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큰 도시 뉴욕에 와서 이 지부에, 아니, 이 여러 지부에 말씀을 전하고, 사역하는 형제님들과 함께 단에 앉아 이 도시의 실업인 여러분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씀드릴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제 삶에서 참으로 뜻깊은 일 가운데 하나로 여깁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행동하시고,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시는 것을 보니, 많은 분이 그분을 알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이름난 설교자들과 함께 서서 이 청중에게 말씀을 전하려니 제가 참 작게 느껴집니다.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늘 제가 예비 타이어라고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예비 타이어를 쓰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펑크 난 타이어가 없는데도, 예비 타이어가 몇 분 동안 함께 굴러가도록 해 주시는 모양입니다.
조금 전 한 형제님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을 인용하셨을 때, 저는 혼속으로, 또 생각 속으로 영의 열매를 맺는 일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양은 털을 제조하지 않습니다. 털이 있고 털을 내니까 양인 것입니다. 양이기에 털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길도 그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고,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며 그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도 아닙니다. 양이면 저절로 털을 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저절로 그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으면서, 이런 모임에서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저희가 뉴욕에 와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대집회에 참석하지 못해 유감이었습니다.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인 윌리엄스 씨가 “뉴욕 대집회에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제 말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저는 애리조나주 투산에 살고, 그분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삽니다. 약 120마일 떨어져 있지요. 저는 “네, 11월에 그곳에 갈 테니 기꺼이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넬슨 형제님과 스위트 형제님,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월이었습니다. 10월에는 제가 알래스카에 가게 되어 있어서, 그때는 뉴욕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록 교회의 빅 형제님과 목사님들을 만나러 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희는 여기 마크 강당에서 이번 주에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보며 참으로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오니, 아마 각계각층의 실업인 남녀 여러분이 앉아 계실 것입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가톨릭교인, 그 밖의 여러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을 보니 몇 년 전 콜로라도의 한 목장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우리는 소들을 몰아 나가곤 했습니다. 헤리퍼드 협회가 그 골짜기에 소를 방목하는데, 그 협회 이름은 트러블섬강 헤리퍼드 협회였습니다. 우리 작은 목장은 강 상류에 있었습니다. 동쪽 지류와 서쪽 지류가 있었고, 우리는 동쪽 지류에서 방목했습니다. 봄이 되면 소들을 목초지에서 몰아내어, 그 협회가 방목하는 아라파호 숲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헤리퍼드 협회입니다. 헤리퍼드 소를 기르는 많은 사람이 그 협회에 속해 있습니다. 목장에서 건초를 2톤 생산할 수 있으면, 낙인에 따라 소 한 마리를 여름 동안 그 방목지에 넣을 수 있도록 허락받습니다. 그러면 관개하는 땅에서는 건초를 기르고, 겨울 내내 그것을 소에게 먹일 수 있습니다.
봄에 소들을 모아 방목지로 몰고 올라갈 때, 소가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 울타리는 소들이 정부 소유지에서 다시 사유지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관리인은 언제나 그 울타리에 서서 소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 틈새, 그 작은 울타리 문을 통과하는 소들의 낙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령 큰 목장주 가운데 그라임스 씨라는 분은 다이아몬드 바라고 부르는 낙인을 썼습니다. 그분에게는 소가 수천 마리 있었습니다. 터키 트랙, 레이지 케이, 그리고 그 일대의 여러 낙인이 그곳을 통과했습니다.
저는 여러 번 거기 서서, 아니, 한쪽 다리를 안장 앞의 손잡이에 걸치고 앉아, 소들이 지나가는 것을 살피는 그 관리인을 지켜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소들의 낙인은 전혀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모두 헤리퍼드 소여야 합니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헤리퍼드 소인지 아닌지,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떤 낙인을 달고 있는지는 상관없었습니다. 귀에 달린 혈통표가 헤리퍼드 소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 큰 모임의 날에, 곧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그 큰날에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감리교인인지, 침례교인인지, 장로교인인지 하는 낙인은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피의 표를 보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 피의 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사람은 교육으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하려 했고, 강의로 들어가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 아래로 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는 함께 나누는 것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가정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는 이혼이 허가되기 전에 가서 재산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들이 재산에 손을 대면 남는 것이 없을 테니까요. 마침 그는 그 부부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한 방, 거실로 들어가 물건들을 나누면서 다투었습니다. 다음 방에서도 또 다투었습니다. 마침내 오래된 다락방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큰 궤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그 안에 든 물건을 나누면서 서로 손을 뻗어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그건 내 거야! 이것도 내 거야!”
그러다가 천 조각 하나를 들어 올렸을 때,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그런데 붙잡고 보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손 아래에는 조그만 아기 신발 한 켤레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합으로 태어난 아이의 신발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어린것을 본향으로 불러 가셨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의 것이었으므로, 어느 쪽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가진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이혼은 허가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이혼을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가진 것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도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감리교인이 되자거나 침례교인, 오순절교인이 되자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가진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분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왜 이 순복음 실업인들과 어울리십니까? 설교자이시잖아요.” 저는 “저도 사업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업가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무슨 사업을 하십니까?” “영생을 보증하는 사업입니다.” 저는 보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증”이라고 했습니다. 이 보증서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집회가 끝난 직후에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 다니던 일이 생각납니다. 학교에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보험을 파는 사람입니다. 보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쩌다 보니 저는 이 세상의 보험은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이 젊은 친구가... 그의 형제도 침례교 목사이며, 어퍼... 「어퍼 룸」에 글을 씁니다. 그 친구가 집으로 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빌리, 다시 보게 되어 정말 반가워.” 저는 “앉게, 윌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도 보험을 파는 형제가 하나 있지만, 어쩌다 보니 저는 보험을 든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자네가 보험을 하나도 들지 않았다고 들었네. 그래서 보험증권 하나에 관해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해서 왔지. 그리고...” 저는 “고맙네, 윌머. 하지만 내게는 보험료를 다 낸 증권이 하나 있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미안하네. 빌리, 어떤 보험증권을 가지고 있나?” 저는 “영생이라네”라고 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그 친구는 “그 회사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했습니다. “본사가 어디 있나?” 저는 “영광 가운데 있네”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이라네. 복된 확신이여, 예수님은 나의 것이네! 아,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기쁨이여! 나는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구원의 상속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의 피로 씻겼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참 좋네. 하지만 그것으로는 자네를 여기 묘지에 묻어 주지 못할 걸세.” 저는 “하지만 나를 거기서 꺼내 줄 걸세”라고 했습니다. 저는 들어가는 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가 나올 것이라는 이 확신이 있어서 참 기쁩니다. 우리 모두 나올 수 있도록 이 보증서를 마련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확신을 마음속에 받았습니다. 언젠가 그분이 저를 나오게 하실 것을 압니다.
