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이 아담하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다시 봉헌하는 예배를 드리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방금 뒷방에서 후버 자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곳은 한때 필그림 성결교회였던가, 아니면 연합형제교회였다고 하셨습니다. 필그림 성결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곳을 순복음을 위해 다시 봉헌하게 되었으니, 오늘은 재봉헌 예배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훌륭한 목사님인 후버 형제님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매우 신실하고 헌신적인 젊은이입니다. 저는 그의 어머니를 오래전부터 알았습니다. 그분과 저희 가족은 마치... 아이들까지도 그분을 ‘후버 엄마’라고 부릅니다. 그분이 그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희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셨기에 아이들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경건하고 성도다운 연로한 어머니이십니다. 그분이 그토록 기도했던 훌륭한 아들, 목회자가 된 그 아들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아마 오랫동안 활동이 없었던 이 교회, 아니 이 건물을 맡아 순복음의 방식으로... 그 온전한 분량대로 복음을 계속 전하려고 합니다.
후버 부인, 그러니까 L. G. 후버 부인께서 방금 말씀하시기를, 조금 전에 제가 들어올 때 ‘오직 믿으라’를 연주한 아이가 따님이며, 이곳에서 피아노를 맡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석 달 전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한 곡도 칠 줄 몰랐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연주할 수 있습니다. 정말, 정말 훌륭합니다. 저기 뒤에 앉아 있는 제 딸은 음악 수업을 받은 지 오 년쯤, 아니 그 이상 되었습니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새 피아노까지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어린아이가 치는 것만큼 찬송을 잘 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사람이 애써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이분들에게 이곳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이곳이 이 지역에 큰 등대가 되리라 믿습니다. 사람들은 회중을 보고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 작은 교회에는 사람이 많이 들어가지 못하겠군.” L. G. 형제님이 말씀하셨던가, 어디선가 들었는데, 회중이 칠십 명이나 팔십 명쯤 된다고 합니다. 그 정도라고 합니다. 제가 조금 적게 말했을 수도, 조금 많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교회로서 그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오늘날 전국의 교회들을 보라. 교인이 수천 명이나 되는 교회들이 있지 않은가.” 예배가 있는 날마다 수천 명씩 모이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무리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꼭 숫자가 아닙니다. 그분이 보시는 것은... 그분은 언제나 양을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질을 보십니다.
성경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이 위쪽 지방을 지나 에베소에 이르렀고, 거기서 한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교회 시대를 다룰 때 첫 번째로 나오는 교회입니다. 기록된 대로라면 이 교회에는 열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수가 열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그 교회처럼 열두 사람밖에 없다 해도, 그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드린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열두 사람을 통해 나머지 온 세상을 통해서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내어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강단에서 선포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아, 그들에게서 응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 이 자리가 기쁩니다.
문으로 들어오면서 빌러 형제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참전 용사라는 사실과 오늘이 휴전 기념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휴전의 날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 교회에서도 휴전의 날을 맞을 수 있습니다. 자기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싸워 왔던 사람들이 오늘 휴전에 서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지금 보니 여기 브라이언트 형제님 내외분과 태버내클에서 오신 몇몇 친구분들이 앉아 계십니다.
오늘 아침에는 태버내클에서 일요일 성경 공부 시간에 한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봉헌 예배에 오느라 오늘 저녁으로 미루었습니다. 오늘 저녁 태버내클 예배는 일찍 시작하겠습니다. 늦어지지 않도록 일곱 시에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려고 합니다. 메시지가 깁니다. 제목은 ‘내가 조직화된 종교를 반대해 온 이유’이며,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태버내클에 나오시는 여러분은 일찍 오십시오.
후버 형제님,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린 한 젊은이가 이곳 자기 이웃들 가운데서 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 일에 대해, 오늘 아침 주님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켄터키 사람입니다. 여기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있는 버크스빌이라는 작은 도시 출신입니다. 한 켄터키 사람으로서 같은 켄터키 사람인 이 지역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오셔서 이 젊은이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곳 사람들에게 나아가 곳곳에 소식을 전하고, 들어오십시오. 그들을 데리고 오십시오. 필요하다면,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그들에게 명하여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십시오.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강권하십시오. 그것은 억지로 들어오게 하라는 말입니다. 들어오십시오.
