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형제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녁 사우스사이드 하나님의 성회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경배하며, 여러분이 틀림없이 늘 누리고 계실 이 귀한 교제를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조금 피곤하기는 합니다만… 어젯밤에는 투산에서 열린 만찬에 다녀왔는데, 정말 놀라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님께서 복을 주셨고, 저는 오늘 온종일 그 은혜로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어떤 사람을 만났… 어떤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칼 윌리엄스 형제님의 아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바로 그 청년을 칭찬하고 있었지요. 일어나서 청년 집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딸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꼭 거기 가 보거라.” 딸은 “거기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하더군요. 저는 “가면 아는 사람이 생기겠지. 아니면 다들 너를 알게 되든지. 어쨌든 가 보거라.” 했습니다. 그곳 집회 중에 제 딸이 성령침례를 받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 서 있던 그 훌륭한 청년 말이야.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더구나…” 하면서 빌리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빌리는 가만히 서서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아빠, 그게 누군지 모르세요? 칼 윌리엄스 형제님의 아들이잖아요.” 아, 그… 좋은 집안 출신이신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저녁 피닉스에 와서 참 기쁩니다.
아니, 저기 팻 타일러 형제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형제님, 도대체 어디서 오셨습니까? 뉴욕에서 여기까지 차를 얻어 타고 오셨나 봅니다. 대개 그렇게 다니시지요. 오늘 저녁 진 형제님과 리오 형제님, 에드 돌턴 형제님, 여기 계신 여러 친구분들, 그리고 에드 후퍼 형제님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아, 오늘 저녁 여기 위에 서 있으니 여러분 모두 잘 보이고, 사방을 잘 둘러볼 수 있군요.
이제 조금 피곤해지는군요. 상당히 무리해서 다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랜 시간 일했습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여보, 당신이 두 번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 같네요.” 저는 “이번에는 그 목소리를 써야 했어.” 했습니다. 저는 때로 목 깊은 곳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러다가 그쪽이 아프고 지치면 위쪽으로 올려서, 그다음부터는 거기서 소리를 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다 지치면 온갖 방법을 다 배워야 하지 않습니까? 아, 이 뒤에 계신 분들이 모두 목사님들이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은 참 든든하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함께 앉아 계시니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속한 곳에 함께 앉아 있고, 그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약속이 생각납니다.
오늘 저녁은 정말 일찍 마치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쇼어스 형제님께 간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성함이 맞습니까?) 11번가와 가필드에 있는 쇼어스 형제님 교회입니다. 그곳도 하나님의 성회입니다. 거기 하나님의 성회, 그리고… 제일 하나님의 성회입니다. 그 뒤로는 아마 다음 일요일 아침까지, 한동안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대집회에 가면 저는… 우리는 놀라운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참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 온 목적은, 말하자면 대타처럼 이곳저곳 다니며 돕는 것입니다. 형제님들과 조금 교제하고, 여기서 하룻밤, 저기서 하룻밤 집회를 하면서… 서로 알아 가려는 것이지요. 어쩌면 사람들에게 조금씩 부흥의 기운이 일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대집회로 이어 가고, 마침내 큰 절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 다음 월요일 저녁 만찬에서 절정을 이루어 주실 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의 남은 날들도 내내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거리로, 산울타리로, 큰길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와 달라고 청하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강권하십시오. 강권하십시오. 들어오도록 강권하십시오. 피닉스가 하나님의 큰 방문을 받기에 참 좋은 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하시리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가 준비되면 말입니다. 우리… 그래서 이런 부흥 집회를 하는 것입니다. 조건을 갖추고, 충분히 기도하며, 이 일이 일어날 준비를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고개를 숙여 기도하며 그 말씀을 기록하신 분께 말씀드립시다. 하나님 앞에 고개와 마음을 숙인 지금, 이만큼 모인 회중 가운데는 틀림없이 많은 기도 요청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도 제목이 있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기를 원하시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 손에 이런 마음을 담으십시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께서는 이 손 하나하나에 담긴 사정을 아십니다. 그들의 생각에 무엇이 스쳐 갔는지 아시며, 모든 요청에 응답하실 능력이 충분하고도 넘치십니다. 주님, 그 요청을 들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녁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내일 저녁 제일 하나님의 성회에서도 다시 우리에게 복을 쏟아 주시고, 그다음 한 주를 마무리할 라마다에서도 그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실제로 수백 명이 구원받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허락하여 주십시오. 영을 얼마나 풍성히 부어 주시는지 신문사들이 더는 잠잠히 있을 수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중에게 보도하지 않을 수 없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허락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백성에게 주님 자신을 알려 주십시오. 그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의 손을 내밀어, 우리가 구하는 이 일들을 받게 되리라고 믿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 오늘 저녁 여기 오고 싶지만 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병들고 고통받으며 이곳에 올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이들입니다. 주님,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찾아가 주십시오. 얼어붙은 들판을 가로질러 아주 먼 길을 온 이 형제님들과, 아직도 이곳으로 오는 길 위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복 주십시오. 주님, 보호해 주십시오. 무사히 도착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이 하나님의 성회와 이 훌륭한 목사님, 회중과 이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그들이 지지하는 모든 일에 복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그 말씀을 읽고 본문을 읽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안에 담긴 뜻은 주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1장입니다… 혹시 어떤 분이… 여러분도 대개 성경을 함께 읽거나 본문 위치를 적어 두기를 좋아하시지요. “나는…” 하고 말입니다. 누군가는 나중에 그 본문을 살펴보다가 이미 전해진 말씀을 더 풍성하게 할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때로는 평신도들도 그 본문을 다시 읽어 보고 전해진 말씀을 듣습니다. 저도 종종 그렇게 본문을 적어 둡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함께 성경을 읽으시려면 고린도전서 11장을 펴 주십시오. 23절부터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내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의 잔이니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셨느니라. 이제 여기서 “주님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을 택하고자 합니다. 물론, 누구나…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만찬 예식을 하는 저녁마다 이 말씀을 읽습니다. 그때 읽기에 참 좋은 본문, 참 좋은 성경 말씀이며, 그 자리에 합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가 택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나를 기억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성만찬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서 큰 논쟁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해서 무언가 좋은 것을 얻을 만한 공로를 쌓았기를 바라며, 그 행위로 자기 죄가 용서받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자기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이미 용서받았다는 기쁨으로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계속해서 주님의 상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말합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곳에 나아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합니다.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정죄를 먹고 마시느니라.” 그러므로 성만찬에 참여할 때 우리는 참으로, 참으로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성만찬’이라는 말, ‘커뮤니언’을 정말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 여러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커뮨’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뜻, 서로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처럼 하늘에 속한 곳에 함께 모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성만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잠히 앉아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대답하시게 해 드린다면… 여러 가지 중에서도 제가 저지르는 아주 나쁜 일 하나는, 저 혼자 말을 다 하려 하고 주님께서 제게 대답하실 만큼 충분히 오래 잠잠히 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너무나 자주 그렇게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으며 주 예수님께 마음을 아뢴 다음,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잠시 잠잠히 있으면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저도 가끔 그렇게 했는데,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주님께 가서 무언가를 여쭙습니다. “주님, 이 사람들이 정말… 무슨… 무언가가… 제가 그곳에 가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마친 뒤 잠시 더 머물러 있으면, 때로는 완전히 달라져서 다른 곳으로 보내십니다. 그저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아, 무릎을 꿇고 주님께 말씀드리고 교제하며, 그분께서 대답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교제입니까!
