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람들은 주님을 뵙기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주님께서 주시는 한마디 말씀은 모든 사람이 언제든 행하거나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대 가운데 있는 이들이 있기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갈망할 때, 깊은 곳이 깊은 곳을 부를 때에는 그 부름에 응답할 깊은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가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목사님들과 사람들의 마음에 우리를 함께 불러 모아 주님께 은혜와 복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나타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가 밤마다 겸손히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이 일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을 그토록 풍성히 부어 주셔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외에는 자기 주위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큰 부르짖음이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 이 일대에 부흥이 일어나고 모든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죄인들이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고, 성령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시며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주님의 말씀에 약속된 이런 일들을 이루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오셔서 주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옵소서. 오늘 밤 우리에게 오옵소서. 주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주님의 약속은 결코 어긋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을 열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오셔서 묵은 땅을 일구어 주옵소서. 오늘 밤 하나님의 영과 권능을 깨닫도록 우리의 깨달음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약속하신 말씀을 나타내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자, 오늘 밤 본문을 따라 읽으실 분들은 성경 베드로후서를 펴십시오. 잠시 성경 말씀을 나누기 위해 15절부터 읽겠습니다. 또한 내가 죽은 뒤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애쓰리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너희에게 알려 줄 때에 우리는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었노라. 저는 그 말, “눈으로 본 자들”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무슨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의 증인입니다.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그리고…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시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는데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너희에게 좋으니라. 먼저 이것을 알라. 즉 성경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해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는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이것을 주제로 삼겠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해석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남녀 할 것 없이 어떻게 해야 할지 좀처럼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사탄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실 어떤 기준이 없다면, 사람들을 의롭게, 올바르게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오늘날 우리의 모든 것은 그분의 속성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처음에는 그분이 하나님조차 아니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그분을 그저 “영원하신 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말(영어의 God이라는 말)은 “경배의 대상”을 뜻하는데, 그분을 경배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영원하신 분, 모든 지성의 근원이셨습니다. 이 모든 지성의 근원 안에는 원자도 분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디에도 빛이 없었고, 별도 달도 그 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으로 아는 그분, 영원하신 위대한 영께서 (시작도 없으셨고 끝도 없으셨습니다)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속성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되시는 속성, 아버지가 되시는 속성, 아들이 되시는 속성, 구원자가 되시는 속성, 치유자가 되시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속성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펼쳐진 이 모든 일은 그저 그분의 속성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속성이란 그분의 생각이었습니다. 말이란 표현된 생각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생각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있으라” 하시자 있었습니다. “있으라” 하시자 있었습니다. 자,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은 세상이 있기 전에 그분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생각이 나타난 것입니다. 세상이 있기 전부터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아멘.) 처음에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실제적인 모습으로 나타내셔서 만지고 볼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 여기서 집회 중에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해석은 틀렸습니다.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십니다.” 자,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감리교에 가면 “침례교는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침례교는 “오순절교는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순절교는 “일신교는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신교는 “하나님의 성회는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마다 다른 쪽이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해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대신해 해석해 줄 사람은 아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해석하십니다. 하나님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친히 해석하시는 분이십니다.
