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성경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저녁 제 주제는…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헤롯의 법정에서 빌라도 앞에 서셨을 때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공정한 재판을 받으셨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사십오 분 동안 그분을 재판해 봅시다. 그분이 다시 문제시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에 관해 문제시되는 주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분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성경에서 가장 많은 논란이 되는 부분을 읽으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16장입니다. 우리가 국기에 충성을 맹세하거나 미국 국가를 듣고 있다면 모두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훌륭한 나라를 기리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을 읽는 동안 잠시 일어서 주십시오.
마가복음,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입니다. 이 구절들을 읽을 때 주의 깊게 들읍시다. 지금은 바로 부활하신 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막 일어나셔서…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계시던 때입니다. 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 일찍 일어나신 뒤 전에 친히 몸속에서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 나타나시니 그녀가 가서 그분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애곡하며 슬피 울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고하였는데 그들은 그분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과 그녀에게 자신을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더라. 그 뒤에 그들 중의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그분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이에 그들이 가서 남은 자들에게 그것을 고하였으나 그 사람들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더라. 그 뒤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아 있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고…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참으로 그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들려서 하늘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시니라. 그들이 나가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괜찮으시다면 마빈 스미스 형제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제 저희에게 아주 친절히 대해 주셨고, 어젯밤에는 기도 줄에서 저도 함께 기도하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방금 읽은 말씀 위에 하나님의 복을 구해 주시겠습니까? 스미스 형제님. [스미스 형제님이 기도를 인도한다.] 아멘.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됩니다.
여기 제 친구들이 아주 많이 와 계셔서 모두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제가…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저기 피닉스에서 오신 아웃로 형제님은 정말 제 마음을 나누는 형제요 친구입니다. 그리고 모즐리 형제님도 계십니다. 다른 분들도 참 많이 계셔서 한 분 한 분 인사드릴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그냥 지나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말씀에 관해서, 오늘 저녁 우리는 이 문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 구절에 대해 몇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디를 가든 이것이 가장… 불신자들이 트집 잡는 부분임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모리스 리드헤드를 아십니다. 그는 수단 선교회 회장입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근본주의 선교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와 돈… 성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는 채터누가에 있는 큰 침례교회들 중 한 곳의 목사입니다. 그가 제퍼슨빌에 있는 제 집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침례교인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선교사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사람들과 어울리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예, 그렇습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형제님은 그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외치며 야단스럽게 구는 것이 모두 무엇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증기로 바퀴를 돌리게 하지 못하면, 그 증기는 기적을 울리며 빠져나오는 법입니다. 그뿐이지요. 그들이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제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겁니다. 그것을 제대로 움직이게 해서 그 열정이 밖으로 나가 혼들을 얻는 일에 쓰이게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정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학교에 보내려고 빨래판에 빨래를 하셨습니다. 저는… 학사 학위를 받으면, 제가… 거기서 그리스도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브래넘 형제님, 제가 가진 학위와 명예 학위를 모두 붙이면 이 벽을 도배할 만큼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한 제가 선생님들이 틀렸다고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 그분들이 하신 말씀은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그렇지는 않았… 그 밖에도 더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인도에서 온 훌륭한 청년 하나를 가르쳤습니다. 그가 공부한 것이… 아마 토목공학이었는지, 그런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것 같습니다. 자기 민족을 돕기 위해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를 배까지, 아니, 인도로 돌아가는 배를 타러 갈 기차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가 돌아가니 말인데… 이제 자네는 교육을 받고 모든 준비를 갖췄으니 자네 민족에게 돌아가게. 그런데 자네가 숭배하는 그 죽은 선지자 무함마드는 잊어버리고,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돌아가는 것이 어떤가?’”
그 청년은 이슬람교인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예수님께서 저희 선지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저를 위해 더 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네에게 생명을 주시네. 자네 선지자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청년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희 이슬람교인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아십니까? 선생님네 지도자께서 선생님들이 하리라고 말씀하신 일을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네… 보십시오. 무함마드는 죽은 뒤의 생명만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일을 선생님들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것 말인가. 보게, 그들은 실제로 그 일을 했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들’이라고요? 지금 우리는 선생님, 바로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 여보게, 내 말 좀 들어 보게. 신약성경을 읽어 봤나?” 청년이 말했습니다. “아, 여러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경 구절을 말하는 것인가?” 청년이 말했습니다. “여러 곳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같은 곳도 있고, 마가복음 16장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 마가복음 16장은 말이야… 우리는 사실 어떤 성경 구절들은 진본이 아니라고 배우네.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는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네. 그것은 덧붙인 것일 뿐이네.”
아니, 정말입니까! 혹시 이 근처에 비평가가 있다면, 그런 말을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성경 역사를 이십 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이레니우스와 폴리캅과 그들 모두가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덧붙여졌습니다. 바티칸이 덧붙인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이 진짜 기록자들은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진본 기록입니다. 그런데 그가 “9절 이후는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이슬람교인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리드헤드 선생님, 어느 부분이 영감을 받은 것입니까? 알아 두십시오. 코란은 모두 영감을 받은 것이지, 여기 한 부분, 저기 한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큰 패배입니까! 그래서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이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나머지도 영감을 받지 않은 것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 그것은 좋은…
그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지만 무함마드는 무덤에 있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까? 그러셨다면 마지막 완성의 때까지 선생님 안에 계실 것이며, 그분이 하신 일을 선생님도 하실 것입니다.” 리드헤드 씨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네.” 청년은 말했습니다. “그것을 입증할 시간이 이천 년이나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의 구십 퍼센트는 그것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무함마드가 일어나기만 하면 온 세상이 이십사 시간 안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선교사들 가운데 그 무덤에 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에서는 네 시간마다 말을 지키는 경비가 교대합니다.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면 타고 세상을 누빌 백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시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이미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말했습니다. “입증해 보십시오.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다면 그렇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선생님은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리드헤드 씨가 “그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네.”라고 말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무함마드도 제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리드헤드 선생님,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만큼이나 심리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브래넘 형제님, 저는 패배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먼지를 걷어차며, 형제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아시겠죠?
성경은 전부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세상을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분이 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면, 어느 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시겠습니까? 가톨릭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면 (여러분 가톨릭 신자들은 그렇다고 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어느 가톨릭교회입니까? 그리스 정교회입니까, 로마 교회입니까, 어느 교회입니까? 침례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면 여러분 감리교인들은 멸망합니다. 감리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면 여러분 침례교인들은 멸망합니다. 오순절교회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면 여러분 양쪽 다 멸망합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어느 교회를 기준으로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은 말합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러므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이며,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므로, 처음에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지식으로 자기 복음을 각 시대에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보듯이 교회들이 그것을 온통 뒤섞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참된 줄 어떻게 압니까? 그 시대의 메시지가 입증되는 것으로 압니다.
자, …무엇이냐 하면… 모세가 왔을 때 (그가 오리라고 약속된 대로 왔을 때), 그가 노아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구하려고 방주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 말씀이 입증되어야 했습니다. 모든 선견자와 모든 선지자의 시대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다른 빛의 잔광 속에서 사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너희가 선지자들의 무덤 벽을 꾸미지만, 그들을 거기에 넣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 아시겠죠? 사람들은 어떤 메시지 위에 무언가를 세워 놓고, 그 빛의 잔광 속에서 살면서 당대의 빛 가운데 걷기는 거부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기를 거부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권고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그러나 그들에게는 신조와 그런 것들, 자기들의 전통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들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시대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그러는지 봅니다. 우리 인간은 말씀을 우리 나름대로 해석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는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는 해석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해석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해석하십니다. 성경도 그것을 사사로이 해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빛이 있으라.”라고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처녀가 수태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처녀가 수태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녀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처녀가 수태했을 때, 바로 그때 사람들은 신조로 너무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언제나 그랬으며, 다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다른 어느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그분을 찬양하고, 언제나 그분이 앞으로 하실 일을 말하면서, 그분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은 비웃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늘 그러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만든 이론들이 들어와서 온통 뒤섞어 놓기 때문입니다. 참된 말씀이 스스로 말할 때에도, 아시겠죠, 사람들은 신조로 너무 가득 차 있고 그 잔광에 눈이 멀어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루터교인들이, 감리교인들이… 여러분 감리교인들이… 여기 이 훌륭한 감리교 청년이 조금 전에 노래했습니다. 그 청년이…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보십시오. 루터교인들은 루터의 잔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메시지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들이 나타날 때까지 모두 감리교의 잔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경을 들여다보시기만 하면, 교회 시대들과 각 시대에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보시면,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을 바탕으로, 저는 오늘 저녁 이 본문을 가지고 “재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의 시대에, 빌라도의 시대에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오늘 저녁 이 작은 무리 가운데서 (여러분이 저와 함께 앉아 계셔 주신다면), 저는 그분이 공정한 재판을 받으시게 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말씀이십니다. 이에 동의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니 그분이 공정한 재판을 받으시게 합시다.
