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서 고개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다시 경배의 집에 나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을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흘려진 보혈 아래 있는 이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나 그 누구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마련하신 유일한 장소는 흘려진 보혈 아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셨음을 알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옵니다. 우리가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불신을 도와주십시오. 오늘 밤 우리가 함께 모인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되시고 사람들 가운데 그분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밤 다시 이곳에 와서 이렇게 좋은 분들이 모여 계신 것을 보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기가 가축 전시장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니며 거의 온갖 장소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카우 팰리스라고 하는 곳에서도 두세 번 집회를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크기도 다양해서 다섯이나 여섯 명이 들어가는 작은 방에서부터, 한 번에 모인 사람 수로는 가장 많았던 봄베이 집회까지 있었습니다. 그때는 한 집회에 5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봄베이에서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교회들이 협력하도록 할 수만 있었다면 그 힌두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참된 의미의 “불신자들”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불신자”라고 부릅니다. 문자 그대로 수천 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했지만, 그들에게... 도무지 손이 미칠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 남아프리카 더반에서는 어느 날 오후 한 번의 영접 초청에 응한 사람을 등록했는데 3만 명이었습니다. 다음 날 더반 시장인 시드니 스미스 씨가, 영국제 대형 화물차 일고여덟 대에 사람들이 수백 마일씩 걸어올 때 짚었던 낡은 목발 같은 것들을 가득 실었습니다. 또는 몇 주 동안 정글을 지나 그들을 들것에 실어 왔습니다. 차마다 그런 것들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시장이 제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호텔에서 인도양을 향한 창문으로 가 보십시오.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을 보실 겁니다.” 그 큰 화물차들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정글에서 데리고 나오는 데 쓰던, 우리가 목발이나 들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그것들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화물차 뒤를 걸어가며 자기네 말로 「오직 믿으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가슴 벅찬 광경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의사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의사가 그 사례들이 확실한지 직접 검사했습니다. 우리는 진실임을 입증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발표하거나 인쇄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드시 입증되어야 합니다!
조금 전에 어떤 분에게서 편지를... 방금 받았습니다. 속달 편지인데, 인디애나의 유명한 의사가 보낸 것입니다. 그분의 신앙은 가톨릭입니다. 그 아들은 인디애나주 재스퍼의 성 마이나드 수도원에 있는 사제입니다. C. 애커먼 박사라는 분입니다. 한번은 사냥 여행 중에 우연히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11년 동안 엘크를 잡으러 다녔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거의 두 시까지 앉아서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 의사가 캠프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올라갈 때는 거만하고 냉담한 사람을 만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훌륭하고 다정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다가와 “브래넘 형제님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저와 악수하며 “저는 애커먼 박사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한때 하나님이셨다면 계속 하나님이셔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한 번도 하나님이셨던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당시 사람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시지 않다면, 역사 속의 하나님은 오늘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세 시쯤에 우리가, 아, 그 안내인이 우리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저도 안내를 하고 있었으므로 각자 맡은 사람들을 서로 다른 안내 구역으로 데리고 나갈 참이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애커먼 박사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내려가던 도중, 동이 트기 조금 전에 그분이 멈추더니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브래넘 형제님?” 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네, 박사님”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습니다. 제 아들이 이곳 수도원에서 사제로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 저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가톨릭을 믿습니다. 그게 제가 속한 교회라고 해야겠지요. 저는 그분이 한때 하나님이셨다면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그분이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또 한 피로 모든 민족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형제님의 책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속마음을 털어놓고 드리는 겁니다. 오늘 제가 엘크 한 마리를 잡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 주시면 잡을 거라고 믿습니다. 11년 동안 엘크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눈보라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박사님, 한 마리를 주시도록 주님께 구하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구하고 그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박사님, 오늘 아침 정확히 아홉 시에 주님께서 뿔이 다섯 갈래인 수컷 엘크 한 마리를 주십니다.” 그분이 “믿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믿으신다면.”
그래서 친구 한 사람과 저는 언덕에 올라가 시계를 지켜보았습니다. 아홉 시에 총소리가 났습니다. 그분이 뿔이 다섯 갈래인 수컷 엘크를 잡았습니다. 우리는 가서 그것을 가져오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분은 자기 환자들을 데리고 와서 기도를 받게 합니다. 방금도 속달 편지를 받았는데, 암 환자가 한 명, 암으로 죽어 가는 여성이 있어서 비행기로 이곳에 데려오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일이 지나면, 지나서, 모레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제가 그곳에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거기 도착하면 그 여성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 일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기만 하면! 신유에 관해서는 말도 너무 많았고,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광신주의도 너무 많이 따라붙었습니다. 어떤 종교든, 무엇이든 광신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슬람교인들 가운데도 있고 힌두교인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묘기를 보이려고 못이나 유리 같은 것 위에 눕는 위선자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내륙 깊숙이 들어가면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희생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그런 것을 봅니다. 광신주의를 봅니다. 먹는 데 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도 너무 많이 먹습니다. 그 밖에, 무엇이든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해서 제대로 설명해 주면 아무것도... 저는 믿는 목회자보다 믿는 의사를 더 많이 만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의사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는 메이요에서 면담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지만 신문에도 널리 보도되고 그랬습니다. 또 곳곳의 훌륭한 병원 의사들과도 만났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믿습니다. 의사들이 제게 와서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 면담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돕는다고 할 뿐입니다. 치유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어린 도니 모턴이 “치유되었다”고 그들이 서명한 기사를 읽으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도니 모턴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저를 불러 면담한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는 메이요도, 홉킨스도, 모두 포기했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께서 그를 치유하여 낫게 하셨습니다. 또 영국 런던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고인이 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증손녀가 있습니다. 그 여인은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비행기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잘못 전달되어 왔습니다. 마치...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교도 사람들에게 잘못 전달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신조를 선언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살아 계신 분,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조가 아니라 한 분이십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아는 것조차 아닙니다. 그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가... 저는 그저 성경의 어떤 구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상당한 학자였습니다. 그가 “당신은 성경을 모르시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성경의 저자를 아주 잘 압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안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그분이 맡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이제 내일 아침에는 여기 이 건물에서... 저의 대외 연락을 맡는 리 베일 박사가 이곳에 와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오십시오. 그분이 답해 드리고, 여러분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베일 박사가 이곳에 있습니다. 지금 아마 건물 뒤쪽 어디엔가 계실 겁니다. 아주 훌륭한 학자이며 이 일을 위해 충분히 훈련된 분입니다. 그러니 질문이나 다른 일이 있으시면 지금 이런 공개 집회에서 물으려고 하시기보다 베일 박사를 만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기꺼이 의논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이곳에서 그분이 예배를 인도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면 기쁘겠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는 시내 곳곳에서 일요일 성경학교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요일, 일요일 오전이나 일요일 오후 시간을 이 강당에서 차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들 말입니다. 여러분이 맡은 일을 해야 할 곳은 여러분의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곳에 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맡은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이곳으로 나오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마침 그 부흥회가 열리는 도시에 오게 되었더라도, 그런 일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교회를 향한 선의와 포용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누려고 여기 왔습니다. 우리는... 저는 어떤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그리스도인입니다. 제게 조금이나마 영향력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높이고 죄인들이 회개하도록 이끄는 데 쓰려고 할 뿐입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날에 그분이 “잘하였도다” 하고 말씀하시기를 바라고 믿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말은... 그분께 듣고 싶은 말은 그것입니다. 저는 종종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날 그분이 서서 두 팔을 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하고 말씀하실 때 그 음성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난 일입니다. 그러나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내 종아”라는 말씀은 앞으로 있을 일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는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그것을 치유 예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치유 예배가 아닙니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보통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때는 우리가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이 나라 어디에 계시든, 근처 어디에 계시든, 믿음을 가진 모든 목회자께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일요일 오후에 꼭 오셔서 우리가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함께 서 주십시오. 어느 교단에 속하셨든 무엇이든 우리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자기 교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치유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있으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병이 났을 때 여러분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사에게 가서 그가 뭐라고 하는지 듣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의사가 진단했는데 그가 도울 수 없는 병, 과학이 여러분을 도울 방법을 그에게 아직 알려 주지 못한 병이라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의사이십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 교회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곳에서도 아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교회의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장로교를 비롯한 많은 교회가 북부 전역과 이 나라 여러 지역에서 큰 치유 대전도 집회를 열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그중 많은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들의 큰 부흥도 치유 대전도 집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물론 그들은 거기서 멀어졌습니다. 