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요한복음 11장 18절부터 읽겠습니다. 한편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진 가까운 곳이므로 유대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와서 그들의 오라비에 관하여 그들을 위로하더라.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가서 그분을 맞이하였으나 마리아는 가만히 집에 앉아 있더라.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므로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니라. (그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녀가 자기 길로 가서 은밀히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이르되, 선생님께서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지금 주님을 기다리는 저희 마음에 오늘 밤 이 말씀들을 확증해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종과 이 본문을 모두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는 것보다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밤 말씀드릴 주제는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부르셨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때는 몹시 슬픈 때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삶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읽어 보셨다면, 주님께서 이 청년 나사로의 아주 가까운 친구이셨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요셉이 떠난 뒤에... 아니, 그분께서 떠나와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와 함께 사셨습니다. 그들은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목사님 같은 분이셨고, 참된 친구이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입으실 옷가지들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겉옷을 만들어 드렸다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솔기가 없이 통으로 짠 옷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믿었기에 그분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그것을 보았고... 그분을 따르려고 교회도 떠나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면 심지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교회를 허물고 제사장들을 헐뜯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큰 해를 끼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을 시인하기만 해도 회당에서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쫓겨나면 구속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파나 사두개파 같은 그들의 종파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고 그 밖에 있으면 구속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권리와 열쇠들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을 쫓아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아시겠죠?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알듯이 역사는 때가 되면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되풀이될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다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우호적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사람과 의견이 다르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없다면, 성경에 근거하여 더 밝은 깨달음을 얻고자 의견을 달리할 수 없다면, 저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언제나 우호적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멸망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도 저를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우리의 신조도, 우리의 생각도 아닌, 그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사로운 해석이 아니라, 그저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난번 저녁에 제가 한 일이 있는데, 거의 신성모독처럼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지난번 아침에 목회자 조찬 모임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재판대에 세웠습니다. “그때 그들이 했던 대로 오늘날에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잠깐 되풀이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루터의 종교 개혁 때 그가... 그 당시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믿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압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했지만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 시대에는 두 번째 축복(그들은 그렇게 불렀습니다), 성화, 온전한 성화를 받으면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모두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순절 시대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은사들이 회복되었습니다. 영의 침례가 임했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방언으로 말했어도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다면 영의 열매, 그것이 증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영의 열매도 아닙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에도 그것이 있습니다. 거의... 사랑, 그것은 영의 열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그분을 그저 선지자, 평범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그것으로도 안 됩니다. 잠깐 그 문제를 따져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재판대에 세워 봅시다. 이 강단에서 이런 말을 하는 저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빛을 보게 하려고 잠시 그분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겠습니다. 아시겠죠?
여기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밤 저는 나사렛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던 그 옛날로 돌아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을 반대하는 논리를 펴려고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영의 사랑은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인내와 온유함 등, 그런 사랑입니다. 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봅시다. 여러분의 이 나이 든 제사장을 보십시오. 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되려면 레위 지파의 그 혈통으로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는 여러분처럼 젊은 시절을 누리지 못합니다. 무엇을 합니까? 자신을 희생합니다. 거기서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합니다. 밤낮으로, 밤낮으로 말씀을 살피며, 두루마리에 있는 글자 하나하나, 낱말 하나하나를 다 알아야 합니다. 다 외우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할 때 누가 두 분을 남편과 아내로 맺어 주었습니까? 여러분의 경건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궁핍해져서 농장을 담보로 빚을 지고 농장을 빼앗길 처지가 되었을 때, 누가 아버지를 찾아왔습니까? 누가 아버지 곁을 지켰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방에서 여러분을 낳을 때 누가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이 병들고 궁핍할 때 누가 찾아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여덟째 날에 할례를 베풀었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려 할 때 누가 두 분을 다시 화해시키고 함께 살게 했습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이웃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해결합니까? 여러분의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친절한 나이 든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희생물로 어린양을 요구하신다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압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사업을 하므로 양을 기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양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우리를 몇 개 만들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가서 양을 사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자기 혼을 위해 희생물을 드릴 수 있도록 양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이 젊은 친구는 무엇을... 어디서 왔습니까? 처녀에게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 어머니가 요셉과 태어나기 전에 그를 낳았다는 것을, 아니, 그 어머니와 요셉이 결혼하기 전에 그가 태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회원증을 가지고 있습니까? 경건한 사람이라면 어느 단체에 가입했습니까? 여러분의 제사장이 그 말씀을 알기 위해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했는데, 이 사람이 와서는 제사장이 세워 놓은 것을 허물어 버립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여러분의 제사장이 희생물을 살 수 있도록 거기에 장소를 마련해 놓았을 때, 이 젊은 친구는 무엇을 했습니까? 친절을 베풀었습니까? 그는 때렸습니다... 밧줄들을 모아... 