여러분이 말씀을 나누는 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화산재 속에 여러분의 생명을 넣어 주신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이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때부터 어디로 가느냐는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에게는 그 혼이 떠날 때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선택할 특권이 있습니다. 그분의 약속을 근거로 그분과 교제한 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응답하시며 “다 잘되었다.”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 그것을 정말 잘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신조를 바라볼 필요도, 어떤 교리를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그분께서 그 말씀을 다시 증언해 주셔서 일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그것으로 전부입니다. 그러면 짐이 벗겨집니다. 저는 오늘 저녁 우리가 그렇게 부를 이 상에 나아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이라고 부르는 것에 참여하는 것만큼이나 여기에서도 성만찬의 교제를 나눈다는 뜻을 이제 말씀드렸습니다.
저 동부 사람들은 식사 이름을 온통 뒤섞어 놓아서, 제가 바로잡아 줄 수가 없습니다. 북부에서도 모두 제가 저녁을 먹으러 가면… 저를 데리고 가서는 저녁 식사를 ‘디너’라고 합니다… 아침은 ‘브렉퍼스트’, 점심은 ‘런치’, 저녁은 ‘디너’라고 하지요. 그러면 제가 먹는 ‘서퍼’는 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저는 그걸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들은 “그게 다예요.” 합니다. 저는 “그게 아니… 우리가 주의 ‘디너’를 먹은 것은 아니잖습니까. 주님께서는 그것을 ‘서퍼’, 곧 주의 만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 저는 한 끼를 빠뜨린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함께 모이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성만찬의 상은 실제로 찢… 찢긴 몸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떼는 실제 빵 자체를 말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냅니다.
오순절 날 우리가 받은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셨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 그분… 그 위대한 불기둥이 말입니다… 오순절 날 그 큰 불이 내려와서 그분의 백성 사이에 나뉘었습니다. 아, 그분께서 우리가 하늘에 속한 곳에 함께 앉아 각자 성령의 불의 온기를 누리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갈라진 혀들이 불처럼 그들 위에 머물렀습니다. 불꽃들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자신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아,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바로 그때 우리는 하늘에 속한 곳에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앉아 그분과 교제하는 주님의 상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큰 샘이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말입니다. 지친 나그네들이 와서 이 사막의 오아시스 둘레에 앉아 기운을 되찾고,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와 같습니다. 이 성만찬의 상에는 하나님의 모든 복, 온전한 복음,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위해 마련하신 모든 것이 우리 가운데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가는 이 뜨겁고 불타는 죄악의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우리가 들어와서 메뉴에 관해 이야기하면 (혹은 읽어 보면), 그분께서 돌아서시며 이것은 방금 떨어졌다거나 저것은 떨어졌다거나 이것은 메뉴에서 빠졌다고 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메뉴에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내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것이 좋은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메뉴를 훑어보고 전부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저는 모든 요리가 다 나오는 식사가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다 받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며 각자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아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고 말할 때, 우리에게 그것을 가져다주시고 가능하게 하신 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자주… 어쩌면 너무나 많은 복을 누리느라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잊어버리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갔는데, 그들이 자리에 앉아 먹으면서 음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집에 갔는데 거기서도… 그저 먹기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더니 “아, 뭐. 그건 그냥… 하나님께서 어차피 주시는 거잖아요.” 하더군요. 저는 “사과나무 밑에 있는 돼지가 생각나는군요. 하루 종일 사과가 떨어져 머리에 맞아도, 돼지는 그게 어디서 오는지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지요.” 했습니다. 그게… 여러분, 우리는… 잠시 멈추고 위를 바라보며 이런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살피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우리 주님을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며, 다른 누구도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우리 주님 외에는 그 무엇도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 일을 해 주셨습니다. 합당한 사람도 없었고, 선지자도 없었으며, 현인도, 권력자도, 군주도, 왕도 없었습니다. 주 예수님 자신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었는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참으로 기꺼이 해 주셨습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자기 자녀들을 위해 그 일을 해 오셨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제 누군가가 기억할 만한 일을 잠시 이야기해 봅시다. 오늘 저녁 저 영광의 나라에는 노아라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분명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 위의 모든 사악함을 멸하려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거센 물이 거리를 휩쓸기 시작하고, 바람이 울부짖으며, 바위가 산에서 움직이던 그때를 말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폭풍이었습니까! 집들이 날아가고, 깊음의 샘들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방주 안에 두셨습니다. 주님을 기억하기에 그보다 더 놀라운 곳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방주 안에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또 다른 무리 (적어도 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를 불러 볼 수 있겠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하나님 편에 굳게 섰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굳게 선 일로 이 중대한 고비를 맞았을 때, 자기 형제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세상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굳게 서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용광로를 이전 어느 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구고 그들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을 때, 그들은 분명 자기들과 함께 계시며 온갖 열기와 죽음을 막아 주셨던 그 네 번째 사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네 번째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분에 관해 잠시 이야기하고 싶군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뿐이었습니다. 그 네 번째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음의 아가리 속에서 생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아멘! 그분께서 불길을 막으시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아! 기억할 수 있는 한, 그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그들은 바빌론에서의 그 위대한 날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바빌론에는 그 일을 기억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는 세상의 것들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에 뜻을 정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결단입니다. 우리도 그런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갑옷을 조금 더 단단히 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교회가 어떻게 하든 우리는 갑옷을 단단히 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굳게 머물 것입니다. 무슨 일이 오고 가든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십시오. 그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고 싶다면 자르게 두십시오. 우리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두십시오. (그것을 뭐라고 하든, 화장하는 것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게 두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래요, 그렇게 하게 두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려고 일요일 성경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 가거나, 어떤 프로그램 때문에 수요일 저녁 예배를 아예 없앨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우리는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같은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나와 내 집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을 가져다주시려고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것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기에 어떤 식으로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영생이라는 보물입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것들로 자신을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니엘도 마음에 같은 뜻을 정했습니다. 그곳의 시민이 되었지만 자신이 택해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타국인이었으니까요. 다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인도 다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국인입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유한 것은 천국에 있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제가 (한 이 년쯤 전입니다)… 머시에 형제님과 다른 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 웃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쇼핑센터에 갔습니다. 우리 도시에는, 아, 소위 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았는데, 그게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아무도 치마를 입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중에 성가대에서 노래도 하고 여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죠?” 저는 “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나라의 시민이 아니니까.” 했습니다. 아내는 “뭐라고요?” 했습니다. 저는 “아니, 우리와 같은…” 했지요. 아내가 “그 사람들도 미국인 아니에요?” 했습니다. 저는 “물론 미국인이지. 그 말은 맞겠지.” 했습니다. 저는 선교지로 다니고, 선교하며 세계를 다니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에 가면 이른바 그 나라의 영이 있습니다. 독일의 영이지요. 그 나라의 영입니다. 스위스에 가 보면… 서로 형제 같은 사람들이고 거의 같은 언어를 쓰지만, 거기에는 다른 영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영은 다릅니다. 핀란드에 가면 또 완전히 다른 영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오면 미국의 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우리는…” 하시겠지요. 아내가 “우리도 미국 시민이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거죠?” 했습니다. 저는 “여보, 각 나라는 그 나라의 영으로 살아가거든. 그게 그 나라의 영이야.” 했습니다. 아내는 “그렇다면 우리도 미국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했습니다. 저는 “아니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어. 우리는 거룩함과 의가 있는 하늘의 영으로 살아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미국은 땅에 속한 나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사람이든 스위스 사람이든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하늘로부터 태어나면 하늘의 영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의 본성과 성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위의 것들을 찾습니다. 