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으라. 머리를 숙이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위대하신 전능자께 오늘 저녁 다시 감사를 아룁니다. 우리가 살아서 이곳에 함께 모여 오늘 저녁 아버지를 경배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는 바로 그 목적으로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인 형제자매로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하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 삶의 계획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계시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에 따라 걷기를 원합니다. 주님, 기초부터 시작하셔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시어, 아버지를 섬기기에 합당한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우리 힘으로는 이것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표범이 제 반점을 핥아 없앨 수 없듯이 우리도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표범이 제 힘으로 애써 보아야 반점이 더 선명해질 뿐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샘이 있습니다.” 그것이 표범의 반점을 깨끗하게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저녁 우리 각 사람이 그 샘 아래로 잠기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의 모든 의심, 이 시간들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에 대한 모든 의심을 뒤에 남겨 두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면서 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오직 믿으라” 대신, 손을 들고 “이제 믿습니다”라고 부릅시다. 자, 모두 함께요.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제 믿습니다. 자리에 앉으시는 여러분께 주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 참으로 알맞은 찬송입니다. 하나님께 구한 다음에는 “이제 믿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분께 구한 다음에 말입니다.
오늘은 제게 참 힘든 하루였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면담을 기다리는 분들이 아마 일흔다섯 분쯤 되는데, 그분들을 다 만날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오늘은 다른 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와 달라는 전화가 네 통이나 왔습니다.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한 통, 휴스턴에서 한 통, 켄터키주 캠벨스빌에서 한 통,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한 통이었습니다. 위급한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나오기 직전에는, 일요일 저녁 예배가 끝나는 대로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서부 해안 가까운 어느 곳까지 가서 장례 설교를 해 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 모든 곳에 다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이쪽으로 연락해 온 것만 그렇습니다. 그러니 집에 있는 사무실에는 얼마나 많이 오겠습니까? 그분들은 좋은 분들입니다. 그중 많은 분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분들은…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으니,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할 뿐입니다. 신경이 곤두서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루기도 하지요. 어떤 지경에 이르도록 긴장이 고조되는 것입니다.
영감을 받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신경증 환자로 여겨진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선지자들 가운데 신경증 환자로 여겨지지 않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에게조차 사람들이 “당신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정신이 이상하다는 뜻이지요. 바울도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 그 길을 따라 나는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이단, 곧 “미쳤다”는 것입니다.
시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영감을 받으려고 보통 사람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미국에 유명한 민요들을 남겨 준 스티븐 포스터가 생각납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생각 속에는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한때 ‘나의 옛 켄터키 집’에서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에 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그 유명한 민요를 쓰고 나면 밖으로 나가 술에 취하곤 했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 영감에서 벗어나 내려오다가, 하인을 불러 면도칼을 가져오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저 위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괜찮고, 이 아래에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 그 영감에서 벗어나 내려올 때입니다. 그런 분별의 기도 대열을 한 차례 마치고 나면 밤에 저를 데리고 걸어 다니려 애쓰는 집회 담당자나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오, 이런, 모든 것이 환상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보든 그것이 정말 환상인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그런데 바로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것을 끌어내는 분들입니다.
오늘 목사님께 그것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서커스를 보려고 담에 난 구멍을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아이가 두 손으로 몸을 끌어 올려 들여다보면, 기린이나 낙타 같은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내려옵니다. “또 무엇을 봤니?” 하고 물으면, 다시 올라가 보느라 거의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 누군가 와서 아이를 안아 올려 주면서 “자, 이렇게 이어지는 거란다. 화환 장식이 여기서 시작해서 이쪽으로 이어지고 저쪽으로 나오는구나” 하고 말해 준 다음 내려놓는다면, 아이는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이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은, 갱년기에 있던 그 작은 여인은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의사들도 피를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분께서 돌아서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내게서 효능이 나갔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을 끌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그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하는 특권을 누린 것입니다.
하지만 나사로가 죽었을 때는 달랐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얼마 동안 떠나 계신 뒤에, 사람들이 나사로를 위해 기도하러 와 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가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가지 않으셨습니다. 미루시고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마침내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잠들어 있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몸이 좋아지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그들이 알아듣는 말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 이미 그분께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아버지가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얼마나 오래 걸릴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하셨을 때 그분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미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다만 곁에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것을 말하나이다.” 그분은 무슨 일을 하실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분에게서 효능이 나갔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신 것이고, 앞의 경우는 여인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환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환상은 하나님에게서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것은 믿음, 그분이 약속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여러분 자신이 행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곳으로 가라는 환상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이 올 때에는, 몇 시간씩 계속될 때도 있지만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환상입니다. 그러고 나면 돌아와서 제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네”를 쓴 사람은 윌리엄 쿠퍼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이름이 맞을 것입니다. 얼마 전 런던에서 그의 무덤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안타까워서 조금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시인이었습니다. 영감의 경지로 올라가 그 찬송들을 쓰고는… 그런데 거기에서 내려오자, 그는… 마부를 불러 강을 찾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안개가 너무 짙어서 강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갈피를 잃었던 것입니다. 영감의 경지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친구여,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강 저편에 참으로 한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보려면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그 나라에 가게 될 것을 압니다. 그것이 우리의 위대한 소망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들에게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매일 저녁 회중 가운데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그런데 내일 저녁에는 집회 순서를 바꾸려고 합니다. 병자들 가운데 그저 기도만 받고 싶은 분, 그냥 기도를 받고 싶은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목사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빌리를 조금 일찍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분 모두에게 기도 카드를 드린 뒤,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 지나가실 때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분별의 대열에서는 모든 분을 다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저를… 사람들이 저를 데리고 나가야 할 것이고,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인 한 사람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댔는데도…
그분은 신성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여인 한 사람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댐으로 그분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셨다면,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리라” 하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한 번만 하고도 회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한 번조차도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킹제임스 성경에는 “더 큰”이라고 되어 있지만, 찾아보면 정확한 말은 “더 많은”입니다. “더 많은”입니다. 누구도 그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자연을 멈추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교회가… 그때는 하나님 전체가 한 사람 안에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그 큰 불기둥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로 올라가신 뒤, 오순절 날 이 불기둥의 형태로 다시 오셨습니다. 자신을 나누시어 불의 혀들이 각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분의 교회 가운데 나누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함께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도 함께 하나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위에 계셨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 언제나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세 가지 나타나심, 속성, 직분,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처럼 말입니다. 언제나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위에 계셨던 하나님께는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계신 산에만 닿아도 창에 찔려야 했습니다. 아직 죄를 위한 제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후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손으로 만졌노라”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디모데전서 3장 16절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시고 들려서 영광으로 들어가셨느니라.” 자, 그것은 우리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위에 계셨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 이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부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 안에 부으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그러니 줄곧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도 같습니다. 교회는 같은 영으로 그분의 일을 이어 가도록 정해졌습니다. 같은 영이 없이는 같은 일을 이어 갈 수 없습니다. 같은 영이 그 일을 이어 갑니다.
