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나님의 성경에서 읽겠습니다. 제 말은 없어질지라도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성경 말씀을 읽으려고 합니다. 여기 몇몇 성경 구절과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을 조금 적어 두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말씀드리고, 오늘 밤에도 곧바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이사야 45장을 찾는 동안) 이 기회에 이번 집회에 협력해 주신 모든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아주 소중한 친구인 쇼어스 형제님은 이 도시의 하나님의 성회 교단을 대표하십니다. 예수 이름 교회의 아웃로 형제님도 저의 또 다른 소중한 친구입니다. 독립 교회들에 속한 풀러 형제님 역시 저의 또 다른 소중한 친구입니다. 이 세 분뿐 아니라 (이분들은 세 주요 교회 계열을 대표하십니다), 제가 예전의 다른 대전도 집회 때 그분들의 교회에서 사역했던 다른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모두 협력하여 함께 모이셨고, 성도들도 나오셨습니다. 형제님들, 여러분의 성도들 가운데 병들고 도움이 필요했던 많은 분이 이번에 도움을 받으셨으리라 참으로 믿습니다. 저는 분명 제가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다 하려고 애썼습니다. 여기서 전한 말씀과 행한 일을 성령께서 확증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성경을 함께 볼 때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5장 22(장), 22절부터입니다. 땅의 모든 끝들이여, 나를 바라보고 이로써 너희는 구원을 받을지어다.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자가 없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으로부터 의로움 속에서 말이 나갔으므로 그것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겠고 모든 혀가 응답하리라, 하였노라. 성경을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20분이나 30분 정도 말씀드린다면, 이렇게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년 동안 이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땅의 끝들아… 나를 바라보라.” 저는 이것을 조금 바꾸어, “세상의 각 체제가 끝날 때 특별히 나를 바라보라”라고 하고 싶습니다. 세상 체제의 끝, 그것이 마지막에 이를 때마다 그분께서는 항상 자신을 너무나 실제적으로 알리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끝들아… 나를 바라보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땅의 끝들”이라고 말합니다. “끝들”은 복수입니다. 땅의 끝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하는 말을 여러 해 동안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는, “바라볼 때 무엇이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라”는 권면을 받아 왔습니다.
사람들이 “보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보다’라는 말은 주의를 기울이다, 올려다보다, 바라보다, 내다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하나님이요, 다른 이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하나님보다 더 확고하게 의지하여 바라볼 대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해답을 찾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십시오. 성경에는 이 시대를 위한 해답이 있습니다. 다른 시대를 위한 해답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영원토록 해답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해답이 있는 것은 성경이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계시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의 모습으로 계시되셨고, 왕들의 모습으로 계시되셨으며, 율법을 주는 이들의 모습으로 계시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바로 왕이시며 선지자이시고, 율법을 주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바라보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보는가, 또 무엇을 위해 그분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그분을 바라봅니까? 오직 무엇을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찾는 그것을 발견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집회, 곧 종교 모임에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앉을 큰 무리를 찾아서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입니다) 자기가 입은 옷을 자랑하려고 교회에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야. 가장 이름난 교회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야”라고 하면서 갑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본래의 올바른 목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배에 가는 것은…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배에 갑니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참 안타깝습니다. 이 점은 오래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자기 생각을 정해 놓고 교회에 갑니다. 어떤 말이 나오거나 자기 생각에 어긋나는 말이 조금만 나오면, 곧바로 일어나 나가 버립니다. 도무지 견디지 못합니다.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전통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만 했더라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성경이 그분의 오심을 온전히 분명하게 밝혀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의 온전한 계시 가운데 오셨습니다. 각 세대는 그 시대에 할당된 온전한 계시 가운데 그분을 드러냅니다. 이 세대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에 약속된 그분의 계시가 반드시 이 세대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군가 일어나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요한이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다’라고 말하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능히 이루실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소망하며 믿었고,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며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굳세어져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이 시대를 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만큼이나 확실히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라 그와 함께 상속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 의견을 정해 놓고 와서 순복음 집회나 다른 집회에 앉습니다. 잠깐 기다리다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이 나오면 일어나 나가 버립니다. 더는 앉아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머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영은… 그런 영이 어디서 왔을까?”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늘 있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있었습니다. 여러 번… 한번은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어떤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가 율법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그들이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계시, 곧 하늘의 환상을 말하기 시작하자 회중이 금세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기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이 미국의 한 대도시에서 부흥 집회에 초청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온 사람이 아주 적었습니다. 아마 부흥 집회 전체를 통틀어도 오늘 밤 이 건물에 앉아 계신 분들보다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 식사, 무료 아침 식사를 대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의 헌금을 거두어 그 도시의 교회 연합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아침을 무료로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제가 그곳에 온 목적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도시를 돕고, 병자들을 돕고, 그들, 곧 모든 교회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날 아침, 당시 그 대전도 집회의 강사였던 리 베일 박사가 아침 식사 후에 저를 청중에게 소개했습니다. 저는 “내가 하늘에서 온 그 환상 계시에 불순종하지 아니하여”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잠시 후 한 목사가 시계를 보더니 몸을 기울여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나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여섯이나 여덟 마디도 하기 전에 그 목회자들의 거의 3분의 1이 나가 버렸습니다. 제가 말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저 바울이 한 말, 곧 하나님께서 그를 이 일로 부르셨으므로 하늘의 환상에 불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그들은 제가 어디에 생각의 바탕을 두려는지 곧 알아차렸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은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그리스도인다운 배려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만, 깊이 새겨들으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날 아침 그 목사들과 함께했을 때보다 아프리카 주술사들과 함께했을 때 훨씬 더 말이 통했고 교제도 더 잘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주의를 기울였고, 제가 제 안에 있는 소망, 영생의 소망을 그들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질문했습니다. 그 목사들은 그런 데 시간을 전혀 내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기가 무섭게 곧 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 생각을 정해 놓고, 딱 그만큼만 머무르며, 그 이상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믿는 사소한 것 하나와 맞지 않는 말이 한마디만 나와도 끝까지 앉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셨을 때 그분을 믿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두 번째 오실 때도 그분을 놓칠 것입니다. 그들은 매번 그분을 놓칩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분은 모세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노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엘리야와 모든 선지자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들은 매번 놓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조상들 가운데 선지자들을 저 무덤 속에 넣지 않은 자가 누구냐? 이제는 그 무덤들을 꾸미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일 가운데서 땅의 모든 끝에 있는 우리는 바라보라는 명령, 그분을 바라보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와서… 여러분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보고 판단합니다. 성직자 복장 같은 것을 입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보려고 합니다. 말을 바르게 하는지, 자세를 바르게 하는지, 명사와 대명사를 어떻게 쓰는지 살펴봅니다. 솔직히 저는 무엇이 명사이고 무엇이 대명사인지 모릅니다. 설명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 기준에는 못 미칩니다. 저는 정말 모릅니다. 명사와 대명사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알았지만, 오래전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입니다. 제가 말할 줄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형용사와 대명사는 모릅니다. 우리가 이런 집회에 다 함께 모이는 목적도 그분을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명사와 대명사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바라보고 (바라보고),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분을 보면서도 그저 교회를 창립한 분이나 교회를 조직한 분, 어쩌면 교회의 신조 정도로만 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찾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옛 교리에 추가된 새로운 신조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을 그렇게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신화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로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여러 해 전에 행하신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분을 구유에 누운 아기로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분을 바라볼 때 무엇이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제2위를 봅니까? 아니면 셋이 하나인 삼위일체를 봅니까? 말씀을 통해 그분을 바라볼 때에만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시므로, 그것이 그분을 아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이 그분을 드러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논쟁하려고 그분을 바라본다면 잘못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논쟁은 그분께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을 바라볼 때 그분을 보고 알아보게 됩니다. 그 사실에 눈이 열리기 전에는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성경 구절을 보고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 주위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 보인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저 도단을 보십시오. 그날 엘리사는 시리아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살며 그를 섬기고, 음식을 만들고, 옷을 깨끗이 하고, 그의 손에 물을 부어 주던 충실한 종 게하시는 밤낮 그의 곁에서 그가 가르치고 설교하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시리아 군대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여, 아,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보십시오. 