자,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처음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 말씀의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그것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그분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빛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그것은 먼저 그분의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하늘에 솟아났습니다. 그것이 해석입니다. 누가 그것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이 나타나는 것, 그것이 그분의 말씀의 해석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까? 왜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말씀하실 때… 처음에, 창세기에서, 그분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질 각 시대에 그분의 말씀을 할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들을 거쳐 오면서 교회 세계는 전통과 그런 것들로 이 모든 것을 뒤섞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을 통해 언제나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해 줍니다. 누가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이 스스로를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는데) 그 해석이 틀렸다고 감히 말하려는 죄 많은 인간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해석을 하시는 것, 직접 해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해석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나타내심으로 자신을 해석하십니다. 오, 교회가 그것을 깨닫고 각 시대에 할당된 약속들을 볼 수만 있다면! 다른 모든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내셨고, (일곱 교회 시대들을 거치는 동안에도) 행하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모든 것을 말입니다. 이루지 않고 남겨 두신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정확합니다!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그분은 행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오래전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처녀가 수태하리라”고 하셨고 처녀가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것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석하셨습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고 하셨고 처녀가 잉태했습니다. 자, 무엇을… 거기에 무슨 말을 보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눈이 너무 어두워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나름대로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대하던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그때를 돌이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믿는 자들이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십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나타내십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을 때… 노아의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노아 안에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노아는 “비가 올 것입니다. 비가 내려 땅이 멸망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가 왔습니다. 거기에 해석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노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비가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가 왔습니다. 노아는 선지자였으며,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위의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자나 선지자가 있어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 말을 들으라.” 맞습니다. 그것이 참되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노아는 말씀과 일치했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비가 왔습니다. 그 일에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처녀가 수태하리라”고 했고 처녀가 잉태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 처녀가 잉태하기까지는 수백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요셉이라는 선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으려 하지 아니하여…” 당시의 선한 사람이었던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했을 때, 정혼했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마리아는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정혼을 깨뜨리는 것이 간음을 범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물론 요셉에게는 마리아가 자기 잘못을 가리기 위해 그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그저 정혼만 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마리아가 아름답고 크고 부드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요셉, 천사장 가브리엘이 제게 찾아와,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어요”라고 했을 때 말입니다. 자, 요셉이 그저 성경 말씀을 돌아보았더라면, 선지자가 마리아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시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너무나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낯섭니다. 너무나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예사롭지 않은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어디든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체계에 어긋납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마땅하다고 여기는 대로 모든 것을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시면 예사롭지 않은 일을 행하십니다. “이 처녀가 어떻게 잉태할 수 있을까?” 요셉은 정직했습니다. 그는 그 일에 관해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녀를 덮으셨다. 그래서 이 일이 일어난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차선의 방법인 꿈으로 대하셨습니다. 우리는 꿈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꿈을 믿습니다. 저도 꿈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꿈으로 사람들을 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꿈은 차선의 방법입니다. 아시겠죠? 해석되지 않으면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요셉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 땅에 해석해 줄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사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안녕을 돌보기 위해 택하신 차선의 방법은 꿈을 통해 요셉에게 말씀하시되 해석이 필요 없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말이 옳다. 그녀 안에 잉태된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고 신실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직접 해석해 주십니다. 신비로운 것을 바라보는 남녀 여러분, 여러분이 정직하고 신실하며 믿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해석해 주실 길을 가지고 계십니다. 먼저 그것이 약속인지 확인하십시오. 요셉이 그저 돌아가 전통에서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보았더라면, 이사야가 마리아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두었던 것입니다. 예언된 일들과 그분의 탄생, 그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듯이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해졌습니다. 아무도 거기에 사적인 해석을 붙일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분은 그 시대를 위해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위대하고 너무나 놀라운 현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니, 너무나 경이로웠다고 해야겠군요. 그들은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여기에 대고 너무 크게 말해서 저쪽에 계신 여러분의 귀가 먹먹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아시겠죠? “그 성경이 내가 누구인지를 너희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할당하셨습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야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이십니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분,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할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윗 안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안에 계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위해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으셨다는 이유로, 또한 안식일을 범하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분은 안식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그저 보통 사람이나 보통 선지자가 아니셨습니다. 물론 보통 사람이셨고 선지자이셨지만, 하나님이신 선지자이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 이루어진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너희 중 누가 나를 죄로 정죄할 수 있느냐?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은… 그들은 다른 시대의 반사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몇 주 전에 “반사광 속에서 살기”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반사광이란 “신기루”입니다. 