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저기 제 친구 조셉 보즈가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잠깐 시간을 내어 악수를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서 1장을 펴겠습니다. 오늘 저녁 본문을... 본문으로 삼기 위해 1절, 2절, 3절을 읽겠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아들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셨으며 또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느니라...
이제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지금 그분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서 그분께 아뢰고 싶은 기도 제목이 있으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기도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지금 저희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저희는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소원과 필요한 것을 아시며,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오늘 저녁 저희가 구하는 것이 아버지께서 주고자 하시는 뜻에 맞도록,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왕국이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이러한 특권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말씀과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성령께서 오셔서 저희 가운데 말씀을 행하는 분이 되어 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순복음 실업인회의 조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그 단체의 지부가 있는 곳에서는 제가 그 조찬에서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지금까지 그것이 유일한 조직입니다. 조직은 아닙니다만... 제가 속한 유일한 단체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입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여러 나라에서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오늘 저녁 이 모임이 헛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피곤하고 목도 몹시 지친 데다가 기관지에도 좀... 그런 상태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저는 날씨가 아주 건조한 투산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날씨가 아주 습합니다. 그러니 차이가 큽니다. 여러분이 여기 물을 다 가지고 계신다면, 우리 쪽으로 좀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실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애리조나에 있는 우리의... 우리에게 있는 것들(우리 나무들)은 가시투성이입니다. 모든 것에 가시가 있습니다. 건조하기 때문입니다. 그 똑같은 관목이 이곳에서 자란다면 예쁘고 보기 좋은 잎이 될 것입니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생명수가 없으면 메마르고 가시투성이가 되어, 무엇이든 찌르고 쑤셔 댑니다. 그러나 생명수가 흐르는 곳에서는 잎이 펼쳐지고 부드럽고 순하며 향기로워집니다.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을 주셔서, 우리가 가시가 되지 않고 아름다운 잎이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길을 벗어난 사람들이 우리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아래 앉아 자기 혼의 안식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녁 주님의 뜻이라면 본문을 정하려고 합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이 작은 마이크를 최대한 가까이 당기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읽은 히브리서 1장 1절에서 “특성으로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택하려고 합니다. 이곳의 음향이 좋지 않은 것을 알기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특성으로 자신을 알리십니다.” 거의 모든 것은 그 특성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제가... 참고하려는 성경 구절 몇 곳과 메모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그 특성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모든 것이 그렇듯, 꽃도 흔히 그 특성으로 알아봅니다. 한 종류가 다른 종류와 아주 비슷하더라도 그 꽃의 특성을 보면 무슨 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야생 동물도 많은 경우에...
저는 사냥꾼입니다. 사냥하려는 동물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로는 감쪽같이 속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 멀리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사는 스톤양 같은 경우입니다... 지난가을 저는 유콘 바로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형제님 두 분도 저와 함께 사냥을 했습니다. 양이나 사슴의 자취를 쫓아갈 때 그 차이를 모른다면, 노련한 사냥꾼이 아닌 이상 구별할 수 없습니다. 발자국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도망칠 때는 껑충껑충 뜁니다. 멀리 서 있는 녀석의 머리가 가려져 있다면 거의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엉덩이 부분의 너비가 거의 같습니다. 그 부분이 사슴처럼 희지요. 구별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뿔이 그 특성을 나타냅니다. 그 뿔로 알 수 있습니다. 양의 뿔은 둥글게 휘어 있고, 사슴의 뿔은 가지가 밖으로 뻗어 있습니다. 또 사슴은 먹이를 먹으러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않습니다. 염소가 걷는 것도 그렇습니다... 염소와 양에는 각각 특성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둘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둘 다 산 높은 곳에 살기 때문입니다.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염소는 걸을 때 비틀거리지만, 양은 걸을 때 발을 이렇게 내려놓습니다. 발자국을 내는 방식에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냥감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그 모든 특성으로 어떤 동물인지 알아봅니다. 그 동물의 특성이 그것을 알려 줍니다. 또 한 마리를 놀라게 해서 뛰쳐나오게 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달아나는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동물마다 다른 그 특성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옐로해머(정확한 이름은 플리커입니다)와 어치 말입니다. 어치는 옐로해머와 크기가 거의 같습니다. 두 새가 나는 모습을 보면(둘 다 종류가 대체로 비슷한 새입니다), 색깔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어느 것이 옐로해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치는 거의 곧장 날아갑니다. 하지만 옐로해머는 날개를 퍼덕이면서... 날갯짓을 할 때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오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옵니다. 그렇게 껑충껑충 뛰듯이 납니다. 그러니 그것이 옐로해머의 특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방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메추라기를 보십시오. 나올 때, 날아오르는 방식이... 또 메추라기와 도요새가 있을 만한 습지에 있다면 살펴보십시오. 사냥하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윌슨도요와 잭도요는 나오는 방식과 날아가는 방식으로 어떤 새인지 드러냅니다. 날아가는 특성으로 무슨 새인지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리만 들었어도 날아오르는 방식으로 무슨 새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날아가는 특성으로 어떤 새인지 아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그렇습니다. 둘 다 사람이지만 여자에게는 남자와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솔로몬과 그 여왕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남방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와 그 분별의 은사를 보았던 이야기를 아직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짧은 메시지로 전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 그 이야기를 읽었는데, 여왕이 솔로몬에게 낸 수수께끼 중 하나가 이러했다고 합니다. 여왕은 여자 한 명을, 아니, 여자들을 데려다가 남자 옷을 입혔습니다. 그 시대에는 생소한 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틀림없는 최신 유행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잘못임을 아십니다. 성경은 여자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들을 보기만 했습니다. 걷게 하든지 무슨 동작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곧 “여자들이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의 특성, 몸가짐을 보고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거의 모든 것은 그 특성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왼손잡이도 있고 오른손잡이도 있습니다. 그 특성,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알 수 있습니다. 행동하는 방식과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 압니다. 언제나 왼손이나 오른손을 내밉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두 손은 거의... 똑같습니다. 똑같은 종류의 엄지 지문과 손가락 지문이 있고, 새끼손가락, 집게손가락 등 다섯 손가락이 있습니다. 보통 오른손과 왼손의 손가락이 같은 모양이고 손의 크기도 똑같듯이 말입니다. 둘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하나는 왼손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이라는 것입니다. 구별할 수 있는 차이는 그것뿐입니다. 하나는 왼손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입니다. 그러므로 그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가지 요점을 덧붙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날들에는 영들의 특성이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비슷해서 가능하다면 바로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하나가 다른 하나와 모든 면에서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는 왼손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입니다. 마지막 날의 영들이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그들을 구별해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그릅니다. 그 특성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 특성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교회의 영이 있습니다. 교회의 영이 있고, 그 교회의 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영이 있습니다. 교파의 영도 있습니다. 국가의 영도 있습니다. 그 나라의 영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제가 들어가면... 그곳에 들어서면 다른 영을 발견합니다. 핀란드에 갔습니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핀란드의 영이 있었습니다. 독일에 가면 독일의 영이 있습니다.