저는 후버 형제님을 몇 년째 알고 지내며, 그가 경건하고 헌신적인 젊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수고를 늘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은 성가대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문 너머로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작은 성가대가 ‘굳게 확신하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맞습니다. 다른 일은 무엇이든 되는 대로 할 수 있다 해도, 영원히 갈 곳에 관한 일만큼은 굳게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아주, 아주 확실해야 합니다. 그 일을 요행에 맡기지 마십시오. 식당에 가서 수프 한 그릇을 주문했는데 그 속에 커다란 거미가 들어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그것을 밀어놓을 것입니다. 손도 대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거미의 독이 수프에 함께 끓여졌으니 여러분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몸에 대해서도 매우 조심한다면, 죽지 않아도 되는 혼에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순복음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후버 형제님이 자기가 아는 최선을 다해 순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킬 것임을 알고 믿으며 확신합니다.
거기 앉아서 어린 피아노 반주자가 ‘오직 믿으라’의 선율을 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 아들 빌리 폴은 지금 바로 여기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말했습니다. “빌리, 저 아이가 피아노로 ‘오직 믿으라’를 치는 소리가 들리니?” 저는 하늘 아래 거의 모든 언어로 불리는 그 짧은 찬송을 들으며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얼어붙은 북극 지방에서부터 남쪽의 열대 밀림까지, 지구 아래쪽에서, 온 지구에서, 온갖 목소리로 부르는 ‘오직 믿으라’가 저를 강단으로 불렀습니다. 언젠가 이 땅에서 제 삶이 끝날 때, 그들이... 제가 주님의 오심을 살아서 보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면, 그때 그 찬송을 불러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건물을 다시 봉헌하는 일을 두고 살펴보고 싶은 성경 구절들이 여기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온 말씀들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이 교회는 어떤 조직에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쳐지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하면서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가 주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며, 믿음으로 이 방을 떠나 하나님의 왕좌로 나아갑니다. 그곳에는 금 제단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펼쳐져 있으며, 모든 사람이 어떤 신조와 인종과 피부색을 가졌든 그곳에 나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위해 죽으시고 저희의 죄 헌물이 되셔서 그 제단에 자신을 내어놓으셨으므로, 저희는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누릴 수 있고, 또 누리고 있는 이 크나큰 특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땅에 있는 주님의 몸의 모든 지체, 이 위대한 왕좌로 나아와 화평 헌물을 받아들이고, 복음이 주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화평을 받아들인 모든 지체를 두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이 작은 건물로 오는 이 교회를 위해, 이 무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사랑을 드리고 자기 손과 마음의 정성을 바쳐, 사람들이 와서 경배할 장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그들의 수고에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목사님인 저희의 다정한 형제와 그의 아내와 가족, 집사들과 재산 관리 위원들, 운영 위원회와 교인들,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저희가 위로를 얻으려고, 또 저희가 하는 이 일들이 성경에 맞는지 알려고 오늘 주님의 말씀을 폅니다. 때가 저희 생각보다 늦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희는 일어나 일해야 합니다. 저희가 권하고 강권하며 이 메시지를 널리 전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도록 미리 정해진 모든 지체가 듣게 해야 합니다. 모두가 들을 때까지, 저희가 기울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래야 합니다.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복 주시고, 이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주의 깊은 마음과 열린 귀로 들으며, 주님께서 저희에게 알게 하려 하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여러분 가운데도 많은 분이 그러실 텐데, 흔히 하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성경 구절을 표시해 두거나 적어 두거나 메모합니다. 저도 그렇게 합니다. 이제 저와 함께 첫 번째로 읽을 성경 본문을 펴시겠습니까? 오늘 아침에는 세 곳을 읽으려고 합니다. 역대기상 17장 1절부터 2절, 사도행전 7장 44절부터 49절,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5절입니다. 먼저 역대기, 역대기상 17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사도행전 7장을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7장 44절부터 읽으려고 합니다. 모두 성전 봉헌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5절입니다. 한편 다윗이 자기 집에 앉아 있을 때에 대언자 나단에게 이르되, 보라, 나는 백향목 집에 거하나 주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머무는도다, 하매 그때에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왕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고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나를 위해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이스라엘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이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에서 장막으로, 한 성막에서 다른 성막으로 옮겨 다녔나니
