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우리 머리를 숙입시다. 주님, 이 화창한 부활절 아침에 우리가 이곳에 모였습니다. 작은 꽃봉오리들이 힘껏 고개를 내밀고, 벌들이 날아와 자기 몫을 얻고, 새들은 부활절이 있어서 기쁨에 심장이 터질 듯 노래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래전 오늘, 주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음을 믿으며 우리가 이날을 기념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부활절이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종인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때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고 있었으며 이제는 그분과 함께 일으켜져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이곳 태버내클의 예배와 이 전화로 예배가 전해지는 각 지역을 축복하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치유하옵소서. 그들에게도 부활절이 되어, 질병에서 벗어나 힘을 얻는 출애굽이 있게 하옵소서. 죄와 범법 가운데 죽어 있는 사람들은 오늘 그리스도를 통해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아침 이곳 인디애나주 제퍼슨빌로 돌아와 이렇게 많은 회중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은 가득 차서 서 계시고, 주위와 바깥, 주차장과 곳곳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전화로 듣고 계신 여러분, 이곳은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다섯 시에 가슴이 붉은 제 작은 친구가 창가로 날아와 저를 깨웠습니다. “그분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하고 말하느라 그 작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이 작은 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늘 저의 친구로 생각해 왔습니다. 이 새에 관한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은 갈색 새 한 마리가, 죄 때문에 그분께서 달리신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 작은 새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작은 새를 위해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가 십자가로 날아가 작은 부리로 못을 뽑으려다가 가슴이 온통 붉게 물들었습니다.” 저도 제 가슴이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분께서 목숨을 내주신 이 영광스러운 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방패로서 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이 전화로 듣고 계신 친구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얼마 전에 사진기로 찍힌 한 사진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 태버내클에서 본 환상에 관한 사진입니다. 저는 인디애나를 떠나 애리조나로 가서 피라미드 모양을 이룬 일곱 천사를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아무도 그 폭발을 견딜 수 없으니 제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비노 캐니언에서, 오늘 같은 어느 아침에 기도하고 있을 때 제 손에 검 하나가 놓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말씀이다. 말씀의 검이다”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뒤 예언된 대로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빛 덩어리가 제가 서 있던 곳을 떠나 공중으로 삼십 마일 높이까지 올라갔습니다. 천사들의 날개처럼 원을 이루며, 나타났던 천사들의 그 배열 그대로 하늘에 피라미드 모양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애리조나 북부에서 이동할 때 과학계에서는 멀리 멕시코에서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성령께서 제가 서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곳, 투산에서 북동쪽으로 사십 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그것이 공중으로 올라갔고, 「라이프」 잡지가 그 사진들을 실었습니다. 저 높은 대기권에 있는 신비로운 어떤 것이었습니다. 습기가 있을 수 없고, 어떤 것의 증발도 있을 수 없는 곳, 삼십 마일 높이에 너비가 이십칠 마일이나 되는 것이 바로 그 천사들이 있던 곳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때 그들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과학계에서... 투산에 있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저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미리 전해 들었으므로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봉인이 열릴 것이다.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 닫혀 있던 일곱 신비, 성경의 일곱 겹의 신비가 계시될 것이다.” 온 세상에 비하면 여전히 보잘것없는 작은 무리인 우리는 그 신비들을 들으며 이 복들을 누려 왔습니다. 결혼, 이혼, 뱀의 씨, 그리고 이 모든 여러 문제들이 우리에게 완전히 계시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곱 신비를 열어 주셨습니다. 교회가 무엇이었으며, 처음에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마지막 날에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지에 관한 신비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올라갈 때... 바깥 액자에도 그 사진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도 「라이프」 잡지에 실린 모습 그대로 사진을 놓아두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직접 뵙고 있는 회중 여러분이 정말 이 사진을 보아야 할 방향으로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환상이 왔을 때 저는 요한계시록을 주제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옛 재판관들이... 우리가 일곱 봉인을 열기 시작했을 때, 아니, 일곱 봉인이 열리기 직전 교회 시대들을 시작했을 때 요한계시록 1장에서 본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털이 양털처럼 희게 된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했습니다. 옛 영국 재판관들과 오래전의 재판관들은 취임 선서를 하려고 법정에 나아갈 때 최고의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최고의 권한을 나타내려고 머리에 일종의 흰 가발을 썼습니다.
자, 사진을 이렇게 돌려 보시면, 아마 회중석에서도 보이실 텐데, 그리스도입니다. 이쪽을 바라보시는 그분의 눈을 보십시오. 더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지고한 신성의 흰 가발을 쓰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온 하늘과 땅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분의 눈과 코와 입이 보이십니까? 그들이 놓은 방향인 이쪽에서, 놓여 있어야 할 방향인 이쪽으로 사진을 돌려 보십시오. 보이십니까? 그분께서는 최고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분 외에는 다른 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메시지가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완전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자 입증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진리입니다. 그분을 셋째 위격이 아니라 유일한 위격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흰 부분과 함께, 보십시오, 어두운 부분이 보입니다. 그분의 얼굴과 수염과 눈입니다. 그리고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이 빛이 그분께서 바라보시는 오른쪽을 비추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도 그분께서는 그쪽을 바라보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신 오른쪽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빛 가운데 여전히 그분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아침 이 현상들을 충분히 말씀드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삼십 년, 혹은 삼십오 년 동안 바로 이 교회에서 추호도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되어 온 현상들입니다. 1933년 이곳 제퍼슨빌의 강가에 그 동일한 빛이 내려와 그 말씀을 하신 때부터 말입니다. “침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에 앞서 가도록 보냄을 받은 것같이, 네 메시지는 두 번째 오심에 앞서 갈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으며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왜 이것이 온 세상에 퍼지지 않았는지 의아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젠가 그것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성경을 펴 주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이 먼저 와야 한다고, 말씀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언제나 말씀을 읽습니다. 제 말은 사람의 말이어서 무너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무너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본문을 읽겠습니다. 먼저 제가 읽으려고 택한 세 곳을 펴 주십시오. 하나는 요한계시록 1장 17절과 18절입니다. 그분께서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발은 놋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곳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로마서 8장 11절도 찾아 주십시오. 오늘 부활에 관해 주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메시지를 전하려고, 오늘 아침 성경에서 읽을 세 곳을 골랐습니다. 또 여러분이... 마가복음 16장 1절과 2절도 찾아 주십시오. 그곳에서 말씀의 맥락을 잡겠습니다.
자,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서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17절과 18절입니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매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가 처음이요 마지막이기 때문이라.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 내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그리고 로마서 8장 11절에서 이것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제 마가복음 16장, 부활의 장인 16장의 1절과 2절입니다.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료를 가져왔더라.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갔더라.
오늘 아침 저는 “해가 떠오릅니다”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제로는 살리는 권능을 택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라디오나 여러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어 오셨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존경하는 네빌 형제님이 부활에 관한 부활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길로 가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다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다른 각도에서 여러분에게 조금 더 보태 드리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느 각도에서 보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어떤 길로 가도 그분을 떠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그분을 선포합니다.
오늘 세상은 기념 예배를 드리며, 적어도 미국과 지구의 이쪽 편에서는 오늘 아침 교회와 곳곳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거둔 가장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그분께서 구주로서 죽으셨을 때나, 아기로서 태어나셨을 때나,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여기 계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죽으셨을 때 분명히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기들은 많이 태어났고, 참된 대의를 위해 고난받고 죽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까지 스스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부활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 주간이며,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경축일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입증하신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로 입증되기 전까지는 꼭...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하지 않으실 일을 여러분에게 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이분이 누구신지를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날은 우리가 빠져 있는 온갖 화려한 부활절 꽃과 부활절 모자, 분홍색 토끼 같은 것들이나 거룩한 경축 행사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이것의 참된 실체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목요일에 세족을 해야 하고, 금요일에 성만찬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 밖에도 온갖 다른 교리가... 이날에 해야 하느냐, 저날에 해야 하느냐, 안식일에 해야 하느냐, 주의 첫날에 해야 하느냐, 또는... 그런 것들을 놓고 논쟁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그저 전통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생명이 없다면, 사순절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기념일 뿐입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전통은 철저히 지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얼마나 종교적이든, 여러분의 교리가 얼마나 올바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을 놓치면 어차피 여러분은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적이고 아무리 선하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교회에 속했거나 앞으로 속하게 되든,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다면, 기념하기 위해 일으키셨습니까? 그리고 이 부활의 아침은 일 년 중 하루, 우리가 이것을 기념하는 어느 특정한 날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그분의 부활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입니까? 그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일은 이천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이 본문을 찾게 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피곤했고, 간호사에게 맞은 주사 때문에 팔이 아팠습니다... 아시다시피 며칠 후 해외로 떠나므로 저와 아들이 이런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콜레라, 황열병, 그리고 여러 가지 주사 때문에 몹시 지쳤고 몸도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주사를 맞으라고 카이사르가 요구합니다. 그분께서도 “카이사르의 것들은 카이사르에게 바치라. 그러나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앉아서, 오늘 아침 기다리고 계신 이 회중에게 무슨 말씀을 전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전해지는 말씀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 남녀들입니다. 어떻게 전해야 할까? 무엇을 본문으로 삼아야 할까?
그렇게 앉아 거의 잠이 들려 할 때 집 앞쪽 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 혼자만 있었으므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제가 서재로 바꿔 놓은 작은 방의 문이 달그락거렸습니다. 누군가 계속 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문으로 가서 열어 보니, 뜻밖에도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예쁜 어린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작은 부활절 꽃 같았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여기 앉아 저를 보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제게 카드를 건넸습니다. 그것이... 물론 집에 돌아가면 부활절 카드 같은 것들이 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제가 받은 카드는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건 아빠하고 제가 드리는 거예요.” 자기도 함께 드린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관절염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이 카드를 보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아 들고 그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돌아서서 문에서 걸어 나갈 때 저는 카드를 펼쳤습니다. 이 카드의 내용에서 제 본문을 얻었습니다. 카드에 마가복음 16장 1절과 2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돋이,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것을 생각하며 제 주제를 얻었습니다.
