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다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께서 전에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듣고 이제 우리는 기대하며 서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북돋우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오늘 밤 간구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게 합니다. 주께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들이 요청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 특별히 죽음에 아주 가까이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혼에 아직 평안이 없다면 평안을 주시고, 그들의 몸에 치유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함께 모인 것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모인 곳이면 어디든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을 알고, 이 수요일 밤 기도회에 모였습니다. 주님, 오늘 밤 우리에게 주의 말씀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 마음을 특별한 감동으로 뜨겁게 하셔서, 앞에 놓인 그 위대한 때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훈련해야 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믿음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고 믿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니 주께 감사드립니다. 또 앞으로 있을 예배를 두고도 주께 감사드릴 줄 알게 되었으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옛날처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늘의 창들을 활짝 여시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들을 부어 주실 때가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주님, 이제 온 나라들 곳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오늘도 사방에서 많은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님, 그들의 간구를 이루어 주옵소서. 이 위대한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한 손이 온 세계에 걸쳐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주의 영과 주의 말씀으로 우리를 징계하셔서, 우리 자신을 훈련하여 순종하는 종,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게 하옵소서… 주님과 직접 접촉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만났다면, 어떤 사람들을 만났겠습니까? 그들의 얼굴은 믿음과 기쁨으로 얼마나 환히 빛났겠습니까?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 오가며 살 때, 그들의 삶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모든 사람이 읽는 편지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그렇게 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께 온전히 복종하여,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살아가시고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거리를 걸으며 세상 사람들과 어깨를 스칠 때, 우리는 그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한쪽으로 비켜서서, 이 땅에서 그들에게 속한 자리를 내어 주게 하옵소서.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절임을 알기에 뒷자리를 차지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는 장차 통치하게 될 왕국이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왕께서 곧 오셔서 자신의 통치 아래 있는 온 왕국을 넘겨받으실 것이며, 우리는 이 땅에서 그분과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리고 통치하며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 이것을 마음에 두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주의 크신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생각했다면, 그것을 고백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 밤 그 자매님이 자신과 남편이 시카고로 가는 길에 있다고 말씀한 것처럼, 주 하나님, 주께서 그들을 쓰실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어둠 속을 더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빛줄기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이 예배를 주께 맡기며, 우리를 바로잡아 주시는 주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이 위대한 시간을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별로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기 집에 있으면서, 정말… 급한 일로 어디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집에 앉아 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마음이 몹시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제 가족도 예상하지 못한 채 이렇게 들렀습니다. 집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왔습니다. “기도회에 다녀오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함께 올 준비를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올 줄 몰랐으니까요.
저 자매님의 간증을 들으니 기쁩니다. 그 형제님이… 사우스캐롤라이나인가, 노스캐롤라이나인가, 어디에서 그 빛에 관해 말씀하셨지요. 그린빌이었습니까? 아, 서던파인스군요. 리 베일 형제님이 바로 오늘 여기 계셨습니다. 오늘 여기서 침례식을 하면서 그분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리 베일 형제님은 그곳 사역자 중 한 분입니다. 파커 토머스 형제님… 그 자매님에게 그림자가 드리웠던 때가 기억납니다. 자매님, 그것은 참으로 큰 확증이었습니다. 그… 성령께서는 때로 우리를 그대로 나아가게 두시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셔서 무엇을… 또 다른 사람들의 믿음도 시험하십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것을 보고 말해도… 다른 사람들은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하니, 그런 것은 없다고 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것은 거기 있습니다.
바울 위에 머물러 있던 그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기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비둘기와, 그 형체로 예수님 위에 머물러 있던 그 빛을 요한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기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나중에 제가 이 빛이 불기둥과 같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이 그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또 저는 그들에게 악한 영은 어둡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삶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림자이며, 우리는… 우리가 빛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대낮의 빛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빛 가운데 걷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낮에 밖을 내다보며 “해가 보인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해의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에서 비친 빛입니다. 해 자체는 아니지만, 해가 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해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거기 앉아 부채질하고 이야기하는 여러분을 볼 때, 그것은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어떤 것이든 그림자를 만들려면 그 안에 어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림자가 생기려면 어느 정도의 어둠과 어느 정도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온통 어두워서도 안 되고, 온통 밝아서도 안 됩니다. 어두우면 그저 캄캄할 뿐입니다. 밝으면 그림자가 없고, 그림자를 만들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과 빛이 섞이면 그림자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로 빛의 그림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디선가 오는 빛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이 그림자라는 사실은 죽을 수 없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뿐입니다. 이 생명에는 죽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은 보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말하는 능력… 몸의 오감을 가진, 살아 움직이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것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고통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그저… 비친 모습일 뿐입니다. 아시겠죠? 생명과 죽음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통해 천국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빛이신 하나님을 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을 때 그 빛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반사해 온 것이 바로 그 빛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세상에 속해 있다면 그것을 반사하며, 어둠으로 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는 무언가가 비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빛과 생명을 반사하시는 것이 확실하듯이, 죽음도 어둠을 반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 둘이 다 있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아마 일요일까지는 작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저 밖에 여러분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게시판에 붙이려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약 일주일 전에 제가 선교 활동을 하던 자메이카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 녹음테이프를 보냅니다. 일곱 봉인 메시지가 자메이카 내륙, 아주 깊은 내륙까지 들어갔습니다. 블루마운틴 너머 그곳은 생활환경이 아주 원시적입니다. 그곳 주민들은 때로 우리가 마련해 준 녹음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옛날 빅트롤라 축음기처럼 손잡이를 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재생시키고, 몇 분마다 누군가가 다시 손잡이를 돌려야 합니다.
이 무리는 작은 배터리, 6볼트 배터리인가 무언가로 이 녹음기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모인 정도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앉아 듣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봉인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동안 그들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불기둥이 들어와… 녹음기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더니 그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서 카메라를 가져와 그것을 찍었습니다. 똑같은 그 불기둥이, 바로 거기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볼 수 있도록 그 사진을 확대하여 밖의 게시판에 붙이려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 가운데 주어진… 우리를 그분의 임재 안으로 인도한 하나님의 은혜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자, 여기 안을 좀 살펴보고,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주제에 관한 메모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아니면 어떤… 아무튼 여기 책 안쪽에 적어 둔 본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를 찾으면,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어떤 주제에 관해 할 말을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요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메시지를 전해 왔고, 일요일에는 「왜 내게 부르짖느냐? 백성에게 말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라는 말씀으로 여러분을 여기 오래 붙잡아 두었습니다. 이제 일요일에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치유 예배를 드립니다. 병자들을 대하다 보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낫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라면, 일요일 아침에 짧은 설교로… 그러니까 치유 예배를 드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려 합니다. 빌리 폴이나 다른 사람이 일요일 아침 8시쯤, 교회 문을 열 때 여기 와서, 사람들이 문으로 들어올 때, 아니 언제든 도착하는 대로 카드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자, 이제… 저는 해 보려고 합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치유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주님께서 제게 어느 정도 깨닫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라면 일요일 아침에 그것에 관해 말씀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수요일 밤 기도회는 짧게 모이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한 것처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서로 교제합니다.
