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회중이 박수를 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이분을 참으로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셉 형제님은 오랫동안 제 친구였습니다. 언젠가 저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주님께서도 조셉 형제님이 저를 사랑하듯 저를 사랑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 걱정이 없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셉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제 믿습니다”를 부르려고 했지요. 오늘 밤 진심을 담아 부릅시다.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제 믿습니다.
서 있는 채로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이 순간 우리의 마음도 그분 앞에 숙입시다. 회중 가운데 이 기도 시간에 기억해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하나님께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제게 아직 필요한 것이 있음을 이 손으로 나타냅니다. 주님께서 채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말씀으로 땅을 지으신 위대하고 전능하신 여호와여,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곳에 잠시 머물며 살기를 원하는지 죽기를 원하는지 결정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너희는 이날 택하라.” 우리는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택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주님을 자신이 사랑하는 구주로 알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 밤 주님을 택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밤 육신의 죽음에 이를 만큼 병든 분들이 있다면, 오늘 밤 주님을 자신의 치유자로 택하게 하시고, 그로써 육신도 다시 회복되게 해 주옵소서. 오, 주님은 사람의 자녀들에게 참으로 선하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비를 내릴 구름을 보내시고 땅에서 열매와 양식이 나게 하여 주님의 자녀들을 먹이십니다. 그런데 주님, 우리는 너무나 게으르고, 낭비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망가뜨립니다. 오 하나님, 주님,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는 자비를 간구합니다. 주님, 주님의 공의나 심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자비에 참여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봉헌된 이곳에 서서 드리는 이 말을 회중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들어주시기를 구합니다. 이 귀한 교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오늘 밤 오신다면, 수많은 뉴욕 사람들이 그 큰 휴거에 참여하리라고 저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됫박 아래 감추어진 빛이 아니라 등불을 밝히시는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있는 빛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불신의 짙고 어두운 안개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이 죽어가는 세상에 우리가 빛이 되게 해 주옵소서. 빛이 비치기 시작할 때, 머지않아 우리 주님께서 그 안개를 걷어 내시는 것을 보게 될 줄 압니다. 주님, 우리를 준비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님의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저는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빅 목사님과 저기 계신 목사님의 동역자, 귀한 남녀 성도들로 이루어진 성가대, 협력해 주신 모든 목사님과 평신도 여러분, 그리고 방문객들과 우리 가운데 오신 낯선 분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주에 이 도시에 복음의 빛을 전하고자 기도와 협력으로 힘을 보태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빅 목사님과 다른 많은 목사님, 그리고 저는 이 큰 호수에서 그물을 끄는 어부들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 속한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분이 한쪽에 서고 또 다른 분이 다른 쪽에 서서 그물을 끌 때, 저는 그저 제 그물을 그분들의 그물에 이어 붙이려고 왔습니다. 제 사역을 그분들의 사역과 함께 드려서, 조금 더 넓은 곳까지 손을 뻗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리며 이렇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 안에 물고기가 있습니까? 어린양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고, 생명책에 기록되도록 미리 예정된 생명의 씨들이 있습니까?” 그들이 거기에 있다면, 복음의 빛이 비칠 때 곧바로 알아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미리 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을 모두 모실 자리가 없었던 점은 유감입니다. 거의 매일 밤 제가 이곳에 올라올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길 이곳저곳을 걸으며 들어오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우는 분들도 있고, 여러 모습의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소방 당국의 규정에 따라 인원은 얼마까지만, 통로는 얼마만큼 비워 두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카이사르에게 속한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법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께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화재 위험 등의 문제는 그분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우리에게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길 이곳저곳에 있는 사람들과 병든 분들이 들어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그분들을 좀 봐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뉴욕의 다른 지역이나 롱아일랜드, 저지, 여러 곳, 또 맨해튼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방서장이 와서 이렇게 붐비는 것을 보면 집회 전체를 폐쇄할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참석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건물의 소유주, 어떤 분이든, 혹은 건물을 소유한 회사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건물을 사용하게 해 주신 관리 책임자와 관리인에게도, 우리가 우선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은 참으로, 참으로 친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지금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이 성급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다만 그리스도를 향한 열심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언제든 이 건물을 춤이나 세속적인 오락을 위해 사용한다면, 성령께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찌르시는지 그들이 울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그것을 기도합니다. 이 건물의 소유주들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 혼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오십시오”라고 하시며 저를 다시 초대해 주시니, 제 마음이 벅찹니다. 조금 특이한 이런 사역은 때로 형제들 가운데서도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조직 안에서 자리를 굳힌 분들 중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배후에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귀한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렇다는 것은...
저는 제 손을 잡고 똑바로 제 눈을 바라보는 가톨릭 사제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 속에 무엇이 지나가는지 제가 몰랐을 것 같습니까? 그것이 분별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보시는 것이지요. 그분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파문당할 테니까요. 개신교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형제들이며, 그분들도 받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교단이나 교단 제도를 반대하여 말할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그 제도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갈라놓고,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선언문을 작성하여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끝!”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쉼표를 찍어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보여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더 믿는다”고 한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렇게 하면 교단으로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역사는 앞선 것에 늦은 비가 됩니다. 루터는 가톨릭에 늦은 비였고, 존 웨슬리는 루터에게 늦은 비였습니다. 오순절은 교단에 늦은 비였습니다. 이제 오순절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었으니,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은 뽑을 수 없을 만큼 천막 말뚝을 깊이 박아 놓은 적이 없습니다. 불이, 그 불기둥이 움직이면 그들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불기둥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불기둥이 어떤 일을 하고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다가, 그 메시지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사람들은 그의 사역을 토대로 조직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기둥은 그들을 그 자리에 남겨 두고 곧장 떠나 계속 나아갑니다. 그들은 말뚝을 너무 단단히 박아 놓아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도 마음이 선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만큼 제 마음에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뉴욕 사람들이 냉정하고, 남다르며,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대한 용광로와 같아서, 각 나라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을 한 움큼씩 집어다가 그 안에 넣고 갈아 놓으면 뉴욕이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성도들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세계 곳곳을 두루 다녀 보면, 어느 나라든 어디에나 하나님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 몇 분께 이 말씀을 잠깐 덧붙이겠습니다. 선교사로서 제가 어떤 나라에 가 보면, 오른손과 왼손도 구분하지 못하고, 글자나 철자를 전혀 모르며, 그저 잡아서 먹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과 똑같은 일을 하고 여러분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알지 못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든 인종, 모든 곳의 모든 민족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밤 저는 그렇게 느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귀한 분들 가운데 일부에게 오늘 밤 말씀드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제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붙드는 무리에게 말하는 책임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심판 날에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이 이런 일들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붙듭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모두 들뜨게 하리라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만들려고 생각을 짜내거나 성경 구절과 메모를 적어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세워 주고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을 기도하며 생각하려고 합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단지 함께 손뼉을 치고 소리 높여 외치며 통로를 뛰어다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저는 그런 것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에는 토대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뛰어올랐다가 다시 내려왔으면, 뛰어오른 만큼 높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뛰지 마십시오. 