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정말 감사합니다. 제 마음을 좀 표현해 볼까 합니다. 팔머 형제님 말씀처럼 저는 잘 듣는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참 즐겁게 들었습니다. 여러 형제님들과 간증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방금 찬양한 형제님은 저 위에 있는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그분의 어머니와 누이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저는 그분이 찬양하는 시간에 맞춰 태버내클에 간 적이 없어서, 마침 찬양을 부탁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와서는 그 찬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 계신 형제님도 그 찬양을 하겠다고 해서, 제가 “형제님은 오늘 저녁에 하시면 되겠네요”라고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그런 곳에 함께 있는 것은 언제나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우리 형제님 말씀처럼, 우리 각 교단 안에는 우리를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육적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한 몸,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들어가는 바로 그 한 몸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늘의 왕국의 시민이 됩니다.
자, 우리가 열두 시에는 여기서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뭐라고요? 아, 제게 주어진 시간이 그것뿐입니까? 겨우 두 시간이라고요? 조금 섭섭하군요. 제가 생각한 것을 말씀드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아시지요. 그렇지만… 저를 참고 들어 주시는 청중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방금은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실업인 여러분과 여기 계신 모든 분께 몇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젯밤에는 집에 돌아간 뒤에도 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존 웨슬리가 “가슴속에서” 그랬다고 했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짐작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계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그저 받아들이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단순한 일입니다. 말씀은 씨입니다. 그 씨를 알맞은 온도의 좋은 땅에 심으면, 그 안에 생명이 있는 한 자라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그리스 정교회 교인들이 모두 함께 한 큰 자리에 모인 이야기를 들으니 참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야곱이 우물을 팠는데 원수들이 그를 쫓아내자, 그는 그 우물을 “악의”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우물을 팠는데 또 쫓겨나자 “다툼”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다른 우물을 파고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도 그와 같습니다. 루터도 우물을 하나 팠고, 웨슬리도 하나 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는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함께 서서 이 한 우물에서 마십시다. 혹이 하나인 낙타를 타든, 둘인 낙타를 타든, 셋인 낙타를 타든, 여전히 와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우리는 여행길에 있습니다.
이렇게 잠깐 웃기도 하고 했으니, 이제… 저는 이런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자신에게도 유머 감각이 있으신 것 아시지요.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잠시 고개를 숙여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버지,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찬양한 분이 주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우리 모두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희생물이신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 건물에서 믿음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며, 우리의 희생물 너머로 주님의 왕좌를 바라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이제 성령께서 그 말씀을 취하여 우리 각자의 마음에 심어 주옵소서. 말하는 입술과 듣는 귀에 할례를 베풀어 주옵소서.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혹시… 많은 분들은 보통 사역자들이 읽는 성경 구절을 함께 찾아보기를 좋아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읽고 거기서 이야기할 내용을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그분께서 길로 나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께 무릎을 꿇고 그분께 여쭙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하는 명령들을 네가 아느니라,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기를, 선생님이여,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준수하였나이다, 하므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길로 가서 네게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매 그가 많은 소유를 가졌으므로 그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근심하며 떠나가니라. 저는 여기서 “투자”라는 주제를 택하고 싶습니다. 이 도시의 실업인들에게 잠시 투자에 관해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훌륭한 사업가라면 언제나 좋은 투자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투자, 건실한 투자를 하는 것이 그분들이 좋아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혹시 여기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께 제가 아는 가장 좋은 투자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제가 몸담았던 침례교의 유명한 목사님이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순복음 실업인회와 함께하신다면서요?” 저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형제님이 무슨 일로 순복음 실업인회와 함께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도 사업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사업가라고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시는데요?” 저는 “보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뭐라고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확신을 드리는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확신입니까?” 저는 “영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집회가 끝난 뒤 저와 이 보험 계약을 의논하고 싶은 분이 계시면, 기꺼이 만나서 의논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함께 학교에 다녔던 친구가 있는데, 보험 일을 하는 좋은 사람입니다. 제 형제 중에도 보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저는 어쩌다 보니 한 번도 보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 번은 그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스나이더라는 친구입니다. 그의 형제는 침례교 목사입니다. 윌머가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자네와 보험에 대해 좀 이야기하고 싶네.” 저는 말했습니다. “윌머, 고맙네. 다른 이야기는 얼마든지 하겠지만, 나는 벌써 보험이 있네.” 그는 “아, 미안하네”라고 하더니 “무엇이 있다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확신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제 아내는 제가 거짓말쟁이라도 되는 듯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저쪽에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아무 보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빌리, 무슨 보험에 들었는데?”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확신이 있다고 했네. ‘복된 확신이여, 예수님은 나의 것! 아,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기쁨이여! 나는 구원의 상속자, 하나님께서 값을 주고 사신 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의 피로 씻김 받은 자라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그건 참 좋네. 하지만 그게 자네를 저기 묘지에 묻어 주지는 않을 걸세.” 저는 말했습니다. “나를 거기서 꺼내 줄 걸세. 나는 들어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나오고 싶다네. 그러니… 거기 들어가는 것은 걱정하지 않네. 나오는 것이 문제지.” 바로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물론 그것을 좋은 곳에 투자하고 싶어 합니다. 이를테면 만 달러쯤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엔가 투자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머니에 넣어 두지 마십시오. 도둑들이 훔쳐 갈 테니까요. 그러니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건실하고 훌륭한 사업가라면,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어떤 곳에 그 돈을 넣고 싶을 것입니다. 이자가 붙는 곳에 넣고 싶겠지요. 성경의 달란트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데, 건실하고 좋은 사업에 그 돈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건실하지 않은 곳에 투자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훌륭하고 현명한 사업가라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이른바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되는” 그런 곳에 돈을 넣지는 않겠지요. 그런 것은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도박이기 때문입니다. 도박은 건실하고 좋은 사업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요행이 따릅니다. 여러분은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언가에, 많은 배당을 주는 건실하고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싶을 것입니다.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곳, 수익을 냈고 앞으로도 수익을 내리라는 것이 입증된 곳 말입니다. 그런 투자처가 있으면 받을 것이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 곳에 돈을 넣으면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그리 좋지 않다면 시도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신뢰할 만한 좋은 계획, 충분한 수익을 가져다줄 무언가…
그런데 성경에서 우리가 부유한 젊은 관원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큰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진 부를 보장된 계획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자를 얻고 훌륭한 투자를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그에게 제시된 이 계획은 건실하다는 것이 완벽하게 입증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자신이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곧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분명한 판가름을 내도록 하시며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청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크고 부유한 라오디게아 시대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무언가에 투자할 큰 기회를 보았지만, 그것이 인기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에 인기 있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인기가 있으셨습니다. 그 시대의 교회, 그 시대의 교단이나 분파적인 종교들은 그분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부유한 청년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지 못한 것을 예수님 안에서 보았습니다. 그에게는 와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을 만큼의 건전한 상식은 있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무언가가 예수님께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것들을 아주 많이 가진 부자였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시대에서 이것을 잘 보여 주는 모습을 봅니다. “너는 부자이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가련하고 벌거벗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얼마나 끔찍한 생각입니까. 사람이 눈멀거나 벌거벗은 채 거리에 있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그 사람이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안다면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모릅니다… 무슨 말을 해도 그 생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리스도께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성경의 바로 그 약속들을 입증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도 교단 간의 차이, 우리의 신조, 그 청년에게 있었던 것과 같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그가 하듯이… 아니, 그가 했듯이 기회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투자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기회가 자기 문을 두드렸을 때 하나님의 왕국에 투자하기보다, 자기가 가진 것들, 곧 인기와 돈과 탐욕을 붙들고 있으려 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오늘날 참으로 성령이 충만한 오순절의 부어 주심이 있는 집회에 앉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사람들에게 임하여 그분께서 이 시대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신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그럴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그 일에 동참하도록 주신 기회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그 기회를 외면한 것은 얼마나 경솔한 일이었습니까. 오늘날 교단들이 하는 일도 얼마나 경솔합니까. 성령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이며 서로의 차이를 잊는 대신, 형제들을 갈라놓고 작은 무리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 합니다.