여러분이 조금만 참아 주신다면, 이곳을 법정처럼 꾸며 보겠습니다. 조금 색다르게 들리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모인 이 작은 무리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이 말씀을 가져오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변호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말씀을 재판에 회부하겠습니다. 헤롯이 그분을 재판했던 때처럼, 빌라도… 빌라도의 법정 앞에서 있었던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곳 라마다 홀의 법정으로 그분을 모시겠습니다. 때는 1964년, 1964년 4월 27일입니다. 자, 이곳을 법정으로 삼겠습니다. 여러분이 판사이자 배심원입니다. 이 법정의 여러분 말입니다. 저는 진행자가 되어 법정 재판처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러분이 결정을 내리십시오. 모든 배심원이 평결을 내리기 위해 마음을 정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 뒤 여러분의 행동이 여러분의 평결이 무엇인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든, 여러분의 행동이 여러분의 평결을 입증할 것입니다. 자, 여러분, 오늘의 사건은…
이제 저는 진행자 역할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잠시만 참아 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실제 법정 사건처럼 제시하여 그분을 재판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 대 세상, 곧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 대 세상입니다. 기소 사유는 약속 위반입니다. 그것이… 약속 위반이 이 사건의 사유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반 법정 재판에서 검사는 언제나 국가를 대표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검사가 세상을 대표합니다. 그 검사는 사탄이며, 오늘 오후 여기 이 법정에서 세상을 대표합니다. 피고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변호 측 증인은 성령이십니다. 검사의 증인들은 불신 씨, 회의 씨, 조급 씨입니다. 이 세 사람이 세상을 대표하는 검사, 곧 사탄의 증인으로 나옵니다.
이제 법정의 개정을 선언하고, 검사를 부릅시다. 말씀에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첫 번째 증인을 증인석으로 부르게 합시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제가 하지 못할지도… 삼사십 분 안에 마치려고 서두르다 보니 어떤 부분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러더라도, 이제 개정하는 이때 성령께서 그것을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판사이자 배심원임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검사가 증인을, 첫 번째 증인을 증인석으로 불러 증언하게 합니다. 불신 씨를 부르니, 그가 증언하려고 증인석에 섭니다. 불신 씨는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전부가 참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그의 불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다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괜찮지만, 전부는… 이 불신 씨는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은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다 신뢰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마가복음 16장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성령 집회에 갔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마가복음 16장에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되어 있는 그 말씀 말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온갖 간증을 하는 이른바 성령 설교자와, 그… 이 성령을 받은 무리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몸에 병이 있어서 그 성령 집회에서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안수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두 달 전인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안수를 받았을 때만큼 여전히 아픕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과 똑같이 아픕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그런 성경 구절을 성경에 넣으신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을 뒷받침하실 능력도 없으시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이 성경 안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는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지키지 않으신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런 약속을 말씀 안에 넣으신 것으로 하나님을 기소하기 원합니다. 좋습니다. 그를 증인석에서 내려가게 합시다.
다음으로 회의 씨를 불러 증언하게 하겠습니다. 회의 씨가 증인석에 섭니다. 그는 진실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큰 병을 앓은 후유증 때문에 오랫동안 아팠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교회에 경건한 목사가 있다고 간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는 설교하면서 야고보서 5장 14절을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으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게 하라. 그들이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용서받으리라.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너희가…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효능이 있느니라.”
그는 믿는 사람으로서 거기에 갔다고 말합니다. 이 법정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온전히 신실한 마음으로 그곳에 갔습니다. 그 교회의 이른바 경건한 목사에게… 많은 사람들은 그 목사가 자신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했을 때… 목사 본인도 하나님께서 그 말씀에 응답하셨으며 야고보서 5장 14절의 말씀이 참되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그것이 참되다고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갔고, 그 목사 (경건한 사람)는 야고보서 5장 14절에 따라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여섯 달 전인데, 그는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처음처럼 여전히 아픕니다. 그래서 회의 씨는 그것이 참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16장은 참되지 않으며, (요한복음), 아니 야고보서 5장 14절도 참되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지키지 않으시니 참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지키지 않으시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믿는 사람으로서 신실한 마음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치유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그 목사에게 기름을 바르게 하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절차를 자신에게도 행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섯 달이 지났는데 어떤 결과도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역시 하나님께서 책임지지도 않으실 그런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말씀 안에 넣으신 것으로 하나님을 기소하기 원합니다. (사건이 제법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회의 씨를 증인석에서 내려가게 합시다.
다음 증인은 조급 씨입니다. 그는 고약한 사람입니다. 이제 그가 올라와 증언하려고 합니다. 증인석에 선 그가 말하기를, 어느 날 마가복음 11장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16장이 아닙니다.) 11장 22절과 23절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을 수 있다. 너희가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그것을 받으리라.” 그는 발이 불편해 약 이십오 년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이 성경 구절을 읽었을 때… 그의 목사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 산에게 “옮겨져라.”라고 말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자신이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말한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자기가 구한 것을 받을 줄 믿으면 그것이 그에게 주어지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온전히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목발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 자기가 말한 것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그것이 거의 오 년 전인데, 그는 여전히 전과 똑같이 다리를 접니다. 그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지키시는 분이라면, 왜 자기 말씀을 지키지 않으십니까?” 저는 지금 성경 세 구절, 혹은 증인 세 명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에게 더 부르게 하겠습니다. 불신 씨가 증언했습니다. 회의 씨도 증언했습니다. 불신 씨는 마가복음 16장에 대해 증언했고, 회의 씨는 요한복음, 아니 야고보서 5장 14절에 불리한 증언을 했습니다. 조급 씨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마가복음 11장에 불리한 증언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과 23절에 반대하는 증언을 했습니다. 이제 조급 씨에게 증인석에서 내려가 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법정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검사는 자신의 논지를 확실히 굳혀야 합니다. 그래서 검사가 나와 사건을 확실히 굳힙니다. 무엇을 대표하는 자입니까? 세상을 대표하는 사탄입니다. 그가 증인석에 섭니다. 그가 오늘 오후, 아니 오늘 저녁 이 법정에 주장하는 것은… 그는 검사가… 마귀는 이 법정이 다음 사실을 알아주기 원합니다. 이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며, 이 말은 실제로 말씀, 곧 그가 이른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것들이 성경의 서로 다른 곳에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검사 말입니다) 이 법정에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녀들이 받아들이도록 그런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책에 넣어 놓고, 자기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이루시지도, 입증하시지도 못하신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음을 이 법정이 알아주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에게는 증인이 세 명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우리가 알듯이, 세 증인이 있으면 확증이 됩니다. 성경의 서로 다른 세 곳에 관해 그에게 세 증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자기 말씀에 넣으셔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것을 보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받아들이고 믿으려 하게 해 놓고는, 그들을 냉정하게 저버리신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증인들입니다.
그는 또한 이 자녀들, 이 사람들이 온전히 신실한 마음으로 이렇게 행했는데 패배했다고 주장합니다. 참으로 믿는 자녀들이 이른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끼워 넣은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다른 세 곳과 세 증언이 있어, 그것이 틀렸음을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자기 논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검사인 그는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신실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였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에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지적하여 법정의 주의를 끌고자 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므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려 합니다. 다시 검사는 오늘 오후 이 법정의 주의를 끌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또 다른 곳에서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모든 것이… 그것이 무엇이든지…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법정의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증인석에 있는 검사가 사건의 논지를 굳히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죽으신 뒤에도 살아 계신다고 주장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뒤에도 살아 계신다고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검사는 이 법정에 묻고자 합니다.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여러분은 그분을 보았습니까?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은 어디 있습니까? 그분께 씌웠던 가시관은 어디 있습니까? 그분의 이마에 난 자국들은 어디 있습니까?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또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그분은, 그분의 말씀은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합니다. 검사는 이 법정이 그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러시다면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는 그분을 보고 싶어 합니다. 다시 그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3절도 사실이 아니고, 요한계시록 3장도 사실이 아니며, 마가복음 4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분의 부활에 관한 이 모든 성경 구절들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그분은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자기 말씀의 일점일획도 결코 어긋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런데 검사는 오늘 오후 이 법정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들이 틀렸음을 입증할 증인들이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동안 법정이 이 점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자, 이제 검사에게 묻겠습니다. 그 말씀들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성경을 인용하고, 그것들이 옳지 않고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며,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의지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는 증언을 제시하여 사건의 논지를 굳히는 일을 마쳤습니까? 그에게는 그 말씀들을 신뢰할 수 없음을 입증할 증인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맡은 사건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 검사와 그 증인들이 내려가게 합시다.
