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 계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다시 한번 하나님의 집에 서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이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나라에서 아직도 이 특권이 허락되어 있음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또 먼 길을, 많은 분들은 수백 마일이나 되는 길을 달려온 이 신실한 분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이들 중에는 오늘 밤 고속도로를 따라,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서둘러 돌아가려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들과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아버지, 그들을 인도해 주옵소서. 잠시나마 공기를 시원하게 해 준 이 소나기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오늘 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모인 이유가 바로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모임이 주님의 왕국에 큰 유익이 되고, 우리도 큰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구하는 이 일들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안에서 몇 분과 개인 면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빌리가 제게... 면담할 분들을 너무 많이 맡겨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거의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저녁 예배에 참석하려고 수고하며 남아 계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음 일요일 아침에도 제가 예배를 인도하겠습니다. 방금 목사님과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렇게 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와 있는 좋은 친구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신 줄 압니다. 날씨도 덥습니다. 그러니 그 시간은 생략하고 이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저를 위해 구해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보다 더 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제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우리 말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조금 전에 아내에게도 말했습니다만, 목욕을 하는데 몸이 마르질 않았습니다. 물기를 닦으면 다시 젖었습니다. 닦고 또 닦아도 셔츠조차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투산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곳보다 두 배쯤 더 덥지만 땀이 나지 않습니다. 공기 중에 습기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말라 버립니다. 물을 담은 그릇을 놓아두면 물이 없어집니다. 땀이 나기도 전에 다 말려 버리니 땀이 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땀은 나지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몸을 말리느라고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흠뻑 젖어 있습니다. 저 안쪽 방에 있었는데, 긴급한 사정이 있는 분들이 일곱이나 여덟 분 오셨습니다. 그분들은... 바로 만나 뵈어야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남아 계시라고 하고 또 오시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기에, 단지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제가 할 말을 들으러 오시라고, 그저 그런 이유로 이렇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단지 그런 식으로 오시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에 대한 제 사랑을 보여 주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듯 여러분도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여러분도 그런 이유만으로는 오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하시는 일들을 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저는 여러분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더위 속에 앉아 계시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어떤 성경 말씀이라도 택하려고 합니다. 떠나기 직전에는 그분의 인도를 구하며 “주 하나님, 어떻게든 도와주셔서 이 사랑하는 분들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을 다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기대하며 참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 이 시간은, 함께할 모든 시간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함께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혹시 잘못된 말을 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일부러 하는 일이 아님을 아십니다.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 대한 책임이 제게 있고 여러분이 제 손에 맡겨져 있음을 알기에, 저는 언제나 여러분이 바로 이 성경 말씀 안에 머물러 계시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 번 사람들이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로 나오셔서 아픈 제 어린아이에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고 말씀만 해 주시면 아이가 나을 것입니다. 거기 나가서 ‘나을 것입니다’라고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은 충성스럽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먼저 제게 말씀해 주시기 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열의에 들떠 나가서 그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시겠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내 열의가 하는 말이 이러하다”일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그 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제 열의에 영향을 받아 믿었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중에 그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신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또다시 열의에 들떠 말하는 것일까 봐 두려워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말할 때, 제가 아는 모든 것에 비추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아주 진지하게 확신하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시면 그분이 보여 주신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저는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런 일들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칠 좋은 일을 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닥칠 나쁜 일도 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때로 주님의 뜻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 반대됩니다. 그래도 우리가 주님의 뜻을 원한다면, 나쁜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 일을 아는 것은 똑같이 귀한 일입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압니다.
이곳 형제님들은 보통 일요일 저녁에 삼십 분, 아니 이십 분이나 삼십 분 정도 메시지를 전하시는 줄 압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 예배가 끝나면 바로 침례 예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많은 사람이 침례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늘 끊임없이 침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목사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하나님의 교회 교인, 루터교인, 어떤 사람들이든 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 심판대에 설 때에는 그 일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 삶의 모든 일에서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이 이 일에 대한 확신만큼 분명하다면, 저는 지금 당장 휴거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이것은 진리입니다.
성경에는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다른 방식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말씀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명령은 다만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그... 그들에게 이 칭호를 불러 주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누구든지 어떤 식으로든 성경에서 한 말씀을 빼거나 성경에 한 말씀을 더하면 그에게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일까지 하지 않아도 두려워해야 할 것이 충분히 많습니다. 그 일 때문에 여러 번 곤란을 겪었지만 저는 바로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은 저를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 일로 많은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저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 이 친구, 주 예수님을 계속 모시고 있기만 한다면...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길이 험하고 힘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분도 같은 길로 오셨습니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붑이라 불렀다면 그분의 제자들은 얼마나 더 심하게 부르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고, 한 주간 내내 복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제가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귀한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억하십시오. 수요일 저녁에는... [브래넘 형제님이 네빌 형제님과 예배에 관해 이야기한다.]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는 가정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니어 잭슨 형제님이 이 안에 계십니까? 잭슨 형제님, 저는 잘 모르겠... 여기 계시는군요, 잭슨 형제님. 좋습니다. 저는... 또 다른 잭슨 형제님도 여기 계십니다. 돈 러들 형제님은 오늘 밤 이 안에 계십니까? 돈 형제님? 이쪽에 계시는군요. 또 다른 많은 형제님들도 계십니다.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그리고 전국 여러 곳에서 오신 형제님들이 보입니다. 오늘 밤에는 연로하신 형제님들도 계십니다. 오른쪽 이곳에는 토머스 키드 형제님이 앉아 계시는데, 며칠 뒤면 여든네 살이 되십니다. 삼사 년쯤 전에 전립선 문제로 수술을 받으셨고 암으로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의사도 그저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시도록 두었습니다. 저는 오하이오에 계신 그분께 가느라 제 낡은 차를 거의 망가뜨릴 뻔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께서 그분을 완전히 건강하게 치유하셨습니다. 오늘 밤 그분과 아내분이 여기... 많은 분이 두 분을 아십니다.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여기 계신 이 남녀 두 분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복음을 전하셨던 분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나이 든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두 분이 지금도 계속 나아가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용기를 얻습니다. 저쪽 구석에 앉아 계신 빌 다우 형제님은 우리 모두 잘 압니다.