제 성경 해석으로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라오디게아 시대에 관해 요한계시록 3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라오디게아 시대의 메시지들이 나올 때에, (각 시대에 그랬고 각 시대마다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마지막 날에 와서 보니 그 교회는 아주 부유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과 너무나 뜻이 맞지 않아 그분을 교회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분께서 쫓겨나신 교회 시대는 우리가 보기에 이 시대뿐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에베소 교회 시대, 사데, 그 모든 교회 시대들, 그리고 빌라델비아 시대, 웨슬리의 교회 시대 등을 생각해 보아도, 그 모든 시대에는 그분께서 쫓겨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는 밖에 계셨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고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신성한 임재를 보면, 그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안에 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시며, 그분의 생명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사시면서 그들을 하나로 연합시켜, 그분의 신부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 되게 하려 하십니다. 그렇게 하려 하실 때에… 그분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선지자가 말했듯이… 그분의 초림에 앞서 왔던 선구자가 나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그리고 오늘날, 여러 해 전에 오순절 사람들에게 복이 내렸는데도 그들이 갈라져 나가 믿음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리교인들과 정교회 교인들과 그 밖의 사람들, 이런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성경에서 잠자는 처녀가 기름을 사러 온 바로 그날이 그분께서 오신 날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점이 마음에 와닿은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 정교회 교인들, 성공회 교인들,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장로교인들이 이것을 갈망하며 “우리가 이 기름을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하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거든, 바로 그때 신랑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투자가 어디에서 결실을 거두는지 살펴봅시다.
그들은 자기 교단에서 그분을 내쫓았습니다. 그분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젊은 관원은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여기 성경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라고 되어 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이 조직들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고, 지난 오십 년 동안 자신에게 다시 투자할 기회를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십니다. 교회 건물을 짓는 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에 투자하고 성령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기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한 번도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은 어느 것 하나 인기가 없었습니다. 몹시 인기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벽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너희 조상들 중에 선지자들을 핍박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 지금은 너희가 그들의 무덤에 회칠을 하지만, 그들을 그 안에 넣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떤 위대한 것을 바탕으로 세웁니다. 감리교는 위대한 인물인 존 웨슬리를 바탕으로, 루터교는 마르틴 루터를 바탕으로 세웁니다. 이제 오순절 사람들도 오십 년 전에 자신들을 이런 혼란에서 이끌어 냈던 무언가를 위해 무덤을 세우려 합니다. 이제 그것을 다시 그 안으로 도로 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상 무덤에 넣어 버린 사람들의 무덤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각자에게 투자하라고 권하는 이 위대한 확신의 증서를 두고, 과거를 돌아봅시다. 모든 일은 다른 사업을 할 때와 같아야 합니다. 투자하기 전에 그 회사나 우리가 사려는 것에 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 남은 몇 분 동안 이 증서를 가진 사람들 중 몇 사람을 조사하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업에 투자하려 할 때는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을 찾아가 이렇게 묻겠지요. “혹시… 이러이러한 회사는 어떻습니까? 이러이러한 사업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아무개에게는 이런 일을 해 주었고, 다른 아무개에게는 이런 일을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수익이 났고, 이 채권들, 이 이자표들, 정부 은행의 이자표들은… 이십오 퍼센트의 수익을 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투자하는 것이… 아니, 투자하기 전에 조사하고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제가 엄밀히 말해 확신을 파는 판매원은 아니지만, 그런 분을 대신해서 말씀드리고 있으니, 과거로 돌아가 조사해 봅시다. 그것을 가진 사람들, 제가 여러분에게 붙들라고 말씀드려 온 그것을 붙들었던 사람들을 찾아봅시다. 그것은 교단이나 신조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다른 누구의 생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남녀들,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조사해 보려는 것입니다.
오랜 옛날 그것을 가졌던 사람 중에 생각나는 한 사람부터 시작합시다. 그의 이름은 노아입니다. 그는 부유한 농부였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반대되고, 당시의 최신 경향과 너무나 달라서, 그 증서를 받은 사람은… 그 증서가 없고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며 한 번도 의논해 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인 그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멸하려 한다. 그러니 너는 방주를 지어라. 네 농장의 나무를 베어, 더 이상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로 두지 말고 방주를 지어라. 네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노아는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현대 과학적인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당시에 지금보다 더 발달한 문명이 있었다고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현대 문명입니다.
