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원하시면 앉으십시오.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왕국에 함께 속한 시민들을 만나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함께 교제하려고 여기 이 형제님의 집에 모이신 모습을 보니 초대 교회가 생각납니다.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는 처음에 집에서 집으로 모이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단일한 마음으로 빵을 떼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있는 동안 우리도 그렇게 단일한 마음, 하나의 목적을 갖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한 가지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 전에, 곧 그분의 무한한 지혜로 우리가 오늘 아침 여기 있을 것을, 이 외딴 초원, 아니 이 사막의 작은 건물에 와 있을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수천 년 전에 아셨습니다.
오늘 아침 투산에서 이리 오던 우리 친구들, 스트리커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분들 자동차의 발전기가 고장 났더군요. 함께 데려올 수 있는 분들은 차에 태워 왔습니다. 여기 계신 부인과 아이들입니다. 다른 분들도 발전기를 고칠 수 있으면 조금 뒤에 오실 것입니다. 이 근처 작은 교차로였는데,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여기 오게 되어 기쁩니다. 여기 아이작슨 형제님과 저는 서로 그리스도 안의 형제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함께 교제한 적은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피닉스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형제님의 부인이 여기 계셔도 저는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부인이 누구신지, 가족이 누구신지 모를 만큼만 서로 알고 있습니다. 들어오면서 문 앞에 서 계신 흑인 형제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아주 좋은 분이셔서 악수를 나누었지요. 오늘 아침 이곳에 들어와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을 참으로 환영해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게는 특권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인 여러 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모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제 사역에서 기억에 남는 때는 이렇게 열두 명이나 스물네 명쯤 함께 앉아 있는 시간입니다. 소규모로 모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더 가까이 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서로 더 친밀하게 느껴지고요. 우리가 이렇게 모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젯밤 자정 가까이 되어 어느 가정에 모였습니다. 거기에는 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어떤 작은 일 때문에 제정신을 잃어 가는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젊은 여성과 저만 방에 함께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둘이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빛, 주님의 천사가 와서 바로 우리가 있는 곳 위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아주 유력한 집안의 스물두 살 청년이 볼거리에 걸려 있었습니다. 볼거리가 그에게 내려가서... 어른들 가운데 많은 분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특히 남자에게는, 남자들에게는 말입니다. 정말 거의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 청년은 여러 날, 거의 두 주 동안이나 열이 화씨 105도까지 올랐습니다. 그 정도면 쓰러질 지경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의사들은 그 감염으로 인한 열을 잡으려고 페니실린을 비롯하여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썼지만, 아무 효과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1분 만에 청년의 열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나아서 일어났습니다. 중심이 되시는 분은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 이 가정에 모인 것은 이 안식일에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우리의 귀한 형제님과 여러분을 만날 날을 고대했습니다. 형제님이 여기 이 작은 모임에서 보내 주신 여러분의 십일조를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귀중한 것을 마음 깊이 매우 거룩하게 여깁니다. 그것이 제 손에 들어온 뒤 어디에 쓰였는지 언젠가 제가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신실함과 그런 마음을 보여 주신 데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집에서 모이면서도, 여러분이 가진 얼마 안 되는 십일조를, 여러분이 아는 한 가장 잘 사역을 지원하는 데 쓰이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뒤부터는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한 일에 대해 그날 답해야 할 때, 저는 우리 주님 앞에서 좋은 청지기이고 싶습니다.
이 외딴곳에서는 자동차 소음에 별로 방해받지 않는다는 좋은 점이 있군요. 참 좋습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며칠 동안 부흥회를 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오면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잠깐 주님에 관해 이야기한 다음 다시 떠나야 하니까요. (저는 1시 30분까지 투산에 가야 합니다.) 그저 이렇게 만나 악수하고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하고는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만나서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말을 하지 않을 날을 생각합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또 오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함께한 시간이 기껏해야 두 시간쯤 되겠지만, 그곳에서는... 시간이란 것이 있다면 백만 년 동안 앉아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처음 앉았을 때보다 남은 시간이 조금도 줄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영원입니다.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밖에서 지내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낙원의 회랑을 걸어가고, 천사들이 찬가를 부를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때이며 세상의 것들을 이겨 내야 할 때입니다. 그곳에는 싸움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기도도 이미 드렸을 것입니다. 더 이상 기도회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을 자리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치유해야 할 질병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모두가 참으로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인간인 우리가 무엇을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때를 약속하신 그 약속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 있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 무릎에서 젖을 먹는 아기부터 어린 학생들, 십 대 소녀와 소년들, 중년,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봅니다. 저 학생도 작년에는 어머니 무릎에서 젖을 먹던 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 십 대 아이들도 바로 작년에 학교에 들어간 것 같고요. 중년이신 분들도 십 대였는데, 그다음에는 어느새 노년이 됩니다. 땅으로 날아왔다가 사라지는 수증기와 같습니다. 솔로몬이 말했던 것 같은데,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피어났다가 잘려서 시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시간을 유익하게 쓰기 원합니다.
그러니 이제 머리를 숙여 기도하며 주님께 말씀드립시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를테면 병이 들었거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주님, 제가 이 간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는 뜻으로 말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풍성히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아침 우리가 이 말씀과 말씀이신 위대한 분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이 외딴 사막에 올 수 있는 큰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 그와 같은 곳에서 불타는 떨기나무가 도망친 선지자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 사명을 받아 보내심을 받았으며, 당시 속박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상속 백성에게 위대한 구출자가 되었습니다. 오, 위대하신 하나님, 오늘 아침 우리와 함께 이 외딴 사막에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큰 대성당에도, 세계 곳곳에도 계심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며, 너무 작은 곳도 없고, 어떤 곳도... 우리가 땅 위에 아무리 널리 흩어져 있다 해도 주님은 어디에나 계시므로 언제든 모든 곳에 계실 수 있음을 압니다. 이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이 모임에서 여기 있는 우리 형제님과 그의 작은 양 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보여 주는 그들의 용기와 신실함에 감사하며, 그들 위에 주님의 복을 구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한, 그 주린 마음에 메시지를 전할 사자가 언제나 어딘가에 있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방금 손을 든 이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손 아래, 마음속에서 무엇이 고동치고 있었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그들에게는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질병이라면, 주님, 바로 몇 시간 전에 그토록 뜨거운 열로 죽음과 생명 사이에 누워 있던 폴 섀릿을, 방금 말씀드린 그 사람을 주님께서 붙들어 주셨습니다. 모든 의학을 동원해도 그 열을 멎게 할 수 없었는데도... 짧은 기도 한마디가 즉시 그 열을 멎게 했습니다.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 시대 저 외딴 사막에서 그러하셨듯이, 오늘 여기 이 외딴 사막에서도 주님께서 똑같이 분명하게 나타나시며 똑같이 실제로 계심을 보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줄 알기에 감사드립니다. 지극히 겸손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그저 생각으로 상상하는 것을 주님께 구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압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반드시 믿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 진지하고 철저히 확신하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다해 마음속으로 그것을 분명히 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여기 있는 모든 병든 사람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잃어버린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옵소서.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 어떤 말이나 행동을 통해, 그들이 앉아 있든 벽가에 서 있든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믿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닻을 내리고 그것을 단번에 확고히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이 집을 예배 장소로 내어 준 형제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교제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원하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어디든 나무 아래로 나가 앉아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님께 은혜를 입으려고 모였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를 만나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우리 마음속의 씨앗을 열어 주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왕좌에 앉으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때 주님의 사랑도 우리에게 나타내 주옵소서.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저 뒤에 앉고 싶은 분이 계시면, 여기 의자가 몇 개 보입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좀 더 편안하게 계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엄청난 시대입니다. 어제 저는 오늘 무슨 말씀을 전할까 생각했습니다. 여기 오기를 고대해 왔는데, 이 작은 기도 모임에 와서 무슨 말씀을 전할까 하고요. 그래서 주님께 도와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주님의 복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아침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성경 말씀에 관해 몇 가지 메모를 적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문을 아주 작고 희미하게 두드리시는 소리까지 알아들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 아니고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면, 이것은... 오늘 아침 이 집에 모인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난 가장 위대한 일이 될 것입니다. 마음을 두드리시는 그때에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거절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믿을 수 있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열린 문이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 15장을 읽겠습니다. 계시록 15장의 한 부분, 처음 네 절을 읽겠습니다. 또 내가 하늘에 있는 크고 놀라운 다른 표적을 보았는데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졌더라.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들 안에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더라. 또 내가 보니 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는데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유리 바다 위에 서서...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이르되, 주 하나님 전능자여, 주의 일들은 크고 놀라우시니이다. 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들은 의롭고 참되시니이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이까? 오직 주께서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으므로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 말씀에서 본문을 택하여 “브이 데이”, “승리의 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나타내는 말이지요. 우리가 방금 읽은 이 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저는 영어에서 “승리”라는 말이 참으로 위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을 패배시키고 이겨 내어, 승리를 거머쥔 승리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승리를 환호합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 어떤 곳에 이르렀음을 봅니다. 불이 섞인 이 유리 바다입니다.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글자를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겨 내어, 저편 불 섞인 유리 바다 위에 승리자로 서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승리와 승리의 날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 승리의 날을 생각할 때면 전쟁이 떠오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전쟁에서 적을 이긴 날을 승리의 날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의로운 아벨의 피가 흘려진 이래 세상은 인간의 피에 젖어 왔습니다. 땅에 처음 떨어진 인간의 피는 의로운 아벨의 피였습니다. 그가 피를 흘려야 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속죄 제물, 이 어린양을 받아 주셨습니다.
