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이제 고개를 숙입시다. 이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누렸던 이 큰 대집회, 이 기쁨의 잔치를 마치면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마음도 낮춥시다. 오늘 밤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고 싶은 간절함이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분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립시다. “주님, 제가 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 저희의 손을 내려다보시옵소서. 이렇게 손을 든 것은 저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린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저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오니, 저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때로는 저희가 원하는 것이 저희에게 필요한 것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저희의 필요를 채워 주시옵소서. 그것은 저희가 믿음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이제 앉으십시오.)
무어 형제님과 무어 자매님, 브라운 형제님과 그의 형제 라일 형제님, 부틀리어 형제님, 그리고 여기 교회의 모든 훌륭한 분들, 이사님들과 집사님들, 어떤 직분으로 계시든 여러분께, 이 기회를 주시고 제가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신 데 대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 해 전 신발 바닥에 종잇조각을 깔고 이곳에 와서,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수고하여 이 경배 장소를 세우고 이 사람들을 모은 훌륭한 설립자들입니다. 슈리브포트는 잭 무어 같은 분들과 여기 계신 이런 분들께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지칠 줄 모르는 사심 없는 노력으로, 길을 가던 남녀 누구나 들러 예배를 누리며 하나님의 빛과 생명을 접할 수 있는 곳을 세우려고 애썼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분께서 이곳을 쓰시는 일을 마치실 때까지 이곳이 오래도록 서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회중 여러분과 함께한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여러분은 사역과 메시지에 참 잘 호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큰일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갈 때까지 다 알지 못할 것입니다. 씨가 심겼고, 앞으로 올 날들에 그 씨가 생명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이 치유받았지만, 아마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병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결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이 집회를 떠나는 병약한 분 중에, 이미 그 일이 이루어졌고 자신이 나을 것임을 알 만큼 충분한 믿음을 갖지 못한 분은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성령침례를 받기 위해, 또 여러 가지 일과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은혜의 역사를 위해 그리스도께 손을 드신 분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지시기를 바랍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제가 전한 “증표” 메시지를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증표를 나타내 보이십시오.
이제 우리는 곧바로 애리조나의 유마와 피닉스로 떠나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곳 남부를 다시 지나올 것입니다. 정확한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2월쯤 루이지애나 남부, 이곳 루이지애나 어딘가와 댈러스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조지아 쪽으로 갔다가 플로리다로 갈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유럽으로 가서 6월까지 머무를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돌아와 7월을 지나 8월 중순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지구 저 아래쪽에 있는 남아메리카로... 남아메리카가 아니라 남아프리카로 갈 것입니다. 다가오는 1964년 9월 2일에, 주님의 뜻이면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번에 3만 명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줄리어스 스타드클레브 형제님이 그때 그 집회에 계셨습니다. 맞을 것입니다.
줄리어스 형제님은 이미 여러분께 소개되셨겠지요. “한 선지자의 남아프리카 방문”이라는 책을 쓰신 분입니다. 스타드클레브 자매님도 틀림없이 어디엔가 계실 것입니다. 어디 계신지 잘... 예, 예, 이제 보입니다. 자녀들도 있군요. 몇 년 전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아이들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제가 올려다봐야 할 만큼 큰 청년과 처녀가 되었습니다. 여기 스타드클레브 자매님 때문에 얼마 전 제 마음이 정말 뒤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젊은 어머니인 자매님이 아기를 잃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아기를 데려가시는 것이 좋다고 여기셨습니다. 자매님이 제게 전화를 걸어 원했던 것은... 그분들은 저를 비행기로 독일에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의사도 참 친절하게 아기를 그대로 두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아기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사랑스럽고 통통한 여자아기였습니다. 스타드클레브 자매님은 어머니를 잃어 이미 몹시 상심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 일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자매님은 독일에서 국제전화를 걸어, 제가 비행기로 와 주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스타드클레브 자매님...”
자매님은 주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들의 사역을 위해 저를 보내셨다고 믿는다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누구도 그만큼 충성스러운 간증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자매님은 온 마음으로 진실하게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죽은 뒤에 다시 일으키시는 그런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자매님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시겠죠, 사실 저도 얼마나... 그것이 독일과 그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이 되었겠습니까! 제가 스스로 할 수 있었다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알기 전에는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밖으로 나가 기도했습니다. 자매님은 그날 밤에도 한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제가 들어왔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다시 미다, 제 아내가 말했습니다. “스타드클레브 자매님이 두 번 전화했어요. 아직 주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나요?” 저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럼...” 하고 말했습니다. 밖으로 나가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숲에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물론 그 작은 아기는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 들어오려는 순간, 주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제 앞에 나타나셨고, 그분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일을 꾸짖지 말아라. 그것은 주님의 손길이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로 자매님의 아기를 영광의 처소로 데려가셨으며, 제가 그 일에 반하는 말을 하는 것은 분명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큰 실망이 될 거야. 하지만 한 가지, 나는 주님께 순종했다. 그분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했다.”
