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네빌 형제님,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됩니다. 우선, 오늘 제가 너무 바빠서 병자들을 찾아가는 일을 몇 건 놓쳤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를 받아야 해서 제가 만나기로 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빌리 말로는 그중 한 분은 캐나다에서 오셨다고 한 것 같습니다. 두세 곳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늘 호텔이나 모텔에 머무릅니다. 그러면 제가 가서 그들을 만나 기도해 줍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찾아옵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날마다 사람들이 옵니다. 개인 면담을 기다리는 명단에 육백 명이 넘게 올라 있어서 좀 어렵습니다. 그래도 몹시 아프거나 긴급히 기도받아야 할 분들은 만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이 교회의 재산 관리 위원들과 잠깐 만나 논의할 일이 있어서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시간이 한 시간 반쯤 어긋났는데, 그때 기도를 받으러 오시기로 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여기 계시다면 지금 기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받기로 하셨던 분들은 지금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피아노를 치시는 분도, 누구시든 나오셔서 “큰 의사께서 지금 가까이 계시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잠시 반주해 주십시오. 기도받으실 분들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몇 분이나 되는지 저는 모릅니다. 이 형제님들이신 것 같군요. 형제님들, 저도 몸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합당한 중보자가 되시려고 자신의 몸으로 고난을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고통을 겪으실 수 있도록 육신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연약함의 아픔을 느끼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죄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서 교회가 그분의 일을 이어 가도록 명하셨습니다.
저는 의료계와 외과 수술 등을 매우 존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몸을 치료하고 수술하며 상한 이를 뽑는 등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고맙게 여깁니다. 그러나 의사들도 자기 지식으로는 감당하지 못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도 마땅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도 가정 주치의를 찾아가지 않습니까? 어쩌면 시골 의사, 밤에 등불을 들고 들판을 걸어서 여러분을 찾아와 치료해 주는 선량한 노의사일 수 있습니다. 그분이 해결 방법을 모르면 자기보다 조금 더 높은 전문가를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전문의에게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전문의도 모른다면, 우리에게 또 의지할 분, 위대한 의사께서 계시니 저는 기쁩니다.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이분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친히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제 안에 병을 고칠 권능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가서 고쳐 드리겠습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병을 고치는 권능이 없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병을 고치는 권능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미 치유의 권능을 예치해 두신 그리스도께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예금에서 인출할 수표를 쓰러 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이것이 백지 수표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세계 곳곳의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근거로 하나님의 은행에 이런 예금을 하도록... 아니, 이 증서를 가지고 인출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아주 잘되었습니다. 이미 예금이 되어 있으므로 그분은 언제나 지급해 주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이미 다 이루어진 일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기쁩니다.
빌리 말로는 한 형제님이 캐나다인가 어디에서 먼 길을 오셨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형제님이 캐나다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리고 이 형제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인디애나주 켄들빌, 포트웨인 쪽이군요. 저는 포트웨인에서 결혼했습니다. 잘 기억합니다. 그곳 레디거 태버내클에서 집회를 많이 했습니다. 어디인지 아실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직 목회를 배우던 젊은 전도사로서, 레디거 태버내클에서 폴 레이더의 발치에 앉아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폴 형제님은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레디거 형제님도 그랬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밤 그분들의 혼은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어린 사람이었지만, 이제 저는 그분들이 남겨 주신 일, 예수님께서 교회에 남기셔서 줄곧 이어져 내려온 일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이제 제가 가진 모든 믿음으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러 갑니다. 아무렇게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식으로 이 일에 임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음을 알기에, 우리가 구한 것을 받으리라고 믿으며 나아갑니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다는 확신을 마음에 품고 나아갑니다. 형제님들은 자신의 믿음을 제단 위에 올려놓으려고 애썼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셨습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의 믿음 곁에 제 믿음도 올려놓으려고 갑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을 가로질러 펼쳐진 위대한 제단이 있습니다. 그 제단에는 우리의 희생물, 하나님의 아들, 피 흘리는 그 희생물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우리 장로인 네빌 형제님께 이제 저와 함께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온 교회가 함께... 이분이 여러분의 형제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아버지라면 어떻겠습니까?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마음을 다하여 이 형제님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이제 은혜의 제단 곁에서 이들을 아버지 앞에 데려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는 말하자면 작은 나무 의자 곁에 서 있지만, 우리의 믿음은 저 위에 불타는 위대한 제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시는 예수님, 갈보리의 피의 희생물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병과 질병,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이기시고 다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셔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저 위로 올라가, 이 제단 너머에 계신 하늘과 땅의 위대한 창조주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오니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여기 우리 형제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 미국 땅의 포트웨인 위쪽에서, 다른 한 사람은 멀리 캐나다에서 이곳까지 와서 이 지극히 엄숙한 순간을 맞았습니다. 주님, 생사가 걸려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아직 젊어서 주님을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인 두 군사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쏜 화살, 그 독화살이 이들의 몸 어딘가에 박혔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화목과 치유를 얻고자 하나님의 은혜의 병원으로 돌아와 물러나 있습니다. 다시 방패를 들고 전선으로 나아가 싸우려는 것입니다. 주님, 이들이 우리와 함께 기도의 힘을 모으려고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수에게 맞서러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들을 놓아주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이들을 보내 주어라. 이들은 싸움에 나선 전사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이제 나아가 믿음으로 이들에게 안수합니다. 우리의 주님, 우리의 위대한 전투 사령관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하셨음을 믿습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이 일을 합니다. 이 형제의 몸을 묶고 있는 질병의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놓아주게 하옵소서. 이 형제의 몸을 묶고 있는 질병의 힘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놓아주어라. 그렇게 되기를 [말이 불분명함].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여, 우리가 축복한 이들에게 주님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성경에 기록되기를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자기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자기가 말한 것을 받을 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저는 질병이 이들의 몸을 떠났다고 믿습니다. 이제 선포하였으니 이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형제님이 놓임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님이 놓임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아멘. 교회도 그렇게 믿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가운데 기도할 때 자신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분이 더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그곳에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이제 그분께 나아갑시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뵙고, 그분께서 이곳에 서 계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두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제 하늘 아버지, 이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으니,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이 사람들에게 닿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마지막 사명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믿으리라... 나으리라”였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루어졌으며, 이 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낼 이 손수건들에 기름부음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것들을 보내어 병자들에게 얹을 때 그들이 고침을 받게 하옵소서. 성경에서 바울에게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대었을 때 더러운 영들이 사람들에게서 떠나고 질병들이 나았다고 읽었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바울이 아님을 알지만, 주님은 여전히 예수님이심을 압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간구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녹음기가 벌써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아가고 있습니까? 아직 아니라면 지금 켜 주셨으면 합니다. 스위치가 올라가 있는 것 같군요. 오늘 밤 여러분을 지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소보다 삼십 분이나 삼십오 분쯤 일찍 시작합니다. 이것은 일요일 성경학교 수업입니다. 제 마음에 있는 이 내용을 녹음해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새 예배당,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이제 성경 몇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함께 읽으실 분들은 사무엘기상 8장을 펴 주십시오. 4절부터 10절까지 읽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다음에는 19절과 20절을 읽겠습니다. 여기 참고할 성경 구절들을 여러 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펜이나 연필, 종이 같은 것이 있어서 나중에 찾아보거나 간직하고 싶으시면 적어 두셔도 됩니다. 아니면 맥과이어 씨에게 녹음테이프가 있을 것입니다. 이 테이프를 목사님들, 저를 오해하신 제 형제 목사님들, 특히 교단에 속한 교회의 형제님들께 바치고 싶습니다. 거의 모두 교단에 속해 계십니다.
오늘 밤 제 주제는 “내가 조직화된 종교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배경이 될 말씀, 곧 성경 본문을 읽어서 이 주제가 분명히 성경에 근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기상 8장 4절부터 10절까지, 그다음 19절과 20절을 읽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청중 여러분, 집에 돌아가시면 이 구절들을 적어 놓고 주의 깊게 읽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테이프를 들으실 형제님들도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 나왔다고 해서 테이프를 꺼 버리지 마시고, 그 문제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그것이 성경적인지 살펴보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자신과 이 시대의 메시지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믿으며, 결코 그리스도인들을 거슬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해 온 까닭은 말씀에 대한 성령의 영감 때문입니다.
이제 사무엘기상 8장을 읽겠습니다. 우선 4절부터 10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함께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길들로 걷지 아니하니 모든 민족들과 같이 이제 우리를 위해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 하니라. 그러나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 하였을 때에 그 일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사무엘이 주께 기도하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것에 관해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그들이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나를 버려 내가 자기들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느니라. 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이날까지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행위들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는데 그들이 네게도 그 행위들에 따라 그렇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되 그럼에도 그들에게 엄숙하게 단언하고 그들을 통치할 왕에 관한 규범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 하시니라. 사무엘이 자기에게 왕을 요구한 백성에게 주의 모든 말씀들을 고하니라. 이제 마지막으로 19절과 20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사무엘의 목소리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며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를 다스릴 왕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리니 그래야 우리도 모든 민족들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재판하고 우리 앞에... 나가 우리의 싸움을 싸우리이다, 하니라. 주님께서 말씀을 읽는 일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일요일 성경학교 수업으로서 말씀드리는데, 할 수 있는 한 주의 깊게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때로 어떤 교회들에서는 지금 듣는 것과 반대로 배워 온 사람에게 걸림이 되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제 친구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형제님을 그렇게 신뢰하고 믿어 왔지만, 영원한 지옥은 없다고 하셨을 때에는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분명히 이분이 잘못 알고 계시는구나’ 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우리를 한동안 그렇게 두셨지요. 그러다가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 가지이며,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모두가 구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이 있다고 말하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시작된 적도 없고 끝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옥이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므로,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없던 때가 있었으며 다시 없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불과 유황과 불구덩이 속에서 장구한 세월 동안 벌을 받을 수는 있지만, 지옥은 영원하지 않기에 마침내 끝날 것입니다. 만일 영원한 지옥이 있다면 그 영원한 지옥에서 살려면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하다면 언제나 존재해 온 것이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지옥에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지옥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것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영원하다는 것은 “시작도 없었고 끝도 없다”는 뜻입니다. 영생은 오직 한 가지이며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어 “조에”에서 왔는데,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의 생명의 일부를 받았으므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며, 그러면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그 생명,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 생명으로 몸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으키시는 분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 몸을 살리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일으켜 영광 가운데 앉아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제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이 여러 해를 지내 오는 동안 이 태버내클은 계속 서 있었습니다. 저는 약 삼십삼 년 전에 이곳 제퍼슨빌의 선교침례교회에서 로이 E. 데이비스 박사에게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그 조직에 속했던 기간은 불과 몇 달 정도로 짧았습니다. 교회에서 비성경적인 일이 생겼고, 저는 그 일에는 따를 수 없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물론, 하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하라는 말을 들었고, 저는 나갔습니다. 제가 믿는 한 가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교사였던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여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그게 우리 교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저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조직을 반대해 온 것은 제가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형제님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단, 특히 순복음 계열은 물론 다른 여러 교회에서도 초청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제가 자신들의 교제 안으로 들어와 함께하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립적으로 남았습니다. 제게 있는 영향력을 어느 한 집단에만 쏟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 병자를 위한 기도가 모든 조직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유익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어느 교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십니다.
우선 제가 그런 조직에 속하지 않았고 그것을 반대하여 말해 온 첫째 이유는, 기독교를 조직으로 만드는 일이 성경적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께 입증하려고 애쓸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만드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바른 신앙에 맞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것을 종교라고 부르는데, 종교라는 말은 “덮개”, 곧 무엇을 덮는다는 뜻입니다. 아담에게도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가 무화과 잎으로 직접 만든 것이었으며, 그것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이론을 세우고, 스스로 한 어떤 일에서 구원을 찾으려 하며 피할 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아담 때부터 마지막 조직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그렇습니다.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성경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겠습니다. 종교는 덮개였습니다. 아담은 무화과 잎으로 자기를 덮을 것을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자기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죽음, 곧 속죄였습니다.
