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종들이자 복음 안에서 저의 동료인 동역자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을 참으로 큰 특권으로 여깁니다. 저는 연설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형제님들과 함께 모이고 싶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특히 세상에서 흔히 말하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후원해 주신 분들, 그러니까 집회 하나를 후원해 주신 분들과 말입니다. 저는 제가 힘써 지키려는 소망의 이유를 말씀드리고, 그것이 미신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형제님들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처음 갔을 때... 오늘 아침 저기 구석에 계신 좋은 친구 칼 윌리엄즈 형제님과 함께 즐겁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칼 윌리엄즈 형제님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윌리엄즈 형제님과 자매님, 잠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형제님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순복음 실업인회 지부 회장이십니다. 윌리엄즈 형제님과 자매님입니다. 형제님은 제게 참으로 소중한 친구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주 집회와 그 전 주 피닉스에서, 저는 피닉스에 처음 갔을 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릴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보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제가... 아버지는 말을 타시는 분이셨고, 저도 카우보이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서부 잡지도 좀 읽고 영화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분명히 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 꿈은 서부로 와서 말을 타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슈퍼스티션산에 관해서도 들었고, 물론 로스트 더치맨에 관해서도 들었습니다. (로스트 더치맨 광산을 말하는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전설인 듯합니다.)
요즘 우리 고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로데오 철이 되니 모두 청바지에 커다란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지나간 시대를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그들 안에 그렇게 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사회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대, 다른 시대에 누군가가 말했던 것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옛날 방식, 헛간에서 추는 춤이나 카우보이의 무슨 풍습 같은 것을 원합니다. 그들 안에서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 참된 것은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롭게 꾸민 복음, 오늘 이 시대에 맞는 것, 그럴듯하고 환상적인 것과 세련된 문화와 교육을 원합니다. 그들 안에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 참된 것, 옛날 그대로의 복음은 원하지 않습니다. 돌아가려면 그리로, 바로 그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신 다른 것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속한 무언가가 나타나면, 그들에게는 아주 놀랍고 낯설며 자신들의 행동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존 웨슬리, 쌩키, 무디, 피니, 낙스, 칼빈,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사역자들보다 그분들을 더 존경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분량으로 섬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들이 섬기던 것과는 다른 분량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내일이 있다면, 그때의 시대가 있고 그 시대를 위한 복음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완성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실 때까지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그날 아침 손전등을 들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슈퍼스티션산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작은 손전등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커다랗고 으스스한 그림자들, 그리고 금을 찾다가 그 산에서 죽은 사람들... 참으로 많은 미신이 얽힌 산이었습니다. 작은 손전등으로 주변을 살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무서웠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해가 뜰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빛의 왕인 해가 떠오르자 제 작은 손전등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것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슈퍼스티션산은 무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그 산으로 들어가 직접 살펴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큰 빛인 해는 하나님께서 발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것이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빛이 비치자 무서운 것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오늘날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형제님들 가운데서 많은 오해를 받아 왔는데, 그 큰 빛, 왕이신 빛이... 다른 빛은 없습니다. 오늘 저 밖에서는 우리가 만들어 낸 어떤 빛도 밝게 빛나지 못합니다. 야구장의 조명을 아무리 많이 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빛을 보려면 그 불빛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 태양은 그 모든 빛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미신 위로 떠오르면, 그 미신들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무엇이 진리인지, 우리가 사는 때가 어떤 때인지 알고 싶습니다.
형제님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우리는 여러 교단에 속해 있으며 서로 다른 교단을 대표합니다. 저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콜로라도에서 소를 몰았습니다. 봄철에 소떼를 모아 아라파호 숲으로 몰고 올라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여러 날 동안 안장의 앞 돌출부에 다리 하나를 걸친 채 앉아서, 소들이 사유지에서 이동을 막는 울타리를 지나 숲으로 올라갈 때 산림 관리원이 소를 세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곳에 소 한 마리를 들여놓으려면 각 목장에서 건초 한 단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기억에는... 한 단이 아니라 1톤입니다. 아, 소 한 마리에 2톤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낙인이 찍힌 소를 상공회의소에서 얼마나 들여보내도록 허락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낙인을 쓰는 이 목장에서 건초가 얼마만큼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저 위 숲에 소를 넣어 풀을 뜯게 하는 것입니다. 단, 그 숲에 소가 너무 많지 않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들어오려 할 테니, 소들을 먹일 수 있을 만큼만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그 숲, 아라파호 숲의 그 구역에 방목하는 것은 헤리퍼드 협회였습니다. 저는 산림 관리원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우리가 쓰던 낙인은 오래된 (터키 트롯) 터키였습니다. 우리 바로 위쪽에는 트라이포드가 있었습니다. 그라임스 씨는 일꾼을 열다섯 명쯤 두고 있었습니다. 소도 수백 마리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목장에도 소가 좀 있어서 4백 마리에서 5백 마리쯤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라임스 씨는 아마 1천5백 마리에서 1천8백 마리까지 들여보냈을 것입니다. 그 낙인은 바 다이아몬드 바였습니다.
저는 그 산림 관리원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그곳에 서서 지나가는 소들을 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소에 무슨 낙인이 찍혀 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확인하는 것은 귀에 단 혈통표였습니다. 등록된 헤리퍼드종이어야 그곳에서 풀을 뜯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혈통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암소는 교배를 해야 합니다. 송아지는 족보 있는 수소에게서 나야 합니다. 그래서 암소 몇 마리마다 수소 한 마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들은 모두 한데 섞여 있었습니다. 모두 등록된, 혈통이 분명한 소, 곧 순종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헤리퍼드 협회의... 그 혈통을 바르게 이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심판 때도 그럴 것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무슨 낙인을 달고 있는지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혈통표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일하실...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성회로 만들려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를 오순절 성결교로 만들려고 해도 결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연합교회로 만들려고 해도 결코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 모두가 만날 수 있는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셨던 유일한 곳, 앞으로도 사람을 만나실 유일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공통된 것을 갖습니다.
얼마 전 한 젊은 부부가 헤어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몇 해 동안 함께 살다가 의견 충돌이 생겼습니다. 그 젊은 어머니, 그 부인과 남편은 헤어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변호사는 두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 사람을 시켜 여러분의 물건을 팔고 재산을 처분하기 전에, 이혼을 하려거든 두 분이 직접 재산을 나누십시오.” 두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응접실로 들어갔습니다. 응접실에 있는 물건들을 놓고 말다툼하고 싸우고 온갖 소동을 벌였습니다. 거실에 가서도 그랬고, 식당과 부엌에서도 그랬습니다. 마침내 다락방 위에 물건들을 보관해 두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둘 다 위층 다락으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동부에서는 지붕 밑 다락방이라고 부릅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 올라가 낡은 궤짝을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옷가지며 다른 물건들이... 손을 뻗어 이것저것 꺼내며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들어 올리자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었습니다. 그것을 잡으려다 서로의 손을 맞잡게 되었습니다. 작은 흰 신발 한 켤레였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결혼하여 아기를 얻었지만 그 아기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이건 내 것이야.”라고 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도 “이건 내 것이야.”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가지고 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사람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고, 이혼은 취소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침례교인과 감리교인, 하나님의 성회와 하나님의 교회, 그 밖에 어느 교회 사람이든... 모든 것이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 자신의 전통입니다. 하지만 형제님, 우리에게 공통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부활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이 있기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녁 빛이 비치는 것이 보입니다. 나무에서 털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고, 쐐기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습니다. 이 벌레들이 같은 벌레이며, 다만 삶의 단계가 다를 뿐임을 우리가 압니다. 교회들 사이의 차이도 니케아에서 시작된 그 옛 로마의 벌레가 여전히 하는 일임을 압니다. 하나가 남긴 것을 다른 것이 먹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토록 혼란한 가운데 있고, 이제 큰 협의회, 곧 세계 교회 일치 협의회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해가 떠올라 미신의 실상을 드러냈듯이, 주님께서는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쐐기벌레와 털벌레 등이 망가뜨린 그 모든 해들을 다시 회복해 주시고, 그 나무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은혜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내려 주셔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살아 있는 말씀을 향한 살아 있는 믿음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형제님들, 제 목이 좀 쉬었습니다. 저는 연설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함께 모여 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분이 아시도록 이곳에 왔습니다. 제가 이 말씀과 이 시대에 약속된 것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보시면, 제게 오셔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제게 와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것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보혈 아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도와드리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부흥 집회가 끝난 뒤 이 지역이 더 나은 곳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목적을 위해 함께 모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친숙해지고, 더 잘 알고, 교제하려고 모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서로 알아 가려고 이 모임을 마련한 것입니다.
