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능치 못함 없겠네, 오직 믿음;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능치 못함 없겠네, 오직 믿음.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믿기만 하라는 이 찬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간질을 앓는 소년에게 오셔서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느니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하시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주님, 오늘 밤 우리의 믿지 못함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임재와,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주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앞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로 들려 올라가 오늘 밤 우리의 왕 곁에, 그분과 함께 앉아 있으며, 이미 우리의 위치상 그분과 함께 앉아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할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약속은 결코 실패할 수 없으며 언제나 참됨을 압니다. 오늘 밤 우리를 찾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우리 마음에 나누어 주시옵소서. 오늘 밤 이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때, 어느 날 밤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함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밤 다시 돌아와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교제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그것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려는 것입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이렇게 늦게까지 붙잡아 두어 죄송합니다. 어떤 분이 제게 “여기서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여덟 시 반이나 아홉 시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남부 사람이라 좀 느립니다. 아시죠. 그렇게 빨리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시간을 좀 들여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께서 이렇게 잘 협조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잘 협조해 주시면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아주 쉽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 얼마나 큰 은사를 나타내시든, 여러분이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다른 지방에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어디서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했지만, 그곳에서는 강력한 일들을 많이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성경에는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분께서 하실 수... “그들의 불신 때문에 강력한 일들을 많이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는 범위는 그것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 권능에 있는 유일한 한계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늘에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우리가 그분께 직통으로 연결되듯 접촉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잡음이 전혀 없이, 통로가 맑게 열린 채로 그분과 접촉해야 합니다. 그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자기가 말한 것을 믿으면.” 허세로는 안 됩니다. 사탄은 허세에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으니, 허세를 부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참으로 그것을 알 때는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서 그분을 경배합니다. 그분은 우리 혼에 사랑스러우시며 만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오늘 밤 이렇게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앉아 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말씀을 읽거나 해당 구절을 표시하기 좋아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그동안 신유에 관해 많이 설교했으니 오늘 밤은 주제를 조금 바꾸어 볼까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바꾸는 것은 아니고,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 말씀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말씀이 다른 말씀들과 서로 일치하니까요. 모든 성경 말씀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불경하게 들린다면 용서하십시오. 전혀 그런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각 그림 맞추기와 같습니다. 아시죠. 예전에 우리는 여러 조각으로 잘린 그림 맞추기 퍼즐을 가져다 놓고, 앉아서 어떻게 맞출지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 퍼즐을 제대로 맞추려면 우리가 맞추려는 그림을 옆에 놓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완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감추어지도록 그렇게 나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 같은 영리한 학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의 눈에는 숨기시고 배우려 하는 아기들에게 드러내실 것을 감사하셨습니다.
그러니 본보기, 곁에 놓고 볼 모형이 필요해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서로 맞물리는지 알고 싶다면, 예수님을 이쪽에 놓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성경 안에 맞추어 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바르게 맞아떨어집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신약과 구약 모두 예수님에 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이 구속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셨고 지금도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이것은 반드시 그분이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알맞게 짜 맞추신 구속의 책 전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을 위한 구속과 치유와 모든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 책은 하나님께서 짜 맞추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모든 약속이 그분 안에 있고 여러분을 위한 것이며, 그분이 구속자이십니다.
오늘 밤은 구약을 펴서 우리가 말씀을 전개해 나갈 배경을 찾아봅시다. 이사야서 6장을 읽겠습니다. 이 책... 선지자 이사야의 글입니다. 저는 이사야의 글을 좋아합니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이사야가 성경 전체를 그 서곡처럼 썼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그랬습니다. 이사야서는 창조에서 시작하고, 책 중간에는 침례자 요한이 나오며, 마지막은 천년왕국으로 끝납니다. 그러니 그는... 성경은 예순여섯 권이고 이사야서는 예순여섯 장입니다. 참으로 성경 전체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입니다.
자, 6장을 읽겠습니다. 웃시야가... 죽던 해에 내가 또한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그것 위에는 스랍들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채 서 있었으며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는 날더라.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군대들의 주 하나님이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니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 찼더라.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또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이 왕 곧 군대들의 주를 보았기 때문이라, 하매 그때에 스랍들 중 하나가 부집게로 제단에서 살아 있는 숯을 취해 손에 들고 내게 날아와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불법이 제거되고 네 죄들이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하더라. 또한 내가... 하나님의 음성... 주의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구를... 아니,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므로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니. 본문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저는 “영향력”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기록된 서신이며 모든 사람이 읽는 서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을 항상 살펴서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정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웃 사람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면 분명 하나님께도 정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정직한 만큼 하나님께도 정직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서로 정직하게 대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그 아이가 자라서 또 한 사람의 피니나 무디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삶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살펴볼 배경은 이 주제에 아주 잘 맞습니다. 오늘 오후에 공부하면서 이 대목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아들과 함께 근처를 좀 걸어 다녔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타임스스퀘어를 헐어 버린다고 해서 그쪽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벌써 공사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찌나 몰려들던지요! 제가 아들 빌리에게 말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거냐? 뭐가 그렇게 급한 거지? 우리 아래에서도 달려가고, 여기서도 달려가고, 우리 위에서도 달려가는구나. 모두들 그렇게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거냐?”
거기 서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아실 수 있을까? 땅 위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있는데도 우리가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아신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분은 무한하십니다. 만일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알고 싶고 납득하고 싶다면, 밖에 나가 별들을 올려다보며 그분께서 그 모든 별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 일이 얼마나 작은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망원경으로 보면 별들이 일억 이천만 광년 떨어진 곳까지 보입니다. 빛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아시죠. 뉴욕주를 한 바퀴 돌아가며 9라는 숫자를 줄지어 써도 그 거리를 마일 수로 나타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도 이쪽에 있는 것만큼 많은 별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팔로마산과 윌슨산 같은 곳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얼마나 위대하시며, 이 땅을 어떻게 붙들고 계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지구나 수백만, 수십억 마일 떨어진 저 별들 가운데 하나라도 제자리에서 움직이면 이 지구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태양계 전체가 정확히 제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런 모든 것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자 사람은 그분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제자리를 벗어난 것은 우리뿐입니다. 저것들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려면 제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달이 제자리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지구는 잠시 사이에 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달은 말하자면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과 같습니다. “그분께서 경계를 정하셔서 그것을 넘지 못하게 하셨다.” 달이 지구로부터 몸을 돌리면 밀물이 들어옵니다. 달이 반대편에서 그것을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물이 지구를 덮을 것입니다. 그러니 달이 멈추어 세상의 반대편을 보려고 등을 돌리면 물이 아주 빠르게 밀려들어 옵니다. 그러고는 달이 다시 돌아섭니다. 달은 여호와의 종입니다. 바다는 멈추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여호와께서 완전하게 움직이시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 교회가 그렇게 조화롭게 일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한 대열을 이루어 성령으로 충만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하고 힘 있는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몸의 모든 지체가 정확히 자기 자리에서 기능하고, 모든 은사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각 은사가 다른 은사를 돕고 각 지체가 다른 지체를 돕는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행한다면 언젠가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 이 젊은이 웃시야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되기 전에는... 그는 선지자 이사야 시대에 왕이었습니다. 그는 목동이었으며 야외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이사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사야 역시 젊은이, 젊은 선지자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어 보십시오. 역대기하 26장을 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의로운 아버지가 죽은 뒤, 열여섯 살 때 그가... 사람들이 그를 데려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열여섯 살에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영향력을 보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경건한 여인이었고, 먼저 살았던 아버지도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영향을 주어 옳은 일을 하게 했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온 나라에 청소년 범죄의 물결이 이렇게 일고 있지만, 사실 저는 그것이 가정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들이 손을 놓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옛날처럼 훌륭하고 경건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모든 문제가 없어졌을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 아이에게 올바른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아이들이 잘못 자라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거리에 내버려 두고 스스로 알아서 살게 합니다. 어머니는 술집에 머물러 있고, 또는... 아버지도 그렇고 말입니다. 아이를 돌보지 않습니다. 또 아이를 사랑해 주고 품에 안아 애정을 주지도 않습니다. 아이는 어립니다. 사랑하고 존중하며 성경을 읽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수전 웨슬리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자녀가 열일곱 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맞을 겁니다. 하지만 날마다 두 시간 이상 기도할 시간을 냈습니다. 그분의 치맛자락 아래 어린 아들들이 둘러 무릎 꿇던 그 자리에서 존과 찰스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그 시대의 세상을 구했습니다. 그분에게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세탁기나 건조기, 식기세척기 같은 것도 없었고 가정부도 없었습니다.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마침내 세상의 흐름을 바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옛날의 어머니, 옛날의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성경에 대한 깨달음이 있던 가정 말입니다.