오, 하나님의 그 모든 큰 복으로 인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까지 그 복이 계속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여러분을 볼 수 없지만, 여러분은 나머지 무리와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잠자는 사람들보다 앞서지 못합니다(그 말은 ‘방해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습니다. 그저 잠시 쉬고 있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것뿐입니다. 오, 세상에!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리라...” 그러다가 문득 서서 바라보는데 “아, 저기 형제님이 계시네...” 하고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몇 분 안에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변화되어, 그들과 함께 땅에서 사라져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러 채여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본 모든 것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에 대한 분명한 입증들을 생각하면, 예배가 끝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오늘 밤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대합시다. 히브리서 13장을 펴십시오. 히브리서 10장 10절부터 14절까지... 아니, 죄송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0절부터 14절까지 읽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국기에 충성을 맹세할 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우리는 언제나 일어서서 맹세합니다. 다른 모든 큰 행사에서도 나라를 향해 경례하거나 할 때 경의를 표하며 일어섭니다. 또 국가인 「성조기」가 연주되면 우리는 차렷 자세로 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차렷 자세로 섭시다. 말씀을 읽을 때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제가 말씀 읽기를 좋아하는 것은 제 말은 실패할 수 있어도 그분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씀만 읽어도 여러분은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0절입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느니라.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해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자.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오히려 우리가 다가올 도시를 찾나니
이 말씀을 책임지시며,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말씀을 지켜 주셔서 조금도 섞이지 않은 채 우리에게 이르게 하신 주 하나님. 이것은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마음속에 참으로 소중히 간직합니다. 주님, 오늘 밤 이 본문을 풀어 그 뜻을 우리에게 밝혀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람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명하심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저녁 제 주제는 「진영 밖으로」입니다. 자그마한 주제인데 조금 특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대개 특이한 것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세상은 관습에 너무 굳어 있어서 평소의 흐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하게 여깁니다. 며칠 전에 이곳 태버내클에서 「괴짜」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것과 같습니다. 농부는 사업가에게 괴짜이고, 사업가는 농부에게 괴짜이며,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에게 괴짜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평소와 다르면 일반적인 흐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부터 그분의 메시지를 전해 온, 각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들과 사자들은 바깥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노아는 자기가 설교하던 그 지성 높은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왕위를 눈앞에 두고도 그들이 보기에는 흙일꾼 무리에 불과한 사람들을 위해 왕위를 버린 노아는 파라오에게 분명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살았던 다른 모든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진영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움을 드리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말씀드리려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부디 참고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전국을 다니며 설교하고 사람들을 살펴볼 때,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이런 장애물을 놓은 것은 원수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사람들이 향하도록 가리켜 준 대상이 그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인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는 대신, 어떤 교의나 교리, 어떤 파나 체험, 어떤 감각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어떤 교의나 감각에 자기들의 영원한 종착지를 맡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영 안에서 춤을 췄습니다!” “저는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불이 제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마귀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귀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마귀와 예수님 사이의 논쟁에서 예수님은 매번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그를 이기셨습니다.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오지 않는 이유는 그들 중 많은 이에게 교파를 가리켜 주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와서 우리 교회에 가입하십시오!” 또는 “우리 교리문답을 읽으십시오!” 또는 “우리 교리를 믿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제도를 가리켜 줍니다. 사람들에게 잘못된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없이 행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들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증명합니다. 바로 그것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 저는 전국을 이리저리 다니며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여자들이 반바지를 입고 화장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해 왔지만 해마다 더 심해집니다. 이것은 어딘가에서 다른 손가락이 그들에게 다른 길을 가리켜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교회에 다닙니다. 우리 교회는 안 그러는데...”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무엇을 믿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잘못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그리스도께 이르렀다면 그런 일을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남자도 그리스도께 이르렀다면 자기 자리를 지키며 그런 일에 반대할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남자들은 자기 아내가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이 도시에서 한 젊은 남자가 두 청년을 거의 죽일 뻔했습니다. 어떤 주유소에서 있었던 일인데(제퍼슨빌에 사시는 여러분은 신문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한 젊은 여자가 거의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주유소로 들어왔습니다. 거기 앉아 있던 두 청년이 한마디 했고, 그 주유소 직원은 그 두 청년을 거의 죽일 뻔했습니다. 그 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그 여자가 그런 옷차림을 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귀엽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자는 어딘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가 어떤... 그가 죄인이라고 해도 어딘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를 그런 식으로 개를 꾀는 미끼처럼 내놓으면서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참될 수는 없습니다.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한 것입니까?
