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앉으셔도 됩니다. 이 광야 뒤편에 다시 오니 좋습니다. 제가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여기를 ‘광야 뒤편’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개 그런 곳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옛날 모세가 광야 뒤편에서 양을 치다가 주님을 만났던 곳이지요. 여기 계신 이분은 조금 전 내려오는 길에 백미러로 보았습니다. 며칠 전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이렇게 여기 앉아 계시는군요. 참 잘됐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출혈이 있으셨는데 오늘 아침 이렇게 뵈니 무척 반갑습니다. 지난번 여기서 우리와 함께했던 저 형제님이 암으로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은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날 길은 하나뿐임을 압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의로운 사람도, 가장 거룩한 사람도, 서로를 무덤으로 운구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서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가 잠들었느니라.”고 하셨을 때와 같습니다. 제자들은 “잠들었다면 몸이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이 알아듣는 말로 “그가 죽었느니라.”고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아시겠죠? “너희를 위하여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그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그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듣는 자...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그리스도인에게는 사실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분리’를 뜻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이런 육체가 죽으면 우리는 서로 헤어집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게 해 주는 것은 이 몸뿐입니다. 우리는 시각, 미각, 촉각, 후각, 청각이라는 오감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보거나 만질 수 있는 한 우리가 여기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눈이 멀어 앞을... 앞을 볼 수 없으면 서로를 만지거나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감각으로 서로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아셨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몸에서 나오는 말을 여러분이 듣는데, 그것이 그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서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실제로 몸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영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만 몸이 그 안에 있는 영을 알아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할 때 그 말이 나오는 영 안에서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가 서로에게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아시겠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가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드러났으므로, 그분은 하나님의 정확한 형상이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한 형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사람이라는 형상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세 번째 위격이나 두 번째 위격이 아니라 바로 그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셨고, 우리가 그분을 만져 볼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논쟁의 여지가 없이”(‘논쟁’이란 ‘다툼’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곧 육체 안에서 알려지셨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불기둥으로 움직이시고 그런 일들을 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을 때, 아시겠죠, 사람이 되셨을 때는 그분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고, 우리는 그분을 느끼고 붙잡고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졌습니다.” 아시겠죠? 우리 손으로 그분을 만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신의 교회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며,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십니다.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과 저에게서 하나님을 보아야만 하나님을 알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기록된 편지, 성경의 편지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읽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비춥니다. 사람은 그가 행하는 일로 어떤 사람인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실은 선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언제나 선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특히 저처럼 나이 든 사람이 여기 서서, 사라져 가는 삶, 지나가 버린 삶을 생각하며,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미래를 바라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이생에만 소망을 두고 있다면 오늘 아침 저는 가장 비참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삶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압니다. 비친 모습일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완전한 것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것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은 우리 앞에 놓인 것을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 죽을 수 없는 참된 삶, 썩을 수 없는 몸, 빼앗길 수 없는 생명을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우리에게 영존하는 생명이 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고 하신 성경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영원토록 존재하며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제가 다른 성을 쓰면서 제 이름이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와 가장 가까운 어머니의 성인 하비를 쓸 수도 있겠지요. 세상에서 제 어머니의 본성은 하비였으므로 저도 하비라는 성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 피는 제가 브래넘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제 아버지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 피가 있는 한 저는 여전히 아버지의 일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일부가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제가 그분께 속한 자임이 드러납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제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제 삶은 그분을 비추어야 합니다. 제 삶이 제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아버지를 아주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형상이 제 안에 비친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와 부모님의 모습도 여러분에게 비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태어나 여기서 그분의 형상을 닮아 갈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비치십니다.
자, 말을 시작하면 여러분에게 하려던 말씀의 본문에 도무지 이르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가정 모임, 가정 기도회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가장 좋은 집회, 가장 좋은 교제의 시간은 대개 이런 작은 가정 기도회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꼈던 때는 믿는 사람들이 몇 명 안 되게 모여 거기서 경배할 때였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아이들까지 세어서 서른 명이나 마흔 명, 아마 서른 명쯤 되겠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작은 무리를 둘러보고 사람 수를 세는 데 그다지 능숙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방들도 있고 그 안의 사람들은 제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함께 모이면 아주 큰 회중 가운데서는 느낄 수 없는 친밀함을 느낍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내려오면서 여기 회중과 이 사랑스러운 작은 교회의 목사님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뵙지 못했던 스트리커 가족과 다른 여러 친구를 여기서 뵈니 참 반갑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제 새해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다음 일요일 오후 피닉스 집회 때 강당에서 전하려고 준비했던 메시지입니다. 여기서는... 밖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서는 그저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성령께서 제게 더 좋은 생각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피닉스에는 아시다시피 믿음과 불신과 미신과 온갖 것이 섞여 있으니까요. 형제들이 테이프를 배포할 때도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더 좋은 녹음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먼저 형제들에게 음향을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 들어왔을 때 테리 형제님이 음향이 좋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잘됐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 엄숙한 일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 중 몇 분은 남아서 점심을 함께 드신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마당이나 집에서 함께 식사하신다지요. 참 좋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함께 모이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쁩니다. 오늘 아침 제 메시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드리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도 그 교회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이제 그 엄숙한 부분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가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까지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저희가 태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주님의 아들딸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 특권이 너무나 기쁩니다. 또한 주님께서 저희 가운데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셔서 저희 아버지이심을 보이십니다. 세상 것을 향하던 저희 생각을 바꾸시고, 저희 동기와 목적과 태도와 모든 면을 바꾸셔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으며 주님의 약속들이 참됨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 아침 저희는 ‘광야 뒤편’이라고 부르는 이곳에 모였습니다... 아니, 제가 그렇게 생각하여 부르는 곳입니다. 주님, 제가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이 작은 무리에게 좋지 않은 뜻을 담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다는 의미에서 그런 뜻을 담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주님의 종 모세가 광야 뒤편에 있었음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모세와 양들만 있었을 수도 있고, 아내 십보라와 아들 게르솜도 함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제가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 광야 뒤편에서 있었던 체험으로, 그 선지자는 달아난 겁쟁이에서 자신에게 그 일을 맡기기로 정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저희가 아는 한 인류의 삶에 처음으로 불기둥이 나타난 곳이 그곳이었습니다. 그 불은 광야의 작은 떨기나무 안에 있었지만 나무는 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떨기나무를 통해 비치던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선지자 모세는 신을 벗고 가까이 다가갔으며 하나님의 백성 한 민족을 구해 내라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주님, 오늘 이 광야 뒤편에서 다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이제 저희도 신발과 모자와 저희 모든 것을 벗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는 심정으로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여기 목사님이신 저희 아이작슨 형제님을 축복하옵소서. 그와 아내와 자녀들을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스트리커 형제님과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오늘 아침 여기 함께한 다른 모든 사람도 축복하옵소서. 저희가 여기 모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 어떤 큰 영광을 얻으려거나 지도자로 알려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큰일의 직책을 맡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겸손한 신자들로 여기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 있습니다. 서로 만나 이렇게 함께 모일 때, 믿는 사람이 한 사람씩 같은 장소에 모여들수록 하나님이 더욱 충만히 모이시는 듯함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이렇게 하면 내가 너희 가운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주님, 저희에게 말씀하옵소서. 제가 여기 적어 온 이 짧은 메모와 참고할 성경 구절들이 오늘 아침 주님께서 저희로 생각하게 하실 뜻에서 벗어나 있다면, 주님, 그것들은 제쳐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겠습니다. 이제 저희를 축복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자, 성경을 읽을 때, 제가 이렇게 나이 들기 전에는 기억을 잘했습니다. 젊었던 그때는 긴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삼십 분 정도였을 것입니다. 한 가지 생각으로 곧장 들어가 그것을 마음에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집회를 길게 하는 까닭은 녹음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저기 형제들이 녹음하는 이 테이프는 어느 시점부터, 어쩌면 방금 기도를 시작한 때부터 녹음되어 아주 많은 곳으로, 사실상 온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제 새해... 이른바 새해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성탄절 메시지를 세 편 전했는데, 이 광야 뒤편에 계신 여러분도 그 테이프들을 받아 보시는 줄 압니다. 제가 위에 있는 교회에서 전한 마지막 메시지...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메시지는 빛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그 테이프를 못 받으셨다면 분명 좋아하실 것입니다. 저도 주님께서 주신 그 영감이 무척 좋았습니다.
오늘 새해를 맞으며 저는 과거를 생각하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바울이 말한 것처럼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높은 부르심의 푯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흔히 말하듯이 자동차 백미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백미러를 볼 때는 우리가 지나온 곳을 봅니다. 오늘 메시지는 백미러를 들여다보는 식으로 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말하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고 계신 큰일들은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십니다. 제 평생 보아 온 일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들이 바로... 바로 지난 몇 달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지나온 일들을 감사하지만 이제 우리는 앞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향해 가는 곳, 이 1964년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함께 읽고 싶으신 분은... 성경을 몇 군데 읽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테이프에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십오 분쯤 됩니다. 주님 뜻이라면 여러분이 식사하실 수 있도록 그 안에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 여섯 시까지 해도 된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고마운 말씀입니다. 자, 성경에서 두 군데를 펴 봅시다. 두 책은 서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구약입니다. 본문... 아니, 읽을 말씀을 이사야 62장과 시편 60편, 두 군데에서 택하겠습니다. 먼저 이사야 62장을 펴서 읽겠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신지를 되새기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이사야 62장이 아니라 60장입니다. 이사야 60장입니다. 자, 이사야 60장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네 빛이 왔고 주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느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백성들을 덮을 것이나 주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보이리니. ‘백성들을 덮는 짙은 어둠’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제 시편을 펴 봅시다. 어젯밤 급하게 이것을 적으면서 성경 구절을 써 놓다 보니 조금 혼동한 것 같습니다. 시편 62편 1절부터 8절입니다. 진실로 내 혼이 하나님을 기다리나니 나의 구원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방벽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사람을 대적하려고 악한 일을 꾀하려느냐? 너희는 다 죽임을 당할 것이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되리로다. 그들은 단지 꾀를 내어 그의 뛰어난 위치에서 그를 던져 떨어뜨리려 하고 거짓을 기뻐하나니 그들이 자기 입으로는 축복하되 속으로는 저주하는도다. 셀라. 내 혼아, 너는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라. 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방벽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나의 영광이 하나님 안에 있나니 곧 내 힘의 반석과 내 피난처가 하나님 안에 있도다.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방금 읽은 시편 말씀을 주의해서 보셨다면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반석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아십니까? 여기 성경에서 반석은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나의 계시이십니다.” 그분은... 아시겠죠? 말씀의 계시가 반석입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이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제자 중 하나가 “주님은... 어떤 이들은 모세나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질문의 요지는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나서서 그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그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하셨느니라. 또 이 반석 위에...” 아시겠죠?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되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그것이 반석이 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오늘 아침 제 주제는 낯선 단어 하나입니다. ‘샬롬’입니다.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합니다. 오늘 아침 제가 교회에 드리는 말이 그것입니다. “샬롬!” 곧 평화입니다. 핀란드어로는 ‘유말란 라우하’라고 하는데,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라우하. ‘하나님’, 아시겠죠? 하나님의 평화, 샬롬입니다. 제 새해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교회에 전하는 1964년의 메시지입니다. 단순히 교회라는 단체들이 아니라 택함 받은 여인, 교회인 그 여인,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말씀을 전하는 대상은 그분들입니다. 우리가 읽은 두 주제... 아니, 두 성경 구절은 서로 크게 대조됩니다. 이사야에서는 “일어나 빛을 비추라. 하나님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느니라. 빛이 여기 있느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짙은 어둠이 이 백성을 덮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제가 교회에 드리는 말은 “샬롬, 평화”입니다. 이것이 모두 무슨 뜻인지 살펴봅시다. 아시겠죠? 우리는 빛과 어둠을 함께 마주하며 올해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은 이제껏 겪은 때 가운데 가장 혼란한 어둠의 시기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제껏 비친 빛 가운데 가장 복된 빛 속에 다시 서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차이는 태초에 짙은 어둠이 땅을 덮고 있었을 때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며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어둠으로부터 나누셨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다시 그때에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어둠으로부터 나누시고 빛이 드러나도록 어둠을 세상 반대편으로 밀어내고 계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면 교회에 제가 ‘샬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새해를 맞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새날이 밝아 오는 앞을 바라봅니다. 우리 앞에는 위대한 것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것이 우리가 고대해 온 기쁨이었습니다. 큰 빛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 빛이 지평선 위로, 그 지평의 영역에서 밝아 오는 것을 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과 죽지 않는 것 사이로 빛이 밝아 옵니다. 하늘과 땅 사이로 빛이 밝아 오는 것을 봅니다. 질병과 고난에 매인 땅의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생명과 불멸의 몸과 불멸의 땅이 있는 환히 빛나는 날로 나아가는 빛입니다. 교회에는 ‘샬롬’입니다. 이제 믿는 사람들에게는 빛의 때가 오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짙은 어둠이 옵니다.
