으로 들어간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동안 머리를 숙입시다.
오늘 밤 보좌에서 내려오는 작은 밧줄이 있습니다. 생명줄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있는 회심하지 않은 모든 사람 곁을 그 줄이 스쳐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죄인인 친구여, 손을 뻗어 붙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나이가 드셨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아마…”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형제여, 자매여. 저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이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제 삶을 바쳤습니다. 제게 아쉬운 것은 단 하나, 바칠 삶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게 만 번의 삶이 있다면 모두 이것을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밤 그 줄이 여러분 곁을 지나갈 때 붙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것을 붙잡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얘야, 네게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네가 가서 무언가를 해서 자격을 얻은 다음, 무엇을 했는지 내게 말해 보아라. 나도 그렇게 하고 싶구나. 여러분이 자격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격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여러분을 위해 마련된 길을 붙잡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에 빠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빠져 죽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생명줄을 던져 주셨으니, 오늘 밤 손을 뻗어 붙잡읍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가 말씀드린 바로 그 아침, 바로 이 땅 위에서 교회를 봉헌하던 때, 바로 이 강대상, 이 같은 자리에 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 모퉁잇돌은 아직도 거기에 있고, 제가 그것을 적었던 성경 한 장이 여전히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주 예수님, 주님의 은혜로 말씀을 충실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것이 다른 때에 일어났던 것과 정확히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을 봅니다. 저는 세계를 다니고 돌아와, 오늘 밤 다시 이 태버내클에 있습니다. 그 작은 모퉁잇돌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그 종이도 그 안에 있습니다. 주님, 저를 살펴보소서. 저는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주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실패한 일에 대해 간증했듯이, 여러 번 주님을 실망시켰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하자마자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최근에 우리가 갈 그곳을 제게 보여 주셨음을 압니다. 주님, 이제 언제 저를 쓰시는 일이 끝날지 저는 모릅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늘 밤 여기 있습니다. 언제 끝내실지는 모르지만, 이 일이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때가 오면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섰던 것처럼 저도 서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 목숨으로 제 간증을 확증해야 하든, 무엇을 해야 하든, 주님, 그때 왕관을 씌워 주소서. 제게 왕관을 씌우지 마시고, 제가 전해 온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소서. 주님,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부활 때 저를 다시 일으키기에 능히 충분함을 압니다. 저는 제가 전한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작은 교회가 여전히 서 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위해 그 입장을 취했을 때, 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여섯 달 안에 저곳은 자동차 정비소로 바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삼십 년이 지났습니다. 이 교회는 여러 해 동안 그랬던 것보다 오늘 더 뜨겁게 불타고 있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우리의 목사님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집사님들과 관리위원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 모두에게는 맡은 작은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싶고, 바르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 밤 이곳에 우리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하는 길은 그저 이 작은 생명줄을 붙잡고 당기기 시작하여, 손목에 감고 마음에 묶은 뒤 “주님, 이제 당겨 주소서. 저를 들어 올려 주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나아와 금처럼 빛날 것입니다. 주님,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이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가르쳐 온 것처럼,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진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 외에는 더 일어날 일이 없다는 것을 봅니다. 주님, 왕관이신 그분께서 친히 오시는 것을 보는 것이 말씀에 얼마나 위대한 왕관이 되겠습니까? 저는 여기 서서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저분이 어린양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한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기다려 온 어린양을 보십시오. 바로 이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속히 자신의 성전에 오셔서, 휴거로 자신의 백성을 데려가실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를 준비시켜 주소서. 주님의 피로 우리 마음을 씻어 주소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소서. 말씀이 우리를 붙들고 효력을 나타내시려면 우리가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죄인에게 회개를 허락하소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소서. 성도들을, 주님, 여러 해 동안 전선에서 싸워 온 이 나이 든 소중한 용사들을 축복하소서. 그들은 비웃음을 당하고 험담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있으므로 여전히 계속 나아갑니다. 자기들이 믿어 온 분을 알며,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질병을 없애 주소서. 아버지 하나님, 친히 영광을 받으소서.
