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특별히 기도할 일이 있으십니까? 있으시면 하나님께 손을 들어 알리십시오. 그렇게 하심으로 “주님, 주님은 제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아침 하나님의 집에 모인 저희는 참으로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집에 오고 싶어도 병원과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저희에게 이곳에 나올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희는 서로에게 모습을 보이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서로 교제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사랑받는 자녀와 형제로 한데 모아 주신 분과 교제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아는 바로는, 주님과 올바르게 교제하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저희는 영적인 힘을 얻으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지고 가는 십자가를 견디려면 반드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위대하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저희 모두에게 힘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백성이 모여서 이런 필요가 있음을 주님께 손들어 알렸으니,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시옵소서. 주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어젯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웅그렌 자매님의 생명을 지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저희가 여정을 계속하는 동안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희를 떠받쳐 주시는 주님의 권능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임재가 저희와 함께하리라는 것을 아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때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둘레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저희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이제 말씀을 위해 주님의 복을 주시고, 저희를 통하여, 저희 안에서 말씀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밖에 햇빛이, 태양 빛이 비치니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날씨가 아주 나빴습니다. 특히 이 지방에는 우중충하고 지치게 하는 날씨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나와 비치는 것을 보니 참 좋습니다. 오늘은 조촐한 가족 모임이 있습니다. 제 누이 집에서 형제들과 이 도시와 그 근처에 사는 친척들을 만납니다... 브래넘 집안 식구들이 참 많습니다. 켄터키에 사는 식구들과 여기 사는 식구들이 다 모인다면, 아마 도시 전체를 빌려야 할 겁니다. 그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촐한 가족 모임입니다... 전에는 모두 어머니 집에 모이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말하자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던 오래된 버팀목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버팀목을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그곳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일요일 메시지를 이십 분이나 삼십 분 정도로 줄이고, 그다음에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생각을 했습니다. 어젯밤 다우닝 자매님이 제게 전화해서, 아니, 빌리에게 전화해서, 자신과 웅그렌 자매님이 이곳으로 오다가 차가 도로를 가로질러 미끄러지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을 때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빌리가 아직 창가에 있을 때, 그 무렵... 몇 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새벽이었을 겁니다. 저는 잠든 지 꽤 되었습니다. 우드 형제님 댁을 내려다보니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저는 곧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제게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괜찮다.” 그래서 빌리에게 “다 괜찮을 것 같다고 전해라”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그분들이 오신 것을 보니 참 기쁩니다. 길에서... 그런 일을 겪고도 이 뒤편 하나님의 집에 앉아 계십니다. 저를 그토록 사랑해서 복음을 들으려고 수백 마일을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니, 제가 이렇게 말이 느린데 이십 분짜리 메시지로는 별 도움이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냥... 그 정도 시간만큼.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아드님인 웅그렌 형제님이 여기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이 형제님에게 지니는 의미는 어제 오후보다 오늘 아침에 더 커졌습니다. 하늘의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그가 소중히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의 생명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귀한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펴보던 본문이 두세 가지 있었는데, 오늘 아침 어느 것을 가지고 말씀드릴지 좀처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였습니다. 그분이 돌보신다면, 여러분은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빌리 폴이... 아니, 빌리 폴이 아니라 제 다른 아들 조셉이 오래전에 제게 가져다준 본문입니다. 어느 날 제가 방에 앉아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림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빌리, 아니, 조셉은 어린 사내아이들이 그렇듯 배를 무척 좋아합니다. 배와 말을 좋아하지요. 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 예수님도 배가 있어요?” 저는 “모르겠구나” 하고 대답했습니다.
아이가 일어나 나간 뒤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분에게 배가 있는가?’ 그래서 거기서 본문을 얻어 제 공책에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예수님도 배가 있으신가?” 생각해 보니,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태어나실 태를 빌리셔야 했고, 묻히실 무덤도 빌리셨으며, 설교하실 배도 빌리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옛 시온의 배를 이끄시는 선장이십니다. 물론 배가 있으십니다. 제가 생각하던 그 본문들은, 우리가 다시 돌아가기 전에 나중에 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여기 태버내클에서 말씀 전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곳은 우리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분들이 아무리 환영해 주려고 해도, 남의 교회에 와 있으니 조금 제약을 느낍니다. 예의를 갖추어 그분들의 생각과 교리를 존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는 버첨 형제님 댁에 가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의 치즈 만드는 공장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형제님과 부인과 아드님, 그 가족이 오셨군요. 저는 늘 치즈 공장이란 제가 가 보았던 다른 곳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좀 질척하고 지저분할 거라고요.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곳이 더럽지 않다는 것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가 본 곳 가운데 가장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공장으로서는 그랬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하루에 치즈를 백 파운드쯤 만들겠거니 생각했는데, 날마다 육 톤을 만든답니다! 그런 공장이 세 곳이나 돌아갑니다. ‘이 많은 치즈를 다 누가 먹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형제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 댁에도 가 볼 수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운 집이었고 부인도 훌륭하고 헌신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러니 그분들이 지금처럼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드님들도 만났는데, 참 훌륭한 자녀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런 교제를 나눌 수 있으니 참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그분들이 전에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은 제가 아는 걸리 형제님이셨습니다. 연합오순절교회 신앙을 가진 아주 훌륭한 분으로, 제가 여러 해 전 아칸소주 존즈버러에서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그 형제님이 그분들의 목사님이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 예배를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음 일요일에도 다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일요일에는 시카고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동안 자리를 비우게 됩니다. 가족을 애리조나 집으로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을 괴롭히며 그분의 예배 시간을 차지하는 일도 그치겠지요. 네빌 형제님께서 너그러이 맞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초대해 왔는데 그분은 참... 저는 형제님이, 그런 분이 좋습니다. 간사함도 없고 이기심도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만 있는 분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것이 좋습니다.
이제 성경을 조금 읽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렇게 메시지가 길어지면 몇 시에 마치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얼마 전에 제가 너무 오래 말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이러더군요. “아니, 몇 분만 말씀하시면, 원래도 좀 신비롭게 말씀하시는데 저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계속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얼마 후에 그 뜻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하기를 원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강단 위에 펼쳐져 있습니다. 언젠가 이 말씀이 마지막으로 닫힐 때가 오고, 그때는 말씀이 육신이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이 시간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가 읽을 이 말씀의 내용을 주님의 성령으로 저희에게 열어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저희도 한 마디 한 마디 주의 깊게 듣고 깊이 헤아리게 하시며, 테이프로 듣는 분들도 주의 깊게 듣게 하시옵소서. 성령께서 저희에게 계시하려 하시는 것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그분이 저희에게 기름을 부으신다면 그 기름부음은 헛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을 위해 유익하게 역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의 마음과 깨달음을 열어 주시옵소서.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듣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위대한 날에 그것이 저희에게 영생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복을 주시고, 저희가 잘못할 때에는 책망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허물을 알게 하시고, 옳은 길에서 저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저희가 어느 길로 가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 것입니다. 다가올 위대한 세상에서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여기서 살아가는 저희의 삶으로 영예를 돌리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에는 성경에서 두 곳만 읽으려고 합니다. 하나는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사실 두 곳 다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하나는 십삼장 이십일절과 이십이절이고, 다른 하나는 십사장 십절, 십일절, 십이절입니다. 이제 출애굽기 13장 21절부터 읽겠습니다. 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낮과 밤에 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백성 앞에서 치우지 아니하셨더라. 이제 출애굽기 14장 10절입니다. 파라오가 가까이 왔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드니, 보라,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들의 뒤를 따라 행진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부르짖었으며 또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이집트에 무덤이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데리고 나와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이같이 우리를 대하느냐? 우리가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리라, 하였노라.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우리에게 나았으리라, 하였더라. 몇 절 더 읽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여기서 잘 들으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보여 주실... 그분의 구원을 보라. 너희가 이후로는 오늘 본 이집트 사람들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주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너희는 잠잠히 있을지니라, 하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이 앞으로 가게 하되 너는 네 막대기를 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를 나누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 마른땅 위로 가리라. 보라, 나 곧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리니 그들이 저들을 따라가리라. 내가 파라오와 그의 온 군대와 병거들과 기병들로 인해 영예를 얻으리니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들과 기병들로 인해 영예를 얻을 때에 내가 주인 줄을 이집트 사람들이 알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진영 앞에 가던 하나님의 천사가 이동하여 그들 뒤에서 가매 구름 기둥이 그들의 얼굴 앞에서... 떠나간 뒤 그들의 뒤에 서서 이집트 사람들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 다다르니... 그것이 저들에게는 구름과 흑암이 되었고 이들에게는 밤에 빛을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한쪽이 다른 쪽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였더라. 모세가 바다 위로 자기 손을 내밀매 주께서 강한 동풍으로 온밤 내내 바다를 뒤로 물러가게 하시고 바다를 마른땅이 되게 하시며 물들을 나누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 마른땅 위로 갔고 물들은 그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그들을 위해 벽이 되었더라. 이집트 사람들이 추격하여 그들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으니 곧 파라오의 모든 말들과 그의 병거들과 기병들이더라. 새벽 경점 때에 주께서 불과 구름 기둥을 통해 이집트 사람들 군대를 보시고 이집트 사람들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들의 병거 바퀴들을 벗기사 그들이 그것들을 힘겹게 몰도록 하시니 이에 이집트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얼굴을 피해 우리가 도망하자. 주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이집트 사람들을 대적하여 싸우는도다, 하였더라.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위대하고 좋으니, 도무지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읽을수록 바로 생명이 됩니다. 오늘 아침 이 본문을 생각하며, 테이프로 녹음되고 있지만,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본문은... 저는 제 자신이...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제 공부하다가 이 주제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겠다. 이 말씀이 나를 낮아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우리 모두를 낮아지게 하여 보게 하고, 위를 바라보게 하며, 그때의 시대를 지금의 시대와 비교하면서 조금 살펴보게 하기를 바랍니다.
세 단어를 본문으로 삼으려 합니다. 바로 “왜 부르짖는가? 말하라!”입니다. 여기 십오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백성에게 말하여 그들이 앞으로 가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부르짖는가? 말하라!” 꽤 큰 주제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되도록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본문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모세가 곤경에 처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바로 그 곤경 한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모세를 꾸짖으십니다. 사람이 부르짖는 것은 당연한 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리어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자신에게 부르짖었다고 꾸짖으시니 얼마나 큰 책망입니까. 아주 가혹한 일처럼 보입니다.
