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친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뒤에서도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이토록 귀한 간증들을 들은 뒤에 이 단에 올라오게 된 저는 참으로 특권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앞서 하신 말씀에 조금이나마 보태어, 우리가 오늘 아침 누린 것처럼 함께 복을 받고자 합니다. 그런데 보니 몇몇 분들이 아주... [마이크에서 큰 잡음이 난다.] 이제 좀 낫습니까?
여기 계신 몇몇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거의 모든 분이... 아니, 여기 올라오신 모든 분이 참으로 밝고 빛나는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한 그 훌륭한 간증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제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에는 여러분을 두세 시간씩 앉혀 놓고 제 말을 듣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가 왜 그렇게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오직 영감을 따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도 영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기가 하는 말을 설명할 수 있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에 있는 상징들을 가져다가 제가 받은 영감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저도 그 일 때문에 몹시 괴로웠지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도 같은 방식으로, 같은 방법으로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침례자 요한 같은 경우를 보십시오. 그가... 그의 교육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광야에서 나와 회중, 곧 그 시대의 교회에 말하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너희 뱀의 자손들아!”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자연과 광야는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미끄럽고 끈적거리며 속이는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사기꾼들”이라든지, 그런 뜻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을 찾아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은 “뱀”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누구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속으로 우리는 여기에 속했다, 우리는 저기에 속했다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께서는 여기 있는 이 바위들로도 능히...”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다른 무슨 거창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능히...” 그는 자연에 있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어떤 형제님은 똑같은 영감을 받고 “그분께서 전멸시키실 것이다”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그것도 나무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는 그것이... 그런 표현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그는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여기 기도 요청들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제 사역입니다. 여기 몇 가지 요청이 있는데, 각별히 기도해야 할 요청들입니다. 이 가운데도 많은 기도 제목이 있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오늘 아침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어 “저도...”라고 하시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는 이제 주님의 거룩한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주님의 거룩하심 앞에 나아옵니다. 제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기도 요청서를 써 주신 한 사람 한 사람의 간구를 아뢰고자 합니다. 특히 사고로 심하게 다친 이 형제님의 어리고 아름다운 딸을 위해서입니다. 주님, 그 아이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또 다른 모든 기도 제목과... 지금 저희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손을 든 당사자만 아는 기도 제목들을 위해서도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동기와 저희의 모든 간구를 아십니다. 저희가 믿으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응답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제 저희가 읽을 이 몇 마디 말씀을 취하여, 저희가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그 말씀으로 저희에게 영감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가까이 오셔서 말씀의 뜻을 저희에게 계시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브래넘 형제님이 단 위에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한다.] 예, 형제님. 편하게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제가 성경을 찾는 동안... 예전에는 메모 없이도 성경 구절 같은 것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을 넘기고 나니 잘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적어 놓아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좀 낫습니까? 더 잘 들리십니까? 아니군요, 뒤에 계신 분들이 고개를 저으십니다. 아마 서야... 바로...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들리십니까? 이건 어떻습니까? 좀 낫습니까? 좋습니다. 잘됐습니다.)
이제 이사야 42장 1절부터 7절까지, 그리고 마태복음 4장 15절부터 16절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떠받쳐 주는 나의 종, 내 혼이 기뻐하는 자 곧 내가 선택한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었으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판단의 공의를 가져오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것을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친히 판단의 공의를 가져와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 그는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며 마침내 땅에 판단의 공의를 세우리니 섬들이 그의 법을 기다리리라. 하늘들을 창조하여 펼치고 땅과 땅에서 나오는 것을 펴신 분, 땅 위의 백성에게 빵을 주고 그 안에서 걷는 자들에게 영을 주시는 분 곧...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나 주가 의 안에서 너를 불렀으므로 내가 네 손을 붙잡아... 너를 지키며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이방인들의 빛으로 주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열어 주고...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며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들을 감옥 집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제 마태복음 4장 12절부터 읽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떠나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경계의 해안에 있는 가버나움에 와서 거하셨으니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그가 이르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이방인들의 갈릴리여,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이 드리운 지역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제 주제는 “빛을 켜라”입니다. 이제 약 사십오 분 뒤에 있을 다음 일정에 여러분이 가실 수 있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매커널리 씨를 아시죠. (여기 계신 것 같습니다. 밖에서 그분의 트럭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앉아 있었는데... 제가 사냥하러 여기 애리조나에 처음 몇 번 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 근처 슈퍼스티션산 부근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그 산에 관해 들었고, 슈퍼스티션산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날이 밝기 전에 그 산을 찾아보던 일이 기억납니다. 제 동쪽에 유령 같은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것이 슈퍼스티션산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이 그 산 가까이 가지도 않고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와, 옛날 금을 찾아다니던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산에 악한 영들이 산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슈퍼스티션산을 볼 때 제게는 손전등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자니, 얼마 뒤 장엄한 태양이 어둠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빛과 어둠이 갈라지고 어둠이 뒤로 밀려났습니다. 마침내 태양이 산꼭대기 위로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러자 슈퍼스티션산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빛이 비추자 그 산의 참모습이 보였습니다. 태양이 힘차게 그 산을 비추자, 제가 슈퍼스티션산에 대해 품고 있던 온갖 유령에 대한 생각과 두려움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자연의 빛 가운데 태양은 이 땅의 모든 빛의 왕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인공조명을 갖추고 아무리 강한 전깃불을 만들어 내도, 태양이 떠오르면 다른 모든 빛은 희미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면 온갖 미신과 교파적 광신주의 같은 것이 흩어져 사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참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곧 참된 빛이요 왕인 빛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빛과 어둠을 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에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갈라집니다.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내세우며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 주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나 파시즘이나 온갖 다른 주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신이든 이단이든,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그 왕인 빛이 떠오르면 온갖 미신 같은 것은... 그런데 아시겠죠, 우리는 그 빛이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입증되어 자기가 빛임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반박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 빛이 다른 모든 빛을 가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다 하고 내 말은 진리라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모든 사람의 말보다, 그 무엇보다 뛰어납니다. 그분의 말씀은 빛입니다.