얼마 전 그곳의 한 목사님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다른 목사님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가지...” 제 생각에 그분은 독일의 루터교 목사였던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브래넘 형제님을 존경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가 흥분해 있을 때에도,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분명한 결정을 받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행동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 밤 그분께서 제게 저 공동묘지에 가서 케네디 대통령을 일으키라고 하신다면, 저는 온 세상 사람을 초청하여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할 것입니다. 제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몹시 흥분해서 어떤 느낌이나 그런 것들, 자기 생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것이 언제나 참인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때 여러분은 알게 되고, 확실한 것을 갖게 됩니다.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이미 말씀하셨으니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제 가서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가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도 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몇 시입니까?”라는 테이프를,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갖고 계십니다. 아시겠죠. 저는 지부 모임에서든 다른 어디서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저는 일곱 천사를 만날 것입니다. 그 일이 여러 나라에 알려질 것입니다. 아시겠죠. 무언가가 곧 일어나려고 합니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과 석 달 뒤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죠. 이 모든 다른 일들도, 여러분이...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말씀이 완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이 그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우리는 그것이 참임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언제입니까? 저는 모릅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오십니까? 나름대로 생각은 있지만 모릅니다.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들리면”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실 것이며,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오, 그것은 확실합니다. 언제인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오늘 밤이든, 내년이든, 지금부터 천 년 뒤든, 그분께서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저는 더 늙지 않을 것이고, 그분께서 오실 때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것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분께서 하시든, 제가 그곳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그곳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고, 이미 제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말들을 받아들이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제게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바로 그것이 제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것이 제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어긋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실 수 없듯이, 그 약속도 어긋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실패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살아온 햇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하루에 두세 번씩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 이제 조금씩 저를 피곤하게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 한 식구 같은 사이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여든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이 여든 살이고 내일 밤 이 시각까지 산다면, 수많은 열여섯 살 어린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저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만일 제가 저 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네가 땅에 가기를 원한다.”라고 하시고, “땅에 가거라. 네게 백 년에 걸친 지식을 주겠다. 하지만 네가 살 햇수는 네가 정해 보아라. 어느 기간을 택하겠느냐? 첫 25년이냐, 두 번째 25년이냐, 세 번째 25년이냐, 아니면 마지막 25년이냐?”라고 하신다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만일 이곳에서 미식축구 선수나 운동선수, 그런 사람이 되는 데 시간을 쓰려 한다면 첫 25년을 택하는 것이 좋겠지요. 이곳에서 목수나 그런 사람이 되려 한다면, 두 번째 25년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섬기는 데 그 시간을 쓰고 싶다면, 저는 마지막 25년, 일흔다섯 살부터 백 살까지를 택하겠습니다. 그만큼의 지식이 쌓였으니, 그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제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제가 몇 살인지가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주님을 섬기려고 이곳에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아멘. 제게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베풀어 주신 친절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이 땅 어디에서든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해도, 저편에서는 만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손수건들을 놓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틀 밤쯤을... 사흘 밤 정도였습니다. 닷새나 엿새, 닷새 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개개인을 불러내어 주님께서 치유하시는 사역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기도받기를 원하는 모든 분을 기도 줄로 모셔서 기도해 드렸습니다. 나흘이나 닷새 전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보다 오늘 밤 우리의 영적 상태와 육체적 상태가 더 좋아지도록, 제가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하려 애쓰는 데 어떤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소홀히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여러분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제가 설교를 길게 하니까, 가능한 한 짧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회중에게도, 다른 분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그렇게 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사역을 시작한 이래 지난 35년 동안, 두 시간씩 하던 설교를 30분으로 줄이려고 애써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느려서 하고 싶은 말을 30분 안에 다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남부 사람이라, 아시다시피, 그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이 그렇게 빨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리면서 보아야 합니다. 할 말을 얻기 위해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그분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분도 인내하며 기다려 주십시오.
이제 성경을 좀 읽읍시다. 그러면 우리가 읽는 이것은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예배에서 참으로 거룩한 부분, 생명의 빵을 전하는 시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이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모두 주님을 바라보며, 이 귀한 날들과 밤들에 예배드리고,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며, 사람들과 함께하게 하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영이 새 힘을 얻었으며, 주님과 함께 하늘의 처소들에 앉을 수 있었음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버지, 이 사랑의 잔치의 크고 마지막인 밤, 오늘 밤에도 다시 저희 가운데 서셔서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오라.” 하고 외쳐 주시옵소서. 주님,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기에, 앞으로도 하실 줄 압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며, 주님은 결코 그 방식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생명의 빵을 떼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그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여, 저희 모두에게 복의 샘이 열리게 하시옵소서. 말씀을 읽는 일에 복을 주시고, 어떤 필요가 있든 회중을 위해 생명의 빵을 떼어 주려 하는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사기, 이스라엘의 사사들의 책을 펴 봅시다. 사사기 16장을 펴서 말씀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16장 27절과 28절을 읽겠습니다. 한편 그 집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가득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귀족들도 거기 있었으며 지붕에는 삼손이 흥을 돋우는 것을 바라보는 삼천 명가량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더라. 삼손이 주를 부르며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주여, 원하건대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내가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얼마나 가련한 광경입니까! 여기서 짧게 전할 주제를 하나 택하여 “주님, 한 번만 더”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더! 아마 더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큰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 종교적 축제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축하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축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참으로 입에 올리기조차 싫은 축제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조차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의 종들에게 거둔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불순종한 종이 주님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오고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이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물고기 신이 여호와의 종에게 승리를 거둔 것을 크게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집회를 마무리하는 본문으로 참 적절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갖고 있던 오륙백 개의 본문을 살펴보다가 이끌림을 느꼈습니다. 제 눈이 여기 이 본문에 머물렀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이 이야기를 잠깐 하면 좋겠다.” 어쩌면 성령께서도 여기서 우리가 그 일에 관해 조금 알기를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대략...
