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네빌 형제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께 참으로 풍성한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다시 이 건물에 돌아와,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임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오늘 저녁의 짧은 메시지를 들으려고 많은 분이 더 머무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중에는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먼 길을 운전해야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듣기로는 이미 모텔에서 퇴실하신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을 오래 붙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찍 마칠 수 있도록 일찍 들어왔습니다.
이제 가능한 한 빨리,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이 책들, 아니 이 장들을 언제부터 다룰 것인지 묻는 전화를 몇 통 받았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에 시작할 때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봉인과 보통의 일곱 봉인을 다루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때 마치면 책 뒷면에 있는 일곱 봉인을 다루겠습니다. 아시겠죠?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열린 일곱 봉인이 있고, 일곱 재앙과 일곱 나팔, 그렇게 모두 일곱씩 있는데, 우선 그 봉인들을 다룰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책 뒷면은 일곱 봉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다니엘은 천둥처럼 울리는 그 음성을 들었지만 기록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도 기록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책 뒷면에 봉해져 있었습니다. 곧 책에 있는 모든 신비가 전해지고 계시된 뒤의 일입니다. 다니엘이 거기서 이렇게 말했지요. “이 음성들이 나는 날들의 신비, 그때쯤이면 하나님의 신비가 밝혀져야 한다.” 아시겠죠? “그 신비”, 곧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육신이 되셨는지, 이런 모든 것이 그때쯤이면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책 뒷면에 있는 일곱 봉인을 다룰 준비가 됩니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계시되지도 않았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정확히 일치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서둘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친절과 참석, 또 해 주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앉아서도 서서도 참을성 있게 들어 주십니다. 아내가 뒤에서 어젯밤 이야기를 하며 이러더군요. “몸집이 제법 큰 여자분들도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서서,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늘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머물기를 원합니다. 나와서 그분들에게 정직한 진리, 오직 진리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그분들이 그 진리를 의지할 수 있고, 그러면 다 잘될 것입니다.
이제 잠깐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가 조금 일찍 나갔습니다. 지금은 녹음기를 꺼 놓은 상태입니다. 잠시 뒤에 녹음하시는 분들에게 언제 녹음기를 켜야 할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떠나기 전에 5분 정도 들여서 “카운트다운”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제가 잊고 그냥 가 버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카운트다운이 무엇이었지?” 하는 의문을 남겨 놓은 셈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카운트다운 중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무엇입니까? 아시겠죠? 카운트다운이 무엇인지 모르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까 말하던 것과 같은 어조로, 지금 이 녹음을 끝내려고 합니다. 그래야 “카운트다운”이라는 녹음테이프가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잠시만 양해해 주십시오. 그 녹음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잠깐만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런 다음 다른 것을 시작하겠습니다. 자, 녹음하시는 분들은 지금 녹음기를 켜 주십시오. [테이프의 공백.]
…여러 곳에서 오셨고, 지난 세 번의 메시지에서 우리가 전해 온 여러 교리와 그 밖의 주제들을 이야기하며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났는데, 녹음하시는 분들이 테이프를 바꿀 수 있도록 여기에 조금 여유를 두어야 합니다. 켤 준비가 되면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이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짜 맞춘 형식적인 절차처럼 보이지만, 저 형제들이 녹음을 해야 하니까요. 녹음이 뒤죽박죽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밖에서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누가 방에서 잠깐 나와서, 주니어, 테이프를 교체할 준비가 되었을 때 제게 신호를 보내 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친절과 그 밖의 모든 일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습니다. 이제 준비되었습니다. 켜셔도 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녁 다시 타버내클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사흘 동안의… 아니, 세 차례의 예배를 드리는 동안, 오늘 저녁에도 이곳은 가득 차서 많은 분이 주위에 서 계십니다. 이 테이프를 듣는 분이 계시다면, 어젯밤 테이프도 구해서 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집에서 깊이 살펴보십시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이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특히 목사님들께서는 제가 그 교회를 방문하고 그 가정에 찾아가기 전에 그 테이프를 들으셨으면 합니다. 꼭 구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는 “카운트다운”, 곧 떠날 준비가 된 교회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분의 임재 안에서”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요. 먼저 여러분 모두 저와 함께 성경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이사야서 6장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알듯이 이사야는 대선지자였으며, 그 시대의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하다가 톱에 몸이 잘려 순교자로서 생을 마쳤습니다. 이사야서 6장 5절부터 읽겠습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이는…” 1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잠깐만 양해해 주십시오. 1절부터 시작해서 8절까지 읽읍시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또한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그것 위에는 스랍들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채 서 있었으며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는 날더라.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군대들의 주 하나님이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니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 찼더라.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또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이 왕 곧 군대들의 주를 보았기 때문이라, 하매 그때에 스랍들 중 하나가 부집게로 제단에서 살아 있는 숯을 취해 손에 들고 내게 날아와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불법이 제거되고 네 죄가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하더라. 또한 내가 주의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므로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니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성경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곳에 있을 때는 스스로 꽤 괜찮다고 느끼고, 자신을 꽤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얼마 전 저는 뉴햄프셔에서 사냥을 함께 하는 친구 버트 콜과 서 있었습니다.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특권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애디론댁에 있는 콜드 브룩 폭포 곁에 서 있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폭포였습니다. 작년에는 가족을 데리고 그 폭포를 보러 갔습니다. 길에서 한참 들어간 곳에 있어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 푸른빛 도는 초록색 물이 엄청난 힘으로 산에서 쏟아져 나와 바위 위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 버트가 서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야, 빌리, 이걸 보니 사람이 정말 이렇게 작게 느껴지는군.”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4분의 1인치쯤 되는 간격을 벌려 보였습니다. 저는 “맞아, 버트”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관해 아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쓴 사람도 어느 날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몇 달 전 프레드 형제님, 우즈 형제님과 저는 매커널리 형제님과 함께 애리조나 사막에 서서 별 하나가 다른 별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가늠해 보았습니다. 수백만, 수십억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서로 4분의 1인치도 떨어져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별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진 거리보다 서로 간의 거리가 아마 더 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그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깨닫고 그분의 임재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 사역 중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곳에 임하면, 한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그 사람의 삶을 드러내고 온갖 부도덕한 행위와 죄를 지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사람들 가운데 거룩한 정적이 흘러, 기도를 받으러 앞으로 나오기도 전에 기도 줄에서 빠져나와 제단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분의 임재 앞으로 나오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때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간이침대와 들것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멕시코에서 그날 밤, 담요 밑에 누워 있던 그 작은 죽은 아기를 스페인인 어머니가 데려왔습니다. 아니, 멕시코인 어머니가 데려왔지요. 수천 명, 어쩌면 한 집회에 모인 5만 명에서 7만 5천 명의 사람들이 그 죽은 아기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을 때, 여자들은 기절했고 사람들은 두 손을 치켜들고 소리쳤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어떤 일을 일으킨 것입니다.
