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 계시겠습니다. 이만큼 많은 분들이 모인 자리에는 기도 요청도 많고,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잠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여기에도 기도 요청이 많이 놓여 있고 손수건들도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고, 지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옵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신다고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바로 오늘 오후에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손수건들과 기도 요청들 위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배운 대로,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갔을 때 사람들에게서 악한 영들이 나가고 그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께서는 오늘도 동일하신 예수님이시며, 우리가 여럿이 함께 서서 이 일들을 이루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오늘 이 건물 안에도, 지금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 요청이 틀림없이 많을 것입니다. 주님, 그들에게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형제님.
여러 해 전에 우리는 “예수님과 잠시 이야기하면 모든 일이 바로잡힙니다”라는 짧은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불명확한 단어] 방금 윌리엄스 형제님이 내일 아침에 조찬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어디서 열릴지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로... 또 바로 여기입니까? 다시 바로 여기군요. 그거... 같은 장소입니까? 같은 장소군요. 참 잘됐습니다. 예, 아주...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경배해야 합니다. 그곳은 투산이지, 이 아래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언덕 아래에 계시지요.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간 곳에 있잖습니까. 그러니 저쪽이 예루살렘입니다. [웃음과 말소리] 그 말 들으셨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람들은 어디서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나 여기, 이 산에서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말입니다.
저는... 보통 말을 할 때 아주 느립니다. 며칠 전 밤에는 벨머 가드너 형제님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여기 올라오셔서 제가 세 시간에 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십오 분에 전하시더군요. 세상에! 제가 전에 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말을 타는 분이셨습니다. 말을 타고 길들이셨고, 로데오와 사격, 묘기 사격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두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를 닮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디애나에서 늙은 말로 쟁기질을 시켜, 말이 지쳐 거의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면, 아버지가 쟁기로 밭을 한 바퀴 돌아 저 뒤쪽으로 오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낡은 물통이 있는 데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물통을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세상에, 여기 켄터키 분들이 참 많군요!
아, 그때는 참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내려가서 말총을 물에 넣고, 그것이 변하는 것을 보곤 했지요. 우리가 말총뱀이라고 부르던 작은... 건드리면 움직였고, 벌들도... 저는 동생들을 비롯해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곳에 나란히 앉혔습니다. 그리고 늙은 밭갈이 말을 끌고 와서 얼른 마구를 벗기고, 아버지의 안장을 가져다 도꼬마리 열매 한 줌을 그 아래에 넣고 배띠를 꽉 조였습니다. 그런 다음 늙고 지친 그 불쌍한 말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말은 발을 땅에서 떼지도 못하고 그저 소리만 질러 댔습니다. 그러면 저는 모자를 휘둘렀습니다. 세상에! 제가 대단한 기수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애리조나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말을 길들여 줄 제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열일곱,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 집을 뛰쳐나와 이쪽 로데오가 열리는 곳으로 왔습니다. 저는 ‘야, 저 로데오에만 참가하면 저 사람들 말을 타 줄 텐데. 돈을 좀 벌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기수가 나오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가 탄 말의 이름은... 아마 ‘캔자스의 무법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주 커다란 검은 말이었는데, 키가 약 십칠 핸드나 되었습니다. 정말 묵직하고 힘센 말이었습니다. 저는 ‘저 사람이 저 말을 탈 수 있다면 나도 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유명한 기수가 나왔습니다. 저는 말 우리 울타리 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몸 여기저기가 성치 않은 카우보이들이 모여 있었지요. 저는 그 사람들처럼 몸이 성치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은 그들만큼 잘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늙은 밭갈이 말도 탔는데 저 말이라고 왜 못 타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이 출발 통로에서 나오자... 세상에! 네 발을 한꺼번에 세숫대야 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몸을 옆으로 비틀어 뛰고 몇 번 빙빙 돌더니, 안장은 이쪽으로 날아가고 기수는 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보조 기수들은 말을 데려갔고 구급차는 기수를 데려갔습니다. 그건 제가 타던 늙은 밭갈이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진행자가 사람들 사이로 오면서 말했습니다. “누구든 이 말을 타면 오십 달러를 주겠소.” (당시 오십 달러면 큰돈이었습니다.) 정해진 몇 초 동안 타면 오십 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가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말 타는 사람이오?” 저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 구원받고 선교사 침례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을 때, 성경을 들고 다니곤 했습니다. 누군가 제가 설교자인지 물어 주기를 바랐지요. 누가 “설교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그때마다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루는 세인트루이스에 있었습니다. 막 우리 침례교 형제님을 만난 뒤 세인트루이스에 있었는데, 로버트 도허티라는 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분을 아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천막 집회에서 설교하고 있던 오순절 형제님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분은 얼굴이 시퍼렇게 되도록 설교했고, 주저앉을 때까지 설교했습니다. (마이크도 없이 말입니다.)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두 블록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러고는 숨을 들이쉬고 다시 일어나 설교했습니다. 그 뒤로 누가 “설교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저는 “아닙니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제 느릿느릿한 옛 침례교 방식으로는 그렇게 빨리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저를 참아 주십시오. 성경에서도 약한 자를 참아 주라고 했는데,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번 주 내내 여러분이 그렇게 하려고 애써 주셨고 정말 잘해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밤 열 시면 저는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어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을 밖에 붙잡아 두었으니...
하지만 오늘 오후에는 정말 서둘러 일찍 마치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 여기로 돌아오려면 오늘 오후에 아직 차를 타고 먼 길을 다녀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래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때에 이 말씀을 드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 한 분 한 분, 모든 목사님들과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저를 초대해 주셔서 여기 와서 형제님들과 함께 제 작은 몫을 보탤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샤카리안 형제님, 윌리엄스 형제님,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토니, 아까 제가 투산 이야기를 할 때 왜 “아멘” 하지 않았습니까? 그분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군요. 그분은 제가 인디애나에 있을 때 애리조나에서 제일가는 사냥꾼입니다. 제가 인디애나로 가고 난 뒤에 말이지요. 며칠 전 신문에 난 그분 사진을 보셨습니까? 토니, 그건 우리가 바꿔야겠습니다. 자, 내일 저녁 오럴 로버츠 형제님과 함께하는 만찬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오후에는 ‘카운트다운’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시작하면 여러분이 일곱 시까지도 여기 앉아 계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이 이룰 수 있었던 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룰 수 있었던 일에 관한 것이지요.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예전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이 물질의 영역, 과학의 영역에서 이룬 성취를 고마워하듯이, 우리도 영적 영역에서 이룬 성취를 감사하게 여깁니다. 괜찮으시다면 다시 한번... 노래를 너무 많이 부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까 제가 서서 듣던 아웃로 형제님의 성가대처럼 노래한다면 어떻게 너무 많이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더군요. 그리고... 또 너무 많이 먹을 수도 있고, 너무 많이 마실 수도 있고, 너무 많이 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만큼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모든 곳에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내가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시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는 주님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이 도시에 와 있다는 소식만 들어도, 그저 손을 잡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요.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주님과 이야기하는 특권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서로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가슴은 설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있음을 알 때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주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어디든, 온 세상에 걸쳐서든, 세계 곳곳이든, 어디서든 “두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성경 말씀은 결코 어긋날 수 없으며, 그 약속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압니다. 구원자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우리의... 우리의 불신의 죄가 우리를 너무 멀리 갈라놓아서 주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께서는 여기 계십니다. 주께서는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한 가지 일에 뜻을 같이하여 구하면 그것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지금 이 시간 이 회중에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필요는 이것입니다. 주님,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적 만나로 우리를 먹여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먹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각 사람의 마음에 전해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제가 말씀드렸듯이, 목회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는 서로의 설교를 들으며 다른 목회자나 누군가가 설교한 성경 본문을 적어 두곤 합니다. 저는 길을 가면서도 늘 그렇게 합니다. 제 옆에 작은 종이 한 장, 작은 수첩을 놓아둡니다. 성경 구절이 생각나면 그것을 적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우리 모두 그러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깨닫게 해 주십니다.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몇 가지를 적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두었다가 설교할 때가 되면 그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며 생각하고, 관련 성경 구절들을 찾아 그 장절들을 적어 둡니다. 그러면 그것을 펼쳐 볼 때 성경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기억나서, 거기서부터 설교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하지요.