더운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거대한 물고기 신 주위에서는 희생물들이 불에 타고 있었고, 삼천 명의 블레셋 사람이 그 두 사람이 큰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경기장은 버섯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버섯이나 독버섯처럼 이렇게 위로 벌어진 모양이고, 큰 벽기둥, 혹은 기둥 두 개가 경기장을 받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그 큰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쪽 중앙 바닥에서 벌어지는 구경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끔하게 치장한 군주들이 그 모임에 참석했고,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그들의 부인들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서가 곧 시작되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 예비 순서라고 부르는 것을 진행하고, 소개를 하고, 본 순서를 위한 서막을 열지 않습니까. 그들도 때때로 하던 대로 희생물을 바치고 죽이는 등의 많은 구경거리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블레셋 땅의 모든 지역에서 온 이 화려한 귀빈들 앞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막 시작되려 했습니다. 그들은 특권층이었기에 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버섯처럼 생긴 이 큰 구조물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 가난한 사람들과 다른 이들은 여기 아래쪽 바닥에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모든 구경거리를 잘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귀빈석이었습니다. 삼천 명이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술에 취해 흥청망청 떠들고, 마시고 침을 흘리며 소란을 피워, 공기에는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술 취한 난장판이란 그런 것이지요. 이제 본 순서가 시작되려고 하자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잘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서였으니 이것을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물고기 신 다곤을 위한 축제 가운데, 한 어린 소년이 눈먼 사람을 이끌고 중앙 바닥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비틀거리는 이 눈먼 거구, 앞을 못 보는 사람을 기둥으로 데려와, 구경거리가 되도록 기둥 옆에 세웠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삼손입니다. 하나님의 뛰어난 종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치욕을 당하고 눈이 멀고 쇠약해져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거기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무너지고 침몰한 세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나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못하게 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삼손이 바로 그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치욕을 당하고 무너진 채, 그는 비참한 상태로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때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 위대한 사람이, 이제 이런 상태로 서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치욕을 당하고 무너진 그 모습은, 제가 오늘 밤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나타냅니다. 지금 교회의 상태입니다. 무너져서 주님의 말씀을 벗어났고, 치욕을 당하며 자기 자리를 잃었습니다. 오늘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벽에 글씨가 쓰였는데, 누가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제 그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봅시다. 한때는 이 사람의 이름, 삼손이라는 이름만으로 온 나라가 떨었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민족들이 그의 이름만으로 떨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예전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욕설과 농담에 사용됩니다. 더 이상 그 이름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은 죽을 인간의 혀로 불린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인데도 말입니다. 그 이름은 하늘에 있는 모든 이름, 땅에 있는 모든 이름보다 훨씬 높이 높여진 이름이며, 하늘과 땅에 있는 온 가족이 그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이름을 욕설에 사용하고, 교인들은 농담에 사용하며, 많은 종교 지도자는 자기들의 신조로 그 이름을 모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지상에서 일어나는 공산주의와 로마 가톨릭주의, 개신교주의와 여러 가지 것들 앞에서 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치욕을 당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위한 답을 자신의 책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것을 향해 가 버려서 그것을 잊었습니다.
그곳에 서 있던 블레셋 사람들, 그 큰 용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틀림없이... 누군가 “다음 순서는 삼손입니다.”라고 알렸습니다. 보석으로 곱게 치장한 아내들과 함께 있던 많은 용사가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며, 한때 삼손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는 손에 노새의 턱뼈를 들고 서 있었고, 그의 주위에는 블레셋 사람 천 명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엔가 있는 바위로 달려가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사막에 놓여 있던 노새의 턱뼈를 주워 들었다면, 그 뼈로 바위나 다른 단단한 것을 한 번만 쳐도 산산조각이 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그 투구들은 일부가 두께 1인치에서 1.5인치나 되는 놋쇠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람은 군인도 아니었고 창을 다루는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미늘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덧살창처럼 금속 조각을 서로 겹치고 이어 붙여 창 같은 것이 몸에 닿지 못하게 하는 갑옷이었습니다. 그들은 투구도 쓰고 방패와 창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삼손을 에워싸며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손꼽히는 이 정예 병력이면 이 사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낡고 마른 노새의 턱뼈 하나를 찾아, 그것으로 이쪽저쪽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쓰러뜨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경은 “주의 영이 그에게 임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른 모습으로 여기에 서 있었습니다. 자기 비밀을 누설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옛 모습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저 위에는 또 다른 무리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 들릴라가 그를 홀려 가자라는 도시로 들어가게 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큰 성문들을 닫아걸었습니다. 아마 문 하나의 무게만 해도 1톤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도시의 커다란 놋문들이었는데, 쇠빗장이 바위 속으로 들어가고, 오늘날에도 그만한 것은 없을 정도의 경첩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삼손아, 블레셋 사람들이 네게 들이닥쳤다.”라고 했습니다. 성문 주위에 서 있던 많은 군인은, 그가 줄을 끊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밤중에 불을 켜면 바퀴벌레들이 흩어지듯이 흩어졌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손을 뻗어 문 하나를 뽑아내고 다른 문도 뽑아내어 어깨에 메고, 언덕 위로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가 큰 승리를 거두던 모습을 기억하며 “정말 대단한 용사였는데, 지금 저 꼴을 보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교회가 처음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를 읽습니다. 그들의 집회에는 큰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랐습니다. 우리도 몇 해 전, 40년이나 50년 전 교회가 그와 같은 권능으로 충만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습을 보십시오. 교회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서 있습니다. 무언가가 교회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삼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바로 그것입니다. 삼손이 자신을 속인 여자의 말을 들은 데서 그 모든 일이 비롯되었습니다. 교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것은, 조직이 된 그 여자, 그 늙은 이세벨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삼손은 어떤 것을 무찌르도록 세워졌는데, 도리어 바로 그것에게 패배했습니다. 오늘 밤 오순절 교회가 똑같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교단주의를 무찌르도록 세워졌는데,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조직을 이루었고, 권능을 잃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권능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았어야 합니다. 