언제나 여러분이 사는 만큼만 높이 뛰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간증보다 더 크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사는 모습과 하는 일을 보고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제가 밤마다 너무 오래 말씀드렸습니다. 정해진 시간대로라면, 아마 앞으로 20분 안에 여기를 나가야 할 텐데, 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느립니다. 저는 그저... 저는 늘 늦습니다. 이 세상에 올 때도 늦어서 아홉 달을 조금 넘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태어날 때도 예정된 때를 조금 넘겼다고 합니다. 제가 받은 얼마 안 되는 교육을 받을 때도 늘 뒤처졌습니다. 결혼할 때는 환자를 심방하느라 아내를 세 시간쯤 기다리게 했습니다. 제 결혼식에도 늦었습니다. 이제 제 장례식에도 늦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다음 일이지요.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가 이 말을 무슨... 하지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교육으로 사람들을 이것 안에 들어오게 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 해 보려 하지 않고, 그저 성령께서 뜻대로 하시게 합니다. 집에 딸이 둘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통화했습니다. 하나는 리브가이고, 다른 하나는... 리브가가 큰딸입니다. 그다음 여동생인 작은딸은 사라입니다. 둘은 거의 다섯 살 차이가 납니다. 전에 한 번은 선교 집회에 갔다가 집에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빠를 아주 따릅니다. 지금 리브가는 다 큰 처녀이지만, 여전히 아빠를 따르는 딸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곤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몇 달씩 집에 못 들어가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저를 보려고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렸습니다. 여러 해 전, 한 십 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해외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비행기가 늦어져서 딸아이들은 졸음을 못 이기고 자러 갔습니다. 잠 요정이 아이들 눈에 들어갔던 것이지요. 아니, 눈에 잠의 모래를 뿌렸다고 해야겠군요. 그래서 아내만 깨어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이른 새벽, 세 시쯤 집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쯤 누워 있다가 일어나 거실에 가서 의자에 앉았습니다. 얼마 뒤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다가 방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딸 둘이 깬 것입니다. 리브가가 먼저 일어나 “아빠가 오셨지!” 하는 생각이 들자, 침대에서 내려와 달려왔습니다! 그 소리에 어린 동생도 깼습니다. 제 아이들도 여러분의 아이들과 같을 것입니다. 큰아이가 옷을 거의 닳도록 입으면 다음 아이가 물려받으니까, 사라는 베키의 잠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발 부분이 토끼 발처럼 아주 크게 달린 잠옷이 있었는데, 사라에게는 분명 너무 길었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너무 짧은 사라는 언니를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달려와 제 무릎에 뛰어올라 두 팔로 저를 감싸 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도 눈물이 조금 났습니다. 그런데 가엾은 어린 사라는 베키에게 뒤져서 자기는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간에 서서 커다란 검은 눈으로 올려다보는데, 볼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리브가가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내 동생 사라야!” 제 생각에는 몇몇 교회들이 하려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왔다는 걸 알아 둬.” 그리고... 두 팔로 저를 안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다 차지했으니까, 네 몫은 없어.” 교회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려고 할 때가 많지요. 베키는 다리가 꽤 길어서 발이 바닥에 닿았습니다. 많은 교회들처럼 자리를 제법 잘 잡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린 사라가 너무 서운해하기에, 제가 사라를 보고 눈을 찡긋하며 이렇게 손짓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 무릎을 내밀었습니다. 사라가 기다리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달려왔습니다! 제 다리 위로 뛰어올랐는데, 짧은 다리로는 조금 높은 자리라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꼼지락거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팔로 아이를 꼭 안았더니, 아이는 작은 머리를 제 가슴에 기댔습니다. 그 느낌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저도 좋아서 아이를 안아 주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몸을 일으켜 리브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이 말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브가 언니, 나도 할 말이 있어.” 아이가 말했습니다. “언니가 먼저 와서 아빠를 다 차지한 건 맞을지 몰라도, 아빠는 나를 다 안고 계신다는 걸 알아 둬.” 그러니...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충분히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저의 전부를 붙들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그것뿐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저를 쓰실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만, 결코 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 헌금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오지 않습니다. 평생 제 손으로 헌금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모든... 저는 33년 동안 목회자로 있었지만,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저를 위해 거두어 준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거둔 적은 평생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거두어 주셨으니, 저는 그것을 받아 해외 선교에 사용하고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이 누리는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저를 초청하거나 여비를 댈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회중이 박수를 친다.] 감사합니다. 혜택을 받지 못한 그들도 우리가 여기서 누리는 것과 같은 기회를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돈은 단 한 푼도 술이나 담배나... 그런 데 쓰이지 않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일로 여러분을 크게 칭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이들 곧 나의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밤 저는...
한 가지 여쭈어보겠습니다. 어젯밤 긴 기도 줄에 서서 이 목사님들의 안수 아래로 지나가신 분들 가운데, 성령께서 이미 여러분의 문제에 역사하고 계신다고 느끼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오, 참으로 놀랍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치유 예배를 많이 드렸으니, 오늘 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크신 권능 가운데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는 이번 주 내내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많은 큰 표적들을 통해, 지금 바로 여기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인디애나에 있는 제 태버내클에서 일요일 아침과 밤에 말씀을 전할 예정입니다. 그다음 주에는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의 큰 대집회에 참석합니다. 그 뒤에는 애리조나주 유마로 갔다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모임을 위해 피닉스로 돌아옵니다. 그런 다음 성탄절 휴가를 보내러 인디애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피닉스로 갑니다. 여러분 중에 그 근처에 계시거나 그곳에 친구가 계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19일부터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국제 대집회에 앞서, 좌석이 약 4천 개이고 냉방 시설도 갖춘 그 좋은 라마다 강당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나흘 밤 가운데 이틀 밤에 말씀을 전하고, 로버츠 씨가 하루, 브라운 형제님이 하루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날은 첫날 밤과 마지막 날 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집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입니다. 사탄은 정말... 저는 그의 표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늘 믿음의 방패를 들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날까지 여러분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아침에 그 문에서 만나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지금 하는 말과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똑같은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음을 믿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살아 계시며, 그분의 복음은 동일합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까지 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전한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저를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하는 말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펴기 전에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주 예수님, 이제 말씀을 취하셔서 굶주린 우리 혼들을 먹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는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큰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명절의 마지막 날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요! 우리는 성전의 시므온을 생각합니다.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위대한 날, 여자들이 아이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정결하게 되는 예물을 드리러 들어왔을 때,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시므온은 그날 아침 어쩌면 한쪽 방, 사무실 어딘가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여기 메시아께서 어머니의 품에 계셨습니다. 포대기에 싸인 그 어린 아기가 거기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마리아는 평판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기가 거룩한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그 여자와 상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 품에 무엇을 안고 있는지 마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우리 마음도 똑같은 그 소망을 품게 해 주옵소서. 세상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우리 삶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압니다.
