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친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밤 이곳에 와서 오랜 친구인 G. H. 브라운 형제님과 잠깐 악수도 하고 교제도 나누니 기쁩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곳 빅터가 505번지에 있을 때, 아칸소에서 처음 함께 일했던 동역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브라운 형제님, 그날 밤 지하실에서 등을 대고 누워 있던 그 부인이 생각납니다. 등을 바닥에 대고 기어 다녔지요. 그분은...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상태가 아주 나빴습니다. 나중에 존즈버러 근처 어디에선가 그분을 만났는데, 남편과 함께 있었고 제정신이 돌아와 더없이 정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방금 만나 악수한 한 형제님은 어느 곳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목에 갑상선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집회에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치유받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염려 없이 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죽음까지도,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정복하셨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그 일로 인해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분의 영광에서 내려오셔서”라는 찬송을 부른 이 자매님은 플로리다에서 오셨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근처 어디서 오셨든지요. 그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우리의 친구 부스클리본 형제님이 썼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그저 한 선지자나 지도자로 만들려 하는 이 시대에, 그 찬송은 그분의 지극히 높으신 신성을 참으로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저는 그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서 아쉬운 점은, 이런 집회가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또 떠나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곳에 내려오는 날을 정말 기다립니다.
작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며칠 전 밤에 어린 곰이 제 수수 당밀 통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무엇을 바라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누군가 그 손해를 메워 주셨습니다. 수수 당밀 한 병을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곰이 먹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아내에게 비스킷 한 판을 구워 달라고 해서 곧바로 먹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수수 당밀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 아들 빌리가 조금 전에 “아빠, 아빠를 위해 사랑의 헌금을 모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설교자에게 그런 헌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저는 그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돕고자,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려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혹시 여기 아주 형편이 어려운 분, 과부나 그런 분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그분께 이 헌금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경은 “너희가 이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그게 바로 저입니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그분께서... 그분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이 헌금을 받으실 분이 없다면 해외 선교 사역에 쓰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므로 올바르게 쓰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놀라운 메시지를, 이 마지막 날들에 우리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를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전하려 합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 해 전에 전했던 것과 똑같은 메시지입니다. 저는 거기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 밖으로 나가야 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오늘 정오에는 여러분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곳에서 트레이시 부틀리어 형제님과 저기 계신 형제님을 뵙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어떤 심정인지 아실 것입니다. 훌륭한 사역자들이 이렇게 많이 와 계셔서 오늘 밤은 설교를 좀 피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분의... 오늘날 그분에 대한 위대한 계시와 병자를 치유하시는 그분의 권능에 관해서 말입니다. 조금 전에 아들이 와서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오늘 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 합니다. 이곳에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 주 내내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시는 데 대한 감사를 표하고, 제 몫을 하려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 이 책을 펴기 전에 이 책의 저자께 말씀드립시다. 얼마 전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의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논쟁이 많은 아주 깊은 주제였는데, 로고스 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잭 무어 형제님과 함께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의 크로스호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보며 “당신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저는 그 저자를 아주 잘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아주 잘 알면,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제게 계시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니 이제 고개를 숙이고 그 저자께 말씀드립시다. 우리가 조용히 하는 동안... 이제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바로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원합니까?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오늘 밤 그리스도께 나오기를 원하십니까? 누군가가 치유받기를 원하거나, 다른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하나님께 손을 들고 “주님, 제 기도 제목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곳곳에 손이 올라오는군요. 참으로 도움이 절실한 세상입니다!
주 예수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그 이름으로 주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이 모든 간구를 크고 진주처럼 희게 빛나는 보좌 앞에 올려 드립니다. 그곳에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피 흘린 희생물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 밤 저희가 누리는 이 위대한 특권과, 결코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주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결코 실패할 수 없으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하는 것을 받는다고 확신합니다. 주님, 저도 손을 들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의 간구에 응답해 주옵소서.
이번 대집회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어 주셨는지 감사드리기 원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되어 주실 그 모든 것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오시기를 지체하신다면, 우리가 죽는 시간에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시온의 오랜 배가 되시고, 윤기 나는 날개가 되시고, 사망의 그늘 골짜기를 비추는 새벽별이 되시며, 우리를 안고 강을 건너 그 위대한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실 분임을 압니다. 주님, 우리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앉아 계신 분들 중에는 백발에 연세가 들어 허리가 굽은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죄인이던 소년 시절에, 그분들은 길모퉁이에 서서 오늘 밤 우리가 지키려 애쓰는 바로 이 메시지를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이 위대한 믿음의 증인으로 그분들이 아직 살아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도 항상 그 믿음을 위해 싸우며 맡은 자리를 충실히 지키게 하옵소서.
이제 오늘 밤 우리가 읽는 말씀과 하는 말에 복을 내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것이 비옥한 땅에 떨어져, 이 건물 안에 있는 죄인 중 단 한 사람도 구원받지 않은 채 돌아가는 일이 없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병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배를 마칠 때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옵소서. 우리 앞에 큰 산이 서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마가복음 11장 22절에서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주께서는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믿고,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우리가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데 아무것도 방해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부디... 혹시 우리가 이런 집회에서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일 년 뒤가 되든 언제가 되든, 우리 모두가 참석할 위대한 모임 하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혼인 만찬입니다. 오 하나님, 그때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그때까지 건강하고 기쁘게 주를 섬기도록 지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면... 설교로 빠져들지 않아야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다른 기름부음입니다. 같은 영이시지만, 그저 다른 통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익숙한 성경 구절을 읽고, 기도 줄을 부르기 전에 성경 몇 곳을 더 언급하려 합니다. 더운 것을 알기에 오래 붙잡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훌륭했던 한 주간의 집회가 끝나고, 여러분 모두가 가득 채워져서 기쁨을 누리며 집으로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저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만 돌아가지 마십시오. 배운 것을 가지고 돌아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 이 집회에서 태어난 자녀들, 이 집회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내년에는 오대손들까지 데려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를 주님께 인도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오늘 밤 마가복음[마태복음] 12장을 펴겠습니다. 마가복음[마태복음] 12장 38절부터 42절까지 읽겠습니다. 보통은 관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일어서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여러분이 너무 빽빽하게 앉아 계시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그대로 경건히 앉아서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경이 있으시면 제가 읽을 때 함께 보십시오.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의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에게서 나오는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였으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내가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 말씀을 본문으로 삼겠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계시다.” 이 성경 구절 앞부분을 읽어 보면, 어젯밤 우리가 하던 이야기와 조금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셨을 때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자기 백성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메시아께서 어떤 분이실지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들의 율법에 따르면 메시아는 선지자이셔야 했습니다. 모세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백성은 그를 따를지니라.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들은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성경은 어느 시대든 우리가 어느 때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분명히 알아볼 표지를 남겨 둡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에 어떤 표적이 있을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이 건물의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는 일이 있겠습니까? 주께서 오시는 표적은 무엇입니까? 또 세상 끝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는 세 질문 모두에 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하나의 질문으로 취급할 때가 많지만, 제자들은 그분께 세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세 가지에 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가운데 표적을 주신 것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표적을 구합니까?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초자연적인 것을 믿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도 그랬습니다. 꿈꾸는 자나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가 조금 이해하기 어렵거나 확실하지 않으면, 그 메시지가 옳은지 아닌지 알아낼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꿈꾸는 자나 선지자를 우림과 둠밈이 있는 성전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것은 걸려 있던 흉패, 아론의 가슴 위에 있던 것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나타냈습니다. 그 선지자가 예언을 하거나 꿈꾸는 자가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리 참된 것처럼 보여도, 그 꿈이나 예언에 대해 우림과 둠밈이라 불리는 그 흉패 위로 초자연적인 빛, 무지개처럼 여러 빛이 어우러진 빛이 비치지 않으면 그 메시지는 거부되었습니다. 자연적인 것은 초자연적인 것의 응답을 받아야 하고,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우림과 둠밈은 그 말이 참인지 아닌지 시험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것은 레위 제사장 직분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우림과 둠밈을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밤 그분의 말씀이 우림과 둠밈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메시지나 좋은 꿈이라 해도, 우림과 둠밈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빛을 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내버려 두라고 권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증언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성경이 그분께서 하실 것이라고 말씀한 바로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사도 베드로는 아버지와 선생들에게 메시아께서 일어나실 것이며, 그 메시아는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말라기 이후 사백 년 동안 그들에게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 다가갔을 때, 그분은 옷차림이 다르지도 않았고 이름 높은 제사장이나 성직자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는 이 메시아를 옷차림으로 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 안에 있는 생명으로 그분을 알아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네 이름은 시몬이며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시자, 그 사도는 자신을 맡길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모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까지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데려오는 이야기도 따라가 보았습니다. 나다나엘은 확고하고 훌륭하며 성경에 해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빌립은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왔을 때, 그분께서는 그를 가리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민족에게는 수가에 있던 그 여인이 있습니다. 좋지 못한 평판을 지닌 그 여인의 처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복음의 빛이 그녀의 길을 비추고, 그분께서 그녀의 죄와 행한 일을 말씀하시자, 그녀는 “선생님, 선생님은 분명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았고,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이방인들 앞에서는 그 표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을 통해 그것이 행해질 것이며, 그것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음을 우리는 배웁니다.