우리 나름의 시각으로 성경을 보면 아주 가혹하게 보이는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 살펴보면,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시는 일을 정확히 알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하셔야 할지, 사람을 어떻게 다루셔야 할지 아십니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그 사람을 아십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지적인 면으로만 압니다. 그분은 그 사람 안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모세는 은사를 지닌 아이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선지자와 구출자가 되도록 태어났습니다. 그 일을 감당할 자질을 안에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이 이런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을 확고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멸망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시므로 처음부터 끝을 아셔야 했고, 또 알고 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한하신 분이 아닙니다. 무한하시지 않다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누가 멸망하고 누가 멸망하지 않을지는 알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보시기에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정죄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 말고 다른 식으로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을 아시며 그것을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하면, 흉내를 내는 것뿐이며 조만간 정체가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찾아냅니다. 감출 수 없습니다. 죄를 덮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부터 여러분을 부르시지 않았다면 그 피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 피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흘려졌습니다. 짓밟히고 조롱당하고 비웃음과 비방을 받게 하려고 흘려진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난삼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죄가 덮이지도 않았는데 덮였다고 말하며 흉내 내라고 주신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죄가 덮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오리라.” ‘주신’은 과거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말씀을 거짓말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위해, 바로잡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모세에게는 큰 믿음이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 그 믿음이 그 안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그는 훌륭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레위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출애굽기의 앞부분 이야기는 이 위대한 인물의 삶을 참 아름답게 전해 줍니다. 그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분명한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 예수님처럼 아주 특별하게 태어났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박해의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구출자가 되도록 태어났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부모가 그를 원수에게서 숨겼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섬길 때를 맞았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지도자였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선지자였습니다. 주 예수님처럼 율법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반석 위에서 죽었음을 압니다. 그는 틀림없이 다시 살아났을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팔백 년 뒤 변화산에 서서 주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시겠습니까? 천사들이 그를 데려갔습니다. 어디 묻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마귀조차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묻힌 적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고 믿습니다. 그는 평생 따랐던 그 반석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이었습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었고, 율법을 주는 사람이었으며, 백성을 지탱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모형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되신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 큰 은사와 자질을 안에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니 거기에 무엇인가 빛을 비추어 그것을 살아나게 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씨는 실제로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부터 우리 안에 심겨 있습니다. 그 빛이 처음 씨에 비치면 씨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먼저 그 빛이 씨에 닿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한 우물가의 그 여인처럼 말입니다. 그 여인은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평판이 나쁜 사람이었고, 삶이 타락하여 그런 처지에 있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전통이 한 번도 그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빛이 처음 비치자 여인은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그 안에 반응할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에는, 그 부름에 응답할 깊음이 어딘가에 있어야 합니다. 이 모세는 선지자로 태어났지만, 파라오의 궁전에서 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를 길러 준 파라오 세티는 여전히 요셉을 존중하며 그가 주님의 선지자였다고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티 뒤에는 람세스가 왔습니다. 람세스는 요셉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일어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자질들에 관해, 본문의 중심 부분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본문을 먼저 제시하고 거기까지 이야기를 쌓아 가는 좀 별난 방식으로 말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이야기를 펼쳐 가는 동안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이 큰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후 타는 가시덤불에서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얼마나 훌륭한 자질들이 있었는지 보십시오! 그는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목적을 두셨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있는 데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그 자리에 이르기만 한다면, 하나님과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덜겠습니까. 모세는 태어났고, 그 후 기름부음을 받는 자리로 인도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씨는 지적인 이해와 함께 그 안에 있었습니다. 이 백성을 구출하려고 태어났다는 모든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는 가시덤불의 빛이 그 씨에 비치기 전까지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만날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말을 하고, 그도 그것에 응답했습니다. 아, 그 일로 얼마나 모든 것이 살아났습니까.
저는 어떤 남자든... 여자든 소년이든 소녀든, 말씀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지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그 말씀을 실재가 되게 하는 빛을 만나기 전에는 온전한 기초 위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회든 그 실천에서 아무리 지적이고 근본적인 신앙에 충실하다 해도, 그 사람들 가운데 초자연적인 것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기 전에는 그 교회가 번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말을 하면 대답해 주며, 이 기록된 말씀을 입증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모세가 이 타는 가시덤불을 만났을 때, 그 말씀은 정확히 입증되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음성은 대체 무슨 음성인가? 여기 있는 이 존재는 누구인가?’ 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 창세기에 기록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네 백성이 이 낯선 땅에 머물겠지만, 사백 년 뒤에는 다시 이끌려 나와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수백 년이나 앞서 이스라엘이 낯선 나라에 머물며 학대를 받고 사백 년 동안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타는 가시덤불 앞에 오기 전에도 모세는 이것을 지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 안에 있던 씨가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지적으로 경험한 것을 통해 그들을 이끌어 내려고, 구출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 일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한 때를, 그들이 이미 사백 년 동안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 전에 어떤 분이 제게 주님의 오심과 휴거에 관해 물었습니다. 우리는 그 정해진 시간이 다 지났음을 압니다. 휴거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으고 초자연적인 힘을 주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휴거의 믿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닥에나 마당에 쓰러져 죽은 사람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고 우리 앞에 세워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볼 때, 암에 먹혀 그림자처럼 야윈 사람을 다시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일으켜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볼 때, 그것은 사람들에게 휴거의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그 빛이 번쩍이고 나팔이 울릴 때, 그리스도의 몸이 신속히 함께 모여 순식간에 변화되고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신학교들은 결코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지적인 면에서는 올바르지만, 여러분은 그 빛을 만나야 합니다!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위대한 소명을 말씀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소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빛을 만났고, 바로 그 말씀 자체가 그에게 응답하여 말씀했습니다. 그때 그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기름부음은 그의 안에 있던 것에 임했습니다. 그 속에서 그것을 믿던 지적인 이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기초한 믿음, 그를 어머니에게서 따로 떼어 놓았던 그 믿음에 임한 것입니다. 이제 그가 이 빛의 임재 안에 들어가자, 그가 믿던 것에 기름부음이 임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기름부음입니까. 그리고 그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들어서 지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고, 자신이 바로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어쩌면... 믿음이 조금 뒤로 물러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시덤불에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노라. 내가 내려왔노라.” ‘내가’, 거기에는 인칭대명사가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구출하려고 내려왔노라.”
여기에 이 말을 덧붙여도 되겠습니까... 불경스럽게 들린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땅에서 일하지 않는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내가 사람을 찾았을 때에만 나 자신을 드러낸다. 내가 너를 택했으니, 그들을 이끌어 내도록 너를 내려보낸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내가 네 입과 함께하겠고, 내가... 너는 이 막대기를 가져가라.” 모세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보내시고 제게 기름을 부으셨으며 이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는 증거를 볼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막대기입니다.” “그것을 던지라.” 그것이 뱀으로 변하자 모세는 달아났습니다. “그것을 집어 들라.” 그것은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네 손을 품에 넣으라.” 꺼내 보니 나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다시 넣었더니 나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모세에게는 더 이상 의문이 없었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 광야로 달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는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크고 훌륭한 자질들에 기름부음이 임했습니다. 이제 그는 준비되었습니다.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를 향해 내려갑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고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하셨다면, 마음속에 있는 이 큰 부르심에 관해 모세가 알아야 할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주장이 참됨을 입증하셨습니다. 모세는 “내가 주님을 만났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그들에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여기 또 유대인 하나가 왔군. 그동안 우리를 속박에서 빼내겠다며 온갖 계획을 들고 찾아오던 광신자들 가운데 하나겠지.” 사람이 노예가 되거나 무엇에 얽매여 있으면 어떤지 아시지요. 늘 무슨 묘책을 들고 와서 그 일을 해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네 안에 있겠다. 내 말이 네 말이 될 것이다. 너는 내 말을 전하고, 내가 말하는 것만 말하라.”
이제 모세가 내려가 그들에게 이 부르심을 전하고 파라오 앞에 서서,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께서 “백성을 내보내라” 하셨다고 말했지만, 파라오는 그들을 보내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장로들과 파라오 앞에서 표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일 이맘때 해가 지고 온 이집트가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대로,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또 “이 땅에 파리들이 몰려올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막대기를 내밀어 파리들을 불렀더니 파리들이 왔습니다. 그가 예언하면, 예언한 모든 것이 꼭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그를 부르시고 큰 믿음의 자질을 그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 후 임재 가운데 내려오셔서 그의 안에 있던 그 위대한 것에 기름을 부으시고, 그분의 말씀을 맡겨 내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참되다는 것이 분명히 입증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기꾼이 일어났든, 얼마나 많은 다른 일이 있었든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셨고, 모세가 누구인지 확인되었습니다. 모세가... 모세가 한 말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한 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입과 함께하겠다. 네 입이 올바른 것을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세를 통해 전하십니다. 그것이 모세의 주장을 확증하고 입증했습니다.
또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신비한 출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출될 때가 가까워져 가던 일이었습니다. 레위의 아들과 딸인 아므람과 요게벳은 구출자를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속의 때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기도하며 갈급해지기 시작합니다. 틀림없이 요게벳은 여러 번 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게벳은 그의 어머니였고,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알듯이 그의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모세야, 아들아,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특별한 아이였단다. 너는 달랐어. 네가 태어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났단다.” 얼마 전에 제가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극처럼 들려주었습니다. 아므람이 방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가 칼을 뽑아 북쪽을 가리키며 “네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며, 그가 백성을 북쪽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이해하도록 극처럼 들려준 것입니다. 아이들의 지적 능력은 아직 여러분 어른들처럼, 성령께서 계시하실 때 그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일들을 들려주었고 그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한 번 더 만져 주심이 필요했습니다. 가르침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만남이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직접적인 만남이 필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무엇이든... 여러분은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직접 만나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보십시오. 그것은 언제나 성경적일 것입니다. 성경과 정확히 일치할 것입니다. 이 일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아므람의 기도는 성경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약속된 말씀과 일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위해 기도했고, 여기 특별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십시오! 아, 저는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파라오가 모든 아이를 죽이던 때였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칼로, 경비병들의 칼로 죽였습니다. 그 작은 아이들을 찔러 죽이고, 그 조그만 시신들을 악어 먹이로 던졌습니다. 어쩌면 악어들이 히브리 아이들의 시신을 먹고 살이 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부모가 아이들을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이 아기에게 무언가가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기도의 응답임을 보았습니다. 모세에게는 이 모든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하려는 목적으로 보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십시오. 그 모든 배경이 하나하나 쌓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성경을 가져와 “이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바로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그때 이 일이 있을 것이다” 했는데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정해진 때에 이 일이 있을 것이다” 했는데, 거기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함께 모여 우리에게 한 그림을 보여 줍니다.
아, 오늘 아침 이 태버내클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습니까, 네빌 형제님. 머리가 희어지고 어깨가 굽어지는 것을 보고, 세상이 지금처럼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것을 볼 때, 주위를 둘러보며 약속의 때가 가까워짐을 얼마나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여러 번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맞닥뜨리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니, 이해한다면, 한꺼번에 그 안으로 들어선다면, 거의 곧장 영원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그저... 자신도 모르던 그토록 황홀한 일로 말입니다. 아, 우리가 보고 알고 이해해 온 것들을 단번에 뚫고 들어가,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와닿는다면 말입니다. 그런 남자나 여자, 소년이나 소녀는 아마 손을 들고 “주 예수님, 갑시다”라고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그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습니까!