이제 사도행전 7장 44절부터 읽겠습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언의 성막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정하여 주사 그가 몸소 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그 뒤에 일어난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의 얼굴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소유지 안으로 예수와 함께 또한 그것을 가지고 들어가 다윗의 시대까지 이르렀느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호의를 입었고 야곱의 하나님을 위해 한 성막을 발견하기를 구하였으나 솔로몬이 그분을 위해 한 집을 건축하였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 이것은 대언자가 말하는 바와 같도다. 기록된 바, 주가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겠느냐? 혹은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떤 것이냐?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느니라.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5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방금 읽은 이 성경 구절들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이 말씀들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다윗은 소원과 계시를 따라 마음속에 참으로 훌륭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훌륭한 사람이었고 백성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여러모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좋은 집에 나는 이렇게 앉아 있는데, 내 하나님의 언약궤는 저기 휘장 밑에 있는 것이 옳은가?”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깨달은 것은 계시였습니다.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곳, 그 아래... 백향목으로 지어 값이 아주 많이 드는 집에 살고 있었으니, 그것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신 내 하나님의 언약궤는 아직도 저기 장막 아래에 있구나.”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알고 말했습니다. “다윗이여, 마음에 있는 모든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면 그것을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이 선견자, 나단 선지자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라...” 저는 이 말씀이 좋습니다. 아, 달리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나를 위해 한 처소를 짓고자 하는 그의 용기와 나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집에 거하지 않았고, 머물 곳이 없었다. 내 백성을 살피려고 땅에 내려올 때에도, 이스라엘을 데리고 올라온 이래 지금까지도 머물 곳이 없었다. 나는 어느 재판관에게도 나를 위해 백향목 집을 지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막에서 장막으로 옮겨 다녔다.” 오늘날의 모습도 거의 이렇지 않습니까? “나는 내 백성을 만나려고 장막에서 장막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다윗에게 말하라.” 성경을 계속 읽어 보면 이렇습니다. “네가 저기 양 우리에서 네 아버지의 양 몇 마리를 따라다닐 때 내가 너를 데려다가, 땅에 있는 위대한 사람들처럼 네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내가 네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네 원수들을 끊어 버렸다. 다윗아, 나는 너를 사랑하며 네 소원이 옳다는 것을 안다. 네 포부가 충성된 것이며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끊임없이 하나님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너무도 많은 사람이 자기 업적, 자신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다윗아, 네 소원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 한 일을 네가 알기를 바란다. 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린 소년이었고, 네 아버지마저도 저기 양 몇 마리만 맡겨 돌보게 했다.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있었다. 내가 네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네 원수들을 끊어 버렸다. 네 소원은 옳다. 하지만 다윗아, 너는 전쟁을 한 사람이다. 피를 흘린 사람이다. 그러니 네게 이 일을 맡길 수 없다. 그러나 네 몸에서 난 자손 가운데 네 아들을 일으키고 그가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약속하겠다.”
우리는 땅의 것이 하늘의 것을 보여 주는 모형일 뿐임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것은 영적인 것의 모형일 뿐입니다. 그... 실제로 성전과 관련하여 그분이 말씀하신 분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으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나중에, 여러분이 읽고 싶으시면 열왕기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다윗이 지으려고 했던 성막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평화롭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처럼 전쟁에 나가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 백성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만 구했습니다. 받을 수도 있었던 큰 선물들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가장 잘 이끌 줄 아는 지혜만 구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바로 그것을 구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더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깨달음만을 구하면 좋겠습니다. 이 목사님이 교회를 이곳으로 들여오고, 이 오래된 교회를 맡아 오늘 다시 봉헌하는 것도 바로 그런 생각에서라고 저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비와 눈 등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그러셨던 것과 똑같이 이 젊은이에게서도 그런 마음을 귀히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큰 의미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 주로 이야기하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열왕기상을 읽어 보면, 솔로몬이 젊은 나이에 이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버지에게 솔로몬이 그것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성경과 약속에 맞추어 나아갑니다. 우리도 성공하려면 늘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맞추어 나아가야 합니다. 이리로 가거나 저리로 가는 것이 아무리 더 좋아 보여도 성경에 맞추어 나아가십시오. 솔로몬은 자기가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셨음을 알았습니다.