그분께서는 소돔의 날들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안에 나타나셨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소의 고기, 아니 송아지 고기를 먹고, 소의 젖을 마시며 빵을 먹은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 곧 위대하신 하나님, 창조주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육신이 되셨고, 오늘은 성령의 모습으로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을 입으신 그분은 이방 세상이 불에 타기 직전,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 안에 계시면서 똑같은 일을 하여 이방인들에게 자신을 입증하실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바로 그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우리가 읽는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 때문에 그들을 꾸짖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전통이 사람들을 성경, 곧 성경기록들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무효가 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미국 땅에 서 계신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듯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설교하면서,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무효가 되게 했습니다. 선지자가 마지막 날들에 있으리라고 말한 대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분께서 그들을 꾸짖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살펴보고 표적을 믿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그들에게 표적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언제나 표적을 통해 사람을 다루셨습니다. 그분은 초자연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반드시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노아의 날들에는 그의 메시지를 믿고 들어온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그의 메시지를 거부한 사람들은 멸망했습니다. 그는 방주를 짓는 표적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모세의 날들에는 하나님께서 철저히 입증된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셔서 파리와 벼룩과 개구리를 불러내시고, 하늘을 닫으시며 어둡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믿고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라는 경계선을 건넌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건너편에 남은 사람들은 멸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부르면서, 그분께서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다거나 다른 무엇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그건 텔레파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텔레파시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일들이 텔레파시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며칠 전 투산에서 한 젊은 침례교 형제가 제 어린 리브가의 책을 들어 주며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다주고 있었습니다. 그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분은 훌륭한 분이며 빌리 그레이엄의 동역자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어서 집으로 돌아오세요. 주 예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얘야, 무슨 일이기에 장거리 전화를 다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싸구려 유랑 흥행장 어디서나 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잠시 앉아 있다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를 바르게 키우려 애쓰셨지요.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스위치를 눌러 나사렛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똑같은 일을 하시던 때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그것을 싸구려 유랑 흥행이라고 부르실 수 있을까요?” 그분은 사역지를 떠나 이곳에 왔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려 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너희 중 누가 내게 죄[곧 불신]가 있다고 확증할 수 있느냐? 나에 대해 기록된 모든 말씀을 내가 성취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나를 손가락질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성경이 내가 할 것이라고 한 바로 그대로 행하였다.” 오, 오늘 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여 그런 입장에 서서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목적과 마음과 몸으로 하나가 되어 성령의 기름부음의 충만한 권능 안에 서고,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도 계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행하고 일하는 날을 살아서 보고 싶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과거의 일로 돌아가 그들을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세대에 은사를 보내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은사를 보내셨는데 그것이 거부되면, 그 나라나 그 세대는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보내시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세대는 복을 받습니다. 오늘 밤 이곳으로 오면서 이 일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온 미국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요나스의 때를 언급하십니다. 사실 정확히는 요나이지요. 많은 사람이 요나를 비난하며 요나가... 여러분은 “그는 요나 같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런저런 일을 한 것은 요나가 주님의 뜻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밤 그 점을 좀 변호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의로운 자의 발걸음은 주께서 정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때로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아주 반대되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영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 언제나 그분의 뜻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파라오를 일으키셨고, 부르시며...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토기장이가, 아니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8장과 9장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요나는 하나님께 니느웨로 내려가 설교하며 사십 일 안에 그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까닭은... 니느웨는 죄가 가득한 큰 도시였고 이교도들의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주된 생업은 고기잡이였습니다. 그들의 생업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배를 타는 대신... 어쩌면 그때는 마침 배가 출항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요나가 어떤 곤경에 빠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바다가 사나워지자 요나는 “내 손을 묶어서 배 밖으로 던지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를 삼키도록 물고기 한 마리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고래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몇 년 전 저는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고래 한 마리, 아니 고래의 뼈가 무개 화차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리키 같은 젊은이가 코에 안경을 걸치고 서 있었는데, 배운 것은 많아도 그 배움을 제대로 다룰 지혜는 모자라 보였습니다. 그가 이 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는 옛 전설이 있지요. 그건 전설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보시다시피 이 고래의 식도는 너무 작아서 공 하나도 통과시키기 어렵거든요. 사람을 삼킬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선생님, 그 말씀을 바로잡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보십시오, 그 고래는 그를 삼킬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물고기 한 마리를 예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만드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를 삼킬 만큼 크게 만드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 서서 웃고 있었기에, 제가 제 믿음을 증언하고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면 성경을 배신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더는 그렇게 우습지 않았지요. 저는 이어서 “당신은 성경을 모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예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물고기는 특별히 만드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나오던 어린 소녀의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그 아이는 머리를 뒤로 곱게 빗어 넘기고 기쁨에 차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길모퉁이에 있던 한 불신자가 “아가씨, 뭐가 그렇게 기쁘니?”라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방금 구원받았거든요. 천국에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팔에 끼고 있는 건 뭐냐? 사람들이 성경이라고 부르는 그거냐?”라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네, 맞아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설마 그걸 믿는 건 아니겠지?”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거기 있는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믿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럼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는 이야기도 믿겠구나”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네, 믿어요. 성경에 요나가 고래를 삼켰다고 쓰여 있어도 믿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런데 믿음 말고 무엇으로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는 것을 증명하겠니?”라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천국에 가면 요나에게 물어볼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럼 요나가 거기 없으면 어쩌지?”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그러면 아저씨가 물어보셔야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대로 보여 준 셈입니다. 그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지요.
그러나 저는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고 믿습니다. 손이 묶인 채 고래 배 속에 들어가, 먼바다 수심 사십 패덤쯤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자매님들은 작은 금붕어를 보셔서 아실 것입니다. 물고기는 먹이를 찾으려고 물속을 돌아다닙니다. 먹이를 찾아 작은 배를 가득 채우고 나면 어항 바닥으로 내려가 작은 지느러미를 쉬게 합니다. 쉬는 것입니다. 지느러미가 몸을 받쳐 줍니다. 돌아다니느라 지쳤으므로 이제 느긋하게 쉽니다. 이 큰 물고기도 똑같이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선지자를 삼킨 뒤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수 톤이나 나가는 무거운 몸이 선지자를 배 속에 넣은 채 바닥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선지자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고래가 그를 삼켰고, 요나는 그 배 속에서 몸을 뒤척였을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 것은 고래의 배 속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젯밤 기도를 받았지만 손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기도를 받았는데 귀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증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한... 목사님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기름을 발라 주셨다면, 아니 하나님의 성경에 따른 어떤 방식으로 하셨든지,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요나만큼 많은 증상을 겪어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어느 쪽을 보아도 고래의 배 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이것들은 거짓되고 헛된 것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솔로몬이 그 성전을 봉헌했을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들어오셔서 성전에 임재하심을 입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안으로 들어오셔서 성소 뒤편, 궤 위의 긍휼의 자리 위로 가 머무셨습니다. 솔로몬은 “주님, 주의 백성이 어디서든 곤경에 빠져 이 거룩한 곳을 바라보고 기도하거든 하늘에서 들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요나가 그런 상황에서도 한 인간, 나중에는 믿음에서 떠난 사람의 기도를 믿고, 사람의 손으로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들어오셨던 성전을 바라보아 그토록 심한 증상에서 구출되었다면, 오늘 밤 이 정도의 작은 어려움을 겪는 우리는 얼마나 더 믿어야 하겠습니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신 한가운데서, 사람들이 치유받고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땅의 성전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위엄과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자기 피로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시는 하늘의 성전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요나보다 더 나은 믿음을 갖기 전에는 그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주목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와 믿음에 따라... 그곳에 산소 텐트를 놓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에 따르면, 요나는 밤낮 사흘 동안 그 고래 배 속에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오전 열한 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어부들은 모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갈 채비를 하며 그물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이 이교도들은 동물을 숭배했는데, 바다의 신은 고래였습니다. 그런데 한낮 무렵 바다의 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고래가 혀를 쑥 내밀자 선지자가 그 입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들이 회개한 것도 당연합니다! 물론이지요. 그 신이 선지자를 뱉어 냈으니까요. 요나는 거리를 다니며 “사십 일 안에 이곳이 멸망하리라”라고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하실지 아십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자, 그분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당시의 그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음을 압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에 겹쳐 있는 의미를 더 적용해 보려 합니다. 지금보다 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언제 있었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여보시오, 당신이 신유를 행하는 치유자요?”라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치유자이십니다.” “그럼 당신이 치유자라면, 당신이 믿는다고, 치유자라고 하니 말이오. 내가 아는 사람이 저기 병들어 있는데 와서 고쳐 보시오. 내가 아는... 죽은 자도 살린다지요?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당신이 살렸다지요? 이 아래 묘지에 죽은 사람이 가득하니 우리에게 증명해 보시오.” 기억하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라고 말했던 바로 그 옛 마귀입니다.