그를 시기하던 형이 질투하여 의로운 아벨을 죽였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땅에서 인간의 피가 거의 모두 흘려졌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온 세계 곳곳에 흘려진 인간의 피로 이 오래된 땅이 분명히 젖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인간의 피가 흘려진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질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희생물을 받아 주셨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질투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이 가인보다 더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증언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가인은 물론 이것을 질투했습니다. 자기 희생물은 거절되고 아벨의 것은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믿음으로 했다고 말합니다. 이 두 아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돌아가려고 애썼습니다. 생명의 동산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범법 때문에 다른 쪽으로 떨어졌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처럼, 그들도 죽음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그곳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려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기를 구한 것입니다. 가인은 꽃들과 밭의 열매들로 아름다운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그가 제단 위에 놓은 것이 무엇이었든 말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영적인 계시를 통해, 죽음을 가져온 것은 밭의 열매가 아니라 피였다는 것을 계시받았습니다. 그래서 죄 없는 대속물의 피를 대신 드렸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 주셨습니다. 바로 그날 이래 그것이 우리 죄를 위한 하나님의 화해의 제물이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른 근거로 받아 주셨다면 우리도 그 근거로 나아가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희생물의 무죄한 피만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것이 아름다움과 웅장한 장소라면, 우리는 이렇게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이 외딴 사막, 철길 옆에 있는 이 작은 집에 주님께서 오실까? 여기까지 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실까?” 그것이 큰 대성당이거나 가인이 드렸던 아름다움이었다면, 우리는 그저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허공에 대고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흘린 피를 근거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아무리 작고 가난하든, 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더 큰 장소를 드리고 싶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지금보다 그것을 더 받아 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 없는 대속물이 흘린 피를 근거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피가 흘려진 이유는, 제 생각에 사람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라고 권하시는데,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려 하시는 것을 사람은 자기 생각에 따라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인가 보여 주려 하시지만, 사람은 자기가... 자기가 보는 방식대로 그것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누군가 어떤 광경을 보여 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 광경을 보여 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기 저 산을 보세요”라고 한다면, 무언가 여러분의 눈길을 끌었기에 저에게 그 산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는 “이 나무를 보세요”라고 한다면, 그 나무에서 제게 보여 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돌아갈 길을 찾도록 그 죄 없는 대속물을 바라보게 하려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방식으로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 없는 대속물 안에서 보여 주려 하시는 것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러고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보여 주려 하시는 것을 먼 데서 보려고 쌍안경을 집어 들면서도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합니다.
얼마 전 산에 다녀오는 길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 쌍안경을 들고 저기 있는 것을 보세요.” 그래서 쌍안경을 들었더니 서너 개의 다른 물체가 보였습니다.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판에 영양이 서 있었는데, 서너 마리가 함께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은 영양은 분명히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쌍안경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세 마리로 보이는 영양이 하나로 겹쳐 한 마리가 될 때까지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저는 쌍안경을 대기 전부터 영양이 한 마리일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쌍안경을 들어 들여다보니, 이를테면 영양 세 마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쌍안경의 초점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양 한 마리가 보일 때까지 초점을 다시 맞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쌍안경이 그것을 가까이 당겨 주어 그 생김새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십니다. 성경은 말씀이고,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의 쌍안경입니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쌍안경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들여다볼 때 네댓 가지 다른 길이 보인다면,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한 가지 엄숙한 목적이 보이는 데까지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쪽으로 달려가고, 다른 사람은... “글쎄, 나는... 내가 저 사람보다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여기서 시작하겠어. 우리 청년들을 더 잘 교육시키겠어. 우리는 이렇게 하겠어.” 이런 식입니다.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한 가지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죄를 위해 흘려진 죄 없는 피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에게는 조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조직에 반대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조직들이... 사람들을 떼어 내어 형제의 관계를 갈라놓는 등의 해를 끼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우리의 대속물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 대속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조직들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보십시오. 사람들은 “감리교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은 침례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리교 이야기입니다. 이쪽에서 부흥회를 하고 저쪽에서도 하고, 그러면서 줄곧 다른 사람을 배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 때까지 계속 초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저기 세 분이 보인다면 쌍안경의 초점을 좀 더 잘 맞추어야 합니다.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초점을 맞추어, 우리 모두 위에 한 분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분이 인류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그들이 그분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시고, 노인들에게도, 중년들에게도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의 피부색에도 관심을 두십니다. 흰색, 갈색, 검은색, 노란색, 우리 조상들이 살던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른 피부색에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유대인에게만, 또는 황인종이나 흑인종이나 백인종 어느 한쪽에만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그리고 온 인류가 그분의 말씀을 한 가지에 맞추어 초점을 잡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친히 사람이 되심으로 죄 없는 대속물을 주셨습니다. 죄를 제거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선지자 요한이 그것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여 주었습니까?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누구든지... 죄의 문제 전체가 바로 그 죄 없는 한 대속물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여기 하나님의 쌍안경을 잡기 시작하면... 육적인 것을 너무 많이 보느라 말씀이 주는 영적인 적용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보려고 할 때 저지르는 큰 잘못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가인이 쌍안경으로 보았던 것처럼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성취를 보았습니다. 가인은 “아벨만 없애 버리면 나 혼자 남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랜 세월 내내 이렇게 다른 사람을 치워 버리려고 애써 왔습니다. 사실은 다른 사람도 자기와 함께 그 길로 들어오도록 도와 형제가 되려고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아, 저 작은 무리 말이야” 하며 그들을 쓸어 버리고, 또 이쪽을 두고도 “그 사람들은 이래, 저래” 하고 말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한... 하나의 분명한 모습으로 모으려고 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젯밤 면담 중에 한 젊은 여성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고요. 목회자의 딸이었는데, 연애와 관련된 어떤 일 때문에 제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스물세 살쯤 된 아주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 시카고에 있었습니다. 집회에 앉아 있었는데, 아니 엘진이었습니다. 집회에 앉아 있을 때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로 나아가 그 아이를 지목하시고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심장에 잡음이 있구나. 의사는 네가 열다섯 살까지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너는 치유되었다.” 그 뒤로 그 아이는 심장에 아무런 이상도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다른 종류의 심장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마음의 병이었습니다. 사랑하던 남자가 떠나서 다른 여자와 결혼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도 아직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기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당신을 향한 올바른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일에 온통 얽매인 그 아가씨는 이렇게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조니가 저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저는 알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그것만 보였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그 작은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그 안에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으세요.” 그러자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도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어떤 일, 어떤 주고받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말하자 그녀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빠져나왔으니 갈보리를 바라보세요. 거기에... 당신은 나가서 술을 마시려 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의 딸이, 오순절 목회자의 딸이 말입니다. 그 슬픔을 잊으려고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당신을 손톱만큼도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가씨, 저기 갈보리를 바라보세요. 돌아갈 길은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살든 죽든, 가라앉든 물에 빠져 죽든, 갈보리,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시는 곳은 바로 거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출 때... 말씀의 초점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전하시는 바로 그 한 가지를 드러내는 대신, 육적인 면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렇게 하면, 당장 눈앞에 나타난 것을 따라 달려가는 처지에 빠집니다. “여기 기회가 있어. 우리 작은 무리가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나머지 사람들과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겠어.” 이런 식입니다. 우리가 서로 형제의 사랑을 품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고, 함께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도록 초점을 맞추는 대신, 맨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좇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이가 입은 옷이나 배운 정도나 피부색 같은 것을 보고 그를 깎아내립니다. 또는 그의... 그래서 사람들이 갈라집니다. 사람은 그것을 좇아갑니다.
그것은 속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과 몸과 영, 이 셋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육적인 생각이... 여러분 안에서 작용하는 두 영적인 힘은 여러분의 생각과 영입니다. 고도로 연마된 육적인 생각은 자기 지성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바로 그것이... 그렇게 하면 자기 안의 영적인 사람에게서 자신을 멀리 떼어 놓습니다. 바로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여기서, 제 기억으로는 태버내클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위대하시기에 아주 단순해지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커지면 단순해질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말하는 바로 이 방식대로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놓칩니다. 그러나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더 위대해지고, 더 위대해지고, 계속 더 위대해질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로 아주 겸손하고 단순한 데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그를 밟고 지나가면서도 자기들 가운데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모를 지경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전자를 측정하고 원자를 쪼개며 달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평범한 풀을 밟고 지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저 작은 꽃도 아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땅속의 그 작은 씨앗에 숨어 있다가 이듬해 꽃을 피워 내는 생명을 아무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평범한 풀 한 포기라도 온 세상 과학자들이 풀줄기 하나, 잎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에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천사들도 발 디디기를 두려워하는 곳을 어리석은 자들은 징 박힌 구두를 신고 걷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것들을 밟고 지나갑니다. 하나님을 밟고 지나갑니다. 데이지를 찾느라 난초를 밟고 지나갑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난초를 밟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단순해지고 자신을 낮춘다면... 저기 있는 덩굴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무엇입니까? 생명이 들어 있는 화산재입니다. 돌아서서 다른 쪽을 보십시오.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미루나무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종류의 생명이 들어 있는 화산재입니다. 이 생명은 나무를 만들고, 저 생명은 덩굴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생명이 들어 있는 화산재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들었습니까? 우리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생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됩니다. 그러고는 바라봅니다. 말씀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사람에게 무엇이 옳은지 설명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인처럼 금세 성질이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그는 질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것을 드리시는... 자기 희생물 대신 (가인의) 아벨의 희생물을 받아 주시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자기 희생물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되기를 원했습니다. 아벨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아, 내 형제야, 하나님께서 받아 주셔서 정말 기쁘다. 이제 여호와께서 받아 주시는 길을 알게 되었구나. 네 희생물을 받으심으로 이 길을 받아 주신다는 것을 입증하셨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질투했습니다.