이제 다시 빌립보서에서 한 절 정도를 읽으려고 합니다. 며칠 전 밤, 수요일 밤에 쇼어스 형제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회에서 ‘그분과 하나 됨’이라는 주제로 설교할 때에도 빌립보서를 읽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빌립보서 1장, 20절쯤부터 읽으려고 합니다. 읽을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 주십시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내가 어떤 일로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오직 담대함으로... 온전히 담대하여...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내 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게 하려 하노라. 이는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은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이것을 생각하다가, 우리에게 익숙한 작은 주제, 단 한 단어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아마 천 명쯤 여기 앉아 있을 텐데, 이 사람들에게 단어 하나로 말씀하시겠다고요? 단어 하나만요?”라고 하시겠지요. 그래도 그 단어가 합당한 단어라면 말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는 성령께서 허락하시면, 이 본문을 중심으로 조금... 말씀을 조금 풀어 보려고 합니다. ‘절대적인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적인 것. 사전에서 찾아보고 있었는데... ‘하나 됨’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다가 ‘절대적인 것’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절대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능력에 한계가 없으며, 근본적으로 최종적인 것을 말합니다. 절대적인 것. 이 말은 자주 쓰입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말입니다. 아멘입니다. 사람들이 “틀림없이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걸로 끝이라는 뜻입니다. 한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거기서부터는 그것이 결정합니다. 그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고의 것입니다. 최종적인 것이며, 최종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최종적이라는 것은 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아멘인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모든... 모든 위대한 성취에는 절대적인 것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행해졌던 모든 일, 아니, 이루어진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것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묶어 둘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디에선가 절대적인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한번은 병원에서 의사와 이야기하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내 말 들어 보게. 나는 사람이 충분한 믿음을 발휘하면 여기서 나가 저 나무에 손을 대고도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정말 믿네.”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어떻게 사람이 나무에 손을 대고 고침을 받을 만큼 믿음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아무 근거가 없잖습니까. 성경적인 토대가 아니므로 자신을 묶어 둘 곳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다’라고 알 수 있도록 자신을 묶어 둘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거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은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말이며 최종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말씀을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마음에 떠오르는 이 짧은 간증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불쾌하게 여기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제 아내가 저기 앉아 있고,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계십니다. 어떤... 제가 인디애나주 밀타운에서 목회하던 침례교회에 다니는 한 젊은 자매와 교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는 집회에 참석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친구, 좋은 친구 사이였습니다. 나중에 우리 둘 다... 그 자매는 훌륭한 청년과 결혼했고, 그 뒤 저도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성은 리였고, 이름은 매리언 리였습니다. 어느 날 밤의 일이 기억납니다. 성경의 한 구절을... 그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늘 이렇게 배워 왔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교인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배워 와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목수였습니다.
어느 날 밤 그분 집에 함께 갔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이럽시다. 노마와 다른 식구들은 위층으로 올라가게 하고, 우리는 뭘 좀 먹지요. 옥수수빵과 버터밀크가 있습니다.” (그거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면 저도 실컷 먹을 수 있겠군요. 지난 삼 주가량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을 위해 최상의 상태로 있고 싶어 가끔 조금씩만 먹었습니다.) 우리는 샘물을 이용하는 저장고에서 차가운 버터밀크 한 큰 잔과 식은 옥수수빵 한 큰 조각을 꺼냈습니다. 앉아서 옥수수빵을 버터밀크에 부스러뜨려 넣어 먹고 있었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자네가 말하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네.” 그러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밤이 한참 깊었을 때... 우리는 한 시쯤까지 이야기를 했고, 저는 그분이 이야기하는 동안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잠에서 깨더니 말했습니다. “꿈을 꿨는데, 내가 뉴올버니에서 건물을 짓고 있었네. 주인은 내게 설계도를 맡기고 플로리다로 갔어. 그런데 그 설계도에는 돌출창이 하나 있었네. 나는 ‘저 주인은 저기 저 돌출창을 원하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해서 그걸 그냥 빼 버렸지.”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와서는 ‘이 건물을 헐고 이 설계도대로 다시 짓기 전에는 공사비를 주지 않겠소’라고 하더군.” 저는 말했습니다. “바로 아래에 시내가 있습니다. 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생의 끝에 가서 무언가를 허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는 시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잠옷을 입은 채로도 괜찮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도 잠옷 그대로 가겠습니다.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려갔습니다.
그분의 딸과 손녀들은 노래로 아주,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그들은 연합 형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분의 딸은 연합 형제 교회 목사, 아니면 목사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 청년은 훌륭한 사람이었고 선박 공장의 기계공이었습니다. 그 집의 어린 딸 하나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는 압박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주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열일곱 살에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음악을 전공했고 아주 영리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놀림을 받는 압박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더러 구식이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놀렸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는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루이빌에 있는 ‘평화의 성모’라는 가톨릭 시설에 데려가 전기 충격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에게... 물론 그것은 어둠 속에서 총을 쏘듯 막연히 해 보는 일입니다. 여기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면 이 말로 불쾌하게 해 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치료로 전보다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 아이에게 전기 충격 치료를 했더니 상태가 더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몇 주 뒤 다시 데려와야 했는데, 그때는 정말 끔찍한 상태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를 입원시키고 꽤 오랫동안 치료해 보려고 했지만, 상태는 더 나빠졌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그 아이를 매디슨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곳은 정신병원인데, 그때부터는... 벽에 완충재를 댄 독방에 가두는 곳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어요. 브래넘 형제님이 집에 계시면 와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마침 제가 집에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저를 만나러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가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물론이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의사는 “누가 오신다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저라고 말하자, 의사는 “그렇다면 잠깐 기다리십시오. 우리가... 오늘 오후에 다시 전화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계속 전화를 했습니다. 새벽 한 시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의사의 아내는 계속 “집에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전화를 했지만 “집에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아이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싫지만 저에게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의사는 그저 그 일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아버지는 몹시 초조해했고, 저는 이튿날 떠나야 했습니다. 그날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머지 두 자매가 울면서 찾아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저 피하기만 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합시다. 제가 목회자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친구로, 여러분을 따라가는 사람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그 시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들어가면 뒤에서 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에 태워 올라간 다음 엘리베이터도 잠급니다. 한 수녀가 우리를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방에 들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는데, 아주 예쁜 소녀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쯤 된 아이였습니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루시, 나 기억하니? 브래넘 형제야. 너는 나를 ‘빌 형아’라고 불렀지. 네가 아기였을 때 유아 봉헌식에서 너를 그리스도께 드렸단다. 나 기억 안 나니?” 아이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세 자매가 삼중창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주의를 끌어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 앉아 있었는데... 그런 곳의 침대에는 기둥이 없습니다.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요. 저는 침대 발치에 가로질러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그 작은 방에 놓인 작은 일인용 침대 반대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벽에 붙여 만든 작은 의자 같은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수녀는 서 있었고, 아버지는 아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거기 서서 두 뺨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보세요, 빌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죠?” 저는 말했습니다. “노마, 들어 보세요.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게 마지막 기회예요. 아이를 그곳으로 데려가면 어떻게 될지 아시잖아요. 아마 다시는 아이를 못 보겠지요. 보게 되더라도 거기서는 아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아시잖아요.” 저는 “노마, 흥분하지 맙시다. 몇 분만 기다려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제 앞에 환상 가운데 그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건강해져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청년을 보고 다시 돌아보니 환상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노마, 이 아이에게 키가 좀 크고 머리카락이 검은 남자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제가 물었습니다. “그 청년도 이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까?” “예, 맞아요.” 저는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이 상태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노마는 두 손을 뻗어 제 무릎을 붙잡고 남편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여보, 그 말씀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아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노마. 제가 보지 않았다면 지금 그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아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저는 병원을 나와 제 차를 탔습니다. 그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 뒤 두 시간쯤 지나, 제가 아래쪽 우즈 씨 집에서 올라오는데 마침 전화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전화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형제님이 떠나신 지 이십 분도 안 되어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의사들이 모두 아이를 진찰했습니다. 내일 아침 집에 데려갈 겁니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는 태버내클에서 찬송을 부릅니다. 여기 제퍼슨빌에서 오신 남녀 성도들 중에 이 이야기가 사실임을 아는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 오후 이 자리에 계시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예, 여기저기 계시는군요. 사실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자매는 그 환상을 절대적인 것, 최종적인 것으로 삼았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을 단단히 묶어 둘 곳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만큼 위대한 기둥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어긋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둥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절대적인 분이셨습니다. 바울은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가말리엘에게 배웠습니다. 그의 스승은 바리새파라는 교파적 배경 안에서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바울은 가르침을 받고 교육을 받았으며, 뛰어난 배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가 성령을 받고 이집트로 내려가 삼 년간 지내면서, 성경을 가져다가 자신이 받은 계시와 대조하고 그것이 옳은지 살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히브리서를 아시지요. 바울이 아니면 아무도 그것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모형들과 실체들이 어떻게...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르침입니까! 바울은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내려가던 다마스쿠스 길에서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났습니다. 그는 요란하게 위협을 일삼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여 행동하며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심지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려가는 길에서...