저는 경건한 분들의 말씀을 듣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찰스 피니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는 몸무게가 110파운드 정도를 넘지 않는 자그마한 사람이었지만, 말하는 데 엄청난 힘이 있어서… 어느 날 한 건물에서 음향 상태를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확성 장치가 없었습니다. 그곳의 발코니 위, 아니 지붕 위에서 수리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구인지는 몰랐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피니 씨는 음향 상태를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열 부흥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기도한 뒤,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멀리 전달되는지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는 재빨리 강단으로 올라가 말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아래 머물다 나온 뒤라 그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 사람이 발코니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건물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그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는 모여든 사람들을 수용할 교회가 없어 작은 돌출창에 서서 설교했습니다. 거기서 엄청난 권능으로 지옥이 어떤 곳인지 전하자, 바구니를 팔에 낀 일꾼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중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게 할 수 있었던 위대한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토록 무뎌져서 하나님의 임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첫 사람은 죄를 짓고 잘못을 행하자마자, 하나님께서 그 앞에 오셨을 때, 아니 그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왔을 때, 그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달아나 덤불 속에 숨고 무화과 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려 했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첫 사람이 죄를 짓고 자기 혼에 죄를 지닌 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려 했을 때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숨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양심이 무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에 죄가 깊이 뿌리내린 것처럼, 아직 죄가 그를 사로잡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창조주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매우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덤불 속에 숨어 나오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해 주시기 전에는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창세기 17장 3절로 돌아가 볼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족장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17장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위대한 족장이며 하나님의 종인 그가, 25년 동안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는데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앞에 임하시자 그 족장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며 선지자인 모세가 광야 깊숙한 곳에 있을 때, 그는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훈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식이 풍부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지혜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았습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도 알았습니다. 지적인 관점에서 그것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광야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갔을 때, 그는 신을 벗어 던지고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자신이 거룩한 땅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발로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19절을 보면, 오래전 아브라함 시대부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이, 이삭에게서 야곱이, 야곱에게서 족장들이 나왔습니다. 해마다 세월이 흐르며 거룩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이 세워졌습니다. 택하신 백성, 택하신 민족, 성별된 거룩한 백성으로서 평생 하나님을 섬겨 왔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이곳으로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말하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내 산 꼭대기에 내려오셨을 때, 산 전체가 불에 휩싸이고 용광로처럼 연기가 솟아올랐으며 하나님의 음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했습니다. “모세가 말씀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염려하나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모두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명령들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들이 그분의 임재 앞으로 나아갔을 때, 자신들이 어긋나 있으며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모세가 말씀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가 모두 죽겠나이다. 모세가 우리에게 말씀하게 하소서.”
누가복음 5장 8절에서 베드로가… 오, 우리가 알듯이 그는 무척 고집이 세고 영향력이 크며 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친 사내 같은 사람이었고, 이름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는 분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어업에 관한 온갖 교육과 지식을 갖추고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 모든 물고기를 그물 안에 들어오게 하려면 단순한 사람 이상의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누군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네 그물을 던져라.” 그가 그물을 끌어 올리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혔고, 그는 자신이 죄 많은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오 주여,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성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께 자기 곁을 떠나 달라고 청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담도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가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모세도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도 교회와 민족으로서 자신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그는 “나는 거룩하고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스스로 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말리엘이라는 위대한 스승 아래서 배울 수 있는 신학은 모두 배운 사람으로, 이름은 다소의 사울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이라고 아는 그 사람입니다. 종교적인 일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이름난 사람이요 학자였고, 영리하고 예리하며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아기 때부터 하나님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그 불기둥이 그의 위로 비치자, 그는 자기… 서 있던 자리에서 땅바닥, 흙먼지 속으로 쓰러져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그 모든 훌륭한 훈련, 그 모든 뛰어난 신학 훈련과 교육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신학박사나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든,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을 수도 있으며, 종교적인 행위란 행위는 모두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면 자신이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그 영향력과 권능 아래서 땅에 쓰러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그토록 반대하며 설교해 왔던 바로 그 하나님, 아니 자기가 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을 보고,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자 서 있던 자리에서 땅에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나오는 위대한 성 요한은 어떻습니까? 그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바라보다가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아섰을 때 일곱 금등잔대를 보았습니다. 그 일곱 금등잔대 한가운데 한 분이 서 계셨는데, 머리털은 양털 같고 눈은 불꽃 같으며 발은 놋기둥 같았습니다.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셨으며,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셨습니다. 위대한 성 요한은 그리스도와 함께 걸었고, 그분의 가슴에 기대었으며, 이 모든 일을 했던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드린 대로, 바울의 사역은 그들 누구의 사역보다도 뛰어났습니다. 여기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자고 먹었지만, 그분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 계신 것을 보았을 때 그분의 발 앞에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아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이야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분이 오시는 것을 보면 우리 마음에는 무언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고 십일조를 내면 종교적인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규칙을 지키고 모든 신조를 암송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분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 위대한 사람, 성 요한, 그렇게 위대한 사람도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성경이 말하듯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습니다. 3년 반 동안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서신들을 기록한 사람 중 하나이며, 그분을 뒤따르며 기록하고, 그분과 식탁에서 함께 먹고 침상에서 함께 자며,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함께 교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보려고 돌아섰을 때 기운이 다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바닥에, 아니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방금 읽은 이사야서 6장 5절에서 우리는 이사야를 봅니다. 이 위대하고 능력 있는 선지자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66권이고 이사야서는 66장입니다. 이사야서는 창세기로 시작하고, 중간에서는 신약을 다루며, 끝에서는 천년왕국을 다룹니다. 정확히 창세기, 신약, 요한계시록입니다. 완벽합니다! 이사야는 대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위대한 왕 웃시야의 팔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웃시야를 잃게 되자 낙심했습니다. 그는 꽤 좋은 사람이었고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의로운 왕, 선한 왕이 그를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기 성전에 머물게 했으니까요.