오늘날 사람에게서도 바로 그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사람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라고 입증하시는 길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현장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길입니다. “이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으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은, 여러분은...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보리라.” 아시겠습니까? “가인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아벨아, 너는 나를 보리라.”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와서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아닙니다! 신조로, 똑같은 것으로, 아니 탐욕과 질투로 말입니다. 가인이 가졌던 바로 그것으로 그는 형제의 피를 요구합니다. 형제를 길에서 없애 버리려고, 제거하려고 합니다. “저들은 그저 홀리롤러 무리일 뿐이야. 저 작은...”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거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거기서 서약이 깨지고... 거기서 교제가 끊기며 갈라집니다. 그것이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그것이 이혼을 향한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합니다. 바로 그것이 교제를 깨뜨립니다.
에덴에서 교제를 깨뜨린 것도 그것입니다.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초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원수의 논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는 입장을 굳게 지켰더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쌍안경의 초점을 바꾸었더니, 오직 한 길만 보이는 대신 두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쎄, 이 사람이 옳을 수도 있겠네. 옳은 것일 수도 있어. 우리는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을 알아. 그런데 이 사람도 옳을 수 있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더 밝혀 주는 것일 뿐이야.” 보이십니까?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정확히 같은 자리로 되돌아갑니다. 여러분에게는 두 생각이 보이지만, 하나뿐입니다. 신조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다른 모든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브가 이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서 여자가 사역자가 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에서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집에서 일찍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제시간에 여기에 도착했다가 다른 약속에 맞추어 돌아가려고 일찍 출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가... 천사 이야기로 흘렀습니다. 거기 앉아 있던 제 어린 아들 요셉이 천사에 관해 무슨 말을 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천사들은...” 저는 “하나님은 남자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천사들은 여자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하지만 천사들은...” 하고 말했습니다. 제 딸 사라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빠, 치마를 입고 있잖아요. 여자예요.” 저는 “그건 어떤 심리학자가 그린 그림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천사를 여자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남자였습니다. 언제나 ‘그’, ‘그’, ‘그’였지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여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그런 적이 없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여자 사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천사는 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아담이 먼저 지어지고 그 뒤에 이브가 지어졌으며”, 또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법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말하기를... 바울은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어떤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잠잠히 있을지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에서... 우리 오순절 무리들을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 뿌리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초점을... 자, 여기 번개같이 설교할 수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가 들은 어떤 여성 설교자들은 설교를 얼마나 잘하는지, 남자들은 그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이 의로운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도... 바울은 “누가 타언어로 말하되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잠잠히 있으라”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는 잠잠히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질서 있게 해야 하며, 질서 속에 배치되어야 합니다. 제자리에 놓이고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초점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정의 골과 탐욕 같은 것을 일으킵니다. 자신을 다시 말씀에 맞추어 초점을 잡는 대신, 초점을 벗어나면서 “그들이 뭘 하든 그냥...”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그것이 가정의 교제를 깨뜨리고, 교회의 교제를 깨뜨리며, 나라들 사이의 교제도 깨뜨립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나라들은 자기 방식대로 보려고 합니다. 독일은 자기 방식으로만 보려고 하고, 러시아도 자기 방식으로만 보려고 하며, 미국도 자기 방식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각 나라의 영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 나라의 영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가 보니... 나라마다 방식이 다릅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시간이 있다면 여러 나라를 간단히 살펴보며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에 가면 군대 같은 영을 발견합니다. 모든 것이 군대식입니다. 똑바로 서고, 똑바로 걷고, 모퉁이에서도 각을 맞추어 돌아야 하고,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군대식입니다. 프랑스에 가면 부도덕한 영을 발견합니다. 온통 여자와 포도주, 술 같은 것들입니다.
핀란드에 가면 충직한 영을 발견합니다. 모든 것을 정직하게 하고, 모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식입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게 일해야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미국에 오면 커다란 “하! 하! 하! 하! 하!”를 발견합니다. 그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의 영입니다. 누군가 라디오에서 음담패설을 하면 모두가 그것을 듣고 웃습니다... 어니 포드 같은 사람들이 온갖 곳에서 그런 농담을 하지요. 아서 고드프리와 그 무리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영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영들은 다른 영을 질투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나라는 사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라들의 신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산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 순식간에 세상에 있는 모든 왕국,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내 것이다. 나는 이것들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한다.” 그리고 “네가 내게 경배하면 이것들을 네게 넘겨주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년왕국 때 그것들을 상속받게 되실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탄에게 절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여기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면, 독일의 영, 프랑스의 영, 노르웨이의 영, 미국의 영처럼 서로 다른 영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한 영, 아멘! 하나님의 영께서 모든 마음속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깃발, 한 나라, 한 백성, 한 형제의 가족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사람들이 형제가 되며,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 큰 다툼 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탄이 지배하는 한 전쟁과 문제와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전쟁들과 전쟁들의 소문을 들으리라. 전쟁이 있고, 또 전쟁이 있으리라.” 왜 그렇습니까? 이 땅의 통치자, 사탄, 나라들의 권세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이 나라의 영이 있고, 저기에는 저 나라의 영이 있습니다. 마귀들입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저기 에스키모들이 사는 곳에 개들을 데리고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개썰매를 타는 알래스카 북부, 저 멀리 노스웨스트 준주 일대 말입니다. 그곳 안내원이 허스키라고 하는 개들을 묶는데... 한 마리는 여기에, 한 마리는 저 밖에, 또 한 마리는 저쪽에 묶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는 “마귀가 가득해서 서로 죽이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그저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밖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마귀입니다. 그는 살인자입니다. 그저... 나라들도... 마귀들끼리도 싸웁니다. 서로 싸우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통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원리를 따라가면 다시 그 영들로, 정확히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창세기는 씨앗이 담긴 장이며, 오늘날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거기서 낳습니다.
이렇게 전쟁과 승리, 큰 승리들이 있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쳐부수고는 “영광이다! 우리가 이겼다. 저들을 물리쳤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악수하고 서로 무역을 합니다. 얼마 뒤에는 다른 대통령이나 왕이나 통치자나 다른 체제가 들어섭니다. 그러고는 어느새 그 손자들이 다시 총을 들고 서로 싸웁니다. 전쟁과 전쟁들의 소문, 그리고... 한쪽이 다른 쪽을 바라보며 “이제 너희는 나를 섬겨야 해. 내가 승리자고 너희는 패한 쪽이잖아”라고 하는 식입니다. 참으로...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은 노예를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서로 군림하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형제가 되라고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군림하라고가 아니라 형제가 되라고 만드셨습니다. 우월한 인종도, 우월한 나라도, 우월한 언어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언어, 하늘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형제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누구이든 사람입니다.
왜 우리가 서로 싸우고 죽여야 합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때로는 선한 나라, 또는 그 안에 어떤 체제를 갖추고 올바르게 하려고 애쓰는 나라가 자기 권리를 지키려고 싸웁니다. 그런데 악한 나라가 쳐들어옵니다. 이 나라를 점령해서 그렇게 되고... 그러다가 다시 이쪽저쪽으로 바뀌고 또 바뀝니다. 나라들은 자유와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지키려고 싸우는 가운데 많은... 국가적인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사탄이 지배하는 한 계속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큰 승리,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맨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큰 승리를 경축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습니다. 그 전쟁 때 많은 나라가 모여 독일 땅에서 맞붙었습니다. 벨기에와 여러 나라가 저마다 다른 깃발 아래서 싸웠던 것을 제1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 앉아 계신 형제님 중 두 분, 세 분, 어쩌면 네 분은 그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저는 쉰네 살입니다. 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아홉 살쯤, 여덟이나 아홉 살, 1914년에... 어디 보자, 9년, 10년, 11년, 12년, 13년, 14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저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전쟁이 날 거라고 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 아버지는 스물두 살쯤이셨고, 사람들은 아버지를 전쟁에 보내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전쟁에 보낸다니, 저는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길을 따라 올라오셨습니다. 스프링이 달린 마차를 타고 계셨는데... 몇 마일 아래 가게에 다녀오시는 길이었고, 마차에 콩 자루가 하나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콩 자루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와서 전쟁을 일으키면, 여기 오면 이 콩 자루로 때려 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전쟁이라는 생각, 아버지가 전쟁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팔이 울리고, “전쟁 채권을 사십시오”라는 소리도 들리고, 우리 모두 기억하는 그대로였습니다. 가서 이 세계대전을 치러 끝장을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조직을 만들면, 사람들이 국제연맹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었지요. 그러면 평화, 영원한 평화가 오고, 그것으로 끝이며 더는 전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20년쯤 지나자 우리는 다시 그 속에 뛰어들어, 전과 똑같이 맹렬하게 또 다른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전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탐욕과 질투 때문입니다. 카이저 빌헬름이 독일을 떠나자마자 아돌프 히틀러라는 오스트리아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 사람들이 온 세상을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정신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영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다시 마귀가 마귀를 대적한 것입니다. 그 나라들의 죄 없는 국민들은... 서로를 전쟁으로, 전쟁으로, 전쟁으로 몰아갑니다. 줄곧 그래 왔습니다.