그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게 된 까닭은 직접, 자기가 받은 가르침은 제쳐 놓고, 직접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말입니다. 그저... 그분의 말씀을 아는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여러분은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바울에게는 아직 그런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는 여기 어느 대목에서 “내가 지금 사는 삶은...”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때는 다른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의 삶이 변했습니다. 삶이 변하면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바울은 그 사람들 (유대인들과 다른 사람들) 한가운데 당당히 섰습니다. 그에게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누구를 믿었는지 알았습니다. 그의 삶은... 참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이 그를 단단히 붙들어 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믿는 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특별히 목회자는 어떤 철학자도 말로 부정해 버릴 수 없는 그 거룩한 모래밭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강단에 올라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고, 그것을 압니다. 아무것도 그 사실을 여러분에게서 가려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뛰어난 학식을 갖출 때도 있고, 저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 모든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직접 하나님을 만나, 누가 성경 구절들을 비틀어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러분이 거기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체험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특별히 모든 목회자, 그리고 모든 믿는 자는 이 자리, 이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드린 대로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중심으로 삼고, 자신을 묶어 둔 무언가입니다. 바울처럼, 평생 보아 온 것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났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배와 같습니다. 배에도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배에게 절대적인 것은 닻입니다. 배가 거친 물결 속에 있으면 바위에 부딪히거나 산산조각 나거나, 수심이 얕은 곳의 바닥에 걸리기 쉽습니다. 큰 너울이 밀려오면 배를 휩쓸어 뒤집어 버릴 것입니다. 배가 뜰 수 있을 만큼 물이 깊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도가 배를 뒤집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배는 닻을, 크고 육중한... 몇 톤이나 되는 쇳덩이, 강철 닻을 내려 보냅니다. 닻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바다 밑바닥 어딘가에 솟은 산꼭대기에 닿습니다. 물결이 배를 흔들면 그 커다란 닻이 끌리다가, 커다랗고 뾰족한 발이 바위에 박힙니다. 그러면 배에는 절대적인 것이 생깁니다. 닻이 내린 것입니다. 물결이 배를 이리저리 흔들어도 배는 닻을 내린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 있습니다. 닻이 배에게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여러분도 그처럼 그분께 묶여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박해가 얼마나 심해지든, 폭풍이 얼마나 사나워 보이든,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해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 되시거나, 성경의 어떤 약속이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파서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무언가가... 성경의 그 약속에 걸려 “내가 붙잡았다!” 하게 되면, 아무것도 여러분을 거기서 흔들어 놓지 못할 것입니다.
몇 분 전에 말씀드린 그 자매 이야기가 기억나십니까? 그 환상은 그 자매에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끝났다”라고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의사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단단히 닻을 내린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철학이나 교회 가입 같은 것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직 닻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이명 증서를 가지고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닙니다. 하지만 참으로 절대적인 분(그리스도)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닻을 내리면, 무엇이 오고 가든 상관없이 여전히 닻을 내린 채로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이 원자력 시대, 이 불확실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교회에 가입한 경험 그 이상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닻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확실히 아는 절대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도 실패하고 사람도 실패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믿는 자에게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여러분은 그분께 묶여 있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시고 여러분이 그분께 묶여 있다면, 여러분은 말씀에 묶여 있습니다. 자, 이것으로 우리가 올바른 절대적인 것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그리스도께서 정하시거나 우리에게 행하라고 맡기신 일을 발견했는데, 누군가 말씀을 비틀어서 (그것은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해서) 여러분이 그것을 붙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을 길에서 벗어나게 한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여러분을 붙들고 계신다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우리를 말씀의 길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경건의 모양”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저 모양만 갖추는 상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감리교와 침례교 등에는 여러 해 동안 그것이 있었고, 이제는 오순절 사람들에게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실 때 그의 얼굴을 갈보리를 향하게 하시고 그 앞에 말씀을 놓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큰길 가장자리에서 작은 뿌리들이 올라와 그 나무를 자꾸자꾸 감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아주 해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것이 여러분을 너무 단단히 붙잡아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잘못된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철학 같은 것들이 우리 가운데 들어와 우리를 세상 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예리한 양날 칼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잘라 버리고, 오직 말씀 위에 머무십시오. 말씀이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모든 믿는 자에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 속에 있는 마음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아멘!”이라고 화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기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성령 침례는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성경을 펼쳐 오순절 날 베드로가 한 말을 읽으십시오.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찔림을 받고 그에게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무엇을...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려던 것이 교회 가입이었다면 “그 몸을 찾아 교회에 가입해야 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처방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그 약속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그러면 어디까지입니까?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 모든 창조물에게 미치는 것이 복음입니다.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여러분은 그 절대적인 것,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과 하나가 되게 하는 참된 무언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시며, 여러분은 그 말씀에 “아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절대적인 것으로 삼은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을 어떤 신조 위에 세워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그리스도는 믿지만 저런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믿지만 이것은 믿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절대적인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절대적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조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또한 북극성과도 같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그분은 그런 분이십니다.
저는 세계 곳곳에서 사냥하며 광야에도 가 보았습니다. 때로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위를 올려다보고 북극성이 있는 방향을 알면, 그 별이 길을 찾아 나오도록 인도해 줍니다. 바다에서 길을 잃은 사람도 북극성만 찾으면 갈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그는 북극성을 찾습니다. 다른 별들은 움직입니다. 하지만 북극성은 바로 지구의 중심에 있습니다. 지구가 어느 쪽으로 돌든 북극성은 그대로 있습니다. 북쪽을 가리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가 가진 유일하게 확실한 별이 바로 저 맨 북쪽의 별입니다. 그 별이 여러분에게 방향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면, 구원받고 싶다면,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싶다면, 그리스도를 닮고 싶다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북극성이십니다. 길을 잃었다면 신조를 붙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북극성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길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이 나아갈 방향이십니다.
그분을 여러분의 북극성으로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틀림없이 여러분의 나침반이 되십니다. 아멘! 성령은 여러분의 나침반이시며, 나침반은 오직 북극성만 가리킬 것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았다면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만 가리킬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십니다. 그것이 돌아갈 길을 찾는 방법입니다. 위를 바라보며 “이게 빛나는구나. 이 별이 여기서 빛나고 있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지나면 그 별은 다른 곳에 가 있으니까요. 틀림없이 고정된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북극성이시므로 나침반은 항상 그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참으로 구원받았다면... 참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침반이신 성령께서 여러분을 곧바로 말씀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얼마나 놀랍습니까. 말씀과 그리스도는 하나이십니다. 둘은 똑같은 분이십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요한복음 1장입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분이 여러분의 북극성이시라면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 되십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에 이르기까지 아주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려는 뜻을 아마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엔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이미 있습니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한때 미국에서는 한 여자의 말, 식사 예절에 관한 그 여자의 말이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에밀리 포스트라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식사 예절에 관해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든... 완두콩을 칼로 떠먹어야 한다고 하면, 그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여자가 닭고기는 손으로 집어 먹으라고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쳐다보든 여러분은 정확하게 예절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식사 예절에 있어 절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한때 아돌프 히틀러가 절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히틀러의 말이 최종적이었습니다. 히틀러가 말한 것은 반드시 시행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든 히틀러의 말이 최종적이었습니다. 그가 절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무솔리니가 로마의 절대적인 사람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파라오가 이집트의 절대적인 사람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파라오가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그대로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잘못된 종류의 절대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얼마 전에 이집트에 서서, 파라오들이 왕좌에 앉아 있던 시대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땅을 이십 피트나 파 내려가야 그 왕좌가 있던 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 그런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삼다니요! 그것은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그런 절대적인 것을 의지한 사람들도 그것과 함께 사라져 가 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만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무엇이든 사람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말씀은 결코 사라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도 절대적인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재판을 받는다고 합시다. 문제가 생겨 이 도시에서 재판을 받게 되면, 다른 법원으로 항소하고 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마침내 대법원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절대적입니다. 거기서 재판은 끝납니다. 그 이상 갈 수 없습니다. 대법원이 마지막 법원이며,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 판결에 동의하지 않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국가가 거기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이 하는 말은... 제가 그들이 틀렸다고 말해도 그것이 틀린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그들의 판결이 옳습니다. 어떤 판결이든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 우리에게는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딘가에 그것이 없다면 재판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는 지점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대법원입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대법원을 거치면 끝납니다. 판결이 나오면 그것으로 종결됩니다. 그뿐입니다. 더 갈 곳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법원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법정에도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야구 경기에도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아십니까? 야구 경기는 절대적인 것 없이는 제대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심판입니다. 때로 우리는 심판의 판정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절대적인 사람입니다. 우리가,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스트라이크였다고 하든 볼이었다고 하든, 그가 스트라이크라고 하면 스트라이크입니다. 심판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가 거기 있습니다. 그 경기에서 그는 절대적인 사람입니다. 그가 “스트라이크!”라고 하면, 여러분은 소란을 피우거나 모자를 집어 던지며 항의할 수 있지만, 그래도 스트라이크입니다. 아멘! 잠깐 생각해 봅시다. 경기에 심판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다투겠습니까? 온통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없으면 경기를 할 수 없습니다. 경기에도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경기에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면, 삶은 어떻겠습니까? 삶에도 안식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오후 여기 계신 모든 사람에게는 어딘가에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최종적인 말을 하는 궁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런 것이 없다면 야구 경기는 소란과 온갖 다툼으로 가득하고, 결국 모두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빨간 신호등은 교통에 있어 절대적인 것입니다. 빨간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빨간 불이 꺼져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한 사람은 “내가 먼저 왔소”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출근해야 해서 급하오”라고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교통 대란이지요! 우리 교회들의 문제도 그와 비슷합니다. 이처럼 뒤엉켜 있는 걸 보니 어딘가 빨간 불이 꺼져 있는 모양입니다. 