이제 변호 측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변호 측 증인에게도 피고를 위해 증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변호 측 증인이신 성령께 나오시게 하여 그분의 증언을 들어 봅시다. 먼저, 여러분은 검사가 한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의 증인들이 한 말도 들으셨고, 성경 구절들도 들으셨으며, 그것들을 읽는 것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것들이 참되지 않다고 하는 증인들이 있습니다.
이제 제가 말씀드린 변호 측 증인, 성령께서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주의를 돌리고자 하시는… 변호 측 증인 (성령)께서 이 법정의 사건에 대해 먼저 지적하시려는 것은, 검사가 말씀을 여러분에게 바르게 해석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여러분의 주의를 이 점에도 돌리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해석해 주며 세상과 불신을 대표하는 이 검사는, 처음에 이브에게 해석해 주었던 바로 그 해석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아주 조금 잘못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재판을 멈추고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질병과 슬픔과 죽음이 땅에 임하게 하셨다면, 자기 말씀을 지키시는 공의 때문에 그렇게 하셔야 했다면, 그분은 의로우시면서 자기 말씀을 지키지 않으실 수는 없습니다. 의로우시려면 자기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의 거룩하심에 합당합니다. 그분께 합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브가… 단지 그것만은 아니…
사탄은 그러지 않았… 검사는 전체를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두 마디를 잘못 해석했고, 그것이 온 땅에 죽음이 닥치게 했습니다. 모든 병원, 지금까지 울린 모든 사이렌, 모든 죽음, 모든 몸부림, 전쟁터에 있는 모든 사람, 병들어 고통받는 가엾은 어린 아기들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 중 단 한 마디를 믿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마디를 믿지 않아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면, 한 마디를 믿지 않은 채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전부 믿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그가, 이 사람들이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사가… 잘못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잘못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이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그 약속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믿는 척하는 사람이나 회의적인 사람이나 조급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이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바로 변호 측 증인이실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을 살아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몸을 예로 들면, 몸은 살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영이 그 안에 있어 그 몸을 살려 주지 않으면 몸은 죽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살아나게 하지 않으시면 말씀도 죽어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을 살아나게 하시는 분이라면, 이 사람들이 정말 믿는 사람들인지 아닌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변호 측 증인이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그분은 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훌륭한 변호 측 증인이신 것은 말씀을 살아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변호 측 증인은 여기 문제가 되고 있는 말씀, 우리가 방금 읽었으며 검사가 기소하려고 하는 그 말씀에 주의를 돌리기 원하십니다. 변호 측 증인은 그 말씀에서 언제 병에서 벗어날 것인지 특정한 시간을 정한 적이 없다는 점에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언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서는 “너희가 기름부음을 받으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 마가복음 16장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자, 이것이 어떻게… 이 불신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잘못 해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 사람은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 집회에 있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는 것을 못 봤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둔 해석자가 보이십니까? 그들이 무엇에 귀를 기울이는지 보이십니까? 변호 측 증인은 오늘 오후 이 법정에, 말씀이 그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리라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기 원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그분은 어느 특정한 때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또한 변호 측 증인은 오늘 오후 여기 이 법정에서 여러분의 주의를 이 점에도 돌리기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하셨습니다. 씨는 그 씨를 살아나게 할 만큼 비옥한 땅에 떨어져야만 자랄 수 있습니다. 이 씨가 어떤 땅에 떨어졌는데 그 땅이 믿음으로 비옥하다면, 반드시 씨를 살아나게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면… 수혈을 받으려고 순무에 가서, 관을 자기 몸에 꽂고 순무에도 꽂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피를 얻겠습니까? 거기에는 피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불신자나 회의적인 사람의 마음속에서 결코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그 말씀은 결코 어긋나지 않으리라고 믿는 참된 믿음 속에 떨어져야 합니다.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부르고, 소망이 없는 중에도 소망한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제 변호 측 증인은 말씀은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라는 점에 주의를 돌리기 원하십니다. 성경에는 말씀이 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씨는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졌고 공중의 새들이 가져갔다고 말합니다. 어떤 씨는 뿌리를 조금 내려 싹을 틔울 만큼만 자랐지만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숨 막히게 하여 죽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들어가 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분은 그 점에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기 원하십니다. 또 이 성령 집회에서 사람들이 안수를 받을 때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여기에는 불신자들을 위한 약속이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분리된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오직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이것은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이제 변호 측 증인들이, 아니 변호 측 증인이 증인 한 명을 부르고자 하십니다. 그분에게도 증인들을 부를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변호 측 증인은 이것에 반대하고 말씀을 지지할 첫 번째 증인을 부르고자 하십니다. 오늘 오후 이 법정 앞 단상으로 노아를 불러 피고를 위해 증언하게 하겠습니다. 노아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선지자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에게 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노아가 살았던… 그는 자신이 매우 과학적인 시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보다 더 발전한 시대에 살았다고 증언하고 싶어 합니다. 그가 살던 시대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지을 기계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노아는 위대한 시대에 살았고, 과학적인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입증된 선지자가 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방주를 준비하라.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역사 이래 한 번도 비가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증언과 하나님을 위한 그의 증거에 근거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며, 이 방주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 레이더 같은 것으로 달을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같은 종류의 시대였습니다. 노아는 그들이 저 위에 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불신 씨, 조롱 씨, 회의 씨는 그가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믿는다고 끊임없이 괴롭히며 조롱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때에도 믿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으므로 그는 방주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를 하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가 방주를 완성한 뒤에 회의 씨와 조급 씨와 다른 사람들이 방주 주위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은… 여러분은 “그들이 그때에도 살았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람을 데려가시지만 자기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엘리야 위에 계셨던 영은 엘리사에게 임하셨고, 계속해서, 계속해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 위에 계셨던 영은 교회에 임하셨고, 계속 이어져 내려오셨습니다. 마귀도 자기 사람은 데려가지만 그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 동일한 영 (종교적인 영)은 줄곧 존재해 왔습니다. 바리새인들 위에 있었던 것과 같은 영이 바로 여기 애리조나주 투산에도 있습니다. 그때와 똑같이 믿지 않고, 똑같이 신조와 전통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여기 투산뿐 아니라 전 세계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저녁 성령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실제로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십시오. 노아는 자기가 너무나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그들이 조롱했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물이 있지도 않고 한 번도 물이 떨어진 적도 없는 곳에서 물이 떨어질 것이라고 믿다니, 그만큼 생각도 지성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흔들리지 않고 비가 올 것을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겠다고 말씀하신 일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가 완성된 뒤에는 방주 문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광신자야…” (불신 씨, 조롱 씨, 변호 측 증인, 아니 검사의 증인들 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들이 제 곁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제 네 방주를 다 지었구나. 문들도 달았구나. 그런데 네 비는 어디 있느냐?” 때로는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을 지키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언제 비가 올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언제 비가 올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제게 방주를 짓게 하셨으므로 저는 비가 내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5월 10일 어느 아침, 그가 방주 안으로 들어갔고 그의 뒤에서 문이 닫혔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불신 씨와 회의 씨가 방주 주위를 돌아다니며 그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이 고리타분한 영감아, 자네가 그 문을 닫았으면서 다른 무언가가 닫았다고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겠지. 우리는 자네 속임수를 알고 있어. 자네는 마술사에 불과해. 속임수를 쓰려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 이건 무슨 사기극이고, 그 문은 자네가 닫은 거야.” 그러나 노아는 말했습니다. “그 모든 일 가운데 저는 거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문을 닫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날에 그들은 “어디 비가 오는지 보자.”라고 했습니다. 첫날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에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셋째 날에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곱째 날까지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노아의 증언을 잠시 멈추고 여러분에게 이것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가 계속 설교하며 사람들이 구원받고 있다고 믿지만, 문은 이미 닫혀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바로 그때와 같을 것입니다. 아직 안에 들어오지 않으셨다면 지금 들어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더 이상 긍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한번은 제자들까지 예수님께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그 제자들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는 이미 왔으나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그것이 침례자 요한을 가리키는 줄 깨달았습니다. 요한은 이미 이 땅에 왔고, 이미 목 베임을 당하여 영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부르짖겠지만, 그때는 너무 멀리 지나간 뒤일 것입니다. 너무 늦을 것이며, 문은 닫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녀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우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기름을 좀 얻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기름을 나누어 줄 때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들이 슬피 울며 통곡하고 이를 가는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 법정에서 말씀을 변호하며 잠시 곁들여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이제 노아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이십 년이 지난 어느 아침에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비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바로 그 주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 주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방주를 완성했을 때는 틀림없이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했지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정확히 어느 날 비가 올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증인이 내려갑니다.