우리는 태초에 세상이 돌고 있을 때 안개가 끼고 음침하고 어두웠을 것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필요함을 아셨을 때... 그분의 씨는 이미 땅속에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거기에 심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씨를 싹트게 하고 살게 하려면 빛이 필요했습니다. 씨가 이미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께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빛이 그 성경 말씀 위에 나타나 그 시대에 그 말씀이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고 빛이 말씀에 닿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생명의 씨눈이 있고 그것이 그 시대를 위한 약속이라면, 빛이 그 말씀을 살아 있게 할 것입니다. 어느 때에는 밀을 심고, 다른 때에는 다른 곡식을 심을 수 있습니다. 철에 따라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디게 자랍니다. 시대를 거쳐 오면서 율법과 은혜 같은 것들이 있었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 철에 맞게 옵니다. 그리고 매번 빛이 나타나 씨 속의 생명을 뻗어 나오게 할 때 그 말씀에 빛이 비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양이 빛납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태양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이 햇빛은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하신 그 말씀입니다. 만일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하셨는데 빛이 없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있으라”라고 하시면 반드시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태양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하신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또 오늘날 하나님의 빛은 그분의 아들이심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는 태양, 영어로 s-u-n이고, 이분은 아들, S-o-n입니다. 그 아들, S-o-n이 곧 성경입니다. 그분은...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 안에 계셨던 분은 그리스도였습니다. 모세 안에 계셨던 분도 그리스도였습니다. 버림받은 왕으로서 그 도시를 바라보던 다윗 안에 계셨던 분도 그리스도였습니다. 팔백 년 뒤에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처럼 버림받은 왕이 되셔서 그곳에 앉아 그 도시를 두고 우셨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나타난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영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빛을 떠나서는 어떤 생명도 나올 수 없습니다. 생명이 만들어... 빛이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자연적인 생명이든 영적인 생명이든, 빛을 떠나서는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리고 빛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타날 때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씨를 심으신 것처럼, 그것은 여기 놓인 씨입니다. 우리의 몸은 세상이 생기기 전... 아니, 이곳에 빛도 생명도 아무것도 있기 전에 이미 땅에 있었습니다. 칼슘과 칼륨과 석유와 우주 빛, 무엇이든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셨을 때 이미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만 하면 그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식물의 생명이나 나무의 생명이나, 존재하게 될 어떤 생명이든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연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분의 빛이 없이는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빛이며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빛을 보내 사람들에게 알리셨는데도 그 빛이 거절당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오늘 아침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빛이 전해진 사람들이 그 빛을 거절하는 것, 그때처럼 거절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나의 종을 보라. 그는 이방인들의 빛이요 세상의 빛이라.” 그분은 세상의 빛이셨지만 거절당하셨습니다. 그것이 슬픈 일입니다. 빛은 그런 처지에 놓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나타내실 때마다 세상은 그 빛을 거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그분의 말씀을 일정 부분씩 정해 주셨고, 언제나 그 말씀을 나타낼 누군가를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은 사천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분께서 오셨을 때 메시아에 관한 모든 약속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과 교회들은 그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다른 어떤 것에 빠져 이것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연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창조하신 태양 빛 가운데 걸으라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 어느 날 눈을 감고 지하실로 달려 들어가 문을 닫고 차양을 내린 채 태양이 비친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특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태양의 따뜻한 광선과 생명을 주는 근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왔는지 볼 수 있도록 비치는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차양을 내리거나 지하실로 들어가 사방의 빛을 모두 차단하고, 태양이 비친다는 사실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 사람에게 뭔가 잘못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판단력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이처럼 비치는 복음의 빛을 실제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어떤 구실로 자신을 가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고의로 그 빛을 외면하고, 어딘가로 들어가 커튼을 내리며 “나는 믿지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뭔가 잘못이 있습니다. 달리 말할 도리가 없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영감을 받은 모든 선지자의 증언과 그분의 시대를 두고 한 모든 예언이 그 시대에 밝히 드러났습니다. 성경에서 그분에 관해 예언한 말씀의 촛불마다 그분께서 불을 밝히셨습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하리라.”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또 “눈먼 자들의 눈이 보리라.”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분에 관해 예언된 모든 일이 그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째서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그것은... 우리는 지금 백미러로 뒤를 돌아보고 있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뒤만 보고 있으면 사고가 난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 앞에 무엇이 있는지 봅시다.