아멘! 아, 우리가 이런 것에서 보호받고 면역을 얻을 수 있도록 그분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얼마나 깊이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튼튼하고 건강한 식물은… 건강한 식물에는 약을 뿌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벌레가 붙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건강한 식물은 벌레가 해치지 않습니다. 늘 약을 뿌려야 하는 것은 온실에서 자란 종류, 무슨 잡종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약을 뿌려 주고 어린애처럼 돌봐 주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고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그리스도의 강건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벌레들은 모두 흩어져 버립니다. 아예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아주 거친 말이지만, 뜻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좀 거친 표현이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아, 다니엘이 얼마나… 마음에 그런 뜻을 정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보답을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 보답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기억할 때,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이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입을 막으신 일은 얼마나 놀라운 추억이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마음에 뜻을 정했기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졌고, 그 일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지요? 대략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제 마음이 결백한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결백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서 그것을 보셨습니다. 옳은 일을 하려는 그의 뜻을 보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이 그를 전혀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추억입니까!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곧바로 또 한 사람, 아니 한 무리를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편에 서기로 하고 자기 위치를 잡았을 때, 어느 날 밤 모든 집의 맏아들을 데려갈 죽음의 천사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문기둥에 피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주고 그들의… 그들의 생명을 지켜 준 것은 바로 문에 바른 피였습니다. 그것은 기념이었습니다. 언제나… 지금도 기념입니다. 문기둥과 문 위의 인방에 바른 피 말입니다. 얼마나 기념할 만한 밤이었습니까! 다가올 여러 시대에 걸쳐 그 일을 거듭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이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했기 때문입니다.
아, 밤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차이를 드러내실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때 인방과 문기둥에 분명히 피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기념이 될 것입니다. 어디를 바라보든 (곧 여러분의 깨달음으로 말입니다.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님의 피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 피를 통해 바라보시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때입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에게는 언제나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증된 위대한 선지자 모세의 말을 듣고, 그 말에 따라 발걸음을 내디뎠던 일입니다. 그들은 행진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모세가 전하는 메시지가 진리임을 하나님께서 입증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는 성경과 일치했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셨습니다. 모세는 이름 없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불리시는 그분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정말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모세와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큰 기념이 있었습니다. 행진을 시작했을 때 불기둥이 그들 앞에서 길을 인도했습니다. 얼마나 기억할 만한 일이었습니까! 그들에게 나침반이 필요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념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아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들에게는 나침반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자들에게도 얼마나 기념할 만한 일이었습니까. 그들에게 나침반이 필요 없었고, 별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기념할 만한 일입니까. 어떤 신조나 유행이나 다른 무엇, 사람이 만든 무언가가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어 매는 말뚝인 말씀과 함께 오셔서 그분의 말씀을 확증하시며 그것이 진리임을 증명하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심을 아는 것은 우리 마음에 얼마나 기념할 만한 일입니까! 아,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행하신 일, 이 방법으로 그들을 약속의 땅까지 줄곧 인도하신 일을 말입니다.
엘리야에게도 하나님을 기억할 큰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의무, 곧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정확히 수행하고 난 뒤의 일입니다. 그가 명할 때까지 비도 이슬도 내리지 말라고 명한 뒤, 저 위 그릿 시냇가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는 그동안 내내 거기 머물렀습니다. 그가 그 일을 얼마나 잘 기억하겠습니까… 그 여러 해 동안 어떻게 먹을 것을 구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통해 그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말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까마귀들은 어디서 음식을 가져왔습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말씀에 자기를 맡겼고,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돌보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만 하면 됩니다. 형제님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자기 생각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바로 거기서 일이 어긋납니다. 그가 “언덕 아래 다른 시냇물도 괜찮겠지. 거기가 물이 더 많으니까.”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아닙니다.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소돔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일이 결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랐습니다. 자기가 붙들어야 할 그 하나의 약속을 따랐습니다. 엘리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던 때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영부인, 대통령 부인을 본뜨려는 여자들을 모두 책망했고, 그 모든 것을 책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늙은… 아마 그저 늙고 어리석은 사람쯤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는 갔…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정확히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판을 낼 때가 왔습니다. 그는 “이 중에 무엇이 옳은지 봅시다. 발람의 선지자들을 이곳으로 부르시오. 그의 선지자들을 부르시오. 나는 주님을 부르겠소.” 했습니다. 아, 그 말씀에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대결이었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불교나 이슬람교, 그 밖의 어떤 것 앞에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인지 봅시다.” 얼마 전 인도에서 집회를 할 때였습니다. 여러 사람 (네댓 사람)이 단에 올라왔습니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는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나병에 걸린 작은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두 팔도 없었고, 귀도 썩어 없어졌으며, 짧은 몽당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안으려 했고, 저는 그를 안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문제와 삶에 관해 알려 주셨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왕공들과 다른 이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저건 텔레파시야.”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제게 무슨 반박을 하려는지 말입니다. 그날 저는 자이나교 사원에서 대접을 받았는데, 그곳에는 열일곱 가지쯤 되는 서로 다른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며, “그리스도교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하나님께서 상황을 바꾸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샘 곁에서 메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드러내기 시작하셨고, 얼마 뒤 한 인도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눈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결혼했고, 아들이 둘 있습니다.” 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철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발음은 할 수 없습니다.” 했지요. 그것이 정확히 맞았습니다. 이제 저는…
그러자 그들이 성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과 앉아 있던 이슬람교 사제들이… 그들은 그때 알고… 제가 그들의 생각을 읽는다고, 텔레파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 눈먼 사람이 저 위의 환상 속에서 서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 여러분! 하나님의 종이신 성령께서 메뉴에 적혀 있는 것을 이미 가져오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내어 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에게 이슬람교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라고 하더군요. 불교도 그렇다고 하고, 다른 종교들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거기 계신 사제들 중에, 불교 승려들이나 이슬람교 사제들 중에 누군가 나와서 이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대단하게 본다면… “이 사람은 태양 숭배자입니다. 우리 모두 (이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믿는 우리)는, 그가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숭배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는 잘못되었고, 우리도 그것을 압니다. 하지만 분명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도 기꺼이 와서 그 창조주를 섬기려고 하니) 분명히 자신을 나타내실 준비가 되어 계실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 환상을 보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주제넘게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한도 없이 앞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고 말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 환상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음을 알았기에, 그것을 보고 매우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그… 이 사람이 잘못되었다면… 이슬람교인들은 이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하며, 그를 이슬람교인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불교도 그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이며, 시크교나 자이나교, 그 밖의 모두가 그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옳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 여러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고 나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시력을 되찾아 주시는 분이 누구든 그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태양이 태양신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눈이 멀었습니다.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시려고 고난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게 하시려고 고난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저는 “이제 누구든 나와서 이 일을 해낸다면, 저는 그 무리를 따르겠습니다.” 했습니다. “이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 주시는 분을 저도 섬기겠습니다.” 했습니다. 