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서 머리를 숙입시다. 주 예수님, 저희는 이 찬송을 부르며 저희가 믿는다는 것을 부족하나마 주님께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제 주님, 저희에게 계속해서 생명의 떡을 떼어 주시고, 주님의 말씀에서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우리가 만일… 제가 지금 “아멘”이라는, 그 자체로 충분한 한마디만 한다 해도 하나님의 모든 복이 여전히 이 회중 위에 머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앉아서 예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간증도 좋았고, 저마다 자신을 표현하는 여러 방식도 좋았으며, 처음 오신 분들의 말씀도 좋았습니다… 여기 침례교 형제님은 조금 잘못 생각하셨던 것을 사과하러 나오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그런 인간다운…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때, 그만큼 인간답게, 그만큼 신사답게 행동할 수 있는 분을 높이 평가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에게 사과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사과한 대상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님과 그 복음 전도자 형제님께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그 침례교… 아시다시피 저도 예전에 침례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저는 선교침례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제가 이분들 가운데 왔을 때… 형제님의 심정이 어떤지 압니다. 저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저는 몰랐습니다…
오순절 신자를 처음 보았던 경험이 기억납니다. 미시간주 도와지액에서였습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저는 낚시하러 도와지액에 갔다가 그곳에서 인디애나주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며 여러 곳에 예수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보였고, 그날 그곳 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저에게 강단에 올라와 몇 마디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교회에 속해 있느냐고 묻기에 침례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나이 든 흑인 한 분이 설교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팔십 대 후반이셨을 겁니다. 그 노인이 강단으로 나오는데, 거의 누가 부축해서 모시고 나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벨벳 옷깃이 달린 긴 목회자 예복을 입고 계셨고, 머리 둘레에는 하얀 털 같은 머리카락이 테두리처럼 조금 나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있고, 신학자들도 있고, 훌륭한 분들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분에게 이 예배를 맡길 수 있을까? 저 노인은 어디 의자에 앉아 쉬고 계셔야 할 텐데.”
그날 다른 분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에 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마 욥기 7장 20절을 본문으로 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장절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인용한 말씀은, 적어도 그 일부는 이렇습니다. “내가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외칠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다른 분들은 땅에서 일어난 일을 말씀하셨는데, 그분은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시작한 지 오 분쯤 되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분에게 임했고, 그분은 바닥에서 높이 뛰어올라 두 발뒤꿈치를 딱 부딪쳤습니다. 세상에! 이 강단의 거의 절반만 한 공간이 있었는데도 그분은 걸어 나가시며 말했습니다. “여기는 내가 설교하기에 자리가 너무 좁군요.” 그때 저는 스무 살쯤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연세 드신 분을 저렇게 만드는데, 내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새로 오신 형제님들을 위해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우리 교제에 들어오시는 것을 참으로 환영합니다. 아시겠죠? 여기 신부님 한 분도 앉아 계시다는 말씀을 들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 집안은 아일랜드계라 가톨릭입니다. 그리고 침례교를 비롯한 다른 분들도 두어 분 더 계셨습니다. 조금 전에 다소 혼란스러우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님들 가운데 아무도 그 일에 관해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제가 설명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샤카리안 형제님이, 여기 훌륭한 연사분의 말씀 후에… 주님의 오심이 너무도 가까이 이르렀음을 아는 기쁨으로 충만해져서, 우리에게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통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은사, 곧 통역에 관해서 성경은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잠잠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말하고 그것을 통역하면 그것은 예언이 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동시에 말씀하신 일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혼란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죠? 한 분은 통역하고 있었고, 다른 한 분은 예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것은…
형제님들께서 이해하지 못하셨다면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분은 정확하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각 말씀하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눈여겨보셨습니까? 다른 분은 자신도 너무나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영이 통역하는 한 분을 통해 예언하고 계셨고, 다른 한 분은 통역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이것이 분명해지도록… 우리는… 아닙니다… 때로는 자연적인 생각으로 볼 때… 오늘 아침 사과의 말씀을 하신 우리의 귀한 형제님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혼란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곧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이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일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 일에 관해 한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만, 모두들 짤막한 이야기를 하나씩 하셨으니 저도… 아시다시피 아까 그분, 그 나이 든 흑인분은 “내가 설교하기에는 자리가 너무 좁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경우에는 설교할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저는 설교를 좀 길게 하는 편입니다. 하루는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한 교회에서 이십 년 동안 목회하셨는데, 일요일 아침마다 언제나 정확히 삼십 분씩 설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에는 세 시간 동안 설교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회에서 그분을 불렀습니다. “목사님, 저희는 목사님께 참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성경의 편에 서 계신다는 것도 알고, 그것이 옳다는 것도 압니다. 또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깨끗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늘 저희를 바로잡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희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종이심을 믿고, 오늘 아침 메시지도 참으로 감사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집사회에서 말했습니다. “저희가 시간을 재어 보았습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정확히 삼십 분이었는데, 오늘은 세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말씀을 하나하나 다 감사하게 들었다는 점은 알아주십시오. 다 좋았습니다.” 이렇게 그 나이 드신 목사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씀드린 겁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들,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드리지요. 저는 아침마다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갈 때 작은 라이프세이버 사탕 하나를 입에 넣습니다. 그걸 빨아 먹지요. 그 사탕이 다 녹으려면 꼭 삼십 분이 걸립니다. 그러면 설교를 마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시간이 조금 지나친 것 같더군요. 그래서 뱉어 보았더니, 입에 단추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겠습니다. 단추가 들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이야기가 불경하게 들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그저… 아시다시피 하나님께도 유머 감각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교제하는 시간을 갖고, 저 나름의 소박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생명의 떡을 뗄 수 있는 이 큰 특권을 얻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신학자들로 말하면, 어젯밤 여기서 말씀하신 영국에서 오신 그분 같은 분이 계십니다. 아, 칠 학년까지밖에 배우지 못한 제가 그런 분 뒤에 나서는 것은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 뜻을 여러분께 풀어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말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제 뜻만은 올바르기를 바랍니다.