그때 시므온은, 그분이... 성령께서 그에게 메시아를 보리라고 말씀해 주신 사람이었습니다. 나이 들고 노쇠한, 지혜롭고 존경받는 노인이었지만, 그는 성령께서 자기에게 오셔서 주신 주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건물 안을 지나, 길게 줄지어 선 어머니들 사이를 돌아갔습니다. 당시 인구가 250만 명이었으니, 하룻밤 사이에 아기들이 수백 명이나 태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와 정결 의식을 위해 준비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를 곧장 이 작고 버림받은 사람에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시므온은 수염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손을 뻗어 메시아를 품에 안았습니다. “주여, 이제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한 늙은 여선지자가 비틀거리며 건물 안을 가로질러 왔습니다. 주의 말씀이 임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분에 관하여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은 멀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주 하나님, 그분이 여전히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에 우리 눈이 열리게 해 주옵소서. 오늘 밤 우리가 그분을 끌어안게 해 주옵소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순례자이며 나그네임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여기는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났기에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약속을 마음에 품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하신 약속을 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 우리가 보리라고 하신 약속입니다. 노아의 날들이 다시 나타나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땅에 부도덕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불이 떨어지기 전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속 비밀을 아심으로 육신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느니라.” 그분은 똑같은 일이 다시 나타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위대하신 성령이여, 오늘 밤 우리에게 그 특권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겸손히 구합니다. 아멘.
[회중 가운데서 방언과 통역이 주어진다. “너희가 찾는 그분이 여기 계시느니라. 마음 상한 수백 명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상처를 입힌 그 상처들을 고치려 하시느니라. 아직 짐을 벗지 못한 이들이 여기 많이 있으나, 예수께서 여기 계시며 너희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시느니라. 그분께서는 네가 가는 길을 아시기 때문이니라. 너희 머리와 마음을 들라. 깨끗한 손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그분의 눈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강력하신 주, 그분이 영광의 왕이시니라. 너희 머리를 높이 들라. 그분을 바라보라.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니라. 그분께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주셨느니라.”] 아멘. 오, 이제 우리 가까이 계신 영, 빛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시간의 껍질을 깨고 나와,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영을 의식하십시오. 사사기 16장을 펴서 23절부터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이 찾으시는 동안 말씀드리자면, 이 집회를 마치는 오늘 오후에 이 장을 읽기로 택한 것은 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무언가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방에서 성령께서 제 마음에 무엇을 주시고 무엇을 말씀하실지 기다립니다. 여러 성경 구절이나 생각을 적어 놓기도 하고, 막상 이곳에 오면 무엇이 나올지 생각합니다. “이것에 관하여 그분은 무엇을 말씀하실까?”
이제 자세히 들으십시오. 우리가 읽는 동안 가능한 한 주의 깊게 들어 주십시오. 주님의 뜻이라면, 여기에서 하나와 다른 하나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23절부터 읽을 테니 잘 들으십시오.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희생물을 드리고 기뻐하려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또 백성들이 그를 보고 자기들의 신을 찬송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 신이 우리 손에 우리 원수를 넘겨주었다, 곧... 우리 나라를 파괴하고...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을 죽인 자를 넘겨주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그들이 이르되, 삼손을 불러 그가 우리를 위해 흥을 돋우게 하자, 하고 감옥 집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그가 그들을 위해 흥을 돋우니라. 그들이 기둥들 사이에 그를 세우니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내가 이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더듬어 찾아서 그것들에 기대도록 허락하라, 하니라. 한편 그 집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가득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귀족들도 거기 있었으며 지붕에는 삼손이 흥을 돋우는 것을 바라보는 삼천 명가량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더라. 삼손이 하나님을, 주를 부르며 이르되, 오 주여... 원하건대 나를 기억하옵소서. 원하건대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내가...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하고는 그 집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그가... 그것을 받치던 기둥들을 붙잡되 하나는, 그리고... 오른손으로, 다른 하나는... 왼손으로 붙잡고 삼손이 이르되,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며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무너져 그 안에 있는 귀족들과 온 백성을 덮치니 이로써 그가 죽을 때에 죽인 자들이 살았을 때에 죽인 자들보다 더 많았더라.
얼마나 슬픈 광경입니까! 뜨거운 오후였을 것입니다. 성대한 축하 행사 위로 햇볕이 내리쬐고, 그 두 사람이 들어서자 블레셋 사람 삼천 명이 경기장의 관람석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소년이 이 눈먼 사람을 이끌어 오자, 존경받는 군 지휘관들과 값진 보석으로 치장한 그들의 부인들이 자세히 보려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겠지요! 홀에는 오후 내내 술 취한 흥청거림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들이 축하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만, 물고기 신 다곤이 여호와의 종에게 거둔 승리였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사람이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내려다보시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셨을 때 무슨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반쯤 벗은 여자들이 값진 보석과 장식으로 치장한 채 술에 취해 뒤섞여 있고, 그들의 취한 남편들은 여호와의 종에게 승리를 거둔 신, 물고기 신, 우상을 기리며 술을 마시고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비틀거리는 눈먼 사람을 가운데로 이끌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었는데, 거대한 비스듬한 기둥들, 아니, 이런 식으로 비스듬히 내려오는 거대한 홀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그려 보면, 거대한 두 기둥이 삼천 명의 군 지휘관들과 명사들, 가장 존경받는 군인들과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있는 자리를 받치고 있었습니다. 축하 행사였기에 명사들만 초대받았습니다. 그들 맞은편에는 거대한 물고기 형상이 있었고, 그 아래 제단에는 그 물고기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친 사람의 피가 있었습니다. 말도 듣기도 숨 쉬기도 못하는, 순전히 이교도의 신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한 가운데 이 신이 자기들에게 승리를 주었다고 생각하며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축하 행사였습니다.
그런 다음 모두가 볼 수 있는 홀 바닥의 이 기둥들로 그가 이끌려 왔고, 이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구경거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흔히 하던 것처럼 원숭이도 있고 검투사들도 있었겠지요. 그들이 결투를 벌이면, 쓰러져 있는 상대를 죽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검투사들이 말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피 흘리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이제 가장 중요한 순서가 되었습니다. 예비 순서는 끝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여호와를 조롱하고 우리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그분의 종이 그분을 저버렸기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종이며, 그분이 명하신 바로 그 방식대로 수행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술에 취해 경외심이라고는 없는 상태에서, 이제 그들은 모두 일어섰습니다. 사방이 고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나팔이 울렸을 것입니다. 이제 축하의 가장 중요한 행사를 하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홀 한가운데로 그를 끌어내어, 모두가 그를 비웃고 조롱거리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그를 보십시오. 굴욕을 당하고 무너진 모습입니다. 타락한 교회의 상징이며, 영적인 것을 빼앗기고 도덕적으로 무너진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상태를 얼마나 잘 보여 줍니까. 삼손, 이 사람이 삼손이었습니다. 위대한 삼손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하고 강력한 도구였단 말입니까? 제가 상상하기로는, 거기에 서서 바라보던 많은 블레셋 군 지휘관들이... 그의 이름만 떠올려도 온 나라가 떨었습니다. “삼손”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만 꺼내도 모두가 그 이름 앞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을 보십시오. 한때는 “주 예수”라는 이름에 큰 경외심이 있었고,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매우 존중했습니다. 그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내쫓을 수 있었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자연이 자기들의 명령에 순종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삼손을 제가 무엇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려 하느냐 하면, 오늘날 지역... 아니, 지역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상태입니다.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교회가 존중받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저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저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삼손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 앞에 나왔을 때 그 교회와 같은 상태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세상의 것들과 타협하고 그것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그저 뒹굴며 열광하는 무리라고 불리거나, 다른 평범한 교단 하나, 그냥 어떤 교회쯤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교회가 지녀야 할 그 존엄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사가 벌어질 때,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었을 것입니다. 잠시 그곳으로 돌아가 봅시다. 블레셋 사람들, 그 위대한 전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값진 보석으로 치장한 여자들을 팔로 감싸 안고 서서 다곤을 위해 건배했을 것입니다. “다곤 만세! 네가 여호와에게 승리했도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저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토록 대단하다고 주장하는 이 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교회의 상태가 거의 그렇습니다. 우리는 왕국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모든 영적 은사가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신조 등과 타협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전부 조금씩 빼버렸고, 마침내 교회는 친목 단체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과 같습니다. 한 이슬람교도가 우리의 가장 유명한 전도자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 서른 명을 데려오겠습니다. 당신이 열다섯 명을 고치고 내가 열다섯 명을 고칩시다.” 저는 결코 그 전도자를 비난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전도자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 사람을 혼자 남겨 두고 떠나 버렸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입니까. 말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이교도 신들이 교회에 대고 말할 수 있는데 교회는 무력하고 패배하여 영적인 것을 다 빼앗긴 채 서 있다니, 거의 또 다른 도전, 또 다른 축하 행사를 맞게 된 셈입니다. 무언가가 교회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염려가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여느 친목 단체와 다를 것 없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저는 믿습니다...