교회가 조직을 만들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 그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교회는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오순절 운동은 교단에서 나왔던 운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 대신 사람이 만든 지도 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삼손이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거기 서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셨던 모든 큰 승리와, 자기를 통해, 자기를 위해 행하셨던 큰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할 때 누렸던 그분의 영의 권능,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게 속하여 하나님과 함께할 때 누렸던 기쁨과 평안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얼마나 저버렸습니까! 이제 삼손이 멸하도록 세워졌던 바로 그 민족이 그를 결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운동을 일으켜 맞서게 하셨던 바로 그것이, 이제 그들을 결박했습니다. 교제도 권능도 빼앗긴 채, 다투고 속을 끓이고 미지근한 교인들이 되었습니다. 좋은 것들, 거창한 것들,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차라리 다시 어딘가 길모퉁이에서 옛 구세군 북이나 작은 기타 하나를 들고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짓고 있는 수백만 달러짜리 대성당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 멸하게 하셨던 바로 그 민족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시켜 재주를 부리게 하며 즐겼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뿐입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자그마한 흥행 수법일 뿐입니다. 한 여자가 자기를 유혹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서 떠나게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교회도 똑같이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묘사된 여자, 창녀들의 어머니 이세벨에게 유혹되어, 자기가 빠져나왔던 토한 것 속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성경에서 “돼지는 진창으로 되돌아가고 개는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간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 돼지가 여전히 돼지로 있는 한, 그것은... 본성이 돼지이니 곧장 진창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돼지가 진흙 구덩이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본성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달라질 수 있는 길도 오직 그것뿐입니다. 본성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교권 체제가 설교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그들을 다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영으로 이끄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개가 토했다면, 처음 먹었을 때 속이 상했던 것인데, 다시 먹는다고 속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혼란 속에서 불러내셨다면, 왜냐하면... 똑같은 것이 다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시 그 안으로 돌아갑니다. 똑같은 일입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 이세벨 체제는 이제 영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제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교회협의회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 우리의 위대한 복음주의 가르침까지도 조직에 속하기 위해 포기해야 합니다. 이 교회협의회에 들어 있지 않은 모든 조직은... 저는 그것에 관한 문서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이 교회협의회에 들어 있지 않으면, 비상시에는 그들이 여러분의 교회를 탄약을 저장하거나 그 밖에 자기들이 원하는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습니다. 또 이 교회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다가 붙잡힌 사람은 누구든, 연방법을 어긴 죄로 총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워싱턴에서 온 문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강제로 그 안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조직 체제를 반대해 온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점은 그동안 드러내 말하지 않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때가 충분히 늦어졌으니, 여러분도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 그것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교회에서 권능을 빼앗아, 이름만 남게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그 모습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그분을 밖에 서 계시게 한 것입니다. 정확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 어머니가 했던 것과 똑같이, 교단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운동은 교단에서 나와 태어났습니다.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교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한 무리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다락방 대신 신학교와 그런 것들을 갖춰야 했습니다. 이제 많은 큰 교회에서는 사람이 해외 선교사가 되려면 먼저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검사, 곧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보십시오. 삼손은 자기 비밀을 들릴라에게 누설했습니다. 들릴라는 사랑을 보이며 그를 쓰다듬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말했습니다. 마침내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자, 그 비밀을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어머니인 그 늙은 이세벨이 개신교에 한 일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그 안에 끼어들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온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자기들이 갖고 있다고 말하던 몇 가지 작은 교리를 놓고 타협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머리카락을 잘린 곳은 니케아였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렇게 이곳에 있는 지금, 그 여자는 다시 그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합니다. 교회의 비밀은 바로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아시겠죠, 거기서 그들이 자기 비밀을 잃습니다. 이제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삼손처럼 패배했습니다. 사역자들이 태어나는 대신에...
데이비드 듀플레시가 한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오순절 손주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오순절 교인이었어요. 체험도 하셨고요. 이런 일도 하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어요.” 그것은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똑같은 것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사역자들을 부화시켜 내는 신학교가 있고, 우리는 갈수록 더 큰 신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또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심리학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합니다. 제가 알고 싶은 분은 오직 그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그런 것들이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분명 디모데후서 3장의 예언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지근하고, 아시다시피, 고집이 세고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협정을 어기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자들을 멸시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습니까? 우리의 오순절 여성들을 거의 할리우드의 볼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맞습니다. 예전에는 영화관, 활동사진을 보러 가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시겠지만, 마귀가 한발 앞서 그것을 집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잘못이었습니다. 우리 자매들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짧은 치마를 입는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순절 교단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여전히 잘못입니다! 하지만 아시겠죠, 그들의 권능이 싹둑 잘려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교회는 이렇게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아무 답도 없이 서 있는 이유입니다.
