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자, 모인 사람이 많지 않은 동안에는 서둘러 마치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가 일하는 목적은 이 한 가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여기 계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분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확증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그 말씀을 확증하실 것을 입증하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는 어젯밤 그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날이면 날마다, 해마다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예고하셨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 일어날 일이든, 수천 번 가운데 단 한 번도 정확하게, 제때에,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그것을 알고, 이 사역을 알고, 그것이 사실임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보십시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보고 붙들기만 한다면!
이제 우리가 여기 있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흘 밤 더, 아니, 오늘 밤이 지나면 두 번의 저녁 집회와 한 번의 낮 집회가 남은 것 같습니다. 일요일 오후 집회가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요일 오후에 마치려고 합니다. 그래야 목사님들과 모든 분들이... 여러분이 다니시는 교회에 못 가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교회에 사람들을 더하고, 여러분이 교회에서 섬기시는 하나님을 더욱 믿으시게 하는 것뿐입니다. 교회 문이 닫히기를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곳에 계속 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을 돕고 격려하려는 것입니다. 부흥은 교회에 사람을 더하는 것조차 뜻하지 않습니다. 부흥은 여러분이 이미 가진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한번은 바닷가에서 바람이 불어 물을 마구 뒤흔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바닷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 위 미시간호였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었습니다. 바다 전체가, 아니, 물이 출렁이고 배들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 호수에 부흥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렇구나. 출렁이고 흔들리는구나. 급하고 강한 바람이 그 위로 불어 내려오고 있구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 이 호수에 있는 물은 완전히 잔잔했을 때보다 한 방울도 늘어나지 않았어. 물이 더 많아진 게 아니야. 그저 온통 휘저어지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휘저어지는 걸까?’ 물이 휘저어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물속의 쓰레기를 모두 씻어 물가로 밀어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불신을 씻어 물가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으뜸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부흥입니다! 모든 불신을 씻어 내고, 벌레들과 미신과 그런 것들을 모두 몰아내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부흥 집회를 여는 것입니다.
오늘 밤 이 본문을 택하여 읽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2장 38절부터 42절까지의 말씀을 읽는 데 주님께서 복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제 설교 제목은 ‘알아보지 못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어젯밤에는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에 관하여 말씀드렸고,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지금 사람들은 그분의 임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읽겠습니다.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의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에게서 나오는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였으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내가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알아보지 못한 임재.’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이 오실 때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이곳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선지자들의 담과 무덤을 회칠하고 꾸미는구나. 그들을 그 안에 넣은 자들이 바로 너희니라.”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 지나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감추시고,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는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람들 곁을 지나가도 사람들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밤 여기 계신 가톨릭 신자 여러분. 몇 해 전 프랑스의 잔 다르크를 기억하십니까? 그 젊은 여자는... 사실 그 여자는 프랑스에서 혁명을 이끌었지만, 참으로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을 했습니까? 환상을 보고 영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마녀라 하여 화형에 처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여자가 영적이고 환상을 보았기 때문에 마녀라 하여 화형에 처했습니다. 몇 해 뒤에 그들은 그 여자가 성도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론 대단한 보속을 행했습니다. 그 여자를 정죄하고 불태웠던 신부들의 시신을 파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물론 그것은... 여러분은 그 일에 대해 대단한 보속을 했습니다. 그 신부들의 시신을 파냄으로써 말입니다.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은 똑같이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와서 사역을 마치고 그 가운데서 택함 받은 자들을 불러낸 뒤에야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야 자기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 일들을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그분이 오셨을 때를 보십시오. 당시 세상 사람 가운데 약 90분의 1만이 그분이 이 땅에 계시다는 사실조차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세상의 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야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습니다. (교회도, 다른 사람들도 거의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분이 묻히시고 셋째 날에 부활하신 뒤에야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것이 왔다가 가 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지나간 뒤에야 알아봅니다. 그들은... 그것이 결코 자기들의 신학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그들이 사는 시대의 틀에 맞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언제나 다른 시대의 남은 빛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율법의 남은 빛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은 율법에 어긋나게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메시지가 자기들이 신조로 정리해 놓은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전통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전통에 따라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은 그것을 뒤엎고 부수셨으며, 그 전통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이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계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메시지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그분이 하나님의 예언에 정확히 맞게 오셨음을 압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도 우리는 모를 수 있습니다. 오늘 밤 그분이 실제로 나타나신다면, 우리가 도표와 학교 등에서 모두 헤아려 놓은 것과 너무 달라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볼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이 어떻게 오실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기록에 따라 그토록 성경적으로 입증되셨는데도, 그 시대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못 알아보았습니까? 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그분은 성경기록과 정확히 일치하게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메시아가 오시면 모세가 한 일이나 노아가 한 일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자기들을 위해 방주를 짓거나 다른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오신 이유는... 그들은 자기들의 전통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성경기록에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몹시 혼란스러워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전통으로 배운 것과 다를 수 있을까요? 그것이 와서 어떤 일이 우리 가운데를 지나가도, 이미 지나간 뒤에야 우리가 알게 되고, 그때는 다 끝나 버릴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올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이 나타났을 때, 그 일은 이미 이사야서 때부터 수백 년 동안 예고되어 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 생각에는 이사야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약 8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요한이 이사야가 말한 그대로 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는 말라기가 말한 그대로 왔지만 사도들조차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마태복음 11장에서) 요한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그의 제자들 몇 사람이 예수님께 가서 그분이 오실 그분이신지,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요한이 감옥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어떻게 품행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관한 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곁에 머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아라. 그리고 너희가 본 일들을 요한에게 가서 알려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바로 그 말씀이심을 보여 주는 증거였습니다.
자, 기억하십시오. 말씀은 언제나 선지자에게 옵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들에게 보여 주시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담은 이 책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이 책입니다. 그분은 이 책을 확증하고, 드러내고, 인들을 여는 등의 일을 할 누군가를 보내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더 이상의 계시에 관한 한, 그것은 이미 바로 여기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분은 이것의, 이 계시의 충만함이십니다. 자, 보십시오. 말씀은 예외 없이 선지자에게 옵니다.
물속에 서서 그 선지자를 예고하며, 메시아가 바로 그때 그들 가운데 계시다고 말하는 요한을 보십시오. 그는 “지금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서 계시느니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바로 그들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걸어 내려오셨을 때 요한은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고 말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누구든 그분을 알아보기 전에 그분은 선지자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고, 요한은 선지자였습니다.