이사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이사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사역자였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성전에 서 있다가 황홀경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는 천사들이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날개로 발을 가린 채 나머지 날개로 날며 이렇게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여!” 그 선지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니이다.” 선지자,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그 천사가 외칠 때 “성전 기둥들이 앞뒤로 흔들렸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러면 여러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는 성전 기둥들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온 하늘과 땅이 흔들릴 것입니다. 산들이 달아나고 바다가 사라지며, “왕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 우리를 숨기라”고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무서운 때가 될 것입니다. 죄인인 친구여,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 이 백성의 입술도 부정하나이다.”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거룩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그날에 죄인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말씀에 관한 카운트다운을 듣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고, 모든 성경 말씀이 의심의 여지 없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서도, 다시 태어나 성령을 받지 않고 천국에 가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경은 말했습니다. “의로운 자가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죄인과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어디에 모습을 나타내겠느냐?” 하나님께서 우리 눈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이 보았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는데, 그런 사람들, 곧 말씀이 기초를 두고 있는 선지자들과 현인들이 부르짖었다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 서게 되겠습니까? 그들이 울부짖고 발아래 엎드려 “나는 입술이 거룩하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입니다”라고 외쳤다면, 자기 죄를 고백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으려는 십대 소년이나 소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에 관해 하나님 자신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그 완고한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생 성경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애쓴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어디에 서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복음 전도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을 흔들어 깨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때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시내 산을 흔드셨지만 다시 흔드실 때가 올 것인데, 시내 산뿐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을 흔드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의 나머지 부분에 주목하셨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이 흔들릴 것입니다. 하늘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땅이 흔들릴 것입니다. “하늘들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그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국을 받습니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며,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흔들지 않으십니다. 아멘! 오, 놀랍습니다! 히브리서의 기록자인 바울은 “그러나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 그런 인물들이 그런 때에 어떻게 느꼈는지 보십시오!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사람들이 본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동일한 불기둥, 동일한 하나님의 권능,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시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스쳐 지나가며 그것을 그토록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의 신조와 교파만 붙든 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날에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본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멀찍이 서서 그것을 비웃고, 어떤 사람은 조롱합니다. 어떤 사람은 광신주의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텔레파시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바알세붑이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름을 붙입니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천사들도 감히 발을 디디지 못하는 곳에 어리석은 자들은 징 박힌 구두를 신고 걸어 들어간다.” 맞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신조가 아니라 그분 자신의 말씀으로 그토록 완전하게 나타나시는 것을 보고도, 바로 그것을 짓밟고 지나가며 비웃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분명히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그 자리에 서야 할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날은 그 사람, 곧 경건하지 않은 사람에게 무서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회개하려는 죄인은 피 흘린 희생물이 자기를 대신하여 서서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 그것이 그에게 위로를 줍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권능을 느꼈습니다. 그분의 손길을 압니다. 그분께서 징계하시는 손길도 압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나 자신은 망하게 된 존재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그곳에 서 계신 한 분이 있습니다. 아멘. 그곳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의 모든 불법을 제게 지우소서. 이 사람이 저 땅에서 저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나는 담대히 하나님의 왕좌로 나아갔습니다. 내 마음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긍휼 때문임을 압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에 가입할 수 있는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그분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시인이 이렇게 외친 것도 당연합니다.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달콤한가. 나 같은 비참한 자를 구원하셨네. 한때 길 잃은 나를 이제 찾아 주셨고, 눈멀었으나 이제는 보네.”
