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혼들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곳에 와서 전국 각지에서 오신 많은 벗들을 뵈니 기쁩니다. 여기 계신 이 형제님도 이제 이 도시로 오십니다. 오늘 아침 들으니 큰 부흥회를 열기 위한 장비를 벌써 이곳에 내려놓으셨다고 합니다. 형제님, 주님께서 형제님에게 큰 부흥을 주시고, 이 도시의 많은 혼들을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또 오늘 아침 제 목회자 친구들을 많이 뵈니 기쁩니다. 저기 피닉스에서 오신 아웃로 형제님이 계시군요. 제가 일어서면서 방금 보았습니다. 아웃로 형제님, 여기까지 오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 형제님들이 여리고에서 여기 예루살렘으로 우리를 찾아 올라오셨군요. 오늘 아침 이렇게 오시면 언제나 기쁩니다.
그래서... 얼마 전 피닉스에서 윌리엄스 형제님을 찾아갔을 때도 제가 그 농담을 한 번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제 제가 투산에 살잖아요. 그러니 이곳 편을 좀 들어야지요. 여기 산 위에서 여리고를 내려다보며 우리 형제님들을 보는 겁니다. 우리는 늘...” 칼 형제님은 피닉스에서 백 마일이나 달려 이곳에 온 분들이 많다고 말씀하셨지요.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에서 오신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일어서 보십시오. 여기저기, 이쪽에도 계시군요. 거리는 약 이천백 마일입니다. 아이고, 칼 형제님!
이곳에 와서 우리 안을 비추는 이 놀라운 아들의 빛을 누리니 참 기쁩니다. 우리는 이곳을 태양의 도시라고 하지요. 그것은 바깥에 있는 태양이고, 아, 이 안에 계신 아들! 정말이지, 제가 기뻐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이런 복을 누리며, 여기 제일 하나님의 성회에서 열리는 베서니 형제님의 부흥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 용감한 십자가의 군사와 그분의 훌륭한 설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에 저에게 참 많은 유익이 되었습니다. 저는 “베서니 형제님과 저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특히 가르마 타는 방식이 그렇지요, 베서니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든 서로 알아볼 수 있으니 기쁩니다. 그러니 토니 형제님과 함께 이곳에 있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성함을 발음하지 못해서 그냥 “토니 형제님”이라고 부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베드로는 “베드로”라고 불렀고, 바울은 “바울”이라고 불렀으니, 이분은 토니입니다. 저는 늘 저를 그냥 “빌 형제님”이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저는... 빌 형제님이라는 그 이름이 좋습니다. 아니, 어쨌든 형제라고 불러 주십시오. 여러분과 어울려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가 맛있었습니다. 다만 당밀이 모자랐습니다. 제 것을 다 먹었거든요. 그래서 아들 것을 빌려 먹었는데 그것도 다 먹어서, 옆 형제님 것을 빌렸습니다. 그분에게 한 접시가 더 있었는데, 그래도 당밀이 모자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뿌리는 세례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푹 담그는 것을 좋아해서 당밀도 듬뿍 있어야 합니다. 여기 설탕 그릇을 가져왔는데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설탕도 조금 뿌려야 했거든요.
남부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마 앨라배마였을 겁니다. 선교침례교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였는데, 제가 그곳에서 부흥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바깥에 방충망을 두른 작은 현관에서 묵고 있었지요. 나이 든 흑인 자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그날 밤 제가 설교를 힘껏 했더니 이튿날 아침에는 도무지 일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분이 저를 부르셨는데, 잠깐 잠이 깨서 이 말이 들리던 것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어서 일어나세요! 팬케이크를 벌써 네 번이나 구웠어요!” 팬케이크를 네 번이나 구우신 겁니다. 저는 팬케이크를 좋아합니다. 그냥 제가 아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제하고 있는 거니까요.
연로하신 보스워스 형제님... 보스워스 박사님을 아셨던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와 아주 절친한 오랜 벗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게 “브래넘 형제님, 교제가 뭔지 아십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알 것 같습니다, 박사님.”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한 배에 탄 두 사람이지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제라는 말, fellowship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지요. 닫힌 교제가 아니라 친밀한 교제입니다.
팬케이크 이야기를 하니 어느 날이 생각납니다. 남부에서는 그것을 플랩잭이라고 부릅니다, 베서니 형제님. 그래서 우리가... 저는 뉴햄프셔 북부로 잠깐 낚시를 갔습니다. 그곳은 컷스로트송어와 네모꼬리송어가 사는 곳입니다. 작은 천막을 등에 지고, 험한 길을 못 걷는 사람들은 올 수 없는 곳까지 하루 반 정도 걸어 들어갔습니다. 거기 깊숙이 들어가 송어를 잡고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작은 야영용 천막... 전날에는 작은 물웅덩이 하나를 찾았는데, 거기에 아주 크고 좋은 송어들이 있어서 던지는 족족 잡혔습니다. 한 마리를 잡으면... 죽게 한 것은 가져다가 먹었지만, 대개는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무스버들 덤불에 제 털바늘이 자꾸 걸렸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도끼를 가지고 내려와 이 무스버들을 잘라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 작은 코치맨 털바늘이 그 무스버들에 걸렸거든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아침으로 먹을 송어 한두 마리도 잡아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있었습니다. 작은 낡은 도끼를 들고 내려가 그 작은 무스버들을 자른 다음,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미 곰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곰이 아주 많았습니다. 흑곰이었는데 새끼가 둘 있었습니다. 그 녀석들이 제 천막에 들어가 천막을 다 찢어 놓았습니다.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망가뜨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덮치거든요. 난로 연통도 다 찌그러졌고, 이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미 곰은 제가 오는 것을 보더니 달아나며 새끼들을 불렀습니다. 한 마리는 따라왔지만 다른 한 마리는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그 녀석이 가지 않나 궁금했습니다. 천막 안에 녹슨 권총 한 자루를 놓아두었는데, 곰이 그 권총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쨌든 어미 곰을 쏘아 숲속에 고아 둘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분명히...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곰은 정말 사람을 할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새끼들을 건드리려는 낌새만 보여도 좀 성을 내지요.
그 작은 녀석이 앉아 있었는데, 아주 어린 새끼 곰이었습니다. 보기에는 아마 이십 파운드, 십오에서 이십 파운드쯤 나갔을 겁니다. 이른 때여서 겨울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녀석이 제게 등을 돌리고 이렇게 잔뜩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 작은 녀석이 뭘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미 곰과 다른 새끼는 저쪽에 있었고, 어미가 계속 불렀지만 이 녀석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 작은 녀석이 왜 저럴까?’ 저는 어미가 쫓아오면 올라갈 수 있도록 나무 하나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무엇이 저 녀석을 저토록 사로잡았는지 봐야겠다.’ 보통은 달아나거든요. 그래서 어미를 지켜보면서 조금씩 돌아 옆쪽으로 갔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시면 놀라실 겁니다.