얼마 전... 몇 년 전 우리가 아직 인디애나에 살 때, 아내와 작은 슈퍼마켓에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막 집에 돌아왔고, 먹을 것을 사러 가야 했습니다. 그곳에 가는 길에 우리는... 여름철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치마를 입은 여자 한 분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것 좀 봐요! 이상하군요. 저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네요.” 나머지 여자들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미국의 영이지요.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 말이에요.” 미국의 영은... 기독교 국가라고 하지만 이 나라의 영은 그리스도인의 영이 아닙니다. 기독교 국가라고 부를지는 몰라도 그 특성을 보면 백만 마일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제가 말했습니다... 아내가 “그럼 우리는 미국인이 아닌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여기에 살고 있지요. 여기가 우리나라예요. 여기서 지내고 이 나라를 사랑해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미국인이 아니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났어요. 성령께서 내려오셨고,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왕국에 속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자매들이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화장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들의 특성은 그들이 위로부터 와서 주님께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임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국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왕께서 오셔서 그분의 백성을 그분의 왕국으로 받아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들의 특성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보물은 이 땅이나 이 나라에 속하지 않고 저 위 영광 가운데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지으신 도성을 찾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어느 날 저녁 여러분에게 설교할 수 있을 만큼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그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자, 그 특성으로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던 때에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대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가... 그의 씨가 이 낯선 나라에 사백 년 동안 있다가, 그 뒤에 하나님께서 크고 강한 손으로 그를 구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른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갈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때가 가까워졌을 때, 요셉이 그들 가운데서 행한 큰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파라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선지자를 일으키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집트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웠습니다. 분명 대단히 총명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출하는 일에 알맞게 준비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출이라고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구출이라고 하시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모든 윤리적 소양을 갖춘 이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교육을 받았어도 (그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고, 자신이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그는 문학사와 철학박사, 법학박사 등의 학위를 갖추고 이스라엘을 구출하러 나섰다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이집트의 왕좌에 한 발을 들여놓고 파라오가 될 위치에 있었으므로, 파라오가 된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다음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런 방식으로 한다면 자신의 백성을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구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강한 손으로 그들을 구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강한 군대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선지자는 도망하여 광야에서 사십 년을 지냈습니다. 파라오가 그에게 교육을 주입하는 데 사십 년이 걸렸고,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그 교육을 빼내시는 데 사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막 뒤편에서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주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떨기나무 속에 머무는 불기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훌륭하고 교양 있으며 교육받은 사람이었던 그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난 뒤 그의 특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십시오. 그는 가장...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단순한 방식으로, 육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너무나 어리석게 보이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보십시오. 이집트의 모든 군대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주위에 있고, 온갖 교육을 받았으며, 한창때인 사십 세였는데도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든 살이 된 그가,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노새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어린아이를 옆구리에 안고 있는 가운데, 자기 손에는 막대기 하나를 들고 이집트를 점령하러 내려갑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말씀을 믿을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군대가 실패한 곳, 이집트로 단 한 사람이 쳐들어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그의 특성, 그의 전술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중요한 것은 그가 점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해냈습니다. 주님의 권능 안에서 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그는 자기 형제, 교파에 속한 형제인 모압과 마주쳤습니다. 모압은 결코 이교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롯의 딸에게서 난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자녀 중 하나에게서 모압이 나왔습니다. 자, 저 위에... 이 두 민족이 대조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이집트가 있었습니다. 조금씩 흩어져 있었고, 찾아갈 나라도 없고, 통치자도 왕도 아무것도, 그들 가운데 고위 인사도 없었습니다. 그저 약속의 땅으로 가는 백성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압 땅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 땅이 바로 약속을 향한 길목에 있었습니다. 모압도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양쪽 다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마침내 조직을 갖춘 나라의 선지자가 이 다른 민족을 저주하러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정해진 거처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려왔습니다. 그 두 선지자를 보십시오. 근본적인 교리로 말하자면 두 사람 다 정확히 옳았습니다. 보십시오. 발람(그 감독)은 그들에게 “자, 나를 위해 제단 일곱 개를 쌓으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한 수로서, 일곱 교회 시대와 창조의 칠 일 등을 나타냅니다. 보십시오. 일곱... 하나님께서는 일곱 안에서 완성되십니다.