이제 성경을 읽읍시다. 여러분 가운데 함께 찾아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오늘 아침에는 잠시 선지자 예레미야의 책, 2장을 읽겠습니다. 이제 1절부터 읽겠습니다. 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를 기억하되 네가 씨 뿌리지 않은 땅 곧 광야에서 나를 따랐을 때 보여 준 네 젊은 시절의 친절과 네 정혼한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라. 이스라엘은 주에게 거룩한 것이요, 그의 소출의 첫 열매였으니 그를 삼키는 모든 자는 걸려 넘어지겠고 해악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주가 말하노라. 오 야곱의 집아, 이스라엘 집의 모든 가족들아, 너희는 주의 말씀을 들으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법을 발견하였기에 나를 떠나 멀리 가고… 허무한 것을 따라 걸으며 허무한 자가 되었느냐? 그들은,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시고 우리를 인도하사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의 땅, 가뭄의 땅, 사망의 그늘진 땅, 아무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아무도 거하지 아니하던 땅을 지나가게 하신 주께서 어디 계시느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풍요한 나라로 데려가 그곳의 열매와 그곳의 좋은 것을 먹게 하였는데 너희는 거기에 들어와 내 땅을 더럽히고 내 유산을 가증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주께서 어디 계시느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고, 법의… 손은 나를 알지 못하며 목양자들도 내게 범법하고 대언자들은 바알을 의지하여 대언하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따라 걸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와 변론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너희 자녀들의 자녀들과도 변론하리라. 이는… 이 깃딤 땅을 건너가서 보고, 또… 게달에서 부지런히 고찰하여 이런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 어떤 민족이 자기 신들을 바꾸었느냐? 그것들은… 신이 아니니라. 그러나 내 백성은 자기들의 영광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과 바꾸었도다. 오 하늘들아, 너희는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무서워하며 두려워할지어다. 너희는… 황폐하게 될지어다. 주가 말하노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렸고 자기들을 위해 물 저장고들 즉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저장고들을 팠느니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은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기서 “터진 웅덩이”라는 제목을 택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모든 성경기록은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며 우리는 바로잡음을 받고 깨닫기 위해 주님의 집에 온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도중에 어떤 작은 일이라도 보게 되면… 조금 전에 우리에게 말씀하신 군인분이 어떤 것들에 관해 말씀하셨듯이, 어쩌면… 다른 나라에 어떤 미사일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것이 있다면, 군사 전략상 그것에 대응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이 설교하는 교구든, 복음 전도자가 활동하는 전도 현장이든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막 시작되고, 싹트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분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사람들의 생각에서 그것을 아예 지워 버려, 사람들이 그 가까이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그런 처지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 예레미야가 예언하던 때는 이사야가 죽은 지 약 육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약 육십 년 동안 큰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하박국과 몇몇 소선지자들은 있었지만, 마지막 대선지자는 이사야였습니다. 그동안 백성에게는… 그들을 불러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점점 멀어졌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예언하러 왔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바로 이런 상태에까지 흘러간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도… 그는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예언했으며, 그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는 물론 다니엘이 나왔습니다. 다니엘은 그들이 그곳에 있어야 할 칠십 년에 관해 성경기록을 통해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다른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목에 멘 이 멍에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 년 안에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다시 데려오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잘못 예언한 그 선지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다. 그는 바로 그해에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당시 백성의 상태도 보았습니다. 저를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겨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려는 내용, 몇몇 성경 구절과 간단한 메모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경 구절 같은 것을 적어 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물다섯을 두 번째로 넘기고 나니 예전처럼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적어 두고 그것을 보며 어디로 이어 가야 할지 대강 압니다. 또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밖의 일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여기저기 다니며 집을 비우다 보니, 마땅히 해야 할 만큼 깊이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자… 그 시대의 큰 선지자는 예레미야였고, 그는 아모스와 그 밖에 일어났던 많은 선지자들과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민족의 상태를 보고 격동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때는 한 나라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것이 특정 집단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 나라의 전반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예레미야 시대와 매우 비슷한 상태를 보게 됩니다. 나라 전체가 다소간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강단의 나약함이 있었습니다. 강단이 곧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 움직이시는 것처럼 모든 교회 안에 계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이것이 참으로 그러했음을 보게 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아모스였던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이 선지자가 아니라 선지자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자가 포효하면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혹시 황야에서 진짜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를 들어 보신 분이 계시다면… 여기 우리에 갇힌 사자들이 내는 소리는 그저 야옹거리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황야에서 사자 한 마리가 포효하면 모든 것이 귀를 기울입니다. 저는 사자를 사냥하려고 밀림에 엎드려 있어 본 적이 있습니다. 사자는 짐승의 왕입니다. 그 사자가 포효하면 딱정벌레들까지도 울음을 멈춥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자칼과 하이에나가 울부짖고, 다른 동물들과 비비, 원숭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딱정벌레들이 울어 대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사자 한 마리가 포효하기만 하면 모든 딱정벌레가 울음을 멈춥니다. 아시겠죠? 모든 것이 사자를 두려워합니다. 사자를 죽일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사자는 짐승들 가운데 왕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는 “사자가 포효하면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저는 오늘날의 상태가 다시 그 말씀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벽에 쓰인 글씨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언하고 우리가 마지막 때에 있음을 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우리는 모든 교파 안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부터 모든 개신교회, 인도의 불교도들과 그 밖의 사람들,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함께 불러 모으고 계십니다. 그들을 한데 모으고 계십니다. 저는 이런 날이 오는 것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우리가…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 가장 큰 특권 가운데 하나가… 만일 제가… 제가 알았더라면… 세상이 있기 전에, 우리가 혼들이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부이기에… 우리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영생은 오직 한 가지뿐이며 그것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 생각할 수 있고, 하나의 존재를 이루고 있었다기보다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지가 그분의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들이 저의 일부이고, 제가 제 아버지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으로 그분의 아들딸들입니다. 그때 제가 지금 아는 것처럼 알 수 있었고, 시간의 전 과정을 내다볼 수 있었으며, 그분이 제게 “너는 어느 시대에 살고 싶으냐?”라고 물으셨다면, 저는 “바로 지금 이 시대입니다”라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세계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지러 오는 바로 그 전야입니다. 저는 모든 시대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여 보내신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고발당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두 가지 큰 죄로 고발당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행한 그 두 가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거기서 우리에게 유익을 얻고자 합니다. 그들은 생수의 샘이신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자기들을 위해 웅덩이를 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서 돌아서서, 자기 손으로 만든 무언가를 파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덩이들은, 보십시오, 그가… 그것들은 터져서 물이 새고 있었습니다. 터진 웅덩이는 물을 담아 둘 수 없습니다. 물이 새어 나갑니다. 저는 농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오래된 웅덩이가 어떤 것인지, 그것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압니다. 저는 이 물 새는 웅덩이가 오늘날을 아주 잘 보여 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우리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백성을 모으고, 교회들을 모으려고 시도한 모든 것은 언제나 지적인 노력의 영역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모든 감리교인을 침례교인이 되게 하려고 했고, 그 반대로도 하려고 했습니다. 여러 교파 사이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는 곳은 오직 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둘 곳을 택하였고, 내가 사람들을 만날 곳은 오직 그곳뿐이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둘 곳을 택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두신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만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분은 자신의 교회를 만나시는 곳이 있으며, 그 이름을 택하셨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참된 신자를 그곳에서 만나십니다. 곧 그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기로 택하신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곳은 그리스도 안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 그 흘리신 피 아래에서 우리가 모두 만날 수 있고, 거기서 참으로 진실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곳에서… 인간을 만나실 곳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이해에 근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이브는 그분의 계획에 정확히 들어맞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브가 사탄의 지적인 생각을 받아들인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구속의 장소를 택하셨고, 그것은 지적인 생각이 아니라 피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허공을 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단추는 원하지 않으니 최대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물이 새는 웅덩이들입니다. 우리는 그 일이 분명히 다시 일어났음을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우리가 한 모든 시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종이 기울이는 어떤 노력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외와 존경으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그 사람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온 땅을 누비는 거대한 복음 전도 체제들 같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로 데려오기 전에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그곳뿐입니다.