그러고는 어느새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온 세계가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비행기, 더 큰 폭탄을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싸우고, 피 흘리고, 죽고, 굶주리고, 얼어붙고, 그 밖의 온갖 고통을 겪었습니다. 전쟁, 전쟁, 전쟁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브이 데이라고 부르는 날이 왔습니다. 제가 이 제목을 끌어온 곳이 바로 그 브이 데이, “승리의 날”입니다. 승리를 얻은 날, 한 군대가 다른 군대를 이긴 날, 브이 데이입니다. 디데이가 있었고, 그다음에 브이 데이가 있었습니다. 디데이는 싸우러 들어간 날입니다. 브이 데이는 평화 협정에 서명한 날, 독일과 그 나머지 동맹국들이 다른 나라들에 항복한 날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승리의 날에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모자를 공중에 던지고, 하늘에 총을 쏘고, 울고, 호루라기를 불고, 북을 치고, 음악을 연주하고, 서로 등을 두드렸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승리였습니다! 우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라고 느꼈습니다. 깃발이 올라가고 나팔이 울렸습니다... 아, 얼마나 굉장한 시간이었습니까! 승리, 승리, 승리! 우리가 이겼습니다. 참으로 큰일이었습니다. 이른바 기독교 국가들에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살아 있던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큰... 그런 날이 많았고, 큰 전쟁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도 큰 승리의 날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양쪽에 다 있었습니다. 쌍안경의 초점이 육적인 쪽으로 맞추어져 승리의 날을 본 것처럼, 말씀, 성경에 초점을 맞추는 곳에서도 때로 또 하나의 승리의 날이 찾아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많이 있었습니다. 원수와 큰 싸움들을 치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선에 서 있는 위대한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이끌고, 승리하여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싸웁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매일 싸웁니다. 우리는 지금도 전쟁 중입니다. 우리 안에서 옳고 그름 사이의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에 굴복할 것인가? 우리가 품고 있는 이 생각을 포기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보고 초점을 맞추어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살펴보니, 줄곧 매번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면, 우리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원수가 아무리 크고, 우리를 대적하는 장비와 조직이 얼마나 많고, 이것저것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또 맞추어 한 가지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성령 침례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침례는 제자들에게만 해당했다”라고 하는 등 온갖 말을 합니다. 그들은 거기서 초점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래도 초점은 다시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아무도 그것이 말씀에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하나님의 영웅들은 언제나 싸움을 치렀습니다. 여기 외딴곳의 작은 교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그 부대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있는 전초기지입니다. 전초기지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바로 가까이에 그런 곳이 있으니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깃발을 높이 들고, 옳은 일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계속 선포하는 전초기지입니다. 감리교회나 침례교회, 장로교의 사상, 가톨릭이나 유대교, 그 밖의 무엇도 아닙니다. 인종이나 집단이나 피부색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승리자이십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은 이 운동의 총사령관이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전쟁에 참전하신 분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장이 명령을 내렸는데 여러분이 돌아서서 거꾸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온 군대를 망가뜨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군대를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초점을 맞추어 그 목적을,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보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큰 싸움, 영적인 싸움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많은 큰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제가 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지금 조직 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거쳐 온 믿는 자들의 몸은 많은 큰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여러 전쟁을 치렀고, 전쟁과 전쟁들의 소문, 승리의 날과 승리의 날과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큰 아마겟돈 전쟁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 이르면 모든 것이 결판날 것입니다. 위대한 천년왕국 직전에 아마겟돈이 이 땅을 깨끗이 치울 것입니다. 땅은 이 원자 폭발과 화산재 같은 것으로 다시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 이 땅에 스며든... 인간의 피와 죄와 범죄를 가라앉힙니다. 그 땅이 땅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화산이 다시 터져서 위대한 천년왕국을 위해 땅을 새롭게 하고 깨끗이 합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살 백성을 얻으시려고 그분의 교회를 깨끗이 하십니다. 아멘. 저는 그것이 참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때가 다가옵니다...
큰 승리의 날들입니다... 그때를 생각해 봅시다. 잠시 뒤로 돌아가 봅시다. 아직 몇 분이 있으니 용사들 몇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그중 한 사람에게로 돌아가... 훨씬 더 옛날로 거슬러 갈 수도 있지만, 모세 때까지만 가 봅시다. 모세가 내려가 큰 싸움을 치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 자체가 승리를 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든 사람을 낫게 하실 수 있는 치유자이심을 잊었습니다. 성령 침례가 제자들 위에 부어졌으며, 세대에서 세대로 주어져서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아주 오래전에 그것을 잊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잊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만족하며 살다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지적인 일... 아니, 지적인 성취를 가지고 내려가 군사력을 써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외딴 사막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가 모든 것을 다시 끓어오르게 했습니다. 모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쌍안경의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저 모세가 그곳에서 그 아름다운 에티오피아 흑인 아가씨와 결혼해서 정착하고, 아이를 낳고, 장인의 양을 기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 속박에서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임무였습니다. 그것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무언가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여기에 놓인 것이 아닙니다. 저 산도 그저 있으라고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저 나무도 어떤 목적을 위해 거기에 놓였습니다.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도 목적이 있어 여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한 사람에게 간증하여 그 사람이 구원받게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을 통해 백만 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설교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드와이트 무디의 회심이나 그런 많은 사람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저 나이 든 여자 한 분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라는 메시지를 마음에 품은, 나이 든 세탁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낡은 마구간을 빌리고 목회자 한 분을 모셔 와 설교하게 했습니다. 그날 밤 목덜미까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아버지의 멜빵을 맨 한 작은 소년만 내려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로 50만 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한 드와이트 무디였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세탁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두신 자리를 업신여기지 말고, 여러분의 목적을 이루십시오. 머지않아 싸움이 끝나는 위대한 승리의 날이 올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세는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본 뒤에 내려갔습니다. 내려가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많은 큰 싸움을 치렀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힘겨웠던 싸움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여러 일을 통해 성취를 이루었을 때 말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면 그것이 실체가 되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 위에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그것이 치유를 이루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또 다른 일들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붙잡고 받아들이며 믿습니다. 모세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가 내려갔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런데 모두를 한데 모은 뒤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철저히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실망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보시려고 강에 가로막히게 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맡은 임무의 길을 곧바로 따라갔습니다. 뒤에서는 파라오의 군대, 무장한 50만 군사가 먼지를 일으키며 쫓아왔습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이 무력한 유대인 200만 명이 서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등이었습니다. 홍해가 모세를 가로막았고, 사해가 가로막았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을 때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그는 가서 주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네게 그 일을 맡겼다. 자손들에게 말하여 임무의 길을 계속 가게 하라.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내게 부르짖지 말라. 너는 이 백성을 저곳으로 데려가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만 하라. 맡은 임무의 길을 곧바로 가라.” 아멘! 병든 사람에게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용기를 주어야 하겠습니까! 믿음에서 물러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어야 하겠습니까! 몸을 돌려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십시오. 맡은 임무의 길을 지키십시오. 홍해를 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말하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세에게 그 큰 승리의 날은 저 바닷가에서 있었습니다. 모세와 자기들의 선지자의 음성에 순종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얼마나 큰 승리의 날이었습니까! 그들이 말하고 앞으로 나아갔을 때... 모세는 “내가 이미... 여러분은 벌써 열 가지 기적을 보고도 아직 의심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그 막대기를 들고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새 바람을 보내 바닷물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어내셨고, 그들은 마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서서... 오늘 본문에도 그들이 “불 섞인 유리 바다 위에 서서 모세의 노래를 불렀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노래했습니다... 모세가 건넜을 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건너가고 나니... 파라오의 군대가 모세가 하는 일을 흉내 내며 뒤따라왔습니다. 육적으로 본뜨는 것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닷물이 덮쳐 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빠뜨려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죽은 노역 감독들을 보았습니다. 미리암이 탬버린을 움켜쥐고 두드리며 물가를 따라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딸들이 외치고, 탬버린을 치고, 춤추며 뒤따랐습니다. 모세는 영 안에서 노래했습니다. 이것이 옛날식 성령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그런 집회를 본 적이 없습니다.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아니하리라.” 아멘! 얼마나 굉장한 날입니까! 모두 끝났습니다. 언젠가 그리스도인에게도 또 하나의 승리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여호수아에게도 강가에서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에서도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가 건넜던 그곳, 먼저 강가에서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그때는 4월이었습니다. 요르단강을 건너려면 아마 1마일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저 높은 산들 위에서 눈이 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온 평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원수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대단한 장군이군! 강물이 가장 거세고 건너기에 가장 나쁜 봄철에 군대를 여기로 이끌고 오다니. 자기 군대를 이리 데려와 건너게 하겠다니!”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보여 주시려고 실망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볼 수만 있다면! 여러분을 그토록 괴롭히고 뒤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일들이 시험이라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럴 때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고, 말씀을 선포한 다음, 그저 앞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막다른 데에 이르렀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씀을 선포하고, 그저 앞으로 걷기 시작하십시오. 바다를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때 여호수아가 기도한 것을 봅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이겨 냈습니다. 강을 이겨 내어 건너편에 이르렀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궤를, 그 안에 말씀이 들어 있던 궤를 맨 앞에 두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 등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궤가 먼저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싸우러 나갈 때는 맨 먼저 노래하는 사람들이 나아갔고, 노래하며 전진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팔 등을 불었습니다. 그 뒤에 궤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궤가 앞으로 오면 내려놓았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런데 이때 여호수아는 말씀을 먼저 취하고, 말씀을 맨 앞에 두고 내려가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같이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고 너와 함께하리라. 네 평생에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하리라. 내가 바로 거기 있으리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바로 거기 있으리라.” 그런 임무를 받은 여호수아가 말씀을 맨 앞에 두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임무를 받았다면 말씀을 맨 앞에 두십시오. 그것이 승리의 날을 가져왔습니다.