며칠 전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관해 말했습니다. 제가 이곳을 택한 까닭은 여러분에게 마음을 편히 털어놓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에게 닥친 이때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딱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교적인 문제로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를 때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격렬히 의견이 부딪혔어도 나중에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우리가 서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라고 하며,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입술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할 수 없다면), 저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온갖 계층의 사람들, 여러 종파와 집단과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찾아가 성경을 펴 놓고 “당신의 신조나 윤리 규정집이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토론합시다.”라고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들이 아주 날카롭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싫다는 생각이 제게 조금이라도 든다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제게서 떠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싫다는 감정이 든다면 제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분의 백성들이 못을 박고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그분이 창조하신 못을 그분의 육체에 박고 있을 때에도, 그분은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아시겠죠? 저도 이제 그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악에 너무나 종속되어 딱할 지경이 된 것 같은 때에 이르렀습니다. 어둠의 그림자가 사람들 위에 드리워져 그들을 짓누르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이것 한 가지만 보십시오. 전국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분의 말씀을 입증하시며 그것이 정확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말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행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그것이 존재하게 하시고 그 밖의 일들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앉아서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시겠죠? 누구를 업신여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매들에게 그런 옷을 입는 일이나 머리를 자르는 일, 그런 작은 일들에 관해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또 남자들은 자기 신조에 계속 머물러 그 신조와 그런 것들 아래서 섬깁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음 해에 다시 가 보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져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됩니다. 한때 아름다운 긴 머리를 가졌던 자매가 이제는 머리를 잘라 버렸습니다. 한때는 자기 입장을 굳게 세우고 옳은 것을 위해 나선 듯했던 남자가 도로...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돼지가 뒹굴던 진창으로 돌아가듯 되돌아가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대로 다시 그 속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인가 우리 사람들을 덮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덮쳐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오늘날 남자들을 보십시오. 사람에게서 예전의 진실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제가 이것을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는 ‘샬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아시겠죠? 요즘 여자들을 보면 예전에 가졌던 여성다운 품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본인들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듯한데 무엇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무거운 짐이 누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이런 일, 저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 그 여자도 그것을 바라보고 믿으며,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그 여자를 반대쪽으로 밀어붙입니다. 아시겠죠? 딱한 분입니다. 저는 그 여자가 불쌍합니다. 할리우드,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신문의 광고, 거리와 상점 진열장에 나오는 현대식 의상 같은 것들, 그리고 다른 여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이런 그물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습니다.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노인들도, 중년들도 그렇습니다.
남자들 사이에도 무엇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자들에게 예전의 남성다운 면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에게도 예전의 여성다운 면모가 없습니다. 요즘 남자들을 보면 예전처럼 우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두 무슨... 보라색이 들어간 스웨이드 구두를 신고 싶어 하고 여자처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는 본래의 모습이 왜곡된 것 같습니다. 여자는 머리를 자르고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남자는 여자처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대화를 해 보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사람들입니다. 좋은 사람들,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백성을 덮은 그 짙은 어둠입니다. 무엇인가 그들을 몰아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오셨던 시대의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예언하며 “그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성경이 성취되려면 그렇게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말하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했습니다. ‘백성을 덮는 짙은 어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가 그저... 사람들이 원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니고데모가 언젠가 주님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셔서 이방인들 가운데 신부를 취하시도록 유대 민족 위에는 그 어둠, 그 눈멂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거부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그런 것들을 덮어 비치는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짙은 어둠입니다. 아시겠죠? 무겁게 짓누르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유명한 전도자들 가운데 일부를 보면 끊임없이 부흥을 외치면서도 바로 그 부흥을 거슬러 일합니다. 아시겠죠?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채 그러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는 이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들은 여기에 속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려는 동기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브래넘 형제님, 세상에 있는 유일한 진리를 형제님이 갖고 계시는군요.”라는 생각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아시겠죠? 다만 우리가 걷고 있는 시대에 비추어, 이 빛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스스로 그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미리 예정된 씨, 오직 그 씨만 그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그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짙은 어둠이 백성들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세상 사람들을 말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상태에 있습니다. 짙은 어둠이 백성들을 덮고 있습니다. 제가 늘 전하며 옹호하려고 했듯이, 하나님은 크신 긍휼 가운데 자신의 일들을 언제나 하늘에서 먼저 보여 주십니다. 그분의 크고 중요한 일들은 땅에서 일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추십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가 사역을 시작할 자리에 이르시기 전에 하늘에 별 하나가 나타나 사람들을 그분이 계신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지혜자들을 말입니다. 제 지난 메시지에서 들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지혜자들을 꿈으로 다른 길로 돌이키게 하시던 날 그들을 다루셨고, 요셉에게도 꿈으로 그분의 아들의 안전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가 꿈을 꾸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꿈은 부차적인 것, 한쪽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올바르지 않은 꿈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땅에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선지자가 없었으므로 하나님은 쓰실 수 있는 것을 쓰셔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기능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분께 드려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먼저 그분께 드려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묵상하는 것, 그것이 실제로 꿈에 비칩니다. 아시겠죠? 잠재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살펴보면 대개 자신이 생각해 오던 일이나 그와 비슷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그러면 그분을 위한 것이 비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그분을 비추게 하십시오.
자, 저 하늘에서는... 제가 지금 저기 라이프 잡지에서 나온 사진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까? 이 집에 사는 형제님이 벽에 걸어 둔 그 삼각형의 빛 말입니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분 중에 람사 번역 성경을 가진 분이 있다면 표지를 보십시오. 후광 같은 삼각형의 빛,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세 모서리의 빛이 있습니다. 제 친구,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인 람사 박사님이 성경을 번역하실 때 사용한 그것은, 참된 삼위일체의 방식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옛 히브리 상징입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의 세 나타나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입니다. 그 빛은 삼각형 모양으로 하나의 온전한 빛의 고리를 이룹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직분, 아들의 직분, 성령의 경륜이라는 세 직분으로 거하시지만 모두 같은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그런데 일곱 인이 계시되기 전에, 여기 투산 위, 플래그스태프의 하늘에 그 크고 신비로운 빛이 나타나기 전에 있었던 일을 아셨습니까? 프레드 형제님이, 그 두 사람이... 그날 아침 두 사람이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날 것은 여러 달 전에 미리 말해졌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계신 프레드 소트먼 형제님과 진 노먼 형제님, 두 분이 그... 폭음이 일어났을 때 거기 계셨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그분은 저를 돌려보내시며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의 일곱 비밀을 담고 있는 일곱 인, 그 비밀들이 이 일곱 인 안에 봉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길을 따라 온 천사들, 교회 시대들의 사자들이 그 일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 때, 일곱 번째 사자에게서 이 모든 비밀이 끝마쳐져야 했습니다. 일곱 번째 땅의 사자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말씀하시는 이 천사는 땅에 있었습니다. 천사는 ‘사자’라는 뜻입니다. 그 뒤에 그는 다른 천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메시지를 받은 땅의 천사가 아니라, 무지개를 두르신 그 (다른)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땅과 바다에 발을 디디시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을 두고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일곱 인을 열어 계시하시기 전에 기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먼저 하늘에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날 미국 남부 전역과 멕시코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라이프 잡지에 그 사진이 실려 있는데 그들에게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땅에서 행하시기 전에 하늘에서 밝히 알리십니다. 늘 그렇게 하십니다. 먼저 하늘에 그분의 표적들을 보여 주십니다.
황도대에서도 그렇습니다... 제가 돌아가 황도대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그분을 밝히 알린다는 것을 보여 드릴 뿐입니다. 황도대의 별자리들을 보면 그분께서 황도대의 별자리 안에 성경 전체를 나타내셨음을 알게 됩니다. 거기서 그분이 시작하시는 모습, 황도대의 맨 첫 형상은 처녀이고 마지막 형상은 사자자리의 사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처음 땅에 오실 때는 처녀를 통해 오시고, 두 번째 오실 때는 유다 지파의 사자로 오실 것을 보여 줍니다. 아시겠죠? 그 직전에 서로 엇갈린 물고기들을 지나십니다. 게자리 시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성경은 “모든 하늘이 그분을 밝히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몇 달 전 저는 타버내클에서 연속 집회로 ‘일곱 교회 시대’를 설교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모두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때 빛이 어떻게 들어왔다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일곱 교회 시대를 칠판에 다 그렸습니다. 아마 여기 어딘가에 그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이니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마지막 날 마지막 교회 시대를 다 그렸을 때 이 큰 불기둥(우리 가운데 있는 불기둥)이 수백 명이 있는 가운데 내려와 타버내클 뒤쪽 벽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백 명 앞에서 제가 칠판에 그린 그대로 어둡게 하셨다가 밝게 하시며 그 교회 시대들을 그리셨습니다. 신비롭게 말입니다!
얼마 전, 이제 교회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달은 교회를 나타내고 해는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계시록 12장에 교회인 여인이 있는데,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해가 있으며 왕관에는 열두 별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곧 옛 정통 유대 율법이 그 발 아래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것을 넘어 태양빛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열두 별은 성령 아래서 우리에게 메시지들을 전해 준 열두 사도입니다. 하늘의 달은 해가 없을 때 해의 빛을 반사해 줍니다. 우리가 다닐 수 있도록 빛을 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리 많이 반사해도 그것은 완전한 빛이 아닙니다. 반사하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달에 비치면 달은 해가 없는 동안 그 빛을 반사합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면 달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곳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의 빛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 빛이 비친 모습입니다. 그분께서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으나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내가 행하는 일들을...”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타내신 빛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빛이 없습니다.