예전에 제 침례교 선생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나?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주셨네.”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그렇다니까. 요한은 침례를 받은 적이 없었네. 그는 침례를 전파하며 왔지. 아무도 그에게 침례를 줄 자격이 없었어. 예수님이 그에게 침례를 주셨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을 공부하는 중에 성령께서 이렇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요한은 “어찌하여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라. (보십시오.) 이렇게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마땅하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선지자이므로 말씀을 알았습니다. 희생물이신 그분은 드려지기 전에 씻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셨기 때문에 요한이 그분께 침례를 주었습니다. 말씀이 물속에 있는 선지자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이 침례를 받으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본 것은 아닙니다. 요한이 보았습니다. 오늘 밤 주의 천사가 바로 여기 계셔도 한 사람만 보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따라갔던 그 빛, 그 별은 모든 천문대 위를 지나갔지만, 어떤 천문대도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 박사들 말고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보도록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실제였습니다. 그 빛, 불기둥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쳐서 쓰러뜨렸을 때,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히브리인은 다른 어떤 영에게도 “주”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그것이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이끌어 낸 바로 그 불기둥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분은 “나는 예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있던 그 불이셨으며, 광야에서 모세를 인도하셨고,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서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불기둥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실제여서 눈이 멀어 버렸고, 다마스쿠스의 곧음이라 하는 거리까지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가야 했습니다. 그는 눈이 멀었습니다. 그곳의 선지자 아나니야가 환상으로 보고 그에게 가서 안수했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받았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실제여서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알아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밤도 그렇습니다. 바로 거기 앉아 있는 누군가는 하나님을 알아봄으로써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시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성경에서 그분이 행하실 것이라고 한 표적을 온전히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에 그들이 따르던 전통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셔서 모세가 했던 일을 하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처녀에게서 태어나 오실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리고 신명기 18장 15절에 따르면 그분은 선지자가 되실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그 일들과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결코 지적인 연설에 의존하지 않도록 배웠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적인 연설에 의존하도록 가르친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적인 연설이 아니라 표적에 의지했습니다.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한번은 이 사람들이 “랍비여 (또는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분은 이미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셨는데, 그들은 다른 종류의 표적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시대의 표적만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일은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바로 이 시대에 그분이 나타나신다는 표적입니다. 그들은 표적을 원했습니다. 그분은 성경에 나오는 표적을 주셨지만, 그들은 다른 표적을 원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휴거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때의 슬픔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아니, 요한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지 아닌지 알아보도록 제자들을 보낸 대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시간에 그분은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이 본 것을 요한에게 전하려고 그분이 제자들에게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은 거기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광야에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요한이 전파할 때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흰옷이나 그런 것, 아니,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고 나갔느냐?”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왕들의 집에 있느니라.” 그들은 죽은 자를 장사 지내고, 아기들에게 입 맞추고, 젊은이들의 결혼식을 치러 주는 등의 일을 합니다. 그들은 두 손으로 휘두르는 칼을 다룰 줄 모릅니다. 그분은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어떤 바람에든 흔들리는 갈대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돈을 조금 더 주겠다고 하면,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대신 그쪽으로 가 버리는 사람이겠습니까?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이것을 부인하고 이것을 받아들이면 돈을 더 주겠소.” 하고 그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겠습니까?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선지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너희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선지자가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길을 예비하리라.’ 하고 말한 이가 바로 그니라.” 그 말씀을 하신 곳이 말라기 3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이미 왔으나 너희가 그를 알지 못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침례자 요한을 가리키신 줄 알았습니다. 택함 받은 그 사도들조차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그 엘리야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주님은 은밀하게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분은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을 터인데 내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남겨 두리라. (그곳은 밤인 곳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인데 내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남겨 두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지상에서 사라지는데 아무도 그 행방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어느 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금 우리에게 환난 같은 것이 닥쳤다는 말입니까? 교회는 환난 전에 떠나는 줄 알았는데요.” 그들은 자기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휴거가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은밀히 떠나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계속 설교하고, 자신들이 구원받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고, 교회에 사람을 더하고, 교회를 지으며, 노아의 시대에 하던 것처럼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휴거는 이미 지나갔는데도 그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는데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니라.” 수백 명의 사람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릅니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는데, 그 후로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합니다. 그것이 휴거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가 교인이라거나 그런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갑옷을 단단히 여미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받아들여 굳게 붙들고, 이 주변에서 할리우드식으로 행동하는 짓을 그만두십시오. 그것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왔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빛을 냅니다. 아주 환한 빛을 낼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할리우드에 견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할리우드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개인 안에 계십니다. 할리우드는 (빛납니다), 할리우드는 눈부신 빛을 내지만 복음은 겸손으로 빛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이런 크고 근사하고 화려한 장소들과 온갖 것들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겸손하게, 온유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대로 지나가시지만, 여러분이 말씀을 잘 안다면 알아볼 것입니다. “들을 눈 있는 자는 영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아시겠죠? 자. 오늘날, 입증된 것은...
그분은 그 시대의 믿는 자들, 그 일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십시오. 나다나엘을 보십시오. 그의 생각에는 아무 의문도 없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자를 보십시오. 아무 의문도... 그런데 오늘 밤 우리의 본문에 나오는 이 바리새인들은 며칠 전에 그분이 그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을 바알세붑,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그 일들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 회중에게 대답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이라고 부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알세붑은 점쟁이나 그와 비슷한 마귀였고, 점치는 일이 마귀에게 속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들은 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마음의 은밀한 것들을 아시는 말씀이셨고, 이 시대에 우리를 위해 일으킴을 받으실 그 선지자, 구속자이신 선지자이심을 입증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하셨을 때 그 시대의 교회는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너희는 눈먼 자들이 되어 눈먼 자들을 인도하는구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들어오려 하지도 않고, 자기들 아래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려는 일은 진리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동일하십니까? 이루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려고 여기 계십니까? 성경기록을 탐구하여 오늘날 그분이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 알아보십시오. 바로 그 때문에 (존 웨슬리), 아니, 마르틴 루터는 웨슬리의 메시지와 함께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까지만 갈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가톨릭교회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에게 그는 괴짜였지만, 의롭게 됨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뒤 그들은 루터교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전부 고인 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경기록에 따르면 또 하나의 교회 시대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것이 일어났을 때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 곧 존 웨슬리가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줄곧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교회 시대가 있었고, 존 웨슬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미 의롭게 됨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웨슬리파가 그렇게 조직을 만들고 작은 분파들이 갈라져 나갔을 때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은사들의 회복이라는 오순절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미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은 오순절 사람들마저 그토록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십시오. 이 시대를 위해 무엇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더 나아왔습니다. 불기둥이 움직이면 이스라엘 자손도 불기둥과 함께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게을러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너무 세속적이고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텔레비전과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 같은 낡은 것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런 것들이 잘못이라고 말해 주면, 그들은 여러분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 제가 아는 가장 큰 즐거움은... 제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깨닫고 알아볼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교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기쁨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임재,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서 계신 것을 보고,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의 말씀을 보고, 그 말씀이 입증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고, 눈먼 사람이 보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말 못 하는 사람이 말하게 할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제가 남아프리카 더반의 경마장에 섰을 때 약 20만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아주 부드럽게 조금 설명해 준 뒤, 그들은 그런 일이 한 번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일이 하나 일어나는 것을 보고 2만 5천 명이 한꺼번에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그들은 트럭 일곱 대, 저런 바퀴 여섯 개짜리나 열여덟 개짜리 트럭만큼 긴 차들에 낡은 목발 같은 것들을 가득 실었습니다. 오른손과 왼손조차 구별하지 못하던 이교도들이었습니다! 그다음 날 더반 시장인 시드니 스미스 씨가 제게 전화하여 말했습니다. “인도양 쪽으로 난 창가로 가 보십시오.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을 보실 겁니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짐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 일곱 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수백 명의 사람이 걸어왔습니다. 전날까지 들것과 간이침대와 운반용 침상에 실려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네.” 하고 노래했습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서로 전쟁을, 부족 간 전쟁을 벌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팔짱을 끼고 손을 맞잡은 채 걷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의 모습으로 자기들 앞에 나타나셨음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식 있는 우리 미국인들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심판 날에 일어나, 우리가 보고도 이렇게 한 것 때문에 이 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얼마 전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던 한 여자가 생각납니다. 그 여자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십 센트 잡화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눈길을 끌려고 이런저런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계속 앞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작은 방울을 집었습니다. 그만한 아기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입니다. 방울을 흔들었지만, 아기는 그냥 똑바로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사람들이 몇 명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아, 안 돼요! 그럴 리 없어요! 그럴 리 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부인?”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한 여섯 달 전에 그냥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증세가 생겼어요. 이 아기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무엇이든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해요. 그냥 앉아서 바라보기만 해요. 의사 선생님은 좀 나아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기의 관심을 끌 만한 작은 물건들을 집어 보여 주려고 여기 데려왔는데,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직도 그냥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요.”