제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길을 마련하신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곧 길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께 나아갑니까? 한 성령, 곧 그분의 영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몸은 궤도에 오르듯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날의 우주 비행사들처럼 땅을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멘. 물론입니다. 회개하는 죄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그곳에 계신 분이 있습니다. 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와, 그분의 임재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안 뒤에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일들을 지금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이 보고 있는 포도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 나무가 맺는 열매로 압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 교회가 맺는 열매로 압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우리가 보듯이, 그분은 가서 교파를 만들라고 우리를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가서 신조를 만들라고 우리를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을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거기서 무엇을 빼거나 무엇을 더하면, 생명책에서 그의 부분도 그와 같이 제거되리라.” 아시겠죠?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 말씀에 머무르도록 세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면 그 말씀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분의 말씀만을 뒷받침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갈 때, 사람이 한 번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면, 그에게 변화될 여지가 있는 한 영원히 변화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는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사람이라면, 첫 움직임이 닿는 순간 그것을 압니다. 거기에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날 사마리아에 있던 그 창녀, 그 여인을 보십시오. 그 여인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그 표적이 행해지는 것을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셔서 이런 일을 하실 줄 우리가 압니다. 선생님은 그분의 선지자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오리라고 기록된 그 메시아다.” 그 여인은 알아보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왔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고 곧바로 움직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온 사람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모세를 보십시오. 베드로를 보십시오. 바울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오는 순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자기 목숨으로 그 증언을 확증했습니다. 그 여인을 보십시오. 더는 그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도시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그것이 성경에 맞았으므로 그들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우리에게는 모세가 했던 것처럼,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바울이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본 뒤에, 그것을 보고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간 뒤에는 그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닌 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전에 이곳에 오시던 연로한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그레이엄 스넬링 형제님의 어머니였는데, 바로 이 교회에 앉아서 이렇게 노래하곤 하셨습니다. “이제 막 건너왔네! 달리고 달리고 달리네. 이제 막 건너왔으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네.” 그분은 막 무언가를 발견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 루이빌에 있는 작은 흑인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모두 일어서서 “왕의 큰길을 달려 올라가네. 방금 그 길을 찾아 그 큰길에 들어섰네!” 하고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더 이상 잠잠할 수 없습니다. 남은 생애 내내 변화된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생명과 생명이 만나면 밝은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참말입니다. 전구가 전선에 연결될 때 제대로 된 전구라면 반드시 빛을 내야 합니다. 전류와 전구가 만나면 빛을 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영생을 얻도록 미리 예정된 사람이 하나님의 전류가 그 전구에 닿는 것을 보면, 그 빛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10와트밖에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가진 빛을 발할 것입니다. 500와트가 아니라면 10와트의 빛을 발하십시오. 여러분의 빛을 비추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깨닫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떠벌리며 다닐 수 있습니까?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어느 날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아니 멤피스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부근의 어느 곳이었습니다. 저는 데이비스 형제님과 함께 부흥회를 열고 있었는데, 멤피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콜로세움에 갔습니다. 그 안에는, 아니 콜로세움이 아니라 일종의 미술관이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가져온 헤라클레스 등의 훌륭한 조각상들과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또 몸무게가 150파운드인 사람을 성분별로 분석한 것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값어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84센트였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모든 화학 성분의 값이 84센트입니다. 닭 둥지 하나에 뿌릴 만큼의 석회가 있고, 칼슘 조금과 칼륨염 조금이 있을 뿐입니다. 전부 팔아 봐야 84센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84센트를 얼마나 잘 보살피며 애지중지하는지요.
거기에 두 청년이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며 말했습니다. “짐, 우린 별로 값어치가 없구나, 그렇지?”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 존, 그렇구나.” 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젊은이들. 여러분 안에는 만 개의 세상보다 귀한 혼이 있습니다. 그 혼은… 여러분이 허락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속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런 것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소년 시절에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생명이 하나뿐인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생명이 만 개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시간이 제게 주어진다 해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3장, 에스겔서 33장을 읽어 보면, 망대 위에 세워진 파수꾼이 있었는데, 그 파수꾼은 온 도시에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아멘. 제가 이 성경 말씀을 다루는 동안, 잠시 여러분의 영적 양심을 일깨우십시오. 그 파수꾼은 훈련받은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적들이 어느 거리에서든 나타나기만 하면 알아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군 방식, 그들의 군기, 그들의 대열을 알아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라면 어디까지나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적을 알아보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도시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할렐루야!
오늘날 하나님의 군사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훈련받습니다.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지만 성경에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이 나타나면, 회중에게 경고합니다. 성경적이지 않은 것, 하나님답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그렇습니다. 목사 사례비를 마련하려고 수프 만찬이나 무도회를 비롯한 온갖 행사를 여는 것 말입니다. 그런 일들은 잘못입니다. 교회에서 번코 주사위 놀이와 카드 놀이 모임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던, 성벽 위의 참된 파수꾼은… 그가 성벽 위에 있지 않고, 그저 거기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그 성벽이 다른 회중보다 조금도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파수꾼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다른 사람들은 결코 이르지 못하는 영역까지 높이 올려 주십니다. 그는 양 떼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책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할 일을 행하시며 말씀을 지키시는 것을 지켜본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많은 조직이나 교파가 그것을 무너뜨리려 해도 적의 대열을 알아봅니다. 아멘. 그는 회중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압니다. 참된 파수꾼입니다.
우리가 그분이…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있었고, 우리의 죄를 고백했다면 그 죄들은 그분의 기억의 책에서 지워집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무슨 일을 하든 저는 용서하겠지만, 그 일은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하면 여러분도 용서하겠지만, 그 일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잊으실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 아멘. 그 말에 제 마음이 기뻐집니다. 더 이상 기억조차 되지 않게 하는 일은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기억의 책에서 그것을 지워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작고 유한한 감각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완전히 잊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시골 교회 출신인 한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옛날식으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설교자, 아니 교인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도시로 이사하여 그곳 여자들과 어울리다가 그들의 행동과 유행을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찾아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아버지가 오시는 것이었지요. 그 노인이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성경을 펴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온종일 울고 기도하고 외치며 방 안을 이리저리 달리곤 했으니, 딸은 그것이 좀 난처했습니다. 밤에도 성경을 들고 읽기 시작하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오, 하나님께 영광!” 하고 외쳤습니다. 발을 구르고 울면서 밤의 절반을 그렇게 보내곤 했습니다.