제가 그 경우에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다려 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히브리 청년들과 같은 마음이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서 건져 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우리는 당신의 형상에 결코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기를 잃었습니다. 삼손이 그렇게 했습니다. 힘을 잃은 것입니다. 교회는 자신이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간증의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교리를 받아들여 자기들의 믿음에 섞었고, 마침내 말씀이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그 무력한 교회에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들을 가지고, 너희 전통으로 그것들을 무효가 되게 하였느니라.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효력 없게 만들고, 설명을 붙여 없애 버렸느니라.”
얼마 전 어느 학교에서... 이곳 뉴욕에 사는 훌륭한 분이 제집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침례교 형제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브래넘 형제님, 저는 침례교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과 다른 형제님 한 분을 들어와 앉으시게 했습니다.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저의 늙은 어머니는 저를 학교에 보내시려고 빨래판에 빨래를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문학사, 곧 B.A. 학위를 받으러 가던 날에는, 분명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는 ‘그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LL.D., 문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받은 학위와 명예 학위가 하도 많아서 그것들로 형제님 댁 벽을 도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저는 아직도 그분을 찾고 있습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선생님들이 틀렸던 겁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본래 유대인이었다.] 저는 7학년까지 배운 사람으로서 선생님들이 틀렸다고 말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정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분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안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도 침례교인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순절교인이 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다만 오순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교단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순절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들의 집회에 가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창밖으로 책을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복되신 성령의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합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한 부류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교리의 구조를 통해 자기들이 하나님 안에서 아들딸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또 한 부류는 성령 침례를 받은 오순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은 지위상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은 믿음은 많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마치 은행에 돈이 있는데 수표를 쓸 줄 모르는 사람과, 수표는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이 둘을 합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증기를 내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로 분출해야 하는 겁니다. 그 모든 증기를 말씀의 근본 원리에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는 법만 안다면, 하나님의 거대한 체계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바로 그 틈으로 사탄이 들어와, 온통 기계적 구조뿐이고 동력은 없게 만듭니다. 반대로 온통 동력뿐이고 기계적 구조는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 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권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계에 연료를 공급하려면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신조를 연료로 넣을 수는 없습니다. 기계는 그것을 태우지 못합니다. 연통만 막힐 뿐, 그것을 태우지 못합니다. 이 기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모든 말씀으로, [일부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래서 여기 우리는 마지막 사명을 받은 교회로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마지막으로 주신 사명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그리고...” (‘그리고’는 문장을 이어 주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그런데 우리가 왜 어떤 이교도 신 앞에 서서 패배를 당해야 합니까? 우리는 또다시 삼손처럼 영적인 것을 빼앗기고 도덕적으로 무너진 채 서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전에는 존경받는 남녀들이었는데, 오늘날에는... 끔찍합니다. 이제 잠시 몇 가지 생각을 살펴봅시다. 그렇게 삼손이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오늘날 여기에 그가 다시 서 있습니다. 또다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몰락한 나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종이었고, 그래야 했으며, 교회도 땅에서 하나님의 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위대한 전사들이 거기에 서서, 술이 아마 갑옷과 흉패를 타고 흘러내리는 가운데 잠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보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왕비들을 팔로 감싸 안고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광경은, 어린 소년이 이 몸집 큰 남자를 붙들고 있는데 그 남자의 눈구멍에는 눈알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눈을 지져서 없애 버렸습니다. 원수는 그런 일을 합니다. 여러분을 붙잡으면 가장 먼저 삼손에게 했던 것처럼 합니다.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도록 여러분의 눈을 막아 버립니다. 이제 그는 볼 수 없습니다. 눈이 없어졌습니다. 교회가 영적인 시력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모든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제 거기에 서 있는 모습, 눈도 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 물고기 신 아래 서 있는 수치스러운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그를 일으키셨던 바로 그 나라의 포로가 된 모습입니다.
이제 잠시 우리 자신에게로 이야기를 돌리겠습니다. 50년 전에 저 교단이라는 수렁을 떠났던 우리 오순절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된 백성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조직으로 나뉘어, 오순절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내어 무너뜨리게 하신 바로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교단에 가서 집회를 하면, 나머지는 협력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주 가끔 협력하는 사람을 하나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언제나 저주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분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상대하십니다. 노아의 날들에 수백만 명이 있었지만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노아였습니다. 엘리야의 날들에도 수백만 명이 있었지만, 엘리사와 엘리야가 동시에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각 세대마다 계속 그랬습니다! 이집트에는 250만 명이 있었는데, 모세가 내려갔습니다. 예수님의 날들에도 수백만 명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요한조차 그 위대하고 능하신 분이 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쇠하여야 한다. 내 일은 끝났다. 그분, 하나님은 흥하셔야 한다.” 그는 그들에게 어린양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300년 동안, 니케아 공의회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때 우리는 조직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뒤로 그것은 무너졌습니다.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면, 그것은 영적으로 죽어서 다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의 역사에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저주가 되는 일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로 만들고, 그들은 세상과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어느새 여자들도 세상처럼 행동하고 남자들도 그렇게 하게 됩니다. 어느새 정치와 감독들이 끼어들고, 사람들은 자기 모자에 장식 하나를 달려고 서로 깎아내리고 밀어내며 말다툼하고 싸웁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영께서 몹시 근심하시며 완전히 떠나 버리십니다.
그들 중 몇몇은 기름부음이 삼손에게 임했을 때의 모습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 천 명이 그의 주위에 쓰러져 있는 들판에 삼손이 서 있었습니다. 손에는 낡고 잘 부서지는 노새 턱뼈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주의 영께서 임하셨을 때, 그는 그것으로 두께가 1인치나 되는 놋 투구들을 내리쳐 뚫고 블레셋 사람들을 이리저리 쓰러뜨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위로 피신했습니다. 삼손은 거기에 서서 말했습니다. “더 맞고 싶으면 나와라!” 그들 중 몇몇은 그 모습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속삭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날 밤 가자에서 우리 원수가 도시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를 기억하나? 우리가 군대를 모으고 성문을 잠갔지. 무게가 6톤이나 7톤쯤 되는 거대한 놋 성문이었어. 병거 네다섯 대가 나란히 지나며 군대가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문이었지. 우리가 창과 칼을 든 군대를 데리고 서서 ‘이제 그놈을 잡았다’고 했는데, 눈을 떠 보니!” 삼손은 그들 사이를 똑바로 걸어 내려가며 그들을 좌우로 밀쳐 냈습니다. 성문을 붙들어 한쪽을 뽑고 다른 쪽도 뽑더니 어깨에 메고 산 위로 걸어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것이 주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셨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은...