주님, 제게는 소중한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시대를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음을 압니다. 소중한 친구들, 사랑하는 친구들, 젊은이와 노인들을 우리가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이제 주님, 우리를 충실하게 하소서. 그저 말씀에 충실하게 하소서. 언젠가 슬픔도 근심도 다시는 없는 더 나은 땅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께서 속히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분께서 오시리라고 믿습니다. 이제 주님, 오늘 밤 여기 있는 믿지 않는 사람을 축복하소서. 그가 오늘 밤 믿는 사람이 되어 주님을 자기 구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여기 머리를 숙인 분 가운데 이렇게 말씀할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저는 선한 싸움을 싸우며 이 길의 끝에 이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손을 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그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분도, 저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선한 싸움을 싸운 뒤 제 길의 끝에 이르고 싶습니다. 바로 지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아십니다. 이 여러 해, 이제 약 삼십이 년 동안 강단에 서면서 그분에 대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모든 움직임을 아신다는 것을 알 만큼은 이제 배웠습니다. 그분께서는 참새를 보십니다. 여러분의 머리털도 세어져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진심으로 손을 드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다음 침례를 받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여러분의 죄들의 사면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침례를 받을 때 죄가 사라졌다는 여러분의 간증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고백했고, 믿습니다. 이제 생명줄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이렇게 말할 때 붙잡지 않으시겠습니까? “나그네여, 이 길로 오너라. 나와 함께 길을 가자. 내 십자가를 네 위에 지고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내 짐은 가벼우니라.” 그저 손을 뻗어 붙잡으십시오.
오늘 밤 여기서 이 길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 중, 오래전에 출발한 것이 기쁜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미 출발하여 길을 한참 걸어왔고, 여전히 끝을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사역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그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주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역에 왕관을 씌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자일 수도 있습니다. 집사일 수도 있습니다. 평신도일 수도 있습니다. 농부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의 영광 안에서 여러분의 삶에 왕관을 씌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여러분을 휴거시켜 다른 땅으로 데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제가 말씀드린 그 작은 물고기가 저 아래 어둠에서 나왔을 때처럼 느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런 몸으로는 그곳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이 우주 비행사들처럼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압력을 맞춘 용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곳의 압력에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변화시키시면 그때는 압력이 맞추어집니다. 그때 휴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오래된 땅의 감각들이 사라지고, 여러분은 그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든 이 손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진심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어느 때에도 실패하지 않게 하소서. 혹 실패하더라도, 곧바로 아버지와 함께 계신 그 변호자를 의지하게 하소서. 아버지, 저는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온갖 실수를 저지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제게 있다는 것을 곧바로 발견하고 다시 은혜 안으로 돌아옵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이 닦아 주십니다. 거기에는 피 흘린 희생물이 놓여 있고, 저는 그분을 제 구주로 고백합니다.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위해, 주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리고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우리의 혼 위에 너무나 감미롭게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이 영광스러운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얼마 전 캐나다에서 내려오며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다시 한번 옛날 같은 부흥 집회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성도들이 찬송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그런 집회 말이야.” 주님, 제 마음이 그것을 얼마나 사모하는지요. 이 태버내클에 그런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오, 하나님의 권능이 은혜의 시내처럼 쏟아져 내려 모든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주님, 이 작은 곳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곳을 이런 모습으로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이곳을 영적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 제가 아는 한 이 나라에서 가장 영적인 작은 곳은 바로 여기 8번가와 펜 스트리트라고 믿습니다. 주님, 이 일로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교회들에 가 보면 차갑고 무관심하며, 여자들은 너무나 뻔뻔하여 부끄러워할 줄도 모릅니다. ‘아멘’ 한마디도 없고, 뺨에 눈물 한 방울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신조를 외울 뿐입니다. 오 하나님, 그러다가 모든 사람의 마음의 제단마다 불이 타오르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작은 곳에 들어오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아버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언제나 이 모습이 계속되게 하소서. 이제 우리 모두를 함께 축복하소서.
내일은 안식일입니다. 주님, 아침에 제가 그 ‘카운트다운’을 설교하게 된다면 저를 도우소서. 하나님,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전하게 하소서, 주님. 그리고 이제 그들이 사역의 상태와 사역이 어디에 와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든 일이 왜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게 하소서. 5절부터 계속 읽고 나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깨닫게 하소서. 이제 아버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 몸에 충분한 쉼을 주시며 내일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벽을 따라 둘러서서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몸무게를 옮기며 서 있는 이 모든 사람을 축복하소서. 저 바깥 빗속과 창가에 서 있는 여자들과 남자들,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소서. 주님, 여기저기 있는 그들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먼저 디모데후서 2장 4절, 디모데후서 4장, 5절부터 아래로 읽어 보십시오. 가능하다면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를 버렸습니까? 왜 그는 오지… 이제 그 사역을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일과 비교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비교해 보십시오. 제가 보았던 그 작은 천국의 경험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바울도 자기 사람들과 함께 서야 합니까?” 그들이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전했던 것과 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정확히 같은 복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자 수백만 명이 손을 번쩍 들며 “우리는 그것을 의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때까지! 예수님 발 앞에서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