때로 저는 오늘날 발견하는 큰 문제 중 하나가, 우리가 믿는 것에 신실하지 못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존 웨슬리 시대에 오늘날 행하신 일을 그때 행하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마르틴 루터 시대나 그 밖의 시대에, 우리가 지금 그분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교회도, 영도, 과학도 그것을 입증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움직임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선포하고 알려 줍니다. 그러고는 역사하시며 예언하시고, 그분께서 일어나리라고 하신 바로 그 일들이 말씀하신 그대로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좀 나태하게 앉아서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글쎄, 그것이 나를 두고 한 말일까? 그냥 교회 전체를 두고 한 말일까? 아니면 정말 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까?” 일요일 아침에는 그런 원리 몇 가지를 말씀드려서 우리가 조금 더 밝히 깨닫도록 해 보려 합니다.
오늘 밤에는 여기서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방금 그곳을 펼쳤습니다. 내려오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네빌 형제님이… 내가 거기 내려갔는데 그분이 ‘올라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는 그냥 앉으시면 어떡하지?” 그래서 성경 구절을 두어 개 적어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참 사랑스러운 형제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는 그분을 고맙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두고 기도하기 전에 한 형제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두 분입니다. 여기 계신 제 친구들입니다. 사역자들이며 현장에 나가 활동하는 전도자들입니다. 이분들은 녹음테이프로 이 메시지들을 들었으며, 서로 다른 교단 교회들에서 나온 분들입니다. 두 젊은이입니다. 이 청년들 중… 한 분은 관심이 아주 커서, 최근에 집회가 끝나 갈 무렵 투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셨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조찬 모임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젊은이, 참 훌륭한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이분들은 캔자스에서 왔으며, 제게 결혼 주례를 부탁하려고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고맙게 여깁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도를 그만큼 믿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믿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제 제게 주례를 받으려고 도착하고 보니, 인디애나주 법에 따라 혈액검사 결과가 있어도 결혼하려면 이 주에서 사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습니다.
저 끝에 계신 형제님께 일어나셔서 자신과 곁에 계신 사랑스러운 예비 신부를 소개해 주시고, 그 옆의 형제님도 소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형제님이 간증한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의 일을 위해 나선 이 젊은 사절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 길을 힘차게 나아가게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가 주님의 오심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뜻을 마음에 품은 젊은 남녀들이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찹니다. 형제님, 자매님, 주님께서 여러분을 풍성히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제가 평생 한 번도 설교 본문으로 삼은 적이 없는 작은 책을 펴 봅시다. 아주… 단 한 장으로 된 책입니다. 빌레몬서입니다. 저는 아일랜드 혈통이 조금 섞여 있고, 뒤쪽 이 두 개를 제자리에 고정하려고 아랫니 둘레에 철사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 이름들이 무엇인지 알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합니다. 또 때로는 배움이 부족해서 제대로 발음하지 못합니다. 저 뒤에서 누군가 “빌레몬”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른 발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1절에서 한두 마디만 본문으로 삼으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갇힌 자가 된 바울… 주님의 뜻이라면, 오늘 밤 제가 본문으로 삼으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갇힌 자」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갇힌 자로 여겼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는데도, 자신을 갇힌 자라고 부릅니다. 그가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라고 한 것을 봅니다. 또 다른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했고, 디모데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갇힌 자가 된 바울”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 언젠가 저녁에 그것으로 설교하고 싶습니다. “종 바울.” 그것으로도 설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갇힌 자 바울.” 하지만 이 주제 중 하나만 제대로 살펴보아도 몇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오늘 밤에는 “갇힌 자 바울”을 택해서 「갇힌 자」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제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주 예수님,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성경의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래 뜻이 드러나도록 해석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뿐입니다. 이 위대하고 능력 있는 선지자 바울이 자신을 갇힌 자라고 부르며 적은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도록, 성령께서 지금 오셔서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기다리는 동안 이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바울이 빌레몬에게 이 편지를 쓸 때, 그 도시의 지하 감옥에 어떻게 앉아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죄수였고,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쇠창살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누군가 풀어 주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갇힌 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 사도가 뜻한 것은 조금… 여기 감옥에 육체가 갇혀 있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자기의 영과 뜻이 예수 그리스도께 갇혀 있다는 것을 가리켰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도덕적 선택권을 가지고 태어나,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공정합니다. 모든 사람을 같은 조건 아래 두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사람을… 자유로운 도덕적 선택권을 주셨던 첫 사람을 잘못된 조건 아래 두신 것이 됩니다. 오늘 밤 우리는 아담과 이브와 똑같습니다.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 앞에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놓여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놓여 있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시겠죠? 아담과 이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온 인류가 죽음 아래, 죽음의 형벌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그 죽음을 짊어지시고 죽음의 형벌을 치르셨습니다.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그분의 백성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하셨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면, 그냥 어떤 과정을 억지로 통과시키고 “네가 구원받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하신다면, 그분은 아담과 이브를 잘못된 조건 아래 두신 셈이 됩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은 오늘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의 빛이 입증한다면…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이 어느 편에 있는지 정확히 입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편이라고 말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날마다 하는 행동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입증합니다. 이런 옛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이 말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당신의 간증은 들리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행동이 그만큼 큰 소리로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외치고 뛰는 것을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내는 것보다 더 높이 뛰지는 마십시오. 세상이 그것을 지켜볼 테니까요.” 아시겠죠? 여러분이 살아내는 만큼만 높이 뛰어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교회에 오려 하지 않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많은 사람이 그냥 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나 많은 부패를 보았기에 교회와는 어떤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종종 이것을 솔직하게 말할 때, 그들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 때문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 고백과 다르게 사는 남녀야말로 세상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제 심판 때 겪게 될 실망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인이나 밀주업자나 도박꾼이나 간음하는 자는 영원한 불 속으로 떠나가라는 선고가 낭독되는 것을 듣고도 기대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 신앙 고백 뒤에 자신을 숨기려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는 그 사람이 심판 날에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시작해 놓고는 다른 삶을 사느니, 아예 어떤 신앙 고백도 하지 않고… 시작하지 않는 편이 그에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삶을 사는 그런 신앙 고백자가 우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로 자신의 삶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로 자신을 판단하지도 마십시오. 언제나 자신을 판단할 때는… 돌아보고 살펴보십시오. 지금 살고 있는 여러분의 삶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얼마 전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모임에서, 예수님을 비추는 것,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추는 것에 관해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켄터키는 생활환경이 아주 원시적이었고, 특히 제가 어렸을 때는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린 소년은 여기 우리 집들 같은 집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여자분들이 많아서,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보려고 집 안 곳곳의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하지요. 그러나 그 소년에게는 조그마한 거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밖에 있는 나무에 작은 거울 조각을 못으로 박아 놓았는데, 그곳에 세숫대가 있었습니다. 그 부모는 나무에 박아 둔 그 낡은 거울 조각을 보며 씻고 머리를 빗곤 했습니다.