보시면, 이 성전의 자재는 팔레스타인에서만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그 자재가 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성전에 들어갈 자재들을 구하려고 나머지 세계, 당시 알려진 세계로 가야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적용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에게서만 자기 자재를 잘라 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백인에게서만, 갈색 피부나 붉은 피부나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에게서만, 혹은 그들이 무슨 피부색을 가졌든 어느 한쪽에서만 자재를 얻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만, 혹은 캐나다에서만 얻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온 세계에서 자기 자재를 잘라 내십니다.
그들이 어느 지방에서 나는 특정한 종류의 돌을 다듬고 있는 동안,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는 또 다른 나라에서 다듬은 이 돌에 맞추려고 돌 하나를 다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돌들을 다듬는 모습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았다면, 아주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 나름의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오늘도 그때의 모형을 실체로 이루시려고 똑같은 일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분은 원하시는 방식대로 돌들을 다듬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보니, 각자의 산지에서 잘라 낸 자재는 다른 산지에서 잘라 낸 자재와 비교하면 특이했습니다. 그 자재들은 모두 소달구지 등으로 운반되었습니다. 일부는 바닷길로 왔고, 일부는 소달구지로 왔으며, 일부는 뗏목에 실려 욥바로 내려온 다음 육로로 운반되었습니다. 그 모두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한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백향목은 저 위 레바논에서 베어 왔으며, 레바논의 백향목은 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향목이었습니다. 오늘날 레드우드가 나는 곳이 한 군데인 것과 같습니다. 바로 캘리포니아입니다. 또 아프리카의 모셀바이라고 하는 곳에는 스팅크우드라는 유명한 목재가 있습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나지 않고 오직 그곳에서만 납니다. 여러 지방마다 서로 다른 목재가 나며, 백향목은 레바논에서 났습니다. 매우 높고 큰 백향목이었으며, 따뜻한 지방이어서 단단했습니다. 지방이 따뜻할수록 목재가 단단해지고, 추울수록 부드러워집니다. 여기에도 영적인 적용이 있습니다. 차갑고 무관심하면 무르고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하지만 따뜻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서로 단단히 결합하여 주인의 손에서 쓸모 있게 됩니다.
벌목꾼들이 이 큰 백향목들을 베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설계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그 자재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보시면, 솔로몬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본 하늘의 모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환상에서 돌아와 장막을 세웠으며, 하늘에서 본 것과 정확히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솔로몬도 성전을 지을 때 자기가 본 본보기, 그 모형과 정확히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모세는 계속 이어질 모형으로 장막을 쳤습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모세가 하늘에서 본 양식과 정확히 똑같이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맞추고 질서 있게 놓아, 정확히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영적인 의미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 모형을 정확히 따르십시오. 그래서 저는 첫 교회가 세워진 모형대로 다음 교회도 세워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든 교회가 처음에 그랬던 바로 그 모형대로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으셨다고, 참 교회를 그렇게 정해 놓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각자의 산지에서 잘라 낸 자재를 한곳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한데 모았을 때... 지금 저는 16장을 읽고 있습니다. 아니, 그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한데 모으니 너무도 완벽하게 맞아서, 건물을 세우는 데 걸린 사십 년 동안 돌 하나도 다시 톱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톱 돌아가는 소리도 망치 소리도 한 번 나지 않았습니다. 석공술과 건축술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모형대로 한다면... 그 돌 가운데는 아주 이상해 보이는 돌이 많았지만, 성전에는 그 이상하고 특이한 돌 하나하나가 들어갈 자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돌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우리의 사역들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사역은 거기에 나타난 아름다운 모형, 아니 그 모형의 실체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독특함과 경배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도 성전, 잠시 뒤에 이야기할 참 성전이 하나로 모이면, 행동이 특이한 모든 사람에게도 제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 이상해 보이고 행동도 조금 이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거기에는 우리를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다듬어 내고 계십니다. 모든 작은 돌에는 꼭 맞는 제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돌을 다듬은 곳은 그것을 하나로 맞출 장소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데 모았을 때는 갈아서 다듬을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이미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리에 완벽하게 맞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아,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것의 참으로 놀라운 모형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사,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의 독특함으로 하는 모든 특이한 행동... 그래도 거기에는 제자리가 있습니다. 몸에 꼭 맞습니다. 그것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들어갑니다. 선하고 거룩하며 헌신적인 십자가의 군사인 우리 가운데도 많은 사람이 “저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또 우리는 말합니다. “지난번 저녁에 교회에 서서 이러이러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일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형에 맞고 성경에 맞는다면, 특이할 수는 있어도 제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꼭 맞아 들어갈 것이며, 갈거나 닦을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리에 들어갈 것입니다. 위대한 건축가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그것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보기에는 특이해도 말입니다.