소란과 논쟁이 끝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가고, 당신은 기다리시오”라고 말해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뒤엉키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육백 몇 개나 되는 서로 다른 교파들, (예, 지금은 서로 다른 교단이 구백 개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어딘가에는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가톨릭이 옳으면 개신교가 틀렸고, 감리교가 옳으면 침례교가 틀렸으며, 오순절이 옳으면 나머지는 틀린 것입니다. 어딘가에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약속하신 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는,”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내 말들을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것은 절대적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믿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그 절대적인 분이시며, 그분과 그분의 말씀은 하나이십니다. 우리는 둘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빨간 불이 꺼지면 교통이 마비될 것입니다. 아, 아주 심하게 막히겠지요.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이런 거대한 교통 혼란에 빠져들게 된 까닭은... 조금 거친 표현이지만 제가 드리려는 뜻은 아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이런 데 빠져든 것은 각자가 자기만의 절대적인 것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기의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교회마다 절대적인 것이 있고, 집단마다 자기의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진리이고 길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다. 너희는 아무 상관도 없다. 너희는 소수다. 우리가 가장 큰 집단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각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 시대와 거의 같아졌습니다. 자기 눈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서로 다른 길이 너무 많습니다. 참으로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은 하나이십니다. 우리가 나아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할 수 있고, 정말 그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사사 시대에 각 사람이 자기 눈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한 것은,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없었습니다. 선지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말씀 위에 서서 이스라엘을 인도할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임하지 않았고, 각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형제님들, 오늘날 우리가 다시 거의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각자가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나는... 황금률을 따르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이것이나 어떤 종교를 따르고 싶으면 그렇게 하겠소. 내 종교는 이러이러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믿소”라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누구나 봅니다. 사람들은 ‘나는 일요일 아침에 성경학교에 가니까. 나도 남들만큼 착한 사람이야’ 하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성경학교에 다니며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성경학교에 다니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면... 어떤 사람은 “나는 십계명을 지킵니다”라고 합니다. 한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고,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일을 합니다. 그렇게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뒤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옳은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은 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살고 싶습니다. 생명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입니다. 그러니 생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내 말은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져야 할 생명은 그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처음 회심했을 때, 아직 젊은 시절에 이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게 절대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이 말씀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절대적인 것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 안에서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고, 그것을 너희에게 주리라.”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형제님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고,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까? 성령 침례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말씀을 둘 다 가져야 합니다. 사실 하나 없이 다른 하나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둘은 바로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없이 아버지를 모실 수 없고, 성령 없이 아들을 모실 수 없습니다. 바로 동일한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절대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께 묶여 있습니다. 그분은 제게 절대적인 분이시며, 그분을 의지해 사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은... 절대적인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톨릭교회에는 교황이 절대적인 사람입니다. 무엇이 오고 가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성경이 무슨 말씀을 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찾아와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한 젊은 자매에게 침례를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자매가 가톨릭 청년과 결혼해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려고 했습니다. 신부가 어떻게 침례를 주었는지 묻기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옛날에는 그렇게 물에 잠그는 침례를 주었습니다.” 저는 “언제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성경 시대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릭 교인이었다고 믿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신부님보다 더 가톨릭 교인답군요. 저는 옛날 방식의 가톨릭 교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따르면서 종교라고 부르는 이런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의 권능을 넘겨주셨고, 그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말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런 약속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안에 계십니다. 말씀은 참됩니다. 저는 성경에서 누구든 거기에 한 마디를 더하거나 거기서 한 마디를 빼면, 그도 (그의 몫이) 생명책에서 제하여질 것이라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며, 그 말씀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그것을 지키고 경외하도록 제 마음에 간직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저는 걸어가겠습니다. 주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그것은 줄곧 제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개신교회에서도 흔히... 교구에서 주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더라도 그 그리스도인 무리에게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든, 주교가 그렇게 말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있습니다. 성공회에 다니는 영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대주교가 어떤 말을 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여러분은 “아, 그거 참 안됐군요”라고 하시겠지요. 하지만...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원하신다면 바로 우리 오순절의 이야기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비추어 말씀드리는 부분을 알아듣고 뜻을 이해하고 계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성령으로 충만하고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시는 형제님이 계십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을... 먼저 지방 장로에게 가서 그분을 초청해도 되는지 물어봅시다. 어떤 교단 자격증을 가진 분입니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에는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톨릭이나 장로교 등에 관해서는 “아멘”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거짓된 절대적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회 안에는 그 교회의 장로보다 높은 직분이 없습니다. 교회는 자치권이 있는 교회이며,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총감독 같은 사람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해 줍니다. 그들의 생각 같은 것에 들어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뒤틀린 상태에 빠졌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부흥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는 오순절의 권능이 가득한데 우리는 거기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절대적인 것입니다. “혈육이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참으로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삼습니다. 우리 교단이 말씀에 어긋나는 말을 해도, 여러분은 교단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제 확신을 분명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집회를 마치면서 제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말들을 했는지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그리스도를 저의 절대적인 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가입한 교회는 침례교회였고, 저는 그 형제님들을 사랑합니다.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였습니다. 제가 그 말씀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비스 박사님이 저를 찾아와 분명히 비성경적인 어떤 일을 하라고 하셨을 때, 제가 그것을 그분께 보여 드리자 “그것은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지 이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말씀에 묶여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되 내 말은 참되다 할지어다.’” 그것이 제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삼십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의 일인데, 저는 지금도 그 동일한 말씀 위에 있습니다. 그것을 저의 절대적인 것으로 삼아 그곳에서 살고 죽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런 조건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가... 이번 주에 저는 아주 따끔한 말들을 했습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그렇게 했다면, 저도 그 절대적인 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제단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진리를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저더러 회개하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뒷받침하시고, 말씀과 살아 역사하는 말씀으로 그것이 진리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참됩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일들을 하는 까닭은 그것입니다. 우리의 여러 교단이나 체계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다른 쪽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 가지에 제 전부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원받았을 때, 아니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역사하시기 시작했을 때, 가톨릭교회에 갔습니다. 제 집안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뭔가 옳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시다면, 그것은 어느 교회입니까? 여기... 그들은 “우리 교회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 중 어느 교회입니까? 그들도 모두 갈라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모두 다릅니다. 어떤 쪽은 결혼하고 어떤 쪽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 쪽도 있고 정교회도 있고, 로마 쪽도 있고,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교황을 받아들이는 쪽도 있고 그렇지 않은 쪽도 있습니다. 그들도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들 중 어느 교회가 옳습니까? 어디에 믿음을 둘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톨릭 교인이고 교회를 믿는다면, 그것은 어느 교회입니까? 여러분의 가톨릭교회들 중 어느 교회입니까? 개신교인이라면 “어느 교회가 옳습니까?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장로교, 어느 교회가 옳습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옳으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른 것들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이... 말씀에 머무는 한 옳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시려고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실제로 이루셔야 합니다. 그 말씀이 역사하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부흥을 갈망하는 까닭이 그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여기에 나타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믿으신 적이 있다면, 이 말을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그 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이 너무 많아 우리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제 제 속에서 신앙의 감격이 솟아납니다. 그렇습니다! 속에 있던 그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묶는 줄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는 이쪽으로 당기고 하나는 저쪽으로 당기며, 서로 반대쪽으로 당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성령께서는 압력을 가하며 내려오셔서 들어가실 곳을 찾고 계십니다. 말씀 하나하나를, 말씀 하나하나를 이루어 나가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순절 성도 여러분은 성령 침례와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들이 교회에 회복되기 시작했을 때 믿었고, 그것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왜 거기서 멈추셨습니까? 왜 거기서 멈추셨습니까?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해 가다가 광야에서 멈추었을 때, 그들은 거기서 사십 년을 머물렀습니다. 모든 약속, 약속의 땅 전체까지 하루만 가면 되는 거리였는데 말입니다. 오순절 사람들도 건너왔을 때 미리암과 그 사람들처럼 춤추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광야에 이르자 모세가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아니, 모세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했던 일을 말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원했습니다. 은혜가 이미 모든 것을 마련해 놓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박사들과 철학박사, 법학박사들을 둘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고,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러고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떠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를 택해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걸어가야 할 거리는 고작 사십 마일쯤이었습니다. 하루나 이틀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쪽에서 사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그들에게서 없애실 때까지, 그 사람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제 변화가 일어날 때가 거의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단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빠져나온 곳에서 하던 바로 그 일을 하며, 그것을 그대로 다시 가져왔습니다. 이것을 자신을 묶어 둘 기둥으로 삼고, 이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이 방식대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한다면서 그들은 아예 안에 들어 있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무엇을 했습니까? 가만히 앉아서 교인만 만들어 냈습니다. 그 교인들은 무엇을 압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펴 보고,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주교나 지방 장로에게 가서 “이건 무엇입니까?”, “저건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것을 보면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 떼가 생각납니다. 저는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가 늘 불쌍했습니다. “삐악삐악” 울어도 찾아갈 엄마가 없습니다. 기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그와 같습니다. 