모세는 자신이 그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면서 창밖으로 고된 일을 하는 히브리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시 성경을 보니 “그들이 사백 년 동안 머물리라. 그러나 내가 능하신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리라”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후 그는 사명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는 믿음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았습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나머지 사람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달랐습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집트에서 보면 그들은 괴짜와 광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파라오의 아들이 되어 다음에 그 왕국을 물려받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안 깊은 곳에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물려받을 그 화려함을 바라보지 않는 참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고, 그때가 가까이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습니까...
언젠가 저편에서 그를 만나면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형제님, 그건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라고 하겠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그를 만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 그와, 모세 본인과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가 자신이 준비되어 가는 것을 보았을 때, 마귀가 “아, 사람들이 너를 믿지 않을 거야. 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말하며 좌절시키려 했을 때 어땠는지, 얼마나 물어보고 싶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위에서 그 씨가 살아났을 때, 무엇인가 그에게 와닿았고,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시계를 보고 몇 시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알았고,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았을 때, 그가 본 이 모든 큰일을 모았을 때 말입니다. 성경이 말한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도, 그리고 특별하게 태어난 특이한 아이였다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줄곧 그의 깊은 곳에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슬그머니 나가서 학교에서 받은 군사 훈련으로 백성을 구출해 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후 광야로 가서 아름다운 에티오피아 여자와 결혼했고,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하나 두었습니다. 어느 날 양 떼를 돌보다가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불타는 가시덤불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이해도, 상상도, 망상도, 착시도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빛 가운데 계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가시덤불 안에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그 불은 물결처럼 뻗어 나왔지만 가시덤불에는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이 그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택하였다. 네가 그 사람이다. 이 목적을 위해 내가 너를 일으켰다. 네가 내려가 백성을 구출하리라는 것을 여기서 표적들로 입증해 주노라. 내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이 시대에 대한 그분의 말씀도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때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말씀은 성취되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모세가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사방에서 확인했을 때, 그의 믿음에 기름부음이 임했습니다. 아멘! 아, 얼마나 놀라운 생각입니까. 성경이 바로 그것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이 보였고,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그 증거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안에 있던 믿음에 기름을 부어 행동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부흥이 필요합니다. 제 자신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흔들어 깨워 주심이 필요합니다.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제 자신에게, 혹은 제 자신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깨어나야 합니다. 그 큰 증거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너무도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이 모세의 믿음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아, 그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이집트에서 달아났을 때, 사실은 반란 같은 것을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일어나 이집트에서 혁명을 시작하고 군대를 이끌고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자기편에 수천 명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군대가 자기편에 있어도 그렇게 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사십 년 후, 이제 팔십 세가 된 그는 손에 막대기 하나만 들고 돌아옵니다. 왜입니까? 마음속에서 불타던 것이 실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기름부음을 받았고, 자신에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군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아, 어떤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이 저 앞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면, 그 무엇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제게 말씀하신 후, 제가 나아가 보니 그것이 바로 거기 있었던 때들이 기억납니다. 아, 그때의 느낌이 어떻겠습니까! 상황은 이미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납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핀란드에서 어린 소년이 다시 살아난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었는데,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제가 길가에 서 있다가 그 아이를 뒤로하고 걸어가려는데, 돌아서서 다시 보았습니다. 무엇인가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저는 무어 형제님인 줄 알았는데,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산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니... 제가 말했습니다. “저 언덕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우리는 이 길로 오지 않았어. 다른 길로 왔지. 저 언덕은 어디서 본 거지?” 보니 저 아래에 사고 난 자동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소년이... 우리가 여기서 ‘바가지 머리’라고 부르는 머리를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눈은 며칠 전 웨이 형제님이 쓰러졌을 때처럼 뒤집혀 있었습니다. 작은 다리가 부러져서 어린 발이 양말을 뚫고 나와 있었습니다. 눈과 코와 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짧은 바지는 작은 허리 옆쪽에 단추로 여며져 있었고, 양말은 우리가 오래전에 신던 긴 양말처럼 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둘러보니 거기에 모든 것이 정확히, 정확히 성령께서 이 년 전에 제게 말씀하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전국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성경에 적어 두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 그러면... 상황은 이미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철저히 죽어 있든,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아이는 반드시 살아나야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죽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거짓 선지자이며 하나님을 그릇되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년 전 본국에서 그분이 제게 이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목사님들을 비롯해 모두가 성경의 면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정확히 그대로 있습니다. 바위들이 겹겹이 놓인 나라에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어디서 죽게 될지... 길 오른쪽에 있을 것인지 면지에 적힌 것을 읽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무엇도 막을 수 없습니다.” 상황은 이미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의 믿음에 기름부음이 임했습니다. 아, 그것을 설명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제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던 믿음입니다. 제게 말씀하시고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신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상황은 다스려지고 있다. 여기 정확히 내가 이 년 전에 네게 보여 준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정확히 그 순서대로 놓여 있다. 네가 할 일은 말씀을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자 그 어린 소년이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저기 앉아 계신 프레드 소트만 형제님과 뱅크스 우드 형제님과 그분들을 돌아보며, 얼마 전 알래스카 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여기 교회에 서서, 사슴처럼 생겼고 뿔이 사십이 인치인 어떤 짐승과 은빛 털끝을 가진 회색곰에 관해 여러분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전에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잡게 될 것이며, 어떻게 될 것인지, 몇 명이 저와 함께할 것인지,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말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몇 주, 몇 주 전부터 여러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 갔을 때, 전혀 모르고 갔는데, 바로 그 짐승이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갔고, 그놈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냥꾼이라면 아실 겁니다. 이 테이프를 듣는 사냥꾼이 계시다면, 짐승의 정면에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벌떡 일어나 달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놈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 서재에 걸려 있습니다. 그 은빛 털끝의 회색곰도 정확히 그대로 걸려 있고... 거기에 자도, 줄자도 있어서 정확히... 뿔은 짐승에게 붙어 있을 때의 생뿔 상태에서 마르면 적어도 이 인치 이상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것은 줄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정확히 사십이 인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은빛 털끝의 회색곰도 거기 있습니다. 길이가 정확히 칠 피트이고, 모든 것이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보십시오. 말씀하신 그 짐승은 잡았습니다. 하지만 저 아래 아이들이 있는 데로, 초록색 셔츠를 입은 그 아이가 있는 데로 돌아가는 길에, 언덕 아래에 닿기 전에 은빛 털끝의 회색곰도 잡을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여기서는 사방으로 몇 마일이나 다 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 곰이 어디서 나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건 제가 따질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분은 여호와이레이십니다. 그곳에 곰을 데려오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 곰 한 마리를 두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곰이 거기 있습니다. 상황은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 목적을 위해 일으켜졌고, 자신을 부르신 이 위대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났으며, 그분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자신이 누구인지 입증하셨음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이것이 네 소명이다. 내가 너를 보낸다. 내 영광을 네게 보여 주겠다. 내가 여기 불타는 가시덤불 안에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모세에게는 막대기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말씀, 입증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그의 안에 있던 믿음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며, 성경이 마지막 날들에 일어나리라고 말한 이 모든 표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을 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하늘에서부터 정치 세력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성품과 세상과 여자들 가운데 도덕이 무너지는 것, 마지막 날들에 여자들이 어떻게 하고 남자들이 어떻게 할지, 교회들이 어떻게 하고 나라들이 어떻게 할지,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을 봅니다. 아, 그것이 우리의 믿음에 기름을 붓습니다. 우리를 더 큰 활동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세상의 다른 것들과 우리를 구별해 놓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작든, 얼마나 소수이든, 얼마나 비웃음과 조롱을 받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우리 안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를 보도록 미리 예정되었으며, 무엇도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게 막을 수 없습니다. 아멘!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아, 이 일로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아! 그러므로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것을 다시 읽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그렇게 여겼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치욕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는 치욕이 따릅니다. 세상에서 아주 인기가 높다면, 여러분은 섬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치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늘 치욕을 주었습니다. 수천 년 전 그때에도 거기에는 치욕이 따랐습니다. 모세는 장차 파라오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파라오, 파라오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며 다음 파라오가 될 사람이었지만, 그는 여겼습니다. ‘귀하게 여기다’는 ‘그렇게 간주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가 줄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집트가 그의 손안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리스도의 길을 택하면 치욕이 따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안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자신이 물려받을 모든 화려함보다 그리스도께 나아감을... 아니, 그리스도의 치욕을 더 크게 여기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안에는 외적인 상속으로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유산이 있었습니다.