가죽끈을 땋고, 분노하여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탁자들을 걷어차 뒤엎고 사람들을 때려서 내쫓았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영의 열매라고 합니까? 그들을 분노하여 바라보는 것을 말입니까? 보십시오. 사람이 여호와를 경배할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그 사업가는 그분을 경배하고 싶었습니다. 어린양을 기르지 않으니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뒤엎고 걷어차며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거기서 누가 영의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영의 열매도 아니고, 방언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브래넘 형제님, 무엇이 증거입니까? 무엇이 증거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시대의 말씀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호와께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셨습니다. 해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제사장이 있었고, 그들이 갖춘 모든 것이 있었고, 다른 모든 일도 늘 하던 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시대에 그 말씀이 살아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그 시대... 루터에게는 그 시대의 증거가 있었고, 웨슬리에게는 그의 시대의 증거가 있었으며, 오순절에는 이 시대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시대에 있습니다. 그 일들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기에게 손가락이 생기고 눈이 생기고 코가 생기듯, 얼마 후에는 하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자란 아기가 되어 태어나야 합니다. 혼과 몸과 영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만, 그분께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들만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큰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무리는 결코 가야바를 따르는 무리만큼 클 수 없었습니다. 가야바는 온 민족을 불러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사람만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땅에 오셔서 두루 다니셨을 때, 수천 곱하기 수천이나 되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여기 계셨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다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누가 생명으로 부름받았는지 그분은 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하지 않으실... 그 일을 돌보시는 것은 그분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나와 그분을 믿었습니다. 말씀이 그분에 대해 말씀해 온 모든 것이 바로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께서 그들의 집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셨고, 죽음이 찾아왔으며,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잠깐 이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분께서 떠나시자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떠나시거나 여러분이 사는 집을 떠나시면, 고난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사탄에게 문이 열립니다. 그분께서는 떠나셨습니다. 그러자 곧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가시면 죽음이 들어옵니다. 그분과 떨어지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가셨을 때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죽음은 나사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사랑하는 그분께 사람을 보내어, 오셔서 나사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분을 보았고, 그분께서 하나님을 아시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마르다는 앞서 “지금도 주님께서 하나님께 무엇을 말씀하시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과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시대의 말씀이셨습니다. 마르다는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을 만나기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떠나셨고, 그들은 그분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모셔 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오시기는커녕 더 멀리 가셨습니다.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오시기는커녕 더 멀리 가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고 성경이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다. 그분께서 지체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그분께 떠나서 며칠 동안 떨어져 계시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날들이 다 지나자 그분께서는... 그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래,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나사로에게 가셔서 고쳐 주시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도록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하셨습니다. 떨어져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돌아오셔서 무덤 앞에 서셨을 때를 보십시오. 그때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셔서 나사로의 집을 찾아가셨을 때 말입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들은 시시각각 “그분께서 나타나실지도 몰라. 그분께서 나타나실지도 몰라. 돌아오실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죽었습니다. 숨이 끊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가서 시신을 방부 처리했습니다. 몸에서 피를 빼고 향품을 넣어 아마포로 감쌌습니다. 그렇게 방부 처리를 해서 무덤에 눕혔습니다. 무덤 위에 돌을 놓았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장례 풍습이었습니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돌을 덮었겠지요. 그것이 그들의 풍습이었습니다.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지나고, 셋째 날이 지나고, 넷째 날이 지났습니다. 그는 이미 무덤 속에서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코는 아마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그... 제 생각에는 코가 제일 먼저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이미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살은 흙으로 돌아갔거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혼은 몸에서 나흘 길이나 떨어진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이 생에서 그를 다시 볼 소망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첫째 날에는 오실까, 둘째 날에는 오실까 했지만,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죽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제 절망에 빠졌습니다.
얼마 후 누군가 마르다에게 “선생님께서 밖에 계십니다.”라고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길을 달려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두운 때에 오셨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졌을 때, 대개 그때 그분께서 오십니다. 그분께서 오십니다... 가장 어두운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오셔서 마르다를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 와 계시니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청년이 죽었어도 그분께서 와 계시면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친구여,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은 의사들이 포기한 분일지도 모릅니다. 암이나 심장병으로, 어쩌면 몸을 쓰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계실지도 모릅니다. 모든 과학이 여러분에게 가망이 없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칼슘이 쌓여 뼈에 마디가 뭉치고 더 이상 굽히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심장이 너무 나빠서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른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암과 결핵을 앓는 수많은 사람들, 어쩌면 이것이 여러분의 마지막 소망인데 의사마저 여러분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있으면서 그분께서 계심을 알아보면 다시 소망이 생깁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전에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제가 아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해 보십시오. 곧 새로운 소망이 솟아납니다. (여러분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 어두운 때에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대개 그런 때에 누군가 그 이야기를 해 줍니다. 예수님에 대해 말해 줍니다. 그분께서 와 계시니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오늘 밤에도 어젯밤처럼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젯밤 우리는 그 입증된 말씀이 조금도 의심할 여지 없이 나타나고 증명된 것을 보았습니다. 천구백 년 전에 사셨고, 갈보리에서 죽으셨으며, 셋째 날에 일어나셔서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 눈을 열어 주셨고, 이 시대의 약속을 하신 그 예수님께서 오늘 밤 바로 여기 우리 앞에 계십니다. 그것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새로운 소망이 환히 솟아납니다.