이제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괜찮으시다면 우리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잠깐 그 말씀을 쓰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으신 가운데, 그분 앞에서 우리의 마음도 숙여져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 마음의 안전한 금고 속에 그런 부활의 확신을 간직하지 못해서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그저 손을 들고 “형제님, 저도 기도에 포함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려는 이때 수십 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지극히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 사흘째 되는 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그분을 일으키셨고, 이제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그분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복 주시며 이 삶의 여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 이 손들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 큰 필요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이분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자기 죄가 피 아래 있으며, 자기가 다시 태어나 성령으로 하나님의 왕국 안에 인침을 받았다는 확신 없이 이곳을 나가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저희에게 복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 밖에는 다른 진리가 없음을 압니다. 아버지, 오늘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록되기를,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신 일들을 우리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오늘 아침 우리 모두가 이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만일 오늘 아침 셰익스피어가 우리 안에 산다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그가 한 일, 곧 시를 쓰는 일을 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베토벤의 일이, 아니, 생명이 우리 안에 산다면, 우리는 베토벤이 되어 곡을 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영생이 우리 안에 있다고 고백한다면, 그 생명 자체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증언할 것입니다. 형제님께서 “열매를 맺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듯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분이 거기 계시다는 증거를 맺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오늘 아침 우리 각 사람에게 그 체험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펼칩니다만, 우리가 그것을 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책장을 넘기고 읽을 수는 있으나, 오직 성령만이 말씀을 취하셔서 우리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마음에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 겸손히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성경을 가지고 계시다면, 여러분께서... 사람들은 예배에 참석해서 목사가 읽는 말씀을 듣기를 좋아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말씀은 모두 진리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시며, 글의 형태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분은 어떤 교회를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로마 가톨릭은 “우리 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하겠지만, 그러면 그리스 가톨릭은 어떻게 됩니까? 감리교가 “우리 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하면, 침례교는 어떻게 됩니까? 이처럼 차이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시라면, 그분은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서 하신 모든 말씀, 그것을 따라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가복음 10장을 펴서, 성경의 한 부분만 읽겠습니다. 여러분이 찾으시는 동안, 강당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저는 마음 아픈 광경을 보았습니다. 강단으로 가려고 택시에서 내렸을 때, 아니, 택시 밖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말 그대로 수백 명이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는데, 많은 분이 울고 있었습니다. 강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없었습니다. 더 큰 장소를 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 와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못하더라도, 저 경계를 넘어 바로 저편에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이제 17장, 아니, 10장의 17절부터 읽겠습니다. 짧은 본문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믿는 말씀의 결론을 그 문맥에서 끌어내려고 합니다. 그분께서 길로 나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께 무릎을 꿇고... 그분께 여쭙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매 ...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하는 명령들을 네가 아느니라,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기를, 선생님이여,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준수하였나이다, 하므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길로 가서 네게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매 그가 많은 소유를 가졌으므로 그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근심하며 떠나가니라.
이 청년이 무신론자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믿는 사람으로 여겨졌고, 교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앞으로 몇 분 동안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게 시간이 얼마나 배정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여기 적어 둔 몇 구절을 가지고 “투자”라는 주제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투자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이 크고 유명한 도시 뉴욕의 실업인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투자를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투자에는 온갖 종류가 있지만, 오늘 아침 제가 권하는 투자는... 여러분이 좋은 투자를 많이 하셨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투자입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저는 영생을 판매하는 대리인입니다.
도박하며 모험을 거는 것은 좋은 사업 방식이 아닙니다. 여기 계신 형제님이 조금 전에 도박장에 가서 도박하셨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요행에 거는 일입니다. 건전하게 생각하는 사업가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도박입니다. 그런 일로 단번에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 또 건실한 사업가라면, 아니,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업가라면 “하룻밤에 부자가 된다”는, 기반도 잡히지 않은 어떤 회사에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건전하게 생각하는 사업가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 계신 남녀 실업인 여러분이 그런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하룻밤에 부자가 된다”는 말 말입니다. 예전에 제 친구 하나는 평생 모은 돈을 은행에 넣어 두고 얼마 안 되는 이자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더 쉬운 길을 제시하며 찾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슨 일이든 손쉽게 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이 가득합니다. 광고,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그런 것에 넘어가다니요! 얼마 전 차를 타고 어디를 가면서 라디오에서 어떤 여자의 광고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훌륭한 설거지 가루를 사용하세요.”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접시를 씻을 필요도 없습니다. 접시를 넣고 이것을 조금 부은 다음 위아래로 흔들기만 하세요. 씻지도, 헹구지도, 말리지도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아마 바로 다음 광고에서는 이랬습니다. “이 새로운 세제들을 쓰지 마세요. 어머니의 손이 얼마나 고운지 보세요. 새 세제는 손을 상하게 합니다. 어머니처럼 고운 손을 가지세요. 새로운 세제를 쓰지 마세요.” 그때 저는 마침 콜게이트 팜올리브 피트의 큰 공장이 있는 제퍼슨빌에 살고 있었는데, 두 제품 모두 같은 회사에서 만들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술책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그런 것이 참 많습니다!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말씀드리며, 불경스럽게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똑같은 일이 교회의 움직임 속에도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값을 치러야 합니다. 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룻밤에 부자가 된다”는 데 투자했다가, 어느새 이 친구는 가진 것을 전부 잃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건전한 사업 방식이 아닙니다. 실체도 확인되지 않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나 건전한 사업적 사고를 보여 주지 못합니다. 또 가진 돈을 주머니에 넣어 두는 것도 좋은 사업 방식이 아닙니다. 그 돈이 일하게 하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달란트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을 하나하나 다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제가 여러분께 전하려는 요점을 밝히려고 비유를 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돈을 주머니에 넣어 두면 도둑들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돈을 주머니에 넣어 두는 것은 좋은 방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투자처에도 넣지 마십시오. 수익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고 충분히 확인된, 믿을 만한 좋은 회사에 투자하십시오. 실업인 남녀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수익을 주지 못하면 불안해하십니다. 그러나 수익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믿을 만하다면, 그곳에 투자하십니다. 가진 것을 모두 넣을 수도 있습니다. 수익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이 젊은 관원, 아니, 저는 그를 젊은 사업가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도시의 젊은 사업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확실히 입증된 것 가운데 하나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하자면 영생의 보증서에 가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보증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대가를 치르려면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빼앗기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에게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는 분명히... 그에게는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가 있었고, 교회생활도 했으며 교회에 속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명령들을 지켜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하시며 교회가 가르치는 이 모든 도덕적인 것들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에게 “네게 아직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교회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교인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종교 단체의 일원이었지만, 그 청년은 자기에게 영생이 없다는 것을 알 만큼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영생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얻으려고 애씁니다. 그가 구했을 때, 그것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제시되었는데도, 그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어리석게도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를 다니면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그와 같은 욕구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제 아내가 늘 말하곤 했듯이, “당신은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군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붙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맘몬[곧 세상이라는 뜻입니다]을 함께 사랑할 수 없고,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너희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나는 어느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제가 말씀드리는 보증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생,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것은 무엇이든 시작된 적이 없으므로 끝날 수도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교회에 가입하거나 신조를 받아들이거나 새해에 새 출발을 하거나, 그 밖의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곧 하나님 자신을 성령의 모습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부가 되며,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분과 똑같이 영원해집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모두 끝이 있습니다. 세상은 시작되었으니 끝납니다. 하늘도 시작되었으니 끝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제가 복숭아나무에서 생명을 꺼내 배나무에 넣을 수 있다면, 그 나무에는 더 이상 복숭아가 열리지 않고 배가 열릴 것입니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이 그 생명에 맞는 열매를 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줍니다. 여러분의 삶이 너무나 큰 소리로 증언하므로, 여러분이 입으로 하는 간증은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사는 삶과 하는 일을 보고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분의 생명이 여러분을 통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이어 가는 그릇 안에 있을 뿐입니다.