제가 들어 본 중에 가장 조용한 무리였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저는 “저기 이슬람교 사제가 계시는군요. 왜 나와서 이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 주지 않으십니까?” 했습니다. “왜 나오지 않으십니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분께서 방금 제게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이 사람이 시력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이 그리스도의 거짓 증인입니다. 그가 시력을 되찾는다면 저는 그분의 참된 증인이며,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지 않으면 지금 속한 그 무리 안에서 멸망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순간이었습니까! 저는 또 말했습니다. “만일 그것이 거짓이라면 저를 비행기에 태워 미국으로 돌려보내시고,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아,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는! 제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마자, 그는 저만큼이나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달려가서 그 도시 시장의 목에 팔을 두르고 껴안기 시작했습니다. 아, 우리는 한 네 시간이나 있었습니다. 제 신발은 없어졌고, 겉옷에는 주머니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민병대도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셨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같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불을 부르셔서, 불을 내려 그 희생물을 사르게 하실 수 있었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그 말씀이 진리임을 확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엘리야는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에 그에게는 의심이 없었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 마음에도,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과 똑같이 지금도 성령을 주신다는 데 의심이 없다면,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지키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신다는 데 의심이 없다면,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의 눈으로 실제로 보고 받아들인 뒤, 그 자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가… 이제 그에게는 그 시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할 것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에서 만나셨던 부도덕한 여자, 그… 그녀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멸시받는 민족이었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반은 유대인이고 반은 이방인인 민족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부도덕한 여자는 죄로 인해 삶이 몹시 망가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어쩌면 항아리와 솥을 씻는 일 따위에 관한 장로들의 온갖 전통에 낙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그녀는 늘 가던 저 야곱의 우물로 나가서, 물을 긷기 위해 두레박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샘을 바꾸었습니다. 아, 그녀는 자신 안에 생수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거기 앉아 계시던 분을 얼마나 잘 기억하겠습니까! 그 살아 있는 샘께서 그녀의 죄를 드러내시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말씀하시며, 그녀가 한 일을 하나하나 일러 주셨을 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메시지를 넣어 주었고,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불타올라 도시로, 사람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여러분, 그 나라에서는 여자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실제로 법에 맞지 않습니다. 특히 부도덕하다는 낙인이 찍힌 여자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녀가 깨끗하게 되고 그 신선한 물을 마시고 나니, 어디 한번 막아 보십시오! 그것은 몹시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불길을 세차게 부채질하는, 바싹 마른 집의 불을 끄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녀는 참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죄가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죄와 잘못이 드러났을 때, 자기를 위한 샘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저녁 영광의 나라에서 기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조와 교회가 그녀를 거절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오아시스를 찾았습니다. 자신에게 마음을 써 주는 분이 계신 곳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리도 그녀와 함께 얼마나 기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신조들에 묶여 있었지만, 임마누엘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딱딱하게 굳은 모습은 모두 사라졌고, 그 샘물을 마시며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분의 영이 우리 위에 임하시도록 값을 치르신 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그분을 기억할 얼마나 놀라운 추억입니까!
오늘 저녁 하갈에게도 생각해 볼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오해를 받아 쫓겨났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중에도 하갈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녀가… 오해를 받았던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올바른 삶을 살며 곧고 좁은 길을 택하는 사람 중에, 오해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오해를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여기 모든 형제님과 자매님들, 여러분도 오해를 받습니다. 이웃들은 여러분을 무슨 구식 인간으로 여기며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왜 이런 모임에 안 나오세요? 왜 카드놀이 파티도 안 하세요? 이런 일들이 있는데…?” 여러분은 그런 것들을 피합니다. 그래서 오해를 받습니다.
하갈도 그렇게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남편 아브라함과의 합법적인 혼인으로 자기 태에서 얻은 열매인 아이, 어린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종이었습니다. 여주인 사라가 그녀를 아브라함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합법이었습니다. 그녀를 그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남자와 합법적으로 혼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라던 대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여자가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주인에게 오해를 받고 광야로 쫓겨나 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처지입니까! 가죽 부대의 물은 떨어졌고, 어린 이스마엘의 목은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물을 달라고 울었고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사막 어디에선가 하나뿐인 아이가 메마른 작은 입술로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작은 몸이 말라 가며 죽어 가는 것을 느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어머니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은 없고 바위와 모래뿐입니다. 여기 피닉스의 사막을 내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오해를 받은 채,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습니까!
본래 여종이었던 그녀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바르게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품에 안은 아이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녀는 작은 관목 아래에 아이를 눕히고, 화살이 날아갈 만한 거리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우물이 나타났습니다. (아, 여러분!) 살아 계시며 나를 보시는 분의 우물입니다. 그 우물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곳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 우물은 지금도 기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배움이 부족해서 그 이름을 발음할 수 없지만, 해 보려고 했습니다. 조금 전 짤막하게 메모를 적다가 발음해 보려 했는데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떤 우물인지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도 불렀다가 저렇게도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 무식한 것만 더 드러내겠네.”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오순절 날에 파 놓은 또 하나의 우물이 어디 있는지 압니다. 그 우물은 처음 열렸던 그때와 똑같이 오늘 저녁에도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른길을 택하고 그분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모든 남녀에게, 그 물은 지금도 똑같이 신선합니다. 저는 타국인이며 술주정뱅이의 아들이었던 저도 그 우물에 나아와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마실 수 있게 해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이 우물에 옵니다. 아, 하갈이 그 우물을 보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그 우물이 그녀와 아이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녀는 분명 평생 그 오아시스를 기억했을 것이며, 기억할 수 있는 한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입니다.
이런 인물들은 계속해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우물을 놓치지 마십시오. 생명을 주고 기운을 되찾게 하는 그곳을 보지 못한 채 지나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헤롯에게서… 빌라도에게서 헤롯에게로 보내져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귀한 것을 놓쳤습니까! 빌라도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리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을 때, 헤롯은 그분과 그분의 사역에 관해 듣고도 얼마나 어리석게 행동했습니까! 빌라도는 유대인이었… 아니, 헤롯… 유대인은 헤롯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앞에 서 계신 분은… 에덴 이래 모든 선지자가 예언했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 앞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도… 자기가 무엇…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나 했을까요? 아마 자신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건… 끔찍…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군요!”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한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형편이 얼마나 나빴는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오늘날에도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샘 곁에 서 있으면서 여전히 그와 같은 실수를 합니다. 사천 년 동안 모든 선지자가 그분을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그들의 신조에서 오시리라고 말한 방식대로 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분을 내쫓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분을 내쫓습니다. 자기들의 책대로, 자기들의 교과서에 쓰여 있는 방식대로 오지 않으시면 아예 상대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꼭 그런 식으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 사천 년 동안 모든 선지자가 그분에 관해 말했고, 이제 그분께서 바로 그 앞에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선지자들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신 분이 바로 눈앞에 서 계셨는데, 그분 앞에서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 있었습니다. 아,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오늘날 같은 일을 합니다. 다만 우리는 육천 년이 지난 뒤 그분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헤롯과 빌라도와 가야바와 그 시대의 제사장들보다 더 큰 실수를 합니다. 이천 년의 기록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같은 실수를 합니다. 그저, 저는… 헤롯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하십니까? 여러분에게 그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인쇄된 형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신조 때문에 그 말씀을 그냥 지나쳐 버리며 말합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존스 박사님께서 이러저러하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거의 모든 서점과 성경 판매대와 교회에 놓여 있습니다. 목사들과 여러 사람이 그 앞에 서서 그것을 훑어 읽고도 신조 때문에 무시하며, 그것을 다른 어떤 시대로 돌려 버리려고 합니다.