새로운 무리가 들어오고 몇 사람이 모여 자기들 원하는 대로 말씀을 나누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말씀에서 벗어나 곧장 그 신조로 돌아갑니다. 주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목회자께 일요일 오후에 저와 함께하시고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도와주시도록 초청합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분들을 데려오십시오. 우리는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주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을 찾아오게 하려 합니다. 그분이 죽어 계시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놀라운 약속이며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고 믿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알래스카에서 지진이 두 번 더 난 것을 보셨습니까? 그중 하나는 처음 지진만큼 강했지만, 다만 무너뜨리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오시기 직전에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여기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 이 일들도, 지진을 예고하셨던 것과 똑같이 말씀에서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 온 마음으로 믿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저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자기 아들을 희생물로 드리려고 갔던 그곳에 나타나신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는데,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려고 여기에 성경 구절 몇 개와 메모 한두 가지를 적어 두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다시 잠시 기도합시다.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취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성경은...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좋은 씨에는 생명의 씨눈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씨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계획을) 이루었다면, 생명의 씨눈이 있는 씨를 남깁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그 포도나무이셨고, 그분이 뿌리신 씨는 그분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씨가 그분 자신의 생명으로 생명의 씨눈을 지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씨가 알맞은 땅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돌밭이나 곧 숨 막히게 할 가시덤불과 엉겅퀴 속이 아니라 좋고 기름지고 비옥한 믿음에 떨어지면, 모든 씨가 자기 종류대로 결실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모든 씨, 곧 약속도 알맞은 땅에 떨어지면 자기 종류대로, 곧 약속한 것을 이루어 낸다는 것을 압니다. 준비를 마치고 갖추어진 땅, 돌을 다 골라내고 뿌리와 쓴 마음과 이기심과 무관심과 질투를 모두 뽑아낸 땅입니다. 쓴 뿌리가 돋아나 때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몹시 망쳐 놓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는 그런 것이 없고 좋은 말씀이 좋은 땅을 만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밤 말씀을 배우며 이 위대한 족장 아브라함을 따라갈 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녀임을 알고 우리의 위치를 찾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의 이름을 위해 영광과 존귀를 거두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밤 말씀을 살펴보면서, 어젯밤에 이야기한 것을 조금 되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라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11장에 나오는데, 그의 아버지가 바빌론에서 내려와 그들이 갈대아 땅의... 우르에 살았을 때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의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아브라함이 아니었고 사래도 아직 사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래와 사라는 서로 다른 두 이름이었고, 아브람과 아브라함도 서로 다른 두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확증해 주신 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것을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입증하시려 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5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저녁에 아브라함이 밖으로 부름을 받아 송아지, 곧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암염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죽였습니다. 어젯밤에는 그 두 암컷과 한 수컷, 그리고 비둘기 두 마리(같은 부류에 속하는 집비둘기와 산비둘기)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치유를 나타냈으며 변한 적이 없습니다. 치유는 언제나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속죄는 물론 동물의 생명에서 사람의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약에서 경배자가 피를 가지고 나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흘려진 보혈 아래서만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분이 과거에도 만나셨고 앞으로도 만나실 유일한 장소입니다. 여러분의 신조를 가지고는 결코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교육을 가지고는 결코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보혈 아래서 만나 주십니다. 그것이 유일한 장소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피 아래서 경배했습니다.
또 우리는 옛 역사를 돌아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언약을 맺었는지도 알아보았습니다. 동양의 방식과 언약을 맺는 여러 방식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악수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확약합시다” 하고 말합니다. 일본인들은 언약을 맺을 때 서로에게 소금을 뿌립니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세상 많은 곳이 당시와 여전히 같은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동양과 동방 지역이 그렇습니다. 동방에 가 보면 여러분의 성경은 새로운 책이 됩니다. 여러분은 결코...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타인, 그쪽에 가면 여러분은... 성경은... 쓰였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고, 서양 사람들이 영어로 된 책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곳에 가 보면 결혼을 비롯한 모든 일을 그리스도 당시와 똑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의 관습과 방식 중에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이런 언약을 맺을 때는 양가죽 조각, 가죽 위에 그것을 써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짐승을 죽이고 그 조각들 사이에 서서 그것을, 곧 자기들의 언약을 둘로 잘랐습니다. (자기들이 한 말을) 그렇게 두 조각으로 찢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그 조각들이 정확히 들어맞아야 했습니다. 똑같아야 했고, 조각마다 서로 맞아야 했으므로 가짜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젯밤 우리가 살펴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언약을 입증하시려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곧 아브라함과 그 뒤를 이을 그의 씨에게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그의 씨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씨, 육의 씨는 이삭이었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의 영적 씨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온 세상이 복을 받은 것은 이삭을 통해서가 아니라 왕가의 씨인 그리스도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 언약 안에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보여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찢어 나누실 것인지, 그 몸은 들려 올라가 높은 곳에서 위엄 가운데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고 그리스도의 영은 땅으로 내려오실 것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성경 전체를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로서 신약을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보면 신약이 무엇인지 상당히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계셨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영이 교회 위에 다시 오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하신 요한복음 15장이 다시 정확히 성취된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12절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같은 일들, 같은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 이어집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많은 말씀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여기 ‘세상’은 그리스어 ‘코스모스’로, 세상 질서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겠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그대로 계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습니다. “세상(불신자)은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분을 알아볼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계셨던 동일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닌 것처럼 만들려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금 생각이 났는데...
저는 강단이 농담하는 장소라고 믿지 않습니다. 여기는 농담하는 곳이 아닙니다. 신실해야 하는 곳입니다. 주님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우리는 그만큼 더 신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스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청년은 집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이야기를 처음부터 하자면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주님을 섬길 소명이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어머니에게나 힘이 될 것입니다. 아, 참된 어머니라면 누구나 자기 아들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자녀를 주셔서 자신을 영화롭게 해 주셨음을 아는 것은 그 어머니의 삶에 귀한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가난한 어머니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아들을 학교에, 신학교에 보내 학사 학위를 받게 했습니다.
아들이 떠나 있는 동안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어느 그리스도인이나 하듯이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는... 어머니는 양쪽 폐에 폐렴이 생겼습니다. 의사가 폐렴을 잡아 보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균을 죽이려고 설파제나 페니실린 같은 약을 썼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계속 더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멀리 켄터키주 애즈베리의 윌모어 대학에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으니 와서 뵈라고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다음 연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약 1년 뒤, 그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들이 학교가 쉬는 방학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자가 으레 그렇듯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다 나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무슨 약으로 바꾸셨기에 그렇게 빨리 좋아지셨는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그게 아니란다. 여기 길 아래쪽에 있는 작은 선교회 알지? 거기 있는 사람들, 그...?” 아들이 “네, 기억나요” 하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어떤 여자가 자기가 이리 와서 목사님이 오셔서 나를 위해 기도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도록 인도하심을 느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나는 좋다고 했지. 그래서... 목사님이 오셔서 성경을 읽어 주셨어.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거든 장로들을 부르고, 병든 이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바로 성경에서 읽어 주셨단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게 기름을 발라 주셨어. 다음 날 아침에는 너무 좋아져서 의사 선생님이 일어나 앉아도 좋다고 하셨고, 이틀쯤 뒤에는 다 나았지.” 아들이 “그런데...” 하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아, 주님을 찬양해. 얘야, 너도...” 하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시기 시작하네요. 어머니, 들어 보세요. 학교에서 배웠는데, 그분이 읽어 주신 데 있잖아요. 두 번째로 읽어 주신 구절은 마가복음 16장이었지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는 곳이요. 우리는 학교에서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는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그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잖아요. 거기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한, 글도 제대로 모르는 부류예요. 틀림없이 뜻은 좋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9절 이후는 아마 바티칸인가 어디에서 그냥 덧붙인 것이라고 배웠어요. 하지만... 그 부분은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 어머니가 아주 큰 소리로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방금 이런 생각을 했단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시지 않은 말씀으로도 나를 고치실 수 있었다면, 정말로 영감으로 주신 말씀으로는 대체 얼마나 큰 일을 하실 수 있겠니?”
