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네빌형제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친구분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다시 성전에 와서 아름다운 구조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의 집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됨은, 정말로 제 인생의 절정기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제 여기에 와서 건물 모양을 보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런 식으로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이 그린 청사진을 보았을 때, 한 쪽에 작은 방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보니까 그 방은 아름다운 곳이군요. 그리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이 아름다운 곳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아침, 저는 아내와 아이들의 안부를 전합니다. 그들은 이번 이 헌당예배와 이번 주간 동안 그리스도께 헌신하기 위하여 이 곳에 무척 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결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옛날에 살던 집에 대한 그리움을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여러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저는 도처에 있는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오래된 친구는 뭔가 다릅니다. 아무리 새 친구들을 사귄다해도, 새 친구는 그래도 오래된 친구만은 못합니다. 제가 어디를 가더라도, 이 곳은 항상 신성한 곳이 될 것입니다. 약 삼십 년 전 여기가 진흙투성이의 연못 바닥이었을 때, 저 는 이 땅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쳤습니다. 이 곳은 전체가 연못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로들이 거기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 있었던 연못을 피하기 위해서 길이 빙 둘러서 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연못에선 연꽃이 폈었습니다.
그런데 연꽃은 아주 이상한 꽃입니다. 비록 진흙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 꽃은 진흙을 뚫고 물을 통과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꼭대기까지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바로 그 일이 이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이후로, 조그만 연꽃이 위로 계속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물 꼭대기까지 다다랐을 때, 그것은 날개들을 펼치고, 그 작은 꽃잎들이 나와서 저 산 밑의 백합꽃을 반영했습니다. 그것이 오래토록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완전히 봉헌된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English page 2)
성막 자체는 1933년 봉헌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헌당예배를 짤막하게 다시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특히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사람들에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 각자 모두에게 이 교회를 그리스도께 바치기 위하여 헌금과 기타등등을 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무척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저는 이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한 여기에 계신 우리 교회의 훌륭한 형제들, 우리의 고귀한 형제인 뱅쓰 우드형제, 로이 로버슨형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전심을 다해 이 곳이 예전에 있던 식으로 올바르게 지어지고 있나 보려고 여기 머물면서, 건축하는데 몇달을 보낸 다른 여러 형제님들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설교단을 보려고 들어왔었는데, 제 평생 늘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드형제는 제가 어떤 설교단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주겠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는데,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건물과 구조가 어떤지 살펴 봤는데, 그것은 그저, 오, 최고입니다. 지금, 제 마음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군요. 아시겠지만, 말로는 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해하실 겁니다. 이 장소를 주님의 집인 현재의 건물로 만들기 위하여 하신 모든 일과 공헌으로 여러분 각자가 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팎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건물은... 제 아내의 형제인 주니어 웨버가 벽돌 공사를 맡았습니다. 저는 이 보다 더 잘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여기에 계신 형제님, 저는 그 분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이 음향장치를 했습니다. 음향효과에 있어서 이와같이 낮은 건물에서도 소리가 되울리지 않습니다. 음향기기들은 여기 천정 속에 여러가지 다른 방식들로 장치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서든지, 똑같습니다. 각 방에는 확성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듣고 싶으면 어느 방향에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행하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분을 경배드릴 수 있는 건물을, 약 삼십 년 전 것보다 훨씬 좋은 건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진흙 바닥, 톱밥 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 오래된 석탄 난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건설업자인 우드형제와 한 형제와 로버슨형제가 제게 말을 할 때, 그 벽기둥들이 있는 곳에는 그 오래된 난로들이 놓여 있었는데, 건물을 가로지른 서까래에 불이 붙어 약 60 내지 90 센치가 타 들어갔습니다. 왜 그 서까래가 타서 무너지지 않았는가 하면 오직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서까래가 탄 후 성막의 무게가 다 그것 위에 놓여졌을 때, 서까래가 떨어져 내려오지 않은 이유는 다만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서 였습니다. 지금 건물은 철근으로 기초가 되어 있고, 튼튼하게 지어져서 땅 위에 서 있습니다.(Eng.p. 3)
이제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뜻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내부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곳이 우리가 찾아 오는 아름다운 건물이 될 뿐만 아니라, 이 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와 계신 분들 모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성품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곳이 우리 주님께 구별하여 바쳐진 장소가 되기를, 성별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우리는 정말로 그것을 감사히 여기지만, 교회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곳이 항상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처음 모퉁이돌을 놓았던 헌당예배 때는, 위대한 환상이 왔고, 저는 교회를 봉헌하던 날 아침에 모퉁이돌 안에 그것을 써 넣었습니다.
여러분은 몇 분 전에, 제가 나오는데 왜 그리 오래 걸리나 궁금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 새 교회로 오기 전에 저는 먼저 사무실 안에 서서 어떤 젊은 남녀를 결혼시켜야만 했습니다. 그 일이, 제가 그리스도의 신부를 그 날의 예식에 준비시키는, 그리스도께 충실한 목사가 될 예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우리가 처음에 했던 대로 합시다. 우리가 교회를 처음 봉헌하여 시작했을 때, 저는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모퉁이돌을 놓았을 때 저는 스물 한 살인가 스물 두 살이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결혼도 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경배할, 하나님께 정말로 질서가 잡혀 있는 장소를 늘 보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을 아름다운 건물로가 아니라 성별된 생활로 할 수 있습니다. 성별된 생활로만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 봉헌을 하기 전에, 봉헌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좀 읽고 하나님께 교회를 다시 바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오늘 아침에는 복음 전도에 대한 말씀을 전해서 앞으로 있을 제 설교들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밤에는, 일곱 교회 시대로부터 일곱 인으로 섞여져 들어가고 있는 요한계시록 5장을 다루고 싶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월요일 밤에는 흰 말을 탄 자, 화요일 밤에는... 검은 말을 탄 자, 그리고 계속 내려가면서 네 말탄 자들에 대해서 설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인이 열리고. 그리고나서 일요일 아침에는,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는, 나중에 가서 알아보고 그것에 대해 광고하겠습니다. 아마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 안에서 환자들을 위해 기도 모임을 열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일요일 저녁에는 다 끝내고... 주님께서 우리가 한 절 밖에 안 되는 짤막한 일곱째 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 절은 이렇습니다.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그 침묵으로 인해서.
그런데, 저는 이 인들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 아침 이 곳에 계신 분들처럼 저도 그것들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이 내놓은 교회의 이론들이 있지만 (Eng.p. 4) 그것들은 일곱 인을 절대로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보시면, 그 뜻은 영감에 의해서 와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어야만 합니다. 그 분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인데, 그 분은 어린 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 구속의 책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픈 분들을 위한 기도 모임을 말씀드리지 않는 이유는 제가... 저는 친구 몇몇과 함께 있으면서 시간을 전부 공부와 기도에 바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여길 떠나서 서부로 가기 전에 일곱 천사가 날아오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중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 건물 안에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교회 건물이 봉헌되었다면, 잠시 후에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봉헌될텐데, 우리는 교회 건물을 그런 식으로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건물 안에서는 절대로 사거나 팔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예배당 안에서는 절대로 어떤 장사도 해서는 안됩니다. 이 곳 안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됩니다. 말하자면, 목사들이 들어와서 책이나 기타등등을 팔게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그 일이 무슨 일이든지 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장소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집에서 팔거나 사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 집은 예배드리는 장소이고, 거룩한 곳이며, 그 목적을 위해서 구별된 장소입니다. 그렇죠? 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장소를 주셨습니다. 이 곳을 하나님께 바치고 아울러 우리들 자신도 하나님께 바칩시다.
그런데, 이 말은 좀 무례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예배당은 방문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예배당은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이 곳 안에서는 예배드리는 말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 외에는 한 마디라도 중얼거려서도 안 되고 서로 속삭여서도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로 우르르 모이면 안 됩니다. 건물 내에서 절대로 뛰어다녀서도 안 되고 아이들을 뛰어 돌아다니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서, 얼마전에 이렇게 해야겠다고 느껴, 우리는 그런 모든 일들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축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여기에 정착시켰습니다. 물론, 처음 나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성도들은 이 건물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바쳐진 장소임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자신을 바치면서, 우리가 그 성전으로 들어갈 때는, 서로 조용히 하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걸 명심합시다.
여러분이 서로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여기저기 걸어다니지 마십시오. 그런 곳에서는 듣거나 생각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게 만드니까요, 아시겠죠. 너무나 소란하고 그렇습니다. 소리를 내는 것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들이 여러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아 왔는데 기분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성전에 서로 만나러 온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곳에 하나님을 경배하러 왔고 그리고는 집으로 갑니다. 이 성전은 예배드리는 데 바쳐친 곳입니다. 밖으로 나가서는 올바르고 거룩한 대화라면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말하십시오. 서로서로의 집엘 가십시오. 서로서로를 방문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저 문을 들어오실 때는, 조용히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기에 주님께 얘기를 하러 옵니다, 그렇죠, 그러니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기도의 문제점은,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잘 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 들어오시면, 주님을 기다리십시오.(Eng.p. 5)
그런데 옛날 성막 안에서, 봉헌하는 그 날 참석하셨었던 분이 오늘 아침에는 한 분도 안 계실지 모릅니다. 그 날 얼리히시장이 음악을 연주했었습니다. 저는 그 장소를 봉헌하려고 여기 세 개의 십자가 뒤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하기를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내인들은 저 문에 서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밖에서 얘기를 다 했으면, 안으로 들어 오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하고 싶으면, 가만히 제단으로 나와서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좌석으로 돌아가서 성경책을 펴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말을 하고 싶어지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나중에 밖에서 그를 볼 것이다. 나는 이 곳에 주님을 경배하러 와 있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아니면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다음, 음악은, 거티자매는, 오늘 아침 깁스자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피아노가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구석 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를 부드럽게 연주하곤 했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을, 몇 곡 연주하고, 그런 다음 예배 드릴 시간이 되면, 찬송 인도하는 분이 나와서 회중들이 찬송을 두세 곡 부르고, 그 다음에 노래 잘 하는 분이 몇 분 있으면 특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법썩을 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나서 계속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 다음 제가 그 소리를 들으면, 저는 제가 나올 시간이 됐음을 알았습니다. 회중들이 기도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있는 가운데, 목사가 걸어들어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천국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혼란스런 가운데로 걸어들어오면, 너무나 혼란스러워져서, 성령이 근심하게 되고, 우리는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이 곳에 예배드리러 오길 원합니다. 우리는 좋은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잠시 후에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집으로, 우리는 친구를 방문하기도 하고,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이 곳은 주님의 집입니다.
이제,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제, 어린애기들이 있습니다. 애기들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애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우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마실 물을 원하고 어떤 때는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방 하나를 바쳤습니다. 목록에 보면 그 곳은 “울음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저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곳은, 다시 말해서, 어머니들이 애기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기 강대상에 있는 저를 절대로 방해하지 않을겁니다. 아마 기름부음을 받고 있으므로, 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은 여기에 설교를 듣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애기들이 칭얼대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애가 칭얼대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여러분은 애기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진정한 어머니라면 자기 애기를 교회에 데리고 오기를 원할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기에 이 예배실의 네 모퉁이와, 예배실 전체를 볼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확성기가 거기에 있어서 원하는 대로 음량을 조절할 수 있고,(Eng.p. 6) 한 쪽에는 조그만 좌변기와 세면대가 있고 어머니들이 편리하도록 완벽하게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그런 것들이 있고 애기의 기저귀를 갈 필요가 있으면 거기 앉아서 갈아 채울 수도 있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모든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부분 십대 아이들이 때로는 어른들까지도 자주... 아시다시피,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쪽지를 주고 받거나, 장난을 치거나 다른 짓을 교회에서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정도의 나이는 되었습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그래선 안된다는 걸 더 잘 압니다. 아시겠죠? 여러분들은 여길 오지 말았어야...만약 여러분이 언젠가 진정한 남자가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왕국에다 가정을 이끌려면, 처음부터 잘 시작하십시오, 아시겠죠, 그리고 올바른 행동을 하시고 바르게 행하십시오, 그런데 물론, 지금. 그리고, 안내인들은 구석에 서 있다가 소란이 일어나면, 그들은 임명이 되어 그러한 임무가 주어졌는데, 이사들은 이 앞 쪽에 앉으시고, 누군가가 그른 행실을 하는 경우에, 그들은 그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당부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었던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듣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한 그 목적때문에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 곳에 그 목적으로 왔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러므로, 누구나가 다 말씀을 듣기 원하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하게,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하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과다한 말과 소란을 삼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경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이 곳에 온 이유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지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면, 그냥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여기에 온 이유이며, 자신의 방식으로 주님을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얘기를 하거나 쪽지를 건네거나 다른 사람이 주를 경배하지 못하도록 하면 아무도 주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 교회에서, 우리 회중들 가운데에서 규칙으로 세우고, 그것을, 이 건물에 따른 규칙으로, 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을 전하는 목적에 바쳐질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경배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여기에 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배드리려고, 그리고나면.
그리고 또 한 가지, 예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안에서... 저는 항상 이 곳에 없기 때문에, 아시겠죠, 떠나 있기 때문에, 저는 ...않습니다--그런 일이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개, 저는 설교할 때에도, 기름부음이 오고, 환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저는 탈진상태가 됩니다, 저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아마도 빌리나 다른 누군가가 절 태워 집으로 데려가서 제가 그것에서 벗어날 때까지 저를 잠시 쉬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단한 긴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러 교회들을 보았는데, 성전에서 아이들을 이리저리 마구 뛰어 다니게 놔두고,(Eng.p. 7) 어른들도 서서 저쪽 끝에 있는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 날 저녁이든지, 시간이 언제든지간에, 그날밤 예배를 망치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시겠죠?
예배가 끝나자마자, 예배당을 나가십시오. 그 때는 여러분은 경배를 끝마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밖으로 나가서 서로 얘기하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거나 만나고 싶다면,그들과 함께 가든지 그들의 집엘 가든지 어디로 가든지간에, 그러나 예배실에서는 말하지 마십시오. 이 곳을 하나님께 바칩시다. 이 곳은 우리가 그 분을 만나는 주님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이 성전으로부터 나갑니다, 물론.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와서 여러분들 가운데 은사들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런데, 대개 그런 일이...저는 그런 일이 결코 여기에서는 없으리라고 믿는데--사람들은 새 교회를 갖게 되면,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회중들은 형식을 차리며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결국, 이 곳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이 곳은 주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만약 영적인 은사들이 여러분들 가운데 오게 되면... 제가 없을 때 사람들이 이 곳을 그들의 가정으로 삼고자 제각기 다른 주(州)로부터 이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제가 믿기로는... 젊은 청년으로서, 헌당예배를 드리고, 정초식을 올렸던 그 날 아침에, 저는 정초가 서 있을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성막을 바쳤을 때, 수천 달러의 빚을 졌습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의 회중들에게서 헌금을 걷는다면 30내지 40센트를 모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갚아야할 빚은 한 달에 약 150 달러내지는 200달러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제가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17년간 봉급을 일 센트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제 생활가운데서 나오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저 뒤에 있는 조그마한 상자에 들어가는 돈은 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로 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언하고 예고하기를 일 년이 되기 전에, 이 곳이 차고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사탄이 흠을 하나 잡아, 소송으로 사기쳐서 그것을 빼앗아 가려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일하다가 발을 다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고소를 했고 성막을 뺏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몇주동안 저는 골치를 앓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오해들과 예고들과 사람들이 말했던 것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실 중의 하나로서, 미국에 있는 좋은 교회들 중의 하나로서 오늘날 서 있습니다. 맞습니다.