누군가는 “교회가 한동안 좀 메말랐습니다. 몇 달 동안 좋고 신선한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부흥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침체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뭐 그런 말을 합니다. “그냥 교회에 가서 찬송을 부르고 설교 몇 편을 듣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메말라 가기 시작하면,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그 일을 하려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그분께서 와 계시면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마르다는 그분께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알았습니다. 그 시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전히 정통 신앙을 따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교회에 속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된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분을 통해 그 약속된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그 살아 있는 말씀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소식을 듣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난하든, 그 밖에 무슨 일이 있든 상관하지 않고, 힘껏 그분께 달려갔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나타나신 말씀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분명히 마르다는 옛날 엘리야의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거기에 어린 아들을 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그 여인을 축복하여 그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느 날 열한 시쯤, 아이는 일사병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들에 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일사병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낮 열한 시쯤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종을 시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아이는 정오쯤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있었는데, 점점 더 심하게 앓다가 마침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절망에 빠지는 대신에... 이웃들은 모두 와서 울부짖고 야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침착한 어머니는...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선지자를 위해 마련해 두었던 작은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 선지자의 침대에 그렇게 눕혔습니다. 그리고 종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탈 노새에 안장을 얹고 곧장 몰아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멈추지 말아라.” 아, 바로 그것입니다! 논쟁하고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어서 갑시다. 그곳에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가거라. 내가 명령하지 않으면 모는 속도를 늦추지 말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 가서 엘리야에게 이르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는 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셨으므로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엘리야 안에 계신 분은 그리스도셨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시대를 위한 주님의 말씀이 그 선지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선지자들의 충만함이셨습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그저 그분을 나타냈을 뿐입니다. 요셉부터 줄곧, 은 삼십 개와 그 모든 말씀에서 요셉은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버림받은 왕으로 언덕 위에 앉아, 버림받았기에 울고 있었습니다... 팔백 년 후 다윗의 아들께서 언덕 위에 앉으셨습니다. 그때 다윗 안에 계셨던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버림받은 왕으로 언덕 위에 앉아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새끼를 품듯 내가 너희를 품으려 한 일이 얼마나 많았느냐.”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옛날 그곳에 계셨던 분은 그리스도셨습니다. 다윗이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 모든 뼈가 나를 쳐다보나이다. 그들이 내 발과 손을 찔렀나이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었나이다.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나이다.”라는 찬송을 쓸 때, 부르짖으신 분은 그리스도셨습니다. 다윗 안에서 말씀하신 분은 그리스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타나신 말씀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그 말씀들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말씀이 선지자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젯밤 말씀을 가르칠 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분에 대해 말한 것을 이루려고 그분께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으며, 그 시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넴 여인은 그 선지자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그 아이 위에 자기 몸을 포개자,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마르다는 집안을 돌보고 설거지를 하는 등 바쁘게 지냈지만, 분명히 이 사실을 깨닫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마르다의 참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자기 안에 정말로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곧바로 그분을 모시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안에 계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도 계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바로 그분이심을 증명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저는 그런 굳은 결심이 좋습니다. 마르다는 그분께 갑니다. 반드시 그분께 가야 했습니다. 그분께 가서 알게 된 것은...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결코 변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결코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안에 계셔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도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아직 그렇게 하지 않으셨더라도 말입니다.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분께서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분은 예나 다름없이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마르다가 그분 안에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분은 아셨습니다. 잠깐 지켜보십시오. 마르다가 오라버니에 대해 그분께 말씀드렸을 때 그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심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 스스로 계신 분이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와 함께 계셨습니다. “나는 부활이니라! 나는 생명이니라! 내가 그분이었느니라! 지금도 내가 그분이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마르다는 그분께서 약속된 말씀이시라는 큰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선지자이셨으므로 거짓말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내가 부활이요 생명인 그분이니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 바로 그분이심을 믿습니다. 비록 제 오라버니가 죽어 저 무덤에 누워 있지만, (지금은 몸이 썩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르다가 원하는 것은 오직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아, 마르다여, 오늘 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제 종이 살겠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에는 그분께서 친히 계셨습니다. 오 하나님! 눈먼 눈들을 열어 주셔서 보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친히 계신 곳에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언제나 나타납니다. 마르다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씀만 듣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마르다는 그분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듣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께서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 마르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그때 그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환상에 따라, 무덤 곁에 서 계셔야 했습니다. 아, 여러분의 믿음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바르게 이루고 계십니다. 다 잘될 것입니다. 마르다가 무덤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 말씀만 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그분께서 아직...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무덤 속에서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 마르다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는 믿었습니다. 믿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마르다는 “예, 주님, 믿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그 말이 좋습니다.
제가 전에도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다시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어떤 교회에 다니는 여인이었는데, 그 교회는 그분께서 하나님이셨다는 것, 그분의 신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저 선지자이며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시기도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몸, 그 청년, 그 사람이십니다. 그분 안에 거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습니다. 사람이셨으면서도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버지를 보면 나를 보느니라.” 여러분은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아버지를 비추시는 분이셨기 때문이고,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멘.
그분께서는 선지자들을 신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너희가 신들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고 어떻게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이 그분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다시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저에게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라고 하더니,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한 가지 너무 지나치신 것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너무 많이 자랑하세요.” 저는 “그분께서 저를 책망하실 일이 그것뿐이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라고 하다가, “그분께서 제게서 찾으실 허물이 그것뿐이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게 혀가 만 개 있어도 그분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없습니다. 아, 그분께서 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하지만 목사님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만드시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에 있었던 가장 큰 사기꾼이셨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은 선지자셨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선지자이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이신 선지자, 말씀의 충만함이셨습니다. 선지자에게는 말씀이 임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그를... 선지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말씀의 충만함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목사님은 그분께 신성이 있다고 하시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분께는 신성이 있으셨습니다.” “그분께 신성이 있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있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셨지요.” “믿습니다.”