그 작은 녀석이 제 당밀 통을 차지했던 겁니다. 당밀이 가득 든 반 갤런짜리 작은 통이었습니다. 뚜껑을 벗겨 놓았는데, 원래 곰은 단것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그것을 마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작은 앞발을 통에 푹 담갔다가 들어 올려 이렇게 핥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도무지... 제가 “거기서 나와!”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돌아보았는데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눈에 당밀이 묻어서 저를 바라보면서도 그랬습니다. 통 안을 더할 나위 없이 말끔하게 훑어 먹었습니다. 저는 그저 서서 웃었습니다. 꼭 그럴 때는 사진기가 없지요. 그 장면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 녀석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렇게 통을 아주 깨끗이 핥아 먹고 나서는 어미와 작은 형제 곰에게 갔고, 이번에는 그들이 그 녀석을 핥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건 정말 좋은 옛 오순절 집회와 같구나. 우리가 꿀단지에 팔꿈치까지 손을 푹 넣었다가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과 같아. 그들도 우리에게 묻은 것을 한동안 핥게 해 주는 거지. 핥아 먹을 맛이 나는 좋은 집회야.’ 저는 그 작은 곰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녀석이 당밀을 핥는 동안에는 정죄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옛날 방식의 좋은 집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도 그렇습니다. 빳빳하게 격식을 차릴 것도, 다른 무엇도 없습니다. 그저 앉아서 핥아 먹는 겁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성경을 보면 목자는 옆구리에 주머니를 차고 다녔습니다. 그 안에는 꿀을 조금씩 넣어 다닐 때가 많았습니다. 양 한 마리가 병들면 목자는 가서 석회암 바위 위에 이 꿀을 조금 짜 놓았습니다. 양도 단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양이 다가가 그 바위를 핥기 시작했습니다. 꿀을 핥는 것이었지만, 꿀을 핥는 동안 석회질도 먹게 되었고, 그 석회질이 병을 낫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 제게는 주머니 가득 꿀이 있습니다. 그것을 저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 발라 놓을 테니, 양인 여러분은 이제 핥기 시작하십시오. 우리가 영원한 반석을 핥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든 병이 나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나머지는 그분께서 반드시 돌보실 겁니다. 그분은 우리 육체와 영의 괴로움을 고치시는 치유자이십니다. 그분은 골짜기의 백합이십니다. 백합에는 아편이 있고, 아편은 모든 문제를 가라앉힙니다. 사람을 그저 몽롱하게 만들지요. 성령도 그렇게 임하십니다. 누가 둘러앉아 있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근심 없는 상태가 되게 하십니다. 안에 차오른 것을 쏟아내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그렇습니다. ... 한 번은 성령으로 충만해진 어린 소녀가 생각납니다. 그 아이도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간증을 하고 있었는데, 그 거친 표현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제가 쓰는 말보다 더 나쁘지도 않았지요. 그 아이는 “이 성령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싶어요.” 하고 말하더니, “이것보다 조금만 더 좋으면 저는 터져 버리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순복음 실업인회 대집회들을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몇 년 전, 약 삼십오 년 전에 선교침례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해 동안 복음과 제가 옳다고 알고 있던 모든 것에 충실한 사역자가 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그 위대한 환상이 임한 뒤에... 저는 오순절 같은 것은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시내에 소위 성령에 취해 뒹구는 사람들이 한 무리 있는데, 바닥에 침을 흘리고 별별 짓을 다 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 그들 가운데로 왔고, 그 뒤로 저는 그저... 제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갈망하던 그것이, 차가운 손에 꼭 맞는 장갑을 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꼭 맞는 것을 찾았고, 참으로 기쁘게 누려 왔습니다.
그 형제님들 가운데 와 보니 그들도 우리 침례교인들처럼 아주 많은 교단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세상에, 종류가 정말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혹이 하나인 낙타를 타고, 어떤 사람은 혹이 둘인 낙타를 타고, 또 어떤 사람은 혹이 셋인 낙타를 타고, 어떤 사람은 혹이 전혀 없는 낙타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한 무리에도 가입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 특정 무리에만 속한 사람으로 여겨질 테니까. 그들 사이에 서서 “우리는 형제입니다.” 하고 말해야겠다.’ 아마 야곱이 우물을 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쫓아냈던 것으로 압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우물을 “악의”인가 무엇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또 하나를 팠습니다. 거기서도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냈다고 했고, 그래서 “다툼”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하나를 파고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믿는 것도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자, 제가... 제가 순복음 운동에 들어온 뒤 가입한 것은 오직... 저는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이것이 천국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가까운 것이 있다면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은 것은 이것이고,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더 좋은 것이 올 때까지 여기에 머물겠습니다. 저는 더 좋은 것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이것이 바로 그것이니라...”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올 때까지 이것을 지키겠습니다. 이것이 아주 좋으니, 그때까지 이것을 굳게 붙잡겠습니다.
그러다가 이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순복음 실업인회도 비슷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고 훌륭한 여러 교단 사이의 틈에 서서, 무엇인가 다리를 놓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교제를 이루려고 애쓰며... 어느 교단을 허물거나 모두를 하나의 조직에 집어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교제를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입했습니다. 제가 속한 유일한 단체가 바로 이 순복음 실업인회입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해 큰 봉사가 될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갈라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형제이며, 모두 같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셨고, 옆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 브래넘 형제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게는 형제가 아홉 있는데, 뚱뚱하고 키가 작은 형제도 있고, 키가 크고 마른 형제도 있습니다. 저는 그 중간입니다. 저마다 달라서, 금발인 형제도 있고 검은 머리인 형제도 있고 머리카락이 아예 없는 형제도 있습니다. 여기서도 저는 중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제입니다. 뒷마당에 나가서는 서로 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앞마당으로 나갔는데 누군가 브래넘 집안사람 하나에게 덤비면, 아이고, 아이고! 그 사람은 큰일이 나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때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 눈에는 썩 옳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그냥 “아멘” 하십시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저녁 베서니 형제님의 예배에 앉아 있었습니다. 짐승의 표에 대해 설교하셨는데, 제 혼을 전율하게 하는 핵심을 짚으셨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더 큰 무엇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하시려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이 일을 마무리하고 교회를 영광 속으로 보내실 일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자, 우리가 너무 게을러서... 그렇게 되지는 맙시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그분의 말씀은... 그분이 말씀이시며, 그분의 말씀은 실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무한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에 관해 결정을 내리시면 그것은 영원히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돌아서서 “내가 틀렸다.”고 하실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러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첫 결정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방벽을 주셨을 때, 사람의... 그를 그 안에 묶어 두고 감싸 보호하시려고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브는 그 경솔하고, 최종적인, 큰... 자기가 저지른 일 가운데, 아니 저지를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경솔한 일 하나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따져 본 것입니다. 우리는 따져 보지 않습니다. 그저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길도 마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 뒤에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함께 모을 위대한 선지자가 오리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왔을 때, 사람들 가운데를 그대로 지나갔는데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렇다면 어째서 서기관들, 곧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참으로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그대로 지나갔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께서 침례자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십시오. 사람들 눈에 그는 어디 강가에서 사람들을 물에 빠뜨리려 하는 별난 사람, 거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메시지도 아주 이상했지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구자였습니다. 그 일이 지나갔는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삼분의 일은 요한에 관해 들어 보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유대인 가운데도 그리 많은 사람이... 세상 인구의 백분의 일 정도만 그분께서 여기 계신 줄 알았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교회는... 여러분 가톨릭교인들은 성 패트릭도 자기들 편이라고 주장하려 하지만, 성 패트릭을 알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가톨릭교인, 로마 가톨릭교인이었던 정도는 저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잔 다르크를 보십시오. 환상들을 보았던 그 거룩한 어린 소녀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녀라고 기둥에 묶어 불태웠습니다. 그 아이가 성도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도 전에 이미 떠났습니다. 아십니까? 만약...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물로 구원받은 혼은 여덟이었습니다. 만약 오늘 휴거가 일어나 투산에서 두 사람, 피닉스에서 한 사람, 그리고 온 세계에서 데려간다면 어떻겠습니까? 휴거는 온 세계적으로 일어날 테니까요.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러 올라가 소리 없이 떠나 버린다면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심판이 땅에 닥칩니다. 여러분은 “아니, 먼저 휴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이미 있었는데 여러분이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도 아무 소식조차 없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전혀 모를 겁니다. 오늘 세계에서 오백 명이 실종되어도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등잔 심지를 잘 손질해 둡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겠느냐는 말입니다. 심판이 닥치는데 휴거는 이미 지나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이미 오셨는데 여러분이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집회에 모일 때는... 우리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입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 일에 쏟읍시다. 무엇을 흉내 내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온 하늘이 참된 오순절의 권능과 복으로 가득한데, 왜 대용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왜 우리가 대용품을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복은 여러분이 다 써 버릴 수 없습니다. 풍성하게 구하십시오. 길이가 반 인치쯤 되는 작은 물고기가 바다 한가운데서 “이 물을 조금씩 아껴 마셔야겠어. 다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하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우스운 말이지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 써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보다 더 우스운 일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보니... 그 연세 드신 분들, 칼 윌리엄스 형제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일어서시는 모습을 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두 분을 뵙는 것이 처음입니다. 여든쯤 되셨을 텐데, 하나님께서 그 노부부를 어떻게 지켜 오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님이 아니라 칼 형제님의 형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토니 형제님 말로는 어머님이 저기서 차에서 내려 문을 탁 닫으시더니, 작은 군인처럼 저쪽으로 걸어가셨답니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좋으셨습니까! 자, 여러분이 아직... 이 순복음 실업인회 회원이 아닌 남자분들이라면... 저는 침례교인으로서 여러분 침례교인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감리교인으로서, 저는 감리교인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아칸소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제가... 목발을 짚던 노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거리에서 연필을 파는 분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분이 일어나 집회 전체를 차지하다시피 했습니다. 리틀록의 로빈슨 메모리얼 강당에 아마 오천 명에서 육천 명쯤 모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고쳐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설교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잠시 후 그분이 일어서서 “이봐요, 브래넘 형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야말로 혼자서 먹고 즐기는 축제라도 벌이는 듯했습니다. 그저 신나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치유를 받았으니 그분에게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잖습니까...” 알고 보니 나사렛교인이었습니다. 그분은 “형제님 말씀을 듣고 틀림없이 나사렛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또... “그런데 누가 형제님이 침례교인이라고 하더군요.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오순절교인들이고요.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오순절 나사렛 침례교인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고,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업가이든 어떤 분이든,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와서 교제하십시오. 단지 손을 잡고 악수할 수 있는 사람들과만 교제하지 말고, 그들이 받은 것을 받으십시오. 성령입니다. 그것이 참된 교제를 가져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만들어 내라는 요구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열매를 생산하거나 제조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양에게 “털을 만들어 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저 양이 되게 두면 털이 자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인가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만들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속을 바르게 하십시오. 검은 새 한 마리가 저기 앉아 자기 날개에 공작 깃털을 꽂고 “보세요, 저는 공작입니다.” 하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안에서부터 자라 나온 적이 없는 것을 꽂아 넣으려는 것입니다. 우리 오순절 무리 가운데 그런 일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참되고 진실하게 다시 태어난 오순절교인이 됩시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건대, 천국에 가기 전 이곳에서 제가 찾은 것 중에 제 죄가 사라졌고 제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는 확신을 준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 무언가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을 붙들어 주는 닻이 있게 됩니다.