새로 나온 수영복을 보셨습니까? 삼십삼 년 전에 제가 여자들이 마침내 무화과 잎사귀만 걸치게 되리라고 예견한 것을 아십니까? 그런데 지금 무화과 잎사귀로 꾸민, 속이 비치는 치마가 나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 직전에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다시 무화과 잎사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라이프」 잡지에서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여자들이 타락하기 전인 삼십삼 년 전에 한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어떻게 할지, 남자들처럼 옷을 입고 이 나라 여자들의 도덕성이 어떻게 추락할지 미리 말했는데,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나라가 이 미국입니다. 이 나라가 그중 가장 더럽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이 나라의 결혼율과 이혼율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본받고... 예전에는 우리가 프랑스를, 그 나라의 더럽고 불결한 것을 본받았는데, 이제는 그들이 우리의 옷차림을 본받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그분께 이르렀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피로 자기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성화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복합어에서 온 말로, 깨끗하게 하여 섬기도록 따로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자기 백성을 깨끗하게 하실 때 세상의 더러움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섬기도록 따로 구별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순복음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빠져나왔던 그 구덩이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사십 년이나 오십 년 전 오순절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나온 교회들, 그 교파들을 욕하고 정죄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했습니까?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고 암퇘지가 뒹굴던 진창으로 돌아가듯, 자신들이 떨어져 나왔던 바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들의 교회들도 다른 교회들만큼 더럽습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마치... 사람들은 마태복음 17장 48절에서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으니 장막 셋을 지읍시다”라고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영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시며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바로 말씀입니다. 우리의 열의나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그는 나의 말씀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그 음성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무엇이 보였습니까? 모세도 엘리야도 없었고, 신조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말씀이십니다. 그들에게 보인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이제 진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살펴봅시다. 변화산에서 그 위대한 일이 일어났던 그들의 진영, 훗날 베드로가 “거룩한 산”이라 부른 곳에서 그분은 그들을 만나셨습니다. 저는 그 사도가 산 자체가 거룩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산 위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셨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교회가 아닙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거룩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 산 위의 작은 진영에서, 변화산에서 그들에게 들으라는 명령이 주어졌을 때... 그들이 받은 명령은 오직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보인 것은 신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육체가 되신 말씀이십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에 있던 그 진영과 얼마나 아름답게 일치합니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그분의 교회, 그분의 백성을 견고하게 지키셨을 때 그들이 그 안에 머물러야 할 벽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방패, 하나의 갑옷, 단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마귀를 이길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말씀입니다. “기록되었으되.” 그런데 사탄은 그분께 말씀을 덧칠해 제시하려 했습니다. 인용하려 한 것이 아니라 덧칠하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곳의 그 작은 진영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진영에서 주 예수님을 변모시키는 그 구름 속에 드리운 그림자, 혹은 빛기둥의 하늘 군대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위해 하나, 선지자들을 위해 하나 하는 식으로 교파를 만들려고 할 때, 그 음성이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에덴에서와 똑같았습니다. “말씀에 머물러라!” 이것이 그분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진영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모든 일에서 진영 밖으로 나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 경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이제 우리가 이 근처에서 듣는, 창문을 흔들어 놓는 그런 소리를 내는 제트기가 있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너무 빨라져서 자기 소리보다 앞서 나갈 때 그러는데, 그것을 음속 장벽이라고 부릅니다. 비행기가 자기 음속 장벽을 넘어서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무한해집니다. 저는 거기에 우리가 배울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음속 장벽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면, 진영 밖으로, 곧 인간의 진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진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넘어... 사탄도 자기 사람들을 이성의 진영 밖으로, 상식의 진영 밖으로 데려가는 것을 봅니다. 사탄은 자기 사람들을 반대쪽 진영 밖으로 데려가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이쪽 진영 밖으로 데려가십니다. 사탄은 그들을 기본적인 예의와 도덕의 진영 밖으로 데려갔습니다. 사람들이... 오늘날 도덕에 관한 한, 지금 하는 일들을 마음대로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를 그런 차림으로 밖에 내보내 놓고, 아내를 모욕했다고 누군가를 때리는 것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식을 벗어났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도덕을 벗어났습니다. 어디에서 멈추려는 것입니까?
제 나이 또래의 남녀 여러분께 이렇게 여쭈어보겠습니다. 오십 년쯤 전에 제 어머니나 여러분의 어머니가 이런 반바지나 비키니, 뭐라고 부르든 그런 것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경찰은 즉시 붙잡아 정신병원에 넣었을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겉옷도 입지 않고 집을 나왔다면 정신적으로 어딘가 잘못된 것이기에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정신적인 문제였다면, 지금도 틀림없이 어딘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성을 넘어선 불결함입니다.
의사들이 담배 때문에 해마다 수천 명이 죽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데도 어떤 남자가 계속 담배를 피워 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정신에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면,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전국에 있는 의사들의 진료실을 다 찾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술집이나 차 안에서는 정신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십니다. 돈을 써서 스스로 그런 상태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그런데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려고 가진 돈을 한 푼까지 의사에게 다 쓸 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닭을 잡아먹는 매 한 마리가 도시 위를 날아가는데 제가 소총을 들고 뒤뜰로 나가서 그 매를 쏜다면, 십 분도 안 되어 감옥에 있을 것입니다. 도시에서 총을 다루고 소총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며 매를 향해 공중에 총을 쏘아 공공질서를 어지럽혔다고 저를 체포할 것입니다. 제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고 하겠지요. 저런 사람은 가둬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이 취할 만큼 술을 팔고 그를 자동차에 태웁니다. 그 사람은 온 가족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붙잡히면 벌금 오 달러와 소송비용만 물립니다. 계획적인 살인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진영 밖으로, 도덕 밖으로, 이성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정치인들은 학교에서 성경을 읽는 일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표를 잃게 될지 아닐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또 한 사람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필요합니다. 또 한 사람의 존 퀸시 애덤스가 필요합니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든 일어서서 자기의 정직한 신념을 말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파의 설교자는 말씀에서 진리를 보여 주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자기 밥줄을 잃을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복음으로 불타는 남녀가 필요합니다. 일어서서 자기 신념을 말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지 교파가 옳은지 분명히 밝힐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고 내 말은 진리라 할지어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그들은 답을 찾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영 밖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사탄이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진영에서 꾀어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이브에게 했던 것처럼, 사탄은 오늘날에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진영 밖에 있는 교의와 신조로, 교의와 신조의 진영으로 꾐을 받습니다. 그들에게도 진영이 있으며, 그것이 그들을 사탄의 진영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사탄의 진영은 교육, 신학, 행위, 박사 학위, 학식, 인품, 하나님의 말씀의 진영을 거스르는 모든 것의 진영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백성을 위한 진영이 있습니다. 교파에는 자기들의 진영이 있습니다.