이제 해, 이 해가 떠오르는 일에 관해서... 세상이 완전한 어둠 속에 놓여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습니다. 온통 물로 덮인 채 어둡고 음산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 물 위에서 움직이시며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물 아래에는 그분께서 심으신 씨앗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살려면 햇빛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처음으로 주어진 빛은 하나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땅에 처음 비친 빛은 하나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둠을 빛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땅에 기쁨과 생명의 창조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께서 사랑과 긍휼로 움직이시던 그 위대한 날, 이 땅에 창조의 새벽이 밝아 오던 첫날에 해가 떠올라 그 빛을 두루 비추고 땅의 물을 말리며 위에는 대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씨앗을 통해 이 땅에 기쁨과 생명을 가져오려 했습니다. 위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 그 해돋이는 저 부활절 아침의 해돋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해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어느 때보다 위대한 해돋이를 가져왔습니다. 이 해돋이와 함께 온 소식은 태초의 해돋이가 가져왔던 소식보다 더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해돋이는 이런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그분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해가 처음 떠올랐을 때는, 이 땅에 생명이 있게 되리라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해가 떠올랐을 때는 이중의 해돋이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일어나심, 아들의 일어나심이 있었습니다. 해를 뜻하는 s-u-n만 떠오른 것이 아니라, 아들을 뜻하는 S-o-n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이 땅에 놓여 있는 것을 보셨던, 하나님의 약속된 모든 씨에게 영생을 가져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태초에 식물의 생명이 해, s-u-n이 없이는 살아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생에 이르려면 아들, S-o-n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분께서 아셨던, 그분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들을 자신의 안에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에... 그때 우리 몸은 이 흙 어딘가에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땅의 흙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는 기념책이 있었고, 그분 안에는 그분의 속성들이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일어나셨으므로 이 위대한 때를 위해 미리 정해진 모든 아들도 생명으로 일으켜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태초에 처음 새벽이 밝아 오던 때보다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해돋이였습니까! 이제 부활절의 봉인이 열리는 이 위대한 일에 관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는 결핵 퇴치용 부활절 씰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큰 기금이나 모금 운동을 지원하려고 서로 소식을 보냅니다. 의사들과 의학계가 결핵의 진행을 늦추거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을 연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서로 소식을 보낼 때, 부활절 씰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봉합니다. 그러나 소식을 받으면 그 봉인을 뜯습니다. 봉인이 그 안에 있는 소식을 봉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해돋이 때 참된 부활절의 봉인이 열렸고, 죽음 이후의 생명의 비밀이 계시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렸습니다. 이리저리 더듬으며,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론들과 전통들, 지어낸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해를 숭배하며 온갖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온갖 주장을 하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무덤으로 들어갔고, 그 무덤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진짜 봉인이 열렸습니다. 한때 우리처럼 살고 우리가 죽을 것처럼 죽었던 한 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아침입니까! 세계 역사 전체에 그와 같은 아침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부활이시며 생명이시라는 비밀이 알려졌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아침에 나오셨을 때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만 부활의 혜택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 안에서 쉬고 있던 그 모든 씨들도 생명에 이르는 그 부활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봉인이 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일으켜지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그분과 함께 일으켜질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해돋이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증명하셨습니다. 곧 입증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았던 모든 어둠과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한때 사람들과 함께 살고 먹고 마시며 교제하셨던 그분께서 여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내게는 내 생명을 내놓을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일으킬 권능도 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오늘 아침 저는 확신합니다. 그것을 믿는 우리조차 그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므로 우리도 이미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어둠이 땅을 덮었고, 해인 s-u-n이 떠오르지 않으면 씨앗들이 살 수 없었으며, 어둠이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들인 S-o-n께서 일어나셨고, 이 빛이 여러 나라의 백성들에게 퍼져 나가면서 모든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일어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선포입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것이 참됨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제 사망과 지옥과 무덤을 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삼위일체, 곧 사망과 지옥과 무덤입니다. 사탄은 사망을 만들어 낸 자이고 지옥을 차지한 자이며 무덤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탄의 삼위일체였습니다. 한 가지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것은 사망이었습니다. 죽으면 무덤에 가고, 죄인이면 지옥에 갑니다. 모두 한 가지, 사망이라는 사탄의 삼위일체입니다. 그것이 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을 사로잡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인 하나님의 참된 삼위일체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습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이셨고, 봉인들을 깨뜨리고 원수를 정복하여 일어나셨습니다. 유일하고 참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전에 죽었으나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으며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는 자라.”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모든 원수를 정복하셨습니다. 사탄의 삼위일체가 정복되었음을 입증하셨으며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알려졌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생명을 다시 돌려놓을 권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임마누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마태복음 27장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 손에 주어졌느니라. 내가 너희를 온 세상에 내 증인이 되도록 보내노라”고 선언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망과 지옥과 무덤을 모두 정복하셨습니다. 그 일을 하셨을 뿐 아니라, 하늘들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을 가지고 승리 가운데 나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 성령의 모든 것,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다른 모든 것은 권능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그분께서는 제자들,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소식을 보내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가 전에 죽었으나 다시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는 자이기 때문이라. 또 내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내가 이미 그것을 정복하였느니라.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 영광스러운 복음의 그 빛이 온 땅에 퍼질 때, 미리 정해지고 미리 예정된 하나님의 모든 씨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라. 모든 시대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확을 낼 것이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는 살아 있다”, 곧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살아났다’라는 말, 그 그리스어 단어는... 죽은 뒤 다시 살아난 것을 뜻합니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전부 죽어야 합니다. 씨앗은 전부 썩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씨앗 속에 있던 생명은 모두 다시 나와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나를 살린 동일한 생명, 나를 무덤에서 나오게 한 권능을 보내겠다. 내가 그것을 너희 위에 보내 너희를 살리겠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려는 것이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곧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그 모든 혜택을 혼자 누리셨을 뿐 아니라, 그 혜택들을 나누어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분께서는 미리 예정된 그 씨들을 구속하러, 곧 생명으로 이끌어 내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보시고 그 이름들을 생명책에 기록하신 씨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땅에 아무 소망 없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복이 되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리 예정된 모든 씨와 그 복을 나누기 위해 오셨습니다. 자, 그 씨가 땅에 없었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씨가 땅에 있어야 했고, 그 안의 씨눈에도 생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다 해도 아들, S-o-n께서 그 위에 비추시면 싹이 틀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그것을 우리와 나누려고 오셨습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당연합니다. 복음이라는 말 자체가 ‘기쁜 소식’을 뜻합니다. 무엇에 관한 기쁜 소식입니까? 어떤 사람이 우리를 위해 죽었다면, 그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면, 그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 같은 소식은, 이런 소식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약속하신 분께서 그 약속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며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모두 손에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어둠이 털려 나갔습니다. 더 이상 어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오실 것이다”라거나 “오실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오셨습니다.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보십시오. 복음의 메시지 자체가 바로 그분께서 일어나셨음을 사람들에게 입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서 내 제자들에게 내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고 전하라. 내가 그들을 만나 이것을 그들에게 확증하리라.” 오 하나님, 이 마지막 날들에 얼마나 다시 빛이 온 땅에 비추겠습니까! “내가 제자들에게 입증하겠다... 가서 내가 죽지 않았으며 하나의 전통도 아니고 살아 있는 그리스도라고 전하라. 내가 그들을 만나겠다. 내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는 이 메시지를 내 제자들에게 가져가라.”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혜택을 받는 우리, 이 생명의 혜택을 받는 우리는 지금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 생명, 그와 같은 삶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자 그 생명은 끊겼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셨을 때, 그분의 종인 우리는 그분께로부터 명령을 받았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그분께서 살아 계신다는 이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로만 그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이 말로만 오지 아니하고 권능과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통해 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바울이 한 무리에게 말한 것처럼 다른 복음이 있다면, “너희가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는 것을 내가 매우 이상히 여기노라...” 사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꾸며낸 복음, 교단이 지어낸 허구로 돌아서며 그 기쁜 소식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산다. 또 내가 너희 안에 살며, 내가 하는 일들”, 요한복음 14장 12절입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너희 안에서 나 자신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우리가 어두운 신학의 세상에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물녘에는 다시 빛이 올 것입니다. 저물녘에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저물녘에 빛이 있으리라.
이제 전해진 메시지의 핵심은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혜택을 받는 우리, 그분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는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세상에 입증함으로써 이 혜택을 누립니다. 우리는 말로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어떤 전통으로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리키는 바로 그분을 그대로 비출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너무 많은 이들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느 교회나 어느 이론으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분, 생명을 가지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죽은 어떤 사람의 생명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와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그가 살았던 것과 같은 삶을 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혈액형이 특정한 형이고, 한 사람에게서 피를 뽑아 다른 사람의 피와 바꿔 넣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혈액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영이 죽은 것으로 여겨지고, 여러분이 기름부음을 받는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생명이 여러분 위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으셨던 바로 그 생명, 그 동일한 권능들, 그 동일한 수혜자들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구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씨이며,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복음의 빛, 말씀의 확증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입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대의 메시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입증하시고 그것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활 가운데 그분과 함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분께서는 하신 말씀을 입증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부활 때 입증하셨습니다. 모세 시대에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에녹 시대에 약속하신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사도들의 모든 시대에도 입증하셨습니다. 이제 이 시대에도 그분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입증하십니다. 그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 씨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씨를 구속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으려고 오셨습니다. 오,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부활절 아침에 그분만 일어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그분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실 때도 그들은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들과 교단들 등이 우리를 끌고 갔던 불신의 어두운 세상, 그 어둠 속에서 죽어 있다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안에는 무언가 외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주리고 목마릅니다.” 우리는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장로교, 그 밖의 여러 교회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이 나타나면서 그 위대한 부활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이 나타나신 분이셨던 것과 같습니다. “내가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리라.” 그분께서는 그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나타내셨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헤매던 사람들은 이날에 세족을 해야 하는지, 어떤 특정한 날을 지켜야 하는지, 정해진 일련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몰라 했습니다. 이제 그런 모든 것은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것, 사람이 행해 온 모든 것,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논리를 뒤엎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자기 생명을 내놓았다가 다시 취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일어나심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과학적 증명을 뒤엎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권능도 같지 않고 복음도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동일하다고 말씀하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단과 모든 신조를 뒤엎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우리에게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죄와 범법 가운데 죽어 있다가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자신과 함께 살리셨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으켜져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습니다. 그분의 영께서 그 동일한 생명을 다시 이 땅에 가져오십니다.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영께서...” 그 몸, 기름부음을 받은 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께서 그 몸에 그처럼 기름을 부으셔서... 그 씨가 땅에 떨어졌을 때 그분께서는 그분을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을 살려 일으키셨습니다. 그 동일한 영께서 동일한 일들, 동일한 권능과 동일한 표적들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도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기 성경 구절 하나를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적어 놓은 다른 구절을 찾아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조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부터 11절에 있습니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율법, 레위기의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들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모형입니다. 이제 잠시 여기서 멈추어 이 모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내가 너희에게 준 그 장소, 그 위치에 이르거든. 이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내가 너희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그 특정한 곳에 이르거든, 이 땅에 도착하거든...” 여기서는 육적인 것을 말씀하시며 영적인 것의 모형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내가 그것에 관해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희가 받았느니라]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한 것으로 내가 그 단을 받도록 주 앞에서 흔들되 안식일 다음 날에 그것을 흔들지니라.