그러니 다른 약속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자기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자기가 말한 것을 받으리라.” “너희가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보십시오. 모두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입니다!
아주 훌륭한 학자인 모리스 리드헤드 씨가 저희 집에 왔을 때, 집 안의 작은 커피 탁자 위로 엎어지면서 성령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침례교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젊었을 때 선교사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저는... 속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그렇다면 형제님이 어울리시는 이 오순절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받은 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물론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런데 왜 그렇게 발을 차고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증기를 써서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면 기적을 울리며 증기를 내보내야겠지요. 그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배우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증기를 내뿜기만 하지 말고 일하는 데 쓰는 겁니다! 믿음으로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이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도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왜 왔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도에서 온 훌륭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학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를 비행기에 태워 바다 건너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려고 공항으로 데리고 나갈 때 말했습니다. ‘젊은이, 이제 교육을 받고 자네 백성에게 돌아가는군.’” 아마 그가 공부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자공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의 말로는 청년이 돌아가려고 할 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그 죽은 옛 선지자 무함마드를 버리고, 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네 마음속에 모시지 않는가?” 그러자 청년이 “선생님,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분은 가장 훌륭한 성경학교 중 하나, 근본주의 학교에서 오신 분입니다. 그 학교의 교사 중 한 분입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예수님이 제 선지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무엇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분이 “내 예수님은 자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네”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저의... 코란에도 같은 약속이 있습니다.” (코란은 이슬람교의 경전입니다.) “거기에도 같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분이 “그렇지만, 그래, 나는...”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코란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무함마드는 죽은 뒤의 생명 외에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여러분에게 이런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를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여러분이 그것을 나타내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 상대가 풋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짐짓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상대방이 한번 그렇게 덤벼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그가 풋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했습니다. “자, 보게.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선생님들에게는 그것을 입증할 시간이 2천 년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거의... 지구의 3분의 2는 그분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무함마드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기만 하면 24시간 안에 온 세상이 알게 될 겁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무덤 곁에 말을 세워 두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보았습니다. 약 네 시간마다 경비를 교대하며 아직도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흰말을 타고 와서 세계를 정복한다는 모형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청년은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기만 하면 온 세상이 알게 될 겁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네. 자네 선지자는 무덤 속에 있지 않나.” 청년이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교사가 “그분은 내 마음속에 계시네”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선생님, 무함마드도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하지만 나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있네”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 못지않은 심리적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들이 외치고 소리 지르는 것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맞습니다. 그리스도교 못지않은 심리적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모든 것을 약속하셨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마가복음 16장을 말하는 모양이군?” 청년이 말했습니다. “네, 그것도 하나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중 하나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자기 교회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보십시오)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언제까지입니까? 온 세상,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였습니다. 선생님의 성경에 따르면 이것이 그분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건 말이지, 그것은 그저... 그 부분은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닐세. 그분이 정말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네. 그것은...”
청년이 말했습니다.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고요?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 계신 겁니까? 코란은 전부 영감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음. 그것은 신학의 약함, 일어서서 그 일에 맞설 기백을 갖지 못한 사람이 만든 신학의 패배입니다. 히브리 아이들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형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언제나 용기 있었고 초자연적인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말입니다.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발로 땅을 찼습니다. 이렇게 먼지를 걷어찼지요. 그 사람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형제님을 만나러 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이렇게 온 것입니다. 제가 여기 왔습니다. 성령께서... 브래넘 형제님, 제 어머니는 저를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저는... 학사 학위를 받았을 때 ‘바로 거기에...’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학사 학위를 받았을 때, 거기서 그리스도를 찾을 줄 알았는데 그분은 거기에 안 계셨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도... 저에게는 형제님 집 벽을 도배하고도 남을 만큼 학위와 명예 학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교사들이 틀렸는지 아닌지를 제가 무어라고 판단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그 문제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분이십니다.” 이제 그분은 곳곳에서 큰 대전도 집회를 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기 계신 제 좋은 친구 리 베일 박사는 그분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큰 대전도 집회를 여는 등 여러 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사람이 믿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영, (하나님 임마누엘이셨던 그 몸인 예수님 안에 계셨던)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구약에서 경배자가 와서 자기 예물 위에 손을 얹고 그 목을 잘랐을 때, 곧 제사장이 희생물의 목을 잘랐을 때, 경배자는 자기 손으로 그 희생물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살이 찢기고 어린 양이 죽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그 작은 양털은 피에 젖고 믿는 이의 손도 온통 피에 젖으며, 그 피는 저기 제단에서 태워 드리려고 대접에 받아졌습니다. 그때 믿는 이는 그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사람이 자신이지만 그 양이 자기 대신 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피 안에 있던 생명은 경배자에게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혼이 없는 동물의 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죄를 계속해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셨으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분 안에 있었고, 그 생명이 돌아옵니다.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성령의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만드십니다. 그때 여러분은 사람의 아들과 딸로서 예수님이 겪으신 찢기는 고통과 비참함과 형벌을 느낍니다. 그분은 조롱을 당하셨고, 그분의 사역은 마귀의 일, 바알세붑의 일이라고 불렸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웃음과 멸시를 당하고 거절당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어도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분이 당하신 그 모든 일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이들을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구속한다는 것은 떨어져 나온 그 자리로 다시 데려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지금 교회 위에 성령을 다시 보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사람들, 믿는 사람 말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며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결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표적이어야 할 바로 그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던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즉시 믿었고 나다나엘도 즉시 믿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도 믿었고 눈먼 바디매오도 믿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서서 “바알세붑이다. 악한 영이다. 무슨 속임수나 술책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그런 말을 하면 용서하겠다(희생이 아직 드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때 그분을 대적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왜 그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며 그의 일들을 행하리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이 언약을 어떻게 확증하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 조직이나 교단이 아니라 한 개인과 하나님이 같은 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같은 영이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27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고 남성과 여성으로 그들을 창조하시니라.” 하나님 안에 있던 영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아담은 땅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어야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람은 육체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동물의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동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포유류임을 압니다. 그것은 온혈동물입니다. 우리는 그 동물 생명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갈비뼈 하나를 취하셨습니다. 아니라...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온 부산물로서, 엄밀히 말해 최초의 창조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비뼈 하나를 취하셨습니다. 육체를 나누시고 아담에게서 여성의 영을 취하여 이브에게 넣으셨습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벗어나면 바른 상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처럼 되려고 하거나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려고 할 때는 어딘가에 왜곡이 있는 것입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바른 상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리브가와 이삭이 서로 혈연관계였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육의 씨를 모형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셨는데, 그것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증표가... 이집트에서 문기둥에 있던 피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할례를 받았고 아무리 언약을 가지고 있었어도 증표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약은 무효가 되었습니다. 물론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이제 증표는 피가 아닙니다. 피 안에 있던 생명, 곧 성령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종교심이 깊어도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멸망할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오직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가 처음에는 하나였음을 보여 줍니다. 남편과 아내는 지금도 하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육체로 나뉘었을 때 바로 거기서 이브가 타락했습니다. 왜 타락했습니까? 말씀을, 그 모든 부분까지 온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의 한 부분은 받아들이지만 나머지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전부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단 한 부분을 의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껏 겪어 온 이 모든 질병과 고통이 한 여자가 말씀의 한 부분을 의심한 데서 왔다면, 우리가 전부를 믿고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그들의... 