삼천 년 전에는 사람이 거의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왜 그분을 만나지 못합니까? 삼천 년 전보다 사람이 더 많습니다. 수천 곱하기 수천, 또 수백만 명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어떤 옛일, 옛 역사의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오래전처럼, 제가 말씀드린 삼천... 약 삼천 년 전처럼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생소한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진영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거의 날마다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머물기 위해 그랄로 내려갔을 때,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 아비멜렉의 진영에도 계셨던 것을 봅니다. 그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임재하시는 진영에서 살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들의 진영에서 살며 하나님의 진영과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은 광신적으로 보이기에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광신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한 첫 진영을 세우셨을 때 그분의 말씀으로 그들을 견고하게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자기들의 진영에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그리 많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 진영이...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만나셨는지 보십시오. 모세는 광야 저편에서 자기 아버지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며 그곳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든 살 된 그 늙은 목자는 덤불 속에서 빛, 혹은 불기둥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다음 날... 때로 하나님을 만나면 평소와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다음 날 모세의 모습은 아주 특이했습니다. 아내를 노새에 걸터앉히고 아기는 아내의 옆구리에 안겨 있었습니다.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손에는 굽은 지팡이를 든 채, 나라를 차지하러 이집트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모세, 어디로 가는가?” “이집트로 갑니다.” “무엇 하러?” “차지하러 갑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침공이었습니다. 몹시 이상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해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러시아를 차지하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습니다. 손에 든 것은 굽은 지팡이였습니다. 칼이 아니라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얼마나 특이합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일을 하려면 모세는 자신이 살던 진영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온 군대를 거느리고도 그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모든 군대를 가지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그분의 진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모세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있었다”나 “나는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현재형인 “나는 있다”입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나의 약속을 기억하노라. 이제 이것이 성취될 때가 되었느니라. 모세야, 네 손에 든 이 지팡이와 함께 너를 내려보내노라.”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진영에서 나온 것입니다. 파라오는 학교라는 진영에서 사십 년 동안 그를 교육했지만, 그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그것을 빼내시는 데 다시 사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가 배운 모든 교육과 모든 신학 말입니다. 그에게서 그것을 빼내시는 데 사십 년이 걸렸고,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십 년 동안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데 아주 큰 수고를 하십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모세가 자신이 속해 있던, 사람이 만든 진영에서 나와, 군사적인 방법과 자연적인 방법을 떠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모세를... 모세를 붙잡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 진영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우리는... 그들이 자기 입장을 정하고 이집트에서 나와 하나님의 진영으로 들어갔을 때를 보십시오. 제사장들과, “현실을 받아들여라. 우리는 남은 평생 노예다!”라고 말하던 모든 사람의 진영에서 나온 것입니다. 선지자 모세가 내려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웠다는 것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백성을 구출하시려고 거기에 계신다는 것을 입증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있던 진영에서 그때를 위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진영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들은 그 선지자를 믿었습니다. 입증하는 표적이 그것이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일들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를 따라간 불기둥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 진영에는... 이 진영에는 기적과 표적과 이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그들을 광야로 이끌어 냈습니다. 그들은 자연적인 진영을 떠났습니다. 진흙의 진영을 떠났습니다. 짚과 벽돌로 만든 진영을 떠나, 곡식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장막에 거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에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자기 이성의 진영을 떠나면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로 나가 이 진영으로 옮겨갔을 때 기적과 표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이집트의 진영을 떠나 광야로 나가 하나님의 진영과 함께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영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서 “네 백성이 사백 년 동안 타국에 머물 것이나, 내가 강한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어 여기 이 땅을 그들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입증된 빛과 입증된 선지자의 인도를 받아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진영에 계시다는 표적과 이적과 함께 그들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만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물이 있었습니다. 아멘! 그들은 (chanced) 진을 친 곳을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보기 위해서는 진을 친 곳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기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성령 침례라는 것은 없습니다”, 또 “이 모든 성경 말씀은 틀렸습니다. 그것은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파들의 진영에서 옮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을 친 곳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 진영 밖으로 나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으로 가십시오.
그 모든 것이 그분께서 진영에 임재하신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모세가 죽은 뒤 그들은 전통과 신조로 인간이 만든 진영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그 백성을 상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분의 진영에... 그들의 진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들만의 진영, 스스로 만든 진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이집트에서 부름받아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희생양,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말씀과 표적과 기적, 그들을 인도할 선지자와 그들을 돌볼 속죄, 그들을 인도할 불기둥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나와서도 그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은혜가 그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는데도 이제는 자신들이 직접 할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조직을 만들고, 누가 대제사장이 될지, 누가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른 무엇이 될지를 두고 소란을 피우고 싸우고 안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야, 그들에게서 너 자신을 분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라가 거역할 때 그들을 그대로 삼켜 버리셨습니다.
보십시오. 이 모든 표적과 이적이 그분의 임재를 입증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만의 진영을 만들었습니다. 신조와 전통의 진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영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진영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시기에 그들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침받는 곳에는 그분이 머무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진영에 머무르실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반드시 자신의 말씀이 있는 바로 그곳에 머무르셔야 합니다.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그 온 무리의 진영을 떠나셔야 했을 때, 그분은 자신의 말씀이 임하는 선지자들 가운데만 거하셨습니다. 말씀은 그때를 입증하기 위해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그분은 선지자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백성을 저주하고 그 일들을 저주했는지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명령과 생명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백성은 언제나 그것을 반대하고 선지자를 박해했으며, 마침내 돌로 치거나 톱으로 토막을 내어 그를 없애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죽이지 않은 선지자가 누구냐? 그들에게 보냄받은 의로운 자들 중에 누가...” 그리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의 일들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들, 교파 사람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분의 말씀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조금 더 엄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자신의 선지자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시기 위해 오직 말씀 안에만 거하시므로, 그들에게 낯선 분이 되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지켜보시며 확증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누군가를 찾고 계십니다... 삼손처럼 마음을 반만 드리는 사람이라도 찾으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삼손은 자기 힘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자기 마음은 들릴라에게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여러 번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지만 전부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보험과 같습니다. 보험에 가입하려면 모든 것을 보장받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복된 확신이 우리에게 해 주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보장하는 보험입니다. 이 삶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과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보장합니다.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뒤 하나님께서는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진영 밖에 계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이상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말라기부터 선지자 요한까지 사백 년 동안 이스라엘의 수레바퀴는 단 한 번도 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영 밖에 계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조와 이기심과 말씀에 대한 반대 태도로 그분을 쫓아냈습니다. 말씀 없이 사백 년입니다! 그분은 이 선지자에게서 저 선지자로 옮겨 다니셨고,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였습니다. 그 뒤 사백 년 동안 다른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다시 그들 가운데 걸어오셨지만, 그들의 전통이 그들 가운데서 그분의 자리를 너무나 차지하고 있어서 그분은 그들에게 낯선 분이었습니다. 조상들의 전통이... 그릇을 씻는 것과 머리를 손질하는 방식, 겉옷에 특정한 단추를 다는 것, 정해진 제사장 예복을 입는 것, 이 사람은 골수 바리새인이고 저 사람은 사두개인이라는 것, 이런 것들이 그들 가운데서 말씀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셨을 때 그분은 이방인이셨습니다.