사실 우리 집이 그런 집이었습니다. 누가 거울을 보려면, 어렸을 때 우리들은 상자를 가져다 세숫대 위에 올라서야 했습니다. 제가 직접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거울 조각을 들여다보려고 말입니다. 그것은 켄터키에 있을 때가 아니라, 여기 인디애나의 유티카파이크에 살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는 자기 모습을 그렇게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만나러 도시에 왔습니다. 방 안을 둘러보는데, 할머니 집에는 문에 전신 거울이 달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방을 뛰어가다가… 자기 앞에 다른 어린 소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도 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멈춰 서서 그 아이가 어떻게 하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멈추자 그 소년도 멈췄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그 소년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머리를 긁자 그 소년도 자기 머리를 긁었습니다. 마침내 더 알아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돌아섰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놀라워하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머, 엄마, 저건 나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도 무언가를 비추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의 삶이 비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노아 시대에 살았다면, 누구의 편에 섰겠습니까? 노아가 살던 그 위대한 날에 어느 편에 섰겠습니까? 모세 시대에는 어느 편에 섰겠습니까? 온 세상이 오늘날의 이세벨과 같은 거대한 현대주의에 삼켜져, 주님의 종들을 모두 세상적인 길로 몰아내고 교회와 제사장들이 다 그녀에게 절하던 선지자 엘리야의 시대에는 어느 편에 섰겠습니까? 인기 있는 편에 섰겠습니까, 아니면 엘리야와 함께 섰겠습니까?
이제 주 예수님의 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이분은 세상 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다녔다는 학교를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고, 신학교를 다닌 경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사생아라는 평판 속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러고는 나와서, 그들이 배워 온 모든 것에 반대되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사역자들과 그들의 조직 등을 정죄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조직들은 누구든지 이 소위 선지자의 말을 들으러 가기만 해도 회당에서 쫓아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이를 죄였습니다. 그들은 인정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경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린양의 피 아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희생물 앞으로 나와야 했는데, 이제 쫓겨난 사람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분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완전히 성경과 일치하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일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섰겠습니까? 자, 그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사는 삶은 그때 어떻게 했을지를 그대로 비추어 줍니다. 여전히 같은 영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과 함께 그 편에 선다면, 그때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바로 그 영이 그때 사람들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자기 영을 거두어 가지 않습니다. 그 영은 한 사람에게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갈 뿐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영을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그 영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갑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엘리야 위에 있던 바로 그 영이 엘리사 위에 임했고, 같은 영이 침례자 요한 위에도 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있던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고, 줄곧 이어져 내려와 지금도 사람들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을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바울이 무언가를 후회하며 “내가 갇힌 자가 되어 유감이다.”라고 말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울이 그 펜으로 이 편지를 쓸 때, 성령께서 그것을 쓰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까지도 우리가 이 본문이 놓인 문맥을 꺼내 살펴보며, 바울이 왜 이렇게 했는지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울이 이 어둑하고 낡은 감옥에 앉아서… 여기서 자신의 형제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라고 썼다고 믿습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그리스도의 종, 함께 사역하는 동료에게 말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에 갇힌 자인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갇힌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당대에 대단한 학자였습니다. 큰 야망을 품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훈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은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바울이 갈 수 있었던 가장 훌륭한 학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휘턴이나 밥존스, 또는 어떤 훌륭한 근본주의 학교와 같은 곳입니다. 그는 말씀의 사역자로 교육받았습니다. 교육을 잘 받았고, 영리하고 총명한 젊은이였습니다. 언젠가 자기 백성의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이 되겠다는 큰 야망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큰 야망을 위해 훈련받았고, 아마 여덟 살이나 열 살쯤부터 서른 살이나 서른다섯 살쯤 학교를 마치고 졸업할 때까지 평생을 바쳤습니다. 학위와 모든 것을 갖추었고, 모든 성직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까지 그랬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위대한 사울을 신임하여, 친히 글로 쓴 명령을 맡겼습니다. 다마스쿠스로 내려가서 그가 말한 방식과 다르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어 결박하고 감옥에 넣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가 원할 경우 그들을 죽여도 된다는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큰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훈련받아 온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빼내셨습니다. 그가 목표로 삼았던 것, 그의 아버지가 돈을 들였던 것,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야망, 그 모든 것이… 그에게서 제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에서 가졌던 자기 목표를 더는 추구할 수 없는 갇힌 자가 되었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이 바울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마 낮 열한 시쯤 내려가다가 그는 그곳에서 쓰러졌고,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가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므로, 올려다보면서 그 불기둥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히브리인은 그것이 참으로 그분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다면 어떤 것도 주님, L-o-r-d, 엘로힘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훈련받은 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려다보니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했던 그 빛, 불기둥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여”라고, 엘로힘, L-o-r-d라고 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런데 “나는 예수라.”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이 신학자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전환입니까! 오, 그 모든 야망을 품고 있던 이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누구를 핍박해 왔는지 알았을 때,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야망은 그가 본래 하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일에서 그를 점점 더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나는 예수라.”고 하셨을 때, 이 사도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그가 핍박하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여기서 짧게 한마디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조롱할 때, 실은 교회를 조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그 모든 지식을 가지고도 어떻게 이것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가 핍박하던 이 무리가 바로 자기가 섬긴다고 주장하던 그 하나님이라니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기서 제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우리 모두 알 만큼 충분히 배워 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무지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총명하고 영리했으며, 자기가 핍박하던 배움 없는 갈릴리 사람들보다 훨씬 더 똑똑했습니다. 