얼마 전에 동부에 계신 어떤 분이 제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애리조나로 이사 가셔서 거기에 안전한 곳을 마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메시지가 어떻게 왔는지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알래스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캘리포니아를 따라 아래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제게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땅이 흔들리고 여러 일이 일어난다면, 안전지대는 어디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안전지대는 한 곳입니다.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입니다. 제가 아는 곳은 오직 그곳뿐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불렸습니다. 제 생각에 이 선지자를 약하게 만든, 아니 울게 만든 것은, 그가 선지자였고—주의 말씀은 그런 사람에게 임합니다—백성이 자기들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돌이킬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곧장 포로로 잡혀가는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둔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한 나라로서 거두었습니다. 아니, 뿌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두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오후에 “해산의 고통”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면서 이것을 다루겠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 없습니다. 뿌린 것을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를 왜곡하고, 사람들을 소위 기독교라는 이런 것들로 잘못 이끌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넘어가게 하신다면, 무어 형제님이 언젠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일으켜 그들을 불태우신 데 대해 사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의로우시고, 우리는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뿌린 것을 거두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말씀에 합당합니다. 우리도 뿌린 것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들은 생수의 샘이신 그분을 떠나 자기들을 위해 웅덩이를 팠습니다. 여기 웅덩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웅덩이는 우물 대신 쓰려고 사람이 만든 물 저장 탱크입니다. 누군가 땅을 파서 만든 것이지요… 웅덩이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오늘 아침 시골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군요. 저는 예전에 살던 곳의 그 오래된 웅덩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합니다. 그 물을 마시는 것이 늘 무서웠습니다. 사람이 만든 물탱크였으니 결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웅덩이는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대개 그다지 훌륭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시간을 주기에 따라 정해 놓으신 것을 보십시오. 지구가 해마다 돌고, 지나갈 때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해가 지는 것은 한 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계라도 한 달이면 틀림없이 여러 분씩 오차가 날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완전하고, 사람이 하는 일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니 완전한 것을 가질 수 있는데 왜 사람이 만든 것을 받겠습니까?
저는 우리 오순절 사람들에 관해서 늘 그렇게 말해 왔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아는 것은, 물론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성경에서도 그랬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또 어떤 이는 “나는 실라에게 속하였다”라고 했고, 그 밖에도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한 일이나 하고 있는 일을 흉내 내려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진짜가 가득한데 왜 거짓된 모방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 약속들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주어졌는데 왜 다른 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성경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인데 왜 신조나 교리를 붙들겠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서 “누구든지 여기서 한 말씀을 빼거나 여기에 한 말씀을 더하면, 생명책에서 그의 몫이 제하여지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거기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인류를 땅 위에 두셨을 때, 그들에게 그분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슬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슬에 의지해 지옥 위를 건너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튼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맨 처음에 나옵니다. 말씀 하나를 어긴 것만으로 인류는 죽음의 어둠 속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중간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의 일부나, 백 가운데 아흔아홉이 아니라, 모든 말씀입니다. 이브와 아담에게 그러했던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서는 누구든지 여기서 한 말씀을 빼거나 여기에 한 말씀을 더하면…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 일에 관한 하나님 자신의 생각인데, 왜 여기에 누군가의 생각을 집어넣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되고, 내 말은 참되다 할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그 선지자가 겪었던 문제가 그것입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주의 말씀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거기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이 물탱크들을, 우리가 본래의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삼으려고 했던 이런 체제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그 말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히브리서 13장 8절은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틀림없이 진리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동일하십니다. 모든 원리에서 동일하십니다. 여러분 침례교인, 감리교인, 가톨릭교인, 장로교인, 그 밖의 분들이 그 임재를 기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속 어딘가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지적인 방식이었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로서 그분 안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고자 하신 그 큰 감격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에 가서 가르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가서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한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인도의 봄베이, 남아프리카와 그 밖의 여러 곳에서 제 집회를 후원하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선교사들이 그것을 말로, 혹은 지적인 생각으로 배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회 중에… 성령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단 한 번의 제단 초청으로, 담요를 두른 원주민 삼만 명을 그들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곳에는 거의 세상에 태어났을 때만큼이나 벌거벗은 여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고 손을 드는 바로 그 순간… 성령께서 그곳에 임하셔서 한꺼번에 이만 오천 명을 치유하셨고, 그들은 휠체어와 간이침대와 들것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음 날 그 도시의 시장은 그것들을 가득 실은 차들이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을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벌거벗은 채 서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마자, 팔을 모아 몸을 가리고 자기 남자들 앞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미국에서 어떻게 자신을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다고 하는지 의아합니다. 해마다 우리 여자들은 옷을 더 벗는데, 여러분은 더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더 옷 입을수록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길에서 하는 행동을 보고 정신이 정말 온전한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게 행동하면서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마귀의 미끼로 내주어 혼들을 지옥에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레미야 시대처럼 타락한 상태에 있습니다.
다시 웅덩이로 돌아갑시다. 웅덩이는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물을 채울 수 없고, 채워지려면 그 지역에 내리는 비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에 내리는 비와 그 지역의 부흥 집회들, 곧 여기서 작은 부흥 집회를 하고 저기서 작은 부흥 집회를 하면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 자체로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할 수가 없어 비가 와서 채워 주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러면 그 웅덩이는 어디서 비를 받는지, 어디서 물을 얻는지 봅시다. 헛간이나 외양간 지붕에서 받습니다. 바람에 날려 지붕에 쌓인 먼지와 온갖 더러운 것이 빗물에 씻겨, 사람이 만든 물탱크인 그 웅덩이 안으로 곧장 들어갑니다. 거의 오물 구덩이처럼 됩니다. 온갖 동물이 있는 헛간, 축사 마당의 냄새 같은 것들이 내려앉고 바람에 먼지며 여러 가지가 날아드는 그 지붕에서 씻겨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다 그 지역에 비가 내려 그 빗물을 씻어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물은 사람이 만든 홈통과 사람이 만든 배수관을 지나, 사람이 만든 물탱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 이르면 물이 더럽습니다. 너무 더러워서 걸레로 걸러야만 마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지붕에서 씻겨 내려온 물이 사람이 만든 홈통과 배수관을 통해 사람이 만든 물탱크로 들어가고, 그 위에는 벌레 같은 것을 좀 걸러 내려고 사람이 만든 거름걸레를 씌워 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물이 사람이 만든 이 교파… 아니, 물탱크 안에 며칠 동안 고여 있으면… 실례했습니다. 자, 갖가지 신학과 그런 것들이 모두 씻겨 그 안으로 들어온 뒤… 그렇게 며칠 동안 고여 있으면 물이 썩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곧 메시지를 보내시면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새롭게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창시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개혁자라고 하든 무엇이라고 부르든—그가 죽은 뒤에 사람들은 하나의 체제를 세우고 조직을 만듭니다. 그것을 조직으로 만드는 순간, 거기서 죽어 버립니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언제나, 줄곧 그랬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가톨릭 신부님께 존중의 뜻을 표하면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조직하셨을 때… 조직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교회를 조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조직이 아니라 출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교회를 시작하셨는데, 마침내 니케아, 로마에 이르러 사람들이 그것을 조직했습니다. 교회가 권능을 잃은 곳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그 뒤로 루터의 종교개혁에 이르렀고, 그것은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 때, 모두 함께 그것을 받아들이고 모두 함께 전진하는 대신 루터교회를 만들어 이 무리와 갈라섰습니다. 그러고는 죽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성화, 곧 은혜의 두 번째 역사에 관한 메시지를 가지고 존 웨슬리를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와 애즈베리 뒤에 사람들이 그것을 조직했고, 그것은 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은사들의 회복과 함께 오순절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조직했고, 죽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 각각의 세대에서 남은 자들을 불러내고 계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와 함께 모일 때입니다. 저는 이 순복음 실업인회가 이런 벽들을 허물고,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안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원리 아래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이것이 조직이라면 저는 지금 당장 이 강단에서 내려가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교제여야 합니다. 어떤 신조를 중심으로 하는 교제가 아니라, 그분의 부활의 권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교제여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가져오고, 출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생이 있기 전에 먼저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출생은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일입니다. 어떤 출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돼지우리에서든 어디에서든 출생은 그렇게 어수선하고 지저분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일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죽을 준비가 되었을 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가 열리고, 삶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인 것은 어떤 이론이나 신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기록된 말씀만으로도 안 됩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살아 있게 하셔야 합니다. 신학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죽은 채 놓여 있습니다. 제 손에 밀 한 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나게 되는 과정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 밀이 결코 살아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박사학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철학박사든 법학박사든 원하는 어떤 학위가 있어도, 성령께서 그것 위에 임하셔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여러분에게 살아 있게 하시기 전에는 그 밀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배움도 헛된 것입니다.