교회가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약속을 그들 앞에서 흔들어 보여 주셨는데도, 우리는 그저 앉아서 멍하니 바라봅니다. “뭘 보라는 겁니까? 표적을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은 줄곧 바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환히 밝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표적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그토록 입증하신 뒤에도, 그런데도... 그 모든 것 앞에서도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들의 눈앞에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들 안에는 믿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남부 출신인 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순무에서는 피를 짜낼 수 없단다. 그 안에는 피가 없으니까.”
그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에 가지고 있던 신조 같은 것들에 그토록 눈이 멀어, 약속을 담은 성경기록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신조가 그것을 가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신조와 전통이 성경의 약속을 가려 버렸습니다. 메시아를 따르는 표적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성경기록에 따라 배웠더라면... 그분이 자신에게 맞는 표적을 가지고 오셨음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분명히 그렇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약속대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조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저것을 믿습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모두 그랬습니다.
오늘날 특히 우리 미국인들은 큰 교회를 짓고 훌륭한 목사님들을 모시면 용서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우리를 받아들이신다면 하나님은 불공정하십니다. 에덴 밖에서 처음 경배했던 두 사람, 가인과 아벨도 주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둘 다 희생물을 바쳤고, 둘 다 예물을 드렸고, 둘 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옳았고 다른 하나는 틀렸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진리를 가져야 하며, 진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그토록 눈이 멀어 버립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제가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하고 물으면, “아, 저는 어느 어느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합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원하시는 교회에 속해 있으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낙인을 달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목사님께 말씀드렸는데, 저는 예전에 콜로라도에서 말을 타고 소 떼를 모으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리를 안장 위에 걸치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트러블섬강 헤리퍼드 협회에서는 트러블섬강 골짜기에 소를 방목합니다. 골짜기 위쪽에는 동쪽 지류와 서쪽 지류가 있습니다. 협회에 속한 이쪽의 소들은 모두 서쪽 지류에서 풀을 뜯고, 제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동쪽 지류에서 소를 방목했습니다. 그리고 소들이 사유지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 내내 산에 있도록 막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을 따라 있는 소들을 모았습니다. 네댓 가지 낙인, 여덟이나 열 가지 낙인이 찍힌 소들이었습니다. 봄에 우리 소들을 모아 그곳으로 몰고 갔습니다. 소들을 모두 모아 낙인도 찍고 모든 것을 마친 뒤 목초지로 다시 올려 보내기 시작하면, 저는 안장 앞의 뿔 모양 손잡이 위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관리인은 거기 서서 지나가는 소들을 세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온갖 낙인이 있었습니다. 그라임스 씨는 다이아몬드 바 낙인을 썼고, 체스터 발리스는 터키 트랙 낙인을 썼고, 우리는 올드 트라이포드 낙인을 썼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낙인이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관리인은 낙인을 보지 않았습니다. 귀에 달린 혈통표를 보았습니다. 그 목초지에는 아무 소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유지하기 위해... 번식 협회에서는 품종에 맞는 소들을 골라냅니다. 순종 헤리퍼드가 아니면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귀에 혈통을 표시하는 표가 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심판 때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분은 제게 감리교인이었는지, 침례교인이었는지, 장로교인이었는지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어떤 낙인을 달고 있는지는 그분께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난, 피로 태어난 그리스도인만 들어갈 것입니다. 그보다 못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때, 그분의 권능은 늘...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 자리에 계셔도 여러분이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자처럼 말입니다. 그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모두 서서 “저기 랍비가 가는군.” 하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야.” “저 광신자 말이야.” 온갖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여자는 혈루증이 있었고, 그분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곳에 내려왔을 때 누구의 말에도 상관하지 않고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그분의 옷만 만질 수 있다면.”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참된 믿음이 그 여자에게 확고한 것이 되었을 때, 무엇이 흘러나왔습니까? 그 여자를 치유하는 그분의 권능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믿음이 그분께 그렇게 닿았기에, 그분은 돌아서서 그 여자에게 어디가 아픈지 말씀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믿음입니다. 거기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이 그 여자보다 더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 여자는 그분의 임재를 알아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밤 우리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이 집회들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목적은 오직 하나, 그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임재를 어떻게 알아봅니까? 이 시대에 약속된 말씀이 나타날 때 알아보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에 약속된 말씀이나 다른 시대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위한 말씀의 약속입니다.
그분이 계속 길을 가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딸이 죽은 야이로라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분과 교제하는 사람은 누구든 회당에서 쫓아낸다는 엄명이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그분과 어울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쫓겨나든 그렇지 않든,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그분이 말씀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분 안에 있는 부활의 권능이 그에게 흘러가게 했습니다. (아멘!) 죽어서 누워 있던 소녀를 일으켜 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그분의 임재가 자기 집 안에 있음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라신 도시에서는... 그분이 자라신 그 도시에서도 동일한 권능이 그분 안에 있었지만,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계시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마 광신자쯤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이러이러한 일을 한다던데요. 여기서 한번 해 보시오.” 그런 말을 들어 보셨지요? “만일 거기... 당신들 오순절 사람들, 당신들 말이야... 신유를 믿습니까? 여기 아무개가 있소. 어디 이 사람을 고쳐 보시오.” 바로 그 옛 마귀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하고 말한 바로 그 마귀입니다. 그분의 눈을 가리고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며 “자,” 하고, (막대기를 서로에게 넘겨주면서) “당신이 선지자라면 누가 때렸는지 말해 보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소.” 했던 바로 그 옛 마귀입니다. 그분은 누구를 위해서도 광대 노릇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계실 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 하고 말한 것도 같은 마귀였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그분께 가장 큰 찬사를 보냈지만, 자기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뿐입니다. 자, 그것은 치유의 권능을 풀어 줍니다. 그리고 무엇을... 여러분의 눈을 열어 그분을 알아보게 하는 권능을 풀어 주거나, 여러분의 눈을 멀게 하여 결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눈을 열어 주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의 눈은 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그 도시 사람들은 그분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의 집에서는 그분을 초대했습니다.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큰 만찬을 차렸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그분이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 온갖 좋은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그는 뒤쪽에서 잔과 술잔을 들고 건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발 씻기는 하인을 지나 안으로 들어와 이쪽에 앉으셨습니다. 더러우신 채로,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걸어오셔서 들판의 악취가 묻은 채로, 그분의 옷이... 그래서 그 시대에는 발을 씻겼던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그렇게 샌들을 신던 때에는 어느 집에 초대를 받으면, 가장 먼저 발을 씻겨 주고 그 집의 양탄자 위에서 신을 것을 내주었습니다. 훌륭한 페르시아 양탄자 같은 것들이 아름다웠습니다. 다음으로는 손에 기름을 조금 내주었습니다. 그것은 산속 깊은 곳에서 나는 작은 사과, 장미 열매에서 얻는 것이었습니다. 장미꽃이 지고 나면 그 열매가 남고 좋은 향기가 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얼굴에 문질렀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직사광선은 무섭도록 강합니다. 보십시오. 그것이 냄새를 일으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주인이 문으로 나와 목에 입을 맞추며 환영해 줍니다. 그런데 그 하인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발도 씻겨 드리지 않고, 바르실 기름도 내드리지 않고, 심지어 환영의 입맞춤도 없이 그냥 지나가시게 했을까요?