자, 이렇게 시간을 많이 차지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가셔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말이 긴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시작하는 데 한 시간쯤 걸리고, 두 시간쯤 설교하고, 멈추는 데 또 세 시간쯤 걸립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여기 투산, 이 정든 예루살렘에 살고 있습니다. 토니 형제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한두 번씩 내려와서 일을 돕고 여러분이 여시는 부흥회에도 모두 참석하겠습니다. 목회하시는 형제님들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교회를 세우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워진 것을 돕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힘을 보태어 형제님들이 이 투산에서 혼들을 얻는 일을 도우러 왔습니다. 협력 집회나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라면 어디에서도 집회를 시작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를 세우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로 그 교회들을 가득 채우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는 함께 힘을 보태러 왔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열려 있는 모든 문에서 돕고자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이 모든 세월 동안 저를 지켜 주신 그분의 영의 충만함을 간증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번... 아까 토니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 저는 하려던 말을 적어 두어야 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스물다섯은 넘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넘으셨는데요?” 저는 “두 번째로 넘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더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머리를 가운데로 가르는 겁니다, 형제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여러분 모두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아, 좋습니다! 이제 작은 짐과 작은 근심도 다 내려놓읍시다. 우리가 오래 앉아 있었으니, 크게 불편하시지 않다면 기도하려고 잠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서 계시는 동안 성경에서 한 장, 아니 한 구절을 읽겠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 3장 14절부터 읽겠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볼지니라.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이기는 자에게는 앉게 해 주리니,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허락하리라. 귀 있는 자는 영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머리를 숙이고 마음도 숙여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오늘 아침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시고, 오늘 아침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우시고 존귀하신 우리 하나님, 그 영께서 우리 마음을 이끄시어 주님과 더욱 가까이 걷게 하십니다. 저무는 날을 바라보며... 이제 시간의 날은 곧 스러져 영원 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우리는 해안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립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위험한 시간입니다. 여기서 읽은 이 마지막 교회 시대, 라오디게아 시대에 우리는 해안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 여러 것들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닻이 영원한 반석에 굳게 걸려 새벽을 기다리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순복음 실업인회 지부라고 불리는 이 하나님의 운동을 축복해 주십시오. 여기 투산의 이 지부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곳 라마다가 이 벽들을 헐고 장막을 넓혀야만 찾아오는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천막을 가지고 이 도시에 부흥회를 열러 오시는 형제님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 집회가 혼들을 이 교회들과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제일 하나님의 성회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큰일을 계속하고 계신 베서니 형제님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그분과 이 나라의 모든 교회들과 계속 함께하시기를 참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성령께서 해석을 주시고 이 본문의 뜻과 맥락을 밝히 드러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함께 모이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해 보셨습니까? 다음 모임 날에 다시 오면 여기 계신 우리 중 몇 분은... 우리 중에 빠진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 어울리며 함께 먹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다시 만날 때가 옵니다. 아침 식사에서가 아니라 저녁 만찬에서 만날 것입니다. 오, 하나님의 큰 잔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말입니다. 커다란 의자들이 하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늘어서 있고, 모든 시대의 구속받은 자들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시간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기다립니다.
자,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잠깐 말씀드릴 본문을 택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붙잡아 두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 성경 구절과 메모를 조금 적어 왔는데, 그것을 가지고 “문 안의 문”이라는 주제로 몇 분 동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아주 이례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 면에서 이례적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가슴 아픈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밖으로 쫓겨나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시며 다시 들어가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쾌락이 그분을 교회에서 몰아냈고, 마침내 교회는 그저 미지근한... 참으로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다른 모든 교회 시대의 교회들은... 저는 얼마 전 제 교회에서 교회 시대들을 다루는 것을 마쳤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17일부터 일곱 봉인을 다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모든 교회 시대의 교회들은 받아들였지만, 마지막 교회 시대인 라오디게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제거되셨다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그분을 교회 밖으로 내보냈고, 쫓겨나신 그분은 다시 들어가려고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눈이 멀어 버린 것입니다.
아주 이례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례적인 일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하지 않으시기에, 평범하지 않은 것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이례적인 일들을 행하십니다. 뜻밖의 때에 나타나십니다. 또 뜻밖의 때에 모습을 보이십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분께서 거기 계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때에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거기 계십니다. 아주 이례적입니다. 성경은 “그분은 자신의 이적을 행하시려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일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평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늘 하던 틀에 들어가 있다가 하나님을 놓치는 것이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을 통해서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일들, 어떤... 우리는 섬기려 하는 특정 신조나 무엇에 너무 얽매여서, 모든 것이 우리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오지 않으면 밀어냅니다. “그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여 주시고 나서, 자신을 보여 주신 바로 그 안에 숨으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떤 것 안에서 자신을 보여 주셨다가 물러나 숨으십니다. 씨앗처럼 말입니다. 아름다운 꽃에서 자신을 보여 주셨다가 그것이 썩게 두십니다. 그러나 다시 나오시려고 자신을 숨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분은 아주 이례적이십니다. 뜻밖의 때에, 뜻밖의 방식으로, 때로는 작은 것들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작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 전 이 지부의 규모가 작다거나, 모인 사람 수가 적다고 이야기할 때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군중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를 누렸습니다. 인도 봄베이에서는 한 집회에 오십만 명이 모였습니다. 아프리카, 남아프리카에서는 한 집회에 아마 이십오만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감미롭고 복되게 느꼈던 때는 작은 가정 기도 모임을 가질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밖의 장소와 뜻밖의 일들 가운데 계십니다.
여기 캐나다 형제님이 조금 전에 캐나다에 있는 제 좋은 친구들 이야기를 하셔서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조지 국왕이... 아시다시피 제가 그분을 위해 기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고쳐 주셨지요. 그분은 아직 그 경화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캐나다를 방문했습니다. 용기 있는 분이었습니다. 밴쿠버를 지나갈 때 모든 학교가 학생들을 내보냈습니다. 아이들이 나가서 자기... 작은 영국 국기를 받아, 국왕이 지나갈 때 국왕과 왕실에 경의를 표하며 흔들게 했습니다.
제 절친한 벗인 언 백스터 형제님과 함께 그 모습을 전하는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국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우리는 방에 앉아 있었는데, 저는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언 형제님은 감격에 겨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백스터 형제님, 뭘 그렇게 감격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분은 제 왕이십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기 왕이 지나간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캐나다 사람이 저렇게 느낀다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다시 태어난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 국왕은 아직 다발성경화증을 앓으면서도 자신의 병거, 곧 자동차에 앉아 몸을 곧게 세우고 있었습니다. 궤양 때문에 몹시 고통스럽고 허리도 아주 심하게 아프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모두 내보내 국기를 흔들게 했습니다. 행렬이 지나간 뒤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학교에서는 모두 돌아왔지만 어린 소녀 한 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다가 그 아이가 없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찾아야겠다.” 하고 말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가 그 아이를 찾았습니다. 얼마 후 선생님이 직접 그 아이를 찾아냈습니다. 전신주 옆에 서서 애가 끊어지듯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울고 있는데... 선생님이 “얘야, 왜 그러니? 국왕님께 국기를 흔들지 못했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아니요, 국왕님께 국기를 흔들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국왕님을 보기는 했니?” “네, 국왕님을 봤어요.” “그런데 왜 우니?” 아이는 “제가 너무 작잖아요. 저는 국왕님을 보았지만, 국왕님은 저를 못 보셨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조지 국왕이나 다른 왕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맡겨 목회하게 하신 회중이 아무리 작아도, 하는 일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저 우유 배달부나 신문 배달 소년에게 한마디 하는 일이라도 그분은 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 하는 일 중에 그분께서 모르시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를 그분께서 아시며, 그 모든 일을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하십시오. 작은 깃발을 흔들고 싶다면 흔드십시오. 그분은 그 평범하지 않은 일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께서 한 혼을 얻으실지도 모릅니다.