창세기는 그때까지 하늘에서 비가 내린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물을 대어 적시셨습니다. 세상은 똑바로 서 있었습니다. 뒤로 기울어 있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증서를 근거로 나서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심판이 다가오며,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라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마 당시의 현대 과학자들 중에는 장비를 설치하고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레이더로 달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물 같은 것이 없습니다. 저 사람은 완전히 미쳤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스스로 망신을 당할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신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완전히 미쳤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감정적이고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끝에 계신 형제님께서 “저는 그저 말씀을 믿을 만큼 어리석었습니다”라고 좋게 말씀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계속 어리석고 싶습니다. 한 번은 작은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슴에 큰 판을 붙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등에는 물음표와 함께 “당신은 누구를 위한 바보입니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 말씀을 위해 바보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배당을 가져다주고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을 증서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과학계의 모든 움직임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이 순전히 감정이라고 말하려 할지 모릅니다. 여기서 어떤 형제님이 간증하시기를, 감정적인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거기에 따라붙어 움직이는 과격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르틴 루터의 생애, 아니 역사를 읽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루터가 가톨릭교회에 항거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기 부흥 운동을 따라온 온갖 광신주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조직 같은 데서 나오는 것을 보는 것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에 머물면서 그런 운동을 따라오려는 온갖 광신주의, 감흥 따위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릅니다. 그런 것들에 믿음의 기초를 두는 것은, 우리 귀한 형제님께서 그리스어에 관해 인용하셨듯이, 전적으로 육적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들은 똑같은 데로 나갑니다. 육, 육, 교단,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런 것에 휩쓸리지 않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노아가… 오늘 아침 제가 말씀드리는 이 증서, 확신, 구원의 확신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왕국은 볼 수 있게 오지 않으며, 우리는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 오는 모든 아들은 자녀로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오늘날 우리의 어린 엘비스들과 리키들에게 있는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올바른 자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장작 창고로 데려가곤 하셨고, 저는 제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아버지께는 히커리나무 회초리가 있었는데, 그 끝에 십계명이 전부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확실히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오늘날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 많지 않은 것이 참으로 유감입니다. 난폭하게 차를 몰고 밤새 돌아다니며, 딸들이 어떤… 데 얽혀 지내게 두는 대신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험을 받습니다. 참됨을 입증받도록 시험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노아가 오랫동안 전파한 뒤, 자기 문의 방주에 서서… 아니, 방주의 문에 서서 마지막으로 외쳤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저들을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 마련된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라.” 저는 우리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죄의 왕래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전지대를 주셨습니다. 어젯밤 제가 말씀드린 예방 접종 말입니다. 그 안에 머무르십시오. 이리저리 떠돌지 마십시오. 형제님 말씀처럼 비틀거리다가 밖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저러한 주의나 교조적인 주장에 이끌려 떠돌지 마십시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그리스도께 머무르십시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분의 신조를 아는 것도, 그분의 책을 아는 것도, 무언가를 아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우리는 노아가… 이 일을 짧은 극처럼 그려 봅시다. 시간이 늦어지자 노아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부르는 마지막 외침입니다. 제게는 비가 올 것이라는 증서, 확신이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과학 법칙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은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물론 가까이 앉아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예 들으러 오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노아는 안으로 들어갔고, 그의 뒤에서 문이 닫혔습니다. 문을 닫은 것은 노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마지막 지체가… 그때도 그분은 다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 때문에 그 몸이 기형적인 몸이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한 손에 손가락이 여섯 개가 되지도 않고, 한 손가락에 손톱이 두 개가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흠 없는 완전한 몸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지체가 그 몸에 더해지면,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긍휼 사이의 문을 닫으실 것입니다. 아니, 긍휼과 심판 사이라고 해야겠군요. 보십시오.
문이 닫힌 뒤, 마치 제가 엿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노아가 아내에게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형제들이 이야기한 그런 것 중 하나로, 그… 접지선 방식으로 하는 방언 말입니다.) 자, 그가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아침이면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릴 거요.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며 큰비가 내릴 거요. 나는 최선을 다했소. 그런데 이제 나는 안에 들어와 있고 문은 닫혔소. 우리가 저 문을 닫지 않았으니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난 것을 아오. 누군가 문을 닫았소. 하나님이셨소.”
아시다시피, 가까이 서서 귀를 기울이며 반쯤 믿던, 경계선에 선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 부유한 젊은 관원과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올라가 보는 게 좋겠어. 그가 선량한 노인이라는 건 알잖아.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가까이 서 있자… 아, 곧장 들어가면 되지. 그가 문을 열어 줄 거야.” 그러나 노아에게는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두고 경계선에 서 있지 마십시오. 그저 좋은 남자나 좋은 여자가 되는 데 그치지 마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 몸 안에 들어가십시오. 이 일에 관해서는 남에게 들은 말 같은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며, 삶 전체가 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무르십시오. 그저 감정이나 감흥, 혹은 어떤…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까지 머무르십시오.
노아는 안에 있었고, 경계선에 선 이 신자들은 슬그머니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그 노인 말대로 비가 올지도 몰라. 무슨 일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잖아.” 오늘날 세상도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첫날 아침, 노아가 일어나 창밖을 보려고 올라갔을 때 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게 떠올랐습니다. 제 생각에 노아는 점검해 보았을 것입니다. “잠깐만. 내가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말씀으로, 자신이 받은 부르심으로, 자신이 받은 약속으로 돌아갔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그저 늦추셨을 뿐이야. 아마 내일일 거야.” 다음 날도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경계선에 섰던 신자도 비판자가 되었습니다. “봐, 아무것도 아니었어”라고 하더니 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마지막 시험을 주신 뒤, 일곱째 날 아침에는 하늘이 캄캄하고 천둥이 울리며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그러더니 커다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그 방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문을 두드렸던 잠자는 처녀처럼 말입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 오십시오! 보십시오. 그 뒤에 비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거리마다 물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하수구도 가득 찼습니다.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배를 만들어서 떠 있으면 되지. 포플러 통나무를 하나 구하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포플러 통나무를 타고 무사히 떠가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들은 배를 만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배는 가라앉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직을 만들거나 사람들을 한데 모아 교육시켜 그 안에 넣으면, 하나님께서 세우셨든 아니든 어떻게든 나아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우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거기에 사람이 관여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오직 그분이십니다.
방주 주변으로 물이 높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아내와 며느리들은 아마 어찌 되는 것인지 의아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말했습니다. “가만히 있으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소. 우리의 확신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소.” 그는 자신이 지은 것이 자기가 받은 지시를 따른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주위를 잘 살펴보고, 우리가 세운 것이 지시를 따른 것인지 알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운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시에 부합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점검했습니다. 모든 곳, 구석구석 역청이 발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여보, 이건 반드시 될 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소”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글쎄, 밖을 보니 존스네인가 하는 사람들 배가 곧장 가라앉았어요. 그런데 우리 배는 아직도 땅 위에 그대로 있잖아요.” 그것을 띄우려면 핍박이 조금 더, 하나님의 심판이 조금 더 필요할 뿐입니다. 마침내 물이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잠시 후 온 가족이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습니다! 저는 언젠가 바로 그분 안에 있고 싶습니다. 이 낡은 병든 집이 이제 좀 지겨워집니다. 제 나이 쉰셋인데, 언젠가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리라 기대합니다. 우리는 떠나고 싶습니다. 방주는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배들은 가라앉는 동안 방주는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안에서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사탄은 노아를 시험했습니다. 사탄은 그를 낙심시키려 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 그 시대의 종교인들, 그 시대의 과학을 통해 그를 낙심시키려 했습니다.