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가 말씀을 맨 앞에 두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궤가 먼저 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아니 강이 열렸고, 그들이 건너갔습니다. 이제 건너간 뒤에는 무엇을 하게 됩니까?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저편으로 건너가자,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모두 성벽 안에 틀어박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총사령관을 만났고, 또 한 번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히 일러 주셨고,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쌍안경으로 보는 육적인 사람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여기로 데려오셔서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 대적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모두 성 안에서 돌팔매 기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 성벽 가까이 가기만 하면 큰일입니다. 저기 돌과 큰 투석기를 쌓아 놓았습니다... 창도 있고 활도 있고 온갖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들이 그저...”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거기에 이를 것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계속 전진하고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칠 일 동안 성을 돌아라.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아라. 마지막으로 돌 때 나팔을 불어라!” 육적인 것을 치우시는 일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영적인 것이 들어오자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곧장 올라가 그곳을 점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승리의 날을 맞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에 관한 약속을 받고 오랫동안 기다린 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과 신실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언제였습니까? 시날 평야의 땅을 떠난 날이었습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건너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이쪽으로 와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그러나 그의 주된 승리의 날은 이레산 위에서였습니다. 그날 그가 거기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험을 주셨습니다. 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그를 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희생물로 드려라.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삼았다. 여기... 네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아들을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네가 그를 죽이기를 원한다.” 보이십니까? 모든 것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이제 네 나이가 백열네 살, 백열다섯 살쯤 되었다. 너는 이 아기를 얻으려고 25년을 기다렸다. 이제 그 아이가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이 되었다. 나는 네가 그를 데리고 올라가 죽이기를 원한다. 그래야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 수 있다.” 아,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조금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예, 주님.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챙기고 이삭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곧장 올라갔습니다. 정확히 순종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맨 앞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하나뿐이고 이제 백 살이 넘었는데 어떻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에게서 난 것처럼 이삭을 주실 수 있었다면,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세상의 것들과 이 땅의 부패에서 우리를 일으켜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죽음이 없는 땅에 두시는 일은 훨씬 더 잘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작은 시련들을 보고 대단한 것인 줄 압니다. 하지만 그저 작은 시험의 시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가 승리의 날을 맞은 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그곳에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저는 압니다. 얼마 전 어떤 목회자가 사도행전 2장 38절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빠뜨렸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침례를 받아야 하며, 그러면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읽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직들이 바로 그것을 반대해 싸워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지나쳐 버립니까?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다면, 쓰인 그대로 끝까지 읽고 성경이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하십시오. 그럴 때 초점이 다시 바로 잡힙니다. 말씀이 말씀하는 것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여러분은... 거기서 초점이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초점은 바로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가 일흔다섯 살이고 사라가 예순다섯 살일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삼겠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그 말씀을 따라 곧장 걸었습니다. 날마다 걸었고 해마다 걸었습니다. 그것과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든 옳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의 원수들 중 누군가가 돌아다니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여, 지금 자녀가 몇 명이나 되십니까?” “지금 몇 명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소. 나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요. 그것뿐이오.” “어떻게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소. 그것으로 끝이오. 그것이 전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이오.” 아브라함은 그렇게 계속 걸었습니다. 마침내 바로 그... 그토록 신실했기에, 더 신실해질수록 더 많은 시험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거기로 데려오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시험을 받을 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합당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이것을 꼭... 놓치지 마십시오. 시련이나 시험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 시험을 견뎌 낼 것이라고 믿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욥에게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사탄이 “예, 저 아래서 욥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온전한 종이다. 땅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 욥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온전한 사람이다. 그는 나의 자랑이며 기쁨이다.” 사탄이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으니까요. 제가 한번 그를 다루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가 주님 면전에서 주님을 저주하게 만들겠습니다. 반드시 주님을 저주하게 만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네 손에 있다. 다만 그의 생명은 취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욥을 신뢰하셨습니다. 아멘!
모든 일이 잘못된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시련을 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신뢰하십니다. 아기처럼 보살펴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온상에서 자란 식물, 잡종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떻게 할지 보시려고 시험을 주고 계십니다. 아멘.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이 불같은 시련들을 기쁘게 여기라. 이것이 너희에게 금보다 더 귀하니라.” 그런데 우리는 자꾸 머뭇거리며 “아, 내가 그저...”라고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겨 내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낼 줄 아십니다. 여러분에게 신뢰를 두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을 믿으셨고... 아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네게 입증해 보이겠다. 내가 그에게 말했기 때문에 그가 그 약속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날 자기 아들을 산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 두 손을 등 뒤로 묶었습니다. 어린 이삭이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삭이 말했습니다. “여기 나무도 있고 제단도 있고 다 있는데, 희생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우리가 무엇인가 빠뜨렸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빠뜨렸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과의 교제를 빠뜨렸다고 하지요. 카드놀이 모임에도 가야 하고, 이것도 해야 하고, 술도 좀 마셔야 하고... 여러분은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계속 가십시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뿐입니다. 그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십시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여기로 데리고 올라오라’ 하셨으니”, 그는 산꼭대기로 올라갈 것이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거기에 가면 그것을 하겠다.” 그래서 거기로 올라가 이삭의 두 손을 묶고 제단 위에 이렇게 눕혔습니다. 이삭은 불평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아브라함이 칼집에서 칼을 뽑고, 아들의 생명을 취하려고 얼굴을 덮은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을 때, 그것이 아브라함의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아, 참으로! 외아들까지 내어놓아야 하는 바로 그 극한까지 시험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을 때의 시험에 이것을 대어 보십시오. 승리의 날입니다. 그분께서 사랑하신 것...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한 종족을 그토록 사랑하셨습니다. 조금 뒤에 그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보십시오. 승리의 날입니다. 아브라함의 승리의 날은 이레산 위에서였습니다. 주님께서 아들 대신 드릴 희생물을 그를 위해 마련하신 곳입니다. 사랑, 사랑입니다... 그날 아브라함은 자기의 신실함을 하나님께 조금도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기 믿음을 입증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약속을 믿어서 백 살에 이 아이를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이 아이의 생명을 취하라고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실 수 있다.” 아! 참으로, 참으로! 이쯤 되면 장로교인도 외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께서 약속을 주셨고, 이제 그 증거를 보여 주셨다. 아멘. 그분이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내게 입증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어디에서 데려오셨습니까? 저는 어떤 엉망진창인 곳에서 나왔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곳에서 나왔습니까? 오늘 아침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분은 우리 가운데서 어떤 분이심을 입증하셨습니까?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멘! 승리의 날은 확실합니다. 반드시 맞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입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그분께서 내게 입증하셨습니다. 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늙은 사람이었습니다. 생식 능력이 없었고, 아내는... 태가 죽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예순다섯 살, 나는 일흔다섯 살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 네게 아기를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는 그것을 믿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를 25년의 시험 속에 던져 넣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보다 더 강해져서 나왔고, 여전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며 “참으로 훌륭한 종이구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자... 사탄이 “아, 그러시겠죠”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지만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하겠다. 그를 저 산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 바로 그 증거를 없애라. 그를 데리고 올라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려고 올라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이의 생명을 취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그의 손을 붙드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손을 멈추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안다.” 아멘.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네 손을 멈추어라.” 여러분 자신의 생각에 어긋나는 시험을 주신다 해도, 말씀이 그렇게 말씀한다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네 손을 멈추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안다. 네 외아들까지도 내게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복을 주고 네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셨고, 또 “그의 씨가 원수의 문에 서서 정복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 참으로!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조금 뒤에 그 아브라함의 씨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에게서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참된 말씀을 들었을 때 의심이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의심이 떠났습니다. 사랑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안다. 너는 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야 했어도 여전히 믿었다. 내가 네게 준 바로 그 증거를 없애라고 했다. 증거를 주고 나서 그것을 없애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나를 그토록 사랑해서 내 말이 무엇이든 지킨다.” 아멘! 하나님께도 참된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야곱에게도 한 번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형에게 돌아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음속에서 경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네가 나온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 (그는 그 고향 땅에서 왔습니다.) 네가 그곳에서 악을 행했지만, 이제 내가 너를 돌아가게 한다.” 가까이 갈수록 그는... 물론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그토록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가 신부, 교회를 그렇게 쫓아다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승리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부는 아주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럴 때 원수는 길을 돌려놓으려고 온갖 악을 다합니다. 성경은 “땅에 화가 있으리라. 마지막 날들에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삼키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굳게 붙드십시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 말씀에 꼭 머무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면 됩니다.