그들은 그 말씀으로 요새처럼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육체로 나뉘었을 때 타락했습니다. 그녀는 말씀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녀는... 보십시오. 그녀는 무엇을 찾았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더 좋고 세련된 길, 더 쉬운 길을 원합니다.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조직에서 쫓겨나고 출교당하며 멸시받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로 인해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악한 말을 하리라.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보상이 크니라.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그분이 더 무슨 말씀을 해 주시기를 원합니까? 수천 가지 말씀을 우리가... 이것에 관한 성경 구절들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집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씨의 장입니다. 모든 불신과 모든 것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도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두 포도나무가 자라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흉내 내어 거의 똑같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모압과 모세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왔습니다. 작은 무리였고, 교단도 없었고, 나라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쪽에서도 똑같은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모압은 훌륭한 교단이었습니다. 고관들이 모두 나와 같은 희생물을 드리며... 하려고 했습니다. 거기 있던 그들의 감독 발람이 내려와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을 저주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무법자 같은 사람들은 말하자면 소속된 교회조차 없군. 그저 떠돌아다니는 자들이야.”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그러나 그들은 진영 가운데 울리는 왕의 함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뱀을 통해 그곳에서 일어나는 신유와 그들에게 생명을 주려고 맞은 반석, 진영 가운데 울리는 왕의 함성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먼 그 감독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근본 교리로는 모세만큼이나 옳았습니다. 일곱 제단과 일곱 희생물, 심지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하는 숫양까지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자신을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해석하십니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그 약속의 해석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부탁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사사로이 해석할 것이 아닙니다. 모두들 이것은 이런 뜻이다, 저런 뜻이다...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행하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그분이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책임지십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행하시지만 불신자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죽어 있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그 안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들 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은 껍질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영으로 충만하십시오.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브와 아담을 나누셨고, 이브가 타락했습니다. 아담도 이브와 함께 갔습니다. 아담은 속지 않았습니다. 이브가 속았습니다. 그러나 첫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이브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녀를 다시 구속하시려고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돌아오도록 말입니까? 말씀으로입니다! 무엇이 타락을 일으켰습니까? 말씀, 말씀을 믿지 않은 것, 말씀 전부를 온전히 믿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우리 중 하나가 되시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어 말씀을 계속 이어 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행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제 이 확증에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자신에게로 다시 구속하시며, 이 시체 보관소들로 빗나가 버린 자녀들을 구속하여 다시 말씀으로, 확인된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심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 여기 모세가 한 말이 있다.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예수님은 겨우 열두 살 때 그들과 논쟁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십시오. 사람이 말씀을 그렇게 다룹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아버지께서 내게 행하도록 주신 일들이 내가 누구인지 증언하느니라.” 누구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가 행하도록 정해진 일들을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십시오.
구약에서도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든 예언하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데리고 가서 우림과 둠밈 앞에 세웠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초자연적이시며 초자연적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초자연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려도 우림과 둠밈 위에 빛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옛 아론의 제사장직은 없어졌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이 말씀 안에서 그분을 드러냅니다. 그 말씀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이 아닙니다. 말씀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말씀으로 자신을 알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도 거기서였습니다. “기록되었으되.” 그러자 사탄이 돌아와 다시 끼어들었습니다. “그렇다. 또 기록되었으되...”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달려들었을 때는 고압 전류에 부딪혔습니다. 이번에는 날개를 그슬렸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뛰어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약속된 말씀으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 바리새인들이 바로 돌아가 살펴보았더라면, 모세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감사드리시며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시고 배우려는 아기들에게 드러내셨으니 감사하나이다” 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날 그분이 오셔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주님은 엘리야이십니다” 하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모세이십니다” 하는 등 여러 대답을 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물은 것은 그 질문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도다(신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곧 그분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이제 계속 나아갑시다. 이제 그분을 보겠습니다. 17장으로 가 봅시다. 여기 17장에서, 그분이 하시려는 일을 보여 주시며 이것을 확증하신 뒤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을 봅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이... 위에 오십니다. 교회 안에 계신 영, 진짜 교회, 참 교회,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 안에 계신 영은... 그리스도 위에 계신 바로 그 영입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바로 그 직전에)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을 헝겊으로 가리고 갈대로 머리를 때렸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선지자라고들 하더구나. 예언해 보아라, 선지자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막대기를 서로 넘겨주었습니다.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 마귀가 보입니까?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큰 기적을 행하는 자라고 들었다. 이 돌들을 빵으로 바꿔 보아라. 네가 하는 것을 보자. 그렇게 하면 너를 믿겠다. 이 돌들을 빵으로 바꿔 보아라. 네가 그렇게 하면 믿겠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의사의 확인서와 함께 치유된 사람 한 명만 보여 주실 수 있다면...” 저는 말했습니다. “아이고, 선생, 그만 좀 하십시오. 세상에, 의사들을 수백 명이라도 데려오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시면 드릴 천 달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례들과 함께 의사들을 데려왔습니다. 그가 “그런데 그 돈은...”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돈을 선교 헌금으로 쓰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복음을 믿는 사람을 해외로 보내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제가 어린 소녀 하나를 데려오겠습니다. 저와 제 형제가 그 곁에 서서 그 아이의 손에 상처를 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눈앞에서 그것을 고쳐 보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저는 “당신은 정신을 치유받아야 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다니! 바로 그 마귀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만일 그렇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한다고 말씀했는데도 말입니다. 가야바는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분께 드린 가장 큰 찬사라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분이 자신을 구원하시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셔야 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누가 자기를 때렸는지 아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를 위해 광대 노릇을 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광대가 아니십니다. 마귀를 위해 광대 노릇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일들은 믿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것이지, 웃음거리로 삼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목하십시오.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이었을 때 그분이 나타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하나님께는 구속을 나타내는 합성 이름이 일곱 가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을 그리스도와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을 나타내는 그 합성 이름 하나하나를 모두 충족시키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여호와 이레, 곧 주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호와 라파, 곧 주께서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신다는 이름은 어떻습니까? 그것이 그리스도께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분은 여호와 이레도 아니셨습니다. 그러니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전부 한데 묶여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여호와 이레이시지 않으면서 여호와 라파이실 수 없고, 여호와 라파이시지 않으면서 여호와 이레이실 수도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것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서 그분은 엘 샤다이, 곧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십니다. 그... 사실 그 히브리어 단어 ‘샤드’, s-h-a-d(어떤 이들은 ‘셰이드’라고 발음합니다), ‘샤드’는 여자의 유방처럼 젖가슴을 뜻합니다. 그분은 엘 샤다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는데, 그것은 복수형으로 젖가슴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나는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아(아흔아홉 살입니다), 내 앞에서 걸으며 완전할지니라. 내 말을 믿어라. 계속 믿기만 하여라. 네가 일흔다섯 살 때 내가 약속했다. 내가 네게 약속한 지 이제 24년이 되었다.” 아흔아홉 살이 되어 힘도 다 빠진 노인 앞에 하나님께서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나는 엘 샤다이다.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다. (아멘!) 내게서 네 힘을 얻어라. 내가 네 힘이다. (신약과 구약의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나는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다. 내게서 네 힘을 얻어라.” 어린아이가 아프고 보채고 병들고 약할 때 어머니의 젖가슴에 기대어 젖을 빨아 어머니에게서 다시 힘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아, 네가 아흔아홉 살이어도 내게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아무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명...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마치 어제와 같습니다. 땅에서 천 년은 하나님께 단 하루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어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같습니다.
주목하십시오. “나는 엘 샤다이다. 너는 작고 연약한 아기다. 그러나 내 품, 내 약속에 기대어 내게서 젖을 빨아 네 힘을 얻어라. 나는 하늘과 땅을 걸어 놓고 저곳에 별들을 놓은 창조자다. 하나님께 너무 큰 일이 있겠느냐? 나는 엘 샤다이이며, 네가 약해도 너는 내 자녀다.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네가 그렇게 되도록 두고 있다. 훗날 사람들이 내 말을 믿도록 너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무슨 일이 필요하든, 얼마나 오래 걸리든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다. 내가 행할 것이다.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다.” 엘 샤다이입니다. “내게서 네 힘을 얻어라.” 여러분은 “아, 제가 믿을 수만 있다면...” 하고 말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엘 샤다이이십니다. 여전히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십니다. 신약과 구약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하든 거기서 힘을 얻으십시오. 아기는 무력합니다. 어머니에게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믿는 사람이 힘을 얻는 유일한 길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힘이며, 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입니다. 굳게 붙들고 믿으십시오.