모든 시대에 늘 그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무언가 경이로운 일이나 색다른 일이 조금만 일어나도, 육적으로 흉내 내는 무리가 뒤따릅니다. 그러면 온갖 미신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사실이 아닌 말들이 그 일에 관해 나돕니다. 늘 그랬음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은 사생아라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니셨습니다. 성경에 말씀된 그대로이셨습니다. 그분을 그렇게 부르던 사람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분의 제자들이 와서 시신을 훔쳐 갔다고 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살아 계신 그분의 임재를 통해,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고 압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고 여러 시대에 걸쳐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종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성경에서 짧은 본문을 읽고, 여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함께 모이는 시간을 잠깐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위에서 오는 바람이 제게 별로 좋지 않군요. 소리가... 괜찮습니다. 로이 형제님, 지금은 그냥 두십시오. 몇 분만 더 있을 것입니다.
몇 해 전, 약 15년 전에는 이발사인 한 분과 함께 사냥을 다니곤 했습니다. 그분은 발 치료도 했습니다. 발의 굳은살을 깎아 주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때는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그 이발사 친구가 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아니, 제 머리를 깎고 있었는데 어깨에 비듬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자네는... 샴푸를 좀 해 줘야겠어. 옷에 비듬이 아주 많군.” “좋아, 지미.” 하고 제가 말했습니다. 너구리 사냥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뒤로 손을 뻗었습니다. (저는 그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일요일 성경학교에서 가르쳤고,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럭키 타이거 샴푸인 줄 알고 집어서 제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석탄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주 동안 강단에서 털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불편합니다. 아시겠죠? 그 작은... 제 두피가 아직도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닙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어젯밤에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목이 자꾸 막힙니다. 아내는 쓰라고 가발을 사 주었습니다. 강단에서는 모자를 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무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모자를 쓰면 사람들은 주교가 되고 싶으냐고 합니다. 참 곤란합니다. 아내가 사 주었지만 저는 아직 쓸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뭔가 잘못 비칠까 봐 두렵습니다. 아시겠죠... 그냥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성경을 조금 읽고 싶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제 말은 어긋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각 시대마다...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말씀이셨습니다. 말씀이란 표현된 생각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처음부터 끝을 아시고 자신의 생각 속에 가진 전체 계획을 그저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이 나타납니다. 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리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땅을 땅에서, 아니, 물에서 나누신 때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셨습니다. 모세를 이집트에서 분리해 내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언제나 분리하십니다. 그런 때가 오면 사람들, 곧 이런 사역을 맡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자기 백성에게서 떠나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상속 백성인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그는 그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온 그 환상 계시에 불순종하지 아니하여.” 형제님들, 저도 똑같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시겠죠? 오늘의 환상, 오늘을 위한 약속의 환상, 오늘 이 땅에 계신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우리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나라를 이쪽저쪽으로 두루 다녔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경이로운 표적들이 있었습니다. 그 표적들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완전한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만 번에 수천 배, 또 수천 배나 되는 그 많은 경우 중에 어느 하나도 어긋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귀라고도 하고 온갖 이름으로 부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집 주인을 비엘세붑이라 불렀거든, 그분의 제자들에게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자, 저를... 성경이 저에 관해 증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전해진 메시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려고 경이로운 현상을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알리려고 그런 현상을 보내십니다. 사역이 경이로운 현상 가운데 나아가면, 그 뒤에 온갖 육적인 것들이 따라붙습니다.
며칠 전 마르틴 루터에 관해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톨릭교회에 항거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니었다. 마르틴 루터에게서 경이로웠던 것은 종교개혁을 뒤따른 온갖 광신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들 앞에 무서운 것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참된 빛이 떠오르면 그런 무서운 것들은 모두 사라집니다. 아시겠죠? 그 무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고 그 실상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여러 부류가 뒤섞인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모세가 경이로운 일을 행하자, 그 무리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고라는 “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말이오? 당신 말고도 거룩한 사람들이 있소.”라고 하려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너는 그들에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그런 일이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 흉내 내는 자들이 뒤따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 흉내가 불러오는 것이... 업쇼 하원의원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분의 미망인께서 이곳 집회에 참석하시려고 어젯밤 비행기를 타고 오셨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그분은 집회에서 치유받으셨습니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아닌 것은 될 수가 없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자신이 아닌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저... 위대한 교향곡처럼, 작곡가가 박자를 짚어 주는 대로 우리가 따라가기만 한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지금 이 시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형제님들이 처음 시작했을 때, 여러분의 개혁자들이 여러 해 전 오순절 운동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은사들이 회복되고 방언하는 일 등이 교회에 들어왔으며, 하나님께서 은사들을 교회에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개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선조들에게 있었습니다. 그 개혁 때 장로교와 루터교와 침례교 등에서 떠나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당시에는 나사렛교회가 한창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순례자 성결교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메시지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교회든 메시지든 일단 조직화되면 선반 위에 얹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여기 역사가들이 계시지요. 그중 한 분은 제가 압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일단 조직화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가톨릭교가 첫 조직이었고, 성경에서는 그것을 음녀라고 부릅니다. 그 여자는 창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같은 것, 곧 조직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이 세계 교회 일치 협의회에서 어디로 모이는지 보입니까? 저는 이 말 때문에 조직들 사이에서 쫓겨납니다. 그 형제님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닙니다. 저를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쫓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라오디게아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교회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며 다시 들어가려고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시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밖에 계십니다! 물론 더 이상의 교회 시대들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입니다. 라오디게아가 마지막 시대였습니다. 오순절이 바로 그 라오디게아 시대이고,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오순절보다 더 나아간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사람과 같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진화를 통해 (더 높은 종으로 올라가면서) 인간보다 더 높이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은 더 이상 나아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도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보다 더 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들 모두가 거기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교회 밖에서 다시 들어가려고 하십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처음 여기 계셨을 때도 사람들이 그분께 그렇게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말씀은...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참된 말씀은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뒤돌아보며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눈이 멀어 있었을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뒤돌아보며 “우리가 어떻게 그토록 눈이 멀어 있었을까?”라고 하지 않을까요? 아시겠죠? 형제님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 “안타깝다.”고 하지 맙시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십니다. 그들은... 그들은... 그들이 거절하는 것은 말씀, 나타난 말씀, 나타난 약속, 이 시대를 위한 약속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다른 빛의 반사광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영국에서 사상 최대의 강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거짓 신호등을 이용한 일이었습니다. 7백만 달러를 강탈했습니다. 세상은 그런 강도 사건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야드도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그 강도 사건은 거짓 신호등을 이용해 저질러졌습니다. 형제님들,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십니다. 교회가 당한 가장 큰 강도 사건도 거짓 빛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시대의 반사광 속에서 사는 것, 곧 루터, 마르틴 루터나 웨슬리, 혹은 우리 오순절 선조들이 말한 것에 의지해 사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오늘이 아닙니다. 여기 오늘을 위한 약속이 있습니다. 여기 말씀과... “그렇지만 당신은 그것을 잘못 해석했습니다.”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타내실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직접 해석하시는 분이십니다.
50년 전 저 오순절 선조들에게 말씀을 잘못 해석했다고 하면서 “방언 같은 것은 없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그런 말을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직접 해석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말씀 자체가 해석해 줍니다. 아시겠죠? 다른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신부 나무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참으로 그 나무가 자라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조직화되는 즉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조직화되어 이 가지 쪽으로 뻗어 나갑니다. 그러면 요한복음 15장에 따라 그 가지가 잘립니다. 그분께서 그 가지들을 잘라 내십니다. 다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완전히 자라면 그 나무의 중심, 맨 꼭대기에서 열매가 나옵니다. 더는 올라갈 수 없는 바로 그 꼭대기에서 말입니다. 마지막 교회 시대가 여기에 있습니다. 완전히 성숙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부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에덴동산에 계셨던 생명나무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생명나무이셨습니다.