그들은 겸손한 가운데 이미 이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대단한 학문과 지성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길 위에서 그에게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겠습니까… 그는 눈이 멀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곧음이라 하는 거리에 있는 어떤 사람의 집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그때 아나니야라는 선지자가 그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환상 가운데 바울이 오는 것을 보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안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여, 그대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대에게 안수하여 시력을 되찾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이오.”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바울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겠습니까! 그가 하도록 훈련받은 모든 것이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이제 그가 받은 모든 교육은 그에게 아무 소용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체험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또 하나의 좋은 교훈이 있습니다. 체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른 체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보고, 이것이 위대한 어떤 일이며 다른 누군가가 자기보다 먼저 그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있던 성경, 곧 구약을 가지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내려가 3년 6개월을 보냈습니다. 자기가 한 체험을 성경과 대조하여 그것이 성경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만일 그가 “글쎄, 그건 잠깐 스쳐 간 일이었나 보군.” 하고 그냥 가 버렸다면 어땠겠습니까? “나는 내 지식을 따르겠어.”라고 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의 감옥, 아니 갇힌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대조하고 살펴본 뒤… 모형을 통해 히브리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에서 3년 반 동안 말씀에 잠겨 지내면서, 자기를 부르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 데려가셔서 자기의 모든 지식을 바꾸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한 모든 것, 되려고 훈련받은 모든 것, 모든 야망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에게서 다 쓸어 버리셨고, 그는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그 계시는 너무나 놀라워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모든 참된 신자의 진정한 체험입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위대한 어떤 것과 접촉하게 되어… 다른 모든 것을 좇아갈 수 없는 갇힌 자가 됩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여기에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하늘의 왕국은 진주를 사는 사람과 같다. 그가 그 훌륭한 진주를 발견하면, 그것 하나를 얻으려고 가진 것을 모두 판다.”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지적인 이해가 있습니다. 신학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참된 것을 발견하는 때가 오면, 다른 것은 모두 팔아 버리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끌도록 마구가 채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말에게 마구를 채우는 것은 무언가를 끌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체험을 하고 3년 반 동안 자신이 한 체험을 성경의 모형들과 대조한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시고, 성령으로 마구를 채우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한 체험은 이방인들 앞에 복음을 끌고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께서 친히 그에게 마구를 채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마구를 메고 그분께 연결됩니다. 어디를 가든 그것이 우리와 함께합니다. 말씀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여러분은 말씀에 매여 있습니다. 거기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에 의해 멍에로 묶였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말씀에 멍에로 묶어 놓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언제나 함께 매여 있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과 함께 멍에를 멘 것입니다. 영에 의해 말씀에, 바울은 그렇게 매여 있었습니다. 그는 아라비아 사막의 외진 곳에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과 경험과 야망을 거기서 다 벗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먼저 모든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벗어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감리교 형제는 감리교 가르침을 조금 붙들고 싶어 합니다. 침례교 형제는 침례교 가르침을 조금 붙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든 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성령께서 인도하시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교회에 들어가실 때 목사님과 악수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훌륭하고 충실한 교인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달리던 경주에는 괜찮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성경의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사장에게도 마구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경륜의 시대로 넘어왔으면서도 옛 마구를 벗고 새 마구를 메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것을 봅니다. 우리가 교회 시대들과 성경 등을 통해 입증했듯이, 우리는 교단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자신을 입증하시고 자신을 알리시는 자유로운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이루시는 시대입니다. 오, 얼마나 위대한 때입니까! 그리고 바울은… 또 한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매여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고 싶은 곳들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야망 때문에, 자신을 초대해 준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끌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영 안에서 강권을 받아 다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사울 형제님, 바울 형제님, 이곳에 와 주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큰 교회가 있습니다. 회중도 가장 많습니다. 형제님께 드릴 헌금도 많을 겁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영 안에서 강권을 받는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쪽에 내 형제 한 사람이 있다. 가서 그 형제를 구원하고 싶다. 그를 주님께 인도하고 싶다.” 그러나 영은 그를 다른 곳으로 가도록 강권하셨습니다. 그는 갇힌 자였습니다. 참으로 그러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도 그렇게 갇힌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과 판단과, 우리 나름대로 더 낫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갇힌 자라면, 어떤 교단도 여러분을 흔들어 거기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말씀에 갇힌 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영께서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여러 번 어떤 곳에 가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곳에서 큰 집회를 할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지만, 영께서 막으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갇힌 자였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입증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 영에 의해 그분의 말씀에 매인 자였습니다. 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그는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 행하도록 사슬로, 사랑의 족쇄로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갇힌 자였습니다. 사랑의 족쇄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고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멍에를 함께 멜 수 없었습니다. 그분과 멍에를 함께 메고 있었으므로, 인도하시는 분이 어디로 가시든 그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쪽 길이나 저쪽 길이 아무리 푸르게 보여도, 인도하시는 분과 멍에가 향하는 길로 가야 했습니다.