여기에 나타난 어린아이는 단지 병들어 보채는 아이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젖가슴에 대어 주면 아기는 젖을 빨아 다시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젖을 빠는 동안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도 그렇습니다. 회의적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가 무엇을 믿든, 여러분이 참으로 믿는다면 예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계시되었으므로 만족합니다. 여러분은 약속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것도 그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믿음 안에서 쉬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십시오.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제게 영의 침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믿음 안에서, 제가 주님께 둔 믿음 안에서 쉬고 있습니다. 저는 제 공급원에서... 제 공급을 위해... 제 건강을 위해 주님의 공급원인 말씀에서 얻고 있습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서 젖을 빨아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쉬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라가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함께 살았습니다. 사라는 그의 이복 누이였습니다. 그는 사라와 함께 살았고 결혼했습니다. 사라에게는...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미... 아브라함이 아흔, 아흔아홉이라면 사라는 여든아홉입니다. 여든아홉 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아, 내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쉬어라. 내가 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엘 샤다이다. 나는 믿는 내 자녀들을 위해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다.” 젖을 빨고 싶지 않다면 더는 그 일에 관해 말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하지만 자녀라면 젖을 빨며 모든 약속 안에서 쉬고 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라는 견고한 반석 위에서 쉽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북극성처럼 굳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북극성은 모든 선장이 의지하는 고정점입니다. 나침반은 오직 그 북극성을 가리켜 줍니다.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 곧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북극성이십니다. 그곳을 가리켜 주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으십니다. 다른 온갖 주의와 그 안에 그리스도교가 뒤섞인 것 등, 무엇이든 그런 것들은 지구가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저 별들의 위치를 바꾸지만 북극성은 바꿀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엇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말씀에 닻을 내리십시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참된 믿음은 신조나 사람이 만든 교리나 불신에 의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 곁에 그대로 머뭅니다.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입니다. 말씀 말고 다른 무엇에 믿음을 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곳을 손가락으로 짚으십시오. 그것은 참입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젖가슴 같은 책인 성경에서, 그분의 속성들에서, 그분이 약속하신 것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자신을 이루어 냅니다. 말씀이 되기 전에 먼저 생각이어야 하고, 그다음 말씀이 되고, 그다음 그 말씀이 나타납니다. 바로 거기서 여러분은 힘을 얻습니다. 믿고, 창조자께서 행하시리라고 믿고, 그분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 같은 목적이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의심하자 질병과 고통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뱀을 들어 올리셨습니까? 그들의 치유와 용서를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그리고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물론 예수님은 심판받은 그 뱀이셨습니다. 그 놋은...
이제... 그분이 언약을 확증하신 뒤에, 곧 그에게 언약이 나타난 뒤에,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아들들에게 믿음을 줍니다. 말씀은 믿음을 줍니다. 젖가슴을 지니신 분입니다. 말씀이... 언약이 나타나면 그들에게 어떤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아들들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그분이 엘로힘이라고 불리셨음을 압니다. 여기 번역된 단어 역시 엘로힘을 뜻합니다. 확실히 하려고 방금 찾아보았습니다.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엘 샤다이, 엘로힘,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주목하십시오. 욥기에서도 같은 사실을 증언합니다(오늘 오후에 공부하면서 보았습니다). 욥기에서 그분은 엘로힘이라고 불리십니다. 욥은 멸시와 조롱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오늘날의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 줍니까. 그러나 욥은 엘로힘의 약속 안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내 살갗이 없어진 뒤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라.” 무슨 일이 닥치든 엘로힘 안에서 쉬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와서 말했습니다. “욥, 당신은 참 비참한 모습이군요.” 그를 위로한다는 친구들도 찾아왔습니다. “아아, 이보게,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게. 내가 내내 자네가 잘못되었다고 했지 않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남을 그렇게 깎아내리기 좋아합니다. 욥은 그 시대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와 같은 자는 없느니라. (아멘!) 네가 그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말했습니다. “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쉽습니다. 그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제게 그를 넘겨주십시오. 제가 그로 하여금 주님의 얼굴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게 하겠습니다.” 사탄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욥은 그 약속 안에서 쉬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자, 이제 자네가 그토록 말하던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그래. 자네를 보게... 자네가 이렇다고 믿던 것이... 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란 말일세.”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엘 샤다이 안에서 쉬었습니다. 수많은 종기가 몸에 돋아나고 목숨이 거의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는 잿더미에 앉아 종기를 긁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지 그래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군요. (아, 그렇습니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나는 엘로힘을 신뢰합니다. 그분이 이 몸을 멸하시고 살의 벌레들이 그것을 먹어 버릴지라도, 나는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며 몸소 그분을 볼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바라볼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서 성도들이 일어났을 때 그도 나왔습니다. 나와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을 보여 주는 바로 그 모형입니다. 여전히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신 뒤에... 이제 교회 여러분, 여러분에게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는 교리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믿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그저 여기...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성경이 말씀한 대로 이 모든 것은 모형이며 그림자이며 본보기였습니다. 모두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대하시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가 걸어가는 동안 그들을 대하실 것과 같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유대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하십니다. 모두 거기, 그 언약의 약속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민족, 모든 사람 말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신 뒤에, 그분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이심이 아브라함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분께는 조력자들이 없었고 비서들도 필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 홀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한 분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이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이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을 때,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이제 그가 온전히 믿는 데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이십니까? 제가 말하는 행간의 뜻을 알아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아브라함에게 계시해 주시는 자리까지 왔고, 그러고는 약속이 성취되도록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까? 왜 야곱의 이름을 야곱(남의 자리를 빼앗는 자)에서 이스라엘(하나님과 함께하는 통치자)로 바꾸셨습니까? 왜 사울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셨습니까? 물론 그의 이름은... 물론입니다.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이름이 바르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을 경우 그것을 바꾸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그분은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민족들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h-a-m을 더하여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고, 그토록 오랫동안 약속되었던 아들이 이제 보이도록, 다시 말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이 그의 이름을 바꾸셨을 때... 아브라함이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본 뒤에 말입니다. 그는 아마... 그분들이 여러 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분이 엘로힘, 홀로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알아보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아, 네가 다시는 아브람이라 불리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내가 너를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았기 때문이라. 아브라함이라.” 이제 그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계시받은 뒤, 이제 아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올 준비가, 나타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 아브라함의 자녀들이여,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바로 마지막 때,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로 단 1년이 남았을 때 자기 사자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그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이름을 바꾸면서 h-a-m을 더하셨는데, 그것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 약속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아, 영적인 분별력이 있다면 들으십시오. 그분의 이름, 그분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신 뒤에 그분은 그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이제 그 계시가 땅에 임했습니다. 신들이 여럿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약속된 아들이 약속에 속한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나타나는 계시의 때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웨슬리, 침례교, 장로교, 오순절교라는 이름에서 바꾸셨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모든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의 교회들에 온 사자 가운데,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지도자인 빌리 그래함 같은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온 세상에 갔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주목하십시오. 우리에게 지금까지 이런 사람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어느 개혁가를 보더라도, 생키, 무디, 피니, 칼뱅, 녹스, 누구든지, 웨슬리나 루터든지, 이름이 h-a-m으로 끝난 사람은 이전에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교회 시대들을 통틀어 이름이 h-a-m으로 끝나는 유일한 사자는 G-r-a-h-a-m, 그래함입니다. 그래함은 여섯 글자이며, 6은 사람의 수이고 사람의 날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7은 하나님의 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이것은 G-r-a-h-a-m이 세상 안에 있는 교회로 가리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A-b-r-a-h-a-m, 아브라함은 일곱 글자입니다.