“제단 일곱 개를 쌓고 각 제단에 수소 한 마리씩을 놓으시오.” 그것은 아래 이스라엘 진영에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제단이었습니다. 저 아래 이스라엘에 있는 제단이나 여기 위쪽의 제단이나 같았고, 희생물도 같았습니다. 이쪽도 수소, 저쪽도 수소였습니다. 이쪽도 선지자, 저쪽도 선지자였습니다. 두 민족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보여 주는 아주 완벽한 예입니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있다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것을 비유로 행하셨으므로 서로 대응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또 발람은 제단마다 숫양을 한 마리씩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그의 믿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숫양, 수컷 양 말입니다. 저 아래 이스라엘, 이스라엘 진영에도 똑같은 희생물이 있었고, 여기 위 모압에도 있었습니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둘 다 옳았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교리의 근본적인 면에서 말입니다.) 아래 이스라엘 진영에 있는 한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특성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에 굳게 머물렀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발람도 모세만큼이나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였으므로, 근본적인 교리만 갖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인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약속된 바로 그 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시대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리라.” 그들은 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선지자 모세와, 그 시대의 메시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특성이 드러났습니다. 불기둥이 그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실제로 역사하는 속죄가 있었습니다. 속죄에 관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하는 속죄가 있었습니다. 장차 있을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있는 일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백성의 병과 질병을 위해 들어 올려진 놋 뱀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신유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속죄가 있었고, 놋 뱀은 하나님께서 진영에 계신 것을 상징했습니다. 백성은 그 놋 뱀을 바라보고 치유받았습니다. 그에게는 맞은 반석도 있었고, 그 반석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생명수가 계속 흐르게 하여, 기쁨과 구원이 있게 하고, 그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모형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맞은 그 반석은 맞으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또 그들은 약속을 향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또 하나의 확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씀의 근본적인 교리에 충실했어도, 모세에게는 근본적인 교리와 더불어 확인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특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두 선지자, 둘 다 선지자였고 둘 다 근본적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서 자신의 특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특성이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특성은 언제나 초자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당대의 현대적인 사고방식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지나간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 집단의 계획을 늘 뒤엎으셨습니다. 한 사람이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를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면, 한 번도 예외 없이 죽어 선반 위에 얹힌 신세가 되었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는 없습니다.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등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조직으로 묶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개인들을 다루십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너무나 예사롭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어떤 흐름으로 빠져들어, 이것을 이런 식으로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가지고 오셔서 그 말씀 안에서 자신을 알리십니다. 이 집단은 그것을 믿지 않으므로 그쪽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거기서 스스로를 끊어 버린 것입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었고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 말입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성경, 두루마리들을 늘 읽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고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했는지 알았어야 했습니다. 이사야는 “처녀가 수태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마 열여덟 살쯤 되었을 이 젊은 처녀 마리아와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약혼했을 때 마리아가 아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요셉으로서는 그것을 납득하기가 꽤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이 찾아온 이야기를 분명 그에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성품이 그를 이끄는 것을 보면, 그는 그 말을 의심했습니다. 두 사람이 혼인하기도 전에 마리아가 아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에 대한 형벌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가지면 돌에 맞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매춘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거되었습니다. 신명기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이 저지른 어떤 일을 가리기 위한 방패로 요셉을 이용하려는 것처럼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면 돌에 맞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자기를 막아 줄 방패가 되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마리아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런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마리아의 크고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면...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셉, 가브리엘이 내게 말했어요. ‘성령께서 너를 덮으시리라. 네 안에 수태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느니라. 그것은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니라.’” 요셉은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너무나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이전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꼭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의 예사롭지 않은 점을 사람들이 깨닫게 할 방법이 제게 있다면... 그것이 말씀으로 확인된다면 그 특성이 그것의 정체를 증명합니다. 그것은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이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정직했습니다. 마리아를 은밀히 버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왜 꿈에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당시에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 꿈은 너무나 단순해서 해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차선의 방법으로 꿈에 그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곳에는 이것이 바로 수태할 그 처녀라는 말씀을 확인해 줄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꿈에 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가 정직하고 의로우며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든 선한 사람이라면, 그가 그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일 경우,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오셔서 그 시대에 행하시는 자신의 일을 그 선한 사람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예사롭지 않은 일이어서 그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타나시는 일은 언제나 그 시대를 위한 약속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이 모든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어떤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니며 “자, 이것은 예사롭지 않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이건 예사롭지 않아.”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씀으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확인되는 특성으로 누가 하시는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하셨고, 그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특성은, 일어나고 있는 일의 특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들에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특성이 그것이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말씀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스스로를 알립니다. 그리고 말씀이 잘못 전해질 때마다 언제나 그것을 바로잡습니다. 보신 적이 있습니까? 노아의 날들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물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그 과학의 시대를 바로잡았습니다. 모두 이집트에 정착해 살고 있을 때는 모세가 그것을 바로잡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와서 확인되어야 했습니다. 말씀의 진리가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여기서 조금 깊이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가르침이나 교리를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분은 여전히 말씀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실 수 있었을 때, 그들은 그분이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분께서 바로 그렇게 하시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 선지자이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태어나셨을 때, 열두 살쯤 되었을 때, 장막절을 지키러 올라가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러 그곳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흘 길을 간 뒤에 그분이 안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자기들 일행 가운데 계실 것으로 알아차리고, 아니, 생각하고... 추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너무나 그렇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 가톨릭, 여러분이 어디에 속했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웨슬리에게 큰 부흥이 있었고 루터에게 큰 부흥이 있었으며 오순절에 큰 부흥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분께서 사람들 가운데 계시리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찾으러 갔습니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그분을 두고 왔던 예루살렘에서 찾았습니다. 찾았을 때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열두 살밖에 안 된 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 외에는 아마 학교에 들어간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성전에서 그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논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이 아이의 지혜에 놀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자, 보십시오.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가톨릭 신자 여러분을 욕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작은 오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만일 교회가 마리아 위에 세워져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마리아가 다가와서 “아, 네 아버지와 내가 눈물을 흘리며 너를 찾았단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보십시오. 그 순간 자기 간증을 스스로 부정했습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눈물을 흘리며 너를 찾았단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을 보십시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보십시오. 바로 그 제사장들 앞에서 마리아는 자기 간증을 망쳤습니다. 성령으로 수태했다고 말해 놓고 여기서는 요셉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즉시 그것을 짚어 내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열두 살 소년이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 시대를 위해 선포된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오류를 바로잡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모세의 제자들이라면 나를 알았으리라. 그가 나에 대해 기록하였느니라. 모세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 하고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모세를 알았다면 나를 알았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그 시대의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똑같이 자기들의 것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어머니를 바로잡으셨고, 어머니가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 아이는 자기 안에 성령으로 수태된 아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간증을 뒤집어 요셉이 자기의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만약 요셉이... 만약 그분이 요셉의 아들이고 자기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셨다면, 아래 목공소에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위 성전에서 그 조직들을 책망하며 자신의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겨우 열두 살 소년이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를 보셨습니까? 그 시험 가운데 나타난 그분의 특성이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에 굳게 머무셨기 때문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사탄이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기서 읽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곧 옛날에),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환상을 통해 자신의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선지자의 특성은 그가 장래 일을 예고하면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확인해 주는 특성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 시대를 위한 말씀을 해석할 권한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특성은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이 있어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거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거든 그를 믿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내... 내 말이 그 안에 있지 않느니라. 하지만 이루어지거든 내 말이 그 안에 있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를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특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그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자신이 누구신지 알리는 특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선지자로 부름받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베드로후서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들이 기록했다는 것을 읽습니다. 옛사람들이 성령에 의해 움직여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말씀이 그들에게 왔고 그들은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먼저 선지자로 확인되었고, 그다음에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분께서는 자신을 알리는 특성을 통해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그들의 환상이 입증되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특성이었고,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도 오직 그와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아주 작은 한 점에 불과했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함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특성으로 그분이 누구신지가 드러났기에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그것을 믿지 말라. 내게 내 아버지의 성품이 없거든 나를 믿지 말고 내 주장을 믿지 말라. 내 안에 내 아버지의 성품이 없거든 전혀 믿지 말라.”