여기에서 전 세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로, 그것은 계속 하늘 아래 우리가 아는 모든 나라로부터 전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세상을 돌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고맙게 여깁시다. 이 사실에 대해서 감사히 여깁시다.(Eng.p. 8) 그런데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장소와 지붕 아래 머리를 둘 수 있는 장소를 가지고 있는 이상, 앉아 있을 수 있는 깨끗하고 좋은 교회를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들 자신을 새롭게 임무에 바치고 우리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칩시다.
우리의 귀하신 형제이자 진정한 목사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인 네빌형제는. 그는 메시지를 아는 한, 전심으로 그것을 꼭 붙듭니다. 맞습니다. 그는 온화한 사람입니다. 그는 약간 무서워 하는데, 무서워 하는게 아니라, 제 뜻은 그게 아닙니다. 그는 너무나도 온화해서 언성을 높이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날카롭고 절단하는 것 같은 말들을. 예를 들어서 “앉으시오!”라든가 “조용히 하시오!”같은 말들을. 저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테이프에서 나는 소리를 열중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그것은 제가 한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말은 모두 테이프에 녹음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녹음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제발, 집사들은 모두 자기 임무의 직책을 잘 담당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 직책을 신성하게 지키십시오. 아시겠죠? 모든 이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 ...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목사의 위치가 아닙니다. 이사들입니다... 아니, 집사들입니다, 왜냐하면 집사들은 교회의 경찰이기 때문입니다. 즉, 만약 젊은 연인들이 밖으로 나가서 차 경적을 울리거나,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그들이 대개 어떤 짓을 행하고 아니면 그와 비슷한 짓을 하는지, 예배 중에 그러건 바깥에 나가서건. 그런데 어머니들은 딸을 이 교회로 가라고 보냈는데, 딸은 어떤 믿지 않는 청년과 함께 빠져나가, 차를 타고 달아나고, 그녀의 엄마는 딸이 교회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집사는 그런 일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너 여기로 들어와서 앉아 있든가 아니면 내가 널 내 차에 실어서 엄마에게 데려다 주겠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랑은 잘못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그렇죠, 언제나. 진정한 사랑은 잘못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고침받는 것을 참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이제 저기에 애기들을 위한 장소가 있다는 걸 압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예배실을 뛰어다녀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죠? 어른들인 여러분은 예배실에서 말하고 대화를 해서는 안됨을 아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하는 일이니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기록된바, 내 집은 예배하는 집,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고 팔고 있었으며,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 내셨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 곳 성전 안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교회와 일과 봉사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바칩시다.
이제, 저는 봉헌 기도를 드리기 전에 성경 몇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재헌당입니다. 왜냐하면 30년 전에 이미 봉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고나서, 우리가 이 성경 구절을 읽고 그것에 대해서 몇 분 동안 얘기를 하고나면,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Eng.p. 9) 그리고 제가 말할려고 했던 게 있었는데. 네! 녹음기와 그런 것들이 있었던 곳에, 우리는 지금 녹음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녹음기들을 연결할 수 있고 주 마이크에서 직접 들려오는 모든 것들이 설치되어 있는 방이 있습니다. 방도 여러 개 있고, 침례식을 위한 침례복과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항상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여기에서 일이 있었던 때를 저는 기억합니다.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형제가 다른 교파가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는 카톨릭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무척 흥분했습니다. 저는 어떤 성경을 연구하는 분이든지 누구든지 아니면 어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든지 카톨릭은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에 대해 선택권을 가졌다고 말할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은 카톨릭교를 나타내는게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을, 나라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성자는 카톨릭교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분 중보자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카톨릭교인들은 온갖 종류의 중보자들을 믿고 있는데 수천 명의 남자와 여자 중보자들이 있습니다. 착한 카톨릭교인이면 누구라도, 죽으면 거의 중보자가 됩니다. 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초대교회에 대한 고대 역사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알리고 증명하기 위해 어디를 가든지 등에 십자가를 지고 다닌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이제 와서, 카톨릭교인들은 그 사람들이 바로 자기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네가 초기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카톨릭교회는 조직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등(crossback)”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분은 들으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그 말을 카톨릭교인에게 붙입니까? 십자가등이 진짜 카톨릭교인이며 세계의 보편적인 성령교회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카톨릭교인들입니다. 우리가 최초의 카톨릭교인들, 성경을 믿는 카톨릭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조직된 카톨릭교인들입니다. 우리는 조직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침례를 유지하며, 초대교회가 갖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유지하지만 카톨릭교회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십자가상을 여기에다 걸어 놓았습니다. 그 십자가상은 예수님께서 그 나무 아래서 기도하셨던 감람나무로 조각된 것인데, 수 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아갠브라이트형제가 제게 준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 교회와 함께 바치고 싶습니다. 누가 걸었는지 얼마나 적절한 장소입니까. 저는 누가 그것을 저기에 걸어 놓았는지 모릅니다. 제--제 왼쪽에다. 그가 오른쪽에 있는 강도를 용서하셨더라. 그 강도는 접니다.(Eng.p. 10) 그리고 또하나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예수님의 머리는 숙여져 있다는 것인데 여러분은 그 분의 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머리는 제단 위를 쳐다보고 있고 그 분은 죄인인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내려다 보실 것입니다. 나중에 제단 앞으로 죄인들을 부르는 시간에는 여기에 있는 조그마한 불을 켤 것이고, 그 불은 그 얼굴 위를 비추고... 사람들이 여기에 ...할 때에.
여러분은, “왜 그게 필요합니까? 우리는 우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됩니다.”하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너희를 위해 새겨진 우상을 만들지 말라”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룹 둘을 만들고 날개가 스치게 하고 그것들을 사람들이 기도하는 속죄소에 두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것은 영감을 받아 제자리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제가 오른 쪽에 있는 사람이 된 것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아는 한, 제 평생에 한 번도 훔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너무나 잘못 사용해서 그런 식으로라면 훔쳤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전 제가 하지 말아야 했던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죄를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해서 오늘 아침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역대상 17장을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봉헌 예배로 약 오 분간만 얘기를 하고 기도하고 그 다음에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자, 역대상 17장에서.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나단이 다윗에게 고하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이스라엘을 올라오게 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사사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하고(Eng.p. 11) 연하여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저는 여기서, 다윗은 우리가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백성들은 나에게 백향목궁을 지어주었는데, 내 하나님의 언약궤가 여전히 휘장 아래 있는 것이 옳지 않도다” 그 휘장은 양과 동물들의 가죽을 꿰매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나는 좋은 집에서 살고 내 하나님의 언약궤는 장막 안에 있음이 옳지 않도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성전을 지을 생각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랑이 많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했습니다...다윗은 당시의 선지자 나단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단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심을 알고는 “다윗이여,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다 행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말입니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다 행하소서.” 그런데 그 날 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준 후.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 일을 하라는 허락을 받지 않고 실수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시사 나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를 목장에서 취하였다.’” 그저, 다윗은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고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잠시동안 그것을 적용시키고 싶습니다. “내가 너를 아무 것도 아닌데서 취하고 내가 너에게 이름을 주어--너는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싶습니다, 요지를 설명드리기 위해서. 저는 ...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년 전에 제가 이 곳 도시에 서 있을 때, 아무도 절 관심있게 돌봐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절 사랑하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집안내력 때문에 아무도 절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제 소중한 부모님을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살아 계셔서 오늘 아침 이 성전으로 걸어 들어오실 수 있다면 하고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이 곳에 이 교회를 짓기 위해 헌금을 낸 옛날 분들이 계단 난간 위에서 내려다 보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브래넘집안은 술 마시는 것 때문에 이 곳 주위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저와는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에게도 말했지만 저는 아무도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무도 제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휴식을 갖기 위해서 숨어야 할 정도입니다.(Eng.p. 12)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좋은 장소를 주셨고 위대한 일들을 행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게... 나쁜 이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람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제게 주셨고, 제가 어디를 가든지 제 대적들을 멸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그것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그러나, 저는 그 사실을 얼마나 감사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조그마한 애로서, 여기서부터 두세 블락쯤 떨어진 잉거빌학교에서, 저는 너무나 옷을 허름하게 입고 오래된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탔기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감이었던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 연못 바로 아래에 이와 같이 피어날 수 있는 연꽃 씨가 놓여 있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주께서 제게 그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을 한--한 이름을 주실 거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자,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네 씨(자손)에서 일으킬 자가 성전을 건축할 것이며, 그 성전은 영영한 성전이 되리라. 그리고 네 아들에게, 다윗의 아들에게, 그는 영영한 왕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육신의 아들인, 다윗의 육신의 힘으로부터 나온, 솔로몬은, 주님께 집을, 성전을 지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진짜 다윗의 아들이 오셨을 때, 다윗의 아들인 그 분은 그들에게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때가 오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은 그들에게 다른 성전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계시자인 요한은 이 성전을 보았습니다. 계시록 21장, 그는 보았습니다, “새 성전이, 신부가 그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단장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더라. 그리고 한 음성이 그 성전으로부터 나와서 말하여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리라. 다시 배고픔이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이나 사망도 없으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그러면 진실한 다윗의 아들이, 우리가 이번 주에 있을 설교들에서 배울텐데, 그 때 하나님의 성전인 그 분의 성전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는 지금 그 진짜 성전을 지으러 가셨습니다. 그가 요한복음 14장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mansions)이 많다. 내가 가서...” 예수님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 일은 이미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다시 돌아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물론, 우리는 그 일이 다가올 위대한 시대에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다윗의 씨인데 그는 보좌를 취할 것이고 그의 집에서 신부와 함께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교회를 영원토록 다스릴 것입니다.(Eng.p. 13)
그런데 몇 군데에서, 다윗은 그 일을 하기로 예비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진짜 성막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이었고 피를 흘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짜 성전을 짓기로 예비된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는데, 그 성전을 지금 짓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성막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어드린 성전과 또 다른 성전들과 함께, 진짜 성막이 이 땅 위에 세워질 그 날이 오기까지는 임시 예배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면 의가 이 하늘에서 저 하늘까지 다스릴 것이고 슬픔이 더 이상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에서는 장례식 설교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식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영원한 한 위대한 결혼식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만 오늘 우리 마음 속에, 장차 올 그 성막을 기념하고 소망하는 뜻과, 성령으로 우리가 그 성막 안에 있는 것처럼 이 곳에서, 장차 올 그 곳을 기다리면서, 경배하겠다고 다짐해 봅시다. 자, 제가 성경을 읽을 동안, 잠깐 일어섭시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저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공경과 거룩한 존경심을 가지고 서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선물을 받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당신을 위해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하도록 자금도 주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저희들이 준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기에 합당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마음의 표시로써 이 곳을 당신께 바칩니다, 주님.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해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바쳐진 건물과 땅과 지금까지 있어왔던 일에 대한 추억들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제, 주 하나님, 몇년 전에,이것을 나타내는 환상이 터졌을 때, 저는 사람들이 앉아 있던 옛날 건물이 수리되고 새롭게 되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고 강 건너로 다시 보내졌습니다.(Eng.p. 14)
그런데,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여, 우리는 당신의 양우리 사람들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서 있습니다. 저와 목사님과 교회와 사람들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목적으로 이 건물을 바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위해서. 복음이 이 자리를 차고 넘치게 되어서 지구의 네 모퉁이에 있는 세상이 이 곳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러 오게 하옵소서. 과거에 당신이 행하신대로, 앞으로는 그보다 여러 배 더 많이 행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지금 우리는, 전력을 다해,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에 우리들 자신을 바칩니다. 주님, 회중들과 사람들, 그들은 오늘 아침 말씀을 듣는데 그들 자신을 바칩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목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는데” 우리들 자신을, 바칩니다. 삼십 년 전 모퉁이돌 안에 써 넣은 대로. 당신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때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려고 애쓸 때, 우리로 영감을 얻게 하옵시고 두 배의 힘을 내게 하옵소서. 주님, 성령이 이 자리에 두 배나 내리게 하시며 성령께서...
솔로몬이 성전을 바치는 날 기도했을 때처럼 성령이, 그 때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형태로 성령이 앞문에 와서 그룹들 주위와 위에 있다가, 성소로 가서 그 곳을 안식처로 삼으셨습니다. 오 하나님! 솔로몬은, “만일 당신의 백성이 어느 곳에서든지 어려움을 당할 때 이 성소를 바라보고 기도를 드린다면, 하늘로부터 그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오늘 아침 성령이 모든 마음과 이 곳 안에 있는 성별된 모든 영혼들 안으로 들어 오시옵소서.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커서 수종드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수종을 들지도 못했다”고 말합니다. 오, 주 하나님, 교회와 함께 우리들 자신을 예배를 위해서 당신께 바칠 때에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되게 하옵소서. 성경 말씀에,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당신께 예배를 위해서 이 교회를 바치면서 저희들 자신을 맡깁니다, 저물녘에 있을 빛을 위해서, 종말의 빛을 위해서, 주 예수께서 신부들을 받으시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옷 입히기 위하여, 신랑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믿음을 갖다 줄 빛을 위해서, 저희들을 맡깁니다. 저 자신과 네빌 형제와 회중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바칩니다. 아멘. 앉으십시오.(Eng.p. 15)
다윗은,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언급될 때 언제나 주님의 집으로 모이는 일을 기뻐하는 것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회중이 “아멘”한다--주] 아멘.
이제, 짤막한 봉헌식 이후, 저는 지금 한 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전을 어디에 바치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성전을 주님 앞에 경외와 거룩함과 고요함에 바칩니다. 주님 앞에서 경배하시고 주님의 집 안에서는 될 수 있는 한 가장 정중한 태도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예배가 끝나자마자, 예배실에서 나가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관리인이 들어와서 다음 예배 시간을 위해서 청소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집에서는 혼돈이 없습니다. 그래서...?...제 생각에는 여러분이...이 장소는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약 15분 후에는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모든 사람과 악수하고 모든 사람들을 다음 예배에 초청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런데--그리고 우리는 이번 주 내내 있게 될 예배가 이 성막에서 드렸던 예배 중 가장 경건한 예배가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저는... 그 생각은 긴, 늦은, 제가 이른 새벽 시간에 기도할 때 떠올랐는데, 그 때 저는 뭔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주간은 아주 위대한 시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도와 주신다면, 그런 시간을 가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제가 “위대한 시간”이라고 하는 뜻은... 이제, 저는, 오늘 아침,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보면 위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위대하다”고 부르는 것을 인간은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인간은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 점을 명심합시다, 모든 말씀을 깊이 헤아리십시오.