“숫자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경의 수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3으로 완전해지시고, 7과 50과 40으로 경배를 받으시며, 희년은 50년마다입니다. 아, 무엇을 보든... 성경 전체는 수학적으로 이어집니다. 보십시오. 여섯째는 세상에 보내질 사자입니다. 그리고 주목하십시오. 일곱째는 하나님의 수입니다. 이제 나타나시는 이때, 아들이 나타나는 일을 통해서, 그 아들이 나타나려고 할 때, 그들은 이미 그분의 이름을 알아보았고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엘 샤다이, 전능자, 엘로힘이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약속된 아들이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에 이르렀습니다. 약속되었던 아들, 이삭 자신이 등장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보내셔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기 전에는 그것을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는 민족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주목하십시오. ‘함’, h-a-m, 아버지, 민족들의 아버지입니다.
이것이 말라기 4장과 얼마나 잘 맞는지 보십시오. 믿음을 다시 아버지들에게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 그의 왕가의 씨가 조상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말라기 4장이 성취된다는 것은 처음에 있었던 그 믿음을 회복하여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바로 그 약속입니다. 왕가의 씨가 나타나야 하며, 또... 왕가의 씨, 곧 그리스도의 왕가의 씨입니다. 그리스도는 왕가의 씨이십니다. 그리고 그 씨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일하시며 같은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겠고,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아시겠죠?) 그것이 어떻게 와야 하는지를 이 마지막 날들에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제 18장을 보십시오. 이름을 바꾸신 바로 뒤에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려고 나타나십니다. 그 이름, 그분이 누구신지가 알려진 뒤에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십니다. 어느 더운 날 아브라함은, 소돔이 불타고 이삭이 등장하기 불과 몇 주 아니면 몇 달 전에... 주목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자기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있습니다. 롯은 소돔에 내려가 있고, 그들은 세상의 쾌락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롯 목사입니다. 아마 거기에 괜찮은 작은 회중을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무슨 일을 했든, 성경은 그 시대의 악함과 죄들이 그의 의로운 혼을 괴롭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그에게는... 오늘날의 많은 현대판 롯들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그가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이미 그분이 계시되셨습니다.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엘로힘이셨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그가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있는데 세 사람이 사람처럼 걸어옵니다. 그 계시(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가 아브라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 뒤에 그는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셋을 하나로 불러 “내 주여” 하고 말했습니다. 세 분이 하나였습니다. 6에 해당하는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내 주들이여” 하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환상과 계시는 그분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엘로힘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씨는 지금도 같은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셨는지, 아브라함이 옳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리셨는지 보십시오. 참으로 믿는 이에게 어떤 표적을 행하셨는지, 그분이 엘로힘이심을 그가 알도록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내 주여”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대문자 L로 시작하는 L-o-r-d입니다. 학자라면 누구나 압니다. 어떤 학자든 그것이 엘로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 엘로힘임을 압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제게 “그분이 하나님이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물론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알아야겠지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거기 서서 송아지 고기를 잡수시고 암소의 젖을 마시시며 옥수수빵인지, 뭐라고 부르든 그것을 잡수셨다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을 모르시는군요. 아, 그분은 그저... 손을 뻗으셔서... 우리는 열여섯 가지 원소로 만들어졌습니다. 석유, 우주의 빛, 칼륨, 칼슘 등입니다. 단 열여섯 가지 원소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한데 모아 그 안에 숨을 불어넣으시고 땅에 내려와 걸으셨습니다. 그분이 그런 아버지이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살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그분은 여러분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엘로힘이십니다. 또 한 줌을 움켜쥐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리 오너라, 우드웜아(이름이 무엇이었든지, 그 천사들 말입니다). 내려오너라. 소돔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자.”
아브라함은 계시를 받은 뒤에 그것을 보았고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 주여, 이리로 오십시오. 앉으십시오. 제가 주님의 발을 씻게 해 주십시오.” 그는 ‘lord’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거기서는 대문자로 시작합니다. 누구나 압니다. 제게는 「엠패틱 다이어글랏」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대문자로 시작하는 L-o-r-d, 주님, 엘로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제가 물을 조금 가져와 주님의 발을 씻어 드리고 빵 한 조각을 드리게 해 주십시오. 그 뒤에 가시던 길로 가시면 됩니다.”
이런, 시간이 너무 늦어지고 있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여기까지 가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 주시겠습니까?
주목하십시오. 엘로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그중 두 분이 계속 소돔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가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비밀로 하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선지자들에게 계시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그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니 나는 이것을 숨기지 않겠다. 그는 땅을 상속받을 것이며, 또... 그의 씨가... (다시 말해 그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숨기지 않겠다. 그에게 알리겠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그에게 계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아브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 S-a-r-a-h가 어디 있느냐?”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그는 아브람이었습니다. 하루나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사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사라이고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니, 약속되었던 이 아들이 이제 등장할 준비가 되었느니라. 네가 그 아들을 얻게 되리라.” 사라는 속으로 좀 웃었습니다. “내가 늙었는데 다시 내 주와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그 사람도 늙었는데? (그런 말이었지요. 그녀는 아흔이고 그는 백 살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 내가 다시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천사인 사자,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그녀가 웃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확증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계시가 옳았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부른 것이 옳았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4장 12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느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보고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엘로힘,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이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을 때, 그분은 아브라함의 육의 씨에게 같은 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들, 불신자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그분을 모독하게 했고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영생에 이르도록 정해진 믿는 이들에게는 영원히 볼 수 있는 눈을 주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들, 사람의 아들이 오시기 직전에 자신이 와서 자신을 드러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들에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는 같은 표적을 볼 것입니다. 보십시오. 누가복음 17장 28절과 30절에서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자체에 대한 책임은 제게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전할 책임, 그분이 하신 말씀을 말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오는 때에도 그러하리라.”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자기 교회에 나타나실 때...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계속 내려오시면서 언약을 확증하셨고, 아브라함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으며, 그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언덕에서 소돔을 내려다보기 바로 전에, 약속된 아들이 오기 바로 전에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읽고 있는 바로 그 성경을 읽고 계셨습니다. 어떤 일이었는지 알고 싶으시면 돌아가서 소돔의 날들에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보십시오. 주목하십시오. 노아의 날들보다는 소돔입니다. 노아 때는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보내던 부도덕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돔에서는 말입니다. 이제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 표적으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표적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표적을 주십니다. 늘 자신의 표적을 기억하시고,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그것에 신실하십니다. 그 무지개 표적을 주시지 않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표적을 주십니다. 주목하십시오. 그 표적 안에서 그분은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탈 것이라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께서 소돔의 날들에 그랬던 것처럼 이방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그들 가운데 누가 내려가 있는지 보십시오. G-r-a-h-a-m이라는 사람이 그들에게 준엄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 정치가들에게, 육의 교회에 말입니다.
이제 영적인 교회에 관해서 말하자면,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믿는 체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무리든 그들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압박감을 여러분도 느낀다면 오늘 밤 바로 여기에도 그들이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세 부류 모두)... 보십시오. 그렇게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언제나 그 세 부류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신다면,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실 때도 똑같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왕가의 씨이십니다. 그분이 마지막 날들에 나타나실 때 말입니다. 이제 세상은 그 위치상 정확히... 이는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서쪽에서 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어두컴컴한 날이었습니다. 조직들과 교단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저녁때에 빛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해가 자신을 드러내려고 교단의 구름 뒤에서 나오는 날들에는 세상이 소돔의 날들과 똑같은 상태에 있을 것이며, 사람의 아들이 자기 백성에게 다시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이삭의 씨에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셨는지 보십시오. 왕가의 씨, 신부, 왕가의 여왕에게 어떻게 드러내실 것인지 보십시오. 여왕은 왕가의 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한 민족으로부터 한 민족을 이끌어 내셨듯이, 한 교회로부터 한 교회를, 곧 교회로부터 신부를 이끌어 내고 계십니다. 교회에서 나온 교회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씨 중 남은 자들(곧 뒤에 남겨진 자들)은 울고 울부짖으며 이를 갑니다. 자기 등잔에 기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나타냅니다. 그들이 그렇게 있습니다.