저 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났을 때 빛이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아직 빛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말씀하시고 그것이 나타나 입증되었을 때(그분의 말씀이 입증되었을 때) 빛이 생겨났습니다. 지금도 빛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입증되면 빛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시대마다 한 부분에 빛이 켜집니다... 아니, 한 부분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교회 시대들에서 그것을 봅니다. 구약의 교회 시대들에서도 봅니다. 그 여정에서 어떤 것이 나타나야 할 때가 올 때마다 한 선지자가 땅에 왔습니다. 말씀이 그 선지자에게 임했고, 그는 그 말씀을 살아 있게 했습니다. 그 말씀이 드러났을 때 하나님을 비추었습니다. 그 시대가 거기에 있었고, 빛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빛이 옵니다.
저는 어떤 교단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반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반대합니다.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일어난 제도는 로마의 제도... 곧 로마 가톨릭교회였습니다. 최초로 조직된 조직체는 로마 가톨릭교회, 니케아 로마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약 삼백이십오 년 후, 325년에 로마교회 조직이 생겨나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거기에 반하는 다른 것은 모두 쓸어 버렸습니다. 거기서 그들의 낯선 교리들이 생겼고 말씀을 떠난 제도로 출발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교회는 정확히 어둠을 비추었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는 이른바 ‘암흑시대’, 약 천 년을 지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역사가와 성경학자 등이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그때는 로마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이 로마교회는 음녀들의 어미입니다. 성경은 계시록 17장에서 그 여자가 창녀이며 음녀들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자가 부도덕하고 더럽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두 말은 같은 것입니다. 둘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음녀라면 여자여야 합니다. 그런데 ‘음녀’가 아니라 ‘음녀들’이라는 점을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 여자’는 단수, ‘창녀’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들은 ‘음녀들’, 곧 로마의 창녀에게서 나온 딸들이라고 불립니다. 그 여자는 그 모든 것의 어미, 조직의 어미입니다.
이 모든 일을 지나오는 동안 조직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온 땅에 전해졌습니다. (좌우로 조직을 호되게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시대는 1933년부터 말해 온 시대입니다. 성령께서 제게 그 환상들을 주시고 마지막 때를 보여 주셨을 때 제가 일곱 가지 일을 말했는데, 그 가운데 다섯 가지는 이미 완벽하게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와 모든 전쟁과 국가에 관한 일들 말입니다. (그분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좀처럼 제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로 가서 에티오피아가 그의 발 아래 무너지고, 그 뒤에 그가 수치를 당하며 자기 국민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함께 살던 그 창녀와 함께 거리에서 거꾸로 매달려 치욕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독일과 전쟁을 하러 가서, 콘크리트로 요새를 만든 큰 방어선이라는 곳에서 처참하게 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그프리트선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마지노선이라는 것도 있는데, 아마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었을 겁니다. 맞습니까? 지그프리트선은 독일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이 세워지기 십일 년 전에 제게 보게 하셨습니다. 미국인들은 거기서 패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독일군은 거의 전군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들이 그 안으로 들어왔을 때 독일군은 그 함대를 똑바로 겨냥한 채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게 두었다가 거의 다 침몰시켰습니다. 저는 그 방어선, 지그프리트선의 기초가 놓이거나 어떤 공사라도 시작되기 십일 년 전에 그것을 보았습니다. 또 기계와 자동차 같은 다른 모든 것, 모든 일이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한 여자가 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 여자는 어쩌면 교회일 것입니다. 그리고 끝이 왔습니다.
이제 이 모든 일을 보고 제가 조직을 그렇게 강하게 비판해 온 가운데, 로마의 교황이 처음으로 로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예루살렘은 온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던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그는 예루살렘의 왕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스도 자신 외에는 아무도 멜기세덱일 수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 자신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이분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이시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그때 살렘의 왕이셨고, 풀이하면 ‘평화의 왕, 샬롬’입니다. 예루살렘의 왕이셨으며, 싸움이 끝난 뒤 아브라함을 만나 포도주와 빵, 곧 성만찬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 아주 아름다운 모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싸움이 끝난 뒤 그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새 왕국에 들어가 처음 취할 것이 그것입니다. 아버지의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빵과 포도주를 새롭게 먹을 것입니다. “그날 아버지의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먹을 때까지 나는 다시는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시거나 빵을 먹지 아니하리라.”
이제 샬롬 왕께서 그 도시에 계셨던... 그 도시에서 나오신 후, 나중에는 신조가 그것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줄곧 신조가 이어져 왔지만 그 도시는 옛 교회를 나타냅니다. 신약은 우리에게, 이 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신약은 우리가 이 땅의 도시 예루살렘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달, 예루살렘이어야 하며, 위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달은 땅에 있는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교황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바로 며칠 전에 하늘의 달이 완전히 어두워졌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가 길을 떠나기 며칠 전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여기에도 올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런 일은 전에는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이것이...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교제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간 다음 날 그는 그리스 정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비춥니까? 그들은 교제를 원합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연합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으며 완전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달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모습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긍휼과 은혜로...
달 사진을 실은 신문을 보신 분이 있습니까? 제게 여기 있습니다. 아직 이르지 않은 일곱 번째 시대를 빼놓으면, 제가 성령으로 그린 교회 시대들의 모습과 완벽히 똑같지 않습니까? 거기 여섯 개가 있고, 일곱 번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달의 여섯 가지 모습입니다. 첫 교회 시대에는 밝다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에는 어두워졌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칠판에 그리게 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 년 전 타버내클 벽에서 그분 자신이 그것을 확인해 보이셨습니다. 달이 그 모습을 비추고 과학이 다시 교회 시대들의 사진을 포착합니다. 인들을 여는 것, 일곱 번째 천사의 시대에 계시되는 것을 보여 준 저 빛을 포착하여 라이프 잡지에 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일곱 번째 사자의 사역이 있는 날들에 하나님의 비밀들, 여러 시대를 거쳐 온 그 모든 비밀이 계시되어 드러나야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렇게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행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신비로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 그들이 담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그리십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제게 칠판에 그리게 하셨고, 이어서 친히 그리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 그것을 완벽히 확인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교황이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직전에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였습니다. 달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교회 앞을, 세상의 그림자가 달을 가로지릅니다. 세속주의의 그림자, 세속성의 그림자, 세속적인 교회가 휩쓸고 지나가 성경의 빛 전체를 가려 버렸습니다. 세상이 반사되는 빛을 가로막았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세상이 달에 비치는 빛을 가로질러 해를 가렸습니다. 땅에 빛을 주어야 할 달의 반사광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들어와 그려 낸 모습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영감으로 그렸던 모습과 정확히 같았습니다. 심프슨 자매님, 그것이 투산 신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프슨 자매님이... 그때는 뜻을 모르셨습니다. “형제님 드리려고 신문에서 사진 몇 장과 기사 몇 가지를 오렸어요.” 하며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집어 들고 보다가 말했습니다. “여기 있군요. 정확히 그대로입니다. 아시겠죠? 바로 제가 찾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 신문에 나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한 부 구하고 싶으시면 심프슨 자매님이 어느 신문인지 알려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심프슨 자매가 “12월 28일 자예요.”라고 말한다.] 뭐라고 하셨지요? [“12월 28일 석간이에요.”] 12월 28일 석간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그 빛을, 아니, 거기에 남아 있는 통로라도 막아 버리기 전입니다. 빛날 수 있는 때와 위치와 권리가 무엇이든 이제 그것을 완전히 끊어 버립니다. 마지막 시대, 교회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일곱 번째 교회 시대를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것을 알려 주십니까! 모든 일에서 한 번도 어긋남 없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밝히 알리고 말씀하시며 가리켜 보이셨고, 여기서는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임을 드러내고 입증하셨습니다.
어둠, 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교회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려고 하셨습니다. 어둠, 이 백성을 덮은 짙은 어둠입니다. 성경이 옳았습니까? 성경의 완전함, 그분의 위대하신 이름의 영광입니다. 교황의 방문은 교회들이 어두워지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분의 나타난... 세상에 나타난 빛은 성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나타난... 곧 입증된 성경 말씀이 빛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권세를 잡으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영감으로 말해지고 미리 비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달에 미리 비쳐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 주었고, 이제 바로 여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때가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어둠, 짙은 어둠입니다. 지금 백성을 덮은 짙은 어둠, 바로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어느 때에 살고 있습니까? 그분의 오심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습니까? 여러분은 “모두가 부흥을 맞을 때...”라고 하십니다. “적은 양 무리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이 빛을 어둠으로부터 나누기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아시겠죠? 태초에 하셨듯 어둠을 뒤로 밀어내어 새날이 밝아 오는 것을 보이십니다. 교회 시대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기침한다.] 죄송합니다. 교회 시대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을 한곳으로 몰아가십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 조직들을 사라지게 하고 세상을 사라지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이 그것을 뒤덮고 있으며 세속주의가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옳지 않으십니까? 세상적인 것들과 세상적인 옷차림과 세상적인 행동과 세상적인 삶, 바로 세상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이곳은 여러분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이 왜 뒤를 돌아보며 다시 젊어지려고 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뒤가 아니라 앞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기 지나온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때를 바라보며 그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선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이런 신조와 교회와 조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이 말하듯이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이스라엘을 눈멀게 했던 짙은 어둠은 이방인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눈멀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에 빛을 비추기 위한 것입니다. 낮과 밤처럼 한쪽에는 어둠이 있고 다른 쪽에는 빛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빛이 반대편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달이 그렇게 지나가고 세상의 어둠이 비쳐 달빛을 가린 일은 이방 교회 시대가 끝났음을 우리에게 비추어 줍니다. 교회는 자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자신을 준비해 왔고, 이제 휴거의 때입니다. 이방인들 위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으며 유대인들 위에는 곧 새벽이 밝을 것입니다.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왔고 우리는 서해안에 있습니다. 빛이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반대쪽 동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빛은 처음 시작되었던 동쪽,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잠시 눈멀게 하셨으나 이제 어둠은 이방 세상으로 밀려와 모든 것을 덮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경륜이 끝날 때까지 예루살렘을 짓밟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이 끝났고 짙은 어둠이 백성들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땅에서 보여 주셨듯이 하늘에 그것을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여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신실했고, 그분이 함께 계시지 않았는데도 함께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마리아와 요셉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갔을 때 예수님은 열두 살이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고 짐작했지만 그분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좋은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 교회협의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이런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도 그분이 함께 계신다고 짐작합니다. 많은 사람이 목사와 악수하고 명부에 이름을 적었을 때 그분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분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물을 뿌림 받고 견진을 받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을 때 그분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분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짐작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빛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입증하신 말씀입니다! 그 밖에는 빛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손전등으로 땅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난 말씀,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고 완전한지 보십시오. 마리아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셨습니까? 사랑하는 가톨릭 신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속한 제도입니다. 개신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제도들입니다.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고요? 보십시오. 마리아의 아들, 열두 살짜리 소년이 마리아를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부르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분의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마리아는 그분이 땅에 오시려고, 자궁을 통해 땅에 나타나시려고 사용하신 자궁에 불과했습니다. 마리아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어머니’라고 하신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틀리고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 완전하다는 점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성전에서 신학자들과 토론하시는 열두 살 예수님을 찾았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열두 살 소년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으셨고, 다니셨더라도 우리에게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두 살 소년이 그 지혜로 성전의 현자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내가 눈물을 흘리며 너를 찾았단다.”라고 했습니다. ‘네 아버지’라고요!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 자신이 “네 아버지 요셉과 내가 눈물을 흘리며 너를 찾았단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마리아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함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요셉의 일을 하셨다면 집을 짓거나 목공소에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셨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파와 신조들, 들려오는 그런 것들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요셉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인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했고, 그분은 돌아서서 마리아를 바로잡으셨습니다.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았단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요셉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마리아와 그들은 그렇게 짐작했을 뿐입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보십시오. 마리아는 분위기에 휩쓸렸습니다. 마리아는... 그 제사장들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님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 간증의 토대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천사가 찾아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처녀에게서 난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다고 간증해 놓고, 여기 높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는 “여기 네 아버지 요셉과 내가 너를 찾았단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 열두 살 소년은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마리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분은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오늘 교회를 보십시오. 협의회와 세상의 일들에 휩쓸려 이제 어둠에 덮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느 날 마리아가 이런 집에서 열린 그분의 집회에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와서 “문밖에 주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그들이 누구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둘러보며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요, 내 자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분의 가족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실 때 그분은 젊은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아들아, 네 어머니를 보라.” 아시겠죠? 자신이 그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궁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은 집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영이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모인 것입니다. 집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집은 좋습니다. 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모임 장소로 쓰일 뿐입니다. 마리아도 그분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신 자궁일 뿐이었습니다. 이 집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것처럼 마리아도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다만 그 용도로 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많은 친구들, 마리아와 요셉처럼 좋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면서 그분이 자신들과 함께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랬듯 지금도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분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침례를 받았을 때도 사람들은 “아, 그분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았으니 그분을 모셨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것이 그 자체를 비추어 나타낼 때까지는 아닙니다!