온 시리아 군대가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일어나 바라보았을 때 게하시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 젊은이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눈은 이미 활짝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사는 “그의 눈을 열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영적인 눈이 열리자 온 산에 불병거들이 가득했고, 그 선지자 사방에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눈이 열리니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문자 그대로 봅니다.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문자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자신을 드러냅니다. 영께서 말씀을 살아 있게 하여 그 약속을 이루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 말씀은 씨입니다. 영께서 그 씨에 생명을 주십니다. 땅에 묻힌 씨에 비가 내리듯, 영께서 말씀에 기름을 부으시고 그 목적에 이르게 하십니다. 생명이 터져 나옵니다. 예수님을 이 시대에 약속된 말씀으로 바라볼 때, 그것이 여러분에게 계시될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면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 동일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모든 세대에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각 세대에 할당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누군가를 보내십니다. 보통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너무 뒤섞어 전통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가 그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옵니다. 그가 그것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거나 내쫓고 쫓아냅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떠난 지 얼마 지나면 그의 무덤을 세우며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전에 그가 했던 일의 그늘 속에 살면서, 오늘날 앞으로 나아가는 말씀은 거부합니다. 인간은 꼭 그렇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어떻게…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만 이야기하면서 지금 당장 행하시는 일은 보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역사 속의 그분을 보고, 예언 속의 그분을 보지만, 그분께서 그때 하셨던 바로 그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신다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한번은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첫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아침이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꽃들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두 친구, 글로바와 그의 친구 하나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슬픔을 안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수풀에서 나와 그날 나머지 시간 내내 그들과 함께 걸으며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그들이 그분께 청했습니다… 그분은 그냥 지나가실 것처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오시라고 청했습니다. 그분은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오신 뒤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하셨던 방식대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분이 바로 그렇게 하시는 것을 그들이 보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온종일 그분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선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분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성경에 있는 어떤 일들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입니다. 이 일들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기록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보려면 우리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말씀을 볼 수는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그 말씀을 가지고 메시아가 어떻게 오실지를 정확하게 그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태어나 그들 가운데 거니셨습니다. 그분이 “너희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그분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모세의 제자라면 나를 알았을 것이다. 모세가 나에 대하여 기록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모세는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율법을 주는 자 (그런 자), 곧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니 백성은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모세의 글을 알았더라면 그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글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사실에 눈멀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그런 말씀을 몇 마디 하시자 어떻게 했습니까?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마귀 들렸어. 우리를 가르치러 왔군. 어느 학교 출신이지?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 우리에게는 없어. 어느 교단 회원증을 갖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그들이 품은 의문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약속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해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을 입증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의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그 안에서 걸어가야 할 빛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빛을 낳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빛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햇빛을 낳고, 하나님의 말씀이 땅을 낳고, 하나님의 말씀이 공기를 낳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셨을 때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보았던 몇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는 한때 젊은 선지자였습니다… 지난번 여기 피닉스에 왔을 때 저는 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실업인들에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웃시야 왕의 어깨에 얼마나 크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교만해져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성전에 내려가 기도하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룹들이 나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날개로 거룩한 얼굴과 발을 가리고, 날개로 날며 “거룩하시다, 주 하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사야가 예수 그리스도를 얼핏 보았을 때 본 것은 이러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자를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개신교 교회들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그들 가운데 68퍼센트인가 86퍼센트가 믿는 것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부인했습니다. 우리 개신교 설교자들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통계 자료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놓고 처녀 탄생을 부인합니다. 실제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본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분은 선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단들 중 일부처럼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분은 선한 사람이지요. 물론입니다. 그분께 흠잡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은 오늘날 입증될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밖에 세워진 믿음이나 신앙은 무엇이든 버려두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은 없어질 것이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모든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은 신조나 그 어떤 것이든…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말씀, 저기서 한 말씀,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다가 짜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받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이미 한데 모여 있습니다. 그저 읽고 믿으십시오. 그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믿음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사야가 바라보았을 때를 보십시오… “이사야여,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는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리는 분을 보았습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다니엘을 불러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위대한 선지자여, 한번은 그분을 볼 기회가 있었지요.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산에서 떨어져 나온 돌을 보았습니다. 그 돌이 세상의 왕국들로 굴러들어가 그것들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그 왕국들은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돌은 자라서 온 땅을 덮는 큰 산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그분에 대해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언젠가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계의 통치자를 세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각 나라는 자기 언어와 자기 생각을 내세우려 합니다. 각 교단은 자기 단체가 다른 단체 위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실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주의 통치자이십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어느 날 느부갓네살은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믿는 세 젊은이를 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졌습니다. 그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려고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용광로 안에 있는 네 번째 사람을 보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바라보았을 때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분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의 현장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가 본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어느 날 에스겔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나도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바퀴 한가운데 있는 바퀴로, 공중에서 돌고 계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에스겔에게는 그분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모든 선지자 가운데 가장 큰 자인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지금까지 태어난 어떤 사람보다도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른 선지자들은 모두 그분에 대해 말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모든 선지자들에게는 말씀이 환상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요한에게 왔을 때에는 육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셨고, 말씀이시며, 언제나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물속에 있는 요한에게 오셨을 때, 요한은 선지자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면 반드시 선지자에게 와야 합니다. 말씀이 어디에 있든 선지자에게 와야 합니다. 선지자는 말씀이 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말씀이 그에게 왔을 때… 물속으로 걸어 들어오셔서 “침례를 받고자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금은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이렇게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요한이 왜 예수님께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입니까? 그것이 그들에게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선지자와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선지자에게 왔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그들에게 합당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때 요한은 예수님께 침례를 주었습니다. 요한은 선지자로서 말씀을 알았고, 희생물은 바치기 전에 씻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주었습니다. 요한은 바라보고서… 어떻게 이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았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영께서 미리 알려 주신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영이 내려와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보거든, 그가 곧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는 자니라.”