신문에서 읽었는데, 어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저께였군요. 과학이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새로운 것인 줄 압니다. 우리는 이천 년 전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에게 새로운 것이 생겼다고 생각하다니요! 데이비드 듀플레시스가 언젠가 말했듯이, “러시아는 우주에 사람을 보냈다고 자랑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천 년 전부터 우주에 계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너무나 앞서 있어서,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쯤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계시며, 심판이 올 때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 증서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으십니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실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마침내 방주가 땅바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크게 덜컥하며 솟아올랐을 때, 말씀이 결실을 맺었고 그 증서는 배당을 지급했습니다. 노아와 그의 집안을 구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참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를 오래 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증서를 가진 사람입니다. 틀림없이 여러분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그는 이 생명 보장 증서를 받아 가지고 있었고, 그가 살던 시대에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증서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 증서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에 작정했습니다. 자기가 투자한 것을 더럽히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제 형제님이 말씀하신 데로 넘어가겠습니다. 증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그것이 있다면 세상과 어울리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십시오. 다니엘은 왕의 음식으로 자기의 상속 재산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에 작정했습니다.
자, 여기 계신 여성분들 중에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해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남성분들 중에도 무언가를 하기 시작해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설교자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자기 조직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워합니다. 방주에서 쫓겨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형제여, 그것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투자한 것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투자를 했다면 그것을 굳게 붙들고, 여러분의 마음속, 혼속의 안전한 곳에 간직하십시오. 거기에 머무르십시오. 세상의 것들로 그것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교회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이 뒤쫓아 다니는 이 하찮은 것들에서 떠나십시오. 일신교에서 쫓겨나면 하나님의 성회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성회에서 쫓겨나면 하나님의 교회로 갑니다. 여러분의 상속 재산을 더럽히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아니, 여러분이 투자한 것을 더럽히지 말라고 해야겠군요. 돌아가십시오. 깨끗하게 지키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일하십시오.
다니엘을 불러서, 그것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을 여러분께 알려 줄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사자 굴에 던져 넣었을 때 사자들은 그를 잡아먹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를 보호하도록 보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입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어느 것이… 오늘 아침 의사가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을 백 년이나 천 년 동안 살게 할 수 있는 캡슐을 과학으로 발명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얻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팔 것입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려는 증서, 이 확신은 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고 천 년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영생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합니다.
히브리 청년들에게도 같은 증서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어떤 것에도 결코 절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들 앞에 무엇을 얼마나 많이 내놓든, “여기에 가입하지 않으면 너희를 쫓아내겠다”라고 하든, 그들은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어떤 우상 앞에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왔을 때 그들의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 증서를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 오늘 아침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그에 관해 말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사도들 중 한 사람이었고, 왕국의 열쇠들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왕국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아는 지식입니다. 어젯밤에 그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열쇠는 문을 잠그기도 하고 열기도 합니다. 어젯밤 우리는 그것, 본래의 기초에 관해 들었습니다. 처음 출발한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형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그가 한 일에 관해 말하자면, 그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사도행전에서 출발했습니다. 교회가 출발한 곳이 거기이며, 교회가 돌아가야 할 곳도 거기입니다. 그 동일한 처방, 그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끝까지 따르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떠났다면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바르게 되는 유일한 길은 되돌아가서 바로잡는 것입니다.
저는 사격을 합니다. 정밀 사격을 하는데, 받은 트로피도 많습니다. 얼마 전 주님께서는 제 마음을 아시고, 제게 휴식이 조금 필요하다는 것도 아시기에, 놀라운 사격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사격장에서 보통의 윈체스터 모델 70, 22구경 소총으로 쏘았는데, 아홉 발이 같은 구멍을 통과했습니다. 거기 서 있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뒤에 표적지를 덧대며 말했습니다. “표적을 빗맞히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된 것이겠습니까? 저는 그 총을 이리저리 만지고 손보고 온갖 조정을 해서, 작은 진동 하나까지 모두 맞도록 해 놓았습니다. 표적을 빗나간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겁니다. 윈체스터 회사에서는 “그 총은 이십오 야드에서 탄착군이 일 인치 이내로 모이는 정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오십 야드에서 아홉 발을 같은 구멍에 넣었습니다. 전에도 되었으니 다시 될 것입니다.
오늘 제가 하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때와 같은 오순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교육이 주입되어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던 배우지 못한 어부들에게 그것이 통했다면, 그때 표적을 맞혔다면,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일으켰다면, 오늘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총의 진동이 제대로 맞으면 정확하게 영점이 잡힐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서 총을 점검하십시오. 그러니 돌아가 처방을 집어 들고, 우리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알아보십시오. 제가 아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될 것입니다. 전에 맞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맞힐 것입니다. 교단도 신조도 없이, 감리교인도 침례교인도 장로교인도 그 무엇도 아닌 사도들에게 그것이 통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들에게 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제게도 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도 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나사 중 어디가 느슨한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에게, 실례지만, 그런 나사가 꽤 많습니다. 어떤 나사는 너무 조여 있기도 합니다. 진동이 제대로 나도록 조금 풀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음악가가 기타 줄을 조율할 때 그 소리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그 소리가 성경보다 한참 앞서 나갔는지, 성경보다 한참 뒤처졌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성경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와 정확히 맞아야 합니다. 올바로 조율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점이 잡힐 것입니다. 그러면 정확히 맞힐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표적을 빗나가게 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어쩌면… 나는 이제 늙었다. 나는 메시아를 기다린다. 우리는 에덴 이후로 그분을 기다려 왔지.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네 시대에는 오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아, 속지 마라. 언제나 이런저런 것이 나타나 메시아라고 한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 우리는 메시아가 어떤 분이실지 알려 주는 말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던 것 아시지요. 지도자들이 일어나 종파와 교파 무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광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과 함께 멸망했습니다. 고라가 거슬러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누가 거룩하다는 것인가? 모세는 자기만 잘난 줄 안다. 거룩한 사람은 또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분의 길, 그분의 사람, 그분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거스르겠습니까?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자, 보십시오.