그러면 택함 받은 사람들, 이제 빛은 어떻습니까? 제가 어둠에 관해 너무 오래 말했습니다. 시간이 절반 지났군요. 열한 시 삼십 분입니다. 이제 반대쪽을 봅시다. 짙은 어둠이 백성들을 덮고 있다면 빛은 어떻습니까? 그분은 짙은 어둠이 백성들을 덮겠지만 빛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빛이 왔느니라.” 어둠과 빛이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나뉘어야 합니다. 그것을 나누는 것은 오직 하나, 나타난 말씀입니다. 말씀이 나눕니다. 반대편으로 그것을 밀어냅니다... 여기 땅에 어둠이 있지만 하나님의 나타난 말씀, 말씀으로 생겨난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면 어둠은 반대편으로 달아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것입니다. 어둠이 빛으로부터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때에 택함 받은 교회에게... 이 이야기는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제가 ‘이 백성을 덮은 짙은 어둠’이라고 말한 성경의 뜻을 여러분이 이해하시도록 충분히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교회에 말합니다. “샬롬. 하나님의 평화가 있기를!” 평화입니다! 참된 히브리인은 누구나 다른 히브리인을 만나면 “샬롬”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좋은 아침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입니다. 교회여, 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어둠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좋은 아침입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고 계십니다. “샬롬. 평화.” 할렐루야. “샬롬.”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날이 밝기 직전의 어둠을 볼 때 우리는 저기 새벽별이 떠서 다가오는 해를 알리고 있음을 압니다. 그때 새벽별이 빛납니다. 그 사이를 이어 줍니다. 언제나 날이 밝기 불과 몇 분 전에 가장 어둡습니다. 완전히 어두워져 달도 빛을 내지 못합니다. 날이 밝기 전에 가장 어두운 까닭은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벽별이 나와 말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샬롬.”
그것이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샬롬. 그 위대한 날이 밝아 오려 합니다. 영원토록 밝고 아름다운 아침이 밝아 오고, 그분의 택하신 자들이 하늘 너머 본향으로 모일 때입니다. 저 하늘에서 이름을 부를 때 저는 거기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이름이 그분의 책에 있으니 우리는 거기 있을 것입니다.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어둠은 빛으로부터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빛이 그렇게 합니다. 아시겠죠? 빛이 밀고 들어오므로 어둠은 한데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빛을 받아들일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스스로 뭉쳐 짙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들을 하나로 모으고 교회협의회를 이루어 이교도의 어둠과 결합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서로 그렇게 심하게 의견이 다르면서도 백성들에게 밤이 닥치게 하려고 함께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1절은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네게 빛이 왔느니라.”고 말합니다. 일어나 빛을 비추십시오. 빛이 왔습니다. 말씀, 빛이 다시 입증되었습니다. 빛이 다시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시대의 빛에 관한 약속, 곧 이 시대에 주어진 말씀 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이 시대를 위해 주신 약속들, 선지자들과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 약속들입니다. 바로 이 시대에! “여러 시대에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1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때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느니라.” 아시겠죠?
광야에 떠 있던 그 큰 빛, 그것은... 모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겨 이집트를 버렸습니다.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서 사울을 만나신 분도 바로 그분입니다. 사울 앞에 큰 빛이 떠 있었습니다. 같은 빛, 같은 불기둥입니다. 사울은 히브리인이었고, 당시 그의 입장에서 어떤 영이나 다른 무엇을 경배하거나 ‘주님’이라고 부를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 동일한 빛이 왔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분이 이 시대를 위해 하신 약속들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대에 나타난 빛입니다. 어둠은 더 어두워집니다.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은 그 시대의 빛이셨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신 그대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셨을 때 그분은 무엇이셨습니까? 그 시대의 빛이셨습니다. 그 빛은 어둠을 밀어내어 그분을 맹렬히 대적하게 했습니다. 맞습니까? 빛이 계속 비칠 수 있도록 그분은 생명을 내주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의 빛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왜 그 시대의 빛이셨습니까? 그분은 말씀하신 것이 나타나 입증된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빛 없이 여기 있던 이 어둡고 음침하고 황량하고 습한 세상을 향해 “빛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나타나기 전에는 빛이 없었습니다. 나타나자 빛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구원자, 메시아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그 약속을 나타내시기 전까지는 아직 그것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약속을 입증하셨을 때 그분은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모세의 제자라면 나를 알리라. 모세가 나에 관해 기록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그 말씀이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의 입증이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들을 입증하고 증명하시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이 시대의 빛이며, 우리는 일어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오늘 다시 빛이 우리에게 비칩니다.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빛입니다. 오늘 아침 저 밖에 비치는 빛, 햇빛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그렇게 빛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럴 수 없습니다. 전구든 다른 무엇이든 인공적인 빛은 조금 지나면 꺼져 버립니다. 그러나 저 빛은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단의 작은 신조들은 전구를 터뜨리고 전구를 태우고 퓨즈를 끊어 놓고 온갖 일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 자체, 말씀으로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시간이 조금 초과될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면 계속해서 이 메시지를 끝내도 괜찮겠지요? 좋습니다.
일어나 빛을 비추십시오. 여러분에게 빛이 왔습니다. 말씀, 빛이 입증되었습니다.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타나신 분, 그 시대의 빛이셨다는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나타나시기 전에 그가 빛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를 곧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거기 있었지만 아직 살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그 일이 일어나기 사백 년 전에 “보라, 내가 내 앞에 내 사자를 보내어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광야에서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교단도 없고 신조도 없고 내세울 신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빛이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냈습니다. 말씀이 그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메시아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아닙니다! 나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그의 빛 가운데 걸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잠시 밝게 비치는 빛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길이 예비될 때까지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빛은 꺼졌습니다. 침례교인 여러분, 여러분은 그 빛 가운데 걸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빛입니다! 빛이 왔습니다. 일어나 빛을 비추십시오. 말씀, 빛입니다. 말씀, 곧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그 정체가 드러난 말씀)이 빛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새해는 어떻습니까?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이 사이의 일,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알리는 일에 관해 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제 바로 새해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좋습니다. 새해, 새해, 어떻습니까? 제게 소망을 줍니다. 우리는 일 년 더 가까워졌습니다. 어제보다 하루 더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열 시 사십오 분에 시작했는데 지금은 열한 시 사십오 분이니, 시작했을 때보다 한 시간 더 가까워졌습니다. 한 시간 더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앞을 봅니다. 아시겠죠? 아! 그렇습니다. 새해는 새 장을 넘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그랬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 신문을 가져와 앉더니 소파에 발을 올리고 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물었습니다. “존, 새 소식이 있어요?” 그는 “없어. 똑같은 옛날 일들이야. 사람만 바뀌었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살인과 강간과 온갖 일들을 다른 사람이 저지른 것입니다. 아시겠죠? 사실입니다.
새 장을 넘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말씀이 오늘을 위해 무엇을 약속하는지, 오늘의 빛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십시오. 우리가 올해 해야 할 일은 신조나 그런 것들로 돌아가거나 옛 교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옛 교단으로 돌아가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가 오늘 어떤 빛이 비쳐야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아, 교회여, 말씀으로 돌아서십시오.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올바른 스위치를 켜십시오. 전등 스위치를 이리저리 눌러 대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아시겠죠? 인공적인 것,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돌아가 오늘을 위한 약속을 보십시오. 그 약속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그것이 입증되면 여러분이 빛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됩니다. 약속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장을 바꾸거나... 달력을 바꾼다고 시간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난해는 갔으니 이제 낡은 12월 달력은 버리고 다른 것을, 새해 달력을 걸자.”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새해의 뜻입니다. 저는 오늘을 위해 무엇이 약속되었는지 보고 싶습니다. 이 시대의 빛이 무엇인지 알아 그 안에서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제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느 시대에 있는지, 길을 얼마나 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바울의 말을 다시 인용할 수 있겠습니다.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이제 푯대를, 높은 부르심을 향해 나아갑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드러나는 때,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시간이 영원 속으로 사라질 때를 향해서입니다.
다윗처럼 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를 그분의 손에 맡기십시오. 다른 것은 바라보지 말고 여러분의... 다윗은 여기서 “나의 시간이 그분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62편에서 보셨지요? “나의 시간이 그분의 손에 있나이다. 그분은 나의 반석이십니다.” 그분은 무엇이십니까? “그분은 제게 계시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계시된 진리입니다. 나의 시간이 그분의 손에 있나이다.” 아멘. 아,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제 시간은 그분께 속합니다. 저는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이 시간을 붙들고 계시므로 저는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미래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미래를 붙들고 계심은 압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붙드신 분이 저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새해를 위해 이것저것 세울 생각을 왜 해야 합니까? 그저 제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기고 다윗처럼 걷습니다. 다윗은 “나의 시간이 그분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미래를 붙들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미래가 어떨지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미래를 가지고 계심은 알았습니다. 저도 미래가 어떨지 모릅니다. 우리 중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미래를 붙들고 계심을 압니다.