여러분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참 좋은 분들이라서 제가 매일 저녁 시간을 넘기게 됩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온 마음으로 우리가 마지막 때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마음에 있는 신실함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 것을 짓거나 대단한 일을 벌이거나 높은 첨탑 같은 것을 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믿습니다.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합시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면 오늘 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아주 큰 것을 갖는 일을 허락한 적이 없고, 성령께서도 제가 그러기를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큰… 물론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은 괜찮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전국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방송 같은 것을 하려면 사람들에게 돈을 간청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까요. 라디오 방송도 괜찮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게 맞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랬다가는 걱정하다가 죽고 말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평생에 한 번 헌금을 걷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헌금을 걷으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곤란한 처지에 빠져서 거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갚을 빚이 좀 있었고, 저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자에 월급을 몽땅 쏟아부어도 도저히 꾸려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태버내클에서 한 번도 헌금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 푼도 받지 않고 십칠 년 동안 목회했습니다. 아내에게 “아무래도 해야겠어요. 가서 헌금을 좀 걷어야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하는지 볼게요” 하고는 가서 앉았습니다. 그날 저녁에… 참 사랑스러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무엇을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갚아야 할 돈이 좀 있습니다. 육 달러쯤 필요합니다. 제게는 그 돈이 없습니다. 정말 없는데, 갚을 기한이 토요일입니다. 갚을 돈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십 센트쯤 있는 분이 조금씩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두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쪽에 한 할머니가 앉아 계셨는데… 집사님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는 헌금 접시조차 없어서 제가 “제 모자를 가져오셔도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가서 제 모자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저쪽을 보니 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작은 체구의 연세 많은 자매님이… 옛날 남부의 어머니 같은 분이셨는데, 위에 똑딱이 잠금장치가 달린 작은 손지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그 지갑을 여셨습니다. 오, 이런!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 돈은 도무지 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냥 농담한 겁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하려던 말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헌금을 걷는 데 가장 가까이 가 본 일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오시곤 하던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아마 다윗의 집이라는 단체인가 어디에 속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길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낡은 자전거를 한 대 주셨는데, 그것은 타락해 있었습니다. 아니, 타락한 게 아니라 그저 낡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제 할 일은 잘해 왔겠지만, 하여튼… 그래서 저는 잡화점에 가서 이십 센트를 주고 페인트 두 통을 샀습니다. 자전거에 칠을 해서 육 달러에 팔았습니다. 그러니 헌금을 걷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일이 가장 가까이 갔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만일 제가 온갖 큰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데 성령께서 어느 작은 교회로 부르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을 유지하려고 하루에 수백 달러씩 필요하다면 말입니다. 그분들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더 많이 모시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로 부르시든, 어디이든, 사람이 열 명 있든 아니면… 저는 한 번에 오십만 명에게 설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때가 되면 누군가가 그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와서 “주님께서 형제님이 어디에 가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그 비용으로 쓰실 수표가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기를 좋아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여러 곳으로 다니는 데 관한 것입니다. 제 집회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저처럼 가난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분들과 똑같이 지내고 싶습니다. 목회자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다니면서, 수만 달러를 이쪽저쪽으로 마구 쓰고 있는데, 어떤 가난한 여인은 자루를 등에 지고 끌면서 하루에 삼 달러쯤 벌려고 목화를 따고 비계 많은 베이컨과 옥수수빵을 먹는다면, 그것이 옳아 보이겠습니까? 아니요,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땅을 소유하셨지만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그분은 우리의 본이셨습니다. 그분은 마땅히 그러셔야 하는 모습 그대로이셨습니다. 제가 그런 일을 정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해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으니 저는 큰일을 시작하려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차피 여러분이 정말 큰 것을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크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크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렇게 지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잘 읽지 못하고 때때로 발음을 틀리기도 하지만, 그 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번은 포트웨인에서 설교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성회에서 그 기사를 실었고, 그 뒤에는 『후즈 후』에도 실렸습니다. 그 어린 소녀의 이야기 말입니다. 십 년쯤 전에 읽어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는… 눈 수술을 받고 시력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아이를 제게 데려왔는데, 성령께서 그 일에 관해 전부 말씀해 주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성경이든 무엇이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후즈 후』에 그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의학이나 그 밖의 여러 분야를 다루는 『후즈 후』라는 책, 가장 권위 있는 책 말입니다.
그로부터 이틀쯤 뒤 저녁에, 폴 레이더가 “오직 믿으라”를 썼던 뒤쪽 자리로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거기 앉아 들려오는 그 찬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아주 많이 받은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그가 뒤로 와서 “브래넘 씨,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그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고 “몇 가지를 바로잡아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문법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저도 압니다. 저는 칠 학년까지만 학교에 다녔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열 명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몸이 약하셨고 저는 일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그것이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습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하지만 주님을 섬기게 된 뒤로는 그것을 더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지만 당신의… 저 밖에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어젯밤에 보니 당신이 ‘이 강단 앞으로 나오시는 여러분은 모두’라고 하시고는 ‘내려가…’라고 하시더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데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저는 달리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자 그가… 저는 “그게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강단’은 그렇게 발음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발음해야 합니다. ‘강단’을 그렇게 발음하시면 회중이 당신을 더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말이 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거꾸로 빗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형제님, 형제님과 의견을 달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단’을 이렇게 발음하든 저렇게 발음하든, 저분들은 상관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 안에 있는 삶을 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멘. 그 작은 체구의 사람이 “하지만 당신은 성경을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저는 그 성경의 저자를 아주 잘 압니다. 그분께서 제게 복을 주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렇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좀 일찍 오십시오. 조금 전 택시를 타고 올라오면서 보니, 사람들이 줄을 지어 실망한 채 이곳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울고 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기도 카드를 받으실 수 있도록 되도록 일찍 오십시오. 이제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그 저자께 잠시 말씀드립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것은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말씀의 물로 깨끗하게 된다”고 읽습니다. 구약에서 온 회중이 암송아지, 붉은 암송아지를 끌어다가 죽이고 불태웠던 일을 압니다. 그 재는 분리의 물을 만들기 위해 뜰 밖에 보관했으며, 그것을 다루는 손은 깨끗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간구합니다. 이 분리의 물, 우리를 죽음에서 분리하여 생명으로 옮기는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 안에 올바르지 못한 것이 무엇이든 보이신다면, 오늘 저녁 이 분리의 물로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아버지 앞에 서서 자신에 대하여 죽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그것을 보내신 목적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책에서, 여섯째 봉인에 관한 부분을 조금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2절부터 읽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적어 놓은 성경 구절들 가운데 또 하나의 짧은 인용으로 히브리서 12장 25절부터도 읽고 싶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 요한계시록 6장 12절입니다. 그분께서 여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보니, 보라, 큰 지진이 나며 또 해는 머리털로 짠 상복같이 검게 되고 달은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강풍에 흔들릴 때에 설익은 무화과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고 … 하늘은 두루마리가 합쳐져서 말리는 것같이 말려 떠나며 모든 산과 모든 섬도 그것들의 자리에서 옮겨지더라. 땅의 왕들과 위대한 자들과 부자들과 … 총대장들과 용사들과 … 모든 남자 노예와 모든 자유로운 남자가 … 동굴들과 … 산들의 바위들 속에 숨고 산들과 바위들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왕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기라.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왔으니 누가 설 수 있겠느냐?
이제 히브리서 12장 25절부터입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말한 자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더더욱 피하지 못하리라. 그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흔들었지만 이제는 그분께서 정하여 이르시되, 참으로 내가 땅뿐만 아니라 하늘들도 다시 한 번 더 흔드노라, 하셨느니라. 다시 한 번 더, 라는 이 말씀은 그분께서 흔들릴 수 없는 그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만들어진 것들을 제거하듯 흔들리는 그것들을 제거하심을 겉으로 드러내 보여 주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고 있으니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에 의거하여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그분께서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태워 버리는 불이시니라.