그 청년이 그런 투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니, 얼마나 경솔한 일을 한 것입니까! 그는 재산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산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오늘날 그 청년의 처지는 어떨까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인 신자였습니다.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었고, 율법이 주는 모든 빛 가운데 걸었으며, 아마 어느 큰 회중에 충실히 속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영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무엇을 보았습니다. 제사장도 보았고, 동족들도 보았고, 좋은 사람들도 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성전에서 그분을 체포하라고 보낸 군사들조차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아무도 이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단지 제사장이나 평신도처럼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하신 말씀을 뒷받침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은 책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사시는 동안 쓰신 글은 우리에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평판이 좋지 않은 한 여자가 그분께 끌려왔을 때, 한 번 모래 위에 쓰셨다가 다시 지우신 것뿐입니다. 왜 글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이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있는 그 생명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살아 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너희가 나를 믿지 못할지라도(그분이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일들은 믿으라.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그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너희에게 말해 준다.” 그 시대의 많은 성직자에게 그것은 외국어와 같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시 되풀이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같습니다. 영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 무리에서 다른 무리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 갑니다. 악한 영들도 그렇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한 영도 그렇습니다. 성령은 오순절 날 처음 임하셨을 때와 똑같으십니다. 그 큰 불기둥 안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누어 그분의 백성 가운데 임하셨을 때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이 예수님 안에서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무엇을 보았습니다. 한 인간 안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분별력 있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던 바로 그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다면, 어떻게 같은 삶을 살지 않고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흥분할 수도 있고, 어떤 신조나 다른 무엇에 너무 깊이 물들어 그것이 바로 그 생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읽어 보면, 바로 그것이 오늘날 그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형제이신 구속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가, 바로 그런 분으로 구속받은 자녀인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크게 부족한 것 한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도 사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순복음 사람들 가운데 지내면서, 이 실업인 모임을 만나기 전까지 제가 발견한 한 가지는 오순절 신앙을 가진 조직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고, 이 젊은 사업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그분을 거절했는데도 그분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했고, 그분이 지니신 이것을 받으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가가 너무 컸습니다. 그가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은 그 투자에는, 세상의 모든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네게 있는 것을 팔아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남녀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여러분의 신으로 삼고, 그것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오늘날 실업인 남녀들이 얼마나 많이 거머쥘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내놓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세계와 교단 교회들, 그 모든 곳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오늘날의 모습은 초기 오순절 교회와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나는 캐딜락을 여러 대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재산을 이렇게 많이 가졌으니 나는 영적인 사람입니다”라고 자랑하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서도 그런 것을 너무 높이는 모습을 봅니다. 초창기 오순절 사람들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자기들 가운데 나누어 주었습니다.
얼마 전 자메이카에서 순복음 실업인들과 함께 경마장에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여러 섬에서, 그 일대 모든 섬에서 모여 온 실업인 모임에서 제가 그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가수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늘 밤 오순절 사람들이 자기 재산을 팔았다고 하신 말씀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순절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관해 설교하면서, 그 한 가지는 그들이 비판할 만한 이유가 있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실업인들은 언제나 부자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압니다. 이미 부자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팔고자 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들에게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세상 쪽으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쪽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할리우드는 반짝이는 것들을 좇습니다. 원숭이도 똑같이 합니다. 할리우드는 번쩍이지만, 복음은 빛을 발합니다. 번쩍이는 것과 빛을 발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큰일을 벌이고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깥에 있는 사람을 얻는 길이 아닙니다. 그 삶을 사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도 여러분처럼 되고 싶어 주리고 목마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짭짤해지면 그 사람은 목말라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짭짤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 소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닿아야만 보존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이 청년은 이분이 평범한 사람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분을 통해 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말씀으로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사역하는 형제님들께도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사역자들과 실업인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거대한 체계가 그와 같은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저는 조금 두렵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우리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이르리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부자며 재산을 불렸으므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네가 비참하고 가난하고 가련하며 눈먼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슬픈 점은 바로 그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눈이 멀었습니다!