노아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 바라보았던 또 한 사람, (로아) 노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말씀을 부인하는 악한 세대 위에 쏟아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의 환상 가운데서… 노아는 선지자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주를 짓는 법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고, 어떻게 건조해야 하는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가운데서… 노아가 이 진노를 보고 피할 길을 준비할 때, 그 환상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심판이 오기 전에는 언제나 준비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가 건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도 함께 그 환상이 참됨을 증언했고, 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앞을 내다보았고,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백성에게 심판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는 바라보았을 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피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침례자 요한도 그렇게 했습니다. 피할 길을 준비했습니다. 오늘날 성령도 그렇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앞서 가시며 하나의 구조물을 지으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침례를 받아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신조나 교단이나 악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미 심판을 받았으므로 심판들을 견뎌 낼 구조물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그렇습니다. 노아는 바라보았고 무엇이 다가오는지 보았습니다.
어느 날 모세가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이 위대한 신학자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는 신학 교육을 다 받고, (어머니를 통해) 말씀 자체를 이해하여 자기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도망쳐 왔습니다. 자기 방식으로 시도했을 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게 될지,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그를 일으키셨는지 철저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식이 (아무리 좋더라도, 사실 좋은 것입니다)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기계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은 기계 장치가 아니라 동력입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기계 장치가 아니라, 이 말씀 속으로 들어오는 동력, 곧 성령입니다. 온갖 신학과 그리스어 해석을 가르치는 신학교가 아닙니다. 그 안에 계신 성령의 동력이 말씀에 불을 붙이고, 말씀을 성취하며, 이 시대에 약속된 말씀 그대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기계 장치가 아니라 동력입니다. 기계 장치와 동력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영입니다. 그것들이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약속하신 것이 성취되기를 기대하십시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라보는 유일한 길은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이 시대에 약속된 말씀은 이 시대에 성취되어야 합니다. 노아 시대의 일은 이 시대에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형에 불과했습니다. 모세 시대 등의 일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 세상이 비웃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대입니다. 곧 죄인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성령의 이 위대하고 놀라운 권능입니다. 미지근한 교인을 붙들어 그가 나온 교회에 불을 붙일 만한 간증을 줄 수 있는 권능입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온 동력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한 부류는 근본주의자입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압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믿음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오순절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성령을 받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마치 은행에 돈이 있는데 수표를 쓸 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수표를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습니다. 이 둘을 하나로 합칠 수 있다면, 오순절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그 성령 침례를 가지고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새로운 오순절 부흥으로 다시 세상에 불이 붙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실입니다. “땅의 모든 끝들아,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오, 우리는 공산주의를 분별할 수 있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할당하신 말씀의 부분을 분별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땅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표적을 우리가 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모세에게 돌아가 봅시다. 그는 모두… 그것에 대한 기계 장치를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한 분이 사람의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니, 떨기나무 속에서 타오르는 불기둥이 사람의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내가 내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었노라. 내 말을 기억하며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라. 내가 너를 보내어 그 일을 하게 하노라.” 그는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그것을 얻자마자… 그는 기계 장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 동력을 얻은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가 나서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는 바라보았고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 후의 여정에서, 이스라엘이 나올 때 있었던 일을 봅니다. 그들도 바라보았고 놋뱀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병 때문에 세워진 이 놋뱀 속에서… 그들은 죄를 지었고, 놋뱀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놋뱀 속에서 하나의 모형을 보았습니다. 우리처럼 자격 없는 모든 죄인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도록 하나님께서 그분께 내리실 심판의 모형이었습니다. 유죄였습니다. 그것이 그가 본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바다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자신들의 도움을 보았습니다. 그분을 통해 도움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마르다는 가족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친형제, 하나뿐인 형제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과 생명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그분 안에서 본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녀를 외면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의 형제가 죽었을 때 그분은 떠나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어 묻힌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그분께 다른 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임마누엘, 곧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하나님의 대리자이심을 알았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아기를 살릴 수 있었다면, 그것도 엘리사는 그 시대의 말씀 중 한 부분에 불과했고 그리스도는 말씀의 충만하심이셨으므로, 분명 그분께 자기 형제를 일으키실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과 사별의 시간에 그분께 나아가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부활과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을 비판하려고 바라보거나 왜 오시지 않았느냐고 묻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결코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하와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말씀을 지키실지 의문을 품었을 때, 바로 그것 때문에 온 인류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 밤 말씀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모든 말씀을 믿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진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부활과 생명을 발견한 것을 봅니다. 작은 제사장 야이로도 그랬습니다. 남몰래 믿던 그는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바라보았을 때 부활과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굶주린 사람들이 그분을 바라보고 생명을 지탱하는 빵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굶주린 사람들이 생명의 빵을 얻을 수 있다는 모형입니다. 신조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창립자를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개혁자를 발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생명을, 생명의 빵을 발견합니다. 죽어 가던 강도는 고통의 시간에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얻었습니까? 용서를 얻었습니다. 달리 누구를 바라볼 수 있었겠습니까? 로마 정부는 그를 사면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그를 용서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통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자신을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 여러분도 당시 그 사람처럼 정죄의 갈림길에 매달려 있고, 미지근한 교인이든 미지근한 오순절 신자이든 무엇이든 간에, 오늘 밤 죽으면 어디로 갈지 알고 있다면, 오늘 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을 바라보십시오. 한 분… 오늘 밤 여러분이 그저 교회에 적만 두고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간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오직 그분뿐이십니다. 십자가에 매달렸던 이 불쌍한 (병든) 죄로 병든 강도처럼 여러분도 용서를 얻을 것입니다.