오, 오늘 밤 우리 브래넘 태버내클이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와 야망을 더는 마음대로 좇을 수 없는 갇힌 자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고 그분과 함께 멍에를 멜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세상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족쇄에 묶여 멍에를 메고 있습니다. 우리는 갇힌 자입니다! 제 발은 그리스도께 단단히 매여 있어서 춤을 추지 않을 것입니다. 제 눈은 그리스도께 단단히 매여 있어서, 거리에서 요즘처럼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립니다. 제 마음은 사랑으로 그분께 단단히 매여 있어서, 더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제 뜻은 그분께 단단히 매여 있어서, 제 야망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주님, 주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 저는 따르겠습니다. 갇힌 자가 되겠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갇힌 자였습니다. 그는 잘못된 말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기다리도록 성령께 다시 훈련받았습니다! 이전에는 한 방식으로 훈련받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른 방식으로 훈련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야망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주님을 기다리도록 성령께 훈련받았습니다. 이제 저는 성령을 통해 여러분께 무언가를 보여 드리려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날 바울과 실라가 부흥회를 열고 있던 어떤 도시의 거리를 걸어가는데, 마귀 들린 어린 여자가 계속 따라오면서 그를 향해 외쳤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그 여자에게서 악한 영을 꾸짖어 쫓아낼 권한이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목하셨습니까? 그는 날마다 기다렸고, 그러다가 갑자기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그때다!”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영아,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보십시오. 그는 주님을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말씀에 치욕을 돌립니다. 그들은 야망을 품고 나갑니다. 그런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흥회가 아무 성과 없이 끝났습니까? 전도자가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리로 오십시오.”라고 하면, 그는 당장 갑니다. 협회가 “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다른 말씀을 하시는데도, 주 장로가 되거나 어떤 장로나 감독이나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야망이 그를 끌어당깁니다.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성령께서는 “여기로 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그는 자기 조직에 멍에로 묶여 있습니다! 조직에 갇힌 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멍에를 함께 메었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그가 하는 일은 오직 [말이 불명확함.] 그는 멍에에 매인 갇힌 자입니다. 다른 어떤 것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소리 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그 말씀이 나올 때에만 말합니다. 그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오, 존스 형제님, 로버츠 형제님…” 하고 말할 것입니다. 아니면 토미 힉스나 오럴 로버츠나 토미 오스본 형제님처럼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는 위대한 분들, 그런 위대한 전도자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토미, 이리 와 주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입니다.” 또는 오럴에게 말입니다. “여기 제 삼촌이 있는데, 온몸이 얽매인 채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와 주셨으면 합니다. 그분을 고칠 힘이 당신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성령께서는 그에게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과의 우정 때문에 그는 함께 가야 한다는 의무를 느낍니다.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의 원수가 됩니다. 그 사람은 말합니다. “그는 아무개의 집에 가서 그 아이, 그 소년을 고쳐 주었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의 친구였는데, 우리 집에는 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가지 못하도록 그를 붙드시고 계신다면,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 매여 있다면 말입니다. 그는 친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일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일을 아주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실 때까지 그저 기다렸습니다. 영께서 어디로 가라고 하시든 말입니다. 어느 날 밤 그가 서서 설교하다가 그리로 나가 보니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영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는 “내가 알아보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자기가 어느 섬에서 배가 파선하는 일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입니다. “내가 보니, 그대에게 치유받을 믿음이 있소. 그대의 발로 일어서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낫게 하셨소.”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멍에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부흥회를 열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는 그 부르심에 매여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지금 말씀은 일요일에 하신 말씀을 스스로 부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지금까지 줄곧 기다려 왔다고 한 것을 두고 말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저 위 길에서 제게 “내가 너를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로 다시 보낸다.”고 말씀하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그것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분께서 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을 때까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다릅니다. 아시겠죠? 거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영 안에서 강권을 받아,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여, 우리도 갇힌 자가 될 수만 있다면!
덥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인물을 두어 명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여섯 명인가 여덟 명 정도 적어 두었지만, 한두 명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을 봅시다. 그는 구출자로 태어났고, 자신이 구출자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 관해 말씀드리기 전에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참되게 섬길 사람을 언제나 그분께 갇힌 자로 만드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사람은 자기가 품은 모든 야망과 자기의 모든 것, 생명과 혼과 몸과 뜻과 야망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완전히 갇힌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더 낫다고 여기는 판단과 반대로 걸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어떤 조직에서는 여러분을 높여 주고, 뽐낼 만한 대단한 자리를 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패배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분께 갇힌 자가 되려는 사람을 얻으시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갇힌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다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에도 매일 수 없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나 남편이나 아내나, 누구라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그분께만 매여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실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안 됩니다. 때로 저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거칠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얽매인 것들을 끊어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시작하는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때로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런 옷들을 입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붙들고 유지하는 것을 지적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건 사소한 일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선가는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기초부터 시작하십시오. 세상적인 겉모습부터라도 끊어 버리고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십시오. 그런 다음 계속해서 모든 것을 끊어 버리십시오. 마침내 마지막 줄까지 끊어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갇힌 자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손에 붙들리게 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손에 붙잡고 계십니다.
모세는 자신이 구출자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품은 야망을 보셨습니까? 자기 유모였던 어머니가 그곳에서 그에게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모세가 태어난 일을 두고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모세야, 네 아버지 아므람과 나는 끊임없이 기도했단다. 말씀을 보고 구출자가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 그래서 ‘주 하나님, 우리가 그 구출자를 보기를 원합니다.’ 하고 기도했단다.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네가 태어날 것이며, 네가 그 구출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단다. 우리는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왕이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지. 네가 구출자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런데 모세야, 우리는 너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이집트에 내려가서 사백 년 동안 살았습니다. “우리는 네게 올바른 것, 올바른 교육과 올바른 훈련을 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나는 너를 데려다가 작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웠지. 물살과 씨름하며 그 작은 상자를 갈대와 골풀 사이로 이끌고, 몇 마일이나 내려가 바로의 궁전 쪽으로 돌려보냈단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던 못이 있는 곳으로 말이야. 그 딸에게는 너를 키워 줄 여자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물론 그때는 아기를 키우는 이런 젖병이 없었으므로 유모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미리암을 보냈더니, 그 아이가 거기 서 있다가 ‘제가 유모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알아요.’ 하고는 나를 데려왔단다. 모세야,” 문은 모두 닫혀 있습니다. “얘야, 넌 이제 열여섯 살이구나. 앞으로 바로의 아들이 될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이 백성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 구출자가 될 거란다.”