그날 아침 관저에서 헝겊으로 우리 주님의 눈을 가렸던 것과 똑같은 옛 마귀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눈을 가렸습니다. 술에 취해 떠들어 대던 군인들이 막대기를 집어 그분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막대기를 서로에게 건네주며 “네가 마음의 비밀을 안다고 들었다. 네가 선지자라고 들었다. 선지자라면 예언하여 누가 너를 쳤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 옛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서도 광대 노릇을 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기적을 한번 보여 다오”라고 말했던 똑같은 옛 마귀입니다. 그 마귀는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연약하며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할 것이고, 그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그러면 그분께서는 어떤 표적을 말씀하셨습니까? 부활의 표적입니다. 이천 년 동안 복음이 전해지고 이천 년 동안 비난이 이어졌지만, 성경은 그 모든 것을 헤쳐 나왔습니다.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이 바로 그 연약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코스모스, 질서]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그것은 믿지 않는 세상, 세상의 질서, 교회의 질서입니다.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믿는 자]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악하고 음란한 세대, 하나님의 원래 말씀을 조롱하고 교회를 조롱하는 세대는 오늘 밤 부활의 표적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교회 안에서 하시는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세상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밤 그분께서 살아 계신다는 표적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천 년 전에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갈릴리를 걸으시던 때와 똑같이 오늘 밤에도 살아 계십니다. 부활의 표적입니다.
계속 내려가 보면 그분께서 솔로몬의 때를 언급하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으며,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솔로몬의 날들에 남쪽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세상 맨 끝에서 왔는데,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둔했습니다. 이사야는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순절 교회도 거의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바로 우리 위로 지나가는데도 우리는 그저 흘려보냅니다. 오순절 사람들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 많이 보았다는 것입니다.
한번 읽었던 옛 격언, 아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바다에 대해 글을 쓴 작가가 있었는데, 그는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랑받는 민요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가 스와니강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도 그 강에 관해 노래를 썼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작가도 바다를 보지 못한 채 바다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바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에 늙은 선원, 뱃일에 잔뼈가 굵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굴에는 회색 수염이 나 있었고 입에는 옥수수 속대로 만든 파이프를 물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선원이 “좋은 분이여, 어디로 가시오?”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바다로 갑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바다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짭조름한 파도가 푸른 물 위에서 뛰노는 그 하얀 물결을 보고 싶습니다. 푸른 물에 비친 하늘을 보고, 바람에 실린 소금 냄새를 맡고 싶습니다. 갈매기들이 물 위를 이리저리 날며 울어 대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늙은 선원은 파이프를 입에서 빼고 침을 뱉더니 말했습니다. “나는 육십 년 전에 그 바다에서 태어났소. 거기에 뭐 그리 매력적인 것이 있는지 모르겠구려.” 왜 그랬습니까? 너무 많이 보아서 그에게는 평범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순절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찬양과 복을 너무 많이 보니, 그것들이 그대로 여러분을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경건하게 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제 솔로몬의 날들을 보십시오. 신학자나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그때는 히브리 사람들의 황금시대였습니다.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거의 천년왕국과 같은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지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백성이 한마음 한뜻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감히 어떤 일도 하려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사를 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그 은사와 함께 일했습니다.
오, 오늘 밤 우리 미국의 모든 장로교인과 감리교인과 침례교인과 오순절 사람들이... 여러분의 교단이 형제 사이를 갈라놓고 믿음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여러분 주위에 쌓아 올린 전통을 허무십시오. 우리가 지금 들어 있는 그 낡은 껍데기를 벗어나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 그 은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제가 아는 최고의 방공호가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모든 방공호보다 그 뒤에, 하나님의 약속 뒤에 서 있겠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놀라운 나라가 되며, 얼마나 큰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다른 나라들은 두려워서 무슨 짓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것을 작은 집단 하나 안으로 가져가서 “이것은 우리에게 있다. 너희는 내 안경을 통해 보지 않으니 이것과 아무 상관도 없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귀가 여러분끼리 서로 싸우게 할 수 있는 동안에는 자기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들이 하나로 모여 땅의 사방에서 그분의 교회를 모으는 것을 보게 되면, 그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날들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분별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은사였고, 지혜로 생각과 그 밖의 일들을 분별하는 은사였습니다. 백성은 그 은사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고, 그는 온 세상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는 전화나 텔레비전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소식은 입에서 귀로 전해졌습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 위대한 하나님의 은사가 역사하는 것을 보았고,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전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온 세계로 퍼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쟁도 없고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 모두, 장로교인과 감리교인과 침례교인과 여러 오순절 분파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내버리고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어떤 방식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하셨는지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오순절 날에 임했던 방식 그대로 고넬료의 집에도 임했습니다. 언제나 임할 때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써 준 똑같은 처방에 따라 같은 방식으로 임했습니다.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다른 방식은... 성경에는 사도행전 2장의 그 처방을 이행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성령을 받은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는다면 바로 그 방식으로 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저... 그러다가 따로 떨어져 나와 “우리는 이것을 받았다. 이것이 전부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을 갈라놓습니다. 그러고는 새로운 계시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조직으로 만듭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교리다”라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여러분의 교단이 교리 끝에 쉼표를 찍고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앞으로 보여 주시는 만큼 더 믿습니다”라고 한다면 좋습니다. 저도 찬성하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뒤를 돌아보며 무디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생키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피니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웨슬리나 루터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려 합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과학은 뒤를 돌아보며 옛 과학이 무슨 말을 했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삼백 년 전에 한 프랑스 과학자는 사람이 시속 삼십 마일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 중력 때문에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간다고 입증했습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이 그런 말을 한다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시속 이천 마일가량으로 달리며, 시속 사천 마일로 달릴 수 있도록 강철이 녹지 않게 할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며 그 사람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앞을 봅니다. 그러나 교회는 늘 뒤만 보고 있습니다. 위를 바라봅시다! 그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무한한 권능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참되고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에 “아멘”이라고 화답합니다. “글쎄요, 그것은 다른 세대를 위한 것이었지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제 솔로몬을 보면... 그 소식이 크게 퍼져 멀리 스바까지 전해졌습니다. 그곳에는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 여왕은 좋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께서 한 인간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인간을 초월하는 분별의 은사를 주셨다고 여왕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인간도 그런 지혜를 가질 수 없으니 반드시 신에게서 온 것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말씀을 들음으로 옵니다. 그 소식이 여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어젯밤 이야기한 우물가의 부도덕한 여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와닿자 여왕은 그 일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도 영생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지나올 때마다 여왕은 아마 그들을 불러 세워 궁전으로 데려왔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을 지나왔소?” “예. 그곳에서 가져온 향유와 보석과 여러 물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그 위대한 은사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제가 그것이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그러자 여왕은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여왕에게는 넘어야 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첫째로 이교도였습니다. 또 여왕이었습니다. 틀림없이 그곳에 가서 이 일에 대해 들으려면 자기 제사장에게 가서 허락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상상해 봅니다... 불경하게 들린다 해도 그런 뜻은 아닙니다. 이제 짧은 극처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왕이 제사장에게 가서 “거룩하신 아버지여...”라고 말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사장은 “그래요, 나의 딸이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께서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분별력과 권능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 딸이여, 잘 들으시오. 위대한 신들이 역사한다면 우리 가운데서 할 것이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꼭 이교도 제사장만은 아니지요. “신들이 역사하고,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신다면 우리 조직 안에서 하실 것이오. 저 다른 무리 가운데서 하지는 않을 것이오. 결국 그들은 거룩한 광신도 무리일 뿐이니까.” 이런,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별것 아니오. 홍해를 건넜다느니 온갖 이야기를 하는 광신자 무리일 뿐인데, 그건 전설에 지나지 않소. 그러니 저 무리는 믿을 수 없소. 그저 과격한 자들일 뿐이오. 어떤 능력이 있다면 위대한 신 다곤이나 이곳의 다른 신들에게 있소.”