사랑과 존중을 담아 말씀드립니다만, 분명히 깨달으시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 가운데 권능으로 나타나셔서 그분의 말씀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실 때,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만, 사람들은 “점쟁이다, 바알세붑이다, ‘오직 예수’파다!” 또는 그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어딘가에 분류해 넣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이제 거의 이천 년 동안 우리에게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한 사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지막에 주어질 것으로 약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것을 압니다. 역사로도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사백 년이 지난 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 가운데 걸어오셨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분은 육신이 되어 그들 가운데 거하셔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할 것이라.” 그런데 그분께서 사람들 가운데 오시자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지 않겠다! 무슨 교제 회원증을 가진 사람인가? 어느 교파가 그를 보냈는가?” 아무도 그분과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교회에 가시든 그분을 쫓아냈습니다. 그분이 자기들 중 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분과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분을 밖으로 내쫓고, 그분은 들어가시려고 문을 두드리신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자기들만의 진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알았다면 그분이 누구신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너희에게 말해 주느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것들이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내가 하기로 약속된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내 아버지, 곧 말씀의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성경기록들을 탐구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라. 내가 그 자격에 맞지 않는다면, 내 일들이, 말씀이 증언하는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시는 일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내가 틀린 것이니라!” 맞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말씀을 믿으라.” 그분은 “말씀이 나타내는 일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그들 가운데 낯선 분이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겠소.” 저 아래 어딘가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그저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어머니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 아기를 낳았다고, 아니 그 전에... 아기를 사생아로 낳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그 여자가 가서 요셉과 결혼했으며, 요셉은 단지 그녀의 평판에, 그녀의 품행에 오점이 남지 않도록 그렇게 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분은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에 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분이 나서셨을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들의 신조를 무너뜨리고, 그들의 상을 뒤엎고, 그들을 때려 그곳에서 몰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그것을 보아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어야 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그들은 그런 사람과는 아무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니고데모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랍비여, 우리(바리새인들)는,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일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분을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들의 진영에 경계를 정해 놓고 그분을 진영 안으로 들어오시지 못하게 했으며, 누구도 그분께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들만의 진영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문이 완전히 닫힌 밤에 왔지만, 그래도 그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쨌든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그들은... 그분은 낯선 분, 이방인이 되셨습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왜 저렇게 되는가?” 하고 말합니다. 말씀 자체가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증언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그것을 거듭거듭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들 진영에서 그분은 광신자였고, 그들의 전통을 깨뜨리는 분이었으며, 그들의 교회를 뒤흔드는 분이셨습니다. 실제로는 그저 점쟁이, 바알세붑이라 불리는 강신술사였습니다. 그들이 본 그분은 그러했습니다. 그분께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 오신다 해도 우리에게 똑같이 여겨지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에게도 전통이 있고 교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입니다. 바로 흘리신 피 아래입니다. 그 피는 이 씨, 곧 말씀에 생명을 싹트게 하기 위한 생명의 싹으로서 흘려졌습니다. 그곳을 벗어나면 우리의 교파적 장벽이 언제나 사람들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분은 낯선 분이실 것입니다.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런 대우를... 진영 밖으로 쫓겨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그들이 거부하였고,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라고 했던 바로 그 성경, 그것을 말한 바로 그 말씀이... 바로 그 선지자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 뼈들이 모두 나를 노려보나이다.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그 찬송을 부르는 동안, 자기들의 희생물, 자기들이 섬긴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선지자 아모스가 사마리아에 왔을 때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십시오. 고개를 넘어와 그 죄악 된 도시,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남자들과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그의 작은 두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현대의 미국과 같았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그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그를 후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제 회원증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들으려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언하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섬긴다고 하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멸하실 것이다!” 저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 나라는 종교적인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섬긴다고 하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법 가운데서 그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섬긴다고 하는 그분께서 모든 교파를 땅 위에서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을 책망하시자 그들은 그분을 자기들의 진영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예수님은 진영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진영 밖으로, 바깥으로, 자기들의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쫓았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 이 라오디게아 시대에도 그들이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이 진영 밖으로 쫓겨날 것이라고 했습니다(이제 마치면서 그분께서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보십시오). 희생물들을 불사르는 진영 밖으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곳이 그분이 계실 자리였습니다. 그분이 희생물이셨기 때문입니다.
형제님, 자매님,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희생물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희생하고,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자기 쾌락을 희생하고, 세상의 것들을 희생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양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인데, 그것은 양털입니다. 양에게 올해 쓸 양털을 생산하거나 만들어 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양털이 자라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언가를 제조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의 열매를 맺으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즉, 양의 안에 있는 것이... 양의 안에 있는 본질이 바깥에 양털을 자라게 합니다.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겉으로도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꾸며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이 어떤 대우를 받으시는지 봅시다. 처음과 정확히 같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분이 그들을 그토록 책망하시자 그들은 그분의 진영에서 그들을 내쫓고 그분을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이제 수백 년, 그렇습니다. 거의 이천 년이 지난 뒤, 그분은 마지막 날에 그렇게 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대로 다시 그들의 진영을 찾아오셨습니다. 다시 진영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날 찾아오셨던 것처럼, 모세의 날에 찾아오셨던 것처럼, 오늘 이 말씀을 나타내시려고 진영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일을 한 것은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요셉의 삶을 보십시오. 아버지에게는 사랑을 받고, 선견자였기 때문에 형들에게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까닭 없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그를 미워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뿐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정확합니다. 교회는 다시 영적인 것들을 미워합니다. 우리는 그가 은 삼십 개에 가까운 값에 팔렸고, 죽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붙들려 감옥에 갇힌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처럼 한 사람은 멸망하고 한 사람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데려다가 파라오의 오른편에 두었습니다. 예수님께 일어난 일과 정확히 같습니다.