그 여인은 “목사님이 믿는 바로 그 성경으로 그분께 신성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해 보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저도 믿겠습니다. 저는 말씀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에...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그 일을 기억하세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기억합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그분은 우셨어요. 성경에 그분께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되어 있어요.” 저는 “물론 성경에 그분께서 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신성이 있으시다면 어떻게 우실 수 있나요?” “그분은 인간이셨습니다.” “인간이면서 신성도 있으시다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그 길을 가시면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시는 인간이셨다는 것을 보지 못하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셨습니다.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작고 연약한 몸을 곧추세우시고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자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은 사람 이상의 분이라야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 바다에서 그분께서는 지쳐 배 뒤쪽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때... 만 마리 마귀가 그날 밤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그 작은 배가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흔들리자, 그 마귀들은 “이제 잡았다. 잠들어 있다. 몽땅 가라앉혀 버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피곤해하시는 인간이셨습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시자 돛줄 위에 발을 올려놓으시고 위를 보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과 파도가 순종했습니다. 그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이나 먹을 것, 혹은 나무에 달린 무화과를 찾으려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그분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일을 이룬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믿었던 모든 시인들이... 한 사람이 이렇게 쓴 것도 당연합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장사되셔서는 내 죄들을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에디 프루잇 [페로넷]은... 그의 노래는 팔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시자 몸을 가누지 못하던 그는 펜을 잡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쓰면서 즉위 찬송을 지었습니다. 모두 예수 이름의 권능을 찬양하라! 천사들도 엎드리라. 왕의 면류관을 가져와 만유의 주님께 씌워 드리라.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바로 그런 분이셨음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마르다는 그 당시의 현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새 생명을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려면,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알아보셨다면... 마르다가 그분을 말씀으로 알아보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창조주시며 자신이 하신 모든 말씀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믿으면 불가능한 일이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믿으면 불가능한 일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켜보십시오...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모든 상황에서도 마르다는 “주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에게서 그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듣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에게 가장 어두운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부르셨습니다. 아, 그들은 얼마나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까! 부활을 보았습니다! 어두운 때가 찾아온 다른 경우들을 좀 더 살펴봅시다.
옛날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했고, 자신이 아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를 체질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어디에 갔다 왔느냐?” “땅을 이리저리, 위아래로 거닐다가 왔습니다.” “내 종 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느냐? 땅에 그와 같은 자가 없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다.” 사탄은 “아, 물론이지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고 그를 위해 모든 일을 해 주시잖습니까. 당연히 훌륭한 사람이지요. 하지만 한 번 제게 맡겨 보십시오. 제가 태도를 바꿔 놓겠습니다.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을 저주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에 대한 그분의 신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는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을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말씀이시므로 사탄이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욥이 어떻게 할지 아셨습니다.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이 욥의 몸에 종기가 나게 하고, 자녀들을 죽이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건강도 잃었습니다. 위로하러 온 사람들조차 그가 남몰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비난할 뿐이었습니다. 욥은 그런 처지에서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먼저 곤경에 처해야 합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욥은 막다른 곳에 이르러 말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해도 빛을 비추지 말고, 밤에는 달도 빛을 비추지 말지어다! 그 이름은 다시는 불리지 말지어다!” 그 곤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욥은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꽃이 죽는 것을 본다. 그러나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난다. 나무가 바람에 쓰러져도 물 냄새만 맡으면 다시 돋아난다.” 모든 식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워서 숨을 거두니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들이 와서 그를 애도해도 그는 알지 못합니다. 오, 주님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저를 무덤 속에 감추시고 은밀한 곳에 숨겨 주옵소서. 제게 때를 정하시고, 제게 기한을 정해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계속 그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이 극에 달했습니다.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잎은 살아나 다시 나무에 돋습니다. 꽃도 다시 핍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시 돋아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워서 숨을 거둡니다. 욥은 괴로웠습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고개를 하늘로 향하게 하시자, 그는 마지막 날에 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가장 어두운 때,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세요.”라고 말했을 때에도 욥은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고 있소.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아내도 그를 저버렸고, 그의 교회도 그를 저버렸으며, 모든 사람이 그를 저버렸습니다. 그 어두운 때, 그다음에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알지 못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욥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후에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분을 보리라.” 가장 어두운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서 모세에게도 가장 어두운 때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떨기나무에서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내려가서 자신의 말을 흉내 내려는 얀네와 얌브레의 온갖 모방 행위와 맞서 싸웠습니다. 그 모든 가운데서 하나님께 충실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자신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이 산에서 나를 경배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그 산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파라오도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어떤 마귀도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그는 그 산에 이를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 마음에 신앙의 감격이 솟습니다. 그는 그 산으로 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영광을 향해 가는 길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우리를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어쨌든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자기 사명을 수행하는 길을 가던 모세가 산들 사이에 갇혔습니다. 귀를 기울이니 뒤에서 굉음이 들립니다. 무엇입니까? 수천 대의 파라오의 병거들이 창 등으로 무장하고, 그들을 치고 짓밟으려고 다가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곤경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소리쳤습니다. “아, 이제 큰일 났다. 파라오가 우리를 죽일 것이다! 칼로 우리를 꿰뚫을 것이다! 우리 아기들이 여기 광야에서 죽을 것이다!” 모세가 “오 하나님!”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불기둥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려오셔서 모세와 그 위험 사이에 머무셨습니다. 아멘!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아멘! 중보자이십니다.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어둠이셨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해 보려고 다가오는 자들에게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길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그날 밤 바람이 몹시 세게 불기 시작했을 때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불기둥의 형태로 오셨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지금도 그 불기둥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땅에 계셨을 때 “나는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 불기둥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히브리인이었습니다. 