햇빛이 반사된 것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다른 시대에서 비쳐 오는 반사광도 모두 실체가 아닌 반영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루터교인들은 루터의 반사광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루터의 햇빛은 그의 시대에 훌륭했습니다. 웨슬리도 그의 시대에는 좋았습니다. 오순절도 그 시대에는 좋았습니다. 우리는 사다리를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자리 잡고 안주하면,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전통을 완성해 놓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에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여 오늘을 위해 무엇이 약속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 것이며,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터를 보십시오. 성경에서 그 사데 시대를 살펴보면 무엇이 약속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기수가 나갔는지 보십시오. 무엇이 그를 맞으러 나갔는지 보십시오. 바로 “사람의 영리함”과 종교개혁입니다. 웨슬리와 그 밖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오순절 시대에 이르러 그 시대를 거쳐 오기까지, 그것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보십시오. 성경을 살펴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보십시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보십시오! 저는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에 이르렀다고 믿습니다. 그분께서 언제라도 나타나실 수 있는 바로 그 시대, 그 시각에 우리가 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간에 있다는 것을 성경이 선포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일들이 어떤 모습으로 갖추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에큐메니칼 공회가 모든 교회를 그 안으로, 짐승의 표 안으로 이끌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로마 제국과 그것이 하는 일, 그 밖의 모든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함께 모여 빛을 차단하고 복음을 막는 것을 보십시오. 누구든 거기에 속해서 그들의 빛 가운데 걸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걸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옳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는 모든 교회 시대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교회 밖으로 쫓겨나신 유일한 시대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 에큐메니칼 공회가 그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밖에 계시게 될 것이라고 했고, 그분은 밖에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을 막아 내는 것입니까? 말씀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언제나 말씀이셨고, 오늘 밤에도 여전히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성경은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예리하고 더 강력하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서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분별하는 분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그러하셨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어느 날, 사역을 막 시작하실 무렵 그분께서 거기 서 계셨습니다. 시몬, 시몬 베드로라는 사람이 그분께 왔습니다. 베드로가 그분을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며, 너는 요나의 아들이다.” (베드로는 모세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하리라”고 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평생 그를 본 적이 없는 분이 계셔서 “네 이름은 시몬이며, 너는 요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바로 그때 그것이 달리…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는데, 여기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때 빌립은 가서 나무 아래 있던 나다나엘을 찾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무엇임을 알았던 것입니까?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다. 무슨 속임수를 쓰고 있다. 점쟁이 같은 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그런 말을 하면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같은 일을 행하실 때 그것을 거슬러 말하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분은 우리 시대를, 우리가 보게 될 시대를 예언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모세 안에 계셨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다윗 안에 계셨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다윗, 그 아들이… 다윗이 버림받은 왕으로 산에 올라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울었을 때, 그것은 바로 그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약 팔백 년 뒤에 다윗의 아들께서 올리브산 위에 앉아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며 우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제 새끼를 품듯이 내가 너희를 품으려 한 것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었을 때 그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가 은 삼십 개에 가까운 값에 팔렸을 때 그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종이 되었을 때 그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가 파라오의 오른편에 앉았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가 나갈 때 모든 사람이… 나팔이 울리면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요셉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파라오에게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림자와 모형으로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선지자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나타내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다나엘은 이것을 보았을 때 엎드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아무도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가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와 바리새인들을 대신해서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에큐메니칼 공회에 너무 깊이 얽매여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하는 말을 표현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우리”가 누구입니까? 그들의 공회입니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선생님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이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았고,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깊이 얽매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사십 년 동안 성령 침례로 이 나라를 흔드셨습니다. 그런데도 남녀들은 여전히 그 밖에 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것에 얽매여 다른 시대의 반사광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누구나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루터교인, 또는 그런 무엇이 되려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반사광입니다.
그들은 모세 시대의 반사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분께서… 그들은 “우리는 모세의 제자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모세를 알았더라면 나도 알았을 것이다. 모세는 나에 관하여 기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루터를 알았더라면 이 시대를 알 것입니다. 감리교를 알았더라면 이 시대를 알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에 관해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루어지는 말씀은 이 시대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을 해석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해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해석하십니다. 그것을 해석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언제나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입증하며, 그것이 바로 해석입니다.
자, 예수님께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일을 행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입니다.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시대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물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건 이런 뜻이죠…”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의 뜻입니다. “롯의 시대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롯의 시대에는 어떠했습니까? 잠시 돌아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롯의 시대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믿는 자, 믿는 체하는 자, 믿지 않는 자입니다. 어느 무리에서나 똑같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롯은 믿는 체하는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자였습니다. 언약이 확증된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약속된 아들을 기다리던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기대하던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아멘. (제가 제 말에 “아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떠나 저 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오늘날 영적인 교회의 모형입니다.