위치가 정확히 맞아 있습니다. 이제 언덕 위를 보십시오. 교회... 아브라함, 롯, 소돔 사람들, 세상, 교회, 택함받은 이들, 교회, 교회에서 나온 신부입니다. 우리는 위치상 정확히 맞는 자리에 있습니다. 세상도 바로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습니다. 왜곡입니다. 모든 것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이 잡종입니다. 제가 내려오다가 “교잡 옥수수”라고 적힌 큰 간판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이 말에 무신론자 여러분은 벌떡 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씨가 자기 종류대로 결실하게 하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옥수수를 교잡하여 더 보기 좋은 옥수수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심을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한 일도 그렇습니다. 보기 좋게 만들고 교단의 반짝이는 장식으로 꾸몄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오늘날 성경의 그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잡종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잘 차려입고 더 많은 보수를 받으며, 교단들은 더 커지고 더 부유해졌습니다. 정확히 라오디게아 시대입니다. “부자이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눈멀고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벌거벗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이 자기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안다면 말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른다면 참으로 비참한 상태입니다. 가엾습니다! 사람들을 비웃지 말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상태라면 어떻겠습니까? 말씀이 여러분에게 계시되지 않았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눈이 그렇게 멀어서 보지 못한다면 다른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비참한 모습입니다. 위치상으로도 정확히 맞습니다.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분이 일어나리라고 하신 그대로입니다. 이 표적들이 마지막 날들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보십시오. 정확히 맞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교잡입니다. 무엇이든... 예를 들어 당나귀를 말과, 아니 암말과 교배시키면 무엇이 나옵니까? 노새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노새는 다시 번식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씨가 자기 종류대로 결실하게 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진화론은 어디서 나옵니까? 여러분 자신이 한 일이 여러분이 믿는다고 말한 것을 틀렸다고 판결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씨가 자기 종류대로 결실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새는 다시 번식할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거기서 끝입니다. 제가 본 것들 중 노새는 가장 무지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커다란 긴 귀를 하고 가만히 있다가,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발길질하고 죽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보면 생각납니다... 여러분이 거기 앉아서 그 노새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긴 귀를 하고 거기 앉아서 “기적의 시대는 지났어. 히이, 히이, 히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어느 교회의 신조뿐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순종 말에게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 말은 자기 혈통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아빠가 누구였는지, 엄마가 누구였는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누구였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혈통이 분명합니다. 혈통이 분명한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곧장 사도행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영으로 태어나 같은 것을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며 같은 박해자들을 만나는, 혈통이 분명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당나귀와 말들이 함께 먹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잡종의 시대입니다.
얼마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여성들에게 이런 교잡한 고기 같은 것을 계속 먹이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변하고 있습니다. 어깨는 더 넓어지고 엉덩이는 더 좁아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언제나 문명으로 자신을 파괴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본래의 씨로 돌아오십시오. 돌아와서 믿으십시오. 제 테이프를 읽어 보셨지요. 아니, 제 테이프를 가지고 계시지요. 아마 들으셨을 겁니다. 본래의 씨와 신부 나무, 그런 것들에 관한 테이프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여러 달 전에 예고되었는지... 여러분이 여기서 보는 일들은... 여러분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함께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한 번이라도 어긋난 적이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사람들에 관해, 지진에 관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관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맞습니까? 여기 그동안 함께했던 분들이... 물론입니다.
또 마릴린 몬로 같은 여러 사람에 대해서도, 그녀가... 죽기 훨씬 전에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 남자, 이 싸우는 사람, 독일의 마지노선, 그런 모든 일들, 수천 가지 일이 매번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했습니다! 성령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933년에 앞으로 일어날 일 일곱 가지를 알려 주셨고, 이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완벽하게, 정확히 말입니다. 케네디 대통령까지 거기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바로 지금 제 기록에 있습니다. 33년 전에 말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마지노선이 세워질 것을 세워지기 11년 전에 말한 것, 히틀러와 파시즘과 나치즘이 일어날 것, 그것들이 모두 공산주의 안에서 하나로 묶일 것, 공산주의가 가톨릭교를 멸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에큐메니컬 공의회가 생기고, 모든 교회가 함께 모여 “짐승의 표”라고 불리는 형상을 만들게 될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지금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어긋난 적이 한 번도... 그것을 아는 사람 누구든, 누구든 온 세상을 다니며 물어보십시오.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몇 달, 몇 년 앞서 말해도 바로 그때에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 가운데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성령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여기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왕가의 씨가 같은 일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흩어진 자여, 돌아오라.” 자기 교단을 떠나 자기 땅으로 돌아오십시오.
우리 가운데 누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병든 사람을 고치신다는 것을 압니다.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당시 사람들은 “아, 그분이 고치실 수는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구원하실 수는 없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구원하실 수는 있지만 고치실 수는 없다” 하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똑같은 마귀, 똑같은 일입니다. 그분은 구주이시며 치유자이십니다. 여호와 이레이시며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아, 돌아오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이 지금 있는 그대로 놓여 있을 이 상태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너무 늦게까지 붙들어 두었습니다.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저는... 아마 내일 밤에 이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것에 관한 메모가 여기 아직 여섯 쪽쯤 더 있습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십시오. 모두 경건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제게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제게도 제 생각을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제시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께서 뒷받침하시지 않으면 우림과 둠밈이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듣기 좋고 아무리 참되게 들려도 우림과 둠밈이 그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씨가 생명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치유에 관해서 말하자면, 저는 치유자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스스로 치유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많은 비평가가 사람들을 치유자라고 부릅니다. 그저... 비난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어느 사람도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죽도록 부르신다면, 아무리 기도하고 병원에서 날마다 수액 주사를 놓아도 여러분은 똑같이 죽습니다.
오늘 밤 제가 손에 상처를 내고 상처 난 손으로 여기 서 있다면, 세상 어느 약도 제 손을 낫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치유하는 약이 없습니다. 어떤 약도 치유하지 않습니다. 어느 의사든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동안 깨끗하게 유지해 줄 뿐입니다. 약은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제가 손에 상처를 내면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그걸 낫게 하는 약이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그 약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손에 상처를 내고 여기서 쓰러져 죽었다면, 의사가 와서 제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50년 동안 살아 있는 모습처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제 손을 꿰매고 저를 저리 데려가 날마다 페니실린 주사를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50년이 지나도 그 상처는 처음 났을 때와 똑같을 것입니다. 약이 상처를 낫게 하도록 만들어졌다면 왜 그것을 낫게 하지 못합니까? 제 손의 상처를 낫게 하는 약이라면 이 책상에 난 흠도 고치고 제 외투에 난 찢어진 곳도 고칠 것입니다. 베인 곳을 낫게 한다면 어디에 있든 베인 곳을 낫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약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잖아요”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낫게 하지 못합니까? “그 몸에서 생명이 떠났으니까요”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약 말고 치유하는 다른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물론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십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떤 죄인들은 그것을 가지고도 왜곡된 삶을 삽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 있으며, 여러분이 가진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압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치유자입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보십시오. 저는 이루어진 일을 참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이제 그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전에, 이곳에서 확신하게 된 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전에... 이곳에 처음 오신 분들, 전에 여기 와 본 적이 없는 분들 가운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시고, 이것으로(오늘 밤의 메시지, 그분이 무엇을 행하시기도 전에 말씀만으로) 믿게 되어 제가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300명이나 400명이 손을 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보려고... 하나님께 은총을 얻으려고 그랬습니다. 이제 여기로 기도 줄을 불러 세우는 대신 여러분이 기도하시게 해야겠습니다.