어느 날 딸은 교회 사람들을 초대하여 늘 하듯 작은 다과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자기 아버지니까요. 그래서 다락방에 모시기로 하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여자들 모이는 데는 함께 있고 싶지 않으시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래, 별로 그러고 싶지 않구나.” 딸이 말했습니다. “오늘 교회 여자분들이 와서 작은 모임, 기도 모임을 할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는 다락방에 올라가 계시면 어떨까요?” “그래, 그렇게 해야겠구나.” 그러자 딸이 말했습니다. “이 좋은 책을 읽으세요.” 그러면서 지리책을 주었습니다. 조용히 계시도록 성경을 치워 버린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시면 위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실 것을 알았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들이 다과회를 여는 바로 위층에 계셨습니다. 딸은 지리책을 드리며 말했습니다. “이건 좋은 책이에요. 아버지, 읽어 보세요. 세상에 관한 사실이 모두 나와 있거든요.” 아버지는 “그래, 즐겁게 읽어 보마” 하고 말했습니다. 딸은 말했습니다. “이제 위에 올라가서 이 여자분들이 돌아갈 때까지 아주 조용히 계세요. 그러면 제가… 그 뒤에는 내려오셔서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돼요.” 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위층으로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들은 다과회를 열고 이런저런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모임이 으레 그렇듯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위층에서 갑자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외치고 뛰는 소리에 천장의 회반죽이 떨어졌습니다. 노인은 다락방 안을 있는 힘껏 이리저리 달리고 펄쩍펄쩍 뛰며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 하고 외쳤습니다. 여자들은 위에서 무슨 일이 났는지, 위층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노인이 있는 힘껏 계단을 달려 내려왔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읽으시라고 지리책을 드렸잖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 안다. 그런데 이 지리책을 읽으니 바다에는 바닥이 없는 곳들이 있다는구나. 그런데 어제 여기 성경을 읽다가 보니, 그분께서 내 죄를 망각의 바다에 넣으셨다고 했지 뭐냐. 하나님께 영광!” 또 말했습니다. “내 죄들은 아직도 내려가고 있는 거야. 끝이 없으니 계속 내려가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는 그것 때문에 기뻐 외쳤던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망각의 바다에 넣으시고 지워 버리십니다. 그러면 그 죄들은 마치 일어난 적도 없는 일이 됩니다. 오,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순결하고 거룩하게 섭니다. 그분이 거룩하셨던 것만큼 거룩하게 말입니다. 제가 그곳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저를 보시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보실 수 있는 것은 그 아들뿐입니다. 저를 보실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그분의 아들 안에 있으므로, 그분은 오직 자신의 아들만 보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사라졌고, 피 아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기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그 능력 있는 선지자 이사야는 자기 죄를 고백하면서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지자가 말입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내 회중도 부정하나이다.” 아시겠죠? “내가 말씀을 전하는 백성이 부정합니다. 나도 부정합니다. 내게 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천사들의 무리가 날갯짓으로 구름을 헤치며 내려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분의 옷자락이 온 하늘에 가득합니다. 나는 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이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는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 발을 가린 채 두 날개로 날면서 밤낮 외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이여.’” 휴! 그러면 자신이 거룩하지 못하다고 느껴지겠지요? 그때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내게 화가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내게 화가 있도다”라고 말하자, 천사가 가서 부집게를 들고 성령과 불을 나타내는 타는 숯을 집어 왔습니다. 그 숯을 선지자의 입술에 대며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날개들이 그렇게 길을 헤치며 날갯짓하자 시간의 휘장이 걷혔고, 그는 하나님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죄를 없앨 길이 있음을 알게 된 뒤,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갈 사람을 찾으시자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갔고, 자기 죄를 고백했으며, 죄에서 깨끗하게 되어 섬길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멘. 시인은 이것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수백만 명이 죄와 수치 가운데 죽어 가니, 그들의 슬프고 쓰라린 울음을 들어 보라. 형제여, 서두르라, 서둘러 그들을 구하라. 속히 응답하라.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온 세계를 생각하면, 수백만 명의 이교도들이 자비를 구하며 외치고 울고 있습니다. 누가 가겠습니까? 그들에게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줄 사람 말입니다. 모세처럼 그분의 임재 앞에 서서, 그곳에 내려가 참된 구원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교회에 가입시키거나 악수하고 신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혼에 구원을 가져다줄 선하고 경건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자기 죄를 고백했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자기 죄를 고백하며 밤새 씨름했던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십니까? 브니엘이라고 불렸습니다. P-e-n-i-e-l, 브니엘입니다. “브니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라는 그 약삭빠른 사기꾼은 내내 도망 다녔습니다… 그의 이름 “야곱”은 “남의 자리를 빼앗는 자”, 곧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평생 하나님에게서 도망 다녔지만,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 앞, 하나님의 임재 안에 한 번 들어가자 하나님을 붙들고 놓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야곱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동이 틀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날이 새려 하니 나를 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동이 틀 때까지 하나님의 얼굴 앞에 머물렀고, 그곳을 떠날 때는 의롭게 되고 구원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그가 끝까지 씨름해 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표적들을 보았고 하나님에 관한 꿈들도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의 얼굴 앞,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서둘러 마무리하면서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람은 변화됩니다. 야곱은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 올라갔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싸움은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제단을 쌓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면 어딘가에 제단을 쌓고 싶어집니다.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어집니다. 그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기셨습니다.
야곱은 “남의 자리를 빼앗는 자”인 야곱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권능을 지닌 통치자”인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에게 일어난 일이 그것입니다. 남의 자리를 빼앗는 자, 속이는 자, 불의한 자, 거룩하지 않은 자, 사기꾼이었습니다. 형을 속였고, 말하자면 형의 장자권을 훔쳤습니다. 비열한 방법으로 그렇게 한 사기꾼이었습니다. 장인도 속였습니다. 미루나무 가지를 놓아서 얼룩 송아지들이 태어나게 했습니다. 암소들이 새끼를 밸 때 그곳에 와서 그것을 보았고, 양들도… 그 얼룩무늬 가지를 보면 얼룩무늬 가축이 태어나, 날 때부터 그런 무늬가 생기게 했습니다. 사기꾼이었습니다. 자기 장인까지 속였습니다. 어머니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 안에 들어가자… 그는 약삭빠른 사기꾼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도망 다녔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도망쳤고, 형에게서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자기에게 기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만났고, 모든 죄가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분 자신의 임재 안으로 데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그분의 임재 안으로 데려오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결정을 내립니다. 어떤 사람은 그분에게서 도망치고, 어떤 사람은 그분께 달려갑니다. 생명에 이르도록 미리 예정된 사람이라면 믿고 그것을 붙듭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벗어나려고 하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런 사람이 잃어버린 자입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다. 네 죄를 숨기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 야곱은… 다음 날 형 에서를 만났을 때, 이제 형에게서 아무 도움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의 군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단을 쌓는 일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에서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16편 8절에서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주를 내 앞에 모셨나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편 16편 8절입니다. “내가 주를 내 앞에 모셨나니.” 그러므로 그는 그 일로 혼란스러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기 원했으므로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주를 항상 내 얼굴 앞에 모셨나니. 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려고 주를 내 얼굴 앞에 모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저녁 우리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임재를 의식할 수 있도록 주님을 우리 얼굴 앞에 모십시오. 그분을 첫째 자리에 모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을 여러분 앞에, 첫째 자리에 모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면 죄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곁에 계심을 깨달으면 자기 말을 조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안 계신다고 생각하면 욕설을 하고, 여자를 향해 음욕을 품고, 훔치고, 속이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데려가 보십시오. 당장 그만둘 것입니다. 아시겠죠? 다윗은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분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으면 어떻습니까? 죄인을 유심히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경건한 사람이 다가가면, 조금이라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욕설을 멈춥니다. 아시겠죠? 하려던 음담패설도 하지 않습니다. 그만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성막에 거하시니까요. 아시겠죠?