롯은 아직도 저 아래 소돔에 있는 교파 교회의 모형입니다. 보십시오. 성경은 소돔의 죄들이 날마다 그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 그것에 맞서 나설 용기가 없었습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선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밖을 내다보며 반바지를 입은 여자들과 이런 일들을 하는 남자들, 교회에 오는 대신 일요일에 골프를 치고 소풍 모임에 가고 수영이나 그런 것을 하러 다니는 교인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 교인들은 수요일 밤에도 교회에 오는 대신 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그 선한 사람들은 그런 일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러면 교회 임원회가 그들을 쫓아낼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또다시 롯인 것입니다. 창밖을 내다보며 죄를 보면서도 죄를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혼란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나와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자, 바로 마지막 때, 불이 떨어지기 직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방 세계에 불이 떨어질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왕국들이 무너지고 불에 타 버릴 때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들이 불에 휩싸여 뜨거운 열기로 타리라.” 그 일은 이것의 그림자였습니다. 자, 그들의 모습을 그려 봅시다. 아브라함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소돔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돔 밖에 있었습니다. 롯은 아직 소돔 안에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더운 날 아침, 아마 열한 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세 남자가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통 남자들이 길을 따라, 오솔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날 아침 가축 떼를 돌보러 나갔다가 거의 한낮이 되어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가 세 남자가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그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오, 참으로!
하나님께는 언제나 그런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 가운데 임하면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압니다. 거기에 입증이 있다는 것을 무언가가 그들에게 알려 줍니다. 아브라함은 급히 달려가 말했습니다. “내 주여, 잠시 들러 주십시오. 제가 물을 조금 가져다가 발을 씻겨 드리고 빵 한 조각을 대접하게 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길을 가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축 떼로 달려가 송아지를 잡아 종에게 손질하게 했습니다. 자기 아래쪽에 있는 장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밀가루를 반죽해서, 아니 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만들고 화덕에서 빵을 굽게 했습니다. 그것들을 가져다가 대접했습니다. 그분께서 거기 앉아 드시는 동안 그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계속 소돔 쪽을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그들 중 두 사람은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두 사람이 소돔으로 갔습니다. 부디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롯과 거기서 나올 준비가 된 이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소돔으로 갔습니다. 거기로 내려간 그 두 사람은 가서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아브라함과 함께 남아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십시오. 저 아래서도 표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소돔 사람들이 눈이 멀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언제나 믿지 않는 자를 눈멀게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는지 주목하십시오.
자, 여기 남아 서 계시면서 아브라함 앞에서 표적을 행하신 한 분이 계십니다. 어떤 역사가든 성경을 따라가 보고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교회 시대들 가운데 세상에 있는 저 명목상의 교회들, 교파들에 보내진 사람 중에, 아브라함처럼 이름이 h-a-m으로 끝나는 사람은 이전에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보셨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G-r-a-h-a-m, 그래함입니다. 맞습니다. 거기로 내려가 그들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아주 훌륭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함, 빌리 그래함은 교파들과 정치인들,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서 그 일을 힘차게 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얼마 전 사람들이 그에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고 했을 때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로 그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저 위스키 회사들 때문에 그는 애초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수십억 달러라도 썼을 것입니다. 어차피 그가 그 회사들을 문 닫게 했을 테니까요. 담배 회사들과 그런 것들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소돔 사람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사자로서 거기에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과 함께 저 위에 남아 계셨던 또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늘날의 복음 전도자들처럼 설교하러 저 아래로 내려간 그 두 사람이 아닙니다. 주목하십시오. 한 분은 저 위에 남아 계셨습니다. 둘은 저쪽으로 내려갔고, 한 분은 여기 아브라함과 함께 남아 계셨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남아 계셨던 그분은 그에게 표적을 주셨습니다. 잘 보십시오. 바로 하루나 이틀 전만 해도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었고 아내의 이름은 “사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제 네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G-r-a-h-a-m은 여섯 글자입니다.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A-b-r-a-h-a-m은 일곱, 일곱 글자입니다. h-a-m, 끝이 h-a-m으로 끝납니다. 자, 여기 위에 있는 영적인 교회, 아브라함에게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아브라함아.” (“아브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S-a-r-r-a, 사래가 아니라) “S-a-r-a-h, 사라가 어디 있느냐?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이 뭐라고 했는지 보십시오.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내가 너를 방문하리라. 내가 너를 방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인칭대명사를 보십시오. 그분께서 하신 약속에 따라 행하실 바로 그분입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너를 방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하자면) 속으로 슬며시 웃으며 말했습니다. “백 살이나 된 이 늙은 여자가, 내 주도” (아브라함을 말합니다) “늙었고, 젊은 사람들처럼 지낼 때가 지났는데.” 그녀는 “우리가 이제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어. 나도 늙었고 그도 늙었으니까.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분,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사라가 뒤에 있는 장막 안에서 이런 말을 하며 웃고 의심하였느냐?”