드와이트 무디였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제가 잘못 알고 있습니까? 그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연로한 자매님이 한 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다는 부담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빨래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아마 백오십 년쯤 전이었을 겁니다. 돈을 모아 삼 달러를 마련한 뒤, 일 달러를 주고 낡은 마구간을 일주일 동안 빌렸습니다. 직접 내려가 청소하고, 자기 빨래대를 가져다가 제단으로 삼고, 설교단도 세웠습니다. 그 낡은 빨래대에는 비누 거품이 아직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전도지를 구해서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미국의 옛날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던져 버렸습니다. 그 자매님은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던져 버렸습니다.
당시 감리교인들은 오순절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광신적인 사람들의 무리였습니다. 학교 건물 안에 누워 있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아래 쓰러지면 사람들이 그 얼굴에 물을 붓고... 제게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런 집회에 직접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그대로 가게 두었다면, 그들도 오순절교인들이 되었을 겁니다. 그 가엾은 노부인이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데, 모두가 길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들이 거절하니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흥회를 열려고 목회자 한 분을 도시로 모셔 오기 위해 그토록 애썼는데 말입니다. 그 목회자는 그날 밤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리를 떠나려는데, 어린 남자아이 하나가 다가왔습니다. 아버지의, 남부에서는 갤러스라고 부르는 멜빵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내려온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아주머니, 뭘 나누어 주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얘야, 전도지란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저는 글을 못 읽어요. 뭐라고 쓰여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오늘 밤 저 낡은 마구간에서 집회를 열려고 한단다.” 아이는 “고맙습니다. 저도 하나 주시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러렴.” 하고 주자 아이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날 밤 집회가 열렸을 때 누가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 충실한 노목사님과 그 여인뿐이었습니다. 집회에 있는 사람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용감한 노병은 한 명이 있든 천 명이 있든 본문을 택하고 서서 그 여인에게 설교했습니다. 만 명에게 설교할 때와 똑같이 충실하게 했습니다. 설교가 시작될 무렵 누가 문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왔겠습니까? 바로 그 머리 헝클어진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 소년은 제단 앞에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오십만 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한 어린 드와이트 무디였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정말이지! 큰 집회와 화려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밖의 일들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뜻밖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스 화가였는데, 지금은 그 사람의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는 거의 평생을 들여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어떤 그림이 명예의 전당에 걸리려면 먼저 비평의 전당을 거쳐야 합니다. 위대한 그림은 다 그래야 합니다. 비평가들 앞에 서야 합니다.
아, 오늘 아침 이 말씀을 여러분 앞에 확실히 펼쳐 보일 수 있는 무언가가 제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순절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식어 가는 이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비평의 전당으로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교회는 신부로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 전에 비평의 전당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견딜 수 있습니까? 성경에 맞게 서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여러분의 간증을 용감하게 지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성경에서 “데모스가 이 현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한 것처럼 물러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교회는 바로 거기에 서 있습니다. 저울에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 화가가 그린 이 그림이 비평의 전당으로 갔을 때, 그들은 흠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이름난 비평가 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 그림에는 잘못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손에 등불을 들고 죄의 어둠 속으로 밤에 찾아오시는 모습은 좋습니다. 문을 두드리면서 누군가 문 앞으로 나오기를 기대하시는 표정도 훌륭합니다. 안에서 들려올 소리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얼굴빛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문에 빗장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찾아오셨어도 문에 빗장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 화가는 “아, 저는 그렇게 그렸습니다. 빗장이 안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만으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모셔 들이려는 뜻을 가져야 합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들어와서) 나를 들어오게 하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그림이 그것입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문을 두드립니까?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문을 두드리게 합니까?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이지요. 어쩌면 여러분과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사업에 관한 일이나 다른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혹은 무엇을 주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을 두드리지 않겠지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예의를 갖추려면 문을 열어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문을 열고 “누구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 사람으로서 할 일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여러분을 찾아와 그저 앉아서 “저는 당신 친구입니다. 오늘 아침 잠깐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친구라면 앉으십시오. 그와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의논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는 살아가며 남의 문을 두드린 위대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문 앞으로 나간 뒤에는 누가 두드리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 앞으로는 나가야 합니다. 문 앞에 누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마땅한 예의입니다. 누군가 두드리면 가서 “누구십니까?” 하고 말하고 문을 여십시오. “누구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아, 어쩌면... 위대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문을 열어 맞이한 분이 위대한 인물이라면 참 영광일 것입니다.
몇 년 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총통이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 골목이나 어디 길가에 사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 보았다고 합시다. 그 평범한 독일 보병이 문 앞에 섰는데, 아돌프 히틀러가 거기 서 있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한때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요.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평범한 보병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거의 기절할 뻔했을 겁니다. 차렷 자세로 서서 독일식 경례를 하고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위대한 독일의 총통 각하, 제 누추한 집으로 들어오십시오. 여기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각하의 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기꺼이 하겠습니다.” 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아십니까? 독일의 모든 신문이 그 기사를 실었을 겁니다. 위대한 아돌프 히틀러가 평범한 병사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무엇을 요청했다는 기사 말입니다. 히틀러가 보병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그의 집에 와서 그 집을 영예롭게 해 주었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을 겁니다. 세상에, 만약...
무솔리니 시대에 여러분이 이탈리아에 있었다면 말입니다. 무솔리니는 로마의, 이탈리아의 독재자였습니다. 길가에 사는 어느 가난한 사람이 어느 날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 보니 무솔리니가 문 앞에 서 있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 가슴이 떨렸을 겁니다. “위대하신 독재자 각하, 존귀하신 각하, 제 집에 들어오십시오.” 벌벌 떨며 “제가 무엇을 해 드릴까요? 여기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각하의 종이 해 드릴 일이 있습니까?” 했을 겁니다. 아, 로마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솔리니가 자기 집에 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또 오늘 영국 여왕이 여기 투산에 와서 공항에 내린 뒤 우리 집들 가운데 한 곳으로 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중 하나의...? 우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영국 여왕이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와 저기 공항에 내린 다음, 택시를 타고 와서 여러분의 문을 두드린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예의 바른 숙녀나 신사로서 문 앞으로 가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분이 평범한 여인처럼 거기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누구신가요?” 하고 묻습니다. “저는 영국 여왕입니다.” 하며 신분을 밝힙니다. 아,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얼마나 존귀한 일입니까! 투산의 모든 신문과 미국 전역의 신문들이... 위대한 영국 여왕이 애리조나주 투산까지 멀리 와서 가난한 여러분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국에 보도될 겁니다. 여왕이 그렇게 몸을 낮추어 제 집이나 여러분의 집 문까지 찾아왔다니, 여왕의 품격이 얼마나 높아지겠습니까!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할지 아십니까? 비록 여왕은... 여러분이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분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왕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여왕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왕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존귀하신 여왕님, 제 집으로 들어오십시오. 여기 가져가고 싶으신 것이나 하고 싶으신 일이 무엇이든, 마음 편히 하십시오.” 물론 그럴 것입니다. 모든 신문이 그 기사를 실을 겁니다.
혹은 바로 오늘 아침 우리 대통령 케네디가 여러분의 문 앞에 온다면요... 여러분은 정치적으로 그분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들어오시라고 하겠지요. 왜입니까? 그가 단순히 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 하는 그 신분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그분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다를 것입니다. 그래도 케네디 대통령이 여러분의 문을 찾아온다면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가 특별히 여러분을 찾아오려고 방문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디서나 뉴스가 될 겁니다. “겸손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존 도 씨의 집을 방문하려고 애리조나주 투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분에게도 큰 영예이고, 여러분에게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은 결코 그분을 돌려보내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그러지 않겠지요!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맞아들일 겁니다.
그런데 누가 예수님보다 더 위대합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세상의 모든 독재자와 왕과 권력자보다 더 많은 문에서 거절당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으리라.” 아, 우리 문을 살며시 두드리는 그 소리들!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오늘 교회가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작은 두드림을 여러분은 틀림없이 지금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마음의 문으로 들어오시려고, 안으로 들어가시려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분께는... 여러분과 잠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통령을 존중한다면 예수님께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결코 대통령을 돌려보내지 않겠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돌려보낼 수 있습니까? 대통령은 그저 사람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의 심판자이신 바로 그분이 지금 여러분의 구원자이십니다.