모세의 야망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겠습니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할지 아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군인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백성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방법을 알게 될 겁니다. 위대한 장군, 감독이 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서 그들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철학박사나 법학박사 학위도 따겠습니다. 해내겠습니다.” 치니퀴 신부도 그랬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어 보셨다면 아실 것입니다. 그는 모든 개신교도를 건져 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개신교도가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살았던 그 위대한 사제, 치니퀴 신부 말입니다. 그분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사람들이 그를 신부라고 부르지만, 실은 치니퀴 형제님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그런 식으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가 성경을 읽으려 했던 것은 나가서 개신교 신앙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골수 가톨릭 신자였던 그가 아마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 때, 성령께서 그를 붙드셨고, 그는 성령을 받아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주목하십시오. 모세는 모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주 영리하고, 교육을 많이 받고, 지식이 뛰어나서 아무도… 심지어 이집트 사람들을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심리학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장군들에게 군사력이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은 그의 위대함 때문에 모세를 두려워했습니다. 오, 얼마나 대단한 학식입니까! 그는 대주교, 아니 어쩌면 교황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한 인물이었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이 일을 하려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일을 하겠다는 큰 야망을 품고 훈련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학교에서 훈련받는 사람들을 두고 제가…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서부에 1억 5천만 달러짜리 신학교를 지으려고 합니다. 오순절교 학교입니다. 1억 5천만 달러짜리 학교입니다. 제 생각에 그 돈은 현장의 선교사들을 위해 써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든, 거기서 나오면 무엇을 합니까? 어떤 사람들이 됩니까? 리키들만 한 무더기 나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 나옵니다. 다른 학교들도 언제나 그렇게 해 왔고, 이것도 같은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세가 그 모든 훈련을 받은 것을 봅니다. 오늘날에도 온갖 훈련을 통해 높은 야망을 품은 큰 감독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야망은 모세의 야망과 거의 같아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손에 넣으시려면 먼저 그의 야망을 벗겨 내셔야 했습니다. 그가 받은 모든 훈련을 벗겨 내셔야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나가서 구출했습니다… 이집트 사람 하나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 사막의 외딴곳으로 데려가셔야 했습니다. 여러분, 주목하셨습니까? 좀 이상하지요.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맡기실 이런 사람들을 사막으로 데려가십니다. 바울도 훈련하시려고, 그 모든 위대한 환상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려고 사막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는 사막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어느 사막으로 나가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온전히 알려 주실 때까지 그는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모세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를 사막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사십 년 동안 거기에 두시고, 그의 신학과 야망을 모두 벗겨 내셨습니다. 오,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실패를 살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도 우리의 야망을 보면서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치유 대전도 집회들을 보십시오. 몇 해 전에 주님께서 병자들의 치유 등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신 일을 보십시오. 사람들마다, 조직들마다, 그 일이 자기 조직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들을 위한 치유자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잠깐 살펴봅시다. 우리는 모세가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나가서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려고 기를 썼습니다. “병의 냄새가 납니다.” “제 손에 피가 생겼습니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심한 부담 속에서 무너져, 완전히 술에 빠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생각이 그렇게 되어서, 오순절의 목표에서 완전히 돌아서 다시 조직 따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했습니까? 이집트 사람 하나 정도를 죽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애쓰고, 기를 쓰고, 돈을 들였습니다. 기도회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밤새 수고했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무언가를 억지로 부풀리려고 온갖 일을 했지만, 결국 완전한 실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막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야영 집회를 하고, 분투합니다. 왜 그냥 내려놓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돌아가서 내려놓으십시오. 우리는 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모세가 했던 것과 똑같이 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십 년 뒤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그 위대한 복이 나타났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위대한 일들,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하고, 성령을 받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여기 있는 이 모든 일이 나타났을 때 말입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 말씀에 머물러 말씀에 매여 있는 대신에 무엇을 했습니까? 이미 실패한 자기 교단의 이론을 가지고 시작하여, 진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제 뜻을 알아들을 만큼 지혜롭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밤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부인하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로 온 나라가 가득할 뿐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빛을 정신 감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것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며, 뱀의 씨나 영원한 보장이나, 성령께서 계시하시고 말씀임을 입증하신 것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게 합니다. 저는 거듭거듭 도전했습니다. 와서 그것이 틀렸음을 입증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루터나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것뿐입니다. 아시겠죠? 이집트 사람 하나를 죽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어쩌면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그만두게 했거나, 자기 아내에게 충실하게 살게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를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교회 회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와서 우리 모임에 가입하십시오.”
보십시오. 그가 사십 년 동안 훈련받아 거둔 성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악취를 풍기는 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거기 죽어서 썩어 가는, 악취 나는 이집트 사람 하나였습니다. 오늘 밤도 거의 그와 같습니다. 휩쓸고 지나간 이 소위 부흥 운동의 결과라고 우리가 가리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서는 호텐토트족이 이집트의 밤에 관해 아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무지한, 악취 나는 교인들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해 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믿지 않습니다.” 돌아보며 가리킬 것이 그런 것뿐이라니,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애쓰고 분투하며 쏟아부은 모든 것의 결과가…
어쩌면 우리는 큰 학교를 가리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었습니다! 조직을 가리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었습니다!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빠져나온 바로 그것과 똑같습니다. 돼지가 뒹굴던 곳으로 돌아가고 개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는 도로 돌아갑니다. 죽은 이집트 사람 하나…
틀림없이 누군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모세, 이제 백성을 향한 마음이 전혀 없습니까? 당신은 이 일을 하도록 부름받았잖습니까?” 모세를 알고, 그가 그 일을 하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말입니다. “백성을 향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왜 나가서 이 일을 하지 않습니까? 왜 저 아래로 가서 이것을 시도하지 않습니까? 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지 않습니까?” 모세는 그곳에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것들을 벗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는 내 약속을 기억한다. 그들을 구출하려고 내려왔으며, 그 일을 하도록 너를 보낸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야망이나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무엇이 되었습니까? 그는 더 이상 이집트 사람들을 대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이 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여러 해 동안 도망 다니며 모든 것을 벗어 버렸지만, 이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 모든 지식을 가진 위대한 모세가 말입니다. 성경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말이나 행동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신학자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목적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을 해낼 능력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든 신학으로 훈련받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의 가장 훌륭한 학교들에서 훈련받았지만, 그 불기둥이 떨기나무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저는 말도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제가 누구이기에 가겠습니까?” “모세야, 신발을 벗어라. 내가 너와 말하려 한다. 네 자신을 낮추어라. 신발까지 벗어라. 땅에 엎드려라. 내가 너와 말하려 한다.”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택함받은 갇힌 자, 택함받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택함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모세는 택함받은 구출자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자신에게 갇힌 자로 얻으셨습니다. 오, 할렐루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저를 보내셨다고 말해야 합니까?” “스스로 있는 자니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예, 주님. 말씀하신 그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오, 그것은… 그는 갇힌 자입니다. 자기 나름의 더 나은 생각을 거슬러 갑니다.” 그는 군대를 지휘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칼을 들어라. 뒤로 돌아.” 나아가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병거는 모두 정렬하라. 창을 앞으로. 돌격!” 그런 식으로 그 일을 해내려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말했습니다. “무엇을 사용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막대기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는 손에 막대기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수염이 길게 늘어진 여든 살 노인이었고, 아내는 노새에 타고 아이를 옆구리에 앉혀 안고 있었습니다. 작고 힘없는 팔들은 축 늘어졌고, 막대기 하나를 든 채 머리만 꼿꼿이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마침내 닻을 내리고 확고히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는 갇힌 자였습니다. “나는 말씀이 움직일 때만 움직입니다. 말씀이 말씀하시는 곳에서만 말합니다.” “어디로 갑니까?” “내게 맡겨진 일은 하나입니다. 바로 앞에 서서 이 지팡이로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 겁니까?” “내가 이 일을 하면, 그분께서 다음 일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먼저 할 일, 그렇습니다.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갇힌 자가 되십시오! 자기 자신이나 다른 무엇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갇힌 자가 되십시오.