함부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대문자로 시작하는 L-o-r-d, 엘로힘입니다.) 제가 핍박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는 예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분께서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십니다! 지금도 동일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노라.” 같은 불기둥이요, 같은 약속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시는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자신의 말씀을 나타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나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 올 자니라.” 그렇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그곳에 계셨던 분이 스스로 계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있었던 자’가 아니라 ‘있는 자’이십니다.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궁지에 몰렸고, 그...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치욕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하나님에게서 나온 로고스, 그 천사이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 천사가 그리스도이셨음을 압니다.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 그분께서는 자신이 나타나셔야 할 형태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형태로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이끌어 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곳에 오셔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고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신 뒤에는, 마르다에게 하셨던 것처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 백성에게 말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두운 때에 홍해가 갈라졌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여정에서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에게 가장 어두운 때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제 시간이... 그분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은 야이로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는 남몰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분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분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떤 조직에 가입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나와서 믿음을 시인할 수 없었습니다. 믿기는 했지만 시인할 수 없었습니다. 불신자들 틈에 들어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믿었습니다. 사람이 그런 처지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결단을 내려야 할 자리로 몰아가십니다. 곤경에 처하면 우리의 참모습,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그가 바로 그런 처지였습니다. 이미 불신자들 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명부에 자기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시인하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거기에 생계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래도 그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린 딸이 병들었습니다. 아, 분명히 그런 사람이라면 의사를 불렀을 것입니다. 의사가 와서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열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얼마 후에는 열이 몹시 높아졌고, 마침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괴로웠습니다.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분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어디에 계시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니고데모처럼 개인 면담을 하려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행동할 때였습니다. 행동할 때가 왔습니다. 그때 행동해야 했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행동할 때가 왔습니다.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결정할 때가 왔습니다.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그 갈림길이 닥칩니다. 모든 아이에게도 닥칩니다. 때로는 그 선을 넘고 나면 단 한 가지, 심판만 남습니다. 자비와 심판 사이의 그 경계선을 넘을 때, 그 선을 넘을 때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의 제사장이 거기 서 있었고, 모든 랍비가 주위에 서 있었습니다. 교제하던 동료들이 모두 그와 함께 그곳에서 어린 딸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밖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가 손을 내저었습니다. “제가 아는 약은 다 써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시겠죠? 내내 일하고 계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사람의 참모습을 드러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가 가서 작은 검은 모자를 가져다 쓰고 제사장 겉옷을 입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급히 강가로 갑니다. 그분을 모셔 오겠습니다.” 아, 그는 길을 나섰습니다.
그 곤경의 때에 말입니다.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아이가 죽게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그는 그분께서 나타나신 말씀이심을 알았습니다. 제사장으로서 말씀을 읽었고, 그분께서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결단의 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죽게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믿음을 시인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 곤경에 처했을 때, 바로 그 무렵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는 그분을 뵈러 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네가 말하는 대로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 전갈을 전하는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어두운... 그가 믿는다고 시인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니, 스스로 파문을 자초한 셈이었습니다.
달려온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무도 더 수고롭게 하지 마십시오. 따님은 벌써 죽었습니다. 어제 죽었습니다. 이미 죽었습니다. 더 애쓰지 마십시오.” 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고개를 들어 예수님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으면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내가 가겠다고 이미 말했지 않느냐.” 그분께서는 오시겠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시겠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멘. 어젯밤 우리가 읽고 이야기한 대로, 마지막 날들에 나타나셔서 전에 하셨던 것처럼 이런 일들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분께서 오셔서 그 소녀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불러내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나타나셔서 그 소녀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불러내셨습니다. 눈먼 바디매오에게도 한때 가장 어두운 때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순복음 실업인회 조찬 모임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곳에 삭개오도 있었습니다. 길 아래쪽의 나무 위에 있던 삭개오를 만나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다른 것을 조직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시겠죠? 그곳으로 내려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삭개오가 그분과 함께 갔습니다. 눈먼 바디매오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 성문으로 나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큰 소란과 함께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사장들이 말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봐! 거기 당신! 언덕으로 올라가는 당신 말이오. 죽은 자들을 살린다고 들었소. 여기 묘지에 죽은 자들이 가득하오. 메시아라면 [메시아라면] 여기 올라와서 이 죽은 자들을 살려 보시오.” 여러분, 그 같은 마귀는 지금도 똑같이 종교의 형태로 살아 있습니다. “메시아라면 죽은 자들을 살려 보시오. 여기 묘지에 죽은 자들이 가득하오. 오시오.” 모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쪽에서는 “선지자께 호산나!” 하고 외쳤고, 다른 쪽에서는 이것저것 온갖 말을 외쳤습니다.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눈먼 사람은 “아, 그분을 놓쳤구나. 저쪽으로 나오셨는데 나는 이쪽으로 오실 줄 알았다. 엉뚱한 곳에 앉혀 놓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께서 말씀이시라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셔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 곤경의 때에 그는 외쳤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짚어 보시면, 여리고였습니다. 바디매오가 앉아 있었다고 하는 곳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백오십 야드 떨어져 있었고, 수천 명이 그분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외침이 들리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분께서 멈춰 서셨습니다. 저는 어느 날 저녁 “그때 예수님께서 멈춰 서셨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멈춰 서셨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무리 가운데서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지금도 그분께서는 같은 일을 하십니다. 마음에 와닿습니까?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르셨던 것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데서 빛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렇게 부르셨을 때, 그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살던 그 여인은 의사들에게 돈을 모두 써 버렸습니다. 틀림없이 말들도 팔고 농장도 팔았을 것입니다. 농장을 담보로 돈도 빌렸을 것입니다. 의사들에게 쓸 수 있는 돈은 다 썼습니다. 그러나 어느 의사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병세는 계속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피가 멎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계속 흘렀습니다. 병은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사는 언덕 위에 앉아 뜨개질을 하다가 골짜기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배 한 척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께 호산나!”