그는 말했습니다. “내 아들 시몬아, 메시아께서 오시면, 모세가 말씀을 통해 말한 대로 그분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실 것이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와 그에게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베드로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어부야. 아버지의 그물에 투자했어. 나는 고기를 잡을 거야. 그게 내 직업이야. 그리고 나는 바리새인이야. 그러니 그냥 이대로 있겠어. 교회에도 다니고, 다른 누구 못지않게 착하게 살잖아. 그걸로 됐어. 그거면 좋아. 나는 아버지가 다니시던 교회에 다녀. 전통이라면, 그걸 그대로 지키겠어.”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이분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분 앞에 오자마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며,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그분은 그가 누구인지 아셨을 뿐 아니라, 그를 가르쳤던 경건한 그의 연로한 아버지도 아셨습니다. 말씀과 맞았습니다. 선지자이셨습니다. 베드로는 투자를 했습니다. 그물을 놓았습니다. 그분께서 “와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재산을 지키려 했던 부유한 젊은 관원과 얼마나 다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나다나엘이… 아니,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에게 말했습니다. 아마 나다나엘에게는 큰 올리브 과수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가서 그것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자기가 발견한 것을 말해 주자, 그는 처음에는 조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집회 중 한 곳에 잠깐 들러 보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보자마자… 그는 성경을 연구한 사람이어서 메시아가 어떤 분이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자기가 다니던 교회를 떠나는 것이 옳은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정통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깎아내리고, 그 증서를 깎아내리면서 쓸모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이면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고, 비엘세붑이며, 미친 사람이고, 내세울 배경도 없고,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학교에 다니지도 않았고, 그들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교리에 반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그분의 교리가 사람들을 방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런 일을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비엘세붑이라고 부르며, 그분께서 자신의 교리로 사람들을 속인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말들이 나다나엘에게 주입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건한 사람 나다나엘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자마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는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투자를 했습니다. 그의 제사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실제인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달려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는 투자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습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그들이 어디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여자를 살펴봅시다. 아마 어딘가의 교인이었을 한 여자가 있었는데, 제멋대로 살도록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머리도 짧게 잘랐을지 모릅니다. 당시의 유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자는 우물로 올라왔고, 거기에는 낯선 남자, 한 유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뒤에 커튼이 드리워진 작은 전경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그곳으로 올라왔을 때… 그 여자에게는 자기 나름의 생계 수단이 있었고, 아마 그때도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니던 작은 양말에 로마 데나리온 몇 닢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여자는 물을 길으러 그곳으로 올라왔습니다. 밤새 밖에 있었습니다. 아마 열한 시쯤 그곳에 왔을 것입니다. 저는 모릅니다만, 그랬다고 해 봅시다. 거기 올라왔을 때 여자는 한 남자, 평범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제사장도 아니었고, 몸에 어떤 교단의 표시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여자가 그분을 바라보자 그분께서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이시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저는 사마리아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네가 구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지요. 겉모습으로는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저 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매우 단호해 보였습니다.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끈질기게 매달렸던 그 여인, 예수님께 왔던 그리스 여인처럼 말입니다.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놀랐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지요. 여자는 결혼하고 온갖 일을 하고 또 재혼하도록 허용하는 교단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지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네게 다섯이 있었고, 지금도 한 사람과 살고 있구나. 그러니 그는 네 남편이 아니니라. 네 첫 번째 남편이 정당한 네 남편이었느니라. 네가 그렇게 살고 있구나.” 여자는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비엘세붑, 점쟁이, 혹은 마귀라고 했던 학식 있는 제사장과 얼마나 다릅니까.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배웠습니다. (저는 그리스인, 아니 사마리아인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표적일 것입니다.” 그분께서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곧바로 투자를 했습니다. 투자한 것입니다. 도시로 뛰어들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값비싼 진주를 찾았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팔아 버렸습니다. 그 시대의 전통을 아십니까? 여자가, 그런 부류의 여자가 거리에 나가 남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를 막아 보십시오! 어디 막아 보십시오. 여자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실제였습니다.
나다나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비엘세붑이라고 선언한 그 갈릴리의 소위 선지자를 따르는 것은, 나다나엘의 교회 윤리에 어긋났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교회다운 행동도 아니고, 윤리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출교당할 터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막아 보십시오! 그는 실제인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이 여자도 실제인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여자가 거리에서 이것을 외치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평판이 나쁜 여자였고, 낙인이 찍힌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받았습니다. 실제인 무언가를 발견했으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 부는 날 불을 끄려는 것과 같았습니다. 여자는 죄 사함을 받은 기쁨과 평안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야곱의 우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영생이 담긴 샘이 솟아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자는 물동이를 거기에 두고 “이제 이것은 끝입니다. 저는 저것에 투자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현명한 여자였습니까! 물론입니다. 투자할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다른 인물을 하나 살펴봅시다. 잠시 그 그리스 여인에 관해 이야기합시다. 그 여자에게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우선 그 여자는 아마… 그리스인이었고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틀림없이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잠깐만요. 당신이 속한 교단은 그 집회를 후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여자는 소문을 들었고,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것도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부르고 계시면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쨌든 가고야 맙니다. 교회의 모든 자매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망신을 당할 거예요”라고 했을 법합니다. 그래도 여자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갔습니다. 또 다른 무리가 여자를 만나 말했습니다. “당신 남편은 사업가잖아요. 저 무리, 저 광신자들에게 가면 남편이 당신을 버릴 거예요.” 그래도 여자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계속 갔습니다. 끈질겼습니다.
무엇인지 알 때 끈질기게 나아가면 보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이루어 내는 사람은 끈질깁니다. 어느 시대나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끈질겼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부라고 불리는 워싱턴은 밸리포지에서, 델라웨어강이 아무리 얼어붙었어도 끈질기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밤새 기도했습니다. 그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건넜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어쨌든 건넜습니다. 그는 끈질겼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께 도착한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참된 믿음은 이렇게 합니다. 보석을 찾았을 때, 이 증서를 찾았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낙심시키려 하든, 교회에서 쫓아내든,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짓을 하든, 여러분은 여전히 끈질기게 나아갑니다. 그 증서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것을 원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태가 되면 절박해집니다. 그러면 끈질기게 나아갑니다. “글쎄요, 저는, 아… 어머니는 오순절 교인이셨습니다. 오늘 밤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싶지만, 아, 너무 피곤하네요.” 흠. 여러분에게는 그 독소가 좀 필요합니다. 여러분을 끈질기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자는 달려 들어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다윗의 자손이시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에게 다윗의 자손이 아니셨습니다. 여자는 그리스인,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자를 거들떠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여자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교단에 보내어지지 않았느니라. 나는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내어졌느니라. 내가 보냄 받은 곳은 거기뿐이니라.” 여자는 “그러나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르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주님…”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너희는 개 떼에 불과하니라. 내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아, 오순절 사람이라면 그 말에 발끈하지 않겠습니까! “침례교인이 내게 그런 말을 해도 그냥 넘어갈 줄 압니까? 어림없습니다. 일신교인이든 삼위일체 교인이든, 누구든… 안 됩니다.” 여러분은 콧대를 세우고 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투자를 해야 했습니다. 투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멘. 여자가 어떻든…
진실하고 참된 믿음은 상황이 어떻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여자는 말했습니다. “주님, 참말씀입니다. 주님은 저희에게 보내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제가 개에 불과하다는 것도 참말씀입니다. 그러나 제 사정도 말씀드리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들이 받은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스러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 제가 좀 그럴듯한 모습을 갖춰 그곳에 가게 해 주시고, 교회 집사로 세워 주신다면, 주 담당 장로가 되게 해 주신다면, 좀 고려해 보겠습니다.” 위선자여! 그렇게는 받지 못합니다. 부스러기를 얻으러 와야 합니다. 와서… “주님, 방언하지 않고도 주시겠다면, 외치지 않고도 주시겠다면, 이런 다른 것들 없이도 주시겠다면 받겠습니다… 주님, 그저 점잖고 예의 바른 방식으로 조금씩 제 안에 부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방식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 자신의 방식대로 하십니다. 아시겠지요.