이제 이 말씀에서 짧은 주제를 하나 이끌어 내고 싶습니다. 주제라고 불러도 된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내일 저녁에는 기도 카드를 받으러 일찍 오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 카드를 가진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하는 대열을 세우겠습니다. 오늘 저녁 제 주제는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입니다. 아주 특이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빅 형제님, 이 존경스럽고 고결한 그리스도의 종과, 또 제 소중한 친구인 조셉 형제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와 큰 특권을 누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식사를 했는데, 제게는 ‘디너’, 곧 점심 식사였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점심을 ‘런치’라고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디너라면, 아니 오늘 저녁 식사를 ‘디너’라고 부르고 낮에는 ‘런치’, 아침에는 ‘브렉퍼스트’라고 부른다면, 제가 저녁 식사라고 부르는 ‘서퍼’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뭔가 하나 빠진 기분입니다. 하여튼 식사를 하러 갔다가 거리를 걸어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성탄절 장식을 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직 한 달가량 남았는데도 모든 상점에서 성탄절 할인 판매를 내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탄절의 의미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습니까! 그저 장사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기념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날, 아버지날이 그렇습니다. 사실 매일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날이어야 합니다. 부활절도 온통 그렇게 되었습니다. 산타클로스가 탄생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토끼와 병아리와 새끼 오리가 부활의 때를 차지했습니다. 온통 병아리와 오리와 달걀인데, 그것이 부활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시겠죠? 우리가… 그런 것을 우리 아이들 앞에 내놓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있는 어린 소년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데이비 크로켓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것이 큰 장삿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카우보이나 영웅, 무법자 같은 사람의 옷을 본떠, 그 사람처럼 보이는 옷을 만들어 팝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리스도의 계획도 그처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은 대개 자신이 읽은 것을 본뜨려 합니다. 읽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제게도 늘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열두 살쯤 된 어린아이였을 때 공립 도서관에서 제인 그레이의 『론 레인저』라는 책을 구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빗자루를 장난감 말 삼아 타고 집 주위를 돌고 또 돌아, 결국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타잔과 유인원들』 이야기를 읽고 나무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것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가 제 생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실제인 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허구가 아니라 진실을 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삶이 그분의 삶과 같기를 원합니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읽었을 때 실제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이 절기가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아주 낯익습니다. 세상은 이천 년 전 그분께서 처음 땅에 오셨을 때와 거의 같은 상태입니다. 그분께서 땅에 오셨을 때, 땅은 제 때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은 이따금 그 무엇으로도 도울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집니다. 이런 전조들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사람들이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기력을 소진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체계와 모든 것이 끝까지 가 버리는 것입니다. 홍수 이전의 세상에서도 그랬습니다. 정치와 그 밖의 것들이 막다른 데 이르러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새 힘을 주시고 되돌려 놓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워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그 지경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셨을 때에도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가 부패한 때였고 종교가 부패한 때였습니다. 모든 체계가 썩어 버렸습니다. 종교에 다른 것들과 사람이 만든 이론들을 뒤섞고 집어넣어서 모든 것이 부패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세상은 메시아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메시아를 달라고 기도했고, 그리스인들도 메시아를 원했으며, 유대인들도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방식대로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혼란의 시대에도 우리 모두가 다시 그 자리에 이른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보니 세상은 거의 같은 상태입니다. 도덕이 썩었고, 정치가 썩었으며, 종교 생활이 썩었고, 교파주의가 썩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패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내신다면, 우리도 과거 그들이 한 것과 거의 똑같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이 누구신지도 모를 것입니다. 저는 세상이 그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보십시오. 제 생각에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로마인들에게는 메시아가 어떤 분이어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자기 생각이 있고, 교파마다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어야 하며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도표까지 그려 가며 배워 왔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교회는 우리 교회다.” 유대인들 가운데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사두개인들은 자기들 편이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똑같습니다. 영들은 죽지 않습니다. 그 영이 들어 있던 사람만 죽습니다. 마귀는 자기 영을 거두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만 데려갑니다. 그런데 좋은 점은,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영을 거두어 가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영은 남아 있고 사람만 데려가십니다. 그리스도 위에 계셨던 바로 그 영이 오늘날 믿는 자, 참으로 믿는 자 위에 계십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 당시 로마인들은 정치가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누군가가 주피터에게서 내려오거나, 머리 뒤에 태양을 두고 불수레를 몰며 하늘을 가로질러 내려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주피터가 내려와 온 세상을 짓밟아 제압할 수 있는 비법, 군사적 비밀을 알려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을 무찌르고 온 세상을 지배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메시아는 그런 메시아였습니다. 그리스인들도 그런 메시아가 와서 로마인들을 무찌를 수 있는 정확한 전략을 알려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장군을 기다렸습니다. 손에 쇠막대기를 들고 오는 사람, 모든 민족을 다스릴 유다 지파의 사자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로마인들을 강으로 몰아넣어 빠뜨려 죽이면 이스라엘이 권세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그분은 성경이 오시리라고 한 그대로 오셨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날 그분이 오셔도 우리가 똑같이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이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옷은 어떻게 입고 머리는 어떻게 가르셔야 하는지, 모든 것에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취향에 딱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곧 오늘날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자기들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거부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으셨습니다.
며칠 전 투산에서 훌륭한 재단사 한 사람이 제 바지를 재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서툰 영어를 듣고 “어느 민족이십니까? 유대인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하고는 “그리스도인이시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계속 제 바지를 손질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이분이 먼저 말하도록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 반감이 없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께 반감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그가… 저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너무 일찍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을 하기에는 너무 젊었다고 했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그렇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하기에는 조금 너무 젊었습니다. 만일 그분, 예수가 오늘날 오셨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가 오늘날 왔다면 그분의 계획은 괜찮았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록펠러와 골드워터 같은 일이지요. 같은 당에 있으면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왔을 때 자기 당, 자기 백성과 싸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아닙니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갈 때까지는 그분을 그냥 두려고 합니다. 조금씩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볼 수 있도록 그분의 눈을 멀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민족에게 무척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여, 여기 앉아 계신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때가 곧 다가옵니다… 걱정하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은 유대인이셨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유대인이 아니셨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생명 세포는 헤모글로빈 안에 있는데, 그 생명 세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포였습니다. 하나님과 마리아 사이에 성적 관계는 없었습니다. 그런 감각조차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두 씨, 곧 난자와 세포를 모두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이의 틈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피가 유대인의 피였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이방인의 피였어도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그분은 성적 욕망 없이 창조된 하나님의 피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그곳을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하고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양쪽 모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의 취향에 맞는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을 정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똑같이 하므로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거기에는 원인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전통으로 무효가 되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그 안에 자기들의 전통을 덧붙이고 집어넣었기 때문에 말씀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더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존하셨습니다. 신조와 교리 같은 것을 더하여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말씀에는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글의 형태로 계신 그분이십니다. 말씀은 씨입니다. 씨를 알맞은 땅에 심으면 자랍니다. 자랐는지 알아보려고 매일 아침 파내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저 심고, 하나님께 맡기고, 거기 놓아두십시오. 그렇게 해야 자랍니다. 땅에 심긴 그대로 놓아두십시오. 씨가 있어야 할 곳은 여러분 마음의 땅입니다. 믿음은 시간마다 물을 주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내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때도 온 세상이 오늘날처럼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세상에 닥치려는 이 비극에서 자기들을 지켜 주고 흩어지지 않게 붙들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라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라마다 찾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나머지 나라들을 짓밟을 사람, 메시아를 구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기를 주셨습니다. 장군을 구했는데 아기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습니다. 그들을 낮추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좀 안다고 생각하면 우리를 낮추십니다. 욥에게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네게 그렇게 지혜가 많다면, 내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칠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아?” 그러자 그의 지혜는 더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우리 조직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무언가를 일으키셔서 그것으로 우리를 낮추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늘 그런 식으로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장군을 구했는데 아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장군을 구했는데 구원자를 받았습니다. 