두 번째 증인이 올라옵니다.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그를 부르겠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저는 여기 있는 조롱 씨를 압니다. 불신 씨와 회의 씨도 압니다. 아, 그 조급 씨도요! 저도 제 시대에 선지자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이 사람들에게서 너 자신을 분리하라. 네가 아내 사라에게서 아기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육십오 세였고 저는 칠십오 세였습니다. 사라는 폐경이 된 지 이십오 년, 삼십 년쯤 지난 때였습니다. 저는 사라와 결혼했습니다. 사라는 저와 아버지가 같은 이복 누이였습니다. 사라가 어린 소녀이고 저도 소년이었을 때 결혼했습니다. 나이는 십 년 차이였고, 저는 사라와 결혼했습니다. 사라가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지만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저도 생식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선지자였고, 주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네가 사라에게서 아이를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사라에게 그 말을 했더니, 사라는 시내로 가서 실을 사다가 아기 신발을 뜨고 기저귀 핀과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이십팔 일이 지나서 저는 ‘여보, 몸은 어떻소?’라고 물었습니다. 사라는 ‘달라진 것이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말씀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의사를 찾아갔는데, 의사는 우리를 진료실에서 쫓아냈습니다. 칠십오 세의 노인과 육십오 세의 여자가 아기를 낳겠다고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그분을 믿으면, 여러분의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의사에게 갔더니 의사는 우리를 진료실에서 쫓아냈습니다. ‘당신 같은 노인이 말입니까? 이분을 잘 살펴보십시오. 머리가 조금 이상합니다. 이 영감에게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롱하는 자들이 돌아다니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 한 달이 지났는데 사라에게서 얻겠다던 그 아들은 어디 있소? 내가 듣기로 그 여자에게는 아무 이상도 없다던데.’ 첫해가 지났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민족들의 조상 아브라함, 지금 자녀가 몇이나 되시오?’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조급 씨는 계속 저를 손가락질하며 말했습니다. ‘보시오. 아무것도 없잖소. 무언가 있었다면 십 년 전에 벌써 얻었겠지요. 십 년 안에는 그 아기를 얻었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온전히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언제 그 아기를 얻을 것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십오 년이 지나 제가 백 세이고 사라가 구십 세였을 때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증인입니다.) 저는 이십오 년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주장하면서 하룻밤에서 다음 날 밤까지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잘못된 편에 서고 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이십오 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달에 사라가 수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아기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온전히 확신했습니다. 그 아이는 제 자녀가 될 것이므로, 제가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아무것도 저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늙음이나 질병이나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도,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저를 해칠 수 없습니다. 저는 불신으로 그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마다 저는 날마다 더 강해졌습니다. 해마다 사라가 ‘올해에도 아기를 낳지 못했어요.’라고 하면, ‘그러면 올해는 낳을 거요.’라고 했습니다. ‘작년에도 낳지 못했잖아요.’ ‘올해는 낳을 거요.’” 그렇게 해마다 계속, 계속해서 이십오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가 다시 젊은 여자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힘도 돌아오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십오 년 뒤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말씀은 그가 언제 아기를 얻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증언할 것이 많으신 줄 압니다만 내려가 주십시오. 다른 증인을 부르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변호 측 증인이 세 번째 증인을 부르십니다. 모세입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책들을 이 서점들에서 아무리 많이 사서 읽어도, 성경은 여전히 참됩니다.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여러분이 되도록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모세에게는 내려가 백성에게 보여 줄 표적이 있었으며, 그 표적 뒤에는 음성이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을 가지고 내려갔을 때 (법정의 여러분,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에게서 온, 하나님께서 주신 이 표적을 가지고 내려갔을 때 파라오 목사는 그것을 마술이라고 말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은사에 먹칠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 어떤 마술사에게 똑같은 일을 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표적을 값싼 마술 속임수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파라오 목사들이 그 시대에 다 죽은 것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일종의 정신적인 텔레파시다. 일종의 사탄의 힘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은 값싼 마술사들을 불러 모세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말했습니다. “그 일은 저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 나무에서 제게 말씀하신 음성이 성경에 맞는 음성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그들의 고난을 보았으며 내 약속을 기억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그 시대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주 이상했지만, 사람들은 온갖 마술 속임수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종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어떤 값싼 마술 속임수처럼 보이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오, 하나님!)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사명을 맡기신 음성이 성경에 맞는 음성이었고, 그는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날들에 똑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리라고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얌브레와 얀네가 다시 돌아와 참된 것이 역사할 때 그것에 맞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어리석음은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육적인 모방자, 어떤 사람을 데려다 쓰려 했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다니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은사를 흉내 내어, 그것이 어떤 값싼 술수처럼 보이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오후 증언하는 모세는 여러분 모두가 이것을 알기 원합니다. 그 목사가 아무리 모세의 은사를 수상쩍게 보이게 하려 하고, 무언가 수상한 값싼 마술 속임수라고 해도, 모세는 그것이 성경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신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으므로 굳게 섰습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알려 드리기 원합니다. 그 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을 지키셨고,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오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장소로 그를 다시 데려오셨습니다. 모세, 내려가 주십시오.
변호 측 증인에게 또 다른 증인을 부르시게 합시다. 이제 여호수아를 부르겠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여기서 하고 싶은 놀라운 증언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백성을 진정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각 교파에서 한 사람씩 불러 약속의 땅으로 보냈을 때였습니다. 그 땅이 정말 있는지 알아보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그런 말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거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장로교인, 루터교인, 오순절교인 등에서 한 사람씩 뽑았습니다. 각각 한 사람씩 뽑아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중 두 사람이 증거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온 무리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맞서야 할 세력이 너무 큰 것을, (상대편이 너무 큰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들 곁에 서면 메뚜기 같소. 저 아말렉 사람들과 헷 사람들 말이오.” 그런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메뚜기처럼 보인단 말이오. 우리는 할 수 없소.”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제가 백성을 진정시켰습니다.”라고 증언하기 원합니다. 그는 심판의 자리인 가데스바네아에서 “조용히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조용히 하시오. 여러분의…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겠소. 하나님께서는 저 아래에서 모세를 통해, 또… 아니 아브라함을 통해 이 땅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소. 그분은 우리 가운데 불기둥을 보내셨으며, 그 불기둥이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여기 우리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소. 이 선지자가 한 말은 참되었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그 땅을 주셨다고 하셨소. 우리는 충분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소. 그것은 이미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백성을 진정시키고 조용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사십 년 뒤였습니다. 가데스에서 약 이틀 길만 가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춰도 되겠습니까? 여러분 장로교인들,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혹은 오순절교인들, 우리는 오십 년 전에 약속의 땅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말씀을 따르는 대신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에서 나와 조직을 만들고, 이것을 하고 이것을 얻고, 한쪽은 이것을 하고 또 이것을 얻고, 새로운 계시를 얻는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십 년 동안 약속의 전부에 이르지 못한 이쪽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십 년이 걸렸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세대와 함께 자기 말씀을 지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 모두가 알기 원합니다. 그는 약속된 그대로 약속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백성을 진정시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따르고 있던 이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행하고 있던 일들이 성경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가 아무리 거짓이라고 말해도, 마술사들이 자기들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똑같이 할 수 있다며 아무리 거짓이라고 주장하려 해도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또 그들 가운데 그들을 조직으로 만들려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원합니다. 그의 이름은 다단입니다. 그와 고라가… 그들이 일어나 “당신 말고도 거룩한 사람들이 더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집단을 상대하지 않으십니다. 개인을 상대하십니다. 그분은 변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어떤 일을 하셨다면, 언제나 똑같은 분으로 계셔야 합니다. 자, 보십시오.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처음 내리신 결정은 죄 없는 존재가 흘린 피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을 교육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을 교파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줄곧 더 멀어져만 갑니다. 사람이 교제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입니다. 죄 없는 존재가 흘린 피 아래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그것을 믿을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 없는 존재가 흘린 피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어느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 외에는 상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감리교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오순절교인이라는 이유로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집단을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개인들, 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이 상대하시는 것은 오직 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주님 앞에서 부르짖었고, 주님은 “모세야, 너 자신을 분리하라. 내가 이 메시지로 너를 불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이 그들을 삼키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러분이 그것도 이해하기 원합니다.