그 여인도 그분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여인은 “내려가서 그분을 뵈어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으로 내려가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보았을 때, 그분의 말과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꼈고, 바로 그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어떻게든 그분께서 나를 돌아보시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분께 손을 댈 수만 있다면.” 여인은 무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느끼신 것은 여인의 손가락이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입는 옷은 헐렁하게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것은 다른 손길이었다. 내 힘이 빠진 것을 내가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여인의 돈은 다 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피가 멎지 않고 의사들도 멎게 할 수 없던 그 어두운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부르셨습니다. 여인을 찾으실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혈루증을 앓았으나 이제 멎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부르셨습니다. 그 여인을 불러 다시 건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어젯밤 이야기한 우물가의 그 여인은...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다섯 번째 남편이 떠나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날 밤 여섯 번째 남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도 조금 의심스러웠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여인은 정말 품행이 바른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분명히 성경을 읽고 있었을 것입니다. 열한 시쯤 그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의로운 여자들이 오는 이른 아침에는 올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물이 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와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구분이 있었습니다. 옳게 사는 사람과 그릇되게 사는 사람이 섞이지 않았습니다. 부도덕한 사람은 따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모두 물을 길어 돌아간 뒤에, 그 여인은 더 나은 것을 얻으러 왔습니다.
그 여인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그곳으로 올라왔습니다. 분명히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젯밤 결혼한 그 남자, 만나 함께하게 된 그 남자가 의심스러워. 그 사람은... 행동이 너무 이상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내게는 아무 가망도 없어. 나는 사회에서 쫓겨났어. 저 교회들에도 갈 수 없어. 저 사람들은... 저들을 좀 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무 괴로워. 나는 성경을 읽어 왔어. 언젠가는 분명히 그 선지자께서 나타나실 거야. 사람들은 그런 일은 없다고들 하고, 혹시 있어도 백 년 뒤나 천 년 뒤일 거라고 해. ‘수천 년 동안 기다렸는데 아직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제는 기다리지 않아. 모든 것이 너무, 아... 아니, 우리에게는 교회도 있고 다 있어. 이제 그런 것은 필요 없어.’라고들 하지.” 여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분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십니다. 어젯밤 살펴본 엠마오로 가던 사람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여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마실 물을 가져오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그때, 여인의 도덕적인 삶이 무너진 가장 어두운 때에... 어쩌면 예쁜 젊은 여자였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거리로 나가 거기서 살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어린 여자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밖으로 나가도록 내버려 둔 부모의 잘못입니다. 그 여인은 아마 곱슬머리가 축 늘어진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기진맥진한 채 지쳐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어린 여자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거기에는 기나긴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한 가지를 압니다. 여인은 성경을 읽었고, 성경을 믿었습니다. 마음속에는 “그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나는 알아볼 거야.”라고 하는 작은 씨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그것을 위해 미리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저기 서서 그런 행동을 했던 유다를 보십시오. 마음 밑바닥은 새까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는 빛이 비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아시겠죠? 유다의 마음속까지는 빛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믿었습니다. 믿고 있었지만 삶은 어둠에 덮여 있었습니다. 빛이 비치자 그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유다 쪽에는 빛이 비치자 모든 것이 캄캄해졌습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아시겠죠? 여인은 그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시겠죠?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여인에게 남편이 몇 명이었는지 말씀하셨을 때, 여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갑자기 흥분한 듯했습니다. 당혹스러워졌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시니이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을 하실 줄을 제가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여인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여인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여인을 죄에서 빛으로 부르셨고, 여인의 이름은 성경에 있습니다. 오늘날 여인은 죽지 않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도 똑같이 부르실 수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의 도덕적인 삶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분별하신다는 것을 여인은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메시아이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여인은 바로 그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있었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폭풍이... 그들은 예수님 없이 떠났습니다. 폭풍이... 나사로의 집에서처럼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그 작은 배에 물이 들어찼습니다. 번개가 번쩍이는 가운데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울고, 어쩌면 기도도 하며 야단이었습니다. 배에는 물이 가득 찼고, 돛대들은 쓰러졌으며, 노들은 부러졌습니다. 그들은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 정말로 가장 어두운 그때에 예수님께서 걸어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분께서 그림자처럼 보였습니다. 영처럼 무섭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오늘날도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어두운 때에 오시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그분께서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아, 영이다!”라고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소리 내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니라.” 가장 어두운 때에 예수님께서 도우러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가장 어두운 때에 오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베드로가 “만일 주님이시거든 물 위로 오라고 내게 명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친구 여러분, 아십니까? 이 마지막 날들에 속한 사람들을 위해 그분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교회가 다시 이 어두운 때에 이르렀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교리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예언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제 말을 기억하십시오. 머지않아 모든 교파가 에큐메니컬 협의회에 가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가입하지 않으면 협의회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보이콧이 일어나 아무도 이 교회들에, 어떤 교회에도 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기 교회의 표가 없으면 사고팔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게 될 것입니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짐승에게 속한 표입니다. 교회는 깨달을 것입니다. 곧 영적인 사람들 말입니다. 오순절교인 여러분이라면 적어도 이것을 알아보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느끼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교회들이... 오순절의 여러 조직이, (이름을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니까요.) 바로 지금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공언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성령 침례에 대한 복음적인 가르침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교리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가장 어두운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낙심하지 말라. 