신학교의 학자들인 그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성경이 그분을 분명히 밝혀 주었고, 모세가 일으켜질 것이라고 말했던 그 선지자가 자신임을 그분이 입증하셨는데 말입니다.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그들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이 눈먼 바리새인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반드시 눈이 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그들의 눈이 멀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성경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도 눈이 멀어,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며 벌거벗고 눈멀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리에서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참으로 가련한 일이겠지요. 그 남자나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 수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날 일부 여성의 옷차림을 보면, 육신으로도 거의 그런 상태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가가 잘못되었다고 말해 주었을 때 그들이 귀를 기울이고, 자기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스스로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벌거벗었으면서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다시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분은 지금도 같은 메시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분의 교회 안에 있어, 그분의 말씀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땅에 계셨던 것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으로 계시면서, 그 말씀을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령께서도 육신 안에 계시면서, 모든 약속과 모든 이적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게 하십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들에게는 이 영생의 보증서를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 청년 관원이 했던 그 경솔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협의회에 들어가 서로 연합하며, 성경이 예고한 하나의 교권적 우두머리 아래로 모두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단 조직들 가운데서 그것을 봅니다. 지금 로마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속셈도 없고, 말을 적당히 둘러댈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진리를 입증하십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교회에도 이 보증서를 받으라는 제안이 주어집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아침 여기 계신 많은 실업인 여러분이 그런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떠나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곳에 가서 빛이 되십시오. 다만 빛을 가지고 가십시오. 보십시오. 부자 청년 관원이 그 기회를 거절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오늘날 교회도 영생의 기회를 거절합니다. 교회 자체로서는 그것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조상들이 지켜 온 위대한 전통을 훼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큰 교권 체계 안에 성령께서 임하신다면, 그 지도자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 조직에서 내쫓길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는 것을 좀처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박사님이나 성하, 그 밖의 어떤 높은 호칭으로 불리지 못하고, 우리 가운데 평범한 한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리스도교에는 높고 큰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이 그런 것을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크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나는 너보다 더 거룩하다”는 식의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밧모섬에 있던 요한에게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읽습니다. ‘니코’는 정복한다는 뜻이고, ‘레이티’는 평신도라는 뜻입니다. 평신도를 정복하고, 모든 거룩함을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은 그 무리 전체에게 임하셨습니다. 어차피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실 뿐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거룩하십니다. 거룩한 사역자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사역자를 통해 사역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거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같은 기회를 너무나 자주 거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읽으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에서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슬픈 장면 가운데 하나를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 말입니다. 루터 시대를 비롯하여 일곱 교회 시대의 다른 모든 교회에서는, 하나하나 예수님이 교회 안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계신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에서는 그분이 밖에 계시며, 다시 들어가려고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교회를 두드리며 다시 들어가려고 하신다니,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 세상의 부가 그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돈이 많다는 것뿐 아니라, 인기와 세상의 것들, 삶의 염려가 가득합니다. 그렇게 세상과 어울리는 동안 지성적인 사람들이 들어와 그 알맹이, 그 값진 진주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있을 백성을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절합니다. 모두가 거절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분을 내쫓았습니다. 신조를 가져다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를 대신하여 다른 것을 받아들이면 말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사랑스러운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시다. 그녀는 여러분을 사랑했고, 여러분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다면, 첫사랑을 저버려야 합니다. 우리도 처음 사랑한 말씀을 저버려야만 신조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진리를 먼저 넘어서지 않고는 오류를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악수하고 그들을 교회 명부에 올려놓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파티를 엽니다.
어젯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교회 파티에 간다고 했습니다. “교회 지하실에서 해요. 번코 놀이를 할 거예요. 경품으로 줄 칠면조도 있어요. 이렇게 해서 목사님 사례비와 선교비를 보태는 거죠”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고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저는 성경을 덮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런 일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생의 보증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런 일을 일으킵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저께 밤,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호텔 로비의 작은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여자에게 “샌드위치 하나와 버터밀크 한 잔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여자는 눈 아래를 온통 파랗게 칠하고 해서 곪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입은 옷은 아스피린 통 하나에 다 들어갈 만큼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버번 온 더 록스를 드릴까요?” 저는 “뭐라고요?” 했습니다. “버번에 뭘 넣어 드릴까요?” 저는 “‘버터밀크’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뭘 마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버터밀크요.” “여기 좋은 칵테일이 있어요.” 저는 “저는 복음 사역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우리... 저는 가톨릭 신자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부님들도 와서 술을 드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가톨릭 신부가 아닙니다. 복음 사역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혼합주 한 잔 드시지 않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섞지 말고 그냥 버터밀크를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바로 이렇습니다.
종교가 세상과 똑같아졌습니다. “종교”라는 말은 “덮개”라는 뜻입니다. 세상으로 덮여 있으면 세상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여 있으면, 그분과 연결되므로 더 이상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피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피만 인정하십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아멘. 이런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이 영생의 보증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가 많은데, 그들은 설교를 아주 빠르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참 느립니다. 우선 저는 남부 사람, 남부 반군 쪽 사람이라서, 천천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저를 거의 치고 지나가다시피 하므로, 저는 구석으로 물러나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행렬이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느리니 조금만 참아 주셔야겠습니다.
이 보증서를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아니, 오늘 아침 이미 이 보증서에 가입한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이 보증서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곧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보증서를 가졌던 사람들 말입니다. 옛날로 돌아가 몇 사람을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
한때 이 보증서를 제안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농부였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그를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멸망시킬 홍수가 올 것이다. 이 보증서를 받으려면 이제 네가 아주 우스꽝스럽게 행동하게 되겠지만, 이것이 네 생명을 구할 것이다. 방주를 지어라.” 그 사람은 노아였습니다. 그 시대의 다른 종교인들은 모두 그 노인이 미쳤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분명 그 시대의 과학적 체계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그런 세상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보증서에 정해진 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그분은 저 위에서,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될 모든 사람을 구속하고 계십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형제 여러분, 지금 들어오십시오. 기다리지 마십시오. 조금 지나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여러분에게... 이것이 제시되고 있을 때 지금 오십시오.
노아는 이 투자를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농부였고, 아마 많은 사람을 알았으며 가진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주를 지을 재료를 구하려고 가진 것을, 어쩌면 농장을 팔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를 “홀리 롤러”, 곧 바닥에서 구르는 광신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그분도 이것을 발견하고, 이 보증서를 갖고 싶어 주 예수님의 피로 자기 이름을 서명했을 때, 바닥에서 구르는 홀리 롤러가 되었습니다. 노아도 똑같이 했습니다. 가진 것을 처분하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비웃음을 당하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지만, 그의 보증서는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자기 생명만 아니라 온 집안을 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뿐만 아닙니다. 어쩌면 아내는 여성 사업가이고, 남편도 사업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우리 가족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하십니다.
한번은 바울과 실라가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빌립보 간수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왜 그렇습니까? 그가 참으로,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6장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를 수도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따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구원을 얻을 만큼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믿음으로 가족의 구원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가족을 도울 수 있습니다. “너와 네 집”입니다.
노아의 가족은 선한 사람인 아버지가 계속 망치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온 가족이 와서 그와 함께 망치질하며 말씀으로 인한 치욕을 견뎠습니다. 여러분도 언제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시련 없이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그 왕국은 눈에 보이게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보증서는 그의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노아에 관해서만도 몇 시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이라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 봅시다.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기회를 얻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선지자에게 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언제나 선지자에게 옵니다. 쉿, 잠깐만요. [회중 가운데서 방언과 통역이 나온다.] 아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이해합니다. 혹시 이해하지 못하는 실업인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라면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성령께서 메시지 도중에 개입하여 그렇게 경고를 주실 정도라면, 분명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은사로 믿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이 사람들 가운데 왔을 때는, 방언하는 사람들이 그저 꾸며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성령을 모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그 일을 두고 잘못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가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뜻이 없는 소리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혀 차는 소리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그 말씀을 다시 풀어 말씀하실 때까지 조용히 있습니다. 아마 메시지 도중에 개입하신 이유가 그것일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제대로 이해했기를 바랍니다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는데, 성령께서 여기 어떤 한 혼에게 다급히 전하실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 우리는 언제나 존중하고 경외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보증서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이분들도 바로 그 보증서가 담고 있는 것으로 충만하여 이런 일들을 행합니다. 메시지 도중에 무엇을 끼워 넣어 “이것은 성령께서[다른 말로 하자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던 사람은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는 보증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이 다니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선지자였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옛적에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곳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자”는 복합어입니다. “성경을 계시하는 사람”이라는 뜻과 “앞으로 올 일을 미리 알리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메시지를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나 조직이나 집단이나 제도가 아니라 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사람이 구원받을 한 가지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피로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교육 체계와 교단 체계를 세울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십니다. 여전히 피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을 사용하십니다. 두 사람이 어떤 일을 똑같이 보는 경우는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만 손에 붙드실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일하십니다. 모세와 다니엘, 그리고 여러 선지자를 통해 일하셨듯이 말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러면 성령은 어떻습니까?”라고 하십니다. 성령이라고 해서 그것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옵니다. 요한은 그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물속에 서서 메시아가 이미 그들 가운데 어딘가에 계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표적으로 그분을 알아볼 것이었습니다. 말씀이신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분은 물속에 있는 선지자에게 오셨습니다. 말씀이 선지자에게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날들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인칭대명사입니다), 성령이신 그분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에게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들을 보여 주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여전히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계신 선지자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그 선지자이십니다.