동산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중 한 나무는 만지기만 하면... 여기에 관해서는 서로 견해가 다르므로 깊이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다만 불순종의 나무였다고 합시다. 그 나무를 만지자마자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 다른 나무에서 떼어 놓아야 했습니다. 이 생명나무를 먹으면 선악을 아는 채로 모두 살아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이신 여러분은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견해가 있고, 그 나무가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아마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생명나무이시라는 것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마시며 즐거워하던 그 축제 때 예수님께서 물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광야에 있던 그 반석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은 모두 죽었느니라. 그러나 나는 생명의 빵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그 생명나무입니다. “이 빵을 먹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이 생명의 빵입니다.
로마인들은 그분을 조롱하려고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나무에 달리는 자는 저주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하려 한 것입니다. 그분은 멸시받고 거절당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이 땅에서 가장 낮은 분이 되셨습니다. 여기 계실 때 가장 낮은 도시에 가셨습니다. 그 도시에서 키가 가장 작은 사람도 그분을 보려면 내려다봐야 했습니다. 삭개오였습니다. 그분은 가장 천한 이름으로 불리셨습니다. 가장 혹독한 대우를 받으시고, 매달려...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그렇게 여겼습니다. 세상은 그분을 그렇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보려면 내려다보셔야 할 만큼 그분을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분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그렇게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 창세 전 그분의 생각의 속성들이라면, 우리도 그분을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형제님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메시지는 언제나 경이로운 현상 뒤에 따라옵니다. 예수님께서 젊은 랍비로 설교를 시작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실 때, 모두 자기 교회에 그분이 오시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경이로운 현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분께 있는 것이 결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분이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경이로운 현상에 뒤따르는 사역이 온 것입니다. 그러자 아무도 그분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일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다음은 여러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자, 여기 권위 있는 이 오래된 성경을 조금 읽읍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아침 잠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호수아서 10장 12절부터 읽읍시다. 그런데... 여기서 몇 시에 나가야 합니까? 몇 시까지 이곳을 비워야 하지요? 그러니까... 한 15분에서 20분 이내로 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괜찮겠군요. 잠깐만요. 그때에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모리 족속을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주께 말하고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이르되, 해야, 너는 기브온 위에 멈추어... 멈추어 서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해가 멈추어 서고 달이 멈추어서 마침내 백성이 자기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았는데 이것이 야셀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이렇게 해가 하늘 한가운데 머물러 서고 거의 온종일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더라.
이제 여기서 짧은 본문을 택하려고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연설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뜻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어깨를 맞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는 일을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조직이나 세상의 사람들을 앞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나타나신 하나님을 앞세우려는 것입니다. 누가 해석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직접 해석하시며 그것이 무엇인지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누구이신지 증명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런 일들이 말씀된 성경을 읽기만 했어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말씀을 나타내고 계심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지금도 말씀이십니다.
이 주제로 한 15분 동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되도록... 여러분 모두 들으시듯이 제 녹음테이프는 서너 시간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주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는 저녁에 30분쯤 말씀드리고 기도 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더 좋아하시리라 믿습니다. 예전에는 몇 시간씩 계속해서 11시 반이나 12시가 되어야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제는 예배를 45분에서 한 시간 정도로 마치려고 합니다. 여기서 “역설”이라는 주제를 택하고 싶습니다. “역설”이라는 이 한마디입니다. 저는 이런 조찬 모임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대개는 모이지만, 아마 토요일쯤이나 다른 때 마련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더스 형제님이 어젯밤 늦게 오늘 아침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몇 분 동안 참고하려고 성경 구절 몇 개를 여기 적어 두었습니다.
자,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역설”은 믿기 어려우나 사실인 것입니다.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미치는 영역 밖에 있지만 그래도 사실입니다. 역설이지요.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3절을 읽으면 이 세상 자체가 하나의 역설임을 알게 됩니다.
몇 주 전 뉴욕시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모리스 강당에서 나와 아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보니 수천 명이나 있었습니다. 여자들처럼 머리를 한 남자들이 있었는데, 이른바 부풀린 머리를 하고 귀걸이와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었습니다. 백인과 유색인 아이들도 있었고, 제 말뜻을 아실 것입니다. 남녀가 함께 있었고, 그들이... 가엾은 할머니 한 분이 길에서 넘어졌는데, 아무도 일으켜 드리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분의 오렌지를 줍는 일을 돕고 일으켜 드렸습니다. 일흔 살쯤 된 할머니였습니다. 그분은 저를 아주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제가 택시 기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 누구든 뉴욕에 와서 제정신인 사람처럼 행동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외지인인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겁니다. 여기 온 사람을 보십시오. 얼마 안 가 똑같이 됩니다. 여기 오면 모든 걸 해 보려고 하지요. 저 길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어 가도, 누군가는 술 취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손도 대지 않아요. 그냥 거기 누워 죽게 둡니다. 일부러 그러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겁니다.”
형제님들, 우리의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어떤 특정한 신조나 특정한 것의 흐름에 휩쓸려서는 그대로 머뭅니다. 아시겠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입니다. 우리 조직을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 지역사회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집 계단을 빨갛게 칠해 놓고 이웃이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그들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자매님 한 분이 어떤 옷이나 모자를 사면, 이웃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맞추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바지와 상의가 서로 어울리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체험이 말씀과, 하나님과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빌리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하나님은 이 사람들이 모두 누구인지 어떻게 아세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얘야.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렴. 자, 저 위에 거의 붙어 있는 작은 별 두 개가 보이니?” “네.” 제가 말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과학에서는 그 별 하나가 시속 1백만 마일로 지구를 향해 출발해도 여기에 오는 데 수백만 년이 걸린다고 한단다. 그만큼 멀리 있는 거야. 그런데도 저 두 별 사이는 우리와 별 사이보다 더 가깝단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별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구나. 저 별들이 우리에게 가까운 것보다 말이다.” 빌리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렇게 하세요?” 저는 “그분은 무한하시단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아인슈타인이 이 은하와 별자리에 관해 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의 훌륭한 강연들 중 마지막 무렵의 강연 하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구를 떠나 빛의 속도로, 곧 초속 18만6천 마일입니까? 초속 18만6천 마일로 가서 1억5천만 광년을 여행하면 그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돌아오는 데도 1억5천만 광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것은 수십억 년이 너무나 많아서, 9라는 숫자를 지구 둘레에 줄지어 써도 다 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햇수로 말하자면, 그가 지구를 떠나 있는 동안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시간으로 50년입니다.
우리는 몹시 서두릅니다. 작은 개미 한 마리가 투산에서 출발하여 여기 베이커즈필드까지 온다고 합시다. 40년 동안 얼마나 올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마 반 마일쯤일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개미에게는 그것이 대단히 긴 거리입니다. 우리에게는 차로 열두 시간이고, 제트기에는 몇 초에 불과하며,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오후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바울은 어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이를테면 그렇습니다. 시간을 따져 보면 그만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도들과 다른 이들은 어제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서두릅니다. 여기 머물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원을 바라볼 때 생각해 보십시오...