삼손도 바로 그런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삼손도 똑같았습니다. 그는 그곳에 서서 자기의 잘못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거기에 서서 제정신으로 생각한다면, 이제 자기가 걸림돌이 되어 버렸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봅니다. 얼마나 비참한 상태입니까. 덩치 큰 사람이 그곳에 서 있습니다! 제가 근육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한 한, 그에게 있던 남자의 힘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전히 근육이 있었습니다. 큰 근육도, 팔의 이두박근도 그대로였습니다. 큼직한 주먹도 있었습니다. 아마 몸집은 전과 다름없이 컸을 것입니다. 사실 오순절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커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예. 삼손은 거기 서서 자기 잘못을 떠올리며, 처음에 무엇이 그 일을 불러왔는지 생각했습니다. 처음 원인은 사실 육신의 눈을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적 시력을 잃어버려서, 들릴라가 자기를 꾀어 그 지경에 빠뜨리도록 내버려 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가로막은 것도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영적 통찰력을 한 무더기 신조와 맞바꾸었습니다. 그것이 눈... 마귀가 맨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분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저건 한 무리의 광신도들이야.”라고 말하고, “이러이러한 것이야. 마귀가 일으킨 일이거나, 정신 감응이거나, 그 비슷한 것이야.”라고 말합니다. 그가 여러분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삼손이 기도에서 맨 먼저 간청한 말을 보십시오. “주님, 제 두 눈의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 그는 거기서 자기 문제가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보십시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지만, 그는 눈이 멀었습니다. 평생 비틀거리며 다녀야 할 것입니다. 그는 눈이 멀었습니다. 우리에게 예전 어느 때 못지않게 큰 체제와 많은 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이 멀어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바로 여기서 날마다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는 일, 성령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을 사람들이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눈먼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먼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들을 행하시며 자신이 메시아임을 선언하시는 것을 지켜보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눈은 있지만 보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삼손도 눈이 멀었습니다. 하지만 삼손이 깨달았으나 교회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가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조금 더 외치고, 손뼉을 조금 더 치고, 조금 더 춤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말씀을 다시 속에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말씀을 비켜 갔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오, 물론 손뼉은 칩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시겠죠, 그것은 돛만 있고 닻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교도들이 손뼉을 치고, 춤을 추고, 방언을 하고, 그런 모든 일을 하며 통역까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프리카의 이교도들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들이 연필 하나를 내려놓자 거기 서 있던 주술사가 그 연필을 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필이 저쪽 한 곳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돌아와 “면도와 이발에 25센트” 같은 가락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언을 써 내려갔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서서 그것을 통역했습니다. 오, 세상에! 그런 것에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방언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그 원리들을 부인합니다. 저는 한 사람이 거기 서서 방언을 할 때, 제 성경을 가져다가 그의 눈앞에 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형제님,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그걸 보고 싶지도 않아요. 하나님께 영광!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는 압니다. 나머지는 상관없어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이런 식이었습니다. 진리에 등을 돌리고, 진리를 보지 않으려고 실제로 그런 소동을 벌이는 사람이라니, 그것이 위선이고, 극도의 위선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면 자기 교단의 회원증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삼손보다 더합니다. 보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오, 물론 우리에게는 큰 모임들이 있습니다. 집회라고 부르는 세상적인 부흥회 같은 것들입니다. 번지르르한 겉치레가 가득합니다. 물론입니다. 아주 거창한 행사와 대대적인 광고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아무개와 아무개.” 그런 것은 다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찾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학식을 뽐내는 거대한 볼거리일 뿐입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누군가는... 말을 쓰는데, 사람들의 절반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그는 명예 학위도 있고, 학위, 학위, 또 학위가 있어서, 성구집을 읽고 말을 잘 엮어 내며, 아주 꼿꼿하게 서서, “아멘”도 정확한 방식으로 말하고, 군인처럼 몸을 돌려 강단을 걸어 내려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삼손도 한때 그런 자리에 직접 서 보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특권들이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 나갔습니다. 몸집은 여전히 예전만큼 컸지만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참 안타깝지만, 그런 일이 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을 다시 모셔 오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러셨듯이 지금도 변함없으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얽혀 있고 세상이 그들 안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서, 그저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만큼의 종교만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온 마음을 그분께 드릴 만큼은 아닙니다. 그저 이 정도입니다. “교회에야 가지요. 물론이죠. 좋은 노래를 듣고 손뼉 치는 것이 즐거워요. 예, 그런 건 좋아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자신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실제로 행하고, 기꺼이 잘못을 고백하는 데 이르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죄를 깨닫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오래전, 아주 오래전에 그것을 떠나 다른 것과 맞바꾸었습니다. 기도와 고백, 죄를 깨닫는 마음을 감정이나 몸을 흔드는 것, 몸을 움찔거리는 것, 펄쩍펄쩍 뛰는 것과 맞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굳게 붙들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붙들어 줄 것이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초 위에 서고, 하나님 뜻대로 슬퍼하며, 회개하고 무엇이든 바로잡고 옳은 일을 하며 바르게 살 준비가 될 때까지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다른 어떤 것이 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오는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올바르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를 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가 어떤 값을 치러야 하는지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를 죽게 하소서.” 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내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라고 한 사람이 패트릭 헨리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든지, 아니면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무엇을 흉내 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교 놀이를 하려는 것입니까?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셨던 바로 그 성령이시라면, 지금도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같은 권능, 같은 영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협의회가 아닙니다. 성경이 다시 실제로 역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제 보니 삼손은 올바르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를 원수와 함께 죽게 하소서.” 자기를 그렇게 만든 원수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오늘 밤 사람들이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이런 일을 불러왔는지 봅니다. 성경을 떠나 신조로 간 것이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과 함께 죽고, 거기서 나오십시오! 그것에 대해 죽으십시오. 삼손은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얻기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려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할 값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 부흥이라는 말은 듣습니다. 물론입니다. 예, 교단의 부흥은 있습니다. 교인을 더 많이 끌어들이는 등의 일입니다. 그러나 도덕을 보십시오. 계속 썩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더 멀어지고 있는지 보십시오. 말씀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교회협의회에 들어가면서, 교회 세계에 있는 가장 큰 살인자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남겨 주신 말씀을 모두 비켜 갑니다. 여러분은 그 성경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신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삼손은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타락한 상태로는 그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도 타락한 상태로는 이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성경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그러하리니, 믿음에 대해 버림받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가지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이 표적을 행하라. 그들이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 앞에서 이 표적을 행하라. 그것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내가 너와 함께하며 나머지 일을 맡아 처리하겠다.” 모세는 첫 번째 표적을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그가 첫 표적을 행하자마자, 곳곳에서 흉내 내는 자들이 똑같은 일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 일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자기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우리에게도 그 일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시겠죠.