모세는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말조차 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를 손에 붙잡으셔서, 하나님이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만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모세는 그것이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켰고, 거기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뜻에 매어 놓으셨습니다. 바울에게 하신 일도 똑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바울을 매어 놓으셨습니다. 코가 작고 비뚤어진 냉소적인 유대인 말입니다. 바울에게는 철학박사니 법학박사니 하는 학위들이 온통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말씀을 위해 얼마나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내가 그에게 보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바울은 거기 앉아 말씀을 보았고, 그것이 예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두 손을 들고 그분께 매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말씀에 매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방인들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나아갔습니다. “모세야, 나는 네 조상들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내가 그들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며, 그 약속의 때가 가까웠다. 나는 내 백성의 고난을 본다! 내 약속을 기억한다! 그래서 너에게 마구를 채우려고 내려왔다. 너는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안다. 내가 너를 저 아래로 내려가도록 매어 놓았다.
권능으로 너를 매어, 저 아래로 가서 내 백성을 구출하게 하였다. 그 지팡이를 증거로 손에 들어라. 너는 그것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윗이 무릿매를 가졌던 것과 같습니다. 그는 마구를 메고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복종하고 자신에게 매여, 하나님의 말씀이 움직이게 하시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는 한 사람을 얻으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렇게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 모세는 그분께 갇힌 자, 사랑의 포로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끈으로 묶여 멍에를 함께 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사랑의 끈으로 묶여 멍에를 멘 것과 같습니다. 바울과 똑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훈련받았습니다. 모세는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바울은 그 시대 세상에 있던 거대한 종교적 세력을 통해 로마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빼내 자유롭게 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훌륭한 교육기관들, 가말리엘 아래에서 받은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사막으로 갔고,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 다 불기둥을 보았고, 두 사람 다 선지자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두 사람 다 선지자였고, 두 사람 모두 불기둥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구출하려고 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막을 거쳤습니다. 집을 떠나 사막으로 가서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자기 백성과 모든 것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한 방식으로 훈련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방식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는 완전히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십 분만 더 해도 되겠습니까? 아주 빨리 다른 인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금 제 앞에 한 사람이 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는 택함받은 아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도 선지자입니다. 그는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자신이 왕좌에 앉아 있고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셔야 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셨습니다. 모세는 구출자였고 바울도 구출자였으며, 이제 요셉도 구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기근에서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하셔야 했습니까? 감옥에 넣으셔야 했습니다. 곧장 감옥에 넣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 사람에게 팔렸고, 그들은 그를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보디발은 그에게 자유를 조금 주었지만, 어느새 그것마저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앉아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벗겨 내셔야 했습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하지만 그 감옥에 있는 내내, 그는 환상에서 자신이 왕좌에 앉고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하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자기 은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았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마음에 간직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는 한 교회를, 한 백성을 가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때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 와 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갇힌 자, 그분과 함께 갇혀 있는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부르던 그 찬송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제 나는 하나님과 함께 갇혀 있네. 하나님과 함께 갇혀 있기를 원하네.” 저는 바로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갇혀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라고 하실 때만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갇혀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보기에도 완전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아는 모든 것, 이해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 주지 않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는 갇힌 자였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의 사역은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감옥에 있는 그에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역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쇠창살 사이로 서서 설교해도, 사람들은 그냥 길을 따라 지나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퀴들이 돌아 똑바로 서게 될 때까지, 이를테면 자정이 될 때까지 그를 갇힌 자로 붙들어 두셨습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감옥에 있는 그에게 오셨습니다. 바울에게, 다른 모든 사람에게 하셨듯이 그에게 오셨고, 자신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그를 그곳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그를 감옥에서 끌어내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감옥에서 끌어내시자마자 그는 왕에게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는 달라졌습니다. 그가 곁에 앉아 있던, 그가 그 아래에 있던 그 왕에게서 말입니다. 감옥에서 나와 권한을 받았으므로, 그가 무엇을 말하든 그대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아멘.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자기가 어떤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늘 기억했습니다. 자신은 왕 곁에 앉게 될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었습니다. 환상이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멘! 그러나 그 환상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 그는 갇힌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멘. 그러고 나서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에 갇힌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 주시는 말만 할 수 있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움직이셨습니다!
주목하십시오. 모세는 자기 뜻대로 바로의 고관들을 결박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면.” 그는 바로의 고관들이 집사든 장로든, 주 대표든 무엇이든 그들을 결박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결박하겠소!” 하고 말하면 그들은 결박되었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말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 약속을 지키려면 이제 삼 분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세상에 갇힌 자였다가 하나님께 갇힌 자가 된 것을 봅니다. 바울도 같았고, 모세도 같았습니다. 자기 생각에 갇힌 자였다가 하나님께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나왔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바울이 되었을 때… 모세 자신의 생각이… 그는 그것을 내어 맡기고 벗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갇힌 자가 되어, 오직… 움직이는 곳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라고요?” 하실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갇힌 자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세 사람 모두 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길에 갇힌 자가 되기 위해 자기 생각을 벗어 버려야 했습니다. 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에게 자기 말로 결박할 권한이 있었고 자기 말로 풀어 줄 권한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내 왕의 이름으로 당신을 풀어 주겠소.”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바로는 요셉을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사랑의 포로들을 자기 아들들로 삼으시며, 그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자신이 가지셨던 것과 같은 권능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아시겠죠?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많은 일도 그가 하리라.”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갇힌 자는 자기 왕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권능을 받습니다. 아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으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나와 함께 멍에를 메면… 그분과 그분의 말씀은 같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여기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또는 원하는 바를 말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그에게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나오기 전에, 먼저 밖으로 데려내어 면도를 시켜야 했습니다. 자기 왕을 만나기 전에 몇 가지를 깎아 내야 했습니다. 오, 하나님께서는 때로 자기 백성을 그렇게 밖으로 데려내어, 그들 자신의 뜻 몇 가지를 깎아 내십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제 뜻을 아시겠지요.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없습니다. 온전한 권능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종이 되기 전에, 깎아 낼 것을 깎아 낸 뒤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 그 일을 하시려고 그들을 사막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들을 깎아 내신 뒤 기름부음받은 자들로 이끌어 내어, 그들을 정하신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형제들이여,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다른 모든 시대에 그분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한 사람을 택하여 자신에게 갇힌 자로 만드셔야 했습니다. 자기 것을 버리게 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버리고, 받은 모든 훈련과 모든 것을 잊어야 했습니다. 사람이 하려는 일을 따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둘은 서로 너무나 반대됩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동시에 갈 수는 없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동시에 갈 수는 없습니다.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을 동시에 따를 수는 없습니다.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따르든지 사람을 따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시켰다면, 그 하나님께, 그 말씀에, 그 뜻에 갇힌 자가 됩니다. 다른 어떤 것이 무슨 말을 하든, 여러분은 거기에 갇힌 자가 되는 것입니다.