그런데, 예배 시간은 깁니다. 사람들은 예배 때 많은 것을 가르침받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예배 드리는 것이 힘들어 기운이 빠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제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저에게 뭐든지 많이 먹게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은, “아니, 브래넘형제, 살이 너무 빠졌습니다”라는 등등의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예배를 계속 드려오고 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밤에는, 멕시코에서 다른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참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식사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설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주니어 잭슨형제와 러들형제, 그리고 또 여러 목사님들을 뵈니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적어온 몇가지 것들을 보면서 오늘 아침 저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우선 이사야서 53장을 읽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곳을 찾는 동안에, 한두 가지 광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마지막 교회 시대와 일곱 인의 개봉 사이를 연결하는 이 책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상당한 틈이 벌어져 있습니다.(Eng.p. 16) 그리고, 전에, 제가 일곱 교회 시대에 대하여 끝마칠 때, 저는 거기에서 곧장 이어지는 다니엘의 칠십 주에 대해서도 역시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곱 교회 시대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 “만일 제가 일곱 인을 다루게 된다면, 저는 일곱 인 안에 맞추기 위해서 이 다니엘의 칠십 주를 먼저 설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군데만 빼놓고,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의 제 5장이었습니다. 오늘 밤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좀 일찍 시작했으면 합니다. 제가...일찍 시작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죠?[네빌형제가, “네”한다--주] 모두 다 여기에 7시경에 올 수 있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 좋습니다. 정규 예배를 6시 30분에 시작합시다. 찬송 예배를요. 그리고 저는 이 곳에 7시까지 나오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좀 일찍 시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래서--그래서 우리가, 자, 우리는 와서... 그리스도인들만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우리는 노래부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다른 뭔가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렇죠, 그러니 이제 그것에 완전히 매달립시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겁니다. 우리는 강해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긴장이 되는지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제가 뭔가 잘못 가르치면, 저는 그것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죠. 아시겠죠? 그러므로 저는 다른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저는 반드시... 그것은 영감을 받은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곱 우뢰를 쥐고 있는 일곱 천사들이 그것을 허락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자, 이사야서 53장 1절과 2절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자, 이것은 일곱 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냥 별개의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봉헌 예배때문에 시간이 허락치 않아 일곱 인에 대한 설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교회를 위해서, 짤막한 봉헌예배와 간소한 기념식을, 아니 간소한 봉헌예배를, 생각했었고, 그러면 제가 이 책의 개봉에 대한 설교를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씀을 오늘 저녁에. 그런데, 이것은 짧은 예배입니다--그러나 이 말씀은 앞으로 있을 말씀과 그대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말씀을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이 설교 말씀을 테이프나 다른 것으로 듣는다면, 그 테이프에서 가르치는 것과 늘 함께 하십시오. 테이프가 말하는 것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마십시오. 테이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말하십시오. 아시겠죠? 그런데, 왜냐하면, 그 일들 중의 몇 경우는, 우리는 왜 말씀이 오해를 받는지를 확실히 이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꼭 테이프가 말하는 것만 말하십시오! 그 외에 다른 말은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제 생각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시겠죠. 너무나 여러 번, 혼동이 생기고, 사람들은 일어나서, “글쎄, 아무개는 그것이 이러이러한 뜻이라고 했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냥--그냥 그 테이프에 있는 말씀 그대로 두십시오.(Eng.p. 17)
아시겠죠, 성경도 그런 식이 되기를 우리는 원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성경을 원합니다. 바로--바로 그렇게. 그 말씀에다 자신의 해석을 붙이지 마십시오. 그 말씀은 이미 해석된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제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겠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질문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의 전한 것을 여러분이 믿었다면, 여호와의 팔이 여러분에게 나타내어진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자, 또 마태복음에서, 마태복음 11장을 읽읍시다. 그런데, 여러분은 종이와 쓸 것들을 준비하십시오. 왜냐하면 계속해서... 만약 녹음기가 없으시면, 말씀을 이해하시기 위해서 종이를 준비하십시오. 마태복음 11장 25절과 26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1:26-27. 좋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기도 가운데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저는 좀 앞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자 25절과 26절을 봅시다. 제가 그 구절을 말씀드렸죠. 제 성경책에다가는 그것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아버지여, 그것이 당신 보시기에 좋았나이다
그 두 군데 성서 구절의 뜻을 파악하십시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비밀들을 숨기시고, 배우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본문에서 아니... 저는 이 읽은 구절에서 이런 주제를 뽑았습니다: 단순함 속에 감추셨다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그런데, 녹음하고 있는 테이프를 위해서 저는 계속 반복해야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있기 때문에 테이프를 위해서, 아시겠죠? 단순함 속에 감추셨다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와같이 그런 일을 하실까 하고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이상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단순한 것 속에 숨기시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나서 되돌아서, 그 안에서, 그의 일하시는 방법인 단순함으로 어떤 단순한 일들 가운데서, 다시금 자기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저는 우리가 일곱 인의 위대한 가르침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주제를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를 나타내시는 방법 때문에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Eng.p. 18)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어야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이다라는 자기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했던 일에 대해서 찬양을 드리고, 항상 하나님께서 현재 하시고 계시는 일은 무시하고, 앞으로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그렇죠? 아시겠죠? 그런 식으로 그들이 그것을 놓칩니다.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셨는가를 알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려고 얼마나 단순한 것을 사용하셨는지는 깨닫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나서 그들은 앞을 내다보고 앞으로 일어날 다가올 위대한 일들을 보지만, 십중팔구는, 그 일은 이미 바로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너무나 단순한 일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옛날에, 유티카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아는 분들이 여기 계시면, 저는 그 사람을 나쁘게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남북 전쟁의 노장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어느 쪽에 가담했었는지 잘 모르지만, 제가 믿기로는 그는 남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그는 무신론자였고 하나님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유티카에 살았고 그의 이름은 짐 도씨였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 분을 아실 지도 모릅니다. 그는 제가 어렸을 때 제게 수박을 많이 주셨었습니다. 그는 저 강 밑에서 수박을 재배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 아버지의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 지금껏 들어본 말 중 제일 멋진 말을 들었노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그 말은 그가 저쪽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떨구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일로, 그가 여든 다섯의 나이에 영광스럽게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어느 날 주일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왜 그렇게 그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도씨씨는, “얘야, 네가 그런 것을 믿고 있다니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여자 아이가 허리를 구부리더니 땅에서 작은 꽃을 꺾어 꽃잎을 하나 따더니, “도씨씨, 이것이 어떻게 사는지 제게 말해 주실 수 있어요?”하고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가 거슬러 가면서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 아이에게, “글쎄, 그것은 땅에서 자라고 있지.”하고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질문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지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 씨는 어떻게 여기에 당도했습니까? 어떻게 그 일이 생겼습니까?”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해서 그가 깨달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생각하듯 위대하고 매력적인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참으로 실제하심은 단순한 일, 단순함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나타내고 그리고나서는 자신을 숨기고, 자신을 숨겼다가 단순한 작은 일들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사람의 머리 꼭대기 위에 놓여진 일입니다. 만약, “공평하신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하시겠습니까?”하고 여러분이 말하신다면.(Eng.p. 19) 그것은, 처음부터, 인간은 자기 힘으로 꾸려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 양이나 양으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양은 자신을 이끌 수 없습니다. 양은 인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를 이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의 피조물들을 너무도 단순하게 만드셔서, 단순한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단순한 일들을 가지고 단순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35장에서, 제가 믿기로는 거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매한 자라도 그 길을 범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무도 위대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위대한 뭔가라고 기대하다가, 단순한 것을 놓치고 맙니다. 우리는 단순함 때문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놓칩니다, 단순함에 걸려서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단순하셔서 오늘날의 학자들과 지금까지의 모든 학자들은 하나님을 저 멀리 아주 놓쳐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능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처럼 그렇게 위대한 분은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운데서,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나 단순하게 만들어, 그들은 그것을 곧장 넘어가고 그것을 놓칩니다.
자, 그것을 연구해 보십시오. 그것 모두를 연구해 보십시오. 이 곳을 방문하고 계신 분들, 묵고 계시는 모텔방에 가시거든, 그것들을 가지고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하나하나 쪼개어 알아봐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이 그 일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텔이나 호텔이나 여러분이 묵고 계신 어느 곳이나 집에서 말입니다. 그것을 다 모아서 연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셔서, 하지만, 자기 자신을 가장 작은 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단순함 속에 감추시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뭔가 큰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것 꼭대기로 넘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단순함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단순한 방법가운데서 바로 하나님을 발견하실 겁니다. 뻔쩍 뻔쩍 광을 내는 세상적인 지혜와 교육은 언제나 하나님을 놓칩니다. 지금, 저는 이곳에... 학교 선생님들이 이 곳에 두세 분 앉아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학교와 교육에 반대하고 무식을 지지하려고 이 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럴려고 이 곳에 온게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에 너무나 집착하고 있으므로 해서, 심지어는 신학교에서나 기타 등등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코 앞에 두신 것조차도 놓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교파 안에 있는 형제들을 반대하지는 않는 겁니다, 저는 교파의 체제를 반대합니다. 체제는 그것 자체를 확대하려 하고 이러이러한 장소 안에서 그들의 목사들을 교육시켜서, 만일 사람들이 적당한 학기를 수료하지 못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을 쫓아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신병 의사의 시험과 기타등등을 치뤄야 합니다. 저는 목사에게 정신 의학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씀으로 목사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라고 보낸 하나님의 사람인데 그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Eng.p. 20) “말씀을 전하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철학을 설교하고, 신조를 설교하고 교파주의와 다른 많은 것들을 설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빠뜨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말씀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몇 분동안 몇 인물들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노아의 시대를 알아 봅시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지혜가 너무나 강조되고 존중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의 위대함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단순한 한 사람을 통하여 단순한 말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그 당시의 문명은 너무나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현대 문명에서조차도 그 지점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님께서, “노아의 날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마침내는 그 지점에 도달하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설명을 약간 덧붙였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피라밋과 스핑크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만들 수도 없는 거대한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향료와 향유로 시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이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흡착력이 뛰어난 색채를 4-5천년 전에 갖고 있었는데, 그 색은 옛날 색과 똑같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시겠죠?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 문명의 많은 위대한 것들은 그들의 문명이 우리의 현대 문명보다 우수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러한 문명이 있었다고 우리에게 남겨진 그러한 위대한 표적의 교육과 과학이 어땠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유적들이 있던 당시에 얼마나 위대한 문명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그 과학과 현대 문명과 교육이 그 사람들에게 필수였겠습니까.“ 그것들은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당시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그들의 체제 속에 있는 그 위대한 조직을 샅샅이 찾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한 무식쟁이인 노아라는 이름의 어쩌면 농부나 양치는 사람이었을 사람을 발견하기까지는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의 메시지를 주어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말씀이어서 그 당시의 학자나 사람들은 그 메시지의 단순함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 말씀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급진적이군! 하늘에 비가 없는데 어떻게 하늘에 비가 있을 수 있습니까?”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방주를 지으라는, 뭔가를 만들어서 그리로 들어가라는 단순한 메시지, 그 배를 띄울 물도 없는 상태에서. 정말로, 노아는 광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곤 하는, 오늘 이 표현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괴짜”가 되었습니다.(Eng.p. 21)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거의 다 “괴짜들”입니다, 아시겠죠. 정말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그들은 현대 문명의 경향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괴상하고 이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독특한 즉 괴상하고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제사장이며, 왕의 나라이며, 하나님께 영적인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제물은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들 입술의 열매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제, 보십시오, 그 당시에 한 광신자가 그 교회로 나와서,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리고 과학자들은 “아니, 그것은 한마디로 미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 하늘 위에 비가 없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다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양치기는 “하나님께서 비가 내리겠다고 하셨으면 비가 내리리라”고 믿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 한 번 그것을 오늘날 병고침을 받은 사람과 비교해 봅시다. 사람들은, “그것은 감정일 뿐입니다. 저는 암이나 그 실상이나 그것은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믿는 자에게는, 그 병은 사라졌습니다. 그렇죠? 왜냐하면, 그는 그 실상을 보지 않고, 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약속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한 말을 아시겠죠? 과학적으로, 아무도...의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 보십시오, 당신의 혹은 아직도 그대로 있쟎아요. 당신의 암은 그대로 있는데요. 당신의 팔은 옛날처럼 굽은 상태 그대로인데요. 당신은 돌았군요.” 그런데,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저 위에는 비가 없습니다. 우리는 달에다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는 없어요.”하고 노아 시대때부터 말했던 똑같은 영이라는 것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비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의 마지막 안식처로 삼습니다. 믿음의 안식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해하시겠죠? [회중이 “아멘”한다--주] 믿음의 안식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에서 쉰 것처럼. 그렇게되면 문제는 끝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주의해 보신다면, 그런 것을 믿은 노아는 광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의 침례를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광신자들입니다. 그들은 흥분하고, 감정적이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일 뿐입니다.”라고.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걸 가르치고 있음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노아에게는, 사람들이 아무리, “저 늙은이 정신이 나갔군, 과학적으로 따져볼 때 그는 틀렸고,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해도. 그러나, 노아에게는, 그것은(Eng.p. 22)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그 말씀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은 그 말씀의 단순함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 그것은 그 시대를 향한 얼마나 대단한 책망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만약 내가 그 때에 살았었다면!”하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똑같은 태도를 취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주 똑같은 일이 다시 재현되고, 단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그것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 당시에도, 틀림없이, 설교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밖을 내다본 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세대가 그와같이 음란하고 악하며, 하나님께서 참으시지 않을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다만 똑같은 일을 볼 뿐입니다!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를, 그렇죠,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 사람들은 학문적으로 너무나 세련되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이면서, 하나님 자신과 그의 말씀을 표명하시는 단순함으로 인해 넘어집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표명되는 것을 볼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그 약속, 빛을 내기로 되어 있는 저물녘의 빛에 대한 약속을,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도로 세련된 세상에게는 그것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하시길, “그것을 그들에게는 숨기심을 당신은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그것을 숨기셨습니다.” 그들이 지혜로 ...하게 두십시오. 아시다시피, 태초에 죄의 진흙탕 속에 공을 구르게 한 것은 지혜였습니다, 이브가 사탄을 만났을 때 이브는 지혜를 찾고 있었는데 사탄은 그것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지혜를 가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말해진 것을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시겠죠?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그것을 그런 식으로 닦아서 두고 거기에다 자기들 자신의 해석을 붙이고, 그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도 똑같이 행합니다. 항상 같은 범주 속에 있습니다. 자, 사람들은, 하지만...
아니,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하는 것과 똑같이 말씀을 놓쳤습니다. 똑같은 일입니다. 사람들은 똑같이 행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람들이 그것을 놓친 이유는, 너무나 영리해서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자,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는 너무나 단순해서 똑똑한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하여 그 메시지의 단순함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그것을, 진리가운데, 너무나 단순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들은 그 메시지가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하시면서도 자신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자기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음을 보여 주면서, 그들은 위대하며 더욱 더 위대해지려고 애쓰고 자기들 스스로를 “대주교나 성 교황 박사”니 등등 사실 그렇지 않은 뭔가로 자신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도 위대하시면서 자신을 단순히 낮추십니다. 단순함은 위대함입니다.(Eng.p. 23) 우리는 제트 비행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로켓트도 발사할 수 있습니다, 미사일을 궤도 안으로 쏘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풀잎은 하나도 만들 수 없습니다. 아멘. 그건 어떻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되돌아와서 그 풀잎을 만든 분을 알아보려하고 그 풀잎을 창조하신 분인 하나님을 영접하지는 않고,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보다 더 빨리 거기에 도달할 미사일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교회에서 너무나 똑똑하고 지적이어서 백만 달러나 천만 달러에 달하는 건물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감리교가 지은 것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지으려 하고, 침례교는 장로교의 것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지으려 하고, 오순절교회도 그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영리해서 우리 자신의 방법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을 낮추어 모퉁이에 있는 작은 선교회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함때문에 넘어집니다. 사람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자, 사람들은 너무나 영리해서 그처럼 단순한 메시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과학적인 연구에 비해서 충분히 세련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그들이 그 당시에 가졌던 교육 프로그램에 비해 화려하지가 못했습니다. 그렇죠?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과 함께 저 위에 두고 위대하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위는 언제나 아래인데 말입니다. 자, 누가 북극이 북쪽이고 또는 남극이 북쪽인지 아니 북극이 남쪽이고 남극이 북쪽인지 압니까? 어느 쪽이 위이고 어느 쪽이 아래입니까? 우리는 우주 가운데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북극은 위쪽입니다”하고 말합니다. 어떻게 압니까? 남극이 북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니 기억합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여러분은, “그렇다면 브래넘형제, 어째서 당신은 ‘위가 아래’라고 말씀하십니까?”라고 말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는 말하길,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임을 받을 것이나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위는 아래이고 아래는 위인 것입니다.