다니엘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심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도록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다니엘에게 맡겨졌습니다. 다니엘은 자기의 투자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에 결심했습니다. 아, 교회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을 어떤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과 결탁하여 자기 투자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교회가 마음속에 결심할 수만 있다면! 다니엘은 마음속에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이 사자들에게서 그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히브리 청년들도 하나님께 투자했습니다. 자기들의 거룩한 형제 다니엘의 형상을 만든다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들을 어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형상이 다니엘의 형상이었다고 믿습니다. 그가 벨드사살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거룩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거룩했어도, 그들은 어떤 형상에도 절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무엇을 본뜬 형상이든 상관없었습니다. 이방인의 세상은 거룩한 형상을 숭배하면서 시작되었고, 같은 방식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 체계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청년들은 어떤 형상에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자는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이제 잠깐, 또 다른 사람을 보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업가, 자기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부였습니다. 이름은 시몬이었고, 형제는 안드레였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였습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것이 맞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어부의 형제는 침례교 부흥회, 침례자 요한의 부흥회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이 침례자는 “내게는 그것이 없지만, 그것이 오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한때 침례교인이었습니다만, 우리 조직도 똑같이 한다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은 위에서 와야 합니다. 약속입니다. 어느 날 이 침례교인, 아니, 침례자는 “저기 있다.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라고 알렸습니다. 안드레는 너무나 기뻐서, 가서 어부인 형제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형제는 자기 일로 무척 바빴습니다. 어느 날 아침 조찬 모임에 참석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모임에 참석했는지는 모릅니다. 물가에서 열린 모임이었습니다. 그가 연사 앞으로 걸어갔을 때, 연사는 “네 이름은 시몬이며, 너는 아버지... 아니, 요나가 네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즉시 그 산헤드린의 일원, 그 큰 종교 단체의 일원은 반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었고, 자기들이 따르던 바로 그 모세가 “메시아가 오면 선지자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떤 교권 체계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마지막 날들에 무엇이 일어날지 말씀하신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이분께 왔을 때, 그분은 그가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경건한 늙은 아버지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즉시 이 영생의 보증서에 투자했고, 로마의 교회에서 감독이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뒤에...
거기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분이 선지자이셨기 때문에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갖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올바른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가 오신 것을 보았을 때, 그분은 말씀으로 온전히 확인되신 분이었습니다! 오늘날 선지자인 교회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선지자입니다. 우리가 조직을 만들고 집단을 이루어 서로 갈라서며 “믿음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이것이 영생입니다. “내 말들은 생명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빌립은 몹시 들떠서 산을 돌아 달려갔습니다. 거리를 재어 보시거나 그곳에 가 보시면, 약 15마일입니다. 아마 그다음 날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던 친구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 친구는 올리브 과수원을 가지고 있어서, 올리브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서둘렀습니다. 이제 한가롭게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도 보증서를 가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이 보증서를 받으면, 그것에는 무엇이 있어서 여러분도 즉시 판매원이 됩니다. 그는 꾸물거리거나 과수원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예수님, 나사렛 예수님이시네!”라고 했습니다. 그 큰 산헤드린 법정, 회당에 속한 이 확고한 히브리인은 곧바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낮추시고 부끄럽게 하시는지 보십니까? 사람들이 스스로 대단한 존재가 되었다고 여기면, 하나님께서는 ABC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누군가를 일으키셔서 그들의 자만을 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취해 무엇인가를 만드십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 그 시대의 사역을 맡도록 훈련받은 가야바와 대제사장들과 성직자들에게 오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례하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감리교인들이 가졌다”, “우리 침례교인들이 가졌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 혹은 ABC조차 모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자신의 영으로 기름 부으실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는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에게 있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했습니다.
그 중요한 때에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잠깐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빌립은 참으로 좋은 대답을 했습니다. “와서 보게.” 집에 앉아서 비판하지 말고, 와서 직접 알아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말하지 마십시오. 와서, 받아... 직접 보십시오. 산을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생선을 사러 갔던 때의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빌립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영수증에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던 그 늙은 어부 기억하나? 그 늙은 어부 말일세.” “그래, 기억하지. 시몬 말이지.”
“그가 바로 이분, [녹음 공백]... 영생을 가진 분 앞으로 걸어갔을 때, 그분이 둘러보시더니 그에게 말씀하셨네. ‘네 이름은 시몬이고, 너는 요나의 아들이다.’” 그리고 빌립은 말했습니다. “우리 지도자가 남겨 준 말씀으로 우리가 배운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에게 임한 이 마지막 날들에 ‘한 선지자가 올 것’이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일으키실 것이라는 말씀 말일세.” 그는 말했습니다. “아,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군. 가 봐야겠네.” 그가 청중 속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 그는 비판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도 그렇게 오셨기를 바랍니다. 비판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 보려고 오신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는 청중 속으로 들어와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마자, 이 영생의 근원, 유일한 근원이신 분을 보십시오. 그분이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는 “랍비여”라고 했습니다. [이런 뜻의 말이었습니다.]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본 적도 없고, 선생님도 저를 보신 적이 없습니다. 저에 대해 어떻게 아십니까?” 그분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전날, 산을 돌아 15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즉시 보증서에 투자했습니다. 이 확고한 신앙인, 교회의 일원이던 사람이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저 부자 청년 사업가와 얼마나 다릅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는 즉시 보증서에 가입했습니다.
우물가의 그 여자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인들에게로 가 봅시다. 지금 우리는 이방인들의 때에 와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이방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로마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우리가 어느 민족이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사마리아인들도 그랬습니다. 메시아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그분을 기다리며 이곳에 계신다면, 그분은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타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리고로 가시던 중이었지만,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수가라는 도시의 성문 곁에 앉아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갔습니다. 그분은 혼자 남으셨습니다.