다윗은 이렇게 한 뒤에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즐거워하리라.” 시편 16편을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내 마음이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라. 왜 그런가? 하나님을 늘 내 앞에 모셨으므로 내 마음이 즐거워하리라.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내가 죽어도 다시 일으켜지리라. 그분은 그분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도 아니하시리라.” 아시겠죠? 다윗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시고, 자신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말입니다.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
교회 여러분, 들으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지금 제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매컬리 형제님이 늘 하시던 말처럼,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여러분 앞에 모십시오. 그분의 임재 앞에서 하지 않을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주님께서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둘러 진을 치고 계십니다. 여러분 바로 곁에 머무르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아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려거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조금 속이려거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려거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려 할 때도 그분이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부르곤 하던 노래가 있습니다. “혼의 참된 거처로 가는 그 길 내내, 너를 지켜보는 눈이 있네. 네가 내딛는 걸음마다 그 크신 눈이 깨어 있네. 너를 지켜보는 눈이 있네.” 기억하십시오. 다윗처럼 하십시오. 주님을 언제나 여러분의 얼굴 앞에 모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즐거워하고 육체는 소망 중에 안식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일으켜질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면 변화되어 다시는 전과 같지 않습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온갖 삶을 살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변화된 삶은 사역자들에게만 해당하지요”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변화된 삶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아시겠죠?
아브라함은 농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그 환상을 보았을 때, 그때부터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족과 모든 동료에게서 떠나 따로 나왔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 낯선 땅에서 순례자와 나그네로 살아가며 장막에 거했습니다. 그 건축자와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도시를 찾고 있다고 분명히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건축자와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도시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건축자와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도시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저 평범한 농부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때부터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갔을 때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겁쟁이였고, 군대 전체가 그의 뒤를 쫓는 가운데 파라오에게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에 지팡이 하나를 들고 돌아가 온 나라를 차지했습니다.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목자인 그가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는 고기잡이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니, 하나님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마 그가 아는 것이라곤 고기 잡는 법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 물고기를 창조하실 수 있는 위대한 창조주를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그물을 내려 끌어당기라고 말씀하셨을 때 말입니다. 거기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방금 그물을 걷어 올렸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겠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제가 그물을 내린다면,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 주님과 주님의 말씀은 하나이시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물을 끌어 올리기 시작하자 그는 말했습니다. “주여,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어부인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난 뒤 다시는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 그토록 신실했기에 왕국의 열쇠들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바리새인이라 자처한 사람이었고, 당시 세상에 있던 모든 종교를 배우고 훈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학식으로 이름난 학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불기둥, 자신이 모르고 핍박해 왔던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말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이셨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이시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 불기둥은 그분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냈고 줄곧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기둥을 보자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라.” 바울이 바로 “너희는 어떻게 침례를 받았느냐?” 하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습니다. 그때부터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찰스 G. 피니는 변호사, 필라델피아의 훌륭한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갔을 때 법률 공부를 내려놓고,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 나온 가장 능력 있는 설교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선생님께서 성령을 받으시도록 저희가 기도하고 있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설교자입니다.” 그분들이 말했습니다. “피니 선생님,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시고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계세요. 하지만 선생님께는 성령이 필요해요. 저희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참으로 다정한 여자분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계속 지냈습니다. 날마다 사무실 뒤로 나가곤 했습니다. 그가 일하던 곳에는 상사와 다른 사람들이 있었고, 그는 법률 사무실을 나와 그곳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거기서 기도하다가 덤불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상사가 자기를 찾아 올라오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얼른 벌떡 일어났습니다. “주 하나님, 제가 주님을 믿습니다” 하고 기도하다가 멈추고, 털다가… “음! 음!” 일어나서 말하다가… 무엇이 덤불의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는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뭇가지가 부러진 데에는 목적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두 뺨에 눈물을 흘리며 서서 말했습니다. “그 여자분들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누군가 내가 내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는 건 부끄러워하면서, 누군가 내가 상사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영광으로 여길 텐데. 내 주님이 내 상사보다 얼마나 더 크신 분인가!” 그는 “주님, 저를 용서하시고 성령으로 채워 주십시오” 하고 말하며 부르짖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습니다. 그는 얼른 시내에 있는 자기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너무나 크게 외치게 되어 문 뒤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 누를 끼치겠습니다. 이 상태가 가라앉을 때까지 저를 여기 뒤에 숨겨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전에 하던 설교, 바로 그 설교들을 전했는데 혼들이 제단으로 나아왔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무디는 알파벳도 거의 모르는 보잘것없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문법도 서툴렀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무디 씨, 문법이 참 형편없으시군요.”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말로 혼들을 얻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 편집자가 신문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 수많은 청중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찾아갔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대머리였고, 수염은 한참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으며 배도 조금 나와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참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문은 그를 아주 신랄하게 평했습니다. “도무지 드와이트 무디의 어디를 보고 사람들이 끌리는지 알 수가 없다. 못생긴 데다 목소리는 꽥꽥거리고, 수염은 허리께까지 내려오며, 머리는 호박처럼 벗겨져 있다. 도대체 누가 무디에게서 무엇을 보겠다고 찾아가겠는가?” 마침 무디의 일을 맡아보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무디 씨, 이것 보세요.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무디는 그것을 직접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 사설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읽었습니다. 무디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물론 나를 보러 오는 게 아니지요. 그들은 그리스도를 보러 오는 겁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고 닳게 할 신발 밑창을 만들던 사람이, 이제는 화평을 예비하는 복음으로 사람들의 발에 신을 신겨 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은 한 여인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왔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죄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음을 깨달은 순간,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백합처럼 순결하고 희게 되었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더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더 밑바닥인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술주정꾼들의 가정에서 나왔고, 살인자들의 가정에서 나왔으며, 밀주 장수들의 가정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아십니다.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평판을 듣고 살았는지 아십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내에 가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도,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가 아니면 아무도 제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이야기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저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거기 서서 울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이건 잘못됐어.”