자기들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오늘날의 문제도 상당 부분 그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교회에 가입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면, 제가 세상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다시 똑같은 것을 봅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 보면 이것이 없어졌고, 저쪽으로 가 보면 저것이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이것으로 오도록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 밑에 받쳐 놓은 모든 버팀목을 빼내어 유일하게 남은 자원으로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오늘날 세상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붙들어 줄 어떤 체계를 찾고 있습니다. 그때처럼 지금 다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종교계는 이 일을 해 줄,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어느 시대에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세상이 무너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 있는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거부했습니다. 선지자란 무엇입니까? 말씀이 임하는 사람이며,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선지자가 보냄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있었을 때에도 선지자가 보냄을 받았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있었을 때에도 선지자가 보냄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이런 혼란에 빠질 때마다 선지자가 보냄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첫 성탄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충만한 모습으로 보내셨습니다. 말씀을 말입니다! 선지자 안에는 말씀의 일부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그 시대를 위한 메시지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선지자가 주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쳤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체계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선지자들의 벽, 무덤을 꾸미지만, 그들을 거기에 넣은 것은 너희 조상들이다. 너희는 자신들이 그들의 자손임을 증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세상이 그렇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면 지혜가 그 말씀에 맞서려 합니다. 처음에도 그랬습니다. 모든 죄의 체계가 시작된 것은 누군가, 하와가… 사탄이 하나님의 계획보다 더 낫다는 계획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혜를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었습니다. 지혜는 언제나 여러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믿음은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큰 지혜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하는 어리석은 것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어리석고 단순한 것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 시대를 위해 훈련받은 가야바와 고위 제사장들을 택하셨다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박사 학위와 온갖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려가셔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 자기 이름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어부들을 택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성 바울도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자기가 알던 모든 것을 잊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나는 이 세상 지혜의 뛰어난 말로 너희에게 가지 않았다. 너희가 그것 위에 믿음을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은 목사가 말을 아주 정확하게 하고 명사와 대명사를 모두 제대로 쓰지 않으면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준이라면 저는 어느 강단에도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명사와 대명사의 차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오직 그분을 안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도 그것뿐입니다. 그분이 저의 명사요 대명사이시며 저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분은 그분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의 종교 체계는 교육 체계를 받아들여 성령의 자리를 대신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 버렸습니다.
노아의 시대와 모세의 시대에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치고, 죽이고, 톱으로 잘라 토막 내고, 불태웠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을 없애고 자기들 손에서 떨쳐 버리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한 사람, 어떤 큰 사람이 만들었는데… 포도원을 가지고 그것을 가꿀 사람들을 두었다. 그가 종을 보냈으나 그들이 죽였다. 또 다른 종을 보냈으나 그도 죽였다.” 그렇게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내 아들을 보내겠다. 그들이 내 아들은 존중하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포도원을 가꾸던 자들은 ‘이 사람이 상속자다. 그를 죽이자’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보내신 것입니다. 말씀, 곧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타락한 모든 세대마다 이 세상을 하나로 이어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져 한데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상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만, 여러분이 앉아 있는 바로 그 땅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바로 그 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붙들어 줄 유일한 것은 결코 정치 체계가 아닙니다. 유엔도 아니고, 이 어떤 조직도 아닙니다. 세상을 붙들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제가 오늘 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와서 하와에게 “너는 그 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와는 “하지만 주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아,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굳게 방비하고 있는 한은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굳게 지켜야 할 수단은 이것,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여러분 둘레에 계십니다. 어디에 가든 말씀, 말씀입니다! 언제나 그분을 여러분 앞에 모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어디에서나 그분을 의식하십시오. 하와와 아담이 그렇게 걸을 때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걷는 남자나 여자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말씀에 둘러싸여 지킴을 받을 때 그들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지혜가 일어나 말씀에 맞섰고, 그때 하와가 그 방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사탄은 그곳이 인류를 공격할 수 있는 지점임을 알아낸 뒤로 매번 바로 그곳을 공격했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마저 속일 만큼 가까운 적그리스도 영으로 올 때에도, 그는 종교의 형태로 옵니다. 공산당이 누군가를 속이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적그리스도는 종교입니다.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마저 속일 만큼 아주 가깝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교회와 바로 함께 걸으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을 모두 했고, 나가서 마귀들까지 내쫓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0장입니다. 하지만 오순절에 이르러 영생을 받는 자리에 왔을 때 그의 본색이 드러났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로 거기에서 갈립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교회에 가입하게 내버려 둡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는 때가 되면 “뒹구는 광신자들 무리다!” 같은 소리를 지릅니다. 그것과는 조금도 관계하려 하지 않습니다. 유다와 그의 체계는 바로 그때까지 따라올 수 있습니다. 유다가 그 지점까지는 세상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선택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가까이 올 수는 있지만 나머지 길까지 올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온다면 그는 여러분의 형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없습니다. 누군가 “마귀가 저를 붙잡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마귀가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가 안으로 들어와 여러분을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성령으로 봉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거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들어온 것과 같은 길입니다. 그러니 그는 그저 여러분을 불렀고, 여러분이 그에게 걸어 나간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가 여러분을 잡으러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하여 죽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제가 제 말에 아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은 “그대로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직접 경험했고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당시 종교계가 무너지고 있었고, 이전에도 늘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그랬습니까? 오시는 선지자들과 오시는 메시아가 그들의 규격, 그들이 내세우는 신학적 조건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움직임 가운데 우리가 자라지 못하고 막혀 있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그 일이 일어나는 모습이, 자기들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계산해 놓은 조건에 꼭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때가 되면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계산합니다. 그런데 실제 알맹이가 내려오면 그것을 거부합니다. 발전기는 거절하면서 전깃줄을 설치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전류가 흐를 수 없으니 죽은 전선일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전선은 모두 설치해 놓았는데 스위치를 눌러도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 생활, 우리의 생각의 생활이 그분 안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글쎄요, 제 생각에는 제가…”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나름의 생각을 내세울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고, 저는…”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내세울 생각이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을 너희 안에 품으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품어야 할 유일한 생각은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누가 무엇이라고 했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고 내 말은 참되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압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응답은 무엇인지, 오늘의 외침이 메시아께서 오셔서 도와주시기를 구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때때로 저는 우리가, 만일 그분께서 보내신다면, 우리도 그때 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교 안에서든 국가 생활에서든 우리의 모든 정치는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고안한 방식과 양식으로 우리의 경배를 오염시켰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온갖 종파에 맞도록 사람이 만든 것을 고안하고 꾸며 놓았습니다. 각자 다시 자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있는 선지자 이사야를 일으키셨을 때와 다시 같아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은 “너희의 희생물과 그런 것들이 내 코에 악취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희생물을 가져다가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그것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유대인이 어린양, 살진 작은 어린양이나 수송아지 같은 것을 데리고 길을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유월절이었습니다. 그가 내려가서 희생물 위에 손을 얹습니다. 손을 얹을 때 자신을 희생물과 연결하고, 자신과 희생물을 하나로 여기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 짐승, 작은 어린양이든 무엇이든 죽였습니다. 그 작은 짐승이 발버둥 치고 울며 죽어 갈 때 피가 그의 손에 튀었습니다. 경배하는 사람은 신실한 마음으로, 마땅히 자기가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그 어린양이 자기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어느 때부터 집안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어린양은 전과 똑같이 바쳤지만 거기에 신실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내 콧구멍에 악취를 풍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아주 신실한 마음으로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구경거리, 그저 훈련된 음악 같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자들은 거의 피부를 밖에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이 꽉 끼는 옷을 입고 단 위에 올라가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신실함도 없고… 거의…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그야말로 터무니없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의 헌물, 우리의 다툼도 다시 그분의 코에 악취 같은 것이 되지 않았는지 생각합니다!