먼저 성경 구절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압니다. 그분께 그런 것을 갖다 붙일 수 없습니다. 그분은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자신의 말씀만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내 말은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며 그것을 보낸 목적을 이루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 할당된 말씀이 있음을 봅니다. 진영 안에서 아무리 불신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찾으시면 그 믿음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 건물 어디에 계시든 이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3장인 것 같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드셨던 분들은 여기서 예배를 마쳐 갈 때 앞으로 나와 이 둘레에 서서 기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시고, 이 근처의 좋은 교회 가운데 한 곳으로 가십시오. 어디에 있든 복음을 전하는 곳이면 됩니다. 거기로 가서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요청하십시오. 그 뒤로는 목사님이 여러분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 뒤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저... 제가 이 도시에 산다면 여기 있는 교회들 가운데 한 곳에 속할 것입니다. 그곳으로, 복음을 믿는 교회로 갈 것입니다. 저는 거기 있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임을 밝힐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이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어제 행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보십시오. 어느 날 한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분은 돌아보시고 그 여인의 병을 아셨으며,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 몸 안에서 느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여기 밖에 나가 “그분을 보여 달라”고 해 보십시오. 보십시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전부 초자연적입니다. 사랑, 기쁨, 믿음, 오래 참음, 인내, 온유, 보십시오. 모두 초자연적입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밤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거기에 내가 있느니라.” 다시 ‘내가’입니다.) 그분이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병들었습니다(또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말씀드리십시오). 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치유하여 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이제 제게 주님을 만질 만한 믿음이 있다면... 브래넘 형제님은 저를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 그분이 저를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이분이 제게 진리를 전했다면(저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었습니다. 보기에 완전히 옳습니다), 이제 그것을 확증해 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씨라고 고백합니다. 왕가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왕가의 씨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이 데리러 오실 신부, 그분의 교회의 일부임을 믿습니다. 저는 병들었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 제발 주님의 옷에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이분이 약속한 대로, 소돔의 날들에 그랬던 것처럼, 브래넘 형제님을 통해 말씀하심으로 제게 그것을 확증해 주십시오. 그저 (제가), 이분이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저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십시오. 그대로 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저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진리를 말할 뿐입니다. 주님, 이제 그것이 진리임을 확증해 주십시오. 저는 주님에 관해 말했습니다. 제가 진리를 전했음을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그저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무도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앉아 계십시오. 여러분 앞, 이 안 어딘가에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한번은 벽을 그대로 통과해 들어오셔서 빵을 잡수시며 “나를 만져 보라. 내게는 살과 뼈가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신 뒤 그들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소돔의 날들에 하셨던 것처럼 마지막 날들에 다시 인간의 육체의 모습으로, 여러분의 육체 안에 나타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이셨던 하나님(육체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이제 자기 교회, 자기 신부 안에 계십니다.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연합하는 때입니다. 교회들이 연합하고, 나라들이 연합하며, 신부와 그리스도가 연합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연합하는 때입니다.
이제 믿기만 하십시오. 단순하지요? 긴장하여 억지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겸손히 “주님, 믿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누군가 그렇게 해 보십시오. 이제 저는... 제 앞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얼마나, 특히... 저는 여기 이분들과 이쪽 분들을 압니다. 여기 앉아 계신 몇 분을 압니다. 바로 여기, 제 앞쪽은 어떻습니까? 여기쯤 있는 이 작은 무리에게 집중해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자신을 알리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한 번도 보지 못한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모두 보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경건히 계십시오. 그분이 행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께 달렸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이 아주 굳게 믿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말을 들으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바로 저기 앉아서 탈장으로 고생하는 남자분, 하나님께서 그 탈장을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아마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이지요? 선생님과 저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들어 보십시오. 이것을 믿으십니까... 안드레가 시몬에게 메시아를 찾았으니 와서 보라고 말했고, 시몬이 주 예수님 앞에 왔을 때(선생님도 지금 기도를 통해 무언가와 접촉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그가 누구인지 말씀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누구신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그분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에게 힘이 되어 온 마음으로 믿게 되겠습니까? 나머지 여러분에게도 그렇겠습니까? 지금 이분은 자기에게 말씀드린 것이 무엇이든(저는 모릅니다. 테이프를 돌려 봐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옳다고 손을 드셨습니다. 맞습니까, 선생님? 좋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맞다는 것입니다. 셰퍼드 선생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이것은 그분이 “네 이름은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 하고 말씀하신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제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이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여기 계심을 보여 줍니다. 저에게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그분의 몸 안에 계십니다.
고개를 숙인 채 울며 기도하고 계신 자매님, 암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입니다. 믿을 수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저분이 놓치시겠군요. 틀림없이... 후드 부인,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심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아멘.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여성분은 위장병과 심장병과 합병증이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치유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십니까? 그러십니까? 좋습니다. 저기 치질이 있는 남자분, 하나님께서 그 치질을 고쳐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일어나 보십시오. 그 옆에 앉아 탈장이 있는 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탈장을 고쳐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바로 팔 옆에 계신 여성분은 두통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이제 사라졌지요? 보십시오. 믿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실 일은 그것뿐입니다. 믿기만 하십시오.
여기 당뇨병이 있는 여성분이 계십니다. 거기 당뇨병을 가지고 앉아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리라고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누구신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십니까? 로비슨 양, 그게 성함입니다. 저기 그 남자분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 탈장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도 낫게 하실지 모릅니다. 믿으신다면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옆에 앉아 계신 여성분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분은 신경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신경염을 고쳐 낫게 하시리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자매님도 치유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확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심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믿으십니까? 이제 그분의 임재 안에서 그분의 긍휼을 원하고 자기 혼에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여러분 모두, 그분이 계심이 확인된 바로 그 임재 안에 있는 지금 그분을 받아들이기 원하신다면... 어떤 사람이 손에 못 자국이 있고 가시 자국도 있는 모습으로 이곳에 들어와 “내가 주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위선자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주 예수님의 몸은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이 오시면 시간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 몸이 땅으로 돌아올 때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은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의 생명이 그분이 여기 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으리라.”
지금 그분의 긍휼을 원하신다면 잠시 기도하기 위해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이 건물 어디에 계시든, 여러분이... 어디 계시든 일어서십시오. 저 뒤에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일어서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하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기도를 위해 잠시 일어서십시오. 그분을 위해 일어서 주신다면... 지금 그분을 부끄러워하면 그분도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을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분을 기꺼이 시인하시면 그분도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을 시인하실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영접하기 원합니다. 지금 그분의 영으로 저를 채워 주시기 원합니다. 그분께서...” 기도하는 동안 잠시 그대로 서 계시겠습니까? 일어서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도록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이렇게... 이것은 영접 초청입니다. 일어서십시오. 우리에게는 나아갈 제단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제단입니다. 모든 불신을 걷어 내고 그분이 지금 여기 계심을 아십시오. 지금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원하는 분들은 일어서십시오. 여러분이 느끼며 이제 입증된 이 신성한 임재 안에서 말입니다. 이제 고개를 숙입시다.
주 예수님,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과학에 따르면 이들은 손조차 들 수 없어야 합니다. 중력의 법칙은 우리의 손이 아래로 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영생이신 그리스도 가까이 이끌려 왔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세상의 법과 불신을 거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들은 복음이 드리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오늘 밤 메시지와 우리와 함께하신 주님의 위대한 임재를 기억하게 하는 증거입니다. 저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들의 이름을 올려 주십시오. 주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자녀, 주님께 사랑받는 자로 그곳에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채워 주십시오. 그들의 삶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득 차서 겸손과 사랑과 친절과 온화함이 그들에게서 흘러나오게 해 주십시오. 또 한때 자기들과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려는 열심이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자기 믿음의 증거로 일어섰습니다. 이제 제 믿음과 그들의 믿음을 함께 모아 믿음으로 주님의 제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들은 거기 놓인 희생물로서, 희생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기 왕국으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로 지금 주님의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제 서 계신 분들 가운데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는 분들은 손을 들고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지금 그분을 제 구속자로 받아들이며 성령침례를 구합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앉으셔도 좋습니다. 이제 곧바로 어느 교회든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내일 밤에는 성령침례를 위한 집회를 열겠습니다. 내일 밤, 바로 이 건물에서입니다. 성령침례라고 불리는 광신주의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참된 성령,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분이 내일 밤 이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건물 안에서 우리가 마지막 때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이것이 진리임을 확신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마지막 날들에는 말씀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손을 드십시오.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이제 몸에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그분들 옆에 앉아 계신 믿는 여러분은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여러분의 교회에서 기도하는 방식으로 이곳에서도 기도하십시오.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분들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방식으로,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왕국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손수건들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치유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사탄은 더 이상 붙잡고 있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모든 사람을 치유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