얼마 전에 설교를 했는데, 한 부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니, 부인이 아니라 제일침례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빌리, 교회 안에 들어가서 말씀을 듣지는 못하고 밖에 서 있었어요. 하시는 말씀을 즐겁게 듣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일어서더니 울기 시작하더군요. 그러고는 통로를 따라 뛰어가더라고요. 그 소란스러운 소리에 등골이 오싹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세요? 그게 소란스럽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살고 계신 이 세상이 여태 사신 곳 중 가장 조용한 곳입니다. 천국에 가기라도 하시면 얼어 죽으시겠군요. 천국에 가면 밤낮으로 소리치고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왕좌 둘레의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라고 외칩니다. 지옥에 계신다면 거기에는 울며 통곡하고 이를 가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아주 조용한 곳에 살고 계신 겁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 여인은 끈질겼습니다. “네,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리임을 인정합니다. 저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자는 한 번도 기적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어느 하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바로 그것이 자기 딸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서 이 이방 여자에게 행해진 첫 기적에서, 그분께서는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자가 그토록 진지하고 간절한 것을 보시고 마음이 움직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이런 일들에 그토록 진지하고 간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적당히 맞춥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말을 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입을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예의를 따집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우리 교단 기준으로는 믿지 않을 것이고, 쫓겨날 것입니다. 계획적인 살인입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벌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옳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자기 조직 안에서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원했기에 투자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은행들이 문을 닫은 시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은행은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지금도 열려 있습니다. 그는 은행이 열려 있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처방을 주셨습니다. 그는 영생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영생에 투자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여러 무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시간이 늦어지니 이제 마무리합시다.
누가복음 24장 4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모두 희생하고 이 영생의 증서에 서명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그분은 그에 따른 배당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 너희 배당을 받으려면 너희 사이의 차이를 모두 버려라. 그리스 정교회인지, 침례교인지, 장로교인지, (오늘 아침 형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흑인인지 백인인지 황인종인지 갈색 피부인지 따지며 다투지 마라. 예루살렘 시로 올라가 내가 그것을 보낼 때까지 기다려라.” 그분께는 거기 올라가 서명할 백이십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명하고, 자기가 투자한 것의 이자를 받으러 그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들의 이자가 지급된 것입니다. 언제나 지급됩니다. 오순절 날에는 그 증서를 하나 받고 싶은 사람이 약 삼천 혼 있었고, 베드로는 그것이 어떻게 작성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이자를 주실 것이다. 너희가 배당을 받으리라.” 아멘. 이 증서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입니다.
조금 뒤에는 바울이라는 부유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돌아다니며 이 사람들을 몹시 괴롭혔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사람들은 광신자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증서를 가진 사람들을 한 번도 조사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달려들어 그들을 핍박하고 비웃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도 그것을 보고 똑같이 했습니다. 달려들어 조롱하며 “광신자 무리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는 쓰러졌습니다. 올려다보니, 자기 조상 모세와 자기 조상들을 광야에서 인도했던 그 불기둥이 보였습니다. 그분께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나는 예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을 깨달았고 확신했습니다.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분이 참으로 메시아이심을 성경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입증되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이제 가진 것을 현금으로 바꾸어 자기도 증서를 하나 살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 다마스쿠스로 내려갔습니다. 아나니야가 와서 그에게 안수하고 침례를 주었고, 그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그 불기둥을 보고, 육신이 되셨던 주님이심을 알았을 때… 그들은 그분이 참으로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갔노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불기둥에서 오셨습니다. 가르치실 때 “모세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스스로 있는 자’가 불타는 떨기나무 안에 계셨던 분입니다. 바로 그분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으니, 참으로 메시아이십니다. 그리고 거기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일은 바울을 조금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는 다른 나라로 가서 삼 년 동안 그 일을 철저히 연구한 뒤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분께서 육신이 되신 말씀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알았을 때, 그는 자기 온 생명과 가진 모든 것, 자기의 모든 인기와 모든 학식을 투자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내가 알던 모든 것을 잊어버렸노라”라고 했습니다. 가말리엘에게 받은 훌륭한 가르침도 버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자기 조직의 증명서도 처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그를 쫓아낼 것이니,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아멘. 신뢰할 수 있는 회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바로 여기 그 동일한 불기둥 안에 다시 계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그는 투자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업가였고,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했고, 사랑으로 그리스도께 매인 종이 되었습니다. 아, 그가 한 투자는 얼마나 훌륭합니까! 우리 모두가 해야 할 투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제 마치면서 말씀드리지만, 그 젊은 관원이 내린 결정은 얼마나 경솔했습니까. 그가 한 일은 얼마나 경솔합니까. 사업가가 하기에는 얼마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까. 사업을 해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입증된 증서를 받을 기회를 얻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는… 그분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는 것을 직접 보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가 가져다주는 인기를 더 원했습니다. 자기가 누리던 화려한 삶을 더 원했습니다. 사랑과 존중을 담아 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 유대인 랍비가… 존 라인이 치유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길거리의 거지였던 그의 치유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한 회당으로 안내되었고, 거기서 한 랍비가 저와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그가 “브래넘 씨”라고 했습니다. (존이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이 사람에게 시력을 주었습니까?” 저는 “제가 그에게 시력을 준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저는 길에서 여러 번 그에게 자선을 베풀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네, 그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시력을 주셨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이 있다니, 영에게 아들이 있다니,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랍비님, 성경을 믿기가 어려우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아니지요. 나는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을 믿으십니까?” 그는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서 선지자는 누구에 관해 말했습니까?” 그는 “메시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는 하나님이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대로 짚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세 조각으로 잘라서 우리에게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가톨릭의 이야기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분 하나님이 세 직분으로 계십니다. 아버지의 직분, 아들의 직분, 성령의 직분입니다.” 세 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교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유대인에게 억지로 믿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편을 택했습니다. 옛 선지자들은 진리를 가지고 자기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을 결코 죽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의아해합니다. 그저 하나님께로 오십시오.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계시하시며, 성경 말씀들이 서로 맞아떨어지게 하십니다. 보십시오. 이 랍비가 “하나님께 아들이 있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했을 때, 저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입증하지 못하셨던…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대목을 한 군데라도 보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도둑이 되실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은 도둑이 아니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가 안식일에 곡식밭에 들어가 이삭을 땄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네 레위 율법에도 사람이 밭을 지나가며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지만, 자루에 담아 가져갈 수는 없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자기 율법이니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서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존이 볼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네”라고 하더니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그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저는 “랍비님, 인정하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네. 그뿐 아니라, 선지자였다는 것도 인정하겠습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 우리가 더 나았을 것입니다.” 저는 “랍비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선한 분이셨다고 하셨으니, 그분을 믿을 수 있겠지요. 선지자라면 거짓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건 어떻습니까?” “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전파하면…” 우리는 벤턴하버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 아래 보이십니까? 나는 길거리에서 먹을 것을 구걸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유대인이란 그렇군요. 저는 당신처럼 이 건물에 금빛 글씨로 제 이름을 붙여 놓고 하루 세 끼 닭튀김을 먹기보다는, 차라리 엎드려 개울물을 마시고 소다 크래커를 먹더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입니다!” 그의 뺨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분을 만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으로 들어갈 때 그가 몸을 돌려 저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그는 믿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이 부유한 젊은 관원처럼 투자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랍비들뿐 아니라 사역자들도, 평신도들도 그 투자를 두려워합니다. 이 사람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얼마나 경솔한 일이었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들, 이 인기라는 것은… 인기를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인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의 칭찬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독소가 조금 필요합니다. 세상에!