야곱은 마음속으로 그리워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못된 듯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했으므로 벧엘로 가서 이 십일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원수가 된 형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바로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겁쟁이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장자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멘. 오늘날 교회를 보여 주는 얼마나 좋은 모형입니까! 성령 침례가 있고, 그것을 입증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말씀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자권입니다. 야곱에게는 장자권이 있었습니다. 아멘. 그에게는... 형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형이 죽 한 그릇에 팔았기 때문에 야곱이 장자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계도 자기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습니다. 장자권만 있다면 교회 연합이나 국제연맹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야곱처럼 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날을 얻을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야곱에게는 씨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밤새 주님과 씨름했습니다. 그는 “이 승리를 얻기 전에는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동틀 무렵,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걷지 않았습니다. 이쪽에서는 몸집 크고 힘센, 두려움에 찬 교인이었지만, 저쪽에서는 작고 절뚝거리는 제사장, 아니 통치자였습니다. 온 군대를 상대하여 싸울 용기가 있는, 작고 절뚝거리는 통치자였습니다. 에서가 “네 군대를 마련해 주마”라고 했습니다. 그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승리의 날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조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세상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 세상의 것들에 맞추어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어느 하루, 어느 하룻밤 씨름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죽어야 했을 때의 그 씨름이 얼마나 생생히 기억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침내 승리의 날이 와서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제게 침례교회는 다른 어떤 조직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데이비드 박사는 “자네는 홀리롤러가 될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홀리롤러가 되든 안 되든...”이라고 말했습니다. 저기... 그린스빌에서 저는 밤새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그 천사가 그 빛과 함께 들어올 때까지 말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싸우라고 주신 바로 그것, 환상들을 없애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고... 성경으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느냐?” 하시는 등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다시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사역의 현장으로 나아가 온 세상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승리의 날입니다. 야곱에게도 이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밤새 씨름했지만, 날이 밝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이 모든 큰 승리와 이런 일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출 데가 없지요? 이 모든 큰 승리는 훌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하나에 감사합니다. 모두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전쟁에서 얻은 큰 승리도, 영적인 전쟁에서 얻은 큰 승리도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중 어느 것도 영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큰 승리를 얻습니다. 얼마 전 일본과 전쟁을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집에도 자그마한 물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아주 작은 장식품을 주었는데, 인형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일본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내던져 깨뜨렸습니다. “일본제”라고만 해도 사람들이 내던졌습니다. 리키 같은 아이들 무리가, 그... 불량한 사람들이 싸구려 잡화점에 들어갔습니다. 잘난 체하려고 잡화점에 들어가 일본에서 온 물건들을 집어 들었습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떻습니까? 그분 면전에서 비웃지 않습니까? 일본과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만들어 온 작은 인형이나 장식품 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거리낌 없이 잡화점에 뛰어들어 진열대를 뒤엎고 그런 일을 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군대에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등의 일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충성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충성합니까? 그런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가더라도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들은 나라에, 깃발에 충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입을 열어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승리의 날이 더 필요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정복하시도록 내어 맡길 수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으로 여러분을 정복하시게 하십시오.
이 모든 큰 승리는 일시적인 승리였습니다. 모세의 승리까지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속박으로 돌아갔습니다. 늘 나왔다가 들어가고,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많은 영웅이 계속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쌍안경의 초점을 육적인 데에 맞춘 전쟁에서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영적인 데에서도 그렇습니다. 영웅들은 싸우고 죽습니다. 계속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제 메모에 줄줄이 적혀 있습니다. 다니엘과 히브리 청년들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큰 승리를 거둔 위대한 승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마침내 죽음이라는 것이 와서 그들을 데려갔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나아갔습니다. 싸우고 죽고, 싸우고 죽고, 승리하고 죽고, 승리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일을 이루어도 똑같이 죽었습니다. 무덤으로 가면 사람들이 그를 묻었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비석을 세우고 묘를 만들어 그의 무덤을 표시하면 끝이었습니다. 죽음이 그를 삼켰습니다. 위대한 모세, 위대한 여호수아, 성경의 위대한 선지자들... 두세 사람쯤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표시되어 있는지 우리는 압니다. 죽음이 그들을 삼켜 그대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최고의 용사가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싸워 이기신 뒤였습니다... 그분은 싸워야 할 모든 원수와 싸우셨습니다. 먼저 태어나실 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사생아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안고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뚫고 싸워 나가셨습니다. 마리아가 결혼하지 않은 채 요셉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 가운데서 그런 이름을 안고 자라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셨습니다. 그것을 뚫고 싸워 나가셨습니다. 성령을 받으신 뒤에는 무엇을 하실지 결정해야 할 날을 맞으셨습니다. 사탄이 그분을 산 위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는 날이 왔습니다. 사탄이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권능이 있지. 내가 네게 모든 나라의 통치권을 주겠다.” 바로 오늘날 적그리스도가 차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승리의 날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뚫고 싸워 나가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도전을 받으실 때가 왔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배가 고프니 이제 먹어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할 수 있잖느냐.” 그분은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날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분은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승리를...
사탄은 말했습니다. “너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네가 어떤 존재인지 드러낼 수 있다!” 그분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뛰어내려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게 성경을 인용해 주겠다. ‘기록된 바, 그분께서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시리니,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그들이 너를 받들리라.’” 사탄이 얼마나 신학자인지 보십시오.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승리의 날을 맞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온몸이 뜨거운 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섬김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사탄은 그분 앞에 버틸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가정에 죽음이 닥친 곳에 이르셨습니다. 그분의 친구 나사로라는 사람이 죽어 묻힌 지 나흘쯤 되어, 무덤에 누워 냄새가 나고 있던 때였습니다. 시신은 사흘이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72시간이면 부패합니다. 생명과 죽음이 마주 서는 자리가 왔습니다. 여기 계신 분은 생명이시고, 저기에는 그분의 친구를 데려간 죽음이 있었습니다. 결판을 낼 때였습니다. 그분은 무덤 앞으로 걸어가 그 작은 어깨를 펴고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참으로! 그 말씀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생명이 다시 솟아올랐습니다. 죽음에 붙잡혔던 사람이 저 너머 어딘가에서 돌아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승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과 시험, 있을 수 있는 모든 것과 싸워 다 이기셨습니다. 승리의 날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온 세상이 그늘, 사망의 그늘진 지역에 놓인 때가 왔습니다. 모든 사람, 모든 인간, 모든 선지자, 모든 위대한 사람, 그분께서 보내신 이 위대한 영웅들이 모두 저기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모두 저 뒤 무덤에 누워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욥이 그토록 힘겹게 싸울 때를 보십시오. 아내, 그의 반려자인 아내마저... 그는 “아내의 숨결마저 내게 낯설어졌다”라고 하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까! 시험들이었습니다. 그의... 벨사르를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까지도 말입니다. 심지어 엘리후까지도 그를 고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말씀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아내가 와서 말했습니다. “욥, 당신 모습이 너무 비참해요. 그냥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리지 그래요!” 그는 “당신이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려”라고 했습니다. 아, 참으로! 얼마나 훌륭한 영웅입니까! 예수님께서도 그를 언급하셨습니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듣지 못하였느냐?” 욥은 끝까지 맡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아브라함도 끝까지 맡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삭도 끝까지 맡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요셉도 끝까지 맡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요셉은 “나를 여기 아래에 묻지 말고 저 위에 묻으라. 조상들과 함께 저 위에 묻으라. 그들이 묻힌 방식대로 나를 묻으라. 말씀, 그들이 묻힌 평야, 그들이 묻힌 곳에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묻히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웅들은 계속, 계속, 계속 나아갔습니다. 영웅들, 또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을 보내신 총사령관께서... 그들은 싸움터에 쓰러진 위대한 승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승리의 날들을 맞았고 원수를 이겼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한번은 자기 말로 해를 멈추게 했고, 해가 (빛나지), 24시간 동안 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해에게 멈추라고 명령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의 음성을 들으신 이런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원수를 모두 흩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을 쫓아가 죽여야 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받은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면 그들이 다시 병력을 모아 집결할 틈을 얻고, 그러면 자기편 사람이 더 많이 죽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필요하다. 빛이 필요하다. 해야, 멈추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멘!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해를 멈추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뒤쫓아 가서 원수를 하나하나 제거하고 쓰러뜨릴 때까지 해가 24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다시 병력을 모을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는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땅의 흙 속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통치자, 그리스도, 다니엘이 보았던 그분이 오셨을 때... 그 위대한 용사 다니엘은 온갖 고난 가운데서, 그리고 큰... (시간이 있었다면 그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만) 그 역시 땅의 흙 속에 누웠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날에 네 몫으로 정해진 곳에서 안식하리라. 그러나 다니엘아, 너는 다시 서리라.” 그에게, 이 모든 영웅에게 약속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값을 치러야 하는 그 결정적인 시간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질병을 정복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이제 무덤을 정복하셔야 합니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죽음은 그분 앞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장례 설교조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인의 과부가 아들을 데리고 이렇게 나왔을 때, 그분께서 행렬을 멈추시고 아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아, 참으로! 그렇습니다! 죽음을 다스리는 권능이 있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제 두 원수가 더 남았습니다. 저기 있는 무덤과 지옥입니다. (하데스, 무덤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신 날, 너무나 철저히 죽으셨기에 해가 빛을 멈추고 땅이 신경 쇠약을 일으켜, 바위들이 산에서 떨어져 나오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지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지옥을 정복하셨습니다. 부활절 아침에는 무덤을 정복하셨습니다. 아멘! 완전한 승리의 날, 참된 승리의 날이라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덤에서 나오실 때 거기에 있던 포로들을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셨다고 했습니다. 무덤에서 올라오시면서 저기 있던 그 모든 영웅을 함께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날 그 왕국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굉장했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포로로 있던 성도들을 거기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완전한 승리,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죽었던 모든 영웅을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욥과 그 밖의 모든 사람을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들을 무덤에서 자신과 함께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사로잡으셨습니다... 땅에 오셔서 죽음을 사로잡으시고, 지옥을 사로잡으시고, 무덤을 사로잡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일어나십니다. 아멘! 성도들을 함께 데리고 말입니다.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내려주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칼들입니다. 그들의 손에 칼, 말씀을 쥐여 주셨습니다. 정복하라고 말입니다. 아, 참으로! 그들에게 칼들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말씀입니다. 무엇을 정복하라고요? 질병과 죄와 미신과 악입니다.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 그들 모두에게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싸움이 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우리의 승리를 완성합시다. 우리의 완전한 승리는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첫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마음속에 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첫 싸움을 치르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어느 날 밤 열 시쯤, 그 작은 낡은 차고에 들어가 “하나님, 저를 죽이시든지 구원하시든지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교회들에 가 보았지만, 사람들은 저더러 앞으로 나가 설교자와 악수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보다 더한 무엇인가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그 차고에서 “하나님, 더 이상은 갈 수 없습니다. 이러다 죽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낡고 축축한 그 건물에서, 제 무릎은... 풀을 담던 낡은 자루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선생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써서 용서해 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저는 용서받고 싶었습니다.