위대한 철학자 아인슈타인이, 아니, 위대한 과학자가 말하기를, 이 지구의 기원을 설명하는 합리적인 길은 하나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1장 3절에 나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것들로 세상을 지으셨음을 아느니라...” 그분께서 말씀하여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지구가 하늘에 떠 있습니까? 궤도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늘의 모든 것과 그 별자리들이 어떻게... 그 별들 중 하나라도 움직인다면... 밤에 나가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하시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대기 중의 빛을 본 것입니다. 별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별이 움직이면 우리도 함께 움직일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아주 조화롭게 어우러져 서로를 붙들어 줍니다. 사람들도 그렇게 교회를 하나로 붙들어 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시겠죠? 길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직접 해석하시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해석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역설임을 알게 됩니다. 가장 위대한 역설들 중 하나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참으로 많은 역설이 있었습니다. 믿기 어려우나 사실인 일들입니다. 노아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까지 땅에는 비가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구는 태양과 똑바로 균형을 이루며 서 있었습니다. 불신과 불순종이 지구를 균형에서 벗어나게 하고 뒤로 기울게 해서,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바다에서 수증기를 끌어 올려 비를 만들게 한 것입니다. 땅에는 비가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와 비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과학이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자, 그들에게 과학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 피라미드를 지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지을 자재도 없고 재료도 없으며, 그 큰 돌들을 거기까지 들어 올릴 기계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대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형제님들, 여기서 잠깐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에서 인용했습니다. “그 안에서... 여덟 혼이 물에 의해 구원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덟 혼입니다. 수천만 명이 모인 세계 교회 일치 협의회가 무슨 소용입니까? 아시겠죠? 그것이 구원하지 못합니다.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노아 시대에 여덟 혼이 물에 의해 구원받았습니다. 롯 시대에는 누가 구원받았는지 보십시오. 광야의 여정을 끝마친 이들이 누구였는지 보십시오.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과학이 크게 발달한 시대입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레이더로) 하늘을 탐지하고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 위에는 물이 없소. 어디에서 물이 온다는 거요?”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물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노아는 그것을 믿었고 자기 집안을 구원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믿는 백성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역설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들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믿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 역설이 일어나리라고 예고하는 사람들을 시험하십니다. 그들에게 시련을 주십니다. 자신의 방식을 생략하거나 바꾸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형제님들, 그것을 아십니까? 물론 아시지요. 그분은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처음 시작하신 방식 그대로 계속 이어 가십니다. 세상을 다루실 때도 오직 노아 한 사람의 설교를 통해 다루셨습니다. 모세 시대에 백성을 구해 내라고 네 사람이나 한 조직을 내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동시에 두 사람을 두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품도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십니다. 그분께 필요한 것은 자신이 다스리실 수 있는 한 사람뿐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본보기입니다. 모세를 통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땅에 있을 때에도, 두 사람이 동시에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은 들려 올라갔고, 다른 사람은 그의 겉옷을 받았습니다.
요한이 이 땅에 왔을 때, 그는 그때를 위해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는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사야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보라, 내가 내 얼굴 앞에 내 사자를 보내어 백성 앞에서 길을 예비하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라기 4장이 아니라 말라기 3장이었습니다. 요한은 말라기 4장이 아니라 말라기 3장의 엘리야였습니다. 말라기 4장,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에는 땅이 뜨거운 열기로 불타고 의인들이 천년왕국에서 그 재 위로 걸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시대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요한이 제자들을 그곳으로 보냈을 때... 요한은 이미 예수님 위에 임한 표적을 보고 “이분이시다.”라고 했는데도, 예수님께 최소한의 존경만을 표했습니다. 광야에서 그에게 물로 침례를 주러 가라고 말씀하신 분이 “영이 내려와 머무는 것을 네가 보거든, 그가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그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간 뒤 독수리 같은 그의 눈에 막이 덮이자, “가서 그분이 참으로 그분이신지, 아니면 다른 분인지 물어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요한에게 큰 존경을 표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그런 사람들은 칼을 다루지 않는다. 아기들에게 입 맞추고 죽은 사람들을 묻어 준다. 그런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아무 바람에나 흔들리는 갈대냐? 어느 조직에서 다른 조직보다 조금 더 주겠다고 하거나, 어떤 지역사회에서... 그러면 그 지역사회로 옮겨 가는 사람 말이냐? 왜냐하면...”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선지자보다 더 큰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는 언약의 사자였습니다. 그는 그 사이의 틈이었으며, 율법과 은혜를 잇는 쐐기돌이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선지자보다 더 큰 자니라.” 그분은 “그는 한동안 밝게 비치는 빛이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빛이 된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나타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께서 나타나시자 요한은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되 그분은 반드시 흥하셔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요한은 가야 했고, 예수님은 남으셨습니다. 아시겠죠? 언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경이로운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역설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흔들리고, 파도가 아마 오늘날의 산들보다 더 높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방주를 띄우셨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그 자리에서 흔들려... 그 별들이 뒤로 움직였든지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지구가 궤도에서 벗어나 그 거대한 파도 속에서 흔들렸을 때, 그 작은 나무배가 밤낮 40일 동안 그 물 위에서 흔들리며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역설이었습니다. 역설이었습니다. 가져올 물이 저 위에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물을 내리실 수 있었다는 것은 역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 맞도록 상황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창세기 22장처럼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여전히... 그것은 그분의 구속을 나타내는 복합 이름들 중 하나입니다.
히브리 청년들이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졌을 때도 역설이었습니다. 그들을 밀어 넣던 사람들마저 죽일 만큼 뜨거운 용광로에 세 사람이 걸어 들어갈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 일은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한 일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을 묶고 있던 결박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역설이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도 그 역설이 반복됩니다. 때로는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결의 순간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결정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 불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들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그런 처지에 놓입니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강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 몸속의 강물을 빼내려면, 먼저 그 사람을 강에서 꺼내야 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나와서 자기 입장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빼내십시오) 그 사람을 그 안에서 끌어내야, 그 사람 속에서도 그것을 빼낼 수 있습니다. 히브리 청년들이 해야 했던 일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불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역설을 일으키셨습니다.
다윗을 봅시다. 그저 아이, 어린 소년이었던 다윗에게는 물매가 있었습니다. 창이나 칼이 아니었습니다. 양 몇 마리를 맡아 돌보도록 세워졌습니다. 아버지가 한 말은 그 양들을 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자였습니다. 형제님들, 오늘 아침 우리도 그런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입니다. 대학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신학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단순해 보일 수 있습니다. 곰이나 도둑이 들어와 아버지의 양 한 마리를 잡아 어떤 주의 속으로 끌고 가면... 우리 손에 있는 것은 아주 하찮아 보여 비웃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뒤에 계실 때, 오, 그것은 얼마나 강력합니까. 뒤쫓아 가십시오. 다시 데려오십시오.
어떻게 다윗이 그 물매로 사자를 쓰러뜨릴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사자를 사냥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어느 날 여기 언덕 위에 앉아 있었는데, 아마 반 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여러분은 서커스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야생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를 한번 들어 보셔야 합니다. 그 사자가 포효하자 언덕에서 돌들이 굴러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사나운 짐승을 바라보며 이 어린 소년이... 어깨가 조금 처지고 얼굴이 불그스름한 이 작은 소년이 가서 물매로 그 사자를 죽였습니다. 그것은 역설입니다. 골리앗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가락 길이가 14인치나 되고, 어려서부터 전사였으며 갑옷으로 온몸을 둘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이 작은 물매를 사용해 그 거인을 쓰러뜨리신 것도 역설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군대에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역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굳게 서 있을 때, 사람들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하면 그들과 다투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입니다. 다투지 마십시오. 대신 칼을 드십시오. 무엇을... 집어 드십시오. 이 시대에 무엇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한 약속을 주셨으니, 이것을 집어 들고 나아가십시오. 모든 골리앗이 그 아래 쓰러질 것입니다. 그것은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행하시는 일이 역설입니다. 어떻게 그분께서...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매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인들의 모든 지혜로 훈련받았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과학 등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준비시키신 방법은 분명히 역설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받은 모든 교육, 그가 가진 모든 것... 그를 교육하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서 빼내시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아시겠죠? 몸속의 물을 빼내기 전에 그 사람을 물에서 꺼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가 배운 것을 빼내시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이스라엘을 구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그가 태어난 목적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에게서 그것을 빼내는 데 40년이 걸렸음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참으로 따르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좀... 정신이 이상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그대로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나타난 말씀이셨습니다.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아내 십보라는 노새에 앉아 게르솜을 옆구리에 안고 있습니다. 여든 살의 모세는 흰 수염이 허리까지 늘어졌고, 대머리는 하늘을 향해 반짝이며, 손에는 굽은 지팡이를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집트를 점령하러 내려갑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모세, 어디로 가시오?” “이집트를 점령하러 내려갑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오?” “주님께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군대 하나를 점령하러 갑니까? 군대가 아니라 나라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일을 해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역설이었습니다. 굽은 지팡이로 이집트에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고, 군대나 칼이 아닌 굽은 지팡이로 이스라엘을 구해 냈습니다. 그것은 역설이었습니다. 누구든 믿기 어렵지만 사실인 일들을 바라보면, 그렇게 할 때 그것은 역설입니다.