병자들이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치유자를 발견했습니다. 오늘 밤 병든 사람들도 여전히 그분을 바라보고 치유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놋뱀이 나타내던 것을 그분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모형이었다면 이분은 실체였습니다. 눈먼 사람들이 바라보았고,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한번은 시인이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보려고 했습니다. 눈먼 패니 크로스비도 한번은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멀었지만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보려고 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주님은 내 모든 위로의 샘, 내게 생명보다 귀하신 분, 이 땅에서 주님 외에 누가 있으며, 천국에서도 주님 외에 누가 있나이까? 한번은 에디 프루엣[페로넷]이 자기 노래들을 팔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고, 그에게 영감이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펜을 붙드셨습니다. 그는 바라보았고 권능 가운데 계신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어 이 노래를 썼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능을 모두 찬양하라. 천사들도 엎드릴지어다. 왕의 면류관을 가져와 만유의 주님께 씌워 드리라. 그가 그분 안에서 본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오, 얼마나 놀랍습니까!
베드로는 그 지방의 어부였습니다… 그의 형제 (안드레)가 침례자 요한의 부흥 집회에 다니고 있을 때, 그들은 메시아가 어떤 분이실지 서로 이야기하며 의논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메시아가 오시기 직전에 광신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알아볼 것이다. 그분은 선지자이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분이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 선지자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마침내 어느 날 안드레는 할 수 있는 온갖 설득을 다 해서 베드로가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오게 했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아침 그곳 물가에서 집회를 여실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내려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걸어갔을 때, 베드로는 그분을 바라보고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라.” 그것으로 영원히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한번은 구약을 참으로 믿고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던 나다나엘이… (그의 친구) 빌립의 인도로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단 위인지 상자 위인지 나무 그루터기 위인지, 무엇이었든 그 위에 서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기도받는 줄인지 어디인지 그곳으로 걸어와 그분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 그에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는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언제 저를 보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있을 때, 네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무엇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까? 뭐라고 말했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가 본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400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는데, 그 시대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분께서 자기 마음속 생각과 자기가 행한 일까지 아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이분이 분명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약속되어 있었고, 누구나 그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똑같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들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롯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실 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라볼 때 무엇을 봅니까?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봅니까? 아니면 어떤 텔레파시라고 봅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옛날 사람들처럼 생각합니까?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사람은 마귀 들렸어.” 같은 사람들이, 인간들이 같은 분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입증된 약속의 말씀을 보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봅니까? 성령의 권능이 한 건물 안으로 밀려들어 와, 그분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행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성취하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바라볼 때 무엇이 보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입증되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다나엘은 평생 보기를 기다려 온 약속된 말씀, 곧 기름부음 받은 약속이 육신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 선지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 모세가 그 말씀을 약속했습니다. 어느 날 우물가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을 거부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분을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이 점치는 힘으로 이런 일을 한다고, 악한 영이 들렸다고, 미쳤다고, 갈 곳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문제는 그저 제멋대로 떠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께서는 사마리아와 수가라는 도시를 지나셨습니다. 어느 날 그곳으로 가셔서 그 위에… 거기 작은 ‘파노라믹’ 위에 앉으셨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한 여인이 나왔습니다. 그녀가 말했고… 그분은… 그녀는 “여인이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분께 물었습니다. “당신들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니, 당신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이여, 네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기억하십시오. 그 안에는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미리 예정된 작은 빛, 생명의 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해 온 온갖 신학 같은 것들에는 진저리가 나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네게 남편이 다섯 있었느니라.” 즉시 그 작은 씨에 생명이 움텄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한 사람 안에서 메시아의 표적을 보았습니다! 약속된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을 받은 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이런 것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런 일을 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녀가 무엇을 봤…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 시대를 위해 약속된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시대에는 성령, 그분의 부활의 권능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는 말씀에 해당하는 교회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볼 때 무엇을 바라봅니까?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면 훌륭한 오르간이나 잘 차려입은 목사, 성가대복을 입은 성가대, 화장한 여자들의 무리를 찾습니까? 무엇을 찾습니까? 여러분이 속한 교회 안에서 이런저런 사교 모임을 찾습니까? 무엇을 찾습니까?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은 대체로 바로 그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러니 꾸밈없는 복음을 듣고, 옛 방식의 신앙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성령께서 오셔서 그 복음을 나타내시는 것을 볼 때, 여러분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며칠 전 밤에 요셉에 대해 말씀드렸듯이, 그는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거룩한 젊은 여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녀는 가브리엘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례적이었습니다.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곳에 거하십니다. 육적인 생각으로 볼 때 이례적인 것 속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모든 말씀은 성취될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는 것은 그런 이례적인 일들입니다. 그분은 이례적인 일로 나아가십니다.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이례적으로 만드십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을 바라보고 메시아의 표적, 곧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많은… 똑같이 바라보고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불신자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배라고 부르는 무언가를 어설프게 만들고 있는 광신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두드려 만들던 바로 그 배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에 따라 건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건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그가 의로우며 앞을 내다보고 있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전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에는 누구도 설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신학자나 수학자 같은 사람들은 갖가지 설명으로 여러분에게서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광야 저편의 거룩한 장소에서 모세처럼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다면, 아무도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는 압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 일에 대해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도시에 올라가 위로부터 오는 권능을 받기 전에는 전파하지 말라. 그 뒤에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 그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 자기들에게 심판을 불러들였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잭 무어와 같이 말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적절한 때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잭 무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가라앉히고 불태우지 않으신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일으켜 그들을 불태운 것을 사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의로운 보응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그분의 말씀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그분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모임을 얼마나 많이 갖든, 종교 모임을 얼마나 많이 갖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보십시오. 그때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때보다 종교적인 시대는 없었습니다. 오, 모든 것이 종교와 전통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키가 작은 대머리 설교자 아모스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그가 언덕을 넘어와 사마리아를 내려다볼 때 두 작은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사마리아는 피닉스처럼 큰 관광 도시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이 큰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러 왔습니다. 그들은 “오, 온갖 것이 다 있어. 나이트클럽도 있고, 정말 즐거운 곳이야. 살 만한 곳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 사로잡힌 이 작은 시골 청년이 그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에게는 먼저 가서 집회를 준비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워 놓은 광고판도 없었고, 함께 협력할 교단도 없었고, 뒤에서 지원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덕을 넘어와 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도시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도시의 즐거움 같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고 그 도시를 향해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11년 후, 모든 일이 그가 말한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는 길과 사람들이 가는 길을 보면서 장래의 복을 예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심판을 예고합니다. 오직 그것뿐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무시한 데 대해 심판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 앞에서 말씀을 입증하시고 그것이 옳음을 밝히시는 데 공의로우십니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결코 계획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의 길도 같고, 말씀도 같으며, 모든 것이…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누군가 회개하려고 하면 그분은 긍휼로 가득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따를 것입니다.