시카고에 사시는 어느 연로한 성도가 말했던 것처럼... 어떤 조직 출신의 한 목사님이 오순절교인들이 참석하고 있던 곳에 나왔습니다. 그 목사는 모든 지적인 것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서서 오순절교인들은 하나도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거기에 서서 자기의 말을 그 오순절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슴을 내밀고 올라갔습니다, 그는 “성 아무개 박사”, 아시다시피, 시카고에 있는 어떤 큰 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오순절교인들은 서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너무나 교육을 많이 받았고, 너무나 영리하고, 너무나 머리가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Eng.p. 24)
그 일은 최근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어떤 상원의원의 얘기와 드러맞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텈 쿠츠씨가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마마 포드의 장례식에서 설교할 때, 저는 부활에 대해서, 부활의 보증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나도 일어날 것이다. 풀이 가을에 죽고,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땅이 그 궤도를 돌아올 때 풀과 나뭇잎이 다시 나와야하는 것처럼.”
텈은 말했습니다, “빌리, 그 설교 감사합니다.” 네빌형제와 저는 차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설교에 감사드립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텈, 저는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게 좋다구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그는 보러 갔는데... 글쎄요, 저는 그 분이 절 용서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의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애들레이 스티븐슨, 여러분은 그를 아실 겁니다. 텈은 그가 말하는 것을 15분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스티븐슨씨는 아주 훌륭한 연설가입니다. 텈은 말하기를, 그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일 겁니다, 자기가 거기에 앉아있다가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15분 후에 그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학 교육을 받은 저이지만, 그가 말하는 것 중 아주 몇 마디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설교는 너무나 세련된 설교였습니다. 브래넘형제님, 당신이 설교하는 중에 제가 자는 것을 한 번도 못 보셨죠?”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말씀의 단순함입니다, 그것은 단순합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당시에 너무나 영리해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단순한 방법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세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은 세련되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품위있게 옷입혀져야 했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 그러나 그 위대한 여호와는 그의 말씀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 단순한 말씀, 노아의 단순한 메시지를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그의 말씀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자, 그것을 주의하십시오.
그 다음엔 다시금 모세의 시대입니다, 또 다른 구원의 때임을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막 하려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의 말씀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곱 인을 뗄 때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먼저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인들을 떼는 것이 너무나 단순해서, 똑똑한 사람들은 저 멀리 그것을 놓쳐 버리게 될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 절 기름부어주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것은 그저 꼭대기로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아침에 이 메시지가 기초를 놓기에 적절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단순하심에 대해서, 아시겠죠,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단순함 속에 숨기시는지에 대해서.(Eng.p. 25)
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원자를 쪼갤 수 있고, 또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생명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풀잎 속에, 하나님은 그 안에 숨어 계십니다. 사람들은 로켓트를 달에 발사할 수도 있고, 저기 위에다 레이다를 쏠 수 있고 더한 일도 할 수 있으면서도, 풀잎 속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그렇죠? 그 이유는 그것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간과해 버립니다.
자, 잘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려고 하던 날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한 단순한 가족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아는 것은 모세의 아버지가 레위의 자손이라는 것 뿐이며, 우리는... 그의 아내도 역시 레위인이라는 것 뿐입니다. 그저 평범한, 아마, 세상이 생각하듯이, 거기서 적을 위해서 벽돌을 만드는 진흙 바르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그렇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족을 구원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평범한 유대인 가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가서 왕족이나 귀족이나 그런 사람 또는 어떤 제사장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평범한 가족을 취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단순함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한 아이, 한 단순한 인간을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구하기 위해서 원하셨다면 태양을 부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라고 바람을 부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라고 천사를 부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브래넘형제,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서 떠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것은 단순해야 한다고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 하나님은 항상 단순하게 일을 하십니다. 하지만 태초에 태양으로 하여금, 아니면 바람으로 하여금, 아니면 천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하실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인간을 정하셨고 결코 그것을 변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하지 않으셨는데... 교파들을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결코 사람들의 단체를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기계나 기계조작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을 정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은 노예들 무리가운데 한 단순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단순한 인간을 보내셨습니다. 오, 세상에!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이십니까! 자기 자신을 단순하게 펼쳐 보이시는.
자 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세상적인 지혜를 교육받게 하여, 그가 실패함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을 것은 지혜로가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애굽의 지혜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그 곳으로 들어가서 그러한 교육을 받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영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자기들 이름도 쓰지 못하는 그 단순한 가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가장 높은 교육을 받았고, 이 지혜를 선생님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을만큼 되었습니다. 그는 천재를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Eng.p. 26) 겸손함 가운데 있는 자신을 나타내시려고, 모세가 그 길로 접어들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모세는 무참하게 그의 좋은 머리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실패하도록,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모세를 그런 식으로 놔두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정말로 실패했습니다,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권능으로 아니요, 힘으로 아니요,” 애굽의 지혜로가 아니요, 우리의 학교의 지혜로가 아니요, 우리들의 신학교의 힘으로가 아니요, 우리의 조직의 수로가 아니요, 우리의 학문적인 가르침으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 영으로” 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모세의 지혜는 사라졌고 끝나버렸습니다. 그는 신발을 벗고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자신의 모든 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구원을 가지고 오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아는 것이나 다른 누구가 아는 것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모세를 지혜롭게 훈련하시고, 그로 넘어지게하셔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손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모세가 넘어지게 두셨습니다. 그것을 아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그렇게 한 하나님의 의도는, 겸손한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바로에 이어 왕이 될 위치에 이르기까지 모세를 제일 높은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막강한 장군이었습니다. 역사에 의할 것 같으면, 모세가 직접 그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 후 모세가 자기의 모든 재능을 갖고 주님의 일을 하려고 돌아섰을 때, 하나님은 그의 머리가 땅으로 곤두박질하게 해서, 저 광야로 쫓아 모든 그런 것을 때려서 없애시고, 그런 다음에 겸손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주의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손에 지팡이를 들려서 내려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군사 훈련으로, 교육으로, 과학적인 교육으로 할 수 없었을 때. 모세는 무력으로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광야에서 자란 낡고 구부러진 지팡이를 하나 주시고, 모세와 함께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겸손하신, 하나님, 단순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 안에, 그리고 모세 안에 계셨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은 모세 안에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가진게 되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보십시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내 신(영)으로 되느니라.” 오로지 단순한 믿음으로 됩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자기는 구원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군사적인 힘으로 자신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깨닫고 있었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잊고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것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백성들을 구원해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구원하시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하십니다. 항상 그래왔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좀 살펴볼 수 있겠는데요. 아직 이십 분이 남았군요. 우리는 ...있습니다. 우리 한 번 가인과 아벨을 봅시다. 어떻게 가인이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는지를 봅시다.(Eng.p. 27) 또 다른 방법으로는, 사람들은, “옷을 아주 멋있게 입은 신도들이나, 가운을 입은 목사와 성가복을 입은 성가대와 말쑥하게 차려입은 것으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시겠습니까? 가인은 똑같은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제단을 아름답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가인은 진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경배드렸습니다. 가인은, “내가 마음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아무 상관이 없어”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진지하지만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이 제단을 쌓고, 꽃을 갖다 놓고 잘 정리해서 예쁜 과일도 갖다 놓고는, “정녕, 위대하고, 거룩하고, 정결하고, 아름다운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으실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는 자기 자신의 지혜로 그렇게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그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지혜로, 학교에서 배운 걸로, 자기들이 배운 교육과 윤리로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아벨은, 계시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훨씬 훌륭한 제물을 바쳤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눈으로 보기에 전혀 깨끗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쪼그만 동물의 목을 움켜 잡고 그렇게 나무줄기를 목에다 둘러서 이 제단까지 끌고 옵니다. 거기엔 아름다운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제단 위에다 올려놓고, 날카로운 바위로 작은 목을 따면 피가 양의 몸 전체로 튀기고, 신음 소리를 내며 죽어갑니다. 그것은 보기에 처참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것은 간단했습니다. 단순함가운데, 그는 자기가 부모님의 피로부터 탄생했음을 알았고, 타락을 초래한 것은 피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것은 피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계시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더욱 더 훌륭한 제물을 받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형제들은 그들이 사과와 배를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전날 신문에서 정말이지 과격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신문에 실리기를, “지금 그들은 이브가 먹은 것은 사과가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은 살구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 그 영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모세는 결코 실제로 홍해를 건너지 않았다. 그 아래 갈대투성이인 바다를 건넜다. 모세가 이 갈대 바다를 통과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데리고 왔다. 저 바다 하류에, 갈대가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모세는 그러한 바다를 건넜으니, 모세가 건넌 것은 갈대 바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튤리같은 풀을 헤치고 건넜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입니까! 성경이, “물이 좌우로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으로 하여금 물을 가르게 하셨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시겠죠? 아시겠죠?(Eng.p. 28) 그들은 자기네 식대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항상 실패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모든 일들은!
그런데 가인은 오늘날의 겉으로는 종교적이지만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의 원형입니다. 그는 겉으로 뭔가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는 교회엘 가고 건물을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할 것입니다. 교회는 단 하나가 있는데 여러분은 거기에 가입하는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집회소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감리교 집회소, 침례교 집회소, 장로교 집회소, 오순절교 집회소에 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태어나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죠? 이 모든 것들은 집회소들입니다. 그것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집회소입니다. 감리교 “교회”나 오순절 “교회” 따위는 없습니다. 절대로,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죠? 그것들은... 맞습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소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형성되어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입니다.
자, 하지만, 아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흘린 피에 대한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 나타낸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오, 저는 그것에 대해서 잠시동안 좀 더 설명할 시간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그러나 온갖 지혜를 가진, 똑똑한 사람 가인은! “오,” 여러분은, “브래넘형제님, 당신은 그가... 당신은 가인을 교육받은 천재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죠? 그의 혈통을 따라 내려가 보십시오. 그의 자손들을 보십시오. 그 자손들은 다 과학자요, 의사요,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다. 그러나, 셋의 세대를 따라가 보십시오, 그들은 멸망 때까지 계속해서 겸손한 농군이며 농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자손들은 똑똑하고 지적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 동을 불릴 수도 있다고 하였으며, 금속을 만들고 건축자들이었고, 영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쪽 사람들은 그저 장막 안에 거하고, 양을 치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안주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자, 그냥 쭉 혈통을 따라내려가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맞지 않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안주했습니다. 그렇게 노아가 그런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바울이 그 무리들 중에서 취해졌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요한 웨슬리와 마틴 루터와 기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현재의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까지 이르렇고, 아시겠죠, 똑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단순한 약속을 믿는, 겸손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항상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Eng.p. 29) 수천 리 밖에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뒤쪽으로 가까이 오셔서 ...강조하여 말씀하시고, “그게 맞다, 그게 맞다, 그게 맞다.”라고 말씀하시면, 그 때 여러분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제물들이 제단 위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가인의 지적인 개념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벨을 보셨을 때, 그것은 사과나 들에서 나는 열매가 아니라 피였다는 것을 믿는 단순한 믿음으로, 아벨은 그 사실을 믿음으로 믿었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물을 받으심으로써 아담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아픈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거라든지,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쭉 내려와서, 이제는 서둘러서, 20분 남았습니다.
잘 보십시오. 엘리야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한 단순한 사람 속에 자신을 감추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자, 그걸 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랍비나 제사장들이 있었고, 그 시대에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합 왕도 있었고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땅에는 위대한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 단순한 사람 속에 자기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어떤 학자 안에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위대한 군사적 천재나 거물이나, 세상에 명성을 떨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될 목적을 위해서 어딘가에서 양육된 평범한 늙은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광야에서 혼자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엘리야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뚜벅 뚜벅 걸어와, 들어와서 전 교회 체제를 정죄했다는 것 뿐입니다. 세상에!
그런데 그들이 엘리야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는 어떤 학교를 나왔습니까?” 아시겠죠? “그는 어떤 교파에 있습니까?” “그는 바리새인들과 아니면 사두개인들과 함께 지냅니까?” 아니면 그들이 가진 더 많은 교파들과? 엘리야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체를 다 정죄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한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어떤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는 성경구절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성경구절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그저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단순한 사람 속에 숨으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 속에, 이 단순한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하나님은, 세상이 보기에는 “무식한 괴짜” 속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엘리야를 별별 소리로 다 비난하고 심지어는 “마법사”라고까지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다 그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도, 아시겠지만, “바알세불이며 미쳤다”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당신은 돌았군요. 네. 우리는 당신이 귀신들렸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당신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지막 날이 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신성모독(훼방)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셨지만 이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하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분리라는 값을 치뤄야만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와 올 세상에서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Eng.p. 30)
그런데 엘리야는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일어나서... 여자들은, 추측컨대, 현대처럼 머리를 자르고 그 나라의 왕비 이세벨처럼 화장하고 설교자들은 다 세속화되고 기타등등.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때 여기 늙은 엘리야가 이세벨로부터 시작해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쭉 전체를 정죄하면서 나옵니다. “글쎄요,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에게도 목사님들이 있으니까요.”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들을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어떻든간에 엘리야는 그들의 목사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목사였습니다. 이세벨은 그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른 부류의 목사들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그가 그녀의 목사였습니다. 그렇죠? 그는 그녀를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목사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야를 미워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목사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을 낮추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가 좋아서 엘리야로부터 그 영을 취해서 그 똑같은 영을 그 때부터 세 번이나 내려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멘!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은 엘리야의 계승자인 엘리사에게 임했고, 그 다음에는 침례 요한 위에, 그 다음에는 말라기 4장에 의할 것 같으면 그 엘리야의 영은 마지막 시대에 다시금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딘가 저 숲 속에서 나온 단순하고 못 배운 나뭇군에게 임했던 그 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순종적이어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이 일을 해라”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고, 엘리야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단순함 속에 그 안에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그에게, “저 늙은 괴짜. 저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마”하고 말했습니다, 기타 여러가지로.