여호수아가 내려간 뒤에는,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 않도록 곧바로 다른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이사야를 부르고 싶습니다. 수백 명도 부를 수 있지만, 두어 명만 더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제 시대에 주님은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선지자에게 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말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어린 소년 때부터 말한 것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백성 가운데 선지자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터무니없는 말을 제게 주시며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 내가 그에게 초자연적인 표적을 주리라. 이스라엘과 세상에 초자연적인 표적을 주리라. 그들이 표적들을 원하니 내가 초자연적인 표적을 주리라. 처녀가 수태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입증된 선지자인 제가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다니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가 오늘 오후 법정에서 이렇게 증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던 거의 모든 처녀가 아기 옷을 준비했다고 말입니다. 자기가 그 아기를 낳을 여자가 될 테니까요. 자기가 그 처녀가 될 테니까요. 저마다 준비했습니다. 그중 어떤 처녀는 자기가 다음 달에 수태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처녀인 채로 말입니다.) 처녀인 채 수태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입증된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한 말은 무엇이든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녀가 수태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어린 딸들을 데리고 “우리 딸이 그 아이가 될 거야.”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이 (바리새인)… 그 처녀는 이 무리에 속할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 처녀는 이 무리에 속할 거야.” “그 처녀는 저 무리에 속할 거야.” 모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마다 자기 딸이 이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가 그렇게 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세대가 지나갔습니다. 이사야도 죽었습니다.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팔백 년 뒤에… 하나님은 그 처녀가 언제 수태할 것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수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여러분이 그것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라거나 “이때에”라거나 어떤 특정한 때, 어떤 특정한 일을 정하여 “이 처녀가 수태하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처녀가 수태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팔백 년 뒤였지만, 그 처녀가 수태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지키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 처녀가 수태할 때가 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온갖 변호 측 증인들을, 아니 변호 측 증인과 함께 다른 증인들을 불러 증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에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다음 증인이 되는 특권을 누려도 되겠습니까? 저는 모세나 그 옛날에 일어난 일, 오십 년 전의 일이나 백 년 전의 일이나 오백 년 전의 일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저는 믿으며, 오늘 다음 증인이 되어 증언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 모세의 시대도 아니고 제자들의 시대도 아니며, 루터의 시대도 아니고 오순절의 시대도 아니며, 감리교의 시대도 아닌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된 말씀에 대해 증인석에서 증언하고 싶습니다.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양해해 주십시오. 이것은 개인적인 증언이어야 하며, 반드시 진실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변호하는 분이 누구신지 저는 알고 있으며, 그분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다른 시대의 메시지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맞을 수 없습니다. 오늘을 위한 메시지여야 합니다. (십 년 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을 위한 메시지, 이 세대를 위한 메시지여야 합니다. 말씀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말씀이 약속하셨다면 그것을 입증하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전통 아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이 나에 대하여 증언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세의 제자라면 나를 믿을 것이다. 모세가 나에 대하여 기록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살펴보아라.” 그 전통에 사로잡혀 눈먼 사람들… 그래도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고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손가락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다면 그들은 돌에 맞아 죽었을 테니까요.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 때문에 선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대대로 그렇게 길러졌습니다. 아들들과 손자들과 증손자들 모두 제사장, 레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훈련을 받고, 신학교와 성경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그 사람들이 눈이 너무 멀어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다시 그 상태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 성경에서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자, 개인적인 간증으로… 때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너무 굳게 짜 맞추고, 이것이 신조이며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너무 완고하게 고집한 나머지 백만 마일이나 빗나가 버립니다. 우리도 똑같이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우리가 그렇게 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개인적인 일인데, 이 때문에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법정의 증인석에 서 있기 때문에 하는 말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시간에 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겪는 이 지진들과 이런 일들, 이 달이… 이 위쪽 천문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달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달 안쪽에서 피처럼 보이는 것이 분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오시기 전 그 날들에 달이 피로 변하고 온 땅에 지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의 형편이 지금과 정확히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정의 여러분, 오늘 오후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분이 지금 당장 오시는 것을 막을 만한 것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시간이 있다면 입증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름들과 위치까지도 그분이 오실 때 있어야 할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놓여 있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입니까? 저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위를 바라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고국에 돌아와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이 오시기에 정확히 맞게 놓여 있습니다.
제가 어린 아기였을 때입니다… 저희 집안은 물론 아일랜드계였으므로 전에는 아마 가톨릭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회에 전혀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켄터키주 산속의 작은 집에서, 1909년 4월 6일 아침이었습니다. 창문도 없는 낡고 작은 집이었고, (빛을 들이기 위한 작은 문 같은 것만 있었습니다.) 그때 주 예수님께서 제가 이 땅에 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첫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열다섯 살, 아버지는 열여덟 살이셨습니다.) 작은 짚 요 위에서… 여기 계신 분들은 짚 요가 무엇인지 아마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짚 요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켄터키 어느 지방 출신이십니까? 아시겠죠? 짚 요, 옥수수 껍질로 속을 채운 베개가 있는 작은 짚 요 위에서… 방 안에는 작은 침대가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작은 방 하나와 작은 부엌이 있었고, 대략… 모두 합쳐도 이십 피트가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닥도 전혀 깔려 있지 않은 작고 낡은 통나무집이었으며, 나무 그루터기로 만든 탁자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방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가 이 땅에 오도록 허락하셨을 때… 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부모님의 증언으로만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기 있는 것 같은 등불이 없었고, 등유 램프조차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름 등잔이 무엇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돼지기름을 통에 넣고 작은 플란넬 천 조각을 넣은 뒤 불을 붙이면 타오릅니다. 그 이른 아침에는 빛이 충분하지 않아 어머니가 제가 어떤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쪽으로 난 그 작은 창문을 열었습니다. 아침 다섯 시, 날이 밝아 오자 밖의 덤불에 울새들이 앉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자 불기둥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작은 침대 위에 머물렀습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거기에는 산파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없었고 산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약 이 주 뒤, 저는 포섬 킹덤이라는 작은 침례교회에 안겨 갔고, 한 목사님이 저를 품에 안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산골 사람들은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목사님께 어쩌면 어머니의 정신이 혼미했거나 그저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삼 년 뒤 우리는 인디애나로 왔고 아버지는 일자리를 얻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기수로서 목장주들과 농부들 등의 말을 길들이셨습니다. 유티카 파이크에 사는 O. H. 웨이든이라는 부자의 해크니 조랑말들을 길들이려고 그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는 커널스와 R. E. 웨이든 증류소, 그리고 루이빌에 있는 그 모든 것의 큰 소유주였습니다. O. H.와 R. E. 말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위해 승마용 말들을 길들이셨습니다. 그러다가 다치셔서 그 사람의 전속 운전사가 되셨습니다.