아,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되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있는 것, 그 믿음에 기름을 부으시도록 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께 헌신한 경건한 삶을 살도록 말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모세는 그 치욕을 바라보며 영예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여보세요, 당신도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까? 그, 저...?” “글쎄요... 어... 그게...”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온 세상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자기 안에 무언가가 있어서 담대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이것은 아주 영예로운 일입니다. 제가 그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기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의 일원이라는 것이 기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말해야 합니다. “저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며 세상의 것들과 세상의 질서를 멀리하는 것이 기쁩니다.” 그저 교회 회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 성경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교회 회원들까지 저를 광신자라고 불러도, 저는 그것을 이 도시나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큰... 더 큰 일로 여깁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이나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되기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그것을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저를 보시고 제 안에 작은 씨를 심으셨기 때문입니다. 제 믿음이 이런 세상의 것들 위로 날아오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를 부르셨으니 저는 제 자리를 귀하게 여깁니다—
바울이 자기 직분을 높이 여긴다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가말리엘 같은 위대한 선생이 되는 자리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물이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제 같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모세는 자기 눈, 곧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저 밖에 보이는 것은 진흙을 만지며 일하는 한 무리, 감옥에 갇힌 노예들, 날마다 죽임을 당하고 채찍으로 맞고 조롱받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 신앙은 광신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왕좌에는 그들의 종교를 전혀 알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파라오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는 이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그저... 오늘날의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 줍니까. 거기에 다른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대통령이나 위대한 사람들, 파라오와 바로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그가 죽으면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었다면 말입니다. 파라오는 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그 부르심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파라오가 내다보던 바로 그 창으로 보았습니다. 파라오의 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밖을 내다보며 손을 들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기도한다는 이유로 채찍을 들어 죽도록 때렸습니다. 그들이 언제든 불복종하지 못하기라도 하면 칼로 찔렀으며, 그 야윈 몸이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고 먹을 것은 필요한 양의 절반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 무리의 광신자들, 사람으로 여기기도 어려운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기 안의 그 믿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저들은 하나님의 복 받은 백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멘.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그의 눈은 이집트의 화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했습니다. 믿음의 독수리 같은 눈으로 이집트의 화려함 너머를 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제 그는 독수리가 되어 갑니다. 그는 선지자이며, 그의 독수리 같은 눈은 그런 것들 위로 올라갑니다. 아, 저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오늘날 얼마나 자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대신 눈에 보이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 자신의 감각을 의지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화려함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자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늘 여러분에게 머리를 길러야 하고, 화장을 해서는 안 되며, 숙녀답고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거리를 내다보면 오늘날 여자들이 부도덕한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생각합니다. ‘저 여자도 교회에 다니는데, 나는 왜 저렇게 하면 안 되지?’ 아시겠습니까? ‘저 여자도 머리를 자르는데 나는 왜 그러면 안 되지? 저 여자는 못지않게 상냥하고 지적이며... 내게 없는 인품까지 갖춘 것 같은데. 내가 왜 그러면 안 되지? 나도 그래야겠어.’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마비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믿음이 자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제가 말했듯이...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전국에서 사람들이 형제님을 선지자로 여깁니다. 이런 일로 여자들과 남자들을 그렇게 꾸짖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예언하고 은사를 받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직 알파벳도 모르는데 어떻게 대수학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거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자신을 깨끗이 하십시오. 그래서 거리에 나가면 적어도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게 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오셔야 합니다. 그 씨가 안에 있고 그 빛이 비치면, 씨는 살아날 것입니다. 살아나지 않는다면, 살아날 것이 안에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것이 분명히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빛이 비치는 즉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이 테이프를 듣고 있거나 앞으로 들을 여자들에게 책망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자매님, 이것은 자매님을 향한 책망입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거나 남편이 목사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한, 그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 일이 드러나고 성령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시자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부르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책망이었습니까. 그런데 그 작은 창녀는 말했습니다. “이분은 메시아이십니다. 성경이 그분께서 이런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미리 예정된 씨가 거기 있었고, 빛이 비치자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생명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겨울에 풀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죽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봄이면 어디에 풀이 가장 많습니까? 바로 콘크리트 가장자리입니다. 그 돌 아래 살아 있는 씨는 해가 비치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길을 찾아 기어 나오다가 바로 그 가장자리로 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고개를 내밉니다. 아시겠습니까? 생명은 감출 수 없습니다. 햇빛이 식물의 생명에 비치면, 그것은 반드시 살아납니다.
성령께서 사람 안에 있는 성경적인 생명에 비치시면, 그 자리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무리 진실하고 정직하더라도, 뭐라고 말하든... 이런 좋지 않은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들에 관해 말하면, 그것은 거리에서 하는 흔한 스트립쇼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그런 일을 한다고 믿지 않더라도, 여러분으로 하여금 믿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간음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책에서는 간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그런데 여러분이 그런 모습으로 자신을 내보인 것입니다. 그 생명이 안에 있지 않으면 이것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보며 말합니다. “글쎄요, 저는 존스 자매님을 압니다. 존스 형제님은 목사님인데, 그 부인도 이것저것 다 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고 내 말은 참되다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 빛이 참으로 비치면 반드시 살아납니다. 꼭 살아나야 합니다.
모세의 큰 눈, 그의 독수리 같은 눈은 이집트의 화려함 너머를 보았습니다.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는 교회가 뭐라고 하든,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그 빛이 비치면 하나님께서 친히 입증하시는 것을 봅니다. 거기 머물러 있는 불기둥과, 성경이 약속한 표적들과 이적들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면, 그 안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아무리 작고 아무리 소수여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무리는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작은, 작은 무리야. 너희 아버지께서 기꺼이 너희에게 왕국을 주고자 하시느니라.”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알아듣습니다. 그들이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보도록 모든 교파와 모든 단체와 모든 곳에서 그들을 데려오셔야 합니다.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늙은 시므온을 보십시오. 메시아가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으로 성전에 들어오셨을 때, 시므온은 뒤쪽 어느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그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주의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계셨습니다. 성령께서 하던 일을 멈추고 나오도록 이끄셨고, 그는 그곳으로 걸어가 아기를 품에 안고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구석에는 밤낮으로 주님을 섬기는 안나라는 나이 많은 눈먼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도 예언하며 “메시아가 오십니다. 저는 그분이 오시는 것을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눈은 멀었지만 말입니다. 그때 그분이 거기 계셨고, 그 여자 안에 있던 작은 생명은 그곳에 그분이 계실 것이라고, 계실 것이라고, 계실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생명, 그 빛이 사생아인 아기의 모습으로, 포대기에 싸여 건물 안으로 들어와 그 안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눈먼 노파에게 임하셨고, 그 여자는 영의 인도를 받아 사람들 사이로 나와 아기 곁에 섰습니다. 어머니와 아기에게 축복하고 그 아기의 장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입니다. 그들을 보십시오. 열두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날에는 여덟 혼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그때 들어왔습니다. 성령께서 각 시대에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이십니까? 사람들을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세의 믿음이 현재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것을 바라보도록 그를 이끌었음을 봅니다. 오늘 대신 내일을 보십시오. 화려함 대신 약속을 보십시오. 조직 대신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롯은 저 아래 소돔에서 번영의 화려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롯은 소돔을 바라보며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히브리 사람이니 그곳에서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주 지적인 인물인 데다가 아브라함의 조카였으니까요. 그래서 소돔으로 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롯의 지적인 판단은 번영의 화려함을 보게 했습니다. 롯의 지적인 판단은 화려함이 주는 복을 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믿음이 너무도 마비되어, 그런 삶을 멸할 불은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큰 조직에 속함으로써 생길 가능성을 봅니다.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을 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그들은 보지 못합니다. 믿음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오해하지 않도록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하듯이, 오늘날 여자들은 영화배우처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 남자들은 텔레비전의 희극 배우처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교회를 일종의 현대적인 친목 단체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회원 자격 등을 갖추고 말입니다. 교회가 하자는 대로 따르면 감독이나 총감독 같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봅니다. 성경이 바로 그들 앞에 놓여 있고, 하나님의 권능과 사람들 안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철저히 입증되어 있는데도 그 성경을 버립니다. 그래도 그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과 얽히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교단의 회원증을 잃기 때문입니다. 교단에서의 지위를 잃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소돔에 앉아 있던 롯처럼 정직한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압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할 때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가지고 있던 그 작은 믿음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이 일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그것에 자신을 내맡기고 믿음을 세웠습니다. 세상을 마비시켰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화려함을 마비시키든지, 화려함이 여러분의 믿음을 마비시키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은 큰 것, 큰 조직을 바라봅니다. “나는 무슨 단체 소속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곳에 가서 보십시오. 거리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그들에게는 여러분이 원하는 작은 지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신유나 불기둥, 하나님의 빛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마음에서 생긴 현상이지요”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 한 남자, 침례교 목사가 주님의 천사 사진을 집어 들고 비웃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 일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바로 그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도 그러면 신성모독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희생물이신 그분을, 그 일을 행하신다는 이유로 “바알세붑”, 마귀라고 불렀을 때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말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똑같은 일을 하실 때, 그분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아시겠습니까? 그분을 대적하여 단 한 마디만 해도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그 생명이, 만일 여러분이 영생을 얻도록 정해졌다면, 그것을 보았을 때 그 생명이 터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의 그 여인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이 거기 없다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살아나게 할 것이 거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듯이, “순무에서는 피를 짜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피가 없으니까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이 가진 그 작은 믿음마저 마비시킵니다. 롯은 화려함을 볼 수 있었지만, 그 화려함을 멸할 불을 볼 만큼 믿음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하고 교회의 다른 여자들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화장을 해서 더 예쁜 여자가 될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를 자르고 다른 사람이나 영화배우처럼 행동하여 더 젊어 보이고 더 예쁜 여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믿음이 마비되어, 그렇게 하는 여자는 명예롭지 못한 여자라고 성경이 말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자입니다. 여자들이 입고 다니는 바지나 반바지 같은 것 말입니다. 사람들의 감각이 너무 무뎌져서 그것이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교회에 갈 정도로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믿음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그런 일을 합니다.
롯은 그렇게 했고, 그것이 그와 거기에 있던 그의 사람들을 마비시켰습니다.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삼촌 아브라함에게는 입증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화려함을 보지 않았고, 그것과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힘들게 살아야 하고 사라와 둘이 떨어져 살아야 하더라도 그랬습니다.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화려함이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사라는 그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웠으며 모든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도 남편 곁에 머물며 순종했고, 심지어 남편을 자기 주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은 저 멀리 신약에서도 그 여자를 가리키며 “믿음에 순종하는 한 너희는 그녀의 딸들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남편을 자기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저 밖에 있는 그들의 성전, 아니, 작은 천막을 찾아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살 집도 없었습니다. 메마른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것이 보이십니까?