그런데 이 부유한 청년은… 자, 이제 실업인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마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도록 잘 보십시오. 그가 예수님을 거절했다고 해서 재산이 늘어나는 것이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 나아갔습니다. 성경을 따라 잠시 그를 좇아가 봅시다. 그에게 들어오는 재물이 더 많아졌습니다. 여러분도 사업이 좀 나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악한 자들도 번창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더 커졌습니다. 얼마나 커졌는지 자기 곳간들이 거의 터져 나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새 곳간들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그분께 투자하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재산으로 보면… (이제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세상 재산으로 보아 번창했기 때문에, 자기가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단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직을 만들었고 자기 단체들이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되었으니 자기들이 최고라고 여깁니다.
성경이 이 시대를 향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너는 부자이고 재산이 늘었지만, 네가 벌거벗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눈멀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며,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얼마나 비참한 상태입니까! 여러분, 형제 여러분, 그런 것에 투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반드시 사라지고 맙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입증된 것에 투자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여기 적어 둔 성경 본문들을 가지고, 그 투자를 한 사람들과 거절한 사람들을 성경으로 입증하다 보면 오늘 밤까지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참된 투자를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 시간, 돈, 재능, 가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투자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다시 일으키심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장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만큼 수익을 가져다줄 투자가 있다면 말해 보십시오. 오늘 아침 무엇에 투자해서 천만 달러를 벌고 내일 시체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인기를 얻어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집사, 장로, 박사, 감독, 원로, 교황, 혹은 그 밖의 어떤 직함으로 불린들 어떻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칭찬입니다. 저는 차라리 사람들에게 광신자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제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새로 태어나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시고 저를 살게 하심으로 그 사실을 증명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내가 전에 살던 삶을 이제는 더 이상 살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교사였고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께 투자했을 때 삶을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 재산이 늘어났습니다! 물론 이 사람도 그랬습니다. 아십니까? 여기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재물이 있으리라.” 아시겠지요. 얼마나 훌륭한 투자입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택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도 똑같이, 그렇게 하지 않기로 택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가 오늘날의 교회처럼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때, 가난한 사람은 그의 문간에 누워 있었고, 그가 개들에게 쓸어 내준 부스러기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영이 가난한 나사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영이 가난하여 바퀴 자국이 깊게 파인 듯한 낮은 자리, 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칭찬하고, 우리가 큰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 전에 어떤 형제님이 하신 말씀처럼… 참으로 확실하게 못 박으셨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아니 서로의 칭찬을 바라면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마십시오. 여러분이 구할 것은 하나님의 칭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지킬 때에만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영이 가난한 사람이 그의 문간에 누워 부스러기를 얻으려고 애쓰던 것을 봅니다. 아, 그 사람이 구세군이었다면, 아마 그 부자는 지나가면서 너무 인색해 보이지 않으려고 십 센트쯤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자기를 아주 큰 인물로 남아 있게 해 주는 자기 교회와 조직에는 많은 투자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결산할 때가 왔습니다. 결국 그때가 왔습니다. 그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아마 넓은 예복을 입은 늙은 독신자가 와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귀한 형제님은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 아, 그분은 이러저러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이십니다.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 아, 우리는 귀한 형제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얼마나 달랐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가 받은 대가는 지옥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된 투자를 한 것입니다. 지옥에서 눈을 들어 보니,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는 데 투자했던 그 영이 가난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이제 그 자신이 구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들으십시오. 그는 믿는다고 공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 거지를 여기로 보내 주십시오.” 상황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는 잘못된 것, 세상의 재물과 사람의 칭찬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굶주린 채 거기 누워 있던 그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를 보내 주십시오. 그는 원할 때마다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손가락에 물 몇 방울을 묻혀 그를 내려보내셔서, 여기 바싹 마른 제 입술에 대게 해 주십시오. 이 불꽃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그것이 받은 대가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올바른 투자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실업인 여러분,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그보다는 더 신뢰합니다. 사업가라면 가진 진주를 모두 팔아 그 값비싼 진주 하나를 사십시오. 그리스도께, 여러분 안에 있는 그분의 생명에 투자하십시오.
우리는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시작이 없었던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그 말을 쓸 때, (그리스어 학자와 그리스인 앞에서 제가 잘못 인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에’라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뜻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면, 그리스어 ‘조에’라는 말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의 생명의 일부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그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오직 한 가지 형태뿐이며,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시작하신 적이 없고, 끝나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브래넘이 된 것은 브래넘 가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류에 속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그중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하나님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교단 신조를 모두 팔고, 영생에 투자하십시오.
실업인 여러분, 여성 실업인 여러분, 성경을 살펴보며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많은 인물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게는 그런 것을, 다른 일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신조와 모든 교단을 팔고, 와서 생명을 찾으십시오. 오늘 아침 여러분은 초대받았습니다. 그러니 오십시오. 그 사람처럼 외면하고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는 아주 어리석은 사업가였습니다. 그와 같이 되지 마십시오. 바울과 같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인기를 모두 처분하십시오. 그는 “나는 내 학식을 드러내는 거창한 말로 여러분에게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의 능력과 학식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으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리스도께 의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다시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조직을 대표해서 오지 않았고, 학자로 오지도 않았습니다. 제 말은 군데군데 끊깁니다. 교육을 받으신 여기 많은 좋은 분들은 말이 너무 끊겨서 알아듣지 못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권능으로, 성령께서 실증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시는 가운데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의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개를 숙입시다.