어떤 사람들은 사자가 그를 향해 울부짖었던 일을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자는 순식간에 그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사자가 얼마나 빨리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아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자는 큰 소리로 한 번 울부짖으며 덮쳐, 눈 깜짝할 사이에 2톤이나 되는 누 또는 물소를 죽입니다. 그 앞발 하나로 목을 이렇게 부러뜨리거나, 이렇게 물어 버리면 끝입니다. 얼마나 순식간에 죽이는지 발굽 한 번 차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이 길을 가고 있을 때 사자가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무력했습니다. 손에 노새 턱뼈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자를 붙잡아 찢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힘을 모두 빼앗긴 채 무력하게 서 있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교회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한때 교회는 마귀들을 내쫓았습니다. 교회는 죽은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죄가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그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인 무리에 속한 사람이 몰래 무슨 일을 했다면, 그가 들어오는 즉시 성령께서 그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회개하든지 멸망하든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임하면 악한 영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그리하여 그만큼 더 큰 정죄를 받습니다. 무언가가 그들을 정죄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힘을 빼앗긴 그 사람의 생각 속에 무엇이 지나갔겠습니까? 한때 그런 용사였는데, 이제는 어린 소년이 그를 이끌고 다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볼 수 없습니다. 볼 눈이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교회가 이토록 교단화되고 멀리 떠난 나머지, 마귀가 시력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는 영적인 시력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신조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셔야 할 책임이 있으십니다. 그들은 “우리는,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 말씀에 어긋난다면 여러분 자신의 믿음을 내세울 여지는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생각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기록하신 것들을 믿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곧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볼 때, 그 상태를 보십시오. 얼마나 똑같은지 보십시오. 그의 생각 속에 무엇이 지나갔겠습니까?
그의 생각 속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살펴봅시다. 군 지휘관들의 생각 속에 무엇이 지나갔는지는 보았습니다. 그들은 한때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습니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만 꺼내면 그만이었습니다.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물고기 신 다곤 아래 포로가 되어 서 있습니다. 우상을 멸시하던 유대인이 우상 하나 아래 포로가 되어 서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거기 서 있는 삼손은 분명... 삼사 분쯤 그의 생각을 살펴봅시다. 그는 자기가 거둔 모든 승리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거기 서서 자신이 했던 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자기를 축복하셨는지,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을 때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실패했고 약속을 버렸습니다. 교회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약속들을 버렸습니다. “아, 그건... 우리는 우리 나름의 작은 교리문답을 만들겠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바로 이것, 말씀이 기준입니다!
보십시오. 그는 이 모든 승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얼마나 저버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앉아서 이 성경을 읽은 다음 자기 교인들 앞에 나선다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롯과 같은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성경은 소돔의 죄들이 그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서서 그 죄를 책망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오직 사랑으로 이 말을 합니다. 다만 진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읽는 이 성경을 똑같이 읽습니다. 자기 사무실에 앉아 설교를 준비하다가 이런 하나님의 진리들을 만나지만,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그는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는 것을 책망하는 설교를 하기 두려워합니다. 자기 조직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부도덕한 옷을 입고 영적 간음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성탄절에 사교상 술 한잔하고, 나가서 미국식의 건전한 오락을 좀 즐기고, 음담패설을 하면서도 집사 직분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이 잘못임을 압니다. 그러나 롯의 날들에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시 그 죄악 된 자리로 돌아와 있습니다.
오, 삼손은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얼마나 저버렸으며 하나님 자신을 얼마나 저버렸는지를 성령을 통해 얼마나 절실히 깨달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고 힘을 주셔서 멸하게 하신 바로 그것의 포로가 이제 되어 있습니다. 사랑으로, 또... 저도 여러분과 함께 여기 속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의 회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은 막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은혜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제게는 이기적인 동기,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동기가 없습니다. 저는 오직 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을 뿐이며, 온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나왔던 바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성경이 말한 대로 “돼지가 진창으로 돌아가고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처음에 개를 아프게 했던 토사물이 두 번째에는 더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까? 조직과 신조가 사람들을 그토록 얽매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유로운 백성으로 불러내셨는데, 여러분이 도로 돌아가 똑같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더 큰 죄입니다.
이제 그들은 삼손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여 자기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지금 상황도 거의 그렇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대신에 말입니다. 누군가 일어나 거만하게 굴면, 성령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잠잠하게 하셔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마비되거나 눈이 멀거나 말을 못 하게 되어 집회장에서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회 중에 죽는 것, 그것을 꾸짖으려 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다른 집회에 참석하여 같은 일을 목격하셨습니다. 교회 안과 그 둘레에는 마귀들이 달아나게 하는 거룩한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동력 대신 기계적 구조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재주를 부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일을 일으켰습니까? 삼손이 쓰러진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는 한 여자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졌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에게는 머리털이 일곱 타래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 바쳐진 나실인, 남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여자에게 이끌려, 자기의 남다른 점을 그 여자가 밀어 버리게 했습니다. 교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특별한 백성, 거룩한 민족, 왕가의 제사장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세상이 여러분의 특별함을 밀어 버리게 내버려 두어, 결국 여러분도 그들과 똑같아졌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과 같은 교단을 가져야 했습니다. 침례교든 감리교든 그들보다 더 돋보여야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성회가 연합교회보다 더 돋보이려고 하고, 연합교회는 하나님의 성회보다 더 돋보이려고 하며, 하나님의 교회는 이것보다 더... 오, 세상에, 그렇게 계속해서 서른 개나 마흔 개의 서로 다른 조직들이 있습니다.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보십시오. 그때와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이세벨,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창녀들의 어미에게 내맡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녀는 음녀라고 불렸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언제나... 나타냅니다... 교회는 여자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데리러 오시는 대상은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창녀들의 어미였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남자들을 가리켰을 수는 없습니다. 창녀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남편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모든 교회의 어미라고 주장하며, 사실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녀가 음녀가 되었습니까? 영적 음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말씀 대신 신조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남편의 참된 짝이 되는 대신, 또 다른 책, 곧 신조의 책을 취했습니다. 그러니 그녀는 무엇입니까? 똑같은 일을 한 창녀들의 어미입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리키는지 아시겠지요. 무엇입니까? 조직을 만드는 것,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들릴라가 계속 삼손을 꾀면서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당신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힘이 세요. 하지만 나를 속이지 말고,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해 주세요.”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애정을 쏟으며 유혹하여 마침내 그가 굴복하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가 맨 처음 한 일은 그의 비밀을 그에게서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책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시는 여러분도 아시지요. 오순절의 옛길을 따르던 이들은 말씀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 등을 통해 이교도의 사상들을 받아들여 들여왔습니다...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를 들여온 것처럼, 교회도 로마주의와 혼인하여 우상 숭배를 교회 안으로 곧장 다시 들여왔습니다. 이제 똑같은 원리를 따르는 작은 창녀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십시오. 어미가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여러분의 권리를 모두 밀어 버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가 결코 그것을 내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택하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교회협의회가 서로 합치고 로마를 중심으로 교제하며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되리라고 말한 바로 그대로입니다.