그런데 그분의 특성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어린양이 자기 본성을 바꿀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이든 자기 특성을 바꿀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성품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있는 한 그것은 본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바꾸면 본래의 것과 달라지게 한 것입니다. 돼지를 데려다가 씻기고 여자들이 하는 것처럼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해 주고, 립스틱을 발라 꾸며 주고, 예쁜 옷을 입힐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암퇘지를 풀어 놓으면 곧장 물로 달려가 다시 뒹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돼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러나, 그리고...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그러지 않을... 어린양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진흙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진흙과는 아무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 본성입니다. 똑같은 옷을 입혀 놓아도 분명히 그러지 않을... 분명히 가지 않을 것입니다... 겉이 문제가 아니라 속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므로...
이 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무언가를 보시도록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친구 여러분.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그저 얼굴을 보이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달리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곳에 와야겠다고 느꼈기에 왔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을 이곳 사람들 가운데 나타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참으로 어떤 분이신지 여러분이 깨닫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약속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어떤 인물이 어느 특정한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것은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특성으로 자신을 알리십니다. 그러면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그 사람의 특성이 그가 바로 그 사람임을 알려 줍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바로 그분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눈먼 것도 당연합니다. 말씀한 것들이... 그분께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셨어도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각 시대마다, 그분의 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그런데도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특성은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같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특성, 하나님의 특성은 어긋날 수 없습니다. 만일 어긋난다면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 어떤 성품을 지니셨든 여전히 똑같은 성품을 지니십니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셨든, 언제 무엇을 하셨든, 그분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의 성품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특성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인지를 알지 못할...
바울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준비해야 할 줄 알겠느냐?”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낸다면... 나팔이 “퇴각”을 울려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퇴각하는 것입니다. 나팔이 “돌격”을 울리면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돌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팔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알려 줍니다. “올라가라”든 “앉아라”든 “퇴각하라”든 “총을 세워 두라”든, 무엇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그런데 분명하지 못한 소리는... 성경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누군가 “아, 그건 다른 시대를 위한 거야. 그건...” 하고 말한다면, 거기에 분명하지 못한 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는 내 생명을 내놓을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일으킬 권능도 있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하지 못한 소리가 없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는 줄 우리가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당신이 하신 것과 같은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그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하지 못한 소리가 없습니다. “내가 그니라.” 아멘! 그들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소.”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은 모두 죽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라.” 분명하지 못한 소리는 없습니다. “나는 에덴동산에서 온 생명나무니라.” 거기에 분명하지 못한 소리는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불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분명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성경이 내는 소리가 하나님의 특성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37절에서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고 내 아버지의 그 성품을 갖고 있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라. 그 일들이... 내 안에 계신 그분의 성품과 특성을 알려 주는 것은 그 일들이니, 아버지는 말씀이시기 때문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하나님의 특성은 그 시대를 위한 그분의 약속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분께서 모세의 시대에 사셨다면 그것은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분의 시대에 살았어도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노아의 시대에 사셨거나 노아가 그분의 시대에 살았어도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는 그 시대를 위한 일들을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특성과 그가 행한 일이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모세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시대를 위해 약속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인됩니다. 곧 하나님이신 말씀의 특성을 통해 확인되는 것입니다. 아멘!
마지막 날들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특성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약속하신 이 모든 일을 그분은 그대로 행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특성을 알려 줍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특성이 하나님의 특성과 같지 않거든 그것을 믿지 말고 나의 주장도 믿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2절을 보십시오. “나를 믿는 자는” 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알아보게 하는 것, 나의 특성을 지니고 있느니라.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그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그분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멘!