이제 뒤에 이어지는 건축 이야기, 다음 장을 보면, 이 건물에 쓰려던 돌 가운데 실제로 너무 특이해서 손대기 어려운 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축자들은 그 돌을 버렸습니다. 한쪽 구석으로 던져 놓고 말했습니다. “이 돌은 정말 너무 특이해서 쓸 수가 없어. 이런 돌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고...”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알아보았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건축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건물을 한참 높이 쌓아 올리고 나서야 돌 하나가 빠졌음을 깨달았고, 그 돌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배를 모두 뒤졌을지도 모릅니다. 소달구지를 하나하나 살펴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욥바까지 이리저리 사람을 보내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재가 또 한 짐 들어왔습니까?” 혹은 “오는 길에 돌 하나를 잃어버렸습니까? 뭔가 잘못됐습니다. 이 자리에 들어갈 돌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 땅바닥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건축자들이 버린 으뜸 모퉁잇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말씀하시며 물으셨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해 너희가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그것이 으뜸 모퉁잇돌, 모든 것의 머리였고, 나머지 건물 전체가 그 돌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경배하시는 영적인 집을 짓는 일에서도, 저는 오늘날 건축자들 가운데 아주 큰 실패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교단을 가지고 와서 신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세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학교에 보내 교육하여 회중 앞에서 말을 잘하게 했으며, 심리학과 성경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좋은 좌석을 만들고, 높이 솟은 첨탑을 세우고, 아름다운 음악도 갖추며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 낸 자재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교육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신학교가 그들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것, 학문이... 교육과 학문과 교단 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특이한 돌, 이 독특한 돌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건물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남아 있는 빈자리에 그 특이한 돌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영적인 건축자들이 바로 그 지점에...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건물이 신랑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건축자들이 오순절 날 놓인 으뜸 모퉁잇돌, 곧 성령 침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특이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하고, 우리의 심리학과 교육과 학문과 신조의 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틀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걷어차 버렸습니다. 너무 이상하고 너무 특이하며, 교회는 이러해야 한다고 우리 인간이 생각해 놓은 계획과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련된 학자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옷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거나,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하는 어떤 모임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눈으로 보거나 맛보거나 느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 도시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십시오. 시장님도 우리 교회에 나옵니다. 도시의 고위 관리들과 경찰서장도 우리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막상 실제 건축에 이르러 보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모르타르와 돌뿐입니다. 건축은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길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건물을 위해 그토록 예비하신 돌을 그들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우리는... 건축자들이 자기들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돌들은 모두 있었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맞출 수 없었던 이유는 빈자리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미 그 돌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에베소에서부터 라오디게아에 이르기까지 그 돌들이 모두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건축자들이 버린 그 머릿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의 오심, 맨 위를 마무리하는 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큰 돌들은 신앙고백들입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이 돌임을 압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반석[혹은 돌]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하셨을 때...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 반석이 베드로라고 말합니다. 그 돌은 실제 사람인 시몬 베드로라는 것입니다. 그는 며칠 뒤에 믿음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그 돌이 그리스도였다고 말합니다. 