종교와 구원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구원 말입니다. 종교는 덮개입니다. 구원은 출생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출생이며 하나님의 선물이고,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물을 각 사람에게 주십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영생의 선물들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계시록에서 땅에 올 적그리스도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속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누가 올 것이고 누가 오지 않을 것인지를 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올 사람들을 위해 길을 마련하시려고 내려오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떨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면 무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하시다면 전능하지 않고는 무한하실 수 없습니다. 어디에나 계시지 않고는 전능하실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지 않고는 어디에나 계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그분을 하나님이 되게 합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을 아셨습니다. 누가 올 것이고 누가 오지 않을 것인지 아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리라는 것을 아셨기에, 올 사람들을 위하여 속죄하시도록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어떤 일도 거기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주신’, 과거 시제입니다] 내게 올 것이요.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심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도 거기에 들어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 자신도 들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냅니다. 교회는 점이나 주름 없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미리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교회 안에 있다면, 그 교회와 함께 미리 예정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나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화된 기독교는 결코 그런 확신을 줄 수 없습니다.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나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교회에서 침례를 받으십시오”라고 합니다. 마귀도 똑같이 합니다. 마귀 자신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 떱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디에서도 어떤 조직을 만들라고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것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아담이 하나를 시작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니므롯이 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역사를 연구하여 바빌론의 역사를 아시는 분이라면 히슬롭의 『두 바빌론』을 읽어 보십시오. 많은 깨달음을 얻으실 것입니다. 이... 죄의 사람 니므롯은 바빌론과 그 주변의 작은 자매 교회들, 곧 주변 지역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배교한 기독교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의 아주 큰 중심지를 만들었고, 나머지는 모두 거기에 공물을 바쳤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탑을 쌓아 사람들을 한 조직으로 묶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실패했습니다.
민수기 16장 1절을 읽어 보고 싶으시면 보십시오. 고라도 바로 그와 같은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레위 사람들을 모두 모으고, 유명하고 지위가 높고 훌륭하며 거룩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다단과 함께 “한 사람이 우리 모두의 위에 서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조직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택하신 모세와 아론 앞으로 나아와, 그들이 분수에 넘치게 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온 회중이 거룩하므로 자기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조언자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에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원한다면 성경 구절을 가져다가 “유다가 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하고,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라고 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셨고 하나님께서 아론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의 메시지였습니다. 반대편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의 생각에는 어긋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을 너희 안에 품으라.” 이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계시록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분이 이 조직을 어떻게 정죄하시고 어떻게 한쪽으로 제쳐 놓으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뒤에 그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고라가 신실한 마음으로 행동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만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성경을 알지 못한 무지 때문에, 그 일을 인간적인 추론으로 판단했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문제의 거의 구십 퍼센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 생각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전혀 우리 생각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각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뜻에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고라는 선한 뜻을 품었지만 거짓 교리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요 메시지를 전하는 자인 모세만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논리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온 회중이 거룩하다. 그러니 온 회중에게 이것을 할 권리도 있고 저것을 할 권리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한 사람들, 레위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들”입니다. 레위 사람은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일로 그들을 꾸짖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 일을 불경스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향로를 가져다가 거룩한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올려, 이 거룩한 향을 흔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다스리도록 명하셨는데, 그들은 여러 사람으로 집단을 만들어 교회를 다스리려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자 모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일을 맡기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향로들을 이 성막 앞으로 가져오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불을 가득 담은 향로를 흔들기 시작하여 향이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들에게서 갈라서라! 그들 가운데서 나오라!” 그 뒤에 그분은 그들을 “죄인들,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도둑질합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합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간음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길은 둘뿐입니다. 믿음 아니면 불신입니다. 여러분은 둘 중 하나의 지배를 받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이셨으며,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고 지금도 말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손에 향로를 들고 거룩한 불을 들고 있던 이 순진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땅을 열어 삼키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서 갈라섰으므로 그들을 모세에게서 갈라놓으셨습니다. 모세는 회중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런 무리와 어울리지 마십시오. 그들에게서 떠나십시오!” 여러분은 그 성경 말씀을 아십니다. 16장, 17장, 18장까지 읽어 보시면 나옵니다. “이 죄인들,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서 갈라서십시오. 그들 가운데서 나오십시오.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멸망을 향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불을 들고 있던 이 사람들과 함께 땅이 내려앉고 무너졌을 때... 사람들에게 속은 순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거룩한 말씀을 손에 들고, 그것으로 설교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통의 덫에 빠지는 순진한 사람이 많습니다. 방금 한 목사님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스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리교 목사님... 지난 일요일 밤까지는 감리교 목사님이셨습니다. 형제님이 바라보시는 모습을 보니, 그곳에서 나온 일이 형제님께는 참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향로를 들고,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내며 불을 피우고, 손에 그것을 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향로를 손에 든 채 멸망했습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조직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분수에 넘치게 행합니다. 당신이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졌다고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그때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었습니다. 온 땅에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에게 메시지가 있었지만 백성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와 정확히 일치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일을 봅니다. 선하고 훌륭하고 귀한 사람들이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사람이 만든 어떤 전통을 통해 그것을 전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잘라 내고, 저기서는 줄이고, 이런 식으로 바꾸고는 “와서 교회에 가입하십시오. 교적을 옮기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손에 든 채 영적으로 죽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나 그 시대의 메시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왜 온 집단과 함께 일하시지 않고 한 사람에게만 맡기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릅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제님 말씀이 옳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직에서 우리를 쫓아낼 것이고, 그러면 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갈 곳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굶어 죽을 겁니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늙었으되 지금까지 의로운 자가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씨가 빵을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도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자기 교단과 거룩한 제사장들, 거룩한 건물들, 거룩한 교회들, 거룩한 성전들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서, 인간으로 된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인 네가 너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든다.” 그렇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단과 그들이 옳다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니므롯은 자기가 무언가를 이루어 사람들을 하나님의 진노보다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담은 자기 벌거벗음을 덮으면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덮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덮어 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덮는 것은 여러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 계신 예수님,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오늘날 성경 말씀이 전통에 의해 이렇게 잘려 나간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 서서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전통이 다르게 가르치므로 감히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형제님들, 솥과 그릇이나 계속 씻으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저와 제 집은 그리스도, 곧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잠깐 요한복음 3장을 봅시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이라는 큰 교단의 선생이자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자신들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있었고, 그때도 교단과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었으므로... 이 사람은 그 큰 산헤드린의 선생이자 지도자였으며, 가르치는 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경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의 전통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가 되게 하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의 전통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쓰인 그대로 두지 않고 자기들 나름의 해석을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런 뜻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첫 조직을 시작할 때 마귀가 이브에게 했던 바로 그 말이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분명히 이럴 거야.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을 거야.” 같은 일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이 지도자가 예수님께 왔다는 것을 보십시오. 우선 그는 영생을 찾아왔습니다. 구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만한 지위를 가진 이스라엘의 선생이, 단 하루라도 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이 없는 사람에게 왔습니다. 나이 든 사람, 늙은 제사장이자 현자가 젊은이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귀족이었습니다. 부자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거지에게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길을 물으러 왔습니다. 우선, 니고데모의 고백처럼, 산헤드린에 속한 그들은 자기 조직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예수님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분 안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습니다. 쫓겨날까 봐 드러내 놓고 고백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아, 조직이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나타나신 분이었다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그들은 이분에게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의 빛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증인이셨습니다. 고라도 모세에게서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모세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고라와 그 무리는 모세에게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모세 자신의 힘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열 수는 없었습니다. 모세가 땅에 재앙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모세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증인, 곧 그 시대의 빛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기에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고라는 여러 사람을 한 무리로 만들고, 무엇이든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조직이 잘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온갖 잡된 무리를 끌어들이고는 그것을 “기독교”라고 부릅니다. 호텐토트 사람이 이집트 기사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청년을 학교에 보냅니다. 거기서 교육을 받고 심리학을 배우게 한 뒤, 철학박사 학위나 다른 박사 학위, 문학사 학위 같은 것을 줍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적조차 없는 그를 복음을 전하라고 내보냅니다. 그러면 그는 처녀 탄생과 부활을 부인하고, 신유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며,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치신 바로 그 원리들을 부인합니다. 마가복음 16장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는 말씀을 부인하며, 사도행전 2장 38절을 부인하고, 그 밖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들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전통을 붙들고 계속 되풀이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말해 주고 보여 주어도, 자기 조직 때문에 체면이 걸려 움직이지 못합니다.
고라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고라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역사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니고데모도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니고데모는 이미 조직 안에 있었고 거기서 나오려고 했습니다. 고라는 밖에 있으면서 들어갈 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차이였습니다. 니고데모는 구원을 찾으며 그곳에서 나오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 안에 있었으나 이제는 지쳤습니다. 그는 구원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고라는 자신이 거물이 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거짓 모방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만, 우리 오순절 사람들 사이에는 그것이 들끓습니다. 육적인 비교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세워 무언가를 주시면 온 나라 사람들이 그 사람을 흉내 내려 합니다. 자기 팀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미식축구를 할 때... 또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인내로 이 경주를 달립시다.” 공을 가진 사람의 손에서 공을 빼앗지 말고 그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대신, 그가 여러분 조직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공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서툴러서... 양탄자에 그려진 꽃에조차 걸려 넘어질 정도인데, 그러면서도 여러분에게서 공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사도행전 2장 38절 같은 작은 것에도 걸려 넘어지면 분명히 쓰러질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어떻게 끝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리스도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논쟁하던 바로 그 문제에, 이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고라는 들어가려고 조직을 만들려 했고, 니고데모는 그 안에 있다가 나오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받아들여졌고 나왔습니다. 고라는 그 안에서 멸망했습니다. 자기 노력 속에서, 자신의 그 시도 속에서 멸망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니고데모가 속했던 조직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3장에서 니고데모가 고백합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이 기적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그런데 그 같은 집단이 자기 조직 때문에, 그분이 마귀들을 내쫓는 권능을 두고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 교리로 우리 백성을 속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같은 일입니다. 무엇을 속인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만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만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직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을 묶어 놓은 방식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알았지만, 조직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고 사람들이 조직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모든 사람이 그를 따라간다”고 했습니다—사람들이 조직을 떠나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려고, 그분이 사람들을 속인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진리이셨습니다. “나는 진리요 빛이라.”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속으로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심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이런 말이나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그것을 알고 말하고 고백하면서도, 돌아서서는 그분을 “바알세붑이며, 자기 교리로 백성, 곧 자기들의 백성을 속이는 자”라고 부릅니다. 아, 세상에!