파라오는 이른바 광신적인 선지자가 구원에 대해 여러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오직 그런 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자는 바라보았고 보았습니다.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교단 조직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커서 끝까지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가 다음에 바라본 곳은 어디였습니까? 지옥에서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심판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그다음에 바라보았을 때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로마 군인은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보려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미국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바라보며 “참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늦을 것입니다. 그들이 비웃고 조롱할 마지막 기회도 지나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생명의 통치자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너무나 자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에서 밀어냅니다. 그분께서 바로 우리 가운데서 자신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입증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날 빌라도가 바라보았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정치가 너무 중요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바라보았을 때는 의롭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따라갔습니다. 그다음에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웨슬리가 나와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때 성화, 곧 교회가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나아갔습니다… 오순절이 와서 은사들의 회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했습니까? 가톨릭이 했던 것과 똑같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오 하나님! 어느 날 저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저는 알파와 오메가를 보았습니다. 시작과 끝을 보았습니다. 어제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제 죄를 용서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제 자리를 대신하신 분을 보았습니다. 오! 여러분은 바라볼 때 무엇을 봅니까?
지금 저는 여기 앉아 있는 오랜 친구 빌 다우를 보고 있습니다. 이분은 92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아니, 얼마 전, 약 여섯 달 전에 그에게는 완전한 심부전과 심장마비가 함께 왔습니다. 의사는 “이분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제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와 주세요. 남편이 죽어 가고 있어요. 빌은 형제님의 친구잖아요.” 저는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으로 가는 길에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기가 싫습니다. 제가 도착할 때까지만 살아 있다면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텐데요…” 산소 공급을 받으며, 완전한 심부전 상태였습니다. 나이는 91세였습니다. 저는 주유소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라보았을 때, 빌이 길을 따라 내려와 저와 악수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그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의사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빌 다우 본인은 여기 앉아 있습니다. 오하이오주 라이마에서 진눈깨비와 눈을 뚫고 차를 몰고 내려왔습니다. 제가 가는 모든 집회에 따라옵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어젯밤 제가 말씀드렸던, 저 콜로라도에서 폭풍이 몰아치던 때의 바로 그 하나님입니다. 저는 바라보았고,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여기 웨이 씨가 앉아 있습니다. 영국 분입니다. 이쪽에… 바로 여기 앉아 계십니다. 방금 여기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인디애나에서 오셨습니다. 영국 분입니다. 아내는 정식 간호사입니다. 좋은 분입니다. 어느 날 저는 그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 말을 마음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자 바로 회중 가운데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분이 저기 계십니다. 그의 아내가 남편을 붙잡고 몸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의 눈은… 얼굴이 검게 변했고, 눈이 (꾸민 것이 아닙니다), 눈이 튀어나와 뒤로, 머리 뒤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가만히 계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 저분이 죽어서 누워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손을 얹었을 때 몸이 저 책상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웨이 부인은 목청껏 울부짖었습니다. “오, 브래넘 형제님, 남편이 죽었어요. 죽었어요.”
저는 저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부활과 생명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하라고 하신 기도를 드렸더니 웨이 형제님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밤 그분이 바로 여기 앉아 계십니다. 죽었다가 살아나 오늘 밤 바로 여기 앉아 계십니다. 그렇지요, 웨이 씨?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잠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빌 다우도 여기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사로를 일으키신 바로 그분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여기 제 앞에는 블레어라는 작은 설교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분의 어린 아들이 얼마 전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분과 아내가 거기 앉아 지금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 어린 아들이 탄 차가 언덕 아래로 굴렀습니다. 아이가 짓눌리고 뇌진탕까지 입고 온통 다쳤습니다. 거의 죽어 가고 있어요. 겨우 숨만 붙어 있습니다.” 그는 “기도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기도했습니다. “주 하나님,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한 어린아이가 뛰어가며 줄넘기를 하고, 이렇게 달려 내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는 나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밤 그 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그분들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보십시오! 그분을 볼 때 무엇이 보입니까? 저는 동일한 치유자를 봅니다. 아멘! 갈릴리를 거니셨던 바로 그분을 봅니다. 권능 가운데 계신 그분을 봅니다. 마음의 생각과 비밀을 분별하시는 그분을 봅니다. 마지막 때가 오기 직전에 표적을 보이시는 그분을 저는 보여 드립니다. 이 회중을 두루 살펴보고 전국을 두루 다니며 오늘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노예 제도가 있던 시절, 어느 흑인 노인이 한 말과 같은 생각입니다. 어느 날 그가 와서 말했습니다. “있잖아, 나는 이제 자유로워졌어.” 다른 노예들 사이에서 그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노예들이 말했습니다… 그 말이 주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샘, 이리 들어오게. 자네가 밖에서 노예들한테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 건가?” 그는 “주인님, 저는 자유로워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어떻게 자유로워졌다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자유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샘, 진심인가?” 그는 “예”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내가 내려가서 자네의 해방 문서에 서명하겠네. 자네가 형제들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도록 놓아주겠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인은 오랫동안 설교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분께서 그의 문 앞에 오셨습니다. 그는 이 삶을 떠나야 했습니다. 며칠 동안 혼수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많은 백인 형제들이 찾아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노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는 의식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모스, 아니) 샘, 아직 떠나지 않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니, 돌아와야 했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거기에 간 줄 알았지. 꿈을 꾼 모양이야. 내가 거기에 있는 줄 알았네. 거기 서 있는데, 천사가… 막 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천사가 다가와서 ‘샘, 와서 네 면류관을 받고, 와서 네 옷을 받으라’고 하더군.” 그가 말했습니다. “면류관이나 옷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저 여기 서서 그분을 백만 년 동안 바라보게만 해 주십시오.” 그는 그분 안에서 자신을 죄와 사망에서 자유롭게 해 주신 분을 보았습니다. 온갖 형편 속에서도 한결같이 자기 곁을 지켜 주신 분을 그곳에서 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며칠 전 아침 저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게는 (여러분은 저의 삶 이야기를 아십니다)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프리츠라고 불렀습니다. 그 개가 저를 학교에 보내 주었습니다. 제가 데리고 다니며 잡았던 주머니쥐 가죽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매일 아침 작은 통나무집의 높은 다락방에서 일어나면 저 아래 골짜기에서 그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개는 저를 속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 개에게 갔습니다. 저를 위해 무언가를 찾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언젠가 어느 아침 저는 저쪽 협곡에서 그 개가 짖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가서 무엇을 찾아 놓았는지 봐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보아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분 안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려고 오늘 밤 여기 계신다고 믿습니다. 기도하며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기도하십시오. 오늘 밤 여기 이런 말씀을 하실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그분을 다르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면서도 추측만 했습니다. 바라보면서도 궁금해했습니다. 바라보면서도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분이 정말 저를 돌보셨을까요? 저를 사랑하십니까? 그분에 대해 들은 이 모든 일이 사실입니까? 저는 그것이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제게 그것을 계시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곳곳에서 손을 드시는군요. 좋습니다.