원수가 우리 미국 여성들을 붙들어 거리에서 옷을 벗겨 놓은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오늘날 이 모양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늘 네다섯 번씩 결혼한 할리우드의 어떤 여자를 본뜨려 합니다. 그 여자가 거의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나오면, 전국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모두 그것을 따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참 안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며, 그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아름다운 덕, 어머니가 되는 덕이 훼손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등뼈입니다. 어머니의 본분을 무너뜨리면 바로 그때 나라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참되고 진실하게 부모의 본분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라를 붙들어 주는 한 가지입니다.
이곳으로 오면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곳의 비행 청소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가 “부모들 탓인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멘.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올바르게 보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가정에서 성경을 치워 버리고 아이들에게 카드 한 벌을 쥐여 주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전 제가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데, 거기 있던 어떤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잖아요, 정말 좋은 일이 있어요. 우리 교회에서 카드놀이 파티를 열어요.” 그리고 추수감사절에 칠면조와 관련된 어떤 행사도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개신교 교회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오, 이런! 도박, 복권, 주사위 놀이, 춤이라니, 사람들이 교회를 즐겁게 해 주려고 그런 짓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니요! 다시 태어난 교회는 성령께서 영생으로 즐겁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쾌락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오래전, 너무도 오래전에 여성들의 아름다운 덕과 단정한 옷차림이 할리우드 여신의 제단 앞에 굴복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세상이 그런 지경이 되었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나라의 등뼈가 부러졌습니다.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것을 흔히 유행이고 현대적이라고 여깁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갑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한번은 제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유명한 목회자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여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그만하시지요.” 그래서 제가 그에게… 그는 “그 여자들이 여선지자가 되는 법 같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초 알파벳도 배우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대수학을 가르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A-B-C, 곧 ‘언제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저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잡초처럼 교회에 파고들었습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까지 들어오고 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멈추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저를 광신자라고 부르실지 모르지만, 심판 날에는 제 손을 잡으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올바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일로 무슨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습니까? 한 여자가 제게 “브래넘 씨, 사람들은… 여성복은 그런 종류밖에 만들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옷감을 만들고 재봉틀을 팝니다”라고 했습니다.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이 점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옷을 입고, 거리의 어떤 죄인이 여러분을 잘못된 눈으로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심판 날 그 죄인과 간음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편에게는 더할 수 없이 정숙할 수도 있고, 남자 친구에게도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정숙하고 충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여러분이 거리의 창녀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그렇습니까? 말씀으로 증명해 보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말씀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물으라고 하셨지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그렇게 드러내면 여러분이 그 원인이 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그런 의도가 없다 해도 그 죄인 앞에 자신을 그렇게 드러냈습니다. 그가 그 일에 대해 답해야 할 때, 유죄가 되는 사람은 여러분일 것입니다. 오, 옷을 구해 몸을 가리고 숙녀답게 행동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남자 여러분, 아내가 그런 짓을 하며 그런 옷을 입도록 내버려 두는 여러분, 자신이나 아내 어느 쪽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이 없습니까? 세상에, 아내가 집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연기를 내뿜도록 내버려 두다니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고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까? 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잠깐만요.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했잖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제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지만 저는 담배를 피워야겠습니다. 그것이 제 즐거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즐거움이라고요? 저의 즐거움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면 여러분의 즐거움도 주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쁨이십니다. 그분은 저의 평안이십니다. 저의 희생물이십니다.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저의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제게 필요한 모든 것,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필요로 했던 모든 것의 전부이십니다. 목말라하는 것입니다! 오, 이런!
[한 자매가 방언으로 말한다.] 경건히 하십시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때 기다려야 합니다. 영께서 말씀하시며, 메시지 도중에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는 틀림없이 무슨 중요한 일이 곧 일어나려는 것입니다. [한 자매가 통역한다.] 아멘. 아멘. 회중이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제가 그 통역을 올바르게 알아들었다면, 우리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올바른 삶으로 뒷받침하며 경고합시다. 제멋대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가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도 여러분만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자신을 바로잡고 준비합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런 일들을 알고, 곧 일어나려는 이 위대한 일을 위해 준비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 지금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드신 도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그것에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조건에 따라 공급하십니다. 먼저 우리가 그분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그분도 우리의 조건을 충족해 주지 않으십니다. 먼저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맨 밑으로 내려가 거기에서부터 쌓아 올려야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꼭대기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올 수는 없습니다. 밑으로 가서 위로 쌓아 올려야 합니다. 이제 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의 조건을 충족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약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전통으로 이것을 뒤집으려 합니다. 하나님을 다른 어떤 분으로 만들려 합니다. “우리의 전통을 집어넣고 그것이 조금 더 낫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이 교회, 이곳에 모인 분들에게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온 세상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여기서 녹음되어 온 세계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기를 바라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만일 우리의 전통에 맞게 온다면, 우리도, 오늘날 세상도 틀림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침례교인들은 “우리가 믿던 대로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틀렸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감리교인들은 “침례교 여러분이 틀렸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가 믿던 방식대로 왔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우리 누구의 생각과도 다르게 올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대로 올 것입니다. 사람이 이 일을 마음대로 재단해 놓고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는 왜 은사 같은 것들이 교회 안에서 마땅히 작용해야 하는 대로 작용하지 않는지 의아해합니다. 은사는 교회를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죄를 가려내고 없애기 위해 교회 안에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독소입니다. 하나님의… 또한 교회를 해치는 모든 기생충을 죽이시려고 교회 안에 두시는 하나님의 소독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교회 전체에 뿌리십니다. 그러면 흰개미들이 모두 들어오지 못하므로 교회가 식물처럼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면도할 때 어린아이가 면도칼을 달라고 우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빠, 그 면도칼 주세요! 그 면도칼 주세요!” 하고 외칩니다. 두세 살 된 아들이 바닥에서 펄쩍펄쩍 뛰며 “면도칼 주세요!”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 아이에게 면도칼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은사를 어떤 교파의 전통 같은 것으로 떠넘겨 버립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면도칼을 주지 않으면 어린아이는 “아빠는 쓰시잖아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른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압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는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참된 덕을 갖추게 되면 일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아들딸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자가 되어 있어야 할 때인데도 여전히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한 가지 일이 생각납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계신 흑인 친구들, 제 형제자매들께서 이 표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래전 남부에서 노예 제도가 행해지던 때에는 사람들을 팔곤 했습니다. 그 불쌍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마치 중고차 매장에 내놓듯 경매에 부쳤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사들인 매매 증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이 노예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나무에서 나왔습니다. 황인이든 흑인이든 갈색 피부이든 붉은 피부이든 어떤 사람이든 서로에게 수혈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족속입니다. 살던 땅이 우리의 피부색을 바꾸었을 뿐,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그때는 중개상들이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자동차를 사듯 그 사람들을 샀습니다. 돌아다니며 중고차 몇 대를 사서 다른 곳으로 가져가 파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농장들을 찾아다니며 그 불쌍한 사람들을 살펴보고, 누가 일을 잘하는지, 누가 덩치가 크고 힘센 남자와 여자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팔았습니다. 더 크고 육중한 노예를 얻으려고 덩치 크고 힘센 남자와 덩치 크고 힘센 여자를 데려다가 소나 짐승처럼 번식시켰습니다. 도대체 무슨… 지옥은 그런 자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하다니요! 거기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가엾은 어머니가 남편이 경매에 팔려 가는 것을 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로 전해지는 바로는, 한 중개상이 어떤 농장에 와서 노예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가 “몇 명이나 있소?” 하고 물었습니다. “저기 이백 명쯤 있소”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가 지켜보니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이곳으로 끌려와, 보어인들이 데려온 뒤 이 남부에서 팔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끝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퍼했습니다. 좀처럼 일을 시킬 수 없었습니다. 일을 시키려면 채찍질을 하고 온갖 짓을 해야 했습니다.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저쪽에 있고, 어쩌면 어머니는 여기 있는데 아버지는 저쪽에 있으며, 아이들은 여기 있는데 아버지는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오, 끔찍한 일입니다.