그들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다른 빛의 반사광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시대의 빛이 남긴 반사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날 세상의 문제도 우리가 다른 시대에 비쳤던 빛의 반사광 속에서 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반사광은 길 위의 신기루처럼 거짓된 빛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신기루가 보입니다. 태양 때문에 생기는 착시입니다. 막상 거기에 가 보면, 거짓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태양의 반사광 속에서 걸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실체가 없는 것을 보여 주는 신기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신기루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런 교회로 들어가, 어떤 차디찬 신조 같은 것을 받아들이고 교인이 되어 봐도, 거기에는 세상에서 가졌던 것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의 따뜻한 광선을 여러분에게 비추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다른 시대의 반사광 속에서 걸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 빛은 그 시대에는 옳았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옳았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시대에 그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의 성경 말씀의 빛이셨습니다. 그분은 빛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약속된 말씀을 입증하시기 전까지는 빛이 아니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요한은 밝게 빛나는 빛이었으며 너희가 한동안 그의 빛 가운데 걷기를 좋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요한이 태어나기 칠백십이 년 전에 이사야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으리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또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도 요한이 오기 사백 년 전에, 말라기 3장에서 “보라, 내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하도록 내 사자를 보내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요한이 이 땅에 와서 기록된 그 말씀을 살아 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아 앞에서 길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의 빛 가운데 걷기를 좋아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이 그 빛, 밝게 비치는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제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내 빛은 꺼져야 하리라. 왜냐하면 나에 관해 예언된 내 때를 다 채웠기 때문이라. 너희는 그분의 말을 들으라. 바로 그분이시다. 그분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면서, 그것은... 입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참된 빛 가운데서 경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거절하고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경배한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조롱하여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경배한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하나님을 말입니다. 빛을 비추기 위해, 경외심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한 형제님이 말씀하셨듯이, 지금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짐승의 표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그들이 모두 구덩이에 빠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습니다. 정직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 가운데 복음의 빛이 비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이 시대를 위해 정해 두셨습니다. 이 시대에 약속하신 일들은 이 시대에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반드시 전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게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빛, 곧 조상들의 전통 가운데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바로 그 빛이 아니라 그 빛의 반사광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경배한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 빛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들이 그분이 누구신지를 철저히 입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누가 나를 죄로 정죄할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한 말이나 주장 가운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 입증하지 않으신 것이 있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그 시대의 빛이심을 여러분에게 증명했습니다. 선지자들이 모두 메시아가 이러하실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그 말씀이 생명으로 피어났는데도, 그들의 전통이 그들을 말씀의 참된 빛에서 갈라놓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헤롯 당원들, 그 누구든지 그들은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이 세상을 온통 뒤얽히게 해 놓아서 사람들이 참된 빛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들은 반사광 속에서 걷는 데 익숙했습니다. 다음 날은 이것이고, 내일은 저것이고, 여기에 가입하면 이렇게 될 것이고, 저기에 가입하고... 우리는 그것이 거짓 신기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사람의 마음에 예나 다름없이 실제로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권능과 살아 계신 임재는 오늘도 예나 다름없이 실제입니다. “보라,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코스모스, 곧 세상의 질서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니,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그 위대한 약속은 오늘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눈멀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라는 말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얻으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복음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모든 약속의 충만함 가운데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런 일들을 나타내시고 그것들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분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말씀과 그분께서 하고 계신 일들로 철저히 입증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빛이 말씀임이 증명되었는데도 말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러나 그들이 따르던 전통, 다른 시대의 반사광이... 그들은 “우리는 모세를 믿는다. 모세가... 우리가 믿는 사람이다. 너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교육을 받았느냐? 네가 그런 자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읽기만 했더라면, 그분께서 하시는 일들이 그분이 누구신지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내가 누구인지 밝혀 주느니라.”
사람은 그의 자격을 증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보냄받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자격을 증명합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우리는 어제의 빛으로 살 수 없습니다. 어제의 빛은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제 비친 태양으로 오늘 몸을 따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어제 일어난 일로 살려고 합니다. 그림에 그려진 불로는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열기가 없습니다. 어제의 태양에는 열기가 없습니다.
자연에서 햇빛이 땅에 보내지는 것은 다가오는 추수를 위해 곡식을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릅니다. 오늘 캐나다에서 밀을 자라게 하는 바로 그 햇빛이... 오는 칠월이나 팔월에도 지금보다 더 강한 햇빛이 없으면 곡식을 익힐 수 없습니다. 햇빛은 더 강해지고 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곡식을 자라게 하려고 날마다 더 강해지고 무르익습니다. 이제 곡식 자체가, 곡식이 익기 시작하면 알곡이 자라납니다. 햇빛이 곡식과 보조를 맞추어 가면 곡식이 자라게 됩니다. 날마다... 알곡을 둘러싼 껍질과 그 구성 성분, 곧 칼슘이든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든, 햇빛이 더 강해질수록 알곡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자라게 합니다.
그러나 팔월에 비치는 태양을 가져다가 오늘의 밀에 쬐면 밀이 죽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햇빛은 철에 맞게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밀과 곡식도 그 철에, 그것이 놓인 철에 맞게 익어야 합니다. 그런데 태양이 어떻게... 밀도 과일도 오늘 살아 있는 태양, 아니, 오늘 비치는 태양으로는 죽고 말 것입니다. 추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곡식은 익어 갑니다. 곡식은 빛과 함께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제는 교회라는 곡식이 성숙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디 시대, 생키, 피니, 녹스, 칼빈의 시대 모습 그대로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옳았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때이며 다른 시대입니다. 복음이 성숙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루터가 한 말이나 웨슬리가 한 말이나 그 밖의 사람들이 한 말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예고된 빛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곱째 교회 시대에 있습니다. 셋째나 넷째 교회 시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곡식은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떨어져 나가고, 그 빛은 곡식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곡식이 빛과 함께 나아가면 빛을 따라 성숙합니다.