대통령은 여러분을 군대에 소집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기 끔찍한 어떤 일에 여러분을 불러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을 소집하거나 무엇을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데려다가 자기 종으로 삼거나, 무슨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두드리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가지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고 싶어 하시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만약 대통령이 “내가 당신을... 당신을 데려다가 미국 대통령으로 삼으려고 왔습니다. 나에게는 그렇게 할 권한도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합니다. 여왕이 여러분을 영국 여왕으로 삼아 왕관을 쓰게 해 주려고 한다면요? 우리는 그것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결코 내놓지 않을 생명의 관, 그분의 영광의 썩지 않는 관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복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삶에 씌워 주고 싶어 하시는 관은 성령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무관심하게 그것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얼마나 경솔한 짓을 합니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그런 실수를 하다니, 사람이 얼마나 경솔해질 수 있습니까!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있는 남자든 여자든 그 두드림을, 곧 영생을 피해서 떠난다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심판의 구름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자정까지 삼 분 남았다는 과학의 말을 듣습니다. 그중 이 분도 거의 지나갔습니다. 그 말이 벌써 몇 년 전이었으니까요. 우리는 교회가 흩어진 것을 봅니다. 모든 일이 지금처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교단들이 점점 교단화하고 식어 가는 것을 봅니다. 부흥의 날들도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물론 요란한 소리는 많이 납니다. 피아노를 두드리고 펄쩍펄쩍 뛰지요. 여자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눈에 파란 화장을 하며 그렇게 행동하고, 남자들은 그것을 내버려 둡니다. 그것은 성경에 어긋납니다.
오늘날 우리 거리에서조차 보게 되는 모습이 얼마나 역겹습니까! 어제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로데오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러 내려가고 싶어 했습니다. 제 어린아이들은... 제 아버지는 말을 타는 분이셨고, 저도 말을 좀 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타고나기를 말을 좋아합니다. 말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멈추어 섰다가 속 깊이 역겨워져서 돌아섰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 속에 살려고 합니다. 지나간 어떤 것을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제 고향에는, 저는 태어나기를 켄터키 사람입니다. 제 일가도 거의 다 거기에 삽니다. 그곳에는 렌프로 밸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골 사람들을 흉내 내고, 등유 등잔을 켜고, 장작 난로에 음식을 하고, 초기 개척자들이 입던 옷을 입습니다.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어떤... 현대에 살면서도 옛날의 다른 삶으로 돌아가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합니까?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결코 변하지 않는 복음을 가져다주면 그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대적이고 최신인 것을 원합니다. 등을 두드려 주면서 교회에 가입만 하면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해 줄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정말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바로 그것이 복음을 향한 갈망인데, 그들은 육적인 것들을 과거로 돌려놓아 그것을 채우려 하면서 영적인 것들은 거절합니다. 마귀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거꾸로 뒤집어 놓는지 보이십니까? 자매님들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옛날에 어떤 여자가 어제 제가 본 여자들처럼 바지를 입고 마을을 지나갔다면... 그 여인이 어떻게 그 바지 속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피부가 겉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체 발을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걸어갑니다. 성경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여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자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눈두덩에 그 파란 것을 칠하고 옛 개척 마을을 지나갔다면, 그곳 의사가 그 여자를 병원에 넣고 마을을 격리했을 겁니다. 여자가 죽기도 전에 살이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병으로 말이지요!
그러면서 여러분은 과거로 돌아가 어떤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는, 오순절 날과 똑같은 속성을 지닌 옛 성령의 복음이 문을 두드릴 때는 거절합니다. 우리는 그림자 속에 살고 있고, 교회는 그 라오디게아 시대에 들어와 부유하여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오순절교인들도 침례교인과 감리교인들에게 너무 큰소리칠 수는 없습니다. 냄비가 주전자더러 검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도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이 시대에 그분께서 교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들어오려고 하셨습니다.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계셨습니다. “누구든지 문을 열고 나를 들어오게 하면, (오!)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으리라.”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여러분과 의논하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구원의 계획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어쩌면 여러분은 신조에 너무 굳어지고 마음이 완고하고 무관심해져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잠깐만요. 저는 이미 그분을 모셔 들였습니다.”라고 합니다. 어쩌면 바로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한 일이 그저 모셔 들인 것뿐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지옥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그리스도 없이는 그곳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모셔 들였습니다. 물론이지요. 삼십 년 전에, 이십 년 전에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한 일은 그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여러분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들어오세요. [제가 들어갑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 서 계세요. 제 집을 이리저리 살펴보거나 뒤지고 다니지 마세요.” 여러분, 사람의 마음 문 안에 작은 비밀 방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분명히 작은 비밀 방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분을 마음에 맞아들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주님으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 제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문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하지만 제 주인이 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합니다. “주”란 소유권을 뜻합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면 모든 것을 그분께서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곳이 그분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을 때 저를 원하지 않으시면 “우리 집 문 앞에서 가세요.”라고 하십시오. 문 안에 들여놓고 “이제 뒤지고 다니지 마시고 바로 거기 서 계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하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편을 더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제가 환영받는다고 느끼겠습니까? 찾아온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 들어오십시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아, 안 됩니다!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그분을 환영해야 합니다. “주님, 제 집에 들어오십시오. 혹시 무엇이든... 여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은 저의 것이십니다. 주님께서 제게 영예를 주십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위대한 왕께서 제 문을 두드리셨으니, 저는 주님께서 들어오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저를 받으십시오. 저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십시오. 제 안에 있는 모든 나쁜 것, 제 마음속에 있는 모든 비밀을 드러내 주십시오. 모든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 저를 샅샅이 살펴 주십시오.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십시오. 무엇이 잘못되었든 제게 보여 주십시오, 주님. 그것을 문밖으로 던져 버리십시오! 저는 주님께서 이 안에 계시기를 원합니다. 저의 주인이 되시도록 주님을 기꺼이 모셔 들입니다. 저는 아직 그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 이제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그분을 저의 온전한 주인으로 삼을 수 없다면 저는 아예 그분께 문을 열지 않겠습니다. 그분이 주인이 되실 수 없다면... 주인이 되실 수 없다면, 저는 그분이 구원자만 되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누구나 구원자는 원하지만 주인은 원하지 않습니다. 지옥의 모든 정죄를 피하게 해 줄 무언가를 원합니다. 그러고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자, 마음이라는 집을 한번 둘러봅시다. 십 분만 더 저를 참아 주시겠습니까? 보십시오. 잘 보십시오. 잠깐 마음을 둘러봅시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들어가는 오른쪽을 보면 작은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나의 사생활”입니다. 거기는 누구도 건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뭘 하고 싶든 내 일입니다. 교회에도 가입하고 예배도 가겠습니다. 하지만 목사님,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이래라저래라하지 마십시오!” 아, 그렇군요. “성경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아, 보이십니까?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런 마음에 머무시리라고 생각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주인이 되시려고 들어오십니다. 그분은 들어오셔서... 그분은... 그 사생활이란 참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사생활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웃과 어울려 한잔하고 싶으면 그것은 우리 일입니다. 우리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고 싶다면, 그것은... 미국인인 우리 자신의 권리입니다. 반바지를 입고 싶다면 우리 일입니다. 우리 남자들이 친목으로 한잔하고 싶고, 아내가 그렇게 하도록 놔두고 싶다면, 당신이 우리에게 한마디라도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의 말이 옳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그렇지요. 그분을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휴거가 지나가고 어느 날 우리만 남겨져서,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의아해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휴거가 정말 은밀하게 지나간다면 말입니다. 바로 그렇게 옵니다. 밤의 도둑같이 옵니다. 여러분은... 오십만 명마다, 백만 명마다 아흔아홉 명은 휴거가 일어나는 것을 전혀 모를 것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리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를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은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밤의 도둑같이 와서 소리 없이 데려갈 것입니다. 제가 한 번 읽은 책처럼 말입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밤에 와서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실 겁니다. 세상이 늘어져 잠들어 있을 때, 성경에서 말한 라오디게아 시대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살며시 들어와 그 신부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대들을 거치며, 지난 여러 시대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부활한 이들이 모두 신부에 속하여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다음에 심판들이 옵니다. 교회는 “아니, 잠깐만요. 신부가 있어야 하고, 주님의 오심과 신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떠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것은 은밀하게 옵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아,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감리교인입니다. 침례교인입니다. 오순절교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의사가 여러분에게 암이 있고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단지 이름을 붙여 주는 것입니다. 암은 마귀입니다. 여러분이 “저것은 비둘기다. 저것은 말똥가리다. 저것은... 무슨 독수리의 한 종류다.”라고 말해도 그것은... 그 병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낫게 하지도, 죽이지도 않습니다. 무엇인지만 말할 뿐입니다.