그러나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분은 저를 변화시키시고 이전과 다른 아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의 은혜가 저를 그분의 임재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곳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제 30여 년 동안 이곳에 있었고,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곳에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죽음조차 저를 그분의 임재에서 떼어 놓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처음 그분의 임재를 보았을 때, 저는 이사야처럼 “내게 화가 있도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은혜로 저를 만져 주셨습니다. 저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여기 나와서 소란을 피우고 온갖 일을 하던 그 불량한 녀석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온 삶을 바쳐 그분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분께 드릴 생명이 만 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생명은 제법 닳았습니다. 53년이 지났으니까요. 그중 약 33년, 아니 32년을 복음 안에서 보냈습니다. 제게 바칠 생명이 천 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번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 계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을 때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아무도 저를 돌보지 않을 때 저를 돌보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십자가에 두 팔을 두르고 제 품에 끌어안았습니다. 그때 저와 그분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분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분은 저를 만지시고 제 죄를 용서하셔서, 그분의 피로 제 가슴과 마음을 물들이셨습니다. 오늘 저녁 그분께 속한 한 사람이 된 것이 행복합니다. 저는 이 하늘에 속한 곳을 결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유혹하는 자가 저를 꾀하려고 여러 번 애썼지만, 저는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안전하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행복합니다. 저는 할렐루야를 외치는 편에 서서 살고 있습니다. 오, 제 마음이 기뻐집니다.
저는 지친 모든 사람에게 그분을 권합니다. 소망이 없는 여러분에게 그분을 권합니다. 아직 한 번도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여러분,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녁 성령이라 불리는 그 천사를 세워 두셨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두 손을 들고 노래할 것입니다. “그분을 찬양하리! 그분을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강단에 나왔을 때 저는 몸이 무척 좋지 않고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주 켄터키에서 여기 앉아 계신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거기 너무 오래 머물렀다가는 그분들이 저를 죽게 하실 겁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너무 잘해 주셔서 말입니다. 제가 평생 만나 본 최고의 요리 솜씨를 가진 분들입니다. 제 배가 꽉 차서 이미 한도를 넘었는데도 “브래넘 형제님, 이것도 좀 드시지 않겠어요?” 하십니다. 그런데 너무 맛있으니 또 억지로 밀어 넣습니다. 얼마나 배가 불렀는지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잠도 잘 수 없어 밖에 나가 한동안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 들어왔을 때도 몸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오자 그것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으로 해결되었고, 그때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요! 그분을 찬양하리, 그분을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네.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브래넘 형제님이 허밍을 시작한다.) 그분이 나를 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으니. 내 범법들을 용서하셨고, 그분의 피가 내 죄를 씻었네. 그분을 찬양하리, 그분을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네. (브래넘 형제님이 허밍한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여기 계시다면… 저는 그분의 임재가 여기 있음을 압니다. 조금 전 저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제게 임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앤더슨의 하나님의 교회 야영 집회장에서 내려왔습니다. 거기 감독자는 그 아이를 알고 있었고, 의사들은 백혈병 때문에 곧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는 이제 말기였습니다. 아이가 저 뒤로 와서 작은 손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주삿바늘 같은 것들이 꽂혀 있던 손이 퉁퉁 붓고 파랗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바라보았을 때 환상을 보았습니다. 부모는 그곳에서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곳 집회장의 총감독자가 부모에게 “아이를 여기로 데려오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치유 예배를 드릴 때 다시 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아이를 데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제가 바로 저 안에 서 있을 때 성령께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아이의 지난 일을 드러내셨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린아이의 꿈이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참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저 밖 자동차 안에 앉아서 듣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서 저 밖에 앉아 지금 이것을 듣고 계십니다. 커다란 그림자의 장막이 아이 위를 덮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사탄아, 너는 패배했다. 하나님,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또 주님의 종으로서, 제가 이 아이에게서 이 마귀를 쫓아냅니다.” 크고 밝은 빛이 아이의 머리 위로 번쩍 비쳤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아멘. 무엇입니까? 물론 그분은 모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그분도 아십니다. 오늘 저녁 작은 죄 하나라도 여러분에게 달라붙어 있다면, 그것을 지닌 채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다시 한 번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날에 죄 없는 자로 그분의 임재 앞에 서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손이 올라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 말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다윗처럼 하십시오. 지금 주님을 여러분 앞에 모십시오. 여러분과 그 죄 사이에 주님을 모십시오. 여러분을 끈질기게 얽어매는 그 작은 죄가 무엇이든 말입니다. 거짓말일 수도, 도둑질일 수도, 악한 생각일 수도, 성질을 내는 일일 수도, 술 마시는 일이나 담배 피우는 일, 도박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음욕일 수도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주님을 여러분 앞에 모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즐거워하고 육체는 소망 중에 안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들에 다시 일어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오실 때 우리도 그분의 모습으로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지금 그렇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피곤하고 지친 종이 조금 두서없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이 주님의 임재 앞에 나아갔을 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았습니다. 현인들과 위대하고 능력 있는 선지자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말씀을 전하도록 보내신 사람들이면서도,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나자 죽은 사람처럼 땅에 쓰러졌습니다. 주님, 그날에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계속 생각해 왔습니다. 주님, 40개나 50개쯤 되는 손들이 그것을 생각해 왔습니다. 방금 그들이 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손 아래 있는 마음들이,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그분을 만나는 일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분을 만나야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님, 제 손도 들려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버지, 제가 잘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교회 앞에서 제 죄를 고백했습니다. 산 위에서 주님께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며칠 전 아침, 그 산 위에서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때, 제가 얼마나 부르짖으며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구했는지요. 형제들 중에는 저를 주님의 종 선지자로 여기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 앞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요. 주님, 그들 앞에 나와 제가 그런 일을 했다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말을 하기가 얼마나 싫었는지요. 그러나 하나님, 제 죄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것은 제 혼에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정직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올바르게 서기 위해 고백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온전히 제 잘못입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아버지, 저는 주님을 섬기는 데도 게을렀습니다. 더 오래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제 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예수님의 피로 저를 그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녁 다른 손들도 올라왔습니다. 그중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용서를 구해 본 적이 없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워 버리시고 망각의 바다에 넣어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그 사람들 앞에서 잘못 행동한 죄를 고백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종답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화를 내며 이렇게 생각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주님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제 저는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은 그 죄들을 망각의 바다에 넣으셨고, 다시는 그 일을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그것을 감사드립니다.