어느 날 이 중개상이 와서 그 노예들을 살펴보다가, 그 가운데 채찍질할 필요가 없는 젊은 노예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는 가슴을 펴고 턱을 든 채 돌아다녔고, 늘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개상이 “저 사람을 사고 싶소”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하지만 저 사람은 팔지 않소”라고 했습니다. “왜요?”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하오.” 그가 “다른 사람들을 감독하는 사람인가 보군요”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아니오, 아니오.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오”라고 했습니다. “그럼 혹시 더 잘 먹이는 것이오?” “아니오. 모두 저기 식당에서 함께 먹소.” 그가 “그런데 왜 다른 노예들과 그렇게 다르오?” 하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나도 늘 궁금했는데, 어느 날 알게 되었소. 저 사람이 온 고향에서는 아버지가 부족의 왕이오. 그래서 타향에 와 있어도 자기가 여전히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왕의 아들답게 처신하는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오, 우리가 왕의 아들딸, 왕들의 왕의 아들딸이라면, 그리스도인다운 품행을 보입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곳의 외국인이며 순례자이고 나그네입니다. 여기는 우리의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장차 올 왕국을 찾고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세상에 이리저리 떠밀리고 조롱을 받으며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고, 구식이라는 등 온갖 말을 듣더라도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영화배우나 텔레비전 스타 같은 사람을 본뜨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처럼 행동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압니다. 왕의 아들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져도 우리의 품행이 그분의 임재를 드러내게 합시다. 천막이든 작은 집이든, 내가 왜 염려하랴? 저 너머에서 나를 위한 궁전을 짓고 있네! 루비와 다이아몬드, 은과 금으로, 그분의 보고는 가득하고, 그 재물은 헤아릴 수 없네. 우리는 왕의 자녀들이라! 우리 구주 예수님과 함께, 나는 왕의 자녀라! 우리 아버지처럼 처신합시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 그분과 함께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원하지만 자기들의 조건에 맞는 메시아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구원자를 원했습니다.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원합니다. 교파와 정치가 성령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그러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시게 하는 대신 종교 정치의 인도를 받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교회가 헌금을 조금 더 주거나 하면, 그들은 명예 하나를 더 얻거나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그쪽으로 가 버립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참 인도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이십니다.
교회 안의 교육 체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에서 아주 멀리 데려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젊은이들을, 지금 오순절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같은 곳으로 보내어 부화기의 병아리처럼 찍어 내니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늘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가 불쌍했습니다. 제대로 부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삐약삐약 울어도 찾아갈 어미가 없습니다. 그저 커다란 기계나 체제에서 나왔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식으로 목회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무슨 박사 학위를 주고 교회로 보냅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사람이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호텐토트족 사람이 이집트 기사에 관해 아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 시골의 소박하고, 하늘처럼 맑으며, 죄를 죽이는 훌륭한 신앙과, 교회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성령 침례입니다. 말끔히 청소하는 일, 총열처럼 곧고 하늘처럼 맑은 신앙입니다. 우리는 말끔히 청소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교회 여러분, 저는 제정신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어젯밤에 말씀드렸듯 제가 미쳤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있으니 좋습니다. 다른 식으로 있을 때에는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으니, 저는 그냥 이렇게 있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을 찾으려면 그래야 했습니다. 다른 모든 믿는 자도 그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을 잃음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찾아야 합니다.
교육 체계가 우리를 멀리 데려갔습니다. 저는 애리조나 대학교가 있는 대학 도시에 삽니다. 제가 이런 말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것을 가지고 “이것은 수백 년 전의 것이다”라고 했다가, 이제는 그것이 수백 년 전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지구에 육천 년보다 더 오래전부터 생명이 있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뼈를 주워다가 여러 가지로 측정하여 그것이 어떠했는지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저녁 애리조나에서 저명한 교수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뼈가 그렇게 오래된 것으로 나온 것은 물속의 염화물 같은 성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소금도 뼈를 그렇게 변하게 하여 오래된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결코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같습니다. 그들은 결코 그 말씀이 틀렸다고 입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붙들어 줄 것은 교육 체계가 아니라 그 말씀입니다. 그 말씀 대신 무엇을 받아들이든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움직임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말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말씀이십니다. 교육은 결코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교육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신학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생명이시며 풍성한 생명이십니다!
얼마 전 캐나다의 한 도시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어떤 모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임의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그 특정 친목 단체에 속한 분이 여기 계실 수도 있고, 저는 여러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큰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위스키병 같은 것들 때문에 엘리베이터에 거의 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 안내원에게 “이게 다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오늘 밤 미국인들이 찾아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 세상에, 얼마나 많던지요! 그러고 나서 저는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무대에서, 아니 작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아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려는데 복도가 있었습니다. 저쪽에 젊은 여자 두 명이 속옷만 입고 서 있었습니다. 손에는 위스키병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도를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자, 집에서, 아니 작은 방들에서 나온 술 취한 남자들이 그들을 붙잡아 옷을 끌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남자들은 아주 취해 있었습니다. 보기에 끔찍했습니다. 그 여자들이 다가오기에 저는 작은 복도의 문 안으로 얼른 몸을 피하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잘생긴 여자들이었는데, 입은 옷이라고는 짧은 속치마뿐인 채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병을 들고 서로에게 술을 부으려 했습니다. 한 여자는 속옷을 최대한 높이 들어 올리고 다리를 공중으로 치켜들며 “야호, 이게 사는 거야!” 하고 외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나가서 “자매님, 실례합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와서 한잔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잠깐만요. 그것이 삶이라고 하셨지요. 그것은 왜곡된 삶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저는 복음의 목회자입니다. 저도 미국인입니다. 여러분이 부끄럽습니다.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하면서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부끄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중 한 사람은 주일학교 교사였고, 그 여자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둘이 달아나려 했는데 제가 두 사람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너무 취해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잠깐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바로 여기서 기도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옳게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조금 건전하게 즐기는 것뿐이잖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조금 건전하게 즐긴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대단한 주일학교 교사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 것이 마음속에 있다면 하나님은 그 더러운 곳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휩쓸고 지나갈 옛날식 성결 부흥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조금 건전하게 즐긴다며, 그리스도인 국가로서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 이런! 교육 체계,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죽음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합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그런 식으로 행동합니까? 이것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목말라하는 작은 자리가 있습니다. 작은 자리입니다. 사람은 목말라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지음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술을 마시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은, 여러분 안에 만족을 갈망하며 목말라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마귀가 주는 대용품으로 하나님의 그 거룩한 부르심을 만족시키고 잠재우려 하다니, 하나님께서 그런 일이 없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죽음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를 채우도록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지 않으면, 마귀가 그 자리에 죽음을 가져다주는 대용품을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남자든 여자든 감히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거룩한 부르심을 잠재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므로 마귀는 다른 무엇으로든 그것이 만족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그분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교육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교파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학교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국가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지자가 이 시대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던 바로 그 일을 봅니다. 선지자 바울이 말한 디모데후서 3장에서, 교회가 고집이 세고, 높은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며, 아시겠죠, 높은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쾌락들을 더 사랑하고,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는 때가 오리라고 한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다음 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경고했습니다. 부활의 권능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바로 그것을 위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부르시는 한, 성령께서도 여전히 여기 계시며 하나님께서 부르신, 주린 모든 마음을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것으로 대신합니다. 