주님, 우리는 엄숙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 오십 년 전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초대하신 일을 기념하여, 저기 라이프 태버내클에서 이 큰 희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제가 아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그것을 철저히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서 본래 뜻하신 바를 올바르게 계시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이 돌아가야 함을 깨닫고, 그렇게 할 유일한 길은 말씀의 진리로 오는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중 아무도 그런 투자를 거절할 만큼 어리석지 않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투자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원자 불이 땅을 태울 때 사람의 칭찬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오늘, 우리의 묘비가 모래 속에서 떠올라 밀려다니게 될 때, 바람이 울부짖을 때… 이 세상이 옛날 대홍수로 멸망하기 전처럼 자기 자리에서 튕겨 나가 저 태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때, 그리고 튕겨… 태양에서 바깥으로 튕겨 나가는 대신 태양 안으로 던져질 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시는 물이 아니라, 이번에는 불입니다. 위대한 천년왕국에 앞서 모래가 땅 위를 울부짖으며 휘몰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묘비가 드러납니다. “아무개 박사, 아무개 형제, 아무개 감독.” 우리의 혼이 저기 영원 속 어딘가에 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 오늘 아침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로서 우리 모두는 사람들에게 보이거나 우리 이름을 알리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는 갈보리의 고통 속에 여기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성령께서 울고 계시는 가운데 여기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거절당하셨을 때 그 안에서 우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영은 잃어버린 세상을 위해 울부짖습니다. 주님,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는 그들이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멸망을 바란다면 우리 안에 계신 바로 그 영께서 우리를 정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끊임없이 울부짖으시고, 그 울음이 퍼져 나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재능과 시간과 돈과 가진 모든 것으로 온 힘을 다하게 하옵소서. 아무리 적어도 그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죽어 가는 세상에 이 위대한 메시지를 전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주님,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습니다. 능력도, 사람을 끄는 인품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제게는 그저 제 혼과 목소리만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는 말이라고 확신합니다. 주님, 사용해 주옵소서. 제게 돈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제게 있는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 저의 전부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저를 도우시고 우리 모두를 도와주옵소서.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게으름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 큰 보물을 발견하고도 우리는 얼마나 게을렀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셨을 때와 같은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뜻과 명령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그 갈망을 주옵소서. 주님의 위대한 종 존 웨슬리가 말한 것처럼, 우리 가슴속에서 그 뜨거움이 사라지지 않게 하옵소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옵소서. 그것이 더욱더 커져서 우리를 무릎 꿇게 하여 간청하고 설득하게 하옵소서. 그것이 우리를 무릎 꿇게 하여 큰길과 샛길과 길모퉁이와 사업장과 모든 곳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교회 안으로든 우리가 갈 수 있는 어디로든 가서, 오늘날 남녀들에게 이 영생을 소개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주님의 집에 모이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이 식탁 건너편을 바라보며, 경건한 노성도 홀서 형제님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쟁기를 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밧줄 고삐를 어깨에 걸친 채 낡은 쟁기 뒤를 따라가던 맨발의 어린 제 모습을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오신 주님의 이 훌륭한 성도는 아주사 거리에서, 들판의 고된 노동으로 어깨가 굽은 그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그분들과 아침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대통령과 함께 있기보다, 이 경건한 무리와 함께 이 자리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이 눈을 들어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바라볼 때, 그분들이 상을 얻으려고 어떻게 싸웠으며 피의 바다를 어떻게 건너왔는지 봅니다. 주님, 그분들이 내려놓는 일을 우리가 이어받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언젠가 삶이 모두 끝나면, 더는 이런 아침 식탁에 앉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 하늘에서 차려질 만찬에는 앉을 것입니다. 그때 왕께서 찬란한 영광 가운데 위엄 있는 왕의 옷을 입고 앞으로 걸어오십니다. 우리는 식탁 너머로 손을 내밀어 서로 악수합니다. “형제님, 뵈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우리의 뺨을 타고 흐릅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싸움은 끝났다. 너희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손수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세상의 창건 때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주님의 기쁨에 들어오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그 세상의 창건 때부터 말입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아멘.
잠시 고개를 숙인 채로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 그분의 존엄하신 임재 앞에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이 엄숙한 순간에, 아직 참으로 영생을 받지 못한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다른 분들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계시는 동안, 주님과 제가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저기 건물 곳곳에 계신 여러분에게 말입니다. 손을 들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영생을 원합니다.” 젊은 분이든 나이 드신 분이든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제 혼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제 시간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영생을 상속받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도록 저를 부르시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조용히 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사역자에게 보이려고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보이려고 손을 들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고 싶습니다. 제 모든 인기와 세상 재산, 여러 가지에 대한 생각까지 모두 내려놓고 싶습니다.”
자, 여러분의 재산을 나누어 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붙들고 있어서 이 투자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실업인 여러분, 사업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곳에 두셨으니 계속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서 얻은 수입을 어떤 식으로든 그분의 일에 쓰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투자하겠습니다.” 또 한 분 계십니까? 열두 분 이상이 계셨습니다. 또… 한 분 계십니까?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 전에 또 한 분 계십니까?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결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사역자들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개의치 않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머무르겠습니다. 인기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말씀에 머무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아침 저는 투자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업가가 되겠습니다. 제게 있는 재능을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왕국을 위해 쓰고, 세상의 부를 얻으려고 그것을 파는 일을 그만두겠습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역자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역자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역자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팔겠습니다. 말씀에 머무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에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보고 계십니다. 형제님들, 거기 함께 계신 두 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 저기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도요. 기도하는 가운데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손을 들 때 과학의 모든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진심이라면 소용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믿고 진심이어야 합니다. 과학은 말합니다… 과학에 따르면 지구의 중력이 여러분의 손을 아래로 붙잡아 둡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는 결정을 내린 영이 있습니다. 여러분 곁에 또 다른 영, 하나님의 영이 계셔서 “손을 들어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학의 법칙을 거슬렀고, 여러분의 손은 창조주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오늘 아침 그분께서 그 투자에 여러분의 이름을 올려놓으셨습니다.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들은 메시지가 거둔 전리품이고, 말씀이 거둔 전리품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전리품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그들을 내게 주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을 할 만큼 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지켜 주옵소서. 불에서 건져 낸 불붙은 나뭇가지처럼 이들을 내보내시고, 주님의 왕국을 위해 타오르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