논쟁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 둘 다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계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고, 바로 그 질문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모세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선지자의 뼈가 되살아났다든지, 뭐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분을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이것을 책에서 배운 것도, 신학교에서 들은 것도 아니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계시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말씀이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결코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것이 참 교회입니다. 썩어 없어질 모르타르나 벽돌이나 돌 등으로 된 교회가 아닙니다. 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한 계시 위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에베소 교회 시대부터 지금의 라오디게아까지 줄곧 그 몸 안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던 날, 그 으뜸 모퉁잇돌이... 건축자들이 버림받은 것을 받아들이자마자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교회의 모든 분과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며, 온전히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건축자들도 버림받은 이들을 받아들이면, 곧 신앙을 고백하는 그 특이한 이들을 밀어내며 광신도 무리라고 부르는 대신 받아들이면, 그만큼 건물이 더 빨리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이 완성된 뒤에도 여전히 빈 건물이었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 안에는 기구들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 봉헌하는 큰 날이 왔습니다. 경배자들이 어떤 대상을 경배하도록 이 건물을 봉헌하려는 날입니다. 그곳에 경배할 대상이 없다면 건물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건물은 봉헌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수천 개의 나팔이 하늘을 울리고 죄를 위한 희생물로 어린양이 한 마리 또 한 마리 죽어 가는 가운데... 레위 사람들은 각자 정해진 자리에 섰습니다. 구석으로 가서 채를 가져다가, 돌판이 들어 있는 궤의 고리에 끼웠습니다. 돌판 두 개였습니다. 같은 돌이며, 이 둘은 하나입니다. 같은 명령들이며 같은 언약입니다. 이 두 돌판이, 그룹들과 서로 마주 뻗은 그들의 날개가...
이 레위 사람들이... 오직 구별되어 드려진 그 무리만이 궤를 멜 수 있었습니다. 그들 외에는 누구도 궤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만지면 죽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 일을 섬기도록 구별되어 드려졌음을 알고 그 채를 집었습니다. 그리고 지시받은 대로 고리에 채를 끼웠습니다... 모세가 궤를 만드는 구조에 대해 하나님께 지시받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은 궤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들은 궤가 있던 장막에서 출발하여 행진했습니다. 나팔이 울리고 현악기가 연주되었으며, 여호와 앞에 희생물로 드려져 죽은 짐승들에게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들은 봉헌하는 건물 안으로 나아가, 궤가 머물 자리까지 가져왔습니다. 그곳은 궤를 위해 마련해 놓은 아주 큰 자리였으며, 궤는 그 받침에 들어맞았습니다. 궤가 그곳에 들어맞아 마침내 제 안식처에 놓이자, 성경은 주님께서 그곳에 내려오셔서 성전 전체를 가득 채우셨다고 말씀합니다. 불기둥이 너무도 큰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그 안으로 들어왔기에, 섬기는 이들이 그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것이 마침내 머물 곳을 찾았습니다. 그들을 따라다니던 셰키나 영광이... 머릿돌입니다. 모퉁잇돌이 아니라 맨 위를 마무리하는 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다른 돌들은 모두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된 돌, 머릿돌이 들어와서 그 세대를 위해 머물 정해진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을 가득 채웠고, 온 건물 위에 셰키나 영광이 임했습니다. 그 영광이 너무도 커서 제사장들조차 그 영광 때문에 섬길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읽어 보겠습니다. 성전 봉헌에서 이 말씀을 가져와... 다시 사도행전 7장 44절로 가서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스데반은 그 유명한 설교를 하면서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리라는 약속이 다윗을 통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가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형으로... 그 모형은 실체가 오면 물러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봉헌할 때 희생물로 드린 어린양들이 참된 어린양께서 희생물로 오시는 것의 모형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모든 자연적인 것은 영적인 것의 모형이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스데반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호의를 입었고, 솔로몬이 그분을 위해 성전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와 같도다.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지을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 하늘이 나의 왕좌요, 땅이 나의 발 받침인데, 어떻게 내가 거할 집을 지을 수 있느냐?’” 그런데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히브리서 10장 5절입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몸 안에 거하시리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녹음 공백] “...나를 위해 예비하셨나이다.” 아!