1933년 어느 아침에 성령께서 오셔서, 이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일어날 일곱 가지 일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교회에 있는 오래된 종이에 기록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히틀러와 전쟁을 하게 되고, 그들은... 독일이 요새를 구축하고 마지노선, 아니 지크프리트선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건설하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생각되기도 11년 전이었습니다. 또 자동차의 모양이 점점 달걀처럼 되어 갈 것이며,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그 결과 잘못된 대통령을 뽑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여자가 일어나 미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실제 여자가 아니라 교회였습니다. 그다음 저는 이 나라가 온통 재만 남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중 다섯 가지는 정확히,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무솔리니가 일어나 에티오피아로 갔다가 그 걸음에서 쓰러질 것이며, 한 여자와 함께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넘겨지리라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일어나기 여러 해, 여러 해 전에 말씀하셨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제 그녀는 딸들에게 애정을 보이며 집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깨달음 없이 모든 것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것을 오아시스라 여기며 “정말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라고 말합니다. 오, 세상에! 오순절 사람들이 로마의 공의회에 앉아, 자기들이 본 가장 영적인 시간이었다는 편지를 여기저기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자기 비밀을 잘라 내고, 말씀을 잘라 내고서 신조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날 들릴라가 한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말씀을 잘라 내어 여러분이 신조로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의 패배한 모습을,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와 견주어 보십시오. 우리 오순절 무리의 목회자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회자들을 세우는 대신, 강단에 서려면 거의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교제 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이제 우리 큰 오순절 교단들에서는 선교사를 보내기 전에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 정신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장로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순절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근거를 댈 수 없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맞습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자격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성경은 그들이 정신과 의사 앞에 간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서 기다렸습니다.” 그중에는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며칠 뒤, 한 사람이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문을 지나갔습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 앞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교제 증명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교제 증명서가 그런 일을 이루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성령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선지자가 “그들은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리라”고 말한 것이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오순절 여자들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러 가는 것과 남녀가 함께 수영하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지요. 세상과 똑같습니다. 전부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세속적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들여왔습니다. 목회자들이 일어나 자기 아내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런 온갖 일을 해 왔고, 이 세대가 자라면 그다음 세대가 이어집니다. 그저... 오, 세상에!
삼손은 자기가 거둔 큰 승리들을 생각하며 서 있었습니다. 우리도 뒤돌아보며 오순절 초기에 거둔 큰 승리들을 봅시다. 이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불과 50년 전을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로마 가톨릭 교회도 처음에는 오순절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회는... 로마 교회는 로마의 니케아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의 성경적 근거를 원합니다. 최초의 교회는 로마의 니케아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교회는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 이 모든 오류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오!
그러다가 그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깨달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깨달았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여러분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제 마지막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내년에 다시 오더라도, 우리 모두가 여기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중 몇몇은 세상을 떠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상태입니까! 우리가 삼손처럼 잠시 멈추어서, 하나님의 성경에 따라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무언가도, 빛을 내며 남들 수준에 맞추려는 모습도 아닌, 겸손하고 경건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작은 무리여야 합니다.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은은히 빛나는 것입니다. 할리우드는 번쩍이지만 복음은 은은히 빛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번쩍이는 것, 여태껏 가졌던 것 중 가장 큰 교회 건물을 원합니다. 차라리 골목의 창고에서 예배드리더라도 하나님의 영께서 다시 우리 위에 계신다면, 그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거기에 서서 깨달았을 때, 머리털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없었기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제 눈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그들이 제 눈을 뽑았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이라면 저는 신조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저를 신학교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있던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그런 것들은 다른 시대의 일이었다’고 말하며 모조리 빼내어 버렸습니다.” “제 눈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삼손은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여호와께서는 사랑이 충만하실 것이다. 내 말을 들어주실 수도 있다.” 오, 오늘 밤 삼손이 그것을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분은 사랑이 충만하시며, 대대로 자기 백성의 불법을 용서하시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삼손은 생각했습니다. “가능성이 있다. 내 눈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볼 수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거대한 조직들 안에서 위대하신 성령께서 처음처럼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그곳에는 없습니다. 눈이 멀었는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라’, 곧 ‘나는 부자며 재산을 불렸으므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네가 벌거벗고 눈멀고 비참하고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모릅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1944년에 백만 명 더!”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 백만 명이 더 생겼는데, 무엇이 백만 명입니까? 가입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늘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데 만족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손뼉도 치고 온갖 것을 하며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돛만 있고 닻은 없는 셈입니다. 어떻게 손뼉을 치고 소리 높여 외치면서 말씀이 진리임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손뼉을 치고 소리 높여 외치면서, 성령께서 여러분 가운데 걸으실 때 “아, 그건 텔레파시야. 무슨 다른 것이야. 그건 역사하시는 게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큰 모임들, 번쩍이는 모습, 세속적인 겉치레, 큰 집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얻습니까? 더 많은 교인입니다. 3년 전 오순절 교회는 다른 모든 교회가 얻은 교인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교인을 받아들였습니다. 가톨릭 신문인 ‘아워 선데이 비지터’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 신문은 그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이 백만 명이라고 하면서, “오순절은 150만 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온갖 학식을 갖추고 학교에서 말하는 법과 연설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적인, 할리우드의 흥행사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만, 그들이 소위 오순절의 손자 손녀들이라는 무리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손자 손녀가 없습니다. 그들이 들어옵니다. 오순절을 체험한 옛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러분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교회에 들어와 앉아 있기만 하면 자동으로 오순절 사람이 된 것입니까? 그분께는 손자 손녀가 없습니다. 아들딸만 있습니다. 손자 손녀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똑같은 대가를 치르고 그들이 받은 똑같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손자 손녀가 아니라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늙고 노망난 할아버지처럼 마음이 약해서, 아이들을 귀엽게만 여기며 무슨 짓을 해도 넘어가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들과 딸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삼손에게 있었던 것과 같은 큰 몸집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온 힘을 지닌 채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몸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컸습니다. 우리도 예전보다 더 커졌지만 권능은 빼앗겼습니다. 삼손은 여전히 굵고 힘센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육신의 모든 부분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께서 더는 그에게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숫자는 백만에 이르고 예전보다 더 강해졌지만,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옛날 기드온의 날들에 천사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계신다면 그분의 기적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분께서 하셔야 할 일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분이 살아 계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어디서 입증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묻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보십시오. 삼손은 올바르게 기도했습니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았을 때, 삼손은 “주님, 저를 원수와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눈을 잃었습니다. 힘을 잃었습니다. 교제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모임이 그것을 다시 일으킬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올바르게 기도했습니다. “저를 원수와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원수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이런 상태로 만든 그 원수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자기에게 임하게 하려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 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도록 세워졌는지 깨달았습니다. 재주를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니라 종이 되어, 하나님의 권능이 자신을 통해 흐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수백만 명이나 더 많아졌지만, 권능은 [녹음 공백]...