그저 말로만... 여러분은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고백만 그런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크게 말해서 우리의 간증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삶과 행동, 우리 가운데 있는 도덕성이 말입니다. “여기서 부흥회를 한다더군요.” “누가 하는데요?” “침례교요.” “에이, 우리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기에 우리를 위한 메시지를 두셨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하는데요?” “제일 하나님의 성회나 제이 하나님의 성회, 예수 이름 교회, 하나님의 교회, 혹은 다른 곳이요.” “아, 우리는 그 무리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상속 백성을 갈라놓겠습니까? 그들도 여러분처럼 성령을 받았고, 받을 때 여러분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제가 왜 이 순복음 실업인회를 좋아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우리는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시인이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한 몸입니다.’”
자, 내 사생활이라는 그 작은 문입니다. “좋습니다. 당신 교회의 교인이 되겠습니다. 순복음 실업인회에도 가입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더러 성령을 받아야 한다느니,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느니 말하지는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자기 사생활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곧장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가실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경우를 당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이 어느 집에 갔는데 그들이 “여기 문 앞에 서 계십시오. 용건을 말씀하십시오.”라고 한다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오겠지요. 예수님도 그러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지금처럼 차갑게 앉아 있는 채로 남겨진 것입니다. 순복음 실업인회가 결코 그런 상태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메시지를 듣고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 문을 열고 “주님,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라고 하십시오. 어떤 사람을 볼 때... 흉내 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를 보면... 흉내 내는 것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일 달러짜리를 집어 들었는데 그것이 위조지폐라면, 그 위조지폐는 무엇을 뜻합니까? 진짜를 본떠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위조품이 있으려면 반드시 진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참된 성령이 계시고, 참된 구원의 권능이 있고, 참된 사랑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보다 못한 것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안 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그 사생활의 문입니다. 이 문들을 서둘러 지나가야겠습니다.
교만이라는 작은 문도 있습니다. 아, 이것은 나쁜 문입니다. 그 문 앞에는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나도 내 자존심이 있소.”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얼마 전 제가 여기서 어린양과 비둘기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어린양은... 아시다시피 양은 한 가지만 냅니다. 양털입니다. 그것이 양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은 자기 권리를 내놓습니다. 양을 잡아 뒤집어 놓고 이렇게 다리를 붙잡은 다음 온몸의 털을 깎아도, 그저 누워 있습니다. 자기 권리를 내놓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 털을 기른 것은 양입니다. 그 털은 양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내놓습니다. 사람에게 다시 태어나야 하고, 죄짓는 삶에서 깨끗해져야 하며, 거짓말과 도둑질과 속임수와 교인 빼가기와 그런 짓들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화를 냅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염소입니다. 요란하게 발버둥을 치겠지요. 그러나 참된 어린양은 자기 권리를 내놓습니다.
한 번은 우리 자매님들에게... 제가 자매님들을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그분들은 우리 자매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교회를 향한 열심이 있습니다. 소돔 같은 세속성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것에 맞서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안에 무엇인가 있어서 마음에서 피가 흐르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칩니다. “마릴린 먼로나 저런 여자들을 본받지 마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사라처럼 하십시오.”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강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우지 마십시오. 옷을 한껏 빼입고 뽐내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우리 오순절 안에는 할리우드식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리를 말할 기회이며, 이것은 진리입니다. 시험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은지 알아보십시오. 어떤 여인이 “그것은 미국인인 저 자신의 권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그 권리를 내놓으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인디애나에서 아내와 함께 식료품점에 가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여인이 치마를 입고 있었던 겁니다.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여보, 저런 사람들 중에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사람도 많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왜...?” 저는 “여보, 그 사람들은 우리 왕국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저는 “우리 왕국에 말이오.” 하고 말했습니다. “아니, 나는 선교사로 세계를 여러 번 다녔소. 가 보면... 독일에 가면 독일의 영이 있소. 핀란드에 가면 다른 영이 있소. 호주에 가면 또 다른 영이 있소. 미국에 오면 또 다른 영이 있소. 그것은 한 나라의 영이오. 그리고 그 모든 영은 마귀에게 속해 있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이 세상의 왕국들은 마귀의 것이오. 마귀가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스리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러니 그것은 그 나라의 영인 것이오.” 아내가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사람이 아닌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오. 잠재적으로는 그렇소.”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인데요?” 저는... “미국 사람들처럼 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니오. 술 취하고 싸우며 수치스럽게 구는 이 무리처럼 해서는 안 되오. 절대로 아니오. 우리는 하늘의 영으로 태어났소. 순수하고 섞이지 않은 거룩함이 있고, 천사들과 의로움이 하나님 앞에 있는 그곳에서 왔소.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한 나라를 이루며 살고 있소. 맞소. 여기는 우리나라이고, 여기서 우리가 애쓰는 것은...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나고, 모든 죄가 그 깊은 틈을 건너 완전히 치워지면, 하나님의 영, 곧 창조자께서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성품을 이끄시오. 우리는 거짓말하거나 훔치거나 속이지 않소. 정직하고 올바르게, 천국 시민답게 걷는 것이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면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우리 중 너무도 많은 사람이 혼동하여, 그저 이런저런 주의나 감각적인 체험 같은 것을 쓰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교회 체계 전체가 이토록 뒤엉켜 있는 것입니다. 끔찍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쫓겨나셨지만,
그런데도... 문 하나만 더 열어 보고 마치고 싶습니다. 믿음의 문입니다. 여기 적어 놓은 문은 열두 개쯤 되지만 나머지는 건너뛰겠습니다. 믿음의 문입니다. 여러분이 “순복음 실업인회에 와 보시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어디라고요?” “순복음...” “그것은 제 믿음에 어긋납니다.” 믿음은 하나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믿음, 한 주님, 한 침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제 믿음에 어긋나요.”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그 믿음의 문에 서 계시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교회의 신조, 어떤 교단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은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들어오시게 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분은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믿음은... 기적의 날들은 지나갔고, 방언이나 예언이나 오늘날 오순절 교회가 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 따위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은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어떤 신조가 믿음의 문을 막게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문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주님이 되시도록 들어오시게 한다면... “신조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주님이 저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신조가 무엇이든, 무엇이...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마귀도 똑같이 믿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새로운 출생을 두려워합니다. 아, 여러분 자신은 새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삶이 너무 크게 말해서 우리의 간증이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출생은 어디서 일어나든 어지러운 일입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돼지우리에서 태어나도 어지럽습니다. 외양간에서 태어나도 어지럽습니다. 병실에서 태어나도 어지럽습니다. 제단에서 태어나도 어지럽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보기에 썩어 버린 자처럼 느껴지게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던지게 할 것입니다. 한때 온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던 것들도 내놓게 됩니다. 그 작고 고요한 두드림이... 길모퉁이의 작은 선교소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여기 사는 우리 미국인들은 큰 것을 믿습니다. 큰 모자, 큰 자동차, 큰 교단을 원합니다. 신조 안에 더 많이, 교단 안에 더 많이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두 큰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작고 고요한 음성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요란한 소리와 소동입니다.
한 번은 농부가 수레를 끌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수레가 덜컹거리고 달그락거리며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같은 울퉁불퉁한 곳을 지나도 흔들리지조차 않았습니다. 좋은 것들이 가득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조를 원합니다. “우리 교단이 제일 큽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저쪽 무리를 이겼습니다. 헌금에서도, 별을 주는 일에서도, 다른 모든 일에서도 저쪽 무리를 이겼습니다. 누가 교회로 가장 많은 사람을 데려올까요?”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직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돌아다니며 개종자 하나를 얻었을 때 그가 어떻게 되었다고 하셨습니까? 처음보다 두 배나 더 지옥의 자식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빌리 그레이엄의 방송에서 듣습니다... 저는 이 위대한 전도자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쓰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래 소돔에 있습니다. 그 모형을 기억하십니까? 두 천사가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심에도 똑같으리라고 하신 모형입니다. 그러나 한 분은 택함을 받고 불러내어진 교회인 아브라함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그 두 천사가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러면 그 메시지를 알게 됩니다. 그 두 사자에 관해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들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무디, 생키, 피니, 녹스, 칼뱅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 사역의 현장에 있던 사람 가운데, 이름이 h-a-m으로 끝나는 사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G-r-a-h-a-m 말입니다. 형식적인 교회를 향한 사자가 보이십니까? 보십시오. 민족들의 아버지입니다.