다윗은 울면서 거리를 지나 올라갔습니다. 거부당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산 위에 앉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 뒤 다윗의 아들께서 같은 언덕에 앉아 우셨습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서 거부당한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진영 안으로 오셔야 한다고 예언되어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때와 정확히 같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그분이 하시리라고 약속한 것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노아 시대에도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거부당한 그때의 말씀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마지막 날 오시리라고 예언하신 대로 이 마지막 날에 오셨을 때, 요한계시록 3장에 있는 그분의 예언은... 그분께서 보신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부유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여왕처럼 앉아서 슬픔을 보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분을 교회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은 다시 진영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는 자기가 벌거벗었고 눈멀었고 비참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분께서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면 반바지를 입은 모든 여자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모든 여자, 화장한 모든 얼굴, 아내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만큼 비열한 모든 남자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그렇게 서 계실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교파를 무너뜨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신조를 깨뜨리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 믿습니까? 분명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영 밖으로 내쫓을 것입니다. 절대로 그분과 협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이 그분에 관해 말씀한 대로, 오늘날에도 그분은 진영 밖으로 쫓겨나신 것을 봅니다. 그분은 언제나 동일하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들은 그분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협의회를 통해 그분을 다시 거부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분이 재판받으실 때 그들이 했던 것과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이 재판받는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그때처럼 다시 거부하고, 그리스도 대신 살인자인 바라바를 받아들였습니다. 협의회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은 말씀과 이때의 완전한 입증을 거부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팔아넘기고 말씀을 죽이는 살인자인 바라바, 곧 세계교회협의회를 택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부인하고, 그분의 침례를 부인하며, 그분의 권능을 부인하고, 그분의 표적들을 부인합니다. 또다시 칼라를 뒤집어 입는 것과 같은 온갖 신조나 전통을 가지고, 자기들의 신조와 그런 것들을 만들면서 선한 행위에 의지하여... 그렇게 하려 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믿을 바탕이 그들 안에 없었습니다. “나를 아는 자는 내 아버지를 아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그렇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들어가셨고, 여러분을 보내시는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들어가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백인이든 갈색 피부의 사람이든, 누구든지 말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온 세상과 모든 창조물을 위해서입니다.
얼마 전 투산에서 어느 침례교 목사님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지금을 사도 시대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오늘날에는 사도 시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사도 시대는 끝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끝났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끝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확실합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럼요, 확실합니다.” 또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끝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과 너희 자녀들의 자녀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바로 이 약속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 의사가 처방전을 썼습니다. 성경은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 거기에는 의사가 없는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의사의 처방전을 받으면... 의사가 여러분의 몸에 있는 병을 찾아내어 처방전을 써 주면, 그대로 약을 지어야 합니다. 처방된 그대로 약을 지어 줄 진짜 약사를 찾아야 합니다. 독성 성분은 얼마, 해독 성분은 얼마, 여러분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이미 시험을 거쳐 입증된 것이므로 그 처방대로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약을 제대로 계량할 줄도 모르는 돌팔이 의사가 그것을 함부로 손대게 한다면, 그가 여러분을 죽일 것입니다. 또 약을 너무 약하게 만들면 아무 효과도 없을 것입니다.
의사인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처방전을 함부로 바꾸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와 너희 자녀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처방전을 주겠노라”라고 했습니다. “와서 가입하라!”가 아닙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 결과를 받으리라. 아멘! 성령을 받으리라. 이 약속, 이 처방전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한 것이니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가운데 돌팔이 의사들은 그런 가짜 처방전 쓰기를 그만두십시오. 여러분은 자기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가 그들에게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처방에서도 의사가 어떻게 약을 찾아내는지 아시지요. 언제나 가져다가... 과학자들은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한 다음 그것을 기니피그에게 주어 죽는지 안 죽는지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약을 먹는 데는 모험이 따릅니다. 나을 수도 있지만 그 약이 여러분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어쩌면 모든 사람이 기니피그와 같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하지만 이 처방전에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또 참으로 훌륭한 의사라면, 자기 약에 대한 믿음이 많은 의사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부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의사들은 겁이 많아서 종신형 죄수에게 그 처방대로 약을 먹게 하고, 살아남으면 풀어 줍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참된 의사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오셔서 그 처방대로 직접 약을 드셨습니다. “나는 있다!”입니다. “나는 있을 것이다!”가 아닙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그분이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그리스도이신 줄 제가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얼마나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이미 그것을 보았습니다.” 갈보리에서 그분은 직접 주사를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에 죽음은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사람들이 그분께 죽음을 주입했지만, 그분은...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이기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직접 주사를 맞으셨으며,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를 받은 의사들을 내보내 처방전을 쓰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제 네가 그것을 받았구나. 내가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노라.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내가 하늘에서 묶으리라. 네가 땅에서 풀면 내가 하늘에서 풀리라.”
오순절 날 사람들이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예방 주사를 맞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베드로가 처방전을 읽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자녀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언제든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을 쓰겠노라!” 처방전에 함부로 손대지 마십시오. 그러면 죽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약하게 만들어서 교파의 물에 불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주입하여 더욱 죽게 만드는 방부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형제님, 참된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길르앗에 유향이 있습니다. 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처방전에 함부로 손대지 마십시오. 적힌 그대로 처방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십니다. 신조나 교의나 교파에 책임을 지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십니다. 처방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 기초입니다.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등록이 되어 일을 시작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보십시오. 진영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은 바라바를 택했습니다. 복음이 세계 곳곳을 거듭 지나갔고, 위대한 표적과 이적들이 부흥을 뒤따랐지만, 그들은 들어와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 대신 바라바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어리석은 짓 따위를 하게 하느니, 다른 교회들처럼 점잖고 격식 있게 하겠습니다.” 이제 그들은 로마와 그 모든 것을 한데 모았습니다. 하나의 바라바입니다. 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큰 진영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진영 밖으로 나가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나아갑시다... 성문 밖에 계신 그분께(보십시오!),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나아갑시다. 무엇 때문에 그분이 치욕을 당하셨습니까? 감리교인이나 침례교인이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리새인이거나 사두개인이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입증된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무엇 때문입니까? 입증된 말씀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내가 성경에 있는 모든 질문의 답이 아니라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이셨습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제가 얼마 전 여기서, 아니면 어느 집회에서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여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날 아침 제가 다람쥐 사냥을 가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그 산에 세 개의 큰 줄기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 있었고, 우리는 거기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가까이 다가가 모자를 벗고 소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곳으로 올라갔는데 한 음성이 숲을 울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의 예수는 구약의 여호와니라. 신실하게 머물러라.” 그 바로 아래가 그때 다람쥐들이 나타난 곳입니다. 다람쥐가 없던 곳에서 다람쥐들이 생겨났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사실입니다! 아시겠죠? 사실입니다! 제가 그 앞에 서 있는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바로 저 아래 켄터키에서... 그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오늘 밤 바로 여기 앉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구약의 예수님께서...