교회도 각 시대에 필요한 빵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빵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계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으며 거기서 아무것도 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 여기에 더할 신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약속하신 모든 약속을 그대로 나타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빼서도 안 되고 거기에 더해서도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 두십시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당시 사람들과 비슷하게, 다시 반사광 속에서 살려고 합니다. 밀이 익어 가듯이 교회도 익어 가야 합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 곧 생명의 빵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일부만이 아니라, 각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늘 콩과 감자만 먹으며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거기에 곁들일 다른 음식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앞에 차려 주신 큰 잔치의 음식을 차례로 다 누려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과 그 안에 있는 기쁨, 주어진 영 안의 권능을 누려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하신 약속들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다른 시대로 멀리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루터의 시대는 위대한 시대였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보았습니다. 성만찬을 보았습니다. 그 젊은 사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실제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들이 축복한 빵 조각이었습니다. 또 포도주도 실제 피가 아니라 피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항의했습니다. 그 시대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제가 아무리 많고 다른 무엇이 아무리 많았어도, 하나님께서는 빛을 비출 수 있는 한 사람을 붙드셨습니다. 아멘!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받아들였고 루터 시대의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 빛이 나타나고 나서 그 시대가 다 지나갔습니다.
또 다른 때가 왔습니다. 교회가 죄를 떠나 성화되어야 할 때였습니다. 영국에서 작은 체구의 성공회 사람 존 웨슬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성공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의 빛을 보았습니다. 빌라델비아 시대가 나타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때 그는 두 번째 은혜의 역사,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성화를 전했습니다. 그 빛 앞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도 루터처럼 광신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모든 사람의 입장에 항의하며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의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켤 수 있는 한 사람, 존 웨슬리를 찾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이전 시대에 빛을 켠 루터를 찾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순절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은사들이 회복되는 그들의 시대에 돌아와 방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같은 것들을 교회에 회복시켰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그들이 하리라고 한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씀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서 더 나아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신부의 때, 선택하는 때에 있습니다. 신부가... 우리가 맞이하리라고 한 그때입니다. 요엘 2장 28절에서 “쐐기벌레가 남긴 모든 것을”이라고 했습니다. “쐐기벌레가 남긴 모든 것을 털벌레가 먹고, 털벌레가 남긴 모든 것을 메뚜기가 먹었도다.” 그 조직들 하나하나가... 성경의 일곱 인을 읽어 보셨다면, 그 개혁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아가 말씀을 전했지만 무언가를 빠뜨렸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개혁자의 때가 끝나고 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더 많은 빛으로 나아가는 대신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조직을 만들고 나서는 “우리는 이 빛을 믿습니다. 이것이 그 빛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웨슬리는 계속 나아가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웨슬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와 그의 형제 존과 찰스의 시대가 지난 뒤에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애즈버리와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시대가 지나자 사람들은 감리교회라는 것을 조직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더 나아가는 빛을 거절했습니다. 그저 “이것이 그 빛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오순절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께서 여전히 성령 침례를 내려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어 그들의 잘못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인했던 치유의 권능을 여전히 내려 주십니다.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른 빛이었으므로 그들에게서 곧장 떠났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약 육십 년이 지났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고 “우리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저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조직에서 곧장 떠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그 무리에서 신부, 곧 택함받은 이들을 불러내고 계십니다. 이후에 또 다른 교회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는 웨슬리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는 오순절 조직인데, 그것은 모두 곧장 짐승의 표로 들어갑니다. 조금 전 이 형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이 성경입니다. 사실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그 모든 조직은, 자기들이 받은 빛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들은 조직을 만들고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면 성경과 대조해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우리에게 그것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사두개인들도 “우리에게 그것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돌려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 빛은 언제나 그랬듯이 거절당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루터를 거절했습니다. 웨슬리는 루터를 거절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순절 사람들도 웨슬리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께서는 오순절 사람들을 거절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형식적이고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제가 아는 한 여러분은 성경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며, 그래서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들으십시오. 눈을 떠서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사는지 보십시오. 다시 스위치를 돌려 빛이 켜지고, 한 나무를 불러낼 때입니다. 성경은 말라기 4장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백성에게 있던 본래의 믿음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셨고 선지자들이 왔습니다.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말씀을 살아 있게 했습니다.
그 시대의 조직과 체제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랬습니다. 오늘날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한 사람을 능히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한 번도 조직을 일으키신 적이 없습니다. 어느 역사가에게든 물어보십시오.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 자리에서 죽었고 다시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들에 다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대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오늘날을 위해 약속된 성경 말씀들을 입증할 빛을 켜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롯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보여...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우리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셨습니다. 저 아래 세상에, 온갖 죄가 있는 소돔에 롯이 있습니다. 미지근한 상태입니다. 그곳에도 그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자가 있습니다.
따로 불려 나온 아브라함의 무리가 있습니다. 택함받은 이들, 약속을 가진 이들로서 참으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롯도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기다리던 것과 같은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자신을 육신으로 나타내셨으며, 자신이 말씀임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가진 칼보다 예리하고 마음속 생각들을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다시 그와 같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입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이 약속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돌들로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는 여정은 이스라엘과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여정 중에 날마다 새 만나를 거두어야 했습니다. 새 만나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루터의 빛이나 웨슬리의 빛이나 오순절의 빛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있습니다. 새 만나입니다. 그들이 그 만나를 다음 날까지 두려고 하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상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죽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 가운데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다. 그들은 다른 시대의 반사광을 먹고 있습니다. 이미 상한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밀을 둘러싼 껍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껍질이 알곡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알곡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빛이 거절당하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을 어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밤의 어느 부분이든 빛을 보기를 거절하면 다시 어둠으로 돌아갑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시대에 그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때에 살고 있습니다.