한 여자가, 한 여인이,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부자 청년 관원과는 달랐습니다. 그 여자가 왔을 때, 우리가 아는 한 그 여자에게 있는 것은 낡은 물 항아리 하나뿐이었습니다. 여자는 그것을 내려놓고 물을 길으려고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내려보내려 했습니다. 그 여자가 옆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유대인이었고, 보기에, 제 생각에는... 성경은 “네가 오십 세도 넘지 않은 사람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분은 쉰 살쯤 되어 보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른몇 살이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교제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하시며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셨습니다. 여자는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관습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그 여자의 영을 파악하시고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잘 말하였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여자는 멈칫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여자는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며칠 전 바리새인들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표적을 나타내시며, 오시기로 되어 있던 그 선지자임을 보여 주시는 것을 보고도 그들은 “저자는 영매다.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이다. 일종의 점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회중에게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 일들이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회중 앞에서 체면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 일들이 행해졌으므로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용서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와서 같은 일을 행할 때, 그것을 거슬러 한마디라도 하면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처럼 그들은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교회 안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교회를 멀리했을 것입니다. 그 여자의 마음 깊은 곳에는 씨, 곧 영생이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그 빛이 여자에게 비치자마자, 여자는 그것을 마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와 성직자들의 차이를 보십시오.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시리라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 모세는 마지막 날들에 한 선지자가 일어나실 것이고, 그분이 메시아이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분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성경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은 더 살아 있고, 더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검보다 더 예리하여”, 히브리서 4장입니다. “뼛속의 골수까지 찔러 나누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신다.” 그분이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실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분이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셨습니다. 지금도 말씀이시며, 지금도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아셨습니다! 그분은 같은 일을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청중 가운데서 예언이 나온다.] 아멘. 이 일에 관한 그분의 메시지로 인해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아, 그 생명의 보증서! 생명! 생명!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생명입니다. 영생은 오직 한 가지뿐이며,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방금 예언에서 나왔듯이, 이 여자를 보십시오. 손에는 물 항아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도 물 항아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여자는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시리라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분은 그런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을 입증하는 표적일 것입니다. 그분은 분별하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바로 제 마음을 읽어 주셨습니다.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쪽 물 항아리는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다른 물 항아리는 가득 찼습니다. 여자는 영생의 보증서에 가입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한 생명이며,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라 샘솟는다.”
그러자 그 여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보증서를 갖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도시 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실 그 여자에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남성 여러분과 선교사님들은 동방에서는 지금도 그것이... 사람들이 그런 여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떻게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여자는 영생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람들은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마르고 바람 부는 날 집에 불이 난 것처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달려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여자가 충만하지 않았다면 남자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는 자기가 확실히 아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말하기를... “와서 제가 한 일들을 제게 말해 준 사람을 보십시오. 그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분을 도시 안으로 모셔 왔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은 여자의 간증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제 서두르겠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오래 붙들어 두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몇 분만 더 참아 주시면,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니고데모는 대단한 사람이었고,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선생이었으며, 자기 백성 가운데 지도자였고, 이름난 사람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의 제사장 시므온과 비슷했습니다. 시므온은 주님의 구원을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성령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영의 인도를 받아 그 방으로 들어와 아기에게 축복했습니다. 여선지자 안나는 또 어떻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는 그 여자는 저쪽 구석에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무도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 눈먼 여자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와서 그분 곁에 섰고, 그분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육신의 눈이 먼 여자라면 참 안타까운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뉴욕에는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 여자보다 더 눈먼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여자는 영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생명의 영이 생명의 샘으로 그 여자를 인도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목말라한다면, 어딘가에 반드시 샘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 그 부름에 응답할 깊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물고기 등에 지느러미가 생기기 전에, 물고기가 헤엄칠 물이 먼저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느러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 나무가 자라기 전에, 나무가 자랄 땅이 먼저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반드시... 오늘 아침 여러분이 주리고, 사람들이 목말라한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도록 어딘가에 생명의 샘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부르짖는 깊음에 응답할 깊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부르짖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 생명의 보증서에 가입하는 대신, 교회에 들어가 명부에 이름만 올립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도박하며, 밖으로 쏘다니며 부도덕하게 살면서 그 거룩한 동기를 잠재우려 합니다. 보십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갈망하도록 사람 안에 넣어 주신 그 거룩한 부르심을 어떻게 감히 잠재우려 합니까! 여러분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여러분을 위해 가지고 온 것이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은 왜곡된 생명입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것은 쾌락... 성경은 “쾌락에 빠져 사는 여자는 살아 있어도 죽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쾌락 속에 살면서 영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 보증서는 확실합니다. 니고데모도 투자하려고 왔습니다. 밤에 왔지만, 은행이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열려 있습니다. 열려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은행은 언제나 거래할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한두 사람만 더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24장 49절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제 약속의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증서를 가진 제자들에게 이 보증서의 배당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분이 본사에 가셔서 그것을 보내 주실 때까지, 수표가 돌아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분은 올라가려 하셨습니다. 친히 자신의 피로 서명하셨고, 그들의 배당금을 돌려보내시려고 올라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배당금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5분만 기다리다가 낙심하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 곧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보수를 받을 때까지, 배당금을 받을 때까지 머물라.” 얼마나 오래입니까? 일주일, 열흘, 닷새, 얼마가 되든 말입니다.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그것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나를 믿는 너희의 보증서로 인해 높은 곳에서 오는 배당금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 아, 침례교인 여러분, 감리교인 여러분, 장로교인 여러분! 제가 흥분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은 누구라도 흥분하게 할 만한 일입니다. 왜 거기서 기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보증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배당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그 침례교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침례교인입니다. 오순절 침례교인입니다. 그는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이미 침례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믿어야 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장에서도 말했습니다.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여러분이 내게서 들은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감독이든 추기경이든 누구든지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렇습니다! 추기경이나 감독이나 설교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 영생의 보증서와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지금 제정신을 잃어...”라고 하십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압니다.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압니다. 흥분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밤 여기서 말씀드렸듯이... 누군가 “당신 미쳐 가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전처럼 지낼 때보다 이쪽이 훨씬 좋습니다. 제게 생명이 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제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전에는 구원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제 안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기에는 그 진리를 아는 다른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것이, 부활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보증서 소유자들은 배당금을 받으려고 올라갔습니다. 아, 세상에! 사역하는 형제님들, 오늘 아침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지금 배당금을 받읍시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이방인들을 향한 것이다.” 형제님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모든 사람을 반드시 부르실 것입니다. 배당금은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의 것입니다. 보증서의 이자는 오순절 날 지급되었습니다.