그 여인이 잠깐 생각한 뒤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들리는 말로는, 저들에게 계신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말합니다. “딸이여, 저것도 참된 신이오.” “하지만 저곳에 계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하더군요.” 보십시오. 무엇인가 참으로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때, 계속 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실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시각에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여왕이 말했습니다. “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내려오셔서 자기 백성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아, 다 부질없는 소리요. 잘 들으시오...” 여왕이 말합니다. “잠깐만요. 저는 그곳에 가겠습니다.” “그곳에 간다면 치욕을 가져오게 될 것이오. 그 부흥회에 참석하지 마시오. 우리는 협력하지 않고 있지 않소. 그러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그리고 말이오...” 여왕은 말했습니다. “제 증조할머니도 저 우상, 저 조각상을 섬기셨고, 할머니도 어머니도 섬기셨습니다. 제 집안 사람들은 모두 저 조각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느 것도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적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두루마리를 얼마나 많이 읽어 주시든, 다른 무엇을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털끝만큼도 생명을 보여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은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저는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자, 보시오. 그곳에 간다면 그대를 파문할 수밖에 없소. 그대의... 그대는 이곳의 창립 회원이지 않소. 내가... 또 그대에게는 품위가 있소. 그런 무리 가운데 가면 위신이 떨어질 것이오.” “위신이야 어떻게 되든...” 여러분,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시면 그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든 그곳에 갈 것이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자녀든 설교자든 목사든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배고픔이 찾아오면...
이제 그 여인은 준비가 되었을 때 “어쨌든 저는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대를 파문하겠소. 그대의 이름은 여기서 없어질 것이오.” “그럼 지금 지우셔도 좋습니다. 저는 갈 테니까요.” 하지만 여왕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어떤 신조를 붙들고 있으려 합니다. 그 여인은 틀림없이 이 종교의 두루마리들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은사로 주어지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 못 하는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교 신앙은 기독교의 완전한 모형, 아니 실... 아니 모형입니다. 이교도 숭배자는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그 우상이 자기에게 말을 되돌려 준다고 믿습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등에 진흙이 묻은 거북이를 비의 신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을 우상으로 만들었는데, 속이 빈 등딱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소리치면 자기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비의 신이 자기들에게 대답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와는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우상이 아닌 초자연적인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해져 그분의 우상, 곧 그분 자신의 살아 있는 형상이 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살아서 나타내는 존재로 이 땅에서 일하고 걸어 다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이교 신앙과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마리아나 요셉이나 어떤 성인, 오래전에 죽은 그런 존재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그 살아 있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상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심을 봅니다. 오늘 밤에도 솔로몬의 날들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솔로몬에게 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제 그 여인은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맞서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여러 사정과 많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여왕의 믿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에는 장애물이 없었습니다. 여왕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가겠다. 가서 보니 그 일이 참되다면 지원하겠다. 참되지 않다면 선물들을 집으로 가져오면 된다.” 여왕이 어떤 오순절 사람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자신을 오순절 사람이라고 부르면서도, 자기가 믿는 것을 조롱하는 라디오 방송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후원은 여러분의 백성 가운데로 가서 하나님의 일을 돕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왕은 돈과 금과 유향 등을 가져다가 낙타 몇 마리에 실었습니다.
또 한 가지, 여왕의 여정은 위험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막에는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있었고 그들은 강도들이었습니다. 그 강도 떼가 호위하는 내시 몇 사람만 거느린 이 여왕을 덮쳐 그들을 죽이고 보물을 모두 빼앗는 일은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주리고 목마를 때에는 위험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이르려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이 그곳에 도착하도록 해 주십니다. 여왕은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소원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여왕은 위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비난을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주려 있다면 유일한 목적은 그분께 이르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곳에 이르는 것입니다. 여왕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여왕은 두루마리를 모두 챙겨서 가는 길에 읽었을 것입니다. 사하라 사막의 직사광선은 몹시 뜨거우므로 밤에 이동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보려고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했는지 말입니다. 지도에서 재어 보면 그곳은 아주 멉니다. 약 삼백 마일입니다.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아십니까? 여왕은 냉방 장치가 있는 캐딜락을 타고 가지 않았습니다. 낙타를 타고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는 데 구십 일, 석 달이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의 길 건너편에 살면서도 문턱조차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왕이 심판 때에 지금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냉방 장치가 있는 캐딜락과 기차와 비행기와 온갖 수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로 우리 손에 쥐여 주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그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계십니다. 바로 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주목하십시오.
여왕은 그 두루마리들을 읽으며 사막을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꾸준히 나아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뜰, 궁전 뜰이든 어디든 들어와 당시 관습대로 천막을 쳤을 것입니다. 시녀들과 함께 천막을 치고, 내시들도 천막을 쳤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종이 울리고 모든 나팔이 울려 퍼지고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여왕은 안으로 들어가 맨 뒤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아보러 온 것입니다. 직접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저 먼 곳에 그대로 앉아 있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위대한 소식을 들은 이상,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어젯밤 살펴본 말씀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한 것과 같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곳에서... 그분께서 오신 곳의 이름이 잠시 뒤에 생각날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했습니다. “와서 보시오. 거기 있으면서 비난하지 말고 직접 와서 알아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밤 우리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성경을 가지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성경기록들 자체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여러분에게 생명이 되고 여러분 안에 나타날 때, 그것은 그분을 증언합니다.
여왕은 두루마리를 읽었고 여호와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지혜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천막을 치고 나서 선물들을 구석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 일이 참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참되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칠 가치가 있습니다. 참되지 않다면 다시 가져가면 됩니다. 오늘 밤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키려고 싸우는 이 구원의 계획이 옳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생명과 시간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옳지 않다면 무엇이 옳은지 알아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이 한 번의 삶밖에 없고, 곧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경을 살펴보고 성경과 일치하는지 보십시오.
그래서 이 여인은 때때로 처음 온 사람들이 하려는 것처럼 맨 뒤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나팔이 울린 뒤 솔로몬 목사님이 들어와 앉았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고 기도 카드 번호들이 불렸습니다. 이런 표현이 좋지 않게 들리지만, 요점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여왕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혜가 무엇인지 보자”라고 했습니다. 첫 환자든 어떤 방식으로 나온 사람이든, 또 질문이 무엇이든 솔로몬 앞에 나오자, 그는 그것을 드러냈습니다. 여왕은 “정말 맞는 말이군요”라고 했습니다. “저 사람은 텔레파시를 쓰는 것 같군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여왕의 마음에는 갈망이 일기 시작했고, 날마다 믿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여왕이 솔로몬 앞에 설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왕에게도 비밀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앞에 나아왔을 때, 성경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것 중 솔로몬에게 감추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여왕의 마음속 비밀을 모두 드러냈습니다. 그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자, 여왕은 이교도로서 백성 앞에 서서 “제가 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며, 그 이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여기서 날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 여왕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자기에게도 일어난 것을 보았을 때 거의 숨이 멎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정말 당연합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서서 바로 그 일을, 그것도 더 많이 하시고 더 강력한 표적들을 행하시는데도 그들은 거기 서서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오, 사람이 얼마나 눈멀 수 있는지요! 그분께서는 “그녀가 심판 때에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천 년 동안 복음이 전해진 뒤, 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께서 사람들 위에 성령의 은사들을 부어 주시고, 이 위대한 분별이 다시 교회 안으로 돌아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왕이 그곳에 서서 이 세대를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 시대가 지나고, 더하여 이 마지막 날들에 이르기까지 이천 년 동안 복음이 전해진 뒤, 성령의 은사들을 보게 될 때 말입니다. 은사 하나가 아니라 은사들입니다. 여왕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제 마쳐야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보십시오. 그들은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순절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데, 언젠가는 너무 멀리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곁을 지나갔는데도 여러분은 몰랐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엘리야의 날들에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침례자 요한의 날들에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그에 관해 말씀했습니다. 그가... “내가 내 얼굴 앞에 내 사자를 보내어 길을 예비하게 하리라.” 제자들까지도 그분께 와서 “왜 엘리야가 와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가 이미 왔으나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어 묻히신 뒤에야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레니우스가, 한...