일곱 살쯤 되었을 때 저는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구월 오후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저는 증인석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순수한 아일랜드인이셨고 철저한 켄터키 사람이셔서 직접 술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가진 작은 증류기로 물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연못 뒤쪽으로 낚시를 하러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말들이 있는 헛간에서 시내 한 블록쯤 되는 거리로 물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쓸 증류기의 냉각관을 식히려고 물을 날라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백양나무 아래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어린 얼굴은 더러웠고 머리카락은 늘어져 있었으며, 발가락을 세게 찧지 않도록 그 밑에 옥수수 속대를 대고, 아시다시피, 그런 모습으로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다른 남자아이들은 모두 그 오래된 얼음 연못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 앉아 울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 다른 아이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 나무에 바람이 도는 듯한 소리, 회오리바람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지금 증인석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음성이 나며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네 몸을 더럽히지 말아라. 네가 더 나이가 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저는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는 계속 살아갔습니다.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언이 되고 그것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일곱 살쯤 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십칠 년 뒤 저는… 목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 침례교회의 침례교 설교자가 된 것입니다. 로이 E. 데이비스 박사가 저를 그 지역 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안수해 주었고, 그때 주정부에서 결혼식과 장례식, 침례 등을 집례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사 침례교회가 불탔습니다. 당시 저는 부목사였습니다. 데이비스 씨는 텍사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텍사스 밴혼 근처 데이비스 산악 지대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이 나온 곳이 거기였습니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저는 회중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천막을 구해서 시내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어린 설교자였습니다.)
1933년 무렵, 유월 중순, 유월 십육일이나 십팔일쯤에 저는 강에서 침례 예식을 가졌습니다. 거기에 서서… 몇 주 동안 날씨가 몹시 더웠습니다. 이삼 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그 지역이 거의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강둑에는 아마 칠팔천 명쯤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열일곱 번째 침례 지원자를 데리고 물속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침례를 주면서, 주기 시작하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물로 침례를 주는 동안, 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했을 때 무언가가 저를 건드리며 “위를 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음성이 세 번째로 말한 뒤 제가 몸을 돌려 쳐다보니, 놋쇠 같은 그 하늘에서 사방 십오 피트쯤 되는 부분이 위아래로 요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가 어린 아기였을 때 들어왔던 바로 그 빛기둥이 내려왔습니다. 그날 저 뒤 불타는 떨기나무, 아니 떨기나무에서 제게 말씀하셨던 그 빛기둥입니다. 그 떨기나무에 들어오셨던 빛기둥이 와서 그곳 위에 머물렀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던 그곳에… 신문들은 그것을 전국에, 멀리 캐나다까지 보도했습니다. 저희에게는 그 기사 스크랩이 있습니다. “설교 중인, 아니 침례를 주던 지역 침례교 목사 위에 신비한 빛이 나타나다.” 그 음성이 내려와 말씀하셨습니다. “침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비하도록 보냄을 받은 것같이, 네 메시지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할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그 음성이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이 환상들을 보기 시작했고, 그 일들은 언제나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형제들이 제게 “그건 마귀에게서 온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침례교 형제들은 “그건 마귀에게서 온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그냥 서 있는데, 어느 순간 황홀경 같은 상태나 무언가에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들을 봅니다. 저 다리가 놓이기 이십이 년 전에 그분은 그것이 얼마나 멀리 놓일지, 언제 놓일지, 몇 명이 목숨을 잃을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매번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건 마귀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느 날 밤 홀로 나가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를 죽게 해 주십시오. 제가 어떤 것도 갖지 못하게… 마귀가 저와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을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그때 이 빛이 다시 돌아와 성경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이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 성경에 그것이 놓여 있습니다. 그때로부터 삼십삼 년이 지났지만, 저는 그것이 진리라는 증인입니다. 저는 이 일들이 진리라는 증인입니다.
제가 성경에 눈먼 이 검사의 주의를 좀 끌어도 되겠습니까? (이 말이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이 검사는 성경에 눈이 멀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0절에서 예수님은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이분이 어디 계신지 알고 싶으십니까? 못 자국과 그 흔적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그런 것은 어떤 위선자라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못 자국이 아니라 성령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육체의 몸은 하나님 오른쪽에 앉아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분의 일을 계속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원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가지가 어떻게 포도나무 안에 있는 것과 다른 종류의 생명이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사도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말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포도나무가 나와서 어떻게… 오늘은 나와서 오렌지를 맺고, 또 이날은 호박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려면 그 생명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라기 3장에서 하나님은 “나는 하나님이며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그분이 오늘도 같은 분이십니다. 언제나 그러하셨고, 언제까지나 그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의를 이 점에 돌리고 싶습니다. 검사는 그분이 “나는 과거에 그러했다.” 혹은 “나는 앞으로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여러분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분은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검사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으로 가서 (여기 마가복음 16장에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아직 다 이르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이런 표적들이 세상 끝까지 그들을 따르리라.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또한 여러분이 이것을 알기 원합니다. 왕국의 열쇠들을 가졌던 베드로가 오순절 날,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사도 시대가 언제 끝났습니까? 여기에 명령이 있습니다. 온 세상에, 모든 창조물에게,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법정의 여러분이 이해하기 원합니다.
또한 여러분이 알기 원합니다. 사람들에게 해석해 주는 이 눈먼 해석자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여기 마가복음 17장 30절에서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돌아가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인용하는 바로 그 창세기를 인용하고 계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이제 돌아가서 소돔의 날들이 어떠했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지금 무엇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소돔의 날들에 아브라함은 하나의 모형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으로써 아브라함의 씨가 되며, 약속에 따라 그와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오늘 오후 이 법정에 계신 여러분 누구나 그것을 아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온갖 표적을 받았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께서 빛의 모습으로 희생물들 사이를 지나가신 것부터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음성으로도 받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소돔의 산들에서 이방인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에 받은 마지막 표적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법정의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세 사자가 그에게 왔습니다. 세 사자입니다. 그는 그들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중 둘, 현대의 오럴 로버츠와 빌리 그래함에 해당하는 이들은 소돔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고, 그들의 복음으로 그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남아 앉아 계셨던 이분은 송아지 고기를 잡수시고 암소의 젖을 마시며 빵을 잡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분의 발을 씻어 드렸고, 그분은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이름이 아브람이었는데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래도 사라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네 아내 사라 (S-a-r-a-h)가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 (A-b-r-a-h-a-m),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그는 “주님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라는 오늘날 여자들처럼 꼭 모습을 드러내려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분 뒤의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때에 맞추어 내가 너를 방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마음속으로 의심하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부부 관계가 끊긴 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 세였고 사라는 구십 세였습니다. ‘내가 내 주와 즐거움을 누리겠느냐? 저 밖에 있는 내 주도 늙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막을 등지고 계셨던 이분이 “어찌하여 사라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고 하며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엘로힘이 무슨 뜻인지 아는 분 계십니까? 모든 것이 충족하신 분,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분을 그렇게 불렀습니까? 그분이 말씀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을 분별하는 그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들 안에 있던 말씀은 언제나 앞일을 예고하고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을 선지자로 확인해 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자기가 오시기 전에 세상이 그와 같은 상태가 되며, 다시 그 표적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누가복음 17장에서 그분은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때 말입니다.