마치 며칠 전 저녁에 여기서 그 영국분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분에게는… 그토록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찾으려면 자기가 알던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했고,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의 교육 체제 안에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제가 무지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차이를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교육은 결코 생명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생명을 가져오려면 하나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그 생명은 단순한 지적인 부흥에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의 부흥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오늘 그 말씀이 임하여 살아 움직이게 되면, 사도행전 2장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랬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분위기를 조성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늘 자녀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맞습니다! 조금 전에 제 딸 리브가가 들어와 앉는 것을 보니 기뻤습니다. 혹시 제가 어떤 여자에게 눈짓하는 것을 보신 분이 계시다면, 그 아이는 제 딸이었습니다. 딸이 들어와 앉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영의 침례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집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목적이 그것입니다.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보스워스 박사님은 예전에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달걀 하나를 가져다가 강아지 밑에 놓아도 병아리가 부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달걀이고, 알맞은 분위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상관없습니다. 알맞은 분위기 안에 있으면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 나옵니다. 그것을 이루는 것은 분위기입니다. 어느 교파의 이름표를 달고 있느냐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예전에 소를 몰았습니다. 목장 아래쪽의 사육지에서 소들을 데리고 올라가 숲에 풀어 놓을 때, 관리인이 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친 울타리의 문을 통과할 때, 그는 그곳에 서서 살폈습니다. 낙인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온갖 낙인이 찍힌 소들이 그곳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꼭 보았습니다. 혈통표였습니다. 순종 헤리퍼드가 아니면 그 숲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숲에서 방목하는 것은 헤리퍼드 사육 협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혈통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혈통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심판 날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제가 감리교인이었는지, 침례교인이었는지, 오순절 교인이었는지, 장로교인이었는지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피의 표를 찾으실 것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 웅덩이들은 한동안 그대로 두면 물이 고여 썩고, 쓸모없게 되는 것을 봅니다. 또 개구리와 도마뱀, 뱀, 벌레, 병균과 그 밖의 것들이 사는 곳이 됩니다. 그 안으로 밀려들어 온 것들이 고여 썩어 있기 때문입니다. 헛간 지붕이나 헛간 가까이에 있는 집 지붕, 또는 더러운 것이 있는 어느 곳에서든 씻겨 내려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갖 벌레와 병균과 그 밖의 것들이 이 웅덩이 안으로 얼마나 씻겨 들어가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만든 어떤 체제든 그대로 보여 주는 완벽한 예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실패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잃어버린 상태이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죄 가운데 세상에 태어나고, 거짓말을 하며 세상에 나옵니다.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인데,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거룩한 교회도 없습니다. 성령이십니다. 거룩한 교회나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계신 성령이십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아시겠죠? 베드로와 그 사람들이 서 있던 산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산이 거룩했던 것이 아니라, 그 산 위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곳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 성령 그분 자신이십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고, 거짓말을 하며 세상에 나온 인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어떤 체제든 인간을 바로 그 상태에 붙잡아 둡니다. 그런 체제는 지적인 눈을 가려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교회에 속해 있다.” “내 이름은 명부에 올라 있다.” “나는 이런 일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런 분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입니다. 다 좋은 말처럼 들리고, 실제로 좋은 일입니다. 그것에 반대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여,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을 볼 수도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그 안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이 침례교 복음 전도자가, 거기 서서 비판하고 조롱하던 그분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분 안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위선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생각으로만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든 복을 가져다가 지나간 날에만 속한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젊은 침례교 설교자 한 분이 제게 왔습니다. 오늘 아침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분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하시는 일 가운데 한 가지가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은… 저는 형제님이 신실하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고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잘못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도 잘못된 것을 딱 한 가지만 찾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잘못하고 계신 것이 이것입니다. 세상에 사도적 사역을 소개하려고 하십니다. 사도적 사역은 사도들과 함께 끝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침례교인으로서 침례교인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전부가 다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은 “물론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한 말씀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도적 복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사람들에게 임하는 곳을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제 그 복이 사람들에게서 떠난 때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 말씀에서 그것을 제시할 수 없다면, 그런 생각은 버리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님,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사도적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너희 각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거두신 곳이 있다면, 오순절 날 베드로가 한 말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아시겠죠?”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어 가시는 사랑하는 어린양,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결코 그 권능을 잃지 않으리, 속량받은 하나님의 온 교회가 구원받아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그때 더 고귀하고 더 감미로운 노래로 구원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노래하리, 이 서툴게 발음하고 더듬거리던 혀가 무덤 속에 잠잠히 누울 때.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이것을 믿고 붙들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것을 굳게 지키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한 번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조직된 종교나 조직된 체험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결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순수하게 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과거 어느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런 체제를 쓰신 적이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아, 교인들을 얻고 그런 일은 하겠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진짜 하나님의 씨, 오순절 날 임했던 것과 같은 복입니다. 그것은 결코 조직을 통해 오지 않습니다. 출생을 통해, 다시 태어남을 통해 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그들이 그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그분을 버렸습니다. 샘들을 공급받고도 자기들을 위해 웅덩이를 팠습니다. 사람이 저절로 물이 솟는 분수 우물에서 마시고 있으면서, 다시 웅덩이를 만들어 거기서 마시려고 한다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아시겠죠? 선지자가 한 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버렸고, 생수의 샘인 나를 떠나 자기들을 위해 웅덩이를 팠는데, 그것들은 터져 물이 새고 있느니라.”