교회에 가입함으로 그 느낌을 만족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느낌을 무디게 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의 여정을 주신 것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른 무엇이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세상을 붙들어 줄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경륜을 취하지 말고 하나님의 경륜과,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방식을 취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붙들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묶어 주는 권능이라. 한마음을 품은 이들의 교제는 저 위의 교제와 같도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은 옛날 성 바울 때와 같은 훌륭한 부흥입니다. 성경과 성령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 가운데 임하시고, 모루에서 불꽃이 튀듯 표적과 이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붙들어 두려면 반드시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통 안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오!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려고 그분께서 우리의 체계로 들어오시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그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에 메시아가 오신다면, 우리에게는 가야바라는 훌륭한 대제사장이 있다. 레빈스키도 있고, 여기 있는 이 모든 제사장들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들을 교육하고 또 교육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오셨을 때 그들을 모두 지나치셨습니다. 그들의 체계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고, 그의 일들을 행한다. 풀 속에 숨은 뱀 같은 족속들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그 책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보십시오. 오,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신학적 취향에 맞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 맞지 않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보이려고 그곳에 서서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는 바알세붑이다. 그에게 악한 영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성령이 오셨을 때 너희가 그를 대적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체계를 보십니까? 똑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체계는 결코 이 세상을 붙들어 줄 수 없습니다. 미국의 모든 군마다 대통령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사람을 선출한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결코 세상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진리가 담긴, 옛날의 검은 표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우리의 세상을 붙들어 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원칙으로 돌아가고, 그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며, 다시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도록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진리가 그토록 잘못 다루어진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려 하실 때, 사람들이 이미 저마다 교파를 이루어 떨어져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울타리를 세워 놓아 성령께서 그 안에 들어오실 수 없도록 밖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바로 그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오순절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서 출발했습니까? 아주사 거리의 선교회에 관해 읽어 보셨습니까? 총회가 시작되기도 전의 일을 읽어 보셨습니까? 오순절 사람들은 그 교파들에서 나와 분리된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이렇게 전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되라. 사람들의 그 전통에서 벗어나라.”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돌아서서, 빠져나왔던 바로 그 진창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갈라졌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교회이고, 다른 쪽은 이것이고 저것이고, 또 이것이고 저것입니다. 갈라져서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 속박을 끊어 버리십시오!
제가 처음 사역에 들어왔을 때는 오순절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한 무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침례교만큼이나 심하게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쪽 한가운데 서서 “우리는 형제입니다. 그것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는 동안에는 사탄이 여러분에게 총을 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박을 끊어 버리고 장막을 저 멀리까지 넓혀 모든 형제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큰 군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 가운데 일어나 성경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휴거될 은혜를 가진 교회를 말한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을 허물고, 교파에 속한 모든 것을 잊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초로 돌아올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의 조건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조건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바로 그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말씀으로 돌아가 서로 사랑하십시오. 제가 아는 길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시면 우리는 그들을 죽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입니다. 그러고는 한두 세기, 혹은 백 년이나 오십 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지자나 메시지 전달자를 보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우리는 그를 비난하고 죽입니다. 그러고 얼마 후, 그가 죽은 지 얼마쯤 지나면 교회가 깨어납니다. 그때는 무엇을 합니까? “이것을 토대로 교파를 세우자”고 합니다. 감리교와 침례교, 그리고 나머지 여러분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 그것입니다. 교파를 세웠습니다. 문제는 그가 이미 죽고 그의 메시지가 끝난 뒤에는 우리가 벌써 다른 때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때로 돌아가, 그 당시를 위한 그의 메시지로 돌아가 그의 무덤을 꾸미려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줄곧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때를 잊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로 그분을 찬양하고, 앞으로 하실 일로 그분을 찬양하면서,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은 외면합니다. 사람이 꼭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분께서 하셨던 일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 저쪽에서 무언가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바로 여기서, 줄곧 그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언제나 그것을 놓칩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전통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아는 다른 세대를 위한 분이다”라든가 “그분은 과거 저때에 계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 온 세상이 정치와 종교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모두 메시아를 달라고 외쳤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무언가를 원했고, 로마도, 다른 나라들도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가 정치가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언가를 원합니다. 오늘날 러시아도 메시아를 원합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아주 빨리 달에 데려다줄 메시아를 원합니다. 그것이 러시아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메시아, 어떤 천재, 과학 천재인 사람을 원합니다. 우주를 정복하는 법을 알고, 미국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그곳에 가서 러시아 국기를 꽂을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오,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아를 원합니다. 그런 사람 하나를 길러 내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은 무엇을 했습니까? 미국이여,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가장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무엇을 원합니까? 여러분은 교육받은 천재를 원해 왔습니다. 정치적 천재를 원해 왔습니다. 이제 얻었습니다. 그를 얻으려고 부정 투표 기계를 만들어야 했지만, 어쨌든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세상이 원하는 것인데, 이제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영리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그들을 텔레비전에까지 내보냈고, 여러분은 거기에 넘어갔습니다. 얻었으니 이제 그가 여러분을 어디로 이끌겠습니까? 물론 로마로 되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 여러분, 여러분도 천재를 원합니다. 무엇을 원합니까? 여러분은, 교회는 무엇을 원합니까?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똑똑하고 교육받은 지적인 목회자가 나타나, 빌리 그레이엄보다 더 잘 정복하여 사람들을 모두 여러분의 교파로 데려오기를 원합니다. 신학교 같은 것을 세워 놓고 그런 사람들을 부화시키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보십시오. 여러분의 행동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종교적 천재,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파를 다른 모든 이들 위로 이끌어 줄 사람을 원합니다. 침례교를 짓밟고, 감리교를 짓밟고, 일신교를 짓밟고, 삼위일체파를 짓밟고, 모든 것을 발아래 밟고 지나갈 사람을 원합니다. 오,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온 세상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분이 구원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보내 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합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교회적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자기들의 천재를 원합니다. 만일 러시아가 자기들의 메시아를 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독일이 자기들의 메시아를 얻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그것을 아주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얻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메시아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폴레옹은 서른세 살에 세상을 정복했지만 패배한 채 죽었습니다. 패배한 채 죽었습니다. 처음 일어설 때에는 금주주의자였는데, 그 큰 성공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죽었고, 그의 군대 뒤에는 칠천 명의 창녀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서른세 살에 죽었습니다. 세상을 정복하려 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서른세 살에 세상과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정복하시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메시아이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는 메시아를 원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제 적어 놓은 것 중 몇 가지는 건너뛰어야겠습니다. 너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건너뛰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들의 메시아를 원합니다. 세상도 원하고 교회도 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분을 보내신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다면 그분은 어떤 분이시겠습니까? 종교 정치가는 아니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지적인 거인도 아니실 것입니다. 오, 아닙니다. 어떤 분이시겠습니까? 히브리서 13장 8절대로, 예전과 같은 분이실 것입니다. 언제나 그분이셨던 그대로입니다.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셨고,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이실 것입니다. 그분의 오심을 알리는 소리조차 늘 말씀이 임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말씀이 충만하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분이 다시 오신다면 하나님의 말씀,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입증된 하나님의 말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아이십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그분은 다시 그 불기둥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바로 그 메시아이실 것입니다. 아멘. 그분은 요한과 같으실… [테이프에 녹음되지 않은 부분.] 