아니, 모든 사람이 아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잔 다르크를 죽이고 나서야 그녀가 하나님의 성도임을 알았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잔 다르크가 환상을 보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죽은 자들을 살려 냈기 때문에 마녀라 하여 불태웠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여인을 마녀라고 부르며 화형대에서 불태웠습니다. 약 이백 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성도였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대단한 속죄 행위를 했지요.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우리 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와서 하나님과 성경, 과학과 그 밖의 모든 것으로 분명히 입증되었는데도, 우리는 그것이 지나가는 줄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야 그것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여전히 같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하고 계신 일은 무시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분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 안에 나타나셨던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셨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불기둥에서 사람으로 내려오셨고, 그 사람이 희생으로 내놓은 생명에서 나온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내려와 다시 교제하시며 또 하나의 에덴을 위해 교회를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잠시 조용히 하십시오. 무엇이 그 여인에게 이런 일을 일으켰습니까? 그녀는 종교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은 참된 것을 보려고 주려 있었습니다. 참된 것을 원했습니다. 여러분도 참된 것을 보려고 주려 있다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자신이 찾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듯 저는... 조금 전에 저기 뒤에 계신 제 친구 브라운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사역 초기 시절 그곳에서 그분들과 함께 지냈던 일이 생각납니다. 브라운 자매님도 여기 어딘가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분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브라운 형제님은 제게 아주 제대로 된 형제 같은 분입니다. 사냥을 좋아하시거든요. 브라운 자매님이 그분께 새 브라우닝 자동 산탄총을 사 주셨습니다. 제가 아직도 가지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그 낡은 산탄 뿌리는 총을 내려놓고 소총을 쓰시도록 전향시킬 생각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사냥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사슴을 사냥하러 멀리 뉴햄프셔와 메인에 있는 북쪽 숲으로 가곤 했습니다. 흰꼬리사슴의 서식지입니다. 그곳에는 함께 사냥하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사냥꾼이었고, 혈통의 사분의 일쯤이 인디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길을 잃을 사람이 아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우리는 화이트산맥과 넓고 울창한 숲에서 흩어졌다가 만날 곳을 정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서로를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오솔길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냥꾼들이었습니다. 저는 버트와 함께 사냥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아주 뛰어난 사냥꾼이었지만,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잔인했습니다. 도마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못됐습니다. 그저 정말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속상하게 하려고 새끼 사슴을 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린 아기 사슴 말입니다. 그가 새끼 사슴들을 죽이면 저는 “버트, 그런 짓을 하고도 부끄럽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네 설교자들은 다 그렇다니까요. 마음이 너무 약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버트,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건 잔인한 짓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슴의 성별이나 크기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법으로 새끼 사슴을 잡아도 된다면 잡으십시오. 아브라함도 송아지를 잡아 하나님께 대접했습니다. 새끼 사슴이라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저 못되게 굴려고 죽인 뒤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살인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었고, 그에게도 말했습니다. 저는 “버트, 당신은 제 친구이고 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냥꾼입니다. 총을 잘 다루고 사격도 잘하지요. 백발백중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잔인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빌리, 당신도 설교자만 아니었으면 좋은 사냥꾼이 되었을 텐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버트, 잘 들어요. 이런 일에서도 인간답게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잘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제가 여러 해 동안 수렵 감시관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당신은 야생동물 보호 일을 너무 오래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하러 그곳에 올라갔습니다. 사냥철도 후반에 접어든 때였습니다. 저는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눈이 내려 있었고, 발자국을 추적하기 좋은 눈이 육 인치쯤 쌓여 있었습니다. 버트를 만났더니 “빌리, 당신에게 보여 줄 새로운 것이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뭔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셔츠에서 작은 호루라기를 꺼내 불었습니다. 어린 사슴이 어미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새끼 사슴이 내는 그 작은 울음소리 말입니다. 저는 “버트, 설마 그런 짓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정신 좀 차려요, 설교자 양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사냥을 나갔습니다. 우리는 보통 샌드위치와 뜨거운 초콜릿 음료가 든 작은 병을 가져갑니다. 설탕이 들어 있어 몸을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맘때 그곳은 몹시 추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냥철이 시작되었는데, 총을 두어 발 쏘고 나면... 후디니를 탈출의 명수라고들 하지만, 그 사슴들에 비하면 아마추어였습니다. 사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나 덤불 더미 밑이나 어디든 기어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달이 밝으면 밤에 나와 먹이를 먹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느니 굶어 죽으려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냥철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몇 주 동안 사냥을 해 왔으므로,
우리는 오전 내내 걸었지만 발자국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오쯤 버트가 제 앞에서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갯마루까지 올라간 뒤 갈라져서 서로 다른 두 길로 돌아오고, 그날 밤 야영지에서 만나려 했습니다. 아마 아홉 시나 열 시쯤 도착할 것이었습니다. 사슴을 잡으면 매달아 두었다가 다음 날 둘이 다시 가서 함께 가져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갈라지려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수목 한계선 위로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열한 시 반이나 열두 시쯤 버트가 몸을 조금 숙였습니다. 산 위쪽으로 갈수록 눈이 꽤 깊어졌는데, 그가 몸을 숙인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뒤로 손을 뻗었습니다. 별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뒤로 손을 뻗기에 저는 점심을 꺼내려는 줄 알고 저도 제 점심을 꺼내려 했습니다. 저는 “이제 식사를 하겠구나. 여기서 갈라져서 그는 이쪽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른 쪽으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앉았습니다. 그곳은 이 건물의 두 배쯤 되는 공터였습니다. 우리가 작은 공원 같다고 부르는 풀밭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발자국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옆, 나무 몇 그루 아래 작은 눈더미 곁에 앉았습니다. 보온병이나 샌드위치를 꺼내려는 듯 이렇게 손을 아래로 뻗어 무엇인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제 것을 꺼내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꺼낸 것은 그 작은 호루라기였습니다. 그는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더니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 호루라기를 잘 불었습니다. 꼭 새끼 사슴 소리 같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자 놀랍게도 공터 바로 건너편에서 큰 어미 사슴 한 마리가 일어섰습니다. 암사슴이었습니다. 큰 갈색 눈에 귀를 쫑긋 세운 아름다운 동물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저를 올려다보며 어리석은 웃음을 씩 짓더니 호루라기를 도로 넣었습니다. 저는 “버트,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다시 아주 작고 가볍게 불었습니다.
그 시간, 오전 열한 시에 그 사슴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보통은 그러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기 새끼가 곤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슴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덤불 뒤에 있는 그 사슴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다시 호루라기를 불자 사슴은 두세 걸음 앞으로 나와 훤히 트인 곳으로 들어섰습니다. 이것은 정말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슴은 보통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기 새끼가 곤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슴은 그 큰 귀를 세우고 몇 걸음 더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버트가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아,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30-06 소총 총열에 탄약을 밀어 넣고 레버를 내린 뒤 총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조준경의 십자선이 사슴의 심장 한가운데 놓였습니다. 그가 총을 들어 올리자 사슴은 사냥꾼을 보았습니다. 사슴이 몸을 돌리자 그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보통이라면 그 사슴은 벌써 달아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슴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꾸며 내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 어미의 본성을 타고난 것입니다. 자기 새끼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목숨을 잃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짜였고, 그 사슴의 생명 자체였습니다. 어미였습니다. 저는 사냥꾼이 소총을 당겨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백발백중이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 잔인한 사람은 어떻게 저토록 소중하고 신실한 마음, 새끼를 위해 뛰는 저 심장을 총으로 꿰뚫어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저 사슴의 심장을 쏘아 날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거리에서 그 커다란 백팔십 그레인짜리 확장탄은 사슴의 심장을 완전히 뚫어 버릴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잔인할 수 있습니까? 저 소중한 어미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보여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이며, 어미입니다. 목숨을 잃더라도 자기 새끼를 찾으려다 붙들렸습니다. 새끼가 곤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속으로 기도하며, 언제라도 공이가 떨어지고 총성이 울릴 것이라 생각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저는 몸을 이렇게 하고 그곳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총이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돌아보았더니 총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을 가만히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를 돌아보자 그가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표정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도마뱀 같던 눈빛이 무너지고 다른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을 땅에 내던졌습니다. “빌리,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하겠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예수님께 저를 인도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오후 그 눈더미 위에서 저는 그 잔인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가 참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꾸며 낸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 이 주린 세상은 참된 것을 찾고 있습니다. 꾸며 낸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것, 하나님에게서 나고 성경에서 나온 것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어머니 여러분,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인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그토록 깊이 계시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마음에 그토록 충만하여, 그 사슴이 자기 새끼에게 했던 것처럼 신실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 구원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죽음이나 그 어떤 것도... 그 사슴이 새끼를 사랑했던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에 가입해서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고 될 수 없습니다. 참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것이어야 합니다. 태어남이 있어야 합니다. 믿는 척만 하던 여러분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이 그렇게 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께서 저를 사랑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어머니가 자기 젖 먹는 아기를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를 잊을 수 없노라. 너희 이름은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땅에 오셔서 자신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자신의 장막을 펼치셔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이 되셨고, 수치와 저주를 견디셨습니다. 저 아래 거름더미 밑의 구유에 계신 작은 여호와 하나님, 구유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그곳에 계시면서 여러분의 죄로 인한 죽음을 자신에게 짊어지셨습니다. 그 사슴이 어미였던 것보다 여러분이 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자유롭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견줄 데 없는 사랑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그분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여러분이 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여러분은... 그것은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다릅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내려 주셨습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속죄의 피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는 완전할지니라.”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보지 않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자격이 없습니다. 누가 자격이 있습니까? 저는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지 않고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바라봅니다. 살펴보신 대상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저의 희생물이십니다. 저는 여기 사역자로 설 자격이 없습니다. 제 자격을 따진다면 지옥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부르짖을 수도 없어요. 하나님의 옷에 손을 댈 수도 없어요. 이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합니다. 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할 수 있도록, 구원받을 수 있도록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참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까?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손을 들고 “그렇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말씀하십시오. 고개를 숙입시다.