목은 쉬었지만 지금 마음에 신앙의 감동이 아주 뜨겁게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아, 참으로! 여기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분의 생명은...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그것이 특성을 확인해 줍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습니다. “나의 성품이 내가 누구인지(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을) 알려 주지 못한다면”, 그분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분을 확인해 주지 못한다면 그분은 자신이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알리지 않으신다면... 그리스도의 특성이, 우리가 말씀을 믿으며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임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셨기에 말씀을 믿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하면서 그 성경의 어느 한 말씀이라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성령은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은 모든 약속에 “아멘!”으로 답할 것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아멘.” 하고 말했습니다. [불분명한 말] “아니, 그건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었어. 그건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었어.” 하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는 [어느 곳에서든, 온 세상에서] 이런 표적들이 그를 따르리라.” 똑같은 일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 특성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히브리서 1장 1절의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씀이, 그분께서 여러 시대에 나타내셨던 것과 같은 특성으로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확인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자신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옛 성경에서 꿈꾸는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옳은지 아닌지 알아볼 선지자가 그 땅에 없으면, 그것을 알아내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 누가 꿈을 꾸었든 그 사람을 성전으로 데려갔습니다.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흉패가 기둥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꿈꾼 사람이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리고 사실처럼 들려도, 그 보석들 위에 초자연적인 빛이 번쩍이지 않으면 (그것을 우림 둠밈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읽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사실처럼 들려도 그것은 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사롭지 않으심, 하나님의 성품이 초자연적인 것 안에서 그 특성을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그 메시지에 자신이 함께하심을 확인해 주셨음을 보여야 했습니다. 아멘! 오늘 저녁에도 똑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옛 우림 둠밈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말씀은 하나님의 특성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위한 약속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약속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계셨던 그대로 동일하십니다. 보십시오.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요한 때까지였고, 그 이후로는 하늘의 왕국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는 (그때 하신 것과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이 마지막 날에는 (똑같은 일을 하시면서)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조상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고,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사시면서 자신을 알리시고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그분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느니라.” 성경은 손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는 이 말씀을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십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면 그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해석입니다. 누군가 “저는 이것이 이런 뜻이라고 믿습니다...” 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해석으로 그것을 확인해 주십니다. 그 약속이 그 시대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루터의 빛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웨슬리의 빛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그 어느 사람의 빛 가운데서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된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이집트에 내려가서 “자, 우리는 커다란 방주를 지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배를 타고 빠져나갈 것입니다. 나일강 물이 불어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두루마리를 찾아보았을 것이고, 거기에는 그런 약속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말한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주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파라오에게는 창들이 있었지만 모세에게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이르렀을 때 창들은 모두 바닷속에 잠겼고, 모세는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 이스라엘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에게는 말씀이 있었고 그가 그 시대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시대를 위해 나타난 말씀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시대를 위해 나타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타난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하신 약속들이 있습니다. “잠시 있으면 세상은 나를 다시 보지 못하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하며 너희 안에까지 있을 것임이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그분께서 이 일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시대에 행하셨듯이 하나님의 특성이 그분의 말씀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4장에서 그분께서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보라,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그날이 오기 전에 그가 자녀들의 믿음을 다시 아버지들에게로 돌이키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장에서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가 올 때, 인자가 나타날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소돔과 같아질 그 날들에 계시가 펼쳐질 때 무엇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특성,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성으로 자신을 알리시는 일입니다. 언제나 지니고 계셨던 그 특성입니다. 그분은 거기서 벗어나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으시기에, 언제나 이 일들을 어떻게 행하시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야기했던 이 세 사람... 방금 소돔의 날들에 관해 말씀드렸듯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내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고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 아이를 얻을 것이었습니다. 조금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사라가 아기 덧신과 옷핀을 비롯해 모든 것을 준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기를 낳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십팔 일이 지난 뒤 아브라함이 “사라, 여보, 몸이 좀 어떻소?” 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전과 같아요.” “하나님께 영광!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거요.”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일 년이 지났습니다. “여보, 몸이 좀 어떻소?” “전과 같아요.”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거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오 년이 지났습니다. “여보, 이제 몸이 좀 어떻소?” “전과 같아요.”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거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처럼 행동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이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아기 덧신은 벌써 누렇게 바랬지만 사라는 여전히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늙어 허리가 굽었고 몸 상태도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사라의 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는 불임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처지가 어떠했겠습니까! 믿는 체하는 친구들이 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민족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몸이 좀 어떠시오?” “하나님께 영광! 아주 좋소. 그래도 우리는 그 아기를 갖게 될 거요.”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이행하실 수 있음을 온전히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것이 믿는 자의 특성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약속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 있으며, 우리의 특성이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믿고 있음을 보여 줍니까? 아니면 그저 우물쭈물하며 이쪽저쪽,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짐작만 하고, 그것에 대해 우물쭈물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믿는 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약속 위에 참으로 서서, 바로 그 선을 지키며 굳게 머문다면...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라함은 세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날이 더울 때였다고 말합니다. 한낮쯤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가와 그와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두 사람은 소돔으로 내려갔음을 우리는 압니다. 며칠 전 저녁에 그것에 관해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한 분은 그와 함께 남으셨습니다. 그가... 하고 부른 이분, 그와 함께 남으신 이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중 한 분은 그 특성으로 엘로힘이심이 확인되었습니다. “엘로힘”, 성경의 맨 처음 단어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여기 있는 학자 여러분은 그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분, 모든 것에 충족하신 분,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시며 어느 누구의 해석도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친히 해석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충족하신 하나님,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계셨습니다.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던 족장 아브라함이 이분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분께서 장막을 등지고 계신 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니, 내가 네게 약속한 이 아기를 네가 갖게 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그 말에 웃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야기하시던 분께서 자신의 등 뒤 장막 안에서 사라가 한 말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읽어 보십시오. 그때 이분께서 자신이 누구신지 알려 주신 뒤 아브라함은...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예리하고 더 권능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분이 바로 그분임을 알았습니다. 그 땅에는 자기 외에 다른 선지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온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이제 말씀이 그 선지자에게 왔습니다.