물론 사람들은 늘 그랬듯 그분을 거부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모두 큰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큰 교회 조직을 세우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크고 총괄적인 교회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통합된 교회를 원합니다.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왜 그런 식으로 원합니까? 메시아께서 오신다면 결코 그런 것을 세우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하실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러실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원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반드시 그런 식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일어서서 모든 것을 독재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가 오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그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자가 올 것이요,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신다면 여러분을 아주 호되게 꾸짖으실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가 여자들과 남자들을 호되게 꾸짖는다고들 하지만, 그분은 정말로 호되게 꾸짖으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독사의 족속들아, 풀 속에 숨은 뱀들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메시아께서 이 오염된 시대에 돌아오신다면 다시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하셨던 것과 같은 종류의 표적과 이적으로 그분의 사역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다시 오신다면 분명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메시아를 맞는다면, 그분은 처음 오셨을 때와 똑같으실 것입니다. 다른 분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고 말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런 메시아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과 비슷하게 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하려는 것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살고 무엇이든 하며 세상처럼 행동하고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유지하게 해 줄 메시아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조차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메시아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메시아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그분의 메시아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그 메시아는 말씀이 그분께서 하신다고 하는 그 일을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다시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고, 그 생명은 그분께서 늘 하셨던 대로 마땅히 하실 일을 정확히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분께서 하셨던 같은 일들을 합니다. 그분은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는 그분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메시아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내버려 두고 그냥 넘어가며 “아, 괜찮다”고 해 주는 메시아입니다. 오, 전국의 이 여성들이여! 여러분은 그것을 원합니다. 프랑스식 옷차림과 온갖 화려한 것을 원합니다. 얻었습니다. 현대의 아합과 이세벨을 얻었고, 그것이 교회의 모습을 빚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이스라엘과 정확히 같다는 것을 아십니까?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들어와서 그 나라의 주민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나라의 주민들을 몰아내고 차지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윗과 솔로몬 같은 훌륭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 이세벨이라는 사람, 아니 아합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이세벨과 결혼했습니다. 그 여자는 얼굴에 화장하고 멋을 부리는 그런 젊은 여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결혼하자 남편을 지배한 사람은 그 여자였습니다. 남편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머리였을지는 몰라도 아내는 목이었고, 남편에게 무엇을 할지 지시했습니다.
이 나라가 바로 그와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똑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들어와 인디언들을 몰아냈습니다. 우리에게는 워싱턴과 링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투표와 정치 같은 것들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피해 달아났던 바로 그 체계를 들여놓았습니다. 그 체계에서 벗어나 이곳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을 바로 여기로 다시 끌어들였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민주당원도 공화당원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전부 오염되어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 제 표를 던집니다. 아멘. “이 반석 위에 서리라.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 그렇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체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체계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체계가 약속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약속되었습니까? 왕국입니다!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갑니까? 한 영에 의해 우리 모두가 침례를 받아 이 왕국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 영생의 왕국입니다. 영원한 왕께서 그분의 영원한 말씀을 내어 주시며, 영생을 얻도록 미리 예정된 영원한 백성과 함께하시는 왕국입니다. 그분이 왕이십니다. 우리는 침례를 받아 그 안에 들어가 하늘의 영광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습니다!” 어디로 일으켜졌습니까? 체계 안으로입니까? 교파 안으로입니까? 조직 안으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부활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만든 이 모든 체계는 반드시 무너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한 번 세상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을 흔들 것이다. 흔들릴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왕국을 받는다. 흔들리거나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체계도 아니고, 정치 기구도 아니고, 교파도 아니라 왕국입니다! 아멘! 그 왕국의 백성은 이 세상의 체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 백성은 이 조직들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 정치 체계들에 대하여 죽었으며, 왕의 권능으로 살아 있고 부활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왕국 안에 있습니다. 영원한 왕과 함께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영원한 말씀으로 영생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으로 가서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왕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휴! 제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살아 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이곳은 제 집이 아닙니다. 우리는 왕국을 찾습니다. 왕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미 왕국 안에 있습니다. 왕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 왕께서 속히 자신의 왕국으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다른 모든 것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유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시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국, 영원한 왕국 안에 있으며, 그 왕국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멘. 그곳에서는 날마다 성탄절입니다. 아멘. 왕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영광! 그것은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진실, 하나님의 온전한 진실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제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거기 앉아 저를 바라보시는 분, 검은 모자를 쓰고 저를 보고 계신 저기 작은 체구의 여자분, 자매님은 왕국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왕의 임재 안에 계십니다. 얼마 전에 장의 문제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계속 괴롭혀 왔습니다. 계속 괴롭혀 왔지만, 이제 잊어버리십시오. 이제 나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국 안, 왕의 임재 안에는 치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느니라.” 아멘. 아멘. 저쪽 맨 끝에 앉아 손을 들고 저를 찾느라 두리번거리시던 연세 많은 흑인 형제님, 형제님은 저를 찾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찾으셨습니다. 옆구리에 있는 그 종양을,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없애 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 그분은 놀랍고 경이로운 분이 아니십니까!
왜 의심하십니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천식도 있고 심장병도 있고 관절염도 있고 온갖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번호 하나하나를 불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저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원했던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여기 앉아 계신 이 남자분, 천식이 있는 노르웨이에서 오신 작은 체구의 형제님, 하나님께서 그 천식을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왜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선생님,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그만한 믿음이 있는 줄 모르셨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이 임했고, 우리는 메시아, 하나님의 메시아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왜 ‘메시아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왕국보다도 더 큰 권능이 있고, 양날 달린 검보다 예리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와 마음의 의도를 분별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고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왕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그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면 모두 일어서서 온 마음으로 그분을 찬양합시다.
주 예수님, 위대하신 영광의 왕이시여, 우리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치유를 받으며 서 있는 주님의 백성이 주님의 위대한 이름을 높이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 백성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는 이 왕국을 감사합니다. 한 영에 의해 우리 모두가 침례를 받아 이 움직일 수 없는 왕국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왕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며 마지막 날들을 위한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같은 불기둥,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같은 표적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분 안에 있던 같은 생명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왕국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을 찬양합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으니.”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합시다. 형제님, 화음을 잡아 주십시오. 자, 모두 함께 “주님을 사랑합니다”를 부르며 그분을 찬양합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으니, 갈보리의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네.
오, 이런! 천국의 소리 같지 않습니까? 오! 자, 이렇게 합시다. 이 왕국의 우리 동료 시민들과 인사를 나눕시다. 다시 찬송을 부르는 동안 돌아서서 주위 사람들과 악수하며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자매님” 하고 인사합시다. 모두 함께 부르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악수하십시오. “한 영에 의해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에 있고” 왕과 함께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으니, 갈보리의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네. 오, 그분은 놀라운 분이 아니십니까? 아멘. 이제 다시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으니, 갈보리의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네. 속이 말끔히 씻긴 듯한 느낌이 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한번 봅시다. 오, 이런! 말씀은 우리 혼의 양식입니다. 오! 다시 부릅시다. 주님을…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