그런데 거리에 한 매춘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종교인들은 모두, 그 무리 전체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행실 나쁜 그 여자는 아마 대문 사이로 들여다보다가, 그분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처럼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서 그분의 처지는 그렇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환영받지도, 누구에게 필요한 분으로 여겨지지도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오물, 더러운 자, 성령에 취해 뒹구는 자라고 부릅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 점쟁이, 정신감응을 하는 사람, 그 밖의 온갖 악한 이름을 붙입니다. 그 예수님은 (잠시 뒤에 그 말씀을 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너희가 용서받으리라.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때에는, 그를 대적하는 한마디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분께 시중들어 드릴 필요가 있음을 보고 재빨리 안으로 달려 들어왔고, 가서 향유가 가득 담긴 설화석고 상자를 가져왔습니다. 아마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여자는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분은 선지자셔. 그런데 나와 같은 처지, 나와 같은 행실의 다른 여자가 생각나는구나. 그 여자에게는 기회가 있었어. 수가의 우물가에서 그분을 알아보고 용서받았지. 어젯밤에 우리가 그 이야기를 했지. 나도 그분께 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 내가 시중들어 드려야겠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나는 그분께 시중들어 드리겠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고 그렇게 대하겠어.’
그 여자는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분께 아주 가까이 다가가자 자신이 너무도 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죄인은 그분의 임재 앞에서 그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느낍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는 눈물을 감추려 했지만, 눈물이 그분의 발에 떨어졌습니다. 그 여자는 그분께 기름을 발라 드리려 했지만 눈물이 그분의 발에 떨어졌고, 울면서 손으로 발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발은 묻어 있던 흙 때문에 온통 범벅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대로 믿으시겠다면, 길에서 묻은 짐승들의 악취도 그분의 발에 배어 있었습니다. 모두 같은 길로 다녔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악취가 묻은 채 앉아 계셨습니다. 그 여자는 그분의 발에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려고 했지만 수건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아름다움과 영예는 무엇입니까? 머리카락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 여자들 중에 그것을 전부 잘라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씻고 닦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으로 그분에게서 악취를 닦아 자기 몸에 묻히며 그분의 치욕을 짊어졌습니다. 오! 여러분 앞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 알아보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 자매들은 그렇게 할 만큼 머리카락이 닿으려면 거의 물구나무를 서야 할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곳에서 그분의 발을 씻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저 뒤에 서 있던 시몬은 “흥, 흥.” 했습니다. 오, 그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은 선지자가 아니라고 했지. 선지자라면 곁에 있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아볼 텐데.” 예수님은 발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 여자를 지켜보셨습니다. 그 여자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분이 마치신 뒤, 그 여자가 그분께 시중을 들고 있는 가운데, 그분은 시몬을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노라. 네가 나를 이곳에 초대하였고, 나를 여기 데려왔느니라. (다시 말해 속에 계략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너는 나를 사람들 앞에 내세워 망신을 주려 하였느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니라. 네가 나를 이곳에 데려왔으면 내 발을 씻게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느니라. 내 머리에 바를 기름을 주었어야 하지만 주지 않았느니라. 환영의 입맞춤도 하지 않았느니라. 그러나 이 여자는 내가 이곳에 온 뒤로 눈물로 내 발을 씻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느니라. 시몬아, 내가 네게 책망할 것이 있노라.”
그런 다음 그분은 그 여자를 향해 돌아서십니다. 그 여자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온통 눈물로 얼룩진 모습, 그리고 얼굴에... 길에서 묻은 기름때와 먼지가 눈물에 씻겨 얼굴에 번진 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여자는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잘못한 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내가 이 여자에게 말하노니, 그녀의 많은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느니라.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여자는 알아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알아보았습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분께 시중들어 드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그것을 보고 그분의 임재를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했습니까? 씻어... 무엇이 그 여자에게 주어졌습니까? 용서입니다. 그 여자의 죄를 용서하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또 무엇을 했습니까? 믿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권능도 풀려 나오게 했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권능과 영생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귀한 발에 크고 굵은 못을 박게 한 사람은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역시 그분이 자기를 위해 값싼 재주, 어떤 구경거리를 보여 주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원하는 것은 온갖 구경거리입니다. 복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재미있게 즐기기를 원합니다.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어떤 기적을 보고 싶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를 이리 데려오너라.”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으면서도 거절했습니다. (왜였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기회보다 대중의 평판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여자는 용서받고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잃고 미쳐 버렸으며, 저 위 스위스에서 물에 빠져 자살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여론에 그토록 휩쓸려 있었습니다. 그분은 바알세붑이며, 그저 가장하는 자일 뿐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여론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는 너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고 놓아줄 권한도 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내 아버지께로부터 오지 않으면 네게는 아무 권한도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알았어야 했습니다. 성경기록을 알았다면, 그리고 유대인이었으니 그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전통의 가르침이 그를 얽매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그가 올바르게 배우기만 했더라면... 그 사람이 성경기록에 말씀하신 것을 믿었더라면... 그러나 전통이 그를 거기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죄인들을 죄에서 풀어 자유롭게 하며, 성령으로 침례를 주고, 병자를 치유하며, 표적과 이적을 보여 주시는 참된 복음을 사람들이 접하고도 돌아서서 말합니다. “하! 우리 교회는 뭘 믿는지 아십니까? 저건 말도 안 됩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장자권을 팔아 버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에서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그때 사람들처럼 그분의 임재 앞에 설 똑같은 기회를 얻습니다. 그런데도 대중의 평판 때문에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병들어 있다면, 그저 믿기만 하면 치유받을 기회를 우리도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분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분의 임재를, 오늘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 오늘을 위한 약속으로 입증되는 그 일을 실제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듯이 예수님은 그분의 메시아 표적을 믿지 않는 그 세대를 책망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을 바알세붑이라 부르는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모세의 표적을 행하여 홍해를 여는 것 같은 일을 하시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의 표적을 행하여 나라의 왕좌에 오르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경기록도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선지자가 되실 분이었습니다. 앞으로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선지자가 되실 분이셨고,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을 만족시킬 어떤 표적을 행하시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너무 먼 앞날에서 찾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합니다. 우리도 똑같이 되어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나쳐 버릴 수 있지 않을까요? 기억하십시오. 옛 모형들처럼... 모형들은 결코 어긋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표적은... 그분은 “소돔의 날들에 그러하였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사람의 아들이 드러나는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그것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보십시오. 친구 여러분, 여기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들이...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옳지 않은 것들이 있지만,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이 집회를 계속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몇 분만 여러분께 짧은 질문 하나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것을 여쭈어 보아도 될까 합니다. 누구나 세상이... 그분의 오심을 위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였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들, 달 전체에 뿜어져 나와 달을 덮는 붉은 피 (또는 붉은 화산 물질). 예수님이 “마지막 날들에 그 표적을 주의하여 보아라.”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바다가 포효하고,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심장이 쇠약해지며, 혼란스러운 때와 민족들 사이의 고난이 있습니다... 오늘날 퍼져 가는 성적 타락을 보십시오. 오늘날을 보십시오. 캘리포니아에서는 동성애자가 40퍼센트나 늘었습니다. 타고난 애정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집에 머물면서 팻 분, 엘비스 프레슬리, 어니 포드 같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일요일에는 찬송가를 부르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자들에게 입을 맞추고 하는 것을 보십시오. 남자는 그 여자와 결혼하기 전에는 그 여자에게 입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분비샘이 서로 접촉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하는 일이든 그렇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잠재적으로 성행위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분비샘이 접촉하면 성행위입니다. 남자가 남자의 입에 입을 맞추면 구역질이 날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에게 해도 그렇습니다. 왜 다릅니까? 잠재적으로 성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에게 입 맞추시는 일의 모형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을 보십시오. 온갖 영화 같은 것들이 입맞춤과 포옹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정말 어디서나 거의 공공연한 간음이 벌어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눈이 멀어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소돔의 상태에 있고, 어디에나 소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시대를 보십시오. 그분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이 이 시대에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 약속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대조하여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전히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표적, 다윗의 표적을 보기 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시대와 그 시대들을 위해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위한 약속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기록을 통해 그렇게 하셨고, 성경기록을 탐구하여 자기들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똑같이 하고 계십니다. 성경기록을 탐구하십시오. 성경을 믿는 여러분, 그분이 오시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까?