아시겠죠? 무언가… 그들은 자기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 혹은 자기들이 해 놓은 일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조직된 종교의 어리석음입니다. 언제나 애쓰는 것은… 자신들도 그 안에 무언가를 보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온갖 체제와 단체와 여러 가지를 갖추어야 하고, “나는 여기에 속해 있다”, “나는…”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저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대신 자신을 내세울 무언가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식대로 하시도록 맡기는 대신 자기들의 방식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 그런 체제들이 교회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닌… 각각의 체제마다, 하나는 이 방식을 원하고 다른 하나는 저 방식을 원합니다. 감리교인이면 이렇게 보아야 하고, 침례교인이면 저렇게 보아야 하며, 장로교든 가톨릭이든 그 밖의 무엇이든 저마다 체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터진 웅덩이인 너희 방식을 고집하며 생명의 길인 내 방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물이 솟구치는 분수 우물을 떠나 자기가 만든 터진 웅덩이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웅덩이를 파서 헛간 지붕 위의 쓰레기가 그 안으로 씻겨 들어가게 하고, 거기서 마시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입증하여 여러분에게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을 받아들이는 대신, 교회 제도에 따른 성경 이해를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은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해석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해석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심으로 해석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처음에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고, 빛이 있었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처녀가 수태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처녀가 수태했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고 나타내며 증명하심으로 친히 해석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선지자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 곧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들로 그에게 나를 알리고 꿈들을 통해 그에게 말하리라.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를 두려워하라.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하시고, 그 사람이 그 말씀이 이렇다고 말했을 때,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은 이런 뜻이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말하면, 그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는 굶주린… 손에 든 새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그 자녀들, 그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습니다. 그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분수 우물이 있는데 왜 웅덩이의 물을 마시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생명의 샘이란 무엇입니까? 생명의 샘, 생수의 샘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분수 우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제 웅덩이와 생수의 샘, 곧 분수 우물과 오래된 터진 웅덩이의 차이를 보시기 바랍니다. 웅덩이들에는 벌레와 도마뱀, 개구리, 병균과 그 밖의 것들이 가득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여기 분수 우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스스로 유지됩니다. 많은 돈을 끌어들이려고 어떤 거대한 체제를 갖출 필요가 없고, 많은 교인을 가입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이 그 지체들을 지탱합니다. 그들 안에서 생명의 영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물을 보십시오. 신선하고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웅덩이가 아닙니다. 사십, 육십 가지의 서로 다른 생각이 주입되어,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이 견해가 옳다고 하며, 사람들이 하듯 표결에 부치고 의견을 물어서 교파를 만들어 놓은, 그렇게 고여 썩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순수하고 깨끗하며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짜 분수 우물입니다. 그 권능의 비밀이 그 안에 있음을 보십시오. 사람은 그것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 밑에 있는 어떤 압력이 물을 밀어 올리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인디애나주의 수렵 관리인이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해리슨군에 있는 어떤 우물, 아니 샘을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물을 뿜어 올렸고, 언제나 가장 행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땅에 눈이 덮이든, 얼음이 얼든, 얼마나 춥든, 그 샘은 여전히 솟아올랐습니다. 사람이 만든 오래된 연못들과 물탱크들은 얼어 있었습니다.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단단히 얼어붙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교파든 영이 조금 부족하거나 분위기가 조금만 바뀌어도 얼어붙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수 우물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계속 뿜어 내며 밖으로 밀어냅니다. 애초에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무언가 들어오더라도 그것을 밀어내 버립니다.
그 샘은 그렇게 계속 솟아올랐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루는 그곳에 앉았습니다. “이 샘과 잠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저는 모자를 벗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기쁘니? 왜 그렇게 솟아오르니? 사슴들이 가끔 네 물을 마시기 때문이니?”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니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네 물을 마시기 때문이니?”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무엇이 너를 그렇게 순수하고 깨끗하게 하니? 네 안에서 무엇이 솟아올라 너를 그렇게 솟아오르게 하고, 늘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며, 아무것도 너를 얼어붙게 할 수 없도록 하니? 너는 공중으로 뿜어 오르고, 아무것도… 깨끗한 물이구나.” 그 우물이 제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아십니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솟아오르는 게 아니에요. 제 뒤에 있는 무언가가 저를 솟아오르게 하는 거예요.” 바로 그런 것입니다… 표현은 서툴지만 제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체험도 그렇습니다. [불분명한 말.] 그것은 여러분 안에서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우물물입니다. 아시겠죠? 거기에는 여러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물탱크들은 얼어붙을 수 있고, 사람들은 부흥이며 여러 가지를 애타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샘 아래 있는 사람, 그 샘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밤낮으로 계속됩니다. 그렇습니다. 그 지역의 비나 부흥 집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생명의 샘을 주리라.” 그 사람 안에서 솟아나는 샘입니다. 그 안에는 날마다 신선하고 순수하며 깨끗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입에 있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스스로를 입증하고, 스스로 말합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기쁩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서 솟아오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감추어진 권능입니다. 보십시오. 그 비밀은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마시고 그 물을 쓰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자신을 거저 내줍니다. 여러분이 나서서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감리교인이니까 부흥 집회를 하려면 감리교회에만 가야 해. 여기로 가야 해.” 그러나 만일… “나는 오순절 부흥사니까 오순절 교회에 가야 해.” 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안에 그 솟아나는 우물물, 그 샘이 있고 여러분이 거기서 마시고 있다면, 차별이 없습니다. 지나오는 누구에게나 주게 됩니다. 가톨릭교인이든 개신교인이든 유대인이든 무신론자든 누구에게나 기꺼이 생명의 소망을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 안에는 참으로, 참으로 그 일을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를 보십시오. 그것은 펌프질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겨 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펌프질해서 끌어올립니다. 저는 그런 것을 너무 많이 보아서 이제는 진저리가 납니다. 무언가를 억지로 끌어올리고, 음악을 잔뜩 연주하고, 위아래로 뛰거나, 시내에 인쇄물을 잔뜩 뿌리고 거대한 간판들을 내겁니다. “이 시대의 인물!” 이 시대의 인물은 오직 한 분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사자는 오직 한 분이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펌프질해서 끌어올릴 필요도, 끌어내릴 필요도, 가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거저 받으면 됩니다. 아멘! “나는 생수의 샘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 자기들을 위해 물탱크들을 만들러 갔느니라.” 펌프질하고, 또 펌프질하고, 당기고, 가입하고, 파는 것, 그 밖의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거저 받아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거름걸레로 쓸, 사람이 만든 신학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불분명한 말.] 사람이 만든 어떤 신학, 어떤 교육 체제, 여러분의… 그… 자기 의를 내세우는 종교, 그저 종교 체제라는 어떤 웅덩이, 여러분은 그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위에 걸레를 놓으면 공중으로 떠밀려 올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손댈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유지됩니다.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사람이 왜 그런 것을 떠나 어떤 체제에 가입하려고 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름걸레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채워지려고 그 지역의 비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나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제가 예전에… “오늘은 기분이 영 가라앉았어요.” 아, 세상에! 일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저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기쁩니다. 그분은 저의 생명이십니다! 아멘.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생명, 곧 풍성한 생명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는지 보십시오. 그 권능과 순수함은 그 안에 있습니다. 웅덩이나 다른 어떤 체제에서 가져온 마중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어떤 교제 회원증을 가지고 계십니까? 제대로 된 침례교인인지 봅시다. 회원증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아니면 제대로 된 오순절 교인인지, 일신교인지, 둘을 믿는 쪽인지, 셋을 믿는 쪽인지, 그 밖의 무엇인지 확인하려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마중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흘러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게도 이런 오래된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물을 퍼내려면 물을 부어서 이 오래된 흡입 펌프에 마중물을 넣고, 또 넣고, 또 넣어야 했습니다. 물을 더 부어 넣고, 그저 부어 넣는 겁니다. 벌레 같은 것을 퍼내려고, 벌레 같은 것이 잔뜩 든 물을 붓는 것입니다. 체제에 따라 하는 어떤 부흥 집회들이 꼭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여러분은 주는… 교회 회원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 샘에 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생수의 샘을 떠나 그런 오물 구덩이에서 마시려 하겠습니까?