그러나 어느날 그가 늙어가고, 머리는 대머리가 되고, 하얗게 샌 수염은 치렁치렁 내려오고,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 내려오고, 팔은 늙어서 말랐고, 살은 그렇게 그것들 위에 축 늘어지고,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걸어가서, 그 눈은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 손에는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쳐다볼 볼품이 없었지만, 그 시대를 위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Thus saith the Lord)”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가지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듬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 위대하신 아합왕이시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걸어 나가서, “내가 부르기 전에는 하늘에서 한 방울의 이슬도 내리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할렐루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단순함을 존중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것이 그 단순한 방법으로 있었어도, 모든 사람들이 다 그를 반대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목을 조였습니다. 모든 성직자협회와 기타 다른 모든 것들이 그를 대적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를 없애버리려고 온갖 짓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그들이 그의 전도대회와 그가 하는 무슨 일에도 아무 협력도 하지 않으려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를 괴짜라고 생각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숨기고 계셨습니다.(Eng.p. 31) 그러나 심겨진 그 씨가 익을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보내서 희생제물을 핥아버림으로써 자신을 표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숨으시고 다시금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걸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런 식으로 해오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약속하신 것을 압니다.
오늘날,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가 신학교와 교파와 지식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용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시작하게 하시고 그에게 사역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먼저 아셔야 할 사실은,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우선 아셔야 할 것은, 그는 커다란 무리들 사이에서 온통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에게서 손을 떼시고 그를 혼자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을 찾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할 누군가를 말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가지고서 요동하지 않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머무를 누군가를 찾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선 그런 식으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일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너무나 교육을 많이 받고 똑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해석을 붙이려고 합니다. 자, 사람들이 말하듯이, “오, 성령의 침례는 이 시대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이 전의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음, 그것은 다른 시대를 말하는게 아니지만, 제 말은, 성령의 침례는 오순절날과 같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었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라든가 그런 종류의 말들을, 아시겠죠.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십시오. 자, 그들은, “음, 하지만 신학교에서는 말하길! 아무개는 말하길!”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전국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게 내버려 두시고, 쫓겨나고 비웃음을 당하고 놀림을 당하고 온갖 일을 다 당하게 두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마지막 판결을 낼 때가 오면, 하나님께선 일어나셔서 바로 그 똑같은 단순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꽃처럼 우뚝 서서. 그 씨는 완전히 끝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씨가 죽어 땅 속으로 떨어집니다. 그 작은 씨를 파 보시면 그것은 썩고 지저분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다시금 다른 꽃을 재생할 수 있는 생명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와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위는 아래입니다, 항상. 여러분 자신을 겸손히 낮추십시오. 절대로, “음, 저는 이것을 갖고 있고 저것을 갖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꼭 기억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갖고 있다면,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하시고, 그것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아시겠죠, 그저 계속 여러분 자신을 겸손히 낮추십시오.
자 시간이 없으니까... 서둘러야만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번 주 내내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Eng.p. 32)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영리하고 교육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을 압니다. 자, 저는 여러분에게 또 다른 것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쪽으로 너무 멀리 나가, 그들은 종교적이 되려고 애쓰다, 광신자가 됩니다. 자, 우리는 그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들은 다른 한 쪽으로 갑니다. 거기서 제가 그 형제님들 무리와 다른 점입니다. 얼마 전에 그들은 빛의 노상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단체를 만들지 않고는 그 현상이 마무리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카나다에 모여서 서로에게 사도와 선지자 등등의 직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아시겠죠?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느끼기에 자기들이 ...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것들을 지나치게 비난하여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한쪽은 고도로 지적이고, 냉냉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거기에서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다른 쪽으로 가서 감정적이고 과격한 무리들로서, 그들은 말씀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진짜 교회는 중도에 머무릅니다. 자, 여러분 잘 보시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나에 대한 성경지식을 갖고 있고 영적이어서 마음이 따뜻합니다, 바로 그 길 입니다. 이사야는 그런 식으로 될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 대로(a highway)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강하고 작은 움직임인 나사렛 교회에 다니시는 축복받고, 거룩하고, 고귀한 친구들, 그들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들은 너무나 종교적이고 너무나 형식적이어서 그것을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들은, 그들은, “그대보다는 더 성결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씨로 되돌아가서 금새 죽어버리는 것을 압니다. 아시겠죠? 그 다른 쪽은.
그런데, 한 쪽은 광신자가 되고, 다른 한 쪽은 냉냉하고 형식적입니다. 자, 이사야는, “거기에 대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교인들과 성결을 믿는 많은 나이드신 분들은, “복된 그 옛 대로로다!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는 그 옛 대로를 걷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것은 이사야가 말한 것과는 같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거기 한 대로가 있다. 그리고(There shall be a highway and.)”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한 길이 있다.” 그 길은 거룩한 대로(The highway of holiness)가 아니라, “거룩한 길(The way of holiness)”이라 일컫는바 되리니.(Eng.p. 33)
자, 한 거룩한 대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거룩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은 제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마치... 말똥가리가 본성은 여전히 말똥가리인데비둘기 깃털을 붙여서 자신을 비둘기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그것은... 그것은 마치 까마귀가 비둘기의 깃털이나 공작의 깃털을 붙이고는, “제가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지 보세요”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공작은 자기가 공작 깃털을 가질런지 안 가질런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둘기도 자기가 비둘기 깃털을 가질런지 안 가질런지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본성이 비둘기인 이상, 그는 비둘기의 깃털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성결교인들은 “여자들은 머리를 길러야 하고 긴 소매를 입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말들, 그리고 긴 치마를 입어야 하고 결혼 반지나 어떤 종류의 보석이든지간에 착용해서는 안된다”라는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거룩함이 되었습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것은--그것은--그것은 만들어낸 거룩함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짜 교회는... 그런데 교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를 보십시오. 지금은 그들은 다 오순절 교인들과 기타등등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 머리를 잘랐고 그들 모두 다, 거의, 반지나 그런 것들을 끼고 다닙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오순절교인들이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를 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태어난 다른 무리들 가운데 있는 개인입니다. 그것은 몸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양에게 양털을 지니라고..., 아니 제 말은, 만들라고 당부하지 않습니다. 양은 양털을 제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이, “자, 내 주인이 올해 내가 양털을 얼마 내기를 원하시니 난 바쁘겠군.”하고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양이 해야하는 일이란 그냥 양으로 남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맞습니다. 양털은 실제, 자동적으로...양은 양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양은 ...때문에 양털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열매를 만들라는 부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도록,아시겠죠, 지니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열매를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과실나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입증을 할 것입니다. 말씀이 속에 있기만 하면 그것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것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 곳까지 이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사실상 거기에 그냥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계속 진행됩니다. 자, 몇 분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서 끝냅시다.
자, 이제, 어떤 사람들은 너무 멀리 가서 광신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 쪽으로 쏠립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펄쩍펄쩍 뛰거나, 어떤 종류의 감정이나 느낌을 받았다거나, 방언을 했다거나, 옳게 증명된 예언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하고,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성령이 아닙니다.(Eng.p. 34)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이들이 내게 와서 이르기를, ‘주여,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서 떠나거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성령의 증거는 아닙니다. 그게 증거는 아닙니다, 친구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을 하는 것이 증거입니까? 저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성령을 가졌다는 유일한 증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가 그 증거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자, 아시다시피, 그래서 저는 “만일 방언을 하면, 그는 성령을 가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오순절교 형제들의 운동과는 달리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령을 가졌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아시겠죠? 저는 마귀도 너무너무 빠른 방언을 하는 것을 들었고, 사람의 해골에서 나오는 피를 마시고는 마귀를 불러내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저는 애리조나주에서 인디언들이 뱀을 자기 몸에 칭칭 감고는 비춤을 추면서, 양손을 이렇게 올리고 빙빙빙 도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마법사가 창으로 자기 몸을 찌르고 나와서는 연필로 모르는 방언을 쓰고 그 해석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제게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방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겸손과 부드러움으로 매일 똑같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과 늘 함께 하는 사람은 그것을 느낍니다. 그는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아멘”으로 그 말씀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간에. 그것은... 그는 말씀을 믿습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멀리가 광신적인 뭔가에 의지하게 되면 사탄이 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사탄의 사업입니다. 사탄은 훌륭한 사업가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그들이 그저 펄쩍펄쩍 뛸 수 있으므로 자기들이 전부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이웃을 미워합니까? 아닙니다. 아시겠죠?... 방언으로 아주 멋지게 말하고, 그와 같은 것들. 그런데, 진짜 성령의 방언을 하고도 성령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나니. 나는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아시겠죠? 그러므로 여러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감리교는, “소리를 질렀을 때,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교인들은 “거룩하게 살 때, 성령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은, “방언을 하면 우리는 성령을 받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Eng.p. 35) 하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드러내시는데, 감흥 속에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물론 성령과 감흥이 동반되기는 합니다. 여러분 그 위치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성령을 아주 겸손하게 받습니다, 만일 여러분이--만일 여러분이 성령 안에다 여러분의 생각을 집어 넣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리고나서 그들은 광신자 무리가 됩니다. 그러면, 이 쪽에 있는 사람들은 냉냉한 형식론자들이고, 여기 다른 이 쪽은 광신자들인데, 여기 그리스도의 신부가 그들 모두를 곧장 통과해 가면서 양쪽에서 불러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나가면서,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십니다. 자, 오, 저는 너무나 많이 적어와서 몇 가지는 그냥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저는...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저는 최대한 빨리 서두르겠습니다.
에덴이후로, 에덴 이후 메시야(구세주)가 오리라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에덴이후 쭉. 자 제가 적어온 여러 성경구절들과 설교내용을 지나가겠습니다. 가능한, 설교를 제 시간에 끝마치기 위해서. 겸손함 속에 숨으시는 하나님. 이제, 저는 말을 빨리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저는 이 말을 여러분이 알아들으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죠?
에덴이후로, 메시야가 오리라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메시야는 어떤 사람일거라고 미리 예언이 되어졌습니다. 우리 오랜 시간 머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아십니다, 메시야가 어떠하겠고, 어떤 사람일 지. 모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 메시야는 선지자일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가질 사역이 선지자의 사역임을 알았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메시야가 무슨 일을 할 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말을 상징으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머리 위로 지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아래로 지나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 어떤 사람에게는 머리 위로, 어떤 사람에게는 아래로. 아시겠죠? 메시야가 시간의 노상에 나타나게 될 때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보내졌을 때, 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적인 해석으로 메시야가 어떤 사람일 거라는 자기들 자신의 해석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에 머무르는 까닭입니다, “성경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오순절교인들이여, “그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런 뜻입니다.”하고 말하면서, 그 말씀에 여러분들의 해석을 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말씀은 이미 말한 그대로를, 아주 정확하게,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것이 ...할 수 있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할 지 모릅니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책임질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 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말씀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러나, 이 메시야는 예언되어왔습니다.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어떻게 오겠고, 와서 무슨 일을 하실 지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해석은,(Eng.p. 36) 사람들 사이에서! 그래서 메시야가 왔을 때, 그는 그토록 단순함 가운데, 단순한 방법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 단체가 그것으로 인해 넘어졌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거기서, 가르침을 받은 그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혈통, 즉 레위 지파에서 태어나지 않고는 교사나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생각 좀 해 보십시오. 그의 할아버지, 증조, 고조, 사대, 오대, 육대, 칠대 할아버지는 제사장이었는데, 밤낮으로, 성전에서, 그 말씀만을 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교회들에게 있는, 대대로 물려내려온 카톨릭 사제나 성직자와 같습니다, “내 증조 고조 할아버지께선 감리교 감독이셨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주교였습니다.” 기타 등등. 아시겠죠?
그들 모두가, 말씀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형성시켰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그 조상이 가르쳐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침내, 그 조상이 진짜 길에서는 벗어난 대로 가르쳤어도, 그것에서 조직을 만들고, 성령이 진리를 제시해 보여 주려고 할 때, 그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례한 말같지만 제 말은 맞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너무나 복잡하게 만들어--다른 길을 만듭니다. 그들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손주가 없다”고 하는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그 사실을 아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들들이 있습니다, 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자들과 손녀들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값을 치뤄야 하고 똑같은 길로 와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하신 그대로, 여러분도 해야만 합니다.
이제,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이 메시야가... 사천 년 동안, 모든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다윗은 그에 대해서 노래를 지어 불렀고, 그 다음에도 쭉 그랬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왔을 때,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이다라는 자기들 생각을 축적해 두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은 다 설명이 되고, 그것을 도표에다 다 그려서, 그래서 그가 그런 정말로 단순한 방법으로 왔을 때, 그것은 그냥--그것은 그저 그들의 신학을 망가뜨렸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 분은 말씀에 이르신대로 오셨습니다. 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어떠어떠한 방법으로 오겠다고 말씀한 것을 믿으십니까? 시간이 더 있다면 그런 것들을 다 살펴보고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 일이 어떠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메시야가 오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하고 말씀하셨으며, 거기서부터 계속해서 메시야가 어떻게 행하고 무엇을 행할지. 아시겠죠?
그러나, 그는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그 위대한 학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복잡하게 만들어, 마침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말씀과는 반대로 오시지 않았음을 아실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신대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에는 어긋났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은 교회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들을 가르쳤습니다.(Eng.p. 37) 그런데, 자, 예를 들어서, 그들은, “메시야가 오실 때, 분명히 그 분은 성전으로 올라오시고 ‘가야바야,’ 대제사장 되는 사람더러, ‘내가 도착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는 수만만 천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래 있는 사람들아, 좋다. 너희들은 정말로 거대한 교회이다. 너희들은 내 백성이다. 나는 여기로 크랭크를 돌려서 하늘의 복도를 내리겠다. 오늘 아침, 나는 너희들에게 메시야를 보내노라. 나는 그것을 그 뜰에 내리게 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둘러서게 하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길, ‘아무개 박사님, 아무개 박사님, 당신들 모두 우리들 맨 앞에 서서 그 분과 맨 먼저 인사를 나누십시오, 아시겠죠,’라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마도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말일 것입니다. 글쎄, 저는 그 말이 약간 “지나친” 말로 들리리라는 걸 알지만 저는...아닙니다. 제 말 뜻을 전하고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그리고, 거기서, 그게 앞으로 일어날 방법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그런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아시겠죠? 만약 그것이 우리들 식으로 똑같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만만의 천사들이 악대를 이루어 내려올 것입니다. 그들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 뜰에, 오, 모두 이 넓은 뜰에 꽉 차게, 성도들과 성자들이 죽은 이 거룩한 장소에, 착륙할 것입니다, 기타등등!”
예수님께서는, “그렇도다, 외식하는 자들이여! 마귀의 자식들아!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넣어 놓은 무덤을 광내고 있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죠? “의인들과 선지자들을 얼마나 많이 너희에게 보냈는데, 너희들은 그들을 모두 죽였도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의롭다”고 하십니까? 사람들이 “광신자나 괴짜”라고 부른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메시야는 그런 식으로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굿간에서 나고,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그저 평범한 목수를 양부로 두고, 자그마한 무명의 처녀를. 보십시오, 대제사장의 딸이나, 그런 사람의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이라는 보잘것 없는 옛 시골에서 살고 있던 자그마한 여자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평범한 홀아비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죽었습니다. 그는 자식들이 있었고, 요셉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정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뭏든 그는 처음부터 오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생자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오, 이런 세상에!