세상이 놓인 위치를 보십시오. 그것은 세상입니다.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믿음에서 떠나고, 미지근한 라오디게아가 말씀을 밖으로 내쫓고, 온 교회가 그 큰 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이 잘못이라고 선언하는 짐승의 표를 형성하며, 그 밖의 온갖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개신교인들은 성경기록을 알지 못한 채 그 안으로 곧장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통이... 오, 그들은 권력자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것을 얻고야 말 것입니다.
그분은... 보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정확히 누구신지 온전히 밝히셨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 입증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보십시오. 누가복음 17장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하였던 것같이...” 세상을 보십시오. 교회를 보십시오. 소돔의 상태입니다. 저 사람들이 그 천사들, 그 사람들을 향해 문을 밀고 들어오려고까지 했을 때, 롯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여기를 보십시오. 거기에는...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산 위에 있었습니다. 소돔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형입니다.
종교 집회에는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 자, 믿는 체하는 자, 믿지 않는 자입니다. 언제나 이 세 부류가 있습니다. 그곳에도 그들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소돔 사람들, 믿는 체하는 자 (롯), 그리고 택함 받은 교회인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시대의 사자들을 보십시오. 두 사자가 내려가 소돔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고, 다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함께 머문 이 천사가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등을 돌린 채 아브라함의 이름이 바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아브람’ 대신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뀌기 전에는 아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때를 따라 사라를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시자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사라가 웃었을 때, 등을 돌리고 있던 그 사람, 송아지 고기를 먹고 소의 젖을 마시고 빵을 먹던 그 사람, 옷에 먼지가 묻은 나그네인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이 등 뒤에 있는 사라의 마음속 생각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찌하여 사라가 속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리오?’ 하고 말하였느냐? 하나님께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뛰어나와 부인하자 그분은 “아니라. 네가 그렇게 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라의 불신 때문에 바로 거기서 사라의 목숨을 거두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라는 아브라함의 일부였습니다. 이 시대에 그분이 위대하게 나타나시는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부입니다. 그분은 그저... 보십시오... 그분은 그것을 지키셔야 합니다.
자, 보십시오. 교회 시대의 역사에서 한 번도 (제가 지금 참으로 학식 있는 분 한 분, 역사학자에게 말씀드리고 있음을 압니다), 한 번도... 성경을 연구하는 어떤 분이든 제게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 이 교회에, 교회 시대에 보내진 사람 가운데 세계적인 사역을 하면서 이름이 (아브라함의 철자 A-b-r-a-h-a-m처럼) h-a-m으로 끝나는 사람이 오늘날 이전에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생키, 피니, 무디, 녹스, 칼빈. 그러나 예전에 G-r-a-h-a-m, 그래함이라는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위대한 전도자 빌리 그래함, 소돔에 있는 교단들과 함께 있는 그 사람 말입니다.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순절 사람들과 함께 있는 오럴 로버츠가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그러나 h-a-m... G-r-a-h-a-m은 여섯 글자뿐이지만 A-b-r-a-h-a-m은 일곱 글자입니다. 여섯은 사람의 수이며, 사람의 조직,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A-b-r-a-h-a-m은 일곱 글자입니다. 자, 보십시오. 교회에서는 택함 받은 자들이 불려 나옵니다. 그 교단들이 아니라 택함 받은 교회가 따로 서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 교회에도 사자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역사상 이전에는 한 번도... 일곱, 그리고 행해질 그 동일한 표적들!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 그분의 백성 가운데 내려오셔서 자신을 알리고 계심을 깨닫고 알아보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조금 손뼉을 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이것을 읊는 데만 빠져... 말씀에서 멀어져서 이토록 말씀에 눈이 멀었습니까?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알아봅시다. 베드로, 나단, 아니, 나다나엘과 그 여자는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표적, 메시아의 표적을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일들과도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시대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분은 이제 과거를 가리키며 한 시대에 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느 시대든 하나님께서 자신의 메시지 (곧 자신의 말씀)를 보내시고 그것을 그 시대에 입증하셨을 때, 그것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때였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똑같습니다. 이제 여기 서 계신 그분을 보십시오. 그분은 “요나스 (요나)의 날들에 그러하였던 것같이...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리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무엇을 하고 계셨다고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그분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예언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제정신인 사람이 부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성애자들과 성적 타락이 있고, 미국의 이혼율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으며, 온 세상이 그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는데 말입니다. 전체를 대략 놓고 보면 결혼한 지 10년 안에 거의 네 쌍 가운데 세 쌍이 이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고, 또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시 결혼합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며 아내를 맞이하고 시집을 보내고 있었느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십시오. 언제 이렇게 혼란스러웠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리라. (주목하십시오!) 그들이 표적을 받으리라.” 무엇입니까? 이 세대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어야 하느니라.” 그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어떤 표적을 받습니까? 부활의 표적입니다. 오늘날 2천 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권능 가운데 우리 사이에 서서, 그때 행하셨고 또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들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할 것입니다. 언제나 “이것을 보여 주시오. 이것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을 해 보시오...” 하고 원합니다. 그들이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부활의 표적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나타나 거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위대한 표적을 두고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그분은 거기서 또 다른 것을 언급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쪽 여왕이 일어나리라. (스바의 여왕입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주목하십시오. 그것을 잠시 살펴봅시다. 그분은 우리가 읽는 것과 같은 성경에서 요나에 관해 읽으셨습니다. 또 솔로몬에 관해 읽으셨습니다. 솔로몬의 시대가 왔을 때 그에게는 분별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모든 백성, 온 민족이 그것을 믿었으며,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모두 믿었습니다. 오늘 밤 모든 사람이... 온 미국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믿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보장입니다. 모든 방공호와 그 밖의 무엇보다도 나을 것입니다.