우리의 현재 타락한 상태로는 이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큰 외형은 모두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오늘날 세상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오순절 교인이 많습니다. 오순절 신자가 더 많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가톨릭 신문, “선데이 비지터”라는 일요일 신문이 아마 2년쯤 전에 이런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는 오순절 교회다.” 또 “지난해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 백만 명을 기록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가톨릭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교회만 해도 백오십만 명을 기록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외형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 줌밖에 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있던 권능은 없습니다. 삼손의 커다란 몸 전체는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교단 체제는 주님의 말씀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저는 우리 집에서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사는, 성심교회의 한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새로운 일이 등장한 뒤로, 한 달쯤 전에는 루터교 목사가 가톨릭 성심교회의 신부를 자기 강단에 초청하여 대신 설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부는 루터교 목사를 자기 교회로 초청하여 대신 미사를 집전하게 했습니다. “강단을 교환하다.” 신문에 크게 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세상에, 누가 그것을 보고도... 여러분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경에 대해 분명히 눈이 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저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프레이저 양, 메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라는 아가씨에게 침례를 주셨습니까?” “예, 제가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교님께서 그 일에 대해 당신이 서명한 진술서를 원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아가씨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 어머니 교회로 돌아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시더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 어머니는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셨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차라리 딸을 무덤으로 데려가는 편이 낫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그분이 하고 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이 진술서에 서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아이에게 침례를 주셨습니까? 어떻게 주셨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 말은 어떻게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물을 뿌리셨습니까, 부으셨습니까, 아니면 물속에 잠그셨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물속에 잠그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 좋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속에 잠그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입니다. 저는 그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셨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예. 하지만 그 단어들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더니 그렇게 적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초기 가톨릭교회도 그렇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저는 “오, 그랬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잘 달리고 계셨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자, 아시다시피 당신은 성경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신부님.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었다고 하셨습니까?”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가톨릭교회가 변하지 않게 하려고 모든 미사를 라틴어로 드려야 한다고 하신다면, 첫 번째 교황은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하시면...’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고백에 근거해서, 등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면하면 그것들이 그들에게 사면될 것이요, 누구의 죄들이든지 그대로 두면 그것들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가 잘못됐습니까? 당신의 성경 자체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죄를 사면했던 방식으로 죄를 사면하신다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베드로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희 각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너희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아멘. 그것이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서 물러섰습니다. 그것이... 그는 “저는 당신과 논쟁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누가 논쟁했습니까? 저는 안 했습니다. 논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질문을 하셨고, 저는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대답했을 뿐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아까 그...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 계신다고 하셨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을 가톨릭이라고 부르고 싶으시다면 좋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마가, 누가, 그들 모두를 말입니다... 예.”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의 질서를 따르는 문제에 있어, 오늘날 당신들의 교구가 그때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지혜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계시다는...?” “예,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따를 때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마귀들을 쫓아내고, 온갖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했는데, 오늘날 당신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루터 시대나 웨슬리 시대나 그 밖의 어느 시대에 교회가 그때보다 더 나았다면, 왜 그때의 사람들이 행한 일을 하지 못했습니까? 물론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삼손은 권능을 빼앗긴 채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삼손이 거기 서서 이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서둘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오순절 세계를 어딘가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잠시 그렇게 생각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저 이 이치에 맞는 일들을 생각하게 말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조직의 몸집을 가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서로를 대적합니다. 일신교는 이신교를 대적하고, 이신교는 삼신교를 대적하고, 모두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돌아와 한자리에 모여,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기초 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의 선지자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에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성경에 있는 이 진리를 부인한다면, 말씀에 따르면 그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바로 세우고 그 질서를 유지하게 할 이 은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는 그 모든 것에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석으로 몰린 채 서 있습니다.
삼손은 여기 구석에 서서, 지나간 모든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저 위에 서서 여자들을 팔로 감싸 안고, 트림을 하고 술에 취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호와의 종에게 거둔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에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계획을 이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물고기 신과 함께 거기 서 있었습니다. 다곤은 물고기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희생물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희생물로 어린아이가 죽어야 했습니다. 칼로 그 아이의 심장을 찔러 희생물로 바쳤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여호와께 거둔 승리를 크게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교회는 한 무리의 블레셋 사람들처럼, 머지않아 교회협의회가 거기에 속하지 않은 모든 교회를 배제하리라는 생각에 의기양양해하고 있습니다. 삼손이여, 절대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마십시오! 그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 말씀에 머무십시오. 거기에 얽혀 들지 마십시오.