그것은 그들이 빛낸 것들을 무참하게 때렸습니다. 그렇죠? 그들의 교육적인 윤리학은 그것을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성경 해석은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이었습니다. 오, 세상에! 그것을 생각하면 몸이 떨립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다시금 재현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변할 수 없습니다. 벌써 12시이군요. 그만 할까요 더 할까요? [회중이, “아뇨. 계속하세요.”한다--주] 감사합니다. 그냥 잠시만 조용히 앉아 계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계속 말씀하세요.”](Eng.p. 38) 자, 이것은, 저는 앞으로 할 설교 말씀을 위해서 여기 기초를 좀 쌓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을 되도록이면 빨리 나가실 수 있게, 아마 10분이나 15분 후에,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보십시오, 자, 그것은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적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표적을 맞추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말씀을 맞췄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한 그대로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틀렸습니다. 모세의 때에도 사람들이 가졌던 구원자에 대한 해석은 틀렸었습니다. 노아의 때의 해석도 틀렸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오십니다. 그 다음엔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이 메시야이거든, 이러이러한 일을 해보라,” 아시겠죠. “만일 당신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지금 그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아시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서 어릿광대짓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기뻐하시고 올바른 일들을 하십니다.
그들은 그러한 분은 분명히 천사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굿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세련된 윤리학에 비추어보면, 전능하신 하나님, 이 땅을 소유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한 권능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아들이 똥더미 위 소 외양간보다 더 좋은 장소에서 태어나도록 장소를 마련하실 수 없는 분이라고 보통 인간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아시겠죠?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이 그를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죠, 윤리학 교육은 그처럼 자신을 낮출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것은 그렇게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셔서 자신을 그정도 아래까지, 자기 아들을 입힐 옷조차도 없게, 낮추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세상은... 여관에는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 외양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언덕에 파인 굴 같은 곳으로. 거기 짚침대 위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오, 그것은 저 위에서...만나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엄마가 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결혼은 하려고 정혼한 몇달 전인데도... 아니 결혼을 하기 전인데도 엄마가 될 사람임이 밝혀졌었습니다. 그렇죠? 그녀는 엄마가 될 처지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이런 식으로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속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밤에 주의 천사가 찾아와서, “요셉아, 너는 다윗의 아들이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그 일은 나쁜 일이 전혀 아니니라. 그 일은 다만 성령에 의한 일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걸로써 일은 마무리 됐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토록 가까운 교제를 나누고 있어서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교회라는 옷을 너무나 단단히 두르고 있어서 우리들이 속해 있는 교회 단체 말고 외부에서는 아무 것도 우리들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귀에 거슬리는 과격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그쯤 해 둬야겠습니다. 보십시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제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Eng.p. 39)
외양간은 세련된 그들에게는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 하루라도 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열 두 살의 나이에, 한 평범한 소년은 그의 가르침으로, 성전 안에 있는 제사장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저는 지금 꽤 종교적이 된듯한 느낌이 듭니다. 자기자신을 헛간 속에 감추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어린 아이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잠시 후에 이 사실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 보십시오. 그는 해야 했습니다. 예수가 거리로 나갔을 때, 다른 부모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렇게 얘기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저 애하고 놀지 말아라. 저 애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거라. 그 애의 엄마는 창녀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단다, 아시겠죠. 그리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 애는 태어나길... 그들이 실제로 결혼도 하기 전에 태어났단다. 그녀는 미혼모가 될 처지에 있었어. 저 애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거라.”
마리아가 생각했던 것은! 그러나 다 함께, 외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마리아는 이런 모든 일들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마음 속에 숨겼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그들은 그런 말들을 대꾸할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사람에게 말씀하시고는,“가만히 있거라. 그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제 집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니, 당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당신은 이런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아실 겁니다.”합니다. 물론,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거라.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책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몇 해 전에, 뭔가가 말했던 것들입니다.”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음, 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 책에는, 거기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있었던 모든 것이 다 적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 책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일이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하기를, “아니, 당신은 왜 그것에 대해서 좀 뭐라고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까?”합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다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애기가 누구의 애기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나무를 켜고 문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는 어머니더러, “이제는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할 때가 됐음을 이해하지 못하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자,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작고 약한 아이가...”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가 어쨌든 좀 요상하고 흥미를 자아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자 보십시오,아시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숨기시고 계셨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더럽고, 부패하고, 사생아”라고 생각하는 것 속에 자신을 감추고 계셨습니다.(Eng.p. 40)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나오게 하려고 죽은 씨의 부패함 속에 자기 자신을 감추십니다. 아시겠죠? 그걸 이해하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한 평범하고 작은 파출부 안에 숨기십니다. 또는 도시락을 팔옆에 끼고 나가는 한 평범한 남자 속에,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입맞추고 헤어져 나가는, 그런 남자 속에 어쩌면 자신을 감추시고 대주교는 알지도 못할 어떤 일을 하게 하실 지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양각나팔을 불고 그것을 내보내는 것을 듣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어쨌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단순한 자들이 그것을 듣고 기뻐합니다, 그렇죠.
자, 하나님께서는 한 갓난애기의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셨고 평범한 가족의 단순함 속에 자신을 숨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데 성직자들과 유명인들과 지성인들과 천재와 그들 모두는, 그리고 그 당시의 헤롯왕이라든지 네로왕이라든지, 다 그것을 간과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숨어 계십니다.
자, 빨리 합시다. 침례 요한은, 이사야 40장에서.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그 곳을 보겠습니다. 말라기 3장. 여러분, 모두, 그 곳을 적어 두십시오. 이사야 40장은, 아시다시피, 평화를 ...에게 말하는 장입니다. 여러분 시간이 좀 있으시다면 잠시 동안만 그것을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회중이 “아멘”한다--주] 잠시만, 읽어봅시다. 이사야 40장을 펼치고, 여기를 읽고, 이사야가 이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좀 알아 봅시다. 여기 보십시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런데, 이것은 712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기 윗부분을 보십시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 탄생하기 712년 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그 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많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오, 이런 세상에!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렇죠? 이제, 저와 함께 말라기를 폅시다. 구약에서 마지막 선지자의, 맨 마지막 책입니다. 자 말라기에서, 여기를 들어 보십시오. 말라기는 말세에, 그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말라기 3장입니다.(Eng.p.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이 곳도 요한에 대해 말하는 구절입니다. “내 길을 예비하라고 내 앞에 내 사자를 보내리라.”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마태복음 11:10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가 그것을 영접할 수 있다면,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리니...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아시겠습니까? 맞습니다. 모두 다 한결같이! 700년 후에야,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한 예비자가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와같은 단순함으로 나타났을 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놓쳤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아니, 그가 자기 아버지의 직분을 좇아 신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은 너무나 중대했습니다. 아홉 살이 되자, 그는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전하러 나왔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놓쳤습니다. 그는 아주 단순해서,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그들의 매우 빛나는 교육이 그런 것을 믿기에는 너무나 단순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나왔을 때 생각했습니다. “모든 고지가 낮아지고 모든 저지가 높아질 것이며 모든 험한 곳이 평지가 되리라”는 말씀은 어떻게 된거냐? 다윗은 그것을 보고는 “산들은 어린 양같이 뛰놀고 잎사귀들은 손뼉을 쳤다”고 말했습니다. [브래넘형제가 손뼉을 일곱 번 친다--주]
무엇입니까? 그 일이 일어났습니까? 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수염이 텁수룩한 늙은 사람, 양가죽을 두른 사람이 유대 광야에서 비틀거리며 나와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노라. 그리고 너희 뱀들아, ‘나는 어떤 조직에 속해 있다’고 말할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하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글쎄, 그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아닙니다, 그 사자는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길을 깨끗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 때가 그 험한 곳들이 평지가 되었던 때였습니다. 바로 거기가 고지가 낮아진 데입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라 하지 말라.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것이니 그와 같은 소리를 나에게 하지 말라.” 높은 곳들이 낮아졌습니다. 오, 세상에! 바로 그겁니다. 그렇습니다. 그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그는 그것이 바로 일어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왔을 때, 그들은, 이런, 세상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만일 그가 자기들 자신의 조직으로 온다면 그를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와 같이 단순한 방법으로 왔기 때문에. 하지만, 그 성서 구절을 해석하면서 오셨으므로, 그 높은 곳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았지만, 그들은 낮아졌습니다.(Eng.p. 42) 이런, 그는 그들의 털을 다 깎아버렸습니다. 그는 그들의 가죽을 다 벗겨 버렸던 것입니다. 말하기를, “너희 독사들아! 너희 풀밭의 뱀들아! 내가 말하노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를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너희를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태우시리라.” 아멘. 바로 그 때에 험한 곳들이 평탄케 되었던 것인데, 그렇죠,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딱 들어 맞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이른 그대로였습니다. 그 말씀은 너무나 단순해서, 사람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놓쳤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눈 멀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렇게 눈멀지 마십시오. 그래서, 이제, 들어 보십시오.
그들은 그것을 놓쳤습니다. 요한은 그가 어떠한 사람일거라는 그들의 일상적인 믿음에 비해서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놓쳤던 것입니다. 다시금, 무엇이었습니까?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단순함 속에 감추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칼라를 뒤로 젖힌 옷을 입은, 영리한, 교육을 받은 제사장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왔을 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제사장복을 입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갔더냐? 그런--그런--그런--그런 종류의 설교자를 보러 갔더냐?” 예수님은, “그걸 보러 갔더냐?”하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길,“아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애기들에게 입맞추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죽은 자를 매장이나 시키느니라. 그들은 전쟁터에서 두 손으로 부리는 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 그들은 그들의 지적인 연설을 하러 키와니스 클럽같은 실업가 단체나 그런 곳엘 갈 뿐이니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그런 곳에서는 아무 탈이 없이 잘 있겠지만, 밖에서 전쟁을 대면해야 할 때가 되면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 그들은--그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들은 그 유명인사들 같은 사람들과 함께 빈둥거리며 지내느니라.” 하지만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더냐? ...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가 말하길, ‘있잖아요, 당신은 단일성설교에 속합니다. 하지만 여기 하나님의 성회에 오시기만 한다면, 제가 어떻게 할 지를 말씀드리죠. 우리는 ...케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휴우! 흔들리는 갈대였습니까? 요한은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에게 와서 사두개인이 되고 바리새인이 되지 않는다면,’이라든가 그런 말들로? 너희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사람을 보지 않았느니라.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형제여. 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다면 너희가 무엇을 보러 갔더냐? 선지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말씀하시길... 그런데... 그것이 선지자의 증거였습니다,아시겠죠,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Eng.p. 43) 선지자에게 옵니다. 그렇죠?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보러 갔더냐, 선지자냐?” 말씀하시길, “그렇다, 맞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는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이니라, 이는 그가” 왜 그가 선지자보다도 더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언약의 사자였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은혜 사이의 길을 연결했습니다. 그는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서 말한 내용 중 요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선지자가 말했던 사람이다. ‘보라,’ 말라기 3장,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라.’” 아시겠습니까? 오, 그는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다시 단순함 속에 숨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가 무엇을 했나 지켜 보십시오. 그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강림을 열렬히 설교했습니다. “그는 자기 손에 키를 들고 있다. 그는 ...할 것이다, 그는 그의 길을 키로 까부르고 있다. 정말, 다시 말해서, 그는 그의 타작마당을 완전히 깨끗케 할 것이다. 그는 쓰레기들을 모아서는 저 쪽에 쓸어다가 태울 것이다. 맞다. 그는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일 것이다.” 보십시오, 그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도들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다 위대한 뭔가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오, 그 분이 오고 계십니다. 그 일 밖에 남지 않았어요. 정말, 그 분은 힘센 분일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로마인들을 다 차버릴 것입니다. 저런! 그 분이 오시면 헬라인들을 이 쪽으로 가게 하시고 로마인들을 저 쪽으로 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가 왔을 때, 그는 자그마하고 겸손한 사람, 이 쪽에서 저 쪽으로 밀리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 세상에!
그리고나서 예수님께서 그의 가르침을 끝내는 시점에 이르자 서서, “누가 나를 죄있다 정죄할 수 있느냐? 모든 성서가 내가 ...을 하리라고 말한 것을,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나를 정죄하라. 그러나 만일 성서에서 내가 하리라고 한 것을 내가 하지 않은 것이 있느냐?” 아시다시피, 죄는 불신입니다. “누가 나를 송사할 수 있느냐?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내쫓거든, 너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함입니다! 자기 자신을 죽음에까지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오, 그 부활절날 아침에, 할렐루야, 그때가 그가 타작마당을 깨끗케 한 때였습니다. 그는 모든 쓰레기를 말끔히 청소했습니다, 형제여.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밀은 곡간 속에 인침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안에 가지고, 땅 속에서 쉬고 있으면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고, 그 생명은 살아날 것이고, 우리들은 그 부활 때 일어날 것이며, 공중에 들림을 받아 주님을 만나, 곡간으로 모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는. 저기에서 불태워질 것이고, 둘러싸고 있고, 이리 저리 당길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 껍데기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아멘. 오, 주님은 훌륭한 분이지 않습니까![회중이 “아멘” 한다--주]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절대로 종교적인 단어로 설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대로. 그는 결코 설교자처럼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처럼 설교했습니다. 그는(Eng.p. 44) 하나님의 단순함을 지닌 용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이를테면 “도끼가 놓여졌다”라든가 “나무”라는 용어나 “뱀들”이라는 말들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의 종교계에서처럼 어떤 신학교 선생이나 신학박사나, 박사 아무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딘가에 있는 나뭇군처럼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도끼니 나무니 뱀이니 그런 것, 밀이니 곡간이니 그런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는 제 생각에는, 가두 연설하는 설교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는 “그루터기 설교자”로 불리웠다고 생각합니다. 요단 강 옆에 있는 그루터기 위에 올라서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 말입니다. 아마...세상의 지혜로부터는 숨으시는,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자 알아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당신께서 이런 것들을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배우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것을 나타내실 것에 대해서 감사하나이다.” 아시겠습니까? 단순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숨어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단순함으로, 요한 안에 숨어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함 속에 계신, 세상의 지혜로부터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을. 자, 더 이상 여러분을 붙들고 싶지 않습니다. 일 이분 내로 끝마칩시다.
보십시오, 잠시 멈춥시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고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곧 끝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하고 있는 작고 낡은 초라한 곳에 내려 오셔서 아픈 자 들을 고치시는 때입니다. 부유하고 교만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하나님의 병고치심같은 것은 없어.”합니다. 제가 떠나는 날 아침, 이 곳 건너편에서 다윗과 골리앗에 대해서 설교한 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말하기를, “브래넘형제님, 당신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저 바깥 교육받은 세상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하십니까?” 저는, “어떻게 상대할 지 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의 말씀입니다. 그 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오는 유월로 서른 해 전인가 서른 세 해 전에, 그 날 여러분이 저기에 있는 사진에서 보시는 천사가 저 아래 강에 내려왔을 때, “침례 요한이 보냄을 받은 것처럼,” 오천여 명의 사람들 앞에 나타나, “네 메시지가 세상에 퍼질 때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비평들이 쏟아졌었는지를 기억하고 계시죠. 로이 슬로터나 여기 앉아 계신 몇 분은 그 날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스펜서 부인이나 여기 계신 어른들은, 조지 라이트나 몇몇 분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어땠는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그렇게 됐습니다.(Eng.p. 45) 그런데 그 때 그것이 거절당하는 가운데서, 말하기를, “그것은 정신통일로 고치는 것이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돌아서서 한 늙은 말 못하는 주머니쥐를 그 안으로 들여보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 만드셨습니다.