니고데모는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조직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고 두려워하여, 구약을 통해 이분이 자격을 갖추셨고 입증되고 확증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이심을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존중하겠습니다. 비록 밤에 왔더라도 그분께 왔습니다. 아예 오지도 않는 오늘날의 많은 교사보다 훨씬 낫습니다. 니고데모는 마침내 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그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니고데모는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그분, 그 시대의 빛을 놓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반대되어 보이고 자기 조직이 아무리 반대된다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그분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았으며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알았습니다. 선지자라면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므로, 그분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갔습니다. 구원받는 길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분은 선지자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계셨으므로 구원의 길을 아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배워야 했던 것은 오늘날 이 시대의 교단에 속한 많은 사람이 배워야 할 바로 그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알았어야 할 것은 오늘날 이 교단 사람들도 알았어야 할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이상이셨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분께 와서 찾으려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셨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가르침을 배우러 와서는 안 되고, 그분 자신을 받아들이러 와야 합니다. 오늘 밤도 바로 그렇습니다! 으뜸 모퉁잇돌이 다시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으뜸 모퉁잇돌이 무엇입니까? 물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니고데모에게는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분은 선지자시구나. 그저 선지자이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의 눈먼 상태를 꾸짖으셨습니다. 선지자 이상이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고, 밝게 비치는 말씀의 빛이셨습니다! 한 도구를 통하여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이셨으며, 그 사람 안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아니, 요한복음 1장에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이 작고 연약한 사람의 몸을 통해 빛을 비추셨고, 그 빛이 조직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개인들을 얻으러 오셨습니다. 선지자 이상이셨습니다.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장차 올 어떤 생명에 대해 가르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 자신이 그 생명이셨습니다! 그분은 생명이셨습니다. 빛이셨습니다. 생명이셨습니다. 영생이셨고, 영생이 그분 안에 있었으며, 그분만이 영생을 주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에 관한 말씀의 가르침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 자신을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앉아서 성경과 모든 그리스어 단어를 배우고, 그 정의와 구두점 등을 공부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아닙니다! 형식을 가진 사람입니까? 계획을 가진 사람입니까? 아들을 가진 사람, 그분 자신을 모신 사람입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그분이 생명을 아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분 자신이 영생이심은 몰랐습니다. 그가 말씀을 나누던 분, 메시지를 전하는 분, 그 시대의 빛이자 세상의 빛이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보내심을 받으셨으나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더라.” 왜입니까? 왜입니까? 그들이 너무나 조직에 얽매여 솥과 그릇을 씻는 일과 전통에 굳어져 있었기에, 육신이 된 말씀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일입니다.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때가 되면 되풀이됩니다. 그렇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분이 생명에 대해 아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분 자신이 생명이심은 몰랐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훌륭한 교사로 만들려고 하고, 선지자라고까지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하려 하면, 그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왔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니고데모야,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인 것을 나는 매우 존중한다. 한 가지 말해 주마. 네가 영생을 찾고 있으니, 아마 학문을 좀 더 닦아야 할 것이다. 너는 단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구나.” 말도 안 됩니다! “아니면 영생을 얻기 위해 네 교단에서 더 높은 직책을 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바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더 높은 직책입니다. 목사에서 주 담당 장로가 되거나 감독 같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분이 그런 사람 앞에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사는 때를 알지 못하여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그분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시자, 그는 “제가 늙은 사람인데 어머니 태에 들어간단 말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가 감독이요 추기경이요 오순절교회나 다른 교단의 주 담당 장로이고, 조직 안의 높은 사람이라면서 성경을 모른다는 말이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모세가 있습니다.” “너희가 모세를 알았더라면 나를 알았을 것이다. 그가 나를 두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과 조직에 따르면 달랐습니다. 모세는 그분에 대해 말했고, 그분이 바로 모세가 말한 분이셨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자신들을 전통으로 너무 꽁꽁 묶어 놓아서 알지 못했습니다.
이 테이프를 받으신 형제님들, 지금 끄지 마십시오. 잠깐만, 이 문제를 똑바로 마주 봅시다. 저는 형제님들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목자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인 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상을 드리고 있다면 테이프를 멈추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다만 참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저는 사람들이 세운 질서 등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직들을 만들면...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사두개인들과는 아무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천사도 영도 부활도 아무것도 믿지 않았고, 바리새인들은 둘 다를 시인했기에 서로 싸웠습니다. 이제 일신교 측은 이렇게 믿고, 삼위일체 측은 저렇게 믿으며, 감리교는 또 다르게, 장로교도 또 다르게 믿습니다. 그렇게 작은 경계선들을 긋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남습니까? 형제들이 갈라집니다. 조금 뒤에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시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니고데모에게 더 닦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된 것을 모른다고 꾸짖으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땅의 것들을 말하였어도 네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정통 교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선생이요 감독이요 추기경이면서, 내가 말하는 자연계의 가장 초보적인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늘에서 오는 영적인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그런데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무식한 늙은 어부는 그것을 이해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올 것이요.” 그들은 그것을 봅니다. 믿습니다. 자신들을 붙잡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행동합니다.
그 농부 이야기와 같습니다. 농담을 하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농부가 암탉에게 알을 품게 했는데 달걀이 모자라서 오리 알 하나를 그 밑에 넣었다고 합니다. 새끼 오리가 부화하자 병아리들이 여태 본 것 중 가장 우습게 생긴 녀석이었습니다. 얼굴은 길고 우스꽝스러웠으며, 돌아다니면서 삐약거리는 대신 꽥꽥거렸습니다. 병아리들은 모두 마당에서 모이를 먹고 쪼아 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리에게 딱 맞는 먹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어미 닭이 메뚜기를 잡으려고 그를 헛간 뒤로 데리고 갔습니다. 언덕 너머에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마침 호수에서 바람이 불어와서 그는 물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것은 본성이었습니다. 어미 닭은 “꼬꼬꼬꼬, 돌아와!”라고 했습니다. 그는 “꽥꽥꽥” 하며 곧장 물로 갔습니다. 왜입니까? 처음부터 오리였기 때문입니다. 암탉이 아무리 꼬꼬거려도 그는 여전히 오리였습니다.
영생으로 미리 예정된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보면, 세상의 조직들이 모두 모여 꼬꼬거려도 그를 다시 안으로 불러들일 수 없습니다. 없습니다. 왜입니까? 그것이 그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오래도록 같은 먹이를 먹으며 그들의 쓰레기 같은 것과 사교 모임으로 배를 채워 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는 때에 이르면 그것을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며, 낯선 자는 따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낯선 것을 따르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 속 깊은 곳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한 번만 진리를 듣게 해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올 것이요.”
그렇습니다. 그분은 모르는 그를 꾸짖으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제 자연적인 사람에 관하여 여기 한 가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자연적인 생명에서, 우리가 이 자연적인 삶과 자연계의 일들 속에서 활동하려면 자연적인 출생을 거쳐야 합니다. 어디 나무에서 여러분을 뚝 따다가 어떤 방식으로 밖에 내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도를 해 보았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 출생, 자연적인 출생을 거쳐야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오감을 갖추고 걷고 말하고 보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고 돌아다니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모든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들이 자연적인 삶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출생을 통하여 때로 우리는 세상의 지혜나 세상일에 아주 현명해져서 대통령이나 뛰어난 학자, 숙련된 기술자, 과학자 등이 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런 지혜를 가졌던 쪽은 가인의 자손들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십니다. 셋의 자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겸손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셋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자손들은 언제나 영리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으며, 과학과 의술에 능한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다. 그들은 매우 종교적이었으나 결국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학문을 익히는 등의 일을 통해 지혜로워집니다. 아주 지혜롭고 영리해져서 여러 일을 하고 여러 말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말로 이기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자녀들이 왕국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들은 지성으로 말을 잘하고, 남보다 더 꾀를 부리고 더 능숙하게 말하며, 성경을 가져다가 비틀어 실제로 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그에게서 떠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쓰여야 할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을 속이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놓여 있습니다. 너무 단순해서 그들이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사람들이 이 모든 지혜와 여러 것을 쌓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 출생은 아래, 이 땅에서 온 것입니다. 땅에서 났으므로 하나님의 영을 거스릅니다. 여기서 활동하게 하는 첫 출생은 우리를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동산에서 죄를 지은 행위 때문에 사람이 여자를 통해 세상에 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날수가 적지만,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영원합니다. 욥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날수가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반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영리해져서 거의 다른 이들을 꾀로 이길 만큼 됩니다.
마귀가 얼마나 교활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땅에 나온 모든 제사장을 속였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속였고, 지금도 계속 속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영리했지만, 어느 날에는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 패배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그분께 기대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미 마귀를 패배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온갖 것을 입증하고 보여 주면서 사람이 왜 이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려고 쌓는 이 지혜는 아래에서 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적인 생각 말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영리해도 비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하나님께서 언제 조직을 두셨거나 명하셨는지 보여 주기 바랍니다. 여기 성경에서는 그것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영리하게 해 보려 해도, 그것은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 지혜로 여러분 앞에 서서 논쟁에서 이기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아 여러분을 아주 작게 느끼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어긋납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형제님께 반대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형제님은 ‘오직 예수’파(Jesus Only)입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주 담당 장로가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누가 그러는데 형제님은 ‘오직 예수’파라더군요.” 저는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틀린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형제님은 자유연애를 믿으며 남자는 아내를 버리고 찾아다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마귀의 거짓말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런 비성경적인 것은 절대 반대합니다! 저는 거룩함과 순결을 믿습니다. 남자는 두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아내에게 매여 있다고 믿습니다.” 먼저 기도하지 않고 아내를 맞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파, 그 집단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어느 집단 못지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례를 잘못 줍니다. 중생을 얻도록 침례를 줍니다. 저는 우리가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중생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침례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며, 성경에는 그것을 반박하는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와서 그렇게 침례받은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한 곳이라도 보여 주기 바랍니다. 그러니 그것이 비성경적이라면 그만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바울에게는 상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고 그다음 성령을 받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와서 다른 복음(바울이 가르친 것과 다른 복음)을 가르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전통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훌륭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순종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게는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명망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선택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시겠습니까, 사람을 섬기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조직을 만들고 그 안에 이런 선언문들을 세운 다음,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것이 처음 사용된 곳은 로마 가톨릭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도 역사를 읽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가톨릭의 침례이며, 그런 식으로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가톨릭의 교제 안으로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밤이 끝나기 전에 입증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돌아와야 합니다. ‘오직 예수’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에도 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 하나님의 교회,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가톨릭에도 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그 교회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도 아닙니다. 그 안에 그 교회에 속한 개인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려고 하지만, 그들이 가진 교단이 그들을 교회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조금 있으면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활동하려면 자연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런 출생으로 우리는 지혜로워집니다. 영리하고 총명해지며, 우리의 지성이 그런 것을 줍니다. 그러나 그 출생은 시작부터 거스르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땅에 속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며,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 앞에서는 어리석고 그 계획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니고데모가 그것에 대해 예수님보다 더 많이 알았을 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냐?” 아시겠죠? 여러분의 교단과, 함께 모여 계획을 짜고 앉아 있는 그 대단히 영리한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십니까?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어떤 부분에 빛을 비추어 땅에 보내실 때마다, 사람들은 곧바로 그것을 가지고 달려 나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자마자 그것을 조직으로 만듭니다. 조직을 만들자마자... 지금 이 자리에 계시거나 테이프를 듣는 어떤 역사가에게든 부탁합니다. 제게 와서 보여 주십시오. 사람이 교회를 조직으로 만든 때마다 그 교회는 바로 거기서 죽었고, 다시 살아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릅니다. 성경을 거스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것을 반대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반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안에 계신다면, 저도 하나님께서 반대하시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분의 원수가 제 원수입니다. 그분의 교회가 제 교회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제 생명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가 그분의 은혜로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이 제가 되셨습니다. 서로 자리를 바꾼 것입니다. 그분은 저와 같은 죄인이 되셔서 저를 위해, 제 자리에서 죽으셨습니다. 제가 그분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교단들이 벌써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십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 지혜에는 밝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죽어 있습니다! 이제 돌아봅시다.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아담은 말씀에 불순종했으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거슬렀습니다. 스스로 덮개, 곧 종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실패했습니다. 사람이 하려고 하는 일은 언제나 실패해 왔습니다. 니므롯은 잘못했습니다. 고라는 멸망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했습니까? 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 뒤에 그들이 결국 조직을 만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보신 것은 죽어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눈먼 자를 인도하는 눈먼 자들이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지지 않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새 출생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그 전통들을 멀리하고 말씀을 붙들었더라면, 내가 사람들에게 새 출생을 주려고 온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내 날을 알았을 것이다. 모세를 알았더라면 나를 알았을 것이다. 모세는 나를 두고 말했고 내가 오리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 내가 있다! 내가 모세와 선지자들이 내가 하리라고 말한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나를 믿지 말라. 하나님의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나를 믿지 말라. 그러나 내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일들을 행한다는 이유로 나를 믿을 수 없다면, 그 일들은 믿으라. 