아무도 솔로몬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백성들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임을 그토록 믿었기에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오, 민족들이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국가라고 주장하는 이 나라가, 모든 사람이 함께 이 마지막 날들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위대한 선물, 교회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중심으로 굳게 뭉치기만 한다면! 신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강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영의 모습으로 우리 위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이 말씀이 살아서 그분이 말씀하신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제 자세히 보십시오.
오,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 시대에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입에서 귀로 전해졌습니다. 얼마 뒤에는 큰 대상 행렬들이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저 아래까지 왔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그 여왕이 사는 곳까지는 석 달이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믿음은 무엇으로 옵니까? 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옵니다. 그 여왕은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큰 집회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대상 행렬이 올 때마다 물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거쳐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아, 거기 그 일은 어떻습니까...?” “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꼭 하나님이 그곳에 앉아 계신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솔로몬이라는 사람 안에서 나타나고 계십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옵니다. 그 여왕의 마음에 그곳에 올라가 확인해 보고 싶은 갈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여자는 이교도였으므로 가려면 사제에게 가서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사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아버지여, 저 위 팔레스타인에서 큰 부흥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올라가 직접 보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자, 내 딸아, 그런 일에 휘말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우리는 그 부흥 집회에 협력하지 않으니 너는 갈 수 없다. 그건 온통 터무니없는 소리다. 아무것도 없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홍해를 건넜고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바로 여기 우리 교회에서 일어날 것이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교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왕에게 갈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듣자니 그곳에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한 인간 안에 나타나시고, 그 지혜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분의 분별은 놀랍다고 합니다!” “에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여자는 “하지만 저는...” 하고 말했습니다. “이봐라. 너는 여왕이다. 그런 무리와 어울릴 수는 없다. 그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무리는 온 세상에 종교적 광신자들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다루기 시작하시면 아무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목사도, 다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갑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준비했습니다...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제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게... 너를 우리 교제에서 파문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어쨌든 가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직접 알아보고 확인하겠습니다.” 그 여자는 두루마리들을 사서 여호와가 어떤 분이셔야 하는지 읽었습니다. 그분의 선지자들과 그분이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사람의 육체라는 가림막 안에 나타나실 때 어떻게 이런 일들을 아시는지, 무엇을 하시는지 읽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제가 “자, 보아라. 우리 경전은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가 말하자... “그래요, 보십시오. 저는... 제 고조할머니도 저 똑같은 우상들 앞에 서셨습니다. 날마다 서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우상들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고, 중얼거리는 소리 한 번, 그 밖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낡고 죽은 형식에 지쳤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신지 가서 보고 싶습니다.” 오늘날 그런 여왕들이 더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꼭 가야겠다고 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억하십시오. 그 여자에게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자가 어떻게 해야 했는지 보십시오. 제가 빼놓고 싶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올라가겠습니다. 돈도 좀 가지고 가겠습니다. 선물도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것이 진리라면 지원하겠습니다. 진리가 아니라면 돈을 도로 가져오면 됩니다.” 그 여자가 오순절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유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들을 지원하다니요! 여러분은 자기 교회 대신 그런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지원합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바로 여러분이 믿는 것들을 비웃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가지고 가겠습니다. 옳지 않은 것이라면 다시 가져오면 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모든 재물을 낙타들에 싣고 가는데, 그곳에는 이스마엘의 날랜 기수들 (사막의 강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먹잇감을 덮치는 것은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그랬다면 그들은 여왕을 따라간 몇몇 내시를 죽이고 돈을 챙겨 달아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결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며,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보겠다고 굳게 결심하면, 앞에 위험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의사가 죽을 것이라고 말해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계속 나아갈 때, 여러분은 그곳에 무언가가 있음을 압니다.
그 여왕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석 달 동안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에어컨이 달린 캐딜락을 타고 간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석 달 동안 사하라 사막을 건넜습니다. 아마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오아시스에서 두루마리를 읽으며, 마침내 도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가 마지막 날들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 하나 건너오려 하지도 않는데, 솔로몬보다 더 큰 분, 성령 그분 자신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마지막 날들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도 당연합니다.
보십시오. 마침내 그 여자가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는 식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낯선 집회에 오면... 그 여자는 도착해서 낙타를 데리고 뜰로 나가 천막들을 쳤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들 때까지 그곳에 머물 작정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와서 한 5분, 어쩌면 25분쯤 앉아 있습니다. 전도자나 누군가가 그 여자가 자기 신조, (또는 그 남자가 자기 신조)에서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긋나는 말을 하면, 곧장 나가 버립니다. 예의조차 없는 행동입니다. 그 여왕이 이 세대를 정죄할 것도 당연합니다. 그 여자는 확신할 때까지 머물려고 왔습니다.
그날 아침 첫 예배에 나팔들이 일제히 울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목사님이 나왔습니다. 그 여왕은 맨 뒤쪽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직접 보겠어. 여호와께서는 마땅히 그런 분이시라는 걸 알아. 사람들이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확인해 보겠어.” 그 여자는 그날 거기 앉아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단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별이 완벽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의 기도 카드 번호가 불렸다고 해 봅시다. 아마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솔로몬 앞에 나아갈 차례가 왔습니다. 성경은 그 여자가 솔로몬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그 여자의 모든 비밀을 알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 여자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여자는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내가 들은 이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듣던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오, 그 여자에게는 더 이상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숨이 멎을 정도였습니다. 여기 자기를 모르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낯선 사람이 그 여자가 알고 싶어 하던 것들을 드러내 준 것입니다.