라일 우드와 뱅스는, 우리가 저기에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이 입증한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죽은 피라미 새끼 한 마리가 물에 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의 영광을 보이시겠고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하시겠노라고 성령은 그 전날 말했습니다. 그 래서 거기에서 그 날 아침, 거기에 서 있을 때, 배 안에 성령이 내려 오셨고, 저는 일어나서 그 물고기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는 아가미와 창자가 입밖으로 끌려나와 약 삼십 분 동안 죽은 채 물에 떠 있었습니다. 그 물고기는 살아나서 다른 물고기들과 똑같이 헤엄치며 물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머니쥐든 물고기든 어느 것이라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주머니쥐를 세워서라도 믿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죽은 물고기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주머니쥐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는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세대를 향한 얼마나 호된 책망입니까! 그들이 그것 때문에 넘어지고 그것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 “당신은 이것을 아니면 저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한 마리의 단순한 동물을 들여 보내셨습니다. 그렇죠? 얼마나 호된 꾸중입니까!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이시는,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에, 불신하는 이 세대의 이런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것은 자기네 식으로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만일 하나님의 치료하심이라는게 있다면...” 며칠 전 날 밤, 한 카톨릭교인이신 남자분이 제게 이것을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아십니다. 에어즈가, 말하길, 저는 그의 아들을 보러 휴스톤으로 갔었습니다. 그는, “아니 그렇다면,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라면, 그것은 우리 카톨릭교회에 와야만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시겠죠? 아시겠죠? 네, 감리교인들은 그것은 자기네 교회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오순절교인들도 그것은 자기네 교회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 아무에게로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오십니다. 맞습니다. 정말, 그분은 그렇게 하십니다. 네. 그냥 그것을 지켜 보십시오. 그것을 흘려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을 여러분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그것을 명심하십시오. 마음 속으로 그것을 숙고하십시오. 자기네 식으로 와야만 하고, 자기네 교파로부터.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단지 심리학이다, 아니면 그것은 마귀이다. 그건--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만일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자기네 식으로“우리가 해석한 식대로”, 아시겠죠, 와야했기 때문입니다.(Eng.p. 46)
바로 그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와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되어야만 했습니다. 아시겠죠? 만일 그들의... 만일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신다면, 그들은 그 분은 어떤 분이어야 하는가를 다 해석해 두었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다른 식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생인가 뭔가였고 그는 바알세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함 속에 숨어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예비자는 어떤 특정한 교육 받은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뭐랄까, 의심할 바 없이... 사람들은, 그들이, 네, 목사들을 임명하고 그들을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내보내는 매일, 매년마다, 각 사람은, “이 사람이 앞으로 나올 예비자일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학교나 그런 것은 전혀 없는 광야에서 예비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아시겠죠? 겸손함과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제 기다리십시오. 끝내면서, 우린 이 말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단순한 메시지를 거절하는 것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순한 방법을 거절하는 것은,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가를 많이 얘기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음, 그들은 그것을 비웃고 그것 위로 달려가고 원하는대로 그것을 다룰 수도 있지만, 그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죽었던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멸절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가 부활하시기 전 그가 죽음 가운데서 어두움의 사슬에 묶여있는 그들에게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는 지옥으로 가셔서, 한 단순한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단순한 메시지가 전파되고 있었을 때, 노아 시대의 오래참음 동안에 회개하지 않은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는 가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노아가 내가 이 곳에 오리라고 설교했는데, 내가 여기 왔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불기둥으로 적절하게 입증을 받아 광야로 이끄심을 입어 나온 모세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일어나서 그것으로 조직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들은 멸망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뒤를 돌아보며,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만나를 먹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들은 다 죽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의 빛 가운데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빛 가운데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의 빛 가운데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는 곳에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그들을 위해 마 련하여 걷게한 곳들을 통과하며 걸어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잃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죽었느니라.” 여러분이 그 단어를 찾아 보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전으로부터의 “영원한 분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 죽었느니라.” 아시겠습니까?(Eng.p. 47)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은 다 멸망당했습니다. 제 말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단순함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니, 제가 잠시 실수를 했습니다.”하고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생각해 보는게 좋을 것입니다. 자,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적절하게 증명되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나서, 만약 증명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죠? 오! 그들 시대의 모세를, 엘리야를, 침례 요한을,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처럼.
여기서, 저는 사소한 얘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여러분의 기분이 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며칠 전에, 저는 특별사면을 요청하기 위해서 텍사스주 휴스톤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젊은이와 젊은 아가씨를 위한 특별사면 요청서에 서명하게 하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을 그 곳에 불러서 말씀을 전하려고 몇몇 사람을 모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그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신문에서 그 사건에 대해서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에어즈씨의 의붓아들이었습니다. 에어즈씨는 여러분이 저기에서 보시는 주님의 천사의 사진을 찍은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 카톨릭교인이고 그의 아내는 유태인입니다. 그는 이 유태인 아가씨와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종교에 대해서는 얘기를 나누려 하지 않고 그렇게 지냅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는 테드 키퍼만은 더글러스 스튜디오를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로 왔을 때, 베스씨는, 베스박사는, 침례 교회의 목사인 베스박사가 보스워쓰형제의 코에 주먹을 들이대고 흔들면서, “지금, 이런 모습을 찍으시오”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늙은이의 껍데기를 찍어서 하나님의 치료하심의 기념으로 내 서재에다 매달아 두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텍사스주 휴스톤에 가기 전에 주 하나님께서는 제게 거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다 그 때의 논쟁과 사건에 대해서 아실 것입니다. 그것을 책에서도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겸손하게 행하려 맘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글쎄, 그 사람들은 일자무식쟁이들이야”하고 말했습니다. 베스박사는, “그들은 일자무식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병을 고친다는 그 따위 것을 믿는 그런 사람들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형편없는 자들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니, 그 사람은 중학교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질 수 있는 학위들은 다 가진 세련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쨌든 보스워쓰형제를 거뜬히 누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히자, 그는 보스워쓰형제와는 싸움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스워쓰형제는 그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곳에 앉아계신 분 중 많은 분들이 그 날 그 논쟁하는 곳에 계셨습니다. 그 때 말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우리가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Eng.p. 48) 보스워쓰형제는,“잠깐만 기다리시죠. 이 도시에 사시는 분들 중 몇분이나, 그 날 밤 우리들처럼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약 삼만 명이 있었는데, “이 크고 좋은 침례 교회들을 다니시는 이 도시에 사는 분들 중 브래넘형제가 이 도시에 온 이후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나았음을 의사의 진술로 증명할 수 있는 분은 여기 몇 분이나 됩니까, 일어나 보십시오.”하고 말했고, 그러자 삼백 명이 일어섰습니다. 보스워쓰형제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러고나서 그는, “형제님...”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신성한 병고치는 자를 데리고 와 보시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최면을 거는 것을 좀 봐야겠소. 그리고 그 사람들을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지켜봐야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테드 키퍼... 그 사진을 찍었던 당사자인 에어즈는 거기에서, “브래넘씨는 최면술가가 아닙니다. 저는 목에 이렇게 혹이 있는 어떤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브래넘씨가 그 여자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 날 제가 그 여자에게 얘기를 했는데, 그 혹이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스박사는, “그 사람은 그녀에게 최면을 걸었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 저를 조롱했습니다. 그는 제가 그 도시에서 내쫓겨야 할 사람이라며,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며, 아시겠죠, 그와 같이. 휴스톤 크로니클 지(誌) 일 면에 대서특필로 실었습니다. 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하려고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절 그리로 보내셨으므로 그건 그분이 처리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밤 저는 거기로 내려가서, “저는--저는--저는--저는 신성한 병고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만일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저는 병고치는 사람이라고 불려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기 계신 베스박사님이 구원에 대해서 설교를 하신다면, 그는 신성한 구원자라고 불려지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제가 하나님의 병고치심을 설교한다고 해도 저는 신성한 병고치는 자로 불려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기가 신성한 구원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그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또한 저도 병고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을 향해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자 그는, “그 말은 허튼 소리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는 이리저리 걸어다녔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이 은사, 이 주님의 천사가 문제라면 그것은 증명될 수 있습니다.”했습니다. 바로 그 때, 그녀가 선회하며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말할 필요가 없겠군요. 그 분은 이미 저를 대신해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갔습니다, 그 큰 도시, 휴스톤은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도시들 중의 하나입니다. 며칠 전 그 곳에서 걸어다녔을 때, 그 도시를 쳐다 보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거리들은 더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텍사스 거리에 있는 그 곳의 카운터들은, 저는 영화배우들이 투숙하곤 하는 라이스 호텔로 들어갔는데, 그 곳 지하에 식당엘, 내려가보니, 천정이 떨어져 내려오고 바닥에는 회반죽과 오물과 먼지와 제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는 설교자들 사이의 혼란이 있었습니다.(Eng.p. 49) 왜 그렇게 됐습니까? 빛을 거절하면 어둠 속에서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죽음을 기다리는 행렬 속에 그들의 자녀들이앉아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셨습니다. 단순함이 나타내지고 거절당했을 때, 그 때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단순함으로 보이셨습니다. 바로 거기서 그들이 전 세계를 휩쓴 그 사진을 찍었습니다. 과학자들조차도 그것은 전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진은 워싱턴 디 씨에 있는 종교 예술 회관에 걸려 있습니다. 표명된 단순함인 것입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하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감추셨습니다. 그러나 부활로 자기자신을 표명하셨습니다. 오, 이런! 그리고는 또, 우리는 그저...우리는 할 수...거기에는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계속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햇빛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지하실로 들어가 눈을 감는거나 다름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먼저 옳은 것을 거절하는 것이 틀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눈뜨기를 거절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렇죠? 만약 여러분이 보는 것을 거절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렇죠? 단순한 것들을 잘 살피십시오. 여러분이 하려고 애쓰고 있는 큰 일들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지 않고 남겨둔 작은 일들이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 다음에는, 여기를 보십시오.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말... 마태복음 11:10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이 그로다.” 아시겠죠? “내 앞에 보내어진 사람이 바로 그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함이었습니다. 어느날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이...라고 하나이까”라고. 그는, 예수님은, “인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라. 나는 죄인들의 손에 넘기워지겠고 그들은 인자를 죽일 것이다. 인자는 죽을 것이고 삼일 만에 다시 일어나리라. 저 위에서 본 환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자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침례 요한과 함께 지내고, 얘기하고, 광야에서 함께 먹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둑에 앉아서는 말하기를, “어찌하여 선생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 당신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러 올라가겠고 다시 일어나리라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메시야이고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여기에 모든 성경구절들은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는 이미 와 있느니라. 그런데 너희들은 그 사실을 몰랐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 사람들은 누구였죠? 제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잠깐 동안만 여러분을 좀 마음 아프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잠시 몇분간만, 아시겠죠, 여러분이 확실히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제 말이 들리십니까?[회중이 “아멘”한다--주](Eng.p. 50) 보십시오! “어찌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그들이, “어찌하여 성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런데 그들은 침례 요한이 개심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왜 성서는, 선생들은 말합니까?” 제 말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왜 성경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침례 요한과 함께 행했던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왜 성서는 엘리야가 이 모든 일 이전에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해야한다고 말합니까?” 침례 요한은 약 여섯 명의 사람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전부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들만이 그것을 영접하도록 되어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보도록 미리 정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미 왔으되 너희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성서에서 그가 하리라고 한 일들을 그대로 다 행했다. 그는 그들을 회복시켰는데, 그들이란 나를 영접하고 믿는 너희 모두를 말한다. 그는 성경에서 그가 하리라고 한 일들을 그대로 다 행했다. 그리고 그들도 성서에서 그들이 하리라고 한대로 그에게 행했다. 그는 이미 왔지만 너희들은 그것을 몰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준비됐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약간 충격을 주고 싶습니다. 휴거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이 될 것입니다. 휴거는 너무나 단순해서, 의심할 여지없이 같은 식으로 될 것입니다, 휴거가 어느날 올 것인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전혀 모를 것입니다.자, 제발 지금 일어나지 마십시오, 일어나지 마십시오, 일어나지 마세요, 몇 분만 더 알아보십시오. 저는 정말로 끝내겠습니다. 휴거는 그토록 단순한 방식으로 올 것이므로 심판이 내리고, 그들은 인자를 보게 될 것이고, “이러이러한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가 우리에게 보내져야 되지 않았습니까? 휴거가 일어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휴거는 이미 일어났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주 우리는 ...?...관하여 상당히 깊은 가르침을 받을 예정입니다. 자, 잘 보십시오. 휴거는, 아주 적은 숫자가 그 신부에 속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아닐 것입니다. 자, 말씀 전하는 교사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도표들을 갖고 있는데, 가서 만약 그가 감리교 목사라면, 천만 명의 사람들이 휴거할 것인데 그들 모두가 감리교인들일 거라고 보여줄 것이고, 만약 그가 오순절교 목사라면, 모든 오순절교인들이 들어갈 거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휴거의 진리와 거리가 멀 것입니다. 아마 한 사람이 제퍼슨빌을 떠날 겁니다, 그저 누군가가 실종될 것입니다.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어, 결코...” 남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조지아 주에서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아프리카에서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을 것입니다. 생존해 있던 500명의 몸이 변화하여 간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그것은 전 교회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교회가운데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올라갈 것이지만, 그것은 다음 번 부활에서 있을 일입니다. “그들은 천 년 동안 살지 못하더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 안에서는, 만약 바로 이 순간에 500명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떠난다고 하면, 세상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자고 있는데, 내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두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Eng.p. 51) 그것은 밤시간입니다. “들에 두 사람이 있는데,” 지구의 반대편에서, “내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두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일은 아주 평범할 대로 평범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광신적인 메시지는 지나갈 것이고, 여러분이 먼저 아셔야 될 것은, “이 목사님은 어딘가 가셨어. 그런데 아직도 돌아오질 않으시네. 숲으로 사냥을 가셨을거야. 그런데 돌아오시지 않는구먼. 이 사람은 어딘가 갔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제 생각에는, 그 젊은 아가씨는 어딘가로 불려간 게 틀림없는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누군가가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폭행을 하고는 강 속에다 던져 버렸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실종됐어요.” 그것의 절반도...구십 구... 그녀를 아는 사람이 없다면, 수억 명 가운데서 한 사람쯤이 그 일에 대해서 뭔가 좀 알 겁니다, 말하기를, “아니, 그녀는 실종됐어요. 아니,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이렇게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데.” 아닙니다.
사람들은 “무덤이 열릴거다”라고 말하는데. 한데 어떻게 무덤이 열리겠습니까? 저는 그 얘기로 들어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그냥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단순하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야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칼슘과 칼륨과 모든 것은, 여러분의 몸 속에 있는 모든 물질들인데 그런 모든 것을 다 합치면 한 숟가락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그것은 영과 생명으로 다시 환원됩니다. 하나님이 그냥 말씀만 하시면, 휴거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밖에 나가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무덤을 파헤쳐, 여기에서 오래 전에 죽은 시체를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몸은 처음부터, 죄에서 태어난 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새로운 몸은, 그 몸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몸을 가진다면, 우리는 다시금 죽을 것입니다. 그렇죠? 아무도... 사람들은, “무덤이 열릴 것이다. 죽은 자들이 걸어 나올 것이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열린다고 말하는 식의 열리는 것은 아닐겁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중에 오는 도적같이 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비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것을, 휴거를, 말씀하셨습니다.