그리고 이 몸이 희생물로 드려지고, 참된 어린양이 희생물로 드려졌을 때, 그때 나아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몸, 곧 그분의 신부에게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성전 백이십 개가 봉헌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모든 불신이 두드려져 빠져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모여 봉헌 예배를 위해 열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내어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셰키나 영광 가운데 내려오셔서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시대의 메시지를 위해 궤가 제자리에 있는 받침에 내려앉았듯이, 하나님께서 다시 그분께 맞는 통로로 내려오셨습니다. 교단이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물 안으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마지막 날을 위한 그분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씀한 대로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셰키나를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꿈을 꾸고 늙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안식처, 그분이 안식하실 곳으로 오셨습니다. 건물 안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마음속에서 그분은 안식하십니다.
니므롯이 인간의 힘으로 이루려던 일이 그때 얼마나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우며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락했습니까! 니므롯이 하늘까지 닿을 건물이나 조직을 세우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뒤엎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수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말을 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형제의 유대가 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성전, 교회, 사람들에게 오셨을 때... 그들에게 오셔서, 봉헌된 그 성전들을 채우셨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셨습니다. 신조나 교단이 아니라 그분 자신으로 채우셨습니다. 그분의 셰키나 영광으로 성전을 채우셨습니다. 오순절 날에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곳에 있던 백이십 개의 성전을 그분 자신, 바로 성령으로 채우셨습니다. 셰키나 영광이 그들 위에 터져 나왔습니다. 니므롯은 성전을 지으려 했지만 사람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셔서 하나의 갈릴리 말로 모든 사람이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과 그 뜻을 알아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성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께 봉헌된 성전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이룬 업적이나 사람이 해 놓은 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로 오셨습니다.
아,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도록 태어났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 성전을 채우십니다. 봉헌하는 날에 자기 성전을 채우십니다. 그분 자신으로 채우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드리는 성전은 모두 채우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전은 여기 있는 이 작은 건물이 아닙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것도, 로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전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자신을 나타내셔서 모든 민족이 그분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성전이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형상이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남자든 여자든 세상에서 들은 모든 거짓을 잊어버리고 성경으로 돌아와 거기에 맞추어 나아가기만 한다면, 솔로몬이 모세가 행한 대로 하고 모세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로 했던 것처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것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가 처음의 봉헌으로 돌아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비운다면, 우리가 봉헌하여 그분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전을 그분의 셰키나 영광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살아 있는 백성 가운데, 살아 있는 교회 안에서 움직이시며 그분의 영광을 펼쳐 보이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함께, 한 사람은 이쪽에, 한 사람은 저쪽에, 또 한 사람은 어느 지방에 있다가, 그들이 한데 모여 신부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교회, 이 건물은 사람들이 자기 생활의 일부를 정성으로 드리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경배자들이... 사람들이 와서 경배할 수 있도록 오늘 이 경배 장소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신실한 기도는, 모든 경배자가 경배를 위해 봉헌되는 이 성전에서 경배하고자 자기 자신의 성전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봉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 점을 기억합시다. 때가 얼마나 늦었습니까? 제가 연세 드신 분들을 보고 있는데, 여러분의 생각보다 더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젊은 사람들, 젊은 여성들을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몸이 난도질당한 채 발견된 그 어린아이들, 성폭행당한 그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십시오. 해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습니까? 수천 명이 심장마비와 암과 소아마비,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온갖 것들로, 길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죽습니다. 얼마나 젊을 때일지, 얼마나 늙었을 때일지 우리는 모릅니다. 언제 그때가 오겠습니까? 언제 카드꽂이에서 여러분의 카드가 꺼내져 호명되겠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경배자들이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할 이 물질적인 건물을 봉헌하려고 오늘 이곳에 있는 동안, 우리 자신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바치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채우시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셰키나 영광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곧 인간의 몸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함께 큰 부흥을 이루어 이 지방과 이 도시들과 이 모든 지역을 휩쓸 것입니다. 