중국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세탁업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분이 중국인 세탁소에 가면, 그 사람은 깨끗한 흰 꼬리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고, 자기가 글을 써도 여러분이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면 작은 흰 종이 한 장을 집었습니다. 이를테면 여기 있는 이런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한 모양으로 찢었습니다. 한쪽 종이는 여러분에게 주고 다른 쪽은 자기가 보관했습니다. 여러분이 세탁물을 찾으러 돌아오면 “종이 조각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종이들을 가져다가 맞춰 보았습니다. 서로 맞으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돌려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예언, 모든 모형과 일치하셨습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과 일치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랑과 신실한 마음으로,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때의 메시지는 이때에 관해 성경이 말한 모든 것과 일치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더러운 옷이 있다면 맡기십시오. 여러분은 어린양의 피로 씻김을 받으셨습니까?
보십시오. 그분이 입증된 말씀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과 13절... 우리는 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도 그렇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그분의 이름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여러분에게 오는 치욕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그들의 진영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들이 내쫓았습니다. 여러분은 비웃음을 받고 조롱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날 제가 한때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디 이것을 개인적인 이야기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런데 제 시간은 다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열 쪽 정도가 있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보이시지요(보십시오. 아시겠죠? 좋습니다!)... 메모가 말입니다. 하지만 들어 보십시오. 처음 시작했을 때... 예수님께서 처음 시작하셨을 때를 보셨습니까? “오, 젊은 랍비로군. 오, 훌륭한 분이야. 우리 쪽으로 오십시오. 와서 우리에게 설교해 주십시오!” 그런데 어느 날 그분께서 그들과 마주 앉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 무리 가운데 있던 박사들과 지식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 사람은 흡혈귀야.” 아시겠죠? “사람의 피를 마시라는 거야. 우리는 이런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저 사람에게서 떠나. 제사장들이 저 사람이 미쳤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게 믿어!” 성경은 그들이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안수받은 설교자 칠십 명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들도 데리고 있을 수 없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가 왔던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너희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그분은 이런 일들을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대로 두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말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니? 뭐라고? 우리는 이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고기를 잡고, 함께 물가에 누워 지냈어. 그가 누워 흔들리던 요람도 보았고, 그의 어머니도 알고 형제도 알아. 누가 이런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 성경은 그들이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베드로와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내가 열둘을 택했노라. 너희 열둘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수천 명에서 열두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열둘을 택했는데 너희 중 하나는 마귀니라.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알았노라.” 그리고 “이제 너희도 그들과 함께 가려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분은 달래고 비위를 맞추며 “내 교회에 가입하면 집사로 세워 주겠소”라고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적인 속셈도 없으셨습니다. 설명조차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방금 그들에게 “내가 세상의 창건 이전에 너희를 알았노라. 나와 함께 기쁨을 누리도록 너희를 정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예정된 것입니다.
그 사도들은 거기에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줄곧 바로 거기서 자기들과 함께 계셨는데 어떻게 내려오셨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도 그것을 설명하실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도 설명할 수 없었고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그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분이 베드로에게 열쇠들을 주신 것도 당연합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우리는 확신합니다. 오늘날 약속된 말씀의 입증은 주님, 오직 주님뿐이신 줄 압니다. 오직 주님께만 생명의 말씀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런 것들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믿습니다!”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제 오라버니는 죽었습니다. 무덤에 누워 있고 썩어서 악취가 납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오, 세상에!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믿습니다. 주께서는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그리스도이신 줄 믿습니다. 기록된 성경에 비추어 주께서 그 자격을 갖추신 줄 믿습니다.” 그분이 “어디에 그를 묻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오, 세상에! 무슨 일인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바퀴가 제때에 맞물리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무덤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어깨가 조금 구부정한 작은 분이셨을 것입니다. 걸어오느라 지치고 피곤하여 작은 어깨를 떨군 채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두 발로 일어섰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의 한 여자가... 혹시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럴 뜻은 없습니다. 바로 이 교회에서 나온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인 한 여자가 어느 날 밖에서 저를 만나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저는 당신의 설교가 좋습니다. 하지만 설교에서 한 가지를 너무 지나치게 하십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많이 자랑하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책망하실 것이 그것뿐이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를 하나님으로 만듭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분에게 신성이 있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저 평범한 사람, 좋은 선생, 철학자였다고 믿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그를 하나님으로 만들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성경으로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제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분이 바로 말씀이십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내려가셨을 때 성경은 그가 우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주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분이 누구셨는지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습니다. 그들의 슬픔 때문에 우실 때는 우시는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일어서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말씀하시자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다시 두 발로 일어섰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밤 그분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배가 고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배가 고프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빵 두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일곱 바구니를 거두셨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마실 것을 달라!” 하고 외치시자 사람들이 식초와 쓸개를 드렸습니다. 그분은 외치는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부활절 아침 죽음과 지옥과 무덤의 모든 봉인을 깨뜨리고 일어나셨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날 밤 제자들과 함께 나가셨던 작은 배의 뒤편에 누워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만이나 되는 바다의 마귀들이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조그만 낡은 배가 병마개처럼 물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그분은 너무 피곤하셔서 잠에서 깨지도 않으셨습니다. 잠드셨을 때는 사람이셨지만, 배의 브레일에 발을 올려놓고 위를 보시며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장사되셔서는 내 죄들을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그렇습니다! 진영 밖으로 나가십시오. 어떤 대가가 들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성별된 십자가를 지고 가리, 죽음이 날 해방시킬 때까지. 그 후 본향 가서 면류관 쓰리, 나를 위한 면류관이 있으니.