휴거가 있고 난 후에는 심판이 내리칠 것입니다, 죄와 재앙과 질병과 모든 것들이. 그 때, 사람들은 죽음이 그들을 해방시키기를 간절히 원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휴거가 먼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저희에게 이 심판을 내리십니까?” 그는, “휴거는 이미 일어났으며, 너희들은 그것을 몰랐노라.”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세상에! 좋습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났는데, 너희들은 그것을 몰랐다.” 왜 믿는자들은 그의 오심의 단순한 징조들을 믿지 않습니까?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즉 달이 내려가겠고 태양이 한낮인데도 내려가겠고, 그런 온갖 일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좋겠는데... 여기에 그것에 대해서 적어온(Eng.p. 52) 메모들이 있는데, 아시겠죠,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우리는 어쨌든 이번 주에 이 인들을 떼면서 그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에서 그것은 이미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보십시오. 주의 천사가 우리에게 그 일곱 인을 떼어 줄 지. 그것은 그들 일곱 신비스런 우뢰로 인쳐져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왜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표적들의 음성의 간단한 단순성을 믿지 못합니까? 왜 그들은 그것을 믿지 못합니까? 언제나 그래왔던대로 입니다, 참 하나님의 말씀이 표명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영리하고 너무나 교육을 많이 받아서 글자로 된 말씀의 단순한 형태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거기에다 그들 자신의 해석을 붙이고 싶어합니다. “그 말씀은 이런 뜻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지금 빨리 이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이 곳에서 주시는 환상들조차도,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제가 “테이프에서 말한대로 말하십시오. 환상이 말하는 대로 말하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테이프에서 듣게되는 것입니다. 자, 만약 여러분이 말끔히 깨어 있다면, 여러분은 뭔가를 깨달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제 손에 주고 여러분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그것은--그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영리하고, 교육받은 자들은 그것을 놓칠 것입니다. 그 단순한 환상--그것들이 그토록 단순하게 나타내어질 때,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 위를 덮어 버립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그 환상을 보고, 거기로 사냥을 가는 것에 대해서 다 설명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넘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그것을 보내셨고, 저는 돌아와서 그것을 해석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것과 그런 것을 보여 주면서. 그리고나서 저는 돌아와서 그것을 미리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께서 되리라 한 그대로 정확하게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침례 요한은 거기에 나와서 고백했습니다. 그는, “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들 제자들이 말하기를, “왜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성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단순함은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를 넘어가 버립니다. 이 말만 하고, 그리고나서 끝내겠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끝내겠습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자, 이것을 좀 쪼개 봅시다. 계속 끝내겠다고 말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뒤...보십시오. 여러분을 붙들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몇 시간 뒤에, 우리는 다시 올 것입니다. 보십시오, 단순한 잉크 한 방울을 예로 들어 봅시다.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 이 곳에 어떤 목적 때문에 모이셨습니다. 촬리, 저는 당신의 집에서 식사했습니다. 넬리, 당신은 저에게 어떤 목적이 있어서 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모든 것은 어떤 목적 때문에 존재합니다. 이 교회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세워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목적이나 원인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Eng.p. 53)
이제 단순한 잉크 한 방울을 봅시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회중이 “아멘”한다--주] 단순한 잉크 한 방울을 가지고 그것을 봅시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한 방울의 잉크입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좋습니다. 이 잉크 방울을 봅시다. 자, 그것은 검정 잉크입니다. 자, 그 잉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교도소에서 나오도록 저의 사면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형수의 독방에서 절 나오게 하는 사면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3:16을 쓰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제 영혼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맞습니까?[“아멘.”] 아니면 그것은 제 사형선고장에 서명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법정에서 저를 유죄로 선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쓰입니다. 맞습니까? [“아멘.”] 자, 그 적은 잉크를 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 봅시다. 자, 그것은 잉크입니다. 그것은 화학원소들이 결합되어 잉크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검은 색입니다.여러분 그것을 옷에다 떨어 뜨려 보십시오, 그러면 잉크는 옷에 얼룩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표백제라는 것을 제조해냈습니다. 여자분들은 클로락스라는 표백제를 사용하시죠. 어, 제가 그 잉크 한 방울을 가지고 그것을 표백제 통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그 잉크는 어떻게 될까요?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표백제는 발명 제조되어, 색채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해해 버리도록 만드는 화학원소들입니다. 그런데, 그 표백제의 일부분은 물입니다.
물은 H2O, 수소와 산소입니다. 수소나 산소는 다 위험한 폭발성 원소들입니다. 그리고 수소와 산소는 사실상 재들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맞습니다. 화학적인 재일 뿐입니다. 자, 자, 그것을 함께 결합시키면 여러분은 물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해시키면, 여러분은 수소와 산소를 얻습니다, 계속 그렇게 반복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 그런데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곳에 화학자들이 앉아 계실지도 모릅니다. 화학자들이 제 말을 듣고 계실지도 모르니까 저는 이 말을 하겠는데, 저는 화학식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식으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설명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실 거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그 잉크 한 방울을 표백제에다 떨어뜨렸습니다. 무슨 일이 생깁니까? 즉시 그 검은 얼룩은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 여러분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못 봅니다. 왜 못 봅니까? 분해됐기 때문입니다. 자, 과학은, “그것은 원래의 산(酸)으로 돌아갔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 산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은 어떠 어떠한 것들로부터 나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가스가 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가스는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음, 그것은, 말하자면, 가스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분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원자에서.” 그럼 원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전자에서.” 그럼 전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Eng.p. 54) “우주 빛에서.”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다시 옛날 화학자들이 발견해 놓은 것들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물질이고 피조물이라면, 그것은 창조주로부터 나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기에 우연히 앉아 있는게 아닙니다. 저는 우연히 여러분을 12:30이나 1:00까지 붙잡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의인의 걸음은 주님께서 정하신 거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으시는 데에도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데에도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저 잉크처럼. 자, 우리 그것을 분해해 봅시다. 자, 맨 처음 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우리는 그것을 분자 상태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 분자를 가지고 분자 1 곱하기 분자 9, 곱하기 분자 12. 자, 만일 그것이 11이 되면, 적색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검정색을 만들려면 12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것을 원자에까지 분해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원자였습니다. 그런데 원자 96 곱하기 +43은 원자 1611과 같게 됩니다. 만약 그것이 1612라면 그 색은 자주색이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다음 그것을 계속해서 분해해 보십시오.
그것은 처음부터 저 뒤에 뭔가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상식일 뿐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입니다. 그것은 창조주를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창조주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나서 그것은 결정되었고 이런 다른 ...로 혼합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원자 B16 곱하기 12 곱하기 14 곱하기... 몇번이든지 간에 그렇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것은 원자상태가 될 때까지 형성됩니다, 그 다음에는 과학이 그것을 손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은 분자로 나오는데,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더 잘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에서 다른 어떤 것으로 형성됩니다. 먼저, 그것은 화학원소로 되어, 거기에서 그들은 그것들을 함께 혼합시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 저는 끝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고, 커다랗게 갈라진 틈을 건너와서, 이 쪽 편에서 사망가운데 머물렀습니다. 인간은 떠났습니다. 돌아갈 길은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가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고나자, 하나님께서는 대속물을 하나 받으셨는데, 그 대속물은 어린 양이나, 염소나, 양이나, 피를 취할 수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틈의 저 쪽에서 아담이 아니 아벨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쪽 편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그는 이 땅의 유업입니다. 그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을 해서 뭔가가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그가 건너왔을 때, 그는 아들 신분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는 본성이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손 아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의 화학적인 희생제물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소와 염소의 피는 죄와 이혼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죄를 덮기만 했습니다. 만약 제가 제 손 위에 붉은 점을 갖고 있고 그것을 흰색으로 덮는다면, 그 붉은 점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Eng.p. 5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죄를 위한 표백제를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그 분 자신의 아들의 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한 죄가 하나님의 표백제 속에 떨어졌을 때, 그것을 다시금 찾으려고 해 보십시오! 죄의 색채는 중간자들을 통해서 돌아가고 심판의 날까지 고소자 사탄을 치고 그를 누르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는 다시는 그를 치는 자기의 죄를 상기하지 않고, 갈라진 틈의 다른 쪽에 서서, 다시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그 얼룩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마치, 그 클로락스가, 아니 그 잉크는 분해되고 다시 환원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잉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고백되고 ...에 잠기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속에 잠긴 남자분이나 여자분, 그것은 모든 죄의 징후들을 죽입니다. 모든 죄의 분자는 마귀에게로 돌아가서, 영원한 종착지가 불못인 마귀를 심판의 날까지 누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은 다리가 놓아지고, 더 이상 기억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의롭게 되어 서 있게 됩니다. 단순함입니다!
모세는, 소와 염소의 피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단순한 사람을 취하시고 그의 입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여호와의 종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걸어나가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환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걸어나와서 손을 동쪽을 향해 뻗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가서 손에 있는 지팡이를 동쪽을 향해 펴고 ‘파리가 있을지어다!’하고 말하라.”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염소와 양의 피 아래서, 거기로 걸어나와서 그 지팡이를 쥐고는 동쪽을 향해 뻗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파리가 있을지어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파리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뒤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미 그 말은 말해졌습니다. 그것은 생각인데, 이제는 그 말은 말해졌고,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입술, 소와 염소의 피 아래 있는 단순한 한 인간의 입술 안으로 왔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할 것은, 녹색 파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1 미터마다 2 키로그램이나 되는 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모세를 통하여 말해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피 아래서,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말은 그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교회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개구리가 있을지어다.” 그런데 그 나라 안에는 개구리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개구리들이 곳곳에 3 미터나 높이 쌓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한 단순한 사람 안에서 자기 자신을 감추고 계셨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Eng.p. 56)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물어볼게 있습니다. 만약 소나 염소의 피가 표백제로 사용되어서, 오로지 덮을 수만 있었던 피가, 창조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 파리가 생기게 할 수 있는 위치에 한 사람을 둘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말을 함으로써 다람쥐가 생기게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표백제로 인하여 어떻게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단순함 때문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으로 남아계심을 믿으십시오. 이런, 세상에! 죄의 사면! 오, 제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다음에는, 마가복음 11:22에서, “너희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런, 서너 장 더 남았습니다. 그것을 그냥 남겨 두어야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까? 어딘가에 뭔가가 잘못됐습니다. 어딘가에 잘못된 뭔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단순함 속에 감추십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과 학자들은, “아, 그것은 정신감응(텔레파시)이야,아시겠죠. 그것은...”하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을 자유로이 통과하며 옛날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현재의 여러분의 상태와 앞으로의 여러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표백제에 의한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깨끗케 하실 수 있고 그를 표백제 속에다 넣어 표백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라.” “어떻게 나를 정죄하느냐? 오, 너희들 자신의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 선지자들, 너희들은 그들을 ‘신들’이라 부르지 않느냐? 그렇다면 어떻게 너희들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데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 교회여, 오늘밤부터 하는 설교는 꼭 깨달으십시오. 아시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으로부터 죄를 아주 멀리 가지고 가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 피는 모든 더러움을 없앱니다. 죄는 심홍색 얼룩을 남겼네, 하나님은 그것을 눈처럼 희게 씻었네. 그 때 보좌 앞에서, 나는 그 분 안에 완전한 모습으로 서 있네.(Eng.p. 57)
이런, 세상에! 어떻게 제가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제가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보혈 때문에, 제가 아니고, 하나님과 저 사이에 그 보혈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놓아...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화학 작용이 죄를 없애려고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를 표백제 속에 있는 물처럼 희게 보십니다. 제 죄는 사라졌습니다. 죄는 희생제물이 거기에 누워있기 때문에, 그에게 미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단순한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그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어떤 겸손한 적은 무리들 안에, 단순함으로 자신을 숨기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는, 하나님은 과거에 항상 해 오신대로, 자기 자신을 표명하실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회중이 “아멘”한다--주]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세상에,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 아닙니까? [“아멘.”] 저는 이 설교 메시지가 말씀이 의도하고 있던 것을 산출해내고, 여러분들이 화려한 것이나 그런 것들을 찾지 않게 되는 경지로 이끌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아니면 어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신다면, 그것이 얼마나 겸손하고 낮은 지를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한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엘리사가 저 동굴 안에 있을 때, 연기가 지나갔습니다, 피와 천둥과 번개가 지나갔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가진 모든 이런 종류의 감흥들이 지나갔고, 얼굴과 손에 피가 나고, 감흥들과 기타등등. 그것은 그 선지자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냥 거기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미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가리고 걸어 나갔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거였습니다.
친구들, 기억하십시오, 크고 위대한 ...를 찾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큰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런, 저런, 아니면 요런 위대하고 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가 말하고 있는 뜻을 파악하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크고 위대한 일들, 아시겠죠! 그래서 이 일이 이루어질 때, 그것은 이렇게 위대하고, 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겸손해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놓치고, 그냥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뒤돌아보고, “아니,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는데...”라고 말할 겁니다. 아시겠죠, 머리꼭대기 바로 위로 지나갔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지나갔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그렇게 단순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대하게 표명하시려고, 아시겠죠, 단순함 속에 사십니다. 무엇이 그 분을 위대하게 만든다구요? 자기 자신을 단순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고 위대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단순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귀빈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아직 큰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충분히 큰 사람이 되면 그는 이렇게 아래로 내려와서, 아시다시피,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Eng.p. 58)
시카고에 사시는 연로하신 성도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온갖 교육을 다 받은 사람으로서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재빨리 내려왔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패배한 모습으로 걸어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그가 내려올 때처럼 올라갔더라면, 내려올 때는 올라갔던 식으로 내려왔을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저 겸손하십시오.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지 마시고, 그저--그저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십시오,“주님, 만일 제 마음 속에 나쁜 뜻이 있다면, 뭔가 잘못된게 있다면, 아버지,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런 것을 없애 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 저는 그 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리고 저는 그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압니다.” 여러분은 이 인들이 ...하기 시작하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다면. 그런데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오후 다시 만나기 전에, 우리 목사님께서 여러분들이 하실 말을, 아니, 목사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예배가... 목사님, 여섯 시 삼십 분에 찬송예배가 시작되죠? 그리고...[네빌형제가 “여섯시 삼십 분입니다”한다--주] 여섯 시 삼십 분. 그리고... [“문은 여섯 시에 엽니다.”] 문은 여섯 시에 엽니다. 찬송예배는 여섯 시 삼십 분에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이라면, 저는 오늘 밤에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이란 주제로 설교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월요일 저녁에는, 흰 말 탄 자. 화요일 저녁에는... 검은 말 탄 자는, 수요일 저녁에. 회색 말, 청황색 말. 그리고 붉은 말 탄 자. 그리고나서는 여섯 째... 네째, 다섯째, 여섯째, 그리고 일요일 밤에는. 다음 주 일요일 오전에는, 어쩌면 병고침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전 모릅니다.
이제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주님께, 우리들 자신과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봉헌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저는--저는 한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저--저는, 아시다시피,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저는--저는 이번 주는 여러분과 함께 있고, 그리고는 다시 떠날 예정입니다. 저는 제가 어디로 갈 지 모르지만, 그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갈 겁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가능한한 모든 순간순간을 바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자, 네빌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