제가 침상에서 죽어 갈 때 그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의사가 이미 저를 포기했을 때, 제 심장은 1분에 열일곱 번밖에 뛰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느린지 아실 것입니다. 의사가 “죽어 가고 있습니다”라고 했고, 저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고 제 주위에 커튼을 쳤습니다. 그때 그 방에서 저는 큰 어치들이 사방에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둘레에 커튼이 이렇게 쳐져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이렇게 가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척추 마취제가 새어 제 심장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심장이 1분에 열일곱 번밖에 뛰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기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법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엄지손톱을 깨물었습니다. ‘어쩌면...’ 그림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두 손을 이렇게 모아 보았습니다. 손가락들을 맞댔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선생님,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귀를 기울였습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잘못 모았나 봐.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손을... “존경하는 선생님, 저는... 예수 그리스도여,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선생님, 대답하시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일을 주님과 의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이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선생님, 부디 오셔서 제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아니, 손을 제대로 모으지 않았어. 제대로 했다면 뭐라고 말씀하셨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평생 기도해 본 적이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작고 낡은 헛간에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읽어 준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분은 사람이셨다. 사람이셨다면 사람으로서 이해하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말을 들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마귀는 말했습니다. “너는 이미 죄를 짓다가 은혜 받을 날을 다 써 버렸어. 더는 없어. 네가 너무 악했기 때문에 그분은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저는 “그 말은 믿지 않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믿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실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든 무엇이 잘못되었든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과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인간입니다. 이 모든 일을 저질렀고, 주님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그렇게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제가 말하고 있는데 작은 빛 하나가 방을 가로질러 왔습니다. 벽 쪽으로 가더니 빛의 십자가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 빛이... 어떤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한 번도... 타언어로 말한다는 것을 들어 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야고보서 5장 14절을 찾고 있었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니 그 빛이 보였고, 어떤 언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사라졌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게 말씀하신 분이 주님이셨다면, 저는 주님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선생님, 말씀해 주신다면... 주님께서 제 언어로 말씀하실 수 없고, 저도 주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렇게 하면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로 한 번만 더 돌아와 주신다면, 그것을 주님께서 저를 용서하셨다는 우리 사이의 표적으로 삼겠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아, 승리의 날이라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제게도 있었습니다! 참된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시 나타나 똑같은 방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승리의 날을 맞았습니다. 아, 참으로! 그때부터 그분이 제 손에 말씀을 쥐여 주셨을 때, 저는 상을 얻으려고, 피로 물든 바다를 헤쳐 나가려고 싸웠습니다.
우리 모두 승리를 얻었습니다. 싸움을 뚫고 많은 승리를 얻었으며, 아주 가까이, 바로 눈앞에 위대한 승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곧 우리의 완전한 승리의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천사장의 음성이 크게 외치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입니다.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걸어 나올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 방에서 보았던 환상, 아니 옮겨진 일이었든 무엇이었든, 그 일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여기서 틀어 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저 위로 올라가 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보는 것처럼, 이 성경이 제 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진실임을 아십니다. 그들은 거기서 젊었습니다. 똑같이... 똑같이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집회에 참석해 보셨고, 그런 환상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중 하나라도 틀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분께서 환상을 통해 저를 여기로 보내시며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일을 아십니다. 바로... 그대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정확히 그랬습니다.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작은 그리스도인 모임인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여러분은 일시적인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고 나팔이 울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때, 참되고 완전한 승리의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그 소망이 없다면, 그 소망을 얻지 않은 채 오늘을 보내지 마십시오.
얼마 전에 들은 짤막한 이야기를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빌리 선데이가 했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그래서 그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배심원들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이 소년에게 해당 범죄에 대한 유죄 평결을 내립니다. 우리는...” 배심원들은 “사형을 요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그대의 육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밧줄에 매달아 죽이는 형을 선고한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혼에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란다.” 소년은 감옥으로 끌려가 안쪽 감방에 갇혔습니다.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어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판사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판사님, 우리가 이 도시에서 판사님이 선출되도록 도왔습니다. 제발, 제발 그 젊은이가 그렇게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도 다른... 이와 비슷한 일로 텍사스에 갔다가 막 돌아왔습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인가 나흘 뒤에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신문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때 저와 함께 그곳에 계셨지요.) 그들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는 기사를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고, 간청하고, 또 간청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주의 주지사가... 어느 날 어머니가 문 밖에서 문에 이렇게 엎드려,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울었습니다. 마침내 어떤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지사님, 저 밖에 그 소년의 어머니가 와 있습니다. 뵙고 싶어 합니다.” 주지사는 “들여보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을 낮추어 손발로 기어 주지사에게 다가가, 구두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각하, 제 아이입니다. 죽이지 마십시오. 죽이지 마십시오. 제게 하나밖에 없는 아이입니다. 죽이지 마십시오. 그런 짓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감옥에 있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목숨만은 빼앗지 마십시오, 주지사님.” 주지사가 말했습니다. “가서 그를 만나 보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래서 주지사는 소년이 있는 감방 구역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들어갔는데, 소년은 거만하게 굴려고 했습니다. “너를 보러 오신 분이 있다.” 주지사가 들어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와 이야기하고 싶네.” 소년은 몹시 거만하게 굴며 그저 앉아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지사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내게 말을 해 주게. 자네와 이야기하고 싶네.” 소년은 듣지도 못한 것처럼 굴었습니다. 그는 “젊은이, 자네가 허락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네”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나가요. 당신 말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얘야...”라고 하자, 소년은 “입 다물어요. 내가 신경이 곤두선 게 안 보여요? 당신 말은 한마디도 듣기 싫어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나는 여기 온 것이...”라고 하자, 소년은 “이 감방에서 나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왔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그가 걸어 나간 뒤에... 감방 구역의 문에 있던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너는 정말 어리석은 녀석이구나.” 소년이 물었습니다. “대체 저 괴짜는 누구였어요?” “이 주의 주지사님이시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주지사님일 리 없어요! 나를 사면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인데, 내가 그분을 감방에서 쫓아냈다니. 내 사면장에 서명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을 내가 감방에서 쫓아냈다니!” 주지사는 나가면서 “그가 자기 선택을 한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소년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목을 매달려고 얼굴에 검은 가면을 씌울 때, 밧줄을 팽팽히 당겨 올리고 가면을 씌웠을 때 그가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지사님이 내 감방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쫓아내지만 않았어도 나를 사면해 주셨을 텐데요.” 오늘 아침 우리의 감방 곁에 그 통치자께서 서 계시지 않는다고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분을 돌려보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사면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주지사이실 뿐 아니라 왕이신 그분께 아직 사면을 받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오랫동안 갇혀 지낸 그 작은 감방 곁에 그분께서 서 계실지도 모릅니다.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면 그분을 모셔 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직 그분께 완전히 항복하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라고 여길 수도 있는 이 작고 겸손한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그 통치자께서 여기 계십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작은 질병의 감방에 갇혀 있다면, 그 통치자께서 여기 계십니다. 세상의 통치자이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여러분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여러분의 사면장에 서명하셨고, 오늘 아침 그저 그것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거절하지 마십시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이제 참된 승리를 원하신다면, 머리를 숙인 채 항복하고 주의 주지사... 그 통치자께서 오늘 아침 여러분의 사면장에 서명하시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을 이끌어 내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죄에서 이끌어 내시고, 불신에서 이끌어 내시고, 질병에서 이끌어 내시며, 여러분이 원하는 무엇에서든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방식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교도소장이 주지사에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소년이 주지사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통치자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병들었다면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죄를 짓고 잘못했다면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분께는 여러분을 위한 사면장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 너무나 큰 빚을 졌습니다. 제 죄의 빚을 갚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어느 날 저는 감방에 있었습니다. 그 감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값이 너무 커서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 감방을 찾아오신 날, 제가 그것을 알아보았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사면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자유를 얻고 승리,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서 저를 위해 서명하신 사면장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자유롭습니다. 주님, 너무나 행복합니다. 감옥에서 감옥으로 찾아다닙니다. 결혼 문제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들, 병들어 열에 시달리는 사람들, 병들어 감옥에 있는 사람들, 죄를 짓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 당혹감과 의심 속에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감방에서 감방으로 다니며, 통치자께서 바로 뒤따라오시면서 모두를 사면하고 모두를 이끌어 내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이날이 승리의 날, 완전한 승리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이... 주님, 오늘 모든 사람이 승리를 얻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병든 사람이 치유되게 하옵소서. 이 외딴 사막에서... 믿음의 타오르는 불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시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거기 타오르는 믿음의 작은 불, 타오르고 있는 그 작은 소망을 통해, 오늘 아침 모든 갇힌 자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게 하옵소서. “오늘 내가 너를 자유롭게 하려고 왔다.” 주님, 여기 주님을 자기 구원자로 알지 못하는 소년이나 소녀, 남자나 여자가 있다면, 그 작은 음성이 말하게 하옵소서. 그 작고 믿음 있는 음성이 지금 이렇게 말하게 하옵소서. “예, 저는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모든 것이 그분께 참됨을 믿습니다.” 주님, 그 작은 믿음이 지금 그들을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그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 여기 있는 아이작슨 형제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는 이 젊은이와 그의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오, 하나님, 이 작은 교회를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는 이들로 인해 참으로 기쁩니다. 여기 머리 위를 덮는 지붕과 안에 있을 자리를 갖게 된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쁩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참으로 좋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들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온유하게 머물게 하옵소서.