또 여기 우리가 이야기하던 여호수아, 여호수아서 10장 12절에 나오는 여호수아를 봅시다. 여호수아는... 오늘날 사람들이 설명하는 대로 우리가 말하기로는, 해는 가만히 있습니다. 지구가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지구가 멈추면 떨어질 것이다. 중력이 지구를 그 자리에 붙들고 있다.”고 합니다. 자, 형제님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수아는 해에게 멈추어 서라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저를 가르치며 성경도 가르치던 선생님은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무지를 눈감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멈췄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멈췄습니다. 여기에는 거의 온종일 멈추어 서 있었고, 달은 아얄론 위에 머물렀으며, 해가 멈추어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멈추었든... 무엇을 멈추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멈추어 서라.”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기 기록된 대로 해가 멈추어 섰습니다. 과학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늘에 남은 흔적이 지금도 그것이 사실임을 말해 줍니다. 오늘날에도 하늘에 있는 흔적으로 그 일이 일어났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겨우 2천5백 년쯤 전, 아니면 그 정도, 아마 2천8백 년쯤 전입니다. 아직... 그 흔적이 별들과 다른 곳까지 이어질 시간이 아직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겨우 이틀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 흔적이 그것을 보여 주며, 해는 멈추어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역설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풀어낼 수 없습니다. 만일 (해가),
만일 지구가 돌고 있다면, 여호수아가 지구를 멈추게 했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지구를 멈추게 했다면, 과학에서는 회전하며 생기는 중력이 지구를 저 위에 붙들어 둔다고 하므로, 지구는 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역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오래전 일이지요.”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아니, 마태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 11장 2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자신이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자신이 말한 것을 얻으리라.”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일에 연결된 동기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인지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씀에서 그 일을 하라고 하신 줄 알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여러분을 부르셨다면,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동기와 목적이 바를 때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환상들이 일어나고, 일들이 그렇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해 그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롯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그분께서 마지막 날들에 그것을 약속하셨고, 그다음 그 일을 하도록 부르십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역설입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일들이 예고되고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아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역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늘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입니다. 해가 멈추어 섰습니다.
삼손입니다. 어떻게 그가 맨손으로 사자를 죽일 수 있었는지는 역설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곱슬머리의 자그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따로 구별된 나실인이었습니다.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위해 자신을 구별했습니다. 그의 어깨가 저 문만큼 넓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깨가 그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자를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몸집이 그만했다면 신비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이나 신학자들, 화가들은 그런 모습으로 그를 그리려고 합니다. 그는 그저 아주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 일을 하기에는 전혀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자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혼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한두 사람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주님의 영이 임하셔서 그분이 약속하시고 여러분에게 행하라고 하신 말씀을 확증하시면,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역설이 될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이 사람이 들판에서 주운 노새의 턱뼈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도 역설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투구는 놋으로 되었고 두께가 약 1인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삼손이 가진 것은 노새 턱뼈였습니다. 그것은 사막에 놓여 있던 것입니다. 그런 뼈를 주워 본 적이 있습니까? 발로 차기만 해도 백만 조각으로 부서집니다. 바위에 부딪치면 거의 가루가 됩니다. 그런데 그는 이 노새 턱뼈로 필리스티아 사람 천 명을 쳐 쓰러뜨렸습니다. 그들의 투구를 짓부수었습니다! 어떻게 그 턱뼈가 부서지지 않았습니까? 왜 그의 팔이 지치지 않았습니까? 창을 든 훈련된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는 언제나 역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합이 유대의 왕이었을 때, 아니, 이스라엘의 왕이었을 때, 의로운 사람 여호사밧이 유대의, 유다의 왕이었는데, 그들이 동맹을 맺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믿는 사람이 믿는 체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때로는 사람들이 그런 곤경에 빠집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뒤섞입니다. 그러면서 너무 단단히 얽매여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합니다. 저는 형제님들의 용기를 높이 삽니다. 제가 무슨 뜻인지 설명해 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아시겠죠? 사람들이 그것을 부인하거나 그것과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멀리 치우려 하는데... 그런데도 여러분은 당당히 나서서 후원하십니다. 저는 그런 분을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들과 그들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믿는 체하는 사람들과 얽히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내려갔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그 미지근하고 경계선에 머문 신자인 아합은 하나님보다 세상의 사교적인 일들과 아내의 멋진 머리 모양 등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아내에게 굴복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로 이 나라의 모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들어가서 원래 살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차지했으며, 다윗과 솔로몬 같은 위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아합 같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등장한 것은 바로 아합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나타내십니다. 이 나라도 똑같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들어와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차지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워싱턴과 링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지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요구할 때에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말라기가 우리에게 그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여기에 있을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은 성취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미가야는 지방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아합은 나라에 좀 위신을 세우려고 그곳에 히브리 선지자 4백 명을 두고 있었습니다. 큰 조직이었습니다. 모두 옷을 잘 차려입고 교육을 받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아니라 히브리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동맹을 맺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향곡이 그저 제 박자를 짚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동맹을 맺고 에돔 왕을 데리고 그 땅으로 올라가 시리아 사람들을 치기로 했습니다. 아주 좋은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도 그 생각에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경건한 사람이었기에 “주님께 여쭈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실례했습니다. 제가 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요. 예, 여기 제게 신학교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학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아멘’ 소리는 들어 보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것입니다.”
아합은 내려가 그들을 데려와 예언하게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모두 올라왔습니다. 옷을 잘 차려입고, 교양이 높으며, 빈틈없이 교육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어며 히브리어며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올라와 모두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예언할 만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올라가십시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저 땅은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고 여호수아가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굶고 있고,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배는 저 땅에서 나는 밀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점에 관한 한 그들은 정확히 말씀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를 지어 그 땅을 잃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때는 분명히 그들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근본으로 돌아가 따져 본다면, 그 땅은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그 선지자들은 옳았습니다. 그들은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으로... 어젯밤에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씀드렸듯이, 여호사밧에게는 어딘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또 한 사람이라니요? 여기 신학교 사람들이 전부 다 있는데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히브리 선지자들 아닙니까? 이들이 말하는 것은 정확히... 말씀에 얼마나 가깝게 서 있는지 보십시오. 말씀에... 이 땅은 우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서 차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바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라는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우리 것이니 주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말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은 “여쭈어 볼 사람이 한 명 더 없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예, 한 사람이 더 있지만 나는 그를 미워합니다. 협회에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와는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입니다.” 여호사밧은 “왕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가서 그를 데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하게 했습니다. “미가야, 다시 교제 안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소?” 아시겠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똑같이만 하시오. 지금이 기회요. 조직과 나머지 사람들 모두에게 동의하면, 그들이 당신을 다시 받아들일 것이오. 그러면 다시 교제하게 되고, 전국 곳곳에서 대전도 집회도 할 수 있을 것이오.” 미가야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분께서 내 입에 넣어 주시는 말만 하겠소.”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미가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는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먼저 보겠소. 그분께서 내가 다시 들어가기를 원하시는지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시간을 주시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지 보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그 환상을 말씀과 대조했습니다.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는 “올라가십시오. 하지만 내가 보니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 대제사장, 곧 세계 교회 일치 협의회의 지도자가 다가와 그의 입을 때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갔느냐?” 미가야는 “당신이 안에 들어앉아 있을 그날에 알게 될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어디로 갔느냐?”라고 묻자, 그는 “나는 하나님께서 왕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소. 하늘의 군대가 그분 주위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 하나님의 선지자에게는 언제나 말씀이 옵니다. 아무리 인기가 없어 보이더라도 말씀은 언제나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이유는 그 사람이 말한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이 증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란 말씀을 말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앞일을 예고하는 사람이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은 선지자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이것이 그 계시, 곧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자, 선지자가 등장하여 그렇게 정확히 일어나는 일들을 예고할 수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억하라. 그러면 내가 그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가 말씀, 곧 자기보다 앞선 선지자가 말했던 것을 밝혀 주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이 참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아시겠죠? 큰 무리들이 그것을 바꾸려고 했지만 바꾸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경우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당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그들을 조직으로 만든 잘못된 사람을 받아들이고 참된 말씀은 거절했습니다. 미가야는 “나는 하나님을 보았고, 회의가 열렸소. 그분께서 ‘누구를 내려보내 아합을 속이게 할까?’라고 하셨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마 지옥에서 거짓말하는 영이 올라왔소. 그 영이 ‘내가 내려가 저 선지자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이 거짓을 예언하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소.”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히브리 선지자들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엘리야가 말한 것은 그들의 눈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도 괴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가 영 아래 들어갔을 때, 참된 선지자가 말했던 바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할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히브리 사람들은 바로 그 점에서는 옳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던 히브리 사람들도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그 속에서 걷고 있던 그림자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빛이 아니라 다른 시대의 반사광이었습니다. 역사가 다시 반복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반복된다고 말씀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학교나 교양과 교육을 갖춘 영리한 사람 대신, 그들에게 소속되지 않고 교육받지도 않은 이 작은 사람을 택하셔서 말씀을 보여 주시고 백성에게 가져가게 하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미가야를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역설입니다. 분명 그랬습니다. 그리고 미가야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에게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침례자 요한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런 영적인 사람들에 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이 뽑은 사람들, 이를테면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라고 맛디아를 뽑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별로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선택과 교회의 선택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대개 그 일에서 도망치고 벗어나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내가 네게 보여 주겠다. 네가 하게 만들겠다.”라고 하십니다. 바울도 도망치려 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도망치려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려 했습니다. 모세도 그 일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요한에 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기묘하고 특별하며 경이로운 출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어머니의 태에 수태되었을 때... 천사가 사가랴에게 그의 아내가 수태할 것이라고 말한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여섯 달 동안 아기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찾아왔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려고 유대로 올라갔습니다.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의 임신을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그곳에 올라가 엘리사벳에게 말하기를... 엘리사벳은 몸을 숨기고 지냈습니다. 마리아를 만나자 팔로 감싸 안고, 여자들, 참된 그리스도인 여인들과 믿는 이들이 하듯이 마리아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배가 불러 어머니가 될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도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어요.”