억지로 펌프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권능이 그 안에 있습니다. 마중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그 자체의 생명이 그 안에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바로 그 개인 안에 있습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생명의 싹을 자기 안에 지닌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것은 한 번만 맛보아도 온갖 성직자들이 확신하게 됩니다. 가톨릭 신부님에게 물어보십시오. 침례교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누구든 좋습니다. 이 놀랍고 신선한 분수 우물의 물을 한 번만 맛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굶주린 혼은… 어쨌든 목마른 사람이라면 확신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목마르지 않다면… 이 침례교 형제님도 처음에는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이 마르자 그 물이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목말라야 합니다. 그 복된 갈증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 복이 있나니, 이는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친구들이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복된 샘입니다.
누가 왜 그것을 늪과 바꾸려고 하겠습니까? 분수 우물을 버리고 벌레와 오염으로 가득 찬 늪물, 사람이 만든 온갖 이론으로 가득한 물을 택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하나를 더하거나 말씀 하나를 빼면, 생명책에서 그 사람의 몫이 제하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에 이 말씀을 입증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왜 묵은 만나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오염되어 온 어떤 체제의 펌프를 붙들고 펌프질하겠습니까? 마르틴 루터의 시대, 이런 시대, 저런 시대, 다른 개혁자들의 시대에는 그 만나가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전에 내린 만나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은 날마다 만나를 거두어야 했습니다. 새것을 얻어야 했습니다. 조금 오래되면 썩었습니다. 분해되지 않고는 썩을 수 없습니다. 그 안에 세균이든 무언가 그것을 썩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체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큰 부흥에서 다음 부흥이 올 때까지 그대로 놓여 있으면 오염됩니다. 벌레가 가득해집니다. 우리가 예전에 ‘꿈틀꼬리’라고 부르던 것,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벌레들로 가득 찬 웅덩이처럼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의 체험에 문제가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꿈틀꼬리들로 가득 차서, 여기서 저기로, 또 다른 곳으로 꿈틀거리며 옮겨 다니고, 진실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빠져나와 저곳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갑니다. “나는 감리교인이었는데 침례교에 가입했어.” “나는 가톨릭교인이었는데 이런 사람이 되었다가 저런 사람이 되었어.” 그저 꿈틀꼬리들입니다. 아, 그런 것은 전부 잊어버리고 샘으로 오십시오. 아멘. 그 분수 우물,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로 오십시오. 저는 그분이 고갈되지 않는 생명의 샘이심을 믿습니다. 더 많이 얻을수록… 그 압력 안으로 들어오고, 들어가면… 더 차가워지고, 더 좋아지며, 그 맛이 더 달콤해집니다. 저는 이제 삼십삼 년 동안 그분을 섬겨 왔는데, 하루하루가 그 전날보다 더 달콤해집니다. 저는 결코… 그분은 이 물을 마시면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보십시오. 아, 이스라엘도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했습니다. 생수의 샘을 떠나 자기들을 위해 웅덩이를 파러 간 것입니다.
이제 잠시 은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에게는 법과 세칙들이 있어서, 여러분이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제게 종교적인 잣대가 있는데, 여러분이 거기에 딱 맞지 않으면, 여러분은… 들어올 수 없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잣대가 아니라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분에게서 마시는 일, 이 잣대로부터… 원망하는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분은 “내가 너희를 다시 찾아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보십시오. 그들을 시험하려고, 다시 찾아가려고 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홍해에서 원망하던 이스라엘은 그분을 따라 이집트 사람들의 고여 썩은 물을 통과하여 자유로운 백성이 되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자유로운 백성이 되도록 건너오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사해, 아니 홍해를 통과해 나오고, 그곳을 지나 광야로 들어가 자신들과 모방하는 자들 사이에 구별이 생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도 받지 않은 채 흉내 내려는 자들과 구별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로 그 바다에서 멸망했습니다. 파라오와 그의 군대는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돌아서 와서, …되지도 않은 채 그것을 흉내 내려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비교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 사람, 어떤 것을 흉내 내려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과 자신을 육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기 계신 인도 형제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봄베이 근처에 가면 그곳 사람들, 힌두교도와 그 밖의 사람들이 못 위에 눕고, 또… 유리 위를 걷고 불 속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려고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밀림 속의 어떤 사람이 자기 신에게 희생을 바치려고 하는 일을 육적으로 흉내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종교생활 가운데서 그것을 봅니다. 육적인 모방, 누군가 다른 사람처럼 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닮아야 할 본보기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 말씀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할 때에도 똑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계속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든 물탱크도… 그들이 갈라져 나온 뒤 광야를 지나는 여정을 시작했을 때, 모든 물탱크가 자기들에게는 말라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제님, 여러분도 약속의 땅으로 가는 이 여정을 시작하면 같은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들이 닫힌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설교자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성공회였는지 어디였는지, 어느새 그의 교회가 그를 쫓아냈습니다. 그의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자마자,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똑같은 일을 겪어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물탱크들은 모두 말라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여정, 약속하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여정에서… 그들이 만난 물탱크들은 말라 있었습니다. 그 여정을 위해 물탱크에 의지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정을 가면서 이곳에 가입하고 저곳에 가입하려 한다면, 세상의 어떤 물탱크도 그 여정을 지탱해 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한 개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인도하고자 하시는 그대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물탱크는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들은 언제나 참됩니다… 자기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비어 마른 물탱크들 가운데서—생각해 보십시오—여정 중에 있는 이스라엘이 사막에서 불평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도자로 세우신 자신의 종, 선지자 모세를 따로 한쪽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맞은 반석에서 생수의 샘을 여셔서, 믿는 그분의 자녀들이 멸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그것은 제게 은혜를 말해 줍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과 살아온 모습을 보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바로 오늘 아침 여기서처럼, 보십시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가톨릭교인과 모두를 위해 샘을 여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은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참됨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이 들려 올려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함께 있었습니다. 백성이 원망하며 죄를 짓고 있었고, 뱀에 물려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열려 있는 샘도 바로 그 샘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치유, 육체의 치유를 위한 것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반석이…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이 명령하신 대로 맞았을 때, 순수하고 깨끗한 물줄기들을 쏟아 냈습니다. 고여 썩은 물도, 오염된 물도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임재, 순수한 물이었고, 마신 사람을 모두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그것을 모형으로 읽기 때문에 사실임을 압니다. 그것을 당기거나, 펌프질하거나, 거기에 가입하거나, 사용하는 법을 배우려고 신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 줄 것입니다. 아시겠죠? “아, 성령을 받았다고요?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런 식으로 하십시오…” 그러나 아시겠죠? 그것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십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여러분이 성령을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은사는 칼을 집어 연필을 깎듯이 집어 쓰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성령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켜 드리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그것을 펌프질하거나 당겨 낼 필요가 없었고, “이 물을 어떻게 써야 합니까?”라고 물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쓰는 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그 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떤 신조나 교파에 속해 있든, 하나님을 향해 목마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성공회 형제님이 하셨던 것처럼 신학교로 달려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어젯밤 그 영국 형제님은 성공회로 돌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논해야 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이 큰 은사, 곧 방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목말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저 채워 주셨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목마르면 그분이 그냥 채워 주십니다. 어떤 통제를 받거나, 누군가에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은 한 개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가서 “이제 이것으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아니면 저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목이 마르면 마실 줄은 압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목마르다면 그 물을 마시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갈증을 위해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목마른 자녀들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거저 받아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아침 주리고 목마른 모든 남자와 여자를 위해서도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어쩌면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도 있을 것이고, 이제 막 구원받으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회원인 분들도 여기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옳게 행하고 싶지만, 물탱크에서 마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진리들을 결코 말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샘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갈증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샘에서 마시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어떻게 자기 사람들을 해방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체제나 교육의 웅덩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은혜로 이 물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을 입증하며 생명을 주는 근원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그 말씀과 그분의 물을 받아들였을 때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저… 자신이 생명을 받았음을 아십니까? 한두 가지 예만 더 들고 곧 마치겠습니다. 그 단추가 어디엔가 들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제가 자꾸 말을 이어 가지만, 일부러 그러려는 것은 아닙니다. 보십시오. 두 사람 정도만 예로 들어 봅시다.