그 일들이 내가 하는 일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만일 그분이 오늘 땅에 사신다면 하나님의 성회도 자기 예수님을 하나 두고, 일신교 측도 하나 두고, 모두가 자기 예수님을 하나씩 두려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교단이 공을 들고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방식으로 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을 갈라놓습니다. 저는 리틀 데이비드라는 소년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 결혼했고, 아마 가족도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처음 시작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저는 세인트루이스에 갔습니다. 어린 소년 설교자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올라가서 “예수님은 작은 아기였고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엄마, 그다음이 뭐였죠?”라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은 달랐습니다. 윗옷을 벗어 던지고 본문을 정한 다음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누구였습니까? 마침 ‘오직 예수’파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워커 씨가 ‘오직 예수’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성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만의 리틀 데이비드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나머지도 모두 자기들만의 리틀 데이비드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한 번은 그 소년이 플로리다에서 집회를 열면서 저더러 내려와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무어 형제님과 제가 신문 앞부분 두 면을 보았는데, 온통 리틀 데이비드뿐이었습니다. 교회마다 리틀 데이비드가 있었습니다. 아, 세상에! 하나님의 장로들이 함께 그 어린아이 안의 은사를 알아주었다면, 그는 수천 명의 혼을 왕국으로 이끌어 들였을 것입니다. 그가 사람에 관한 전통이며 이런저런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은사를 두셨으니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신유가 처음 드러났을 때에는 누구나 손에 감각이 있다느니 병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느니 했습니다. 아, 세상에! 왜 그랬습니까? 자기 조직이 경주에서 뒤처져 있었으므로 그렇게 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조직을 하나님의 계획보다 앞세우고, 그것이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상관없이 자신의 교회, 그 신비한 몸을 계속 전진시키십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들어갑니다. 세상의 지혜에는 밝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죽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말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으로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입증해도, 그들은 여전히 보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앉아서 말씀을 가지고 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가진 신조들, 그 교회의 신조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보여 주면 그들은 “우리는 이것을 믿으라고 배웠습니다”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런 것은 소모품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쓰이는 소모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게 와서 생명을 얻도록 보아야 하는데 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존경받는 사람, 훌륭한 사람, 자기 교회의 감독이자 유명인이었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와 보니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너무나 무지했기에 예수님께서 그 일로 꾸짖으셨지만, 그래도 그는 찾아올 만큼 신실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아무개 감독, 또 아무개 편에 서서 멀리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장로들의 전통을 택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주어도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묻겠습니다. 불경스럽게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테이프를 듣고 계신 형제님들, 불경스러운 뜻이 아닙니다. 제가 밖에 나갔는데 나무의 옹이가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돌아다닙니까? 나도 생명이 있는데, 이 나무에 달린 옹이입니다”라고 묻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자기에게 생명이 있음을 입증할 수 있지만, 종류가 다른 생명입니다. 돌아다니고, 보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고 싶다면, 그것이 말을 하여 제게 그렇게 물을 수 있다면, 유일한 길은 저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멘.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면 제가 아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아멘. 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의 옹이에게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활동하는지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려면 우리와 같은 종류의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영도 같습니다! 영에 관한 일도 똑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치로 풀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그분께 오십시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왕국을 볼 수도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부인합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삶이 그 사실을 입증합니다. 여러분이 가입한 그 집단이, 끼리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조금 뒤에 그 문제들을 다룰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영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영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의 일들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영의 일들을 이해하려면 영에게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부는데, 나는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영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도 그러해서 그들이 여러분에게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영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도록 맡깁니다.
제가 이 강단에 서서 제 생각으로 저 뒤에 있는 사람에게 “이름은 존 도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이런 일을 했습니다. 이십 년 전에 저곳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일을 돌이키고 저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을 짜내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출생에는 그런 지혜가 없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위로부터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영에게서 태어나면, 그런 일들을 행하신 그분 안에 있던 생명이... 그분은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출생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속았습니다. 방언을 했을 수도 있고, 위아래로 뛰었을 수도 있으며, 소리 높여 외쳤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모든 일을 했을 수도 있고, 충실한 교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출생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부인하며, 그것을 다른 곳에 놓으려 하고, 무언가 손을 대어 그렇게 흩뜨려 버릴 때...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동안에는 이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그분이 언제 교회에서 그것을 거두셨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어느 때까지만”이라고 하신 성경 구절을 보여 주십시오. 그분은 “온 세상과 모든 창조물에게”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삶을 살려면 그분이 가지셨던 종류의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의 삶을 보면 그분의 말씀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인칭대명사입니다. 생각이나 상상이나 느낌이 아니라—“그분 곧 성령께서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런 것들을 가져다가 너희에게 계시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것이 그 출생입니다. 그것이 말씀이라는 입증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며 다른 곳에 갖다 놓는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자신의 말씀을 부인하실 수 있습니까? 이제 말씀 안에서 조직을 보여 주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어떤 사업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여기서 우리 교회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주 잘되어, 빨리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죽은 사람들, 시체들이 있는 곳에 가서 “와서 나를 위해 일해 주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직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죽은 자들, 불신자들이 니므롯처럼, 고라처럼, 시대마다 그랬던 것처럼 한데 모여 있습니다. 어떻게... 그분은 그것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조직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쓰실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을 벗어났고 그 너머로 가 버렸습니다. 손이 닿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곳에 있습니다.
머리와 손과 발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가서, 여러분을 위해 달리기 경주에 나가 달려 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내로 이 경주를 달리고, 벗어 버리고... 아시겠죠?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먼저 마비를 없애 주어야 그가 달릴 수 있습니다. 조직에 필요한 것은 바로 신유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제가 비판적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못을 박아 끝을 꺾어 두지 않으면 쉽게 빠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교단을 사용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자마자.
기억하십시오. 저는 마르틴 루터에게 성령이 계셨다고 믿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분량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아직 그만큼 부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곳 태버내클의 여러분, 우리는 여기 칠판을 놓고 이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저처럼 그것을 믿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내려가는 길에 찰스 풀러의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분도 새 출생이 성령 침례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새 출생은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침례입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이 사람이 활동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태어나면 세상의 지혜를 갖게 됩니다. 세상의 지혜는 육신적인 선생에게 순종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래서 새 출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그는 생명의 말씀보다 자기 감독이나 장로나 조직에게 순종합니다. 왜입니까?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장로가 될지 모르잖아.” 하지만 니고데모는 선생이었습니다. 장로보다 높고 목사보다 높은,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이 집단에 속했지만, 하나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역사적인 지식만 조금 알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분이 아니라면 역사 속의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늘날에도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모세의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십자가 위에 있던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었으면서, 오늘날 같은 처지의 사람은 구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가 늘 말했듯이, “카나리아에게 좋은 씨앗과 비타민을 먹여 튼튼한 날개와 아름다운 깃털을 갖추게 해 놓고 새장에 넣어 두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권능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고 하면서, 그런 것을 믿지도 않는 조직 안에 그를 밀어 넣습니다. 모든 것이 어긋나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합니다.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 어디에서도, 역사 어디에서도 성령께서 조직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 테이프를 듣는 분이나 여기 계신 분 중에 성령께서 조직을 택하여 땅에서 어떤 운동을 일으키신 일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제게 와서 말해 주십시오. 어느 역사책에서 나오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없다는 것을 아실 테니, 어느 역사에 나오는지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한 개인을 사용하십니다.
좋습니다. 영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나 세상의 지혜를 가지면, 그 지혜는 육신적인 선생에게 순종합니다. 영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성령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영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어떤 전통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보는 것입니다. 조직에 속하고 모든 소망을 거기에 두면... 저는 조직 안의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몇 분 뒤에 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다시 태어난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들입니다. 조직이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개인들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를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는 것뿐입니다. 그를 갈라놓습니다. 좋습니다. 육신이 어떻든, 교단은 육신을 가르치며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다시”는 “위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원한다면 사전에서 연구해 보십시오. “위로부터 온 출생”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태어났으므로, 다시 태어나려면 이제 이 위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왕국은 이 왕국보다 너무나 높고 너무나 위대하기에, 이 왕국은 저 왕국에게 어리석게 보이고 저 왕국은 이 왕국에게 어리석게 보입니다.
제가 자주 말했듯이, 얼마 전, 몇 달 전에 아내와 식료품을 사러 갔다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불경스러운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크고 유명한 조직 하나의 방송을 들었습니다. 딸과 함께 교회 헌당식에 가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데, 무엇에 관한 무슨 노래였는지, 그런 고전적인 창법의 노래였습니다. 제게는 여자들이 얼굴이 파래질 때까지 숨을 참고서는 그것을 노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것은 새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옛 오순절 찬송이 좋습니다. 가락을 도무지 맞추지 못하는 음치라 해도, 여전히 노래하며 주님께 기쁨의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파래지도록 숨을 참았다가 소리가 사그라들고 다시 살아나는 식이면... 본인도 무엇을 부르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를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으로 아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 노래가 끝났을 때, 음악을 공부하는 제 딸이 “형제님, 정말 고전 음악이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 하지만 오십 명쯤 되는 저 성가대 가운데 몇 명에게서 담배 냄새가 날 것 같으냐? 어젯밤이 토요일 밤이었는데, 그 성가대에서 가볍게 사교적인 술 한잔도 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저 안의 여자들 가운데 짧게 머리를 자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화장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 교회 목사가 며칠 전에 ‘하나님께서는 화장품을 만드셔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얼굴을 칠한 한 여자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개들의 먹이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교회와 이교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화장이 이교도의 특징이며 언제나 그랬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이 그것을 합니다.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그러고는 거기 서서 그런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몇 분 뒤에 그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래도 조직에 속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제 생각에는 심판 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영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영 안에서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이것이 그분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말을 더하거나 여기서 빼면,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집니다. 휴! 강한 말이었습니다. 전통으로 한 가지라도 더하거나 한 가지라도 빼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조직과 교단을 찾아보십시오. 여러분은 거기서 달아날 것입니다! 좋습니다. 육신이 어떻든, 교단의 가르침은 성경에 어긋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태어남은 위로부터 오는 새 출생, 위로부터의 출생을 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에 속한 일들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분 자신이 자신의 말씀 안에서 여러분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가지이며, 그분은 포도나무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또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여기서 니고데모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그들은 그분이 사람이므로 하나님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서 그분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지금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하늘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며, 지금 이 집 지붕 위에 서서 니고데모와 이야기하는 그분이 지금 하늘에도 계실 수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어야 합니다. 그분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모든 곳에 계십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전통에 갇힌 그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영적인 생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육신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사람들이 나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다윗의 아들이다’라고 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다윗이 영 안에서 그를 ‘주’라 부르며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였느냐?” 어떻게... 그분은 다윗의 뿌리이자 후손이십니다. 다윗보다 먼저 계셨고, 다윗이셨으며, 다윗 뒤에도 계셨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시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뿌리이자 후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윗의 아들이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윗의 주님이실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때부터 그들이 그분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활동합니다. 위에 속한 일들에서 활동합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씀 자체를 입증하는 그분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영은 여러분 안에서 육신이 된 말씀입니다. 영은 말씀을 따르며 말씀을 입증하는 일에 활동하십니다. 그런데 영은 어떤 교단 안에서도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조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없으십니다. 영 자신이 조직을 거스르시기 때문입니다. 조직은 세상적인 것과 세상의 생각을 구하며, 큰 성전과 세련된 것들, 크고 번듯한 조직과 세련된 설교자들 등을 만들어 냅니다. 또 도시의 상류층을 추구합니다. 반면 영은 정직한 마음들을 찾으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간절히 나타내고 입증하고자 하십니다. 말씀을 부인하고 말씀 대신 신조를 받아들이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영이 일하실 수 있습니까?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일할 무리를 찾으러 그런 곳에 가시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안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위에 속한 일들에서 활동합니다. 영은 말씀을 따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영이 말씀에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오늘 올라오면서 숲 너머의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큰 언덕들이 갈색과 노란색으로 물들고, 그 사이에 상록수가 점점이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방금 죽음이 지나갔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꽃다발을 내놓아 언덕 위에 꽂아 두신 것입니다. 장례식의 꽃입니다. 생명은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꽃과 여러 식물의 씨앗들을 모두 다시 묻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꽃다발을 펼쳐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땅을 둘러보고 계십니다. 그것은 장례식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가 다시 떠오르면 그 씨앗은 다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아멘. 좋습니다. 영은 말씀을 입증하는 데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말씀 대신 전통을 받아들였다면... 여러분은 “우리는 전부 믿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이것은 우리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바로 거기서 멈춘 것입니다.