이제 모세는 큰 믿음으로 현 세상의 눈앞에 있는 것들에게 “아니요”라고 말하고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기를 택했습니다. 왜입니까?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는 약속을 보았고, 마지막 때를 보았으며, 저 너머 내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풀어 놓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능성, 곧 자기가 파라오이며 파라오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조금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내일을 보았습니다. 아,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현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현 세상을 바라보면 그것을 따라 선택하게 됩니다. 거기서 눈을 가리고, 저 멀리 내일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그는 믿음으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택하고 파라오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온 왕국이... 이집트는 온 세상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는 세상의 왕이었고, 이제 왕좌를 물려받을 준비가 된 사십 세의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날마다 그를 둘러싸고 있었을 여자들을 보십시오. 후궁들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 화려함을 보십시오. 앉아서 포도주를 마시며 앞에서 여자들이 춤추고 부채질하는 스트립쇼를 구경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자들, 보석과 보물, 밖에 있는 군대가 있습니다. 그가 할 일은 앉아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몇 번 수비대를 어디로 보내라. 그 나라를 차지하라. 내가 그 나라를 갖고 싶구나”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만 하면 되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고, 여자들은 부채질합니다. 입을 벌리면 그 시대의 곱고 아름다운 스트립쇼 여자들이 입에 포도주를 부어 주고, 팔로 그를 감싸 안은 채 음식을 먹여 줍니다.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화려함이 바로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거기서 눈을 돌렸습니다. 그것을 태울 불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길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그 사실을 알고, 멸시받고 버림받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치욕을 받는 것을 택하고 자신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 파라오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를 감독이나 집사나 대감독이나 교황으로 세워 준다 해도, 나는 이것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세상의 것들에서 나 자신을 분리합니다.” 아멘, 아멘, 또 아멘! 그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화려함을 치워 버렸습니다. 다음 감독이 될 가능성, 다음 대감독이 될 가능성, 다음 선거에서 총감독이 되거나 그 밖에 무엇이 될 가능성을 치워 버렸습니다. 그것을 보기를 거절했습니다. ‘내가 감독이 되어 들어가면 사람들이 나를 “성하”, “누구 박사님”, “누구 장로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얼마나들... 모임에 나온 모든 목사가 내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봐, 저 사람에게는 뭔가 있어. 정말이야.” 아! “쉿, 쉿, 조용히 해. 감독님 오신다.” 그가 하는 말이 곧 법이다. “아무개 오신다.”’ 사람들은 교황을 만나러, 발과 반지 등에 입을 맞추려고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옵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얼마나 큰 가능성입니까.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감독이나 총감독 같은 자리, 조직 안의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가능성입니까. 바라보며... 아, 하지만 믿음의 눈은 그 너머를 봅니다. 저 끝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신 그곳을 봅니다. 믿음, 그 독수리 같은 눈은 여러분을 그 위로 들어 올립니다. 그러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보고, 아브라함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택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던 파라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광신자들로 보였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신들, 자신이 감독이고 우두머리 총감독이라고 생각했으니, 그 신들이야말로 그 일을 하는 신들이며 이쪽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듯이 그들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정확히 똑같았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들을 약속의 땅에 있는 복 받은 백성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을 그 약속에 이르게 하려면 힘겨운 싸움이 필요할 수도 있었지만, 모세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택했습니다. 이 대목을 얼마나 더 길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만,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십시오. 그 사람들을 돌아서게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살러 가야 한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이미 너무도 지적인 판단에 사로잡혀 있어서 네가 움직일 수가 없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들 앞에서 초자연적인 것이 나타나야 한다.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조직들이 너를 거부할 것이며,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참으로 힘겹다. 그래도 선택하라.” “저는 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믿음이 그렇게 했습니다. 믿음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보았습니다. 그들을 그 약속에 이르게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함께 가기를 택했습니다. 그들이 자기에게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자기를 거부하든, 그는 갔습니다. 그들과 함께 나가려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뜻을 읽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래도 그들과 함께 가십시오. 저도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싸움이 될 수도 있고 겪어야 할 일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십시오.
그의 믿음은 화려함이 아니라 말씀을 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택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렇게 했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가장 초라한 것을 바라볼 때... 기억하십시오. 여기에는 세상의 화려함이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 세상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 있었습니까? 진흙 구덩이에서 진흙을 바르는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믿음이 하나님의 가장 초라한 것을 바라보면, 세상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보다 더 크고 더 값진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믿음이 그것을 볼 수 있을 때 그렇습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이 말씀이 나타난 것을 볼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모든 화려함과 대감독의 직위와 그 밖에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큽니다. 믿음이 그렇게 합니다. 가장 초라하고 멸시받고 버림받는 것이든 무엇이든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처지에 있어도, 믿음은 그것을 세상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보다 백만 마일 더 높게 여깁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멸시받는 소수와 함께 그 길을 가리...”라는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믿음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 보기 때문입니다. 아, 이 말이 깊이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현재를 보지 않습니다. 여기 이것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믿음은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 움직입니다. 믿음은 먼 곳을 보는 시야입니다. 조준을 아래로 내리지 않습니다. 목표를 계속 겨눕니다. 아멘! 사격을 잘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멀리 보는 것입니다. 망원경이며 쌍안경입니다. 여기 주위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몇 시인지 보려고 쌍안경을 쓰지는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데 쓰지 않습니다. 저 멀리를 보려고 쌍안경을 씁니다. 믿음도 그렇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쌍안경, 그 둘, 양쪽인 신약과 구약을 들어 그분이 하신 모든 약속을 봅니다. 믿음은 저 멀리서 그것을 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상황이 무엇이라고 하든 믿음은 그것을 택합니다. 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조준을 아래로 내려 이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를 봅니다. 조준선의 십자 중심을 말씀에 정확히 맞춥니다. 믿음은 그렇게 합니다. 사람 안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파라오가 위대하다고 부른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증하다고 부르셨습니다. 파라오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야, 보아라. 여기... 너는 다음 파라오다. 내가 이곳을 떠날 때 이 왕홀을 네게 넘겨주마. 이 왕홀을 넘겨주마. 네 것이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모세야, 너는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감독이 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될 것이다. 우리를 떠나지 말고 여기 있어라.” 그런데 보십시오. 그는 그것을 위대하다고 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자 여러분,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위대하다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것이라고 부르십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가증한 일이라고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하는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마귀를 위해 여자의 육체를 내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러니 그러지 마십시오. 세상의 것들을 따라 살며 이런 것에 달라붙고 매달리는 남자 여러분, 아내들이 그런 일을 그만두게 할 만한 배짱도 없는 남자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제게는 소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잡아 줍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아이를 돌보지도 않고, 바로잡아 주지도 않고, 매를 들어 말을 듣게 하지도 않는 어머니라면 그 아이에게 그다지 좋은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모세는 자신의 시야로 이것을 보았고, 파라오는 “이것은 위대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가증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택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믿음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보기를 원하시는 것을 봅니다. 아시겠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봅니다. 이성과 감각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을 봅니다. 보십시오. 이성은... “그저 사람의 상식일 뿐입니다. 이치에 맞는 것은 이것이지요... 글쎄요, 이것도 똑같이 좋지 않습니까?”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렇게 말씀에 반하는 감각을 사용할 때, 그것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이론들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치를 따지는 감각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을 봅니다. 큰 교파들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아,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감리교인입니다.” “루터교인입니다.” “오순절교인입니다.” 그 밖에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입니다, 저것입니다.” 그것은 감각입니다. “저는 제일교회에 다닙니다.” “아,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저는 이것입니다, 저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감각입니다. 하나의 교파, 무언가 큰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교인은 세상의 어느 교회보다도 많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참된 교회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거기에는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태어나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친히 일하시며 자신을 알리십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그분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교회에 가십니다. 교회에 사십니다.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살아 있는 존재 안에 사신다면, 여러분의 행동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이 여기 말씀, 그분의 설계도에 “하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가서 그것을 한다면, 그분이 그렇게 행동하게 하셨을 리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잘못입니다. 말씀을 부인한다면, 생명이 여러분 안에 아예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모세를 순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보십시오. 모세는... 여기 젊은 파라오가 있고, 여기 젊은 모세가 있습니다. 둘 다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이 받는 치욕을 보고, 그것을 이집트의 모든 것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그는 믿음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말씀 안에서 그의 믿음이 말하는 것을 따랐고, 그것은 그를 순종의 길로, 마침내 영광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감각과 화려함은 파라오를 죽음으로, 그의 나라인 이집트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집트는 그 뒤로 다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을 보면 죽습니다. 저것을 보면 삽니다. 이제 선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 앞에 두신 것도 똑같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이 파라오를 죽음과 그의 도시의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이 있었기에 파라오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가 무엇을 말하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위협에 개의치 않았듯이, 모세도 파라오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집트를 구출할, 아니,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파라오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제 말뜻을 아시겠지요. 믿음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것을 압니다. 제가 늘 말하듯이 믿음에는 커다란 근육이 있고 가슴에는 털이 나 있습니다. 믿음이 “조용히 하라!” 하면 모두 조용해집니다. 그것뿐입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안다!” 다른 사람들은 “글쎄, 저 사람이 아는지도 모르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일어서서 근육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믿음이 그렇게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소명을 입증하신 뒤로, 모세는 파라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그 일을 위해 부름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저 위에서 하나님께서 “그렇다”라고 말씀하시고, 내려오셔서 파라오와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모세가 그 일을 하도록 보내졌다는 것을 보여 주신 뒤로, 모세는 파라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모세를 상대하며 꾀를 썼습니다. 보십시오. 재앙으로 온통 시달린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너와 협약을 맺겠다. 사흘 동안 경배만 좀 드리러 가거라. 여기까지만 가고 더 멀리는 가지 마라.”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렇게 하라고 일러 준 것은 파라오의 감각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가고 더 멀리는 가지 마라.”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 가입만 하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모세의 믿음은 ‘여기까지만’ 하는 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갑니다. 끝까지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여기 나와서 교파 하나를 만들고 멈추지 않습니다. 끝까지 나아갑니다.” 아멘. “저는 약속의 땅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강단에 선 파라오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직의 우두머리들 말입니다. “이것만 하고 저것만 하면, 그것으로 다 됩니다... 글쎄요, 아시겠습니까, 여기까지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모세는 말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파라오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런 종교를 가지려거든,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주마. 너와 장로들만 가서 경배하라. 아시겠습니까? 너와 장로들만 가서 경배하라. 너희끼리는 그런 종교를 가져도 좋지만, 백성 가운데 퍼뜨리지는 마라.”
모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발굽 하나도 남겨 두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갑니다. 모두 갑니다! 그들이 가지 않으면 저도 가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한, 당신은 저를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그들도 갈 수 없다면 저도 가지 않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아, 얼마나 용감한 종입니까! 아멘. “저는 그들을 함께 데려가고 싶습니다. 저만 얻었다고 앉아서 ‘이제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백성도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갈 것입니다.” 아멘.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양이나 다른 어떤 것도 남겨 두지 않을 것입니다. 발굽 하나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아멘.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갑니다. 가정주부이든 어린 소녀이든, 나이 든 여자이든 젊은 남자이든, 노인이든 누구이든, 우리는 어쨌든 갑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모두 갈 것이며, 그 밖의 어떤 것에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두 종교가 정말 논쟁을 벌이고 있었지요? 아! 아닙니다. 모세는 이 ‘여기까지만’ 하는 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이 대목만으로도 하루 종일 말할 수 있겠지만, 조금 뒤에는 본문으로 들어가 설교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마침내 파라오가 “나가라!”라고 말한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음성을 통해 그에게 계속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모든 것을 치셨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멈추게 하셨습니다... 한낮에 해가 지게 하셨고, 그 밖의 모든 일도 하셨습니다. 낮을 캄캄하게 하셨고, 개구리와 벼룩과 이와 그 밖의 모든 것을 보내셨습니다. 불과 연기와 죽음을 그의 가족들에게, 그 밖의 모든 것에 보내셨습니다. 모든 일을 행하시자 마침내 파라오는 “나가라! 네게 있는 것을 다 가지고 가라”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그토록 온전히 섬겨서 마귀도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할 수 있으니 참 기쁩니다. 하나님께 그토록 온전히 순종하여 마귀가 “아, 이제 그만 가라. 더는 듣고 싶지 않다”라고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말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를 뒷받침해 주지 않으셨다면 그는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로 거기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가 한 말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파라오는 감독이었으므로 자기 입장을 지켜야 했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래서 그 자리에 버텨야 했습니다. 이미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아니다”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미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말했습니다. “아, 그냥 나가라. 더는 네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여기서 나가라. 네게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가라.” 아!