어제의 만나는 상했습니다. 사람들이 “사십 년 전에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떻습니까? 어제 우리가 이야기했던 불붙은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 여러분 개인은 어떻습니까? 어제의 것으로는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어제는 그것이 옳았습니다. 요한의 메시지가 그랬듯이 루터의 메시지도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빛이 떠올랐습니다. 루터 역시 큰 빛이었고, 우리는 한동안 그 빛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빛이 와서 그의 빛을 가렸습니다. 그때 그 빛과 하나로 어우러졌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완전한 빵 한 덩이에까지, 하나님의 완전한 만나에까지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사람이 끼어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도록 하는 대신 사람과 그 사람의 체제가 끼어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눈멀게 했습니다.
아, 오늘날 이 신부 나무는 가지치기를 당했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모두 잘려 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는 가지들이 끊어지고 잘려 나간 것을 봅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무의 핵심은 바로 나무 한가운데 있습니다. 열매는 언제나 익을 것입니다... 나무에서 마지막으로 열매가 맺히는 곳은 바로 꼭대기입니다. 씨 속에 있는 생명의 중심에서 나온 가장 새로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부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신부)... 그분은 나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베어 버렸습니다. 그분은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나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베어 버리고 조롱하려고 로마의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셋째 날에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신부 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 처음에, 오순절 날에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 속한 여러분, 들으십시오. 교회는 니케아-로마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해서 조직을 만들었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가지들을 잘라 내셨습니다. 루터교를 조직하자 가지들을 잘라 내셨고, 웨슬리를 조직하자 가지들을 잘라 내셨고, 오순절을 조직하자 가지들을 잘라 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신부 나무를 가지실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자벌레가 먹고 쐐기벌레가 먹은 모든 것을 내가 회복하리라.” 말라기 4장은 우리가 오순절 날에 있었던 것과 같은 본래의 믿음, 곧 조상들의 믿음으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일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이 그때라고 믿습니다. 가지들은 시들고 말랐습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열매가 맺히도록 그 가지들은 나무에서 잘려 나갈 것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 모든 빛은 옳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 빛에 오늘 받은 빛이 더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를 완성해야 합니다. 나무 자체나 밀이 빛을 따라 성숙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밀은 잎에서 알곡으로 자라납니다. 그리고 알곡이 된 뒤에도 빛을 따라 익어 갑니다. 다른 시대들의 빛은 이 시대를 증언할 뿐입니다. 루터의 빛은 웨슬리의 빛을 증언했습니다. 웨슬리는 오순절의 빛을 전했습니다. 같은 생명이지만 빛을 따라 계속 성숙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 전에 짧은 글을 읽었습니다. 영국 여왕이, 지금 여왕이 아니라 이전 여왕이, 아주 좋은 종이를 만드는 제지 회사를 방문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회사 사장이 여왕을 만나... 공장을 안내했습니다. 여왕은 그 좋은 종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어 했습니다. 사장은 여왕을 모시고 다니며 커다란 압착기들과 그 밖의 설비를 모두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헝겊 조각으로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기억합니다. 사장이 한 방으로 가서 문을 열자, 그 안에는 헝겊 조각 무더기뿐이었습니다. 여왕은 깜짝 놀라 “이 더러운 것들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 곧 회사 사장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제는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러워졌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일의 종이입니다.” 여왕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내일이면 이해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헝겊 조각들을 압착기에 넣고, 정해진 세척 절차와 거쳐야 할 어떤 과정, 곧 처리 공정을 거치게 하자 아름다운 종이가 되어 나왔습니다. 사장은 여왕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종이에 여왕의 옆얼굴을 눌러 새겼습니다. 여왕은 그것을 받고 자기 옆얼굴을 보았습니다. 어제는 더러운 헝겊 조각이었던 것이 정해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아, 루터와 웨슬리와 그 모든 사람이 이것을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것은 과정을 거쳐야만 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의롭게 됨에서 성화로, 성화에서 성령 침례로 빛을 계시하실 때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마지막 때에는, 거기에 여왕이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시는 천국의 왕의 모습이 새겨집니다. 교회가 점점 더 적은 소수로 좁혀져 왔기 때문입니다. 사역도 그분께서 하셨던 것과 같은 사역이어야 합니다. 루터 시대에 죽은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밑부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피라미드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를 드는 것입니다.)...
그 피라미드는 참으로 정교합니다.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면도날 하나도 틈에 집어넣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 거기에는 모르타르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건축이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머릿돌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 머릿돌이 돌아오면 나머지 부분과 꼭 맞을 것입니다. 꼭대기에 비워 둔 자리의 돌들과 딱 맞아 하나가 될 것입니다. 머릿돌을 거기에 얹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깨끗이 씻겨 점도 주름도 없는 교회를 만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머릿돌을 다시 모셔 올 것은 그분께서 하셨던 것과 같은 사역일 것입니다.
여기 제 손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며 더 어둡습니다. 제 손이 점점 더 가까워지면, 여기에는 그림자가 있고 여기에는 실체가 있습니다. 그림자와 실체가 가까워질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더 어두워지고, 더 어두워집니다. 마침내 둘이 딱 맞닿으면 그림자와 실체가 하나가 됩니다. 그때 교회와 그리스도가 신부로서 하나로 연합합니다. 그분 안에 계셨던 바로 그 영이 신부 위에 계실 것입니다. 교회가 의롭게 됨과 성화와 성령 침례를 거쳐 마지막 날들에 이르렀을 때 말입니다. 이제 주님의 오심을 위해 신부를 정교하게 다듬고 계십니다. 아, 오순절 형제님, 거기에 거친 부분으로 남지 마십시오. 말씀으로 빛나게 다듬고 그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믿으십시오. 오늘날 벌어지는 온갖 주의 같은 데로 빠져들지 마십시오. 그 일에 놀라지 마십시오. 머릿돌이 오고 계시며, 머지않아 “아바, 아버지”라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보이십니까? 제가 무슨 뜻으로 말씀드리는지 아십니까? 지금 그리스도께서 어제의 헝겊 조각들, 곧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 같은 것들을 취하여 과정을 거치게 하고 계십니다. 어떤 과정입니까? 성령의 과정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것에 더하여, 그리스도 자신의 형상을 눌러 새기실 때까지 빚으시는 것입니다. 그때 교회와 그리스도는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신다면...