한 군목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느 대위가, 아니 제 기억에는 소령이 말했습니다. “군목님, 저리 가 보십시오. 대위 한 명이 죽어 갑니다. 기관총에 맞았습니다.” 그가 가 보니 그 대위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적십자 천막 안으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군목이 “대위님” 하고 불렀습니다. 그는 피가 목에서 끓어오르는 가운데 올려다보며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군목님이시군요”라고 했습니다. “예.” 군목은 말했습니다. “대위님, 죽어 가고 계십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목이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그는 “전에는 그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위님, 어디서 그분을 떠나셨습니까? 그분을 떠난 바로 그곳에서 다시 만나실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위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말했습니다.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힘겹게 숨 쉬시는 것을 보니 몇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입이 벌어지고, 입과 귀에서는 피가 흘렀으며, 몸에는 기관총 탄환이 가로질러 박혀 있었습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폐에 피가 차고 있습니다.” 대위는 거기 누워 사투를 벌이며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이제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어디서 그분을 떠나셨습니까? 바로 거기서 시작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 제가 누워 잠을 자오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분을 떠난 곳이 거기였고, 다시 만난 곳도 거기였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말씀과 반대되는 것을 가르칠 때, 여러분은 바로 거기서 그분을 떠납니다. 곧장 돌아오십시오. 그분은 그 말씀을 입증하고 참되게 이루는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조직에서 얻은 지식은 하나님께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가 우리가 말하는 조직의 거물이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다 해도,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에는 그 모든 학문과 지식이 이만한 가치도 없었습니다(브래넘 형제님이 손가락을 튕긴다). 오직 꾸지람을 듣는 근거가 되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아마 “거룩하신 니고데모 아버지여. 거룩하신 니고데모 아버지여.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지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의 결말이 어떤지 보이십니까? 잊어버리십시오! 자, 하나님께로 갑시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고라의 대단한 지식도, 아담의 지식도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각각 하나님의 입증된 메시지를 부인했습니다.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잠시 후에는 깊은 물에 들어갈 것입니다. 니고데모와 고라와 니므롯 등, 그들 각각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그 시대의 입증된 말씀을 가지고 온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압니다. 이 부분을 오래 다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하고 말씀하시면, 사람은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을 자기 틀에 딱 맞추어 놓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유대인들, 물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오시자 “그가 메시아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에 어긋나게 오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분은 조직이 해석한 말씀에 어긋나게 오셨습니다. 모세도 말씀에 어긋나게 오지 않았습니다.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고라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줄곧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 시대의 메시지는 그저 “우리에게 진리가 있다. 우리에게 이것저것이 있다”고 말하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말씀에 미리 예고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제시된 뒤에는 말씀에 의해 올바르게 입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올바르게 입증받으셨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모세를 알았더라면 내 날을 알았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분에 대해 분명히 말했고, 모든 선지자가 그분이 누구이신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하지 마십시오... 테이프를 위해서, 또 여러분을 위해서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보십시오. 그 시대의 메시지를 지닌 사자입니다!
여러분이 가 보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우리가 그것을 가졌습니다. 안식일만 지키십시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보여 주십시오. 에디 베이커 여사도 자신이 그것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제게 보여 주십시오. 여호와의 증인도 가졌다고 했습니다. 보여 주십시오. 감리교도 가졌다고 합니다. 보여 주십시오. 침례교도 가졌다고 합니다. 보여 주십시오. 어떤 조직이든 보여 주십시오. 저는 그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났다는 것을 여러분께 입증하고 있습니다. 모두 거스르며,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람의 전통을 가르칩니다. 성경에 실제로 기록된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조직은 제가 아는 한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와서 “내게 이 시대의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면, 먼저 그가 올 것이 미리 보이고 예고되어 있어야 합니다. 침례자 요한이 나왔을 때 그들은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엘리야냐?” 그는 “나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같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내 출생과 삶이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나를 받아들이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같았습니다. 똑같았습니다. 메시지를 가진 사자라면, 그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고하신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통해 말씀하시며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하십니다. 들리십니까? 이해하십니까? 이해하십시오! 먼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로 예고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메시지를 가진 사자는 하나님께서 그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정확히 일치해야 합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며 “하나님, 주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 무리에게서 갈라서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을 비틀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해 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미리 예고되고 그분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입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일들을 하지 않으면 나를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어긋난다면... 자, 너희 중 누가 내게 죄가 있다고 정죄할 수 있느냐? 내가 믿지 않는 자라는 것을 누가 보여 줄 수 있느냐?”
니고데모는 “우리는 당신이... 랍비여, 당신이 하나님에게서 오셨음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믿는 분이심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교회사를 아는 우리로서는... 생각을 집중하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저는 할 수 있는 한 빨리 하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테이프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교회사를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기독교가 처음 조직화된 곳이 로마 가톨릭교회임을 압니다. 그 이전에도 그런 때가 있었다면 누군가 역사 자료를 가져와 보여 주기 바랍니다. 저는 폴 보이드와 여러 위대한 역사가들과 가까운 친구입니다. 제 서재에는 『니케아 이후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니케아 교부들』 등 제가 아는 교회의 모든 신성한 문헌이 있습니다. 삼십삼 년 동안 연구하고 살펴보았습니다. 조직은 없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조직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진실임을 압니다. 가톨릭교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교회가 조직화되거나 교단을 이룬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톨릭이라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국가와 교회가 결합한 종교를 만들고, 로마의 전 영토에 적용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국교였고,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십오 일 동안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이, 그들이 그곳에 서서...
가톨릭교회가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우리 모두 압니다. 여기서 제가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목회자였고, 아굴라가 로마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에는 하늘 아래 모든 민족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후 베드로가 지붕 위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로마인이자 의로운 사람인 고넬료에게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자 성령께서 고넬료에게 임하셨습니다. 얼마 뒤에는 높은 사람들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 가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아니,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첫 로마 교회를 질서 있게 세웠습니다. 그때 그들에게는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는 통치할 때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고 말하는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성경 구절 하나, 혹은 그가 있었다고 말하는 역사 기록 하나를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가 그들의 우상 숭배, 우상과 여러 것을 숭배하는 행위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 있는 자신의 가르침에 어떻게 맞설 수 있었겠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조금 뒤에 차츰 다루겠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보십시오. 교회가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고 말하는 바로 그때, 역사와 성경 모두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지나 위 지방에 와서 이 제자들을 만납니다. 그곳에서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찾아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이 교회의 로마인 형제들은 자기 생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우상 숭배를 덧붙였습니다. 그 뒤 콘스탄티누스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참 그리스도인이었고 아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대부분, 혹은 상당 부분, 아니 가난한 계층이 이미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종교는 아주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비너스를 내리고 마리아를 세우며, 주피터를 내리고 베드로와 제자들을 세우는 등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매우 인기 있는 종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용감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죽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우리가 시작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정확히 맞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오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났습니다. 조직을 만들고 말씀에서 벗어난 교리를 집어넣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교리는, 열 살이 넘은 여러분은 가장 최근의 교리를 기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약 십 년 전에 나온 마리아의 승천입니다. 교회에 또 하나의 교리가 더해졌습니다. 성경 대신 인간이 정한 교리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든 상관하지 않고 교회가 무엇이라고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입니다. 그 신부가 제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성경은 초기 가톨릭교회의 역사일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초기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러니 저는 신부인 당신보다 더 가톨릭 신자인 셈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가톨릭이라면 제가 바로 그 신자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사도들이 가르친 것을 정확히 믿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거기에 집어넣은 것을 믿습니다.” 바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를 보십시오. 그들은 교리들을,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덧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바울은 그곳에 갔을 때 첫 번째 교회는 방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상 숭배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들이 세운 두 번째 교회, 로마의 두 번째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니케아 공의회가 열릴 때, 콘스탄티누스는 자기 왕국을 통합할 방안을 보았습니다. 아합이 저쪽의 이세벨과 결혼하여 했던 바로 그 일입니다. 아시겠죠? 백성을 통합하여 강력한 나라를 만들 기회를 보자, 그들의 종교를 이용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가 결합한 종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인지 세 분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어야 하는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야 하는지, 그 밖의 모든 문제가 최종적으로 맞부딪쳤습니다. 그때 늙은 선지자 몇 사람이 양가죽 하나만 몸에 두르고 풀을 먹으며 그곳에 올라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큰 권세를 가진 자들은 이미 교회 안으로 파고들었고, 세상의 지혜로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약 천 년 동안 이교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뚫고 나와 꽃을 피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죽일 수 없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이것들이 먹어 치운 모든 햇수를 내가 돌려주리라.”
그 교단들은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인간의 교리를 더하기 위해서... 어떤 교회든, 어떤 교단이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룩한 성경 대신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긋나더라도 자기 전통이나 교회 교리를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가톨릭교회가 했던 똑같은 일을 하고도 가톨릭교회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 이해하십니까? 좋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틀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정한 교리들은 처음부터 거짓말입니다. 교단을 받아들이면 이미 그런 교리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덧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없습니다.