이제 여기 모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행하시고 그토록 많은 표적과 이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십오 분 동안은 이 대목을 여기에 놓고 살펴보겠습니다. 아주 주의 깊게 보십시오. 모세는 이런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와 함께한다. 네가 ‘파리들이 생겨나라’라고 하자 파리들이 생겨났다.” 그것은 창조입니다. 하나님 말고 누가 땅 위에 어둠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네가 ‘어둠이 있으라’라고 하자 어둠이 있었다. 네가 ‘개구리들이 있으라’라고 하자 개구리들이 파라오의 집과 침대에까지 들어갔다. 그것들을 쌓으니 큰 무더기가 되었다...” 창조주이십니다... “모세야, 나는 너를 통해 말했고, 네 입술을 통해 내 말씀이 창조하게 했다. 실제로 너를 파라오 앞에서 신이 되게 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행했는데, 여기 그들이 어떤 곳에 이르렀다.” 작은 시험이 닥치자 모세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기에는 큰 교훈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보십시오. 모세는, 여기 읽어 보면, 백성이 두려워하기 시작한 바로 그때... 맡은 일을 수행하는 길에서 파라오가 뒤쫓아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행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을 여정에 나서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모으셨습니다. 그들은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모든 교파에서 나와 한데 모였습니다. 모세는 뒤로 가서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이렇게 하라. 좋다, 나아가라. 모세야, 내가 이 일을 하도록 너를 부른 것을 알지 않느냐.” “예, 주님.” “좋다. 가서 이 말을 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파리들이 왔습니다. “이것이 생기도록 말하라.” 그것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하라.”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였습니다! 이제 그가 곤경에 처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여정에 나서게 했다. 모두 불러냈다. 교회가 함께 모였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여정에 나서게 했다. 이제 모세야, 그들을 저편으로 데려가라. 내가 네게 말하였다. 나는 잠깐 앉아서 쉬겠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아, 주님, 여기 오는 것을 보십시오! 파라오가 옵니다! 백성이 모두...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아닙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인간의 본성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늘 하나님께서 뒤에서 밀어 주셔야 무언가를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본 모든 것을 보고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뒤에서 밀어 주셔야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모세는 그저 느긋하게 있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 여쭤보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예, 예.” 여러분은 말합니다. “네,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그를 세우셨고, 함께하신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자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여기서 이미 예언했습니다. “오늘 너희가 보는 이 이집트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님,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예언은 꽤 훌륭하게 해 놓고서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었다면,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한 말은 이미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아, 이것이 인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이 제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입증하셨습니다. “네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갑자기 닥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어디 계십니까? 제 말이 들리십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분은 이미 그를 세우시고 입증하시고 증명하셨으며, 그를 통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 하고 있습니다. 아, 참으로 잘 드러납니다. 사람은 자기는 쉬고 하나님께서 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도록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셨고, 자신의 주장이 참되다는 것을 분명히 입증하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이 구출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과 이적을 통해 그들을 모두 한 무리로 모으셨습니다. 제 말을 따라오십니까? 그들을 모두 한 무리로 모으시고 모세의 주장을 입증하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표적이 있었고 증거가 있었습니다. 여기 그가 말한 모든 것이... 그리고 그는 선지자로 그들 가운데 왔습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창조하여 파리들이 생겨나고,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여기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기다리려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신의 소명이 입증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임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자신이 맡도록 정해진 그 일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였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기다렸습니까?
그는 이렇게 하려 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이 백성을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파라오가 오고 있습니다.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그들이 무엇을 할지 이미 예고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정확히 말해 놓았습니다. 자신이 자란 바로 그 나라의 종말을 예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이미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너희를 조롱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예고했는데,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합니다. 거기 인간의 본성이 보이십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고, 그다음에 하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때, 바로 그때 요셉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모세는 당당히 서서 그 나라의 종말을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려는 바로 그 자리에 와서,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아닙니까? 바로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이미...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한 모든 말을 이루어 주셨고, 그는 그 일을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말해야 했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생기도록 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주신 믿음의 은사를 모세가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아니, 백성이 자신이 모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뒤에서 기다리며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그저 아기입니다.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예, 제가 가서 이것을 하겠습니다. 제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습니다.” “형제님, 그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모세 형제님.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예, 좋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루어졌습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또 어떤 상황이 닥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정에 나서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미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여정에 나서게 하셨고, 그들은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분명히 입증하신 그 은사 안에 넣어 주신 믿음을 모세가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그리고 말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일을 통해, 그것이 자신임을 모세와 백성에게 분명히 증명하셨습니다. 분명히 확인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 일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미 밝혀졌으므로 더는 그 일을 놓고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그 일들을 하셨습니다. 이미 파리와 벼룩으로 입증하셨습니다. 그가 말하여 피조물이 생겨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상황이 닥치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분께 묻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이 말이 우리 안에 아주 깊이 들어가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신이 이만큼 작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모세를 생각하며 그의 잘못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의 잘못을 보십시오.
그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성경이 그 일이 일어날 때와 날이 바로 그때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불기둥 가운데 자신을 만나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백성 앞에 내려가 이런 기적들을 행했고, 그가 한 모든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말하여 존재하지 않던 것들을 창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여, 그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으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가던 백성에게 이런 상황이 닥치자, 서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원하는 것입니다. 로이 슬로터 형제님이, 아마 저 문밖에 앉아 계신 것 같은데, 전에 누군가가 제게 한 일 때문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제가 이렇게 해 주었는데, 이제 저렇게...”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늘 형제님 어깨에 기대게 해 주면 내일은 업고 가야 합니다.” 인간이 바로 그렇습니다. 오늘 어깨에 기대면 내일은 업고 가야 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그를 세우시고 입증해 주신 뒤에도, 그를 업고 가셔야 했습니다! 백성은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모세여, 말씀하십시오. 거기서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같은 사람입니다.” 아멘. 아시겠습니까? “행하십시오!” 아멘. 모세는 그것을 알았어야 했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여기셨을 것입니다. 이제 지긋지긋하셨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누구인지 이미 입증하지 않았느냐? 그 일을 하도록 내가 너를 보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가서 이 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네 입과 함께하며 너를 통해 말하겠다고, 내가 이 일을 하여 네가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이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정확히 그대로 행하여 네 주위의 모든 원수를 멸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너는 내가 하라고 한 일을 수행하는 길에서 여기 홍해 앞에 서서, 여전히 나를 향해 외치며 부르짖고 있다. 나를 믿지 못하느냐? 이 일을 하도록 내가 너를 보낸 것이 보이지 않느냐?” 아, 그것이 인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니 이제 꽤나 진저리가 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도 안다. 이 백성을 저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려면... 바로 그렇다... 너는 여기 구석에 갇혀 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니 필요한 것이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게 부르짖느냐? 무엇 때문에 나를 바라보고 있느냐? 무엇 때문에 나를 부르느냐? 내가 백성에게 입증하지 않았느냐? 네게 입증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것을 명하지 않았느냐? 성경적이지 않으냐? 이 백성을 그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를 불러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너를 불러, 이 일을 하도록 내가 너를 보냈고 이 일을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내려가 네 입술과 함께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무엇을 말하든 내가 입증하고 증명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작은 일만 생겨도 왜 아기처럼 구느냐?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백성에게 말하라!” 아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부르짖지 말고 말하라!” 아멘. 아, 저는 이 말씀이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내게 부르짖느냐? 그저 백성에게 말하고 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라.” 그것이 무엇이든, 질병이든 다른 무엇이든,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일이든 무엇이든 말하십시오! “내가 입증하였다. 백성에게 말하라.”
얼마나 큰 교훈입니까! 얼마나 큰 교훈입니까! 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여정의 단계에서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세 번째 당김에 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바로 여기, 주님의 오심을 앞둔 문 앞에 있습니다. 모세는 그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도 여전히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는 부르짖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를 보냈다.” 아, 하나님! 오늘 아침 이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불기둥과 표적과 이적으로 하나님께서 완전히 입증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소돔의 날들과 똑같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세상이 그런 상태에 있고, 저기 나라가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여자들이 그런 상태에 있고, 남자들이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교회가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 있습니다. 자연의 요소들과 표적들, 하늘의 비행접시와 그 밖의 온갖 신비한 것들, 바다의 포효와 해일, 사람들의 심장이 쇠약해지는 일, 두려움과 시대의 혼란, 나라들 사이의 고통, 교회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습니다.