피닉스에 온 뒤 두세 번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이 그렇다는 사실이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에 대해서는 늘 찬양하고 앞으로 하실 일을 기대하면서도, 지금 하고 계신 일은 무시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헤롯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에서 데리고 나오신 일 같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메시아를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때는 우리가 그분을 뵐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 그분께서 그들 앞에 서 계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분 앞에 있습니다. 헤롯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같습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것 보세요. 나도 교회에 다니고 당신만큼은 착하게 삽니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저만큼 착하게 산다 해도, 전혀 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본보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삼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요한계시록에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 안에서 한 말씀을 빼거나 거기에 한 말씀을 더하면 생명책에서 그의 몫이 제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때에 여러 방식으로 [히브리서 1장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이 누구신지 알리시며, 그분의 말씀을 취하여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며칠 전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칼 윌리엄스 형제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야자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칼 형제님이었는지 다른 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아름다운 나무 아닙니까?”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저게 무엇입니까? 화산재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생명이 들어 있는 땅의 흙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야자나무가 되게 하는 특정한 종류의 생명이었습니다.” 했습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나무가 서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나무입니다. 무화과나무입니다. 무엇입니까? 무화과나무의 생명이 들어 있는 땅의 화산재입니다. 자, 우리를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입니까? 저 나무와 똑같이 화산재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명은 땅에 속한 것이므로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생명이 있고, 사람은 그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친구 여러분, 우리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없겠습니까?
이것은 감정이 아닙니다. 많은 신조를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체험이며, 태어나는 일입니다. 먼저 죽음을 체험해야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순서를 바로 놓으십시오. 죽음을 체험한 다음 태어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모든 씨앗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씨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씨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놓이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도 그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누가 나를 죄로 정죄할 수 있느냐? 아니, 누가 나를 죄로 고발할 수 있느냐?” 하셨습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너희가 나를 믿을 수 없거든 내가 하는 일들을 믿으라.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내가 누구인지 말해 주는 것이 그것들이니라. 내가 그 자격에 맞지 않는다면, 성경에서 내가 올 때 이런 사람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 아버지께서 하신 그 말씀에 정확히 맞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한 것이니라.”
아, 우리 그리스도인들, 우리 목사들, 우리 남녀들 (오순절 신자들과 그 밖의 우리 모두)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분께서 말씀하신 분량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신의 죄로 정죄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려 하고, 다른 온갖 것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면, 불신으로 고발받을 수 있습니다. 죄는 오직 하나, 불신뿐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아시겠죠? 믿지 않으면 첫걸음도 내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하느니라.” 그러니 교회가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갖게 되실 것도 그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이 마지막 날들에 약속된 것 중에 우리를 통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멘! 그러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그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함께 모일 때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행합시다. 우리에게 무언가 부족하다면 그리로 돌아갑시다. 그분께서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기억합시다.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방식대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그저… “저는 여기에 속해 있고, 저는…” 하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헤롯도 아마 “자, 잠깐만. 내가 누군지 아느냐?” 했을 것입니다. 그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처음 그의 앞에 놓이셨을 때 (모든 선지자와 현인이 여러 시대에 걸쳐 이분이 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눈앞에 서 계셨을 때, 그의… 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헤롯 앞에 세우신 그 기회에 그는 그저 구경거리를 요구했습니다.
형제님들, 혹시…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도 그저 재미를 보려고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대신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빌라도가 그렇게 했다면 그분을 놓아주었을 것입니다. 헤롯이 그렇게 했다면 그분을 놓아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 기회가 왔을 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했습니까? 재주를 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아, 그들은… 오늘날에도 그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어떤 재주, 손에 쥔 작은 눈속임 거리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오순절 사람들 여러분, 들으십시오. 이런 일에 깊이 신실하십시오. 방언을 하고 통역할 때는 그것이 정말 그 방언의 통역인지 확실히 하십시오. 아시겠죠? 눈속임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진짜를 마련해 두셨는데 왜 눈속임을 원하십니까? 하늘에 진짜가 가득한데 왜 대용품을 받습니까? 우리는 신실해야 합니다. 그저 적당히 무시하고 넘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재주를 보여 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섬길 일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아멘. “주님, 제가 문 앞의 발닦개가 되어야 한다면, 주님께서 쓰셨던 것 중 가장 좋은 발닦개로 만들어 주십시오. 무엇이 되어야 하든 제가 그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야지, “저를… 빌리 그레이엄이나 오럴 로버츠가 될 수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발닦개라 해도, 여러분이… 하나님께는 빌리 그레이엄이나 오럴 로버츠만큼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닦개를 필요로 하신다면 좋은 발닦개를 원하십니다. 그뿐입니다. 무엇이냐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이것이나 저것이 되어야 한다고 제멋대로 단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무엇이든 섬길 일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섬길 일을 정하시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일을 주시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여기로 이끄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그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어디에 있든 그분의 선한 종이 되십시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왜 나를 주라 부르면서 내가 하라고 하는 일들은 하지 않느냐?” 우리는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나를 주라고 부르는구나.”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라고 명하는 일들은 하지 않으면서 왜 나를 주라고 부르느냐?”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주’는 소유권을 뜻합니다. 땅의 주인은 그 땅을 소유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는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지옥에 가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분을 구원자로는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르면, 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라는 것은 여러분이 그분의 소유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발닦개를 원하시면 여러분을 발닦개로 만드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새벽별이 되었을 때만큼이나 발닦개가 된 것을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원… 우리는 원… 우리는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구원자는 원하지만 주인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주인으로 오셔서 말씀의 어떤 부분들에 관해 말씀하시면,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제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네요.” 합니다. 여기 여자분들은 “당신 때문에 지겨워요.” 하십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 어떤 사람이 했던 것처럼 하겠습니다. 그가 부흥 집회에서 설교하러 갔습니다. 회개에 관해 설교했고, 셋째 날 밤에도 회개, 넷째 날 밤에도 회개를 설교했다고 합니다. 꼬박 한 주 동안 회개에 관해서만 설교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 목사와 몇 사람이 뒤로 찾아와 말했습니다. “형제님, 설교는 정말 훌륭합니다. 하지만 다른 설교는 없습니까?” 그는 “아, 있습니다.” 했습니다. “다른 설교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모두 회개하게 합시다. 그러면 다른 것을 설교하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기초부터 시작하게 합시다. 그다음에 대수학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어떻게 선지자가 되고 은사를 받는지, 그런 일들 말입니다. 하지만 먼저 이 첫걸음을 배웁시다. 달리기 전에 걷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습니까? 걷기만 해도 지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여러분이 섬기는 분은 그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은사들은 그저 재미를 실컷 보라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은사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은사와 그런 것들은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은혜롭지만, 지치…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어 주시는 복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마음이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일입니다. 가능하면 “선생님들이여, 지금 몇 시입니까?”라는 녹음테이프를 꼭 구해 들으십시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야곱이 어느 날 밤 돌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셨고 그는 천사들이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어나서 “이곳은 두려운 곳이구나. 여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로다.” 했습니다. 두려운 곳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웃시야 아래서 여러 해 예언했는데, 웃시야가 제사장의 직분을 빼앗으려 하다가 나병에 걸려 죽어 이사야 곁에서 사라졌을 때… 이사야는 아마 마흔이나 쉰 살쯤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기 때부터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의 선지자인 그가 어느 날 제단 앞에서 기도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 앞에 들어가, 하늘에 앉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옷자락을 보았습니다. 스랍들은 날개로 거룩한 얼굴을 가리고, 날개로 발을 가리며, 날개로 날면서 외쳤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그때 이사야는 자신이 걸어온 짧은 여정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자신의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한참 멀리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또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합니다.”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아시겠죠? 두려운 일입니다. 그는 “내게 화가 있도다!” 했습니다.