고개를 숙인 채, 이제 온유하고 겸손하게 나오십시오. 이곳에는 앞으로 나오시라고 초청할 공간이 없습니다. 제단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은 자들이 모두 침례를 받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제단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하는 일은 감리교 시대에 생겨났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과 사도들의 때에는 믿어서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 그 체험이 없다면... 자매 여러분, 성경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반바지를 입고 화장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 만큼의 은혜가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에 없다면, 그만한 은혜조차 마음에 없고 성경이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분은 변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반바지는 안 입어요. 긴 바지를 입어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더 나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여자는 하나님께 가증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남자들, 부도덕한 옷차림을 한 여자들, 오늘날의 우상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여러분, 아내와 자녀들이 그런 일을 그만두게 할 만큼 마음에 참된 은혜가 없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여전히 소돔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대로 자기 집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두세 번 결혼한 집사 여러분, 아내를 버리고도 신앙 고백은 유지하려는 남자 여러분, 반대로 남편에게 그런 짓을 하는 여자 여러분, 교회라는 외투 뒤에 숨는 사람들, 여러분의 교단은 다른 사람과 아무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여러분 무리에 속하지 않으면 상관하려 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 밤 여러분에게 자신이 참되심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온유하게 그분께 나아와 “주님, 제 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 밤부터 주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 같은 방송에 나오는 부도덕한 영화배우를 보거나 그 밖의 여러 방송을 보려고 집에 머무는 여러분, 수요일 밤 기도실에 오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려고 집에 머문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교적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거기서 떠나 교회로, 형제자매들에게로 가도록 이끌 것입니다. 함께 모여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듣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부흥회, 이 야외 집회가 끝나 갑니다. 그것이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에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시도록 지금 함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우리는 겸손히 뉘우치며 나아갑니다. 주님,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죄가 있습니다. 주의 명령들을 어겼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의 사랑의 법들을 어겼습니다. 교회 자체가 격한 감정에 휩쓸리고 건축 계획과 온갖 일에 빠져, 기도 모임과 성령을 일주일에 한두 번 있는 일로만 남겨 두었습니다. 늘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강단에 서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선포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우리 사역자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늘날 온 세상이 소돔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역자가 오늘 밤과 내일 자신의 교구에 앉아 있거나 서재에서 할 말을 찾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죄들을 보면서도, 파문당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집사회가 그들을 불러 세우고, 본부에 보고하여 쫓겨나게 할 것입니다. 죄를 대적하여 설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다시 롯의 모습입니다. 소돔의 죄들이 그의 의로운 혼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롯처럼 용기가 없습니다. 그는 일어설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이런 일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옛날의 바울처럼 되게 하옵소서. “내가 회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너희에게 밝히 말하였노라.” 아버지, 우리 모두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 산꼭대기의 추운 십일월 어느 날에 있었던 이 소박한 이야기처럼, 그 사람은 지금 그곳 교회의 집사이며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미 사슴 한 마리가 나와 그토록 참된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그토록 참된 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시선이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알게 하옵소서. 회개하는 손들이 수백 개 올라갔습니다. 주님, 그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이제 주께서 하신 성경 말씀을 다시 아뢰어 드립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주께서 이끌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어떻게 손을 들 수 있었겠습니까? 손을 들 때 그들은 과학의 모든 법칙을 깨뜨립니다. 중력은 그들의 손을 아래로 붙들어 둡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영이 있고, 그들 곁에 “네가 잘못했다. 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시는 영이 계십니다. 그래서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창조주를 향해 손을 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주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가 결코 그들을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결코 이르지 아니하며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 하나님의 왕국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충성스러운 지체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사역자들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다시 태어난 교인들로 계속 성장하게 하옵소서. 제 형제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누구든 치유받게 하옵소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딱딱하고 돌 많은 땅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에 떨어지게 하옵소서. 오, 주님, 하나님의 왕국이 속히 땅에 세워지게 하옵소서. 주께서는 주의 대표자들을 데리러 오십니다. 어느 날 어린양께서 성소를 떠나 나오셔서 그 책의 소유권을 가진 분의 손에서 책을 취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생명책이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을 때, 사람과 모든 생명이 잃어버린 바 되었고, 하늘에도 땅에도 합당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이 나오셨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을 당한 피 흘린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구속의 책을 취하고 펴셨습니다. 하나님, 제 이름이 거기에 있게 하옵소서. 주님, 이 위대한 구속의 계획 안에서 구속받은 이곳의 모든 사람의 이름이 거기에 기록되어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이제 그들을 주께 드립니다. 주께 맡깁니다. 여기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믿음의 행동으로 앞으로 나아와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아버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기도를 겸손히 드리오니 들어주시겠습니까? 아멘.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죄인들이 그 피의 물결에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 씻기네. 모든 죄의 얼룩 씻기네. 모든 죄의 얼룩 씻기네. 죄인들이 그 피의 물결에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 씻기네.
이런 옛 찬송들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쓰신 것입니다. 저는 정말 사랑합니다. 기쁨에 찬 찬송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옛 찬송, 피의 찬송, 믿음의 찬송을 좋아합니다. 오래전 산골에서 부르던 그 옛 시골 방식으로 한 절 더 부릅시다. “죽어 가던 강도는 생전에 그 샘을 보고 기뻐했네[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와 같이 악한 나도 거기서 모든 죄 씻겠네.” 눈을 감고 그리스도께 부드럽게 찬송합시다. 죽어 가던 강도는 생전에 그 샘을 보고 기뻐했네. 그와 같이 악한 나도 거기서 모든 죄 씻겠네. 모든 죄 씻겠네. 모든 죄 씻겠네. 그와 같이 악한 나도 거기서 모든 죄 씻겠네.
오, 속이 말끔히 씻긴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느껴 보십시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로 들려 올라갔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능력이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그러나 권세는 있습니다.” 이곳 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작은 경찰관과 같습니다. 모자를 귀까지 눌러쓰고 몸무게가 백 파운드쯤 되는 작은 사람이 배지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 사오백 마력이나 되는 자동차들이 시속 백 마일로 도로를 달려옵니다. 그가 힘으로는 그중 한 대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에게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브레이크가 끽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의 힘 때문이 아니라 그의 권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 위로 들려 올라가 믿음의 영역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밤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번의 오순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일이 오늘 밤 바로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우리 마음의 완고함을 없앨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이것이 참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겠습니까? 겉모습이 아니라 그분께서 하신 일들로 알아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고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 제 기도는... 지금 눈을 뜬 채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참된 것을 보기를, 오늘 밤 하나님께서 그토록 참된 일을 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갈 때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많은 사람과 함께 걸으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신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여러분의 아기를 치유하신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엠마오에서 그분께서 글로바와 그의 친구와 함께 계셨고, 그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방식 그대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분임을 알았습니다. 서둘러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러 갔습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엠마오를 떠나갈 때 우리 마음이 속에서 뜨거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참된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새로운 교리 같은 것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입니다.
어젯밤 저는 기도 줄을 불렀습니다. 몸이 불편한 부인이 올라왔고, 여러 사람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간증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초보 단계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러분을 알기에도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저 사람은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있어”라고 하는 사람들의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생각을 읽는 일이 아님을 보여 드리려고 사람들을 등졌습니다. 이곳 아칸소에 오래 계신 여러분 중 많은 분은 제가 사람의 손을 잡곤 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분께서 제게 “네가 신실하면 그들의 마음속 비밀까지 알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일이 그때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모두 그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십니까? 온 세상 곳곳에서 행하셨습니다.