영적인 교회는 처음부터 그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순절을 모형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 교회에 온 사자를 보십시오. 그분은 앉아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아내의 이름은 S-a-r-r-a였는데, 이제는 S-a-r-a-h입니다. 그분은 S-a-r-a-h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인칭대명사입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너를 찾아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라가... 그분께서는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왜 사라가 웃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왜 그래야 하겠습니까? 그런 영이 교회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영, 분별의 영입니다. 그런데 그 영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거절합니다. 왜입니까? 라오디게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조와 그런 것들에 너무 물들어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들으면...” “아, 제 믿음은 그런...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참되고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아멘”으로 답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참된 성령이 그렇게 하십니다. 왜입니까? 성령께서 성경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옛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그 말씀을 부인하실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선지자가 말했듯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면서도, 남자와 여자를 죄와 세상 것들에서 해방시키는 그 권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아! 여러분이 가진 종교적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다면 그것에서 떠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옳다고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네가 벌거벗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눈멀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가련한 점입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꼭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 여기 큰길, 스톤 스트리트나 이런 큰길로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 옷이 없고, 가련하고 비참한데, 옷을 입지 않아 벌거벗었습니다. 혹은 여자가 완전히 벌거벗고 눈까지 멀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만약 그 여자나 남자가 알고 있다면 어딘가 들어가 옷을 구하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모르고 있으니, 여러분이 가서 말해 주려고 하면 “당신 일이나 신경 쓰세요.”라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들에 오순절 교회가 그럴 것이라고 하신 모습입니다. 미지근하고 부유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어느 교단 못지않게 부유합니다. 예전에 작은 선교소에 있을 때는 우리에게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큰 교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사람도 더 많고 크고 좋은 것들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교단들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 가운데서도 그분은 계속 두드리십니다. “누구든지, (개인입니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우리가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벌거벗고 눈멀었습니다. 눈멀었습니다! 실제로 눈이 멀었고, 영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켄터키에서 몹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사냥꾼이셨고, 아주 이름난 사냥꾼이셨습니다. 너구리 사냥을 하곤 하셨지요. 여기 계신 분들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애리조나에는 너구리가 살 만큼 물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군요. 하지만 그곳에는... 그곳에는 너구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너구리를 사냥했습니다. 너구리 사냥꾼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기 켄터키 사람들 좀 보십시오. 정말이지! 좋습니다. 이제 겉옷을 벗고 잠깐 설교해도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조금 갑갑했는데, 이제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정말! 짚을 채운 요가 뭔지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음, 음. 감사합니다. 마침내 고향에 온 것 같습니다. 네, 좋습니다. 옥수수빵, 동부콩 밑에 담은 옥수수 죽, 그리고 순무 잎 나물, 드셔 보셨습니까? 아, 정말이지! 그건... 이제는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할아버지는 너구리를 잡아 그 지방을 녹여 기름을 내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작은 통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베이킹파우더 통을 버리지 않고 두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비스킷 반죽을 찍어 내는 베이킹파우더 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큼직한 비스킷을 만드셨습니다. 윗부분을 집어 들면 아랫부분이 떨어질 만큼 부드러웠습니다. 거기에 수수 당밀과 집에서 만든 버터 한 덩이를 넣으면 정말 맛있었습니다. 지금 먹어도 좋겠군요. 오늘 아침에 저는 당밀을 좀 덜 먹었으니, 그런 것이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그 너구리 기름을 쓰셨는데, 우리 집에서는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그것과 철조망 상처에 쓰는 바르는 약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는 컵을 가져오고, 어른들은 그 철조망 상처약과 테레빈유를 우리에게 먹였습니다. 또 어디가 잘못되면 너구리 기름을 썼습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방 하나가 있었고 다락이 있었습니다. 이런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난간은 어린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위에서 짚 요를 깔고 잤습니다. 짚 요 위에는 깃털을 넣은 침구, 깃털 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널빤지 지붕을 달빛 아래서 얹었기 때문에... 구멍이 생겨 눈이 날려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밤에 눈이 우리 얼굴에 들이치지 않도록 우리 위에 천막 천을 덮어 주셨습니다. 이 어린 브래넘 아이들 말입니다. 발치에 둘, 머리 쪽에 둘, 가운데 둘이 누웠습니다. 온갖 자세로 잤습니다. 새끼 돼지들처럼 그 안에서 뒹굴며 서로 몸을 덥혀 주었습니다.
찬바람이 불 때 가끔 우리 중 하나가 천막 천 밖으로 나오면 감기에 걸리곤 했습니다. 눈에도 감기가 들어, 아시다시피 끈적한 것이 눈에 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눈곱”이라고 하셨습니다. “눈에 눈곱이 끼었구나.” 하셨지요. 아침에 잠에서 깨면 어머니가 “빌리, 어서 내려와. 학교에 갈 시간이야.”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엄마, 눈에 눈곱이 끼어서 안 보여요.” 하고 말했습니다. 제 동생 험피도 잠에서 깼습니다. 이름은 에드워드였는데 장난으로 험피라고 불렀습니다. 동생도 “저도 눈곱이 끼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너구리 기름 통을 난로에 올려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다 녹이신 다음 계단을 올라와 우리 눈에 문지르고 마사지해 주셨습니다.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그러면 눈곱이 없어졌습니다. 너구리 기름은 눈곱 낀 눈에는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한파가 불어닥쳤는데, 너구리 기름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안약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눈이 너무 멀어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기 교단만 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저 멀리 곧 오실 주님께는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너구리 기름은 거기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안약은 여러분의 눈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성령으로 여러분 눈에 안약을 발라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감리교인인지, 침례교인인지, 일신교인인지, 이신교인인지, 삼신교인인지, 하나님의 교회 교인인지, 나사렛교인인지, 순례자 성결교인인지 잊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속하여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해야지.” 하고 애써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여러분 안에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그 힘이 여러분을 기도로 이끕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가장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합니다. 기도 모임이 저절로 솟아나는 우물물처럼 여러분에게서 흘러나옵니다.
저는 지나다니곤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수렵감시관으로 일할 때 큰 샘 하나를 지나곤 했습니다. 샘물이 이렇게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샘 곁에 앉아 “넌 뭐가 그리 기쁘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 물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습니다. “뭐가 그리 기쁘니? 토끼들이 네 물을 마셔서 기쁘니?”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니요.”라고 했을 겁니다. “사슴들이 네 물을 마셔서 그러니?” “아니요.” “내가 네 물을 마셔서 그러니?” “아니요.” “그럼 왜 그렇게 기쁘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보글보글 솟아오르니?”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 겁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제 뒤에 있는 무엇이 저를 밀어 올려서 계속 솟아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려고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안에 성령께서 계시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분의 안약으로 여러분의 눈에 기름부음을 받으십시오.
마치면서... 여러분이 이렇게 지칠 때까지 붙잡아 두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이 첫 번째인가 두 번째인데 말입니다. 너무 오래 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이제 이런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남부에 연로한 흑인 오순절 형제님이 한 분 계셨는데... 참으로 진실한 그리스도의 종이셨습니다. 그 교회에 나오는 연로한 흑인 자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분이었고, 참 훌륭한 인품을 지녔습니다. 그분에게 남편이 있었는데 좋은 노인이었습니다. 이름은... 사람들은 가브리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짧게 줄여 게이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해도 그분이 교회에 함께하도록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교회에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늘 어울리던 당구장의 친구들이 교회 사람들을 성령에 취해 뒹구는 무리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는 겁니다. 게이브가 하는 일이라곤 일요일 아침 자기 당구채를 들고 당구장 같은 곳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참으로 경건한 성도였습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목사님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게이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기서 작은 장사를 했습니다. 모퉁이에서 조그맣게 구두를 닦는 일을 했습니다. 구두를 닦아 당구 칠 만큼 돈을 벌면 당구를 쳤습니다. 그러니 복음에 발맞추어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게이브는 사냥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목사님도 사냥꾼이어서 게이브를 데리고 사냥을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 종일 광야와 늪지를 걸어 다닌 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사냥감이 너무 많아 겨우 짊어지고 갈 정도였습니다. 토끼와 새들을 온몸에 둘러메고 걸어가다가 익숙한 옛길로 돌아 올라갔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서 아래쪽 작은 도시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이었고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문득 뒤돌아보았습니다. 게이브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니 게이브는 어깨 너머로 서쪽 지평선에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뒤를 보니 게이브는 아무 말 없이 걸으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몇 분 더 걸었습니다. 잠시 후 커다란 검은 손이 어깨에 얹혔습니다. 놀라 돌아보니 게이브가 목사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 이렇게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게이브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일 아침에는 제가 바로 저 회개의 자리 맨 앞에 나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돌아와 제 신실한 아내 곁에 앉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본향으로 부르실 때까지 그 교회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물론 목사님은 놀라서 돌아보았습니다. “게이브, 나는 여러 해 동안 이것을 바라고 기다리고 사모하며 기도했어요. 게이브, 정말 결심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네, 목사님,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성령을 받고 싶습니다. 내일 아침 그 회개의 자리로 나와, 받든지 아니면 바로 거기서 죽든지 하겠습니다.” 목사님은 “게이브, 참 고마워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군요. 내가 한 어떤 설교가 마음을 움직여 이런 결심을 하게 했나요? 내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어떤 주제로 설교했는지 알고 싶어요. 아니면 성가대가 부른 어떤 찬송이 마음을 움직여 이 위대한 결심을 하게 했나요, 게이브?” 하고 물었습니다. 그 흑인 노인은 목사님을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해 주신 모든 설교가 참 감사합니다. 해 주신 모든 말씀이 감사합니다. 성가대가 부른 좋은 찬송도 모두 감사합니다. 하지만 목사님,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저기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저의 해도 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 몸의 빛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서도 사실입니다, 여러분. 해가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제 삶에서 지고 있고, 문명이 누리는 시간 위에서도 지고 있습니다. 문명은 끝났습니다. 그분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다. 이제 문을 열어라.”라고 말하는 어떤 것, 그 작은 두드림이 바로 그분입니다. 게이브는 그것에 귀를 기울였고 돌아섰습니다. 게이브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총을 잘 못 쏘는 것 아시지요. 아무것도 못 맞히잖습니까. 아시잖아요. 그런데 이 사냥감들 좀 보십시오. 아내와 제가 다음 주 내내 먹을 만큼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맞힌다는 것을 아시지만, 그분이 제게 주셨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틀림없이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에게 이렇게 잘해 주시지 않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그것을 깨달아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인도에는, 제가 압니다. 어린아이들이 길바닥에 누워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작은 잇몸이 이렇게 내려앉은 채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어린 어머니는 이 아이라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런 아이가 수천 명이나 더 있습니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와서 들것 같은 것에 실어 화장로로 가져가 그 안에 던집니다. 거기에는 요한복음 14장이 없습니다. 땅의 풀이나 나무껍질, 무엇이든 먹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습니다.