제 생각에 에이브러햄 링컨은 성인이 될 때까지 성경과... 아마 『폭스의 순교사』였을 겁니다...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른 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천로역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로역정』과 성경, 이 두 권 말고는 책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인격을 빚어 냈는지 보이십니까? 제가 여러분 집에 들어가 벽에 어떤 그림을 걸어 놓았는지만 보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집이나 사무실에 가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들어 봅시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보는지 알면 여러분 속에 무엇이 있는지 꽤 잘 말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은 그것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오, 가정을 좀 더 사랑스러운 곳으로 만든다면 아이들은 달아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배려해서 집에서 환영받고 기분 좋고 편안하다고 느끼게 해 주십시오. 집에 빨리 가고 싶어 못 견디도록 말입니다. 가정은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웃시야도 경건한 부모의 영향을 받았으니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모든 여론과 정치적 견해 차이를 제쳐 두고, 한 가지에 마음을 정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정치인들이 더 필요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자랐고, 아버지가 올바른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왕국은 아주 위대해서, 제 생각에는 솔로몬의 왕국 다음가는 왕국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왕국에 버금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축복하셨던지요! 그것은 당시 성전에, 아니 그 땅에 있던 젊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옳은 일을 하며, 올바른 동기와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바르게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보았습니다.
때로 여러분은 그렇게 해도 보람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보람이 있습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동시에 갈 수는 없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동시에 갈 수도 없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삶에서 생각과 시선과 동기와 목적을 옳은 것에 두면 반드시 옳은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쪽으로 가라는 유혹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고개를 돌리고 옳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도 더 좋아지고,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결국 바른 결과에 이를 것입니다. 서쪽으로 가기 시작하면 북쪽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서쪽으로 가게 됩니다. 옳고 그른 일도 똑같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웃시야를 축복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사방의 모든 나라들에, 그의 명성이 멀리 이집트에까지 퍼졌습니다. 나라들은 그와 전쟁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저... 그들이 화평을 맺으려고 화친의 예물과 양 떼 등을 보내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나라든, 백성이든, 교회든, 개인이든,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비판해도 옳은 일만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그들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러분을 존중합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존중합니다. 그들 자신이 그릇되게 행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을 존중합니다.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옳고 그른 것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웃시야는 이 기준을 지켰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마음이 높아져 교만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실제적인 본보기입니다. 아시다시피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있으며, 이 문제들을 정직하게 다루고 싶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많은 사역자들까지도 실수를 합니다. 우리는 사역자들의 행동과 그들이 하는 일에 관해, 어떤 이들은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한다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그들이 선한 사람들, 주님께 쓰임받았던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침내 자기 주위에 작은 왕국을 세우거나 큰 영향력을 갖게 되고, 많은 사람이 자기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 방심하고 조금씩 마음이 높아집니다.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그저... 우리 가운데 대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런 일에, 어떤 사람은 저런 일에 쓰시도록 만드셨다 해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손가락과 눈과 여러 지체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자기를 대단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고, 모두 한 나무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역자들은 자기가 조금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계속 앞서 나가다가, 어느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됩니다. 의롭고 선한 사람들이 사교적인 일에 너무 많이 관여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압니다. 큰 연회에 나가고 싶어 하다가, 어느새 가끔 술 한 잔을 청하게 되고 세상에 얽매입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오순절 운동의 문제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오순절 교회에 대해 여러 가지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저도 오순절 신자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뉴욕에 오순절 사람들이 없다면 제가 어디 가서 이 메시지를 전하겠습니까? 아시겠죠? 저는 오순절 사람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제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나 제 형제나 자녀나 아내, 누구에게든 잘못된 것이 보이면 옳은 것은 옳은 것입니다. 올바른 부모는 자녀를 바로잡아 줍니다.
제 생각에 우리 교회의 문제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닮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려다가 그들의 습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어느새, 예전에는... 물론 저는 오순절 사람들의 초창기 모습을 직접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난 이 마지막 운동은 오래전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나이 드신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그런 분 한 분과 집회를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거기 오실 겁니다. 아주사 거리의 초창기 사람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것이 이 나라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었는데, 아마 오십여 년 전일 겁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로스앤젤레스의 맥퍼슨 성전, 앤젤러스 성전에서 금희년 기념 설교를 했습니다. 금희년, 곧 오순절 운동 오십 주년이었지요.
그러나 그 뒤로 자잘한 것들이 아주 많이 교회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교회가 날마다 세상과 접촉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매들이나 형제들에 관한 이 문제를 또 꺼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몇 년 전만 해도, 지난번 밤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매들이 머리를 자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순절 사람들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나라의 여러 지역에 가 보면 우리 오순절 자매들이 머리를 물 찬 것처럼 크게 부풀려 자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시죠, 저렇게 크게 만든 머리 말입니다. 그들에게 그것을 지적해 줄 수도 있습니다. 또 화장을 하고 남자처럼 옷을 입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여자들만 들볶으시는군요”라고 하십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남자들도 좀 지적하겠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형제는 자기 집을 제대로 다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입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 신학교나 학교에서 나약한 사람이 들어와서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내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본보기는 하나뿐입니다.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정죄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결 신자들이 활동사진이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늘 보러 갑니다. 그러고는 사탄이 여러분을 교묘하게 속여 텔레비전을 아예 집 안에 들여놓고 거기 자리를 잡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전에는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너무 서서히 들어오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감고 자라는 덩굴과 같습니다. 그 덩굴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과 말씀을 붙잡고 거기에 머무르면 곧게 자랄 것입니다. 저것은 굽어 있으며 여러분을 길에서 끌어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로 끌어올리시지만, 저것은 옆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 이를테면 목사의 아내나, 혹은 목사가 어떤 일을 하기 시작하면 온 교회가 “우리 목사님도 하시는데요. 목사님 아내도 하시잖아요. 우리가 못 할 이유가 뭐죠?”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올바른 영향을 주어 그들이 바른 길과 옳은 일로 향하게 하십시오.