거대한 기계에서 만들어져 나와 하나님을 외쳐 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께 묶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형편은 이렇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너무 많고, 올바른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언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관해 약속하신 모든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때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성령께서 사람들 위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영 안에서 춤추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심긴 씨가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만한 마음에 심긴 충만한 복음입니다. 충만한 권능으로 온전히 절대적인 것을 가져올 복음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내를 맞아 결혼하고, 자녀를 기르고, 농사를 짓고, 아기들에게 입을 맞추고, 죽은 사람을 묻고, 젊은이들을 결혼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고, 그들은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약속의 땅 밖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오순절이 그와 같습니다. 사십 년 전에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이 이런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줄 알았다면 기겁했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옛 성도들은 그 절대적인 것에 자신을 묶고, 어떤 일이 있든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어떤 교단이나 지방 장로, 지방 책임자, 주교도 그 문제에 관해서 그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 안에서 살아갔고, 나가서 기적을 행하고 여러 일을 이루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아주사 거리 집회 같은 집회, 나뭇가지로 지붕을 덮은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길모퉁이에 서서 간증할 사람조차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바로 그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 사십 년이 지난 뒤 한 사람이 일어나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저쪽에는 온 땅에 축복이 가득했습니다. 온...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너가게 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교회를 준비시키기 원하시는 시간이 왔습니다. 이것을 예언의 음성으로 말씀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휴거가... 휴거가 있은 지 오래된 뒤에도 여러분은 휴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휴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 이미 지나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서기관들은 요한이 먼저, 아니, 엘리야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분은 “그가 이미 왔으나 너희가 알지 못하였고, 너희가 하겠다고 말한 바로 그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이 땅에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보면,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떠났는데도 여기서 여전히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떠나는 사람들이 그토록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노아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롯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 있는 이 거대한 무리가, 포탄 밥이나 되고 원자탄의 잿더미나 될 무리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만 올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두세 사람, 저기 한 사람, 또 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없어졌는데 집을 나간 줄로만 알겠지요.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은 이미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휴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 지나갔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밤의 도둑처럼 오십니다. 여러분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크신 권능을 교회 안에 두십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무리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데려갑니다. “적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은...” 그 절대적인 것을 붙들고 있는 여러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엄청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 위에 그런 압박이 있는 까닭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언가를 보기 원합니다. 무언가를 보기 원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마음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말씀을 지켜보시며 입증하실 수 있겠습니까? 씨 안에 생명이 없는데 해가 그 씨를 비추어 어떻게 살아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씨눈이 있는 씨라야 합니다. 그러니 신조는 교인을 더 만들어 내는 씨눈을 갖고 있지만, 말씀은 성도를 만들고 믿는 자를 만드는 씨눈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 말씀을 입증하시려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자기들이 이루려는 일을 위해 자기들의 닻, 자기들의 북극성을 붙듭니다. 가톨릭교회 중 로마 쪽에서는 교황의 말이 무오한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주교나 어떤 신조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조에 어긋납니다”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저런 것들이 자기 교단의 믿음 등에 어긋난다고 합니다. 저는 바울이 여기서 말한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 중 어떤 것도 나를 움직이지 못하노라. [아멘! 왜 그렇습니까? 그는 닻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다마스쿠스 길에서 그분을 만난 뒤로는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울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분께서 나를 돌이켜 다시 올바른 길로 가게 하셨습니다. 나는 말씀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그분께서 나를 다시 말씀 위에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들으십시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돌이키실 때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을 때에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뜻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 뜻을 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9절은 “누구든 그렇게 하면... 그의 몫이 생명책에서 제하여지리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제 개인 의견을 단 하나도 더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고, 제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님,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저를 통해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십시오. 소금의 맛을 내며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다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둘을 가질 수는... “우리 교회가 내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내 신조가 내게 절대적인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분이 저를 구원하신 때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왜 이런 입장을 취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점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분명히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스도께서 저를 구원하실 때 수백만의 사람들이 죄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구원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구원하신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처럼 무지한 사람을 보시고 어떻게 해서든... 똑똑한 사람, 더 유능한 사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는 칠 학년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 신학박사나 철학박사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면 거기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저를 구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형제님들, 들으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며, 여러분도 그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바로 그곳에 머물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 모든 세월 동안 묶여 있었던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씀에 머물러 그 목적을 끝까지 이루고자 합니다. 남들과 달라 보이려는 것도, 심술을 부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정직하고 신실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도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욥조차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서워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죽음을 담당하셨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분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서, 그분은 사람처럼 죽으시고 그 형벌을 치르시려고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절에 그분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죽었다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절대적인 것은 그분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셨습니다. 너무나 완전하셔서 말씀하시면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저 말씀으로 바람을 멈추게 하셨고, 빵을 만드셨고, 물고기를 익히셨습니다. 그토록 완전하셨기에 아무런 방해가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씀과 자신이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한 몸을 낳았습니다. 타락 아래서 성적 관계를 통해 태어난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는 권능으로 태어난 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몸 안에 사시며 자신의 말씀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절대적인 것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의 짐을 지고 무덤에 들어가 그 형벌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에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일어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에 얼마나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게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면 죽음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거의 여러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는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니...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책에 있는 모든 말씀에 제 마음으로 “아멘” 하는 것, 얼마나 절대적인 것입니까!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저도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압니다. 성령은 제 나침반이십니다. 저를 그분의 절대적인 것, 그분의 북극성, 곧 북극성이신 그분께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저의 절대적인 분이시고, 저의 태양이시고, 저의 기둥이시고, 저의 북극성이십니다. 아, 놀랍습니다! 그분은 제가 보는 다른 것들과 너무나 다르십니다. 다른 것들에는 언제나 무언가 끌어당기는 것이 있고, 여러분이 당겨야 하는 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당기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여러분 위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다른지 보십시오. 그 말씀은 옛적부터 있었습니다. 신약과 구약은 나무판의 맞춤 이음새처럼 꼭 들어맞습니다. 어긋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 성경 육십육 권을 썼습니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백 년, 수백 년씩 간격을 두고 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느 말씀도 다른 말씀과 모순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성경은 서로 모순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모순되는 곳을 보여 주신다면, 제가 일 년 내내 미국을 다니며 설교하고 목회자들에게 헌금을 걷게 하여 그 전부를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제안해 왔습니다. 아직 아무도 응하지 못했습니다. 모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그 땅콩만 한 작은 머리로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것은...
교단들은 서로 모순됩니다. 저 다른 별들과 같습니다. 세상처럼 늘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세상 안에서 돌고, 세상 주위를 돕니다. 세상이 돌면 그것들이 모두 제자리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나침반은 하나님의 북극성,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그분의 말씀에서 결코 돌아서지 않습니다.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바로 그곳입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오늘은 여기 있다가, 내일은 다른 것을 믿고, 모레는 또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며 들어왔다 나갔다, 자꾸 나갔다가 자꾸 들어왔다가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두십시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견고한 토대입니다. 그것이... 제 나침반이고, 제 돛이고, 제 길잡이입니다. 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그 절대적인 것 위에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묶여 있습니다. 아멘.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그들에게 달렸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저의 절대적인 것으로 삼기를 원합니다. 다른 것들은 변하고 돌아설 수 있어도, 그분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그분을 여러분의 절대적인 분으로 삼으십시오.
예전에 제가 고난을 겪을 때, 가족을 잃고 저 자신도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어린 딸이 죽었습니다. 밤낮으로 거리에서 설교하고 기도하며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쓴 뒤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삶 이야기’를 들으셨고, 많은 분들이 읽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내가 죽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어린 아기마저 병이 들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있는 힘을 다해 기도했지만, 검은 천이 내려와 제 기도에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와서 말했습니다. “보아라, 너는 겨우 스무 살쯤 되었는데...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네 자신도 돌보지 않고, 이 모든 일을 해 왔구나. 다른 젊은이들처럼 밖에서 즐겁게 지내야 할 때, 네 젊은 시절을 몽땅 포기했지. 길모퉁이에 서서 울며 기도했다. 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몇 시간이고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네 혈육의 일이 되니 그분은 네 말을 듣기를 거부하시는구나.” 그때 저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득 기억이 났습니다. 제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무엇이 오고 가든 상관없습니다.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샘 아이슬러라는 분이 태버내클에 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 이 년쯤 되었습니다.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기가 묻힌 무덤에서 기도하려고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1937년 홍수 직후였습니다. 장화를 신고 울면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 아들인 어린 빌리도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의사들은 그 아이에게 더 해 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무슨 이질 같은 감염병에 걸려 증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울며 기도하다가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울면서 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올라가서 그 소리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녁이면 무덤 곁에 앉곤 했습니다. 그러면 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나무가 바람을 불어... 아니, 바람이 소나무 사이로 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 너머에 한 땅이 있네, 사람들이 아름다운 영원이라 부르는 곳,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그 기슭에 이르네. 한 사람씩 그 문에 들어가, 죽지 않는 이들과 함께 거하리. 언젠가 그들이 그대와 나를 위해 금종을 울리리. 저는 거기 서서 울며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내와 아기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당신들이 여기 누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이곳은 그저 내가 품에 안았던 몸의 남은 것을 심어 둔 자리일 뿐이에요. 하지만 강 너머 어딘가에, 당신들은 거기 있어요.”