침례자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기억납니다. 저에게 그 믿음 안에서 침례를 주었던 연로한 선교침례교 설교자, 데이비스 박사님이 오늘 저녁 여기 앉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저와 논쟁하곤 했습니다. “빌리, 자네는... 아직 애송이야. 내 말을 들어야 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좋습니다, 데이비스 형제님. 듣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다시피 요한은 침례를 받지 않았네. 그러니 그는 침례를 주고 있었지만 자기는 침례를 받지 않았던 거야. 그에게 침례를 줄 만한 사람이 없었지. (그럴듯한 침례교 신학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어.” 그분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요한이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 하고 말했어.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하고 말씀하셨지.” 그분은 “요한이 예수님께 허락했을 때, 알겠나,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주셨어. 그분께서 물에서 나오셨을 때 하늘이 열렸지. 비둘기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분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았고,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나는 그의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 하고 말씀하셨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께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잘못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선지자였고, 말씀은 언제나 선지자에게 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면 어쨌든 선지자에게 오셔야 했습니다. 요한이 말씀에 대해 증언하고 있었고, 바로 그 특성이 그곳에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오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요한이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이렇게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선지자였고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희생물이셨고 이제 지상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셨는데, 희생물은 드리기 전에 씻어야 했습니다. 요한은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이렇게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신 말씀을 알았기에 그분께 침례를 주었습니다. 희생물은 드리기 전에 씻어야 했으므로 요한이 그분께 침례를 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보십시오. 여기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왔습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이제 말씀이 오십니다. 그분은 그를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그의 이름은 아-브라... 아브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입니다. 그의 아내는 사래였지만 이제는 사라입니다. S-a-r-a가 아니라 S-a-r-a-h입니다. A-b-r-a-h-a-m... A-b-r-a-m이 아니라 A-b-r-a-h-a-m, 아브라함입니다. 이분께서는 “아브라함아.” 하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누구신지 알리셨습니다. 아, 참으로! 아브라함은 “엘로힘.” 하고 말했습니다. 말씀과 선지자가 함께 있고, 두 분이 누구인지 확인되었습니다. 엘로힘입니다. 그분께서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주님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엘로힘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모든 것에 충족하시고, 전능하시며, 모든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땅에 계실 때 엘로힘이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특성으로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전에... 마지막 날들에 바로 인자가 오실 때(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이 장면이 소돔 때와 같이 다시 펼쳐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엘로힘께서 백성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사십 년 동안 그분, 엘로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한 표적을 보았고, 또 한 번 부르심을 받았으며, 표적을 보고, 부르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표적을 보면서 그 약속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된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본 표적,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나타나시고 마지막으로 찾아오신 것은 인간의 육신 안에 계신 엘로힘이었습니다. 그 뒤 약속된 아들이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약속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부어 주심, 방언, 신유 등의 표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나타나실 때 엘로힘께서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돌아오셔서 그날 보여 주셨던 것과 똑같은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아멘! 엘로힘입니다. 그때와 같이...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셨다면... “잠시 있으면 세상은 나를 다시 보지 못하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완성의 때, 마지막까지 너희와 함께하며 너희 안에까지 있을 것임이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고 이 마지막 날들을 바라보면, 이 장면이 다시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을 알리셨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특성을 교회에 주심으로써 그 아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음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히브리서 13장 8절이 정확히 맞는 말씀이 됩니다. 거기서 깃털 하나도 뽑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독수리의 깃털입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새이기에 그 깃털은 단단히 붙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독수리의 먹이를 먹이십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심으로 그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천 년이 지난 뒤에도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같은 예수님, 선지자들 중 하나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니라. 그들에게 표적이 주어지리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 세상이 지금보다 더 악하고 음란하고 왜곡된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요나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표적입니까? 부활의 표적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것이 있습니다. 이천 년이 지난 뒤에도 그분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오늘 저녁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분께서, 오늘 이 시대에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특성으로 자신을 알리고 계십니다. 아멘. 여기에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그다음은 여러분이 그 표적을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자신의 아들을 통해 자신을 알리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서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그것을 알았겠습니까? 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의... 그분의 특성이 이 약속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해 주었는지 보십시오. 분명히 그렇게 했습니다. 그분은 모세가 그분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이 특성으로 확인되셨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오늘날처럼 어떤 위대한 지도자를 보고 싶어 합니다. “아, 이분은 아무개 박사, 철학박사님입니다. 하트퍼드대학교 출신이십니다.” 혹은 어디 대단한 곳을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려 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학자가 아니셨습니다. 제사장도 아니셨고, 세상이 보기에는 랍비도 아니셨습니다. 세상에서 그분은 배교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셨고, 그것이 그분을 임마누엘이 되게 했습니다. 그것이 그분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모세를 통해 그분이 행하시리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을 그대로 이루고 계셨습니다.
보십시오. 며칠 전 저녁에 실감 나게 이야기해 드린 것처럼 그분께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베드로를 만나 그의 이름을 말씀하셨을 때, 그 표적이 베드로에게 그분께서 메시아라는 주장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말씀이 “주 너희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때는 시몬이었는데, 그분께서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며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통해 그분께서 모세가 약속한 그 말씀이심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표적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해 준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을 위한 기름부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에게는... 시몬에게는 이름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보십시오. 나다나엘에게는 그가 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았을 때 너는 나무 아래 있었느니라.” 그것이 그분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약속된 말씀의 특성으로 그분께서 메시아가 되실 분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 우물가의 그 여인에게는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셨고, 그것이 그분께서 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분의 성품, 그분의 특성은... 말씀이 확인되는 것이 그분의 특성이었고, 그것은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주목하십시오. 베드로에게는 그의 이름을 부르심으로써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나다나엘에게는 그가 한 일을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심으로 메시아로서의 자신의 특성을 알리셨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특성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십시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교회는 많았고 다툼과 교파 간의 이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바로 이것으로 그분을 알아보게 될 줄 우리가 압니다.” 그분께서는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그니라.” 그것이 그분께서 누구신지 확인해 주었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그분이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자기 믿음이 그분께 닿았을 때 그분께서 행하신 일로 알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언가 일어났음을 아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것을 믿고 “내가 그분의 옷에 손만 댈 수 있다면 낫게 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손을 대자마자 그분께서 돌아서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메시아적 특성은...
아멘! 회중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 하니 들어 보십시오. 자, 그 여자가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 어쩌면 수백 명이 그분께 손을 대려고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그분께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다. 그러나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내게 손을 대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다른... 믿음의 손길입니다. “누군가 내게 손을 대었느니라. 다른 손길이었느니라. 내가 약해졌느니라. 내게서 힘이 나갔고 효능이 나갔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거기에 서 계십니다. 그런데 자기 제자조차 이런 뜻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좀 모자란 사람처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그분께서 자신을 어떻게 알리시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돌아서서 군중을 살펴보셨습니다. 그 여자를 정확히 집어내셨습니다.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자의 상태를 말씀해 주시고 여자의 믿음이 그녀를 낫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로 여자는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말씀이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한다고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특성이 그분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멘! 오늘 저녁에도 똑같은 일이, 그분께서 오늘 저녁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알려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이 참되므로, 그분의 성품은 그때 그랬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오늘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려 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의 글레오바와 그 일행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빵을 떼시는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들이...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그대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특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늘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 그분께서 여기 계신다면 자신을 어떻게 알리시겠습니까? 어제 하셨던 그대로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동일하시고 영원히 동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분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과 15절은 “그분은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니라.” 그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의 부활 이후, 그분의 죽으심 이후, 그분의 장사되심 이후, 그분의 부활 이후, 그분의 승천 이후에도 (아멘), 그분은 여전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아멘! 여기서 그것을 믿을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그분은 바로 지금 그런 분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분의 특성은 그분께서 땅에 사셨을 때와 동일하신 분임을 끊임없이 알려 줍니다. 오늘 저녁 그분은 여전히 이곳에서 성령의 모습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아직 살아 계시다면 그분의 특성도 늘 그랬듯이 그분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오늘 저녁 저는 감사드립니다.