지난달 「라이프」 잡지를 잊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분께서 예고하신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곳에 서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증인들이 오늘 밤 여기 있습니다... 과학조차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해하지만, 실제로 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오늘 밤은 새로운 성경 구절을 택하겠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형제 여러분, 맞습니까?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면,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댔을 때 그분께서는... 예전과 동일한 분이시라면 그때와 똑같이 행동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라면 누구나 손에 흉터를 만들고 피나 다른 무엇을 묻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은 삶입니다. 제가 이곳의 나무 한 그루에 다른 나무의 잎을 묶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 가지에서 나온 첫 생명이... 이제 그분께는 여러분과 저의 손 외에는 손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목소리 외에는 목소리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포도나무 줄기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 포도나무에서 나온 첫 가지에서 열매를 맺은 가지가... 말씀드렸듯이, 그 뒤를 따라 사도행전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나무가 다시 본래의 포도나무를 내놓는다면, 그 뒤를 따라 또 하나의 사도행전이 기록될 것입니다. 같은 영일 것입니다. 포도나무 전체에 같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는 가지는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심을 믿는 분은 몇 분입니까? 병든 분은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분의 옷에 손을 대면 그분께서 똑같이 행하시리라고 믿을 만큼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몇 분입니까? 저는 기도 줄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그저... 바로... 여기서 하겠습니다. 대단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많은 믿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회중을 둘러보며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저기 앉아 계신 트레이시 부틀리어 형제님을 압니다. 여기 이 형제님, 그리고 바로 여기 계신 사역자들과 뒤쪽에 계신 한 사역자와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외에는, 제 성경의 권위 위에서, 성경을 가슴에 대고 말씀드립니다. 성경에서 맹세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맹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슴에 대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짐 맥과이어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분은 며칠 전 태버내클에서 만난 형제님입니다. 그저 만나기만 했습니다. 이름이 무엇인지 잊었습니다. 제퍼슨빌의 태버내클에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맞습니까? 제가 보면서 아는 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분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고 여러분이 치유받고 싶어서 “주님, 저를 치유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여기 서 계신다 해도 여러분을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하셨기 때문입니다. 갈보리에서 끝났습니다. 온 세상이 구원받았고, 온 세상이 용서받았으며, 모든 것이 갈보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과거형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믿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느꼈느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손을 대며 “느껴 보세요, 느껴 보세요, 느껴 보세요”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입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 같은 대제사장이시라면 같은 방식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제게 아무리 기름을 많이 부으셔도, 여러분에게도 기름을 부으셔야 합니다. 아, 제가 아는 분이 한 분 보입니다. 며칠 전 교회에서 갑자기 죽었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신 웨이 씨가 바로 저기 앉아 계십니다. 그분 곁에 제가 아는 사역자도 앉아 있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십니다. 그 밖에는... 예, 이 형제님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블랙웰 가족과 함께 그 집에서 기도할 때 만났던, 이분의 형제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고 그분께 손을 댈 수 있다고 믿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형제나 목사님과 똑같은 사람, 그저 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어떤 마귀처럼 어두운 방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마귀는 그런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마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혼들이 구원받고 치유받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사탄을 내쫓는다면 그의 왕국이 스스로를 대적하여 분열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여전히 똑같은 대제사장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 예수님, 제가 병들었습니다.” 또는 “제 병든 어머니가 여기 앉아 계십니다. 형제가 집에 있습니다.” “주님, 빚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제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든 말씀드리십시오. 그분께 구하십시오. 대제사장이신 그분께 손을 대 보십시오. 오늘 그분께서 그때처럼 행하지 않으시는지 보십시오. 그것이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보여 줍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모든 세월 동안 그분께서는 저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닙니다. 그분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시는데 어떻게 두려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말할 뿐입니다. 그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고백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곧 문자 형태의 하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말씀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확증하시는 것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이제 여러분도 믿으십시오.
이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용히, 소리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주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 위에 서 있는 나이 들고 어깨가 굽은 저 작은 사람이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오늘 밤 저를 위해 성경의 일을 다시 한 번 행해 주신다면... 그분의 옷에 손을 댔던 여인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그분께서는 손이 닿는 감촉을 느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팔레스타인의 옷은 헐렁했습니다. 속옷을 입고 두껍고 크고 무거운 겉옷을 걸쳤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감촉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분을 꾸짖으며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붙들고 그 일로 꾸짖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고 있는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하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러나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다른 손길로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도 그런 손길로 손을 댈 수 있습니까?
저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왕국 밖에서는 저는 이런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 마이크와 같습니다. 이 마이크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가 이것을 통해 말할 때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일에서 우리도 바로 그 마이크와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를 통해 말씀하실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제 그저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시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제 기도만 하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그저 지켜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오랫동안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영원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취하신 그 흙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주께서 지체하시면 우리는 그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안의 영과 혼은 심판을 받으러 주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주의 말씀을 존귀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주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진리를 말했다는 것을 말씀해 주옵소서, 주님. 저는 주의 종입니다. 저 자신을 주께 맡깁니다. 여기 누군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게 할 수 있다면, 그분께서 약속하신 표적, 이방인 교회에 주시는 마지막 표적이 일어날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아브라함의 무리처럼 불러내어진 선택받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빌리 그레이엄과 그런 사람들이 저 아래 소돔에서 사람들을 불러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함께 남아 계셨던 분은 오실 아들이 가까이 왔다는 또 다른 표적을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주님, 오늘 밤 그 표적을 보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장막을 등지고 서서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라고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기 직전에 그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서 육신, 인간의 육신 안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의 사역을 위해 이것을, 저 자신을 주께 맡깁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들이 듣고 있습니다.
이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 일을 위하여 이곳의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누군가 방언을 한다.] 하셔도 됩니다.
이제 성령께서 행하시게 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것들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여전히 그리스도이십니까?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겠노라”라는 약속을 지키셨습니까? “조금 있으면 저 밖의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인칭대명사입니다]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며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이것이 참입니까? 저기 어린 흑인 소녀 위에 그 빛이 머무는 것이 보입니다. 아이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서 오셨습니다. 매일 밤 이곳에 오기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셨습니다. 아이는 며칠 전 밤에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여기 보십시오. 그 빛을 보신 분이 있습니까? 보셨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사진으로는 보셨습니다.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를 보십시오. 호박색 빛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보이지 않습니까? 바로 여기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여인 위에 있습니다. 그분은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 빛이 그분을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이대로라면 분명 놓치고 말 것입니다... 데이비스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바로 거기 계십니다. 저는 평생 그 여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 손을 듭니다.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그것들이... 부인, 사실입니까? 사실이면 이렇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그분은 누구에게 손을 댔습니까? 제가 아닙니다. 저에게서 이십 야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손을 댔습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습니까?
여기, 다시 이쪽을 보십시오. 바로 여기 기도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위장병을 앓고 있고 다리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코튼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치유를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하십니다. 제가 평생 그 여인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분은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똑같은 대제사장이 아니십니까? 왜 의심스러워합니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뒤쪽 이 구역에 계신 분들, 기도하고 믿으십시오. 그분은 어디서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앉아서 기도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위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여기 있지 않고 다른 주에 있습니다. 미시간주 폰티액이라는 도시에 있는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신경성으로 위궤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이 그분께 닿았습니다.
여러분이 알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남자분, 이 기타인지 무엇인지 이것을 연주하는 분도 위장병을 앓았습니다. 마귀는 들키지 않고 넘어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치유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믿습니까? 여기 앉아서 손을 들고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작은 체구의 형제님, 아내는 천식을 앓고 있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아내를 치유하실 것을 믿으면 치유받을 것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저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평생 저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쪽 맨 뒤에 또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유방에 종양이 있습니다. 오, 그분이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패터슨 부인,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일어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좋습니다. 저는 평생 그 여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저 아래 들것에 누운 분들은 어떻습니까? 거기 그 부인은 어떻습니까... 고개를 숙이세요, 그분... 저기 한 부인이 앉아 있습니다. 간이침대에 계십니다. 저를 그분의 선지자, 그분의 종으로 믿습니까? 그 부인 위에 빛이 머물러 있습니다.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거기 누워 계시면 죽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십시오. 그러면 심장병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분을 믿는 분은 몇 분입니까? 친구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을 믿습니까?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입증하셨던 그 일이 아니라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까? “아멘” 하십시오. 그런데, 당신 말입니다. 신경쇠약으로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목숨을 위해 피하십시오. 속히 달아나십시오. 지나간 일은 과거에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은 복음의 사역자입니다. 당신... 오늘 아침 제가 당신과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입니다. 당신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마귀가 온갖 것을 생각 속에 집어넣어 당신을 돌려세우려 합니다. 심지어 저를 대적하게까지 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것을 잊으십시오. 그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십시오. 지금 이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 일들을 믿으라고 촉구합니다. 그분은 오늘 아침 제게 왔습니다.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저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입니다. 바로 여기 그분 앞에 있습니다. 저 어두운 그림자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제 그것이 그분을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성령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여기 손수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도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성경은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갔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부정한 영들이 사람들에게서 나가고 사람들이 치유받았습니다. 주께서 이곳에 임재하심을 우리가 의식하는 동안... 우리는 바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주께서는 여전히 예수님이십니다. 처음부터 그 일을 한 것은 그가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예언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알았을 때 그들 안에 있던 믿음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도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의 기도를 존귀하게 받아 주옵소서. 한 저술가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자기 의무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가던 바로 그 길을 홍해가 가로막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통해 분노한 눈으로 내려다보시자 홍해가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고,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네 일이 잘되고 네가 건강하기를 내가 바라노라”라는 그 약속을 원합니다. 그러나 질병이 그들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내려다보아 주옵소서. 성령의 이 위대한 기름부음을 기념하여 이 손수건들이 병자들 위에 놓일 때—그리스도께서 이곳에서 자신을 나타내시며, 조금의 의심도 없이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여전히 살아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이 증표들이 병자들 위에 놓일 때 질병이 두려워하게 하옵소서. 뒤로 달아나 물러가게 하시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치유받게 하옵소서.