일 분만 더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법정의 여러분, 여기서 잠깐 한 가지를 밝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증인이니 이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여기서 눈여겨보셨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때”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이렇게 세 칭호로 오셨습니다. 모두 같은 한 분이십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같습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세 속성입니다. 저도 세 사람인 것과 같습니다. 제 아내에게는 남편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제 딸에게는 아빠입니다. 저기 앉아 있는 손자에게는 할아버지입니다. 제 아내는 저에게 남편으로서만 권리를 갖습니다. 여기 있는 제 딸은 저를 “남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제 손자는 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를 아빠로 삼을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제 손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같은 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분이… 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위에 불기둥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오실 때…
“사람의 아들”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에스겔 2장을 보시면 나옵니다. 에스겔 2장 1절입니다. 여호와 자신이 선지자 에스겔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모든 선지자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까? 선지자가 그분이 오시리라고 말한 그 방식으로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18장 15절에서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씨에게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드러내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마귀의 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왕가의 씨도 그렇게 했습니다. 거칠게 들리겠지만… 바로잡기 위한 말이며, 사랑입니다. 오늘날 왕가의 씨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것을 정신적인 텔레파시나 어떤 마귀라고 부르려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에스겔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 모세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 다윗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였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법정의 여러분,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은 선지자에게 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율법에 여러분의… 주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신들이라고 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신들임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곧 선지자들이 신들이므로 너희가 그들을 그렇게 부르고 너희의 주로 인정할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고 어찌 나를 정죄하느냐?” 그분은 그 시간에 입증된 말씀이셨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이 충만하게 계셨지만, 그래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신조와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법정의 여러분,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잘 보십시오. 조금만 더 나아가 봅시다.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 그들은 그분을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듯이 억지로 그분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눈먼 바디매오가 그분을 따라 달려가며 “다윗의 아들이여,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했을 때는 구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 (그리스 사람, 이방인)이 그분을 따라 달려가며 “다윗의 아들이여.”라고 했을 때는, 그분이 고개도 들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그분을 다윗의 아들로서 부를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그 여인에게 다윗의 아들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혹은 “주여.”,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불렀을 때, 구한 것을 얻었습니다. 보십시오. 이방인에게는 그분을 다윗의 아들로서 부를 권리가 없습니다. 그분은 왕이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에서 그분이 그러하시리라고 말한 대로,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는, 아닙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분은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으므로 그분이 선지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그 여인에게 남편이 몇 명 있었는지 말씀하셨을 때 (그 여인이 그런 상태에 있었지만), 그 여인은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시니이다. 이제 저는 압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지만, 그분이 오시면 이런 표적을 행하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말씀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간증으로 온 도시가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다윗의 아들로서 그분은 유대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은 선지자입니다. 아시겠죠? 다윗의 아들은 왕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인정했으나 선지자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시대에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나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맞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 초자연적인 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선지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교회 시대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멸망한 사람입니다. 교회 시대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제 말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일곱째 교회 시대, 곧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입니다… 지금이 라오디게아 시대라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분, 곧 말씀이 교회에서 쫓겨나셨습니다. 맞습니까? 교회에서 쫓겨나 밖에서 다시 들어가려고 하셨습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그런데 여러분은 “나는 부자라.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며…”라고 말합니다. “네가 비참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으며 가련한데도 그것을 모르느냐?” 그분, 말씀은 밖에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전통 때문입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오순절의 전통이 말씀을 거부했으며, 말씀은 어디에서도 협력을 얻지 못합니다. 모두 말씀에 “손대지 않으려” 하며 그것을 악한 영이라고 부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가 오기 전,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다시 자신을 드러내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십니까? 그것이 말라기 4장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다른 모든 약속을 성취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브라함이 받은 마지막 표적, 그는 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받을 마지막 표적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롯의 날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조금 깊이 들어가는 말씀을 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여러분 신학자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성경과 성경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은 이번 주 제게 자신이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여러분은… 사도 시대는 끝났으며, 교회의 모든 역사를 안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주의를 이 점에 돌리고 싶습니다.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옳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형편은 정확히 그때에 와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처럼 소돔과 같은 상태에 놓인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주 플로리다에서, 플로리다주에서 학교 교사들의 육십몇 퍼센트가 동성애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작년보다 사십몇 퍼센트가 늘었습니다. 동성애 말입니다. 학교와 신학교, 모든 곳에 그것이 가득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소돔의 날들과 정확히 같은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이 나라와 세상을 그 죄 때문에 벌하지 않으신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일으켜 그들을 불태운 일을 사과하셔야 할 도덕적 의무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을 보십시오. 법정의 여러분,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날 날들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교회 시대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분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은 사람의 아들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때”입니다. 그때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 선지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말라기 4장에는 음성을 가지고 나올 선견자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 사자를 보내리라.”라는 말라기 3장이 아닙니다. 말라기 4장입니다. 이 둘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혼동하면 놓치게 됩니다. 말라기 4장은 “내가 내 앞에 내 사자를 보내리라.”라는 말라기 3장이 아닙니다. 말라기 4장에서는 이 사자가 올 때 세상이 불타고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악한 자들은 불에 타 재가 되고, 의로운 자들은 그들의 재 위로 걸어 나옵니다. 요한의 날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말라기 4장입니다. 보십시오. 표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표적은 성경적인 표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있던 불기둥이셨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거기에 서서 “당신은 쉰 살도 안 된 사람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실제 나이보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셨을지도 모릅니다. 사역의 짐이 무거웠습니다. 성경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아마 몸집이 아주 작은 분이셨을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쉰 살도 안 되었다고 말하는데…? 아니, 당신은 쉰 살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는 거요?” 그분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다. 내가 광야에 있던 그 불기둥이었다.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처녀를 덮으시고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으며, 그것을 통해 그분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안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로 간다.” 그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 이후,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그 빛, 그 불기둥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 유대인이 무슨 환영 같은 것을 보고 “주님”이라고 부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올려다보아 그 불기둥을 보았을 때, 자기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따랐던 것이 바로 그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모세의 떨기나무에서 말씀하신 음성이 성경에 맞는 음성이었고 모세가 그것을 굳게 지켰던 것처럼, 제가 일곱 살이었을 때 떨기나무에서 말씀하신 음성도 성경에 맞는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굳게 서서 그것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듯이, 저도 이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압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셔야 합니다. 말씀에 나온 바로 그대로입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입니다. 아시겠죠? 사람의 아들,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교회 시대의 날들이 지난 뒤 그분이 쫓겨나셨을 때는 다시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그의 왕가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의 왕가의 씨라는 것을 인정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던 일을 지금도 똑같이 행하고 계심을 아시겠습니까?
이 말을 양해해 주십시오. 역사를 그렇게 잘 안다고 하는 여러분, 교회 역사 가운데 지금까지 언제 이름 끝이 h-a-m으로 끝나는 지도자가 여러분에게 갔는지 말해 보십시오. 저기 여러분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장로교인들, 루터교인들, 여러분이 무엇이든, 그런 사람이 언제 여러분에게 보냄을 받았습니까? G-r-a-h-a-m, 그래함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생키, 무디, 피니, 녹스, 칼뱅이 있었지만, 아브라함처럼 h-a-m으로 끝나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G-r-a-h-a-m은 여섯 글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A-b-r-a-h-a-m은 일곱 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완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의 날들에 계셨던 이분… 아브라함은 그의…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소돔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소돔에서 나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방문한 사자는 소돔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돔으로 내려간 이들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이분이 선택받은 교회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 보십시오. 예수님은 마지막 날들에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으로 자신을 드러내실 때, 말씀이 마음속 비밀을 아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나온 대로, 그것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강력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합니다. 모든 선지자가 행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렇게 행하시고 바알세붑이라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들에 여기서 다시 거부당하십니다. 그 눈먼 해석자가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시대를 위해 예언된 이 성경 구절들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가 깨닫기나 할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이때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비록 지체되더라도, 이 모든 일들과 이 교회 시대들이 지나가며, 우리가 그런 일을 경험한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것은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성령이십니다.) 오순절교회와 그동안 이어져 온 교회들에 침례를 주셨으며, 그분이 행하셨던 것처럼 표적들과 이적들과 기적들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환상들과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육신으로 나타나 마음속 생각을 밝혀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소돔이 불타고 약속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본 시대였습니다. 성경을 해석한다는 그 눈먼 해석자가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법정의 여러분이 그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지체되어도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증인들은 증언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분명히 참된 증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여러분이 안수하자마자 반드시… 절던 다리가 펴지고, 여러분이 펄쩍펄쩍 뛰어야 한다고 믿게 하려 합니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언제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기도할 때 그것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정말 참된 신자라면, 이 성경 말씀들이 우리에게 전해졌을 때 무엇도 우리에게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무엇도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일어나고, 아무리 많은 무신앙자와 불신자가 일어나며, 아무리 많은 이들이 이것저것을 설명한다 해도,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지키십니다. 마가복음 16장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똑같이 영감을 받은 말씀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영감을 받았습니다. 쓰인 그대로 읽기만 하면, 그 전부가 하나님입니다. 저는 교회가 이 시대에 마땅히 주목해야 할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여, 여러분이 무엇을 마귀라고 부르기 전에 이것을 깨닫게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있으리라고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을 거스르는 말 한 마디는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령 자신이 나타나 똑같은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제 앞에 앉아 있는 한 자매님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장로교인이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제 집에 오셨습니다. 수요일까지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암이었습니다. 방에 앉아 있다가 제 친구 옆에 앉아 계신 그분이 우연히 눈에 띄었습니다. 그 도시의 의사들은 그분이 수요일까지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 의사들은 어찌 된 일인지 몰라 합니다. 그분은 오늘 저녁 이렇게 건강하고 좋은 모습으로 여기 앉아 계시며,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그것이 감사하시지요, 자매님? 맞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 바로 여기에 앉아 계십니다. 보십시오. 몇 달 전쯤에는 죽어 가고 있었고, 수요일까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의사들이 생각하며 놀라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여전히 참됩니다.