그토록 큰 소리가 날 것이니, 사람들이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도저히 막을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스데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거센 바람 속에서 불타는 집과 같았습니다.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조차 그를 막을 수 없었으며, 여러분도 알다시피 죽음 그 자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계속 살았고, 오늘도 살아 있으며, 언제까지나 살 것입니다. 영생을 가졌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친 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것을 귀히 여기며, 이 건물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칠 때 우리 자신도 함께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잠시 일어섭시다. 저마다 여러분이 기도하기 원하는 방식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기도하십시오... 저는 오늘 이 강단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저 자신을 다시 드립니다. 여러분도 한 분 한 분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건물을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우리 자신도 바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는 오늘 아침 지극히 겸손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회중에게 경배할 건물을 주시고, 이 목사님, 말씀의 사역자를 주심으로 보여 주신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경배할 장소를 봉헌하면서 경배자인 저희도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모든 불신과 모든 불친절한 생각, 주님을 닮지 않은 모든 것, 저희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거슬러 작용할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어떤 신조든, 어떤 교단적인 생각이든, 혹은 이웃이나 그 누구의 생각이든, 여기든 저기든 어디에서 온 것이든 저희에게 들어오는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떤 것이든 말입니다.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해도, 거룩하고 성결한 그릇이었다 해도, 어떤 것이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천사나 존재, 어떤 계시나 그 무엇이라도, 주님의 말씀에 기록된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누군가가 한 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르게 하옵소서. 기록되기를,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이라 하고 내 말은 참되다 할지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 안에 참된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의 계시를 아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거스르는 것이 있다면 주님, 저희에게서 없애 주옵소서. 저희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습니다. 그것을 내쫓고, 그 자리에 으뜸 모퉁잇돌, 곧 하나님의 참 교회의 기초이신 성령을 받아들입니다. 저희가 받아들입니다.
아버지, 이 작은 교회를 복 주옵소서. 건물들이 잘 유지되게 하시고, 경배자들이 예배 때마다 계속해서 이곳에 모이게 하옵소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서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없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집에 함께 모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주님께서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들에게 소금의 맛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삶이 성령 안에서 그토록 풍성하고 건전하여, 주위의 온 지역 사람들이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그들을 본으로 삼아 주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이제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받아 주옵소서. 저희가 교회, 이 건물을 주님께 드리면서 엄숙히 봉헌하여 저희 자신도 주님께 드립니다. 성령께서 그분의 모든 신성한 권능과 셰키나 영광 가운데, 영원을 지나 저희 마음속으로 밀려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이 거하실 처소를 찾으시고, 저희를 사자로 부르셔서 섬기게 하옵소서. 강단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빨래통 앞에서, 어디서든지 우유 배달원이나 신문 배달 소년이나 그 누구에게든 간증하게 하옵소서. 저희를 간증으로 삼으시고, 셰키나 영광, 곧 성령 그분 자신으로 충만한 살아 있는 돌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저희 마음과 삶을 채워 주옵소서. 이 땅에서 모든 섬김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저마다 다듬어진 저희가 나뉨 없이 한데 모여 신부라 불리는 그 위대한 교회를 이루게 하옵소서. 저희는 이곳 땅에서 거하던 장막으로부터 채여 올라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변화되며, 그분과 함께 휴거되어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 어린양의 혼인 만찬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저희는 이 교회 안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거룩하고 구별된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드립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제 마음을 내어 드립니다. 주 예수님, 오셔서 주님의 선하심으로 저를 채워 주옵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저를 만들어 주옵소서. 제가 거스르고 있다면, 저를 움직이시려고 주님께서 끼워 놓으신 바이스 안에서 제가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양보할 수 있는데도 그러고 있다면, 제가 잘못 잘린 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지금의 저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저를 만들어 가는 그 톱에 순응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이제 손을 들고 교회의 이 영광스러운 옛 찬송을 부릅시다. 그러는 동안 저는 예배를 여러분의 목사님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의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사를 붙이지 말고 선율만 불러 봅시다. 곁에 계신 분과 악수하면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교회의 돌인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의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며 두 손을 그분께 들어 올립시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의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