자,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과 같은 사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회중을 내다보시고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게 마실 물을 가져오라”… 아니, “내게 물 좀 가져다 다오”라고 하셨을 때 말입니다. 여인은 “선생님, 당신이 말을 거시는 것은 관습에 맞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관습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왕래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네가 내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분께서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이리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제게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잘 말하였다. 네게 남편이 다섯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선생님!”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과 그들, 다른 시대의 반사광 속에서 살던 그 당시 제사장들의 공회가 얼마나 다른지 보십시오. 그들은 “이것은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회중에게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 일이 대답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불쌍한 여인은 어떠했습니까? 마음속에 미리 예정된 씨가 놓여 있었던 이 여인은… 그녀는 그런 것들에 진저리가 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창녀가 되어 거리로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았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아하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사백 년 동안 우리에게 선지자가 없었는데,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오, 참으로! 그 안에 놓여 있던 씨가 생명을 얻어 솟아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와 말하는 내가 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기적을 행하셨고 자신이 그 메시아라고 증언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모세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성경 말씀이 입증된 것입니다! 그 여인은 도시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와서 제가 행한 일들을 제게 말해 준 분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 이분이 그분이 아니십니까? 그분은 제가 행한 일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저기서 장막을 등지고 서서 사라가 장막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씀하셨던 그분 안에 계신 분, 그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4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강력하고 예리하여 뼛속 골수까지 쪼개며,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분별하는 분이시니라.” 그것이 말씀입니다! 선지자가 올 때마다 그는 말씀을 가지고 왔고, 그 시대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했습니까? 예언하는 자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분별했습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의 충만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의 시대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나님의 영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 안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아멘! 보이십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소돔에서 인간의 육체 안에서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약속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일 직후에 약속된 아들이 왔습니다. 그것은 약속된 아들이 오기 전에 소돔과 아브라함의 무리가 본 마지막 표적이었습니다. 그것을 알아보셨습니까? 이제 영적인 교회가 그때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사람이 “브래넘 형제님,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말씀하신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그분은 하나님이셨다고 말했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엘로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엘로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입니다.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셨으며, 시작이요 끝이셨습니다. 엘로힘!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히브리어로 대문자로 쓰인) 엘로힘입니다. 처음에 나오는 “하나님”, 엘로힘과 같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육체 안에 나타나신 엘로힘으로서,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의 음식을 드셨습니다. 아멘!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 안에서 그분의 백성 가운데 다시 나타나실 것을 보여 주는 표적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소돔의 시대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필요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고개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그 약속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주님께서 그것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외에는 아무도 주님의 말씀을 살아 있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했듯이, “처녀가 수태하리라”고 했고 처녀가 잉태했습니다. 그것을 나타내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처녀가 잉태했습니다. 그것이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이 오실 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에서. 너는 유다의, 이스라엘의 모든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작지 아니하냐? 