인내하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너무 서두릅니다. 많은 선한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서두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직접 하고 싶어 합니다. 사역자 형제 여러분, 이 테이프를 듣는 여러분은 제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아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작은 회중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지 못하고 나섭니다. 때가 가까움을 믿기에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주를 기다리십시오. 인내는 덕성입니다. 인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덕성입니다. 그것은 덕성입니다. 여러분이...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라.” 주님보다 앞서려고 하는 자들, 주님께 “주님, 주님께서 제가 이것을 하길 원하시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라고 말하려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주를 기다리십시오. 성경은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실 구원자에 대한 약속을 성취하시기까지 수천 년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그분은 줄곧 알고 계셨습니다. 메시아가 되려고 일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교회가 메시아를 만들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메시아를 위한 때를 정해 두셨습니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동안 그분은 메시아의 모형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아담에서부터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내내 보여 주셨습니다.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입니다. 하나는 세상에 속했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했습니다. 하나는 땅에 속했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왔고 다른 하나는 땅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약속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시기까지는 수천 년을 보내셨습니다. 요셉 안에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요셉은 그분을 그려 보였습니다. 다윗도 그분을 그려 보였습니다. 다윗이 거부당한 왕이 되어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돌아보며 울었을 때, 거부당한 왕으로 그랬을 때, 그것은 다윗 안에 계신 예수님이었습니다. 팔백 년 뒤에 그분은 거부당한 왕으로 예루살렘을 굽어보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제 새끼를 품듯 내가 얼마나 자주 너희를 품으려 하였느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제들인 족장들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막내는 아니고(막내 바로 위였습니다. 베냐민이 막내였지요) 마지막 바로 전입니다. 아시겠죠? 그 바로 전입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가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꿈을 해석할 수 있었고 그 해석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는 은 서른 개에 팔렸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미워했습니까?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고 말씀은 마음속 생각들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은 서른 개에 그분을 팔았습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져 죽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피 묻은 옷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입으셨던 겉옷, 그분의 죽음을 확인해 주려고 십자가에서 가져온 피 묻은 옷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를 구덩이에서 일으켜 파라오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아무도 파라오를 볼 수 없었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요셉뿐이었습니다. 요셉이 궁을 나설 때면 나팔이 울리고 “모두 무릎을 꿇어라. 요셉이 오신다!”라는 선포가 나갔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죽어 있다고 여겨지던 구덩이에서 나오셨고, 일으켜져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 외에는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그분이 그곳을 떠나실 때 나팔들이 울리고 모든 무릎이 꿇리며 모든 혀가 시인하리라.” 아시겠죠? 그분은 번영의 통치자이십니다. 그때 이집트가 한 일을 보십시오. 가뭄이 닥쳤을 때 온 세상을 구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실 때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모든 무릎, 모든 무릎이 꿇리고 모든 혀가 그분이 누구신지를 시인할 것입니다. 그분의 모습이 모두 모형으로 제시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언제 오실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언제 오실지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 전에 메시아라고 나온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는 그분의 메시아가 계셨습니다. 오실 분의 모습을 모형들로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일곱 교회 시대들에서 앞으로 올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을 계시하여 세상에 보이시려고 저 위에 그 빛을 두셨을 때, 앞으로 올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과 똑같습니다. 그분은 일곱 천사를 보내시어 시대를 거쳐 온 일곱 사자들을 드러내시고 미처 풀리지 않은 부분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날마다 한 명씩 와서 루터가 남긴 부분, 웨슬리가 남긴 부분, 오순절이 남긴 미처 풀리지 않은 부분들을 계시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거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위대하신 샬롬, 여호와, ‘Jvhu’의 바로 그 모형과 그림자 안에 말입니다. 아시겠죠? 정확합니다. 그것을 하늘에 나타내셨고 기계의 눈이 그 사진을 찍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평화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여기 계십니다. 그분의 큰 빛이 우리에게 왔으니 우리는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말씀, 그 큰 비밀입니다. 오늘 여기서 그분은 자신을 나타내시며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하고 계십니다. 정확히 같습니다. 바로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시간에 속한 피조물입니다. 그분은 영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그칩니다. 뭔가 다르게 해 보려고 합니다. “아, 이것을 꼭 해야 해.”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어쨌든 일어날 일입니다. 그분이 하시도록 맡기십시오. 그저 자신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위를 바라보며 주님의 기쁨으로 빛나십시오. 이런 특권을 받아 여러분의 눈이 열리고 이 시대를 보게 되었음을 아십시오. 미래를 위해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분이 지난날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날 말씀을 입증하시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때까지 다른 모든 일을 정확히 이루어 오신 그분, 일곱 번째 천사의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정확히 이루신 그분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그것을 보여 주시고 세 가지 방식으로 알리셔서 어긋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말씀은 입증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천 년을 기다렸어도 그분은 제때에 오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오실 것입니다. 시대마다 말씀을 입증하신 것처럼, 교회 시대들도 같은 것을 보여 줍니다. 일곱 번째 메시지를 통해 우리 주님이 계시되는 일과 그 밖의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계시하고 나타내고 증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자신이 여기 함께 계심을 보여 주시고 말씀을 증명하고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늙은 사람이 영원히 젊어질 것입니다. 질병은 사라지고 더 이상 죽음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집을 지어 그 안에 살고 포도원을 심어 그 열매를 먹을 것입니다. 그들이 심고 다른 사람이 그곳에 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들이 물려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들은 그 곁에서 살 테니까요.) 그가 심고 다른 사람이 먹는 일, 그가 죽어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그곳에서 살 것입니다. 아멘! [녹음 공백.] 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모습에서 불멸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그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세월은 결코 그분을 건드리지 못하고 나이도 그분께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분은 불멸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음을 압니다. 갈림길에 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히 확인되었으니 그것도 다시 그렇게 확인될 것입니다.
미래는 그분이 붙들고 계십니다. 그분이 언제 오실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언제 오십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실까요? 언제 땅의 저주가 벗겨질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복되게 비친 이 모습들, 여기 서서 빛을 발하는 나무들과 꽃과 이런 것들이 언제 죽지 않고 자라게 될까요?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이 모든 것, 병원과 의사와 수술과 울음과 슬픔, 언제 이 모든 것이 끝나고 예수님과 함께 천 년의 샬롬 가운데 영광스럽게 다스리게 될까요? 언제일까요? 저는 모릅니다. 그분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실지는 모르지만 의의 해가 자기 날개들 안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를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은 입증될 것입니다. 여기서 치유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육체의 치유, 누군가의 병이 없어지는 그런 치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이 지금 모형으로 행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피조물 전체가 변화될 것입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늙음이 젊음으로 뛰어들 것입니다. 아멘. 언제 그렇게 될까요?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게 해 주셔서 올해 4월 6일을 맞으면 쉰다섯 살, 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온 목적을 위해 저기 있는 푯대를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삼십여 년 동안 저는 이 강대상 뒤에 서 있었습니다. 스무몇 살, 스물한 살이나 스물두 살쯤 된 어린 청년 시절부터 이 메시지를 선포하려고 애썼습니다. 제 힘을 남김없이 여기에 쏟아부었습니다. 어깨가 굽고 머리가 희어져 빠져도 저는 그때로 돌아보지 않습니다. 다시 결국 그렇게 될 테니까요. 저는 “너희 머리털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마지막 날들에 다시 그것을 일으키리라.”고 하신 입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저기서 밝아 오는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하실까요?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새해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새해를 붙들고 계심은 압니다. 그것이 제가 가진 새해의 소망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아멘입니다. 오시지 않더라도 저를 살려 주시면 저는 여전히 일할 것입니다. 그저 미래를 그분께 맡깁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분께 맡깁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았으니 그것이 이루어질 줄 압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십니다. 자, 잠깐 한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향곡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알고 계시지요. 음악이고 극입니다. 아시겠죠? 음악으로 극을 펼치는 것입니다. 자, 어린이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게 말하겠습니다. 학교에서, 아마 여러분에게도... 북으로 연주하기도 하는 그 짧은 러시아 교향곡이 무엇이지요? 이름이... 숲속에 있는 작은 딱따구리 이야기인데, 날갯짓과 북 두드리는 소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그 모든 소리를 듣습니다. 제목을 잊었군요. ‘피터와 늑대’입니다. 맞습니다. ‘피터와 늑대’입니다. 러시아 교향곡입니다. 아시겠죠? 작은 모형들을 날아다니게 해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북으로 연주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나무를 두드린다.] 그런 다음에 [브래넘 형제님이 다른 것을 두드린다.] 북소리와 다른 소리들을 냅니다. 그것으로 이야기를 연주하고 펼쳐 보입니다. 이제 브래넘 형제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지요.
자, 어른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교향곡입니다.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오직 작곡자만 그 참뜻을 아시며, 귀 기울이는 사람들, 그 극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계시하십니다. 하지만 먼저 교향곡을 알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말씀의... 음악의 전환점들입니다. 그것은 움직입니다. 때로는 한동안 일정한 박자로 이렇게 가다가 잠시 후에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며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시끄러운 소리, 소란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리며 다가오고 있음을 압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교향곡에는 극 전체가 바뀌는 때들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은 그 변화를 귀 기울여 기다립니다. 가까워지고 있음을 압니다. 북이 울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멘.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변화가 왔음을 압니다. 아시겠죠? 잠시 후에는 힘차게 터져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다립니다. 북의 박자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지금 마지막을 알리는 북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하늘의 말씀이 스스로 노래하는 그 음악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면!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이루어지리라!” 하나님께서 연주하시는 위대한 극의 교향곡입니다. 그것이 그분을... 그분의 교향곡이 전환점마다 달라집니다. 작곡자와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귀 기울여 기다립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듣고 있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분이 나타나실 때마다 무엇인가 일어나고 우리는 때가 가까워지는 것을 봅니다. 얼마 전 저기서 교회 시대들을 그릴 때도 우리는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말씀과 정확히 맞고 말씀의 박자에 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이 친히 오셔서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일곱 번째 천사의 날들에”라고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 시대에서 그분은 “일곱 번째 천사의 메시지가 마지막 메시지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시록 10장에서는 “일곱 번째 천사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날들에 하나님의 비밀들이 끝마쳐지리라.”고 합니다. 일곱째 인이 열릴 것입니다. 그것이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환상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투산으로 가라. 그때 큰 소리가 나리니 너는 그것이 보내진 것임을 철저히 이해하고 알게 되리라. 거의 땅이 흔들릴 만큼 큰 소리일 것이다.” 여러분 모두 그 일을 아십니다. 일어나기 여러 달 전에 테이프에 녹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샬롬!’ 이것이 무엇입니까? 박자가 바뀌는 것입니다. 교향곡입니다.