조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에 가서 조직들을 만들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거룩한 성경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출생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인간이 정한 교리와 신조로 이루어진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교회라는 말을 사과하겠습니다. 친목단체입니다! 교회에는 태어나서 들어가지만 친목단체에는 가입합니다. 침례교회, 감리교회, 오순절교회가 아닙니다. 침례교 친목단체, 오순절 친목단체, 감리교 친목단체이며, 여러분은 거기에 가입합니다. 교회에는 가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태어나서 들어갑니다. 니고데모가 들은 말이 그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십니까? 아, 그렇습니다! 그것이 제가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그 안의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를 반대합니다. 그들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의 장로나 누군가가 그 교리, 그 교회가 가진 정관에 어긋나는 성경 말씀을 설교하면 즉시 파문당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곳은 너무 옹졸해서 자기네 사람이 아니면 다른 교회에 부흥회가 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설교자에게 무언가 주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지역에서, 한 보잘것없는 설교자가 저 아래 길거리에 서서 울며 회개하라고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오십시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하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오순절 조직에 속한 사람이 와서 그의 손에 일 달러를 쥐여 주었다가, 자기 교회를 거슬러 간음했다는 이유로 가서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톨릭을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적어도 이 교회는 압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바뀝니다.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하고 조직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첫 번째 인간의 교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으므로 덧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리란 덧붙인 것, “대신하는 것”입니다. 출생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교단을 받아들이면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한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되면 “출생으로 이루어진 교회”에서 “인간이 정한 교리나 신조로 이루어진 친목단체”로 바뀝니다. 성경적이지 않으므로 그 자체가 인간이 정한 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으로 가서 교단들을 만들라. 가서 사람들을 조직으로 묶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러니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들으십시오.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서 한 가지를 확실히 짚고, 지금 이 문제를 단단히 박아 두겠습니다. 그리스어 사전, 옛 그리스어 사본에 근거한 『엠패틱 다이애글롯』을 가진 분이 몇이나 됩니까? 좋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원하는 어떤 학자에게든 물어보십시오. 도서관에 가서 그 사전, 그리스어 사전을 구하십시오. 계시록 17장을 읽으십시오. 여기 킹제임스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영 안에서 나를 데려가니... 내가 보니 주홍색 옷을 입고 신성모독의 이름들로 가득한 짐승 위에 한 여자가 앉아 있더라.” 이것이 킹제임스역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해석은 “영 안에서 나를 데려가니...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로 가득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성모독의 이름들”과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은 아주 다릅니다. 이제 보십시오. 우리 모두 그것이 일곱 언덕 위에 앉아 세상 권력들을 지배하는 로마 교회였음을 이해하고 압니다. 그 여자는 “음녀”라 불렸고 창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보십시오! 창녀가 무엇입니까? 남자일 수 있습니까? 여자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라면 교회여야 합니다. 그 여자는 자신과 같은 창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보십시오. 잘 보십시오. “그 여자 안에는...!” 깊이 새겨들으십시오. “그 여자 안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기 계신 목사님들과 테이프를 듣는 목사님들, 잠잠히 들어 봅시다. 그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은 무엇입니까?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 오순절교 등입니다.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입니다. 조직들이고,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거슬러 음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단들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사람들은 “그는 감리교인인데 이런 짓을 한다. 그는 오순절교인인데 이런 짓을 한다. 그는 장로교인인데 이런 짓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온갖 일을 다 한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할 이름들인데,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된 것입니다! 그것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잘못 “교회”라 불리는 것입니다. 친목단체입니다! 이제 제가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반대하는 까닭을 아시겠습니까? 조직의 체계 말입니다. 보십시오. 교회라고 잘못 불리는 친목단체들의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입니다. 감리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오순절교회, 루터교회, 연합형제교회, 그런 것은 없습니다. 비성경적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거기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서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들어가도록 미리 예정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화적인 몸... 아니, 이 땅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며, 말씀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그들 가운데서 나오라”고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빠르게 보겠습니다. 여러분을 지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몇 분만 더 주시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하겠습니다. 다만 놓치지 않고 분명히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로마를 기억하십시오. 그 여자 안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가득했고, 그 여자는 창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창녀라면 창녀란 무엇입니까? 음녀란 무엇입니까? 창녀와 같은 것입니다. 결혼 서약에 충실하지 않게 사는 여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교회는 모두 자신의 결혼 서약에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하여 간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권능, 곧 성령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대신 세상과 그 지혜와 음행합니다. 그 여자는 같은 일을 한 창녀들의 어머니입니다. 솥이 주전자더러 기름때가 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겠죠? 여섯이나 반 다스나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다니며 가톨릭을 비웃지만, 자신도 같은 것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그 여자가 잘못된 물침례의 어머니였습니다. 성령의 잘못된 증거의 어머니였고, 여러분은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제 살펴봅시다. “브래넘 형제님, 그게 사실입니까?” 잠깐만 잠잠히 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그 여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 사람들이 가입한 친목단체들의 어머니입니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살면서 비방거리를 만듭니다. 반바지를 입고,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얼굴을 칠하고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담배를 피우고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일을 하여 믿지 않는 사람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디모데가, 성령께서 그것에 관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그 여자는... 로마가 그 모든 것의 어머니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조직에서 그 여자가 한 일을 정확히 그대로 했습니다. 말씀 대신 인간이 정한 교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했기 때문입니다. 장로들과 감독 등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에서 일어난 일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목사 형제님,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받아들이려고 한번 해 보십시오. 어디로 가게 되는지 보십시오. 곧장 문밖으로 쫓겨납니다! 몇 분 뒤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지 아닌지 살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는 그 모든 것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빼고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한 최초의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생명이 입증된,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의 지성 때문에, 영리한 사람들, 로마 황제들 등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자기들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나아만은 자기 나라의 물에서 나병을 없애고 싶어 했습니다. 요르단의 흙탕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병이 없어지려면 선지자가 말한 그대로 그 흙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가 첫 교단이었습니다. 그 딸들을 보십시오. 같은 일을 했습니다. 말씀 대신 신조와 인간이 정한 교리들을 더했습니다. 말만 하지 마십시오.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은 교단을 하나라도 보여 주십시오. 진리를 받아들여도 쫓겨나지 않을 목사를 한 사람이라도 보여 주십시오. 물론 너무 인기가 많아서 그 인기를 이용하려고 붙잡아 두어야 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계시록 18장을 잠깐 봅시다. 다음 절, 아니 다음 장입니다. 계시록 17장에서 이 바빌론 여자의 신비를 밝혀 보여 준 다음입니다. 계시록 17장은 그 여자가 일곱 언덕, 바티칸 시국에 앉아 땅의 모든 왕을 지배하는 교회라고 설명합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대통령들과 그 밖의 사람들도 지배합니다. 그 여자는 거기서 세상의 부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정확합니다. “누가 그 여자와 전쟁을 할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그 여자와 연결된 어떤 것에 속하려 합니까? 이제 18장, 그 여자의 신비가 설명된 바로 다음 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전 안에 앉아 있다.”
그런데 여기... 젤라 브레이트먼, 젤라 자매님, 오늘 밤 여기 계십니까? 자매님이 가져오셨는데... 지금 저 안의 방에 있습니다. 가톨릭 신문 『아워 선데이 비지터』입니다. 그 가톨릭 신문이 어떤 목사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바티칸 위에, 혹은 교황의 보좌 위에 로마 숫자로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것이 그 가톨릭 교구에서 말하는 묵시록의 짐승의 수라는 뜻입니까?” 그는 “물론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숫자로 풀면 육백육십육이 됩니다. 정확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교구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을 보십시오. 영리하고 지혜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목사님의 이름도 어떤 언어에서는 같은 숫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제 이름도 어떤 언어로는 거의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풀어 보였습니다. “보십시오. 제 이름도 거의 육백육십육입니다. 그런 이름은 수백 개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누구에게나 육백육십육을 붙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어떤 언어에서는 목사님의 이름 자체가 적그리스도를 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왜 그런 것을 보십니까?” 그 지혜를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께서는 더 잘 아십니다. 보십시오. 그럴 수 있습니다. 제 이름을 숫자로 풀면 육백육십육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머지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저는 언덕 위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말들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통치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상은 바로 그자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 성령 앞에서는 세상의 지혜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다른 조건에 맞지 않지만 그는 맞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임을 보이며, 일곱 언덕에 앉아 있다.” 제 이름이 육백육십육이 된다 해도 저는 일곱 언덕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저는 나머지 조건에 맞지 않지만 그는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의지합시다. “너희가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시니라.”
그러면 여러분의 지혜와 위로부터 오는 새 출생이 어떻게 이 땅의 이런 것들, 거기 있는 능숙한 마술사들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었는데, 마술사들도 나와서 같은 일을 했을 때 그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음을 알았기에 가만히 섰고, 그의 뱀이 나머지를 삼켜 버렸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순종하여... 그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 홍해가 앞을 막아 가두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길은 그 한가운데로 나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멘. 그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의무의 길에서 그런 일을 만났다면, 그곳에 서서 길이 열리는 것을 보십시오. 아멘. 저는 쉰세 살이고 약 삼십삼 년 동안 그분을 섬겨 왔습니다. 그분을 섬길 천만 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지킬 때 그분이 실패하시는 것을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 여자의 죄, 그 비밀이 드러난 직후입니다. 우리는 오래전에 이것을 다루었고 알고 있습니다. 다음 장, 계시록 18장을 보십시오. 잠깐 그곳을 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몇 분만 더 걸릴 것이고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여기 17장 5절을 봅시다. ...그녀의 이마에는 신비, 큰 바빌론, 창녀들의 어머니, 땅의 가증한 것이라는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 (보십시오.) 또 내가 보매 그 여자(교회)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놀라며 이상히 여기니. 보십시오. 그 여자를 보니 대단히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여자는 매춘하는 여자들, 매춘하는 종교들, 교단들의 어머니였습니다. 딸들은 그 여자가 한 일을 똑같이 했습니다. 그 여자처럼 인간이 정한 교리들을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계시록을 보십시오. 그것이 17장이며, 18절로 끝납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 일들 뒤에(그 여자의 신비가 드러난 뒤에), 이 일들 뒤에 내가 보니 큰 권능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여기 다른 사자가 내려옵니다. 다음 장입니다. 그 여자의 신비가 드러났습니다. 이제 그 여자와 그 자녀들의 신비가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그 여자를 창녀로 만들었는지 정확히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간음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 여자를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적인 교회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을 쓰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직은 어떤 조직도 성경적인 교회일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런 조직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여자가 그런 일들을 조직화하자마자—성경으로 보나 증거로 보나—바로 거기서 죽습니다. 인간이 정한 교리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18장에서 그 신비가 알려진 뒤에 능력 있는 천사, 능력 있는 천사 곧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이 일들 뒤에 내가 보니 큰 권능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의 영광으로 인해 땅이 환해지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외치되... 큰 바빌론(혼란)이 무너지고 있으며... 그녀가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모든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며 모든 부정하고 미움받는 새의 집이 되었도다. 모든 민족들이 그녀의 음행으로 인한 진노의 포도즙을 마셨고 왕들이 그녀와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녀의 넘치는 사치로 말미암아 부유하게 되었도다.
보십시오. 그 여자의 신비가 알려지고, 그 여자가 누구이며 무엇이고 그 딸들이 누구인지, 그 신비가 알려진 직후에 하나님께서 천사 곧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무엇을 하라고요? 나오라고 부르시려고 보냈습니다. “나오라!” 그때의 메시지입니다!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가 받을 재앙들에 참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저주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에게서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능력 있는 천사, 곧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의 빛은 한구석에 머물지 않고 온 땅에 퍼졌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나오십시오! 무엇에서 나옵니까? 그 여자와 그 자매들에게서도 나옵니다. 땅을 환히 비추고 그분의 백성을 그 여자에게서 불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진리임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바빌론에서 불러내려고 한 사자가 하늘에서 보내졌습니다. 그의 빛이 땅을 비추었습니다. 위대하신 성령입니다.
보십시오. 성경은 “그 여자는 새장이며, 미움받고 부정한 새들을 붙잡아 두었다”고 말합니다. 독수리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대머리수리입니다. “부정하고 미움받는 새들”, 그 여자가 자기 주위에 가두어 둔 것이 그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런 새로 가득한 새장입니다. 새장 전체가 가득합니다. 무엇으로요? 성경에 어긋나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로 가득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리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또 “마지막 날들에 그들이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증오로 가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당신은 우리에게 속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명부에 이름이 없으면 당신은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증오로 가득합니다! 부정합니다! 상처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드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미움받고 부정한 새들입니다. 그 여자가 그들을 가두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독수리이십니다. 자신을 독수리라고 부르셨습니다. 야곱도 독수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새끼 독수리들입니다. 아멘. 그분은 자신의 선지자들을 “독수리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천사가 정체를 드러내고 불러내려고 내려왔습니다! 제가 전한 짧은 메시지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을 때”와 같습니다. 그 작은 독수리는 줄곧 마당에서 어미 닭을 따라 꼬꼬거리며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미 닭이 가진 것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사교 모임, 얼굴을 칠한 여자들, 짧게 자른 머리, 반바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아는 것은 어미 닭의 꼬꼬거리는 소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미 독수리가 그를 찾아냈습니다. 어미는 날카롭게 소리치며 그를 불렀습니다. “아들아, 너는 그들과 같은 종류가 아니다. 그 여자에게서 나오너라!” 그는 “엄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라고 했습니다. 어미는 “날개를 퍼덕이고 시작하렴”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로 뛰었을 때 그는 기둥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조직 한가운데였습니다. 어미는 “아들아, 그보다 더 높이 올라와야 내가 너를 잡을 수 있다. 땅에서 발을 떼야 해”라고 했습니다. 어미는 그를 데리고 날아갈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미는 그를 불러내러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 바빌론은 닭들을 잔뜩 붙잡아 놓았습니다. 얼굴을 칠하고 머리를 짧게 자른, 멋을 낸 젊은 여자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 여자는 그들로 새장 하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교단을 더 키우려고 강단에 서서 그런 여자들의 행동을 그냥 넘어가는 설교자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십시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미움받는 자들, 고집이 세고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자들의 새장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기보다 세상을 닮으려 합니다. 여자가 짙게 화장한 것을 보면, 속이 비어 있음을 드러냅니다. 내면이 거짓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만일 여자가... 얼마 전 저는 머리가 초록색인 여자를 보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눈 밑에도 초록색을 잔뜩 칠해 놓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가발을 쓰고 싶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사람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것을 쓰십시오. 손톱이 없어서 손톱을 달고 싶다면 흰강낭콩 껍질 같은 것을 달지 말고, 제대로 된 손톱을 구하십시오. 그런 것들이 없다면 괜찮습니다. 이가 없으면,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의치를 구해서 쓰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멀쩡한 이가 조금 고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의치를 하려고 뽑지는 마십시오. 머리를 물들이거나 무슨 짓을 해서 어디 진창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혈색이 없어서 조금 혈색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면, 제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처럼, 어디 페인트칠한 헛간처럼 보이게 하지는 마십시오.