이제 부유한 청년 바울도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죽으신 뒤에도 똑같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똑같으십니다. 다소의 사울은 학식이 잘 된 사람, 아니,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한 히브리인 교사 가말리엘에게 배웠습니다. 부모도 부자였습니다. 바울도 제법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언어로 말할 수 있었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그의 포부는 율법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교회에서 율법사 가운데 한 사람, 혹은 제사장이나 다른... 아니, 율법사가 되려는 것이었습니다. 영리했고, 말씀도 알았습니다. 부자였으며, 자기 포부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 무리의 소란과 떠드는 소리와 고함과 방언을 듣고, “저런 것은 예루살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는 일이다. 중단시켜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돌아다니며 교회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추기경이나 감독,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아 몸에 지니고 다마스쿠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교회는 왕국의 열쇠를 비롯하여 모든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였고,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맛디아를 뽑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보십시오.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은 사람이었을지는 모릅니다.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겸손한 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선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비판하는 한 작은 사람, 매부리코를 가진 작은 유대인을 택하셨습니다. 그는 회전 톱하고도 싸울 만큼 성미가 불같았고, 정말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내려가서 저 홀리 롤러들을 체포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쇠사슬을 채울 것이었습니다. 결박할 것이었습니다. 자기 감독에게서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날 11시쯤, 그는 공문을 손에 든 채 쓰러졌습니다. 위를 쳐다보니 불기둥이 보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이나 악한 영을 숭배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었으므로, 그 불기둥이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바로 그 불기둥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그분은 다시 하나님, 곧 불기둥으로 돌아와 계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네 손에 공문이 있구나. 너는 대단한 사람이다. 어떤 조직에서 왔구나. 이 나라에서 가장 확고하고 존경받는 조직에서 왔구나. 손에 공문을 들고 있지만, 네가 하는 일은 잘못되었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유대인이 “주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는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를 인도하며 말씀하셨던 바로 그 불기둥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주님, 제가 핍박하고 있는 주님은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예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거기 드러누운 채로 공문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 아래 내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아나니야다.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내려가라. 그가 네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나니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야가 와서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님, 길에서 형제님께 나타나셔서 이 보증서에 가입하기를 원하셨던 주 예수님께서, 제가 형제님께 안수하여 그것을 전해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달라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차이를 보십시오. 무엇이... 보십시오.
바울은 이것이 다른 분이 아니라 같은 분이라는 분명한 입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같은 분이셨습니다. 이것은 허튼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불기둥이셨고, 구속하시려고 육신이 되셨다가, 이제 다시 불기둥으로 돌아오셨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같은 분이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한 사람 위에 임하셨기 때문에 이제 성령이라고 불리시는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분명히 확인된 것을 보았고, 그것은 입증되어 있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는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사업가였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 부자 청년 사업가와 또 다른 이 청년 사울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까! 한 사람에게는 대가가 너무 컸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에게는 포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잖아요”라고 하십니다.
그에게는 자기 교회와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뒤 그는 교회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망쳐야 했습니다. 마침내 자기 교회가 그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그들이 그를 죽였습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쫓겨 다니며 핍박받았고, 한 번은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형제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을 위해서라면 저주받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았을 때, 그는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을 고립시키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저주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저주받아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젊은 부자 관원, 이 사업가와 바울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지 우리는 봅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교육, 오랜 세월 연구하고 배우면서 익힌 모든 신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모두 잊어야 했습니다. 그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 안에 있게 하려고, 제가 지혜롭고 고상한 말로 여러분에게 온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과 그것을 실증함으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보증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하거나 손을 얹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때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팔려고 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어떤 교회에 가입하는 것... 저는 죄와 부정함을 씻기 위해 열려 있는 보증서와 샘이 있다고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무엇을 믿지 않는 것입니까? 말씀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맞습니다.
얼마나 경솔한 결정인지 보십시오. 이 청년은 오늘날 여론을 따르는 많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는 떠나갔습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보증서를 잃었습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그 뒤에 그에게 불운이 닥쳤습니까? 아닙니다.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그다음에 보니 그에게 돈이 너무 많아서 곳간을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혼아, 편안히 쉬어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자회나 교회 파티 같은 것을 열 때면, 영이 가난한 사람이 대문에 누워 있었습니다. 자기가 거절한 그 보증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부스러기를 조금 쓸어 주고, 선교 헌금 같은 것을 얼마간 주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부스러기를 쓸어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저 사람들 집회에 한 번 가 봤습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 사람들을 반대해서 할 말은 정말 없습니다.” 부스러기 몇 개를 쓸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에게 결산의 때가 왔습니다.
친구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에게도 결산의 때가 옵니다. 우리 모두에게 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이제 여러분이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에게도 분명히 결산의 때가 왔습니다. 성대한 장례식이 열렸고, 틀림없이 잘 훈련된 성직자가 와서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아마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사람들이 관을 메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고, 어쩌면 정부 관리도 와서 그를 위해 조기를 달았을지 모릅니다. 모든 귀빈이 참석했습니다. 목사든 신부든, 그의 장례 설교를 맡은 사람은 틀림없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이분은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베푸셨습니다. 아, 우리 형제는 오늘 천국에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지옥에서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영생의 보증서 소유자를 보았다.” 그 사람은 멸시받는 주님의 소수 무리와 함께 그 길을 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람들이 너희를 핍박하며”, 마태복음 5장입니다. “내 이름으로 인해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것을 말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여기 영생의 보증서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여전히 교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랬습니까?”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설교자님, 어떻게 그것을 증명하시겠습니까?”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 보증서 소유자를 이곳에 보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물을 조금만 보내 주십시오. 이 불꽃이 저를 괴롭힙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들아”, 그는 자칭 그리스도인, 우리가 말하자면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너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 올 것을 보증해 주는 영생의 보증서를 받을 기회가 주어졌지만, 너는 거절했다.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난했어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이제 네가 구걸하는 자가 되었구나.” 아, 친구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그와 같은 실수를... [녹음 공백]... 확신이 올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고 보증서를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왜 받지 않으십니까?