우리가 쓰레기통에 긁어 버리는 음식만으로도 그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여기서 얼마 안 되는 음식을 먹으려고 일 달러 오십 센트쯤 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자동차를 몰며, 좋은 집에 삽니다. 여기 계신 사업가 여러분은 제가 간증을 들어 보니 사업이 잘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잘해 주십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십니까? 그래서 그 두드림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여러분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 작고 고요한 음성이 너무 여러 번 두드려서, 지금은 아주 희미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정직해집시다. 하나님과 우리 자신 앞에서 단 일 분만 정직해집시다. 마음 저 깊은 곳의 그 작은 두드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행동을 좀 억제해야겠다. 달라져야겠다. 바로잡아야겠다. 내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여기 보자. 이 말씀으로 내 삶을 살펴보니 잘못된 것이 참 많구나.” 주위를 둘러보며 얼마나 좋으신지 보십시오... 그분의 선하심이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했든, 얼마나 죄를 지었든, 얼마나 거절했든, 나중에 하겠다고 얼마나 말했든, 그 모든 일 가운데서도 그분은 여전히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남자나 여자나 마음만 열면 내가 들어가 함께 만찬을 먹으리라.” 우리 머리를 숙이는 동안, 오늘 아침 그분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오, 나의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 주님을 더 사랑할 은혜를 주십시오, 주님! “내가 예수님께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한다고 마음속에서 계속 말하는 이 작은 무언가는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일까?” 오늘 아침 그 두드림에 문을 열고 싶으십니까? 이제 모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아 주십시오. 마음 깊은 곳에서 잠깐만 정말 정직해지십시오. 여러분의 문에 그런 작은 두드림이 있습니다. 잠시 후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있는 그 신비로운 작은 무언가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고, 그분이... 오늘 아침 그분께서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제 마음을 열어 그분을 모셔 들일 믿음과 은혜를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제 문을 두드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무언가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어쩌면 더 가까이 동행하라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역으로 부르시는 것일 수도 있고, 제 자신을 내어 맡기라는 것일 수도 있고, 성령을 받으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고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방에서 드시는군요. “제 마음의 문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마 육십에서 칠십 퍼센트쯤 되는 분들이 드셨습니다. 머리를 숙인 채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시인이 말했듯이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겨 모든 죄의 얼룩을 씻습니다. 죽어 가던 강도는 그날 그 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처럼 더러운 저도 거기서 제 모든 죄를 씻게 하소서.” 아버지, 이분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어떤 분들은... 틀림없이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안에는 손을 들 만큼 참된 죄의 깨달음이 있습니다. 주님, 손을 들 마음의 찔림조차 없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구속받을 수 있는 지경을 지나 버린 것입니다. 그 상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방황하는 혼이 어둠 속으로 헤매어 들어가, 비참하게 눈이 멀어도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두드림을 듣고도 너무 여러 번 그 영을 근심하게 하여, 마침내 다시는 두드림이 오지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신조 같은 것을 하나 붙들고 남은 평생을 그것에 따라 삽니다. 그러다가 그 심판 날에 가서 낭패를 보게 됩니다.
주님, 손을 들며 이렇게 말하는 이분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주님,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 예수님,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오늘 저에게 주님 자신을 드러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삶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제 삶을 살펴보니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큰 작업장으로 저를 데려가 빚어 주십시오. 제게서 세상에 속한 것과 경건하지 않은 것을 모두 없애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 제가 아직 그 선을 넘어선 자리에 이르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그 선은... 한 번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선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마지막으로 근심하게 하고 나면 돌아올 길이 전혀 없는 그 선 말입니다.” 은 삼십에 자기 주님을 팔아 버린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기와 세상의 염려, 종교 조직과 교단과 신조를 위해 그렇게 합니다. 그저 아무것과나 그분을 바꿔 팝니다.
오, 주님, 정직한 마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그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들어 주십시오, 주님, 들어 주십시오.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믿음과 함께 이 큰 갈망이... 이런 일들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들어가 그 모든 형편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세상에 속한 것을 모두 몰아내시고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어 주십시오.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 고통이 이렇게 많음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제 위대한 의사께서 그들의 육체도 만지시고 그것을 그분의 집, 그분의 거처로 삼아 주십시오. 부르기만 하면, 마음에서 살며시 부르기만 하면 그분께서 손을 내미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위대한 의사께서 일하십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머리를 숙인 채 참으로 겸손하고 조용하게, 교회에서 오래 불러 온 이 찬송을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여러분이 구한 것을 이제 믿으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있던 그 작고 고요한 두드림, 이제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것을 믿으십시오. 조용히 함께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제 머리를 숙인 채, 마음에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분들은 이렇게 하십시오. “주님, 이제 모든 것을 없애 주십시오. 이 시간부터 이 식탁 앞에서 저를 주님께 바칩니다, 주님. 그 위대한 혼인 만찬에서 주님을 다시 뵙겠습니다. 오늘 아침 제 삶을 주님께 바치오니 도와주십시오, 나의 주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참된 성령께서 들어와 제 삶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저를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실 때까지 구하겠습니다. 오늘 이 식탁 앞에서 저를 주님께 바치며 약속합니다, 주님. 손을 들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제 손을 들고 눈을 감은 채 부르십시오. 주를 사랑해, 이제 자신을 바치시겠습니까? 주를 사랑해, 날 먼저...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아버지, 이 손들을 보시고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제 식탁 건너편으로 손을 뻗어 누군가와 악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순례자님. 오늘 아침 함께 있어서 기쁩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가톨릭교인, 장로교인, 모두 함께 어울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메시지는 마음을 찌르고 매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자,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토니 형제님, 축복합니다.
이제 잠깐 일어섭시다. 손과 마음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올리며, 모든 신조에 속한 이들이 이제 모두 믿으면서... 기도했으면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그것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제가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제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쳤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하나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주님 앞에서 걷겠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분명한 실재가 되어 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온전히 감추어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찬송 인도자분이 여기 계십니까? 은혜로운 옛 찬송을 부릅시다. “나의 믿음이 주님을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이시여, 거룩하신 구원자시여.” 피아노에 계신 자매님이 음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이 찬송을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자, 목소리를 높여 힘껏 부릅시다. “나의 믿음이 주님을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이시여.” 이제 다 함께 부릅시다. 나의 믿음이 주님을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이시여, 오, 거룩하신 구원자시여. 지금 제가 기도할 때 들어 주시고, 제 모든 죄를 없애 주십시오. 오, 오늘부터 제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인생의 어두운 미로를 걸어가며, 슬픔이 저를 에워쌀 때, 기억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저를 인도하소서. (들으십시오!) 어둠이 낮으로 바뀌게 하시고, 저의 모든 두려움을 씻어 주시며, 제가 결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콧노래로 부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