어떤 거룩한 의식이 있다면 한 주의 일곱째 날인 안식일, 곧 토요일에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념 의식에서는 한 주의 첫날에 그 단을 흔들라고 한 것을 보셨습니까? “너희가 심은 씨 가운데 처음 난 이삭단, 그것이 자라 익거든 그 단을 베어 제사장에게 가져가라. 그러면 그가 그것을 가져다가 너희가 받아들여지도록 주 앞에서 흔들게 하라. 너희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너희가 이삭단을 가지고 왔으니 그는 그것을 주 앞에서 흔들어야 한다. 그날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 아니라 첫날입니다. 우리가 일요일, S-u-n-d-a-y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물론 그것은 로마의 말입니다. 그들은 태양신을 위해 그날을 해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이제는 해를 뜻하는 s-u-n이 아닙니다. S-o-n-d-a-y, 아들의 날입니다. 그 밀알, 하나님께 속한 자 가운데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일어나신 분을 회중 위에서 흔들어 보이는 날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씨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잠든 자들의 씨 가운데 첫 번째 것으로, 한 주의 첫날에 흔들어 보인 것입니다. 일요일에 그분께서는 일어나셨습니다. 손을 흔들어 작별하시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하나님의 첫 밀알, 하나님의 첫 번째 밀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살리는 권능으로 그분의 생명을 살리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잠든 자들의 첫 열매이셨습니다. 첫 열매, 그분께서 그 이삭단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이삭단을 흔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처음으로 무르익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도 뒤따라 나올 것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기념으로 그것을 흔들었습니다. 그것은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분께서는 완전히 성숙하여 하나님 안에 이르신 첫 번째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므로 땅에서 거두어지셨고, 지금 백성 위에서 그분을 흔들어 보이고 계십니다. 오, 얼마나 영광스러운 가르침입니까! 살리는 권능으로 그렇게 되신 첫 번째 분입니다! 물론 그분을 나타내는 모형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그분의 모형이 여러 번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잠든 자들의 참된 첫 열매였습니다. 생명을 약속받은, 그 약속된 씨 위에서 그분을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오순절 날에도 그분을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하늘로부터 흔들어 대는 강력하고 급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고, 복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올라가 있던 오순절의 사람들 위에서 그분을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또 우리는 마지막 날에 다시 그분을 흔들어 보이실 것임을 압니다. 누가복음 17장 30절에 따라, 다시 아들의 날에, “사람의 아들, S-o-n이 나타나는 날에”, 곧 다시 사람들 위에서 흔들어 보이시는 날에 말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아들은 누구십니까?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받은 모든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의 확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 보고 있습니다. 여기 누가복음에서, 방금 인용한 누가복음 17장 30절과 말라기 4장,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러 성경 구절에서 말입니다. 그 말씀을 다시 사람들 위에서 흔들어 보이고 계십니다. 사람의 죽은 전통들은 죽었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바로 우리 가운데 성령의 침례와 함께 다시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일어나신 분이셨듯이, 모든 선지자들과 여러 곳에서 그분의 모형이 되었던 모든 이들 가운데 그분께서 잠든 자들의 첫 열매이셨듯이, 교회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올 때에도 마지막 날들에 다시 흔들어 보일 이삭단이 있어야 합니다. 오, 참으로! 이삭단을 흔드는 일입니다! 이삭단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 무르익은 것, 처음으로 그것이 밀임을 입증한 것, 그것이 이삭단임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 위에서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신부 시대를 위해, 어두운 교단주의에서 부활하여 처음으로 나오는 것은 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완전히 성숙한 말씀이 온전한 권능으로 다시 돌아와, 그분께서 그때 행하셨던 동일한 표적들과 이적들로 사람들 위에서 흔들어 보이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산다.” 그분의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산다.” 그 부활은 얼마나 놀라운 부활이었습니까! 그리고 이 부활도 얼마나 놀라운 부활입니까!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 하나님의 살리는 권능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을 그들에게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그분이신 말씀을 오순절 날 그들에게 다시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말씀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대로 마지막 날에도 다시 흔들어 보이실 것입니다. 자, 예를 들어...
여러분은 말합니다. “자, 잠깐만요, 브래넘 형제님. 제가 아는 교회가 있는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예를 들어, 오늘 오후에 우리가 투산으로 돌아가는데 각자 커다란 새 캐딜락을 타고 간다고 합시다. 모든 좌석은 가장 부드러운 가죽인 암사슴 가죽으로 만들어져, 부드럽고 앉기 편합니다. 바닥에는 폭신한 융단이 깔려 있고, 운전대는 니켈로 도금되어 온통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혀 있습니다. 엔진은 기계 검사를 거쳐 정확히 알맞은 엔진으로 판명되었고, 바퀴에는 모두 베어링이 달려 있으며 윤활유도 잘 발라져 있습니다. 타이어는 모두 구멍도 나지 않고 터지지도 않으며, 그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시험을 거쳤습니다. 두 대 모두 조립 라인에서 밀려 나왔고, 두 대 모두 휘발유로 가득 채웠습니다. 휘발유가 차를 달리게 하는 힘입니다. 그 안에 옥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동을 걸려고 하니, 두 대가 겉으로는 똑같지만 한 대에는 불꽃이, 점화하는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힘은 휘발유 속에 있잖습니까.” 그러나 휘발유에 아무리 많은 힘이 있든, 그 힘을 드러낼 불꽃이 없고 그것이 휘발유라는 것을 확증할 힘이 없다면 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있기 전까지는...
신학자들이 아무리 주장하고, 여러분이 교회를 아무리 잘 세우고,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성경과 아무리 비슷하다 해도, 그 흔드는 이삭단이, 성령께서 그 사람 위에 오셔서 그 말씀을 살리시기 전에는... 휘발유는 말씀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영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계적 장치에는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원동력에는 아무런 비중도 두지 않았습니다. 교회 위에 하나님의 원동력이 되는 권능,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휘발유임을 나타내고 실제로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휘발유 통 안에 들어 있어도 여전히 물일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은 이 생명을 그 위에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휘발유인지 아닌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교단 안에 넣으려고 하면, 여러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푸드덕거리는 소리뿐입니다. 엔진을 탄소 찌꺼기로 가득 채워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일만 옥탄의 힘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것에 불을 붙여 남자의 삶이나 여자의 삶이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 길을 따라 캐딜락을 밀고 나갑니다. 성령의 원동력이 되는 권능 아래서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돌아오셔서 오순절 날 사람들 위에서 흔들어 보이셨으며, 그분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나타내십니다.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서 처음 나온 이삭단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모든 선지자들의 왕이셨습니다. 교회들이, 교회들이, 신부들이, 신부들이, 교회들이, 신부들이, 신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신부가 나와야 합니다. 할렐루야! 참된 신부가 나와야 합니다. 기계적 장치뿐 아니라 그 원동력도 가진 신부가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그 교회를 살아 있게 하고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가 그곳에 이르기 전까지, 그곳을 찾기 전까지 바퀴통을 윤내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 안에 원동력이 없는데 겉모습을 손보거나 광택을 내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기계적 장치가 아무리 올바른 것으로 입증되어도, 그것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입증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부활절이 입증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 말씀 안에 있는 원동력이셨습니다. 그것이 무덤 속에서 차갑고 뻣뻣하게 죽어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떨며 살아나게 하고, 다시 일어나 돌을 굴려 치우게 했습니다. “나는 전에 죽었던 자라.” 그분께서 얼마나 분명히 죽으셨던지, 해도 그분께서 죽으셨다고 말했고, 달도 그분께서 죽으셨다고 말했으며, 별들도 그분께서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온 자연이 그분께서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 세상이 그분께서 다시 살아 계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기계적 장치인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그것을 입증하는 원동력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신랑이시므로 신부가 나와야 합니다. 신부는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다른 이들이 신부에 관해 말했던 모든 계시가 성취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신랑과 다른 일을 한다면 신부가 아닙니다. 신부는 그분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요, 생명 중의 생명이요, 권능 중의 권능이므로 그분 자신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이고 여자가 남자의 옆구리에서 취해진 것처럼, 신부는 그분에게서 그분의 영, 여성의 영을 취했으며 그분의 옆구리에서 살을 취했습니다. 기계적 장치와 원동력을 함께 지닌 아내가 된 것입니다. 그분의 영과 그분의 살을 함께 합하여 기계적 장치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교회나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이 모든 부활절 토끼와 의식들, 큰 교회들과 화려한 치장은 무너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 교회가 원동력과 기계적 장치를 모두 갖추고,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하시도록 그분을 움직이셨던 하나님의 영을 갖추기 전까지는... 그분께서 열여섯 기통을 모두 가동하셨다면 신부도 그럴 것입니다. 아멘! 그분께서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의 기계적 장치에 내 원동력을 충전해 주어 세상이 그것을 당해 낼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일으키리라.” 이것이 부활절 메시지입니다. 원동력과 기계적 장치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원동력 없는 기계적 장치는 소용이 없습니다. 기계적 장치 없는 원동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소리 지르고 환호하며 위아래로 뛰어도 이 말씀을 부인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시동 장치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피스톤 쪽에는 점화할 불꽃이 있지만, 태울 휘발유가 없습니다. 둘이 함께할 때만 작동할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한쪽은 가만히 앉아 있고 다른 한쪽은 올라갈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두 쪽이 똑같아 보이고, 둘 다 교회라 하고 둘 다 신부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쪽에는 기계적 장치와 원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실제로 이루어 냅니다. 기계적 장치가 아무리 훌륭해도 원동력이 오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원동력이 오면 그 불이 휘발유 속의 옥탄과 연결됩니다. 그것이 폭발하면 연소가 일어나고, 그 연소가 움직이게 합니다. 모든 동작, 모든 움직임을 일으킵니다.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권능입니다. 기계적 장치와 원동력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점화하는 것은 불꽃입니다. 점화하는 것은 휘발유가 아닙니다. 불꽃이 휘발유에 불을 붙입니다. 아시겠죠.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나와 함께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분께서 말씀이시므로, 그것은 살아 계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께서 내게 불을 붙이시고 나를 모든 일 가운데로 밀어 보내셨듯이, 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만 행한다. 이제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동일한 기계적 장치와 함께 보내노라. 그것을 작동시키려면 동일한 원동력이 필요하다. 기계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이다. 원동력이 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말로만”, 곧 휘발유로만, “온 것이 아니라 불꽃을 통해서도 왔다.” 움직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은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분을 일으키신 바로 그 영께서 참된 믿는 자를 살려 영생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잠재적으로... 자, 보십시오. (우리가 정해진 시간을 넘기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동일한 영”입니다. 자, 로마서 8장 1절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을 다시 읽고 무슨 말씀인지 봅시다. 좋습니다. 로마서가 아니라... 아니, 8장 11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그러나 만일...”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 조건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하나님, 성령)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오, 바로 그것입니다. 신랑의 영께서 신부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께서 첫 신랑을 만드셨을 때, 신랑을 먼저 만드셨는데 그는 영으로 남자와 여자를 함께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를 물질적인 존재로 만드시려고 땅의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아담에게서 이브를 만드셨을 때 다른 진흙 덩어리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진흙 덩어리에서 취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아담은 입으로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는 아담에게서 취하시고, 그다음에 그... 아담에게는 남성의 영과 여성의 영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담에게서 여성의 영을 취하여 이브 안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전히 아담의 영의 일부입니다. 아담의 살입니다. 그리고 그 몸의 기계적 장치를 살린 원동력은 아담의 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부도 그분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죽을 육체가 어떻게 그분의 육체가 됩니까? 잠시 후에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이 위대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보십시오. 이제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오, 참으로! 미리 예정된 자는 물론 땅 위에 놓인 씨, 그 안에 생명이 있던 씨와 같습니다. 많은 씨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저 썩은 씨앗이었습니다. 물과 여러 가지 것들이 그것을 태워 버렸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살아날 준비가 된 씨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거기에 놓여 있음을 아셨습니다. 이제 미리 예정된 자들이 성령으로 처음 살아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것을 찾으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깊은 내용입니다. 반드시 잘 이해하십시오.)