또 죄의 사람이 일어나 모든 것 위에 자기를 높입니다.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내세웁니다. 아!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에 왔습니다! 교회는 조직화되었고, 모두 창녀들이 그 음녀에게 모이듯 함께 모였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히 음행의 길에 있습니다. 음행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자들에게 머리를 잘라도 된다고,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이것도 저것도 해도 된다고 하고, 설교자들도 이런 일을 하며 사회복음과 그런 것들을 전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과 간음하는 것임을 모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파에 속하지 않고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은 자신의 참된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기둥, 지금까지 삼십 년 동안 우리와 함께하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예고하고 말씀하신 모든 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백성에게 말하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아멘. 우리에게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영광입니다. 그곳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백성에게 말하라. 내가 입증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사진까지 찍히고, 그 밖에도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 않았느냐? 불과 몇 주 전 잡지에 그 기사가 실리지 않았느냐? 네가 삼 개월 전에 이 강단에서 저 밖에서 일어날 일을 말했는데, 그대로 일어나 입증되지 않았느냐? 과학까지도 그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내가 이 모든 일을 했는데도 너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 백성에게 말하고 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라.” 아멘. 나단이 다윗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선지자 나단이 어느 날 앉아서 기름부음 받은 왕 다윗을 보고 말했습니다.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하십니다.” 다윗에게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해 그 땅을 차지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루가 짧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사명을 받은 그 일을 해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했던 것같이 너와 함께하겠다.” 아멘. “그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 네가 건너가 아말렉 족속과 그 밖의 모든 족속, 블레셋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러 족속을 쓸어 내기를 원한다. 그들을 쓸어 내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네 평생에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한다. 그곳으로 들어가라.” 여호수아는 칼을 빼 들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었습니까? 적을 패주시켰습니다. 적들이 여기 조금, 저기 조금씩 흩어져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모두 한데 모여 진을 치고 큰 병력으로 그를 공격해 올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빛이 더 필요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었으므로 “해야, 멈추어 서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무것에도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명령했습니다. “해야, 멈추어 서라. 내게 이것이 필요하다. 나는 주님의 종이며 이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다. 내게 필요한 것이 있다. 멈추어 서서 빛을 비추지 마라. 달아, 너도 있는 자리에 머물러라.” 그리하여 싸움을 끝내고 적을 모두 무찌를 때까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해가 그에게 순종했습니다.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해에게 말했습니다. “멈추어 서라. 해야, 거기 머물러라. 달아, 너도 있는 자리에 있어라.” 그는 “주님, 이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햇빛을 조금 더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햇빛이 필요했으므로 명령했고, 해가 그에게 순종했습니다. 아! 해에게 멈추어 서라고 명령했습니다. 삼손은 기름부음을 받고 일으켜졌으며, 하나님의 정하심을 입고 권능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블레셋 나라를 멸하도록 정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정해져 이 땅에 태어났고, 블레셋을 멸하도록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칼도 창도 없이 들에 있을 때 적들이 그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갑옷을 입은 블레셋 사람 천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습니다. 그가 엎드려 “아, 주님, 저는 환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까?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찾아보니 낡은 노새 턱뼈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죽였습니다. 아멘!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은사를 사용했습니다. 자신이 그 일을 위해 보내졌음을 알았습니다. 그 일을 위해 태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은사를 받아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알았고,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죽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셨고, 그가 전에 행한 다른 일들을 통해 그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는 블레셋을 멸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입증된 하나님의 종이었고, 그 일을 해냈습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해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 노새 뼈를 집어 들고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
아니, 그런 뼈로 두께가 일 인치 반이나 되는 놋 투구를 쓴 머리 하나만 내리쳐도 뼈가 백만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천 명을 쓰러뜨려 죽이고도 여전히 그것을 손에 든 채 서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말했습니다. 그들을 패주시켰습니다. 아!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십시오. “주님, 제가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를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저를 보내신 줄 압니다. 예, 주님, 이 블레셋 나라를 멸하도록 저를 보내신 줄 압니다. 그런데 여기 천 명이 저를 에워싸고 있고, 제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 그 무엇도 그를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무엇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그저 손에 있는 것을 들고 그들을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수들이 그를 가두고 말했습니다. “이제 성벽 안에 가두었으니 붙잡았다. 저 여자와 함께 여기 안에 있다. 이제 사방의 문을 모두 닫았으니 나갈 수 없다. 붙잡았다.” 삼손은 “아, 주님, 그들이 저를 이 교파 안에 꽁꽁 가두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그들과 한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밖으로 걸어 나가 성문을 뽑아내고 어깨에 멘 채 걸어갔습니다. 아멘! 그는 그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를 가둘 수 없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성문을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그 일을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맡은 일을 수행하는 길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바로 맡은 일을 수행하는 길에 있었습니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말하고 계속 가라.” 아멘. “부르짖지 말고 말하라.” 이제 징징거리며 훌쩍이는 것은 그만두었습니다. 이제 말할 만큼 자랐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은 기름부음 받은 자신의 권능의 은사가 앞을 가로막는 어떤 블레셋 사람도 멸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멘.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직 입에 젖병을 문 어린 아기들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일으키셨으며, 평생에 무엇도 자기 앞에 서지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무엇도 그를 멸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처럼 그 목적을 위해 일으켜졌으니,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말렉 족속도, 다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그 길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약속했고, 성령께서 거기서 입증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 길을 가고 있었으므로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바로 맡은 일을 수행하는 길에 있었습니다. 무엇도 그를 가로막을 수 없었으므로, 그저 성문을 뽑아 어깨에 메었습니다. 무게가 사오 톤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메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그 위에 앉았습니다. 무엇도 그의 길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기름부음 받은 은사가 있었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그 일을 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였습니다. “그들을 없애 버려라!” 할렐루야! “그들을 없애 버려라! 내가 그 목적을 위해 너를 일으켰다.” 아멘.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 홍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여기 있는 산을 네게 표적으로 주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그 산으로 돌아올 것이고, 이 백성을 그 땅으로 데려갈 것이다. 내가 그 목적을 위해 너를 부르지 않았느냐? 길을 가로막는 다른 것들을 무엇 때문에 걱정하느냐? 말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라.” 아멘, 또 아멘. “내가 이 목적을 위해 너를 불렀다.”
다윗은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고, 잘 맞히는 사람으로 입증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잘 맞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는 “아, 하나님,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해야... 전에 주님께서 하신 일을 압니다. 곰을 죽이게 하셨고 사자도 죽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골리앗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습니까? “너도 그들처럼 될 것이다.” 그는 말하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기도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아멘. 그는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 물매는 적절한 도구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자기에게 임한 기름부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돌을 곧장 투구 한가운데, 유일하게 맞힐 수 있는 그곳으로 이끄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 맞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만드셨음을 알았습니다. 아멘. 사자를 죽였다는 것을 알았고, 곰을 죽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땅에 있는 아버지의 소유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소유가 있었습니다. 아멘. 그는 엎드려 “주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했습니다. “너도 사자와 곰처럼 될 것이다. 내가 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말하고 앞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맞섰습니다. 아! 크기는 상관없었습니다. 그는 작고 혈색이 붉은 청년이었습니다. 아시겠지요. 몸집이 그리 크지 않았고, 외모도 그리 잘생기지 않았습니다. 작고 좀 오그라든 듯한 청년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혈색이 붉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의 크기나,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일을 할 능력이 어떻든 상관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감독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보아라. 저 사람은 신학자다. 아시겠습니까? 전사다. 타고난 전사이며 어릴 때부터 싸워 온 사람이다. 너는 그의 상대가 못 된다.” 형들도 말했습니다. “아, 이 못된 녀석. 그런 일을 하겠다고 여기 나왔느냐? 집으로 돌아가라.” 그런 말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그 사자에게서 구하신 하나님, 그 곰의 발에서 구하신 하나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에게서는 더욱더 구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갑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를 맞서러 간다.” 아멘.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그런 기도를 마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그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말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말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교파에 속한 형제들, 거기 서 있던 조롱꾼들에 관해서는 말입니다. 아시겠지요. 아, 그렇습니다. 거기 서서 조롱하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의 형들 말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아, 너는 그저 못된 녀석이야.” 그래도 다윗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너는 남들과 다르고 싶은 거야. 그저 뽐내고 싶은 거야.” 뽐내려는 것이었다면 정말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적인 면만 보았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의 기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멘. 그에게는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저 블레셋 사람도 곰과 사자처럼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고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곰을 죽였고 사자를 죽였습니다. 사자를 쓰러뜨렸습니다. 무엇으로요? 물매로 했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어, 그 사자를 칼로 죽였습니다. 골리앗에게도 똑같이 했습니다. 돌로 쓰러뜨린 뒤 골리앗의 칼을 뽑아, 바로 그 앞에서 골리앗 자신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무엇이라고 예고했습니까? “너도 그들처럼 될 것이다.” 왜입니까? 그렇게 되리라고 말한 뒤,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 형제님! 그날 그는 말하고 상황을 장악했습니다.
사람이 말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이제 몇 분 안에 마치겠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오. 여기 적어 둔 것이 더 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문에 누워 있던 사람, 치유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엎드려 밤새 기도하거나 종일 기도하거나 아주 길게 기도하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이제 이 불쌍한 다리 못 쓰는 사람을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물어보니 자기도 믿음이 있다고, 제가 말하는 것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이 사람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 생각에는, 주님... 이 사람을 위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주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사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며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고 마귀들을 내쫓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그분은 “베드로야, 가서 그 일을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했지만 그 사람은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발로 딛고 서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발목뼈에 힘이 생길 때까지 그를 붙들고 있었고, 그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왜입니까? 밤새 기도회를 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직접 들었으므로, 자신이 이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말하고 그를 일으켰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기름부음 받은 사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그림자에 누웠던 사람들은 “오, 베드로 사도님, 오셔서 우리를 위해 부르짖어 주시고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드려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입증된 사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그림자에 눕게만 해 주십시오.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압니다. 믿습니다.” 그들 안의 생명이... 사도는 모든 사람에게 갈 수 없었지만, 그들 자신도 그 일의 일부였습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저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갑니다. 우리 모두 할 일이 있습니다. 모두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도가 거기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병든 사람을 고치며 그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가 자기들에게까지 올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님, 오셔서 기도를 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와서 말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분의 그림자에 눕기만 할 수 있다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시고, 똑같은 일을 행하시는 것을 우리가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고, 그 사도의 그림자에 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 안에 계셨습니다. 그 그림자가 자기들을 덮기만 하면 치유될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 모두가 치유되었다고 말합니다. 밤샘 기도회는 없었습니다. “주님, 제가 이 사도의 그림자에 가서 누우면...”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빛이 그들에게 비쳤습니다. 마음이 충만해졌고 믿음이 풀려났습니다. 아멘. 그들은 믿었습니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손수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간질이 있어서 불 속에 쓰러지곤 하던, 마귀 들린 소년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그분은 부르짖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이제 이런저런 일을 하도록 저를 이곳에 보내셨는데, 제가 이 소년을 고쳐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아, 그에게서 나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시자 소년이 나았습니다. 이천 마귀가 들어 있던 군대라는 사람을 만나셨을 때, 부르짖은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마귀들이었습니다. “우리를 내쫓으시려거든, (아!) 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제가 이것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서 나와라”라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도망갔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아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그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어디서, 언제, 어떻게가 아닙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아멘. 그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자신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임마누엘이심을 아셨습니다. 부활이심을 아셨습니다. 생명이심을 아셨습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몸으로 자신 안에 거함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거기 있는 그 작은 사람들을 보셨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을, 하라고 하신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내가 여기 무릎을 꿇을 테니 너희도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그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분이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아! 그분이 누구인지 확인되었습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죽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맞닿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시자 눈먼 사람이 보았고, 다리 못 쓰는 사람이 걸었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었습니다. 마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왔고, 죽은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왜입니까? 그분은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이셨습니다. 바로 그 메시아이셨습니다. 자신이 그러하심을 아셨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아셨습니다. 무엇을 하도록 보내졌는지 아셨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아버지께서 입증해 주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그 신자를 만나시면 그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귀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말하십시오. 부르짖지 말고 말하십시오! 아멘. 그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권리를 아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릅니다. 그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모세는 잊었습니다. 삼손은 이해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해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이해했습니다. 모세는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의를 거기에 돌리셔야 했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그 일을 하도록 너를 보냈다. 말하고 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라. 네가 이 산으로 돌아오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 백성을 데리고 계속 이끌어 가라. 그저 말하라. 무엇이 길을 가로막든 상관없다. 그것을 길에서 치워라. 그 일을 할 권한을 네게 주었다. 내가 말해서, 아니, 네가 말해서 파리와 벼룩과 그런 피조물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게 외치느냐? 왜 내게 와서 이런 것들을 외치느냐? 그냥 말하고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라. 그것뿐이다.” 아! 저는 이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요.