그러나 네게서 내 백성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그분께서 행하실 일들, 십자가에서 외치실 말씀, 어떻게 정죄를 당하시고 발과 손이 찔리실지 말입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으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리라.” 그분의 몸이 썩기 시작할 수 있는 칠십이 시간이 되기 전, 셋째 날에 “그가 일어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고, “내가…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주님께서 여기에 계심을 믿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주님은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시는 데 사용하실 눈과 팔과 다리와 입과 혼과 몸을 찾고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 오늘 밤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오시게 하옵소서! 그러면 그날 찾아와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고 했던 그리스 사람들의 갈망처럼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오, 그분을 바라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습니까! 하나님, 오늘날도 주님은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갈망하면 주님을 볼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시 후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믿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주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압니다. 주님, 말씀은 선포되었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 주옵소서.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줄에 서실 분들을 부르겠습니다. 빌리가 기도 카드를 1번부터 100번까지, 그쯤 나눠 주었다고 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여기 없군요. 그것이… 기도 카드 번호가… 누가 자기 것의 뒷면을 보십시오… 숫자와 글자가 있을 것입니다. (A, B, C, D, 또는…) 무엇입니까? A입니까? 좋습니다. A, 1번, 2번, 3번, 4번, 5번을 부르겠습니다. 이렇게 일어서기 시작하십시오. A, 1번, 2번, 3번, 4번. 4번, 일어서는 것을 못 봤습니다. 기도 카드 4번. 1번, 2번, 3번. 기도… 어쩌면 일어나지 못하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일어나지 못하신다면 누가 옆 사람의 카드를 보십시오. 카드를 가지고도 일어서지 못하는 분일 수 있습니다. 이제 서두르십시오. 저기 있군요. 4번. 5번, 기도 카드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11번, 12번. 번호가 불리면 이제 이리로 나오기 시작하십시오. 1번, 2번, 3번, 바로 이쪽으로 나오십시오. 기도 카드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11번, 자리에 서십시오. 11번, 12번, 13번, 14번, 15번, 16번, 17번, 18번, 19번, 20번, 21번, 22번, 23번, 24번, 25번. 혹시 못하시는 분이 계시면…
저 뒤에 휠체어에 앉은 청년이 보입니다. 청년, 번호가 불렸는데 올라올 수… 그럴 때는 손만 드십시오. 우리가 여기까지 오실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죠? 여기서 기도 카드는 없지만 병이 있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어디 계시든 손을 들어 보십시오. 바로 여기, 그렇습니다. 손을 드십시오. 믿으십니까? 저분들이 줄을 세우는 동안,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분께서 어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믿습니까? 몇 분이나 믿습니까? 여기 목사님들을 보십시오. 형제님들, 성경은 오늘날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까? 그것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그분은 어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할 때, 그것을 믿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러면 오늘날 그분께서는 어떻게 행하시겠습니까? 어제 행하셨던 것처럼 행하셔야 합니다. 맞습니까? 오늘 밤 그분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분의 몸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성령께서는 그분을 알리시기 위해 이 건물 안에 계십니다.
주목하십시오. 보십시오. 그 당시 어느 날 한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그 여인에게는 기도 카드가 없었지만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분을 나무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주님, 그 말씀은 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 주님을 만지려고 하는데 왜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하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약해진 것을 느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힘’을 뜻하는 능력이 그분에게서 나갔습니다. “나는 약해졌다.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만졌다.” 그분은 돌아서서 회중을 바라보시며 그 믿음의 통로가 있는 곳을 찾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끌어안으며 “오, 랍비여, 저희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하고 이런저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믿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댔고 자기가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돌아서서 회중을 바라보시다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에게 혈루가 멎었고 병이 나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그분이 죽지 않으셨으며, 오늘날도 언제나 그러하셨던 것처럼 살아 계시다고 선포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소돔의 시대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기 위에 어떤 은사를 두셨든, 거기에 응답할 은사가 저 아래에도 있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어떤 도시에 가셨을 때, 성경은 “그들의 불신 때문에 그분께서 행하실 수 없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저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가능한 길입니다.