해가 이 땅을 비추도록 보내진 것은, 역시 흙이었던 바위들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흙 전부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둘러싸고 있던 그 부분의 흙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을 미리 정하신 이들은 이 땅의 얼마간의 흙에 거처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그들을 살리러 오십니다. 그들입니다. 자, 그 흙은 햇볕 아래 놓여서 “아, 이 해는 너무 뜨겁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바위도 “이 해는 너무 뜨겁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은 “이것이 내가 기다리던 것이다”라고 말하며 생명으로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흙의 그 부분을 살렸습니다. 해가 보내진 것은 바위를 살리거나 흙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오십니다. 물론 성령은 보내진 것이 아니... 왜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일으키거나 무슨 일을 하고, 병자를 고쳐서 어떤 방식으로 입증하셔도 저는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물론 믿지 않으시겠지요. 당신은 믿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당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보내진 것도 아닙니다. 믿을 사람들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메시지는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씨의 일부인 사람들에게는 생명입니다.
제가 하는 소박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부가 알 하나, 독수리 알을 암탉 밑에 넣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시겠죠. 그 작은 독수리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긴 작은 생물이었습니다. 농부가 독수리 알을 그 암탉 밑에 넣는 일을 했을 때 말입니다. 암탉이 아주 우습게 생긴 병아리를 부화시켰는데, 그 녀석은 유별난 작은 새였습니다. 다른 병아리들과 모습이 달랐습니다. 깃털도 나머지와 달랐습니다. 유별난 작은 녀석이었고, 다른 병아리들도 모두 그가 유별난 녀석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암탉은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그는 암탉이 먹이는 먹이조차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헛간 앞마당을 긁어 대는 일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자기는 왜 이곳에서 유별난 존재여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가 먹어 본 것은 아무것도... 그는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겨우 목숨을 유지할 만큼만 먹었습니다. 아시겠죠. 애초에 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암탉은 꼬꼬거리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그런 것은 없다. 교회에 들어오너라.” 그 말은 그 작은 녀석에게 도무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암탉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엄마가... 어미 독수리는 자신이 알을 몇 개 낳았는지 알았고, 하나가 없어진 것도 알았습니다. 그 독수리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 나섰습니다. 산꼭대기 위를 돌고, 골짜기로 내려가고, 그가 있을 만한 곳은 어디든 찾아다녔습니다. 이제는 태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알에서 깨어 나올 때였습니다. 어미는 말했습니다. “까마귀가 와서 내 알을 가져갔을지도 몰라. 어쩌면 대머리수리였을지도 모르지. 모르겠어. 무언가 내 알을 가져갔어. 하지만 나는 알아... 그 알이 내 생각 속에 있어. 내게는 어딘가에 아들이 있어. 그를 찾아야 해.”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위대한 독수리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교회를 가지실 것을 아셨습니다. 한 백성을 가지실 것을 아셨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품어 주었든, 무엇 밑에서 부화했든 상관없이 그분께서는 찾고 계십니다. 자신의 것을 찾고 계십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이 어미 독수리가 헛간 앞마당 위를 날아갔습니다. 사방을 살피다가 그를 찾았습니다. 오, 그 부활이여! 그는 결국 닭이 아니라 정말 독수리였다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아래를 보며 헛간 앞마당에서 벌레나 그런 것을 찾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쪽 위를 보아라!” 하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가 위를 올려다보니, 날개 너비가 십사 피트나 되는 새가 있었습니다. 앞마당에 있는 모든 닭보다 힘이 센 그 새가 그를 자기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어떻게 엄마에게 갈 수 있어요?” “그냥 뛰어올라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하렴. 너는 독수리니까.” 보십시오. 어미는 어딘가에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무엇 가운데서 자랐든, 어딘가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십니다! 할렐루야! 그분께서는 미리 예정되고 미리 정해진 교회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들딸들이 있고,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부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성령께서 그 위를 날기 시작하실 때, 그 흔드는 이삭단이... 오, 참으로!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어떤 신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그에게 말하려고 해도... 독수리는 독수리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독수리였습니다. 자기를 비추는 어떤 존재를, 아니, 자기가 그 모습을 비추는 존재를 보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단이나 철학박사나 법학박사나 좋은 이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져, 오늘의 요구에 응답할 하나님의 원동력이 되는 권능을 가지고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나타내는 아들을 보면, 어떤 암탉도 여러분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엄마를 찾습니다. 애초부터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알아봅니다... 이 참된 독수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부르심을 알아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가 독수리에게로 갑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의 말씀이 말씀에게로 갑니다! 미리 예정된 말씀이 이 시대를 위해 기록된 말씀에게로 갑니다. 여러분의 위치를 아십니까? 그는 그것을 찾습니다.
그때 이 땅의 몸은 하나님의 살리는 영으로 살아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어떻게 어미에게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을 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배워 왔습니다. “너는 뛰어오르는 높이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어.” 그는 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이 독수리는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 “하지만 닭들을 보세요.” “닭들이 어떻든 상관없어. 너는 독수리야. 그 날개를 펼치기 시작하고 조금 움직여 보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렴.” 말씀이 말씀에게로 갑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아시겠죠. “내가 살아 있으므로 그도 산다.”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의 죽을 몸을 살리시느니라.” 아시겠죠.
그것이 무슨 일을 합니까? 이제 잘 들으시고 아십시오. 저는 이번 부활절이 여러분에게 이전의 어느 부활절보다 더 큰 의미가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그분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도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똑같이 해 주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기를 원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무엇을 합니까? 죽을 몸을 살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죽을 몸을 살립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한때 입에 커다란 시가를 물고 다니거나 담배를 잔뜩 가지고 다녔던 여러분, 또 한때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고 그런 행동을 하며 반바지 같은 것을 입었던 여자 여러분, 갑자기 무언가 외쳤고 여러분이 이 아래쪽을 보니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살렸습니다. 여러분은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반바지를 입지 않겠습니다. 이제 술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거짓말도, 도둑질도, 이런저런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 곧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 영께서는 땅의 흙인 여러분의 죽을 몸도 복종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에 대한 복종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말씀입니다. 신학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것들을... 말씀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아, 저는 여자들이 바지를 입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그 영께서 여러분을 살려 그 말씀에 응답하게 하십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리로 이끌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의 일부가 됩니다. 그 영께서 여러분의 몸을 이끌어...
여러분은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저는 여러분의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느냐입니다. 닭이 되고 싶으면 그들과 함께 가십시오. 그러나 목사가 이 말씀과 다르게 말한다면, 그는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암탉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독수리에게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독수리는 독수리의 먹이를 먹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살립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도, 그 밖에 여러분이 하는 그 모든 일도 잘못입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지만, 이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것은 정신 감응이고 일종의 독심술이다. 이 분별과 이런 모든 환상 같은 것들은 허튼소리다”라고 말한다면, 보십시오, 그들은 닭입니다. 독수리의 먹이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 외침을 들을 때 여러분 안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독수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아들, S-o-n의 부활의 빛이 밝아 오고 이 땅에서 이삭단을 흔들어 보임으로써 자신이 교단의 닭이 아니라 독수리임을 알아보게 된 바로 그 씨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 곧 말씀, 말씀의 원동력이 여러분 안에 거하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입니까? 그 이유는, 빨리 말씀드리면, 우리가 아직 죽을 죄인이었을 때, 죽을 존재로서 이 몸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었을 때, 그 영이 그 몸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살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한때 술 마시고 돌아다니며 간음하고 이런 모든 것을 좋아하던 그 영이 살아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죽었고 여러분이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그 영이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은 원동력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부터 여러분이 기계적 장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오! 거기에 여러분의 부활이 있습니다. 거기에 그분과 함께 부활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 몸들은 바로 지금 살아났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들었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교단에서 말씀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원동력이 물에 임하면, 그저 푸드덕거리기만 할 것입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아, 나는 성경을 믿는다.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하지만 없...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아시겠죠? 그러나 그것이 일천 옥탄에 닿으면 “부르르릉” 하고 달려갑니다. 아시겠죠. 오, 원동력이 거기에 닿습니다! 그러나 닭에게 닿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독수리에게 닿으면 그는 나아갑니다. 아멘. 원동력과 기계적 장치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제 말을 아시겠습니까? 그가 참된 독수리라면 이해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경 구절 하나를 바로 풀어 드리겠습니다. (전화 연결은 끊긴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제가 길을 내려가면서 그것을 영적인 이해 없이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다른 말을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쓰인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원래 그리스어에서 그곳의 정확한 말은 “내 말을 이해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맞다는 것을 입증해 보겠습니다. 제가 여기 길을 내려가는데 술 취한 사람이 다른 남자의 아내와 팔짱을 끼고 길을 걸어오며 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고 그런 온갖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기요, 저 설교자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까? 들으셨습니까?” “예, 들었소!” 그렇다고 그에게 영생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내 말을 이해하는 자”, 독수리인 사람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것보다 더 많은 성경 근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낯선 자는 따르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지난번 결혼과 이혼 문제도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그것을 말씀하셨을 때, 저는 와서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전했습니다. 어떤 여성 목사가 제게 꽤 날카롭게 한바탕 꾸지람을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모양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런데 당신은 그들에게 죄가 용서되었다고 했잖아요. 거기에는 하나님만 권능을 가지신다고 했는데...”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의 바리새인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분이 누구신지 계시를 받은 뒤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분께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요나의 아들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네게 열쇠들을 주노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내가 하늘에서 묶겠고,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육신이 된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날에 아들, 곧 신랑을 통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면, 오늘은 신부를 통해 육신이 됩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면하면 그것들이 그들에게 사면될 것이요, 누구의 죄들이든지 그대로 두면 그것들이 그대로 있으리라.” 자, 가톨릭 교회는 그것을 집어다가 자기들의 사제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적입니다. 보십시오. 그것을 행한 것은 영적으로 계시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지난번에 어떤 젊은 설교자와 이야기했는데, 그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나와서 가입했습니다... 어느 교회로 옮겼습니다. 오순절 교회인데...” 이제 오순절에서도 둥근 성찬용 빵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코셔, 그 달의 신 말입니다. 그들이 모두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그의 회중이 그에게 갔습니다. 그는 “내가 축복하는 것은 복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자, 그것이 자기가 그 빵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바꿀 권능을 가졌다고 하는 사제의 말과 똑같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여섯 개나 반 다스나 똑같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받는 문제를 피하려 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그렇게 했다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뒤에도 말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침례를 전혀 받지 않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전혀 침례받지 않은 것입니다. 이름이 없습니다. 그것은 칭호입니다. 그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왜 베드로가...?”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지요. 사도행전 10장 49절에서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곧바로 돌아서서 ‘누가 물을 금하여 이들이 침례를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사도행전 19장에 관해 말씀하셨지요. 바울이 에베소의 위 지방들을 지나가다가... 그 제자들을 만난 이야기 말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잖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회개에 이르는 침례를 받았지, 죄들의 사면을 위한 침례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개에 이르도록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희생물이 아직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다시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 열쇠들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것을 알라.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너희가 구원받을 다른 어떤 이름도 주어진 적이 없느니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습니다. “너희가 말이나 행위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교회도, 성직 제도도, 칭호도, 그 밖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분께서는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 새벽별, 알파, 오메가, 시작과 끝, 여호와 이레, 라파, 므낫세, 이 모든 것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것이시지만, 그 어떤 칭호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여호와라는 칭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샤론의 장미, 그분께서는 분명히 그 장미이시지만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칭호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또 성경은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의 사면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의 맨 끝 지역들까지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와 저와 제 아내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만나려고 이쪽으로 와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애리조나 사람들입니다. 이곳에 살고 있고, 우리 의회와 구역, 시장, 주지사,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만일 제가 우리 식사를 신청하면서 애리조나주 주지사의 이름으로 서명하라고 한다면, 가서 그렇게 서명하시겠습니까? 접수대에서 그것을 받아 줄 것 같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안 받아 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제가 이 식사를 애리조나주 주지사의 이름으로 서명하라고 하면, 우리는 애리조나 시민이고 주지사가 누구인지 아니까 샘 고더드의 이름으로 서명해야 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이 주의 주지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주지사가 누구인지 아시니까요. 그분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어떻게 침례를 줄 것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아시겠죠.” 그가 “아,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음 문제는 여러분이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그리고 이 새로운 영생이 여러분 안에 거할 때, 그것이 잠재적인 실재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오순절의 그들처럼 이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이 기계적 장치였습니다. 이제 원동력이 와야 했습니다. 그들은 믿었습니다. 우리의 좋은 침례교 친구들은 믿으면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었는데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그들은 믿었지만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아시겠죠? 그들에게는 분명히 기계적 장치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아니, 아볼로가 그들에게 가르치면서 기계적 장치인 성경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직 원동력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입니다. 좋습니다.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기계적 장치, 여러분은 잠재적으로 보증, 기다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원동력을 받으면 여러분은 이미 살아나 죽을 존재에서 죽지 않을 존재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것이 온몸을 말씀에 복종하게 합니다.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살게 합니다. 여러분을 전혀 다르게 만듭니다.