이제 우리가 알듯이, 마음이 높아질 때 바로 그때부터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면 그렇습니다. 이 웃시야는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자기 나라가 있고 나라는 잘 돌보아지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넓은 포도원과 소 떼와 양 떼, 광산이 있었고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모든 나라가 그와 평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높아져서 교만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너무 높아져 사역자의 자리까지 차지하려 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향로를 들고 제단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제사장이 그를 뒤쫓아 가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적을 받았을 때 그는 예전 같았으면 겸손히 받아들였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높아지기 전이었다면 “맞습니다. 제게는 이 일을 할 권한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향로를 내려놓거나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에게 건넸을 것입니다. 그 일을 하도록 임명받고 오직 그 직무를 위해 거룩히 구별된 사람에게 말입니다.
저는 순복음 실업인회 분들과 함께 꽤 많이 다닙니다. 그분들이 지금 이곳에도 많이 앉아 계십니다. 토요일, 토요일 아침 어느... 제가 그분들의 조찬 모임에서 말씀을 전할 예정입니다. 어디라고요? 스태틀러 호텔인 것 같습니다. 조찬 입장권이 벌써 천칠백 장이나 팔렸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도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실업인들을 강단에 세워 본문을 정하고 복음을 설교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분명 잘못입니다. 우리 설교자들도 제대로 지켜 나가기 어려운데, 그런 일에 임명받지 않은 실업인을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저런 사사로운 생각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셨다면 그대로 있으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있으십시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시는 은사를 망칩니다. 육적인 모방이 너무나 많고, 다른 사람을 따라 하려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여성 사역자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맥퍼슨 여사가 살아 있을 때 모든 여성 사역자가 그분처럼 날개 모양의 것을 달거나, 무엇이었든 그런 것을 하고, 성경도 똑같은 방식으로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분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따라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빌리 그래함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빌리 그래함을 한 사람만 만드셨습니다. 그뿐입니다. 여러분은 빌리 그래함이나 오럴 로버츠, 혹은 그 유명한 어떤 사람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리를 벗어나면 아무 쓸모가 없어지고, 그 사람들에게도 방해가 되며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왕국에도 방해가 됩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모습으로 있으십시오. 그러면 제대로 기능하게 됩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같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손이 눈에게 ‘나는 눈이 아니니까’라고 말하거나, 귀가 코에게 ‘나는 코가 아니니까 더 이상 귀가 되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알맞게 함께 자리 잡아 하나의 큰 몸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흉내 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빚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사역자들이 아무리 빌리 그래함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빌리 그래함도 우리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청소 일을 하는 평범한 분이나 평범한 가정주부 여러분,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역자라도 여러분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을 지금의 여러분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만드신 그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우리가 그렇게만 한다면 모든 바퀴가 훨씬 더 수월하게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높이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니, 그렇게 하는 대신...
누군가 성경을 근거로 무엇을 말해 주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그럴 생각이...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대신 우리는 너무나 자주 웃시야처럼 행동합니다. 그는 자기가 너무 대단해서 지적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이었으니까요. 저도 자기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말씀의 진리가 무엇인지 남이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역자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정하신 곳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께서 그것을 없애신 곳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은사들을 정하셨는데, 그것들을 없애신 곳을 여러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언제까지입니까? “온 세상으로, 모든 창조물이 들을 때까지, 듣는 모든 이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우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괜찮습니다.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자기 방식을 따르려 하는 한...
이스라엘이 가장 경솔한 실수를 한 것이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은혜가 그들에게 불기둥과 천사와 희생물을 마련해 주었고 그들을 구출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 주었고 그들을 따라가며 선지자를 길로 인도할 불기둥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9장에 이르러 은혜를 율법과 맞바꾸었을 때, 그들은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경솔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들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교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일을 살펴보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웃시야는 마음이 높아져서 그래도 그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향로를 움켜쥐고 성큼 나아갔습니다. 제사장들이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어쨌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도 비성경적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되 훌륭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목적을 이루십시오. 가정주부라면 참된 가정주부가 되십시오. 남편이라면 진실한 남편이 되십시오. 집사라면 진실한 집사가 되고, 설교자든 무엇이든 진실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말씀이 그것을 지적하실 때에는... 책망을 받는다고 느껴지면 회개하십시오. 그뿐입니다.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것만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웃시야는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축복하셨는데도 그는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밀고 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안에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그 사람들에게 화도 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그대로 뛰어들어 갔고, 그의 얼굴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나병 환자였습니다. 다시는 주님의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나병 환자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얼마나 선하게 대하시며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 보았는데도, 그 사람은 격리된 나병 환자로 죽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보았지만, 우리가 너무 안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판을 내리실 수 없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기억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 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오순절 신자로 만드셨다면 참된 오순절 신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미국인이라는 것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사역자라는 것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압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선하고 의로운 제 어머니도 그랬습니다. 제가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 우리 고장에는 성령에 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스무 살쯤 된, 그저 동네의 젊은 침례교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령을 받자 어머니는 “저 아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는 그 값진 진주를 찾았습니다.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실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진실한 실체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결코 변할 수 없다고 항상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결코 바뀌지 아니하리라.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어떤 것도 그 대신 넣을 수 없습니다. 기록된 그대로이며 우리는 그대로 믿습니다. 아무것도 더하지 말고 아무것도 빼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책에 한 마디를 더하거나 무엇이든 빼면, (어떻게 된다고요?) 저주가 그 위에 있으리라.” 그러니 있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존중해 주실 것입니다.
그는 마음이 높아져 교만해졌기 때문에 징벌을 받았습니다. 마치... 자기밖에 없고, 자기 뜻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저는 그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모두가 그를 비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형제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난했고, 신문도 그렇게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람을 비난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를 두둔했습니다. 왜냐하면... 물론 저는 그 형제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형제가 이런저런 말을 하고 이런 일들을 했다는 기사를 써서 잡지에 실었습니다.