귀하신 주님, 주님에 대해 기록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압니다. 주님, 오늘 밤 우리가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하신 일들을 우리도 하리라고 말씀에서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성령의 모습으로 여기 땅에 다시 오시며, 교회가 권능 곧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세상이 바라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그들은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보리니,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마지막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 사람들이 바라볼 기회가 아직 있을 때, 오늘 밤 바라보고 그분을 부활의 권능 가운데서 보게 하옵소서. 그분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셔서, 그분을 고백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이 모든 간구가 응답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들을 허락하옵소서. 아멘.
이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고 믿으십시오. 빌리가 기도 카드를 더 나눠 주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B입니까? B군요. 좋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시간을 조금 넘겼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제 몇 분밖에 없습니다. B입니다. 어젯밤 몇 번까지 했습니까? 어디까지 했지요? 어젯밤 어디까지 했습니까? 전부 했군요. 그러면 B 1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1번? 가지고 계신 분은 [녹음 공백] B 4번, 5번입니다.
누가 좀 살펴보십시오. 빌리, 이리 내려오너라. 몇 분이 빨리 도와주십시오.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때로는 귀가 들리지 않아 못 듣거나 일어날 수 없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계시면… 1번, 2번, 3번, 4번, 5번. 좋습니다. 이리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1번, 2번, 3번, 4번, 저기는… 실례합니다, 선생님. 6번, 7번, 8번, 9번, 10번. 이제 서 계시게 하십시오. 6번, 7번, 8번, 누가 계십니까? 8번, 9번, 10번. 8번, 9번, 좋습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좋습니다. B 카드 10번부터 15번까지 일어서십시오. 나눠 준 카드는 모두 그것입니다. 15번. 좋습니다. 15번부터 20번까지 일어서십시오. 기도 카드 1번부터 20번까지 이쪽으로 와서 서십시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11번, 12번, 13번, 14번, 15번, 16번, 17번, 18번, 19번, 20번. 20번부터 25번까지입니다.
기도 카드는 없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들이 나와 자리를 잡는 동안, 처음 부른 이 25명이 나오는 동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그것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께서 우리 가운데서 자신을 알리시는 것을 보면서도, 이 시대에 우리가 둔감하게 앉아 있다가 말없이 몰려가는 가축처럼 앉아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어떤 싸움에도 맞설 마음으로 일어나 행동합시다. 말없이 몰려가는 가축처럼 되지 말고 영웅이 되십시오. 여러분, 이쪽을 보며 믿으십시오. 성경에서 그분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보십시오. 좋습니다. 시간을 더 끌지 않겠습니다. 곧바로 기도받는 줄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이제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도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 오늘 밤 제가 언급한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옵소서.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제자들에게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 때에 여러 방식으로 선지자들에게, 아니,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선지자들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영께서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 세대를 위한 말씀을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왕들을 저주하고, 심판을 가져오고, 의로운 자들을 이끌어 내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했습니다. 말씀이 임했던 그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주님, 이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약속하시며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날이 뜨거울 때 아브라함이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작은 교회가… 아버지, 오늘날 세상을 두루 살펴봅니다. 바로 소돔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방의 세상, 왜곡되고 미지근한 세상입니다. 또 우리는 이 세 천사가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그들 중 둘은 미지근한 교회인 롯에게 내려가 그들을 불러내려고 했습니다. 둘이 거기로 내려갔습니다. 오늘날의 빌리 그래함과 같이, 그들을 불러내려고 갔습니다. 기적은 행하지 않았고, 그저 그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면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한 분은 이 위에 있는 아브라함의 무리에게 남으셨습니다. 그 무리는 택함을 받고 불러냄을 받아 소돔에 있지 않은 자들을 나타냅니다. 소돔 밖에서 태어난 참 교회, 오늘날의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들과 말씀하시던 이분이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주님 뒤에 있는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때에 맞추어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라가 웃었습니다. 그분은 “왜 그녀가 웃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있는 장막을 등지고 계셨으면서도, 그녀가 속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분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께서는 말씀에서 “그날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아버지, 참으로 놀라운 것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이름의 끝이 h-a-m인 개혁자가 소돔으로 내려간 적이 없는데, 오늘날에는 주님의 종 빌리 그래함이 소돔에 내려가 자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오늘 밤 여기 있는 이 아브라함의 씨를 구원하시고, 약속된 귀한 아들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이 하나님께서 이 표적을 행하신 직후에 약속된 아들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2천 년 동안 그분, 아브라함의 씨를 기다려 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잠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일곱째 경점입니다. 우리는 “보라, 신랑이 오는도다” 하는 외침이 언제라도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사람들의 깨달음이 열리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표적이 아들의 오심 직전에 약속되었음을 보게 하옵소서. 놋뱀이 그리스도를 예표했듯이, 육적인 아들의 오심과 그 오심의 표적은 오늘날 오시는 예수님, 곧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의 영적인 오심을 예표했습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사에 대해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주셔서 여러분이 나가 “자, 내가 여기로 가서 이것을 고르고, 저것을 취하고, 이것을 하겠다”라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란 그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켜 놓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은사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 안에 머무르는 한…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들은 할 수…”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분은 몸을 못 쓰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던 그 연못을 지나가시며 전립선에 문제가 있었거나, 무슨 질병이 있었거나, 몸이 불편한 한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분은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니라.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저기 앉아 계신 여러분, 감히 어떤 사람을 바라보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마지막 날들에 소돔에서 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육신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육신과 저의 육신 안에서 말입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우리 자신의 생각을 치워 놓읍시다. 오늘 밤 말씀이 우리 안에서 그대로 역사하시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분의 영이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사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아무도 나가지 말고, 아주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이 점을 존중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기 이것을 속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강단으로 올라오라고 도전합니다. 누구든지 좋습니다. 올라오기가 두렵다면 이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여기 있는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오늘 밤 여기 요한복음 4장과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습니다. 