들으십시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이제 남은 몇 분이 흘러가는 동안, 경외심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 하실 일, 하셔야 하고 반드시 하실 일은 추수를 위한 도구를 찾는 것입니다. 이 타작마당에서 타작할 도구를 찾으셔야 합니다. 농부라면 누구든 추수하러 갈 때 추수할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날카로운 낫이나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곡식을 떨어 낼 어떤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곡식이 무르익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주의 손에 붙잡아 주옵소서. 우리를 주의 사랑에 매인 종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죄 많고 저주받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 우리를 써 주옵소서. 저 자신을 위해서는 이렇게 구합니다. 하나님, 제가 갇힌 자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형제가 저를 거절하고, 모든 친구가 저를 거절하더라도,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갇힌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에 의해 그분의 말씀에 매여, 성령께서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시는 것을 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오늘 밤 머리를 숙인 채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이 되려는 야망이 있거나, 어쩌면 스스로 생각해도 이기적인 것일 수 있는 야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좀 내려놓을 수 없겠습니까? 오늘 밤 여기 있는 어떤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며 “나는… 될 거야.” “나는 크면 어떤, 어떤 사람이 될 거야.”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말할 수 없겠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이제 내 야망은 사라졌어. 지난 며칠 동안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고 계셨어. 이 마지막 날의 타작 도구가 되도록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싶어.” 어떤 소녀에게는 멋진 숙녀가 되고 싶거나, 어쩌면 예쁜 새색시가 되고 싶거나, 언젠가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은 야망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의 야망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 기꺼이 내어 맡기고, 여러분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누구인지 아십니다.
가까이 있는 사역자나, 어느 교회에서 섬기고 일하는 분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 가끔 오기 때문에,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의 삼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있는 이 적은 무리 가운데 말입니다. 기꺼이 이렇게 말할 분이 있겠습니까?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의 종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제 조직이 저를 쫓아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말씀에 머물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제 뜻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겠습니다. 그분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머리를 숙인 채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밤 그런 소원을 가진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제 소원도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나의 복되신 구주여, 주께 모두 모든 것을 맡깁니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정말 그런 마음입니까? 저는 갇힌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를 받아 주옵소서. 오늘 밤 저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데려가셔서 완전히 부수시고 다시 빚어 주옵소서. 나의 복되신 구주여, 주께 모두 모든 것을 맡깁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찬송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지금 찬송 사이에 잠깐 들어가 주께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유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하게 하옵소서. 신실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말하자면, 씻은 옷과 씻은 혼과 씻은 뜻과 씻은 야망을 가지고 주님의 상에 나아가,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그 말씀과 함께 멍에에 묶으시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말입니다. 오늘 밤부터 우리 마음에 멍에가 철컥 채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성령께서 이제 우리를 붙잡아 주옵소서. 저는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겠습니다. “이제 네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내 생각을 생각하여라. 내 뜻을 생각하여라. 내가 너를 인도하겠다.” 하나님, 이것이 우리 각 사람의 체험이 되게 해 주옵소서. 여기 앉아 있는 이 젊은이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온 이들도 있습니다. 이 길을 걸어온 나이 든 사역자들도 여기 앉아 있습니다. 주님, 여기 네빌 형제님과 저는 인생의 사다리를 한참 올라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날도 얼마 없습니다. 발걸음도 예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어디를 딛는지 살핍니다. 육체적으로 말하면, 한때 그랬던 것처럼 발걸음이 든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면서, 주께서 우리 손을 잡고 계시지 않으면 우리의 어떤 발걸음도 확실하지 않음을 압니다.
이제 하나님, 우리를 붙잡아 주시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뜻을 주의 손에 붙잡아 주시고, 오늘 밤 우리가 말씀에,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여기서 경건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여자들과 젊은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 소년 소녀들이 자신의 삶을 내어 맡기게 하옵소서, 주님. 그들의 야망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소원이 되게 하시고, 그분의 신성한 은혜와 뜻에 갇힌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이 짧고 조각난 말들을 주께서 올바르게 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안이 덥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하지만 몹시 덥고, 많은 분이 집에 가서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 씨앗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옵소서. 갇힌 자가 된다는 이 씨앗이 말입니다.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말하게 하옵소서. 그들이… 한 뒤에, 아니, 오늘 오후나 오늘 저녁, 침대 곁에 무릎 꿇고 기도할 준비를 하기 전에 말입니다… 서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게 하옵소서. “여보, 오늘 밤 그 말씀은 어떻소?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와 그분의 뜻에 갇힌 자가 되었소? 아니면 우리 자신의 뜻대로 일하고 있소?” 어디에 있든 젊은 남녀들이, 특히 오늘 밤 메시지를 들은 이들이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하게 하옵소서. “나는 내 삶을 버리고 기꺼이 갇힌 자가 되려 하는가?” “자기 생명을 구원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아버지, 우리는 그것이 주께 갇힌 자가 되는 것임을 압니다. 우리 자신의 야망과 소원을 버리고 주의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제가 아는 유일한 길은 이제 이것을 주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매를 맺어, 마지막 날 추수를 위한 훌륭한 도구들을 낳게 하옵소서. 남녀들과 소년 소녀들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고,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분의 사랑에 갇혀, 신성한 사랑의 족쇄로 그리스도께 묶이게 하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일어섭시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나의 복되신 구주여, 주께 모두 모든 것을 맡깁니다. 눈을 감고 손을 들고 다시 한번 불러 봅시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나의 복되신 구주여, 주께 모두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마치는 찬송인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가라」를 부르기 전에, 여기 계신 이 형제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름을 잊었습니다. 자매님께서는 자신 위로 어둠이 드리우는 환상에 관해 간증하셨고, 치유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다시 돌아보니 그 가리개가 사라졌습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형제님, 마치는 기도를 해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을 내려 주시기를 구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