어느 날 밤 미니애폴리스 집회에서, 그 잡지에 글을 쓴 사람이 거기 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사가 막 기독교 잡지에 실렸는데, 『크리스천 다이제스트』였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그를 가리키며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는 이 사역자가 어떤 글, 어떤 책을 썼다고 했지만, 그 책은 그가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은 한 여자가 썼고, 저는 그 여자를 알았습니다. 『마귀들의 물어뜯음』이라는 책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 사역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칼럼의 편집자가 자기 글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이 사람이 그 글을 썼다고 말했다면, 저는 그 사람이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가 이 사역자에 대해 말한 다른 많은 것들도 잘못되었을까 우려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구원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가로막기보다는, 차라리 누군가를 구원하려 애쓰다가 제 잘못이 드러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세우고 있는 것을 비판하거나 무너뜨리려 하기보다는 언제든 그 사람의 처지에 서겠습니다. 그 사람이 실수했거나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교만해져서 나병에 걸린 일은 그 젊은 선지자에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을 알맞은 자리에 세우신다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금의 여러분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을 세우시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사야에게 인간을 본보기로 삼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이 그를 유혹하고 그는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시면 그는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오, 사탄은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단 한 번만 손을 거두시게 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저는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하나님, 그를 보내지 마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가 제게 다가오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제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이사야는 그 선한 왕의 팔에 크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팔이 사라졌습니다. 왕은 죽었습니다. 나병에 걸려 수치스럽게 죽은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시기에 왕이 교만해졌고, 그러고 나서 그의 어린 아들이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을 때... 백성은 끔찍한 부도덕에 빠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경건한 지도자가 없으면 사람들은 부도덕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교회 등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경건한 지도자, 본을 보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어느 날 이사야는 이리저리 다니며 몹시 지쳤던 모양입니다. 큰 책임을 지고 있음을 알고 있던 그는 기도하러 성전에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는 기도하러 성전에 내려갑니다. 그가 제단에서 기도할 때의 일을 보십시오. 선지자인 그는 갑자기 환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눈을 들어 왕이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 들린 왕좌에 앉아 계시고 그 옷자락이 그곳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참된 본보기를 보았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분, 결코 나병에 걸리지 않으실 분, 결코 실패하실 수 없는 분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보아라. 네가 어떤 사람에게 소망을 두었지만 그 소망이 무너졌다. 네가... 이 사람을 본보기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실패했다. 이제 여기 위에 있는 나를 보아라. 나는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오늘날 그분의 종인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본보기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환상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또 다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주위에, 그분이 계신 성전에 하늘의 스랍들이 있었습니다. 그 단어를 찾아보면 성경에 한두 번쯤밖에 쓰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룹이 아니라 그룹 다음가는 존재입니다. 천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아니면서 천사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희생물을 불태우는 자들입니다. 희생물은 물론 죄인을 이끌어 들이고, 혹은 인도하여...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줍니다. 이 스랍들은 요구되는 희생물을 태우며... 그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 있을 때 스랍들이 성전 안을 날아다녔고, 성전 전체가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외쳤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오, 다시 말해 “여기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다. 여기 네 본보기가 있다. 여기 네가 바라보아야 할 왕이 계신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섯 날개를 가진 피조물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왜 날개가 여섯이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고 있었습니다.
먼저 이 피조물들이 하나님 앞에서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의 임무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희생물이 거기 놓여 있는 동안 그들은 밤낮으로 그분 앞에서 외쳤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여기서 한 가지를 주목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스랍들은 두 날개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왜 얼굴을 가렸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한 천사들도 그분 앞에서 얼굴을 가려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얼굴을 덮은 날개는 경외심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경외심이 없습니다. 경외심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술집 바에 발을 얹은 채 서서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부릅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참 끔찍합니다.
오늘 어떤 곳에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습니다. 거기 있던 여자는, 그 여자를 흉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제 눈에는 죽어 가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눈 밑이 헌 것처럼 보였고 주위가 온통 파랬습니다. 옷도 별로 걸치지 않은 채 달려와서 “무엇을 드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샌드위치와 버터밀크 한 잔 가져다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버번에 뭘... 어떤 것을 타서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제 말을 잘못 들으셨군요. ‘버터밀크’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아, 한잔 안 하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버터밀크를 주세요.”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손님, 뭐 좀... 저희는 밤에 이런저런 것을 드리는데요.” 저는 “저는 목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우리 가톨릭 신부님들은 여기에 오셔서 술을 드시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저는 가톨릭 신부가 아닙니다. 저는... 버터밀크 한 잔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신부가 들어와 술을 마신다면 교인들도 술을 마실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본보기가 있으니까요. 오, 우리가 얼마나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강단에서부터... 온통 대청소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필요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부패했는지요! 경외심도 없고 존중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경외심이 없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며 추잡한 농담을 합니다. 사역자들까지도 그렇게 합니다. 농담을 듣는 것쯤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역자들은 의로움과 거룩함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마땅히 가져야 할 신실함을 갖추고 나아오지 않습니다. 떠들썩하게 장난치며 지내다 보면 그 작은 신실함의 알갱이를 잃어버립니다. 아시죠. 거기에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시간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들어 있을 때에도 지켜보십니다.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분께서 계신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그분은 계십니다. 여러분의 눈길 하나하나와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 왔을 때 부르던 짧은 찬송이 있었습니다. 혼의 참된 거처로 가는 그 길을 따라 줄곧, 그대를 지켜보는 눈이 있네; 그대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이 큰 눈은 깨어 있네, 그대를 지켜보는 눈이 있네. 그 찬송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는 일, 심지어 생각까지도 아십니다. 한번은 제가 환상 가운데 있을 때 제 곁에 서 계신 어떤 분께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땅에서 들리는 네 목소리보다 하늘에서 들리는 네 생각이 더 크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다. 여러분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한다면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진실해야 합니다. 마음이 말입니다. 입은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던 다윗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는 “주께서 항상 내 앞에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서 항상 자기 앞에 계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경외심입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로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야 합니다. 시들지 않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저는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십니까? 이곳에 조금 더 머물러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사람들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그리스도인의 표입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푼다면 세리들도 같은 일을 하느니라.” 하지만 여러분은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도 친절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악을 행하려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그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심을 늘 마음에 두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악하게 대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선하게 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날개로 얼굴을 가린 것은 하나님 앞에 있었기 때문이며, 경외심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알지 못하고 한 번도 죄를 지은 적 없는 거룩한 스랍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특별한 덮개로 자기 얼굴을 가려야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얼굴을 숨겨야 한다면, 위선자는 그날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뒤로 물러난 사람은 그날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그날에 나아올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을 마주해야 합니다. 길은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제가 얼굴을 가릴 날개를 만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하십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자신의 아들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인류에게 주신 유일한 덮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날개로 자기 발을 가렸습니다. 발 아래로 날개를 드리웠습니다. 이것은 겸손을 나타냈습니다. 오,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서 사라진 말입니다. 그분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께서 방 안에 오셔서 성경에 행하시겠다고 하신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시며 분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버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앉아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밤 한 목사가 자기 교인 스물여덟 명을 데리고 와 앉아 있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칸소주 존즈버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들이 간질을 앓는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간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마귀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의사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지 모릅니다. 마귀입니다. 사람들이... 천을 감은 빨래집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발작을 하면 혀를 심하게 깨물기 때문에 그것을 아이의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올라왔는데, 아이는 강단 위에서 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조금만 흥분해도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서 제가 “모두 경외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여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지만 그 영이 소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에 작은 무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숙여 주시겠습니까? 순종하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받은 사명은 이랬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믿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네가 기도할 때 신실하다면.’ 