우리 문 안에 들어온 이 낯선 이를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 방문한 분을 축복해 주옵소서. 그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에 “아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완전한 승리를 아직 받지 못했다면, 주님, 오늘 아침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 모든 말씀마다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를 함께 축복해 주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출해 주옵소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이제 이후로는 우리가 안달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과 이런 일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뢰하시기에 그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있으며,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십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되도록 돌보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안달하고 속을 태우지 않게 하옵소서. 그저 거기로 걸어가 말씀을 선포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바다가 열릴 것입니다. 승리의 날들이 올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이날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날들 중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다시 모일 때까지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떠나기 전에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한 시간 반 안에 투산에 가야 합니다. 꽤 운전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여기 와서 여러분의 이 믿음을 느끼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코 그것을 떠나지 마십시오. 그 작은 불이 계속 타오르고 또 타오르게 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불들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아이작슨 형제님, 형제님이 이곳에 오셔서 이 무리를 하나로 지켜 주신 것에 대해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언제나 계속 나아갈 힘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으러 오시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힘, 신적인 힘을 주셔서 계속 나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잠시 뒤 아이작슨 형제님 방식대로 정해진 마침 순서가 있겠지요. 예배를 형제님께 맡기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칭호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물침례를 생각해 오신 분이 있다면, 여기 우리 목사님이 준비되어 계십니다... 기꺼이 침례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함께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해 주기를 원하신다면, 바로 여기서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를 알아 왔고... 알고 있으며, 만나고 함께 앉아 지내 보았습니다. 이 형제님에게서 선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의 영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는 줄 확신합니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헤이스라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훌륭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분은... 누군가가 그럴 때마다... 겸손하고 온유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저 종교적인 괴짜쯤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누가 병들면 나이 든 ‘헤이 아버지’를 불러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는 전혀 괴짜가 아니었습니다. 참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언덕 위에서 농장을 하며 살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늙은 군인이 있었습니다. 제 아버지의 친구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술을 드셨습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성경은 진실을 말하는 책입니다.
우리에게는 역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조지 워싱턴이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의심스럽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성경은 여러분이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며, 거짓을 말하며 세상에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에 관한 그 역사 기록이 의심스럽습니다. 역사는 사람의 좋은 면만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양면을 다 말합니다. 롯은 소돔에서 살던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죄가 “그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자기 딸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양쪽을 다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양쪽을 다 말해야 합니다.
술을 드시던 제 아버지는 이 불신자와 어울렸습니다. 그 불신자는 이 노인을 비웃었습니다. 언제나 그를 놀렸습니다. 우리는 그 노인을 ‘헤이 아버지’, ‘헤이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머리 둘레에 머리카락이 조금 남아 있는 늙은 설교자였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비를 원했습니다. 농작물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켄터키 저편에 있는 리틀 포섬 킹덤이라는 작은 교회로 모였습니다. 여기보다 크지도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곳에 갔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헤이 아버지에게는 늘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이구, 내 혼이 복을 받았구나.” 겸손한 분이었고, 늙은 말을 타고 다니는 옛 순회 설교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례로... 말린 호박 한 바구니나 그 밖에 자기들에게 있는 것, 기름 같은 것을 주었습니다. 예전 순회 설교자들은 그런 식으로 사례를 받았습니다. 여기 많은 분은 옛날 동부의 순회 설교자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농작물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헤이 아버지는 “아이구, 내 혼이 복을 받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예배를 마친 뒤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농작물을 살려 주시도록, 비를 내려 달라고 남아서 기도할 분이 계시면 저와 함께 남으십시오.” 온 교회가 그대로 그와 함께 남았습니다. 당시 젊었던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말의 안장을 벗겨 교회 건물 밑에 넣었습니다. 비가 올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무슨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더니, 검은 구름이 언덕 너머로 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친구들 중 그 늙은 설교자를 조롱하던 불신자는 죽을 때 침대에 붙들어 두어야 했습니다. 그는 걸어 다니며 앓는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여기 많은 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실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병입니다. 그는 사흘이나 나흘 동안 몇 시간이고 계속 마귀들과 싸웠습니다. 그는 “찰리, 찰리!”라고 불렀습니다. 제 아버지였습니다. “저놈이 나를 잡지 못하게 해 줘. 잡지 못하게 해 줘. 저기 침대 옆에 사슬을 몸에 감고 앉아 있는 게 안 보여? 저 사슬로 나를 묶지 못하게 해 줘. 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죽을 때가 되자 남자 네댓 명이 침대에 그를 붙들어 두었습니다. 켄터키에서는 벽에 말뚝 같은 못을 박아 옷을 걸어 두곤 했습니다. 그렇게 나무못을 박아 둔 집을 보신 분 계십니까? 거기에 그의 낡은 비옷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찰리, 내 주머니에 위스키 한 파인트가 있어. 가서 내 아이들에게 줘.” 그리스도인인 그의 아내는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는 못 하겠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자기에게 달려드는 마귀들을 쫓으며 싸우다 죽을 때까지 침대에 붙들어 두었습니다.
그가 비웃던 헤이 아버지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여든다섯이나 아흔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잠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다 자란 고손자녀들까지 침대 둘레에 모였습니다. 그분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수염이 희었고, 머리 둘레에 흰 머리카락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정수리는 벗겨져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이구, 내 혼이 복을 받았구나. 너희 모두 헤이 아버지가 죽은 줄 알았지? 하지만 나는 죽을 수가 없단다. 여러 해 전에 이미 죽었거든. 이제 그저 주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거야. 아, 참 좋구나. 내 자녀들아, 너희가 모두 침대 둘레에 모여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가장 나이 많은 자녀부터 가장 어린 자녀까지 머리를 붙잡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이가 가장 많은 두 아들에게 “나를 일으켜 다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침대에서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너무 쇠약해서 손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을 들어 다오.” 아들이 그분의 두 손을 이렇게 들어 올렸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기쁜 날, 기쁜 날, 예수님께서 내 죄를 씻어 주신 날. 깨어 기도하고 날마다 기뻐하며 살도록 나를 가르쳐 주셨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떠났습니다. 우리도 그 두 가지 마지막 중 하나를 맞아야 합니다.
여러분 곁에 이렇게 겸손하며 신뢰할 수 있는 분이 계셔서 기쁩니다. 그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 작은 교회에 저를 위해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저도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늘 함께 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녹음테이프 같은 것을 들으십니다. 저는 저 바깥의 큰 싸움터에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지키는 초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정말 필요합니다. 저는 의지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특히 외국의 사역 현장에는 주술사들을 비롯한 온갖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서서 도전해 옵니다. 그 속으로 혼자 걸어 나갑니다. 그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 참으로! 그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의 모든 것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얀네와 얌브레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 작고 신실한 무리를 기억하며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은 하루 중 몇 시지?’ 저 멀리 외딴 사막, 시에라비스타라는 작은 곳에서도 한참 벗어난 곳 말입니다. 저 산 너머 먼 곳에서 이맘때 작은 기도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저 소 치는 야영지 같은 곳 어딘가에서 그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걸어 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가 나를 덮고 있다. 사탄아, 너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왔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모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아멘. 아이작슨 형제님, 이리 오십시오. 제가 여기 더 머물면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집에 가서 식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겠지요. 여기 남자분들은 자기 아내가 세상에서 음식을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그러실 것입니다. 저는 꼭 그렇게 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해하시지요?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현재 저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는데, 내려와 여러분과 잠시 교제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와서 여러분과 함께 있고도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작슨 형제님, 이제 맡아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 항복한 적이 없고, 오늘 아침 아이작슨 형제님과 제가 서 있는 이 강단 바로 옆에 나와 서고 싶은 분이 있다면, 기도를 받고 싶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지금 나오시겠습니까? 오늘 완전한 승리를 얻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믿음에서 물러나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모르겠지만... 어젯밤 그 젊은 여성처럼 그 교제를 잃은 분이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어둠이 몰려옵니다. 여러분은 진흙길에 서 있습니다. 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야 할 승리가 없다면, 여러분도 나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것은 완전한 승리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승리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시련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했습니다”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신뢰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제가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분을 실망시키지 않으시겠지요? 넘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분을 실망시키지 않으시겠지요? 진정한 군인처럼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검을 움켜쥐고 다시 앞으로 나오십시오.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아이작슨 형제님께서 계속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시겠습니다. 이제 실례를 무릅쓰고 출발하여... 투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시 여러분을 뵈러 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완전한 승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한곳만 바라보고 있을 때, 그분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함께 하늘에서 오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몸들이 죽지 아니함을 입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있기 위해 갈 것입니다. 그때까지 깨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