삼손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능성이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것은 알지만, 나는 눈이 멀었어. 또 한 번의 부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가능성이 있어.” 그는 그 어린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을 기둥에 대어 다오. 이 기둥들이 건물 전체를 붙들고 있는 기둥들이냐?” “예.” “모든 왕과 귀빈이 저 위에 있다는 말이지?” “예.” “나는 지쳤다. 재주며 이런저런 것을 너무 많이 부리게 했구나! 그저 내 손을 기둥에 대어 주겠느냐?” 그는 손을 기둥에 대고 그 사이에 섰습니다. 아마 이런 자세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둥에 손을 대고 서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축하하며 너무나 즐거워하느라, 그를 지켜보는 것을 잊었습니다.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것을 알아. 그분을 경험했어. 그분이 어떤 분인지 시험해 보았어.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알아. 잘못된 것은 나야. 죄를 지은 사람은 나야.” 그들은 그의 눈먼 눈구멍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턱 끝에서 떨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그는 자기 목숨보다도, 그 이세벨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더 원했습니다. 오, 교회에 다시 그런 갈망이 생기기만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는 새로운 제도나 새로운 교단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알려지기를, 한때 자기가 가졌던 그 약속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기 기도가 응답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었고, 더없이 진지했습니다. 오, 교회도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그러고 나서 그가 외쳤습니다! 그는 천천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가능합니다. 가능합니다.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제 큰 몸은 여전히 온전히 있습니다. 제가 여기 있고,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습니다. 이제는 앞을 보며 그들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제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 주님의 권능을 보여 주시려고 그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는 소리쳐 외쳤습니다. “주님, 한 번 더, 한 번만 더!” 오, 교회가 그렇게 외치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주님, 한 번 더, 주님의 권능을 보게 하옵소서!” “한 번 더!” 그가 외치며 하나님께 간구하자, 그 근육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이 제게 보입니다. 몸의 섬유 하나하나가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고 계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그에게 임한 가운데 그가 다시 양손을 뻗자, 그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성경은 “그가 그날 죽인 자들이 평생 다른 날들에 죽인 자들보다 더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한 번 더!”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때면 언제나 그랬습니다. 갖가지 주의와 사상의 거대한 구조물들이 무너집니다. 삼손이 원수에게 거둔 가장 큰 승리는 그의 마지막 때에 있었습니다.
이제 마치면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이여, 우리가 이 거대한 조직들의 기둥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할리우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는 이 모든 것의 기둥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거기 서서 회개하며 다시 크게 외칠 수 있겠습니까? “주님, 한 번 더 우리를 오순절의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우리를 오순절의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주님, 한 번 더 주님의 권능을 저희에게 보여 주시옵소서! 한 번만 더!”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가 여러분을 멸하기 전에, 여러분이 그 원수를 멸하십시오. 그 원수는 여러분을 멸할 것입니다. 옛날과 같은 집회와 그런 것들을 되찾으십시오. 그리고 오, 들릴라를 멀리하고 세상을 멀리하십시오. 해서는 안 될 작은 일들 속으로 여러분을 꾀어 가는 그것을 멀리하십시오. 작은 일들, 문제가 교회 안에 생기면, 여러분은 바로잡아 주는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로 옮겨 가 버리면 된다는 식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행하지 않으면, 죽은 채로 실려 나갔습니다. “우리를 오순절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할리우드식 볼거리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제가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점점 약해지는 제 늙은 눈으로, 교회가 서로 다른 점을 잊어버리는 것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교단 체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교회협의회의 품에 던져 버리며 “우리는 그것과 아무 상관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장자권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 쪽과 일신교 쪽, 그들 모두가 함께 모여 “형제들이여, 우리가 그분을 떠났던 곳으로 돌아갑시다. 서로 다투기 시작했던 곳, 바로 물침례의 문제로 돌아가서 성경의 방식을 받아들입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모든 과시를... 강단에 서 있는 이런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토끼가 설피를 알지 못하듯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옷이 너무 꼭 끼어 피부가 오히려 옷 바깥에 있는 듯한 차림으로, 강단을 왔다 갔다 하며 손뼉을 치고 그렇게 이리저리 뜁니다. 무슨 공연 같은 것을 하는 무리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성령과 권능, 그리고 말씀이 나타나는 자리로 다시 데려가 주시옵소서!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주 하나님, 한 번 더, 한 번 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며 교회 가운데 거니시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그분의 권능과 그분의 약속이 저희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고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런 다른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이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 죽여 버립니다. 회중에게서, 교회에게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본성을 몰아냅니다. 우리는 서로 아주 단단히 결합되어, 무엇도 우리를 이 말씀과 서로를 향한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저의 치유자이십니다. 저의 왕이십니다.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저의 생명이십니다. 저의 기쁨이십니다. 저의 평안이십니다. 저에게는 그분이 그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분은 저의 전부이십니다.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그분은 교회를 그 자리로 다시 데려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한 번 더”라고 외치며, 눈먼 눈구멍에서 회개의 눈물이 떨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꼭 이 교회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여기서 녹음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이것은 온 세계로 갈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예전에 우리가 가졌던 것과 같은 집회를 다시 소집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불과 10년이나 15년 전만 돌아보십시오. 그때 이후로 얼마나 쇠퇴했는지 보십시오. 얼마나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갔는지 보십시오. 이제는 신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의 부끄러워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신유에 너무나 큰 불명예가 씌워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성령에 너무나 큰 불명예가 씌워졌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들을 떠나 다른 것으로 대신하고, 조직이 자기 머리를 깎도록, 자기를 꾀어 그렇게 만들도록 내버려 둔 삼손의 잘못입니다. 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위대한 심판대 앞에 이르기 전 이편에서 제가 여러분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해도, 이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제게 그분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그분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께서 여기에 계심을 압니다.
그분께서 여기에 계심을 알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자기 자신을 비켜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그만두고 그분의 생각을 한다면! 그분께서는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칭찬이 되는 것이나 덕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 어떤 교회가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할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하신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 간이침대에 누워 몸을 떠는 이 자매님을 보십시오. 이 여인은 자기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똑바로 고정하지 못하면 평생 저렇게 누워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오고 가든 그것이 자매님에게 계시된다면, 그때는 어떤 것도 치유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자기의...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믿고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을 위해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여러분의 혼을 그분 자신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곧장 다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으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완전히 다스리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일 밤 이맘때까지 슈리브포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십시오! 곳곳에 대문짝만 한 기사 제목이 실릴 것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쳤다. 미국, 미합중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며 온갖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이 텔레비전에 나올 것입니다. 성령께서 완전히 다스리실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그분은 원하십니다. 기꺼이 하려 하십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저는 그분께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구했어요. 너무 많이 구하기가 미안해요.”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풍성히 구하십시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길이 반 인치짜리 작은 물고기가 “이 물을 조금씩 아껴 마셔야겠어. 언젠가 다 떨어질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집트의 거대한 곡식 창고에 있는 요만한 생쥐가 “하루에 곡식 한 알만 먹기로 해야겠어. 다음 추수 때가 오기 전에 다 떨어질지도 모르니까.”라고 생각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제 그것을 천억으로 나누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권능을 다 써 버릴 수 있는 정도가 그만큼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기만 하면, 그저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고갈시킬 수 없습니다.