머리를 숙여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돌아섰지만 그 영은 소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의 다섯 배나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배나 많았습니다. 이만 팔천 명이 거기 있었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그때 저는 “선생님,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신유를 그저 비웃고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교단의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제가 돌아보니 가엾은 소년이 목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붙잡으려 하며 그렇게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무언가 삼키려고 하며 계속 그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 죄 있는 무리 때문에 이 죄 없는 소년이 고통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었고, 저는 정직하게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간질을 앓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치유받았습니다. 이 죄 없는 아이가 고통받게 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이곳에 데리고 왔습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으로 말하노니, 이 마귀는 이 소년을 붙들 수 없다. 너는 떠날 수 있다. 불순종하는 자들이 계속 불순종하겠다면 그들에게 가도 된다. 하지만 이 소년에게서 나와라.” 저는 스물여덟 명과 그 목사가 간질에 걸려 바닥에서 이리저리, 이리저리 뒹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들은 지금도 그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니 경외심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제 집회에 참석해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자,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제게 최면을 걸려고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그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사람들은 그를 군부대에 데려가 병사들에게 최면을 걸고 개처럼 짖게 하곤 했습니다. 이제 저를 가지고 재미를 보려던 것입니다. 저는 한 강당에 있었고 사람들이 그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기도받을 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딘가에 악한 영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의심은 언제든 가려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에 그것을 찾아냈고 정체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 위에 어둠이 드리워진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저 그쪽으로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마귀의 자식아, 마귀가 왜 네 생각 속에 그런 짓을 하려는 마음을 넣었느냐? 그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제 안의 무언가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이곳에서 들어 내갈 것이다.” 그 사람은 아직도 마비되어 있습니다. 편지가 거듭거듭 왔습니다. “그에게 와 주십시오!” 저는 “제가 아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뿐입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 없이 행동한 결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을 무슨 우스갯거리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나, 어떤 사이비 집단이나 패거리쯤으로 생각하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흉내만 내는 일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심판하는 것이 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설교할 뿐입니다. 하지만 참된 성령, 성령의 참된 사도적 권능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주술사 같은 자들, 그런 마귀들이 들고일어나 도전할 때... 오, 우리가 그저... 그 일들을 말씀드리려면 이 주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성령께서 그 일을 행하지 못하신 것을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매번 행하십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겸손을 나타내려고 날개로 발을 가렸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기 싫어합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얼마 전 작은 박물관에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거기에는 몸무게 백오십 파운드인 사람의 몸을 분석해서 그 화학 성분의 가치가 얼마인지 적어 놓았습니다. 팔십사 센트였던 것 같습니다. 몸무게 백오십 파운드인 사람의 체내 화학 성분 말입니다. 칼슘이 좀 있고, 아마 닭 둥지에 뿌릴 만한 약간의 석회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몸속에 있는 것은 그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몸무게 백팔십사 파운드... 아니, 팔십사 센트 말입니다. 몸무게는 백오십 파운드였습니다. 젊은이 둘이 서서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존, 결국 우리가 그렇게 값나가는 존재는 아니구나, 그렇지?” 다른 친구가 “그런가 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젊은이들, 그건 사실이네. 화학 성분으로는 별로 값이 나가지 않지. 하지만 자네들 안에는 혼이 있어. 그 가치는 세상 백만 개와도 맞먹는다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팔십사 센트짜리를 잘 돌보려 하고 자랑스러워하면서, 오백 달러짜리 밍크코트로 감싸고 코를 하늘로 치켜들고는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압니다. 농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는 겸손이 없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고 사람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때로 교회에서 아주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만나 보십시오. 그들이 들어왔을 때 여러분의 옷차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여러분을 쳐다보며 수군거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이 그저 공언일 뿐, 실제로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참된 옛 신앙의 체험이 있다면 턱시도 차림의 사람이 작업복 차림의 사람을 끌어안고 “형제님”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습니다. 사실입니다. 무명옷을 입은 여자와 비단옷을 입은 여자가 서로 “자매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옷도 사람 자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이 천사들, 아니 이 스랍들이 자기 발을 가린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있었을 때를 보십시오.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있던 불기둥 곁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불기둥이 그리스도였으며 언약의 사자였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모세는 이집트를 버렸으며,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언약의 사자였습니다. 그분께서 모세 앞, 곁에 있던 불타는 떨기나무에 나타나셨을 때, 그 음성이 말했습니다. “네 신을 벗으라.” 발 말입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으라.” 모세는 신을 벗음으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어느 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로 그 불기둥이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을 때를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말했습니다. 어느 날, 요한복음 6장에서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반석에서 나온 물이니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라.”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보시오! 당신이 마귀 들렸고 정신이 나갔다는 것을 알겠소”라고 했습니다. 미쳤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내가 있느니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 하신 것을 봅니다. 이 불기둥이 육신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모습에서 오셔서, [녹음 공백.] ...아들의 모습으로, 이 속성 안으로 오셨을 때 말입니다. 세 속성,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을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 하셨고,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다소의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빛을 받고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불기둥이 아니었다면 그 유대인은 어떤 것에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거기 있는 빛을 보고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그가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는 예수라”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다시 불기둥이셨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있는 그는 흙바닥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겸손입니다! 쓰러져 아마 등을 대고 누운 채 위를 올려다보았을 것입니다. 그 불기둥이 거기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고 알았습니다. 당시의 위대한 스승 가말리엘 아래서 배운 교사였기에, 하나님께서 불기둥의 형태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셨음을 알았습니다. 그 불, 불기둥이 육신이 되어 그들 가운데 거하셨고 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 그리고 그분이 여기 계셨습니다. 여전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보다 조금 앞서 모든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침례자 요한을 보게 됩니다. 모든 선지자가 그분께서 오실 것을 말했지만 요한은 “이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그분을 소개했습니다. 요한은 물에 서서 침례를 주며 말했습니다. “성전에서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없어지고 한 사람이 희생물이 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를 보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요한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도 동양에서는 그렇지만, 아들이 보통 아버지의 직업을 이었습니다. 그러니 보통의 경우라면 그도 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이 수태했을 때 그 아기는 태 안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친척 엘리사벳도 수태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러 달려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벳은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아기가 여섯 달 동안 움직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리아가 오는 것을 보고 달려 나가 맞으며 끌어안았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자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네, 저도 아이 어머니가 될 거예요.” “아, 너와 요셉이 결혼했구나.” “아니요, 아니에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 어머니가 된다고?” “네. 성령께서 저를 덮으셨고, 제게서 태어날, 제 안에 있는 그 거룩한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람의 입술에서 “예수”라는 말씀이 처음 발해지자마자, 한 번도... 아직 생명이 없던 아기가 어머니 태 안에서 생명을 받아 기뻐 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죽은 아기에게 생명을 가져다준다면, 다시 태어났고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공언하는 교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러니 이 아이는 어떤 아이가 되어야 했겠습니까? 그는 오시는 메시아를 알려야 했습니다. 말라기 3장은 그가 그렇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라.” 만일 그가 신학교에 내려갔다면, 거기 있는 어떤 사역자들이 “요한, 자네는 메시아를 알려야 하네. 여기 조 아저씨나 짐 신부, 혹은 다른 분을 보게. 이분이 메시아가 될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는 걸 알지 않나. 이분일세, 요한”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광야로 가서 하나님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좋은 신학교입니다. 그의 임무는 어떤 사람이 그를 가르치고 큰 사교 모임에 데리고 다니도록 맡겨 둘 수 없을 만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나와서 설교할 때 메시아께서 이미 땅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자들이 바빌론에서 내려다보다가 세 별이 일렬로 선 것을 보고 메시아께서 이미 땅에 계신다는 표적임을 알았던 것만큼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교회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답이 없습니다.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보듯, 요한은 메시아를 알려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는 오직 한 표적을 통해서만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메시아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길은 언제나 그것뿐입니다. 성경적인 표적을 통해서입니다. 요한은 살폈습니다. 거기 서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아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신발을 만질 자격조차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지만 그분은...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서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오, 제가 흥분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아닙니다. 다만 그 일을 생각하면 참 좋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계십니다.” 저도 오늘 밤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계십니다. 마지막 날들에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위대하신 성령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그분의 표적을 봅니다. 그분께서 여전히 메시아의 표적을 행하시므로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압니다. 그분께서 그들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의 신발을 만질 자격도,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분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 가운데서 평범한 한 사람이 걸어 나왔습니다. 요한은 눈을 들어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그분께 표적이 따르고 있었기에 저는 그분을 알았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땅에서 가장 위대한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서 있습니다. 요한이...