또 한 번은 그분이 세 번째 당김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한 가지 방식으로, 그다음에는 마음을 아는 것으로, 그다음에는 말씀을 발하시는 것으로 어떻게 임할지를 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니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마리아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드러내려 했을 때 그분은 마리아를 바로잡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어긋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향곡의 박자가 울리며 변하고, 변화하려 하는 것을 들을 때 그것은 전환의 때입니다. 그분이 박자를 치기 시작하실 때 우리는 주의해서 보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더 큰 일들도 하리라.” ‘더 큰 일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첫 기적을 행하실 때 물을 가져다가 포도주로 바꾸신 것을 보셨습니까? 맞습니까? 그분은 물을 가져오셨습니다. 언젠가 포도주가 될 가능성은 있었겠지만 처음에는 물이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처럼 이미 있던 것을 가져오셨습니다. 알에서 태어나 한때 헤엄치던 물고기를 가져다가 쪼개셨습니다. 그러자 원래 있던 그 피조물에 다른 물고기가 자라 붙었습니다. 한때 밀, 씨앗이었다가 빵이 된 것을 가져다가 이 빵을 떼셨고, 피조물이 증식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숲속에는 다람쥐를 만들 재료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있으라.”고 하시자 생겼습니다. 떼어 낼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너희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이미 창조된 것을 가져다가 일부를 떼어 피조물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저 태초에 서서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생겨났던 바로 그 여호와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이 땅에서 육체가 되셨을 때는 원래 창조하신 것을 가져다가 떼어서 늘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날들에 우리 가운데 다시 내려오실 때, 내려와 “빛이 있으라.”고 하셨던 그 동일한 빛이, 아시겠죠, 말씀만으로 피조물을 존재하게 하십니다. “너희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런 때에 와 있습니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허튼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감리교의 것이 아니므로 감리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침례교의 것이 아니므로 침례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톨릭의 것이 아니므로 가톨릭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순절의 것이 아니므로 오순절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를 기다리는 사람들,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우리가 기록으로 아는 어느 천문대에서도 그때 지나간 별을 알아본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자들은 그 별을 수백 마일 따라갔습니다. 이 년 동안 지켜보며 따라갔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교향곡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작곡자는 처음부터 끝을 아십니다. 그 모든 것을 아시므로 여기 기록하실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록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해야... 교향곡을 듣고 싶으면 음악을 들을 때처럼 그분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먼저 듣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교향곡인지를 압니다. 그러고 나서 음악을 듣기 시작합니다. 내용을 아니까 대략 “여기가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는 대목이군. 이제 바뀌어야 해.”라고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냥 들어와 앉으면 온통 시끄럽게 덜거덕거리는 소리, 아무 뜻 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음악으로 박자를 치고, 음표들로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고, 하프의 현을 뜯고, 바이올린을 켜고, 베이스로 박자를 치고, 나팔 소리를 내고, 북을 두드립니다. 그 모든 것이 함께 리듬을 이루며 극을 펼치므로 눈을 감고 그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위대한 교향곡 속에서 말씀이 박자에 맞추어 펼쳐지고 변화하는 것을 볼 때, 사람은 이 땅의 광경을 향한 육신의 눈을 감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향곡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교향곡 안에 들어가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입니다. 거기서 시작하여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도 그렇습니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 리듬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 안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일부가 될 때 말씀의 리듬 안으로 태어납니다. 춤에서 나오려면 먼저 그 춤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구기 경기에 들어가려면 관심을 가지고 그 경기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향곡을 알려면 말씀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교향곡이 연주될 때 여러분은 이해하며 그 시대의 박자에 맞추어 행진합니다. 그것을 기다립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이 마지막 날들에 말입니다. 아! 시대의 큰 변화입니다. 우리는 박자, 말씀의 박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분의 목적을, 우리가 살고 있는 때를 알아보십시오. 그 리듬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어떻게... 그분이 어떻게 행하시는지 말입니다. 말씀 안으로 들어가 처음에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알면 언제나 어떻게 행하고 계시는지도 압니다. 그분은 처음에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까? 어떻게 행하십니까? 조직들을 상대하지 않으십니다. 한 번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으므로 지금도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그 교회협의회의 리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리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그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당신은 사람이면서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제 ‘세 종류의 신자’라는 메시지를 받으셨습니다. 거기에 한 부류가 서서... 믿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는 체하며 한동안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늘에서 온 사람의 아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나는 하늘에서 왔고 하늘로 돌아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리는 “이것은 어려운 말이다.”라고 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다니던 믿는 체하는 사람들, 칠십 명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듣자 그들은 그것이... 교향곡을 몰랐습니다. 이 아이가 여호와이시라는 약속,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이라 불리리라.”는 약속을 몰랐습니다. 그분이 “내가 왔던 하늘로 올라갈 때에!”라고 하시자, 그들은 “이것은 어려운 말이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당신이 그저 사람인 줄 압니다. 당신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숲속에도 함께 있고 물가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당신은 단지 사람인데 사람의 아들이 자기가 온 곳으로 다시 올라간다고요?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어려운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박자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교향곡의 리듬을 몰랐습니다. 그분이 육체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몰랐습니다. 그분은 입증된 말씀, 그 시대의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며 돌아섰습니다. 그들은 박자를 몰랐습니다. 아시겠죠?
다시 보면 유다가 있었습니다. 믿는 체하는 자... 아니, 믿지 않는 자로서, 흠잡을 것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 열두 명만을 향해 돌아서셨습니다. 유다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은 작곡자이십니다.” 아멘.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십니다. 생명의 말씀을 가지신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돌아서겠습니까? 다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헤롯당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밖에 무엇이든 말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가지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저희에게는 달리 갈 곳이 없습니다. 저희는 이 위대한 연주에 합류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와 귀 기울이며 리듬을 타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나타나신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 이 점을 확신합니다. 이 큰 시험들과 고난과 고통과 여러 일들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주님이 ‘위로 올라가 희생물로 드려지리라.’ 하신 말씀, 이런저런 모든 말씀과 ‘셋째 날’에 관한 그 모든 말씀을 저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향곡 안에 들어와 듣고 있으며 그 일부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려 보며 주님을 바짝 따르고 있습니다.” 아!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약속입니다.
그분은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태초에 행하신 그대로입니다. 아시겠죠? 한 번도 자신의 메시지를 조직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무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노아였고, 모세의 시대에는 모세였습니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만 이 무리 가운데 유일하게 거룩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군.” 하나님께서 그것을 내려다보셨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제가 이 일을 했습니다. 무엇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분은 “그들에게서 분리되어 나오라. 나머지는 내가 맡으리라. 내가 너를 보냈으니 내 책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을 여셔서 고라와 그 일당을 모두 삼키셨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요한과 예수님이 같은 때에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 요한이 그분을 바라보며 “이제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분은 흥하여야 하리라. 그분이 입증된 빛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빛은 완전한 입증이 이르는 것을 볼 때까지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태초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계십니다. 그렇게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배우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분이 땅에 계실 때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동조하셨습니까? 타협하는 분이셨습니까? 조직들로 가셨습니까?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셨습니까?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는...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아시겠죠? 오늘도 어느 때나 같습니다. 빛을 원한다면 성경이 이 시대에 관해 무엇이라고 하는지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시작합니까? 여기에 죄인이 있다면 십자가에서, 자신이 그분과 함께 죽은 것으로 여기는 곳에서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그 위대한 극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손에 든 악보, 그 교향곡의 악보를 봅니다. 손에 든 악보에는 이런 것들이 나와 있습니다. 음악이 바뀌면서 그 일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곳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 무엇이 펼쳐지는지 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에게 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 악보를 돌아보며 그것이 어디 나오는지 살핍니다. 그것이 오늘을 위한 일인지 보십시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에게도 교향곡의 악보가 손에 있었습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심포니, 심퍼시? 제대로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심포니인가요?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심포니요.”라고 말한다.] 심포니. 맞습니까? 좋습니다.
그들은 악보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했습니까? 이미 전부... 한 부분의 연주가 끝난 박자를 뒤돌아보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그렇게 합니다. 루터교인들은 루터가 어느 부분을 연주했는지 돌아봅니다. 음악이 달라진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이런 일을 행하실 때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그 루터교인들은 모릅니다. 오순절은 “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은 오십 년 전에 연주가 끝난 악보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손에 붙들고 변화가 오는 때를 지켜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십자가에서 그분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회개하고 죄들의 사면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면 너희가 음악, 곧 지휘를 받으리라.” 아시겠죠? “그분의 말씀, 말씀을 나타내시는 성령을 받으리라.” 그런 다음 말씀의 리듬을 끝까지 따라가십시오. 그 시대의 음악이 어떤 박자를 치든지 거기에 맞추십시오.
많은 사람이 “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야 합니까? 왜 제게 이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제가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여기서는 고난이 있고, 저기서는 저를 뒤흔드는 일이 있고, 또 여기서는 이것을 잃었습니까?” 저도 때로는 “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막 시작한 젊은 목회자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왜 제 곁에서 아내를 데려가시고, 제 품에서, 바로 제 가슴에서 아기를 데려가셨습니까?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저는 그저 그분의 손에 제 손을 두고 계속 신뢰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갈림길을 아십니다. 언제 어떤 리듬이 나와야 하는지 아십니다. 여러분을 빚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재료를 쓰실지 아십니다. 아시겠죠? 때로는 광야 뒤편에서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을 현자와 선지자로 빚으십니다. 사람들이 두드려져 만들어지는 곳이 거기입니다. 사람들은 말씀 안에서 두드려져 만들어집니다. 그들 안에 온갖 신조와 그런 것들이 있을 때 말씀으로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두드려 빼내시고 그분의 말씀이라는 위대한 교향곡에 꼭 맞게 빚으십니다. 아시겠죠? 그때 그들은 말씀이 전진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리듬이 언제 바뀌어야 하는지 아십니다. 리듬이 어떻게 나아가는지 아십니다. 저는 어떻게 나아가는지 몰라도 그분은 아십니다. 그분은 아시지만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을 바라보며 “자, 이제 다가오는군요.”라고 합니다. “의로운 자의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약속하신 말씀의 리듬을 따라 역사를 지나오셨습니다. 같은 리듬으로 자신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말씀과 함께 역사를 지나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택함 받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입증하시는 성령의 권능의 리듬으로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바깥 교회에는 결코 손길을 미치실 수 없었습니다. 오직 택함 받은 사람들뿐입니다.
그 제사장들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다. 점쟁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있지 않은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예리하며 마음속 생각들을 분별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물 한 동이를 길으러 우물가에 서 있던 그 작은 창녀는 “제가 보니 주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가 오실 줄 우리가 압니다.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바로 이런 분이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내가 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리듬이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교회 교단에서 입증된 메시아로 바뀌는 그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분이 서 계셨습니다. 모세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고 말했던 그 메시아입니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리듬이 바뀌었고 입증된 씨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입증된... 그 씨 위에 내리고, 사람들이 그 말씀이 입증되는 것을 보면 알아봅니다. 말씀을 보고 있으므로 갈림길을 알고, 때를 알고, 변화를 알고, 그 시대에 울려야 할 박자를 압니다. 할렐루야! 박자를 알고, 때를 알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압니다. 아시겠죠? 오직 택함 받은 사람들만 압니다. 빌립은 그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성경 공부를 하던 한 사람에게 갔습니다. “나다나엘, 와서 한 분을 보게. 우리가 발견한 분을 와서 보게. 우리가 나사렛 예수님을 찾았네. 나사렛 예수님을 찾았어. 모세가 오시리라고 말했던 그 선지자라네. 우리가 그분을 찾았어. 찾았다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어디 계셨나?”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아직... 리듬을 정확히는 몰랐습니다. 그들은 함께 공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거기에 이르러 그에게 이야기하고 말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나다나엘이 그곳에 왔을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리듬이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강단에서... 아니, 그 땅에서 위대한 극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바위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고 오자 그분은 그를 바라보시며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는 그것의 일부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박자가 어떻든, 교단들이 온갖 흥겨운 행사를 벌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그 위대한 교향곡이 아니었습니다. 아멘. 그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바로 여기 계시는군요! 제가 봅니다. 제가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택함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택함 받은 씨는 압니다. 어느 시대나 늘 그들은 압니다.