아마 처음 만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자매님은 신문이나 들은 말을 통해 저를 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자매님도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한때 우리 주님께서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던 것과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온다면… 우리 형제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게 신유의 은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신유의 은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치유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시겠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도록 자기 믿음이 발휘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유의 은사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모든 사역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을 치유하는 권능은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입니다. 그 권능이 밖으로 나타나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과 같습니다. 나무가 사과를 맺게 하려고 그 안에 사과를 쏟아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땅에 심겨 있으면 물을 마시고 열매를 내놓습니다. 성령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성령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르지 않는 샘에서 마시기만 하면, 영의 열매가 밖으로 맺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지금 저는 자매님을 알지 못한 채 여기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자매님은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이제 제가 가서 자매님께 손을 얹고 “자매님, 나으실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님은 그것을 믿으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오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아시겠죠? 그것은 지난날, 오순절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시대를 지나 더 앞으로 나아와 있습니다. 감리교와 루터교를 지나온 것처럼 오순절도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훨씬 더 나아가 주님의 오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신 사역과 정확히 같아야 하는 때입니다. 피라미드의 머릿돌은 모든 돌과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처럼 교회도 그 머릿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몸이 일어나는 부활 때에 전체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이 일들이 진리임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군요. 주 예수님께서 자매님이 행한 일이나, 해서는 안 됐던 일이나, 몸에 있는 문제나, 무엇이든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재정 문제인지 가정 문제인지 저는 모릅니다만, 무엇이든 그것을 알려 주신다면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자매님의 영을 알아보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시겠죠? 그분도 우물가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자매님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신자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에게 편승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입니다. 좋습니다. 자매님의 문제, 가장 큰 문제는 목에 있습니다. 목 뒤에 종양이 있는데 그것이 압박을 주고 있습니다. 시력 같은 것들을 손상시키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믿으시면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제가 충분히 자신을 이완하여 성령께서 제 입술과 눈을 쓰실 수 있게 된다면, 마치… 꿈을 꾸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있겠지요. 여러분의 어떤 부분이… 여러분의 오감이 활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의식은 여기 있고 잠재의식은 저기 있습니다. 꿈을 꾸려고 저쪽으로 가려면 오감이 활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면 그 일이 이쪽 의식에 인상을 남겨서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합니다. 그런데 선견자, 선지자들의 잠재의식은 저기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감을 벗어나지 않은 채 서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을…” 하고 말한다면, 제가 “나를 위해 꿈 하나를 꾸어 보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을 위해 환상을 마음대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보려고 잠들지 않습니다. 여기 서서 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첫 번째 의식을 비켜 놓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실 때 다른 의식을 쓰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여기 서 계신다고 해도, 선생님이 아프다면 그분은 선생님을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으셨을 때 이미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계신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그저 한 남자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하고, 처음 만나 이 강단에 서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소원이나 행하신 일이나 가로막고 있는 문제를 제게 계시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지나간 일을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앞으로 될 일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힘껏 설교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긴장이… 정말로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보여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빛이 그분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여기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는데, 그 사람은 따님입니다. 따님은 캘리포니아에 살며, 얼마 전에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따님이 아직도 그 사고로 고통받고 있어서, 따님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여기 서 계십니다. 잘 들으십시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자동차 사고는 캘리포니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사고가 난 곳은 텍사스주 댈러스입니다. 맞습니까? 따님은 나을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따님이 걸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이제 가서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저는 부인에게 낯선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을 믿으십니까? 성령께서 부인에 대해 어떤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시고, 제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부인도 아신다면, 그것 때문에 믿게 되시겠지요? 부인에게는… 여러 질환이 겹쳐 있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된 문제는 종양 때문에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고, 그 종양은 옆구리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기도받으러 오셨습니다. 제가 부인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면,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옳다고 믿으시겠습니까? 홀먼 부인, 기뻐하며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부인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부인?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부인은 저보다 젊으십니다. 그저 한 여자와 한 남자입니다. 잠시만, 모두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주님의 영께서 여기서 떠나셨습니다. 여기 안경을 쓰고 앉아 계신 남자분, 생각 속에 영적인 문제가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시는군요. 몹시 혼란스러우십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잘 풀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경건하게 계십시오. 바로 여기 한 작은 부인이 앉아 계십니다. 이렇게 보고 계시고, 손을… 기도하고 계십니다. 손이 좋지 않아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으시면, 예, 하나님께서 그 손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부인을 모르고 부인도 저를 모릅니다. 그러나 부인은 무언가에 손을 대셨습니다. 저를 만지신 것은 아닙니다. 부인은 저에게서 20피트나 떨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치유하십니다. 부인의 믿음이 부인을 온전하게 합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시는 대제사장, 동일하신 예수님이 아니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렇다고 믿지 않습니까?
실례합니다. 저는 그저 영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힘이 빠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단 한 번만…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도… 한번은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례합니다. 여기 앉아 기도하시는 이 흑인 부인, 담낭에 문제가 있고 고혈압이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부인. 병이 떠날 것입니다. 제가 바라보니 여기 흑인 부인이 서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의 믿음이 그것을 곧 끌어당겼습니다. 바로 뒤에 있는 천식 앓는 부인, 하나님께서 그 천식을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시면, 부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믿기만 하시면 됩니다.