오순절 형제 여러분, 성경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그 여자의 영광이라고 하는데도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게 내버려 둡니다! 그런 머리로 기도하는 것조차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강단에 올라와 복음을 전하고,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일요일 성경학교에서 가르치게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제가 왜 조직을 반대합니까? 제가 그런 것에 비위를 맞출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형제님, 왜 그렇게 하는지 압니다. 여러분은 더 잘 알지만, 그것을 반대하여 가르치면 본부에 보고되어 파문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의 용기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존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천사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여자에게서 나오라!” 그렇습니다. 이 천사는 땅에 왔고 빛을 가져오려고 왔으며, 온 세상에 그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천사였습니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나오라! 그 여자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선포하러 왔습니다. 온 새장에 그들을 가득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 여자는 미움받는 모든 새의 새장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들로 가득한 새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아니 친목단체 협의회입니다. 이제 그 여자는 온 무리를 가두었습니다. 모두 한데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틀림없이 새장이 되었습니다. 미움받는 새들로 가득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중 한 사람에게 한번 말해 보십시오. 해 보십시오. 세상의 지혜는 밝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토끼가 설피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그것이 전부입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이런저런 것을 끼워 넣고 손볼 수 있는 지혜뿐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아는 데 이르면요? 허! 그렇습니다. 그 여자의 교리에 걸려 그 새장 안에 갇혔습니다. 개신교회들도 똑같이 시작하여 그 여자의 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여자가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말씀을 부인합니다. 말씀 대신 다른 것을 받아들이면 여러분 자신도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에 가입하면 여러분도 말씀을 부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는 그런 것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빛의 천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지막 천사이며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천사입니다. 라오디게아의 사자입니다. 마지막인 까닭은 바로 다음 장인 19장에서 신부가 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신부가 그리스도를 만나러 나아오기 전에 빛을 가져오려고 온 마지막 천사입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사자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그들을 바빌론에서 불러냈습니다! 보십시오! 교회들은 그 여자와 함께, 그 여자의 교리와 함께 그 새장에 갇혀 말씀을 부인하고 인간이 정한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고 인간의 교리를 받아들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한 빛의 천사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밖으로 내몰았고, 그분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며 들어가려 하셨습니다. 보이십니까? 그 교회 시대는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므로 말씀을 거부했고, 그분은 밖에 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밖에서 두드리며 들어가려 하시는 유일한 교회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천사, 이 사자의 메시지는 땅에 울려 퍼졌습니다. “바빌론에서 나오라! 조직들에서 나오라!” 오늘날 성령, 성령의 나타나심이 바로 사람들을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그 천사입니다. 성령은 말씀만 입증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정한 교리들은 입증하실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보십시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는 그분을 부인하고 거부하여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보십시오. 이 천사는 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마지막 사자입니다. 사자의 음성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가 땅에서 음성을 냈을 때 하늘에서 다시 음성이 메아리쳤습니다. 읽고 싶으시면 4절을 보십시오. 좋습니다. 19장 4절입니다. 땅에 있는 이 사자가 하나님과 너무나 일치해 있어서, 그가 땅에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같은 말씀을 메아리쳐 주셨습니다. 그 4절을 풀면 무엇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된 자신의 백성에게 “그 여자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정확히 그 음성이었습니다! 그분의 백성이 그 안 곳곳에, 바빌론 전역에 있습니다. 그 여자의 죄들에 참여하지 않도록 그 여자에게서 나오십시오. 그렇습니다. 인간이 정한 그 교리와 신조들에서 나와, 영과 생명이 된 말씀으로 오십시오. 아멘.
보십시오. 그다음은 19장입니다. “이 일들 뒤에...” 여기 19장에서 “이 일들 뒤에...”라고 한 것을 보셨습니까? 무엇입니까? 무엇 뒤입니까? “그 여자에게서 나오라!”는 메시지 뒤입니다. “이 일들 뒤에는”—보십시오—“신부인 성도들이 신랑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에 나아가는 환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제님,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습니까? 마지막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바빌론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형제님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비성경적입니다. 바른 신앙에 맞지 않습니다. 거짓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계셨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조직들 안에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그곳에서 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체계 안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여러분도 그 일부입니다.
제가 미국에 머물면 미국인입니다. 제가 이 미국의 시민이나 구성원인 동안에는 그 일부입니다. 만일 독일로 가서 여기의 소속이나 시민권을 버리고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면, 더는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입니다. 일본이나 다른 곳, 러시아에 가서 그곳의 시민이 되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체계에 가입하여 그 체계의 시민이 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거기서 불러내고 계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에게서 나와 그 여자와 함께 참여하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그 여자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시겠죠?
그래서 제가 그 교회, 그 친목단체를 반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교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라고 불리는 이 친목단체들은, 제 성경에 따르면 모두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입니다. 모든 조직이 그렇습니다. 무엇을 모독합니까? 모독은 “거스르는 것”, 혹은 “맞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와서 태어나라”고 하시는데 그들은 “와서 가입하라”고 합니다. 성령 침례의 자리를 가톨릭교회에서는 얇은 성체 빵이, 개신교회에서는 악수가, 오순절교회에서는 감정이 잘못 차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다룬 그 피라미드의 모든 단계와 함께 그리스도 자신이 안에 들어오시는 것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더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 베드로후서 1장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믿음에 더해지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경건과 순결과 거룩함, 그 모든 것을 더한 뒤에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처럼... 사람들은 잘못 배웠기 때문에, 이것이 없으면서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감리교인들은 묘한 느낌을 받고, 예전에는 조금 몸을 떨거나 영 안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은 방언을 하거나 감정적인 어떤 행동을 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없는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말했듯이, 공작새가... 아니, 검은새가 자기 몸에 공작 깃털을 꽂으려 하거나, 대머리수리가 비둘기 깃털을 쓰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깃털은 거기서 자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꽂아 넣은 것입니다. 이식한 것이며 교단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에 무엇인가 두시면 자연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억지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젯밤 교회에 가입했습니다. 이제 그런 곳에는 못 갑니다. 술도 더는 못 마시고 이것도 못 합니다. 교회에 가입했거든요.” 보십시오. 대머리수리의 몸뚱이에 공작 깃털을 꽂으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받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도 그것을 부인하면 저는 의문을 갖습니다. 아시겠죠? 원하는 모든 조직에 속하여 경건의 모양을 갖출 수는 있어도, 여전히 실제로는 그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남과 달라 보이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입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휴전기념일이지만, 저는 목사 여러분과 평화 조약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여러분이 와서 저와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와가 아니라 하나님, 곧 말씀과 맺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말하십시오. 성경은 “누구든지 이것에서 빼거나 이것에 더하는 자는”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조직은 비성경적입니다. 첫 번째 인간의 교리를 받아들였다면 차라리 끝까지 되돌아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거기서 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새 출생으로 돌아오면 성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교단에 들어가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 감독들과 교회는 우리가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르치지...”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친다면,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은 말씀을 먹으실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설명으로 없애 버리려 해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성경을 가지고 설명하여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을 없애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처럼 저 거룩한 모래 위, 자신과 하나님만 홀로 서 있던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복음을 전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서서 알게 되기 전에는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불신자도, 어떤 심리학도, 어떤 설명도, 세상의 어떤 학자도 그것을 여러분에게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 일이 일어날 때 여러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경험을 했고 어떤 영이 제게 임했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영이 어떤 식으로든 말씀을 부인한다면 잘못된 영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이런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알지만 우리 교회는...”이라고 합니다. 아, 잘못된 영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식별하는 표입니다. 가인아, 네게 표가 있다. 그렇습니다. 이브는 작은 말씀 하나만 의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라 작은 말씀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모든 가슴 아픔과 비탄과 죽음과 죄와 전쟁, 그 밖의 모든 것, 모든 무덤, 지금껏 울린 모든 구급차의 사이렌, 병자들을 위해 세워진 모든 병원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말씀 하나를 조금 의심한 일이 이 모든 것을 일으켰습니다. 원래는 일어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일이었는데, 그로 인해 이브는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말씀 하나를 의심하면서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그렇게 쓰인 것은 알지만, 그것은...”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뜻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하셔야 합니다. 먼저 법이 없으면 심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심판을 받으려면 무언가를 어겨야 합니다. 그리고 형벌이 없이는 올바른 심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도시에 “빨간 신호를 지나가면 벌금 오 달러”라는 법을 만들어 놓고, 다음 법에서는 “아니다. 처벌 없이 보내 주어도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두 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법은 하나, 하나님은 한 분, 책은 한 권, 그리스도는 한 분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믿음도 하나, 소망도 하나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성경이며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여기에 무언가 더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이상일 수 없습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듯 하나님께서 교회를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면, 어느 가톨릭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시겠습니까? 여러 가톨릭교회가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있고, 그리스 가톨릭이 있고, 온갖 다른 종류가 있습니다. 어느 가톨릭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루터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실까요? 혹은 장로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실까요? 아시겠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은 결코... 보십시오. 그분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성령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밤에 자매님이 본 환상처럼, 성령이 부어졌지만 그 상자를 그대로 통과해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것도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개인에게 주어집니다. 교회를 깨끗하게 하려고 주어지지만, 교회는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어떤 조직도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전혀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것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조직은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모시는 것은 개인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면, 그 말씀을 분명히 지키시고 온전한 상태로 보존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면 어떻게 심판하시겠습니까? 아시겠죠?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누구든지... 교회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에서 한 말씀을 빼거나 한 말씀을 더하면, 그 사람[그의 몫]이 생명책에서 빠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게는 하나님, 그분의 말씀, 심판입니다. 제가 판단하여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죽으셨음을 알게 되면, 그분의 생명이 제 안에 들어와 저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할 것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말씀이고 그분이 말씀을 기록하셨다면, 어떻게 그 생명이 제 안에 있다고,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말씀 대신 인간이 정한 교리를 더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이 교단을 반대하시고, 역사 내내 교단을 만들 때마다 영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보여 주셨는데, 어떻게 제가 교단을 더할 수 있습니까? 물론 회원 수는 늘어납니다. 그렇습니다. 회원 수는 늘어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전혀 나아가지 못합니다. 역사에서 어떤 교회가... 보여 주시고 말해 보십시오. 조직을 만든 뒤에는 바로 거기서 죽었고 성령께서 떠나셨습니다. 더는 기적과 표적이 없었으며, 그저 혼란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우리 오순절교회들에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자기 어머니가 한 일을 똑같이 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교단을 거부하는 백성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이 테이프를 듣고 계신 형제님들 가운데 연로하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사십 년, 오십 년 전에 누가 조직 이야기를 꺼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신이 신성모독이라고 여겼던 것에 속해 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얼굴을 칠하는 여자 여러분, 여러분의 어머니, 그 훌륭한 옛 오순절 성도는 그런 것을 반대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울은 “너희가 잘 달렸는데 무엇이 너희를 막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것에서 자유로웠지만, 나머지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말한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왕이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무엘이여, 당신은 늙어 갑니다.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십시오. 우리도 나머지 세상처럼 되고 싶습니다. 다른 민족들처럼 되고 싶습니다. 우리를 전쟁에 이끌 왕, 우리의 싸움을 싸울 왕이 필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서 무엇을 가져간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돈을 가져간 적이 있습니까? 소나 다른 무언가를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무엇이든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는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한 것 중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까?”라고 합니다. 맞습니까? 그는 “그러니 그 왕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혼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브래넘 태버내클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큰 예배당으로 성장하려고 합니다. 저는 잠시 떠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 갈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부르실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무대에서 떠날 수도, 다시 전도 현장으로 갈 수도, 광야로 부르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분이 저를 어디로 부르실지 모릅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회중이 “없습니다”라고 한다.] 돈을 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한 수천 가지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결코 조직에 가입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안에 있다면 거기서 나와 갈라서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머리를 숙입시다.