이제 보십시오.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살아났습니다. “한때 죄와 범법과 어둠 가운데 죽었던 너희를 그분께서 살리셨도다.” 무엇으로 살리셨습니까? 부활절 아침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그분의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께서 여러분의 죽을 몸 안에 거하시면, 이제 보십시오, 그 몸도 살리십니다. 생명을 주시고 말씀에 복종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영을 가졌다고 하면서 말씀에서 떠나 버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살아난 것입니다. 그 영께서는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려 말씀에 응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달릴 수 없습니다. 말씀 전부를 믿지 않으면 그저 푸드덕거릴 뿐입니다. 일부는 휘발유이고 일부는 물이라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백 퍼센트 휘발유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화가 일어나고 힘을 내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글쎄요, 저는 이것은 믿지만 저것은 믿지 않습니다.”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아무 데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 충만함을 받아들이면! 그 위에 불이 붙게 하십시오. 모든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제 마치면서 이것을 보십시오. 땅속에 놓인 작은 씨앗과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잠재적으로 부활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을 받을 때 부활한 것입니다. 바로 그때 부활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잠재적으로 부활했습니다. 땅에 심은 작은 씨앗을 보십시오. 그분의 샘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을 마셔야 합니다. 마시면서 그분을 향해 솟아오르고, 땅에 들어갔던 그 씨의 모습과 점점 더 같아집니다. 아시겠죠. 교회도 그렇게 왔습니다. 의롭게 됨과 성결케 됨, 성령의 침례를 거쳐 이제 꽃이 피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영께서 그 길을 거쳐 오셨습니다. 세상의 영도 적그리스도를 통해 같은 방식으로 왔으며, 이제 거대한 교회 연합 안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전체가 그렇습니다.
개인도 그 길을 거쳐 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동일한 척도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영의 인도를 받아 완전한 부활을 향해 자라 가는 길에 있습니다. 해, s-u-n이 하나님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그 작은 식물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보십시오. 그것은 한 가지에서만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씨앗 위에 한번 기름을 부어 보십시오. 죽이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여서 썩은 물, 좋지 않고 오염된 오래된 물을 부으면 성장이 저해될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말 좋은 부드러운 빗물을 부어 보십시오. 아멘. 사람이 만든 화학 물질이 전혀 들어 있지 않고, 저 위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을 주고 그 작은 식물을 지켜보십시오. 빗물처럼 그것을 잘 자라게 할 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먹이려 하듯 염소나 그런 것을 넣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그 식물을 죽이고 맙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교단의 샘에서 물을 가져다가 주려 하고, 그것이 성장을 저해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에게 이것을 주십시오... 자비의 이슬이 빛나는 곳으로 오라. 낮이나 밤이나 나의 온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빛 가운데 걸으리, 그 아름다운 빛, 자비의 이슬이 빛나는 곳으로 오는 빛, 나의 온 주위를 비추소서... 사람이 만든 이 샘들을 제게서 치워 주십시오! 제가 아는 다른 샘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제가 알기 원하는 샘은 그것뿐입니다. 주님, 말씀이 제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으로 그 말씀에 물을 주옵소서.
보십시오.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그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은 잠재적으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의 인도를 받아 여러분에게 말씀이 살아나서 그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작은 생명은 자라면서 계속 위로 솟아오릅니다. 보십시오. 오순절에 그들의 몸은 살아나 새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겁쟁이들로 이루어진 그 작은 무리를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어 두고 있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이제 막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오, 참으로!)
보십시오. 그들은 겁쟁이였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계적 장치가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안쪽에 앉아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두렵다. 밖에 나가서 선언하기가 두렵다. 저 바깥에는 큰 감독들과 그런 사람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아, 두려워. 저 제사장들과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선언하기가 두렵다. 그분을 믿었다고 말할까 봐 두렵다. 아,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어.” 아시겠죠. 그런데 갑자기 원동력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안에 있는 그들의 영을 채웠을 뿐 아니라, 그들의 기계적 장치도 살렸습니다. 그들의 몸이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곧장 나가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아!” 원동력이 오기 전에는 기계적 장치에 불과했던 그들이 말입니다. 아시겠죠.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너희는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라!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 성경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올 때까지 이것이라도 간직하게 해 주십시오.” “아니다. 이것은 대언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아시겠죠. 원동력이 기계적 장치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화장을 그만두면 어떤 여자가 비웃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어떤 남자분들은 회중에게 성경적인 침례를 주면 소속 조직에서 쫓아낼까 봐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원동력이 올 때까지 다락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을 살렸습니다.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살려서 겁쟁이였던 옛 삶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 같은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단연코 순교를 마주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고, 불에 타고,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겁쟁이의 모습이 없었습니다. 사망은 그들을 전혀 이기지 못했습니다. 원동력이 기계적 장치 안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죽을 몸을 살렸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입증하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을 얼마나 살렸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하늘의 처소들로 들어 올려졌고, 그들의 죽을 몸이 그처럼 살아나서 말하는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살렸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죽을 몸이 살아나자 그들의 언어도 살아났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살아났고, 그들의 영이 살아났으며, 그들의 삶이 살아났습니다. 그들 전체가 살아났습니다! 말하려고 해도 더 이상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처럼 살아나서 새로운 언어들, 하늘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휴! 얼마나 놀라운 살리는 권능입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오, 할렐루야! “너희의 죽을 몸을 살리시리라.” 그 영께서는 여러분이 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몸은 이제 더 이상 죄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욕망은... 그가 “이리 나와 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입 다물어.” “아, 우리에게는 가장 큰...” “입 다물어.” 아, 여러분은 독수리입니다! 독수리가 얼마나 의젓하게 제 갈 길을 걸어가는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땅에 놓인 죽은... 온갖 썩은 고기를 찾아 대머리수리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당당하게 걷습니다. “입 다물어.” “아, 여기 좋은 음식이 있어.” “내 음식은 아니야. 내 욕망은 달라졌어. 내 식욕은 달라. ‘사람이 세상, 곧 썩은 고기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참으로 살아난 독수리는 그것으로 삽니다. 아멘!
오,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며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려 자신의 임재 안으로 이끄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봅니다. 더 이상 썩은 고기를 먹는 새가 아닙니다. 독수리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것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샘에서 풍성히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는 아는...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마시고 있습니다. 세상이 전혀 알지도 못했던 감추어진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살아나서 그것에 이를 수 있는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이 아래에서는 그것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나 그곳으로 들어 올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살릴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다른 언어로 말했습니다. 성경이 그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하늘 아래 모든 언어로 말하였느니라.” 상상이 되십니까? 거기 있던 그 죽을 몸들이 “글쎄요, 이것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그처럼 살아나서, 흔들어 보인 그 이삭단을 통해 유다 지파의 사자의 용기가 그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오, 그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부르러 왔습니다. “그들이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앞으로도 자기 생명의 피를 바칠 사람들이 더 있으리, 이 성령의 복음과 그 진홍빛 물결을 위해. 아들께서 마지막 날에 신부 안에서 다시 나타나셔야 합니다. 살리는 권능이 와서 이 죽은 교단들과 신조들에서 그들을 살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오!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을 살려 새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일을 합니다. 보십시오. 그때 그들은 그 살리는 권능 안에서 그처럼 살아났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 합니다.) 살리는 권능은 그들의 혼에만 있지 않고 그들 전체에 있었습니다. 원동력이 들어와 살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계적 장치까지 살렸습니다. 제 말을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그처럼 살아나자 그들의 혀가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으로 그처럼 살아나서 그들이 손을 얹으면... 살리는 권능으로 그처럼 살아나서 병자들에게 손을 얹었을 때 병자들이 나았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립니다. 그들이 손을 얹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또한 영께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들의 교제를 살리셨습니다. 그들은 그처럼 살아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이르렀으므로, 어떤 사람이 죽어 혼이 떠났을 때 그 사람을 다시 생명으로 불러왔습니다. 아멘! 영광입니다! 이제 신앙의 감격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살아났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그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원하는 자, 거기에 놓여 있는 이 미리 예정된 씨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살립니다. 죽을 몸을 살립니다! 그들이 병자들에게 손을 얹자 병자들이 회복되었습니다. 영 안에서 기도하고, 환상들을 보며, 죽은 자들을 다시 생명으로 불러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죽을 몸을 살렸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면, 참으로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렇다면 이런 표적들이 그들에게 따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립니다.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들을 살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라.” 찾아보시면 그 말은 그리스어 ‘조에’에서 왔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그것을 움직이게 한 뒤 그들의 생각까지도 살립니다.
이제 보십시오. 어떻게 그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한 모든 일을 했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그 영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보여 주는 증거는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도 살리셔서 말씀에 응답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여러분을 살린다는 것이 말씀에서 떠나게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말씀 안에서 움직이게 하기 전까지는, 여러분이 무엇을 했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모든 말씀입니다! 저는 지난번에 그것에 관해 말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이제 세상을 떠나셨는데, 참으로 독특한 분이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디언 혈통이 절반쯤이셨고, 독특하셨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평생에 꿈을 네다섯 번밖에 꾸지 않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을 꾸실 때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꿈을 꾸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오래전 제가 처음 설교를 시작했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바로 이 위쪽, 이 길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꿈을 꾸셨는데, 제가 세 개의 계단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서서 모든 사람에게 큰길에 오르기 전에 이 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큰길에는 진주처럼 하얀 가느다란 선이 있었고, 그것이 곧장 천국의 문, 진주문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진주 같은 선이 이 계단 꼭대기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 제 메시지 그대로입니다. 의롭게 됨, 성결케 됨, 성령의 침례입니다. 저는 그 큰길을 걸으려면 이 세 계단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지나가더랍니다. 여러분은 삼십오 년 전에 사람들이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아실 것입니다. 한 여자가 지나갔는데, 오늘날 신는 것 같은 커다란 신발, 뾰족한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지나가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자매님. 그것을 신고는 그 큰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그렇게는 갈 수 없습니다.” 그 여자가 “흥!” 하고는... 다른 여자들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을 믿지 마세요. 미친 사람이에요. 아시겠죠. 믿지 마세요. 나는 의롭게 되고 성결케 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고도 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거예요.” 그래서 그 여자가... 저는 그냥 가게 두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고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큰길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를 돌아보며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길로 뛰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여자가... 성경이 이사야 5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목을 앞으로 내민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니까요. 아시겠죠. “걸어가면서 점잔을 빼며”,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몸을 비틀어야 하니까요. “걸어가면서 점잔을 빼며 발꿈치로 딸그랑 소리를 내느니라.” 아시겠죠. 마지막 날의 시온의 딸들입니다.