마리아가, 마르다가, (실례합니다)... 엘리사벳이 조금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여섯 달이 되었는데 아기가 아직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대로라면 그 아기는 사실상 죽은 것입니다. 어머니 태 속에서 여섯 달 동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걱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한은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났고, 예수님과는 육촌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사촌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 마리아가 젊은 얼굴로 돌아보며 “나도 아기를 낳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 요셉과 결혼했니?” “아니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기를 낳는단 말이니?” “네. 성령께서 나를 덮으실 거예요. (역설입니다. 아시겠죠?) 성령께서 나를 덮으실 거예요.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거예요.” 또 말했습니다. “가브리엘이 나를 만났어요. 그때 아들을 낳을 것이며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했어요.” 마리아가 “예수”라고 말하자마자 작은 요한이 어머니 태 속에서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어머니 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여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이 사람의 입술에서 처음 불렸을 때, 죽었던 아기가 어머니 태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어떤 일을 일으켜야 하겠습니까? 그 예수라는 이름이 말입니다. 엘리사벳이 말했습니다. (어찌 오시는가) “내 주의 어머니가 어디서 오시는가?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곧바로 (그 이름을 들은 것입니다) 내 아기가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역설입니다.
어머니 태 속에서 여섯 달 동안 죽어 있던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람의 입술에서 처음 발해졌을 때, 그 이름으로 살아났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나리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전히 역설입니다. “하늘 아래에서 너희를 구원할 다른 어떤 이름도 사람들 가운데에 주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역설입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은 경이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레위인이었으니 아버지가 훈련받은 학교에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레위인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레위인이었습니다. 보통은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학교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맡기실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알려야 했습니다. 그의 일은 너무나 경이로워서 전통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제 말뜻을 바르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일은 너무나 경이로웠습니다. 그는 그들의 전통에 들어가 그 전통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모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자, 여기 존스 형제님이야말로 메시아가 될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당신이 그분을 알릴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오. 이분이 꼭 맞는 사람 같지 않소?” 또 하나의 맛디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오늘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우리의 영감을 표현할 만한 문법에 맞는 말로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저는 말고 다른 사람들 말입니다. 아마 여기 있는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의 뜻을 밝히려면 자연에서 그것에 비길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시겠죠?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자연으로 가야 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오, 독사들의 세대여!”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보았던 것, 광야의 뱀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그런 자들임을 보았습니다. “독사들의 세대여.”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대신 사용할 다른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뱀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 속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대단한 존재일 거라고 너희 속으로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라고 했습니다. 신학 용어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학교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나님 앞 광야가 그의 신학교였습니다. 학교에 있던 훌륭하게 교육받은 그 모든 제사장 대신,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택하셨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역설입니다.) 참으로 역설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역설로 일하십니다.
처녀 탄생은 역설이었습니다. 처녀가 수태하여 아기를 낳았습니다. 육체가 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에서 사람이 되시도록 자신의 존재 형태를 바꾸셨습니다. (사람이 바꾸...) 그분은 자신의 장막, 거처, 성막을 바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기슭에 서 계실 때, 요한이 올려다보니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오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 같은 말입니다. 동사가 부사 앞에 온 것뿐입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구속을 위해 연합하신 것입니다. 모든 공간과 시간을 채우시는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온 인류를 위해 죽음을 맛보시려고 자신을 한 사람 안에 담으셨다니 말입니다. 창조주께서 자신이 창조한 것을 구원하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입 맞추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셨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부인할 수...) 사람 안에 거하시고 교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며 자신의 사람에게 다가가려 하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그분은 아버지이셨습니다. 모든 것 위에 계셨습니다. 홀로 계셨습니다. 홀로 거하셨습니다. 엘로힘이십니다. 산 위에 내려오셨을 때에도, 짐승이 그 산에 닿기만 해도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육체가 되셨고, 우리는 그분을 만졌고, 직접 손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자신의 피, 처녀 탄생으로 난 피를 흘리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적 욕망으로 태어나지만, 그분은 처녀 탄생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유대인의 피가 아니셨습니다.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창조된 피이셨습니다. 아시겠죠? 유대인의 피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방인의 피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피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마리아가 수태했을 때... 난자는 마리아의 것이고, 혈구는 남성에게서 왔는데 그 남성이 하나님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틀렸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보십시오. 그 난자가 내려오려면 어떤 종류의 감각적 자극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어떤 일을 하셨다는 말이 됩니까? 그분께서 난자와 피를 모두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인큐베이터였습니다. 장사되실 때 무덤을 빌리셨듯이, 그저 태를 빌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지만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시고, 언제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 교회, 부정하고 더러운...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에서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셨고, 그다음에는 성령으로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시겠습니까?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계속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자,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말씀의 나타남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이셨고, 아들이셨고, 구원자이셨고, 치유자이셨습니다. 말씀들이 발해졌고, 그 말씀이 나타났습니다.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하리라.”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나아가 하나님께 많은 아들들을 태어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 안에 거하시다니 참으로 역설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의로운 법을 충족시키려고 죽으시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앞서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날에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성취하셔야 했습니다. 그분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저는 오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한 선지자로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기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인이 앉아 계시다면,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증거를 너무 강조합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은 방언하는 것을 증거로 삼았는데, 그것 때문에 얼마나 심하게 속았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의 열매를 증거라고 합니까. 여러분은 그것 때문에 얼마나 심하게 속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방언하는 것이 성령의 증거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성령께서 방언으로 말씀하심을 믿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여러분은 “방언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지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되고 외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은 방언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영의 열매가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여자 주술사들과 남자 주술사들이 사람의 해골에 담긴 피를 마시고 방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연필을 탁자에 놓고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쓰며 그것을 통역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제게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제 어머니는 반은 인디언이십니다. 아시겠죠? 저는 압니다. 직접 보았고 상대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방언으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령을 받았다는 틀림없는 증거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제가,
하나님께서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용서해 주신다면, 잠깐 여러분 앞에서 예수님을 재판에 세워 보겠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습니까? 어디 봅시다. 잠깐만요. 조금만... 예, 예정 시간을 벌써 10분이나 넘겼군요. 하지만 서둘러 이것 중 일부는 생략하겠습니다. 아시겠죠? 형제님들, 잠깐만 이렇게 해 봅시다. 하늘에 계신 제 아버지, 이렇게 하는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 예수님을 반대하는 쪽에 서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유대인들이고, 예수님께서 막 여기 베이커즈필드에 나타나셨다고 합시다. 제가 여러분을 한데 모아 영의 열매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들도 그것을 믿었습니다. 영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입니다. 그렇지요? 영의 열매, 많은 사람이 그것에 의지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한 치도 다르지 않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방언도 한 치도 다르지 않게 흉내 내고, 통역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은사는 무엇이든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저기 제사장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말하겠습니다. 잠깐 예수님을 반대하는 쪽에 서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보여드리고 요점을 밝히려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시겠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저는 여러분의 교회를 대표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이 도시에 나사렛 예수라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이상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제사장을 잘 압니다. 자, 영의 열매로 이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 여러분의 제사장은 6대조 할아버지도 제사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젊을 때 즐기던 것들을 그는 젊은 시절 내내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려고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공부했습니다.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실 때 누가 곁에 있었습니까? 두 분이 헤어지려 했습니다. 누가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 서서 한 팔로 한 분을 감싸고 다른 팔로 다른 분을 감싸 두 분을 다시 하나로 만들었습니까? 저기 계신 여러분의 신실한 연로한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의 신실한 연로한 제사장은 여호와의 율법을 공부하여 안팎으로, 안팎으로, 안팎으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온갖 신학교 과정을 다 마쳤습니다. 박사 학위도 있고 문학사 학위도 있습니다. 신학 박사 학위, 법학 학위, 철학 박사 학위도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돌아다니던 동안 그는 그것을 위해 공부했습니다. 여러분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공부한 것입니다.” 형제님들, 심리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모두 그럴듯합니다. 다 말이 됩니다.