복을 받고 소리 지르고 외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그것을 정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가 임하면 너무나 거룩한 두려움이 들어, 그분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그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기억하게 됩니다. 이사야도 평생 기억했습니다. 톱이 그의 몸을 가를 때에도,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주 하나님이여.” 하고 외치던 그 천사들을 기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야곱도 마지막 순간에 천사들이 올라가고 내려오던 것을 기억할 수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몹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다른 어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을 기억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이곳에 데려오신 것은 놀고 즐기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게 하시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을 위해 일하도록 이곳에 데려오셨습니다. 그에게는 기억할 것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그에게도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유다는 오늘 저녁에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주 예수님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많은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불타올라야 할 때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장자권을 팔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때, 그분을 위해 일하거나 무엇이든 해야 할 때에, 제멋대로 살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곳에 가서 가입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세상이 찾는 것이 그것입니다. 믿는 자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바르게 되기 위해 자기가 걸어갈 수 있는 곧은 길을 모두 찾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는 그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만 유지하면서 제멋대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이 나라가 대통령에게서 원했던 것이 그것이고, 그렇게 원하던 대통령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며, 그렇게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자기에게 붙은 것을 모두 깎아 내기를 원합니다. 모든 죄와 자기를 쉽게 얽어매는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자기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리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면서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기르고, 남자들은 리키처럼 굴기를 그만두고 교회에 나와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런 온갖 일들, 세 번이나 네 번 결혼한 집사들을 자기 교회의 집사회에 두는 목사들, 그 모든 일들 말입니다. 헌금 접시에 돈을 많이 낸다는 이유 등으로 타협하는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 이것이 옳다고 하니 거기에 굽실거려야 하는데,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십시오!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사람들의 인기를 크게 잃으셨습니다.
그 젊은 랍비는 병든 자를 치유하고 모든 일을 잘하며,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눈먼 자를 보게 하셨을 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고, 그들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통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랍비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앉아서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기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그 무리 전체가 떠나갔습니다. 그러더니 칠십 명도 “이것은 어려운 말이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서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들은 “주님,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오직 주님만…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무슨 일이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했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그렇게 기억합시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본보기셨습니다. 모든 일을 행하시고, 모든 바리새인을 정죄하시며,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정죄하셨고, 자신에게 아무 흠도 없이 세상을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 검사를 받으신 어린양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 곧 제 죄와 여러분의 죄를 취하여 그분 위에 얹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거룩한 이마에서 나는 땀까지도 핏방울처럼 떨어졌습니다. 그분께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세상의 교리와 허튼소리, 이 현대의 것들 아래 굴복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구원을 위해 그분께서 어떤 값을 치르셨는지 기억하십시오. 결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하여 누구에게든 설명할 준비를 하라.” 형제님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 시간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문명은 동쪽에서 와서 지금 서해안에 이르렀습니다. 더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장벽에 닿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가 쌓이고, 할리우드에서 부끄러운 물결이 되어 밀려오다가 곧바로 교회 안으로 되튀어 들어옵니다. 참으로 어떤 시대입니까! 형제님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그분께서 이곳에 서 계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씀을 굳게 붙드실 것입니다. 온갖 시험 가운데서도 그 말씀에 머무실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본보기셨습니다. 사탄이 와서 “이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라.” 했을 때, 그분께서는 “기록되었으되” 하시며 줄곧 아버지의 말씀을 붙드셨습니다. 우리도 기억하며 똑같이 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본보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시대의 제사장들에게도 기억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 저녁 잃어버린 자들의 세계에서 그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 제사장들, 거룩한 제사장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그렇게 부르시겠습니까…?” 하시겠지요. 잠깐만요. 그들은 스스로 경건한 사람 행세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실제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거짓된 거룩함과 거짓된 경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버지 마귀에게서 났으며 그의 일들을 하리라.”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도 기억할 것이 많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참된 메시아의 나타나심을 보고도 고의로 거절하며, 악한 영이 그 일을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바알세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신성 모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말하면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들에게는 기억할 것이 많습니다. 형제님들, 우리가 그들의 자리에 서지 맙시다. 우리가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게 합시다. 제가 누군가처럼 되어야 한다면, 나다나엘처럼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서게 해 주십시오. 제가 서도록… 여기 여자분들도 우물가의 여자가 오늘 저녁 서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서십시오. 앞서 말했듯이 그 여자에게는 기억할 것이 많습니다. 그녀는 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들은…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순전히 지독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그들은 자기 신조와 전통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의 장로들이 말씀에 어긋나는 전통을 세웠고, 그들은 그 전통에 열심이었습니다. 형제님들, 여러분과 저는 어떤 전통에 열심을 낸 일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그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합시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에 머무십시오. 그들은 순전히 지독한 질투 때문에 이런 일을 했습니다. 아,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부자에게도 기억할 것이 많습니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사랑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그가 죽어서 지옥에 간 뒤에도 그것을 기억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말씀이 돌아왔습니다. “네가 살아 있을 때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피닉스여,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세상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헤롯과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그 기회가 눈앞을 지나가는데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 제사장들이 실제로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그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이런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옳은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침례 같은 것은 없다고 사람들이 말한다는 이유로, 여러분의 신조가 여러분을 성령침례에서 붙들어 떨어뜨려 놓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몇 달 전, 인디애나에 있는 우리 도시에서 한 여자를 위해 기도하러 병원에 갔습니다. 거기 누워 있는 그 여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믿음에서 뒤로 물러난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제 교회에 왔지만 다시 나가 버렸습니다. 물론 전보다 더 악한 마귀 일곱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그녀는 병원에 누워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자매님, 괜찮습니다. 아직 마음속에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이렇게 죽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께서는 자매님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자매님이 그분을 떠났지만, 그분은 자매님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이 할 수만 있다면요.” 했습니다. 그녀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기도합시다.” 했습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여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입을 삐죽 내밀고 저를 보는데… 저를 꿰뚫고 지나갈 듯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녀와 아들이 말입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전날 수술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그 여자와 아들이 저를 보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잠깐 기도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녀는 “그 커튼을 치세요!” 했습니다. 저는 “아, 저는… 믿는 분입니까?” 했습니다. 그녀는 “커튼 치라고 했잖아요.” 했습니다. 저는 “그저 여쭤봤을 뿐인데…” 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감리교인입니다.” 했습니다. 저는 “그렇군요. 그 말로 충분히 알겠습니다.”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녀는 다른 사람, 믿음에서 뒤로 물러났던 그 불쌍한 여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여자가 감리교인이었다면 달랐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거기서 예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자기 신조만 기억했습니다. 그것만 기억했던… 좋습니다. 아, 심판의 날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되겠습니까.