야곱의 웅덩이, 사람이 판 우물에 있던 여자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 여자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아는 것이라고는 물을 길으러 오는 이 웅덩이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물 맞은편에서, 그 작은 장면 속에서,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남자는 유대인이었고, 여자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곳은 수가라는 도시입니다. 이 남자, 이 유대인은 그 여자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습니다. “내게 마실 물을 가져오라.”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 지냅니다. 당신은 유대인이고 저는 사마리아인인데, 제게 그런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네가 내게 마실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네가 이 웅덩이로 물을 마시러 오지 않아도 되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그 물은 네 안에서 솟아나는 우물물이 될 것이다.” 보십시오. 이것이 진리로 입증됨을 그 여자가 알았을 때…
처음에야 누구든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경배하라고 하고, 우리는 이 산에서 경배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유대인들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말해 주겠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할 때가 오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그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 여자가 어떤 샘 앞에 와 있는지가 여기서 드러났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은 “네가 참말을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하신 말씀과는 분명히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여자가 “제게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참말을 하였다. 네게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를 보십시오. 그 시대의 제사장과 얼마나 달랐습니까! 그 시대의 제사장은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저것은 마귀다. 텔레파시다. 혹은 바알세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약속한 말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어느 제사장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사백 년 동안 우리에게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말라기 때부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지자를 기다려 왔습니다. 오실 분, 메시아가 계심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바로 이런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보셨습니까? 그 여자는 야곱의 웅덩이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분수 우물로 가득 차서 도시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분이 그 샘이시라는 사실이 완벽히 입증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여자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그 여자는 그것을 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말씀으로 입증되었을 때, 그 여자는 그 웅덩이를 버려두었습니다. 광야에서 맞았던 바로 그 반석이 그때 그곳에 계시다는 것이 입증됨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많이 이야기하는, 지나간 날들에 계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계십니다. 어떤 신학적인 이해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의 교회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을 입증하셨음을 직접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분은 “나는 있었다”이신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나는 있느니라”이십니다. 언제나 현재이십니다. 그러자 그 웅덩이는 맛을 잃었습니다. 성령침례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파의 체제들은 맛을 잃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그 고여 썩은 것, 개구리와 도마뱀과 벌레 같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신선하고 순수한 샘,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마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혼 안에서 매시간 새롭습니다. 말씀이 진리로 입증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맛보고 그것이 옳지 않은지 알아보십시오. 그러니 그 웅덩이는 우리에게 잘 쓰였고, 제때에 제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생명의 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영적으로 마시기 위해 더 이상 야곱의 우물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우물에서 마시면 괜찮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생명의 샘 그분 자신이 그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체제와 조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하실 일들을 그들에게 약속하셨고, 우리는 그 말씀이 한 말씀도 어김없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군사력을 가진 이들이 일어나 떨면서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성령께서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것이 차례대로 갖추어진 것을 봅니다. 그러니 그 체제를 떠나 샘으로 오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것은 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여자는 샘 그분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들에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바로 신학자들이 모인 한가운데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성경기록이 말한 것같이 그의 가장 깊은 속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거기에 살아 있는 샘이 계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버린 샘이 바로 그 샘입니다. 그들은 신조 때문에 생수의 샘을 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저에게 그분은—이제 마치겠습니다—저에게 그분은 하갈과 그 아이가 광야에서 죽어 갈 때 그들의 생명을 구한 그 샘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그 반석이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32장에서 그분은 지친 땅의 그 반석이십니다. 폭풍이 몰아칠 때의 피난처이십니다. 스가랴 13장에서 그분은 죄를 위하여 다윗의 집에 열린 샘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그런 분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시편 36편 9절에서 그분은 다윗의 생명의 샘이십니다. 푸른 초장에 있는 다윗의 잔잔한 물이십니다. 다윗을 위한 시냇가의 물이십니다.
창세기 17장에서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젖을 먹이는 가슴, 엘 샤다이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생명력이 다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 세 된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저는 늙었고 제 아내도 늙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 샤다이다.” ‘엘’은 ‘그’이고, ‘샤드’는 ‘젖가슴을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샤다이’는 복수입니다. 그러니 “나는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다”라는 말입니다. 보채고 아프고 힘이 다한 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기대어 젖을 먹으며 힘을 되찾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젖을 먹을 때에는 더 이상 보채지 않는 것만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만족을 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힘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받아들이십시오. 그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과 멀리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약속에 바짝 기대어 젖을 먹고 힘을 되찾으십시오. 보채는 자녀여, 믿으십시오. 그것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믿는 시인에게 그분은… 시인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지은 많은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라.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그 모든 죄의 얼룩을 씻으리. 죽어 가던 그 강도도 기뻐했네, 그때에 그 샘을 보고. 그처럼 악한 나라도 그곳에서 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으리.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물줄기를 믿음으로 본 뒤로, 구속의 사랑이 나의 주제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그러하리.
저에게 그분은 구별의 말씀의 물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에서 여러분을 구별해 주는 물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그런 샘이심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웅덩이들에서 저를 갈라놓아 생수의 샘으로 이끌어 준 물입니다. 아, 친구들이여, 저는 그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끝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시작이시며 끝이십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분이십니다. 다윗의 뿌리이며 자손이시고, 새벽별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십니다.