자기 앞에 죄나 끈질기게 얽어매는 죄가 무엇이든 있는 이곳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치우고, 다윗처럼 주님을 자기 앞에 모실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남자입니다. 또는 입술이 부정한 여자나 소녀, 소년이나 그 누구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우리는 부정합니다. 우리에게 마련된 희생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언제나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가 그분과 함께 그분의 모습으로 일으켜져, 카운트다운이 마침내 끝날 때 휴거되어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리라는 것을 알고, 우리 마음은 즐거워하고 우리 육체는 소망 중에 안식하며 오늘 밤 이곳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일곱째 교회 시대까지 이미 카운트다운이 끝난 것을 봅니다. 이제 우리는 이륙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문을 닫으시기 전에 오늘 저녁 이곳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서둘러 속히 들어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긍휼과 심판 사이에 있는 긍휼의 문이 닫히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들어올 것입니다. 들어오려 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십니다. 오늘 저녁 죄를 고백하는 이 죄인들 가운데 누구에게도 문이 닫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용서와 긍휼을 얻게 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아버지,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주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그 약속을 앞에 모시게 해 주십시오. “‘그는 내 범법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다.’ 그것은 내 죄들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을 내 질병 앞에 모십니다.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나는 고침받았다고 고백하며 담대히 걸어갑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가 마음으로, 아니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속으로 믿으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는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이든 말할 때 그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주님을 섬길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오늘 밤 많은 분이 어두운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많은 분이 먼 길을 여행할 것입니다. 주님, 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곳에 앉아 “카운트다운”을 듣고 우리가 마지막 때에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보려고 먼 지역에서 오셨습니다. 이제 저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을 자기 앞에, 언제나 자기 앞에, 다른 무엇보다 앞에 모시고 돌아가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여행하기 전에도, 움직이기 전에도, 그들의… 일어나기 전에도, 잠자리에 든 뒤에도, 잠들기 전에도 언제나, 어디에 있든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자신들이 구한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마음이 즐거워하며, 육체는 소망 중에 안식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그분을 찬양하리, 그분을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네.
이제 여러분과 여러분의 죄 사이에, 여러분과 질병 사이에, 여러분과 잘못 사이에, 여러분과 살아가는 방식 사이에 주님을 모셨다고 믿으십니까? “주님은 언제나 내 앞에 계시며, 나는 그분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다음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할 때 주님이 내 앞에 계십니다. 다음에 음욕을 품으려 할 때 주님이 내 앞에 계십니다. 다음에 그릇된 말을 하려 할 때 주님이 내 앞에 계십니다. 다음에 나쁜 말을 하려 할 때 주님이 내 앞에 계십니다.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날마다 사람들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때도, 날마다 말을 할 때도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겠습니다. 주님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걸어가겠습니다. 오늘 저녁 그분을 내 앞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이제 일어섭시다. 오,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지금 9시가 되려면 아직 25분쯤 남았으니,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마쳤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오, 참 좋습니다! 이제 떠나면서 기억합시다.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야 합니다. 유혹이 우리 주위에 몰려와 우리를 붙들려 할 때… 기억하십시오. 그 거룩한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슬픔과 고난의 자녀여. 그 이름이 기쁨과 위로를 주리니, 어디로 가든 지니고 가라.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온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이라.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온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이라.
우리 목사님 네빌 형제님을 좋아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선하고 정직하며 소탈한 분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복음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말씀을 전하고, 언제나 교회 안에 이렇게 훌륭한 영적 분위기를 유지하시며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동부 해안을 따라 내려가 남부를 가로질렀고, 서부 해안을 따라 올라가 캐나다까지 다녔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교회만큼 영적인 교회는 한 곳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쇠퇴했습니다. 광신주의로 빠지거나, 걷잡을 수 없이 감정대로 치닫거나, 너무 차가워져서 도무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십니까? 자, 서로 악수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 사람들과 악수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삼으라. 유혹이 네 주위에 몰려올 때, 어떻게 합니까? 그 거룩한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기도하라.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온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이라.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온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이라.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아주 부드럽게, 이제 그것을 잊지 맙시다. 그 절을 다시 부릅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삼으라. 사탄이 여러분을 올무에 빠뜨리려 할 때 말입니다. 유혹이 네 주위에 몰려올 때, 어떻게 합니까? 그 거룩한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기도하라. “주님께서 내 얼굴 앞에 계시므로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