저에게 미셔너리 침례교회에서 안수해 준 로이 데이비스 박사가 생각납니다. 그가 “빌리,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라고 말했을 때 말입니다. 요한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는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메시아와 그분의 선지자, 그 시대의 중심이며 성경의 중심인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요한은 겸손히 말했습니다.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이렇게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그러자 요한이 그분께 허락했다고 했습니다. 데이비스 박사의 말이 기억납니다. 그분이 이 자리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박사님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은 “요한은 침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주셨고, 그 뒤에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주었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도무지 맞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께서 가까이 계실 때, 환상 가운데서 그것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요한과 예수님께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 계셨습니다. 말씀이 임하는 선지자였고, 말씀이 그 선지자에게 오신 것입니다. 아멘. 그분께서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그분이 어린양이심을 알았고, 어린양은 바치기 전에 씻어야 했습니다. 아멘. 그래서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선지자는 말씀이었고, 그 말씀이 그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회중 가운데서 방언 메시지와 통역이 주어진다.] 아멘.
선지자 요한입니다. 말씀은 그분의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정확히 선지자에게 오셨습니다. “합당하니라.” 여기서 ‘마땅하다’는 말은 “우리가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오, 여기서 잠시 주제를 벗어나, 우리가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시간이 왔습니다. 무언가... 우리는 모든 의를 성취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제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십시오.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친구 여러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의식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의식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작은지 의식하십시오. 여러분은 작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없이도 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그분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그분 없이 할 수 없지만 그분은 우리 없이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자신의 손안에 두실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십시오. 이사야를 찾으셨을 때, 예레미야를 찾으셨을 때 말입니다. 그러고는 어느 날... 삼손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힘은 하나님께 드렸지만 마음은 들릴라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경외심과 존중하는 마음과 여러분 자신 전부를 드려야 합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스랍들은 그분 앞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경외심으로 얼굴을 가리고, 겸손으로 발을 가리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날 수 있었습니다. 행동하게 하는 두 날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자신이 어떤 종을 준비하셨는지 선지자에게 보여 주십니다. 경외하고 겸손하며 행동하는 종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이들 말입니다. 이사야는 마음이 높아져 교만으로 쓰러진 히스기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 있는 종, 그분의 종들은 경외하고 겸손하며 행동합니다. 그분의 종들은 그런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경외함과 겸손을 입고 끊임없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경외하고 겸손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밤에 말씀드린 우물가의 여인과 같습니다. 그 여인의 마음에는 미리 예정된 작은 씨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거기에 번쩍 비치고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자, 오래지 않아 행동에 나섰습니다. 손에 들었던 물항아리까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빨리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메시아를 찾았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도시로 들어갔고 곧바로 행동에 나서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다가 그날 아침 물가에 앉아 있던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배를 빌려 물가에서 조금 밀어 내어 사람들에게 설교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한 번 끌어당기라. 내리라.” 시몬은 말했습니다. “저는 어부입니다. 달과 여러 징조가 언제 알맞은지 압니다. 고기가 언제 몰려다니는지도 압니다. 저는 이 호수에서 태어났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따라,” 바로 그것입니다.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오, 여러분은...
우리는 이런 일들을 계산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산해 낼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계십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식으로 아는 분도, 교육으로 아는 분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겠습니다! 거기에 고기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주님께서 ‘내려 보아라. 거기에 고기가 있다’고 하신다면 믿음이 거기에 고기를 있게 할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곳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몸이 아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기도받을 줄마다 다 서 보았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나아가 받겠습니다. 제가 그분 앞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겸손과 신실함과 경외심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그물을 내리십시오. 그것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어부였기에 배 한가득 고기를 잡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았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들을 낚으리라”라고 하시자 곧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어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고 “주여,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주님 앞에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도 똑같이 했습니다. “저는 죄 많은 입술을 가진 사람이며 죄 많은 백성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 그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었습니까! 베드로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주님께 자기를 떠나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야.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들을 낚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주 빨리 행동에 나섰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가 행동에 나서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행동에 나서 사방에 그분의 명성을 퍼뜨렸습니다. 누군가 와서 “누가 너를 고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제사장이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누가 고쳐 주었는지 말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인정하면 회당에서 쫓아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가엾은 아들에게 떠넘겼습니다. “그가 나이 들었으니 그에게 물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저를 고쳐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 우리는 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죄인이다. 그에게 찬양을 돌리지 말고 하나님께 모두 돌려라. 우리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 눈멀었던 사람은 그들에게 아주 좋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요. 여러분은 오늘날 영적 지도자들이신데, 저는 태어날 때부터 눈멀었던 사람이고 이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는 말씀이군요. 그것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도 같은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마지막 날에 자신의 교회 위에 임하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신데, 그들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받은 사람에게는 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제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전에는 눈이 멀었는데 지금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전에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제게 무언가 일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홀리롤러”라고 부르든 무엇이라 부르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그것이 삼십여 년 전에 저를 구원했습니다. 갈수록 더 좋아지니 저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완전히 미쳤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예전보다 이쪽이 더 좋으니, 지금 이대로 있게 해 주십시오. 이쪽이 기분도 더 좋고, 더 잘 살아갑니다. 더 많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즉시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방에 그분의 명성을 퍼뜨렸습니다.