몇 주 전 저는 루이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습니다. 아는 의사에게 검진, 곧 신체검사를 받고 건강 확인서를 받으러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롤런드 형제님과 함께 곧 해외에 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 신체검사를 받아 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올라갔는데… 몇몇 남자들도 우리와 함께 그 층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루이빌의 한 건물에서 여덟 층쯤 올라갔습니다. 헤이번 빌딩이었습니다.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쯤에 이르러 멈추려 할 때, 이 사람들이… 그중 한 사람은 술을 조금 마신 것 같았습니다. 둘러보더니 “이봐, 우리가 올라갈 수 있는 데는 여기까지인 모양이야. 이제 내리세.”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설교자인 줄 몰랐습니다. 저는 기다렸다가 내리면서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방금 하신 말씀 말입니다… 우리 자신의 공로를 의지한다면, 우리가 올라갈 수 있는 데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한다면…” 그분을 기억하십시오. 아멘.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저녁 아웃로 형제님 쪽에서 노래하신 분이 말했듯이, 목성, 금성, 해왕성, 화성, 하얀 은하수를 지나 계속, 계속,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 상관없습니다. 모든 태양계를 넘어 하늘들의 하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기쁩니다. 그분께서 그런 모든 것을 지나 더 높이 올라가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공로를 의지한다면 우리는 분명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공로를 의지한다면 구원받았습니다.
아,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지금… 우리는 땅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땅에 매인 사람들이 아니라 천국을 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 안에 감추어져 있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습니다. 아니…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으며, 그분을 기억하면서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습니다. “언제 말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바로 지금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질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영원토록 살아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습니다. 이미 그분과 함께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분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저 뒤의 시계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아주 잘하고 있네. 이제 마무리하는데 일곱 시밖에 안 됐어.” 메모가 세 장쯤 더 있었는데, 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일곱 시가 아닌 것을 알고는 그 메모들을 여기 아래로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아주 잘하고 있네.”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어디 있었던 것일까요? 그동안 시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까? 기분이 아주 좋았던 것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좋았던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자꾸 저 시계를 보면서, 어디가 잘못되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언젠가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시간이 멈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 시간이 더는 없는 영원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동안, 시간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이미 하늘에 속한 곳으로 들려 올라가 있습니다. 무엇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으리라.” 맞습니까? 저는 요한복음 5장 24절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내 말들을 듣고 믿는 자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지고 있느니라 [현재형입니다]. 심판의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우리는 바로 지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며,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말씀하셨…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어떻게 알리셨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소돔이 불타기 전에 행하셨던 것과 정확히 똑같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께서 인간의 육체 가운데 나타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약속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그분께 직접 들은 것과 똑같이 믿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여기 있고, 저는 그 말씀을 그렇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도 하리라.”
며칠 전 저녁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대목을 보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내가 너희에게 드러내고 말해 줄 것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할 수 없노라.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아시겠죠?) 이것들을 너희가 다시 기억하게 하시고,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여, 쪼개는 데까지… 뼛속의 골수까지 꿰뚫으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느니라.” 하신 말씀을 저는 기억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군중 사이를 지나가실 때 한 여자가 그분의 옷을 만지고, 저쪽으로 가서 앉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기로… 서 있었든 어디에 있었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께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분을 나무라며 “아니, 모두가 주님을 만지고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지만 내가 약해진 것을 느끼노라. 내게서 권능이 나갔느니라.” 하셨습니다. 둘러보시다가 그 여자를 찾으셨고, 그녀의 혈루증…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에서 그분이 지금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가르칩니다. (아!) 저는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성경이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아,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잘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 우리가 얼마나…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교회, 곧 믿는 자입니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합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아, 여러분! 이것을 생각하면 소리치고, 외치고, 울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저 되는대로 기억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면 성경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여기 앉아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살기나 하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애쓰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한 노력입니까? 무엇 때문에 땀 흘리며 고생합니까? 조금이라도 옳다면 전부 다 옳든지, 아니면 하나도 옳지 않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약속을 한 것은 여러분도 저도 여러분의 목사님들도 아닙니다. 이 약속들을 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분께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삼분의 이는 아직 그리스도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온 세상에, 모든 창조물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그것을 기억한다면, 그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온 세상에, 모든 창조물에게. 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입증하시려고 지켜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제가 그 말씀을 부인하는 무리와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과 결합할 수 있겠습니까?
오 하나님, 제가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분께서 어떤 입장을 취하셨는지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분이 저의 구원자이심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죽었으며 이제 더는 제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죽은 지 삼십삼 년 되었습니다. 제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살펴보니 그분께서 이상하고 합당하지 않은 일들을 하시는 것을 본다면, 저는 제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윌리엄 브래넘이 아직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직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한, 여러분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라…”
그분께서 이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아.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인 곳에는 어디든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 저는 그것을 기억합니다. 형제님들, 여러분도 기억하십니까? “내가 하는 일들을 그들도 하리라.” 그분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아, 물론이지요, 브래넘 형제님. 하지만 그건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기억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리라.” 자기 생각과 자기 나름의 판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나 어머니, 아내나 자녀를 부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참되어서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붙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면서 그분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기억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조금 전 많은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 곳곳에서 손들이 올라왔습니다. 아버지, 주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주 예수님, 이 사람들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그들 위에 머무시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 주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약속에 책임을 지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바로 주님이 그분이심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며 우리가 바라보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으면 영생을 가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그들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아버지,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며 주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지금 주님을 신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고개를 숙인 채로,
이곳에 계신 여러분 중에 주님을 마땅히 기억해야 할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이 짤막하고 두서없는 메시지를 마치는 지금, 기꺼이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너무나 실제적인 분이 되어 주셔서 제가 제… 위에서 주님을 기억하도록… 주님의 명령들이 제 침대 기둥에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것처럼 ‘제가 주님을 항상 제 앞에 모십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주님을 더 많이 주십시오.” 손을 들고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십시오. 거의 모든 곳에서 한결같이 손을 드시는군요. “주 예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오늘 저녁 여기, 그분을 자기 주님으로 고백한 적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그분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인 곳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반드시 여기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한 번도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했던 그 경솔한 일을 하시겠습니까? 빌라도처럼 처리를 넘겨 다른 사람에게 그분을 떠맡겨 버리시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셨어요.” “우리 아버지 신앙이면 우리 모두에게 충분해요.”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제 아내는 신앙이 있는 여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손을 들고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를 원합니다. 손을 들겠습니다.” 하시겠습니까? 여기 그런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혹시… 이 건물에 죄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곳에 무언가 잘못 이끌리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여기 계신다고 말씀하셨고, 여러분 마음속의 생각을 아신다는 것을 아시겠죠? 신실하게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손을 들어야 할 분들이 더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다면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저 위선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다닙니다. 하지만 정말 다시 태어났느냐고 하면, 그저 교회에 가입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정말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예전처럼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저, 아, 가서 메시지나 그런 것을 듣는 것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정말 시간을 내서, 기쁜 마음으로 나가 그분과 함께 여러 시간 기도하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을 기억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없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제가 올바른 상태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손을 듭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솔직하게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잠시 기다리며 성령께서 또 무엇을 드러내실지 보겠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만 그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생각이 나거든, 지금 진지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아, 브래넘 형제님, 저는 서둘러 집에 가야 합니다.” 들으십시오. 언젠가는 이 세상 삶에서도 급히 떠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때요, 바로 그 시간입니다. “글쎄요, 말씀드리자면, 우리 목사님은 아주 뛰어난 분이고, 교육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듣는 편이…” 하실지 모릅니다. 누가 메시지를 전하느냐는 상관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메신저가 아니라 여러분이 듣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 문으로 들어와서 여러분이 백만 달러를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더라도, 여러분은 그 돈을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용서를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제가 아주 진지하게 여쭙겠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여자분들, 머리를 짧게 자른 여러분 가운데 머리를 길게 길러야 한다고 진정으로 느끼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감각해져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잘못이라는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말씀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분들 가운데 반바지와 그런 옷을 입거나 담배를 피우는 분들, 남자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며 이렇게 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제가… 그것이 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악한 것임을 압니다. 손을 들고 간구하겠습니다… 제가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그것을 제게서 없애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손을 드십시오. 솔직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실한 마음이고 정직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진실한 마음을 보시고 잠시 후에 우리에게 치유 집회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이 손들을 보셨습니다. 이 사람들의 형편을 아십니다. 그 마음속에 무엇이… 무엇이 있는지 모두 아십니다, 주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그 마음의 아픔을 없애 주십시오. 주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이들 안에서 주님의 일을 이루어 주십시오. 아멘.