“이 나사렛 예수는 어느 학교를 나왔습니까? 우리가 알기로는 단 하루도 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의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을 보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아버지가 돈이 떨어져 한 푼도 없었을 때 누구를 찾아갔습니까? 영의 열매를 가진 사람, 여러분의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수확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해산하시다가 (자매님들, 실례합니다) 돌아가실 것 같았을 때 누가 곁에 있었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동안 누가 어머니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여호와께 들어 올리고 할례를 행하며 안아 주고, 여러분을... 여호와께 드렸습니까? 그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 나사렛 예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가 영의 열매라고 할 만한 일을 무엇이나 했습니까?” “자, 여러분 중에는 사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상인도 있고 다른 일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위해 어린양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린양을 기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여러분의 혼이 멸망하지 않도록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 뜰로 올라가게 하여 작은 우리를 만들고 그 안에 어린양을 넣어 두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벌어들인 수입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어린양을 길렀다면 거기서 (했을) 벌었을 수입을, 여러분은 우리 경제를 유지하려고 다른 일을 해서 벌었습니다. 죄의 짐에 눌려 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찾아가 어린양을 살 수 있도록 이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이 장소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돈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가서 어린양을 샀습니다.” “이 나사렛 예수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와서 그 물건들을 발로 차 내고 쏟아 버리며, 그들을 도둑들의 소굴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에는 영의 열매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은 결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밧줄을 엮고 탁자를 걷어차 뒤엎으며 그들을 쫓아냈고, 분노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영의 열매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 누가 여러분 위에서 마지막 말을 해 주겠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혼을 하나님께 (허락) 맡겨 드리겠습니까? 그 친절한 연로한 제사장입니다. 아시겠죠? 영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에게는 그중 어느 것도 없었습니다.”
자,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이것만으로 설교 한 편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영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약속된 말씀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잠시 멈추어 살펴보기만 했더라면 말입니다. 그분에게는 그들이 가진 영의 열매나 그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약속된 말씀이 자신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때의 빛이었습니다. 그것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교육을 얼마나 많이 받았든지, 얼마나 친절하든지, 방언을 얼마나 많이 하든지, 얼마나 친절하고 온유하며 그 밖의 모든 것을 갖추었든지, 그때를 위한 말씀이 여러분 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러분도 똑같은 처지입니다. 거칠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리입니다. 그저 믿읍시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누가 영의 열매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분께서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는 그것들이...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내가 누구인지 말해 주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나서서 자신이 누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회중을 얻으셨을 때, 그 큰... 그분은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어젯밤에 말씀드렸듯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에! 그 회중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미쳤어! 의사들과 과학자들이 뭐라고... 저 사람은 우리를 식인종으로 만들려는 거야.” 그분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거절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 주위에는 경계선에 머문 신자들인 설교자들이 한 무리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러면 내가 왔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때 너희가 무어라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왔던 곳이라고요? 우리는 당신이 태어나 누웠던 요람도 보았고, 태어나신 도시도 보았습니다. 여기 산지에서 당신과 함께 고기도 잡았습니다. 당신은... 우리는 당신과 함께 걷고 이야기했는데, 어디서 왔다니... 아, 이제 당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겠소.” 그러나 참되고 진실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제자들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어야 합니다. 창세 전 그분의 생각이었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전체 구속을 계획하셨을 때... 에베소서 1장 1절에서 5절입니다. 그분은 창세 전에 모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분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분의 생각의 속성들입니다.
저기 성직자로 서서 빛 가운데 걷고 있던 유다를 보십시오.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권능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내보내셨고,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마귀들이 그들에게 복종했으며, 유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마귀들이 너희에게 복종한다고 기뻐하지 말라. 너희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자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마디만이 아니라 모든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브래넘 형제님, 일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이브가 두었던 그 해석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브는 바르게 해석된 말씀을 전부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짧은 한 구절만 빼고 말입니다. 전부여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한다면, 사사로이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한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한 구절이 의심받았기 때문에 이 모든 마음의 고통과 슬픔, 아기들의 죽음, 울음, 전쟁과 그 밖의 일들을 일어나게 하셨다면, 그보다 못한 기준으로 여러분을 다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처음 내리신 결정은 언제나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무리가 아니라 한 개인을 다루십니다. 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여기서 드릴 말씀이 참 많지만, 제가...
예수님의 죽음은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역설이었습니다. 부활은 역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부활이 역설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역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존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것으로 설교 한 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역설이... 믿지 않는 사람, 불신자, 이런 일에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던 사람을 데려다가, 갑자기 변절자에서 성도로, 매춘부에서 자매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설입니다. 약을 주거나 주사를 놓거나 약을 한 번 먹이거나 다른 무슨 일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꾸는 데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 오직 그것만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역설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그 소식, 곧 복음을 온 세계로 전할 사람들로, 그 일을 위해 훈련받은 거대한 산헤드린 공회 대신 무식한 어부 120명을 택하셨을 때도 역설이었습니다. 그 공회 사람들은 훈련받았고,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종이에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어부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 시대의 세계 교회 일치 협의회 대신 그런 이들을 택해 그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환상은 언제나 역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영감을 통해 예고하는 일들이 어떻게 한 번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역설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어떻게... 의식과 잠재의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실제인 그 잠재의식 안에 들어가 앞일을 보십니다. 그 사람을 이끌어 내어 훨씬 전 다른 시대에 있었던 일들을 보시고, 다시 현재로 데려와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역설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정확히 그대로 일어납니다. 어젯밤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우리가 본 것도 역설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제 작은 가족이 어느 침례교회에 갔습니다. (그들은 투산 집회에도 갔었습니다.) 목사가 일어나서... 제 딸과 사귀는 청년이 그 교회의 교인이라는 것은 모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브래넘 형제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커스단과 함께 다녔다는 것을 이제 막 알았습니다. 두 분은 마술사였답니다. 그 형제님이 하는 일도 작은 눈속임이지요.” 아시겠죠? 그러면 병든 사람들을 치유한 것도 눈속임이었나 봅니다. 제 부모님이 서커스를 한 번이라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동차를 갖기 전에는 자동차도 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 것은 전혀 모르셨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마귀는 늘 무언가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저들이 비엘세붑을 힘입어 이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회중에게 무언가 대답해야 했던 것입니다. 왜 성경을 탐구하여 이것이 오늘을 위해 예고된 일임을 보지 않습니까? 어제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제 그러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그러하시며, 영원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런 식으로 하려 합니다. 교육받지 못한 오순절 사람들, 선지자의 환상들... 예수님께서 2천 년이 지난 오늘도 살아 계시다는 것 역시 역설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시간이 늦어지니 마쳐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역설을 믿습니까? 물론이지요.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약사인 오랜 친구, 친절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형제님이 사역자이신 것을 압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형제님께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말씀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바로 이 약국에서, 대공황 때 제가 여기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다른 도시에 약국을 운영하는 제 아들이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지요. 사람들에게는... 가야 했습니다... 가서 받아야 했던 때를 기억하시지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현금을 받고 물건을 내주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젊은 남자가 아들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에 대한 지급 지시서가 있습니다. 아니, 의사 선생님이 여기 군청 담당자에게서 약을 받을 지급 지시서를 받으라고 보내셨습니다. 아내에게 약이 몹시 필요합니다. 아내가 너무 아파서 더는 견디지 못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당장 가져다가 먹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약을 받아 아내에게 먹이고, 아내는 여기에 앉아 있게 해도 될까요? 저 줄에 서서 지급 지시서를 받으려면 두세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지금 약을 먼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아들은 ‘선생님, 그렇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현금을 받고 물건을 내주는 것이 규칙이거든요. 저희는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어르신은 뒤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잠깐만, 얘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몸을 부여잡고 있는 가엾은 부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서 처방대로 약을 지어라. 그리고 이리 가져오너라.”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준 처방전을 받아 가서 약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약을 지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부인이 끝내 돈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 상관 없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부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약을 들어 그 손에 건네려 했습니다. 그 손에 약을 놓으면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약을 놓아드린 손은 주 예수님의 손이었습니다. 그분이 거기 서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얼굴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머리에는 상처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눈을 감고 약간 비틀거렸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선생님, 괜찮으십니까?’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분은 “괜찮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니 그 부인이 약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론 믿습니다. ‘너희가 이들, 곧 내 어린 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역설입니다.