오, 그런데 그곳에 서 계신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신성의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 자신을 입으셨고, 육체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여기 그 충만함 가운데 서 계셨는데도,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더 큰 분별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보십시오. 솔로몬에 다윗을 더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더한 것이, 그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모든 선지자가 그분 안에 집약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때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그런 말을 해도 내가 너희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지금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나고, 정죄도 더 크리라.” 그런데 오늘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똑같은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여왕이 심판 날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여자는 회개하고 솔로몬이 전하던 메시지를 믿었으며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실제인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어디엔가 속하여 그저 교회에 다니고 신조를 가진 사람들 말입니다), 거짓된 것을 너무 많이, 온갖 조각상들을 너무 많이, 크고 훌륭한 건물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도 그런 일에 정신없이 빠지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큰 건물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지적인 교육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겸손 가운데 여러분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 안에 거하시며,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와 말로 흘러나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십니다. 그분은 붙잡아 쓰실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만 찾으시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자와 같은 사람을 또 찾으시면 여전히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전히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음을 알리고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여러분께 한번 말씀드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다시 말씀드려도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듯 저는 큰 짐승을 사냥합니다. 예전에 북부의 숲에 갔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늘 사냥하러 가곤 했고, 버트 콜이라는 친구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냥꾼이었는데,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이 절반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길을 잃을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악했습니다. 인정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저를 속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어린 사슴들 (아기 사슴들입니다)을 쏘곤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에이, 설교자들은 겁쟁이라니까. 빌리, 자네가 설교자만 아니었다면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을 텐데. 자넨 너무 마음이 약해.” 저는 “버트, 그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야.” 하고 말했습니다. 법이 허락한다면 새끼 사슴을 잡는 것은 괜찮습니다. 아브라함도 송아지를 잡아 하나님께 대접했습니다. 크기나 암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 일을 악한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는 그 새끼 사슴들을 쏘고는 그저 웃으며... 제가 속상해하니까 웃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해 제가 그곳에 갔습니다. 그는 새끼 사슴이 어미를 부르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호루라기를 직접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봐, 빌리. 오늘 아침 출발하기 전에 내가 가진 걸 좀 보여 주겠네.” 그러고는 그것을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버트, 설마 그런 걸 쓰려는 건 아니겠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에이, 정신 좀 차리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눈이 꼭 도마뱀 같았습니다. 요즘 어떤 여자들이 눈을 그렇게 칠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시지요? 그가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면, 저는... 거의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저는 “버트, 그러지 말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에이, 마음 약한 설교자들 같으니.”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저는 조금 늦게 그곳에 올라갔는데, 그 북부의 흰꼬리사슴들은... 이곳의 노새사슴은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총에 쫓긴 녀석은... 후디니가 탈출의 명수라고들 하지만, 그 사슴들에 비하면 아마추어입니다. 시기가 늦었고 이미 사람들이 그 사슴들을 향해 총을 쏜 뒤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슴들은 숨어서 밤이면 달빛 아래서 먹이를 먹고 낮에는 누워 쉬었습니다. 우리는 옛 제퍼슨 노치 고갯길을 줄곧 걸어 워싱턴산까지 올라갔습니다. 땅에는 눈이 6인치가량 쌓여 있어 발자국을 추적하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발자국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나, 빌리?”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자네들이 쏘아 대는 그 낡은 기관총들로 전부 겁주어 여기서 몰아낸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갔습니다. 얼마 뒤, 11시쯤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작은... 뜨거운 초콜릿을 가득 담은 보온병 하나와 샌드위치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치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그때가 아마 11시나 11시 반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기장, 아니, 이 건물만 한 넓이의 빈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는 나무가 없었습니다. 그는 슬쩍 주저앉아 소총을 나무에 기대어 세우고 뒤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저는 보온병을 꺼내려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자, 이제 먹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먹고는, 한 사람은 이쪽으로, 한 사람은 다른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근처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슴을 잡으면 매달아 놓았고, 그러면 우리는 알고... 가서 서로 도와 그것을 옮겨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점심을 먹고 나면 우리가 갈라져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의 수목 한계선까지 올라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뒤쪽으로 손을 뻗자 저도 보온병을 꺼내려고, 초콜릿을 마시려고 손을 뻗어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머니에서 그 작은 호루라기를 꺼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크게 불고는, 다시 그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자 이 건물 건너편쯤 되는 거리에서 아주 큰 암사슴 한 마리가 일어섰습니다. 혹시 우리 자매님들 중에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말씀드리는데, 암사슴은 어미 사슴입니다. 그 호루라기는 새끼 사슴의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러자 그 큰 암사슴이 일어섰습니다. 때는 대낮 11시쯤이었습니다. 사슴 사냥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때가 좋지 않은 시간임을 압니다. 사슴들이 누워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슴은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저는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돌아보고 다시 불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슴은 도망가는 대신 그 빈터로 곧장 걸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사슴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슴은 그곳으로 곧장 걸어 나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새끼 사슴의 울음이었습니다. 그 사슴은 태어날 때부터 어미의 본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끼가... 버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가 30.06 소총의 노리쇠를 밀어 닫았습니다. 그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겨누는 것을 보았고, 180그레인짜리, 맞으면 버섯처럼 퍼지는 탄환이 그 충실한 어미의 심장을 꿰뚫고 반대편으로 나가 버릴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버트,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저 어미 사슴을 여기로 불러내서는, 자기 새끼를 찾으려는 그 사슴의 심장을 쏘아 버리려 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악할 수 있나?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겨누는 것을 보았지만 저는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마음이 약한 모양입니다. 저는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어떻게 저럴 수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악해서, 저 불쌍하고 충실한 어미의 심장을 쏘아 버리는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슴은 무슨 연기를 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보여 주려고 꾸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미였습니다. 사냥꾼이 총을 내려 겨누는 것을 보았지만 도망쳤습니까? 아닙니다! 자기 새끼가 위험에 빠져 있었고, 그 새끼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는 등을 돌리고... “주 하나님, 어떻게 저럴 수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귀를 기울여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총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총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총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그가 돌아섰습니다. 그 커다란 도마뱀 같은 눈이 변해 있었습니다.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을 둔덕에 던져 버리고 말했습니다. “빌리, 난 이제 그만하겠네. 자네가 말하는 그 예수님께 나를 인도해 주게.”
저는 바로 그 눈 쌓인 둔덕에서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가 실제인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짜를 보았습니다.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그 어미는 무엇을 가장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참된 어미였습니다. 죽음이든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라도 그 총알이 자기 심장을 꿰뚫을 것임을 알면서도 죽음 앞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새끼를 찾고 있었습니다. 오, 그 사슴이 참된 어미였던 만큼 우리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면! 왜 그렇습니까? 그 사슴은 어미로 태어났습니다. 어미가 되도록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태어났습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지금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얼마나 됩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도 진정으로 그 암사슴이 참된 어미였던 것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제 마음이 그리스도로 가득 차서, 무엇을 마주하든 굳게 서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슴이 어미였던 바로 그만큼 말입니다. 저는 그런 체험을 원합니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곳곳에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 안에 믿게 하는 참된 무엇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믿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가련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너무 굳어져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있는 불신자를 보십시오. 정죄받고, 끝장나고, 잃어버린 바 되었는데도 그것을 전혀 모릅니다. 언제 죽음이 문을 두드릴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원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 사슴이 어미였던 것만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에 가입해도 여러분은 끝입니다. 그분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 (여든 살 된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태어나야 한다고, 그 사슴이 참된 어미였던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참으로 알고 알아보며 “제가 잘못된 것을 압니다.” 하고 말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 성경은 “네가 비참하며...” 하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으면서도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거리의 어떤 남자나 여자가 비참하고 눈멀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벌거벗고 있다면, 여러분이 벌거벗었다고 말해 주었을 때 그 사람은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벌거벗었으면서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정신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지금 영적 상태가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멀고 비참하고 가련하며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있습니다. 어떤 교단의 무화과나무 잎 뒤에서 자신을 가리려고 하는 죄인들인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또 다른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쩌면 여기 처음 오신 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보기도 전에 여전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근거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 여기 계심을 압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여기 계십니다. 저는 그것을 느낍니다. 믿습니다. 손을 들겠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구원을 구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손을 든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시오. 죄인인 이 사람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들은... 어쩌면 교회에 속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죄인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손을 들었습니다.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들 곁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계신 성령을 알아보았고,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체험이 없다고 그분이 말씀하고 계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압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들에 그를 일으키리라.” 아버지, 이것들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저는 그 약속 하나하나를 붙듭니다. 주님, 어쩌면 인생길을 걸으며 날마다 더 잘 살아 보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더 나은 동행을 체험하기 원하여 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신 말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필요가 충족됨을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이제 잠깐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시는 여러분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오! 벌써 예정한 시간을 5분이나 넘겼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오래 말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잠시만 기다립시다. 괜찮으시다면 5분만 더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성경이 그분을 어떤 분이라고 말하는지 압니다. 성경은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체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믿는 자”입니다. 사역자 형제님들, 맞습니까? 맞습니다. 성경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이것이 사실임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그분의 말씀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저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분명히 아픈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전혀 모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나간 시대, 옛날의 주의 천사처럼... 예수님은 “롯의 날들에 그러하였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이름들과 그 밖의 모든 것, 교회가 정확히 제자리에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입 밖에 내지 않은 말도 그 사이에서 읽어 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제 뜻을 아실 것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여러분, 저는... 제가 무슨 일로 여기 있겠습니까? 속이는 자가 되어 여기 서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이제 저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겠습니다. 속이는 자가 되느니 차라리 나가서 다른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도 오늘 밤을 살아 넘길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모릅니다. 그런데 속이는 자라니요? 우리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속이는 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너무 낯섭니다.