이제 고개를 드시면서, 마음이 아주 달라졌다고 느끼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고 “마음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이제 그분께서 우리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이라고 약속하신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하신 이 약속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기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의 영이 나타나는 가운데, 살아 계신 그분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저 뒤에 계신 형제님께는 이것을 두고 기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회중이… 며칠 뒤면 우리가 집회를 하게 되는데, 거기서… 어쩌면 그것을 다룰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회중이 하나의 통제 아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영들을 제 통제 아래 두고자 합니다. 그분의 영께서 역사하시며 그분이 여전히 살아 계심을 여러분에게 증명하시도록 말입니다. 저는 여기 있는 그분의 말씀을 붙듭니다. 말씀에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저기 계신 여러분 중에 병들었거나, 어려움이 있거나,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는 분은 모두 기도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형제님들,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분께서 대제사장이시라면 어떻게 행하시겠습니까?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그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동일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행하시겠습니까? 그분의 몸은 하나님의 왕좌에 있는 희생물인데, 어떻게 그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의 영, 곧 성령을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가 내 것을 받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제 하나님께서… 하시는지 보고 싶으시다면…
제가 이것의 근거를 여기에 두는 이유는, 제가 이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진리임을 압니다. 여기서는 잘라 내고, 저쪽에서도 조금 잘라 내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심술궂게 굴거나 남과 다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압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그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받아… 이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을 받아 여러분에게 보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여러분에게 보이며, 그분이 행하신 바로 그 일들을 행한다면, 그것은 성령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이제 기도하며 그분의 옷을 만지십시오. 저는 제 자신을 그분께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지 보십시오. 기도만 하십시오. 여기 이런 집회에 한 번도 오신 적 없는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예, 많이 계시는군요.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사람들을 고친다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들을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그분께서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셨을 때,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어쩌면 수천 명이었을 것입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몸이 뒤틀린 사람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분은 한 사람에게 가셨는데, 그에게는… 어쩌면 전립선 질환이 있었거나, 결핵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진행이 더딘 병이었고, 그는 삼십팔 년 동안 그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내려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했습니다. 그곳에는 그보다 훨씬 상태가 나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아셨고, 그가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질문을 받으시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분의 입장은 똑같습니다. 어떤 선지자도, 누구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벗어나 어떤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만일… 그래서 제가… 여기 앉아 계신 목사님들 가운데 여럿을 압니다. 저쪽에는 제가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누군가 위에 그분께서 계신 것을 보게 된다면,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뜻이 허락된다면… 제가 아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에게 아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하며, 그분이 여전히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대제사장이신지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그분이 바로 여기 우리 앞에 계시게 되며, 여러분은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맞습니까? “아멘” 하십시오. 확실히 그분이 여기 계심이 드러날 것입니다. 믿기만 하십시오.
여기 한 여자분이 고개를 들고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며 앉아 계십니다. 초록색 코트를 입고 바로 저기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머리에 있는 어떤 증상 때문에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을 괴롭게 합니다. 자매님, 맞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드십시오. 저와 모르는 사이시라면 손을 좌우로 흔들어 주십시오. 이제 그것이 자매님에게서 떠났습니다. 저기, 거기 계신 김에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그 빛이 바로 옆에 앉은 여자분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그분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자매님은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셨습니다. 좋습니다. 그분께서 기억하셨습니다. 자매님은 부비동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흔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자,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저 여자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 눈에 보이시지요. 제가 그분들을 아는지 물어보십시오. 여기 한 청년이 앉아 자기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만난 적도 없고, 누구신지도 모르며,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여기 계시지 않고, 넓은 바다 건너 어딘가에 계십니다.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푸에르토리코에 계십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맞습니다. 믿으십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여기 관심 있게 바라보며 앉아 계신 여자분, 빨간 모자를 쓰신 분이 있습니다. 올드리지 부인, 예. 그분은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바로 옆에 쿡 부인이라는 여자분이 앉아 계십니다. 쿡 부인은 다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쿡 부인,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와 전혀 모르는 사이시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 옆에 있는 여자분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러셀 양입니다. 폐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러셀 양, 저와 모르는 사이시라면 손을 드시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다음 분은 어떻습니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분 옆에 있는 여자분도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며, 성함은 딜먼 부인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되실 수 있습니다. 그 옆에 앉은 하먼 부인은 방금 병원에서 나오셨습니다. 직장 질환으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하먼 부인,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집으로 가서 나으실 수 있습니다. 이제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들을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그 일들을 이루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하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조금 전에 손을 드신 여러분, 이 치유 예배가 끝나면 기도받으러 여기 앞으로 나와 서 주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치유를 약속하신 것과 똑같이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이것도 약속하신 것을 아십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한즉 그들이 나으리라.”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보십시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이미 이루셨습니다. 이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얹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아멘.
이제 고개를 숙이고 여러분의 교회에서 하듯이 기도하십시오. “주 하나님, 이 사람을 고쳐 주십시오. 이 사람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고쳐 주시고 낫게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약속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저녁 경견장에서는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영화관에서도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이런 형식적인 교회들에서도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분을 봅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으며,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주님께서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회중에게서, 이 사람들에게서 불신의 모든 영을 내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