아, 이렇게 오래 말한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된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멈추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크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그랬다면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주님, 제가 한 말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기 주님의 말씀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한두 마디만 해 주옵소서. 어쩌면 오늘 저녁 이곳의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병든 이들이 주님께서 여전히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심을 깨달으면 치유받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 앞으로 몇 분 동안 제가 말로 전한 이 메시지를 실제로 다시 살아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녁 주님의 특성으로 저희 가운데 주님을 알려 주셔서,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보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십오 분이나 이십 분 동안 잠깐 기도 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참아 주시겠습니까? 그러실 분은 손을 들어 “우리는...” 하고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제가 아홉 시 삼십 분에 마치고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 그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십 분 전이... 그러니 십 분 정도만 주시면 서둘러 하겠습니다. 어디 봅시다. 오늘은 어떤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까? O입니까? 며칠 전 저녁에는 어디서 시작했지요? 1번? 1번이요? 예.
그때 우리는... 어젯밤 우리는 그저... 성령께서... 오늘 저는 들으면서 전해진 말을 되풀이해 보았습니다. 그 프랑스어 이름들 중 몇몇은 제가... 성령께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기다리며 보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환상을 보았을 때 그것을 돌이켜 보고 번역해야, 해석해야 합니다. 환상을 말입니다. 이를테면 양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양털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해석도 있어야 합니다. 그 환상을 돌이켜 보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젯밤 제가 그 프랑스어 이름들을 발음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철자를 하나하나 말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그 호텐토트족과 이교도들 가운데 있을 때도 그들의 이름이 철자로 정확히 나타났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로 정확히 철자를 알려 주었습니다. 철자를 말해 주면 그들은 즉시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언어를 아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저녁에는, 어디 봅시다, O의 75번부터 100번까지 시작하겠습니다. O입니까? 그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O요? 아, 예. 좋습니다. 75번 기도 카드를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어디 보겠습니다. O입니다. 기도 카드 O-75번입니다. 누구든 가지고 계시면 손을 드십시오. O입니다. 좋습니다. 바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75번, 80번, 85번, 90번, 95번, 100번입니다.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좋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여기로 오셔서 빨리 줄을 서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실 줄 믿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카드를 보십시오. 옆 사람의 기도 카드도 보십시오. 무슨... 몸이 불편한 분이 계시면 기도 줄로 바로 모셔 오십시오. 그러니 O 카드가 있으면, O-75번부터 100번까지는 이쪽에 줄을 서 주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위층 좌석이든 어느 곳이든,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바로 내려와 최대한 빨리 줄로 와 주십시오. 여기 나머지 분들 가운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은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는 기도 카드가 없지만 믿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대제사장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여호와 이레,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이십니다. 그분은 여호와 라파, 너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분은 여호와 므낫세, 방패, 보호막, 또는 평강이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자, 여호와의 구속을 나타내는 그 모든 이름이 예수님께 적용되었다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분은 그러셔야 했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그것들은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 모든 것이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여전히 여호와 이레이시라면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그분께서 여호와 이레이시라면 그분은 (여호와 이레는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아멘. 치유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올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동안... 저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기 계신 분들 가운데 제가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제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저를 모르십니다. 그래도 제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저 손을 들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이제 몇 분만 차분히 계십시오. 지켜보시고 주의를 기울이며 조용히 계십시오. 제가 “조용히 계십시오.”라고 할 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셔서 여러분이 주님을 찬양하고 싶으시다면 그것은 경배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일어나는 그런 행동입니다. 그것은 경외심이 없는 행동입니다. 성령께서는 아주 수줍으십니다. 아주 수줍으십니다. 그런 일이 조금만 있어도 제게서 떠나시고, 그러면 저는 다시 씨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귀를 기울이시면... 그분의 첫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사람들이 너를 믿게 하고, 그다음 신실하라. 그 기도 앞에 아무것도 맞서지 못하리라.” 기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그것이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능한 한 많은 분이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 줄을 서둘러 진행하겠습니다.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기도 카드를 가지고도 오늘 저녁 번호가 불리지 않은 분들은 카드를 간직하십시오. 여러분 차례도 오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저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도 기억하십시오... 아니, 저기 계신 분들은 기도 카드가 있든 없든, 그분께서 여기 히브리서 4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심을 믿기만 하십시오. 그분께서 여전히... 여호와께서 소돔의 날들에 하셨듯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는지 보십시오. 좋습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참으로 경건하게 계십시오.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이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크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기 이분을 저는 모릅니다. 이분은 아마... 선생님, 저와는 처음 만나는 분이지요? 처음 뵙는 분입니다. 한 가지는 압니다. 언젠가 우리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제 만일... 이곳에 오셨는데... 병이 있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다른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생님께 손을 얹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가셔서 나으십시오.”라고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믿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선생님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다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것이 그분의 특성을 확인해 준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것은 제 특성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이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방금 이분에게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분도 저를 모르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무엇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을 확인해 주게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손을 듭니다. 여기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고 이분도 저를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은...