나니라.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다. 내 말씀을 나타내려고 여기 있노라.”라고 하십니다. 그때 그러셨듯이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선생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많은 병자들 중에는 의사에게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은 분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의사가... 그렇더라도 기억하십시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언젠가, 어느 날 선생님께서 오셔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거기에 없다면 지금 기록되게 하십시오. 그분께서 오셔서 부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덤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나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부르고 계실 때 응답하고 그날을 준비하시라고 저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이 시대의 약속,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전에 하셨던 일들을 다시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다시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고개를 숙입시다. 여기에 여섯 쪽 정도 더 남아 있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할 수 없습니다. 고개를 숙입시다. 일찍 마쳐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벌써 정각을 15분 지났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 주님, 제가 말씀드린 이 모든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그분께서는 오시면 무엇을 하십니까? 부르십니다.” 주님, 그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오늘 밤 주님의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임하시게 해 주옵소서. 영의 형태로 계시는 주 예수님께서 임하시게 해 주옵소서. 오늘 밤 그분께서 오셔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을 나타내시게 해 주옵소서. 주님, 그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저희도 믿겠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그들에게 다시 그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브래넘 형제님이 피아노 연주자에게 말한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매님. 그 곡을 계속 연주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계속하십시오. 아... 여러분, 모두 아주 조용히 해 주십시오. 그분께서 오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오셨습니다. 지금도 오시면 부르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오직 믿기만 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기도받을 사람들을 여기 앞으로 불러 줄을 세울 시간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밤은 저기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부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자신의 말씀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그때 그러하셨던 그분은 오늘도 그러하십니다. 그때 자신을 나타내시고 누구신지 드러내셨던 그대로 오늘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십니다. 그때 그분께서 하셨던 그대로입니다. 늘 그러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십니다. 지금 그분께서 그 일을 하신다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저기 계신 여러분... 먼저 제가 살펴보고, 이 안 어디에 제가 아는 분이 앉아 계신지 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있는지 말입니다.
이 주위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저를 모르시는 분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자리에서 손을 들어 주십시오. 모두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온 마음을 다해 믿기만 하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아주 조용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앉아 계십시오.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혼과 몸과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은... 성령께서는 매우 수줍음을 타십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이곳에 왔을 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몇 분이나 기억하십니까... 제가 사람들의 손을 잡았을 때, 그분께서 제게 이 분별이 임하고 그다음에는 더 나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네가 사람들이 너를 믿게 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해 전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지난번 이 근처 집회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쪽에 앉은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저는 설교하면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양팔로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사탄이 그 사람에게 왔습니다. 검은 그림자였습니다. 저는 제 눈으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언제까지나 다리가 불편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 지점에서 사탄이 그를 이긴 것입니다. 그가 그저... 아시겠죠? 하지만 그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수의 말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서 그 그림자들을 보고, 그런 것들과 형체들이 어떤지 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신다면, 아시겠죠, 그것은...
저는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못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나았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그분께서 나타나신 말씀이시므로 다시 뵙기만 하면 소원을 이룰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우리도 그만큼 믿어서 그분을 믿을 수 없겠습니까? 물론 믿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오셨습니다. 성령의 형태로 오셨습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이제 기도하기만 하십시오. 보십시오. 여기 제 곁에 누군가 서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기도하십시오. 보시다시피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건물 전체에 있습니다. 그저 지켜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못...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해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 꿈을 꾸어 줄 수 없는 것처럼 저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자신이... 제가 여러분에게 저에 관한 꿈을 꾸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지금 형제님에 관한 꿈을 꾸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제 마음대로 환상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꿈을 주시는 그분께서 그 일을 하셔야 합니다. 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여기 줄 끝에 관절염이 있는 남자분이 앉아 계신 것이 보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관절염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저기 줄 끝에 앉아 계신 멕시코인 남자분,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줄 믿으십니까?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좋습니다. 옆에 앉은 여자분도 관절염이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줄 믿으십니까? (이 소리가 울립니까?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그 옆에 앉은 또 다른 멕시코인 여자분은 어떻습니까?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위장을 고쳐 주실 줄 믿으십니까? 그분은 받았습니다. 그 빛이 내려가는 것이 보이면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빛이 그분께 닿았습니다. 거기서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테이프 첫째 면 끝.] 그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믿음을 발견하실 수 있으면... 아시겠죠?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그분께서 하지 못하신 일이 많았습니다.
여기 한 여자분이 앉아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할 만합니다. 암 증세가 아주 심합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암이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해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저를 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려는 것입니다. 이쪽을 보십시오. 자매님은 이곳 사람이 아니십니다. 여기가 사시는 곳이 아닙니다. 캘리포니아의 포터빌이라는 곳에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누구신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성함은 윈덤 부인이십니다. 맞습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암이 자매님을 떠날 것입니다. 믿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믿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것을 믿으십니까? 이쪽 구역에 계신 분들 가운데 누군가 믿을 수 없으십니까?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부르셨습니다.