마음속에 큰 소원이 있으시군요. 그것은 정당한 소원입니다. 아기를 원하십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부인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주 예수님께서 부인이 누구인지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램버트 부인, 이제 가서 믿으십시오. 이것으로 믿게 되십니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이 그것을 받게 하옵소서. 믿음을 가지십시오. 선생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주 예수님께서 선생님의 문제를 제게 계시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선생님은 여기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애리조나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멀리 동쪽, 미시간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있고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그것이 선생님을 떠났습니다. 미시간으로 돌아가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저기 앉아 계신 부인이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파킨슨병이 있습니다. 지금 그분이 보이는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뿐 아니라 영원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구원하고 치유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질 만큼 믿음이 있다면 분명 그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옆에 계신 여자분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분은 자기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는 병들었고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그는 술을 끊고 나을 것입니다. “네가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바로 제 앞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부인, 그분이 “주님, 제 차례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부인은…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여기 병원에 있으며 암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또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놓치게 생겼습니다… 켈리 부인, 일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저는 평생 저 여자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고치신다고 믿으십니까? 선생님의 심장병도 고치신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가십시오. 그 관절염 때문에 몸이 너무 뻣뻣해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믿기만 하고 가시면 내일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갈보리에서 오는 수혈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당뇨병도, 무엇이든 고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선생님의 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신경이 과민하시군요. 그것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위궤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한 가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잠깐 시계를 벗겠습니다. 신경과민은 조금 다루기 어렵습니다만, 부인은 좋은 분입니다.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부인의 손을 잡겠습니다. 제 손을 보십시오. 자, 보십시오. 부인의 손을 제 손 위에 얹겠습니다. 거기를 가로질러 움직이는 것들과 떨리는 듯한 것이 보입니까? 그것이 살아 있는 그 궤양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손을 떼십시오. 이제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에 제 손을 얹으면 그런 현상이 없지요? 그러나 부인의 손을 얹으면 다시 나타납니다. 보십시오. 지금 거기에 무언가가 징후로 나타나고 있어서 부인 자신의 눈으로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것이 사실임을 회중도 알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기, 회중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손을 떼십시오, 부인. 다시 손을 얹으십시오. 살아 있는 궤양입니다. 조직입니다. 무언가 조직을 먹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경과민이 퍼지면서 생긴 것입니다. 부인병도 있으십니다. 좋습니다. 자, 여기 보십시오. 바로 이런 때 제가 앞장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 부인이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회중은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궤양에 걸리고 싶지 않으시면 머리를 숙이고 계십시오. 자, 여기 보십시오. 부인에게 궤양이 있습니다. 이제 제 손을 보시고 제가 손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이 여인에게 임하여 낫게 하옵소서. 이분은 제 손을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보려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이 신경과민으로 믿음도 흔들리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이분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와주옵소서.
이제 이 부인은… 저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만, 제 손이 여전히 그대로 있다는 것을 부인은 아십니다. 그렇지요, 부인? 이제 아주 자세히 보십시오. 이것은 구경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선포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손을 그대로 가만히 두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제가 손을 어떤 모양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계속 거기 있습니다. 어떻게 부어오르는지 보입니까?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 전체가 팔꿈치까지 저립니다. 이제 잠깐만 지켜보십시오.
주 예수님, 구경거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만,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이려는 목적으로만 사람들을 고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성취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렇게) 오늘 밤 이 일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선한 여인이 이 마귀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사탄아, 네게 명한다. 모든 질병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질병은 그분의 발아래 있으며, 그분의 종으로서 내가 앞장서 행동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인에게서 떠나라. 이 여인에게서 나와라. 저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 부인이 제 증인입니다. 제 손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예, 아멘!] 사라졌지요? [예, 아멘! 사라졌어요.] 부인은 치유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자, 바로 여기 이분이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제 여기 보십시오. 제가 제 손을 얹습니다. 이제 부인의 손을 얹으십시오. 똑같습니다. 부인은 치유되었습니다. [예, 아멘! 할렐루야!] 가십시오.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 그렇습니다.
믿으십니까, 자매님?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천식을 없애고 자매님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가십시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심장이 좋지 않으셨군요. 무언가 막혀 신경과민을 일으킵니다. 두근거리고, 두 번씩 뜁니다. (한쪽에 한 번) 한쪽에 두 번, 다른 쪽에 한 번입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이제 그 증상이 멎습니다. 가십시오. 선생님의 믿음이 선생님을 온전하게 합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좋습니다. 또 위장이 좋지 않은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낫게 하신다고 믿으십니까? 그저 가셔서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분께서 선생님이 어떤 상태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분명 치유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만 얹어도, 저기 의자에 앉아 계셨을 때 치유받았다고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가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십시오. 조금 전 저기 앉아 계실 때 하나님께서 그 허리병을 고치셨다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가셔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가서 믿으십시오. 선생님, 하나님께서 치유하지 않으시면 언젠가 그 관절염 때문에 몸이 이렇게 굽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바로 그분을 받아들이시지 않겠습니까? 믿으십니까? 가셔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것을 발로 짓밟고, 기뻐하며 곧장 가십시오.
예수님께서 허리를 치유하여 낫게 하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가십시오. 이리 오십시오, 부인.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두려우신 이유는 갱년기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여성의 변화기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저녁 늦게 되면 기운이 없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부인의 믿음이 부인을 낫게 합니다. 또 신경과민이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평생 신경이 조금 예민하셨습니다. 젊었을 때도 조금 안절부절못하며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에 붙잡히신 것 같습니다. 늘 짓눌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으신다면 더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저기 계신 분들 중에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기 있는 모든 남녀에게 명합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일부가 옳다면 전부가 옳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신자는 그 말씀에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아멘!] 그러면 여러분은 신자입니다. 여러분의… 여러분에게 손을 얹고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하여 원수를 물리칩시다. 여기 있는 모든 병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치유받게 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생명의 창시자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여, 이 백성에게 주님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사탄아, 너는 싸움에서 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신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멘”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믿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들은 주님의 마음에 있는 소원에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사탄아, 너는 패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서 나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을 떠나고 이 건물을 떠나라! 믿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손을 얹었고 믿음의 기도가 드려졌음을 믿으며, 자신의 병과 그 병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모든 남녀는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아멘, 아멘! 이제 손을 들고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