오순절의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 것을 보자마자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약속된 것을 보내노라.” 성경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머물라,”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서 기다리라.” 처음 기도받을 줄에 섰을 때나 처음 한 번 기도받았을 때로 끝내지 말고,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거기 머무르십시오. “때까지”입니다. 하루나 이틀이나 십 년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 머무르십시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아주 빨리 행동에 나섰습니다. 거리로 나가 외치고 춤추며 술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다른 언어들로 말했습니다. 얼마나 요란했는지요! 아주 빨리 행동에 나섰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들어가 문을 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린 뒤,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 친구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까!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압니다.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본 것들은 우리 모두를 행동에 나서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행동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먼저 경외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행동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에는 사랑이 불타올라, 잃어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가 아는 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 전에 교회가 받을 맨 마지막 표적까지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저 광야에서 보였던 바로 그 불기둥, 사도 바울을 쓰러뜨렸던 바로 그 불기둥, 사진까지 찍히고 모든 것이 드러난 바로 그분께서 이곳에서 그때 행하셨던 바로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동일한 메시아이십니다. 호박 덩굴의 생명을 수박 덩굴에 넣으면 호박이 열릴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생명을 배나무에 넣으면 포도가 열릴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아는 이것, 전 세계 수천 명이 알고 과학이 증언하며 곳곳에서 사진이 찍힌 이것이... 지금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참입니다. 정말 참됩니다. 지금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안에 있었을 때 나타냈던 것과 같은 생명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분의 교회에서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생명을 나타낸다면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바로 그 불기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며, 그 불기둥이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온전히 입증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눈먼 사람이 보고, 죽은 사람이 일으켜집니다. 마음의 생각은 감출 수 없고 그대로 밝혀집니다. 그분께서 하셨던 바로 그 일들입니다.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메시아이십니다! 메시아, 하나님, 성령,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오순절 교회는 그것을 비판하려고 하는 대신, 어디서나 겸손과 사랑으로 행동에 나서서 잃어버린 채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경외심을 가지며, 이 스랍들처럼 경외함과 겸손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분명히 입증되었고 마지막 날들에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불타 버리기 직전인 지금, 그것이 여기 있습니다. 그분이 오심을 알리는 그 표적은 이제 그분의 오심이 아주 가까웠음을 입증합니다.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교회가 휴거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표, 짐승의 표는 그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배교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 잠깐만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는 방식입니다. 보십시오.
말씀 하나하나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행동하게 해야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잃어버린 모든 혼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이 그들을 데려와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이 닫히고 더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오, 그들이 정신적으로 고무되고 흥분해서 외치고 펄쩍펄쩍 뛰며 이것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자던 처녀가 기름을 사러 왔을 때는 얻지 못했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의 역사를 통틀어 장로교인들과 루터교인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이 오순절 메시지로 오려고 하는 이런 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들이 사러 왔을 때 신부가 들어갔다.” 지혜로운 처녀가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기름을 얻지 못했습니다. 얻지 못했습니다. 그뿐입니다. 성경에 따른 말씀입니다. 이 표적들과 다른 일들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그분의 오심을 위해 정확히 제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일곱째 경점에 그분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첫째 경점에,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경점에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경점에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보라, 신랑이 오는도다!” 일곱째 교회 시대가 바로 그 경점, 그것을 지켜보던 시대입니다. 지금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이며, 그 끝에 와 있습니다. 아멘. 오, 그것은... 주님의 성도들아, 어찌하여 깨어나지 않습니까? 끝이 가까운데 어찌하여 졸고 있습니까? 하지만 라오디게아 시대의 교회는 미지근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부자이며 재산을 불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벌거벗고 눈멀고 가난하고 비참한 것을 알지 못하며, 모르고 있느니라.”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의 끝, 역사의 끝, 문명의 끝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도 볼 수 있습니다. 거리를 내다보십시오.
저를 이곳까지 태워 준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구별하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이 근처에서 제정신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타지 사람인 줄 압니다.” 여러분 도시의 택시 기사 한 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나 그렇습니다. 모든 것의 끝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며 온갖 악한 짓을 하는지요. 세상은 뒤틀려 버렸습니다. 거리를 내다보십시오. 한번 보십시오. 오, 어디를 가나 그렇습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어디나 그렇습니다. 현대판 소돔입니다. 불에 타는 것 말고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뿐입니다. 깨끗이 치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법이 그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옥수숫대가 수명을 다하면 없애야 합니다. 꽃이 수명을 다하면 죽어야 합니다. 문명은 그 수명을 다했습니다. 교회 시대도 수명을 다했습니다. 교단들도 수명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연합하는 때입니다. 국제연합이 있고, 교회들이 연합하며, 힘을 합쳐 일합니다. 무엇의 표적입니까?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가 연합하는 표적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 그림자와 모형입니다. 모든 것이 연합하려 합니다. 분명 표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부와 연합하려 하시며, 하늘에서 혼인 만찬이 열리려 합니다. 그러니 그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표적들을 볼 때 교회는 힘차게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오, 세상에! 사방에 있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표적입니다. 오,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옛 선지자 이사야처럼, 우리도 스스로 높아진 사람들이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봅니다.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아예 그 안에 들어 있지도 않소”라며 일어서는 이런 조직들이 어떻게 되는지 봅니다. 그들이 무엇을 잃습니까? 죄의 나병, 곧 불신에 걸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던 손을 놓칩니다.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말씀을 붙들던 손을 놓고 그것을 신조와 맞바꿉니다. 무엇을 얻습니까? 나병투성이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옛날 웃시야처럼 기름부음 받은 직분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면서, 가진 것은 박사 학위 같은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사 학위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 그분을 믿을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교육을 시켜 주교와 다른 온갖 사람들, 추기경이며 그 밖의 직책을 맡게 했습니다. 육적인 교육을 받고 하나님의 직분을 맡도록 교육한 것입니다. 그 직분을 맡으려면 성령침례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마지막 날들의 이 시대의 표적으로 우리 가운데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마음이 높아져, 그저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환상이 선지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보십시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하는 그릇이었습니다. 선택받아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마침내는 톱에 켜져 여러 조각으로 잘리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선지자가 하늘로부터 온 이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을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그 질서를 보았을 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하고, 크고 뒤로 돌린 옷깃이나 어떤 특별한 옷을 입어서 거룩하고 경외심 있어 보이려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거룩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물론입니다. 거룩한 교회나 거룩한 산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사람들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산에 계셨다는 뜻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곳을 거룩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거룩함을 가져옵니다. 제 거룩함도, 여러분의 거룩함도 아닌 그분의 거룩함입니다. 그분의 임재가 거룩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경외함과 겸손으로 자신을 덮으며 “주 예수님, 저를 주님의 왕국으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함이 아닌 그분의 거룩함입니다. 성령입니다!