기도 줄이 준비되었습니까? 이제 모두 십 분 정도만 경건하게 계십시오. 거기까지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물다섯 명에서 서른 명쯤 서 있습니다. 자, 기도 줄에 서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 저와 초면이며 제가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기도 줄에 계신 분들 한 분 한 분 모두요. 이제 회중 가운데 계신 분들, 제가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자, 친구 여러분,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시겠죠?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 강단 위에 계신 이 모든 목사님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제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습니까? 마지막 날들에, 주님께서 오시기 직전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때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자, 그것이 오늘날을 위해 예언된 말씀입니다. 루터의 빛도, 웨슬리의 빛도, 심지어 오순절의 빛도 아닙니다. 이제는 그 길을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루터도 좋습니다. 감리교도 좋습니다. 침례교도 좋습니다. 그들 모두, 오순절교도 좋습니다. 오늘 밤 여기에는 온갖 교파의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개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 하는 말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만일 그… 감리교인에게 루터의 가르침을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다. 감리교인은 성화를 믿는데 루터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오순절교인에게 “성화가 전부다”라고 말해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은사들이 회복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말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마지막 교회 시대이며, 성경은 더 이상의 교회 시대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백성이 함께 모이는 일은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 마지막 표적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약속된 아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까? 손을 드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임을 믿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씨여, 여러분의 표적을 받으십시오! 그것은 저 바빌론에 있지 않습니다. 저 교파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기, 저 바깥의 혼란에 속하지 않은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여기 한 여자분이 계십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분이고, 저와 나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평생 이 여자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분이 아프시다면 제가 치유해 드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이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몇 분 전에 이분이 손을 드는 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저는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거기 서 계신 한 여자분입니다. 오늘 그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 카드 뭉치를 가져다가 모두 섞은 뒤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은 1번을 받고 저 뒤에 있는 사람은 10번, 다른 사람은 15번, 7번, 몇 번… 이런 식입니다. 날마다 바로 여러분 앞에서 모두 섞습니다. 그리고 번호를 부르면 사방 곳곳에서 불려 나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기도 카드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거기 앉아서 믿으십시오. 왜 못… 오늘 밤 자신을 꼬집어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어느 때에 살고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아시겠죠? 친구 여러분,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거의 끝났습니다! 자, 만일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고, 그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들에 아브라함이… 약속된 아들이 오기 직전에 그 천사,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아브라함 앞에서 행하신 바로 그 표적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셨다면… 예수님께서 같은 일이 오늘날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원자 무기들과 교파들과 그 모든 것들, 그것들이 빠져 있는 혼란을 봅니다. 저 아래 빌리 그래함과 오럴 로버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 아래 있는 오순절의 사자와 교파의 사자, 그 모든 일이 진행되며 표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봅니다. 빌리 그래함은 그야말로 신학자입니다. 교파가 믿는 그대로입니다. 오럴 로버츠는 그야말로 치유자입니다. 바로 오순절이… 그러나 여기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씨에게는 또 다른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저 아래 교파들 가운데 있습니다. 교파들 밖에서는 백성을 불러 모으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일 밤까지 미뤄 두겠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저 여자분을 모릅니다. 저분에게 등을 돌리겠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저 여자분에 대해 무엇인가 말씀해 주신다면, 어쩌면 가정 문제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병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분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때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오늘 밤 행하신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들에 이곳에 계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온 세상이 소돔의 상태에 빠져, 우리가 소돔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오늘 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이 진리라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녀들이요 씨인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자, 제가 그 여자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는 생각, 또는 텔레파시니 뭐니 하는 온갖 생각을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없애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텔레파시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텔레파시를 쓰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강신술사가 복음을 전하고 표적과 이적을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일하시다고 선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사람들이 눈멀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성경이 그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까?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 “마지막 날들에 두 영이 할 수만 있다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까지도 거의 속일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었고, 하나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오늘 밤 제가 주님에 대해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옵소서. 주님,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종들이 겸손히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몸을 사용하실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은사란 무엇입니까? 손에 쥐고 이리저리 자르고 돌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어떻게 자신을 비켜 세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은사란 그저 자신을 비켜 세우는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제 뒤에 있는 여자분은 치유받지 못하면 곧 죽게 될 것입니다. 제 뒤에 있는 여자분은 최근에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암에 걸려 있습니다. 유방과 폐에도 암이 있습니다. 바로 최근에 기도를 받았고, 자기가 치유받았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자매님, 사실입니까? [그 여자가 “네, 정말 사실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회중을 향해 손을, 손을 흔드십시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좋습니다. 가셔서 지금 믿고 계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 아멘.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회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라고 하십니다.