그분은 고갈되지 않는 영생의 샘이십니다. 오늘 밤 여기에 계시면서, 그분의 성경에 있는 어떤 거룩한 약속이든 그것을 믿는 누구에게나 나타내 주려 하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마시는 것뿐입니다. 샘으로 와서 마시십시오. 만족할 때까지 마시십시오. 여러분은 그분을 고갈시킬 수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그분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으시는 분이니, 여러분은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실 수 있습니다. 마셔서 치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셔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저 와서 마시십시오. “목마른 자는 와서 마시라.” 아멘. 저는 그분께서 여기에 계심을 압니다. 우리가 그분께서 하시도록 내어 드리기만 하면, 그분께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행하실 줄 압니다.
방금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종류의 예배, 아시다시피 환상을 보는 예배를 시작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여러분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치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나오도록... 제가 그것을 시작하자마자, 그것은 그저... 보십시오. 방금 제가 긴장을 풀고 제 자신을 비켜 세우자마자, 어느새 사람들이 그 흐름을 붙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것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 뒤에 앉아 계신 남자분, 고관절이 좋지 않은 조카의 아들과 함께 계신 분 말입니다. 그분이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치유하여 낫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아이를 치유하여 낫게 하실 것을 믿습니까? 믿으신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정확히 그렇습니다. 아멘.
바로 여기에 앉아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남자분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 분이 아닙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오셨습니다. 딕슨 씨입니다. 그분이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선생님, 믿으십니까? 저는 이분에게 전혀 낯선 사람입니다. 제 평생 한 번도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멘. 제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브래넘 형제님이 비켜설 수 있을 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비켜설 수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십니다. 마침 그분 바로 건너편에 또 한 남자분이 불붙듯 반응하고 있는데, 그분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그분 바로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분은 알코올 중독자인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들으십시오. 당신은 홈스 형제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으십니까? 그것이 당신 이름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루...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모두 자리에서 일어섭시다. 오순절 사람들이여, 외치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주님, 한 번 더!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할렐루야!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외칩시다. “주님, 한 번 더!” 소리 내어 외치십시오. “주님, 한 번 더! 주님, 한 번 더! 주님, 한 번 더, 주님의 권능을 보내시고 주님의 복을 보내 주시옵소서. 급하고 강력한 바람처럼 성령을 저희 위에 보내셔서, 여기 있는 모든 혼을 새롭게 채워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으십시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할렐루야!
성령에 취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부어지셔서, 여러분이 자기 이름도 잊을 만큼 취하고, 모든 의심을 잊을 만큼 취할 수만 있다면! 성령에 흠뻑 취해서 의심을 잊어버리면,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더”라는 외침이 진실한 마음에서 올라갑니다. 그리고 또 한 번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성령에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과 권능에 흠뻑 취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애초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
오, 오순절 사람들이여, 오순절 사람들이여,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십시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습니다. 제가 이 강단에서 다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해도, 기억하십시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십시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임하셔서 “다시 말하라.”라고 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십시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습니다. 주님, 한 번 더, 라이프 태버내클을, 여기 있는 모든 교인을 한 번 더 영생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주님의 영광이 이 회중 위에 내리게 하시옵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 한 번 더,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하시옵소서. 사람들이 자기 불신을 잊어버려, 저희가 “주님, 한 번 더, 한 번 더!”라고 외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합니까?
오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 저희 혼 안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저희는 등불에서 연기만 나고, 제단의 불이 꺼져 가는 것을 봅니다. 오 주 하나님, 죄로 저주받은 나라를 내려다보시옵소서. 그러나 주님, 주님의 백성을 잊지 마시옵소서. 주님을 위해 이 작은 터전을 세우려고 여러 해 동안 애쓴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주님, 라이프 태버내클은 혼을 구원하는 곳으로, 부흥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오 하나님, 한 번 더 주님의 거룩한 권능을 이곳에 부어 주시옵소서. 모든 교인을 살피시고 모든 불화를 없애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거룩한 불을 비처럼 내려 주시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저희 혼을 밝혀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불신에 너무 깊이 빠져 있지 않게 하셔서, 주님께서 여기 저희와 함께 계심을 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성경이 저희에게 거듭거듭 입증된 대로, 주님은 말씀이시며 마음의 생각들을 분별하는 분이십니다. 주 하나님, 저희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계심을 깨닫도록 저희를 일깨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시옵소서. 제 자신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제가 가진 성경에서, 교회의 휴거 전에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다른 어떤 일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은 짐승의 표가 앞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이미 그것을 받았습니다. 아시겠죠. 다음에 남은 일은 교회의 휴거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것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도 성경의 어떤 구절과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습니다. 눈을 감고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를 부릅시다. 어쩌면 우리가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하면, 그분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태버내클에서 역사가 터져 나오기를 바라며 이번 주 내내 기도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기도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 이 일을 위한 기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믿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서 깨어납시다. 이제 눈을 감고 하나님께 손을 들고 이 찬송을 부르며,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합시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음 절을 부르는 동안, 곁에 있는 누군가, 그리스도인 형제와 악수하며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자, 함께 부릅시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할렐루야!”라고 합시다. 다시 한번 “할렐루야!” 또 한 번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