선지자는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니이다”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선지자가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도 그런 환상이 다시 필요합니다! 그가 저 위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이 깨끗하게 하시는 권능을 보았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스랍 하나를 보내셨고, 스랍은 부집게를 집어 제단에서 뜨거운 숯을 취해 손에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와서 이사야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그의 입술에 대며 “네 불법이 사라졌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또 하나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이 말을 좀 덧붙이겠습니다.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적절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지자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은 신학이나 어떤 책이 아니라 불로 하신다는 것을 주목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불, 곧 성령과 불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신조의 선언이나 책, 혹은 배워야 하는 어떤 것, 수많은 기도문 같은 것으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단의 불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자신의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 선지자들을 깨끗하게 하신 방법도 그랬습니다. 백이십 명이 다락방에 있을 때 성령께서 내려오셨고 불의 혀들이 그들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깨끗해져 섬길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깨끗하게 하십니다. 공부해서 문학사나 신학박사나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거룩한 불을 받는 것입니다. 그 불이 입술에서 거짓말을 없애고, 속에서 육적인 것을 제거하며, 그런 것들, 세상의 찌꺼기를 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를 그 안에 두어 그 사람을 통해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은 거룩한 불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으로 깨끗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불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가 어떤 모습인지 보이십니까? 준비를 갖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불법을 제거하셨습니다. 그가 고백하고 자신을 낮춘 뒤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제 말씀을 따라오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압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하나님 앞에 있으며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심을 믿으십니까? 물론 여기 계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녹음 공백.]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가...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좋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신다면 그분의 영이 여기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자기 생각을 치워 버릴 수 있다면 됩니다. 이것에 아무 생각이 없어서 다른 목소리가 이것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울 수 있다면 됩니다. 거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자아를 버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을 버리십시오. 자기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게 하십시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면,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지금 그분을 믿고 과연 그런지 보십시오.
저는 여기 앉아 있는 이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제 앞에 계신 분입니다. 기도 카드는 없으시군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거기 앉아 계신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영적인 문제입니다. 마음이 몹시 뒤엉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계십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제가 한 그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다 끝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저 뒤에 앉아 이분 쪽을 바라보고 계신 흑인 여성분, 심장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치유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그리고... 동일하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손을 들고 계신 저 남자분, 저 백인 남자분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처음 보는 분입니다. 기도 카드나 그런 것이 있으십니까? 그저 여기 앉아 계신 분입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목에는 종양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까?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저를 믿으십니까?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 손녀에 관한 일입니다. 그 아이의 손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까? 잘 연결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이곳 사람이 아니시군요. 코네티컷에서 오셨습니다. 성은 윌슨입니다. 이름은 아트입니다. 아트 윌슨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실입니까?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 뒤에 앉은 여성분이 있습니다. 흑인 여성분인데, 노란색 같은 코트를 입으신 것 같습니다. 네, 연두색입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기도 카드가 없으십니까? 없으시군요.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인종입니다. 하지만 부인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바로 부인입니다. 네.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를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종양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일도 있습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친구에 관한 일인데, 신장병이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도전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보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보십시오. 먼저 자신을 낮추었고, 그다음 불이 그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불이 그를 깨끗하게 하고 나니 이제 그는 깨끗해진 이사야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누가 나를 위하여 갈까?” 하시는 것을 듣자 그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오, 세상에! 불붙은 숯이 선지자에게 닿아, 그를 더없이 깨끗하게 하였네, 하나님의 음성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자, 그가 대답했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아멘. 그것은 성령께서 깨끗하게 하신 이사야가 받은 부르심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신학교에서 얻는 경험도, 책에서 얻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불로 깨끗하게 되었고 행동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는 것을 보고 자신도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제 교회가 행동에 나서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본으로 보여 줄 때입니다. 믿으십니까? 지금 자신의 모든 잘못과 모든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기 원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젊은 형제, 피아노를 쳐 주십시오.) 불붙은 숯이 선지자에게 닿았네! 우리 일어섭시다. 시간이 늦어지니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머리를 숙여 주십시오. 그가 하나님을 본 뒤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또다시 그것이 여기 있습니다. 아멘. 이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불붙은 숯이 선지자에게 닿아, 그를 더없이 깨끗하게 하였네; 하나님의 음성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자, 그가 대답했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말씀하소서, 내 주여, (이제 손을 드십시오) 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곧 주께 대답하리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대답하리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오, 지금 수백만이 죄와 수치 속에서 죽어 가네, 여러분의 거리를 바라보십시오. 오, 그들의 슬프고 쓰라린 울부짖음을 들으라; 오, 서두르라, 형제여, 서둘러 그들을 구하라; 속히 대답하라,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소서, 내 주여, (이제 진심으로 하십시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곧 주께 대답하리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대답하리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흥얼거리며 손을 가슴에 얹읍시다. 고백하십시오. “주님, 저는 입술이 부정한 남자입니다. 저는 입술이 부정한 여자입니다.” 참된 고백을 합시다. 그러면 참된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깨끗해지십시오. 보십시오. 선지자는 먼저 깨끗해져야 했습니다. 불이 그에게 닿자 그가 행동에 나섰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열심을 주십시오. 주님, 제게 없는 것을 제 안에 넣어 주십시오. 주님의 사랑과 불을 제 안에 넣어 주신 다음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이제 고백하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내 주여, 오, 말씀하소서, 제가 곧 주께 대답하리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대답하리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브래넘 형제님이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를 더없이 깨끗하게 하였네, 하나님의 음성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자, 그가 대답했네, “주여,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말씀하소서.”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그분 앞에서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하며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모든 죄인, 모든 성도, 이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저를 위한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여기 그분의 임재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겠다고 하신 일을 하시며 여기 계십니다. 우리가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그 표적,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음악이 부드럽게 흐르는 동안 우리의 잘못을 고백합시다. “주님, 저는 어차피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마음에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 먼저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성령을 보내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 앞에 있음을 압니다. 이사야가 주님을 보았듯이 저도 주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봅니다. 이곳은 가득합니다. 이제 연기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하고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주 하나님, 우리가 이 일을 생각할 때 스스로 높아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봅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를 위한 본보기였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겸손과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지금 이 회중과 저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안에서 주님을 닮지 않은 것을 모두 제거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제 안에 사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영께서 으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 온전히 사셔서 더 이상 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서 걷고 말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이 교회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를 함께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질병을, 죄를, 불신을, 의심을, 그 모든 것을 없애 주십시오. 이제 성령께서 제단의 불붙은 숯, 오순절의 새로운 불꽃을 가지고 오셔서 이곳의 모든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대답하리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지금 새롭게 그리스도께 삶을 헌신했고, 그분 앞에서 자신을 헌신하기 원하며 그렇게 하려는 모든 분들! 제가 본 것들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한다면 저는... 지금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을 다 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압니다. 그것이 사방에 나타나고 있지 않다면 제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이곳에 서서 이런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새로운 오순절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저 자신을 낮추십시오. 얼굴을 가리고 발을 가리며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몸을 굽혀 고백하고 믿으십시오.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우리가 “말씀하소서, 내 주여”를 부르는 동안 손을 드십시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이제 기도하십시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곧 주께 대답하리다; 오,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내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대답하리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