이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웨일스 대부흥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이 나라의 몇몇 저명한 사람들이 웨일스에 가서 그 부흥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알아보러 건너가면서, 어느 건물에서 집회가 열리는지 보려고 했습니다. 웨일스에 도착하자 여기저기 다니며 그 건물이 어디 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길모퉁이에 토미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작고 명랑한 경찰관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경찰봉을 빙빙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실례합니다만, 웨일스 부흥집회가 어느 건물에서 열리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예! 바로 접니다. 바로 저라고요!” 왜 그렇습니까? 그가 웨일스 부흥의 기쁨과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오순절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보십시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복음의 빛이 이 시대의 말씀과 함께 비쳐 나와, 그때와 똑같이 이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 경찰관은 웨일스 부흥으로 어찌나 충만했는지, 그 자신이 웨일스 부흥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로 그토록 충만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정해 주신 그분의 말씀의 권능으로 그분을 비추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세상일에 짓눌려 있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런 염려가 여러분을 끌고 갈 것입니다. 복음 안에 머무르십시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어떤 선조가 했던 말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일어나리라고 하신 말씀으로 나아갑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빛이 되어 복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루터는 그분의 빛이었고, 웨슬리도 그분의 빛이었으며, 오순절도 그분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길을 더 멀리 왔습니다. 우리는 따로 불려 나온 택함받은 신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라면 바로 그 경찰관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그 부흥이 자기 안에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일곱째 교회 시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따르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합니다. 성경에 언급된 모든 교회 시대 가운데 라오디게아 시대가 가장 나쁩니다. 그 시대는 그분을 내쫓고 거절하여 바깥에 두었습니다. 얼마 전 밤에 달이 캄캄해지는 것을 보셨습니까? 교황이 (로마로)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가장 오래된 교회입니다. 달은 언제나 태양이 없는 동안 태양 빛을 반사하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달이 캄캄해졌습니다. 저는 삼사 년 전에 여기 칠판에 그것을 그렸고, 전국 수백, 수천 가정에 그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림자였습니다. 교황이 이곳으로 돌아오려고 떠난 것은 처음이었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오는 등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여러 곳을 지나가면서 강을 건너려면 강을 축복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강에 무슨 축복이 필요합니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교회 시대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보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알리시고, 말씀에서 알리시고, 신문에서 알리시고, 백성 가운데서 알리고 계십니다. 눈을 떠서 이때를 볼 수 없습니까? 이것들이 진리를 증언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빛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그 거대한 에큐메니컬 운동이 저 협의회로 들어가며, 요한계시록 17장에 있는 짐승의 형상을 그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하리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오순절 사람들인 여러분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강요하는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일어나 등불을 손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권능으로 빛을 비출 때입니다.
많은 오순절 친구들이 교황과 함께 앉는 등의 일을 하며 “아주 영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하는데, 이런 말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것이 잘못입니다. 성경에 어긋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이런 거대한 움직임들이 육신의 눈에는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진행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물론입니다. 그 당시 가야바가 제사장들에게 보여 주는 것도 좋아 보였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것이... 그러나 말씀을 살아 있게 하는 빛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회 같은 것들이 눈을 멀게 하여 그 빛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냥 두라.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그들이 모두 구덩이에 빠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시 그때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그때에 이르렀습니다. 보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같은 원인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날 살아왔던 그 큰 빛들은 모두 옳았습니다. 우리는 그 빛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는 조심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거절당하십니다.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거대한 협의회가 모든 개신교를 하나로 묶으려고 움직여 왔습니다. 이 에큐메니컬 운동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말씀 자체를 캄캄하게 가리고 있는데,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연합형제교회, 다른 큰 조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처녀 탄생을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믿고 또 어떤 사람은 저것을 믿습니다. 어떻게 불신과 연합할 수 있습니까?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습니까?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데 감사드리고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반드시 나타내셔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라기 4장의 인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한 선지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그분께서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정확히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늘 그랬듯이 눈먼 채 그것을 버리고 곧장 어둠 속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우리는 같은 원인을 발견합니다. 그들이 (교회들을) 거절하고, 메시지를 거절하고, 말씀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을 끌어내는 날에... 이제 여러분이 그 조직에 속하지 않으면 교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이 교회 문을 닫을 것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옳은 것을 위해 서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때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얼마 전 영국에서 거짓 신호등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큰 강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강도 사건이 거짓 신호등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열차를 감속시킨 거짓 신호등 때문에 칠백만 달러 강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들이 너무도 교묘하게 빠져나가 스코틀랜드 야드에서도 그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실제 강도들이 저지른 사건 가운데 역사상 가장 큰 강도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 최대의 강탈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대로 저지른 가장 큰 강탈도 거짓된 빛으로 일어났습니다. 다른 시대의 반사광을 붙들고, 이 시대를 위해 예고된 빛을 거절함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아멘! 거짓된 빛, 어제의 반사광입니다. 어제의 반사광 속에서 걷지 말고 오늘 태양의 따뜻함 가운데 걸으십시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며 교파의 그늘 속으로 몸을 움츠리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리라. 이런 표적들이 그들을 따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은 사도들에게나 해당하지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반사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무엇이 문제입니까? 반사광 속에서 걷는 것이 가장 큰 강탈을 일으켰습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빼앗아 갔습니다. 아시겠죠? 어제의 차가운 신조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오늘을 위해 약속된 말씀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씨를 따뜻하게 하지 못합니다. 결코 못 합니다. 교회에서 벌어진 가장 큰 강탈... 따뜻하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차가운 신조의 빛으로는 오늘의 씨를 익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씨를 부인합니다. 땅 위에서 점점 짙어지는 안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다시 빛을 켜시고 말씀을 살아 있게 하실 때입니다. 물론입니다. 빛... 그 차가운 신조로는 곡식을 익힐 수 없습니다. 절대로 익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문명은 태양을 따라 이동해 왔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 비유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달리 표현할 만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교육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교육을 받기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누리고 싶습니다. 제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아 나타내시는 것을 저는 봅니다. 그것만 알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면 성경을 탐구하여 그것이 오늘을 위한 답인지 살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답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살아나면 이 시대에 약속된 빛이 나타납니다. 이 어두운 라오디게아 시대에는 겨우 몇 사람만...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들이는 자는 다 징계하고 책망하노니, 회개하고 돌아오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그분께로 오십시오. 그렇습니다.