그러니... 어느 날 저는 장화를 신고 걸어서 무덤 곁에 앉으려고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낡은 차 한 대가 뒤에서 와서 멈추었는데, 주 상원의원 아이슬러 씨였습니다. 그는 차에서 얼른 내려 돌아와 제게 팔을 두르며 말했습니다. “빌리, 정말 안됐네.” 저는 “괜찮습니다, 아이슬러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가 우는 것을 보고 “차를 세우지 말았어야 했군”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이슬러 씨”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한 가지 물어보고 싶네.” 저는 “예, 말씀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엔 자네가 죽을 것 같을 정도로 강단에 서 있던 모습을 보았네. 단식해서 얼굴이 수척해지도록 지내는 걸 보고 안쓰러웠지. 밤낮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군. 그런데 자네 아내와 아기는 저 안에 있네... 이런 일들을 보게. 지금 자네에게 그리스도는 무엇인가?” 저는 말했습니다. “주님은 제 모든 위로의 샘이시며, 제 생명보다 더 귀하십니다. 주님 외에 땅에서 제게 누가 있으며, 천국에서 주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절대적인 것, 폭풍이 몰아칠 때 저를 붙들어 주는 무언가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빌리, 고난을 겪는 동안에도 신앙을 지켰습니까?” 저는 “아닙니다. 신앙이 저를 지켰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던 것입니다. 제 힘이 다하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에도 저는 그분께 묶여 있었습니다. 제 닻은 저 너머 그분의 말씀의 휘장 안에 단단히 걸려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때로는 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일들을 하게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 안에 무언가가 고동치며 저를 움직입니다. 형제님, 저는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 피닉스에 오면서 저는 다시는 어떤 교단도 공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첫날 밤 어느새 제 앞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제 자신이 사막 쪽을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언가가 저를 돌려 세우더니, 아주 커다랗고 낡고 냉랭한 교회를 보여 주며 “저기로 가기 전에 거기에 머물러라”라고 했습니다. 아, 저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제게는 제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그렇습니다. 제 눈 색깔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분의 은혜로 저는 그분께 묶여 있습니다. 모세 시대에 하셨던 것처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그분께 말입니다.
모세에게도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저 아래에 있을 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신학은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고, 믿음으로 (들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치욕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자기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패했고, 양을 치러 떠났습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야 저편에서 절대적인 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된 무언가를 만나는 곳에 이른 것입니다. 불붙은 떨기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는 잎이 타지 않는 까닭을 알아보려고 잎을 따서 실험실에 가져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곁에 앉았습니다. “모세야, 네 신발을 벗으라.” “내려가서 우리 목사님께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겠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 안에서 음성을 들었을 때... 그 떨기나무 안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내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노라. 내 언약을 기억하며, 그들을 구출하려고 내려왔노라.”
이제 그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줄곧 그것에 묶여 있었고, 그것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그 절대적인 것에 묶여 있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그에게 그것을 설명해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그 음성을... 그를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까지 줄곧 인도한 그 커다란 불기둥, 그 불기둥 안에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 음성은 말씀을 입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아멘! 지금 졸고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그 불기둥은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이 나타나도록 입증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나님이라. 내가 그니라. 이스라엘에 그런 일이 있는 까닭이 그것이니라. 저 아래에 그런 일이 있는 까닭이 그것이니라. 나는 내 약속을 기억하며, 그것을 이루려고 내려왔노라.”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람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교단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별이나 바람이나 무엇이든 택하실 수 있었지만,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피를 택하셨습니다. 교육이나 그 무엇도 피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피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참됩니다. 그분이 변하실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 주십시오.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이렇게 하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너를 그곳으로 보내노라. 하지만 네가 가기 전에 내가 하나님임을 네게 입증하고자 하노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막대기입니다.” “그것을 내려던지라.” 그러자 그것이 뱀으로 변했습니다. 다시 집어 드니 막대기로 돌아왔습니다. 모세가 그곳에 갔을 때 흉내 내는 자들이 일어나 흉내 내려고 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며 말했습니다. “파라오여, 하나님께서 제게 하라고 말씀하신 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지팡이를 던질 테니, 뱀으로 변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파라오는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 교단도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흉내 내는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만났고,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할 일은 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차례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참된 말씀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손이 내려와, 그 뱀이 나머지 뱀들을 삼켜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막대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한 막대기의 배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모세는 그 뱀들이 모두 들어 있는 바로 그 막대기를 가지고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를 지나도록 인도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인지 아십니까? 모세가 이 불타는 떨기나무를 만났을 때... 그 불타는 떨기나무가 하나님으로 입증되었고, 그 빛, 그 불기둥이 하나님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세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창조하는 권능을 보십시오. 그때 모세는 그 불로 빛났습니다.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오순절처럼 말입니다.
보십시오. 모세에게는 불이 있었습니다. 불이 모세 안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분의 표적을 행했습니다. 불기둥이 떨기나무를 떠나 모세 위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 형제님,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올라가셨던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순절 날 성령과 불의 모습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 위에 임하여 친히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 뜻을 아시겠죠? 모세, 그 불이 모세 안에 있었습니다. 떨기나무를 떠나 모세 위에 임했습니다. 우리는 불을 난로 안에 넣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불은 거의 그것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불,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그 동일한 불기둥입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런 말씀은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시겠지요.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경험이 풍부한 위대한 신학자 바울은 다마스쿠스 길에서 쓰러졌습니다. 올려다보니 그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이 하나님으로 입증된 것을 보았기에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생겼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거기에 닻을 내렸고, 아무것도 그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에게는 입증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팔레스타인으로 인도했던 그 동일한 불기둥이 거기 서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습니다. 준비가 된 것입니다. 고침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자마자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시겠죠,
그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아그립바와 당시의 모든 높은 지위에 있던 남녀들 앞에 섰을 때에도 그것이 함께했습니다. 그는 거기 서서 말씀을 변호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누가 기록했습니까? 물론 바울입니다. 그는 영감을 받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습니까? 그를 만났던 그 불기둥이 그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성경의 첫 네 권을 기록한 까닭도 그것입니다. 그 불기둥이... 창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일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안에 있는 그 동일한 불기둥이 떨기나무 위에 있다가, 떨기나무를 떠나 그 위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입증되어 참됨이 드러났습니다. 고라와 그 사람들은 그것을 대적하는 조직을 만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실패했습니다. 모세에게는 그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동일한 절대적인 것, 동일한 불기둥, 동일한 성령, 동일한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나는 과거에 있었느니라”도, “나는 앞으로 있겠노라”도 아닌, “나는 있느니라”입니다.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총대장, 이스라엘 군대의 총대장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분은 여호수아에게 성벽 주위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요새를 갖추고 모두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아무도 들여보내 주지 않으니 그 안에서 부흥회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를 향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총대장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할지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계속 행진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성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치고 나팔이 울렸을 때, 그것이 그에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대전도 집회를 하러 곧장 들어갔습니다. 여리고 안으로 바로 들어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 총대장에게서 온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은 젊었을 때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메시아를 소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그 일을 할 사람이었지만... 메시아가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어딘가에 계셨습니다. 요한은 신학교에서 얻는 경험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필요했습니다. 틀림없이 참된 무언가가 있어야 했습니다. 형제님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목회자 여러분, 남다르게 굴거나 심술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묻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이 일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서로 다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요한은 절대적으로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기 아버지의 학교로 가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되는 법을 배우러 돌아갔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광야로 가서 부르심을 받아 나올 때까지 광야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왔을 때 무리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자기 시대에 계신다는 것을 너무나 확신했습니다. 그 메시아를 소개하도록 정해진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얼굴 앞에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길을 예비하리라.” 요한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제사장들이 “자네 말은... 때가... 우리에게 있는...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폐지된다는 말인가?”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는 “그 희생물을 없애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채 진흙 속에 서서 말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여러분이 집에서 쫓아 버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집어넣으려는 격식과 화려함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겸손함 가운데 계십니다. 그는 거기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신다는 것을 너무나 확신하여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한 분이 서 계시느니라.” 아, 얼마나 큰 책망입니까! “지금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계시느니라.”
제가 잠시 그 사람처럼 말해 보면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안 하는 게 좋겠군요.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안다고 주장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골고다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긴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 하나님을 죽였습니다. 그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계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바라보니 비둘기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분명히 보였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았고,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존스 교수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습니다. “영이 내려와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보거든, 그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는 자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입증하여 사실로 드러내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요한에게는 아무 의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평범한 사람 위에 임한 비둘기는 요한에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이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참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물론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이것이다”라고 말하며 손을 댈 수 있는 무언가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모두가 “이것이다, 이것이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마치기 전에 제 개인적인 일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제가 침례교회에 남을지 아니면... 선택을 해야 했을 때 말입니다. 제게는 침례교회도 다른 교회들만큼 좋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곳이며,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에서 타협해야 한다고 그들이 말하게 되었을 때에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침례교회에 속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저를 구원한 것은 침례교회가 아닙니다. 저를 구원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저의 최종적인 분이십니다. 저의 설 자리이시고, 저의 절대적인 분이시고, 저를 묶어 두는 기둥이십니다. 저는 그곳에 서 있습니다.”
제가 잘못된 것을 붙들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확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옳은 것을 붙들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반드시 확증하셔야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옳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하셔야 합니다. 잘못된 것이라면 전혀 관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첫 부흥 집회를 마친 뒤 강에서 침례를 주던 일이 생각납니다. 열일곱 번째 사람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제 아내는 어린 처녀로 강둑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제 첫 아내와 (지금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아내가 강둑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수백, 수백 명, 예, 사오천 명,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강둑을 따라 위아래로 서 있었습니다. 유월의 아주 무더운 오후였습니다.