예수님께서 여기 서 계시고 이분이 병들어 있다면... 이분이 “주 예수님, 저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린다면 예수님은 이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가 이미 그것을 행하였느니라.” 맞습니까?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구속은 갈보리에서 완결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완성된 사역을 믿는 믿음입니다. 맞습니까?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제가 그분의 말씀을 전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단순함으로 돌아가,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날 밤 그분께서 저를 만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들의 마음속 비밀까지 알게 될 때가 오리라. 그들은 손에 나타나는 그 첫 표적을 믿지 않으리라. 그들은 이 표적을 믿어야 하리라. 그것도 믿지 않으면 피가 땅을 저주하리라.” 모세 시대에 그랬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두 표적을 믿지 않으리라. 그러면 땅에 피를 부으라.” 아시겠죠? “땅에 물을 부으라. 그러면 그것이 피가 되리라.”
이제 알아보기만 하면... 제가 선생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만 있다면 만족하시고 믿으시겠지요? 선생님은 그것이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이분을 바라보니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림자에 덮여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어떤 약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어 가는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수술을 받으셨는데 전립선 수술이었습니다. 암입니다. 암이 선생님의 온몸에 퍼졌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선생님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마귀가 의사의 칼을 피해 숨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피해 숨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이 선생님에게서 떠나기를 기도합니다. 이분이 살게 해 주옵소서. (그 남자가 기절할 듯 보인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저 힘이 빠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납니다. 사람으로서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그리고 여자분인 선생님도 아마 제 이름이나 사진 같은 것을 보신 것 외에는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 두 사람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특성은... 그분은 말씀이시며, 말씀은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것에 관해 말씀드리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특성이 이곳에서 그분을 알려 줄 것입니다. 제가 아니라 그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회중 여러분도 이해하십니까? 저는 사람입니다. 그저 여러분의 형제일 뿐입니다. 우물가의 여인과 같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선생님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 때문에 여기 계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게 하십시오. 선생님은 빈혈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맞지요? 제가 그것에 자꾸 부딪힙니다. 누군가 제가 추측해서 맞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추측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때때로 누군가... 하고 느낍니다. 지금은 여러분의 생각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제 대략... 여기 몹시 의심하는 사람 두 명이 앉아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이름도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그만... 자,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부인. 저를 보십시오. 그분께서 선생님께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는 압니다. 그것은 그분의 특성이 확인된 것입니다. 예. 빈혈입니다. 피, 물입니다. 자, 여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것도 추측이라고 생각하는지 봅시다. 선생님이 기도하고 있는 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목에, 편도선과 아데노이드에 문제가 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맞지요? 그 손수건을 가져다가 아이에게 얹고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아이에게는 수술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여기 이 여자분의 문제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반점이 암으로 변한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이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믿으며 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그분께 감사드리며 가십시오. 제 특성이 아니라 그분의 특성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이것이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될 법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선생님께도 저는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생님을 아십니다. 믿으십니까... 제가 선생님을 모르고 선생님도 저를 모르신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니 지금 말씀하고 계신 이 영이 제 영일 수 없음을 믿으십니까? 사람인 저는 선생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속된 말씀의 특성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예리하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몹시 아프십니다. 여성 질환이 있었는데, 자궁의 문제였습니다. 그 자궁에 암이 있었습니다. 가서 어떤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라듐 치료였습니다. 그것은 암을 선생님의 온몸에 퍼뜨렸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지 않으시면 선생님은 죽게 됩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그분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하늘의 하나님께서 의사를 피해 숨은 그 마귀를 꾸짖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듐을 피해 숨을 수는 있어도 성령을 피해 숨을 수는 없습니다. 믿으며 가십시오, 자매님.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천식을 고치시고 선생님을 낫게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뻐하면서 가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제 천식은 끝났다고 믿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신경과민이 있으십니다. 오래전부터 신경과민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위에 소화성 궤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위장병이 생긴 것입니다. 원하십니까... 저녁을 드시고 싶으십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하시겠습니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셔서 드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아주 훌륭한 젊은 아가씨로 보입니다. 제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특성, 곧 말씀 자체,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하신 이 시대의 약속이 이곳에 있음을 믿으십니까? 저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이미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특성이 나타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는 부인병, 여성 질환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치심을 믿으십니까? 가십시오. 다시는 선생님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제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임을 믿으시겠습니까?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는 없습니다. 가셔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오십시오, 부인. 선생님도 위장병이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고 가셔서 저녁을 드십시오. 그 병은 잊어버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십니다. 오십시오. 선생님의 문제는 혈액에 있습니다. 당뇨병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시고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가셔서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선생님을 낫게 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오십시오. 선생님의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등을 고치시고 선생님을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가셔서 기뻐하며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선생님도 등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계속 걸어가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치유받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선생님도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군요!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가셔서 나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심을 믿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좋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며 손을 얹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여자분이 나으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봅니다. 이분이 나으리라고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저는 이 마귀가 몹시 싫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지금 이분을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나으실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고쳐 주지 않으시면 언젠가 관절염 때문에 목발을 짚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관절염을 고치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셔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그분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오십시오. 사실 나이 때문입니다. 신경이 아주 예민하십니다. 일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 늦은 저녁에 신경이 아주 예민해집니다. 신경이 아주 예민하십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그러면 더는 선생님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가셔서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오십시오, 선생님.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고치시고 선생님의 심장을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계속 걸어가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핵도 고치시고 낫게 하십니다. 선생님, 그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기뻐하며 가셔서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저기 계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으십니까? 회중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제 회중 가운데 몇 분이라도 믿어 보십시오. 여기 앉아 있는 기관지염을 앓는 이분, 하나님께서 기관지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바로 그분 뒤에 앉아 있는 고혈압을 앓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고혈압을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선생님, 그 병이 떠났습니다.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 근육에 생기는 그 경련, 신경성 근육 경련을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거기 앉아 계신 부인은 부비동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선생님에게서도 그 병이 떠나는 것을 믿으십니까? 저기 우리 바로 뒤에 앉아 계신 여자분에게는 신경염이 있습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신경염을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여기 빨간 겉옷을 입은 여자분이 계십니다. 저기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도 부비동 질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부비동 질환을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오늘 저녁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이 우리 가운데 있다고 믿는 분은 누구든 손을 들고 “저는 믿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그분을 자신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실 분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저는 믿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의자에서든 어디서든 일어나 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