그 여자는 달릴 수 있는 한 힘껏 그 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길이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끔찍한 비명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여자가 불꽃과 연기 속으로 떨어지면서 아래로, 그렇게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더구나.” 그러자 제가 돌아서서 “보셨지요?”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여자는 단 한 말씀만 빼고 모든 것에 순종했습니다. 아시겠죠. 한 말씀만 빼고 모든 것에 말입니다. 분명히 오순절의 여자들도 구원받고 성결케 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다음에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런데 그 여자는 그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그대로 잘 들어갔을 테지만, 보십시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 주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교리 등을 통해 복음을 기록하셨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가져오는 이 살리는 권능, 조에를 보십시오. 그때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생각이 여러분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보여 드리려는 것은, 여러분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을 때 여러분도 일으키셨으며, 그분과 함께 생명으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때는 그분의 생각 속에 있는 한 속성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그 몸을 내려다보셨을 때... 그 영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을 떠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죽으셔야 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육체, 인간의 육체에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하지 않으셨... 그곳에 하나님으로 올라가셨다면 그런 죽음을 결코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자기 안에 두고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직 신부를 신랑에게서 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내려다보셨을 때 남자와 여자를 함께 보셨습니다. 그 한 몸 안에서 모두 구속되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하나이며, 같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신랑을 말씀하신 그 동일한 말씀이 신부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부가 와서 그분에 관해 약속된 모든 것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랑이 오셨는데 그분께서 신부가 아니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께서 모든 일을 하셨고, 나중에는 죽은 자들로부터 자신을 일으키셔서 그것을 입증하시기까지 했다면, 신부도 똑같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마지막 날들에 신부가 될 것이라고 말씀이 말씀하신 바로 그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부는 말라기 4장을 거쳐 돌아와야 하지 않습니까? 소돔 시대와 같이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도 지금 있는 이 모습 그대로여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확인해 주는 증거가 아닙니까? 친구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오래 붙들고 있는 줄 압니다. 아직 점심때까지 십오 분이 남았으니 그때쯤에는 마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기를 보십시오. 얼마나 완전한 일입니까! 제가 언제 여러분을 다시 뵐지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이것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신랑 안에서 신부를 미리 보셨습니다. 할렐루야! 보십시오. 아담처럼 자기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분께서도 아내와 함께 가셔야 했습니다. 아담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습니다. 이브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아내와 함께 걸어 나갔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기 아내의 자리를 대신하시고 아내를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여러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교제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친구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 외에 어떻게 다른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만으로도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갑시다.
오늘날의 오순절 체험과 약속대로 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께서 오시는 일은 등기권리증에 붙는 양도 경과 설명서와 같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권리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어느 땅의 권리증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 땅이 여러분의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오래전의 누군가가 와서 그 땅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도 경과 설명서를 받으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땅에 제기되었던 모든 청구가 말소되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말씀을 믿는다고 말한 뒤 성령께서 오시면, 그것이 권리증에 대한 양도 경과 설명서입니다. 그 설명서를 가지면 그 땅의 모든 부분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라는 권한을 받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보시고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셨던 이 권리증 위에 성령께서 오실 때, 그것이 우리에게 양도 경과 설명서를 줍니다. 그러나 사람은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 죄에 얽매이고 죄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믿었을 때 권리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셨을 때는 양도 경과 설명서가 온 것입니다. 저를 대적하는 모든 것, 제 어머니가 한 것이든 아버지가 한 것이든 할머니가 한 것이든... 몇 분 전에 제가 기도해 준 그 어린 뇌전증 아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조부모에게서 내려온 것으로, 뇌전증이 그 아이에게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기를, 양도 경과 설명서가 오면 그 모든 것이 말소되고 제거됩니다. 그러면 저는 양도 경과 설명서를 가진 사람이 됩니다. 아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께서 확실하신 것처럼, 제게도 제가 그 몸의 일부임을 보여 주는 양도 경과 설명서가 딸린 권리증이 있습니다. 성령이라는 양도 경과 설명서가 그 말씀의 몸을 살게 하여, 마지막 날에 약속하신 대로 그분 안에서 살았던 것과 똑같이 살게 합니다. 양도 경과 설명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제 모든 죄가 말소되었고 여러분의 모든 죄가 말소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미리 아심으로 제게 주신 등기권리증에 대한 양도 경과 설명서로 오셨습니다. 오, 참으로!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분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전에 죽었으나 다시 살아 있는 자요,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으며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고 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음조차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름답습니다! 이제 빨리 나아갑시다. 양도 경과 설명서가 딸린 권리증입니다. 빚은 청산되었습니다. 그것을 대적하는 모든 것이 말소되었습니다. 영광입니다! 제가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기분이 좋습니다. 아닙니다. 아시겠죠? 오, 양도 경과 설명서가 딸린 권리증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형제님,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아무것도 여러분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아멘. 저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멘. 무슨 권리증입니까? 저는 이제 그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의 수혜자로서 제 몫을 찾아 누렸습니다. 제가 그분이 되도록 그분께서 제가 되셨습니다. 제가 아들이 되도록 그분께서 죄인이 되셨습니다. 아멘. 그리고 제가 양도 경과 설명서가 딸린 권리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런 표적들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리라.” 아시겠죠. 양도 경과 설명서가 딸린 권리증입니다. 이제 서둘러, 그전에... 우리에게 십 분 정도 더 남았습니다.
이제 영께서 살리시는 일을 빨리 살펴봅시다. 여러분이 이해하도록 몇 가지 표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 무엇을... 보십시오. 제 주제는 “살리는 권능”이었습니다. 아들께서 일어나신 뒤, 오순절의 그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역사했는지, 그들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살리는 권능이 그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들을 살렸습니다. 이제 그것이 스데반에게 무엇을 했는지 봅시다. 스데반은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권능은 그를 두려워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그 의로우신 분의 오심을 미리 보여 준 대언자들 가운데 너희 조상들이 돌로 치지 않은 자가 누구였느냐?” 오, 참으로! 그것이 그에게 무슨 일을 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저자를 없애 버리자!” 그가 죽을 때... 그들은 그를 돌로 쳤습니다. 돌들이 그렇게 그의 가엾은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는 위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하늘들이 열린 것이 보입니다.” 살리는 권능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하늘들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살리는 권능이 스데반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보십시오. 또 다른 사람에게도 이 살리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빌립이었습니다.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해서 사마리아에서 아주 큰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마귀들이 쫓겨나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는, 참된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영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 원동력이 내려와서 말했습니다. “이 부흥 집회를 떠나라.” 그러면 목사들이 뭐라고 할까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그에게는 휘발유가 있었고 원동력이 그 위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광야로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한 내시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에티오피아로 메시지를 가져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여러분도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살리는 권능이 여러분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십시오. 아시겠죠.
스데반이 이 큰일을 했을 때... 아니, 스데반이 아니라 빌립이 그 큰 부흥 집회를 떠나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는 이 큰일을 했을 때, 그가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었을 때,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해서 그 권능이 그를 채어 갔습니다. “너희의 죽을 몸을 살리시리라.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이 영께서...” 그 영께서 빌립을 그처럼 살리셔서, 아마 백오십 마일쯤 떨어진 다른 곳, 다른 지방에 갈 때까지 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영께서 그의 죽을 몸을 살리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여, 오늘날 여기서 빨고 있는 이런 조그만 설탕 젖꼭지에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해지고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살리실 때까지... 언젠가 저 휴거 때 우리가 채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오, 참으로! 그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어머니들이 예전에 아기를 위해 만들던 그 작은 주머니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연세 드신 어머니들 가운데는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커피 찌꺼기와 설탕을 조금 가져다 천 주머니에 싸서 빨게 했습니다. 그저 달래려고 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힘을 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기를 죽일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 속의 카페인과 그런 것들에 단맛을 조금 넣어 삼키게 해서 카페인이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지쳤습니다.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은 독수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튼튼해지십시오. 아무것도 여러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온갖 비방에서 자유롭습니다. 누가 여러분을 거슬러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더 많은 사랑을 가져올 뿐입니다. 아멘. 살리는 권능으로 하늘의 처소들에 채어 올라갑니다. 이미 닭들 위로 날아오른 독수리, 저 높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의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독수리입니다. 오, 그 권능이 빌립에게 있었습니다. 그를 살리고 그를 채어 갔습니다.
다른 사람을 봅시다.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약 오백 년 동안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에게는 “저는 한 번도 그분의 말씀을 어기지 않았습니다”라는 간증이 있었습니다.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해서, 원동력이 그 기계적 장치에 임했을 때 죽을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본향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냥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빌립처럼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해졌습니다. 가자로 갔다가 위 지방의 다른 곳에서 발견된 빌립처럼 간 것이 아니라, 그는 그냥 걸어... 말했습니다. “어차피 나는 늙은 사람이다. 내게 살리는 권능이 이렇게 많으니 그냥 걸어서 이 땅을 떠나겠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살리는 권능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살리는 권능입니다. 에녹에게는 그 완전한 간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저는 했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제가 본 모든 것을 저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원동력으로, 아니 기계적 장치로 그처럼 충만해져서, 살리는 권능이 그 기계적 장치인 그에게 임하자 그것이 그를 곧장 들어 올렸습니다. 그는 걸어서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이제 엘리야를 주목하십시오. 그 뒤에... 보십시오. 그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그 시대의 인물입니다. 실례합니다. 형제님, 자매님, 그 시대에 그는 얼굴에 화장한 여자들, 그 이세벨들과 아합들을 호되게 꾸짖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그와 함께 서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꾸짖고 삼키며 그곳에 서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나 그를 돌보시고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노인이 지쳤습니다. “나는 늙어 가니 더는 갈 수가 없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나이가 구십 세쯤 되어 가는, 아주 늙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거기를 걸어 다니던 그는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요르단 건너편을 바라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거의 저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해서, 저쪽에 매어 둔 병거, 불 말들과 불 병거가 저편 어느 나무에 매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냥 강을 건너 걸어가서 죽지도 않고 본향으로 갔습니다. 살리는 권능으로 인해 병거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데려갔습니다. 그는 자기 겉옷까지 벗어 엘리사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 겉옷을 주워 들었습니다. 이것도 교회의 모형입니다. 아시겠죠. 그 겉옷을 주워 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두 배의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입니다. 아시겠죠. 엘리야는 네 번 행했고, 그는 여덟 번 행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두 배의 권능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너희가 하리라.” 아시겠죠. 그는 살리는 권능과 모든 것으로 너무나 충만해서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엘리사가 한 것의 두 배, 그가 한 것보다 더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그는 계속 살다가 팔십 세나 구십 세쯤 되어 늙어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나가 묻었습니다. 그러나 그 살리는 권능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여러 해, 아주 여러 해가 지나 살이 뼈에서 모두 썩어 없어졌을 때, 그는 무덤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죽은 사람 하나를 메고 가다가 적을 보고, 그 사람을 그냥 엘리사의 뼈 위에 던졌습니다. 그 뼈에 살리는 권능이 너무나 많아서 그 사람이 살아나 벌떡 일어났습니다. 오!