저는 물속으로 걸어 나가서 침례받을 사람을 (열일곱 번째쯤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데리고 침례를 주려고 했습니다. 부흥 집회가 끝난 뒤 침례받을 사람이 오백 명쯤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함께 물속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손을 들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때 무언가가 저를 흔들었습니다. ‘어디서 나는 거지?’ 하고 생각하며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저 뒤쪽 강둑에는 차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담 위까지 온통 빽빽했습니다. 다시 보는데 “위를 보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올려다보기가 무서웠습니다. 그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의 사진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라고 하자, 무언가가 “위를 보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손을 내렸습니다. 제가 침례를 주려던 그 청년이 제 얼굴을 바라보며 “빌 형제님,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소리 들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위를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올려다보니 하늘에서 빛기둥이 빙글빙글 돌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렁찬 음성이 울려 나왔습니다. 내려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침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앞서 예비하도록 보냄을 받은 것같이 너도 보냄을 받았느니라...” 오, 하나님! 저는 그 빛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빛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해 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군”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조사에서, 고인이 된 조지 J. 레이시가 조사했을 때... 사진을 찍었더니 그 빛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사진에 나타났습니다. 과학적인 증거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저로서는, 그 빛이 제게 말해 준 것은 언제나 이 성경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제가 그 불을 보고 그 음성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모두 외치고, 기절하고, 쓰러지며, 그 빛을 바라보고 가리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이빌 신문에 큰 기사가 실렸고, AP통신을 통해 캐나다 전역과 곳곳에 보도되었습니다. “지역 침례교 목회자가 침례를 주는 동안 신비한 빛이 나타나다.” ‘신비한’이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 빛의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습니까? 여기 계신 거의 모든 분이 집에 그 사진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워싱턴 D.C.에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진에 찍힌, 과학적으로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로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동일한 빛, 그 동일한 음성이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제게는 같은 음성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그 동일한 불기둥입니다.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가노라.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오셔서... 이 땅에 계실 때 명절에 “내가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오십 세도 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빛, 그 불, 그 하나님, 그 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타오르는 불이십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셨을 때 그 빛은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던 바울을 만나신 날에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계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들! 잠들어 있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친히 입증하고 계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제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제게 단 한 가지도... 그분이 제게 이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한 가지라도 말씀하셨다면... 지금까지 제 앞에 서서 그것을 반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그러겠다고 한 적이 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한번은 집회에서 그렇게 하려고 일어선 사람이 마비되어, 사람들이 그를 들고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믿는 절대적인 것은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 제 혼과 몸을 맡기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제게 말씀하신 것 가운데 성경에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누가 앞에 계셨든 그분이 제게 하신 말씀은... 여러분 누구에게든 물어보겠습니다. 그분이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것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정확히 그렇습니다. 무엇입니까? “이 반석 위에”, 이 말씀 위에... 제가 계시를 받는 곳은 바로 거기입니다. 그것을 계시하시는 그분께로부터 옵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연구하려고 하지도 않고,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합니다. 그분이 여기를 보라고 보여 주시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저는 보지도 못했는데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제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모든 세월 동안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형제님들, 다른 도움을 받을 길이 전혀 없을 때에도 그것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의지하여 죽기를 원합니다. 죽을 때가 되면 모세처럼 저기 서 있는 그 반석을 보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위에 올라서고, 저를 운구할 이들이 저를 데려가 주기를 원합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저는 그 말씀에 신실하게 살겠습니다. 그것이 제게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과 은혜로 대하면서 말입니다. 이 말이 참되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 강단에 서 있는 저를 쳐서 죽이셔도 좋습니다. 저는 아무에게도 악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요한일서 4장 17절을 읽어 보셨습니까? 심판의 때에 참된 사랑이 되려면 그와 같은 바로잡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은 엄격하고, 사랑은 징계합니다.
자기 아내가 술 취한 남자와 밤새 돌아다니다 이튿날 아침에 들어와도 “그래, 여보, 즐거운 시간 보냈기를 바라”라고 하는 남자는 남자 구실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아내가 반바지나 조그마한 수영복을 (비키니든 뭐든 그런 것을) 입고 나가 그런 사람들 사이에 누워 있게 내버려 두는 남자라면, 저는 그런 사람이 남자다운 사람이리라는 기대조차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는 알통이 얼마나 굵고 근육이 얼마나 큰가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인격으로 평가받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인격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설교자라고 주장하면서 그 말씀을 부인하는 사람에게는,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거의 없습니다. 아멘! 잠시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희망이 조금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형제님들, 이것이 제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말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이것이 사실임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칼슨 형제님이 아직 여기 앉아 계신지 둘러보고 있습니다. 가신 모양이군요. 예. 아까 여기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카고의 광역 목회자 연합회 사람들이... 그때 그분은 바로 그곳 시카고에 계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삼 일 안에 저를 불러들여, 제가 이것과 이런 일들에 관해 가르치는 내용을 놓고 호되게 따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기 사흘 전 밤, 성령께서 저를 깨우시며 “저기 가서 그 창가에 서라”라고 하셨습니다. 가 보니 번개가 치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네게 함정을 놓았지만 반드시 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저는 칼슨 형제님과 토미 힉스 형제님을 데리고 갔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분을 아시지요. 바로 여기에 그 일의 녹음테이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은 이튿날 아침에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타운 앤 컨트리로 내려가서 앉았습니다. 저는 토미를 좀 떠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제 좋은 친구이며 귀한 형제님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토미, 제가 그 목회자들을 만나야 합니다. 형제님은 신학박사시잖습니까. 저는 배운 것 없이 서투르게 말하는 사람이라 그 사람들을 상대할 수 없겠습니다. 저 대신 해 주시겠습니까? 저도 형제님 부탁을 많이 들어드렸잖습니까.” 그는 “아, 그건 못하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칼슨 형제님과 그분들이 서로 쳐다보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제게 그걸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못하겠다고 하시는지 압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 연합회가 제게 따져 물을 것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 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제가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행크 형제님, 말씀드리지요...” (지금 여기 어디엔가 앉아 계십니다. 바로 이 근처에 계십니다. 예, 바로 여기 앉아 계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행크 형제님께 증언해 달라고 해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전에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행크 형제님, 들어 보십시오. 그 호텔의 모임 장소를 빌려 놓으셨지요? 하지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들이 형제님을 거절할 것입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예약금도 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걸어 놓으셨든 상관없습니다. 그곳을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녹색 방이 있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여기는 갈색입니다. 그리고 미드 박사님은 여기 앉으실 것입니다. (누구는 어디에 앉을 것이고, 그들이 앉을 자리를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 말을 완곡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저 청중에게 저를 소개해 주시고 나머지는 제가 하게 해 주십시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날 아침 그분이 그곳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정확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쪽에서 장소 예약을 취소해서, 그분은 저기 타운 앤 컨트리의 장소를 구해야 했습니다. 바로 갈색 방이었습니다. 정확히 그대로였습니다. 미드 박사님도 거기 앉아 계셨고, 다른 분들도 모두 제자리에 계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쳐다보니 토미 힉스 형제님이 저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기절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칼슨 형제님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브래넘 형제님과 의견이 다르실 줄 압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분은 여기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분께 맡기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각자가 저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저는 서로 다른 네댓 가지를 하나하나 말했습니다. “누구든 성경을 가지고 여기 제 곁에 서서 이것이 틀렸음을 입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저를 그만 괴롭히십시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의 봄베이에 서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먼 사람이 거기 서 있고... 저쪽에는 마기들과 그 밖의 온갖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자들과 무슬림들과 불교도들과 온갖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시력을 되찾을 것을 이미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여기 올라와 이 사람의 눈을 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 서로 다른 열일곱 종교의 환대를 받았는데, 여러분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여러분의 종교가 그렇게 훌륭하다면 와서 이 사람의 눈을 보게 해 주십시오.”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는 태양 숭배자였습니다. 성령께서...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텔레파시이며, 제가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 창조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옳게 살기를 원한다면, 창조의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를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환상으로 보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한 것을 붙들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습니다. 그분이 거기 여러분과 함께 서 계시는데,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도 아십니다. 눈먼 사람이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이삼 개월쯤 전에 방에 서 있는데, 구석에서 말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아내를 깨워 저것을 좀 보라고 하려 했습니다. 거기에는... 그 전날 아침에는 끔찍하게 생긴 것이 침대 곁에 서서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신 뒤였습니다... 커다란 맘바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뱀입니다.)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형제를 쫓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것을 결박할 능력을 받았다. 용기를 내라.” 제가 그것에게 말하자, 꼬리가 공중으로 솟구쳐 빙빙 돌더니 (바로 여기 이 물주전자의 손잡이처럼) 자기 목을 졸라 죽었습니다. 파란 연기가 그 몸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깨어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어야겠다”라고 하고 옆을 보았습니다. 거기 끔찍하게 생긴 것이 있었습니다. 만화 신문의 앨리 웁처럼 생겼는데, 아주 커다란 뿔들이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그것은... 헛간에서 나오는 암탉이 꼬꼬댁거리거나 노래하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가 말했습니다. “미다, 미다, 여보.” 하지만 아내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저것을 보면 아내가 무서워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그대로 기다리며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마귀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때로는 그것들이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날마다 그것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잠시 뒤 그것이 저를 비난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이 없다. 너는 그저 허풍을 떨 뿐이다. 너는 능력이 없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탄아, 너는 내게 걸림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앞에서 물러가라.” 그러자 그것이 떠났습니다. 저는 침대에 잠시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참으로 달콤한 느낌이 저를 감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가까이 계신 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기 구석에서... 하나님께서 제 증인이십니다. (지금 제 가슴 위에 성경을 얹고 있습니다.) 평생 들어 본 가운데 가장 달콤한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든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을 하든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 결코 저버리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제게는 모든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좋습니다! 제게는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제 닻은 저기에 든든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분을 믿으십니까?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지금 그 절대적인 것이 없다면 그것을 받으십시오. 그 절대적인 것, 성령께서 마음에 주시는 확신을 얻고 싶다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온 건물 안에서 손을 드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오직 진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그냥 지나쳐 가게 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마시고, 메시지를 보십시오. 전달자를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서 그것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와도 자신의 영광을 나누지 않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전달자를 보지 마시고, 메시지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여기로 뛰어 들어왔다고 합시다. 흑인이든 황인이든 갈색 피부를 지녔든, 남루한 옷을 입었든, 여러분 앞으로 된 백만 달러짜리 은행 수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피부색이나 옷차림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러분에게 가져온 소식입니다. 그러니 제 문법이나 그런 것들을 보지 마십시오... 지금 여기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제가 말씀드리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믿으십시오. 반드시 그분을 믿으십시오.