여러분은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제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제 주변 사람들은, 제 교단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를 내쫓을 것입니다. 그게...”라고 하십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다면 위를 보십시오. 어쨌든 앞을 내다보려고 하지 말고 그분의 손에 여러분의 손을 두십시오. 그분이 이끄시게 하십시오. 위를 보십시오. 앞을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 왜 다른 사람들이 제가 머리를 길게 기르고 반바지를 벗어 버리고 교회를 나왔다고 비웃습니까?”라고 하십니다. 아! 그분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은 그분의 은혜 안에서 자라며 겪는 성장통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위해 고난을 겪는 것은, 아시겠죠, 그분의 은혜의 성장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주어졌음을 기억하십시오. 아!
바울이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할렐루야!) 그에게는 약함, 그를 괴롭히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마귀가 계속 그를 쳤습니다. 거듭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그것을 없애 달라고 세 번 간구했습니다. “주님,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게서 없애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느 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아니,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그는 “그러면 제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 그것을 자랑하겠습니다. 주님이 치유자이심을 압니다.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며 마귀들을 내쫓으시고 눈먼 자의 눈을 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께 간구했는데 주님의 은혜가 충분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를 괴롭히는 이 마귀는 주님의 은혜의 성장통입니다. 그러면 제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넘치게 받은 계시들로 인해 내가 높아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시겠죠?
바울에게는 다른 제자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그분과 함께 걸었다.”고 합니다. 거리의 모든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죽으시고 묻히시고 일어나 승천하신 뒤, 다시 불기둥의 모습으로 돌아와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에게 있었던 것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아멘. 그는 “내가 높아져 큰 신학교와 온갖 것을 짓고, 무슨 큰 것을 만들려 하지 않도록, 넘치는 이 계시로 인해 내가 높아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마귀의 사자가 계속 나를 쳐서 낮추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할 때 강하노라.”고 했습니다. 아멘. 아멘. 은혜의 성장통입니다! 아멘. 이 말씀은 오래 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 사십오 분이 지났군요.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 그분은 갈림길을 허락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하고 그분을 섬기기에 온전하게 하려고 갈림길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교회와 테이프로 듣는 교회 여러분, 지금 그분이 그것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을 위해 갈림길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 날 다니엘에게 작은 갈림길을 주셨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바빌론에서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왕이 그를 대적하여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를 더 온전하게 했을 뿐입니다. 참으로 그랬습니다. 히브리 청년들도 불타는 용광로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위해 굳게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분은 거친 말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긴 머리를 비웃게 하실 수 있고, 여러분이 왜 ‘광신자’가 되었는지 말한다고, 혹은 다른 무엇 때문에 비웃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웃게... 사람들이 그 일로 여러분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은 갈림길, 작은 전환점입니다. 무엇인가를 입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서 있던 히브리 청년들에게 그 갈림길이 한 일은 오직 발과 다리를 묶고 있던 결박을 풀어 준 것뿐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묶은 세상의 결박을 끊으려면 힘든 시험이 필요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할지 보시고 세상에서 끌어내시려고 작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작은 시험으로 여러분을 그 조직과 이런 생각에서 털어 내시는 것입니다. “감리교만이 유일하다. 침례교만이, 혹은 오순절만이 유일한 무리다. 우리 교회가 믿는 대로 믿지 않으면 아예 믿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분은 작은 시험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아기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죽음의 시각에 바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그 밖의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여러분을 떼어 내시고 무엇인가를 보여 주시며 눈을 열어 주시려는 것입니다. 때로 여러분은 비판하려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비판하려고 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얽어맨 세상의 결박을 끊으려고 그렇게 하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강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 몸속에서 강물을 빼내려면 먼저 강에서 그 사람을 꺼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강에서 꺼내야 몸속의 강물을 빼낼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려고 전환점과 갈림길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약속들, 말씀 위에 서십시오. 그것들은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미래는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그들이 섰던 것처럼 서서 물러서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갈림길에서, 자신이 죽은 자들로부터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갈림길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모든 기적을 본 뒤였습니다. 약속된 아들, 그 아이를 이십오 년 동안 기다렸는데, 하나님은 가서 바로 그토록 기다린 것을 희생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 얼마나 어려운 때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이 흔들렸습니까? 로마서 4장을 읽어 보십시오. 그는 ‘온전히 확신했다’고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수 있음을 온전히 확신했습니다. 아멘. 그분은 그 갈림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는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받은 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라의 태는 죽었고 아브라함의 몸도 죽었습니다. 그는 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라에게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선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생식 능력을 잃었고 사라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도무지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로부터 받은 것이나 다름없이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실 수 있다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다시 일으키실 수 있다. 아기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 내가 굳게 섰을 때 아기가 오게 하신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그를 일으키실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일들이 마지막 날들에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을 약속하셨고 그 아들이 왔다면, 성경을 통해 우리가 보는 이 모든 일을 약속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우리도 그 리듬 속으로 들어갑시다.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셨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천년왕국이 있을 것입니다! 새날이 올 것입니다. 더 이상 해가 지지 않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그 도시의 빛은 어린양이시므로 더 이상 해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새날이 밝아 옵니다. 지금 제 온몸으로 그것을 느낍니다. 새날의 빛입니다! 밤도 없고 어둠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며, 하늘도 없고 침침하고 어두운 하늘도 없고, 한밤중도 없고 무덤도 없고 언덕의 꽃들도 없고 장례 행렬도 없으며, 의사도 없고 시체 안치소도 없는 날의 빛입니다. 아멘. 그분의 빛줄기가 제 혼 위로 뚫고 비치는 것을 느낍니다. 새날입니다! 옛날은 밀려나고 있습니다. 죽을 몸의 피가 제 몸을 따라 흐르는 것을 느끼는 가운데, 그 뒤를 밀려오는 성령의 물결을 느낍니다.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무엇인가 말했습니다. “빌리 브래넘, 너는 늙고 있어. 약해지고 어깨도 처지고 머리도 희어져 빠지고 있어.” 맞습니다. 땅에는 어둠과 짙은 어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나 빛을 비추라!”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물결치며 내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복음이 저를 그분 안에서 새 피조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아멘. 새날을 말입니다. 미래가 어떨지는 모릅니다. 1964년이 제게 무엇을 가져올지, 다른 어떤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원을 붙드신 분, 영원 자체이신 분의 손을 붙들고 있습니다. 아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다시 일으키실 수 있음을 알았으므로 그분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다른 시대의 사람들(택함 받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분의 말씀과 그 말씀의 약속에 머물기로 결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여러분 위로 뚫고 비친 것을, 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의 위대하신 성령이 나타나신 것을 보았다고 느낀다면... 기억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그것에, 그분이 행하신 일에 머무십시오. 여러분은 택함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시대에 택함 받은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보았을 때 그 모든 것은 과학적 증거와 반대되었습니다. 노아가 보았을 때도 모든 과학적 증거에 반대되었습니다. 모세가 보았을 때도 모든 과학적 증거에 반대되었습니다. 그렇게 똑똑하다는 시대들이 지나갔지만, 그것을 본 택함 받은 사람들은 굳게 섰습니다. 아멘.
미래를 향해서도 그 약속 위에 굳게 섭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끝까지 이루시는 일도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저는 그저 리듬을 따릅니다. 박자가 그때를 알리며 “이것으로 윌리엄 브래넘의 땅에서의 삶이 끝났다.”라고 하면 저는 그 리듬에 맞추어 갈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그 리듬에 맞추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박자를 쳐서 들여보내신 분이 박자를 쳐서 내보내시고 다시 들여보내십니다. 하나님의 리듬입니다. “내가 마지막 날들에 그를 일으키리라.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저는 말씀의 박자를 따를 것입니다. 아멘. 제 심장의 박자가 아니라 말씀의 박자입니다! 어떤 일이든 제 심장이 말씀에 맞추어 뛰지 않으면 제 심장이 잘못된 것입니다. 아멘.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조금 전 빌리와 함께 오는 길에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성경... 예언의 시간이라고 하는 시간, 무슨 시간... 이름이 무엇이지요? 예언에 관한 무엇인데요. ‘예언의 소리’입니다. 사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방송입니다. 그들은 이름이 네다섯 가지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밀러파였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고 집회에서 말했던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그 불기둥이 제 위에 있으며 제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제 친구 한 사람이 그들의 작은 모임에 있다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 말을 증명해야 합니다. 제가 그분을 바로 여기로 부르겠습니다. 그분이 한 번이라도 그렇게 고백한 적이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아시겠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있는 여러 이단 종파에 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압니다. 한번은 제가 안식일 문제로 그들과 논쟁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지나간 옛날을 붙들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안식일이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 혼에 안식일을 주리라.” 어떤 ‘날’이 아닙니다. 바울은 “날을 지키는 너희로 인해 내가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남아 있도다.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그치신 것같이 우리의 일들을 그쳤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그들의 설교자가, 방송은 좋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들이 그 말을 한 것도 기꺼이 용서합니다. 사실이 아닌 말을 하기는 했지만 괜찮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여호와의 증인과 크리스천 사이언스, 그 밖의 이런 이단 종파들과 똑같습니다. 아시겠죠?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다른 조직들과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른 조직들보다 더 틀렸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옳습니다. 아시겠죠? 스스로 옳음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말하는 중에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올해의 책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글쓴이, 그 설교자의 이름이 무엇이지요?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시애틀 세계박람회 때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말씀을 전했던 분입니다. 그가, 그 방송 진행자가 말했습니다. “이분이 올해 가장 뛰어난 책을 쓰셨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올해의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빛입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에게 올해의 책은 성경입니다. 이 1964년에 우리의 책은 성경입니다. 앞으로 올 다른 모든 해에도 우리의 책은 성경입니다. 지나간 모든 해의 책이었고, 앞으로 올 해들의 책이며, 영원의 책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임을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앞으로 올 모든 해에 성경은 올해의 책입니다. 성경이 무엇인가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그 약속은 입증됩니다. 언젠가 영원한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이 온다는 말씀을 성경에서 들을 때, 우리에게 그 약속을 주는 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처럼 이제... 끝마쳐야겠습니다. 여기서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시겠죠? 거의 두 시간이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성경이 앞으로 올 이런 일들을 알려 주고, 우리가 지나온 이 모든 때를 말한다면... 노아의 시대가 예고되었습니다. 그밖의 모든 시대도 성경이 예고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시대, 웨슬리의 시대, 오순절의 시대도 예고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예고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히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나님께서 입증하시므로 그 시대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해처럼 말입니다. 말씀, 말씀 그 자체는 그 말씀이 속한 때를 위해 입증될 때 빛입니다. 아시겠죠? 입증되면 그 시대의 빛입니다.