그분께서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리실 것입니다. 죽어서 무덤 속에서 썩었다 해도, 그 살리는 권능은 여전히 그 흙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때의 엘리야, 엘리사와 엘리야가... 기억하십시오.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했던 그 죽은 사람, 그 선지자는 무덤에 누워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리는 권능이 너무나 많아서, 죽은 사람을 그 위에 던졌더니 그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그는 여전히 병자들에게 손을 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분의 살 중의 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살 중의 살이요, 그분의 뼈 중의 뼈입니다. 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부활절은 단순한 전통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지금의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그분과 함께 살아났고 우리가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은 바다에서 썩거나 땅속에서 썩을 수 있습니다. 한 숟가락의 재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은 나올 것입니다. 제 주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께서 이 죽을 몸을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그렇게 자주 말하는 그분의 영생 보험 증서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나는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그렇습니다. 살리는 권능입니다. 오, 참으로!
그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보십시오.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분의 신부도 메시아에트들입니다. 아시겠죠.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보십시오. 죽음은 하나님의 살리는 권능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죽음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가지면 그것은 영원합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에 고삐를 맬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수명을 다해도 그것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똑같이 유효합니다. 보십시오. 모세는 그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합니다. 그랬습니까? 그는 말씀이 임한 선지자였습니다. 말씀의 일부였습니다. 그 시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죽은 지 팔백 년 뒤에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살리는 권능, 죽음은 결코 그것을 없애지 못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다시 일으키리라.” 천사들이 와서 저 골짜기에 그를 묻었습니다. 그는 썩어 없어지고 뼈와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살리는 권능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살리고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 그렇습니까? 팔백 년 뒤에도 말입니까? 오, 참으로!” 마태복음을 읽어 보시면, 여기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입니다. 적어 두셔도 좋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었던 모든 사람들... 여기 성경은 그분께서 오신 뒤에... 그들은 땅속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살리는 권능이 그들 위에 있었고, 그 성도들은 그분의 일부였습니다. 그분을 믿었기 때문에 그분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은 양의 희생, 화목제물을 통해 잠재적으로 그 생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양의 영을 사람에게 다시 가져다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의 영이... 하나님 자신이 그 사람 위에 계신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시겠죠. 우리는 얼마나 더 큰 살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어린양이 모형으로 드려졌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형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분의 부활을 가리키는 모형만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지닌 채 무덤에 들어갔던 그 사람들은...
그때 큰 고난 아래 있던 욥과 같습니다. 아,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그를 내게 주십시오. 당신의 얼굴 앞에서 당신을 저주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꺾었... “그의 생명은 빼앗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생명을 빼앗는 것 외에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아내조차 그를 등졌습니다. 아내의 숨결이 그에게 낯설어졌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내는 그와 상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저 그를 밀어냈습니다. “욥, 당신은 비참해요! 그냥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게 어때요?”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고 있소.” 오, 참으로! 보십시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나는 마련된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아멘. 그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습니다. 말씀 위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는 바로 그 말씀 위에 있었습니다. 그 크고 엄청난 시간에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고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왔습니다. 벌거벗고 왔으니 똑같이 나갈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그는 온몸에 종기가 난 채 앉아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죽었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친구들과 교인들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이 그를 등졌습니다. 그는 무엇으로 자기 몸을 긁으며...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이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아직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는 독수리였습니다. 오, 참으로! 언제까지나 그의 눈에 막을 씌워 둘 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말씀 위에 서 있던 그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늘이 벗겨져 열리고, 천둥이 울리기 시작하고, 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했습니다. 욥은 위를 바라보며 환상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이 땅 위에 서시리라. 살갗의 벌레들이 뼈와 모든 것을 포함해 이 몸을 멸한 뒤에도 그 살리는 권능은 거기에 있으리라. 내가 몸소 하나님을 보리니,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라.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라.” 그렇지 않습니까? “내 콩팥이 내 속에서 소멸된 뒤에도, 지금 내 몸 안에 있는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뒤에도...”
여러분, 살갗의 벌레들이 밖에서 여러분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벌레는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살갗의 벌레들입니다. 그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관 속에 넣고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봉해도 벌레들은 똑같이 여러분을 먹어 치울 것입니다. 벌레들이 여러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여러분의 속은 그저 벌레 무리입니다. “살갗의 벌레들, 내 살갗의 벌레들이 나를, 내 살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그리고 그 부활의 아침에... 영광입니다! 할렐루야! 이 위대한 기록자 마태는 27장 51절에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뒤에 구약 성도들, 땅의 흙 속에서 잠들었던 많은 이들이 무덤에서 나와 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엘리사의 뼈 위에 있던 그 살리는 권능은, 더 이상 뼈가 없었을 때에도 여전히 있었습니다. 욥의 몸에서 한 숟가락의 흙도 남지 않았을 때에도 그 권능은 여전히 욥 위에 있었습니다. 살리는 권능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이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분께서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제 빨리 보십시오.
여러분은 말합니다. “아, 제가 그때 살았더라면...” 여러분은 더 좋은 때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이 성경 구절들을 적고 계신 것이 보입니다. 좋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을 적으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 성도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아시겠죠. 무덤 속의 성도들입니다. 쉬고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어떤 이들은 엘리사처럼 말입니다. 아시겠죠. 어떤 이들은 살아나고 어떤 이들은 들려 갈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덤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리라. 그리고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살아 있는 자들 위에도 살리는 권능이 있고, 죽은 자들 위에도 살리는 권능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두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동일한 살리는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이름을 보십시오. 거의 같습니다. 엘리사, 엘리야입니다. 신부와 신랑이 보이십니까? 한 분은 예수 씨이고, 다른 한쪽은 예수 부인입니다. 아시겠죠. 거의 같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만 있습니다. 아시겠죠. 엘리야...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십시오. 자, 엘리사는 휴거로 들려 올라갔으며 교회를 나타냅니다. 좋습니다. (엘리야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부활 때까지 쉬었습니다. 아시겠죠. 새가 균형을 잡으려면 날개 둘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바로 그 두 선지자에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잠자는 자들을 방해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나팔이 울릴 것이기 때문이라...” 양쪽 날개가 함께할 것이고 우리는 날아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날아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그 살리는 권능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이제 기억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볼 수 있도록 살아났습니다. 이 시대의 살리는 권능을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얼마 전, 도움이 되도록...
제 생각에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고 바울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나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날들에 이 살리는 권능이 우리 위에 있는 것을 볼 때... 그분께서는 병자들이 치유되는 것을 보도록 우리에게 살리는 권능까지 주셨습니다. 우리는 초기의 그들에게 역사했던 것처럼 살리는 권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환상을 통해 다시 데려오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으며, 병자들을 낫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기 있는 도너번 위어츠를 여러분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제가 그와 함께 사냥하러 갔습니다. 가엾은 그 친구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이 교회에 오는, 저와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그는 “형제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의 귀를 보니 온통 뒤집혀 있었습니다. “도너번,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말하며 이렇게 손을 잡았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암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도너번, 귀가 왜 그렇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한 육칠 개월 되었는데 계속 더...” 제가 물었습니다.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브래넘 형제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짐작은 합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위에 손만 얹었습니다. 이틀 뒤에는 흉터조차 없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살리는 권능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죽을 몸을 살릴 것입니다. 그의 귀는 먹혀 없어지고, 뇌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리는 권능이, 아시겠죠?
어느 날 저 자신이 지쳤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이제 서둘러야겠다. 너는 쉰 살이다.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려면 서둘러 해야겠다. 늙어 가고 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날 아침 살리는 권능이 왔고, 그분께서 제가 휘장 너머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는 여러분 모두를 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네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 너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네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들 모두를 그렇게 보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살리는 권능이었습니다. 계시를 받은 요한은 살리는 권능으로 가득 찼고, 일어서서 처음부터 그 끝을 내다보았습니다. 이사야는 살리는 권능으로 충만하여 일어서서 천년왕국과 그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살리는 권능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의 죽을 몸을 살리시리라.” 살리는 권능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시대에 본 것을 보십시오. 살리는 권능이 우리에게 와서 일곱 봉인을 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의 지성이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리는 권능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살리는 권능이 이 일이 일어나리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살리는 권능이 세상으로 하여금 이것이 진리임을 증언하게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주의 천사가 그 불기둥 주위에 있었습니다. 살리는 권능이 세상으로 하여금 그것이 진리임을 증언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저 이렇게 보십시오. 저 위에 계신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아시겠죠.