여기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이든, 그저 말씀을 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자신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입증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을 보십시오.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 얼마나 담대하고 위엄 있게 서셨습니까. 아멘.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고 그분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겠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해 보겠다’가 아닙니다. “내가 하겠다!”입니다. 왜입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몸을 일으키시리라고 말한 그 성경이 우리에게도 권한과 권능을 주었습니다. 아멘!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왜 내게 부르짖느냐? 말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아, 얼마나 담대하십니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아, 이제 기억하십시오. 마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분도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면...” ‘이 산에게 기도하면’이 아닙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져라’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으리라.” 그저 주제넘게 제멋대로 말한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안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여러분이 그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말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너희가...”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아! 아!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양해해 주십시오. 제 안에서 막 솟아오르니 이 말을 해야겠습니다. 그날 저 숲속에서 “너에게는 사냥감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우리 앞에 다람쥐 세 마리를 창조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무엇입니까? 그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기, 저기, 또 저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거기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찰리, 로드니, 저기 켄터키에서 그 일을 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넬리, 마지, 그리고 여러분 모두,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 옛날 모세에게 “왜 내게 부르짖느냐? 말을 하라”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분이십니다. 그분이십니다. 아! 약 일 년 전에 우리가 저곳으로 갈 것이라는 환상을 주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봉인과, 그것이 큰 천둥소리로 시작될 것이며 피라미드 모양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주셨습니다. 그 일이 룩, 아니, 라이프 잡지에 실려 있습니다. 저 안의 벽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날 밤 제가 길을 가다가 커다란 맘바 뱀이 제 형제를 덮치려는 것을 보았을 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너에게는 그것이나 다른 어떤 것이라도 결박할 권능이 주어졌다.” 저 뒤에 앉아 있는, 머리가 희어진 제 작은 아내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날 아침 방에서 저를 깨우시고 구석에 서서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로 가든, 무슨 말을 하든 두려워하지 마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네가 어디로 가든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약 삼 개월 전 저 위 사비노 협곡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며 기도할 때였습니다. 제가 거기 서 있는데 칼 한 자루가 제 손으로 떨어졌고, “이것은 왕의 칼이다”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분이셨습니다. 제게 “내가 모세와 함께했던 것같이 너를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삼십 년 전 저 강가에서, 제가 어린 소년으로, 어린 설교자로 그 강에 서 있을 때, 삼십 년 전 그곳에서 제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제가 거기 서 있을 때 그 빛, 동일한 불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머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에 앞서 가도록 내가 침례자 요한을 보낸 것같이, 네 메시지는 두 번째 오심에 앞서 갈 것이다.” 온 세상에 전해질 것이었습니다. 저의 목사님마저 비웃고 조롱했는데,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확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환상에 관하여 예언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언하거나 환상을 보고 그것을 말한 뒤 그 일이 이루어지면,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내가 그와 함께한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아!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분이십니다. 그분이십니다. 그분이십니다.
내려오신 분은 그분이십니다... 제가 저 강가에 불기둥이 있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샘 휴스턴 콜리시엄에서 삼만 명 앞에 그 침례교 목사와 함께 있었을 때, 주님의 천사가 거기 서 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그곳에 계셨던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분이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어디서 일어날지 미리 알려 주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이것을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모든 일을 정확히 행하셨습니다. 아멘. 제가 왜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여정을 계속합시다. 걸어갑시다. 모든 의심과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주님의 길을 걸어갑시다. 집을 깨끗이 하십시오. 말끔히 닦아 내십시오. 주니어 잭슨의 환상에서 말했듯이, 거기에는 등불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니, 그의 꿈이었습니다. 혹시 여기 앉아 있다면 말입니다. 그가 지난번 밤에 제게 전해 준 꿈에서, 거기에는 등불들만 남았고 그 등불 둘레에는 금테가 둘려 있었습니다. 아!
콜린스 형제님, 그 물고기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흰 물고기였습니다. 형제님이 다루는 방법을 몰랐을 뿐입니다. 여기에 어긋나는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아무리 광신적으로 보이더라도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때로는 다른 모든 것이... 그대로 계속 나아가십시오. 성령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말씀하여 없던 것들을 존재하게 하실 수 있는 바로 그분, 모세의 날들에 살아 계셨던 바로 그분이 오늘도 동일하십니다. 이 마지막 날에 주신 부르심을 그분이 입증하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랬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분은 행하셨습니다... 저 아래 소돔이 있습니다. 저 밖에는 빌리 그레이엄과 오럴 로버츠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분이 양쪽에 약속하신 동일한 표적들을 따라 나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그분이십니다. 아, 주님, 제게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것이 제 기도입니다. 주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여기서 그쳐야겠습니다. 시간이 늦어집니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너와 함께함을 입증했는데 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너희의 병든 사람들을 고치지 않았느냐?”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내가 너희에게 알려 준 일들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너희 목사는 그 일을 할 수 없다.” 저 말입니다. 그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하는 이는 나 주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한 것은 나다. 그에게 이런 일을 알려 주는 것은 나다. 그가 아니다. 내 음성이다. 너희 가운데 사람들이 쓰러져 죽었을 때 일으키는 이는 나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이는 나다. 이런 일들을 미리 알려 주는 이는 나다. 구원하는 이는 나다. 약속을 준 이는 나다.” 하나님, 약 삼십삼 년 전에 제 손에 쥐여 주신 그 말씀의 칼을 잡고 세 번째 당김을 향해 전진할 용기를 제게 주시옵소서. 이것이 제 기도입니다.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시간이 늦어지고 있지만 말씀은 더욱 귀해지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그것을 거듭 볼 때마다,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언제나 저희를 만나 주십니다. 주님의 선하심에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저희를 지켜 주시고 복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주님, 이 손수건들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 이것을 믿는 사람들의 손수건입니다. 모든 마귀와 모든 질병이 그 사람들에게서 떠나가기를 원합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더러운 영,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 질병의 모든 영, 온갖 질병과 고통에게 명합니다. 저희는 사람의 그림자 아래 누워 있지 않습니다. 그것도 괜찮겠지만, 저희는 복음의 그림자, 입증된 복음의 그림자 아래 있습니다. 위대한 불기둥이 이 건물 안을 앞뒤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로 내려다보셨을 때 홍해가 길을 내주어 이스라엘이 건너갔던 바로 그 불기둥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께서 내려다보실 때에는, 그 위에 그분 자신의 아들의 피가 뿌려져 있습니다. 긍휼과 은혜가... 저희가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오늘은 말하기를, 아니, 부르짖기를 그치게 하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 저희를 부르셨음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바로 이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모든 질병은 이곳에서 떠나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오늘 자신의 삶을 새롭게 헌신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는 제 삶을 기도의 제단 위에서 헌신해 드립니다. 저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주님께서 저를 취하신 땅을 향해 고개를 숙입니다. 주 하나님, 저의 연약함과 불신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용기를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에게 용기를 주시옵소서. 제 마음은 모세와 같습니다. 저희 모두 나아가는 길에 있습니다. 한 사람도 남겨 두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 모두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을 주님의 것으로 주장합니다. 오늘 이 백성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도 그들과 함께 복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의 이름이 찬양받으실 것이며, 영광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오니, 주님, 이 영원한 믿음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저는 이 성경 위에서, 이 강단 위에서 제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신 모든 약속을 의지합니다. 그 약속들이 확증될 줄 압니다. 진리임을 압니다. 이 말씀들을 말할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 용기를 주시옵소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교회와 함께 저 자신을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 믿음 주를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 거룩하신 구주여! 이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모든 죄를 없애 주소서, 오, 오늘부터 내가 온전히 주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제 아주 조용히 일어서서 이 곡을 흥얼거리겠습니다. ...주를 바라봅니다, 어린양이신 주... 그분께 손을 듭시다. 오, 구주여... 이제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이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모든 의심을 없애 주소서, 오, 오늘부터 내가 온전히 주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제 손을 들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기도할 때 회중이 따라 한다.] 주 예수님, 이제 저 자신을 주님께 헌신합니다. 더 순전하게 섬기는 삶, 더 큰 믿음을 구하며 부르짖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의 삶에서 주님께 더 합당한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불신을 용서하시고,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을 저희에게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 자신을 주님께 드립니다.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삶의 어두운 미로를 걸으며, 슬픔이 나를 에워쌀 때, 주께서 나의 길잡이 되소서. 어둠을 낮으로 바꾸시고, 내 모든 두려움을 씻어 주소서, 내가 결코 곁길로 벗어나 주를 떠나지 않게 하소서.
이제 머리를 숙인 채로, 오늘 아침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십니까? 용기를 주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손을 들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저는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말 가운데는 말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이미 말했습니다. 그것은 저를 향한 책망이었습니다. 제 자신은 제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말하는 대신 늘 부르짖기만 한 잘못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 지금부터 더 헌신된 종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는 저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아 약속의 땅을 향해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그 길을 말할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놓치지 않도록 그 길을 분명히 보여 줄 용기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그분의 피 묻은 발자취를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헌신의 십자가를 지리라, 죽음이 나를 자유롭게 할 때까지. 그 후 본향에 가서 면류관 쓰리니, 나를 위한 면류관이 있네. 아버지, 이것을, 저희의 헌신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헌신된 삶을 사십시오.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십시오. 그저 온유함과 겸손으로, 영 안에서 걸으십시오. 그리스도인답게 걷고 말하고 옷 입고 행동하십시오.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십시오. 이제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은 말씀을 통해 말하고 은사들을 통해 말합니다. 한 은사가 임하면 다른 은사가 그것을 표현합니다. 또 다른 은사가 임하여 같은 것을 표현합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분명히 말씀과 일치하고 이때와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일로 그분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이제 머리를 숙인 채로, 자매님께서 이 곡의 반주를 해 주시면...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유혹들이 네 주위를 에워싸면, 그 거룩한 이름을 조용히 기도로 부르라. 그렇게 하십시오. 말씀을 말하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말하십시오. 이제 예배를 마치며 찬송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슬픔과 고통의 자녀여. 그 이름 네게 기쁨과 위로 주리니, 어디를 가든 그 이름을 지니고 가라. 귀한 이름... 이제 서로 악수하며 말합시다. “형제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땅의 소망이며 천국의 기쁨, 귀한 이름, 오, 얼마나 아름다운가! 땅의 소망이며 천국의 기쁨. 이제 머리를 숙이고 다음 절을 부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모든 올무를 막는 방패로. 유혹들이 네 주위를 에워싸면, 그 거룩한 이름을 기도로 부르라. 귀한 이름, 오, 얼마나 아름다운가! 땅의 소망이며 천국의 기쁨, 귀한 이름, 오, 얼마나 아름다운가! 땅의 소망이며 천국의 기쁨.
이제 머리와 함께 마음도 숙이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깨닫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 오늘 아침 그분께 헌신합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며, 우리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려고 힘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서로를 위해 주시리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방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비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며, 우리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것을 바탕으로 머리를 숙인 채로, 우리의 좋은 친구 리 베일 형제님께 회중을 위해 마침 기도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베일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