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여덟 혼이 물로 구원을 받은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여러분이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보는 이 모든 사람은 포탄의 밥입니다. 원자탄의 밥입니다. 오직 심판을 받기 위해 그곳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휴거가 임할 때는 극소수일 것입니다.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여 그것을 찾는 자들이 적으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니라. 내게 ‘주여, 주여’ 하고 말하는 자가 다 그 안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들어가는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주여”라고 말하며 그럴듯한 기도와 부흥 집회 등을 하는 것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깐만요, 브래넘 형제님. 우리에게는 부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흥입니까? 교단의 부흥입니다. 교회에 사람을 조금 더 모아 넣을 수 있는지 보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큰 부흥도 있습니다. 모든 교회를 하나로 모아 교회협의회에 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로 합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지 않았는데 함께 걸을 수 있느냐?”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걸으려 합니까?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성령으로 구별된 백성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오늘날 세상이 원하는 것은 잘 섞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도 교제하고 사람들과도 교제하며 다니면서, 많은 교인을 모아 사교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나를 위해 바울을 따로 구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섞으시는 분이 아니라 구별하시는 분입니다. 구별하시는 분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지닌 힘으로는, 비록 그 모든 몸집이 거기 그대로 있고 예전의 거대한 체격 그대로 서 있어도, 이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도 그것을 압니다. 그 이슬람교도가 도전했을 때 그 전도자도 알았습니다. 여러분의 지적인 힘으로는 이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없습니다. 마귀가 우리 가운데 풀려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악한 힘들에는, 이 말씀이 육신이 될 때 나타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것도 감히 맞설 수 없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더 나빠지고, 계속 더 나빠질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에 응답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았습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도 그런 각오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 밤 오순절 전체가 하나님과 똑같은 약속을 할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주 하나님, 이 일로 제 교단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협의회에서 저를 파문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제 교제 증명서를 빼앗고, 제가 큰 봉급을 받으며 큰 차를 타고 다니는 대신, 배를 깔고 엎드려 개울물을 마시며 소다 크래커로 연명해야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상관없습니다. 그 제도가 저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주님, 저를 다시 받아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뽑힌 제 눈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제가 그것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아멘. 제 자신에 대하여 죽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저를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감독이든, 이것이든 저것이든 무엇이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제 삶에 성령의 권능을 다시 돌려주십시오. 저는 너무 오랫동안 눈먼 채 살아왔습니다.”
오 교회여, 그럴 마음이 있습니까? “저도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목사, 박사, 무엇이든 제 이름이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다만 다시 제게 주십시오. 오순절 날 임했던 그 영광스러운 권능을 다시 제게 보내 주십시오. 공산주의든 일어나는 다른 무엇이든 그 앞에서, 이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권능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 저를 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이런 고백을 하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은 너무 취해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갑자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고 눈먼 눈구멍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를 조롱하느라 너무 바빴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한 번 더 나타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자기가 그분을 저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기서 살아 역사하셔서, 저 이세벨 무리에게 그분이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오, 여러분의 뻣뻣한 체면이 꺾이더라도 말입니다. 어떤 영화배우처럼 행동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구식 옷을 입어야 하더라도, “어떤 대가가 들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멸시받는 소수와 함께 이 길을 가겠습니다. 주님,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 이 이세벨 앞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에 응답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준비되어 있었고, 죽음을 각오할 만큼 진지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준비하십시오. 마음을 정하십시오. 눈을 감고,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맞추어 바꾸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그분의 말씀에 맞추어 바꾸십시오. “주님,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이것에 대한 제 생각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것에 대해 하신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부르짖었습니까? “주님!” 그리고 말했습니다. “얘야, 내 손 하나를 이 기둥에 놓아 다오. 가능성이 있구나.” 오, 세상에! “이것을 받치는 기둥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손을 좀 기대고 싶구나. 피곤하구나. 너무 오랫동안 조롱을 당했구나.” 오! “주님, 어떤 대가가 따를지 압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해 주실지 모릅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자비가 충만하십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저버렸습니다.” 오늘 밤 교회가 이렇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얘야, 내 손을 한쪽 기둥에 놓아 주겠니?” “네.” “다른 손은 다른 기둥에 놓아 주겠니?” “네.” “내 손이 제대로 놓였니?” “네, 제대로 놓였어요.” 그러자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 눈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다시 말해,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딱 한 번만 더, 주님, 한 번만 더!”라고 한 것입니다.
오, 오늘 밤 오순절 운동의 목표가 그것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제가 이쪽이든 일신교든 이신교든 삼신교든, 그런 것은 기꺼이 잊겠습니다. 이 세속적인 것들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잊겠습니다. 주님, 딱 한 번만 더! 저를 얽매고 있는 이 신조와 이것에서 한 번 더 저를 건져 내 주십시오! 한 번 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한 번 더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교회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자기 형제와 그의 생각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눈이 멀었지만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놓고 다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그렇게 큰 체구의 삼손이 힘도 없이 무력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몸의 모든 섬유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오, 교회가 다시 거기에 이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설교자에서 집사와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몸의 모든 섬유와 모든 지체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 굵고 힘센 근육들이 쭉 펴졌고, 그는 그것을 가루로 부수었습니다. “주님, 저를 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저를 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그것을 무너뜨리라고 저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그것을 중심으로 제 자신을 세워 왔습니다. 제 명성이든 무엇이든, 그것과 함께 저 자신도 무너뜨리게 해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무너뜨리게 해 주십시오. 다만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여러분이 자기 주위에 쌓아 놓은 벽들이 무너집니다. 여러분의 교단 장벽들이 부서지고, 하나님께서 다시 알려지실 것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모든 섬유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모든 근육이 가득 차고, 그의 몸 모든 부분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것이 삼손의 가장 큰 승리였습니다. 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여! 저는 나머지 메모를 생략하고 이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도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회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연합교회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일신교든 삼위일체파든 무엇이든, 준비되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나머지 모든 교단 여러분, 이 어리석은 일들과 여러분이 해 온 것을 잊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늘 밤 여러분이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어 놓았는지,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보십시오.
오 하나님, 우리가 그 벽들을 무너뜨리게 해 주옵소서. “주님, 한 번 더!” 저는...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소리 높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세상의 끝에서 딱 이번 한 번만 더, 주님의 힘이 제 몸의 모든 섬유를 채우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겠습니다. 교제 증명서든 감독이든 교단이든 무엇이든, 제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 저는 다른 무엇보다 주님을 원합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며 생각해 봅시다. 저는 이렇게 하도록 마음이 이끌립니다. “주님, 한 번 더!” 모두 신실하고 경건하게, 할 수 있는 한 경건하게 하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 한 번 더!”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주 예수님, 생명의 위대한 주인이시며 양들의 목자이신 주님, 나오시옵소서. 이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목마릅니다. 주님, 저는 여러 해 동안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주님, 딱 한 번만 더, 성령께서 한 번 더 크게 역사해 주옵소서! 주님, 한 번만 더 역사하시면 교회가 휴거에 들어갈 믿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려 주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그 일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말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긴 기도가 아니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분은 제 목적을 아십니다. 저는 진심입니다. 오늘 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배운 대로, 예수님께서 한 번 더 우리에게 오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여기 병들거나 고통받거나 낙심한 분이 계십니까? 지금 나누어 드린 기도 카드가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어젯밤에 모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손을 들어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제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드십시오. 사방에 계십니다. 이제 제가 한 말이 진리임을 증언해 줄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저를 만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사람들로 하여금 너를 믿게 하고, 신실하기만 하다면.”