그 봉인들을 여신 분은 그분이십니다. 그분께서 그 봉인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열린 그 봉인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봉인들이 열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계시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곱 천사는 완성된 일곱 교회를 나타냈는데, 우리는 그것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최고의 심판자께서 서 계십니다.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얼마나 분명한 증거입니까! 살리는 권능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살리는 권능으로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봅니다. 살리는 권능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낚아채었습니다. 살리는 권능이 분별을 주어, 여러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살리는 권능, 이 모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하셔서 그 모든 권능이 하나로 모인 분이셨습니다. 살리는 권능으로 너무나 충만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몸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그것을 일으키리라.” 살리는 권능에 대한 대단한 확신이지 않습니까! “이 몸,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그것을 일으키리라.”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에 관해 기록되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에 관해 기록되어 있음을 아셨습니다. 말씀은 “내가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고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살리는 권능이 자신을 일으킬 것이며, 세포 하나도 썩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예언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한 그 동일한 예언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도 이미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분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지금 계시는 영, 그분 안에 계셨고 지금 우리 안에 계시는 영께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구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들, S-o-n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아들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이제 변화산의 일을 보십시오. 그곳에는 우리 각자를 나타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휴거된 살아 있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서 있었는데, 죽은 성도들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그 둘에게는 모두 살리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죽고 다른 한 사람은 죽지 않았지만, 모두 그곳에 있습니다. 보십시오. 오, 이 마지막 날들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일, 요한복음 14장 12절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분명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당신에게 권능이 있다고 주장합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변화산에 있던 그들과 같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분명히 권능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화산에 있던 그들처럼 우리도... 그들이 말한 것은, 모세가 “내가 누구인지 보라” 하거나 제자들이 “내가 누구인지 보라, 내가 누구인지 보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나타나기를 원한 것은 오직 그것,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뭐라고 말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이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의 이름입니다. 우리 생명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권능이 아니라 그분의 권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즐겨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집니까?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부활로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는 그분께서 이전의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나시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 말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보십시오. 우리의 바람은 우리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큰 이름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교회를 키우거나 일요일학교의 사람 수를 늘리거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묶어서 밀어 넣고, 야유회나 잔치를 열어 주고, 별표나 배지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것도 우리의 바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바람은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영광을 받으십니까? 자기 자랑으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입증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비켜서게 할 수 있다면, 윌리엄 브래넘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여러분 자신도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 우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분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살리는 권능을 줍니다. 또 우리가 그분의 신부로서 그분의 살과 뼈이며 그분과 함께 있음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입증된 그분의 동일한 방식들이, 지금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우리 안에서 입증하는 것을 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우리는 그분께 구속되었고 이제 그분과 함께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이 사람들에게 뜻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일어난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양도 경과 설명서가 딸린 권리증의 대금이 완전히 지불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루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었습니다. “제가 이루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저는 이미 이루었습니다. 제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저를 위해 이루셨습니다. 아시겠죠. 제가 아니라 그분이십니다!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위해 이루셨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 제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분을 내려오시라고 부릅니까?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 제가 제 자신을 비켜서게 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올 것이다.’” 보십시오. 영광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에게 그 모든 증거가 모여 있으니, 오, 저는 그 찬송이 생각납니다. 그 부활의 아침에, 사망의 줄들이 끊어질 때, 우리 일어나리, 할렐루야, 우리 일어나리!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일부가 됩니다. 부활절, 그때처럼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 죽음 이후의 생명입니다. 한때 죄와 범법 가운데 죽었던 우리가 이제 살아 있습니다. 참된 부활절의 봉인이 저를 둘러싼 죽음을 깨뜨렸고 저는 살아 있습니다. 처음 부활절의 봉인은 로마의 봉인을, 그분을 봉해 놓았던 부활절의 봉인을 깨뜨렸습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봉인을 깨뜨리고 비밀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삶을 둘러싼 봉인을 깨뜨리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계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오, 한 장 또 한 장 이어집니다. 우리 일어나리, 할렐루야! 우리 일어나리! 아멘! 그 부활의 아침에, 사망의 감옥 빗장들이 부서질 때, 우리 일어나리, 할렐루야! 우리 일어나리! 오, 기쁘지 않습니까!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오래전 저 작은 석탄 창고에서 어느 아침 봉인들이 열렸고, 저는 그분과 함께 새로운 창조물로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살리는 권능입니다. 아들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낚시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서해안으로 나가, 자신을 낚시하러 데려가도록 노련한 어부를 고용했습니다. 그들은 그날 아침 배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연어 낚시를 해 보신 분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곳에는 안개가 몹시 낍니다. 저 아래 제 어린 형제 에디 비스칼이 보입니다. (그곳 인디언들에게 사역하는 선교사입니다.) 우리도 직접 그 해안에서 낚시했습니다. 그래서 이 낚시꾼은 좀 초보자였습니다. 아시겠죠. 그가 낚시를 나갔다가 배가 떠밀려 나갔습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더 이상 안개 경적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낚시꾼은 크게 흥분해서 “여보세요, 우리가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어요! 이봐요!”라고 말했습니다. 몹시 흥분했습니다. 그 어부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앉게. 앉아.” 노련한 어부는 차분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게. 그러면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제가 감리교인이 되어야 합니까? 침례교인입니까? 오순절교인입니까?”
그저 기다리십시오. 아들께서 일어나시면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이십니다. 씨 위에 빛을 비추는 말씀, 흔드는 이삭단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이렇게 오래 붙들어 두어 죄송합니다. 몇 분이나 오늘 저녁까지 머무르실 것입니까? 오, 그러면 오늘 저녁에 다시 오십시오. 아시겠죠. 일곱 시쯤입니까? 다른 순서가 있으셨습니까? [네빌 형제님이 “아니요”라고 말한다.] 우리 머리를 숙입시다.
여기 여러분 안에 이 살리는 권능이 없는 분이 한 분, 아니 여러 분 계십니까? 아들께서 빛을 비추셨고, 여러분은 이 태버내클에 앉아 테이프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영께서 여러분을 살리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하신 적이 아직 없습니까? 여자 여러분과 남자 여러분이 그분께서 기록하신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오,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이 없는 죽은 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안에는 이렇게 말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처한 이 상태에서 일어나고 싶습니다. 그저 죽은 씨로 남아 흙과 떠밀려 온 나무토막들과 함께 버려지고 싶지 않습니다. 일어나고 싶습니다.” 손을 들고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저 손들을 보십시오. 여기서는 우리가 제단 초청이라고 부르는 것, 사람들이 제단 주위로 나오는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그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것은 감리교 부흥 시대에 교회에 덧붙여진 것일 뿐입니다. 아시겠죠.
성경은 “믿은 자들이 다 침례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물을 가득 채운 침례탕이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죽을 준비가 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 번 묻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씨에 생명이 없으면, 보십시오, 그것이 그 씨를 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침례의 물은 하늘에서 내린 이슬과 같습니다. 씨 위에 내릴 수는 있어도 거기에 생명이 없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 물로 받는 그 참된 침례라면, 여러분이 말씀에 어긋나는 신조들과 교단들에게 배운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죽을 준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로서 걸을 것이며,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한다면, 오늘 아침 그 물침례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너희는 각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너희의 잘못들과 너희 죄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 이삭단, 요제 헌물을 받으리라. 원동력, 곧 성령님을 받으리라. 이는 그 약속이 너희와 그들 모두를 향한 것이며 모든 세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버지 하나님, 제가 길게 말씀드려 사람들의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 이 말씀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잠깐 그만두고 물러가 쉬었다가 다시 와야 할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죽어 가는 세상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생명의 메시지와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죽을 몸으로 사는 것은 단 한 번뿐인데, 이 기회를 놓쳐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마음이 타오르고 우리 혼이 감격합니다. 여기 들어온 이들이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이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예, 이삼백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믿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 주님, 분명히 그 씨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손을 들 수 있겠습니까? 무언가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그것은 옛 자아입니다. 거기에 서서 “아!” 하고 말하는 욥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아침 그 욥, 그 믿는 자가 걸어 들어와 완전히 죽고 이 침례의 물속에 묻히게 하옵소서.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방울, 모든 죄를 씻어 없애고 사면하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여러분의 죄의 사면을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이 사면됩니다.
그러면 아버지, 그들이 병들었다면 건강해져 걸어 나가게 하옵소서. 몸에 장애가 있다면 성령의 권능 아래 걸어 나가게 하옵소서. 죄인들이었다면 씻김 받고 깨끗해져 걸어 나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들어가는 것으로 기계적 장치가... 위로부터 원동력인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을 채어 가옵소서, 주님. 그들의 죽을 몸을 살리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참된 새로운 언어들, 하나님의 권능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 죽을 때의 은혜와 살 때의 은혜,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분을 이 땅에 나타내는 한 몸, 한 신부를 듣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이 손을 들었고 저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아버지, 그들을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께서는 놀라우신 분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그 부활절 부활의 일부이고 그분과 함께 일어났다는 사실에 확신이 있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여러분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이라면 말했을 것처럼, 나의 어린 자녀들이여, 그를 흉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이곳에 오기 위해 도로와 온갖 것을 헤치고 옵니다. 사막에서 올라와 눈더미와 그런 것들을 뚫고 이곳에 옵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여러분은 나라를 가로질러 운전해 옵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일부입니다. 사탄이 다른 말을 하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서로의 일부인 우리는 그분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왕국의 동료 시민으로서 부활의 이 복들을 함께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부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을 때 여러분도 일으키셨습니다. 아들께서 바로 지금 여러분 위에 비추고 계시고, 이제 여러분은 그분처럼 꽃피는 생명으로 자라 가며 마지막 날에 완전히 부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잠재적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여러분의 혼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몸이 그것에 순종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무엇에 대한 순종입니까? 교회입니까? 생명이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습니다. 예수님과 저에게 부활절입니다. 여러분과 예수님께 부활절입니다. 여러분과 저와 예수님께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니, 예수님과 여러분과 저, 우리는 모두 함께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몸을 떠나고, 몸이 녹슬고, 흙으로 돌아가고, 불에 타거나 바다 밑바닥에 있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성경은 “한 천사가 자기의 것을 바다에 쏟으니 죽었던 모든 것이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숨겨 놓거나, 우리를 함께 일으키신,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여기 오래 붙들어 두었습니다. 그분들이 아직 전화로 듣고 계신다면, 분명히... 일 분에 오십 센트이니 오늘 아침 정말 많은 비용을 지불하셨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시간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저녁에 돌아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러지 못하면, 그러면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아마 지금 연결되어 있지 않... 이제 전화 연결은 없습니까? 더 이상 전화 연결은 없군요. 여러분은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시지요? 아프리카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요청해 왔고, 여러 해 동안 돌아가려고 애써 왔습니다. 이제 환상이... 주님의 영께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제가 지난번 그곳에 갔을 때 그들에게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가엾은 원주민들이 듣고는, 밤낮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신음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주님, 저희가 무슨 일을 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수천 명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혼이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울고 신음하고 또 울었습니다.
여러분은 미리 소식을 보내지 마십시오. 제발 보내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 비자가 거기로 가다가 목사들 사이에 알려지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저를 막을 것입니다. 저는 사냥꾼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기차 열일곱 대에 사람들을 태워 집회에 내려왔던 그 여왕에게 갈 것입니다. 저는 그 여왕의 영토에서 사냥할 수 있게 됩니다. 제 여권과 모든 서류에는 종교 집회가 아니라 사냥꾼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 형제가 저를 만나 “우리를 위해 작은 집회를 열어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경기장들은 이미 빌려 놓았습니다. 그들은 그것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오,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떠난 뒤로 아프리카를 위해 울어 온 제 혼이... 제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그런 다음 큰 집회의 소식을 여러분에게 가져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마 오늘 이후로는 제가 돌아올 때까지 여러분을 다시 뵙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며칠 뒤, 오월 십일에 떠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곳에 가 보기 전에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사방에 주술사들과 마귀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들 앞에 설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믿어 온 분을 내가 알며 또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는 줄 확신하노라.” 이제 여기 손수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아침 이 부활의 메시지와... 제가 여기 서서, 주님, 그 살리는 권능이 믿는 자녀 안에 있음을 말씀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살리는 권능이 제 삶을 바꾸었다는 것을 믿으며, 믿음 안에서... 주님, 이 사람들도 믿고 있으며 그 권능이 그들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제가 이 손수건들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또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그 영께서 우리 몸 안에 거하시기를 원합니다. 엘리사의 몸 위에 있었던 영은, 그가 죽어 뼈만 남았을 때에도 그 안에 살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손에도 살리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생각과 사도들의 시력, 믿는 자들의 혀에도 모두 살리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이 말씀을 그 위에 놓고, 은혜로 그 살리는 권능을 가진 자를 나타내는 제 손을 얹을 때, 그 살리는 권능이 이 병든 몸들 하나하나를 살려 다시 온전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입니다. 이 손수건들뿐 아니라 저기 회중 가운데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 주옵소서. 어린아이들이나 연세 많은 분들이나, 누구든지 그 살리는 권능으로 지금 바로 살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자, 몇 분이나 살리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제 그 살리는 권능이 여러분 안에 있으면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이제 그것을 막는 것은 단 한 가지... 방해하는 것은 여러분의 불신입니다. 한 여자는 그분의 옷에 손을 대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한 로마 군인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이제 머리를 숙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십시오. 그저 “주님, 이 사람...”이라고 하십시오. 아시겠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구원받거나 치유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유일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을 합니다. 왕국의 동료 시민이며 살리는 권능을 가진 이 사람들에게, 주님, 바로 지금 그것을 살아 있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얹을 때 영께서 독수리에게서 독수리에게로, 말씀에게서 말씀에게로 가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각 사람의 몸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육체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들에게 필요한 어떤 것이든 채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