마치면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 판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는 공정하고 선한 사람이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도시에는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매춘업소를 열고 술 가게를 운영하며 술을... 그런 온갖 불법적인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법에, 연방 수사관에게 붙잡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도시의 모든 사람이 모여들었을 때, 그들은 그 사람이 그곳에서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매춘업소를 운영한 사람 말입니다. 그들이... 배심원단은 그 남자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사도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보석도 항소도 그 무엇도 없이 몇 년의 형을 내려 보냈습니다. 법에 그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정 밖의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말했습니다. “알고 있소?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당신을 미워할 거요! 그 사람들에게 그런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당신을 미워하는 거요.” 그들도 모두 도박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당신을 미워할 거요! 다시는 당신을 뽑지 않을 거요! 우리 중 누구도 당신에게 투표하지 않을 거요!” 그가 길을 걸어갈 때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그가 멈춰 서서 “잠깐만요! 한마디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의무를 정확히 수행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는 유죄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지키겠다고 맹세한 법에 따라 그에게 형을 선고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내 식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우리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도록 구원받은 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위해 서 왔습니다! 제가 하는 말 때문에 교파들이 저를 미워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분의 집에서,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는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우리는 세상의 미움을 받을지라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이 백성을 도와주셔서, 주님,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주님의 복이 머물게 해 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진영 밖으로 나가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이 너희 안에 있게 하라.” 그러니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그분의 생각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대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하기 위해 그분의 생각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그분의 생각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고, 아버지의 뜻은 그분이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오늘 밤 우리가 진영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찾게 하옵소서. 교회에 가입한다고 그분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목사와 악수하거나 어떤 신조에 서명하거나, 일 년 중 며칠은 일요일 학교에 나가겠다고 약속하거나, 그런 일을 해서는 결코 그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 안에서 그분을 찾을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날에 그분이 다시 쫓겨나 진영 밖에 계시리라고 약속된 것을 보오니, 이제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질 준비를 하고 진영 밖으로 나가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지만 우리를 그 진영으로 초대하신 분께 사랑받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여기 그분을 알지 못하고, 어떤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진영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이 이런 것들에 대해 “저는 그것이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령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라고 말했는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사용하여 침례받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한때는 달리 알지 못해서 그렇게 했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의 사람들도 달리 알지 못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천사라도 다른 것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 약속이 여러분을 위한 것, 똑같은 것, 참된 성령 침례라고 했는데, 어떻게 어떤 신조나 주의나 그 밖의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말씀을 기록하신 성령께서 어떻게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말씀을 부인하실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친히 “누구든지 여기에 한 말씀을 더하거나 여기서 무엇을 빼면 내가 생명책에서 그의 몫을 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부인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께서 어떻게 말씀에서 무엇을 빼시거나 말씀에 무엇을 더하실 수 있습니까?
여기 계신 친구 여러분, 그리고 녹음테이프가 전해질 보이지 않는 세상, 지금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신 친구 여러분, 오늘 아침의 가르침에 관한 메시지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았으니 그것을 마음 깊이 새기십시오. 조금 전에 제가 말한 이 처방을 아직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이제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저는 증인일 뿐입니다. 선거운동원일 뿐입니다. 지금 루이빌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와 같습니다. 그... 켄터키의... 그들은 자기 후보가 당선되도록 정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제 주님을 위해 정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밤 그분을 여러분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머리를 숙이고 마음도 낮춘 채, 손을 들어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게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제가 들은 이 모든 것을 참으로 원합니다. 저는 진영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 저 손들을, 저 손들을 보십시오. “저는 진영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제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짊어지겠습니다. 진영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두고 무슨 말을 하든, 진영 밖에 계신 그분을 따르고 싶습니다. 저는 나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 저 손들을 보셨습니다. 이 건물 안에서 백 명쯤, 어쩌면 그보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주님, 지금 그들 가까이에 무언가가, 다른 한 분이 계십니다.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분이 그들을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기 삶을 살펴볼 때 무언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 삶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빚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신실한 마음을 다하여 손을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 밤 그들이 양 우리의 큰 문에 이르도록 도와주옵소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들어오게 하옵소서.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에게 역사해 주옵소서.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런 결단을 내릴 수도, 손을 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딘가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과학에 따르면 중력이 그들의 손을 아래로 붙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그들의 생각에 와닿아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자신들을 생겨나게 하신 창조주를 향해 손을 들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오늘 밤 진영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주님, 회개한 뒤 첫걸음인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침례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에 본래의 믿음, 본래의 처방으로 돌아오라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이 만든 다른 처방들 아래서 죽어 가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자기 교파 안에서는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주님, 저는 주님의 처방을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의사이십니다. 의사가 계십니다. 길르앗에 유향이 있습니다. 오늘 밤 여기에는 죄로 병든 모든 혼을 치유하시고 모든 육체를 치유하실 의사께서 계십니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의사이시며 하늘과 땅의 위대한 창조주이신 주님, 지금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각자 마음속으로 “주 예수님, 지금 저를 도와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동안에... 여러분이 아직 침례를 받지 않았고 확신이 든다면, 제가 침례에 대해 설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확신이 든다면,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오직 그 길로... 여러분이 다른 방식으로 침례를 받은 채 그곳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그 예수님께서 “한 말씀을 빼거나 한 말씀을 더하는 자는, 그도 생명책에서... 그의 몫이... 빼앗기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모든 성경기록은 영감으로 주어졌으며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달리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감각이나 그런 것만 있었다면... 저는 감각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영 안에서 춤을 추고 방언으로 말한 것뿐이라면... 저는 그것도 믿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이고, 여러분이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분 안의 영이 그 말씀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면 그 영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일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성령이라면 자신이 기록한 말씀을 알아보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이제 나오실 준비를 하셔도 됩니다. 나사렛 예수님, 지금 가까이 오셔서 모든 마음에 말씀해 주옵소서.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이들이... 주님, 이렇게 든 모든 손은 메시지의 열매입니다. 주님과,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위대하고 위엄 있는 임재로부터 온 것입니다. 영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님이 여기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 거룩함입니다. 주님, 바로 지금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머리를 숙인 채,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기를 원하거나 회개하기를 원하거나 영의 침례를 구하기를 원하는 남자분들이 계시면 제 왼쪽에 열린 방이 있습니다. 여자분들은 오른쪽입니다. 그 안에 여러분을 안내할 분이 계십니다. 침례복을 비롯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계속 머리를 숙인 채 찬송합시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