빛을 보십시오. 빛은 동쪽에서 와서 서쪽으로 갑니다. 우리는 서해안에 있습니다. 세 단계가 있었지요? 세 단계를 거쳤고, 바다를 세 번 건넜습니다. 바울에게서 지중해를 건너 독일에 왔습니다. 독일은 루터를 통해 빛을 받았습니다. 영국 해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이제... 영국까지 이르렀고, 그다음 영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루터의 메시지로부터 계속 나아와 이제 마지막 부분이 다시 이곳 서해안에 와 있습니다.
저 루터에게서부터 시대들을 거쳐 곡식이 익어 왔으니, 지금쯤은 복음이 충만해져야 합니다. 의롭게 됨과 성화와 오순절 시대를 통해 비친 빛을 무르익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신부 나무를 무르익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 안에 한 인격으로 나타나시도록 말입니다. 그분과 그분의 아내, 그분과 그분의 신부입니다. 아멘! 우리가 사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빛입니다. 그 빛 가운데 걸으십시오. 세상 끝의 모든 사람들아, 구원을 받으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이 시대 교회의 반사광이 아주 기만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능하다면 택함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루터가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게 아니라, 루터는 감리교인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감리교인은 오순절 교인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어떻습니까? 바로 그것이 오순절 교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신조와 형식으로 되돌아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일들을 약속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남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 어떤 약속을 하셨는데 어떻게 그 성령께서 그 말씀을 두고 “글쎄, 다른 시대에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라고 단정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말씀과 하나입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연합의 결과,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합의 결과입니다.
어떻게 한 남자의 (남편)이 될 여자가... 거스르며 그 남자가 원치 않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세상과 교파와 조직에 추파를 던지며 이 시대의 빛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한 분 한 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듣고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고스란히 다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됩니다. 루터교인들이 가톨릭을 정죄한다고 해서 그들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웨슬리가 루터교를 정죄했다고 해서 그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렇게 해 놓고 여러분도 오늘 일어나는 일을 정죄하며 외면한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이 거대한 에큐메니컬 운동 같은 데로 들어가 여러분 모두를 짐승의 표로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표를 받은 것입니다. 마음이 정직한 많은 사람들이 곧장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그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제사장들도 그랬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이나 성령의 열매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면...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제,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 나는 방언을 했으니 성령을 받았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많은 사람은 “성령의 열매, 그것이 증거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잠시 예수님을 재판에 세워 봅시다.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앞으로 모시고 저는 제사장 역할을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젊은이가 도시에 왔습니다.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믿습니다. 자, 여기 여러분의 친절한 늙은 제사장을 보십시오. 그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모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을 온전히 희생했습니다. 이 신학교에서 줄곧 지냈습니다. 주의 깊게 지켜보고 믿었으며 배운 것을 모두 행했습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압니다. 직접 쓰기까지 합니다. 성경을 직접 베껴 씁니다. 서기관들이 그렇게 합니다. 여기 있는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여러분을 낳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가 침상 곁에 서 있었습니까? 그 친절한 늙은 제사장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지려고 했을 때 누가 두 분을 감싸 안고 하나님께 다시 이끌어 드렸습니까? 그 친절한 늙은 제사장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 여호와께서는 죄를 위한 희생물로 어린양을 요구하십니다. 상인들은 이 도시들에 살며 상품이나 제품이나 농산물이나 무엇이든 팔 물건을 팝니다. 그들은 양을 기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들이 양을 팔 수 있도록 그곳에 작은 판매대를 마련하여, 이 사람이 가서 여호와 앞에 자기 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라는 이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어느 교회에서 왔습니까? 어느 교파에 속합니까? 어느 연합회의 회원증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를 내쫓겠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를 정죄하므로 우리는 그와 아무 관계도 맺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사람들이 자기 혼을 구원받으려고 하는 그곳에 올라가서, 영적으로 생각하시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고 부를 그곳에서, 탁자를 걷어차고 잔돈을 내던지며 줄들을 가져다가 묶어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그 경건한 늙은 제사장을 ‘마귀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울 때 돈을 빌려주었던 그 친절한 노인을 말입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누가 곁을 지켜 주며 장사해 주겠습니까? 그 친절한 늙은 제사장입니다. 그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까?”