오늘 아침 이 젊은 분이 말했듯이,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런 곳에 들어가면 모두... 저는 큰 사업가였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을 보지 마십시오. 최근에 한 젊은 연주자가 러시아에 갔습니다. 그는 가수였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연주를 마치자,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발을 구르고 손뼉을 쳤지만, 그 젊은이는 그 모든 박수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나 보다” 하고는, 다시 아주 큰 소리로 손뼉을 치며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는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여전히 박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렸습니다. 내내 위층 관람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를 훈련한 스승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가슴을 내밀며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하는 대신, 위를 바라보며 주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청중 가운데서 예언이 나온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마음도 숙인 채, 잠시 자리를 내어 드립시다. 오늘 아침 온전히 진실한 마음으로, 아무 방해 없이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 큰 복을 받으셨습니까? 이 생명의 보증서를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으로 바뀌었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성령의 증거를 가지고 계십니까? 메시지에서 말씀드렸듯이, 베토벤이 여러분 안에 있다면 베토벤의 일을 하고 베토벤의 삶을 살 것입니다.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곡을 쓰는 일 외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이 될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시 육신으로 나타난 베토벤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며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무엇도 말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부인하면서 계속 하나님이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지 않았습니다. 교회에는 속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교회나 큰 기관들, 조직들, 제도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해답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해답이십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해답입니다. 오늘 아침 그분을 여러분의 삶 속에 모셔 들이지 못했고, 저희가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신다면, 그저 겸손히... 여기에는 앞으로 나오시라고 초청할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저 일어서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어서시면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실 것을 믿고, 그 마음이 진실하시다면, 그분이 들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복도에 계신 분들, 문 주위에 빽빽이 모여 계신 분들, 위층 관람석이나 계단에 계신 분들, 어디에 계시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지금 그리스도께서 저를 기억해 주시기 원합니다. 제 삶 안에 그분의 생명이 있기를 원합니다. 제 행동으로 보나 제 생각과 하는 일로 보나, 제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정말 이 보증서를 원합니다. 진정으로 원합니다. 저도 받을 수 있는지 그분께 여쭈어 주십시오. 저는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잠깐 그대로 서 계십시오. 그대로 계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십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관심이 있습니다. 제게는 혼이 있고, 저는 떠나야 합니다. 오늘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그것이 제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다른 모든 생명은 사라져야 합니다. 시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오랫동안 어떤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참 좋습니다.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위층 관람석과 앞쪽, 오른쪽과 왼쪽에 계신 분들,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어서십시오. 복도에 이미 서 계신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어떤 표시,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어떤 행동을 보여 주십시오. “저도 그날 아침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계단을 비롯하여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진정으로 영생을 원합니다.”
이제 아주 깊이 생각하십시오. 지금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친구 여러분, 진지하게 말씀드립니다. 제게 이것은 생명입니다. 저는 이것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옳습니다. 더 계십니까? 아까 손을 든 분들은 이보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확신이 없다면, 이만큼만 해 주시겠습니까? 일어서서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좋습니다. 더 얼마나 계십니까? 누구시든 바로 일어서십시오. 그저 일어서서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층 관람석과 여기저기에 계신 분들이 보입니다. 이제 정말 이분들이 전부입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섰습니다. 이제 더 계십니까? 그저 일어서십시오. 말씀하십시오...
시간이 늦어진 것을 압니다. 성령께서 몇 차례 우리 말씀 도중에 개입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는 한, 우리는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이것이 제 말만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좋습니다. 이제 일어서십시오. 아직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모든 분, 자기 삶에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증거가 없음을 알고 이것을 원하시는 모든 분은 일어서십시오.
여러분은 교회의 훌륭하고 충실한 일원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다니시던 교회에 계속 다니십시오. 맞습니다. 지금 잠든 처녀들이 나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잠든 처녀가... 자기 나름대로 선한 삶을 살려고 애쓴 사람들은 처녀였지만 기름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기름은 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름을 발라 기름부음을 행합니다. 기름은 영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이었고, 훌륭한 감리교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등 온갖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경점, 일곱째 교회 시대에 기름을 사러 왔습니다. 기름을 사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신랑이 왔습니다. 조금 전에 여기 계신 저 명망 높은 목사님이 바로 그 성경 말씀을 읽어 주셨습니다. 오순절교인 여러분,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 시대를 내려오며 이런 때가 있었습니까? 감리교인과 침례교인과 장로교인이 지금처럼 성령을 달라고 부르짖은 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때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때가 그분이 오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형제들과 교회들이 주려 하는 바로 그때, 그것은... 이 처녀는 마지막 날 심판 때, 흰 왕좌 앞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등잔에 기름이 없다면, 아직 자비의 문이 열려 있기를 바랍니다만, 그 문이 열려 있는 동안 일어서서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이런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 등잔에는 기름이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물론 믿습니다. 오랫동안 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이 그 사랑스러운 성령으로 충만하고, 모든 것이 달라졌으며, 제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정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층 관람석과 곳곳에 아주 많은 분이 서 계십니다.
이제 여기 계신 사역하는 형제님들, 저의 귀한 형제님들, 한 분 한 분 모두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보십시오. 여러분은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안에 무엇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다면 일어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과학에 따르면 중력이 여러분을 아래로 붙잡아 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이 다른 영의 증언, “너는 내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생명의 증언을 듣고 결정을 내렸고, 여러분은 일어섰습니다. 일어서서 증언함으로 자연법칙에 맞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는 자는, 다른 말로 하자면,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를 증언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성령이 필요합니다.
지금 일어서 있는 이분들 가까이에 계신 분들 가운데 성령 침례를 받으신 분들은... 제가 모든 분에게 다 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위층 관람석을 비롯하여 어디에 계시든, 손을 뻗어 그분들 위에 얹어 주시겠습니까? 기념의 표시로 말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전도하러 내려갔을 때, 그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만 주었고, 성령은 아직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와 빌립이 내려가, 아니...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 말씀을 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신 믿는 여러분, 주위에 누가 일어서 있는지 보시고,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라는 기념의 표시로 그분들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손이나 어디에든 손을 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믿으십시오. 이것은 감정이 아닙니다. 성령의 다정하심이 내려와 모든 삶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들이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들과 접촉했습니다. 여러분이 손을 얹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유대인은 희생물 위에 손을 얹어 자신을 그 희생물과 연결했습니다. 어느 날 여러분도 예수님 위에 손을 얹고 자신을 그 희생물과 연결했습니다. 그 희생물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돌아왔습니다. 오늘 밤 교회에서 “증표”라는 말씀을 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지금 여러분 위에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기를 원하는 이 남자나 여자와 자신을 연결했습니다. 지금 곧바로 일어서서 그것을 받기 원하는 분들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시간입니까! 이제 의심하지 마십시오. 서두르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제 가련한 마음이 주려 있습니다. 제 마음에 주님을 모시기 원합니다. 제 삶에 주님을 모시기 원합니다. 주님, 저를 채워 주십시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많은 사람이 일어서서 생명을 원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옵니다. 그분이 생명이십니다. 그분께는 우리가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을 충족함으로... 아브라함을 생각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받아들이셨다는 확인으로 할례의 인을 주셨습니다. 이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고백하지만, 아직 성령으로 인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 이제 그들은 믿는다는 기념의 표시로 서 있습니다. 주님, 이제 성령으로 그들을 인쳐 주옵소서. 지금 이 자리에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셔서 모든 마음을 인쳐 주옵소서. 바로 이때 이 연회장에 성령께서 임하옵소서. 사탄아, 너는 그들의 삶에서 나와라. 그들을 놓아주어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지금 이분들에게 임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