여기 계신 형제님들 중에는 성... 초기 성도들의 기록을 읽고 주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역설입니다. 우리는 역설을 믿습니다. 그중 한 분이... 제가 생각해 내려고 했던 분은 성 마틴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라는 명령이 그에게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어느 정도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날...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군인답게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도록 군화를 닦아 줄 사람을 늘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하인의 군화를 닦아 주었습니다. 그들의 전통과 풍습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평등하게 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날, 그가 투르 시로 들어가다가 성문 곁에 서 있었습니다. 길에는 늙은 거지가 누워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여러 번 읽으셨을 것입니다.) 길에 거지가 누워 얼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애걸했습니다... “누가 외투 좀 주시겠습니까? 오늘 밤 저는 얼어 죽을 겁니다. 이대로 땅바닥에 누워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 외투 좀 주시겠습니까?” 아무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발 누가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늙은 사람이고 죽어 갑니다. 제 몫의 세월을 살아왔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죽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얼어 죽겠습니다. 누가 제 몸을 좀 감싸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성 마틴은 뒤에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서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그들 중에는 충분히 도울 형편이 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외투가 한 벌뿐이었고, 그것은 군용 외투였습니다. 그는 칼을 빼어 외투를 반으로 잘라 그 늙은 거지를 감싸 주고 길을 갔습니다. 반쪽 외투를 걸치고 길을 가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군인이라고 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침대 곁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기 예수님께서, 그가 거지를 감싸 주었던 그 낡은 외투 조각을 두르고 서 계셨습니다. 그제야 그는 알았습니다. “너희가 이들, 곧 내 어린 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그의 부르심은 역설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자였으며, 당시 가톨릭교의 모든 악에 맞서 성경을 위해 굳게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설을 통해 그에게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습니다.
형제님들, 우리는 역설을 보고 또 볼 수 있습니다. 큰 역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고, 시간이 더 이상 없을 때, 밝고 아름답고 영원한 아침이 동트리라. 부활이 일어나 우리가 함께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때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으러 갈 때, 그것이 마지막 역설일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께 신실한 종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아침 우리를 형제로 만드시는 보혈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세워질 위대한 왕국, 곧 하늘의 왕국에서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도록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오셔서 기다리는 신부, 작은 신부 나무를 데려가실 그 기쁜 천년왕국의 날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분은 에덴동산에 있던 나무, 생명의 빵이십니다. 그분의 작은 아내도 나무이며, 마지막 날들의 신부 나무입니다. 모든 것이 묶여... 가져오도록... 하지만 하나님의 큰 권능이 가지들을 잘라 내어 열매가 익게 하십니다. 주님, 우리도 그 안에 포함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옵소서. 여기 이 도시에 있는 동안 우리가 함께 가진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어 계시지 않고 살아 계시며, 이때를 위해 약속하신 그분의 말씀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시간들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표적입니다. 약속된 아들의 오심이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는 표적들을 봅니다. 예고된 모든 것을 봅니다. 하늘의 두려운 광경들과 사람들의 심장이 쇠약해지는 일,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비행접시 등을 봅니다. 땅에 임하는 심판을 위한 조사입니다. 저기 곳곳에 원자폭탄이 매달려 있고, 거대한 미사일들은 한 시간 안에 완전한 파멸을 가져올 수 있음을 봅니다.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가스들도 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곧바로 불을 비처럼 쏟아 땅을 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예수님도 우리는 봅니다. 우리가 말했듯이 “너희를 떠나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것처럼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다시 오시리라.” 우리는 그 기쁜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 여기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주님을 섬기려고 우리가 아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주님, 우리의 눈이 이때를 보지 못하도록 가려지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제 눈을 열어 모든 약속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이 그러하다고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우리에게 큰 집회를 주옵소서. 여기 저의 형제자매들을 복 주옵소서. 여기 서 계신 작은 여인들 중에는 남편이 저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섬기며 남편을 돌본, 이제는 머리가 센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상을 얻으려고 싸웠고 피로 물든 바다를 헤쳐 온 이 사람들이, 오늘 아침 이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봅니다. 머리는 희어지고 있고, 오랫동안 싸워 왔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조찬 모임에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의 오심은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으며, 내년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만찬에서 만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왕께서 나오셔서 우리 눈의 눈물을 모두 닦아 주시며 “염려하지 말라. 이제 모두 끝났느니라. 창세 이래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주의 기쁨에 들어오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 창세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이것을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뛰게 하옵소서. 조금 전에 헤어지려던 젊은 부부에 관해 말씀드렸듯이... 하나님, 여기서 서로 헤어지는 우리가, 우리에게 공통된 이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연합교회, 하나님의 성회, 하나님의 교회, 우리 모두에게는 공통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조직으로서는 만나서 그 신조들과 교회의 여러 일을 다투어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로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공통된 것을 갖습니다. 주님, 이 공통된 터 위에서 저는 똑같이 귀한 믿음을 가진 형제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다가오는 한 주 동안 우리가 함께 온 힘을 다해 일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수고를 복 주옵소서. 아멘.
형제님들,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이 형제님,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다만... 말씀이 얼마나 틀림없습니까!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는 그 점에 동의합니다. 부모가 그분을 잊고 명절에 그곳에 남겨 둔 채 떠났는데, 사흘 동안 가고도 찾지 못하자 다시 돌아왔습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토론하고 계신 그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 아이에게 놀라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학교에 다니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열두 살에 불과한 소년이셨습니다. 키도 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뭐라고 했습니까? 혹시 여기 가톨릭 교인이 계시다면,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러분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일 수 있습니까? 아시겠죠?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인큐베이터였지... 보십시오.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면, 실제로 그분보다 더 많은 지혜를 가졌다는 것이 됩니다. 보십시오. 어머니라면 그분께 생명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여기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내가 밤낮 눈물을 흘리며 너를 찾았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첫 간증을 스스로 부정했습니다. 요셉을 그분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이 열두 살 소년을 보십시오. 그저 소년이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이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그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보입니까? 보십시오. 그분이 자라신 뒤 마리아가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난 뒤였습니다. 아시겠죠?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았다.” 자기 말과 바로... 마리아는 성령으로 이 아이를 수태했다고 하고는, 이제 요셉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소년, 열두 살 아이는 지혜라고는 전혀 없었고 그저 열두 살 소년이었지만... 그때에는 아버지께서 그분 안에 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침례를 받으시던 날에 아버지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려오시는 것을 그가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그분이... 하지만 보십시오. 이 작은 열두 살 소년은 말씀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기름부음 받은 이로 태어나셨습니다. 아시겠죠? 기름부음 받은 이가 되시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고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그분의 아버지였다면, 그분은 요셉과 함께 문과 집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성전에서 그 조직들을 바로잡고 계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 아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오류를 어떻게 바로잡았는지 보입니까?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