요한은 빛이었습니다... 엘리야와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더 큰 빛이었습니다. 엘리야... 요한은 엘리야의 빛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온 엘리야였으며 그 빛을 입증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가... 예수님이 오셔서 “그는 잠시 밝게 비치는 빛이었고 너희는 그의 빛 가운데 걷기를 좋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제 나는 희미해져야 한다. 이제 물러나야 한다. 나의 빛은 비칠 일을 마쳤다. 나는 물러나야 하고 그분이 흥하셔야 한다. 그분이 빛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은 여전히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분은 무엇이십니까?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왜 그분이 세상의 빛이셨습니까? 그분이 와서 메시아라고 하시면서도 성경이 메시아가 하리라고 한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세상의 빛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입증된 말씀이기 때문에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이 시대의 입증된 말씀입니다! 오순절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방언하는 것’ 같은 일을 말합니다. 그것은 오순절의 날이었고 그때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아시겠죠? 지금은 다른 시대입니다. 오늘에는 오늘 이 시대의 빛이 있습니다.
일곱 번째 교회 시대는 완전히 빛을 잃고 그리스도는 밖에 계십니다. 달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온 어둠이 땅에 닥치고 있습니다. 이제 빛이 밀고 들어오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멸망할 것이고 빛이 들어와 그것을 멸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땅을 상속받고 온유한 자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땅... 달의 어둠은 사라질 것입니다. 밤의 어둠은 지나갈 것입니다. 죽음과 신조들의 어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그들이 말하는 왜곡된 것들의 어둠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빛이 환히 밝아 올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 전체가... 마치면서 드리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 성경 전체가 철저히 입증되면 영원한 샬롬, 영원한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오셔서 자신이 “땅에는 평화요 사람들을 향한 선한 뜻”이라고 하셨지만 세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평화를 얻으려고 그분께 오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은 평화이셨습니다. 땅에는 평화요 사람들에게 선한 뜻입니다. 그 새해의 시작, 하나님의 새날에 그분은 평화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시대의 입증된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증되어야 할 말씀이 더 있습니다. 그분은 더 많은 말씀을 입증하셔야 합니다. 마지막 말씀이 입증... 아니, 입증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며 천년왕국이 시작되어 하나의 위대한 평화, 샬롬이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날을 위해, 그 위대한 샬롬을 위해 준비해 둡시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모든 지혜의 샘이며 미래의 모든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에 샬롬! 기도합시다.
지금 여기 모인 작은 무리 여러분, 제가 이 짧은 새해 메시지를 두 시간 동안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잘 참아 주셨습니다. 오늘 아침... 아니, 오늘 오후 여기 있는 분 가운데 샬롬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말씀하신 그 평화, 여러분과 말씀이 하나 될 때 드러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성경이 어떤 것을 말하는데 여러분이 “아니, 저는 그것이 옳다고 좀처럼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에게는 샬롬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평화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하나를 말하는데 여러분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샬롬, 평화”라고 하시고 여러분에게 그 평화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입증되는 것을 보면 “아멘, 그것이 말씀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조, 어떤 빛, 거짓 빛, 세상이 그 반사되는 빛을 그림자로 가로질러 어둡게 합니까? 말씀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데도, 어떤 신조가 “아니야, 그것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 꼭 그런 뜻은 아니야.”라고 합니까? 여러분은 그 그림자를 따릅니까, 아니면 그 빛과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과 이 테이프를 들을 모든 분은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원하시는... 그 빛을 갖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 그 빛 가운데 걸을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로 손을 드시겠습니까? 이 테이프가 전해지는 어느 지역에 계시든 그 빛이 없는 분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손을 드시겠습니까...? 잠시 후 우리가 기도할 때 녹음기를 끄고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하나님, 저는 의심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이것도 안 된다고 했으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약속된 것을 보며,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봅니다. 하늘 자체도 그것을 밝히 알렸습니다. 말해진 일들은 정확히 그대로 일어나고 있고 하늘의 하나님도 같은 것을 밝히 알리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안에 들어오게 하옵소서. 교회나 목사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대신 말씀의 리듬 속으로 들어가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보게 하옵소서.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교향곡 속에서 그분의 뜻이 제 삶에 박자로 펼쳐지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 곳곳에서 들린 모든 손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의 리듬과 그 진리를 가져다주옵소서.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빚어지고 이 땅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나타난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예수님처럼 살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그분처럼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분이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몇 마디 말씀이나 일부 말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세 시대의 말씀은 예수님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 시대의 말씀은 이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 자신이 성령으로 말하며 마지막 날들에 일어날 일들을 전했습니다. 교회들이 제멋대로 하며 자만할 것과, 창녀가 일어나고 음녀들이 그 여자와 함께할 것과, 그들이 땅을 어둡게 할 것을 말했습니다. 마지막 교회 시대인 라오디게아에서는 예수님이 교회에서 완전히 밀려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 주님, 저희가 결심하여 이 새해로 나아갈 때, 제가 그분, 말씀과 함께 머물며 저희 모두를 통해 그분의 빛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새해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교향곡 전체를 아시는 그분,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움직임과 모든 갈림길을 아십니다. 주님, 저희는 그저 그분을 지켜보며 그분, 말씀에서 눈을 떼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저희가 말씀의 리듬에 정확히 맞추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허락하옵소서. 주님, 여기 있는 잃어버린 모든 혼과 테이프를 듣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옵소서. 주님의 왕국을 위해 그들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아침 여러분 모두와 함께해서 기쁩니다. 시작한 뒤로 정확히 두 시간이 되었습니다. 열 시 사십오 분부터 열두 시 사십오 분까지입니다. 저는 미다에게 “한 시 삼십 분까지 돌아올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속도 제한을 어겨도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이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테리는 녹음기를 껐습니다. 배포하는 테이프가 그것이니까요. 여러분의 것은 아직 켜져 있는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아시겠죠? 이제 교회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러 번 생각하지만, 제가 광야 뒤편이라고 부르는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은 제게 작은 피난처를 찾는 것 같습니다. 광야를 지나 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둘러보면, 강 바로 옆 나무 아래 이 작은 무리가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강 동편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는...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를 축복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 샬롬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분의 평화입니다.
지금 이것을 녹음하려고 여러분을 이렇게 오래 붙들어 두어 정말 죄송합니다. 주님 뜻이라면 이것을 일요일 오후 피닉스에서 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는 짧은 집회들을 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주님 뜻이라면...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좌우로 자르고 찢으며 강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 모두 그것이 확인해 주는 증거임을 압니다. 세 번째 당김이 무엇인지 압니다. 모두, 우리 모두 그것을 이해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테이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잠시 잠잠히 있다가 큰 박해의 때가 닥치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그것이 말할 것입니다. 연이어 다섯 표적이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완벽하게 나타났던 것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는 그저 기다리며 그것이 한 일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이제 다시 돌아가 같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 확인하려고 합니다. 짧은 집회들입니다. 매일 밤 일찍 끝내려고 합니다. 삼십 분 정도만 신유나 그런 것에 관해 말하려고 합니다. 다시 녹음할 준비가 되면 이 광야 뒤편으로 내려오거나 타버내클로 올라가거나, 녹음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우리끼리 모여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아시겠죠, 예수님은...
기억하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아주 거만하게 돌아서서 가 버리는 것을 보았을 때, 오늘 아침 그 뜻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덮은 짙은 어둠입니다.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듣지 않는 그들을 용서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도 여전히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나님,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제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로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제 마음에서 정말 그렇게 느끼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저는... 그들에게 전할 메시지, ‘구원’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로 나가야 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과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루터교인들, 오순절 신자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 그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갑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이끌어 들이고 빛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첫 번째 짧은 연속 집회 일정이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일정을 갖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여기 놓고 가겠습니다. 주님 뜻이라면 우리가 어디서 모일지 목사님이 읽어 주실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주님 뜻이라면 말입니다. 이 집회들에 대해 인도하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는 것입니다. 그 부근에 사랑하는 분들이 있고 그분들이 집회에 오고 싶어 하시면 편지를 써서 이 집회들 중 한 곳에 참석하시라고 알려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스트리커 형제님과 스트리커 자매님, 그리고 여기 계신 다른 모든 분을 뵈어 반갑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이름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성령의 증거로 여러분이 제 형제자매임을 압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이렇게 내려와 여러분과 함께하니 참으로 기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식사를 차려 놓고 작은 교제의 식사를 하려는 것을 압니다. 저도 남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맛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분들이 여기 계신 줄 압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올라가는 길에 햄버거로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지켜야 할 약속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이쪽에 조금, 저쪽에 조금씩 배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회중이 “아멘.”이라고 말한다.] 남아 있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렇다면 여기 내려오지도 않았겠지요... 아시겠죠?
누군가 말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일만 명에게 전할 수도 있는데, 서른 명에게 설교하러 거기 내려가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규모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말씀이 받아들여지는 곳을 보고 싶습니다.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돌아서서 너희 발 아래 그것들을 짓밟고, 다시 돌아서서 너희를 찢으리라.” 아시겠죠? 그런 곳에는 진주를 던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자녀들에게 그들의 보석을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그는 진창과 흙 속에서 도구를 천 번이라도 움직일 것입니다. 백합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연못의 끈적끈적한 구덩이 맨 밑바닥에서 나옵니다. 빛에 이르려고 밤낮으로 애씁니다. 그러다 마침내 빛에 이르면 꽃을 피우고, 어디에서도 그보다 아름다운 꽃을 찾기 어렵습니다. 백합이 그렇습니다. 땅의 흙과 더러움 속에서 올라옵니다. 보석들도 그런 곳에서 발견됩니다. 여기 우리나라의 금이 나는 이 주에 묻혀 있습니다. 금을 찾는 곳은 흙 속입니다. 루비와 보석을 찾는 곳도 진흙 속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곳, 세상의 진창과 흙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저는 탐광자입니다. 탐광자는 무엇을 합니까? 금을 찾습니다. 찾으면 광을 냅니다. 두드리고 제련하고 준비해 놓습니다. 여기가 금광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늘 이 안을 살피며 아름다운 보석들을 찾습니다. 아시겠죠? 여기 먼지 속 어딘가에서 찾아내어 닦고 광을 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여기 한 형제가 있습니다. 여기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여기 훌륭한 젊은 여자가 있습니다. 여기 훌륭한 중년 여자, 나이 든 여자, 아, 젊은 여자, 어떤 사람이든 여기 있습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보석들입니다. 주님, 주님의 왕관에 넣어 주옵소서. 그러면 이렇게 영원무궁토록 빛날 것입니다.” 다시 뵐 때까지 샬롬.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자, 목사님, 이리 오십시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