여기 자기… 여기 앉아 있는 여자분, 줄 끝에 있는, 바로 저기 두 번째 여자분 말입니다. 제가 방금 돌아섰을 때 무엇인가가 보였습니다. 이분의 팔을 두른 것이 있었고 혈압을 재려고 바람을 넣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고혈압이 있습니다. 자매님, 맞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믿으시면 혈압이 내려갈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그때와 똑같으십니다.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제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어린아이처럼 보이는군요.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의 마음을 아시지만 저는 모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제게 나타내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제가 그것을 말씀드리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자매님의 형제분입니다. 아주 위중한 상태이며, 여기서 북쪽에 있는 도시, 툴레어에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고 백혈병에 걸려 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죽을 것이라며 포기했습니다.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믿습니까? [그 여자가 울면서 “네”라고 말한다.] 좋습니다.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가져다가 그에게 얹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아멘. 여러분은 믿습니까? 저는 평생 이 여자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자, 인간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 보십시오.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들에 여기에 계시면서, 소돔의 시대에 그러하셨듯이 (바로 아브라함의 씨 앞에서) 자신을 입증하시리라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자, 여기 이 여자분을 저는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초면입니다. 아마 평생 처음 만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습니까? 이것이 말씀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만일… 이 말씀은 여전히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분별하는 분이심을 아십니다. 맞습니까? 믿을 수만 있다면, 말씀은 또한 치유자이십니다. 믿습니까? 자매님도 어두운 그림자에 싸여 있습니다. 암입니다. 그 암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장의 아래쪽에 있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합니다. 이제 치유받을 것을 믿습니까? 가십시오.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모두 믿습니까? 그분께서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서로 초면입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우리가 서로 초면이라면 회중이 알 수 있도록 함께 손을 듭시다. 저는 평생 이 여자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기 계신 여러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할 때, 그들은 한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밖에 계시면서 다시 들어가실 수 없었던 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자, 이 여자분은 저와 초면입니다. 저는 평생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치유자이십니다. 치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님께서 제게 설명해 주신다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첫째로 기도받기 원하는 것은 귀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이제 잘 들리는 귀에 손가락을 넣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잘 들리는 귀에요. 좋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고 가십시오. 그리고… 하지 마십시오… 믿으신다면 더 이상 담배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가십시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초면입니다. 저는 평생 자매님을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에 관해 무엇인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회중 여러분 모두 믿으시겠습니까? 저기 계신 분 중에 이 여자분을 아는 분이 계십니까? 회중 가운데 이 여자분을 아는 분이 계십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실 것입니다. 이것으로 확실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을 밝혀 줄 것입니다.
자, 지난 몇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저… 제가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눈에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별하는 일입니다… 아시겠죠? 이것은 성령이십니다. 제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된 말씀입니다. 사도들의 시대 이후로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오기 바로 직전에, 롯의 시대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자, 성령께서 이것을 나타내 주신다면, 마음을 다해 믿으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다친 곳이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해서 목의 척추뼈 몇 개가 제자리에서 벗어났습니다. 신장 하나도 제자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습니까? 나을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장병을 치유하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가셔서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자매님, 오십시오. 이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치유하심을 믿습니까? 좋습니다. 가시면서 믿으십시오. 그러면 심장이 나을 것입니다. 이리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등의 병을 치유하여 낫게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가셔서 믿으십시오. 그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하실 일은 그것뿐입니다! 자매님,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위장병을 치유하심을 믿습니까? 가서 저녁을 드십시오.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관절염을 치유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가셔서 믿으십시오. 낫게…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오십시오. 마음을 다해 믿습니까? 믿습니까? 이번에도 관절염입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가셔서 믿으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저기 계신 분들 가운데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믿습니까? 여기 빨간 옷을 입고 앉아 손을 들고 계신 이 여자분, 바로 여기 있는 분은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좋습니다. 저기 옆에 계신 여자분에게 손을 얹으시고, 그분의 목소리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아멘. 믿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기 앉아 있는 남자분은 출혈이 있습니다. 선생님,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분, 믿습니까? 네, 출혈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을 것을 믿습니까? 옆에 계신 여자분도 출혈이 있고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손을 들고 받아들이십시오. 믿으십시오. 자매님 옆에 계신 이 여자분은 다리와 엉덩이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매님, 이것이 맞다고 믿습니까? 치유받을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손을 들고 “저는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좋습니다. 그 옆에 있는 여자분은 감염이 있습니다. 안경을 쓴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그 감염을 치유하실 것을 믿습니까? 손을 들고 “저는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좋습니다. 믿으십시오.
그 옆에 있는 여자분은 신장병이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신장병을 치유하실 것을 믿습니까? 좋습니다. 손을 들고 받아들이십시오. 그 옆에 있는 어린 소녀는 갑상선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갑상선종을 치유하실 것을 믿습니까? 손을 들고 받아들이십시오. 마음을 다해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받아들이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일어서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성령께서 이 건물 안에 임하셔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치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