여기 이 성경 구절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말씀하실 때…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으신다면 말입니다. 이런 표적들이 믿는 사람을 따를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분은 언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참된 신자라면 그 무엇도 여러분을 그 말씀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증언을 들으십시오. 다른 이들의 증언도 들으십시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사람들을 몇백 명이나 불러서 여러분께 보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말씀을 믿고, 거기에 굳게 서서 그것이 이루어질 줄 마음속으로 안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말씀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자매님이… 조금 전에 누군가 제게 말했습니다. (실례합니다.) 조금 전에 저 밖에서 식사를 받으러 줄을 지나오는데, 누군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 이 자매님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에 이분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해 주셨지요? 몇 년 전에 이분이 암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누군가 제게 그분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여기 어딘가 앉아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식사 줄을 지나오던 자매님이었습니다. 어떤 남자분, 머리가 희끗한 형제님이 그분을 가리키며 암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살아 계십니다. 그 자매님이 지금 이 건물 안에 계십니까? 조금 전에는 식당에 계셨습니다. 예. 저 뒤에 월드롭 부인이 계십니다. 십오 년 전, 십칠 년 전에 죽은 상태로 줄에 서 계셨던 분입니다. 그분의 의사가 엑스레이를 가지고 함께 있었는데, 암이 그분의 심장을 다 먹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였습니다. 비평가들은 일어나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십시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증인입니다. 그때의 그분이 오늘도 같은 분이십니다. “나는 과거에 그러했다.”, “나는 앞으로 그러할 것이다.”가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 계십니다. (현재 시제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은 같으며,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법정에 말씀드리기 전에, 여러분은 배심원입니다. 사건을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증인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검사가 다른 증인들을 아무리 많이 불러도, 이 말씀들은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합니다. 그는 성경을 잘못 해석합니다. 이 말씀들이 참되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 보십시오. 이 조각조각 이어진 짧은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속으로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배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여러분의 평결을 입증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부터 어떻게 사느냐가 여러분의 평결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만일 나가서 “나는 들어올 때와 똑같이 아픕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오늘 오후 이 법정에서 어떤 평결을 내렸는지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저는 그분이 공정한 재판을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말씀으로서 이 법정에 서셨습니다. 말씀으로 입증되셨고, 말씀으로 확인되셨습니다. 제가 오늘 밤 죽는다 해도, 제가 한 말들은 진실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압니다. 과학계도 그것을 압니다. 그 동일한 불기둥, 그 동일한 주님의 천사… 그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은 워싱턴 D.C.에 걸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입니다. 제가 오늘 밤 죽어서 여러분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제가 한 말은 진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이 진실임을 증언하셨습니다. 여기 성경이 그것이 지금 있을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원하신다면 그것을 마귀라고 부르십시오.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이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약속하신 대로 자신이 누구신지 알리고 계십니다. 여기 이 마지막 날들에, 사람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 가운데 자기 백성의 모습으로 자신을 알리시는 것에 대해 그분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다윗의 아들도 아닌 사람의 아들로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초자연적인 분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는 음성들을 보았고, 일들을 들었으며, 빛들을 보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아들이 오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입은 한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셨고, 자기 뒤 방에 있던 사라의 마음속 생각들을 읽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 그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주 좋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아들이 올 때에도…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때가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나타나시는 분은 사람의 아들이지, 교회 시대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분은 거기서 쫓겨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시는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고 있습니다. 오, 여러분! 법정의 여러분, 결정을 내리기 전에 눈을 뜨십시오. 결정을 내리고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이것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정당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정당합니다. 저는 그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옳으심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십니다. 그분께는 “이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하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분 자신이 해석자이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러면 손을 들어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여기 계신 모든 신자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분은 앉아 계십시오. 믿는 분은 일어서십시오.
이 법정이 폐정하기 전에, 저는 이 법정이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배심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것들을 자기 말씀에 넣으신 것은 정당하다는 평결에 이르렀습니다. 말씀의 빛 안에서 바르게 해석하면, 그것은 진리입니다. 법정의 여러분, 그것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서 “저는 그것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리임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이제 얼마나 많은 분이…? 손을 내려 주시고, “저는 형제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틀림없는 진리임을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탁자 너머로 손을 뻗어 다른 신자에게 얹으십시오. 탁자를 가로질러 손을 뻗어 다른 신자에게 얹으십시오. 우리는 믿는 사람들입니까?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법정의 여러분,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아멘. 제 평결이 내려졌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렇습니까? “아멘.”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입니까? “아멘.” 마가복음 16장이 참되다는 것입니까? “아멘.” 그러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은 반드시 낫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여러분의 교회에서 기도하듯이, 여러분이 손을 얹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 시간 이후 여러분의 행동이 여러분의 참된 평결을 입증할 것입니다. 이제 모두 머리를 숙이십시오. 여러분이 손을 얹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시여, 다시 주님 앞에 이 사실을 아룁니다. 이 남자들과 여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사람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일어서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교육이 발달한 이 위대한 시대, 윤리와 모든 교육 제도가 발전하는 이 위대한 시대에도, 그 모든 것 가운데 주님의 말씀은 여전히 똑같이 참됩니다. 주님, 저희는 오늘 오후 이 법정에 증인들을 불러 주님께 공정한 재판을 받으시게 했습니다. 허울뿐인 재판이 아니고, 헤롯이나 다른 이들이 주님께 행했던 것과 같은 조롱의 재판도 아닙니다. 여기서 저희는 주님을 공정하게 재판하며 입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은 이렇게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1964년,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에도 주님은 언제나 그러셨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이시다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들은 믿는 사람들로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이…
저는 진행자이고 이 사람들은 배심원이자 판사로서, 주님, 서로의 손을 향해 움직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여 이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이제부터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평결을 분명히 입증할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다시는 아무도 이 병이나 지금 자기를 괴롭히는 어떤 것 때문에 아프다고 불평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게 하옵소서. 때로 그분은 지체하십니다. 노아의 날들에 그러하셨고, 모세의 날들에 그러하셨으며, 모든 시대에 그러하셨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시로 올라가라. 이십사 시간 안에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거기서 머물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루, 이틀, 열흘”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권능을 입을 때까지 머물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그들은 증거가 그들을 통해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임을 말해 줄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이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오늘 오후 이 법정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가 읽은 그분의 말씀 앞에서… 저희는 그분이 자기 말씀을 지키심을 믿는다고 증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이 시간부터 믿는 여러분 모두, 믿는 사람으로 일어선 신자가 있고 여러분도 믿는 사람으로서, 오늘 오후 이 법정 앞에서 그분이 의로우시며 자기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증언하고 증거하신 여러분… 아무리 오래 지체되어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받아들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믿지 않았던 분,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이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여기 이곳으로, 이 법정 앞으로 걸어 나와 고백할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저는 평생 의심하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저는 성경이 말씀한 것을 압니다. 그 날들에… 요나가 고래 배 속에서 밤낮으로 사흘을 지냈던 그 날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그분께 ‘우리에게 표적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 소돔의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받을 것이다. 표적을 받을 것이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의 심장부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읽은 이 제자들은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을 때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참됨을 압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요나의 날들과 같은 날들에 살고 있습니다. 그때 도시들은 악으로 뒤틀렸고, 요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온 사람처럼 고래 배 속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며, 교회 시대를 거쳐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알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날들에 자신을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 사람의 아들로 드러내시겠다는 약속을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머리를 숙인 채 조용하고 경건하게 찬송 한 절을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하신다면, 이 악한 시대에, 노아의 날들과 같고 소돔의 날들과 같은 이 시대에, 오늘 저녁 멸시받는 주님의 소수와 함께 서기 원하신다면,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모두 기도하며 찬송하는 동안 앞으로 나오십시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제 머리를 계속 숙이고, 가락을 흥얼거립시다.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흔들어 깨울 수 있겠습니까? 그 약속을 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오늘 이 땅에, 여기 계시며, 그것을 알리시고 입증하고 계십니다. 여기 그분의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내 구원을 사셨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미 그리스도인이지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살고 싶은 분은, 머리를 숙인 채 다시 찬송하는 동안 손을 듭시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기 원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다는 이 말이 진리임을 여러분은 믿습니다. 주를 사랑해…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놓치지 마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주를 사랑해.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부르십시오. 이제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분은 말씀, 이 시대를 위한 말씀이십니다.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그리고 사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