형제님, 자매님, 여러분이 아직 얻지 못했다면… 평생 사람이 만든 이 작은 물탱크에서만 마셔 왔다면, 오늘 아침 그 물탱크를 버리고 이 샘으로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머리를 숙이신 채로 [누군가 예언을 노래한다. 녹음테이프에 공백이 있다.] …제 생각에는 제단 초청이… 지금 몇 분이나 됩니까? 제가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초조했습니다. 아, 그래서 메시지를 토막토막 잘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이 제 뜻을 알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우리의 식사든,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주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저는 이때 이후로 제 평생에 그런 것을 들어 본 적이 한 번 정도밖에 없습니다.) 자,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몇 분만이 아니라 여기서 그 물을 마시고자 하는 모든 분은 일어서십시오. 잠시만,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기 서 계신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이렇게 손을 들어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역사해 주십시오. 저를 채워 주십시오. 이 샘에서 마시게 해 주십시오. 저는 올바르게 행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 죄를 씻어 주시고, 오늘부터 저를 그저…” 바로 지금,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라,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그 모든 죄의 얼룩을 씻으리, 그 모든 죄의 얼룩을 씻으리, 그 모든 죄의 얼룩을 씻으리,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그 모든 죄의 얼룩을 씻으리. 이제 그리스도인 신자인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셨지만, 아직… 아직 그렇지 못하시다면, 그 샘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유일한 샘은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오는 그 샘입니다. 이제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제가 며칠 전 저녁에, 닭들과 함께 농장 마당을 걸어 다니던 작은 독수리에 관해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그 독수리는 닭밖에 몰랐지만, 자기에게 닭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미가 그를 찾아와 위에서 울부짖었습니다. 독수리의 부름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처음부터 독수리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그 부름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그 안에는 싹트게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 안에 씨,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지금 여기 계신 성령께서 그 씨를 싹트게 하여 여러분에게 실제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아직 성령침례를 받지 못한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사방 어디에 계시든, 참으로 정직하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고 받기를 원하신다면 계신 자리에서 손을 드십시오. 잠시만 손을 들고 계십시오. 이제 주위에 서 계신 분들은 그분들을 보시고, 누군가 그분들 위에 손을 얹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바로 지금 성령께서 받기를 원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채우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저 밖 식당에 있는 음식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기 있는 이 음식을 생각합시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입니다. 아시겠죠? 생명입니다. 이제 여러분 각자 몸을 돌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들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이제 여러분이… 그 손을 얹은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갈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성령께서 각 사람을 채우시려고 여기 계시다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마음을 여십시오. 웅덩이 물을 전부 쏟아 버리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오 생명의 샘이여, 제 안에 들어오십시오. 오 주 하나님,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로 저를 채워 주십시오.”
주 예수님, 고갈되지 않는 그 샘이시여, 하나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여기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저희가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바로 지금 성령께서 저희 가운데 임하셔서 그 생명수를 거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디에 있든 모두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기도와 찬송이 계속 어우러집니다. 주님, 주님의 임재, 주님의 신성한 임재가… 있음을 알기에. 저희는 그 샘으로 오고 싶습니다. 주님, 저희는 참되고 진짜인 성령침례를 원합니다. 이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순간 그 일이 일어나, 이들이 하나님의 이 선하심으로 충만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의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그들의 존재 위에 임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께서 그들 위를 휩쓸고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허락해 주십시오. 아, 새롭게 해 주심에, 우리 가운데 서 계신 하늘의 능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바로 이 정오에, 주님, 저희를 먹여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주님의 상에서 나오는 음식을 원합니다. 주님, 바로 지금 저희를 먹여 주십시오. 저희 삶 속에 성령을 주셔서 먹여 주십시오. 저희의 굶주리고 메마른 혼들이 목말라합니다. 노래의 통역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메마른 땅에 물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그 일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말씀들이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 말라 메마른 땅 위에 물을 부어 주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그 복을 주십시오. 아멘. 오,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계속 찬양하십시오. 알아보십시오.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잘못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을 사랑하네,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오,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만일 그분이 오신다면…? 오,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나는 결코 그분을 버리지 않으리, 나는 결코 그분을 버리지 않으리, 나는 결코 그분을 버리지 않으리,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놀라우신, 놀라우신, 내게 예수님은 놀라우신 분, 모사요 평화의 통치자, 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온갖 죄와 수치에서 나를 구하시고 지키시네. 놀라우신 나의 구속자, 그분의… 찬양하세. 그분께 이 찬송을 부릅시다. 오, 놀라우신, 놀라우신, 내게 예수님은 놀라우신 분. 모사요 평화의 통치자, 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온갖 죄와 수치에서 나를 구하시고 지키시네, 놀라우신 나의 구속자,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세.
그것을 느끼시는 모든 분은 아멘 하십시오! 오, 할렐루야. 이제 어떤 분들이 성령을 받는 것이 보입니다. 한때 길 잃었으나 이제 되찾아졌고, 정죄에서 벗어났네, 예수님은 자유와 온전한 구원을 주시네. 온갖 죄와 수치에서 나를 구하시고 지키시네, 놀라우신 나의 구속자, 찬양… 우리 손을 들고 마음껏 찬송합시다. 놀라우신, 놀라우신, 내게 예수님은 놀라우신 분, 모사요 평화의 통치자, 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온갖 죄와 수치에서 나를 구하시고 지키시네, 놀라우신 나의 구속자,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세.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아, 놀랍습니다.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피로 가득한 그 샘에서 죄인들은 사람에 대한 모든 두려움과 모든 정죄를 벗어 버리고, 그분 안에서 자유로워집니다. 할렐루야! 아,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제 다시 그 찬송을 부르는 동안, 감리교인과 침례교인, 가톨릭교인과 장로교인, 누구든지 모두, “놀라우신, 내게 예수님은”을 부르면서 몸을 돌려 서로 악수합시다. 함께 어울려 교제합시다. 아시다시피 저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자, 그렇게 하면서 이제 함께 찬송합시다. 오, 놀라우신, 놀라우신, 내게 예수님은 놀라우신 분, (그렇습니다.) 오, 모사요 평화의 통치자… …온갖 죄와 수치에서 나를 지키시네, 놀라우신 나의 구속자,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세. …나를 위로하네, 그것은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네, 감옥 문을 열고,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롭게 하네. 아, 내 안을 통해 생명의 강이 흘러내리네.
[녹음테이프에 공백이 있다.] 성경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자, 우리 대통령을 위해 간절히 구해야 할 형편에 저희가 서 있습니다. 주님, 그분은 이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존슨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희가 듣기로 그분에게 심장마비가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분의 생명을 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뜩이나 국가적인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영이 그분 위에 임하게 해 주십시오. 바로 지금 병원에 계시든 어디에 계시든, 주님의 영이 그 월터 리드 병원에 내려가 그분의 몸에 손을 대 주시고 생명을 살려 주십시오, 주님. 그분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큰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또 이 나라의 일원으로서 저희 지도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중대한 때에 그분의 생명을 더 연장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