방언을 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로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 밝히 드러나는 것이 증거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것은 빛이며, 그 빛 가운데 걷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방언을 하셨지만 방언에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열매도 맺으셨지만 거기에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말씀을 믿고 확언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약속의 말씀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그분을 통해 살아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의 빛입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자기 안에 성령이 임하신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부인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잘못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 세뇌하는 신학과 같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우리 신학교들에도 뭔가 잘못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사람들을 저 에큐메니컬 운동의 도살장으로 곧장 이끌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잘못입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지켜보십시오. 빛, 이 시대의 빛입니다! 그 차가운 신조들로는 결코 추수를 거둘 수 없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씻기고 말씀과 하나가 된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 교회들의 반사광이 몹시 기만적이어서, 가능하다면 택함받은 자들까지 거의 속일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택함받은 자들까지... 그러나 여덟 혼이 구원받았던 노아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아주, 아주 적은 수만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합니까? 곧장 도살장으로 이끕니다. 우리가 사는 이 현재의 어둠 속에서,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만, 우리가 사는 이 현재의 어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하늘에서 빛이 이미 꺼졌을 때...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 이전에도 이곳에서 한 번 꺼졌습니다. 성경의 일곱 인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 주셨고,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바로 하늘에 그것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곧장 내려오셔서 땅에서도 알리십니다. 그런데 교회는 곧장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지키는 그 작은 신부를 누가 구할 것입니까? 그녀가 홀로 추운 바깥에 쫓겨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녀는 춥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약속되고 입증된 말씀이... 아, 그렇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교회가 그저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거의 똑같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가능하다면 택함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플로리다에 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가 말하기를, 플로리다에서 자기 쉐보레 자동차가 고장 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비소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정비사가 와서 모든 것을 맞추어 놓았는데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초조해하며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집어 들었습니다. 차 주인은 서서 “제 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늦었습니다. 고칠 수 없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정비사는 몹시 초조하게 안절부절못하며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가 다가와 잠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정비사가 한동안 쩔쩔매도록 두고 보다가 그에게 “여기를 한번 만져 보시지요. 전류가 흐르지 않고 있군요”라고 했습니다. 정비사는 “그 생각은 못 했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거기 있던 조그만 것,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돌렸고 전류가 통했습니다. 차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정비사가 돌아서서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제너럴 모터스의 수석 기술자였습니다. 그 차를 만든 사람, 그 차를 설계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님, 이 시대에 우리가 우리 부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재료도 있고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기계장치는 갖추었지만 원동력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제가 말씀드립니다. 오늘 여기, 할렐루야, 원동력을 가동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성령이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그분은 기계장치의 원동력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오순절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들 가운데 하나로 서 있습니다. 해마다 수천에 수천 명이 더해집니다. 그런데 그 성령은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방언을 하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인정해 왔고, 그 결과 어떤 행동이 나타나는지 보았습니다. 감리교인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루터는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그 밖에도 그랬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말씀입니다. 빛을 켜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기계장치에 시동이 걸리면 그것이 원동력을 얻습니다. 원동력을 얻는 것입니다. 원동력이 기계장치에 들어오면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취하십시오. 거기서 조그만 것 하나라도 잘못되어 있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 모든 주의, 모든 신조를 내려놓으십시오. 원동력이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흐르시며 이 시대에 약속된 말씀을 입증하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교회가 힘차게 일어나, 제트기처럼 하늘로 솟아올라 자기 주인을 맞이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것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 시대에 누가 그것을 지킬 것입니까? 기억하십시오. 형제님, 기억하십시오.
이 짧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다시 이야기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뉴멕시코주 칼즈배드에서 집회를 열고 있을 때, 제 친구 하나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동굴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런 곳, 땅속으로 일 마일쯤 되는 깊은 곳에 내려가는 것을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 위에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안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더 높이 올라가고 싶습니다. 더 낮게 내려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이 친구를 데리고 안으로 내려갔습니다. 남자 친구 한 사람도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한참 내려가 커다란 지하 공간에 이르렀습니다. 지표면에서 수백, 수백, 수백 피트 아래까지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스위치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스위치를 껐습니다. 그러자 어찌나 캄캄하고 어두운지, 얼굴 앞에서 손을 움직여도 자기 손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는 아주 작은 아이였는데 몹시 겁을 먹었습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 캄캄해! 캄캄해! 캄캄해!” 하며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마침 그 아이와 남매인 어린 남자아이가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어둠 속에서 소리쳤습니다. “얘야, 무서워하지 마. 여기 불을 켤 수 있는 분이 계셔!” 할렐루야! 작은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여기 빛을 켜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 그렇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눈먼),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의 그 부유한 사람들은 그분에 관해 물으러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의 반사광 때문에 빛을 잃거나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학은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서 돌이켜 그 빛을 따라갔을 때 영생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실업인 여러분처럼 말입니다. 이 조직들의 반사광을 바라보지 말고 말씀을 붙드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빛으로 이끕니다. “얘야, 무서워하지 마. 여기 불을 켤 수 있는 분이 계셔.” 여기 자기 말씀을 살아 있게 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때와 똑같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친히 입증하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일어섭시다. 다음 집회에 갈 시간까지 십오 분 남았습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빛을 비추어 주십시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기계장치를 믿사오니 주님, 제 안에 원동력을 넣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그분께 부르짖으십시오. “주님, 빛을 켜 주십시오.” 여기 빛을 켜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공산주의가 들어오고, 온갖 조직이라는 자벌레들이 여러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빛을 켜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성령 자신이시며, 영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님, 들린 이 손들을 하나하나 만져 주십시오. 손뿐 아니라 팔을 따라 마음속까지 내려가셔서 복음의 빛을 켜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