만일 오늘 밤 예수님께서 여기 서 계시고 여러분이 병들었거나 무슨 필요가 있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치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말씀은 동일합니다. 그분은 말씀입니다. 그분은 “사람은 이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신조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믿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입니다,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그분은 어떻게 그들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실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은 그분이 자기들의 생각을 읽으신다고 여겼습니다. 그분은 그것에 대해서는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와서 이 일을 할 때, 그것을 대적하여 말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우리는 성경 전체를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때 자신이 선지자이며 말씀이심을 보여 주어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셨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며, [히브리서 4장]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분별하는 분이시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께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그렇게 그들은 알았습니다.
우물가의 여자도 그렇게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 그분께서 하실 일이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달려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한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닙니까?” 그러자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시니, 다시 그렇게 하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셔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는 그렇게 하시고 이방인들은 빼놓으실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며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십시오. 그리고 목회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3장입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생명도, 행동도, 모든 것도 동일합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코스모스, 곧 질서입니다,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결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와, 부르심을 받아 나온 선택된 교회인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그 천사를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소돔에 내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빌리 그레이엄 같은 사람들처럼, 다른 이들이 그곳에 내려가 설교한 것과 같은 일을 하러 가시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그 G-r-a-h-a-m이라는 이름입니다. A-b-r-a-h-a-m과 같지요. 각각 자기들의 사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똑같은 일이 왔습니다. 바빌론 안에 있지 않고 부르심을 받아 나온 교회가 있는 이쪽으로 올라가 보십시오. 바로 그곳에서 그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뒤의 장막 안에 있던 사라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사라가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속으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웃었느냐?” 아브라함이 사라를 불러냈고, 사라는 부인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여기에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를 쳐서 죽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신 때문에 우리를 쳐서 죽이셨을 것이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그분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이 건물 안에서 제가 실제로 아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 끝자리에 앉아 계신 팻 타일러 형제님은 압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그리고 바로 여기 빌 다우치 형제님과 사모님이 앉아 계신 것 같습니다. 그분들 외에는 제가 아는 분들이 없습니다, 조셉 형제님. 성령께서 그분들에게 말씀하신다면, 무슨 일인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그다음에는 그것을 건너뛰고 예배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제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늘 보시는 그 동일한 빛이...
저 아래 태버내클에서 교회 시대들에 관한 말씀을 마쳤을 때, 이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 지금 바로 여기 앉아 계십니다. 똑같은 그 불기둥이 벽 옆으로 와서, 제가 칠판에 그려 놓은 그대로 교회 시대들을 그려 내었습니다. 맞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거기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기절하기도 하고 여러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의문이 있다면, 이제 저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진은 여기 워싱턴 D.C.에 있습니다.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로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FBI의 지문·문서 부문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가 그 빛이 찍혔을 때 그것을 조사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브래넘 씨, 저는 그것이 심리 작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은 심리 작용을 찍을 수 없습니다.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그것이 바울을 쓰러뜨렸던 그리스도이시고, 바울이 그분을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라고 불렀다면, 그분 안에 있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은 여기, 부르심을 받아 나온 교회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한 번 더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이 사람들이 주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심을 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은 죽지 않으셨고, 주님의 백성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들은 조직, 곧 이세벨과 들릴라에게 눈을 빼앗겼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참된 말씀에서 신조로 끌어갔습니다. 아버지, 그 벽들이 무너지게 해 주옵소서.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한 번 더! 말씀드렸듯이, 여기 계신 많은 분을 저는 아마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한 번 더, 예수님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해 주옵소서. 그분께서 그때 사셨던 생명을 우리 안에 다시 나타내셔서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게 해 주옵소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주님을 만지게 해 주옵소서. 주님, 주님은 시몬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왔을 때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바로 그분이십니다. 아버지, 주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 여인이 옷을 만졌던 바로 그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살아 계십니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을 위하여 구합니다. 아멘.
이제 아무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경건하게, 깊이 신실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는 이런 일을 되는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신성한 영께서 말씀 안에서 그것을 약속하셨고, 그 말씀은 생명이며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과 말씀은 동일하며, 사람은 그 말씀으로 삽니다. 그 말씀이 사람 안에 삽니다. 이제 은사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떠나면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정하고 친절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전에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그릇을 통해 살아가실 수 있도록, 윌리엄 브래넘을 어떻게 비켜서게 하는지 아는 은사입니다. 그저 여러분 자신이 비켜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여러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십니다. 그분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저 사람은 저를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세상, 바빌론이나 소돔은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직 끝이 오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라.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는 나를 보리라.” 그분의 생명이 믿는 사람들 안에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곳의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합당하게 여기신다면, 하나님의 일들이 다시 알려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하자마자 이쪽 구석을 보았는데, 여기... 바로 거기 떠서 움직이는 호박색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가 다른 차원에 있어서, 그저 상상하는 것입니까, 제 영이?
거기에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위장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암 수술을 받았고, 암은 유방에 있었습니다. 부인, 그들이 암을 제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그러나 저를 그분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오늘 밤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떠납니다. 저를 믿으십니까? 말라기 4장에 따라, 마지막 날들에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리라는 약속을 우리가 받았음을 믿으십니까? 테일러 부인, 그것이 부인의 이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인도 수술을 받으셨군요.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부인의 수술도 암, 종양 때문이었습니다. 장, 장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슈크윗 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시리라고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여기 뒤쪽의 한 부인, 흑인 여성입니다. 눈과 팔다리, 다리에 이상이 있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름은 워싱턴 부인입니다. 원하시면 일어서십시오. 부인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만졌습니까? 무엇을 만졌는지 물어보십시오. 그 흑인 여인의 겸손함이...
그런데 그것이 바로 여기 끝자리에 앉은 또 다른 흑인 여인에게 임했습니다.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름은 해리스 부인입니다. 해리스 부인, 믿으십니까? 심장병이 부인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만졌습니까? 저를 만진 적은 없습니다. 저에게서 20야드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분은 대제사장을 만졌습니다. 여기, 고개를 돌리니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또 다른 여인이 있습니다. 이분도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카터 부인,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저 뒤쪽에 위궤양을 앓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름은 P-a-o-l-i입니다. 파올리 부인,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치유하십니다. 좋습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그분을 믿으십니까?
일어섭시다. 우리의 죄들을 고백하고 기도합시다. “주님, 한 번 더,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하게 해 주옵소서!” 손을 듭시다. 주 하나님, 우리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주님, 세상은 우리를 조롱합니다. 오늘 밤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성령께서 다시 오셔서 백성 위에 부어지게 해 주옵소서. 주님, 지금 그분께서 오시게 해 주옵소서. 모든 병든 사람이 치유되게 해 주옵소서. 모든 죄인이 구원받고, 구하는 모든 사람이 충만해지게 해 주옵소서.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주님, 딱 한 번만 더! 성령께서 한 번 더 백성 가운데 임하게 해 주옵소서! 이제 마음을 높이 들고 “주님, 한 번 더!”라고 부르짖으십시오. 모두 함께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주님, 한 번 더! 성령께서 한 번 더 이 회중을 사로잡으시고, 원수의 힘들을 무너뜨리시며, 모든 섬유를 성령의 침례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