지금 저는 그분이 제게 무엇을 말씀하실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계속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기 시작하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모든 것이 아버지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지금 기도하오니, 여기 있는 남녀가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살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들이 이것을 이해하고, 주의 종이 주님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옵소서. 주님, 저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바로 동일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주께서 여기까지 저를 안전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보았고 그 빛을 본 그 천사가... 불기둥 안에 계십니다. 주님, 저는 온 마음으로 그분이 우리 주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모두 경배하고 믿는 그분의 영, 성령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알아보게 하시고, 깨달아 돌아오게 해 주옵소서. 교회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게 해 주옵소서. 모든 교단이... 아버지, 저는 주께서 그 교단들을 해체하시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그 교단들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이...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모두 하나의 형제 공동체가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그분들이 잘 협력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일에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제가 들어오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께서, 주께서 이 목회자들이 제게 호의를 베풀도록 해 주셨습니다. 주님, 이분들을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기도합니다. 윌리엄스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그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오, 그분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과 윌리엄스 자매님을 도우시고, 그분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샤카리안 형제님과 샤카리안 자매님, 이곳에 있는 이 큰 평신도 단체의 모든 임원도 도와주옵소서. 주께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 형제들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이들을 불러내셨습니다. 주님, 이들이 결코 교단이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머물며, 팔을 벌려 성령으로 태어난 모든 형제를 품게 해 주옵소서. 허락해 주옵소서. 모든 모임을 복 주옵소서. 일신교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여러 작은 모임을 모두 복 주옵소서, 주님. 삼위일체파와, 하나님이 두 분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오, 그들이 무엇을 믿든지요,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들이심을 알게 해 주옵소서. 주님, 그들이 이것들을 이해하게 해 주옵소서. 우리에게는 네 분이나 다섯 분의 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 가지 직분으로 일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신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오늘 그 계시가 그들에게 밝아 오게 해 주옵소서.
이 다툼이 그치게 하시고, 남녀가 함께 교제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주옵소서. 지금은 이런 논쟁과 사소한 일들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주께서 생명으로 나오도록 미리 예정하신 사람은 모두 주의 음성을 듣고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리라.” 주님, 주께서 그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들을 복 주옵소서. 여기 많은 손이 들렸습니다. 아마 이백 명쯤 손을 들고 있습니다. 주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믿음을 둘 수 있는 절대적인 분으로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모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말씀이 나타나게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작은 모임에 함께 있는 동안 잠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이렇게 하라는 인도를 받는 느낌입니다. 계속 기도하십시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저를 아시면서, 병이 있거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여러분이 저를 알고 저도 여러분을 안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드십시오. 보십시오, 온 사방에 계신 것 같습니다. 이제 손을 내리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저를 모르고 저도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역시 온 사방에 계십니다. 두 부류를 구별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진심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심하지 말고 그저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하시도록 합시다... 제가 이런 것들을 말씀드렸다면... 여러분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그에 관한 어떤 것이든,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가 아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주 잘 아십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바로 이 일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을 때를 두고 “소돔의 날들과 같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사람으로 그곳에 오셨습니다. 그저 한 사람으로 오셔서 소나 송아지의 고기를 드시고, 젖을 마시고 빵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분은 자신이 하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 주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자, 그분은 장막을 등진 채 “사라가 왜 웃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와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자연적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자연적인 교회, 곧 롯과 그 무리였습니다. 오늘날의 빌리 그래함 같은 사람이 그리로 내려갔고, 오럴 로버츠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불러냈습니다. 그들은 눈을 멀게 하는 정도의 기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소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시지요.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 이른바 오순절 사람들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미 이집트에서 나왔고, 이미 소돔에서 나와 저 위의 땅, 메마른 땅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받았는지 보십니까?
이제 오늘날을 보십시오. 어느 때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소돔으로 나간 때가 언제 있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그때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A-b-e-r-h-a-m, 아니, A-b-r-a-h-a-m입니다. 이름이 h-a-m으로 끝나는 사람이 지역 교단 교회들에 메시지를 전하러 간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G-r-a-h-a-m, 그래함입니다. 오순절 무리에게 간 사람은 어떻습니까? 역사상 그런 일은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바로 최근에 역사를 살피며 이름들을 확인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름에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이름이 왜 바울로 바뀌었습니까? 시몬은 왜 베드로로 바뀌었습니까? 야곱은 왜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까?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려는 것을... 그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제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머리를 숙이고 계시는 동안 저는 여기를 보고 있습니다.), 제 오른쪽 여기 앉아 계신 분이 칼 윌리엄스 자매님 같습니다. 맞습니까, 윌리엄스 부인? 저는... 여기 계신 분이 칼 윌리엄스 자매님입니까? 제 오른쪽 저기에 앉아 계신 분이 자매님처럼 보였습니다.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까?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제가 아는 분이 있는지 보려는 것입니다. 둘러보니 여기 다우 형제님과 자매님이 앉아 계시지만, 그분들은 우리 교회에서 오셨습니다.
제 왼쪽 여기 계신 분은 아웃로 부인입니까? 거기 서 계실 때부터 그분인 줄 알았습니다. 아웃로 부인, 저는 자매님을 압니다. 제가 아는 분이십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를 똑바로 보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제가 가르치는 이런 것들이 진리임을 믿으십니까? 아웃로 부인, 제가 알기로는 제가 전에 이곳에 왔을 때 이후로 일 년 넘게 자매님과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며칠 전 식당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한 것 같습니다. 여기 저를 보십시오. 자매님 마음에는 짐이 있습니다. 자매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있는 짐입니다. 젊은 여자분입니다. 자매님의 며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며느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에게는 부비동에 문제가 있고, 또 신경이... 아주, 아주 신경이 예민합니다. 좋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그분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바로 그때, 여기 앉아 계신 그분이 그것을 느끼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으십니까?
바로 제 앞에 앉아 계신 여자분이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 위에 머물러 있는 저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분은 몸이 쇠약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오셨습니다. 저는 그분과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그분은 지금 제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 위에 머물러 있는 저 빛이 보입니까? 저는 그분을 모르고,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이름은 엘리엇 부인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집으로 돌아가 나음을 받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손을 흔들어... 이렇게 해 보십시오. 손을 들고 온 마음으로 믿으며 말씀하십시오... 괜찮습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분 바로 앞에 또 한 여자분이 앉아 계십니다. 바로 곁에 계신 분은 남편이신 모양입니다. 그분도 거기 앉아 계시는데, 근육에 문제가 있습니다. 근육에 경련이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예, 부인. 다르위치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르며, 이름도 그 무엇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지요? 자매님은 거기 앉아서 “주님, 제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손을 좌우로 흔들어 보십시오. 맞다면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는 평생 그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것들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분이 마지막 날에 하리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며 옳음을 보여 주신다면, 제가 전하는 말씀도 옳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미지근한 삶에서 돌이키십시오. 할리우드처럼 여러분을 끌어내는 것들, 다른 교회들처럼 여러분을 끌고 가는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아와 여러분의 마음의 닻을 붙잡아 줄 절대적인 것을 얻으십시오. 얼마나 많은 분이 그리스도와 그런 체험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이 여기 계심을 아시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분의 임재 안에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오, 이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신다면... “조금 있으면 세상[불신자들]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으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며 너희 안에도 있으리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이 약속하신 그대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저... 하지 마십시오... 그저 자신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주 예수님, 저는 이제 이 시간부터 제가 주님의 것이며 주님은 제 것이심을 마음에 결심합니다. 제가 주의 말씀을 말하면 주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주께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이 체험을 제 마음에 갖기 원합니다.” 이것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한 손은 위로 들고 다른 한 손은 옆 사람에게 얹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사업가 여러분, 하나님께서 늘 여러분을 복 주시고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