바로 여기 뒤에 한 남자분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자아이입니다. 그분의 딸입니다. 선생님, 믿으십니까? 선생님은 다리에 문제가 있고 무릎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울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곁에 계신 분이 그분이십니다. 따님이 병원에 있지 않습니까? 결핵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으십니까?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따님을 위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오늘 밤 따님과 선생님을 찾아가십니다. 이 일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여기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얼굴이 갈색인 어린 소년입니다. 피부병과 천식으로 고생하는 멕시코인 소년입니다. 이곳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산호세에서 왔습니다. 얘야, 믿느냐? 또 한 가지, 네 아버지도 너와 함께 여기 와 계시는구나. 목사님이시지.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인지 내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느냐? 그러면 아주 굳게 믿겠느냐? 네 이름은 루벤이구나. 이제 믿어라.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오 죄인이여! 오 병든 사람이여!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 안에 나타나신 선생님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믿는 자녀들을 불러 건강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인을 회개로 부르려고 오셨습니다. 믿음에서 떠난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 그분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손을 들고 “제게 필요한 것을 위해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이제 일어서서 받아들이십시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여러분이 누구든, 무엇이 필요하든,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 여인은 도시로 가서 “와서 보십시오.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씀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도시로 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와서 보셨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손을 들어 그분을 찬양하며 말하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저는 믿음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주님, 다시 받아 주옵소서. 제게 성령이 필요합니다. 저를 채워 주옵소서. 제가 병들었습니다. 고쳐 주옵소서. 제가 몸이 불편합니다. 온전하게 해 주옵소서.”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이제 손을 들어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믿으십니까? 주를 찬양하리, 주를 찬양하리. 오,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께서 여기 계실 때 찬송해 드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분은 이 건물 안을 두루 다니시는 영이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여러분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분께 불러 드립시다. 주를 찬양하리. 부르실 때 손을 드십시오. 나는 (이제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주를 찬양해. 오,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오,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휠체어에 앉아 계신 연세 많은 자매님,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을 믿기만 하신다면... 나는... 무언가에 의지해서 한 번만 더 해 보십시오. 주를 찬양하리, 주를 찬양하리. 오,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이제 다시 부르는 동안, 몸을 돌려 옆 사람의 손을 잡으십시오. “주를 찬양하리”를 부릅시다. 자, 모두 함께 부릅시다. 주를 찬양하리, 주를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오, 죄인인 친구여, 지금 여기로 걸어 나오시겠습니까? 모든 백성이여, 나와서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을 구주로 시인하기 원하는 여러분 모두, 성도들이 영 안에서 경배하는 동안 그분 앞에 나오십시오. 이곳에 와서 서서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오늘 밤 간증하고 싶습니다. 그분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그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바로 여기서 그분을 제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세상이 알기 원합니다.” 우리가 찬송하는 동안 나오십시오. 주를 찬양하리, (나오시겠습니까?) 주를 찬양하리. 오,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아, 좋습니다, 자매님. 계속 나오십시오. 또 누가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자매님, 여기 앞으로 나와 이곳에 서십시오. 지금 그분을 구주로 모시기 원하는 다른 분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오십시오. 그분께서는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너희를 부끄러워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그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분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구주로 모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참으로 완전합니다. 말씀 자체가 그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경배하는 동안 앞으로 나오십시오. 나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연세가 아주 많은 자매님이 사이를 지나 나오십니다. 지금 나오시겠습니까? 주를 찬양하리, (이제 부르십시오.) 주를 찬양하리. 그렇습니다. 젊은 여러분, 이쪽으로 계속 나오십시오.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죄인 위해 죽임당하신.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지금 목사님들이 이분들에게 가고 계시는 동안, 다른 분도 나오시겠습니까? 믿음에서 떠난 분들, 나오시겠습니까? “제 삶이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여기 그분께서 계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종임을 믿으신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주께 영광 돌리라. 나와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시겠습니까? ...모든 백성아. 주님의 피가 씻었으니...
마르다여, 나오시겠습니까? 아니면 마리아와 함께 집에 앉아 계시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는데도, 어떤 조직 안에 그대로 남아서 “우리 교회는 이런 식으로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시겠습니까? 뒤에 앉아 그런 말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나오시겠습니까? “글쎄요, 제가 말씀드리자면, ...할 때...” “내가 오늘 불렀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야이로의 딸처럼 여러분 주위에도 죽음이 맴돌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십시오. 믿음에서 떠난 사람도 지금 나오십시오. 죄인도 지금 나오십시오. 지금이 그때입니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제가 어떻게 압니까?”라고 하십니까? 그분께서 제 목소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제 목소리를 사용하여 질병과 고통과 그런 것들을 말씀하신다면, 죄의 문제로도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나오십시오. 지금 나오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그분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친구여, 나오셔야 합니다. 이렇게 나오라고 불러서 여러분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때로는, 어쩌면... 그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와서 확실히 하십시오. 아닙니다. 어중간하게 요행을 바라지 마십시오. 생각 속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지 마십시오. 지금 나오십시오. 지금이 그때입니다. 샘이 열려 있고 성령께서 여기 계시는 바로 지금입니다.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려 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심을 내려놓으십시오. 지금 나오십시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찬양하리, 주를 찬양하리. 나와서 그분을 찬양하시겠습니까?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오,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주님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었으니. 지금 죄인들이 그분을 구주로 모시려고 나오고 있으니, 다른 분들도 함께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모두 함께 찬송하십시오. 주를 찬양하리, 주를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라. 여기 앞에서 기도하고 계신 여러분, 그분을 찬양하기만 하십시오. 용서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분께서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