자, 보십시오. 제가 지난 이틀 밤 동안 읽고 보여 드린 이 성경기록들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지금 그분의 임재는 어떠한지, 그리고 마지막 날들에 그분이 다시 오셔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사람의 육체를 통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셔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압니다. 그것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멘” 하십시오. 좋습니다. 여러분을 위로하려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내려오셔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셨던 바로 그 하나님은 장막을 등지고 계셨고 사라는 장막 안에 있었지만, 사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셨습니다. 그분은 이곳에 오셨을 때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청중을 바라보시고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셨습니다. 한 여자가 그분의 옷을 만졌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를 찾을 때까지 둘러보시다가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먼 바디매오는 그분이 지나가시는 곳에서 200야드 떨어진 곳에 서서 “다윗의 자손이여, 긍휼을 베푸소서.” 하고 외쳤을 때 그분의 옷을 만졌습니다. 그의 믿음이 길을 가시던 하나님의 아들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분은 돌아서서 “그를 이리 데려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키 작은 삭개오는 나무 위에 올라가 몸을 숨겼습니다. 말하기를... 그러니까 그 역시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곧장 와서 그 나무 아래 서시고는, 올려다보며 “삭개오야, 내려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안드레가 그를 데려오자, 그가 오는 것을 보시고 “네 이름은 시몬이니라.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말씀하시고,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나다나엘에게는 그가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어떤 처지에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무슨 병이 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친구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제가 자기 사정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렇게 말씀해 보십시오. “저 사람은 제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것을 압니다. 그저... 그저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형제일 뿐입니다. 여러분을 도와드리려고 여기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언합니다... 제 책 같은 것을 읽으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십니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으십니까? 지금은 마지막 날들입니다. 이제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그분이 오신다면... 한 분도 움직이지 마시고, 지금 앉아 계신 자리에 그대로 계시며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오늘 밤 오셔서 자신이 말씀하신 이 일들, 약속하신 이 일들을 확증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그 일들이 진리임을 확증하신다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저는 주님에 관해, 주님이 어떤 분이셨으며 어떤 분이신지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 나와 주시겠습니까? 저기 청중 가운데 앉아 있는,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님, 오늘 밤 주님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이 성경기록들이 성취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알아보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다면,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약속된 아들이 아브라함에게 오기 전 소돔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마지막 날들에도 자신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셨으니, 왕가의 아들을 기다리는 아브라함의 왕가의 씨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보십시오. 위치와 때와 이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문제든 그분께 구하십시오. 그분은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런데 이 건물 안에 사역자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곳곳에 계시군요. 서른이나 마흔 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한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고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하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요? 맞습니까? 좋습니다. 그분이 대제사장이시라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여러분이 그분을 만진다면 그분은 옛날에 행하셨던 것처럼 행하실 것입니다. 맞습니까? 어제 행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여자가 그분의 옷을 만졌을 때... 여러분은 “오, 하지만 저도 그럴 수 있다면...”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만졌습니다... 그분은 육체에 닿는 것을 느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옷을 만진 것은 그 여자의 믿음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믿음도 그분을 만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다면 그분은 같은 것을 드러내시고 같은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이제 그분을 신뢰하고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이쪽에서 누군가 기도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쪽에서도 누군가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한두 사람에게, 여러분이 틀림없다고 알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때는 우리가 그분의 임재를 알아본다는 것을 믿을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바로 거기 앉아 저를 바라보시는 부인,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심장을 치유하시고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심장병이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처음 뵙지요? 부인을 모르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좋습니다. 그 부인, 저기 앉아 계신 머리가 희끗한 부인입니다. 좋습니다. 초록색을 입으신 부인... 거기서 손을 드셨지요. 부인은... 부인의 병은 관절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관절염을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보십시오. 좋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방금 무엇인가가 부인에게 임했지요? 보십시오. 그 빛... 그 빛의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 그 빛이 바로 그 부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갑자기 아주 감미로운 느낌이 부인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고, 치유하셨으며, 낫게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분이 어디가 아픈지 아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분만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간질입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젊은 자매님. 몇 분 전과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지요? 아시겠습니까? 제가 그 부르던 것을 멈추고 그렇게 했을 때 말입니다.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자매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그 발작이 떠날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바로 여기 앉아 위장병으로 고생하시는 부인,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바로 여기 끝에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위장병을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받아들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부인과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분을 모릅니다. 그저 거기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십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믿음만 가지십시오.
바로 여기 끝에 앉아 계신 부인, 담낭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시며 담석이 있습니다. 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부인과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부인도 고생하고 계십니다. 그 부인 위에 있는 저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부인은 신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신장에 요독증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방금 부인에게 손을 댄 그 부인은 신경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저는 두 분 다 모릅니다. 두 분은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맞지요? 아이오와주에서 오셨습니다. 디모인시에서 오셨습니다. 맞지요?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부인의 이름을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부인의 이름은 울프 부인입니다. 맞습니다.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치유받아 돌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그분의 임재를 알아보십니까?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계시는 지금 서로에게 손을 얹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위에 계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믿기만 하면 지금 여러분 모두가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남은 것은 믿음뿐입니다. 저희는 지금 모든 어둠을 버립니다. 그때... 부흥은,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파도가 물 위로 밀려와 위아래로 휘저어 그 속의 불신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리저리 물결치시는 동안, 모든 불신이 제거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오늘 밤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마귀를 꾸짖습니다. 사탄아, 너는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살아 계시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경적 증거로 지금 바로 여기 사람들 가운데서 네 정체가 드러났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네게 명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사람들에게서 나와라. 그들을 놓아주어라. 치유를 받아들이시는 모든 분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저는 믿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얼마나 오래 걸리든, 저는 여전히 제가 나을 것을 압니다. 온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손을 드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이제 손을 들고, 여러분의 교회에서 하시는 대로 여러분의 치유를 두고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