조용히 하십시오. 성경은 옳습니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이곳에 오셔서 이것을 여러분에게 그토록 완전하게 나타내 보이신다면, 심리의 어떤 영역도 감정의 어떤 영역도 뛰어넘는 완전한 기적을 보여 주신다면... 기적이란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발을 조금 저는 사람이 감정에 북받쳐 벌떡 일어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 사람이 무엇을 했고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이 있을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저는 담대히 말씀드립니다. 전 세계에서 수만 번에 수천을 곱한 그 많은 경우에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모방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것은 반드시 나옵니다. 육적인 모방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은 오히려 참된 것을 더 빛나게 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되심을 드러냅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여러분이 받은 바로 그 성령이십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이 방언을 말하고 지금까지 행한 일들을 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그런 것들에서 나오라고 여러분에게 소돔의 표적을 주고 계십니다! 이 세상이 불탈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저곳에 번호가 적힌 폭탄이 놓여 있습니다. 속히 그리스도께로 피하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그분의 입술에서 나온 마지막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믿습니까?
여러분이 믿는지 보겠습니다. 잠깐 이곳에서 옛날 아칸소식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기도 줄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믿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안수받고 싶습니까? 그렇게 하고 싶습니까? 어떻게 질서를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경건하게 해 주시면 한번 해 볼 수는 있습니다.
거기 안에 계신 분들... 뭐라고요? 구역별로요. 좋습니다. 저 뒤에서 기도 카드를 들고 계신 분들은 앞으로 바로 나와 저 줄에 서십시오. 오른쪽 구역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특별한 전도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에게도 똑같은... 물론 그분에게 그런 예언의 은사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한 세대에 한 번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분에게도 저와 똑같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분별이 여러분을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줄 뿐입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어느 마을에 가서 모든 기도와 모든 침례를 맡아 합니다. 그러면 그가 떠난 뒤 사람들은, 목사님은... 사람들은 자기 목사님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안전하게 이끌었으니 앞으로도 이끌 수 있습니다. 그분은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각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이 기도 줄로 나오면서도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들어오지 마십시오.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손 아래를 지날 때 참으로 믿는다면, 집에 돌아가 하나님의 권능을 간증하십시오. 모든 것이 끝났음을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목사님들께서 저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무어 형제님과 후퍼 형제님, 이곳에서 제가 아는 많은 형제님, 그리고 이 훌륭한 목사님들이 일어나 바로 이쪽에 작은 줄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직 제 위에 계시는 동안... 방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아직 여기 계시고 제가 할 수 있는 동안, 이분들도 같은 기름부음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계시므로, 그것이면 됩니다. 우리는 병자들에게 안수하겠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제님들, 이쪽으로 나오십시오. 나오셔서 바로 이쪽에 줄을 만들어 주십시오. 저도 이 형제님들과 함께 서겠습니다.
이제 여기 계신 여러분이 밖으로 나가시면 건물 주위를 돌아서 바로 다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누군가 여기 서 주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아마 여기 이 형제님이 좋겠습니다. 이리 오셔서 이 줄들을 살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 서서 구역별로 불러 주실 수 있는 다른 형제님도 좋습니다. 이제 사역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 받은 종들이 바로 이쪽에 서시도록 해 주십시오. 여기 제퍼슨빌에서 온 형제님 두 분이 있습니다. 태버내클의 작은 자매 교회들에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입니다. 돈 러들 형제님은 병자를 위한 기도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돈, 여기 계십니까? 주니어 잭슨 형제님도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고 성령을 받은 감리교 설교자입니다. 다른 한 분은 하나님의 교회 사역자였습니다. 태버내클 주변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형제님들은 나와서 이 형제님들과 함께 줄에 서 주십시오. 그래도 괜찮겠지요, 형제님? 괜찮지요?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나와서 함께 서십시오.
윌버 콜린스 형제님은 어디 계십니까? 또 한 분의 사역자, 얼마 전에 성령을 받고 침례를 받은 감리교 사역자입니다. 그분도 나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그분의 어린 아들이 류머티즘열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입에 관을 넣을 만큼도 고개를 들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곱 인을 설교하려고 투산에서 와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 아이를 침대에서 안아 그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라. 나았느니라. 내 어린 아들과 함께 놀게 될 것이니라.” 그 형제님이 지금 바로 여기 서 계십니다. 아내도 이 안에 있습니다. 마이키도 여기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이키, 어디 있니? 어디 있니? 의사들은, 저기 있군요... 신비한 일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형... 보건 당국에서 그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의사가 가서 진찰했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아이에게는 그 병이 조금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친구 여러분, 제가 이분들을 부른 까닭은 이분들이 사역자이며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나 다른 누구와도 똑같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부름받은 분들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에게도 이것을 행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럴 로버츠나 잭 존스나 저나 다른 누구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목사님은 그 일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침례받은 적이 없다면 이 집회가 끝난 뒤 목사님과 상의하십시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그분의 교회로 가십시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제 지나가실 때 기도하십시오. 이곳에 계신 한 분 한 분, 각 사람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줄을 따라 계속 걸어가십시오. 우리는 이분들과 함께 바로 여기 서서 여러분에게 안수하겠습니다. 이 목사님은 여기 서서 줄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나갈 때 이 기름부음 받은 손들이... 제가 지금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이분들도 기도할 것입니다. 그분들이 여러분에게 손을 얹을 때,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과 똑같이 확실하게 치유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믿으면 그분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다면 그분들이 손을 얹을 때 이루어집니다. 믿습니까?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보면서, 그 어미 사슴이 보여 줄 수 있었던 것만큼 참된 것을 여러분도 보았다고 믿습니까? 그분께서 여기 계심을 믿으면 “아멘” 하십시오. 그렇다면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이제 고개를 숙입시다. 여러분을 위해 온 마음으로 드리는 저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를 사랑합니다. 주는 저의 생명이시며, 저의 소망이시며, 저의 하나님, 저의 왕, 저의 치유자, 저의 보호자이십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는 그런 분이십니다. 여기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이곳에 서 있는 분들 가운데는 자신도 병든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압니다. 조금 전 그분들 위에 주의 영이 머무는 것을 보았고, 그 사역자들이 병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자기 회중을 향해 있습니다. 자신이 기도받을 자리를 내어놓고 여기 기도 줄에 서서 자기 양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런 분에게 복을 주옵소서. 한 분 한 분에게 복을 주옵소서.
오늘 밤 이 진리,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주의 대표자로 우리가 이곳에 서 있사오니, 이 모든 분이 기름부음을 충만히 받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그들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을 때 그 사람에게 강한 믿음이 임하여, 주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주신 신유의 은사를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지나오는 사람마다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자기들의 고백에 대해 속죄하는 십자가의 그늘 아래를 지나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그분의 위대하고 존엄한 임재는 그분께서 죽어 계시지 않음을 입증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러면 오늘 밤 각자의 집으로 가면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제 몇 분 동안 주의 권능으로 이 병자들에게 그런 믿음을 주셔서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묶고 있는 모든 마귀에게 맞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믿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말씀이 실제가 되게 하려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근거하여 말합니다. 사탄아, 너는 패배했다. 네 때가 가까이 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떠나라. 그들에게서 나와라. 우리가 병자들에게 안수함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일으키며, 그들은 나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과 사역자들이 병자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하는 동안 한 형제가 “믿기만 하라”를 부른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한마음인 이들의 교제는 저 위의 교제와 같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우리 마음은 여전히 하나로 이어져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형제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는 이 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락해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이 이천 년 동안 우리와 함께 계시게 한 그 효능이 영원을 위해 [공백] 혼들을 찾게 하시며, 우리 가운데 병자들을 치유하게 하옵소서. ... 예수 그리스도, 이 손수건들과 꾸러미들을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그것들 위에 있게 하옵소서.
이제 온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믿는 모든 회중은... 그분께서 이천 년 동안 말씀을 지키셨고, 마지막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그대로 일어났다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는 말씀도 지키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면 함께 손을 들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