선지자들의 위대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 제 형제들에게 전하려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온 이 조각조각 끊어진 작은 메시지에 능력을 더해 주옵소서. 주님, 밖의 많은 사람이 저를 오해합니다. 제가 남과 달라 보이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인 체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제가 사람들을 속인다고 말해 왔습니다. 특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물침례와 뱀의 씨와 큰 음녀 같은 주제들, 그리고 순수한 진리 외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고 내보낸 여러 테이프들에 대해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여러분 중 누군가 와서 제가 어디서 죄를 짓거나 믿지 않거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지 보여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그때를 놓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너무 늦도록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올 것이요.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 이 말씀이 제게 실제가 아니라면 제 마음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그 왕국은 참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줄 압니다. 어떤 사람이 그물을 들고 호수에 가서 던져 온갖 종류를 끌어 올린 것과 같습니다. 틀림없이 썩은 것을 먹는 물고기도 있었고, 거북이와 물거미와 뱀 등 복음의 그물에 걸린 온갖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흐르자 가재는 다시 물속으로 뒷걸음쳐 들어가고, 거북이는 빠져나가며, 뱀은 쉭쉭거리며 진흙 웅덩이로 돌아갔습니다. 개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고 돼지가 진창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진짜 물고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물이 덮이기 전부터 그들이 물고기였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미리 예정된 물고기였습니다. 부흥회에서 던져 사람들을 모으는 복음의 그물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것을 아십니다. 아버지, 제가 아는 한 제게 맡겨진 유일한 책임은 이 말씀에 충실히 머무르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정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거북이가 송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복음에 귀를 닫은 사람도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음을 저는 압니다. 아버지께서 이것을 미리 보셨고, 아버지께서 주님께 주신 모든 자가 올 것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 주님께 기도하오니, 이 작은 메시지를 듣는 모든 사람이, 이것을 전한 취지와, 제 동료 인간들, 주님께서 목숨을 내주신 사람들을 향한 제 마음의 뜻을... 주님, 저 밖의 어떤 사람들은 고라의 무리처럼 참된 마음을 가졌지만 잘못 인도되었습니다. 손에 거룩한 향로를 들고도 멸망했습니다. 불이 담긴 향로마저 그들과 함께 들어가게 하지는 않아서,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것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 그릇들로 제단의 깃발, 아니 덮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고라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대항하여 조직된 무리를 만들려고 했던 그 끔찍한 일을 보여 주고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 그런 일이 우리에게는 결코 없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작은 교회, 이 작은 거룩한 처소로 인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여러 해 전, 삼십여 년 전에 제가 이곳 잡초와 물기가 가득한 연못에 무릎을 꿇고, 이 땅과 작은 건물을 주님께 봉헌했습니다. 저 태버내클 모퉁이에는 그대로 이루어진 그 환상이 들어 있습니다. 아직도 그곳에 있습니다. 주님, 그들은 그것을 허물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낡아 가므로 그 위를 새것으로 덮어서 보존하려 합니다. 하나님, 여기 성경의 지면에 기록된 이 황금 같은 복음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모든 지체,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가, 전국과 세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빛과 복음을 받고, 그 안에서 걸으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그 일이 참으로 실제가 되어 그분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들도 하리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영생이 들어오면 그들은 위로부터 태어나며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납니다. 그분 안에 있었던 바로 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이 교회가 영원한 행선지를 어떤 느낌이나 조직, 혹은 그들 안에 살아 계시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과 약속을 입증하시는 그리스도 자신보다 못한 어떤 것에도 걸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밤 이곳의 가장 어린아이부터 가장 나이 든 분까지 이 경험을 받게 하옵소서. 이 테이프를 듣는 모든 남녀와 소년 소녀에게도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오직 경고하고 불러내려고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옵소서. 지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늦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미 음녀 바빌론과 그 매춘하는 모든 딸들이 한데 모이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성경에서 밀밭의 가라지를 먼저 단으로 묶는다고 하신 것을 압니다. 그들은 이미 단으로 묶였으며, 실제로 자신들에게 해당하지 않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을 스스로 붙였습니다. 그것들은 교회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친목단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주님께서 목숨을 내주신 바로 그 교회입니다.
아버지, 머지않아 닥칠 원자폭탄의 불을 위해 그들이 지금 모두 묶이는 것을 보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밀이 알차고 무겁게 여물게 해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가 자라서 빛을 비추며 예수님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신 일들을 내가 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는 생명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나타내시면, 그것이 스스로 증언한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이 메시지를 주님께 맡깁니다. 지켜 주시고 수만 명을, 주님, 아니 미리 예정하신 주님의 모든 자녀를 복음으로,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십자가에서 저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 보이는 청중, 이렇게 훌륭하고 큰 교회, 아니 사람들이 모인 이 집, 이 경배 장소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삶이 하나님과 성경의 요구에 합당하다고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몇이나 됩니까? 자기 삶과 안에서 역사하시는 영의 모습을 보고, 그 영이 모든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고 지키신다고 믿는 분 말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그분의 영을 여러분 위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테이프로 듣는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이 청중을 보실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구십 퍼센트는 손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하는 말을 믿고 살폈으며, 친목단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하는 말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비치는 것을 봅니다.
아십니까? 옛날 제련로가 없던 시절에는 금세공인이 망치로 금을 두드렸습니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제련로를 거치기 전에는 금을 두드렸습니다. 금은 가장 무거운 물질이며 납보다 무겁습니다. 저는 광물을 조금 찾아다녀 본 적이 있습니다. 사막의 마른 물길에 있는 모래를 가져다가 손으로 훑은 다음, 이렇게 “후” 하고 불면 먼지와 모든 것, 돌들이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금은 아주 무거워서 거기에 남습니다. 그 금을 집어 보면, 너무 많은 흙 사이를 굴러다니느라 온갖 것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화산 활동의 시대들을 거치며 쌓이는 동안 찌꺼기며 온갖 것, 황철석과 다른 물질들이 함께 섞였습니다. 두드리는 사람은 그 금덩이를 가져다가 두드리고 뒤집고, 다시 두드리고 뒤집어서 모든 불순물을 쳐냈습니다. 그가 불순물을 다 없앴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아십니까? 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다루십니다. 모든 신조와 모든 교단과 사람이 만든 모든 교리를 두드려 없애십니다. 여러분 안에서 그분 자신의 생명이 비치는 것을 보실 때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아시겠죠? 교회를 향한 뜻, 곧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명이 여러분에게서 비치지 않는다면, 인내와 덕, 이 모든 것과 절제와 경건과 형제의 친절,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이 없다면, 그대로 멈추어 있지 마십시오. 무엇을 했든, 얼마나 외쳤든, 얼마나 많은 교회에 가입했든, 얼마나 많은 깃털을 자기 몸에 꽂았든, 그러지 마십시오.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에 형제의 친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누가 한쪽 수염을 한 움큼 뽑아도 온유하게 다른 뺨을 내어 줄 수 있을 때까지, 그런 덕들이 생길 때까지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든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머리를 때리며 말했습니다. “자, 사람들이 그러는데 네가 선지자라더구나.” 그러고는 천을 벗겨 내고, 그중 하나가 막대기를 들고 말했습니다. “누가 너를 때렸느냐? 예언해서 말해 보아라. 달리 말하면, 그렇게 하면 네가 선지자임을 믿겠다.” 그분은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 여러분이 내놓는 온갖 짓궂은 시험에 모든 답을 갖고 있다고 들으면, 기억하십시오. 그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 이가 아프고 언제 배가 아플지, 그 밖의 모든 것을 알고 모두 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십시오.
바울을 보십시오.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었으면서도, 구리 세공업자가 자기를 그 지역에서 쫓아내도록 두었습니다. “눈을 멀게 하는 능력을 잃었나 보군.” 죽은 사람을 일으키실 수 있던 예수님께서는 앉아 계셨고, 술 취한 군인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가래를 뱉고, 수염을 잡아 뽑고, 천으로 가린 채 머리를 때리며 “예언해서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다만 기억하십시오. 그런 것들이 말해 주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위조 달러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진짜 달러가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의 손에서 속임수가 번성하리라”고 했듯이 이런 조직들이 자라고 번성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하나님의 작은 교회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참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진실하며, 사다리를 올라가는 교회입니다. 큰 조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성경에 에베소 교회 시대보다 더 위대한 교회가 언급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의 위 지방들을 지나 이 교회에 왔을 때, 그 안에는 남자가 열두 명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소리 높여 외치며 기쁜 시간을 누렸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을 받지 못하였느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신다는 것도 몰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아무 차이가 없다면 왜 그 교회에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땅 위에 섰던 가장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 한 분, 우리 주님께 침례를 준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침례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는 “아니다.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 밖의 어떤 것에도 왕국은 닫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바울은 “요한은 죄들의 사면이 아니라 회개에 이르는 침례만 주며,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따랐습니다.
오늘 아침 헌당식에서 보았듯이, 모세는 하늘에서 본 모형을 따라 그것을 나타낼 장막을 세웠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에는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가 장막으로 보여 준 모형을 따라, 성경과 일치하게 유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들을 위한 자신의 성전, 이 성전에 오셨을 때, 성령께서...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고, 그 메시지는 이러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목사를 박사라고 부르고 싶다면, 시몬 베드로 박사가 처방전을 썼습니다. 영원한 처방전입니다. 병든 사람을 낫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돌팔이 약사들이 교단의 방식으로 그 처방을 다르게 조제하려 하니,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아시다시피, 넣어야 할 것을 넣지 않으면... 처방에 너무 많이 넣으면, 독성이 있는 성분을 너무 많이 넣으면 환자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넣지 않으면, 해독제에 필요한 만큼 넣지 않으면, 환자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사는 처방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리스도, 성령께서 처방전을 쓰시는 분이며, 그분이 그것을 쓰셨습니다. 거기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지 말고, 약을 그대로 복용하십시오. 모든 병을 고치는 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아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십자가에서 저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이제 흥얼거리면서 몸을 돌려 옆 사람과 악수하십시오. 그분도 이곳을 지나가는 순례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십자가에서 저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십자가에서 저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주님을 사랑합니다(이제 함께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십자가에서 저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이제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으며,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저는 여러분을 목사님께 맡기겠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와 주셔서 기쁩니다. 우리는 교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사랑 외에 법이 없고, 그리스도 외에 신조가 없으며, 성경 외에 책이 없습니다. 회원 제도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모든 불신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교제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찾아와 주십시오.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에... 좋습니다. 네빌 목사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